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용준] 귀신백과 QnA 100 - 귀신과 초능력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100문 100답
저자 : 차용준
출판 : K-BOOKS
출간 : 2013.01.15
도서관에 들렀다가 제목이 눈에 띄어 읽어보았다.
귀신과 영적인 영역에 관한 백문백답 형식으로, 번역본으로 접하기 조금 어려운 야담 및 문서들의 발췌가 많은 편이다. 옛이야기와 저자의 개인 체험 및 가치관이 골고루 섞여 있는데 꽤 흥미롭다.
수록된 체험담 중에 <태극선법>이 눈에 띄어 그 책도 구해 읽어보았는데, 간단한 자세와 함께 하는 호흡 중심의 수련법이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수련을 해볼 마음이었는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다시 티베트의 다섯 동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최근 하고 있는 운동으로는 이것이 유일하다.
4월이 잔인한 달이라고들 하지만, 내게는 5월이 잔인한 달이다.
수익은 작년에 얻었지만 그에 대한 세금은 올해에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얻은 것에 대한 과세이니 마땅히 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250만 원 공제는 너무하다, 현재 손실 중일 경우는 일정 비율로 상계 처리도 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 등의 소소한 불만을 마음속으로만 중얼거려 본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린 바, 기왕이면 내년에는 세금을 더 낼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보자는 자세로.
오늘도, 행복하게.
- 밤이 되면 귀신의 신기도 좀 더 왕성해지게 된다. 따라서 귀신의 출현이 낮보다는 밤에 더 잦게 된다. 그렇다고 낮이라 하여 귀신이 활동하지 못할 어떤 제약 조건이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인간은 대개 낮에 활동하고 밤에 쉬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밤에도 활동할 수 있는 것처럼, 귀신 또한 주로 밤에 활동하지만 낮에도 활동할 수 있다. 요컨대, 낮을 몹시 싫어하는 무덤에 거하는 저급령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귀신들은 밤낮의 구분 없이 출몰할 수 있다.
- 사람이 먹으면 기운이 달라진 것을 금방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인간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인간의 육신이 필요로 하는 것과 신이 필요로 하는 것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공수련을 하는 이에게는 제사 음식에 기의 손실이 있어 일반 음식만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반 귀신이 아닌 선신은 대개가 음식을 흠향한 후에 음식을 대접한 사람에게 필요한 기운을 꽂아 두는 일이 잦아, 선신의 제사 음식은 나름대로의 가치가 충분히 있다.
- 귀신은 흡기능력이 짧기 때문에 음식을 많이 흠향하지는 못하여 제사상 하나만 차려도 수십, 수백 명의 귀신을 대접할 수 있다. 그리고 귀신은 한 번 먹으면 오래도록 배고픈 것을 모르고 지내기 때문에 인간 세상처럼 식량난이란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시 굶주려 떠도는 귀신도 있는데 이것이 소위 아귀(餓鬼)라는 것이다. 보통 귀신은 한번 대접하면 오랫동안 배고픔을 모르는데, 아귀는 며칠만 지나도 또다시 굶주림을 호소한다. 이는 생전에 굶어 죽은 기억이 사무치게 남아 의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아귀는 사람 눈에 띄지 않으므로 시장에 가서 아무것이나 주워 먹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만일 귀신이 내키는 대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무녀를 따라 나온 동자신이 사탕을 사달라고 조를 필요도 없이 직접 주워 먹으면 될 것이다. 그러나 가가호호마다 조상신이나 터주신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정당한 대가를 주고 사주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
- 로스엔젤레스 근처의 한 지하저장고에는 거대한 진공 플래스크로 된 캡슐이 있는데, 이 안에 남녀 시체 12구가 안치되어 있다. 시체는 알루미늄 박(箔)으로 싸여 있는데, 박(箔)을 들추면 얼굴은 얇은 성에로 덮여있고, 액체질소의 차가운 안개가 시체 주변을 감싸고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살았을 때 저온학(低溫學)을 연구하던 과학자들이다. 오늘날 저온학이라면 식품을 오래도록 보전하는 방법으로 활용된다. 혈액이나 정액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 세포는 먼저 냉동액에 적셨다가 급격히 섭씨 영하 196도로 냉각하면 파괴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낮은 온도에서는 모든 분자의 활동이 정지되기 때문에 영구보전도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인체 전부를 냉동해 두었다가 재생시켜 보자는 착상이 나오게 되었다. 마치 얼음 속에 갇혀 있던 붕어가 얼음이 녹으면서 다시 움직이는 것과 같이 인간 또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들 냉동인간들은 심리학자인 제임스 베드퍼드를 시초로 1967년부터 누워 있는데 자신들을 죽인 암을 비롯한 불치병의 치료가 가능한 미래의 어느 날까지 그대로 누워있게 될 것이다.
- 빙의나 접신은 쉽지만 타인의 육체에 혼줄을 연결하여 완전한 주인이 되기에는 그 파장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러면 영혼 없는 육체가 된단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영혼 없는 몸뚱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는 원시령에 있다. 원시령은 우주공간에 자욱하게 널려 있다. 이 원시령은 자신만의 색깔, 즉 고유한 파장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디든지 스며들 수 있다. 이런 원시령이 재생된 몸뚱이에 스며들어 혼줄을 연결하게 된다. 그리고 뇌세포에 기록된 여러 기능들을 사용하게 된다. 원시령 자체는 글자 그대로 원시적인 영혼이지만 기계 자체가 고성능이기 때문에 금방 적응하여 그런대로 쓸만한 영혼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때 물론 냉동되기 전의 기억은 제대로 떠올릴 수 없다. 단지 기계(몸뚱이)에 남은 흔적으로 어렴풋하게 전생을 상기할 뿐이다.
-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전생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전생을 추적하면 한 번 내지 두 번, 혹은 아예 전생이 없는 경우가 있다. 바로 이번 생애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경우이다. 그래서 근대에 들어 인구가 폭발한다 하여도 영혼 공급에는 지장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영적 차원을 구분할 때 동물의 영을 2천이라 하고, 원시령은 1천의 식물령 보다도 아래의 단계에 있다. 상식적으로 2천에서 3천의 인간령으로 진화하기도 어려운데 1천의 밑바닥에 있는 원시령이 어떻게 쉽게 인간의 수정란에 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극과 극은 통하는 법이라고, 최하의 단계에 있는 원시령은 아무런 정보나 색깔이 없다. 즉 자신만의 고유파장이 없는 수수한 영혼이다. 그렇기에 어디든지 스며들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식물령이나 동물령은 이미 개체성을 정립했기 때문에 인간으로 태이기가 쉽지 않지만 원시령은 전혀 지장이 없는 것이다.
- 동성애 하면 태평양 건너 양인들의 일로만 여겨지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도 동성애 파문은 여기저기 눈에 띈다. 세조 때 이순지(李純之) 대감의 딸이 과부가 되자 노비 출신의 사방지(舍方知)라는 여인과 동성애를 벌여 조정을 발칵 뒤집어 놓았고, 명종 6년에 무당인 감덕(甘德)이 왕족과 동성애를 벌여 처형당하는 사건도 기록에 남아 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야 하는 궁녀들과 내시들 사이에서는 동성애가 더욱 성행하였고, 최근에 상영된 '쌍화점'이라는 영화에서도 다루었다. 이를 당시 용어로 대식(對食)이라 했다. 그렇다면 동성애가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소한 정신 이상 증후로 보기에는 동성애의 뿌리가 너무나 깊고 또한 그 수효가 광대하다. 거두절미하고 동성애는 윤회의 과정에서 빚어진 실수로 볼 수 있다. 즉 윤회상의 돌연변이라 하면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전생의 기억은 어머니의 자궁 속에 결합하면서 모두 잊혀지게 마련이다. 이때 가장 오래도록 남는 기억은 원한과 성별에 대한 인식이다. 원한은 잠재층에 완전히 갇히지 못하여 이생에서 곧잘 표출하게 된다. 이것은 성격 장애의 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 적잖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귀신에 의한 피해를 입고 있다. 사고를 일으키거나 당한 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었다'는 말을 흔히 하곤 한다. 여기서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은 곧 무언가에 홀렸다는 말이다. 물론 본인의 정신분열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간간이 귀신에 홀려 일어난 사건도 있다. 귀신은 병도 일으킬 수 있다. 환자의 10~30%가 신병에 의한 것을 볼 때, 귀신 문제는 쉽게 간과해 버릴 일만은 아니다.
- 옛날 양주 땅 정상국(鄭相國)의 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느 날 귀신이 그 집의 계집종에게 붙어 집안의 대소사에 얽힌 길흉을 알아맞히곤 하였다. 계집종의 말에 의하면 그 귀신은 붉은 수염이 난 장부라 하였다. 하루는 이웃의 대감 댁 마님이 귀중한 비녀를 잃고는 하인들의 소행이라고 매일 같이 때리고 닦달하는 것이었다. 그중 한 계집종이 아픔을 참지 못하여 정씨 집의 귀신 들린 계집을 찾아와 점을 쳤다. 그러자 귀신이 "비녀가 있는 곳은 알지만 너에게 말하기 거북하니 안주인을 모셔 오라"는 것이었다. 그 길로 안주인을 모셔와 다시 점을 치자, "내가 비녀 있는 곳을 말하면 그대는 몹시 무안해할 것이다."하고 귀신이 망설이는 것이다. 조바심이 난 안주인은 화를 버럭 내며 빨리 말할 것을 닦달하였다. 그러자 귀신이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 아무 날 저녁에 그대가 이웃 아무개와 눈이 맞아 닥나무 밭으로 들어가지 않았느냐. 비녀는 그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고 귀신이 말하였다. 종이 그곳에 가서 비녀를 찾아오니 안주인은 심히 부끄러웠다. 이렇게 귀신은 이일 저 일에 참견하며 기세가 당당하였다. 그러나 집주인인 정상국만 보면 무서워 달아났다가 그가 나가면 다시 돌아오곤 하였다. 하루는 정상국이 귀신이 인간사를 넘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귀신을 불러 말했다. "너는 이제 숲으로 가라. 귀신이 인가에 오래 머무르는 것은 부당한 것이다." 그러자 귀신은, "내가 여기 온 뒤로 집안에 복이 되도록 힘썼으며 한 번도 재앙을 일으킨 일이 없습니다. 이제 대인께서 물러가라 명하시니 어찌 감히 그 뜻을 거역하겠습니까?" 하고는 마침내 통곡하고 떠났다고 한다.
<용재총화>
- 500여 년 전에 경북 울진의 현령으로 백극제(白克齊)라는 사람이 부임했는데, 부임한지 사흘 만에 갑자기 죽었다. 그 부인은 남편의 시신을 서면에 있는 불영사 법당 앞의 3층 무영탑 앞에 놓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성으로 기도를 올렸다. 그런데 닷새째 되던 날 밤, 비몽사몽간에 웬 흉측한 여인이 관속에서 나오며, "내가 평생을 따라다니며 이제서야 원한을 푸는가 했더니, 부인의 정성엔 못 이기겠으니 원통하구 원통하구나!" 하고는 달아났다. 그러자 백현령이 다시 살아났다. 그 후 백현령은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탑 앞에 환생전을 건립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환생전은 타 버리고 지금은 법당 앞에 주춧돌만 쓸쓸히 남아 있다.
유증선, <영남의 전설>
- 귀신이나 인간이나 모두 비물질인 '영혼(靈魂)'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인간의 영혼은 귀신에 비해 '정(精)'이 풍부하여 달리 정신이라고 칭한다. '정(精)'이란 간단히 말해 기(氣)를 끌어 모아 공고히 하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정(精)'이 많은 인간의 염파(念波)를 귀신의 신파(神波)가 당해 낼 수 없다. 그러나 강하게 태어났어도 그 강함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면 약자에게 언제나 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여러 명의 약자가 힘을 합쳐 강자를 쓰러뜨릴 수도 있다. 마치 하이에나 무리에 쫓겨 애써 잡은 먹이를 버리고 도망가는 사자와 같이, 귀신이 무리를 모아 인간의 정신을 좀 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정신을 조금만 돌본다면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 사자의 무리도 다 성장한 한 마리의 코끼리를 넘볼 수 없는 것과 같이, 정신을 똑바로 차린다면 어떤 귀신의 빙의나 접촉도 능히 떨쳐 낼 수 있는 것이다.
- 일화에 나오는 정상국 같은 사람은 특별한 수련을 한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귀신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정신이 총명하고 또렷하여 귀신의 신파(神波)가 범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강한 정신력(精神力)으로 귀신의 신파를 위축하고 혼미하게 하였던 것이다. 마지막 설화에 나오는 나약한 아낙네도 남편을 살리겠다는 일념에 강한 염파(念波)가 발생하여 원귀(怨鬼)도 더 이상 버텨낼 수 없었던 것이다. 백현령은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 살아났다고 여겼으나, 사실이 그렇다면 이 세상의 못된 귀신은 일찌감치 부처님에 의해 깨끗이 청소되었을 것이다.
- 신도수련을 하면 영적 높이에 따라 신을 부리는 차이가 달라진다. 가령 4천의 수준이면 3천의 귀신을 부릴 수 있고, 5천의 수준이면 4천의 신명을 부릴 수 있다. 몇 년 전에 태백산 천제단을 다녀온 후 자시(子時)에 명상을 하는데, 글쎄 집 앞에 2m가 넘는 키에 근육이 우람한 거구의 신장(神將) 두 명이 긴 칼을 들고 서 있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데 남의 집 앞에 서 있느냐고 물으니, 당신과 싸움을 하러 왔다고 했다. 무슨 이유로 싸우고자 하느냐고 다시 묻자, 태백산 산황대신께서 당신을 도와주라고 보냈는데, 와서 보니 내가 자신들만 못한 것 같아 싸움을 해서 우위를 정하자는 것이다. 그러더니 칼을 뽑아 휘둘렀다. 순간 그 칼이 귀밑을 스쳤고 정신이 아찔하여 앞이 보이질 않았다. 두려움에 명상에서 깨어나려고 몸을 들썩였으나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사실 이런 5천 이상의 신장들과 싸워 이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을 최대한 안정시키고 기운이 흩어지지 않도록 정신을 모으는 일에만 주력하였다. 신장들은 계속해서 나를 혼비백산하게 만들고자 주먹으로 치고 칼로 내리쳤다. 한 동안 그러더니 멈추고는 '저희들이 몰라 봤습니다' 하면서 머리를 꾸벅 숙이는 것이었다. 나는 오랜 경험을 통하여 신통력을 늘리는 것보다 제 마음 단속하는 것이 더욱 큰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음과 정신이 '나'라는 좁은 틀에서 벗어나 '우리'가 될 때 보다 큰 힘이 생기고, 더 나아가 '누리'가 될 때 무한한 법력이 뿜어 나올 수 있다.
- <해동잡록>에 보면 뱀신을 두려워하여 제사를 지냈다는 제주도의 풍속이 실려 있다.
충암(沖菴)이 제주에 귀양 가서 그 지방의 풍속을 기록했는데, 제주사람들은 회색뱀을 보면 차귀신(遮鬼神)이라 여겨 죽이기를 꺼려한다. 그리고 뱀을 보면 주문을 외우기도 하고 심지어는 신으로 받들기까지 한다. 봄과 가을에 차귀당(遮歸堂)에 술과 음식을 차려 놓고 뱀신을 받든다. 차귀(遮歸)는 사귀(蛇鬼)의 오인된 것인데, 그 안의 대들보에는 뱀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 제주도 남해안에 토산(免山)이란 곳이 있는데,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뒤치할망', '사녀리통'이라는 뱀 처녀의 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토산에 사는 오좌수의 딸이 어느 날 왜적들에 의해 겁탈을 당하고 죽었는데, 그 원한이 깊어 뱀으로 환생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뱀을 모시지 않으면 그 원혼이 그 집의 딸에게 붙어 해코지를 하였다는 것이다. 여하튼 제주도에서 뱀을 죽이지 않거나 심지어 신앙시 한 것은 죽은 뱀의 영혼이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 ...
- 그러기 위해서는 귀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사후 세계가 실존하지 않는다면 귀신에 대한 이해는 그야말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귀신의 존재 여부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과감히 내던진 사람이 있다. 1926년 미국에서 하리 프디디라는 사람은 영혼의 실존 문제를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충격적인 일을 감행했다. 그는 탈출 묘기의 기인으로 당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하루는 기자들을 불러 모아 놓고 자신이 죽은 후에 영계 통신을 하여 영혼이 실존하고 있음을 증명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그 방법은 맨하탄 은행에 자신의 암호문을 보관하고 자신이 죽은 후에 영매를 통해 그 암호문을 품으로써 증명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1926년 10월 31일 튼튼한 쇠 상자 속에 들어가 영영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는 1929년 1월 8일 영매사 아더 포오드를 통해 암호문을 세상에 발표하게 하였다. 결국 은행에 보관하고 있는 암호문과 일치하여 세상 사람들은 경악했다. 프디디와 같이 산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영혼의 실존을 증명한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러나 죽은 영혼이 산 사람과 소통을 하여 영혼의 존재를 알린 경우는 수없이 많다. 그 소통을 담당하는 무속인들을 차치하고라도 심령 체험을 한 일반인 또한 적지 않다. 한 예로 영국 서포오크 주에 있는 보오리 박물관은 약 200년 동안 무려 1300회나 귀신이 출몰했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귀신을 목격한 일반인이 무려 수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 영혼의 모습에 대하여 나라마다 민족마다 조금씩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가령, 벵갈만에 있는 네그리토족은 영혼을 그림자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였다. 산탈족은 영혼이 도마뱀과 유사하게 생겼다고 믿었고, 말레이시아와 보르네오 사람들은 영혼이 새와 같은 존재라고 믿었다. 그리고 콜롬비아의 노트카족, 인도인, 에스키모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썩어 없어지나 인간 형상의 주먹만 한 크기의 영혼은 살아서 떠돈다고 믿었다. 이렇게 지역과 민족에 따라 각기 다른 영혼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장구한 세월이 흐르면서 영혼에 대한 인류의 체험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고, 결국 영혼의 모습이 인간과 흡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 그래서 자세히 한번 살펴보니 글쎄 차의 우측 앞바퀴에 배가 터진 채 붙어 있는 귀신이 있는 것이 아닌가! 죽을 때에 배가 터져 끔찍하게 죽은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 귀신이 차의 주인에게 감응되자 원인 없이 배가 아팠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바로 '귀신은 이미 육신을 벗어난 것인데 어째서 배가 터진 모습에 배가 아픈 표정을 그대로 짓고 있을까?' 하는 점이다. 거두절미하고 귀신은 지적 작용이 감소되어 감정 위주로 반응하는 정혼(情魂)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영혼을 가리킬 때는 '정신(精神)'이라 하고 죽은 귀신을 통칭할 때는 '신(神)'이라 한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차이는 바로 글자 그대로 ‘정(精)'이란 글자가 있고 없고에 있다.
