[미쓰다 신조] 우중괴담
저자 : 미쓰다 신조 / 현정수
출판 : 북로드
출간 : 2022.11.04
잔뜩 쟁여놓은 소설들을 읽는 중이다. 대개가 환상소설 류인데, 가볍게 읽어나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진척이 없다. 자꾸만 어디론가 외출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하늘 탓인지, 솔솔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쏟아지는 졸음 탓인지.
이번 <우중괴담>은 꽤나 기묘한 구성이다. 각각 독립된 이야기처럼 느껴졌던 네 이야기들이, 제일 마지막에 수록된 <우중괴담>에서 이야기 속의 이야기와 맞물리며 하나의 구조를 형성한다.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책 전체가 '하나의 건축물처럼' 변모하는 셈이다.
작가 스스로가 청자가 된 입장에서 서술하기 때문인지, 몰입감이 상당했다. 매 이야기마다 중심 화자가 바뀌는 데도 툭툭 끊어지는 느낌이 없었던 것은 언제나 본문 내 주인공은 '저자', 즉 미쓰다 신조 본인이라고 인식되기 때문이 아닐까. 이야기의 주변부들마저도 세심하게 선택된 '현실감'은 특히 단편에서 빛나는 저자의 특징이다. 언급되는 작품이나 사건들이 실제 존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쩐지 진짜 있었던 일처럼 느껴진다.
이런 특징이 가장 잘 표현된 작품이 표제작 <우중괴담>이다.
미쓰다 신조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사진을 보았을 때 당황하셨을 지도 모르지만, 한 두 작품이라도 읽어보신 분이라면 재빨리 시선을 회피하며 다음 문장을 빠르게 훑었을 것이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일종의- 익숙한 기시감과 위화감 때문이었다고 할까.
특히 <우중괴담> 안에서 두 차례나 강조되는 '경험에서 배웠다'는 표현 또한 진득한 끝맛으로 남는다. 과연 저자는 다섯 번째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이 맞을까? 저자 또한 마쓰오처럼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자가 되어 버린 건 아닐까...?
취향에 따라 평가는 갈릴 수 있겠지만, 즐겁게 읽었다.
- 어릴 때부터 건물에 흥미가 있었다. 가까이에 존재하는 건축물이 아니라, 텔레비전에서 본 서양 영화에 등장하는 고성이나 성관 城館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는 동경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다만 그 대다수가 영화용 세트였다고 생각되므로, 나는 실존하지 않는 건물에 매료되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 이윽고 해외 미스터리에 눈을 뜬 뒤로는, 작품 서두나 작중 건물의 평면도 또는 사건이 일어난 현장의 견취도에 몹시 가슴이 설렜다. 그것이 평면도 아니라 입체도였을 경우에는 -예를 들면 S.S. 밴 다인의 <비숍 살인 사건>이나 존 딕슨 카의 <유다의 창>, 나가이 히데오의 <허무에의 공물> 등- 그런 경우가 드문 만큼 뛸 듯이 기뻐했다. 중학생 무렵에 창작 흉내를 시작했을 때도, 우선은 희희낙락하며 무대가 되는 건물이나 살인 현장의 도면을 그렸다.
- 그래서 대학은 건축학과에 진학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현실의 건물에는 이상하게도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집에, 이야기의 무대로 설정된 장소로서의 건물에, 아무래도 나는 홀려버렸던 모양이다.
- 편집자 시절, 건축 분야 도서의 기획을 담당했던 적이 있다. 그때 알게 된 건축사에게서 "보통 그렇게까지 건축물을 좋아하면 그다음에는 설계나 구조, 혹은 건축사 建築史 등에 관심을 가지는 법인데, 당신의 경우에는 들어맞지 않네요"라며 의아하게 여기는 말을 들었다. 나의 기호가 사실은 어디쯤에 있는가, 그것을 예리하게 찌르는 지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건물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고 적었지만, 건물의 평면도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냥 바라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 그림이 일러스트풍이었을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 거실을 지나 다시 복도로 나와서, 응접실을 지나 안방으로...라는 식으로 도면상의 실내 산책이 시작된다. 그와 동시에, 그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 그러나 뇌리에 떠오르는 일이나 사건에 구체성은 거의 없다. 내게는 집필하는 도중이 아니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성가신 특징이 있기 때문에, 집의 평면도를 보는 것만으로는 그저 막연한 뭔가가 떠오르는 정도다. 그 망상이 한 편의 소설이 될지 어떨지는, 실제로 쓰기 시작하고 한동안 집필을 계속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 그렇다고 해도 돌이켜보면, 처음으로 원고료를 받은 단편이 <안개의 관>이고 장편 데뷔작은 <호러작가가 사는 집>(문고판으로 내며 <기관, 호러 작가가 사는 집>으로 개제 改題), 청탁을 받고 쓴 첫 단편이 <내려다보는 집>이니 그야말로 '집'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 밖에도 <화가>, <흉가>, <재원>, <마가>로 이어지는 '집 시리즈'나 <괴담의 집>, <일부러 흉한 집을 세우고 산다> 같은 '유령 주택 시리즈'가 있으니, 내가 보기에도 용케 질리지 않는다며 조금은 감탄이 나올 정도다.
- 이러한 집 이야기와는 관계없지만, 나는 소설이 아닌 '실화 괴담'도 좋아한다. 이른바 '실제로 있었다고 하는 무서운 체험담' 말이다. 사실 내 작품의 경우 취재로 얻은 실화 계열 이야기를 기초로 한 사례가 많다. 특히 괴기 계열 단편은 대부분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들은 그대로 쓰면 다양한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이야기를 대폭 조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핵심이 되는 체험은 가능한 한 바꾸지 않는다. 요컨대 '핵심' 부분이다.
- 여기까지 적으면 독자분들도 아실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집에 관련된 괴담'에는 사족을 못 쓴다. 어디에나 있는 민가나 집합주택의 방에서 발생하는 '괴이 怪異'는 그곳이 일반적인 장소이기에 무서운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역시 '그 집'이 무대이기에 일어났다고 생각되는 괴이 쪽이 역시 재미있게 느껴진다. 어쩌면 이것은 작가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자기도 모르게 '소재가 될 것 같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 어째서 말끝을 흐리는가 하면, 확실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체험담에 등장하는 '집'이 특별한 장소라는 점은 거의 확실하다. 그렇지만 그 문제의 집이 무엇인가, 어떠한 기능을 갖추고 있었는가, 어째서 그 사람이 한때 그곳에서 지낼 필요가 있었는가,라는 당연히 떠오르는 의문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다. 체험자 본인에게도 모든 일이 수수께끼인 상태다. 그 집에 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특수한 집 구조로 보아 중요 문화재급 건축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 정도밖에 없다. 다만 이 또한 체험자가 성장한 뒤에 자신의 기억을 돌이키며 독학으로 건축 공부를 해 추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근간이 되는 끔찍한 체험의 기억이 잘못된 것이었을 경우에는 이 고찰 자체가 크게 흔들리고 만다.
- 실제로 그 사람의 이야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많이 있었다. 어릴 적의 기억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기야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선명하게 기억하는 상황도 있는 등 차이가 극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커다란 관심을 가진 것은, '집'에 관련된 그의 기억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그 사람을 찾아온 괴이에 매료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 이 체험자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나와 만나고, 어째서 내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가. 이에 대한 정보 일체는 유감스럽게도 본인이 밝히기를 바라지 않으므로 말할 수 없다. 여기에 적을 수 있는 것은 상대가 나와 같은 간사이 지방 출신인 것, 그리고 나보다 최소한 열 살 이상 많다는 것, 이 두 가지 정도다. 다만 나이의 추측에 대해서는, 당시의 내 나이를 독자가 모르기에 거의 의미가 없다. 너무 불친절한지도 모르겠지만, 이하에 재현하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연대를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므로 부디 너그럽게 넘어가주었으면 한다.
- 저는 당신이 좋아할 만한,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제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전문가의 의견을 꼭 좀 듣고 싶어서요.
아뇨, 아뇨. 겸손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소설을 쓰고 계시니 이미 번듯한 전문가 아니시겠습니까.
조금 다르다고요? 죄송합니다. 문외한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군요.
- 몇 번인가 열차를 갈아탔습니다만, 그것이 어느 역이고 어디로 가는 전철이었는지는 조금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몇 번째인가의 환승 때에 플랫폼의 벤치에 앉아 있었던 것, 그런 나를 근처에 있던 아주머니가 빤히 쳐다보고 있었던 것, 아버지가 매점에 가서 캐러멜을 사 가지고 왔던 것 정도입니다. 게다가 캐러멜을 낱개가 아니라 한 갑을 통째로 사 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 제게는 누나 둘에 여동생이 한 명 있습니다. 당시에는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과자를 따로 사주는 부모는 없었습니다. 하물며 아버지가 과자나 장난감을 사다 준 기억은 철이 든 이후로 한 번도 없었으니, 정말 놀랄 일이었지요. 과장이 아니라, 기쁨보다는 경악에 가까운 감정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 그 때문인지 어느 낯선 아주머니의, 평소 같으면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을 언동이 기억 속에서 깔끔하게 날아가버렸습니다. 아버지가 캐러멜을 사주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그 집에서의 행동에도 조금 더 주의하지 않았을까요. 그랬다면 그런 무서운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 "네가 지금 가고 있는 곳 말이야. 아줌마는 거기가 무서운 곳이라는 걸 알 수 있단다. 하지만 말이지, 그렇다고 가지 않으면 훨씬 흉측한 뭔가가 너한테 일어날 거라는 기분도 드는구나."
