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우케쓰] 이상한 집 2: 11개의 평면도

일루젼 2025. 7. 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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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우케쓰 / 김은모
출판 : 리드비
출간 : 2025.02.26


       

           

얼음 넣은 땡모반 한 잔과 시원한 에어컨 바람.

흐릿했던 정신이 조금 돌아오는 것 같다.

 

최근 읽었던 목록을 살펴보다 근 두 달간은 가벼운 책이나 기괴담 류에 완전히 쏠려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여름 기분에 취했던 건지, 다시 책테기가 찾아온 건지. 

 

우선은 조금 더 쉬고, 찬 바람이 불 때쯤부터 조금씩 각을 잡아볼까 싶다.

왜냐하면 이미 밀린 리뷰만 몇십 개가 쌓여있기 때문이다. ... 열심히 읽을수록 더 빠르게 쌓이겠지...

(겨울에 읽었던 책들 리뷰도 아직까지 쌓여있다)

 

우케쓰의 <이상한 집 2>는 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이상한 집>과 연결되는 시리즈다. 

하지만 '필자'라고 표기되는 화자와 추리를 도와주는 '구리하라' 외에는 지난 편과 겹치는 등장인물은 없으므로, 특이한 구조의 '집' 이야기라는 점이 겹칠 뿐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1권을 읽지 않고 읽더라도 별 문제는 없을 듯하다. 

 

총 11개의 특이한 집 구조도와 그에 얽힌 이야기가 나오는데, 각각의 이야기들이 하나로 이어지며 '비밀'이 드러난다. 

개인적으로는 각각의 이야기로 남겨 놓았어도 충분히 재미있었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조금 억지스럽다 싶은 부분도 '신앙'과 연결 지으면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여지가 생기니까.

 

겉으로 드러난 중심 키워드는 '집'이지만, 드러나지 않게 모든 이야기를 이어주는 키워드는 '불륜'이다.

이상한 집, 이상한 가정, 그리고 불륜.

이렇게 놓고 보면 일견 당연하게 보이는 흐름을 '기이하게' 엮어놓은 단편인 척하는 장편. 

 

여름날에 가볍게 읽기 괜찮은 책이었다.

단, 본격 추리나 스릴러를 좋아하는 편이라면 글쎄. 

서술 트릭이나 머리를 비우고 읽는 걸 선호하는 편이라면 즐거울 수도.      

 

 

   


   

 

    

2년 전, <이상한 집>이라는 책을 썼다.
기묘한 평면도 한 장을 바탕으로 그 집이 지어진 이유, 그리고 거기서 일어난 무서운 일을 설계사 지인과 함께 조사한 다큐멘터리 소설이다.

 

- 고맙게도 <이상한 집>은 반향을 불러일으켜 많은 분이 읽어 주셨다. 그리고 '집'에 관련된 많은 정보를 내게 보내주셨다.
"책 읽었습니다. 실은 우리 집도 구조가 이상해요."
"옛날에 할머니 댁에 놀러 갔을 때, 아무도 없는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어요."
"예전에 묵었던 민박집에서 으스스한 기둥을 봤습니다."
'이상한 집'이 전국에 상상 이상으로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자, 그러한 '이상한 집'들 중 열한 채에 관해 조사한 자료를 이 책에 수록했다.
얼핏 보기에는 자료들이 서로 무관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의 깊게 읽으면 한 가지 접점이 떠오를 것이다.
꼭 추리하면서 읽어 보기 바란다.

 


 


- 네기시 : 어린 시절에 제가 살았던 집은 도야마현 다카오카 시의 주택가에 있는 1층짜리 단독주택이었어요.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만 이상하다고... 어렸을 적부터 의문을 느꼈죠.
네기시 씨는 도면 속 한 곳을 가리켰다.
네기시 : 이 복도, 필요 없어 보이지 않으세요?

- 어머니는 딸을 어떻게 사랑하면 좋을지 몰랐던 것 아닐까.
세상에는 '자녀를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부모'가 존재한다. 그들은 진지하다. 너무 진지한 나머지 '부모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과도한 자의식에 빠져 온 힘을 다해 아이를 지키려 한다. 하지만 그 긴장감이 아이에게 전달돼 서로 소통이 어려워진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초조함과 짜증을 느낀 부모는 아이를 피하게 된다. '부모'라는 역할에서 비롯된 압박감이 '과보호'와 '거절'이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나 아이를 괴롭힌다.

그렇다면... 나는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 필자 : 네기시 씨, 방금 해 주신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봤는데요. 이 복도는 어머님이 만들자고 제안하신 것 아닐까요?

 

- <갈 곳 없는 복도>

 

- '특수 청소부'라는 말이 있다. 고독사나 사고사가 일어난 방을 청소하는 직업이다.
보통은 사람이 사망하면 가족이나 지인이 장례식을 치르고, 고인은 며칠 안에 화장된다. 하지만 일가친지가 없는 사람이 자택에서 사망하면 몇 주일, 길게는 몇 달이나 발견되지 않고 방치되므로 시신은 부패하고 바닥에는 얼룩이 번진다.
그렇듯 방에 들러붙은 '죽음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그들의 업무다.

- 이번 취재 대상인 이무라 다쓰유키 씨는 10년 가까이 특수청소부로서 일해 온 남성이다.
원래는 건축 현장에서 목수로 일했지만 사십 대 중반이 지났을 무렵에 이 일로 전직했다고 한다.


- 이무라 : 뭐, 체력에 한계가 온 거지. 삼십 대까지는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술 한잔하고 퍼질러 자면 다음 날에는 거뜬해졌는데, 사십 대에 들어서니까 남더라고, 전날의 피로가.