- 정(精)이란 기(氣)를 써서 지적 판단을 하는 작용을 한다. 그런데 죽으면서 정(精)이 대부분 이탈되어 정신(精神)이 아닌 신(神)이 되고, 이렇게 되면 지적(知的) 의식이 큰 폭으로 떨어지게 된다. 즉, 감정 위주로 반응하는 신(神)이 되는 것으로, 이때의 성질을 감안하여 정혼(情魂)이라 부르는 것이다.
대개의 귀신은 이렇게 정혼이기 때문에 판단력이 미비하고, 따라서 사후에도 계속해서 자신의 배가 터져 있고, 그래서 아픈 것으로 믿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음식을 잘 차려 대접을 하면서 납득을 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이제는 영혼이 되어 배가 아프지 않을 텐데 무엇을 그리 고통스러워하느냐고 납득을 시켜 맺힌 감정과 배가 터졌다는 그릇된 믿음을 버리게 하면 원래의 모습으로 환원될 수도 있다. 그러나 생전에 영적 퇴락이 심하게 된 귀신은 지적 작용이 극소하여 그래도 풀어지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천도제를 지내 조상 신계에 귀속시키던지, 아니면 빨리 윤회하여 인도 환생할 수 있게끔 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 그러나 관운장 같은 신은 목이 잘려 죽었지만 신체 상의 하자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생전의 위엄보다 더 굳세고 기풍이 당당하여 천하의 귀신들을 호령하는 천상의 대장군으로 거듭나 있다. 이것은 생전의 영적 역량이 높아 죽어서도 살아서와 같은 지적 역량을 그대로 지니는 바, 육신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사람들의 정신은 죽으면서 정(精)을 잃으며 정혼(精魂)이 되지만, 영력이 높은 경우는 정(精)의 손실이 적어 생전의 정신을 그대로 보존하게 된다. 이렇게 생전의 정신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영혼을 일러 선신(仙神)이라 하며, 이쯤은 되어야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온전한 모습을 회복할 수 있다.
- 심령과학을 다룬 책에 보면 임종 시의 몸무게와 임종 후의 몸무게를 측정하여 그 차이가 있음을 밝혀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몇 그램 정도의 작은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영혼의 무게라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하여 하버트(Herbert B. Greenhouse)는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대개의 유령은 배경과 뒤섞여 보이거나, 때로는 딱딱히 굳어 만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런던에서 '부르'라는 노인의 유령이 가족들 앞에 나타났을 때 집안을 걸어 다니는 소리가 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번은 그의 아내가 자신의 이마에 그의 손이 닿아 어루만지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고 합니다.
<The Book of Psychic Knowledge>]
- 심령현상을 연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혼이 '에텔체'나' 제2체', 혹은 '복체(復體)' 등으로 불리는 밀도가 희박한 물질로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동양의 형상학(形象學)적 입장에서 보면 모순점이 많아 보인다. 형상학이란 물질만을 위주로 다룬 과학과는 달리 우주를 물질과 비물질로 양분하여 다룬다. 이때 물질을 형(形)이라 하고, 비물질을 상(象)이라 한다. 상(象)의 세계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는 정(精)과 기(氣)와 신(神)이며, 영혼은 바로 정기신으로 이루어진 상계(象界)의 요소인 바, 물질적 관점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 즉, 물질이 아닌 것은 형체와 부피가 없으며 무게 또한 있을 수 없다. '기(氣)'라는 것이 '정(精)'과 덩어리 져 농축되면 물질적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고, '신(神)'이 인간의 의식을 점령하면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느낄 수도 있다. 이런 환유(幻有)적 현상을 실제의 현상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만약 영혼이 극소하나마 물질적 요소로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같은 3차원의 테두리에서 존재하는 것이 되어 결국 삶과 죽음의 구분조차도 무의미해지고 만다.
- 그렇다면 귀신의 크기는 생전과 동일할까?
실제로 귀신을 접한 일이 있는 사람들은 그 크기가 사람과 비슷하다는 점을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러나 간혹 귀신의 크기가 사람보다 크거나 혹은 매우 작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귀신은 인간과 대면할 때 대체로 사람의 크기와 비슷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혼의 크기가 생전과 동일하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물질이 아닌 영혼을 물질적 관점에서 크기를 논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을 내포한다. 실제로 명산에서 수련을 하다가 산신을 보좌하며 신계의 일을 맡아보는 지령관(地靈官)이 거하는 곳을 본 일이 있는데, 사람이 올라가기 힘든 기암괴석의 바위틈 속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구멍의 크기가 대략 축구공 정도에 불과한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지극히 협소한 곳이었다. 그러나 이 속은 온갖 신계의 건물이 들어서 있고 수많은 조상신들, 객귀, 신장, 장군신, 수문장, 동자동녀신 등등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어, 마치 서울의 명동 거리를 방불케 하고 있었다. 이것은 바로 귀신의 형상을 물질적 관점으로 가눌 수 없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리고 또 한 예로 단전의 힘이 세어지면 신을 부리게 되는데, 귀신이 말썽을 부리면 기(氣)를 써서 그 부피를 줄여 병에 가두어 놓을 수도 있다. 무속에서는 악귀를 잡을 때 흔히 신장을 움직여 병에다 잡아 가두는 수가 있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신은 크기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증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 요컨대, 신은 그 크기와 무게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이는 신을 구성하는 정기신(精氣神)이 비물질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정기신의 파동이 느슨하게 확장되면 그 형상이 커 보이게 되고, 반대로 파동이 탄탄히 밀착되면 작아 보이는 것이다.
- 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신이 인간의 의식에 빙의나 접신이 되어 소통하는 경우이고, 둘째는 인간이 자신의 의식을 영계의 파장대에 맞추어 신과 소통하는 경우이다. 전자의 경우는 신의 소리가 인간의 음성과 같게 들린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높은 음계에서 나오는 신의 음성을 듣게 된다. 마치 바이올린의 높은 음이나, 피리의 높은 음에서 울려 나오듯 신의 음성이 고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는 신의 진동이 대단히 빠르기 때문으로, 신을 부르는데 요령을 사용하거나 장단을 빠르게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무당이 굿을 할 때 처음에는 천천히 뛰다가 신이 실리게 되면 빠른 동작으로 펄쩍펄쩍 뛰게 되는 것도 바로 신의 진동수에 맞추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교회에서 기도할 때, 방언이 터져 나오는 원리도 마찬가지이다. 기도 시에 점점 흥분되어 뇌파가 격렬하게 되면 신의 고주파와 간섭현상이 일어나고, 이때 신의 음성이 뇌파를 타고 들어와 사람의 언어를 교란하게 된다. 그러면 말이 뒤틀어져 해괴한 소리를 질러대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실제 신의 음성은 인간의 음성과는 높낮이가 다른 고음에서 나오는 소리인 것으로, 신과의 소통 시에 이 점을 염두에 두면 현재 어떤 상태에서 신통이 이루어지는 지를 가늠할 수 있다.
- 인간이 주체가 되어 신파(神波)를 자신의 의식에 끌어 소통하는 경우도 신의 음성이 인간의 음성과 동일하게 들린다. 그러므로 신의 음성이 고음이 아니라 하여 무조건 접신이나 빙의로 볼 수는 없다.
- 그래서 팔문신장을 구궁을 관장하는 신이라 하여 태을신장 다음의 서열로 높이 받들고 있다.
팔문신장은 호법의 개념을 넘어 천지조화를 주관하며 차원의 문을 지키는 천상의 대신장으로, 구천현녀 직속에 속해 있다. 팔문신장은 모두 여덟 개의 신장이 있는데, 휴문(休門)신장, 생문(生門)신장, 상문(傷門)신장, 두문(杜門)신장, 경문(景門)신장, 사문(死門)신장, 경문(驚門)신장, 개문(開門) 신장이 그것이다.
- 요컨대 신의 속도는 이와 같이 영적 차원에 따라 천양지차로 갈라지게 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 기의 흐름을 이용하는 구궁진법이다.
세간에 기문(奇門)이나 방위술에 등장하는 구궁은 원래 신계에서 운행을 위해 사용하던 것인데, 이것을 인간이 배워 풍수도 보고 운명도 예측하는 방술 이론으로 체계화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이론적으로만 이해해서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기를 실제로 활용하는 수단으로 연구하고 깨우쳐야만 훗날 죽어서 선계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선신(仙神)에 버금가는 속도를 낼 수 있다. 여하튼 인간 세계에서는 정신 수준의 높낮이가 행동의 민첩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죽어서는 이와 같이 천양지차로 벌어지게 됨으로, 이 점을 명심하고 정신 계발에 힘써야 할 것이다.
- 이와 같이 귀신의 수명에 관하여 직접적으로 언급한 문헌은 많지 않다. 귀신이 영적 수준에 따라 그 수명을 달리한다는 이론은 참으로 옳다. 그러나 보통 사람은 죽는 즉시 소멸된다는 말은 옳지 못하다. 저급 귀신이라 하여도 수명이 보통 100(3대)-200(7대)년 가량은 된다. 그 후가 되면 정기(精氣)가 느슨해져 더 이상 신계에서 지탱할 수 없다. 곧 윤회해야만 한다. 그런데 생전에 정신계발에 힘써 정기가 공고한 신명은 200(7대)~450(15대)년 정도 존속할 수 있다. 그 후에는 마찬가지로 영적 진화를 위하여 윤회하여야 한다. 그러나 5천 이상으로 진화된 선계(仙界)의 도통신들은 더욱 오랜 시간 동안 영계에 머무를 수 있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5천의 경지에 오른 신은 500~2000년, 6천의 경지에 오른 신은 2000~10000년 까지도 존속할 수 있다. 7천 이상은 어느 정도 윤회의 굴레를 통제할 수 있는 바, 신수(神壽)를 거론할 의미가 없어진다. 신의 한계 수명이 이론적으로는 이와 같지만, 실제로 450년을 살 수 있는 신명도 죽는 즉시 윤회하기도 하고 몇십 년 만에 윤회하기도 한다. 4천 이하의 신들은 영적 진화를 위해서는 저승보다는 이승이 훨씬 유리하기에, 영적 진화의 필요성을 절감하면 영계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곧바로 윤회하려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생전에는 정신의 수준과 수명과의 관계가 적지만, 죽어서는 이와 같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
- 인도의 고대 경전인 <바가바드기타>는, "인간은 죽을 때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것들에 따라 다음 생이 결정된다. 즉, 그의 마음이 몰두해 있는 그것들을 얻게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수도자들은 종종 "이생에 못 이루면 내생에 도를 이루고, 내생에 못 이루면 그다음 생에라도 도를 이루겠다"는 말을 하곤 한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자신의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신념의 발로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죽기 전의 원대로 될 수 있는가?
- 신라 30대 문무왕은 보위에 오른 지 21년이 되는 영웅 2년에 죽었는데 그의 유언에 따라 동해의 큰 바위 위에서 장사 지냈다고 한다. 왜냐하면, 왕이 생전에 항상 "내가 죽으면 나라를 보호하는 큰 용이 되어 불교를 숭상하고 받들어서 우리나라를 수호하고자 한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하루는 이 말을 들은 지의 법사가 말하기를, "용이란 영물이나 짐승의 응보 일진대 어떻게 왕께서는 용이 되신다고 하십니까" 하였다. 이에 문무왕은 "내가 세상의 영화를 싫어한 지 오래이니 내 뜻만 이룬다면 짐승이 되어도 무방할 것이오"라고 답변하였다고 한다.
문호왕 <삼국유사>
- 물욕에 강한 집착을 보인 마피아 집단의 괴수 또한 죽어 화장했을 때 사리가 대량으로 나올 수 있다. 따라서 사리의 수나 상태를 가지고 도력을 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여하튼 '정(精)'은 곧 삶에 대한 의지이며 집착이라 할 수 있다. 형의 죽음을 접한 동생은 더 이상 삶에 대한 미련이 남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곧 '정(精)'의 이탈을 의미한다. 몸은 살아 있으나 마음은 이미 살아 있지 않았다. 정신에서 '정(精)'이 빠져나가고 '신(神)'만 남게 된 것이다. 영혼은 남아 있으나 모든 의식작용이 풀려 몽롱해져 버린 것이다.
- '정(精)'은 보통 손만한 크기에 둥그런 모양을 하며 인간의 인당을 통해 빠져나간다. 이때 그 빛에 의해 꼬리가 보이거나 좀 더 크게 보일 수 있다. 또한 그 빛의 색도 노랗고 푸르고 빨갛고 가지각색이다. 그런데 통설과 같이 떨어지는 거리에 비례하여 그 사람의 수명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서서히 인생의 회의를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갑작스럽게 허무함과 실의에 빠지는 사람이 있다. 그 힘의 차이에 의해 혼불의 속도와 떨어지는 거리가 결정된다.
- 혼불은 아무나 목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귀신의 신파에 접촉되어야 귀신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혼불 또한 여기서 뿜어내는 파장이 사람의 의식에 미쳐야만 목격할 수 있다. 살다보면 혼불(精)이 살아 이글거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쯤 빠져 해이해진 사람도 있다. 둘 다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소위 영웅들의 눈에서 이글거리는 혼불은 남을 해하기 쉽고, 혼불이 빠져 흐리멍텅한 미숙아들은 영적 퇴락의 길을 밟게 된다. 차분히 가라앉아 온화함이 촉촉이 젖어든 가운데 빛나는 영롱한 혼! 이것이 영적 진화로 향하는 진정한 혼불이라 할 수 있다.
- 대문이 '덜컹' 하고 열리더니 기골이 장대한 청년이 들어왔다. 순간 신립은 활에 화살을 꽂고 들어오는 놈에게 냅다 쏘았다. 그런데 그놈은 화살을 맞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신립에게 덤벼들었다. 힘으론 안 되겠다 싶어 신립은 숲으로 줄행랑을 쳤다. 성이 난 종놈이 계속해서 쫓아왔다. 그런데 그만 똬리를 틀고 있는 이무기를 밟아 물려 죽고 말았다. 신립은 하늘이 도왔다 여기고 처녀의 집으로 돌아왔다. 혼절한 처녀를 간호하여 정신을 차리게 하였다.
이튿날 아침, 신립이 떠나려 하자 처녀는 신립의 발아래 엎드려, "저는 의지할 때가 없는 몸입니다. 첩으로도 좋고, 종으로도 좋으니 저를 데리고 가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신립은, "나는 이미 장가를 가서 처자가 있는 몸이오. 당신은 여기 있다가 마땅한 혼처를 구하여 시집을 가시오" 하고는 일언에 거절하고 집을 나왔다. 신립이 막 동구 밖을 나오려는데 처녀가 부르는 소리가 세 번씩이나 들려왔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돌아보니, 그 처녀는 자기 집에다 불을 지르고 지붕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장인께 이 일을 아뢰니, 장인은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죽였다고 꾸중을 하였다. 그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 영남지방의 패전 보고가 들어오자, 임금은 신립에게 나가 막으라 하였다. 남쪽으로 내려온 신립은 문경새재에서 순변사 일일 장군과 만나 작전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때 신립 앞에 한 승려가 나타나 천험의 요새인 조령에 진을 치고 반격하면 왜병을 물리칠 수 있다고 간곡히 조언하였다. 신립은 망설이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전에 죽은 그 처녀귀신이 나타나서 말했다.
"신 장군님, 안녕하신지요? 왜병을 무찌르는 데 어찌 이처럼 협착한 새재에 포진하여 남의 웃음거리가 되시려 합니까? 충주 탄금대에 가서 배수진을 치고 싸우면 대승할 것입니다."
신립 장군은 승려와 부장들의 말을 묵살하고 원귀의 말을 따라 조령을 버리고 충주 탄금대에 진을 쳤다.
한편 왜장 소서행장은 조령에 군사가 없는 것을 보고 손뼉을 치고 기뻐하며 조령을 넘어 탄금대로 향하였다. 원귀의 말을 들은 신립은 탄금대에서 왜병을 맞아 싸우다가 크게 패하였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구비문학대계>
- 이상의 두 편의 설화는 원한 맺힌 귀신이 얼마나 집요하게 복수하려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오랜 병으로 시달리는 사람이나 정신 이상의 증후를 보이는 사람, 또는 그 가정을 보면 이런 원귀가 서려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원귀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전생이나 이생의 원한 관계에서 출발한 전형적인 원귀와, 어떤 요구를 들어달라는 간절한 바람에서 오는 원귀가 있다. 후자의 경우는 대부분 문제가 있는 조상신들에 해당한다. 가령 무덤 주위에 나무뿌리나 가시가 많으면 따가워하며 이 자손에게 붙어 괴롭힌다. 물론 소통이 될 수 없으니 언제까지고 병적 요인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 죽어 영혼이 되었으면 가시와 같은 물리적 자극에 영향받지 않아야 할 것인데, 영적 수준이 떨어지는 3천의 귀신은 살았을 때의 기억으로 실제로 아픈 것 마냥 느끼는 것이다.
- 어쨌든 할아버지는 할머니에 의해 죽어 원귀(冤鬼)가 되었고 그 억울함을 알아달라고 자식들을 괴롭혔다. 그리고 다른 조상신들도 제각각 자신의 요구사항을 들어달라고 자손들을 괴롭혔다. 혹자는 아무리 죽어 귀신이 되었다고 어떻게 자식이나 자손들을 괴롭힐 수 있는가 의문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영적으로 발달되지 못한 3천의 귀신은 생전과 같은 가치판단을 하지 못한다. 이성적 사유는 죽음과 동시에 변질되어 아집과 욕구, 원한만 남은 순수 반응체가 되는 것이다.
- 어쨌든 이렇게 생전에 남은 원한으로 인해 귀신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 원한을 해소하는 것을 해원(解怨)이라 한다. 해원의 방법으로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천도제를 올리기도 하고, 굿판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결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뿌리 깊게 파인 원한과 욕구가 일시적인 대접에 말끔히 해소되지는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무서운 신장(神將)을 움직여 위협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당장은 말을 듣는 듯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귀신노름이 또다시 발동한다. 그래서 굿판을 벌인 바 있는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1~3년 주기로 또다시 굿판을 벌인다. 즉 주기적으로 신을 누르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귀신문제를 다루는 것은 매우 복잡하여 뾰족한 처방이 없는 실정이다.
- 요컨대 각종 귀신 문제의 처방은 해원이다. 그러나 전형적인 원귀는 원한을 갚기 전에는 결코 해원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신계의 큰 두통거리이고 또한 부지불식중 인간사에서도 피해를 입고 있다. 해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생전에 영적 수준을 높여 3천의 귀신으로 전락하지 않는 방법이다. 적어도 4천의 신명만 되어도 어느 정도 감정 통제가 가능하다. 원한을 갚기를 포기하고 더 높은 영적 진화를 위해 곧바로 윤회할 수도 있다. 이렇게 인류 전체의 정신 수준을 한 차원 더 높인다면 원귀에 의한 각종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일시적인 해원의 방법에서 벗어나 좀 더 근원적인 방법을 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생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자신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소중한 정신을 팽개치고 물질의 노예로 살다가 끝내 귀신으로 전락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신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이 점을 깊이 통찰하고 정신계발에 힘써야 되지 않을까 싶다.