그 아주머니는 흘끗흘끗 매점 앞에 있는 아버지를 훔쳐보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줌마는, 너한테 가라고도 가지 말라고도, 뭐라 말할 수가 없구나. 이해해 주렴."
그러더니 아주머니는 갑자기 몸을 뒤로 획 돌렸습니다. 매점 쪽을 보니 아버지가 이쪽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알겠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단다."
아주머니는 등을 돌린 채로 이야기하더니, 재빨리 벤치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 네, 그야말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상한 구석은 조금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아주머니였죠. 그런 사람이 어째서...라고, 제가 조금 더 나이가 많았더라면 이런저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에게는 무리였습니다. 게다가 캐러멜 한 갑을 통째로 받은 충격에, 그 미심쩍은 상황도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지워져 버렸던 거죠.
- 할머니는 울타리를 따라 오른편으로 이동하더니, 한쪽 모서리 앞에서 멈춰 선 다음 한 대나무 봉의 새끼줄을 풀었습니다. 놀랍게도 그곳이 출입구였습니다. 그곳의 새끼줄을 걸었다 풀었다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한 그 출입구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겠지요. 그렇지만 조금 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어른이라면 간단히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출입구를 감춰봤자 전혀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어째서인지 납득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을 거다, 라며 이상하게도 안도하고 있었습니다.
- '어...?' 하고 한순간 저는 덫에 걸린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제 두 번 다시 이 울타리 밖으로 나갈 수 없다...라는 절망을 맛보았습니다.
하지만 찰나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마이너스의 감정은 일시적인 것이었고, 즉각 저는 안도감과 비슷한 기분에 감싸였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느꼈던 괴로움도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기분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이쪽으로 오지 않아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채 제 얼굴만 빤히 바라보며 할머니에게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울타리 밖에 머물러 있어도, 저는 특별히 동요하거나 불안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버지가 곁에 있어봤자 이 집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째서인지 깨달은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 현관 안에 멈춰선 채로 아버지를 배웅한 뒤, 저는 현관과 가까운 객실에서 할머니와 마주 앉아 기묘한 설명과 주의 사항을 들었습니다.
첫 번째. 오늘부터 일곱 밤이 지나서 내가 일곱 살이 되는 당일까지, 이 집에서 '은거'를 한다.
두 번째. 그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결코 울타리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세 번째. 여기서는 내 본명을 절대 입 밖에 내서는 안 된다. '은거'하는 동안에 나의 이름은 '도리쓰바사'가 된다.
네 번째. 할머니에게 이름을 물어봐선 안 된다. 할머니를 부를 때는 반드시 '할아버지'라고 부를 것.
다섯 번째.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지만, 만약 발견하더라도 철저히 무시하고 절대 이야기를 나눠서는 안 된다.
여섯 번째. '은거'하는 동안에는 결코 휘파람을 불어선 안 된다. 특히 밤에는 주의할 것.
일곱 번째. 할머니와 이 집은 나를 도와주지만, 어디까지나 '도움'만을 줄 수 있다. 모든 것은 나의 언동으로 결정된다.
- 돌아오더라도 "저쪽 집에서 얼마나 따끔하게 혼이 났는지 절대 물어봐서는 안 된다"라고 단단히 주의를 받았던 모양입니다. 억척스러운 누나들이 그 지시에 순순히 따른 것을 보면, 아버지가 아주 무섭게 이야기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그 집에는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없었고 -애초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집 안의 조명도 램프였습니다- 제가 읽을 수 있는 책 또한 없었습니다만, 밤에는 할머니가 이런저런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미 알고 있는 '모모타로 전설'이나 '일촌법사' 같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주로 산을 무대로 한 으스스한 체험담이었습니다.
- 저는 무서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몰입해서 귀를 기울였던 것은 할머니의 이야기에 매료되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어린아이 특유의 날카로운 감각으로 이 이야기를 잘 들어둘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까요...
- 게다가 시골 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살결이 뽀얀 그 애에게선 왠지 모를 기품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 나름의 격식을 차린 어조로 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 "그렇구나. 이름은?"
하마터면 진짜 이름을 댈 뻔했지만, 직전에 멈추는 기지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상대는 이 동네에 사는 아이니까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중에도, 할머니가 말씀하신 주의 사항이 머리를 스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긴 공백 뒤에,
"... 쓰바사. 도리, 쓰바사."
그렇게 대답했을 때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남자아이에게 거짓말을 해버린 것에 대한 켕기는 마음과, 할머니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자랑스러움이 엉망진창으로 뒤섞인 듯한...
- 하지만 눈앞에 있는 것은 그 남자아이였기 때문에 점차 켕기는 마음 쪽이 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얼버무리려고 저도 상대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확실하고 또렷하게, 그때 그 아이는 이름을 말했습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설사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외국의 이름이고 발음도 그 나라 특유의 발음이었다고 해도, 그래도 어떤 소리는 귀에 남을 텐데...
- 존 만지로를 거론하는 것도 좀 이상합니다만, 그때 남자아이가 말한 이름은 어떤 음성이 되어서 저의 귀에도 남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에 가까운 소리조차 글자로 적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지금도 그것을 발성하려고 하면 목구멍까지는 나오지만 어째서인지 그 애의 이름을 발음할 수가 없어서...
- 분명히 알고 있을 텐데도, 그것을 타인에게는 전할 수 없다.
어쩐지 오싹한 이 현상은 그 남자아이의 이름에 대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아이를 '살결이 뽀얗고, 기품이 느껴졌다'라고 묘사했습니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생김새였는가 막상 설명하려고 하면 갑자기 말이 막혀버리는 것입니다. 뇌리에는 그 아이의 뽀얀 얼굴과 기모노 차림이 또렷하게 떠오르는데도 그것을 응시하려고 하면 모습이 흐릿해집니다. 곧바로 뿌옇게 돼서, 마치 멀어져 가는 느낌입니다.
- 기억해 낼 수 있을 텐데도, 결코 떠올릴 수 없다.
그 남자아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렇게 될까요. 이상하다기보다는 어쩐지 기분 나쁘고 무섭습니다만, 사실입니다.
- 그런데 이어서 귀에 들린 말은, 제대로 들을 수 없었는데도 어째서인지 마음에 걸렸습니다. '어?'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오싹한 한기를 느꼈지요. 새끼줄을 지나려다 말고 도로 고개를 빼며 쓱 일어선 제눈에, 겸연쩍다는 듯한 얼굴을 한 그 아이가 들어왔습니다.
신이 나서 재잘거리다가 굳이 안 해도 될 이야기까지 해버렸네.
그렇게 말하는 듯한 표정을 그 아이는 짓고 있었습니다.
- "이 칼은 쓰바사의 부적이란다. 그러니까 결코 장난하는 데 써서는 안 돼. 집 밖에 나갈 때는 반드시 몸에 지니려무나. 하지만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된다. 이걸 뽑아도 되는 건 무서운 일을 당했을 때뿐이야."
노는 데 쓰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솔직히 실망했습니다만, 다음 순간에는 그런 감정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 무서운 일을 당한다...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렇지만 할머니에게 물어봐도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째서인지 제 옷을 새로운 기모노로 갈아입힌 뒤에 산도를 보자기에 싸서 어깨에 걸치듯 등에 메게 하고, 다시 그것을 감추듯이 삿갓을 제 등 뒤로 늘어뜨렸습니다.
- 어쩌면 할머니는 내가 그 남자아이와 놀고 있는 것을 이미 눈치채고 있는지도 모른다...라는 의심이 문득 들었습니다. 갑자기 산도를 준 것이나 삿갓을 쓰게 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그 아이의 존재를 인정하는 거라면, 어째서 그 애에 대해 조금도 언급하지 않는 것일까요. 게다가 삿갓과 산도가 갑자기 필요해진 것은 어째서일까요.
다음 순간이었습니다. 앗! 하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 삿갓도 산도도, 밤마다 할머니가 이야기해 주신 옛날이야기 속에 모두 나왔던 것입니다. 게다가 양쪽 다, 산에서 벌어진 무서운 일로부터 체험자를 구해준 아주 중요한 부적으로서...
- 보통은 이쯤에서 할머니가 이야기한 무서운 일을 당하는 것, 부적인 삿갓과 산도의 역할, 그 남자아이의 존재...라는 세 가지가 겹쳐질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생각에 필사적으로 저항했습니다. 그와 같은 의심이 조금도 싹트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물론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불안감이 점점 부풀었지요. 할머니가 말로 경고했을 뿐만 아니라, 삿갓이나 산도까지 꺼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남자아이가 친구라는 마음 역시 있었습니다. 저는 할머니를 신뢰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아이와 놀 수 없게 되는 것은 싫었습니다. 애초에 그 애와 만나서는 안 된다는 말은 한마디도 듣지 못했습니다.
- 그때의 저는 자신을 반쯤 속이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좀 이상한 예시입니다만, 아마도 악녀일 거라고 의심하는 여자와 자기도 모르게 밀회를 반복해 버리는 듯한, 그런 정신상태에 가까웠다고 말하면 될까요.