- 이무라 : 이게 일가가 살았던 집이야.

필자 : 어? 어떻게 구하셨어요?

이무라 : 이딴 거야 인터넷에 얼마든지 굴러다니지. 적당한 걸 찾아서 출격했어.

- 이상하다.

온갖 사이트에 들어가서 조사했지만 쓰하라네의 평면도는 구하지 못했다. 그러나 실제로 집에 들어가 본 이무라 씨가 하는 말이니 진짜이리라. 내 검색 실력이 부족했던 걸까.

- 이무라 : 그나저나 집이 너무 별로야 그런 집에 오래 살면 정신이 이상해질 법도 해. 그만큼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집이지.
필자 :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이무라 : 이 그림을 보고도 모르겠어?
필자 : 죄송합니다. 제 눈에는 평범한 단독주택으로 보이는데요...
이무라 : 그럼 이 집 사람이 된 셈 치고 한번 생각해 봐.

- 이무라 : 예를 들어 댁이 1층 거실에서 밥을 먹는다고 치자. 그러면 늘 밥맛 떨어질 것 같은 냄새가 풍겨. 무슨 원리인지 알겠어? 부엌과 욕실 같은 '수도 시설'이 북쪽에 집중돼 있어. 북쪽은 볕이 잘 안 들지. 그래서 겨울철에는 늘 물기가 마르지 않고, 여름철에는 푹푹 쪄. 덧붙여 화장실 냄새가 그런 습기에 섞여 복도를 타고 거실로 흘러들지. 거실 출입구에 문이 없으니까 냄새를 막을 수도 없어. 
필자 : 왜 거실에 문이 없을까요?
이무라 : 돈이 아까웠겠지. 조금이라도 공사비를 줄여 보자는 생각이었을 거야.

- 이무라 : 마음에 어둠을 품은 사람이 쓰하라 소년뿐만은 아니고, 이런 집도 한 채가 아니니까.
필자 : ... '한 채'가 아니라는 건...?
이무라 : 말 그대로의 의미야. 이런 집이 전국에 백 채 넘게 있거든.
필자 : 네?
이무라 : 이봐... '히쿠라 하우스'라고 들어 본 적 없어? 주부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건축 회사야. 목수들 사이에서는 '악덕 기업'으로 유명하지. 놈들은 이런 식으로 장사를 해. 일단 평면도를 제작해. 가령 30평용 평면도였다고 치자. 그럼 주부 지방 곳곳에서 30평 크기의 땅을 닥치는 대로 매입하는 거야. 그리고 도장을 찍은 것처럼 똑같은 집을 짓지. 똑같은 평면도를 돌려쓰고, 자재도 대량으로 발주하니까 비용은 싸게 먹혀. 그렇게 대량 생산한 집을 고객에게 싼값에 팔아. 이른바 '분양주택'이야. 뭐, 분양주택을 판매하지 않는 건축 회사는 없으니까 그 자체는 나쁘다고 할 수 없어. 문제는 건축의 밑그림인 평면도가 좋지 못하면, 좋지 못한 집이 대량으로 만들어진다는 거야. 이 집처럼 말이지.

- 필자 : 그럼 쓰하라 소년의 집은 히쿠라 하우스가 대량 생산한 분양주택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이무라 : 그래, 난 주부 지방에 오래 살아서 전단지를 수도 없이 많이 봤지. 평면도가 실린 전단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어. 
'신축 2층 단독주택 6LDK 1,500만 엔.'

... 이 글만 보면 어마어마하지. 단독주택의 시세는 보통 3천만 엔. 그에 비하면 반값이야. 게다가 거실 말고도 방이 여섯 개나 돼. 건축에 문외한인 사람들은 싼값에 잘 샀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실태는 이래.


- <어둠을 키우는 집>

 


- <명모 두류 일기>라는 오래된 책이 있다.
쇼와 시대 초기, 지방으로 여행 간 사람들의 추억담을 모은 기행문집이다. 1940년에 출판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절판됐다는데, 운 좋게도 어떤 사정이 있어서 입수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그 책에 수록된 <한이 지방의 추억>이라는 챕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챕터를 쓴 사람은 당시 스물한 살이었던 미즈나시 우키라는 여성이다. '미즈나시’는 일찍이 제철업에서 한자리를 맡았던 재벌 가문으로, 우키는 미즈나시 일가의 외동딸이었다.

- <한이 지방의 추억>은 우키가 숙부의 집으로 피서 갔을 때 겪었던 일을 적은 글이다. 그중 아주 으스스한 대목이 하나 있다.
우키가 근처 숲으로 산책하러 갔다가 수수께끼의 물레방앗간을 발견한다는 내용이다. 그 부분을 여기 옮겨 싣기로 했다. 
또한 원래 문장에는 옛말이 많이 사용되었으므로 현대적인 표현으로 변경했으며, 글 속의 그림은 우키의 글을 토대로 새롭게 그렸다는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 [물레방아 톱니바퀴


'움직이는 벽'. 그 말에 예전에 읽었던 책이 떠올랐습니다. <백발귀>라는 제목의 번안 소설입니다. 친구에게 아내를 빼앗겨 질투에 미쳐 버린 남자의 이야기였습니다. 남자는 복수를 위해 친구를 속여서 특별히 준비한 좁은 방에 가둡니다. 그 방에 '위아래로 움직이는 천장'을 설치해 두었습니다. 밖에서 조작하면 천장이 천천히 내려옵니다. 방이 서서히 압축되자 달아날 곳이 없는 친구는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고, 잠시 후 천장에 짓눌려 그의 몸은... 아아,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였습니다.