- 어느 날 한밤중에 파성군의 사위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무사들이 나타나서 무예를 단련하고 있었다. 그는 그곳을 가로질러 집으로 가려고 했더니 무례하다고 하여 무사들이 그를 꽁꽁 묶고 때리고 발로 차는 것이었다. 아무리 빌어도 소용없었고 그 고통은 실로 참을 수 없을 만큼 매우 아팠다. 거의 지쳐 자포자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웬 사나이가 무사들 사이에서 불쑥 나타나더니 "이 사람은 나의 주인인데 어찌 이렇게 못살게 군단 말인가" 하고 크게 꾸짖으며 재빨리 포승을 풀고 부축하여 집에까지 바래다주었다. 그가 문에 들어서며 뒤돌아보니 그 대장부는 괴목 밑으로 달려가더니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그를 괴롭혔던 무사들은 귀신이었고 그를 도와준 사나이는 괴목의 정령이었다.
<청파극담>
- 조선을 창립한 이성계가 소년 시절에 칠성 기도를 한 적이 있었다. 그날 밤 한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해가 저물어 어쩔 수 없이 길옆에 서있던 큰 고목 밑둥지의 움푹 파인 곳에서 잠을 청하게 되었다. 한참 자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 잠이 깨고 말았다. 귀 기울여 들어보니, "오늘 밤 이 시중(이성계)이 목욕재계를 하고 칠성제를 올리고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우리 함께 제삿밥이나 얻어먹으러 가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나무속에서 "오늘은 나에게 손님이 와 있어서 갈 수가 없다네" 하고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를 들은 나그네는 괴이하게 여겨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밖으로부터 또다시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중의 집에 가 보았더니 왕림하신 성군들이 공양물이 청결하지 못하다고 화를 내며 모두 떠나 버려서 나도 어쩔 수 없이 돌아오고 말았다네" 하는 것이었다. 이를 들은 나그네는 날이 밝지도 않았는데 급히 서둘러 이 시중을 찾아가 나무속에서 들은 말을 그대로 알리게 되었다.
예삿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이 시중은 나그네를 집에 머물게 하고 수십일 동안 목욕 재개하고 다시 칠성 기도를 올렸다. 이날 밤 나그네를 다시 고목에 가서 묵게 하였는데, 한밤중에 또다시 말소리가 들려왔다. "여보게, 오늘 밤 이 시중이 칠성제를 올리는데 자네도 함께 가지 않겠는가?" 하자 나무속에서, "전에 머물렀던 손님이 오늘 묵고 있어서 나는 갈 수가 없네"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잠잠하더니 또다시 바깥에서 음성이 들려왔다."오늘은 이 시중이 지극한 정성으로 제를 올려 성군들께서 모두 기뻐하셨네. 그리고 제일 성군께서 이 시중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어떠냐고 하자 나머지 여섯 성군님들도 찬성하여 이 시중에게 삼한의 땅을 주기로 결정하셨다네"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를 들은 나그네는 황급히 달려가 이 시중에게 들은 대로 전하였고 이성계는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면서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였다고 한다.
<오산설림초고>
- 물론 두 번째 설화는 후대에 왕위 찬탈을 정당화하고 이성계를 신격화하기 위해 꾸민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여하튼 옛사람들이 고목에도 나무의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 왔다는 사실을 충분히 보여 주고 있다. 실제로 1919년에 조사된 <조선거수노수명목지(朝鮮巨樹老樹名木誌)>에 따르면 이렇게 신성시된 나무가 전국에 1108그루가 있었고, 이 중에서도 특히 부락제의 대상이 되는 나무가 460그루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고목마다 저마다의 영험에 대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바, 실로 나무의 정령을 믿는 풍습이 지대하였음을 짐작케 한다.
- 그런데 과연 오래된 고목에는 자연적으로 나무의 정령이 화생될 수 있을까?
나무는 암석과는 달리 자체의 영(靈)이 있다. 그러나 이 영은 동물의 영과 같이 개체로서의 주체적 반응을 하지 못한다. 단지 주위의 환경에 따라 반응하는 지극히 원시적인 저급령인 것으로, 1천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나무와 같은 식물의 영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저급령도 세월을 오래 묵게 되면 영적 진화가 일어나서 영향력 있는 정령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된다 하여도 앞에서 나온 설화처럼 인간사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무의 정령은 오랜 세월을 묵어 정기 자체는 강성해졌지만 감정이나 의지가 약하기 때문에 인간사에 관여하지 못한다. 또한 관여한다고 하여도 3천의 귀신들만큼의 영향을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예로부터 신성시되어 온 고목의 정령은 있기는 있으나 믿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전국에 걸쳐 이 같은 고목 숭배의 풍습이 흥성하였던 것은 바로 암석에 귀신이 기거하듯 고목에도 귀신이 거처로 삼기 때문이다. 고목은 그 자체로 정령의 정기가 물씬 배여 있기 때문에 귀신들이 선호하는 곳이며, 그렇기 때문에 세력이 강한 귀신이 아니면 결코 차지할 수 없다. 이렇게 고목에는 그 지역에서 세력 있다는 귀신이 기거하고 있기 때문에 영험도 있을 수 있고 귀신의 조화도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나무 자체에서 영험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나무의 정령이 인사에도 관여 ...
- "그래도 괜찮다는 말이냐?"
독사 지옥 얘기를 듣자 세민 임금은 공포에 질려 떨면서 대답했다.
"이승에서는 진실로 잘못하였습니다. 만일 저승왕께서 돈을 좀 꿔주시고 저를 이승으로 다시 돌려보내 주신다면 기필코 선행을 쌓아 다시 저승 올 때는 꼭 갚아드리겠습니다."
"그대는 지금 이승에 있는 매일장상이란 사람을 아느냐?"
"모르옵니다."
"그 사람은 저축을 많이 하여 저승에서는 제일가는 부자이니, 그 돈을 좀 내어 주겠다. 훗날 그를 찾아 갚아주도록 하여라."
생전에 벌은 돈이 저승에 그대로 저축된다는 말을 듣자, 세민임금은 잔뜩 기대하는 마음에 자신의 저승궤를 찾아 뚜껑을 열어 보았다. 그런데 안에는 나락 한 묶음만 놓여 있는 것이었다. 돈을 모으기로는 자기가 최고라고 여겼는데, 동전 한 닢도 없자 이상하여 저승왕에게 물어보았다.
"어찌 되었건 생전에 재물을 많이 모아놨는데 왜 저의 저승궤는 텅 비어 있는 것입니까?"
"너는 이승에서 남의 것만 착취할 줄 알았지, 남에게 네 것을 베푼 일이 없지 않느냐? 단지 어렸을 때 동네 늙은이에게 나락 한 묶음을 준 것밖에는 없다. 살았을 때 남에게 많이 베푼 만큼 저승 궤에 재산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남에게 덕을 베푸는 일입니까?"
"배고픈 사람에게는 밥을 주고, 헐벗은 사람에게는 옷을 주고, 돈 없는 사람에게는 돈을 주고... 하는 것이 덕을 베푸는 일이니라. 즉 만인이 필요한 것을 살펴 정성껏 도와주는 일이다. 그러니 속히 이승으로 나가서 만인에게 적선하고 돌아오너라."
저승왕은 이렇게 말한 후 덧붙여 이승으로 돌아가는 법을 소상히 알려 주었다.
"네가 여기를 나가다 보면 어린 송아지와 흰 강아지가 나타나 길을 인도해 주겠다고 할 것이다. 그 말을 듣지 말고 계속 곧은길로만 나가야 하느니라. 곧은길이 끝나는 지점에 검천랑이라는 차사가 있을 터이니, 그자에게 물으면 이승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세민임금은 저승왕의 말을 명심하고 이승을 향해 길을 떠났다. 도중에 정말로 송아지와 강아지가 나타났으나 무시하고 곧은길로만 나아갔다. 그리고 무사히 검천차사를 만날 수 있었다.
"차사님, 이승으로 나가려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당신이 세민임금이시군요. 이쪽으로 따라오십시오."
세민임금이 검천차사를 좇아 얼마쯤 가니 문이 하나 나타났다. 검천차사는 그 문을 열며, "이 컴컴한 데로 쭉 내려가시면 이승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속히 가십시오" 하면서 세민임금의 등을 문밖으로 밀쳤다. 그러자 세민임금은 천지 연못 같은 곳을 첨벙하고 떨어져 끝을 알 수 없는 밑으로 밑으로 내려갔다. 세민임금이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려보니 그곳은 바로 이승이었다. 잠시 졸도하였다가 깨어난 것이다. 그는 대궐로 돌아와 즉시 만조백관들을 모이게 하고 매일장상이란 사람을 찾도록 명하였다. 얼마 후 매일장상은 한 마을에서 신을 만들어 팔고, 그 마누라는 술장사를 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민임금은 걸인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야심한 시간을 택해 매일장상의 집을 찾아갔다.
"타지(他地)에 온 길손인데 잠시 실례 좀 하겠습니다."
"누추하지만 어서 들어오십시오."
...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었으니 저승궤에 돈이 가득할 수밖에 없구나!'라고 생각하며 크게 교화(敎化)를 받게 되었다. 그 후 세민임금은 완전한 적선의 도를 펴고자 일심으로 노력하였다고 한다.
<세민황제 본풀이>
- 세민황제 본풀이. 제주도에서 굿을 할 때 부르는 노래. 이 신화의 원문은 <朝鮮巫俗の研究> 上권에 수록되어 있다.
- 설화에 나온 저승이나 실제 체험하였다는 사람들이 묘사한 저승의 모습에는 공통점이 많다. 그중 하나가 물을 경계로 삼는다는 것이다. 물론 물질적인 물은 아니지만 이러한 물줄기를 기준으로 이곳을 완전히 넘으면 저승인 것이다.
- 물은 수기(水氣)의 화현으로 정(精)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氣와 氣를 가르는 경계의 역할을 한다. 산황대신이 물을 경계로 구역을 나누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가령 한강 이북은 삼각산 산신이 주재하고 이남은 관악산 산신이 주재한다. 이렇게 물이 지닌 특수성에 의하여 저승과 이승의 경계로서 등장한 것이다. 저승으로 가는 물줄기를 철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영육경계선(靈肉境界線)'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을 넘지 않고 배회하는 데서 제반의 귀신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영육경계선을 넘어 저승에 안착한 영혼은 정기(精氣)가 흩어지기 전에 또 다른 생을 찾아 윤회한다. 이때 대개 50%는 전생에 살던 나라로 가고, 40%는 주변의 나라로, 10%는 먼 나라로 가게 된다. 그리고 간혹 가다 100만 분의 1 확률로 외계의 문명으로 가기도 한다.
- 윤회를 하는 원동력은 자신의 판단이 아니다. 대다수의 영혼들은 어떤 흐름에 휘말려 따라가게 된다. 그 흐름은 바로 첫째 자신의 영적 차원에 맞아야 하며, 둘째 영혼의 발전에 필요한 곳이어야 하며, 셋째 자신이 저지른 업보에 의한 인과대로 윤회하게 된다. 3~4천의 중생들은 이 세 가지 요소에 의해 윤회가 결정된다. 5천 이상의 영력을 지닌 소수만이 자신의 발전에 필요한 곳을 판단하여 스스로 거취를 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소수 그룹에 들어가는 것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바로 운명의 주체가 되느냐 아니면 객체가 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격암유록>과 같은 예언서에서는 한결같이 앞으로 한국에서 영적 혁명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영적 혁명이란 것이 갑자기 재림예수가 구름 타고 와서 이루는 것도 아니며, 미륵이 갱생하여 중생을 구제하면서 이루는 것도 아니다. 바로 제정신을 바로 하여 운명의 주체가 되는 사람이 눈에 띄게 많아지는 것이 영적 혁명이다.
- 넬슨 본드는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온 괴물>이란 공상 소설을 썼다. 그 소설에서 주인공 패터슨은 페루의 고산지대에 사는 야생 동물들을 사로잡으러 떠났다. 그는 페루 북부 마란탄 고원에서 기괴한 형태로 계속해서 모양이 변하는 초자연적인 물방울 덩어리 같은 환상적인 동물과 마주치게 된다. 이들 검은 덩어리들은 공중을 떠다니는데,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도 하고, 크기와 모양이 수시로 변하였다. 그러한 덩어리들은 갑자기 탐험대를 공격하여 대부분의 사람을 죽였다. 덩어리 괴물은 나머지 사람들을 끌어올렸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공중으로 사라졌다. 단지 패터슨만 그 혼란에서 탈출했다. 용감한 패터슨은 도망가지 않고 숲 속에 숨어 그 덩어리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그는 2차원의 세계에 3차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났을 때 창으로 찍어 평면에 붙들어 맬 수만 있다면 손가락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기회를 엿보다가 덩어리 괴물의 발이 땅에 나타났을 때 창으로 찍어 3차원 세계에 붙들어 매는 데 성공했다는 얘기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런 공상 소설을 4차원의 단면을 이해시켜 주는 일례로 활용한다. 그러나 곰곰이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공상과 망상에 불과한 얘기이다. 이런 허무맹랑한 얘기를 가지고 세계적 석학들이 과학적 잣대로 활용하는 현실을 볼 때 정신문명의 도래가 아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 이와 유사한 내용으로 <평평한 나라>라는 소설이 있다. <평평한 나라>에서 보면, 갑자기 자신들의 평면 세계에 이상한 것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 바로 인간의 손가락이다. 공중에서 손가락이 나타나 평면 세계의 사람을 끌어올리면 갑자기 사라진다. 그래서 평평한 나라 사람들은 손가락 괴물을 잡기 위해 연구를 하고, 결국 손가락이 나타났을 때 바늘로 찔러 평면 세계에 묶어 놓는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소설 모두 3차원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차원의 평면 세계에서는 3차원의 도구인 바늘이나 꼬챙이를 사용할 수 없다. 또한 사용한다 하여도 2차원 내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손톱의 끝만 간지럽히고 말게 된다. 따라서 2차원 사람들이 3차원의 손가락을 잡을 수 없다. 또한 3차원의 인간이 4차원의 괴물을 잡을 수 없다. 몸은 3차원에 나타났지만 다른 공간에 거하기 때문에 이런 괴물에게 창을 던져 봐야 허공만을 가르게 될 뿐이다. 만일 4차원의 괴물을 잡으려면 4차원의 방법으로 4차원에 묶어 놓아야 한다.
- 일례로 염력이나 기공을 이용하여 4차원에 거하는 귀신을 묶는 것이 가능하다. 가령 무속에 보면 못된 귀신을 잡아 서낭에다 묶어 놓는다. 서낭은 마치 감옥과도 같다. 많은 귀신들이 그 곳에 묶여 교육을 받는다. 이렇게 4차원 괴물을 잡기 위해서는 4차원적 방식으로 4차원 내의 특정 공간에 묶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요컨대 4차원을 다루기 위해서는 3차원적 사고에 갇혀서는 안 된다. 넬슨 본드와 같은 물질적 사고에서 탈피하여 정신에 의존해야 한다. 그래야만 유체이탈, 직관, 시해, 투시, 채널링, ... 등의 방법으로 4차원에 입문할 수 있다.
- 40여 년 전 미국의 어뢰 폭격기 제19 비행 편대가 카리브해에서 사라진 것을 비롯하여 무수한 배들이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해저 밑으로 침몰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중으로 날아오른 것도 아니다. 완전히 증발된 것이다. 버뮤다 뿐만 아니라 지구상에는 주기적으로 술공(戌空/차원의 문)이 열리는 곳이 있다. 물론 버뮤다 지역에 해로가 있어 배들이 자주 다녔기 때문에 빈번히 그런 일이 발생하였다.
- 술공이 열릴 때는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첫째는 진공 속으로 빠지면서 그대로 해체되어 버린다. 완전한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다. 두 번째는 4차원의 축이 공각(空殼/차원의 경계선)에 걸리면서 완전히 해체되지 않고 다른 공간으로 순간 이동하는 경우이다. 물론 어떤 경우는 시간이 뒤틀려 나타난다. 4차원의 설계도가 남아 있게 되면 초공간에 들어갔을 때 다시 튕겨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자신들보다 더 높은 차원을 다녀오게 되고, 이런 일을 겪은 사람들의 정신에 충격이 오게 된다.
- 여기서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지구 공동설이 있다. 19세기부터 남극과 북극을 탐험하다가 커다란 구멍을 보았고, 어떤 사람은 실제로 그 속에 들어가 그곳 문명인들과 접촉을 하고 다른 통로를 통해 나왔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은 지구가 텅 비었기 때문에 자전을 하여도 붕괴되지 않고 유지할 수 있다는 괴이한 소리도 한다. 그래서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지구 내부의 문명을 숭배하는 종교까지 나왔다. 지구 내부에서 모든 종교 지도자를 보내 인류를 교화시켰다는 내용이다.
- 나는 명상에 들어가 이것을 확인해 보고자 하였다. 어느 날 지구 중심의 문이 열렸다. 물론 모두 나만의 직관이다. 따라서 확인된 것은 아니다. 공상과학 소설을 읽는 셈 치고 들어주면 족할 뿐이다. 소위 말하는 지구 내부의 세계가 3차원 공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지구 내부는 현재 지질학자들이 밝혀 놓은 것과 같이 고밀도의 내핵과 외핵으로 가득 차 있다. 이곳은 어떤 생명도 존재할 수 없는 불덩어리 그 자체일 뿐이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이런 지구 내부에 또 다른 공간이 뒤틀려 겹쳐 있다.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 순간 명상이 깨지며 현재 의식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며칠 동안 시도를 해도 의도성이 짙어 깊은 의식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다시 선정에 들어가 그곳을 보았다.
- 여기서 잠시 선정의 묘리를 한 가지만 언급하겠다. 만약 지구 내부를 보겠다는 의도를 가지면 선정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렇다고 아무런 의식 없이 들어가면 목표한 바를 알아낼 수 없다. 따라서 어떤 알음귀를 얻기 위해서는 화두로써 선정에 들어가야 한다. '지구 내부는 뭐꼬'라는 화두를 잡고 있다 보면, 지구 내부는 뭐꼬라는 생각이 없어지고 편안한 선정에 들어간다. 그러면 어떤 생각도 정지되어 그냥 그렇게 있게 된다. 그러다가 잠재된 화두에 의하여 지구 내부에 관한 것이 화면으로 보이거나 의식에 떠오르게 된다. 심지어는 외계인이나 어떤 신과도 대화를 하게 된다. 이렇게 해야 어떤 영감을 얻어낼 수 있게 된다. 물론 정신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믿어서는 안 된다. 알아낸 답을 현재 의식에 돌아와 잘 따져 보고 합리적인지 검증을 해보아야 한다.
- 각설하고 지구 내부에는 또 다른 공간이 겹쳐져 있었다. 전혀 다른 세계인 것이다. 왕래의 길은 없다. 그런데 주기적으로 북극과 남극에 문이 열린다. 이 때 여행하던 자는 그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공간을 체험하게 된다. 이것은 사실이다. 지구보다 문명이 발달된 것도 맞다. 그러나 이들이 성인을 보내어 지구인을 교화시켜 온 것은 아니다. 그들은 지구 공간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특성은 무관심이다. 자연 그대로 순리를 어기지 않고 사는 그런 세상이다. 마치 노자의 무위자연과 흡사하다 할 것이다. 도연명이 노래한 무릉도원이나 티벳의 샹글리라가 아마 그런 곳이 아닐까?