- "아직 멀었어?"
"조금만 더 가면 돼. 조금 더 위야."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 아이의 말이 이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희가 걸은 길은 다소 오르락내리락하기는 했지만 오르막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할머니의 집은 작은 산의 꼭대기에 있었으니까요. 그곳보다도 위에 그 아이의 집이 있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생각해도 이상합니다. 그러나 그때의 제게는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지요. 그저 그 아이의 뒤를 따라 덤불을 헤치면서 나아가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 그런데 문득 정신이 들고 보니, 아주 걷기 편해져 있었습니다. 이제 좀 살겠다며 기뻐했지만, 등 뒤의 삿갓이 떨어져 없어진 것을 깨닫자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마 덤불 속을 지날 때 나뭇가지에 걸려 어딘가에 떨어뜨린 것 같았습니다.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다며 후회하기는 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였지요.
- 제가 혼란스러워하고 있는데,
"양쪽 다, 잃어버렸구나."
아주 기뻐하는 듯한 목소리가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와 흠칫하며 돌아보니, 어느샌가 그 아이가 바로 뒤에 서 있었습니다.
- 그래도 할머니에게 질문을 받았더라면 저는 분명 졸음을 참아가며 모든 것을 털어놓았겠지요. 그러나 할머니는 떠보려는 기색조차 없었습니다. 제가 어떤 일을 당하게 되더라도 어디까지나 '쓰바사 하기 나름'이기 때문이었을까요.
- 양중문 구조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은 포기했지만 사악한 것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기능이 적어도 그 집에는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은거'라는 것은 그 집에 정해진 기간 동안 머물면서, 일곱 살이 되자마자 찾아온다고 여겨지는 재앙을 대상이 되는 남성으로부터 씻어내기 위한 통과의례였음이 틀림없다.
- 참고로 '도리쓰바사'는 한자로 '鳥翼'이라고 쓰는데, 유아의 장례를 말한다. 어린 나이에 죽은 경우, 새(鳥)가 죽은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아직 인간이 되지 않았다고 간주되어, 과거에는 극히 간단하게 매장하는 지방이 많았다. 그때 아이의 시신을 새의 날개(翼)에 빗대어, 어린아이가 새가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도리쓰바사를 행하는 시기의 판단은 지방에 따라서 제각각이었다. 가장 짧은 예는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경우이며, 그 뒤로는 이름을 붙일 때까지, 해산 후 40일까지, 그다음부터는 한 살이 될 때까지, 두 살까지, 세 살까지로 이어지는데 가장 긴 것이 일곱 살이었다. 일본에는 옛날부터 '일곱 살까지는 신의 소관', 혹은 '일곱 살 전에는 신의 아이'라는 말이 있는데, 도리쓰바사의 풍습이 정확히 그것에 들어맞는다.
- <은거의 집>
- 다만 서명 같은 것만은 여전히 영문을 알 수 없다. 여자아이의 나이를 생각하면 일단 글자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림이라고도 볼 수 없는, 참으로 불가해한 묘선이다.
- '그런 그림들이 머릿그림으로 게재된 책이라니, 대체 어떤 오컬트 책일까?'라며 독자들은 놀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구입한 책은 <묘화 심리학 쌍서 7-원색 아이들의 그림 진단 사전>(아사리 아쓰시 감수, 일본 아동화 연구회 편저, 여명서점, 1998)이라는 번듯한 미술교육 관련 전문서였다. 그 책에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과 함께 두 장의 그림을 '예고화'로서 소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 다만 지금 여기에 기록한 것 이상의 정보는 전혀 실려있지 않다. 양쪽 다 본인이 사망하기 전에 그린 그림임은 틀림없지만, 그것이 죽기 직전이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또한 비슷한 예고화를 또 그렸는지 아니면 이 그림만이 예외였는지, 그런 사정을 비롯한 모든 것이 불명이다. 머릿그림 뒤에 게재된 '머리말'에 의하면, 이 책은 "그 그림을 그린 아이의 내면에 있는 문제점을 적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야말로 표제 그대로의 '참고서'라 할 수 있을 텐데, 심리학 및 생리학적 색채 분석에 기초한 아동화의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53년이라고 한다.
- 이 책에서는 아동화를 진단할 때 세 개의 표식을 이용하고 있다. 어떤 현장이 그려졌는가를 눈여겨보는 '형태 표식', 어떤 색이 사용되고 있는가에 주의하는 '색채 표식', 9등분 한 도화지에다 얼굴이나 체구를 투영시킨 구도의 의미를 읽어내는 '구도 표식', 이렇게 세 가지다.
- 그 뒤 많은 분의 도움으로 작가로서 독립하게 되고, 호러와 미스터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소설을 써왔다. 그런데도 이 '예고화'에 대한 것만은 머릿속 한구석에 치워둔 채였다. 작품의 제재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째서인지 의식하지 않으려고 마음먹고 있었다는 기분이 든다. 저것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라고, 마치 누군가가 계속 경종을 울려대는 것처럼.
- 그래서 수년 전까지는 '예고화'에 대해서 거의 잊고 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봉인되어 있었다는 기분에 가깝다.
하지만 어느 해부턴가 4년 연속으로 그것을 떠올리는 상황이 되어서 조금 찜찜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대체 어찌 된 일인지, 순서대로 설명하도록 하겠다.
- 우선 2015년에 KADOKAWA의 모 매체에서 안도 요시아키의 <예지화>(가도카와 호러문고, 2009)라는 책의 광고를 보고 '어라?' 하고 생각했다. 보자마자 이것은 '예고화'를 제재로 한 것이 아닐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읽어보지는 않았다.
- 작가가 되고 참고 문헌을 읽을 기회가 늘어남에 따라, 취미로서 즐기는 독서량은 상당히 줄었다. 그전까지는 해외와 일본의 미스터리를 자주 접했지만, 예전처럼 계속 읽기는 어렵다. 상황이 그러니 해외의 호러 작품을 최우선으로 읽고 그다음에 해외 미스터리 작품을 읽자, 하는 식으로 우선순위를 붙이기로 했다. 그렇게 되면 일본 작품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밀리게 된다. 또 들어오는 책도 많아서, 흥미를 품은 신작에까지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다는 사정도 있었다. 게다가 다른 작가가 소재로 삼은 것 같다고 알게 된 시점에서 더 이상 '예고화'를 제재의 후보로 삼을 수 없다. 물론 내 나름대로 요리할 생각이 있었다면 읽었겠지만,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오히려 이것으로 '예고화'라는 제재를 취소할 수 있게 되었다며 안도하게 되었다.
- 학교 교육에 관한 다른 대형 기획 때문에, 그때 나는 도쿠라와 몇 번이나 만나서 회의를 했다. 도쿠라와는 나이대도 같고 독서 취향도 비슷해서 마음이 맞았던 탓인지 금세 가까워졌다. 업무 이야기를 나누는 짬짬이 잡담을 하는 일도 많았는데, 자연스레 괴담이 화제에 오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나는 이때 그에게서 들은 체험담에 <엿보는 집의 괴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노트에 적어두었다. 2012년에 <노조키메>(가도카와쇼텐, 현재는 가도카와 호러문고)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작품의 거의 절반 분량을 차지하는 '1부'의 소재가 된 이야기다. 물론 사전에 본인의 승낙을 얻었고, 상당한 각색도 했다. 그래도 간행 후에 그에게서 전화로 이런 말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소설화해도 정말 괜찮은 걸까요?"
- 나는 그 서적으로 문제의 아동화를 안 경위부터 시작해서 최근 3년간의 '예고화'에 얽힌 체험을 전했다.
"일종의 '공시성'입니까?"
도쿠라의 반응이 아주 침착했던 것은, 나의 체험이 1년에 한 번꼴로 겪은 것인 데다 각각의 이야기 사이에 특별한 연관성도 없었기 때문일 터다.
"아뇨, 공시성이라고 부를 정도로 대단한 것은 결코 아니겠지요. 다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오싹하네... 하는 정도니."
"그야 그렇겠죠. 제가 같은 일을 겪는대도 그런 식으로 느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오늘 밤 여기서 말한 신참 교사의 체험담도, 일종의 '예고화'에 대한 이야기였으니까요."
이럴 때 들리는 그의 간사이 사투리 억양에는 친숙함보다도 불안감을 느끼게 만드는 무언가가 배어 있었음을 나는 문득 떠올렸다.
- 집에 뭔가 문제가 생겨서 기노사키가에서 아이를 맡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고코로도 어린아이 나름대로 이해했기 때문에 조용히 있었던 것이리라.
때때로 어린아이의 그림을 통해 그 집안의 사정을 짐작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나오토는 어떤 그림을 보더라도 당황하지 않도록 꽤 신경 쓰고 있었는데, 다쓰토의 그림을 보고는 그만 흠칫 놀라고 말았다.
- 연재되었던 사회 소설인데, 어느 초등학교 교사가 아동의 그림을 집으로 가지고 돌아가서 채점하는 장면이 나온다. 거기서 교사는 아이가 사용한 그림물감의 색으로 그 아이의 가정환경이나 심리를 분석한다. 아동화의 색조 사용으로 아이의 심정을 판단한다는, 그런 경향이 당시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예고화'도 그 시대의 산물이라고 교수는 이야기하는 듯했다.