 

- 자, 이 물레방앗간은 <백발귀>의 처형실과 비슷한 구조입니다.
어느 한쪽 방에 사람을 가두고 물레방아를 돌리면... 아니요,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리 없습니다. 

- <숲속의 물레방앗간>



- 당시 하야사카 씨의 아버지는 어느 자동차 제조 회사의 부장이었다.
충분히 훌륭한 직업이지만, 하야사카 씨는 '격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은근히 차별을 받았다고 한다. 

- 하야사카 : 아무도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학생들 간의 신분 격차랄까 그런 게 역시 있었죠. 부자들 사이에도 서열이 있어서 서열별로 무리를 만들었어요. 저는 제일 밑바닥이었고요. '회사원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낮잡아 보는 거예요. 예를 들면 명품 신발을 신지 않는다고 은근히 놀린다든가, 수학여행 조편성 때 짝꿍에게 같이 다니자고 하니까 "하야사카랑 같이 다니면 좋은 가게에는 못 가잖아." 하고 거절한다든가.
필자 : 어휴, 인정사정없네요.
하야사카 : 맞아요. 부모님은 저를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무척 애쓰셨겠지만, 저로서는 황새들 사이의 뱁새가 된 기분이라 전혀 달갑지 않았어요. 부자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쾌적하게 생활하려면 학비보다 몇 배는 많은 돈이 들어요. 고급스러운 물건으로 몸을 감싸서 자신의 지위를 증명하지 않으면, 비참한 꼴을 당하니까요. 

- 하야사카 씨는 옆에 놓아둔 명품 백에서 담배를 꺼냈다.

"피워도 될까요?”

내게 양해를 구하고 나서 순금으로 보이는 금색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 하야사카 : 하지만 그중에서 유일하게 저와 친하게 지내 준 아이가 있었어요. 이름은 미쓰코고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죠. 미쓰코는 반에서 최상위 서열이었는데, '히쿠라 하우스'라고 주부 지방에서 손꼽히는 건축 회사 사장의 딸이었어요. 중간 길이의 검은 머리를 양 갈래로 묶었고, 뽀얀 피부에 눈매가 시원시원하니 귀여운 아이였죠. 어느 날 쉬는 시간에 갑자기 말을 걸더라고요.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잊어버렸지만 둘이서 신나게 떠들었던 게 기억나요. 그 후로 점점 친해져서 수다를 떨거나 교환 일기를 쓰기도 했고요. 

- 하야사카 : 건축 회사 사장이라는 사람이 이런 실수를 할 리 없다고요.
필자 : 분명... 실수가 아니겠죠. ... 그렇다면...
하야사카 : 이 집은 할머니가 사고를 당하도록 지은 것 아니었을까요?

- '그런 집이 존재할 리 없다.' '지나친 생각이다.' ... 예전 같았으면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3년 전에 조사했던 도쿄 도내의 단독주택.... '이상한 집'. 그건 바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지은 집이었다.

- 하야사카 : '히쿠라 하우스'는 전형적인 가족 경영 기업이에요. 할머니도 권력이 상당했겠죠. 사장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예요.
필자 : 방해물을 제거하기 위해 할머니를 죽이려 했다... 그겁니까.

 

- 가족이 각자 권력을 쥔 폐쇄적인 기업. 가족이기에 서로 원망을 품기도 할 것이다. 직접 죽이기까지는 않더라도 이처럼 선을 넘은 '장난질'은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기분이 들었다.

- 하야사카 : 창애라고 아세요? 쥐가 미끼를 건드리면 용수철이 풀리면서 쥐를 덮쳐 잡는 도구인데요.
필자 : 아아, 쥐덫 말씀이시군요.
하야사카 : 그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덫을 설치해 놓고 목표물이 걸려들기를 조용히 기다리는 거죠. 직접 죽이지는 않으니까 자기 손은 더러워지지 않아요.

필자 위험성 없는 살인...
하야사카 : 그리고 우연히 제가 자러 간 날, 덫이 작동한 거죠.

필자 : 그렇군요.
하야사카 : ... 지금까지는 그런 줄 알았어요.

필자 : ...?

- 하야사카 씨는 테이블에 놓아둔 라이터를 들고 일어서서 창밖에 펼쳐진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하야사카 : ... 하지만 정말로 그랬을까... 요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너무 부자연스럽지 않아요?

- <쥐덫의 집>



- 관장은 바로 전화를 걸었다. 두세 마디 말을 주고받았을 뿐인데, 규조 씨가 와 주기로 했다고 한다. 지역사회의 무시무시한 정보망에 나와 히라우치 씨는 압도당했다.
"시골을 알고 싶으면 인터넷에 의존하지 마라." 

그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 10분쯤 후에 규조 씨가 왔다. 관장과 비슷한 연배인 그는 흰머리가 성성했다.
필자 : 바쁘실 텐데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규조 :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정년퇴직한 몸이라 딱히 아무 할 일도 없는걸. 그런데 뭐였더라. 아즈마 씨 이야기랬나?
필자 : 네. 저희는 아즈마 가문의 기요치카 씨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데요. 아까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보다 기요치카 씨가 1938년에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원인이랄까, 기요치카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서요.
규조 : 아아, 그건 말이지, 여자 문제. 요컨대 불륜.

필자 : 불륜? 

-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은 저자 미즈나시 우키가 오두막에서 죽은 백로를 발견하는 장면이야.
[백로였습니다. 백로 암컷이 죽어서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분명 누군가 장난으로 가뒀겠지요. 그래서 밖으로 나가지 못해 굶어 죽은 것입니다. 죽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았습니다. 털은 빠졌고, 한쪽 날개 끄트머리가 사라졌고, 몸은 썩었고, 검붉은 액체가 바닥에 스며 있었습니다.]