- 지옥이란 생전에 악업을 저지른 사람이 죽어서 가게 되는 영원한 형벌과 고통을 당하는 세계를 말한다. 불교의 교리를 보면, 신계를 여섯 가지의 차원으로 나누고 있다. 이것이 바로 천상, 인간,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으로 이루어져 있는 육도(六道) 윤회설이다. 여기서 지옥은 최하층에 있는 곳으로, 이곳에는 또한 여덟 가지의 지옥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 <구사론>을 보면, 팔대지옥이라 하여 살생의 죄를 지면 가게 되는 '등활’, 살생에 도둑죄까지 지면 가게 되는 '흑승', 사음(邪淫)의 죄를 지면 가게 되는 '중합', 그리고 살생, 도둑질, 사음, 음주의 죄를 지면 가게 되는 '규환', 이 네 가지 죄에 망어(妄語)의 죄까지 범하게 되면 가게 되는 '대규환’, 이 다섯 가지의 죄에 사견(邪見)의 죄가 추가되면 가게 되는 '초열', 위의 여섯 가지 죄에 승려를 범한 죄가 더해지면 가게 되는 '대초열',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모를 죽이거나 부처나 불법에 위해(危害)하였을 때가게 되는 '아비' 또는 '무문'이라 불리는 지옥이 있다. 그리고 각각의 지옥에는 또다시 16가지의 지옥이 있는바, 모두 합하면 136가지의 지옥이 있는 셈이다. 게다가 팔대지옥 외에도 팔한지옥이 있다고 하니 참으로 지옥세계도 단순한 것은 아닌 것 같다.
- 지옥에서 사자를 심판하는 신하면 으레 염라대왕을 떠올린다. 이 신은 원래 고대 인도의 베다에서 지옥의 왕인 야마를 ...
- 어린아이에게 호랑이나 지옥 등의 얘기를 들어 훈계하는 것은 일리가 있는 것이나, 성숙하여 자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성인에게도 한결같이 무조건 믿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인간은 태어나서 그저 한평생 나쁘지 않은 일만 하다 가면 되는 그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존재하는 한 반드시 영적 진화를 이룩해야 할 숙명적인 목적과 의무가 있다. 단지 선(善)만을 강요하기 위해 이치를 따지지 못하게 한다면 소리(小利)를 얻기 위해 대리(大利)를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본고를 통하여 지옥과 극락의 실상을 밝히고자 함이다.
- 만일 불교에서 말하는 대로 지옥에는 팔대지옥과 팔한지옥이 있고, 그곳에는 명부시왕이 다스리고 있으며 그중 염라대왕이 사자의 죄를 판결하여 그 경중에 따라 합당한 지옥으로 보낸다고 한다면, 귀신과 신명의 세계에서 악귀와 악신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즉 신계에서 선악의 분별이 뚜렷하게 적용되고 있다면, 귀신이나 신명의 성질은 선(善) 일변도로 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신의 성질도 제각각이고 선성(善性)과 악성(惡性)도 인간과 다름없이 두루 지니고 있으므로, 실로 어디까지가 선신(善神)이고 어디까지가 악신(惡神)인지 분간할 수 없다. 만일 신계에 뚜렷한 통치력이 존재하고 선악에 의한 심판이 살아 있다면 악신은 모두 지옥에 쳐 박히고 신계는 선신들로만 가득 차있을 것이다. 또한 수많은 종교신들이 출현할 수도 없으며, 따라서 인간 세상에 그렇게 많은 종교가 난무할 수도 없을 것이다.
- 임종이 가까워지면 실제로 저승사자가 찾아오는데 이는 염라국에서 보낸 사자가 아닌 조상신계에서 보낸 것이다. 대체로 건장한 청년귀로 보통 한 명이 오기도 하지만 간혹 네 명까지 짝을 지어 오기도 한다. 죽은 영혼은 이들 사자를 따라 조상신을 뵙고 자신의 거취가 결정되는데, 이는 생전에 쌓았던 영적 수준에 의하여 자연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즉 영적 진화가 많이 되어 있는 신은 4천의 신명이 되거나 나아가 5천의 선신(仙神)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영적 수준이 떨어지는 신은 3천의 귀신이 되고, 해체의 순간이 가까워 오면 인간으로 윤회하거나 2천의 축생으로 퇴화한다.
- 이와 같이 사자(死者)의 거취는 어떤 특정한 종교나 신의 심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닌 각자의 영적 수준에 따라 자연적으로 갈라지게 되는 것이다. 3천 수준의 귀신이 제아무리 4천에 진입하려 해도, 정기(精氣)가 흐리고 탁하며 무겁고 칙칙하기 때문에, 보다 밝고 가벼운 4천의 신명계에 올라갈 수 없다. 또한 4천의 신명도 영적 한계에 부딪혀, 이치에 달통하고 순리에 따라 운행하는 보다 밝고 가벼운 5천의 선계에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귀신이나 신명은 이곳에 진입하기 위해 영대가 맑은 자손에 붙어 그 자손이 명산을 돌아다니며 수행하게끔 하고, 이때 자손에게 축적되는 정기(精氣)를 일부 흡기한다. 이런 경우는 제자를 불려먹고자 하는 일반적인 무속신에 비하여 좀 더 진보된 경우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자손과 함께 공부하여 영적 진화를 꾀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로 접신이 되었어도 무당이나 점쟁이가 아닌 수행자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이것은 바로 보다 높은 차원으로 진보하고자 하는 신의 원(願)에 의해 발생된 것이다.
- 이렇게 사후에는 사자(死者)의 역량에 따라 거취가 결정된다.
- 만일 이것이 가능하다면 굳이 영적 진화를 이루어 선계에 가려 할 필요가 없이 그저 아미타불만 찾으면 될 것이다. 또한 3천에 떠도는 원귀도 자손이 천도제만 지내주면 극락으로 갈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생전에 아미타불을 열심히 찾았거나, 사후에 자손이 49천도제를 지내준 귀신이나 신명을 보면, 맺힌 한이 순화되어 신계에서 어느 정도 잘 적응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에 의해 극락으로 진입하는 사례는 결코 찾아볼 수 없다. 아미타불만 찾으면 무조건 극락 간다는 사고는 기독교에서 예수만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구복적 신앙과 조금도 다를 게 없는 것으로, 맹신을 요구하는 극히 잘못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무소불능의 능력이 있는 아미타불이라 하여도 영적 진화가 되지 않은 귀신이나 신명을 임의로 5천 이상의 극락세계로 인도할 수는 결코 없다. 가령 3천의 귀신을 끌어다 5천에 놓으면 어떠하겠는가? 무겁고 탁하고 칙칙한 귀신일진대 밝고 가볍고 청정한 5천에서 적응할 수 있겠는가? 만일 극락천도를 굳이 하려 한다면 원혼을 깨우치게 하여 영적 성장을 이룬 후에라야 가능한 것이다. 그런즉 불교를 믿는다고, 아미타불을 찾는다고 모두 극락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오직 자기 자신의 심성을 순화하고 정신을 얼마만큼 계발하느냐에 달린 것이지, 도박과 같이 어느 특정 신을 믿고 어느 특정 종교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극락과 지옥으로 갈리게 되는 것이 아니다.
- 한 가지 더 일러두건대, 아미타불이 하는 일은 극락천도가 아니라 성불(成佛)을 만드는 데 있다. 기이하게 여길지 모르나 아미타불은 귀신이나 신명을 극락으로 인도할 능력은 없으나 성불을 이루게 할 능력은 충분하다. 즉 아미타불이 원혼의 손을 감싸고 9천을 향하여 엄청난 속도로 승천하게 되면, 그 가운데 원혼은 법열에 휩싸이게 되고 7, 8천을 지날 때 견성을 하게 된다. 곧이어 9천에 이르면서 잠재의식까지 소멸되며 그대로 10천의 열반에 녹아들게 되는 것이다.
- 그렇다면 모든 귀신이나 신명, 하다못해 낮은 선계의 도통신들까지 모두 성불을 시키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5천 이상의 선신(仙神)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성불하는 것이다. 실제로 스승님께서 신통력이 제일이라는 나반존자와 대면하시다가 이제 성불하시는 것이 어떠하냐고 하면서 '아미타불'을 찾으신 일이 있었다. 이때 나반존자는 신통력으로 스승님의 입을 붙여 떨어지지 않게 하면서 팔방에 방어진을 치고 구궁을 펼치며 혼비백산하여 도망간 일이 있었다. 지존의 선신인 나반존자가 어찌 성불하라는 말에 이토록 놀라서 혼비백산할 수 있었단 말인가?
- 이러한 정황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선 성불의 실체를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저급령이 3천을 떠돌다가 정기가 흩어질 때 존재 유지의 방편으로 윤회를 하게 되는데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닌 것으로, 들어갈 자리가 없으면 이내 흩어져서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정기가 흩어지면서 의식이 흐릿흐릿해지며 영원한 죽음에 대한 공포감이 밀려오게 되는데, 이대로 해체되어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은 참으로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막상 해체되는 순간 영사(永死)가 아닌 오히려 견성을 하고 이내 성불하게 되는 기이한 일이 발생한다. 이것은 1천의 원시령에서 9천의 상제에 이르기까지 예외 없이 적용되는 것으로, 해체의 순간 가아(假我)는 소멸되어 영원히 죽게 되지만 본성에 내재한 불성은 영원토록 존재하게 된다. 다시 말해 신이 해체되는 순간 생전에 견성 성불하는 것과 똑같은 과정을 겪으며 가아(假我)가 모두 소멸되고 진아(眞我)인 절대성만 남게 된다. 이것은 곧 영사(永死)와 영생(永生)이 동일한 것임을 뜻하는 것으로, 성불은 곧 영사(永死)에서 오는 것이며 영사(永死) 또한 성불에서 오는 것이다.
- 다시 말해 개체를 중심으로 보았을 때 나라고 믿고 있던 가아(假我)가 완전히 소멸되어야 성불할 수 있는 것이며, 성불이 된다는 것은 나라는 개체가 영사(永死)해야만 이루어진다. 고로성불은 영생과 영사 이위일체(二位一體)의 성질을 지닌다. 선계의 도통신들이 성불을 두려워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가령나반존자는 견성을 하여 이치를 통하였으므로, 윤회의 큰 지배를 받는 것도 아니며, 고통과 한에 절어 있는 중생이나 귀신의 불행한 삶도 존재하지 않는다. 황홀하기 그지없는 선경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며 그 존재 가치를 충분히 누리고 있다. 그런데 만일 성불이 된다면 '나'라는 개체 의식이 완전히 소멸되어 나반존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며, 그렇다고 새로이 존재하는 또 다른 개체가 생성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만물의 근원인 태일(太一) 그 자체가 되어 그냥 존재할 뿐이다. 어떤 느낌도 생각도 일어나지 않으며 그저 그렇게 영원히 존재할 뿐이다. 이것은 영원히 존재하는바 영생이 틀림없지만, 환유(幻有)이기는 하나 현재의 개체를 기준으로 보면 영사(永死)가 아닐 수 없다.
- 죽고 말았다. 그런데 이 승려는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아내를 잊지 못하여 뱀으로 환생하게 되었다. 뱀은 아내의 방을 계속해서 맴돌았고, 부인은 그 뱀이 죽은 남편의 환생이라 믿고 항아리 속에 넣어 두었다. 밤만 되면 뱀은 항아리에서 나와 생전에 하던 대로 여인의 허리를 감고 몸을 비비적거리며 음욕을 불태웠다. 꼬리 중간에는 음경과 같은 혹이 있어서 그 곡진한 정다움이 마치 생전과 같았다. 이 소문을 들은 안공은 그 여인으로 하여금 항아리를 가지고 오게 하고 승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뱀이 머리를 빼꼼 내밀고는 안공을 향해 몸을 좌우로 흔들며 반가운 시늉을 하였다. 이때 안공은 큰 소리로 꾸짖기를, "승려가 되어 더욱 정진할 생각은 않고 아내를 그리워 뱀이 되다니, 이것이 도대체 말이나 되는 일인가!" 하니, 뱀이 얼른 머리를 움츠려 항아리 속으로 들어갔다. 안공은 즉시 건장한 아전 두 명을 시켜 뱀을 꺼내 나무 상자 속으로 옮기고, 불경을 외우면서 강물에 띄워 보냈다. 후히 장사를 치렀기 때문에 그 후 아내에게는 아무런 탈이 없었다.
- <용재총화>
- 요즘 최면술을 이용한 전생퇴행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서구의 합리적 사고로 무장된 학자들에 의해 깊이 있는 연구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중 한 연구서 <전생여행>에 따르면 환자들이 전생여행을 하는 도중, 종종 높은 경지의 영혼이 접촉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 영혼을 간편히 '지혜의 목소리'라 칭하였는데, 이 목소리가 사람은 동물로 윤회할 수 없다고 말한 구절이 있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의사: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습니까?
목소리: 동물들도 영혼이 있지만... 사람들의 것과는 차이가 납니다. 맹목적인 작용처럼 보입니다. 모든 사랑의 흐름은 같다고 하지만, 동물의 사랑과 사람의 사랑의 차이점은... 동물적 사랑은 하나의 경향입니다. 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어떤 경향들은 감정의 움직임대로 가게 되고... 하나님이 원하는 사랑은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영과의 교감을 통한 사랑을 원하고 있습니다. 동물의 사랑이 좀 더 저급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최상의 사랑입니다.]
- 사람은 다음 생에서 짐승으로 태어나기도 하는가? 지혜의 목소리들은 동물의 영혼과 사람의 영혼의 차이를 얘기한다. 신과 교감하는 인간의 영혼은 아무리 수준이 낮아도 동물의 영혼보다는 높다는 것이다. 한 생애에서의 잘못으로 갑자기 짐승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가르침은 하나의 비유로 해석될 수 있다. 다음 생에서 돼지가 된다는 것은 돼지와 같은 속성을 가진 인간이 된다는 것이고, 개가 된다는 것은 개와 같은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 그러나 정말 짐승으로 태어날 수도 있는가? 윤회에 대한 많은 자료와 가르침들을 자세히 들여다본 후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인간이 거듭되는 삶을 통해 계속 퇴보한다면, 짐승이 아니라 큰 결점과 고통을 가진 인간으로 태어나 그 업의 법칙에 따라 대가를 치르고 또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목소리들도 인간의 영혼은 처음부터 동물의 영혼과는 다르게 창조되었다고 얘기하고 있다.
- 네 친구는 죽어 神이 되었다. 갑돌이는 자신의 돈을 떼먹은 사람을 찾아 복수하려는 원귀(怨鬼)가 되었다. 갑돌이는 원수를 갚는 일 외에는 어떤 생각도 일어나지 않았다. 을돌이는 생전에 여색을 밝히던 버릇이 심하여 색신(色神)이 되었다. 그는 기생집에 빙의해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성적 욕구를 충동하여 기생과 합방케 하고, 이때 그 손님에 빙의되어 쾌락을 느꼈다. 병돌이는 앞의 두 친구와는 달리 나름대로 학문도 공부하고 형식적이나마 대인의 처세도 해 보았기 때문에, 이들보다는 한 단계 높은 신명(神明)이 되었다. 갑돌이와 을돌이는 '원한'과 '쾌락'에 의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귀신이지만, 병돌이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자체 판단을 할 수 있는 신명이 된 것이다. 하지만 생전에 권력을 탐하던 버릇은 없어지지 않았다. 즉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마음에 자손을 괴롭히며 제사를 거창하게 지내줄 것을 요구하였다. 몸이 이유 없이 아픈 자손이 무당을 찾아가 점을 치고는 신병임을 알고 굿판을 열어 조상대접을 하였다. 병돌이는 한동안 만족하는 듯싶더니 다시 발동하였다. 이렇게 자손이 몇 번의 굿을 하여도 병돌이가 그치지 않자, 결국 푸닥거리를 하였다. 무당이 매서운 작두신장과 오방신장을 움직여 병돌이의 몸을 사정없이 칼로 내리쳤다. 병돌이는 견디다 못해 도망갔고, 다른 자손들의 거처를 여기저기 떠돌며 신병을 일으킬만한 자손이 없나 찾아 헤매었다.
- 이들 세 친구는 생전의 물욕적 집착에 의해 산왕이나 서낭을 찾아 저승으로 갈 생각은 못하고 이렇게 배회하고 있었다. 하루는 고향에서 갑돌이의 제사가 있어 모두 모이게 되었다. 그런데 갑돌이와 을돌이가 병돌이를 보자 눈이 부셔 잘 볼 수 없었다. 병돌이는 갑돌이와 을돌이에 비해 자신의 몸에서 빛이 더 많이 방출되고, 걸음걸이도 몇 배나 빠르고, 힘도 몇 배나 세다는 것을 알고는 대단히 뿌듯하게 여겼다. 바로 그때였다. 가장 인생을 초라하게 살았던 정돌이가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이란 말인가! 정돌이의 목소리는 분명 들리는데 갑돌이와 을돌이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병돌이의 눈에만 찬란한 광명에 휩싸여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정돌이가 희미하나마 보였다. 정돌이는 5천의 영적 수준이 되어 선신(仙神)이 되었던 것이다. 무조건 높은 곳만을 바라보고 산 병돌이는 큰 충격을 입었다. 자신이 땅이라면 정돌이는 하늘과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병돌이는 그제야 이승의 삶이 영적 진화를 위한 공부 과정이었음을 깨달았다. 그 과정에서 자신은 권력에 빠져 공부를 소홀히 했던 것과, 다른 두 친구가 돈과 쾌락에 빠져 아예 정신을 팽개치고 결국 귀신이 되었음을 안 것이다. 병돌이는 곧바로 윤회할 결심을 하였다. 정돌이를 빨리 따라가기 위해서는 육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갑돌이와 을돌이는 병돌이와 정돌이를 보면서도 영적 진보에 관한 그 어떤 생각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의 몸은 칙칙하고 탁하였고, 생각은 온통 복수와 쾌락뿐이었다. 정돌이는 귀신이 된 두 친구를 돕고 싶었으나 뾰족한 방법이 없음을 알았다. 생전에야 납득하게 설명하면 알아들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지적작용이 감퇴되어 이해나 판단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 얼마 후 병돌이는 다시 인간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이생에서 반드시 영적 발전을 이룰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전생의 결심은 모두 잠재층에 갇히고 이제 자라면서 새로운 지정의(知情意)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갑돌이는 윤회할 생각도 잊고 원귀가 되어 떠돌다가, 수명이 다 되어 정기가 공중에 흩어져버렸다. 완전히 해체되어 영원한 죽음에 이른 것이다.
- 무당에는 신이 내려서 되는 강신무와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세습무로 분류되는데, 신내림은 강신무가 지닌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강신무는 신을 받기 전에 반드시 신병(神病)이라는 불가사의한 병을 앓게 된다. 다음은 아카마쓰 지죠(赤松智城)와 아키바 다카시(秋葉隆)의 공저인 <조선무속의 연구 朝鮮巫俗の硏究>에서 조사된 신병의 사례이다.