- 귀갓길에 나오토는 생각했다. 다쓰토의 그림도 '예고'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을까. 자신의 병을 묘사한 아이도,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아이도 의도적으로 그런 그림을 그렸는지 어떤지는 불명이다. 오히려 본인도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렸다. 그렇게 생각되는 구석이 있다.
- 하지만 다쓰토는 달랐다. 애초에 다쓰토의 그림은 다쓰토 자신을 그리고 있지 않다. 개나 동급생이나 할머니 등 제3자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대상자는 전부, 그 아이가 싫어하는 존재라고 생각된다. 심지어 그 대상들은 없어지거나, 다치거나, 죽었다.
같은 '예고화'라도 다쓰토의 경우에는 그림에 그려진 대상에 대한 예고를 하고 있다.
- 그렇다고 해도, 그 일을 그만두게 하려면 본인에게 어떻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까. 애초에 그 아이는 의식적으로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림의 특별한 힘을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아니면 자신의 소망을, 단순히 그림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일 뿐일까.
전자라면, 그것은 잘못된 행동이라며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후자의 경우에는 자칫하면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격일 수도 있다.
- 나오토는 고민 끝에, 이대로 방치하기로 했다.
나오토와 관계된 직접적인 '피해'라면, 담임을 맡은 1학년 3반에서 입원하는 아동이 발생한 것뿐이다. 다만 그것도 원인을 따지자면 자신이 무리해서 차키 그룹에 다쓰토를 끼워 넣은 탓이다. 그렇다면 다쓰토가 마음대로 하게 놔두면 된다. 그 아이가 자기 바람을 스케치북에 그리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그걸 방해하지 않으면 되는 문제가 아닌가, 하고 생각한 것이다.
- 그때 다쓰토가 그린 그림이 조금 묘했다. 마치 소풍을 가기 전의, 혹은 가는 도중에 본 도로의 모습을 그린 듯한 것이 어쩐지 테마와는 상당히 어긋나 있어 보였다. 하지만 나오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되도록 아메미야 다쓰토의 일에 관계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최대한 그러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 그다음 주 어느 날 저녁, 나오토는 다음 날 수업의 준비를 마쳐놓고 학교를 나와 집으로 가는 길을 걷다가 문득 멈춰 섰다.
기시감과 위화감.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느꼈기 때문이다. 기시감뿐이라면 발을 멈추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위화감이 더해졌기 때문에 그 자리에 딱 멈춰 서게 된 것이었다.
순간의 판단이 나오토의 목숨을 구했다.
- 좀 더 빨리 그만두었더라면 그런 일을 겪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림의 '저주'는 언제까지라도 계속되었을까.
나는 그런 의문을 품었지만, 물론 누구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일 것이다.
- <예고화>
- 나이를 먹은 뒤에 취미로 창작을 시작했을 때도 이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도, '작가가 될 수 있다'고도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어디까지나 취미로 소설을 쓰고 있었더니 인연이 닿아서 첫 번째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로부터 약 8개월 뒤에, 편집자로 근무하던 출판사가 도산하고 만다. 나는 이것도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렇다면 프로 작가로서 통할지 시험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런 흐름에 지나지 않는다.
- 다른 동경했던 일이나 직업은 전무했는가...라고 돌아보면, 확실히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어릴 때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영향으로 형사가 멋지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경찰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드라마 속 형사에 대한 동경은 서부극의 총잡이나 특촬물 방송의 '변신 히어로'에게 품는 감상이나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 어릴 적에 보고 상당히 무서워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박물관의 수위 같은 건 절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요괴인간 벰>은 무섭지 않은 에피소드를 세는 편이 차라리 빠르다고 생각될 정도로 어느 이야기나 공포스러웠다. 지금 바로 떠올릴 수 있는 것만 하더라도 '죽은 자의 마을', '악령의 촛불', '저주의 유령선', '원한의 거울', '공포의 흑영도', '오래된 우물의 저주', '망자의 동굴' 등 무서워서 눈물을 글썽이며 본 에피소드들이 줄을 잇는다.
- 아니, 애초에 오프닝이 끝난 뒤에 내레이션이 흘러나올 때부터 나는 항상 전율하고 있었다. 보고 싶지 않은데도 눈을 떼지 못하고 오히려 응시하게 되어버린다. 그런 모순된 심리를 처음 맛보게 한 것이, 어쩌면 <요괴인간 벰>이었는지도 모른다.
- 그 정도로 무서운 것을 순수하게 두려워하던 아이도 어느샌가 괴담을 즐기는 어른이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결국 경비원 일을 아르바이트로도 하지 않았던 거라 생각한다. 담력 시험과도 비슷한 유희의 마음이 가슴속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아무래도 주저하게 되었던 것이다.
- 이런 나와는 달리, 작가인 센바 아츠오(가명)는 저작물이 팔릴 때까지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생활을 위해 경비원 일을 했다고 한다. 만일을 위해 미리 말해두자면, 그 사람은 호러 작가도 미스터리 작가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과 알게 되어 체험담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모 출판사의 모 편집자가 우리 둘을 연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 이 센바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괴기 단편의 소재로 써먹을 수 있겠다'라며 남몰래 기뻐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사람도 작가다. 자신의 체험을 직접 소설로 쓰면 되는 게 아닐까?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상황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물어보았지만, 실은 이미 시도했다가 실패한 모양이었다.
"당시를 떠올리면서 쓰는 동안에 점점 무서워져서요."
- 그것이 중단한 이유라는 말을 듣고, 나는 흥분했다. 작가 본인이 '무섭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란 그리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꼭 좀 써주십시오."
기백을 담아 부탁했지만, 그럴 생각은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엄청나게 무서운 일을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걸 소설로 쓰려고 했더니 한심하게도 그 소름 끼치는 감각의 10분의 1도 표현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겁니다. 그래서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 하지만 이 이야기를 내가 쓰는 것은 문제없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솔직히 날아오를 듯한 기분이 되었지만, 아니 잠깐... 하고 정신을 차렸다.
작가인 센바 아츠오가 젊었을 무렵 겪은 체험담을 다른 작가인 내가 단편으로 엮게 되면, 당연히 그 사람도 그 작품을 읽을 것이다. 그때의 반응을 상상하면 역시나 망설이게 된다.
- "당신은 호러 작가이니 분명히 잘 쓸 수 있을 겁니다."
이쪽의 망설임을 알아차렸는지, 그 자리에서 센바에게 격려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긴장하게 되었다. 그 사람의 기억에 있는 공포를 제대로 재현하지 못한다면...이라고 상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곧바로 자신감을 잃고 말았다.
- 그 뒤로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나도 작가로서 조금은 성장했다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느껴지는 순간이 아주 가끔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슬슬 센바의 체험담을 단편으로 써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자문하게 되는데, 언제나 답은 '아니요'였다.
아직 쓸 수 없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에서 느낀 공포를 문자로 표현할 자신이 없다.
- 업무를 시작하고 다른 경비원과 접하게 되면서 아츠오가 알게 된 것이 있다. 그것은 많은 경비원 자리가 '이것이라도'와 '이것밖에'인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는 놀랄 만한 사실이었다. 요컨대, 어떤 사정으로 생활이 곤란해져서 일자리를 알아보았지만 어디에서도 고용해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경비원이라도 할까 하고 지원하긴 했으나 실은 경비원밖에 할 수 없을 만한 인물들만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아니, 개중에는 경비원 일조차 도저히 무리인 사람도 있었다.
- 오해가 없도록 미리 말해두자면, 공사 현장의 대형트럭 유도나 일반 차량의 교통 통제 등 제대로 머리를 쓰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업무도 많고, 그것을 척척 처리하는 베테랑 경비원도 당연히 있다. 그러나 2년 정도 근무하면서 '이 사람은 진짜 프로다'라고 감탄할 수 있는 인물은 단 두 명밖에 보지 못했다.
- 한편으로는 그냥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하면 되는 일이 존재하는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회사는 각 개인을 파악해 적재적소인 파견지를 정하는데, 그곳에서 제대로 일을 못 하면 다음 날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다. 그래서 '이것이라도, 이것밖에, 이것조차'인 사람도 어떻게든 일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 옥석이 혼재되어 있긴 하지만, 아마도 대부분이 돌멩이인 게 아닐까.
아츠오는 자신이 그 돌멩이가 되지는 말자고 마음먹었다. 어디까지나 집필 활동이 주업이고 경비원 일은 부업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충 할 생각은 없었다. 그 일의 대가를 받는 데다, 현장의 안전에 대한 책임도 있다. 그래서 그는 진지하게 임했다.
- 당연히 다들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것이다. 요컨대 비상계단의 감시 따위는 원래는 전혀 필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현장에 경비원은 몇 명이며 어디 어디에 필요하다'라고 법률로 꼼꼼히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어떤 공사라도 착수할 수 없다.
- 아츠오는 점차 짜증을 느꼈다. 경비 중에는 벽에 기대지 말고 계단에 앉지도 말라는 주의를 들었다. 물론 층계참을 벗어날 수도 없다. 항상 입초 자세가 요구된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라고 방심하고 있다간 작업 현장을 순찰하는 경비 리더에게 들켜서 야단을 맞게 된다. 이 현장은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며 동료 한 명이 귀띔을 해주었다.