- 스기야마 : 딱 읽자마자 엄청 신기했지. 우키는 어떻게 그게 백로 암컷인 줄 알아봤을까. 죽은 백로는 털이 빠졌고 몸도 썩었어. 지독한 상태였다고. 보통 어두침침한 곳에서 그런 걸 보면 죽은 새라는 건 알아차리더라도 종류까지는 판별하지 못할 거야. 그런데도 우키는 '백로', 게다가 '암컷'이라고 단언했어. 백번 양보해서 '백로'인 것까지는 알아보더라도, 암컷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내 생각에 이건 일종의 은유법이 아닐까 싶어. 즉, 사실 우키는 물레방앗간에서 다른 뭔가를 봤지만, 차마 글로 쓸 수가 없어서 일부러 '백로'에 '비유'한 ...

- 필자 : 저기, 히라우치 씨. 부동산업자가 건축 연수 외에 다른 말은 하지 않았습니까?
히라우치 : 건축 연수 외에?
필자 : 예전에 알고 지내는 설계사에게 들었는데요. 부동산 업자가 매물을 소개할 때는 그 집의 건축 연수를 고객에게 알려 줄 의무가 있어요. 다만 건축 연수를 계산하는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니라더군요. 예를 들어 10년 전에 지은 건물을 5년 전에 증축하면, 기본적으로 건축 연수는 '10년'으로 표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증축하면서 기존 건물에 대규모 보강 공사를 하면, 건축 연수를 '증축한 년도’부터 헤아려도 되는 사례가 있대요.
라우치 : 네?

 

- 필자 : 즉, 10년 전에 지은 건물을 5년 전에 보강해서 증축했다면, 부동산 업자는 건축 연수를 '5년'으로 표기해도 된다는 거죠.
히라우치 : 무슨 말도 안 되는... 
필자 : 물론 그럴 때는 '증축된 건물'이라는 사실을 부동산업자가 고객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습니다. 다만 자세한 방법까지는 법률로 정해 놓지 않아서 고객이 내막을 모르도록 일부러 두루뭉술하게 설명하는 사례도 있다고...
히라우치 : 솔직히 말해 알아듣기 힘들어서... 설명을 흘려들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설마 그런... 그렇다면 이 방은....

- 나는 지금까지 '여자 시신'이라는 말에 거리감을 느꼈다. 먼 옛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옛날에 이곳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더라도 지금 여기 있는 집과는 상관없다... 그런 마음가짐이었다.
착각이었다. 사고 물건은 바로 이 집이었다.

- <거기 있었던 사고 물건>



- 일찍이 나가노현 서부 야케다케산 기슭에 거대한 건축물이 있었다.
이름은 '재생의 성역', ... 컬트 교단 '재생회'의 종교 시설로 사용됐다고 한다.

- 교단은 이미 해산했고 시설도 철거됐으므로, 그 실체를 자세히 알아보려면 과거의 자료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소개할 내용은 1994년 8월에 발매된 한 월간지에 실린 기사로, 거의 유일하다 할 수 있는 '재생의 성역' 잠입 리포트다. 기사는 원래 '전편'과 '후편'으로 구성될 예정이었지만, 전편이 공개된 후 어느 기업에서 클레임이 들어와서 다음 호에 실릴 후편은 다른 기사로 대체돼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에 보여 드릴 수 있는 내용은 '전편' 뿐이다. 덧붙여 본문 속 삽화는 잡지에 실린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 드디어 차례가 돌아왔다.
일단 신전의 구조를 설명하겠다. 내부에는 소용돌이 모양의 벽이 둘러쳐져 있고, 신전 중심부에 성모님이 앉아 있다. 우리 다섯 명은 벽에 설치된 창문으로 성모님을 바라보며 중심부를 향해 빙글빙글 걸어갔다. 통로는 캄캄했지만, 성모님 바로 위에 작은 전구가 달려 있어서 성모님의 모습은 어렴풋이 보인다. 첫 번째 창문을 들여다보았을 때,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잘못 본 줄 알았다. 하지만 중심부로 다가가면서 성모님의 모습이 좀 더 확실히 눈에 들어오자 나는 확신했다.

- 성모님은 신체 장애인이다. 왼팔과 오른 다리가 없다.

- 성모님은 쉰 살이 넘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얼굴에 주름이 별로 없는 데다 길고 까만 머리에는 윤기가 흘렀고 피부도 탄력 있고 매끄러워서 열 살은 젊어 보였다. 허벅다리부터 아래쪽이 없는 오른 다리 대신에 길쭉하니 시원스럽게 뻗은 왼 다리로 몸을 지탱한 채 간소한 의자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다. 몸에 걸친 것이라고는 흰색 비단 한 장뿐이다. 거의 반라라고 해도 될 정도다. '신성하다'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묘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었다. 

- 중심부에 도착하자 나를 제외한 네 명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성모님 앞에 공손히 꿇어앉았다. 나도 그들을 따라 했다. 성모님은 나를 보고 “처음 오신 분이로군요. 마음 편히 수행하고 가세요." 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도, 그대도, 그대도, 그대도, 그리고 오늘 처음 오신 그대도 죄에 신음하고 계시겠죠. 걱정하지 마세요. 곧 좋아질 거예요. 아시다시피 저는 죄를 짊어지고 태어났습니다. 죄를 지은 어머니에게 왼팔을 빼앗기고, 죄를 짊어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 "
 

- 기사를 통틀어 컬트 교단 '재회'의 기묘한 실태를 꼼꼼하게 그려냈다.
다만 후편에 대한 기대를 높이기 위해서인지, 모호하고 감질나는 표현이 많아서 해명되지 않은 수수께끼가 많이 남아있다. 특히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 대목이다.
[감이 좋은 독자라면 내가 그린 허술한 일러스트를 보고 이미 뭔가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 기사에 실린 일러스트에 무슨 힌트가 숨어 있다는 뜻일까.
나는 일러스트를 한자리에 늘어놓았다. 시설을 위에서 묘사한 그림이 많았다. 어쩐지 묘한 느낌이 들었다.
기자는 시설의 외관을 두고 '종교 시설이라기보다는 현대예술이라고 해야 딱 와닿을 것처럼 특이하게 생겼다'라고 표현했다. 확실히 예술성을 강조한 건축물처럼 독특한 형태다. 하지만 그저 독특하기만 한 것은 아닌 듯했다.