[개성 출생으로 현재 덕물산(德物山)에 거주하고 있는 47세 된 한 무녀의 얘기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무녀가 아니었지만, 그녀 자신은 무당의 아들에게 시집갔다. 15세 되던 어느 날, 시어머니의 굿을 온종일 구경하고 피곤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꿈속에서 그 굿을 다시 보게 되었다. 무시무시한 인상을 한 사람(신장)이 나타나서는 신전에 바친 소의 머리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오더니, 이것을 지붕 위로 던지고 다시 내려서 소의 머리 한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 그것을 그녀의 머리에 씌워 주었다.
이런 소름끼치는 꿈을 꾸고는 그날 밤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였다. 다음날 아침은 얼굴이 탱탱 부어 몰라볼 정도가 되었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끓인 죽만을 마셨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그녀가 신이 내렸을 리 없다고 하며 반대하여 병마를 고치려고 무려 23회나 굿(푸닥거리)을 하였다. 그럼에도 병은 점점 심해져만 갈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에 무작정 집을 나섰다. 그리고는 실성한 사람처럼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굿을 하는 데 필요한 돈과 곡식을 구걸하여, 결국 내림굿을 행한 후 무녀가 되었다. 이와 관련해서 이 지방에서는 이러한 경우의 굿을 햇푸림이라 칭하고, 이것을 행하기 위해 집집을 돌며 돈과 곡식을 구걸하는 것을 '계면을 돈다'고 한다. 현재 그녀는 어떤 사람의 첩으로 있으며 정실 자식과 합쳐 다섯 명의 자녀를 둔 어머니이기도 하다.]
- 만약 신이 내렸을 때 이것을 떼려고 하면 더욱 악화되기 십상이다. 무녀에 온 신병이 보통의 잡귀나 귀신들에 의한 것이었으면, 무녀의 시어머니가 행한 살풀이나 푸닥거리에 의해 벌써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내림신은 어느 정도의 영력을 지닌 신명이어서 웬만한 신장굿으로는 효험이 없다. 23회의 굿을 하고도 신병에 효험이 없었던 것은, 첫째 내림굿을 해야 할 것을 푸닥거리를 하였기 때문이며, 둘째 시어머니의 주장신보다 며느리에 내린 신의 영력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병이 잡귀가 아닌 강신의 병임을 알았을 것이며 23회에 걸친 헛수고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계에서는 자신보다 높은 차원의 신은 잘 보기 어렵기에 시어머니의 신은 며느리의 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그저 며느리의 주장신이 내림을 시도할 때, 주변에 널려 있던 각종 잡귀들이 들쭉날쭉하는 것만을 본 것이다.
- [덕물산에서 어느 무녀의 딸로 태어난 40세 무녀의 일이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9세 때 갑자기 병을 얻어 3개월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단지 냉수만 마셨다. 그래서 점을 쳐보니 신이 내린 징후가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탓으로 굿을 할 수 없어서 간단한 푸닥거리를 해 보았는데 그것으로 병이 치유되었다. 그런데 13세 되던 해 또다시 같은 병에 걸려서 3개월 동안 꼼짝없이 냉수만 마셨다. 신체에 뼈와 가죽만 남아 일어설 힘조차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어느 산으로 가거라. 훌륭한 무녀가 되리라'하며 말문이 터져 나왔는데 정확히 무슨 소리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집을 나와 소위 계면을 돌아 음식을 장만하여 장군당에 올리고, 그 앞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다가 졸도해 버렸다. 그래서 집으로 업혀 돌아갔고 23일이 지나자 병이 나았다. 그 후부터 건강한 몸이 되었으므로 3월이 지난 14세 때에 경성으로 시집을 갔다. 그런데 시집간 지 8일째에 다시 신병이 도져 시댁을 뛰쳐나와 친정으로 돌아왔다. 계면을 돌아 돈과 곡식을 장만하여 내림굿을 하였는데, 어쩐 일인지 말문이 열리지 않아 실패하고 말았다. 그 사이 오랫동안 이혼문제로 고통을 받았고, 18세 때 다시 신병에 걸려 내림굿을 받았다. 이번에는 어느 정도 말문이 열렸으나 무속을 금하는 시대적 상황에 의해 무업(巫業)을 행할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27세 때 경성 교외에 있는 불광사에 가서 마지막 내림굿을 행하고 진짜 무녀가 될 수 있었다.]
- 신병에 걸렸을 때 무조건 내림굿을 한다고 말문이 터지는 것은 아니다. 의식에서 신계와의 접촉이 일어날 때 진동수의 차이에 의해 신체에 이상이 오게 된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신병이다. 그리고 이 틈을 타서 갖가지 신들이 접촉을 시도한다. 그런데 주장신이 오기 전에 들린 신들은 일시적인 신기나 어설픈 말문에 불과하여 더욱 혼란을 가중시킨다. 위의 기록에 나오는 무녀도 27세가 되고서야 비로소 제 신을 바로 찾은 것이다. 가령 주장신이 천궁불사인데 이 신에 앞서 객귀나 조상신이 들릴 수도 있고, 불사대신이나 별상장군이 들어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아직도 제 주장신을 모시지 못한 바 신병의 후유증이 남게 된다. 어쨌든 신 내림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와 같은 신병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런데 무당이라 하여 모두 이 병을 체험하는 것은 아니다. 내림신이 5천 이상의 영력을 지녀 도(道)줄이 센 경우나, 내림신의 성격이나 분야가 약명도사나 글문도사와 같은 경우는 그만큼 신병의 강도가 약하다.
- 신병은 내림굿이나 강신기도를 해서 접신이 제대로 되어야만 끝나게 된다. 자신에게 신이 온 것을 모르는 경우에는 병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돌아다니다가 수십 년이 넘도록 신병에 시달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신병이 있으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몸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는데, 먹을 때는 편식증이나 소화불량에 걸리기 쉽고, 골절의 마디마디가 쑤시고 결리며, 속이 답답하고 머리가 자주 어지러워진다. 그리고 어떤 신과 접촉하는 꿈을 꾸는 등 희귀한 꿈을 자주 꾸게 되고, 그러다가 점점 심해지면 깨어 있을 때에도 환시나 환청이 들리거나 상대방의 생각이 느껴지기도 하고, 앞에 일어날 일이 불현듯 떠오르기도 하는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 "나로서 끝날 것이니 너는 평범하게 살거라"하고, 죽어서 딸이나 다른 자손들에게는 강신을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게 된다. 할머니 신을 받지 않으려고 완강히 거부하다가 모진 신벌에 의해 처절한 고통을 맛보고, 끝내 죽음을 택할 수 없어 신을 받게 되었던 무녀, 이제 임종을 앞두고 사랑하는 딸에게 이런 삶을 되풀이시키지 않겠다는 어머니의 다짐인 것이다. 그러나 대개 죽어서 신이 되었을 때, 이 약속은 모래성이 허물어지듯 사라지고 다시 딸이나 자손에게 강신을 요구하게 되며, 이를 어길 시는 사랑하는 딸이라 할지라도 가혹한 신벌을 내려 폐인이나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게 된다. 살아 있을 때의 어머니의 심정을 관한다면, 어머니가 딸을 위해 죽을 수도 있을 만큼 지대한 사랑이 있었음인데, 죽어서는 신을 받지 않는다 하여 딸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려한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무속의 세계를 보건대, 본인이 접신을 원하거나 강신에 그다지 거부감이 없으면 내림신과의 마찰은 생기지 않으며, 따라서 신병도 그저 미약할 따름이다. 그러나 이를 거부하려는 의지가 완강할 때는 예외 없이 신과의 처절한 투쟁이 불가피하게 되는데, 대부분 신의 승리로 끝난다. 이런 신 내림은 원시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동서를 막론하고 끊임없이 계속되어 온 것으로, 이는 바로 귀신이나 신명의 성질이 '정혼(情魂)'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다시 말해 이승에서의 지적 작용을 저승으로 그대로 가져갈 수만 있다면, 이성적 판단이 살아 있어 자신의 한이나 욕구를 자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승에서는 육신을 통하여 '정(精)'을 흡기하기에 수월하여 신(神)과 정(精)이 일체 된 정신의 상태에 있지만, 죽으면서는 대부분의 '정(精)'이 이탈하여 신(神)만이 남게 된다. 정보를 모으고 활용하여 지적 반응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정(精)'의 도움으로 가능한 것이므로, 정(精)의 결핍은 곧 지(知)의 감소를 불러오고 결국 감정 위주로 반응하는 정혼(情魂)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사후에 정혼(情魂)이 되었을 때, 잠재의식에서 일어나는 인사에 관여하려는 욕구와, '나' 위주로만 반응하는 아집의 성향이 발달되어, 결국은 사랑하던 딸에게까지 모질게 강신을 요구하는 기막힌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속의 신 내림은 수천 년이 흐르는 사이에도 변함없이 지속될 수 있었고, 이는 신의 성질이 곧 정혼(情魂)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 그런데 모든 신이 정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살아서 도 공부를 하여 정기(精氣)를 공고히 한 사람이나, 학문이나 사상에 열중하여 정신계발이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는 사람은 죽어서도 자신의 정신을 보존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이승에서 자신의 정신을 총명하고 또렷하게 만든 사람은 죽게 되어도 정신에서 정(精)이 흩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바, 다른 정혼들이 꿈과 같이 몽롱한 상태에서 반응하는 것에 반해 이승과 똑같은 의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정신을 얼마만큼 보존할 수 있는 가에 따라서 영계의 차원이 결정된다. 가령 3천의 귀신은 정기(精氣)가 빈약하여 오직 정혼만으로 되어 있고, 4천의 신명은 3천의 귀신에 비해 정기(精氣)가 좀 더 공고하여 한 단계 높은 차원에 존재한다. 그러나 신명이라 하여도 아직은 정혼의 범주를 넘을 수 없으며, 5천 정도는 되어야 비로소 살아 있었을 때의 정신 수준을 그대로 지닐 수 있다. 실로 이 정도만 된다면 자신의 주체를 그대로 보존한 것이 되어 생사의 경계가 묘연할 것이다. 그런즉 살아 있을 때에 물질적으로만 생활하지 말고 틈나는 대로 자신의 정신 계발에 힘써야 한다. 물론 종교적 굴레에 빠져서는 영적 진화는 고사하고 오히려 퇴락의 고통을 맛볼 것이니, 어떤 일이 있어도 스스로 진리에 빳빳이 서는 것에 유념해야 한다.
- 산신을 찾아가면 모두 신기만 더 오르게 되지 신을 떼었다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무속에서 소위 산신으로 불리는 신이 실제의 산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기(地氣)를 다스리는 실제의 산신은 선계에 올라가 인사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다만 지기와 관련된 일에만, 그것도 대부분 산신국사를 보내어 일을 관장할 뿐이지 인간사에 일일이 개입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것은 선계의 특징 중의 하나가 도력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초월의식이 강성해져 인사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 우리가 흔히 아는 명산의 산황대신은 실제의 산신이 아닌 단지 산신행세를 하는 지령관(地靈官)이라는 신으로, 그 밑에 지령보(地靈輔)를 두어 조상신과 장군신, 신장, 선영동자, 술법신, 객귀 등등의 제반 귀신과 신명의 일을 관장하고 있다. 이 지령관은 신명의 수준에서는 높은 경지에 올라 있으나 아직은 도통신으로 발전하지 못해, 아직도 속세의 때를 벗지 못한 정혼의 일종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지령관을 산신으로 믿고 제를 아무리 올려 봐도 신을 떼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신기만 더 오르는 결과만을 초래할 뿐이다.
- 그렇다면 신을 떼기 위해 내로라하는 도인이나 도통신과 접하여 있는 신인(神人), 또는 도줄로 능력 있는 무당을 찾아가는 것은 어떠한가?
만약에 5천 이상의 도통신이 신내림을 방지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대개의 도통신은 이런 일에 관여하려 하지 않으며, 만일 인간 제자가 요청하게 되면 간혹 소원을 들어주는 일이 있지만 매우 드문 경우이다. 실제로 내가 알고 있는 이 선생이라 불리는 사람에게 술법이 뛰어난 3대 적의 할머니 신명이 접신하려 한 적이 있었다. 이 분은 철학을 공부하며 도줄로 일관하던 분인데 뚱딴지같게도 오십이 넘은 나이에 할머니 신명이 차고 들어오려 한 것이다. 평생을 도학에만 열중하였는데 이제 와서 신을 받는다고 하면 실로 한길로 정진해 온 인생이 허망하지 않을 수 없다. 용하다는 무당을 찾고 또한 갖은 비방을 다 써 봐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결국 하는 수 없이 구천현녀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에 들어갔고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밤, 자시를 막 넘어서는 순간에, 구궁(九宮)을 움직이는 팔문신장(八門神將)이 쏜살 같이 내려와서 할머니 신을 낚아채 동쪽으로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 광경을 옆에서 수도하던 몇몇 사람이 목격하게 되었는데 모두들 도대체 무슨 신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였다. 천상신장 중에 팔문신장은 화엄성중과 태을신장에 다음가는 서열 3위의 높은 신장으로 매사에 몇 초를 넘기지 않는 신속함이 있다. 이는 구궁을 펼쳐 천지기운의 흐름을 타고 운행하기 때문이다.
- 어쨌든 이 선생은 구천현녀의 명을 받은 팔문신장에 의하여 할머니 신명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이는 이 선생이 오래도록 구천현녀 공부를 한 덕택에 도움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천신이 내림신을 떼어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여도 무방하다. 대개 육정육갑신장 이상의 천상신장이라면 모를까 웬만한 신장들은 영육의 경계선에 늘어붙어 인간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어중간한 내림신들을 제어할 영향력이 약하다. 게다가 천신은 인사에 개입하려는 의지가 약하고, 개입하려도 영육경계선에 들어가는 것이 도통신으로서는 귀신과 신명에 비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귀신이나 신명을 아주 해체시킬 수만 있다면야 한 번의 힘을 들여 영육경계선에 들어와 말끔히 일을 처리할 수도 있겠지만, 신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오직 9천에 거하는 상제나 보살의 경지는 되어야 가능한 것이라 이 또한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적당히 혼을 내준 신은 잠시 물러나는 듯이 보이지만 이내 또다시 내림을 강요하게 된다. 따라서 계속해서 영육경계선에 맴돌지 않는 한 완전하게 신을 떼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선생 같은 경우는 팔문신장의 기세가 너무나 강하였고, 또한 이 선생 자체의 영적 수준이 높았기 때문에 접신의 차원을 넘어서 내림신을 물러가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그래도 할머니 신이 계속해서 접신하고자 한다면, 또다시 구천현녀께 소원해야 할 것인데, 천신을 움직이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겠는가!
- 그렇다면 과연 신 내림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합당할까?
먼저 신 내림에 대하여 무조건 거부하기보다는 상세히 알고 난 후에 판단해야 할 것이다. 신 내림에는 두 가지의 종류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신을 내려 제자를 불려 먹게 하면서 동시에 신은 대우를 받으며 인사에 관여하는 경우이다. 즉 신과 제자의 공생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뚜껑도 맞아야 쓰는 것과 같이 뜻이 상반되는 신과 인간이 접신되어 일체 되기란 결코 용이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내림을 하기 전에 신은 자손이나 친지들 속에서 영감이 뛰어나고 자아도취 성향이 강하며, 사회에 잘 적응치 못하여 방황하는 등의 조건이 부합되는 사람을 찾게 되고, 찾은 즉 강신을 시도하게 된다. 강신도 아무 신이나 되는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자손은 조상신이 관장하는 것으로, 조상신 중에서 기력이 뛰어난 신 순서대로 먼저 선택의 여지가 있게 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의 조상신이 침범하는 경우가 드물며 대부분이 조상신이 오든지 아니면 드물지만 천신이 강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림신이라 하여 모두 그렇게 모질고 가혹한 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혼(情魂)으로서의 신은 잘만 대해 주면 인간을 위해 좋은 일도 많이 해줄 수 있다. 그러나 아집이 강하기 때문에 자신과 제자가 불이익을 당하게 되면 사람을 해치는 요소로도 작용할 수 있다. 이것은 사람들의 성질과 다를 바가 없는 것으로, 사람도 친한 사이끼리는 대부분 서로 돕고 사이좋게 지내지만, 자신에게 불리하게 되면 이내 앙심을 품고 복수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인간은 대부분이 이성이 있어 지적 판단에 의하여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고 이성적으로 대처한다. 이에 반해 신은 감정 위주로 되어 있는 정혼이기 때문에 원만하게 대처하기보다는 해코지를 가하는 쪽으로 흐르기 쉽다. 그렇기에 역사상 보면 무당을 끼고 적에게 저주를 내리게 하는 등, 신통력을 부적절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적잖게 등장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신은 정혼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일단 침입한 신을 잘 달래 주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마치 어린이를 달래는 것처럼 잘 위해 주면 감정은 순화되어 인간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은 신을 받은 인간 제자의 성향을 많이 따라가게 된다는 것이다.
- 나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본인에게 신이 왔다고 해서 무조건 거부하려 하지 말고 운명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접신을 정도(正道)로써 행한다면 이는 곧 신통력으로 승화되어 나름대로의 가치가 충분한 것이다. 그런데 의지가 약하고 사상이 정립되지 않은 적잖은 사람들이 신과 접신이 되면 보다 더 독선적으로 되고 자아도취에 빠져 하늘 높은 줄을 모르게 되기에,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곧 신내림 문제의 관건이다. 만일 신인이 되는 것이 자신이 없거나, 본인은 죽어도 처음부터 내 정신 그대로를 가지고 정진하고자 한다면 이는 신을 떼는 수밖에는 없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신을 떼는 방법은 매우 지난한 것으로 열 명이 시도하여도 그중 하나를 보장할 수 없다.
- 그러나 다행히도 2000년 3월 3일 이후부터는 신을 떼는 것이 가능해졌다. 인체에 태극 형상이 나타나는 <태극선법> 수련을 하면 2~3개월이 지나지 않아 신이 저절로 물러가게 된다. 필자가 처음에 수련을 보급할 때는 과연 공력이 강한 내림신을 뗄 수 있을까 의아해하기도 했다. 그런데 열이면 아홉은 모두 신을 떼는 데 성공했다. 물론 신을 떼지 못한 한 명의 경우도 신의 종속에서는 해방되었다. 이러한 경우는 접신된 사람이 신의 제자가 아닌 대등한 관계가 설정되어, 수련생이 소주천을 이룰 때 오히려 그 신이 신통력을 행사하는 것을 도와주게 되는 것이다. 무속인이 아닌 신인으로 승화된 경우이다. 아무튼 이렇게 수련을 통하여 신을 떼거나, 아니면 신인합일하여 신인이나 도인의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해졌다.