- 경비 업무 중에 소설 구상을 하겠다는 계획은 맥없이 무너졌지만, 이 직장에서의 만남이나 경험은 이후로 그의 집필 활동에 상당히 도움이 되었음을 밝혀두고 싶다.
- 문제의 십계원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길쭉하게 뻗어 있는, 문자 그대로 열 개의 구획을 지닌 공원 같은 장소다. 서쪽 끝부터 순서대로, 우선 '육도 六道’의 세계인 지옥계 地獄界, 아귀계 餓鬼界, 축생계 畜生計, 수라계 修羅界, 인간계 人間界, 천계 天界가 있고, 이어서 '사성'의 세계인 성문계 聲聞界, 연각계 緣覺界, 보살계, 불계가 있다. 아츠오는 불교 계열 대학을 나온 덕분에 어느 정도는 지식이 있었으므로,
"이곳은 인간이 이 여섯 세계에서 윤회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겁니까?"
그렇게 나마세에게 질문했다.
"다른 종교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우리 광배회는 다릅니다. 육도윤회란 사람의 마음속에서 되풀이되는 세계관의 변천입니다. 신자분들은 이 십계원을 산책하는 것으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요령부득한 대답만 특유의 미소를 마주한 채 듣게 되었다.
- 애초에 신흥 종교 단체는 어느 곳이나, 많든 적든 기성종교의 사상을 기초로 해서 자신들의 교의를 만들어 나가지 않던가. 오히려 그 단체이기에 가능한 독창적인 -이라기보다는 명백히 이상하며 우스꽝스러운- 가르침이 있는 경우가 여러 의미로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광배회는 그나마 정상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지만...
그것도 십계원을 안내받을 때까지였다. 왜냐하면 열 개의 구획에 설치된 오브제가 정말로 이해 불가능한 것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 예를 들면 지옥계의 경우, 높고 긴 두 개의 벽이 마주 보 고 우뚝 서 있다. 벽 안쪽에는 새빨갛고 무수한 검은 구멍이 뚫려 있는데, 두 벽 사이의 폭은 어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다. 이것으로 지옥을 묘사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아츠오로서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지옥이라고 하면, 일본에서 지옥을 이야기할 때 흔히 나오는 '바늘 산'이나 '피의 연못' 같은 쪽이 알기 쉽지 않을까.
다른 구획도 마찬가지였다. 좋게 말하면 '현대미술'인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어느 것을 보나 영문 모를 것뿐 들이다.
- 사성에 속한 네 개의 세계가 끝나고, 다음은 육도 구획이었다. 첫 번째인 천계는, 보살계의 인간 비슷하게 생긴 것들보다는 그나마 사람같이 보이는 몇 개의 조각상이 드문드문 서 있는 풍경이다. 다만 조각상 하나하나가 인간의 형태를 취하고 있기는 해도 어디까지나 인간의 모습을 흐릿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아서, 손가락이나 이목구비 같은 세부 조형은 조금도 되어 있지 않다. 단 한 곳에만 어떤 묘사가 되어 있을 뿐이다.
- 웃음. 입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빙긋 미소 짓고 있는 형태가 어느 얼굴에서나 확실히 엿보인다. 단순히 '○'의 하반부 곡선이 새겨져 있는 것뿐인데도 그것이 훌륭하게 '웃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 그렇다고 해서 아츠오까지 즐거운 기분이 드는가 하면, 정반대였다. 회중전등 불빛에 비친 웃음은 도저히 미소로는 보이지 않았다. 웃음이 아니라 명백히 조소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빙긋 웃는 밝은 웃음이 아니라 히죽 웃는 일그러진 비웃음으로 그 공간은 가득 차 있었다.
그런 웃음을 짓고 있는 조각상들 가운데 있자니, 마치 자신이 비웃음 당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불계를 순찰하던 중에 편한 일 같다고 생각했던 것이 너무 성급한 판단이었음을 그는 뼈저리게 느꼈다.
- "어떤 체험을 하셨더라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 주시면 됩니다."
- 간밤에 있었던 일들을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이야기하자, 가마다는 명백히 겁먹고 동요한 듯 보였지만 나마세는 고객의 귀찮은 클레임을 앞에 두고 어떻게 대처할지를 생각하는 유능한 비즈니스맨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입을 다물어버려서, 질문을 하려면 지금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아츠오는 말을 꺼냈다.
- 십계원의 어디에서 일어났는지 -설마 동일한 장소인지- 질문을 하려다가 역시 생각을 고쳐먹고 그만두었다.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모르는 편이 훨씬 낫다.
- <모 시설의 야간 경비>
- 지금은 돌아가신, 지극히 합리주의자였던 아버지에게서 딱 한 번 유령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옛날부터 괴담 따위에 흥미가 없었는지 경찰관이라는 직업상 그렇게 되었는지 지금에 와서는 확인할 방법도 없지만, 그런 아버지의 입으로 들었던 것이 의외여서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 아니, 가령 살아 계셨다고 해도 확인은 어렵지 않았을까. 부모 자식 사이에...라고 의심하는 독자도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만은 어쩔 수가 없다. 철이 들었을 무렵에도 어른이 된 뒤에도, 아버지와 마음 편히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 어쨌든 아버지는 스스로에게 엄한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나라 여자 대학교 앞의 파출소 순경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나라현 경찰 소속 카시하라 경찰서의 서장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말단 순경이 경시 警視 계급까지 오른 것이니 출세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결코 순조롭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비뚤어진 것을 끔찍이 싫어한다...라는 성격이 아무래도 경찰 조직 안에서 불리하게 작용한 듯하다. 실은 무엇보다 경찰관에게 요구되어야 할 자질인데, 참으로 얄궂지 않은가. 경찰도 어차피 '공무원'이라고 생각하면 납득이 가기도 하지만.
- "이 세상에 유령 같은 건 없어."
그런 이야기를 연말연시의 귀성 때마다 아버지에게서 들어야 했다.
처음에는 '이 양반이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지?'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집에 얼굴을 비출 때마다 같은 소리를 듣게 되자, 기어이 깨달았다.
- 교토의 견실한 학술서 전문 출판사에 근무하고 있던 아들이 어느샌가 수상쩍은 책의 기획과 편집을 하고 있다. 그러더니 아예 호러나 미스터리를 쓰는 작가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되었으니 '그런 건 현실에 없다'라고 단단히 일러두는 게 좋겠다,라고 아마도 아버지는 생각하셨던 것 같다. 익살스럽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 추측이 맞을 것이다. 아버지는 독서가였지만 소설은 거의 읽지 않았다. 손에 집어 든다고 해도 그 시기에 화제가 된 작품 정도였고, 소설을 즐기는 취미는 없었다. 그랬던 양반이 내가 기획 편집한 책을 읽어본 것이다. 특히 내 데뷔작을 포함한 '작가 3부작'은 그러한 작품의 메타픽션이니 아버지가 걱정하게 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일지 모른다.
- 옛날에 나라 공원 내에서 종종 자살자를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내가 아는 그 공원의 이미지로는 좀처럼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목매 죽은 것 말고도 많은 시신을 다루었다고 한다. 역시 직업상 상당히 많은 사람의 죽음과 접해왔던 것일 테다. 모든 체험을 들은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 구석구석에서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게다가 듣기로는, 당신의 목숨이 위험했던 경우도 두 손으로 다 꼽지 못할 정도로 있었던 듯하다.
- "그렇지만 유령 따윈 지금까지 본 적이 없어."
아버지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딱히 나도 믿고 있는 건 아니고 애초에 답이 나올 수 없는 문제니까 어느 쪽이 맞는다고 결정할 수 없어요...라고 대답하지 않은 것은, 그대로 이야기하게 놔두는 편이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 일본인이라면 누구에게나 통할 유령 흉내다. 늘 진지하고 목석같던 아버지에게도 이런 일면이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아버지는 영적인 것은 믿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요괴 부류는 좋아했다. 가공의 존재라고 처음부터 구분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 말을 듣고 다케카와 부인이 또렷한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집 안이 아니에요."
"그러면 어디에?"
"집 밖...이에요."
"마당입니까?"
아버지의 물음에 부인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현관이에요.... 찾아, 와요."
"호오?"
유령이 집 안에 나오는 게 아니라 집 밖에서 찾아온다는 말을 듣고 천하의 아버지도 깜짝 놀랐다.
- 양쪽 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그저 가만히 서로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녀는 저것으로 하여금 집 안에 아무도 없다고 판단하게 만들기 위해서, 저것은 그녀가 자신이 떠나갔다고 믿게 만들기 위해서 숨을 죽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기묘한 상황이 그 자리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먼저 움직인 쪽이 지는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 이내 그녀는 가만히 서 있는 것이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조금 의식한 것만으로도 두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일단은 거실로 몰래 이동하자...라고 생각하고 발꿈치를 들고 걷기 시작하려 했을 때였다...
끼익... 하고 거실 바닥이 울렸다.
그 순간, 부엌문 너머의 분위기가 명백히 바뀌었다. 술렁 하는 움직임이 확실히 느껴졌다.
- ... 콩, 콩.
다시 노크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자신 없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어째서인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엄마는 며느리니까, 아마도 아니겠지."
"어, 무슨 소리야?"