- 나는 성역의 평면도를 모양대로 잘라 내, 조각을 짜 맞춰서 전체상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마치 지그소 퍼즐 같은 작업이다. 잠시 후 실로 기묘한 형상이 나타났다.

- <재생의 성역>



- 지에 : 정말 멋진 아이디어잖아요. 당시는 스마트폰이고 휴대전화고 없었고, 전화는 한 집에 한 대뿐인 시대였으니까요.
'침대에 누워서' 통화를 하다니 해외 영화 같아서 멋지게 느껴졌어요. 그럴 바에야 같이 자는 편이 낫지 않나,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지만요.
필자 : 하지만 확실히 '같이 자기'보다도 '실 전화기로 통화하기' 쪽이 어린아이 입장에서는 더 신날 것 같네요. 낭만적이라고 할까요.
지에 : 그렇기는 해요. 아빠는 행동도 사고방식도 낭만적인 사람이었죠. 그래서 성실하게 살지 못했고, 그 때문에 가족이 고통받았지만. ... 몹시 열받지만, 그래도 한때나마 아빠가 그런 낭만의 단편 같은 걸 내게 보여 줘서 정말 기뻤어요. 엄마를 닮았는지 나도 어수룩하다니까.
필자 : 그 후로 아버님과 매일 밤마다 실 전화기로 대화하셨나요?
지에 : 아니요. 아까도 말했지만 아빠는 늘 늦게 들어온 데다 들어오자마자 잠들곤 해서, 실 전화기로 대화한 건 다 합쳐서 네댓 번 정도였을 거예요. 하지만 즐거웠죠...

- <방을 잇는 실 전화기>



지에 씨가 원망스러워졌다.
히로키 : 그나저나 웃음을 참느라 고생했습니다. 어, 뭐였더라? '가정집에서 발생한 화재의 역사에 관해 기사를 쓰려고...'라고 했던가요?
필자 : 죄송합니다... 기억에서 지워 주세요.
히로키 : 거짓말을 할 거면 좀 더 연습하는 편이 좋겠네요.
필자 : 네...
히로키 : 그리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집과 가족을 화재로 잃은 사람에게 그런 거짓말은 하면 안 되고요.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눈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 필자 : 정말로 죄송합니다.
히로키 : 뭐, 용서해 줄 수도 있습니다만.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 히로키 : 화재의 진상을 밝혀내 주세요. 어떤 결론이든 상관없어요. 저희 아버지가 범인이든 지에 씨 아버지가 범인이든, 물론 두 사람 말고 다른 사람이 범인이더라도요.

 

- <살인 현장으로 향하는 발소리>



- 열아홉 살 때 아케미 씨는 남자 손님의 아이를 임신했다. 작은 회사를 운영한다는 그 손님은 가끔 "너랑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하고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아케미 씨도 그의 성실한 면모에 끌려서 진심으로 결혼을 생각했다. 하지만 임신을 알린 날을 끝으로, 그는 더 이상 가게를 찾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케미 씨는 묘한 소문을 들었다. 그는 회사 사장이 아니라 처자식이 딸린 회사원이었다고 한다. 

- 아케미 : 그 남자를 원망하지는 않아. 술자리에서 유혹하는 말을 믿는 인간이 바보지. 열아홉 살이나 먹고도 세상 물정을 몰랐던 거야. 결국 혼자서 미쓰루를 낳았지만 불안하지는 않더라고. 돈은 썩어날 만큼 많았으니까.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저금에만 의지하기가 불안해서 큰맘 먹고 내 가게를 차리기로 했어. 소위 사장이 된 거지. 젊은 아가씨를 고용해서 접객을 가르치고, 손님이 찾아오기를 떡하니 기다리고 있으면 돈이 저절로 모여들 줄 알았어. 지금 와서 생각하면 참 바보 천치 같은 짓을 했던 거지.

 

- 경영의 기초도 모르고 의욕을 앞세워 시작한 가게는 순식간에 적자가 불어났다.
바로 가게를 접었으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곧 좋아질 것이라 만만하게 생각하고 빚을 자꾸 냈다.

- 아케미 : 스물일곱 살 때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지경이 돼서 개인 파산을 신청했어. 하지만 그런다고 봐주는 곳은 은행 정도지. 위험한 곳에서도 큰돈을 빌렸는지라 일이 커졌어. 조직폭력배에게 “개인 파산을 신청했으니까 돈은 못 갚습니다.”라는 말은 안 통하거든. 미쓰루와 함께 차에 실려 그곳으로 끌려간 거야.

 

- 그곳은 '오키토'라는 연립주택이었다.

- 일찍이 일본에는 '갈보집'이라 불리는 시설이 존재했다. 거기에 거주하는 여성은 남자 손님과 성행위를 함으로써 수입을 얻었다. 하지만 1958년에 매춘 방지법이 시행되자 갈보집은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다. 그 후 소프랜드와 패션헬스 등의 풍속 산업이 법망을 교묘하게 피하는 형태로 갈보집을 대체해 나갔는데, 그와 거의 같은 시기에 일부 반사회 조직이 '오키토'라는 매춘 시설을 운영했다. 