- 다음은 그 가운데 한 사례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수련에 관심이 많아 수많은 수련 단체를 배회하였고, 심지어 무속인들을 따라 산 기도도 여러 번 했다. 그러나 수련에는 전혀 진척이 없었고, 더군다나 잡령의 빙의와 당뇨라는 불치병까지 얻게 되어 정상적인 사회생활까지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직장도 잃고 자포자기의 상황이 되었을 때 우연히 서점에서 <태극선법>에 관한 책이 눈에 띄게 되었다. 30여 년 전 권태훈 옹의 단(丹)을 발표한 이래 꾸준히 신뢰를 쌓아온 정신세계사에서 간행된 책이라 더욱 믿음이 갔다. 나는 곧장 정신세계원에서 주최하는 제2기 태극선법 연수회에 참여했고,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책에 쓰여진 대로 아랫배에 쌍도태가 외형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부터 나에게 빙의된 잡령은 수련을 방해하기 위해 온갖 술수를 다 부렸다. 나는 그러면 그럴수록 의지를 더욱 굳건히 하고 수련에 정진했다. 결국 석 달이 되기 전에 나에게 붙어 있던 잡령을 스스로의 기운으로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잡령은 눈물을 비 오듯 흘리며 나에게 큰 절을 올리고는 영영 떠나간 것이다. 이렇게 되자 마음은 새털같이 가볍게 되었고, 이 때문인지 고질병이던 당뇨까지 차도를 보이게 되었다. 심신의 건강을 거의 회복하게 되자 8개월간의 실직을 마감하고 전 보다 더 좋은 직장도 잡게 되었다. 이제 나의 몸은 늘 활력으로 넘치고 마음은 풍류에서 노닐고 있으니 더 이상 바랄 바가 없다.]
- 이은광, 서초구 방배동
- 물론 태극선법과 같은 선도 수련을 하지 않고도 신을 떼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이치공부이다. 신은 성질상 자신보다 차원이 높은 사람에게는 접신을 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현재 빙의나 접신이 되었다 하여도 항상 자신의 주관을 뚜렷하게 갖고 철학과 사상공부에 정진하여 어느 단계를 넘는다면 접신된 신은 자연히 물러갈 수밖에 없다. 가령 신의 세계와 신의 성질을 명확히 알고 또한 천지 기운의 운행과 인간 존재의 의미, 나아가 절대계와 상대계의 실체 등에 관한 심오한 정신세계의 경지를 깨닫게 된다면, 아니 이해 정도라도 하게 된다면, 신이 인간의 정신에 개입하는 것은 점점 어렵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정신을 5천 이상의 경지로 올려 3천의 귀신과 4천의 신명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책이다. 그러나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한 세상에 난무하는 이론들 중에 옥석을 가리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 요컨대 신내림의 문제는 자신의 운명에서 찾아야 마땅하다. 신내림에 의해 습득되는 신통력에 빠져 자아도취 되는 것은 금물이며, 그렇다고 신내림을 무조건 거부해서도 안 된다. 신통력이 어떠하든 세상을 위해 쓰고자 하는 바른 마음을 지녀야 할 것이며, 제정신을 완전히 빼앗기지 말고 이치 공부에 힘써 나가야 한다. 이렇게 된다면 제정신을 잃지 않고 신통을 행사하니, 오히려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게 될 것이다.
- 신이 내리면 왜 자아도취에 빠지기 쉬울까?
신내림이 된 사람을 무당이라 하는데 일반적으로 남자 무당을 박수, 여자 무당을 보살이라 한다. 그리고 이를 총칭하여 모든 신이 내왕할 수 있다 하여 만신(萬神)이라 한다. 여기서 여자 무당을 보살이라 하는 것은 무당이란 용어가 과거에 천한 개념으로 인식되어, 이것을 탈피하고자 불교적 용어로 대체한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보살같이 써야 보살인 것이지, 약간의 신통력만 믿고 혹세무민 한다면 결코 보살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무당이던 보살이던 따지고 보면 모두 훌륭한 이름인즉 용어를 어떤 것을 사용하던지 이름값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신내림을 하게 되면 중요한 특징이 있다. 접신이 되면 매우 강한 자아도취에 빠진다는 것이다.
- 다음은 높은 신을 빙자한 무당을 경계한 구절이다.
[무녀의 입은 멋대로 제석(帝釋)이라 하는데
제석님은 본래 6천에 계시는데 어찌 누추한 너의 집에 계실소냐!
벽에는 단청으로 신상(神象)을 그려 놓고 칠원성군(七元星君)과 구요성(九曜星)은 액자로 그려 걸어놨는데
이 분들은 9천에 계시는데 어찌 너를 따라 너의 집에 거처하랴!]
(제석은 제석천왕과 삼불제석이 있다. 제석천왕은 8천에 거하는 진리신이며 삼불제석은 무속의 신으로 조상계열의 신이다.)
- 이규보 <동국이상국집>
- [세종 26년(1446, 癸亥) 7월 정미(丁未) 일에 의정부에서 무업을 금하는 법을 제정하였다. 그 첫째 항을 보면, '... 무녀 등이 혹시 고금에 없는 바의 신을 일컫거나, 혹은 당대에 사망한 장군이나 재상의 신을 일컬어 임의로 신의 이름을 만들고 스스로 귀신이 자기에게 붙었다 하며, 요사한 말로 여러 사람을 현혹시키는 자는 요언요서에 대하여 만든 법에 의하여 처단한다.' ... ]
- <조선실록>
- 첫 번째 기록 <동국이상국집>에 나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실록에 나오는 주장은 그릇된 것이다. 장군이나 재상, 심지어 왕까지도 죽어서 내림신이 되기도 한다. 무녀에게 생전에 고귀했던 사람들의 신이 내렸다 하는 것은 크게 거짓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천상의 진리 신들까지 함부로 거론하는 데 있다. 무속과 종교의 차이점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무속은 종교와 달리 첫째, 공통된 신이 없고, 둘째, 교단이 없고, 셋째, 경전이 없다. 수천 년이 흘러도 무속이 하나로 통일 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접신하게 되면 자신과 자신의 신이 최고가 되어, 종교처럼 상하의 조직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접신한 사람 자신이 교주가 된다면 몰라도 다른 사람 밑에서 신도가 된다는 것은 꿈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가령 자신에게 조상신이 붙는다 하여도 이 조상신은 대개 자신이 몇 대의 조상이라는 점을 밝히지 않는다. 대부분이 ㅇㅇ보살이나 ㅇㅇ도사, ㅇㅇ선관,ㅇㅇ신장 등의 높은 신들의 이름을 거론하고 직접 그 형상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기도를 하면 눈앞에 구름 속의 궁궐이 펼쳐지고 높은 옥좌에 붉은 도포를 입고 앉은 분이 "나는 태상로군인데 너는 전생의 내 아들이었느니라" 하면서, "아들아!" 하고 부르면 제자는 감동하여 눈물을 글썽이며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산신을 비롯해 천계의 신을 자처하고 직접 영상으로 보여주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리고 이러한 환영들은 조상신이 허위로 만든다는 사실을 이치적으로 알려 주어도, 사람들은 대개가 본심으로 자신은 예외겠지 하는 주인공의 심정을 지니기 마련이다. 나만은 틀림없이 선택받았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신이 오르기 전에는 수긍을 하다가도 신이 막상 오르고 나면 결국은 신의 의지대로 끌려가고 만다. 이런 연유로 명산 기도터의 암자에 무속인들이 몇만 모이면 서로가 잘났다고 으시대기가 일쑤이며, 모두가 자신은 선택받은 주인공이라는 꿈에 부풀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접신에서 오는 자아도취인데, 이는 의학에서 말한다면 양성광증(陽性狂症)에 해당하는 것이다. 즉 현재의 자신이 타인에 비해 그다지 잘난 것이 없는 데도 대단한 존재라는 사실에 도취되어 있는 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주변이 있고 글줄 좀 쓸 줄 알면 으레 책을 내거나 종교를 차려 하느님 행세를 하려는 ...
- 천제와 굿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굿이란 신들린 무당이 노래와 춤으로 치성드리는 제사 의식을 말한다. 이 절차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로 정형화되어 무가(巫歌), 무무(巫舞), 무복(巫服), 무예(巫禮)등이 고정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지역에 따라 조금씩 용어나치성 의식의 차이가 있다. 굿의 유래에 대한 첫 기록은 <삼국유사>의 [제2남해왕] 편에서 볼 수 있다. 남해왕(南解王)은 차차웅(次次雄)이라 불렀는데 이는 방언으로는 무당의 뜻이라고 한다. 즉 당시는 왕이 무당이었던 것이다. 남해왕 3년에 시조인 박혁거세의 묘를 세우고 제사를 지낼 때도 누이동생인 아로(阿老)가 주관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누이 또한 무당이다.
- 굿의 형태가 정형화되기 시작한 것은 신라 진흥왕 때부터이다. 당시는 팔관회(八關會)라는 국가적 규모로 진행된 나라굿이 있었는데, 국선(國仙)이라는 일종의 국사무당이 주관하였다. 이런 굿의 풍습은 고려 때까지 이어져 내려갔는데, 조선에 들어와서는 지배층에서 밀려나 서민의 종교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당시의 시대 상황이 유학을 중시하였던 바, 굿 대신 유교식 제례로 대치할 것을 권장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유교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은 여전히 무당을 찾고 굿판을 벌여 왔다. 그러다가 일제 침략기에 접어들면서는 더욱 ...
- 단군왕검의 대각(大覺)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일일이 언어로써 이해시킬 수가 없었다. 이것은 당시가 문명의 초창기임을 고려한다면 이를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리하여 누구나가 즐길 수 있는 놀이를 계발하여 우주의 운행원리를 그 이면에 숨겨 놓았다. 예를 들어, 곤지곤지에는 태일(太一)에서 태초점(太初点)이 찍혀 우주가 형성되는 최초 원인을 비장시켜 놓았고, 가위바위보 놀이에는 만상(萬象)과 만물(萬物)의 동인(動因)인 정기신(精氣神)의 원리가 숨어 있으며, 공기놀이에는 만물의 순환 원리인 금화교역(金交易)의 원리가, 윷놀이에는 음양오행의 원리가, 바둑놀이에는 상계(象界=비물질계)에서 형계(形界=물질계)로 물질이 창출되는 구궁팔풍(九宮八風)의 원리가 숨어 있다. 또한 단군왕검은 환웅시대의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렀던 음양이라는 원시 문자를 팔괘로까지 발전시켜, 이로써 세세한 변화원리까지도 구명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무엇보다도 단군의 가장 큰 위업을 꼽으라면, 인간이 태일로 복귀할 수 있는 독보적인 수련을 계발하였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수인선법' 수련으로 당시에는 많은 수행자들이 이 수련을 통해 자신의 아랫배에 태극문양(☯)의 도태를 형성하고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 한다. 이것이 바로 태극문양의 연원인 것으로, 후대의 도학자들이 이를 모르고 단지 도상만을 차용하여 온갖 형이상적 미사여구(美辭麗句)를 장식하며 신비화하였던 것이다.
- 굿에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
굿의 종류와 구조는 매우 복잡하여 전문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여기서는 일반인의 이해를 기준으로 전문적 용어나 복잡성을 배제하고 간략히 요약, 정리해 본다.
- 1. 굿의 종류
(1) 작은 굿 - 비손
가장 규모가 작은 굿으로, 간단히 음식을 차려놓고 손 비빔으로 치성을 드린다 하여 '비념'이라고도 한다. 대개 어머니들이 과거 보러 한양 간 아들의 장원을 바라며 정한수 한 그릇을 떠놓고 매일 같이 비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귀신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미약하지만 오히려 천신을 감명시키는 데에는 더욱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천신은 차려 놓은 음식의 규모보다는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 (2) 중간 굿
① 고사 : 예전에는 10월 상달에 추수를 기리며 지내는 제사의 뜻으로 사용되었으나, 요즘은 규모가 작은 굿에 이 용어를 쓴다. 보통 몇십만 원의 돈을 들여 하는 굿으로, 무당 혼자 하기도 하고 법사 한 명을 더 고용하여 쓰기도 한다.
② 푸닥거리 : 신병(神病)이나, 가정불화 등을 해결하기 위해 귀신을 쫓는 굿으로, 대개 오방신장이나 작두신장(神將)등을 이용하여 살(煞)이나 액(厄) 풀고 귀신을 위협하여 쫓는다.
- (3) 큰 굿
① 나라굿 : 국가대사를 위해 나라에서 올리는 천제로 국사무당이 주관한다. 과거에 기우제를 지내거나 사직(社稷)의 안녕을 위해 천제를 지내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② 부락굿(마을굿) : 마을의 평안과 번영을 위한 굿으로 보통 서낭에서 지낸다. 서낭은 마을 입구에서 잡귀를 막아주는 신이다. 공동체의식이 살아있는 마을굿은 가장 건강한 무속의 힘을 내포하고 있다. 현존하는 무당의 마을굿은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행해진다.
③ 내림굿 : 강신무가 되기 위해 신을 받는 굿을 말한다. 그런데 신이 왔다고 아무 때나 신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적게는 몇 년에서 많게는 몇십 년을 기다려야 한다. 신이 목구멍까지 가득 차 올라올 때(신기가 절정에 이를 때) 내림굿을 해야만 제대로 통령(通靈)이 이루어진다. 강신무 특유의 의례인 신굿은 다시 입무의례와, 무당이 정기적으로 신을 대접하는 재수굿으로 나눌 수 있다. 입무의례는 흔히 내림굿이라고 부르고, 무당의 재수굿을 진적굿이라고 한다.
④ 넋굿 :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천도제를 말한다. 넋굿은 사람이 죽은 뒤 곧 하기도 하고 일 년 이상 시간이 지난 후 하는 경우도 있다. 굿의 진행은 한풀이, 죽음의 재체험, 길닦음 등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영혼에 맺힌 원한과 이생에 대한 집착의 정도에 따라, 한 번에서 많게는 수십 차례의 넋굿을 행한다. 넋굿을 지방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부른다.
경기도, 황해도 - 지노귀굿 / 평안도 - 시왕(十王)굿, 다리굿 함 / 함경도 - 망묵굿 / 경상도 - 오구굿 / 전라도 - 씻김굿 / 제주도 - 시왕맞이굿
⑤ 재수굿 : 집안의 흉화(凶禍)를 막고 길복(吉福)을 얻으려는 굿으로, 입시철이나 선거철, 또는 개업을 앞두고 하는 굿이 여기에 해당한다. 재수굿을 지방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부른다.
서울, 경기 - 천신(天神)맞이굿(정초), 꽃맞이굿(봄), 신곡(新穀)맞이굿 / 황해도 - 철무리 굿 / 전라도 - 도신
- 2. 굿의 구조
굿의 구체적인 내용은 지역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기본 구조는 대동소이한데 청신, 오신, 송신의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1) 청신(請神) : 부정(不淨)을 물리고 신을 부르는 의식으로 부정과 청배굿으로 이루어진다. 신을 청하기에 앞서 굿청과 굿을 준비한 사람들, 구경꾼 모두를 청정하게 만드는 부정굿을 한다. 부정이 가시고 나면 모든 신을 청해 굿청에 좌정시키는 굿을 한다.
(2) 오신(娛神) : 신을 모시고 한바탕 놀며 인간의 소원을 아뢰고 공수(점괘)를 듣는 의식으로 보통 '열두 마당(12거리)'의 의식이 행해진다. 무당이 무속에서 신앙하는 신들을 모셔 놀이 속에서 신과 인간의 만남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굿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보다 신과 인간이 만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무당은 춤과 노래, 제물을 공양하면서 신을 즐겁게 해 준다. 신이 가장 기뻐하는 것은 인간이 즐거워하는 모습이기에 굿은 신과 인간이 어울린 한판 놀이의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다.
(3) 송신(送神) : 신을 본래의 장소로 돌려보내는 과정으로, 다른 곳으로 천도하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 마당굿, 거리굿이라고도 부른다.
- 무(巫)란 고대 신교(神敎)의 제사를 주관한 사람으로 춤을 추거나 노래하며 접신이 되어 인간과 신을 연결하여 주는 영매를 가리킨다. 무(巫)의 기원에 관하여는 몇 가지 설이 있다.
[무(巫)란 신명을 다하여 춤추는 사람을 말한다. 무(巫) 자의 '工' 양쪽에 있는 '人'은 춤추는 모양을 취한 것이다.]
- <주자어류>
[남자를 격(覡), 여자를 무(巫)라고 하는데, '알아야 할 일을 미리 아는 사람'이란 뜻이다.]
- <설문해자>
[궁궐에서 항상 춤추며 즐겁게 노래하는 사람을 두었는데, 이것이 무(巫)의 풍토일 것이다. 소(疏)에 보면 가무(歌舞)로써 신을 섬겼기 때문에 가무가 무(巫)의 풍속이 되었다고 하였다.]
- <상서>
- 이상의 무(巫)에 대한 설명은 가무(歌舞)에 주안을 둔 해석이다. 그렇다면 무당에서 당(堂) 자가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堂)이란 칠성당, 성황당, 사신당, 국사당, 미륵당, 용왕당... 등과 같이 신을 모신 집(神堂)을 뜻한다. 그래서 무(巫) 자에 당(堂)을 붙여 무당이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가령 안방마님, 사랑채손님, 별당아씨, 방님(절방스님)... 등과 같이 주거지가 주거자의 명칭이 된 경우도 같은 맥락이다.
- 그런데 <청구영언 靑丘永言>에 수록된 작자 미상의 노래에, '덩덕쿵 치는 巫당년드리'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무당을 '巫堂'으로 쓰지 않고 '巫당'이라 한 것은 무슨 이유인가? 이 점에 대하여 러시아의 학자 트로슈찬스키(Troshchanski)는, "몽고인, 브라트인, 야쿠트인, 알타이인, 토루구트인, 키단인, 키르기즈인은 여무(女巫)를 각각 utagan, udagan, udaghan, utygan, utiugan, iduan이라 하고, 또한 타타르에서는 udege, 퉁구스에서는 utakann 이라 한다. 이처럼 우랄알타이 민족 사이에서 여무(巫)의 호칭이 일치된다는 점은 하나의 기원에서 생겨난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다."라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청구영언>에 나오는 '巫당'과 우랄알타이어의 어원적 고찰은 무당의 '당'이 한자어가 아닌 순우리말임을 뒷받침하고 있다. 부연 설명하자면, 공통된 발음인 'an'을 추적하면 이것의 원류가 ‘han'임을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han'에서 kan, dan, gan 등의 발음이 갈라져 나왔고, 'dan'에서 'dang'이 도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크다', '높다', '하늘', '합하다'의 뜻을 지닌 'han(한)'에서 '으뜸', '왕'의 뜻을 지닌 kan, dan, gan이 나왔고, 이 중 dan에서 dang이 나왔다고 볼 수 있다. dan과 dang은 한자어로 음역 되면서 단(檀)과 당(堂)으로 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무당의 근원은 하늘과 땅, 하늘님과 인간을 연결하는 단군(檀君)에 있다 할 수 있다.