그러나 아버지는 더 이상 아무런 설명도 하지 못했다. 할머니에게서 어머니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고 당신이 느낀 것도, 어디까지나 직감에 지나지 않는 듯했다.
- "향전은 여기에 있단다. 이 비단 보자기에, 이런 식으로 싸서..."
법사에서의 예의를 나나오에게 세세하게 알려주더니,
"알겠니? 향전을 바치면 오래 머무르지 말고 곧바로 돌아와야 한다."
"참배는?"
"안 해도 괜찮아."
그렇게 너무나도 의외의 말을 해서, 나나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 "향전만 바치고 나면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그걸로 끝이야. 정말로 끝..."
그리고 할머니는 먼 곳을 보는 듯한 시선을 한 채 가만히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드디어 끝인데, 내가 못 가게 될 줄이야."
그것은 아쉬워한다기보다는, 마치 오랜 세월에 걸친 사명을 자기 손으로 완수할 수 없는 것에 분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나나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그 말에서 진심으로 안도하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 할머니와 경트럭의 노인, 그 두 사람과 똑같은 충고를 했다.
"나도 이제 돌아가려던 참이야."
"이 집분들께 인사를 하지 않아도..."
"그런 거, 필요 없어."
노부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손짓을 해서 나나오를 툇마루로 올라오게 한 뒤에, 본채 부쓰마의 위치를 알려주면서 말했다.
"누구와 만나더라도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는 거야. 딱히 이야기를 나눌 필요는 없어. 애초에 말을 걸어오는 사람 따윈 아무도 없을 테니까."
그리고 다짐을 받듯이 덧붙였다.
"불단에 향전을 바치고 나면 이 툇마루로 돌아와서, 곧장 집으로 가는 거야. 그것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노부인은 복도 중간까지 와주었지만 거기서 현관으로 방향을 틀고, 나나오만 불단이 있는 부쓰마로 향하게 되었다.
- 그때 노부인은 어쩐지 의미심장해 보이는 말을 가만히 중얼거렸는데, 나나오는 그것이 할머니를 향한 말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대로 확인할 새도 없이 노부인은 총총히 떠나버렸다.
- 그대로 복도를 나아갔다. 여름이기 때문인지 거의 모든 다다미방의 장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곳에는 어딘가 어수선한 눈치로, 나나오의 할머니보다 조금 연하로 보이는 노부인이 몇 명이나 앉아 있었다. 어머니와 동년배로 보이는 여성의 모습도 있었지만, 그보다 높은 연배인 사람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 어머니 세대보다 젊은 사람은 아무도 없네.
그 사실에 나나오가 불안을 느끼기 시작하는데, 그 순간 방 안 여성들의 시선이 단숨에 그녀에게로 쏠렸다. 하지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다 살며시 시선을 돌리든가, 아니면 마냥 눈으로 좇든가 둘 중 하나였다.
- 나나오는 모두에게 흘끗 눈길을 한번 향했을 뿐, 이후로는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 바늘방석 같은 상황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 예를 들면 자신이 이혼해서 옛 성씨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또다시 자신을 데리러 오는 게 아닐까... 그다음에는, 마찬가지로 딸까지 데려간다...
나나오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찢기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다행히 남편과는 사이가 좋고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원만하다. 그러니까 그런 사태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 그것과의 인연은 자신의 대에서 확실히 끊겠다.
무엇보다도 딸을 위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나나오는 강하게 결심했다. 그것을 본가의 불단에서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맹세했다.
그녀는 그런 말로 이 이상한 체험담을 마무리했다.
- "은퇴한 참견쟁이 노인에게 자기네 임대주택에 세 들어사는 젊은 다케카와 부인은 어떻게든 말을 붙여보고 싶은 상대였겠지. 부인도 처음에는 그런 영감님에게 친절하게 대했을 테고."
"하지만 주인집 영감님이 놀러 오는 일이 점차 늘었다. 너무 빈번하게 찾아오게 돼서, 다케카와 부인은 집에 없는 척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영감님이 눈치채고 현관의 초인종을 누르는 것뿐만 아니라, 이윽고 주방의 부엌문까지 노크하게 된 거야."
"남편과 의논해 봐도 상대는 집주인 가족이니 뭐라 하기도 어렵겠고. 그렇지만 결국 참을 수 없게 돼서 끝내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 이대로 묵묵히 이사하는 건 억울해서 울화통 터지는 일이겠지."
"그래서 아마노 씨네 집과 친하게 지내는, 게다가 경찰관인 아버지를 통해 그 셋집에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을 퍼뜨리려고 했던 건가요?"
"집주인에 대한 직접적인 험담은, 나중을 생각하면 역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했겠지."
다케카와 부부는 지방공무원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아마노가와 관계하게 될지 알 수 없다. 두 사람은 그것을 염려한 것일 테다.
- "그래서 유령의 집 이야기를 꾸며낸 건가?"
"만약 문제가 되더라도 전부 부인의 착각이었다...라는 식으로 얼마든지 얼버무릴 수 있으니까."
"유령 이야기라는 건, 그런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네요."
- 나로서는 괴담의 효용을 이 일과 엮어서 설명할 생각이었지만,
"말하자면, 역시 세상에 유령 같은 건 없다는 얘기야."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재빨리 유령의 집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버렸다.
- 그건 그렇고, 이런 아버지의 해석을 덧붙였다고 해서 아이다 나나오의 체험담에도 같은 수수께끼 풀이를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미안하지만 그런 보충은 없다.
- <부르러 오는 것>
- 이름을 들어도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그저 깜빡 잊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정작 중요한 용건이 불명인 것도 신경 쓰였다.
어쩐지 수상하니 거절할까.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이상한 사람들이 내 앞으로, 출판사에 전화나 편지나 메일로 연락을 취해온 일이 꽤 있다. 메타성이 강한 호러 소설을 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옛날에 신세를 졌던 사람이었다면...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쉽게 내칠 수도 없었다.
- 그래서 내가 업무를 의뢰했던 책의 제목을 말해달라고, S를 통해서 저쪽에 부탁하기로 했다. 상대에게 조금도 잘못이 없을 경우에는 상당히 실례되는 대응이 되고 말겠지만, 주의해서 나쁠 것은 없다.
그것을 나는 과거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 배웠다.
- 그러자 마쓰오는 S의 메일로 여러 권의 책 이름을 보내왔다. 전송된 그 제목들을 본 순간, 그 사람의 사무실 안 풍경이 어렴풋하게나마 머릿속에 떠올라서 깜짝 놀랐다. 내가 편집자였을 때 담당했던 책 이름을 전부 기억해 써내는 것은 과연 지금은 무리다. 그러나 구체적인 제목을 듣게 되면 과연 기억이 자극을 받는 모양이다.
-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할 생각일까.
기대와 불안이 반반이었다. 전자는 어떤 괴이한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다. 그리고 후자는, 그 괴담이 뜻밖의 앙화를 초래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움이었다. 모순되는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또한 호러 미스터리 작가이기에 느끼는 심리인 걸까.
- 동창회에는 열네 명이 참석했다. 2차에 간 것은 여섯 명이었는데, 거기에 나도 끼어 있었다. 요컨대, 과음을 하는 바람에 다음 날 아침에 머리가 조금 무거웠다.
이대로 집에 돌아가고 싶네.
금세 마쓰오와의 약속을 후회하는 마음이 싹텄다. 왜냐하면 괴담을 접할 때는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라는 것을,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 미약하나마 다행스러웠던 점은 호텔 조식 메뉴로 일본차죽을 고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걸 먹은 뒤에는 체크아웃할 때까지 방에서 쉬었다.
오전 중에는 시간이 남아돌았기 때문에,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들고 나라 공원을 산책했다. 공교롭게도 흐린 날씨라 공기가 조금 싸늘했지만, 빈둥빈둥 걷는 것은 머리의 무거움을 털어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점심 무렵에는 공복감이 느껴져서 감잎 초밥과 소면을 먹었다.
- 골목을 잘못 선택한 모양이었다. 가와나가 역에서 20여분 정도 걸린다고 했으므로 시간상으로는 슬슬 도착해야 할 무렵인데, 설명으로 들은 것과 같은 건물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큰길까지 되돌아갈까 고민하는데, 앞쪽에 고양이의 모습이 보였다. 길고양이인 듯한 하얀 털의 고양이였다.
고양이 애호가로서 가만있을 수 없어 잠깐 뒤를 쫓아가 보았다. 그러자 우연히도 마쓰오의 디자인 사무소 앞으로 나오게 되었다.
- 측면과 뒷면이 없는 철제 선반이었는데, 그곳에 책들이 수평으로 눕혀진 채 쌓여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아아, 확실히 이런 느낌이었지.
그런 감각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처음 만났을 때, 일부러 책장을 놓지 않고 책을 옆으로 돌려 표지가 보이게 놓는 스타일이 참으로 디자인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답다고 생각했던 게 기억났던 것이다.
- 하지만 동시에, 묘하게 마음에 걸리는 것도 있었다. 그게 뭘까 하고 둘러보았지만 전혀 알 수 없었다.
당시와 다른 점?
그때로부터 30년 이상이나 지났으니 이상한 부분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느낀 것은, 뭐라 말할 수 없이 마음이 술렁이는 감각이었다.
... 위화감?