 

- 아케미 씨와 미쓰루 씨가 끌려간 곳은 야마나시현 중앙의 산간부에 위치한, 2층짜리 연립주택을 개조한 오키토였다.
층마다 방이 네 개씩이었는데 1층에는 감시를 맡은 조직원이, 2층에는 아케미 씨처럼 빚을 갚지 못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 아케미 : 굳이 연립주택을 개조한 건, '연립주택에 사는 여자에게 남자친구가 찾아와서 잠자리를 가질 뿐이다. 법적으로 문제없다'라고 핑계를 대기 위해서였겠지. 잠깐만 조사하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겠지만, 당시는 경찰도 조직폭력배를 배려해 줬거든. 불법인 줄 알면서도 묵인했을 거야.

- 아케미 씨와 미쓰루 씨에게는 2층 끝 방이 주어졌다.
아케미 : 곰팡내가 풍기는 다다미방이었어. 거기에 변소와 욕실, 벽장, 그리고 조잡한 부엌도 있었지. 식사라면서 매일 두 명분의 도시락을 넣어 주었지만, 다 식은 거라서 가스레인지로 반찬을 데워 먹었다니까. 그리고 작은 '침실'이 있었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침실'은 자기 위한 곳이 아니야. 수상쩍은 장난감과 침대 하나뿐인 침침한 방. 손님을 거기로 맞아들여 상대하는 거야. 벽을 둘러놔서 미쓰루가 못 보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어. 뭐, 엄마가 매일 밤 거기서 무슨 일을 하는지 정도는 눈치챘겠지만.
나는 주방을 힐끗 보았다. 아케미 씨의 목소리가 들릴 테지만, 미쓰루 씨는 아무 반응 없이 영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쓰루 씨에게 미안했다. 좀 더 세심하게 인터뷰 장소를 골라야 했는데.

- 아케미 : 손님은 늦은 밤에야 찾아왔어. 이놈이고 저놈이고 고급 차를 타고 나타났지. 오키토는 부자를 상대로 하는 장사거든. 한 번에 십만 엔을 받았다나 봐. 그중 90퍼센트는 조직이 이런저런 명목으로 뺏어 가고, 10퍼센트가 빚을 갚는 데에 사용돼.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 방에 가둬 놓는 거야. 하지만 가둬 놓는다고 해도 밖에 자물쇠를 달면 감금죄에 해당하니까 놈들도 그런 점에서는 머리를 썼지.

- <달아날 수 없는 연립주택>



- 딱 한 번 나타난 방... 참으로 오컬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야기다. 부모님 말대로 꿈속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제일 현실적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점은, 이루마 씨가 내 책을 읽은 후에 이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 이루마 : '꿈속에서 일어난 일.' ... 어느덧 저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주신 책을 읽어 보고 다른 생각이 떠올랐어요. <이상한 집>에 비밀 방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필자 : 네. 불단으로 방 입구를 감춘다는... 
이루마 : 네. ... 솔직히 평범한 서민층 집에 비밀 방이라니 비현실적인 생각이죠. 하지만 그날 일이 꿈이 아니라면, 그것 말고는 설명이 안 돼요. 가능성을 따져 보자면 아버지가 집을 지을 때 취미 삼아 만들었다거나...  왜, 비밀 방은 남자의 낭만을 자극하잖아요. 하지만 저희 집에 불단은 없었는데, 어떻게 방... 이랄까, 문을 감춘 건지 궁금하더라고요.  
필자 : 이루마 씨 기억이 확실하다면 문은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 하는 거잖아요.

- 물론 보통 자석이라면 자력이 부족해서 문을 열기 전에 자석이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네오디뮴 자석을 사용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네오디뮴 자석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자석'이라 불리는 만큼, 커다란 걸 사용하면 사이에 목재가 있어도 자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네오디뮴 자석의 원료는 희토류 원소, 별칭 레어 어스(rare earth)다.

 

- [음, 디자인이라고 하면 디자인인가. 하지만 예술 계열이 아니라 금속 제품 회사의 상품 디자인이에요. 레어 어스 관련 제품을 만든다고 듣긴 했는데, 뭔지는 잘은 모르고요.]
이루마 씨 아버지의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다.

- 잠시 후 복도에서 "준비됐습니다." 하고 이루마 씨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손가락에 온 힘을 주어서 판자를 움직였다. 다음 순간 이루마 씨가 소리쳤다.
이루마 : 우와! 굉장하다! 붙었다! 붙었어요!
필자 : 이루마 씨! 신중하게, 천천히 앞쪽으로 당겨 보세요.
복도에서 '끼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수납실에서 빠져나와 복도로 향했다. 이미 문은 열려 있었다.

- 이루마 씨는 천천히 비밀 방으로 들어갔다.
비밀 방은 이루마 씨가 기억하고 있던 것과 똑같았다. 

흰색 벽지. 정사각형 모양 방바닥. 그리고 나무 상자.
이루마 씨는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천천히 나무 상자의 뚜껑에 손을 댔다. 멀리서도 바르르 떨리는 손이 보였다. 이루마 씨는 긴장된 표정으로 상자를 열었다. 
상자에 들어 있던 것은...

- 그것은 나무로 만든 작은 여자 인형이었다.
마치 선녀의 날개옷처럼 맨살에 비단을 걸쳤다. 젊지는 않지만 생김새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시선을 끈 것은 여자의 몸이었다. 왼팔과 오른 다리가 없었다.