- 그렇다면 무당의 무(巫) 또한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한자어가 아닌 순우리말일 가능성이 높다. 즉 'mu'의 발음을 한자어로 옮기면서 가장 적절한 뜻을 담고 있는 '巫'자를 채택한 것이다. 'mu'의 정확한 근원이 지금에 와서 무엇인지 밝힐 수는 없지만, '巫'로 번역하였다는 점을 고려하여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점에 주안을 두어 무(巫) 자의 구조를 보면, 위아래에 있는 ‘일(一)은 하늘과 땅을 말하며, 가운데의 '곤(│)'은 영육의 경계선을, 그리고 양쪽의 ‘인(人)’은 좌측은 산 사람 우측은 죽은 사람을 뜻한다. 이것을 종합하면 하늘과 땅, 즉 천지 속에서 인간(산 사람)과 신(죽은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 무(巫) 자가 뜻하는 바이다. 이런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춤과 노래가 곁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즉 '무(巫)'란 작은 의미로는 신과 접신되어 죽은 사람과 소통을 하는 것을, 큰 의미로는 도(道)를 통하여 인사(人事)에 천의(天意)를 실현하는 신인(神人)을 뜻한다. 일반적으로는 전자의 소극적 의미로 사용된다.
- 요컨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당의 자원(字源)이 우리말이며, 그 뜻에 있어서 하늘과 인간을 연결한다는 고차원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무당은 곧 단군(檀君)이며, 단군은 하늘(하늘님)과 땅을 연결하는 신인이었다. 오늘날 무당이란 용어가 많이 퇴색되었기에 어찌 보면 저속한 표현으로 느낄 수 있으나, 무당과 같은 용어로 '천자(天子)', '성자(聖子)'... 등을 들 수 있다.
- 남자무당을 지역에 따라 사내무당, 박사무당, 박수무당, 할보무당이라 하며, 간략히 박수, 박시, 박사, 박새라 한다.
국학자 이능화(1869~1943)는 그의 저서 <조선무속고>에서 다음과 같이 박수의 어원을 추측했다.
[우리말에 남자 무당을 박수(博數, paksu)라 부르는데, 이는 박사(博士) 혹은 복사(卜師)에서 와전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무서(巫書)를 보면 복사를 박사라 칭하는데 주역박사(周易博士), 다지박사(多智博士) 등이 그 일례이다.]
- 한자어에서 박수가 유래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우랄알타이계 민족에 고르게 퍼져 있는 '박수'의 명칭을 볼 때 그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가령 여진어의 bahsih, 만주어의 faksi, 고르지어의 paksi, 오로촌(Orochon)의 paktjine, 퉁구스어의 baksi, 몽고어의 baksi 또는 balsi, 그리고 터어키어의 baksi 등과 같은 남자무당을 뜻하는 말들을 살펴보면 서로 일맥상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박수가 순우리말이라고 본다면 그 뜻을 추적하기는 쉽지 않다. 무당이 어원적으로 단군과 관계있다는 점에서 볼 때, 박수 또한 '밝다'라는 뜻의 'bak'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무당의 어원적 의미는 하늘의 뜻을 대변해 주는 사람으로, 이는 다시 말해 밝음(진리)을 세상에 전해주는 사람이다. 그런즉 '밝다'라는 뜻의 'bak'에서 박수의 '박'이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 그러나 이는 무당의 속성을 바로 알지 못하여 한 말이다. 무당이 혼을 부르는 것은 거짓 없는 사실이다. 단지 무당에 내린 주장신의 높고 낮은 차이에 따라 실력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실력이 낮은 무당은 귀신과의 소통이 미흡하고, 살을 풀고 귀신을 쫓고 천도하는 등의 일에 부족함이 많아 오해받기 쉽다. 또한 실력이 있어도 그 성품이 중생구제보다는 재물을 밝혀 천대받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귀신 문제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사명감은 멀리하고, 돈과 재물에만 눈이 멀어 온갖 사술을 부리는 무당도 적지 않다. 이런 무당들 때문에 제대로 무업에 종사하는 무당들까지 천대받게 된 것이다.
- 이익은 또한 우리 민족이 귀신 섬기기를 좋아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였는데, 우리 민족은 결코 귀신을 섬기는 민족이 아니다. 우리 민족은 신의 세계를 여타 민족보다 정확히 꿰뚫고 있으며, 귀신을 능통하게 부리는 민족인 것이다. 무당은 구조적으로 저급한 귀신은 섬기지 않는다. 3천의 귀신은 결코 내림신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4천 상급의 신명 정도는 되어야 내림신이 가능하다. 무당은 적게는 4천의 신명에서 높게는 5~6천의 도통신을 받들며, 인간사에 개입하여 말썽을 일으키는 온갖 귀신을 퇴치하는 전문직 종사자인 것이다. 어쨌든 무당은 사회에 널려있는 그런 단순한 직업이 아니다. 죽은 자의 문제를 다루는 막중한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다른 직업인과 같이 돈과 재물만 앞세운다면 필히 더 크게 잃는 것이 있을 것이다. 즉 죽어서 업보와 영적퇴락으로 인해 귀신으로 전락되는 손실이 있다. 이 점을 명심하고 송공을 감동시킨 무당처럼, 나아가 천의(天意)를 대변하였던 단군처럼 진짜 무당 ...
- 집안에는 어떤 신들이 있을까?
예로부터 집안에는 각 처소마다 각기 관장하는 신이 존재하는 것으로 믿어 왔다. 가족 중에 주부가 중심이 되어 제사나 고사 등을 지내며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는데, 이를 가신신앙(家神信仰)이라고 한다. '문턱을 밟지 말라', '문지방을 베고 눕지 말라'는 금기 역시 집안과 집 밖을 가르는 경계를 신성시하는 동시에 외부의 온갖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신성한 집의 성격을 말해준다. 우선 가정의 주부들이 가신이 안주하고 있다고 상정하고 있는 곳은 안방의 조상(祖上)과 삼신, 대청에 성주, 부엌에 조왕, 장독간에 철륭, 측간에 측신(厠神), 문간에 문신, 그리고 뒤꼍과 안뜰에 터주(地神)와 업을 들 수 있다. 이외에도 안뜰에 우물이 있는 경우에는 우물신을 모시기도 하며, 일부 지역에서는 뒤꼍에 칠성(七星)을 모시는 곳도 있다. 이러한 가신들은 가시적으로 집안의 여러 물품에 빗대어 표현된다. 가령 단지, 독, 종발, 바가지, 병 등 그릇 류에 빗대거나, 경우에 따라 주머니, 조리, 한지(韓紙), 볏짚 등도 사용된다. 이 중에서도 풍요를 상징하는 단지가 가신의 보금자리로서 가장 널리 사용된다.
다음은 <규원사화>에 나오는 집안의 터주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 왜 제사 지낼 때 성주상을 따로 차릴까?
성주는 집안의 여러 신 중에서 가장 높은 어른 신으로서 집안의 평안과 부귀를 관장하는 신으로 믿어져 왔다. 가족 중에서도 특히 가장이 되는 대주(垈主)를 보살펴 주는 신으로도 알고 있다. 지역에 따라 성주대감이나 성주조상이라 불린다. 민간에서는 성주신을 대상으로 정초에 성주굿, 성주풀이, 안택과 고사 등을 지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10월 상달에도 안택을 하는 것으로 보아 성주신은 재복(財福), 행운(幸運)에 관계되는 신으로 보인다.
- 성주신의 내력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성주거리>를 보면 천신이 하강하여 집안에 좌정한 것으로 나온다. 그래서 혹자는 성주란 상주(上主)에서 온 말이고, 상주란 천상의 신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주신은 가가호호마다 있는 집안의 수호신을 말한다. 따라서 조상신 계열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성주는 조상신 중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신이 강림하여 집안의 길흉화복에 관여하는 가신(家神)이다.
- 이러한 성주의 신물(神物) 형태는 대체로 백지, 성주단지, 성주동이 등으로 나타난다. 백지 형태는 백지에 실과 돈을 넣고 접어서 청수(淸水) 혹은 탁주(濁酒)로 적시어 둥글게 뭉친 다음 대청의 대들보 밑이나 안방의 방문 윗벽에 붙이는 경우와 백지를 장방형으로 길게 접어서 역시 대청의 대들보에 걸어 두는 경우가 있다. 성주단지의 형태는 주로 안방 윗목 구석 위에 나무판자로 선반을 맨 후, 그 위에다 작은 단지에 쌀을 가득 넣어 백지로 봉하고 무명실로 동여매어 얹어놓은 것이다. 성주동이 역시 큰 항아리에 쌀을 가득 담아 뚜껑을 덮어서 대청의 한 구석에 모셔두는데, 여기에 담는 성주 쌀은 햅쌀로 매년 갈아 넣는다. 이 외에도 대들보에 잎담배를 말아서 붙이는 경우도 있고 쌀을 담은 주머니를 매어 놓은 경우도 있다. 성주에 대한 제사의 형태는 가옥을 신축했거나 이사를 하여 새 집에 들어가서 음식을 차리고 고사 형식으로 지내거나, 크게는 무당을 불러 성주굿을 하기도 한다.
- 구렁이가 집안에 복을 불러올까?
업신(業神)은 한 마디로 복신(福神)이다. 집안의 살림을 늘어나게 하고 복을 내려주는 신이다. 이는 구렁이나 두꺼비, 족제비, 또는 개 등의 동물로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그 집안의 가족 중 한 사람이 업을 지니게 되는 것으로도 믿는다. 예를 들면 그 집안에 한 자녀가 출생하면서부터 살림이 불어나고 가운이 일어나거나, 며느리를 새로 맞이하여 온 후부터 집안이 일어나는 경우, 그 사람에게 업이 들었다고 말한다. 이것을 인업(人業)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체로는 '업구렁이'라고 하여 구렁이를 업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 업구렁이는 집안의 깊은 곳, 특히 광속의 한구석에 있으면서 살림을 늘게 해 주고 집을 지켜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 집안에서 큰 구렁이가 나가면 가운이 다 된 것으로 생각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 집을 비워두고 이사를 하기도 한다. 예로부터 큰 구렁이가 집안에 나타나 눈에 띄게 되면 머리카락을 태운다든가 고추씨를 태워 구렁이가 다시 들어가게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이다. 실제로 필자가 어릴 때 집 주위와 텃밭, 담장 등에서 지게 작대기만한 구렁이를 자주 목격했는데, 집안의 안녕을 지켜주고 복을 주는 구렁이라 하여 다시 들어가게 보살펴주고 절대 잡지 않았다.
- 다음은 16세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업신에 관한 내용이다.
[봄가을로 남녀의 무리가 광양당 차귀당에 모여 술과 고기를 마련, 신에게 제례를 올린다. 또 그곳에는 뱀과 독사 그리고 지네가 많으며, 만일 회색 뱀이 나오면 차귀신이라고 여겨 죽이지 않는다.]
또한 집안에 따라서는 두꺼비를 업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전설에 보면 주인과 함께 살아온 두꺼비가 집안에 침입한 큰 독 지네와 싸워서 지네를 죽여 주인을 구하고 두꺼비가 대신 죽는 이야기가 있다. 근래에도 시골 농가에서는 장독간 근처에 살고 있는 두꺼비에게 밥을 먹여 키운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을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업신 신앙에서 비롯된 경우라 할 것이다.
- 새집에 이사 와서 운이 트이려면 어떻게 할까?
지신(地神)은 한 가옥의 터나 한 마을, 나아가 한 지역이나 한나라의 땅을 관장하고 있는 신으로 믿어 왔다. 이중에서도 가신으로서 한 가옥의 집터를 담당하고 있는 지신은 ‘터주’ 또는 ‘터주 대감’으로 불리는데, 가정의 주부는 이 터주에게 일 년의 명절 때나 집 안에서 고사, 큰 굿 등을 할 때에 터주상을 차려서 받든다. 흔히들 집터가 세다고 말하는 것은 터주가 강하고 노하기를 잘한다는 의미이다. 집안의 땅을 함부로 파서 공사를 하거나 하면 터주가 노하여 재앙을 받게 된다고 하는데 이것을 '동티(動土)'라 한다. 동티가 났을 때에는 재앙을 면하기 위하여 고사를 지내고, 평상시에도 가끔 터주를 위해 고사를 지내거나 간단히 떡시루를 해서 올리기도 한다. 집주인이 바뀌어 새로 이사하는 사람은 아예 이사를 하자마자 터를 누르기 위해 고사를 지내기도 한다. 남부지방 일대에서는 정초에 지신밟기를 하는데 이것 역시 땅을 담당하고 있는 여러 신을 위로하는 행사로서, 주로 집안에 자리 잡고 있는 우물터, 곳간터, 마구간터, 장독터 등 여러 신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새해를 맞이해서 정초에 지신을 위안함으로써 태평을 누리고 한 해 동안 평안하게 지내기 위함에서이다. 지신밟기를 할 때에는 좋은 날을 택하여 농악대를 앞세워 ...
- 옛사람들은 왜 마을 입구에 장승을 세운 것일까?
나라마다 그 나라를 단적으로 상징하는 풍경물이 있게 마련이다. 일본의 상징은 후지산이고, 네팔의 상징은 설남(雪男)이고, 스코틀랜드의 상징은 가죽나팔 부는 나팔수이고, 네덜란드의 상징은 커다란 풍차이다. 우리나라는 노래로 친다면 아리랑이고, 유형의 물건으로 친다면 단연코 장승을 꼽을 수 있다. 이렇게 우리 민족의 전통 숨결이 물씬 배인 장승이 외래종교의 핍박을 받아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장승 중의 장승이며, 팔도 장승중의 우두머리인 서울 장승백이의 장승마저 그 모습을 보기 어려우니 말이다. 굴러온 돌에 의해 박힌 돌이 빠진 형국인 것이다. 30여 년 전쯤에 충북 청원의 새뜸이 마을에서 그 지역에 5백 년 동안 내려온 장승제를 마지막으로 지낸 일이 있었다. 대청댐에 의해 수몰되기 때문이다. 그 이후는 장승제를 보기가 어려워졌다.
- 장승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중 하나를 보면, 옛날 어느 한 임금이 김 대감과 장대감의 앞날을 내어 다보는 식견을 시험코자 질문을 했다. 친 오누이를 깊은 산속에 가두어 살게 하면 피가 섞이겠는지, 아니면 오누이의 법도를 지키겠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김 대감은 천지음양의 진리를 앞세워 피가 섞인다고 내다보았고, 장대감은 인간이 그같이 금수 같을 수는 없다고 인륜을 내세웠다. 임금은 이를 확인코자 실제로 오누이를 격리시킨 다음 몇 년 후 찾아가 보게 했더니 아들 딸 낳고 화기애애하게 살고 있더라는 것이다. 김 대감이 등용되고 장대감은 버림받아 초야에서 살다 한을 품고 죽었다. 이 장대감의 한을 달래주고자 장승이 탄생했다는 얘기이다.
- 그러나 장승은 한낱 한을 풀어주고자 생긴 것으로 보여지지는 않는다. 농경사회의 기본 취락 단위인 촌락 공동체의 지경신앙으로 마을 입구에서 병이나, 흉 등 불행한 요소를 막아주는 정신적 수문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오래 묵은 장승에는 신령스런 기운이 감돌고 있다. 지역이나 터를 지키는 수호신이 기거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간혹 잡령이 빙의되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제대로 절차를 갖추어 세운다면 그럴 염려는 없다. 아무튼 마을이나 가택의 수호신으로서 장승을 세우는 일은 적극 장려할 만한 미풍양속일 것이다.
- 용이란 동양권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신령스런 동물이다. 다른 어떤 상징물보다도 용은 조화와 신비가 감도는 신태(神態)로 말미암아 사람들로부터 많은 경외와 존경을 받아왔다. 수천 년 동안 동양에서는 가뭄을 당했을 때는 으레 용을 향해 비를 기원했으며, 수재나 화재로부터 교량이나 가옥의 안전한 보존을 위하여 건축물에 용을 장식하곤 했다. 남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용봉정상(龍鳳呈祥)이라 하고, 자식의 출세를 소망하는 부모의 간절한 뜻을 망자성룡(望成龍)이라 하는데, 이런 글귀에서도 용이 상징하는 바를 조금은 엿볼 수 있다.
- ["쫓더라도 물러나지 마시고, 막대기로 때리더라도 물러나지 마시고 성심으로 빌면 무슨 방도가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북창의 말대로 남산에 가보니 과연 두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었다. 곧바로 그 앞에 엎드려 울면서 아들의 수명을 빌었다. 두 사람은 놀라 말했다.
"우리가 어찌 공의 아들의 명이 길고 짧음을 알겠소? 어서 돌아가시오."
아버지는 듣지 않고 막무가내로 애걸하니, 옆에 있던 사람이 노하여, "이 사람 정말 미쳤군"하면서 막대기로 매섭게 때렸다. 그래도 조금도 꼼짝 않고 엎드려 빌었다. 얼마 후에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웃으면서, “이는 틀림없이 북창이 가르쳐 준 것입니다. 북창의 수명을 10년 감하여 이 사람의 아들에게 보태 주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하니 검은 옷을 입은 사람도 좋다고 하였다. 조금 있다가 검은 옷을 입은 중이 소매 속에서 단자를 꺼내어 붉은 옷을 입은 사람에게 주니,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은 붓을 들어 거기에 글자를 쓰고, "공의 아들은 지금부터 10년을 더 살 것이오. 돌아가 북창을 만나거든 다시는 천기를 누설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전해 주시오"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은 남두성군(南斗星君)이시고, 검은 옷을 입은 분은 북두성군(北斗星君)이였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가자 아들의 병은 나았는데,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후에 죽었다. 북창은 30여 세에 죽었다.]
- <계서야담>
- 그렇다면 실제로 수명이 칠성신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가?
북두칠성 | 도교의 명칭 | 무속의 명칭 |
제1천추성 | 천추 | 탐랑 |
제2천선성 | 천선 | 거문 |
제3천기성 | 천기 | 녹존 |
제4천권성 | 천권 | 문곡 |
제5옥형성 | 천형 | 염정 |
제6개양성 | 개양 | 무곡 |
제7요광성 | 요광 | 파군 |
- 오방신장은 무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오방신장이란 무속에서 신내림을 한 무당의 경우 필수적으로 따라붙는 신장이다. 다시 말해 무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오방신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업이란 대개가 귀신과 소통하고 잡귀를 떼어 복락을 얻게 하는 일이다. 그러다 보면 온갖 잡신과 부딪쳐야 하고, 여기서 나쁜 살이나 액운을 무당이 받게끔 마련이다. 이런 액살을 사방에서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신이 바로 오방신장이다. 또한 잡신을 포위하여 도망가는 것을 차단하고 위협하여 공포심을 조장하는 역할도 한다. 대개 신계는 공간이 무수히 겹쳐 있어서 숨어 있는 잡신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방어와 수색에 능한 오방신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 오방신장은 중앙을 맡고 있는 황궁신장(黃帝)과 동방을 맡고 있는 청궁신장(靑帝), 서방을 맡고 있는 백궁신장(白帝), 북방을 맡고 있는 흑궁신장(黑帝), 남방을 맡고 있는 적궁신장(赤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조상계열의 신명들 중 방위에 능통한 무관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무당이 모시는 오방신장은 저마다 모두 다른 신명들인 것이다. 그 외의 무속의 신으로 조상신들을 관리하는 우두머리 격인 불사대신, 작두로써 악귀를 혼내주는 작두신장, 별상 등의 신들이 있다.
- 신통력의 일인자는 누구일까?