그렇게 말해야 할 만한 뭔가가 이곳에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눈에 띄는 것이라곤 책 정도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 곧바로 말을 맞춰서 잠시 동안 옛날 추억을 서로에게 이야기했지만,
"시간도 많이 없으실 테니..."
마쓰오가 배려해 주어 거기서부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는 만일을 위해 신오사카 신칸센의 막차 표를 사두었다. 그러나 마쓰오의 이야기를 듣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되도록 빨리 이야기해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제일 바람직할 것이다.
- "작가가 되셨다는 건 서점에서 작품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호러나 미스터리를 좋아했었지, 하고 당시를 그리운 기분으로 떠올리긴 했지만 설마 정말로 작가가 됐을 줄이야... 이거 참, 놀라움과 함께 정말로 기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러더니 마쓰오는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작품은 별로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야성시대>에 실린 단편도, 모 출판사의 편집자가 우리 사무실에 깜빡 놓고 가지 않았다면 아마 보지 못했을 겁니다."
- 마쓰오는 해 질 녘에 산책하는 것을 일과로 삼고 있었다. 디자인 업무는 그야말로 '사무 작업'이기 때문에 운동 부족이 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의뢰주가 대기업일 경우, 마쓰오가 저쪽으로 찾아가는 일은 드물지 않다. 하지만 그런 고객은 적었고, 대부분은 출판사를 상대로 하고 있다. 요컨대 책의 디자인이다. 그것도 본문의 레이아웃부터 외부 장정까지, 서적 한 권의 디자인 관련 작업 전부를 담당하게 되는 일이 많았다.
- 이럴 때 업계에서는 기본적으로 담당 편집자가 디자인 사무소를 방문한다. 원고 교정지를 가지고 가서 작가의 희망 사항이나 편집자의 생각을 디자이너에게 전하고 여러 가지 혐의를 한다.
- 이때 디자이너는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직접 교정지를 읽는 사람과 전혀 읽지 않는 사람. 원고의 내용도 모르고 작업이 가능한가,라고 독자들은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후자는 편집자로부터 원고가 어떤 내용인지 상세하게 듣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다. 이 방법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데다, 원고가 전문적인 학술서일 경우에는 디자이너가 어설프게 읽고 이해하는 것보다 편집자에게서 요점만 듣는 편이 이후의 작업을 보다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다. 그래서 "교정지는 읽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꽤 있다. 같은 내용을, 커버의 장정에 들어가는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 한편으로, '교정지는 읽는다' 파도 적지 않다. 역시 '직접 읽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지 않을까'라는 의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마쓰오의 경우는 교정지를 읽는 부류였다. 다만 사무소의 책상에 계속 앉아 있으면 마쓰오를 찾는 전화가 걸려오고, 스태프가 말을 걸어오고, 진행 중인 다른 업무도 신경 쓰인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교정지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일과인 산책의 목적은 운동 부족의 해소에 있었지만, 실은 야외에서 교정지를 읽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 그날도 마쓰오는 책 한 권 분량의 교정지를 들고 평소처럼 산책을 했다. 약속은 오전과 오후에 잡고, 밤에는 디자인 작업을 한다. 그것이 기본이었다. 그래서 산책 시간은 자연스럽게 해 질 녘 전이 되었지만, 동절기 같은 때는 해가 떠 있는 낮 동안에 했다. 다시 말해, 계절과 날씨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
- "우리 집하고 똑같네요."
거기서 자기도 모르게 반응해 버리고 곧바로 후회했다. 그런 대답을 하면 노인이 한층 수다스러워지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런데 노인이 갑자기 입을 다물고 깜짝 놀란 듯한 표정으로 잠시 마쓰오를 바라보더니,
"그런가...?"
하고 중얼거리며 감개 깊은 얼굴을 해서 마쓰오는 의외라고 생각했다.
- "옛날에는 이렇게 같이 사는 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집이 적어졌으니 말이야."
노인의 말은 며느리의 시누이에 해당하는, 미혼인 장녀와 동거하는 상황에 대한 것이 틀림없을 터였다. 최근에는 부모와 동거하는 경우도 드물어졌기 때문에 더 그렇게 생각되는 것이겠지.
"그렇지요. 저희 쪽은 아내와 누나의 사이가 좋아서 딱히 문제는 없습니다만..."
"호오, 그거 다행이구먼."
- 그렇다면 내가 오두막까지 가져다주자고 생각했어. 요컨대 오두막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거야.
도시락을 놓고 돌아오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건 안 돼. 사냥 때만 쓰는 작고 볼품없는 오두막이라, 제대로 된 문 같은 건 달려 있지도 않아. 출입구에 볏짚을 엮은 발을 쳐놓았을 뿐이니까, 도시락만 덜렁 놔뒀다가는 여우나 너구리, 족제비 같은 놈들이 들어와서 깨끗하게 먹어치울 게 안 봐도 뻔하지.
- 나는 도시락이 든 보퉁이를 어깨에 메고 호기롭게 집을 나섰어. 도시락을 전해주는 것뿐이지만 어쩐지 큰 임무를 맡은 듯한 기분이었지.
그런데 할머니가 큰 소리로 부르면서 몹시 당황한 얼굴로 따라오시는 거야. 황급히 할머니한테 돌아간 나는, 할아버지가 아주 중요한 물건을 놓고 가셨다는 걸 깨달았어.
평소에는 불단에 모셔두고 있는 '막탄'이야.
- 막탄이란 오래 쓴 쇠솥으로 만든 총알인데, 사냥꾼이 평생에 딱 한 번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총알을 말해. 이걸 쏜다는 건, 그 순간 사냥꾼을 그만둔다는 걸 뜻하지. 그 정도로 귀한 총알이야.
이 막탄을 부적 주머니에 넣고, 평소에는 불단에 놓아두고 있다가 사냥을 하러 갈 때 가지고 가는 거야. 지금까지 몇백 번이나 같은 일을 해왔을 할아버지가 그걸 그만 깜빡했다는 거지.
- 갑자기 엄청나게 불길한 기분이 들었어. 도시락을 깜빡한 거라면 웃으며 넘길 수도 있어. 하지만 막탄을 잊었다는 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거든. 조심성 많은 할아버지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실수였으니까. 할머니도 그걸 깨닫고 엄청 당황하셨던 게지.
"할아버지한테 오늘은 사냥을 그만두고 바로 집에 돌아오시라고 해야 한다."
그렇게 몇 번이나 다짐을 받고 나는 집을 나섰어.
- 막탄과 도시락을 깜빡한 사실을 할아버지가 깨달으면 곧바로 사냥을 멈추고 돌아올 게 틀림없어. 그것만은 확실했지만 분명 할아버지는 깨닫지 못할 거라고, 그때 나는 느꼈어.
- 왜냐하면, 이미 할아버지는 홀렸기 때문이야.
무엇에...라고 하면, 역시 마물이라고 해야 할까. 도모 씨가 부정 때문에 산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을 때, 원래대로라면 할아버지도 산에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어. 아니, 그때까지의 할아버지였다면 분명히 그렇게 하셨을 테지. 그런데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서 산에 들어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거야. 심지어 평소의 할아버지라면 있을 수 없는, 소중한 막탄과 도시락까지 잊어버리는 일이 생겼고.
이건 마물에게 홀렸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야.
- 상당히 빠른 속도로 걸었으니, 산기슭에 도착했을 때는 숨이 목까지 차오를 정도가 되어 있었지. 그래도 쉬지 않고 올라간 건 빨리 산신님의 사당에 참배를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야. 사당에 들르기만 하면 일단 안심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겠지.
그런데 5, 6분 정도 험한 산길을 오른 끝에 마침내 사당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는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안 좋은 예감에 휩싸였어.
사당 앞에 있어야 할 공물이 보이지 않았던 거야.
- 말하자면, 할아버지가 산신님께 참배하지 않고 산에 들어갔다는 얘기야. 당연히 일부러 그런 건 아니겠지. 이 중요한 의례도 할아버지는 잊어버렸던 거야. 아이고, 이거 정말 큰일 났구나 싶어서 나는 떨기 시작했어. 산에 대해 잘 모르면 감이 안 올지도 모르겠는데,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사건이거든. 산신님께 허락도 받지 않고 산에 들어가다니,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짓이었지. 할아버지는 누구보다도 그걸 잘 알고 있었을 텐데 말이야.
- 그래서 가만히 있었더니, 수풀에서 불쑥 하얀 게 고개를 내밀더라고.
그게 말이지, 새하얀 고양이였어.
- 평소 같으면 김이 샜겠지만, 그때는 달랐어. 등줄기가 부르르 떨렸지. 왜냐하면 아무리 들고양이라고 해도 산속에서 살지는 않아. 가령 산다고 해도 기슭 부근이겠지. 이렇게 위쪽까지 올라오다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야.
산신님 사당에 참배를 한 뒤에 평소와 다른 것을 보았다면 곧바로 산에서 내려가라.
할아버지가 평소부터 하셨던 충고를 나는 불현듯 떠올렸어. 저 앞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고양이가 그야말로 딱 그것이 아닐까.
- 원래대로라면 그대로 뒤도 안 돌아보고 산을 내려갔을 거야. 그렇게 하지 않았던 건 할아버지 때문이었지.
- 평소와 다른 것이란 꼭 눈에 보이는 것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야. 자신의 몸 상태를 포함한 전부지. 그렇게 생각하면 그날의 할아버지야말로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는 소리가 돼.