- <딱 한 번 나타난 방>



- 우메가오카역에서 걸어서 20분. 연립주택에 도착했다. 나는 자료 열한 부가 든 봉투를 들고 계단을 올랐다. 녹슨 철 계단은 한 발짝 오를 때마다 삐걱거렸다. 이 연립주택은 올해로 지은 지 45년째라고 한다. 낡았을 만도 하다.
2층 제일 안쪽이 '그'의 집이다. 초인종을 누르자 바로 문이 열렸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춥죠? 들어오세요."
회색 운동복 상의에 헐렁헐렁한 청바지. 짧게 깎은 머리. 그리고 삐죽삐죽한 턱수염. 내 지인인 설계사 구리하라 씨다.

- 작은 부엌과 다다미 여덟 장 크기의 거실이 연결된 방이다. 거실에는 수많은 책이 어지러이 널려 있어, 나는 앉을 만한 빈틈을 찾아내 겨우 궁둥이를 붙였다. 

- 구리하라 씨는 부엌에서 홍차를 우리며 혼잣말하듯 말했다.
"예전 생각이 나네요. 그때도 이렇게 이야기를 나눴죠."
예전에 어느 집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나는 여기를 찾아왔다.
구리하라 씨는 평면도만 보고 그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밝혀냈다. 그 후 나는 가끔 그의 추리력을 빌리게 됐다.

- 필자 : 그때는 정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쉬는 날이세요?
구리하라 : 네. 최근에는 쉬고만 있어요. 애당초 요즘 세상에는 집을 지으려는 사람이 적으니까요. 뭐, 저는 일하기보다 책을 읽거나 게임하는 게 좋아서 오히려 고맙지만요.

- 구리하라 씨는 홍차 두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후, 바닥의 책을 치우고 내 맞은편에 앉았다.
구리하라 : 그럼 보여 주실까요. 전화로 말씀하신 그 자료.

필자 : 네.
나는 봉투에서 자료 열한 부를 꺼냈다. 각 책자에는 내가 지금까지 조사한 '정보'를 정리해 두었다.

- 자료

① 갈 곳 없는 복도자료

② 어둠을 키우는 집자료

③ 숲속의 물레방앗간자료

④ 쥐덫의 집자료

⑤ 거기 있었던 사고 물건자료

⑥ 재생의 성역자료

⑦ 아저씨네 집자료

⑧ 방을 잇는 실 전화기자료

⑨ 살인 현장으로 향하는 발소리자료

⑩ 달아날 수 없는 연립주택자료

⑪ 딱 한 번 나타난 방

- 이 책의 첫머리에도 적었지만 전작 《이상한 집》이 출간된 후, 독자들이 집에 얽힌 기묘한 체험담을 내게 많이 보내 주셨다. 그 수는 백 가지도 넘는다. 수수께끼가 이미 해명된 이야기는 얼마 안 되고 대부분 미해결... 바꿔 말하면 '결말이 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결말'을 알아내기 위해 조사에 나섰다.

- 구리하라 : 예를 들어 많은 기독교 교회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모방해서 만들어졌죠. '자신들이 신뢰하는 인물의 몸속에 들어가고 싶다 = 보호받고 싶다'라는 건 수많은 사람의 공통적인 욕구일 겁니다. 자, '재생의 성역'의 내부를 자세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신전이 '심장' 위치에 있어요.
필자 : 아아... 그러네요. '심장에 성모님이 살고 있다'라는 건가.
구리하라 : 성모님은 교단의 상징이니까요. 몸에서 제일 중요한 심장에 계셔야 마땅하다는 거겠죠. 참고로 옛날에는 '인간의 심장은 중앙보다 약간 왼쪽에 있다’는 것이 정설이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만들어진 건물이라 신전도 약간 왼쪽으로 치우친 ...

- 필자 : 이루마 씨 부모님도 불륜을 저질렀다는 건가요?

구리하라 : 분명 네기시 씨와 같은 유형이겠죠.
필자 : 즉... 이루마 씨는 어머님의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
구리하라 :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다만 이루마 씨 일가가 특이한 건 아버지가 개축에 관여했다는 점이에요. 아내의 불륜을 알고서 함께 교단에 들어간 거겠죠.
필자 : 뭐랄까... 아버님이 관용을 베푸셨군요...
구리하라 : 전부 다 아이를 위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죠. 하지만 굳이 무책임하게 추측해 본다면 다른 가능성도 떠오릅니다.

- 부모님이 결혼한 해에 신축으로 구입했고, 그로부터 8년 후 아들 이루마 씨가 태어난 것을 계기로 대규모 개축 공사를 했다고 한다.
구리하라 : 이루마 씨는 부모님이 결혼한 지 8년이 지나서야 태어났어요. 좀 늦었죠. 어디까지나 한 가지 가능성입니다만, 이루마 씨 아버지는 아이를 만들 수 없는 몸 아니었을까요?

필자 : 무정자증이요?
구리하라 : 네. 하지만 부부는 꼭 아이를 가지고 싶었고요. 래서... 어이쿠, 추측이 너무 지나쳤네요. 이 정도로 해 두죠.
구리하라 씨는 앉은 자세로 크게 기지개를 켰다.

- 구리하라 : 재벌 가문의 외동딸 미즈나시 우키가 숲속에서 발견한 물레방앗간. 이건 대체 뭐였을까요? 이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자 오두막 왼편에 사당 같은 것이 있어서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하얗고 깨끗한 나무로 만든 몸체에 귀여운 삼각 지붕을 얹은 사당은 그렇게 오래돼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당 안에는 석상이 놓여 있었습니다. 동그란 과일을 한 손에 든 여신상이었습니다.]
구리하라 : '동그란 과일을 한 손에 든 여신상.' ... 불교에 해박한 사람이라면 이것만으로도 무슨 신인지 알겠죠. '귀자모신'입니다.
필자 : 귀자모신이라... 이름은 들어 본 적 있는 것 같은데요...
구리하라 : 인도에서 태어난 신으로, 아이를 지켜 준다고 일컬어지죠. 보통 귀자모신 상은 한 손에 '길상과'라는 과일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아기를 안고 있습니다.