무속이나 수행자들 사이에 관심이 많은 분야가 신통력이다. 신통력 하면 떠오르는 신이 있다. 바로 영보독성이다. 영보독성(靈寶獨聖)은 흔히 '독성'이라 부르는데, 온 우주에서 신통력의 대가로 이름이 나 있다. 천단(天團)을 왕래하며 경계를 짜고 운용을 만드는 묘술(妙術)에 능통하다. 태을천이라는 머나먼 행성에서 출생하였고, 광과천에서 아리수(我裏收) 수련으로 영선(永仙)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 후 우주 전역을 떠돌면서 상계(象界/神界)의 이법(理法)을 연구하였고, 특히 형계(形界/물질계)의 공막(空膜)을 걷어내어 소통을 이루는 신통력에 뛰어난 재주를 지녔다. 지구를 중심으로 한 도솔천에 건너와서 석가세존의 제자가 되니, 이때 불린 이름이 나반존자이다. 세존의 가르침에 힘입어 영력(靈力)이 8천의 궁극으로 한 단계 상승하게 되었고, 이 인연을 계기로 도솔천의 공무(公務), 즉 중생들의 영혼을 밝혀 수행의 결실을 앞당기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민간에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 '보살'을 찾듯이 영보독성을 찾게 되었고, 특히 수행자들 가운데 신통의 문을 열기 위해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 이런 용모로 인해 훗날 미타천단이 완전히 통일되었을 때 천존신장을 스스로 거부하고 호법신장으로 남기를 자처했던 것이다. 온 우주에서 완력이 가장 세기로 유명하다.
- 태을신장은 태을천(太乙天)을 수호하는 신장으로서 순간이동에 능통하고 엄청난 빛을 뿜어내어 상대의 시선을 무력화시킨다. 엄청난 속도로 적진을 누비며 태을검을 휘둘러 단칼에 베어 물리치는 무적의 신장이다. 원래 한 분이었는데 훗날 그 술법을 익힌 신장이 생겨나면서 모두 일곱 분이 있다. 태을천에 두 분이 있고, 옥황에 다섯 분이 있는데, 구천현모의 직속으로 되어 있다.
- 팔문신장은 구궁팔풍(九宮八風)의 묘리에 달통하여 초공간을 개통하거나 팔진(八陣)을 펼쳐 적신(敵神)을 물리치는 8명으로 구성된 신장을 총칭하여 말한다. 초기에는 한조(組/8위)만 있었지만 이 분들을 본받아 각 행성마다 생겨나게 되었다. 지구를 중심으로 한 도솔천에는 팔문에 속할 만한 신장이 없어 아직 조직되지는 않았다. 옥황의 구천현모 직속으로 36조(組)의 팔문신장이 있고, 태을천에 모두 21조의 팔문신장이 있다. 미타천에 10조가 있고, 광과천에 8조 그리고 도리천에 5조가 있다.
- 옥추신장은 천상대전 중에 적장(敵將)을 암살하기 위하여 양성한 살기(殺氣)가 등등한 자객신장이다. 옥상원성과 태을원군에 의해 삼계(三界)가 평정되면서 그 기능이 점차 상실하게 되었지만, 원대광불께서 서신(西神)의 사명을 맡아 개벽을 주재하시면서 등용하여 쓰게 되었다. 온갖 암기에 능통하여 그 실력이 결코 태을신장에 뒤지지 않으며, 교묘하게 팔문(八門)의 진법(陣法)도 잘 빠져나간다. 옥추신장은 모두 3위가 있는데, 모두 도리천의 원대광불 휘하에 속해 있다.
- 백마신장은 항마신장으로 불리는데, 정각불(精覺佛)께서 광과천단을 개척하실 때에 활용한 천상의 군대이다. 백마신장 가운데 최고의 수장은 대세지(大勢至)인데, 광과천이 평정되면서 보살의 경지에 올라 정각불을 보좌하고 있다. 대세지 휘하에 있던 36위의 백마신장은 각 천단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곳 도솔천으로도 1위의 백마신장이 건너왔는데, 불법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대세지보살은 보살의 대자대비(大慈大悲)보다는 아직도 무신(武神)의 성품이 남아 항마보살로 그 이름을 떨치고 있다.
- 둔갑신장은 기문신장을 일컫는데, 기운의 운용에 달통하여 적진의 시야를 흐리어 전열을 흐트러지게 하거나 진법(陳法)을 펼쳐 공간에 묶어 놓는 기술에 뛰어나다. 초기의 천상대전에서는 큰 활약을 했는데, 이후에 팔문신장이 등장하면서 뒤쳐지게 되었다. 현재 둔갑 계열의 신(神)들은 종교신들 밑으로 들어가 신도(信徒)들을 홀려 모으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대개 신도들로 하여금 요상한 꿈을 꾸거나 신명(神明)을 체험하게 하여 맹목적 신앙을 부추긴다. 도솔천에는 세 명의 기문둔갑 신장이 있는데 이들은 초기 천상대전 때에 태소천군 밑에서 활동했던 수백 명의 기문신장 가운데 살아남아 기문의 대가를 이룩한 신장들이다.
- 십이신장은 둔갑 계열의 신들이 인간이 설정한 십이지지(十二地支)의 파장에 맞추어 동물의 형상으로 둔갑을 하여 존속하게 된 신장을 말한다. 과거에는 인지도 높고 나름대로 활약도 많이 했는데, 과학기술 문명이 발달하면서 세인들에게 점점 잊혀 ...
- 그러나 무조건 물리적으로 자극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이곳의 변화를 영적으로 끌어낼 근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대상을 물색함에 타고난 근기와 영적 수준을 살폈고,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비밀리에 전수하여 왔다. '제3의 눈'을 달리 영안(靈眼)이라 하는데, 이것을 얻기 위해서는 주로 네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가 티벳불교와 같이 물리적으로 송과선을 자극하여 여는 것이다. 그러나 부작용이 심하여 근기를 타고난 극소수에만 적용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둘째, 신을 이용하여 영안을 여는 방법이 있다. 신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이런 방법으로 영안을 열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접신이나 빙의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외도(外道)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셋째, 육경신(六庚申) 수련을 통하여 영안을 여는 방법이 있다. 중국의 선도를 보면 삼시(三尸)라는 괴상한 벌레가 등장하는데, 삼시는 상시(上尸), 중시(中尸), 하시(下尸)로 구성되어 있다.
- 상시는 이름을 팽거라고 하며, 사람의 머리 속에서 상단전(上丹田, 송과선 부위)을 자극해 머리를 무겁게 하고, 콧물을 흘리게 하고, 귀를 멀게 하고, 이가 빠지게 하고, 입에서 악취가 나게 하고, 얼굴에 주름살이 잡히게 한다. 그리고 향락, 성교, 번뇌망상 등을 조장하여 노화를 촉진시킨다고 한다.
중시는 이름을 팽질이라 하는데, 미미(美味), 미혹(迷惑), 색채(色彩) 등에 민감하게 한다고 한다. 중시는 흉선이라는 호르몬 계통이 있는 배꼽 부위에 거하며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건망증을 조장하고, 체액을 누출시켜 정기를 잃게 한다. 소갈(당뇨병), 유정(遺精), 구토, 식은땀, 가래, 악몽 등은 모두 이것이 조장한다고 한다.
하시는 팽교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하단전에 거하며 색을 탐하고 정기를 좀먹는다고 한다. 이것에 의해 신장이나 생식기 계통의 질병이 발생하며 인간이 되도록 빨리 죽게 만든다고 한다.
이들 삼시는 육십일에 한 번 오는 경신 날만은 잠을 자지 않고 몸에서 빠져나가 하늘로 올라간다고 한다. 그리고 천관(天官)에게 자신들이 거하고 있는 사람의 죄상을 낱낱이 고한다. 그래서 경신 날 잠을 자지 않으면 이를 방지할 수 있다 하여 고래로 적잖은 사람들이 경신통을 시도해 왔다. 바르게 살 생각은 않고 삼시가 죄를 고하는 것에만 미련을 두는 자체가 어찌 보면 우스꽝스럽게만 보인다. 어쨌든 이상의 삼시에 관한 얘기는 말쟁이들이 꾸며낸 허황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 경신은 원래 천상신장 중의 하나로 성질이 과묵하나 한 번 동하면 그 기세가 칼날 같고 송곳 같은 예리함이 있다. 그래서 경신신장과 5초를 넘게 대면하면 그 예리한 기세에 의해 막혔던 영안이 뚫려 영통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한 번 영안이 열리게 되면 웬만해서는 닫혀지지 않는다. 저급신과의 접신이나 빙의가 아닌 천신과의 대면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특별한 부작용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많은 수련자들이 육경신통을 선호하여 온 것이다. 그런데 세간에는 여섯 번의 경신일 날 무조건 잠만 자지 않으면 성공하는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장대로 서로의 발등을 찍으며 잠을 피하고, 어떤 이들은 도박을 해 가며 잠을 잊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무근의 헛수고이다.
- 경신신장이 감응하는 경신일을 잡아 하루 동안 정신을 잃지 않고 수련에 전념해야 하는 것이다. 우선, <경신신장내감지위 庚申神將來感之位>라 써 붙이고 그 앞에 청수 한 그릇을 바친다. 그리고 경신신장을 정신 집중하여 찾는다. 이 수련의 특징은 잠을 자서는 안 되는 것이나 더욱 중요한 것은 정신을 놓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지극 정성으로 임하면 육경신이 되기 전에도 경신통이 열릴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단 한 번의 경신일 수련에서 경신통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그런즉 무조건 잠을 안자며 육경신을 채우려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주어진 경신일에 얼마만큼 정신 집중하여 수련에 임하느냐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 할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술 한 잔을 준비하는 것이다. 경신통이 이루어졌을 때 경신신장이 눈앞을 스치게 될 것이다. 이때 그냥 보고만 있으면 바로 사라지고 만다. 이렇게 되면 순간의 영통이지 계속해서 열어진 것이 아니다. 그때 술 한잔을 재빨리 올려 경신신장과의 대면 시간을 늘려야 한다. 대략 5초만 연장하면 두개골 속의 송과선이 완전히 열려 영통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육경신통의 열쇠이다.
- 네 번째로 기를 돌려 영안을 여는 방법이 있다. 단 기존과 같이 단도태를 중심으로 한 단전호흡으로는 불가능하며, 오직 쌍도태로 이루어진 수인선법만이 가능하다. 쌍도태의 기운을 돌려 소주천(小周天)을 이룬 후, 다시 대주천(大周天)을 향해 기맥을 뚫는 과정상에 영안이 열리게 된다. 옥침혈(玉針穴)을 뚫어 소주천을 이루고, 다시 상단전에 고인 기를 발동시키면 저절로 막힌 혈을 찾아 움직이는데, 이때 안구 속으로 파고드는 기운이 있다. 이것이 영안을 여는 혈이다. 기가 자동(自動)할 때 통증을 느끼기도 하나 혈맥이 아닌 기맥을 건드리는 것인 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눈 속의 미세한 혈을 뚫게 되면 연이어 양 미간의 인당을 뚫게 된다. 이때 눈앞에 화면이 펼쳐지는데 이 단계가 가장 주의해야 할 시기이다. 이때 타령이 침범하는 수가 종종 있으므로 처음에 펼쳐지는 화면에 넋을 잃고 끌려가서는 안 된다. 그저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며 계속해서 원활해지도록 기맥을 뚫는다. 완전히 뚫어지면 이곳을 통하여 영육경계선을 넘나드는 작업을 한다. 이 작업을 '현영(現靈)'이라 하며, 음률을 이용하거나 선정(禪靜)에 몰입하여 영을 연다.
- 이와 같이 '제3의 눈'인 영안을 여는 방법에는 크게 네 가지가 있다. 이 중 첫 번째의 송과선을 자극하는 방법은 부작용도 많고 또한 극소수만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접신이나 빙의에 의한 방법은 더욱 몰가치하다. 따라서 네 번째인 운기(運氣)에 의한 방법이 가장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주로 하고 경우에 따라 육경신통을 가미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더 일러둘 것은 영안을 여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사도 복잡하여 감당하기 어려운데 귀신사까지 관여하게 되면 영육의 경계에서 우왕좌왕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즉 신통(영통)은 자신의 행보에 꼭 필요한 사람만 시도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 이렇게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둔갑이란 본인의 모습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둔갑신을 이용하여 상대방의 눈을 돌려놓는 것을 말한다.
둔갑술의 귀재를 최근에 찾는다면 4차원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가진 울프. G. 메싱이다. 그는 1899년 9월 10일 러시아의 바르샤바에 가까운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그는 러시아인이 아니라 유태계의 폴란드인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타고난 초능력을 발휘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런데 종교나 신비주의를 지극히 혐오하던 스탈린이 메싱의 초능력을 허구로 증명하기 위해 그로 하여금 3일 내에 크레믈린 궁전 깊은 곳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올 것을 명령하였다. 그러면 초능력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크레믈린 궁전 안을 통과하여 스탈린의 방에 잠입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수천 명의 비밀경찰이 밤낮으로 지키고 있으며, 조금이라도 수상하면 그 자리에서 총살해 버린다. 그러나 메싱은 아랑곳하지 않고 크레믈린 궁전으로 발길을 옮겼다. 경비원이 다가오면 그는 “나는 베리아다, 나는 베리아야.”하고 되풀이하면서 점점 안으로 전진하였다. 베리아라면 비밀경찰 장관으로서 스탈린의 핵심 측근 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사실 베리아와 메싱의 인상은 완전히 딴판이다. 그럼에도 그를 보는 모든 경비들은 베리아로 보고 통과를 허용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메싱은 스탈린의 집무실로 여유 있게 들어왔다. 그를 본 스탈린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메싱의 초능력을 인정함과 아울러 상으로 소련 내의 모든 지역에서 그의 안위를 보장해 주었다.
- 그런데 그 후로 절친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점점 나빠져 발길이 끊기게 되었다. 해월선생 본인도 믿던 사람의 마음에서 엉뚱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느껴보니 좋을 리가 없었으며, 상대방도 해월선생이 자신의 마음을 꿰뚫고 있다는 생각에 대면하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니 사람 관계가 좋아질 수가 없는 것이다. 일반 중생들은 본심은 그렇지 않더라도 가끔씩 번뇌나 망상이 일어나는 것인데, 이런 불순한 생각을 느꼈을 때 본심이 아님을 알지라도 마음이 편할 리가 없는 것이다. 해월선생은 이런 일이 있은 후, 타심통을 얻지 않은 것만 못하였다고 절실히 후회하였다고 한다. 물론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기 위해 만들어진 일화일 것이다. 어쨌든 타심통이란 너와 나의 구별이 소멸되어 우리로 승화될 때 비로소 우러나오는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의 참된 경지라 할 것이다.
- 부적(符籍)은 붙이면 효험이 있을까?
부적이란 악귀나 잡신의 침범을 막고 행운이나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어지는 주술적 도구를 말한다. 부적에는 한지에 경면주사를 찍어 글자나 형상을 그려 만든 것과, 어떤 도구나 물건에 주술적 의미를 부여한 것의 두 종류가 있다. 이를 구별하여 전자를 부적이라 부르고 후자를 부작(符作)이라 부른다. 부작은 글자나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부적에 비하면 그 역사가 훨씬 오래된 것이다. 그러나 점점 시대가 발전하면서 부작보다는 부적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자의(字意)적으로는 부작 속에 부적이 포함되지만 부적의 상용화와 함께 부작과 부적의 구분이 모호해졌고, 결국 주술적 도구를 대표하는 명칭으로 부적이 채택되어 사용하게 되었다. 부적의 기원은 선사시대부터 자생적으로 비롯된 것이지만 문헌에서 찾아본다면 '처용부'를 그 일례로 들을 수 있다. '처용부’는 역신을 막는 부적으로 신라 시대에 민간에 유행하였던 것으로 부적의 실례를 잘 보여주고 있다.
- 음식을 적게 먹으면 오래 살까?
도연명(陶淵明)의 무릉도원을 티베트에서는 샹글리라라고 한다. 샹글리라가 위치한 곳은 세계의 지붕이라는 티베트 히말라야 산속이라 한다. 요즘은 레스토랑이나 호텔의 이름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일전에 로이터 통신에 의하면 바로 그 티베트 오지에 전설 속의 샹글리라와 유사한 마을이 소개되었는데, 2차 대전 초인 1942년 이래 50여 년 동안 이 산마을에서 죽어나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고령자가 1백42세나 되고, 1백30세 이상의 노인만도 1백88명이나 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은 다름 아닌 소식이라 한다. 1일 1식 내지 많으면 2식 정도의 소량만을 취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세상은 소식과 장수의 관련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더군다나 국내에서는 다석 유영모 선생이 1일 1식을 권장하자 더욱 그러하였다.
- 그렇다면 식사의 양과 장수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식사란 마치 석탄을 태우며 달리는 증기 기관에 비유할 수 있다. 석탄을 많이 태우면 속도도 빨라지고 그만큼 목적지에 빨리 다다르게 된다. 마찬가지로 음식을 많이 먹게 되면 그만큼 인체의 노화가 빨라지고 결국 수명이 단축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음식을 너무 적게 취하면 인체의 기능이 떨어져서 다른 질병에 걸릴 수도 있게 된다. 따라서 적당히 음식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에 비타민이 만병통치약이라고 소문이 나서 약국에 비타민이 바닥이 난 일이 있었다. 비타민이란 다름이 아니라 인체의 불을 끄는 소방수와 같은 기능을 한다. 한의학적으로는 상화(相火)라 하며, 과잉 식사에 의한 과다한 열량을 조절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 결론적으로 1일 1식은 일반인으로서는 너무 적고, 1일 2식은 사람에 따라 적당한 사람들이 30% 정도 된다. 그리고 나머지 70%의 사람들은 1일 3식을 그대로 유지하되 식사량을 배가 너무 부르지 않게 먹는 것에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좋은 방법은 기공수련을 하여 음식의 기운 외에도 허공의 기를 모으고, 이렇게 함으로써 저절로 음식량이 줄어들게 하는 것이다. 억지로 식사를 줄이는 것보다 수련을 통해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 다시 말해 변경 가능한 운명이지만 본인이 정신 차리지 않으면 부지불식 중 어떤 흐름에 휘말려 운명의 객체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강 위에 배를 띄워 놓고 노를 젓지 않을 때 물이 흐르는 대로 떠내려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렇게 본다면 운명이 결정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본인이 물의 흐름에 휘말리는 것을 방관하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운명을 직시하고 주체가 되어 노를 저어 나가지 않고, 그냥 '되는대로, 닥치는 대로' 하는 안이한 태도로써 처신하였기 때문인 것이다. 이런 식의 인간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운명은 숙명이다’, ‘결정적이다'라는 말들이 대두하게 된 것이다.
- <명심보감>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萬事分已定 浮生空自忙 만사분이정 부생공자망]
만사가 이미 정해져 있거늘 운명의 흐름에 떠 있는 중생들이 공연히 바빠만 하고 있구나.
- 사실상 이와 같이 만사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신 차리지 못한 대다수의 중생들을 기준으로 할 때는 운명이 결정적으로 보이는 것이라 이런 말이 나온 것이다. 운명의 주체가 되느냐 아니면 객체가 되느냐 하는 것은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잣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