- 나는 무서워서 견딜 수 없었지만 가진 모든 용기를 쥐어짜서 다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어. 이대로 내가 산을 내려가버리면 할아버지는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기분이 들었거든.
- 물론 할아버지의 모습은 없었어. 다만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니 평소보다 빨리 오두막에 돌아올지도 몰랐어. 게다가 도시락을 잊은 걸 깨달으면, 분명 내가 도시락을 가지고 올 거라고 생각하시겠지. 귀여운 손자가 이런 오두막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할아버지는 황급히 돌아올 게 틀림없었어. 그전에 막탄을 가지고 있지 않은 걸 알면 그 자리에서 사냥을 멈추겠지만.
- 어쨌든 할아버지와는 곧 만날 수 있어.
그렇게 안심하는 마음이 내게는 있었던 거야.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살풍경하고 어두컴컴한 오두막 안에 있어도 별로 무섭지 않았어.
나는 구색 맞추는 수준으로 만들어놓은 화로에 불을 지피고, 항아리 안의 물을 주전자에 담아 불 위에 올렸어. 할아버지가 돌아올 무렵에 뜨거운 물이 끓도록 준비한 거지.
- 혼자니?
그때 오두막 밖에서 참으로 요염한 목소리가 들려왔어. 흠칫하며 화로에서 시선을 들어 올렸더니, 출입구에 매달린 발 오른편이 조금 걷혀 있고 그곳으로 하얀 얼굴이 보였어. 목소리와 오른쪽 옆얼굴로 젊은 여자라는 걸 알았지. 그렇지만 마을 사람은 아닌 것 같더라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점도 있었지만, 말씨가 누구와도 달랐거든. 숯막에 누가 와 있었다면 할아버지가 미리 이야기를 했을 거야. 애초에 숯막은 여기서 많이 떨어져 있어. 일부러 여자 혼자서 이 오두막을 찾아오는 것도 좀처럼 생각할 수 없는 일이고 말이야. 숯꾼의 부인이나 딸이라고 하기엔 얼굴도 너무 깨끗했어.
- 들어가도 되니?
내가 여자의 정체를 의심하고 있자, 교태를 부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어.
밖에선 세찬 비가 내렸어. 바람도 불었고, 상당히 추웠지. 젊은 여자를 밖에 혼자 내버려 둘 수는 없었어. 평소 할아버지에게 "다른 사람에게는 친절히 대해야 한다"라는 말을 들은 것도 있었고. 그렇지만 그때의 내 솔직한 심정은 전혀 달랐어.
- 저것을 안에 들이고 싶지 않다.
그런 짓을 했다간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거다. 그렇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조금도 알 수 없었어. 어쨌든 위험하다...라는 느낌만이 강하게 들었을 뿐이었지.
- 그렇지만 요염한 목소리로 그렇게 부탁을 받으니 마음이 흔들렸어. 아직 어린애였으니 여자의 색향에 미혹된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도저히 저항하기 어려운 뭔가가 그것의 목소리에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어.
"좋아요."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 내가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
- 그런데도 여자는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어. 입구에 늘어뜨려진 발의 틈새로 오른쪽 옆얼굴만 보이는 채로 그곳에서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지.
- 불을 꺼주겠니?
세상에, 모처럼 피워놓은 화로의 불을 꺼달라는 거야. 어떻게 생각해도 오두막 안보다 밖이 훨씬 더 추워. 원래대로라면 따스한 오두막 안에 좋아라 하며 들어와야 할 텐데 말이야. 그런데도 그 여자는 불을 꺼달라고 말하고 있었어.
- 나는 말로는 잘 부정할 수 없어서 고개를 휘휘 저었어. 할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화롯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이상으로, 이 화로의 불만 계속 피우고 있으면 저 여자는 들어올 수 없는 게 아닐까... 하고 어린아이 나름대로 눈치를 했기 때문이야.
- 이런 상황에서 일부러 불을 꺼달라니, 아무래도 너무 이상해
그 여자에 대한 의심이 가슴속에 점점 솟아났어. 할아버지 대신에 오두막을 지켜야만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도, 어쩌면 그때 싹트고 있었던 건지도 몰라.
- 어머, 똑똑하구나.
그러자 여자는 웃었어. 아주 즐거운 듯이 킥킥 소리를 내면서.
- 그러자 아이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한동안 마쓰오를 찬찬히 응시하더니, 묘한 소리를 했다.
"이야기를 할 때까지 돌아가면 안 된대요."
"누구한테 무슨 이야기를 할 건데?"
- "할아버지한테 그렇게 들었어요."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오른 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그 노인의 얼굴과 목소리가 곧바로 뇌리에 떠올랐던 것이다.
- "그래서 다음에는, 내 차례예요."
- 난처하게 됐군.
상대가 그 노인이었다면 교정지를 보여주며 "오늘은 할 일이 있어서요"라고 넌지시 거절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런 어린애를 상대로는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마쓰오는 그 여자아이에게서 자기 딸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너무 매정하게 대할 수도 없었다.
- 아빠는, 집에서 자고 있어요. 학교에 하룻밤 있다 와서 어쩐지 몸 상태가 안 좋대요.
그러니까 집 밖에서 앗짱 쪽 애들하고 놀았어요. 하지만 해가 지기 시작해서, 집에서 그림자놀이를 하게 되었어요.
나는 아빠가 자고 있으니까 안 된다고 말했지만, 천장에 전등이 매달려 있는 건 우리 집 밖에 없어요. 친구네 집은 다들 예쁜 형광등이니까.
살금살금 집에 들어갔는데, 금방 난처해졌어요. 전등이 매달려 있는 곳은 아빠가 자고 있는 방이에요. 하지만 깨우면 엄마한테 혼나요. 엄마는 장을 보러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 후회했다.
- 가까스로 이제는 괜찮은 것 같다고 안심하기 시작한 지 사흘째 되는 날, 마쓰오가 저녁 산책에서 돌아와 보니 디자인 사무소 맞은편에 있는 오토모가 앞에 구급차가 정차해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길가로 나가서 이웃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그 집의 남편이 다쳤다는 것이다.
다락에 올라가기 위한 부착식 계단이 갑자기 머리 위로 떨어졌다고 한다. 보통은 복도의 천장에 수납되어 있고 사용할 때만 긴 철봉으로 끌어내리는 방식인데, 서양의 주택에서는 자주 보이지만 당시의 일본에서는 드문 사양이었다.
- 다만 이때 마쓰오는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의 정체를 그는 확인하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생각이 스르륵하고 달아나버린다.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 그날, 마쓰오는 새로운 교정지를 들고 정자로 향하고 있었다. 그 뒤로 여자아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아이의 할아버지인 노인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두 사람과 만날 걱정은 없어 보였지만, 정자로 이어지는 언덕길을 오를 때마다 어쩐지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었다.
- 그날도 아침부터 음울하게 흐린 날씨여서 그 두 사람과 만났을 때와 어딘지 모르게 비슷했다. 그럴 때 굳이 그 정자로 갈 필요는...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소의 습관을 바꾸는 것도 싫었다. 그 두 사람에게서 그 정도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 역시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정자가 교정지 읽기에 적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역 앞의 찻집에는 그 정도 환경을 바랄 수 없다.
마쓰오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언덕길을 다 올랐을 때, 정자에 앉아 있는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와서 반사적으로 뒤로 돌았다.
- 어이!
- 등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마쓰오는 그대로 도망칠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산에서 외칠 때는 '야호'입니다. '어이'라고 말하는 건, 그것도 한 번밖에 부르지 않는 것은 대부분 마물입니다"라는 말을 예전에 내게서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 그런데 뒤이어 들려온 말을 듣고, 그는 멈춰 섰다.
저희 아버지와 딸이 신세를 졌다더군요.
조심조심 뒤를 돌아보자, 한 남성이 정자 밖에 서 있었다. 아무래도 저 남자가 그 노인의 아들이고, 그 여자아이의 아버지인 듯했다.
- 그렇다고 해도, 나도 작가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아마미오시마의 북토크 행사도 대만의 타이베이 국제 북페어도 중지되었다. 덕분에 시간은 있다.
그렇게 되어서 이번의 체험을 단편 <우중괴담>으로 엮었다. 아직 다섯 번째 이야기를 결정하지 않은 까닭도 있지만, 이 일을 자기 나름대로 정리함으로써 마무리 짓자고 생각했다. 연작 단편으로 완결시켜 버리면, 이쪽에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걱정도 없어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 어떻게 그런 사진을 실을 수 있는가...라고 독자는 미심쩍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것도 일종의 액막이다. 그렇게 담당 편집자 S에게 설명해서 본지에 싣도록 했다.
본작을 집필한 이유와 마찬가지로, 딱히 다른 뜻은 없다.
- <우중괴담>
- 미쓰다 신조의 작품 가운데 미스터리 작가 '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들은 마치 누군가의 실제 경험담을 듣는 듯한 전개가 특징입니다. 소설이니만큼 창작이라고 생각하며 읽다가도 왠지 모르게 '이 부분은 경험담을 듣고 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허구와 현실이 뒤섞여 있는 바로 이 느낌이, 우리가 왠지 모를 오싹함을 느끼면서도 미쓰다 신조의 작품을 계속해서 찾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