필자 : 아이를 수호하는 신인가요?
구리하라 : 네. 다만 우키가 '과일'만 언급한 게 마음에 걸리네요. 아마 그 석상은 아기를 안고 있지 않았던 것 아닐까요?
필자 : 아기를 안지 않은 귀자모신은 보기 드문가요?
구리하라 : 물론 지역과 제작자에 따라 형태가 다양하지만, 한 손에 길상과를 들었을 때는 한 세트처럼 아기를 안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구리하라 :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연예인 같은 취급을 받았을 정도예요. 1995년에 그들이 무차별테러를 일으킨 후로는 역풍이 강해졌습니다만, 적어도 그 이전까지 컬트 종교는 '앞서 나가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좀 특이하지만 멋진 취미'였습니다. 히쿠라 씨는 이미지 향상과 고객 개척을 위해 자사의 기밀 사업으로서 컬트 교단을 설립한 겁니다.
필자 : 뭐라고요? ... 그럼 '재생회'는 히쿠라 씨 본인이 만들었다는 건가요?
구리하라 : 그렇게 봐야 여러 가지 면에서 앞뒤가 맞습니다.

- 구리하라 : 이 문장에 속으면 안 됩니다. 자금만 원조한 사람이 무대에 올라가 신자들에게 연설하는 게 허락될 리 없잖아요. 그래서는 교단의 체면이 완전히 뭉개질 테니까요. 히쿠라 씨는 어째서 거침없이 행동할 수 있었을까요? 그야 히쿠라 씨 본인이 교단을 설립했기 때문이라고 봐야겠죠.
필자 : ... 그렇군요...
구리하라 : 자, 히쿠라 씨는 교단을 만들면서 자신의 아내... 야에코 씨를 '교주'로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예로부터 일본인은 신체 장애인을 '신'으로서 숭배해 왔으니까요.
필자 :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이 기사에도 적혀 있었는데, 정말인가요?
구리하라 : 네. '외눈, 외팔, 외다리' 등의 특징이 있는 신을 우러러 모신 흔적이 일본 각지에 수많이 남아 있습니다. 왜일까요?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이에게 '신'이라는 역할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민속학자들이 분석하기로는 그렇습니다.
필자 : 그렇군요... 
구리하라 : 그 밖에도 '소인증에 걸린 사람이 집을 번영시킨다'라는 속설에서 후쿠스케 인형이 만들어진 사례도 있어요. 흔해 빠진 사람들과는 다르게 개성적인 몸에서 신비함을 찾아낸 거죠. 그런 의미에서 야에코 씨는 '신' 역할에 적합했던 겁니다.

- "달리 사용할 길이 없어서 화장실, 부엌, 욕실만 추가해 매물로 내놓은 거겠죠. 정말로 장삿속이 밝다니까요."
그 후 저녁을 얻어먹고 나는 연립주택을 나섰다. 밖은 이미 캄캄했다.
역으로 걸어가면서 구리하라 씨의 추리를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자료만 읽고서 그렇게까지 조리 있는 스토리를 이끌어내다니, 정말 머리가 좋다고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 하지만... 
어째선지 마음속에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구리하라 씨의 추리가 틀렸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뭔가 빠뜨린 것 같은 기분이다. 중대한 뭔가를... 

- 그러는 사이에 역이 보였다. 나는 개찰구 앞의 카페에 들어가서 자료를 다시 읽어 보기로 했다. 그 결과, 어떤 자료의 어떤 대목에서 지금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작은 모순을 발견했다.
왜지. 왜, 모순이 생겼을까. 분명 이 취재를 할 때... 
잠시 생각한 끝에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그 가설을 염두에 두고 자료를 다시 읽었다. 신기하게도 이미 해결됐다고 여겼던 몇 가지 수수께끼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그 하나하나가 이어지면서 어느덧 완전히 새로운 스토리가 완성됐다.

- 2023년 2월 28일 도쿄도 나카메구로,
요리점의 방에서 나는 어떤 인물을 기다리고 있었다. 얽히고설킨 사건의 진상을 해명하기 위해 분명 제일 중요한 사실을 아는 사람이다.
드디어 방문이 열리고 그가 들어왔다. 두툼한 운동복 상의에 검은색 슬랙스. 당연하지만 요전에 만났을 때와는 완전히 ...

- 필자 : 신세타령을 할 수 있을 만큼 오랫동안 아이들만 방을 비우는 상황은 없었을 텐데요.
미쓰루 : 볼일을 보러 갔거나 목욕하러 간 건지도 모르잖습니까.
필자 : 두 아이가 동시에 화장실에 가서 오랫동안 나오지 않는다. 그런 일이 있을까요? 욕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어엿한 요리사가 됐지. 중학생 무렵까지는 나 없으면 목욕도 못했는데 말이야.'
두 분이 오키토를 떠난 건 미쓰루 씨가 아홉 살 때입니다. 즉, 오키토에서 지내는 동안 두 분은 늘 함께 목욕한 겁니다.

- 필자 : 그럼 아케미 씨와 야에코 씨가 신세타령을 했을 때, 두 아이는 어디서 뭘 했을까요? 여러모로 생각한 결과, 한 가지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틀렸다면 죄송합니다. 오키토에서 매춘을 강요당한 건... 아케미 씨가 아니라 미쓰루 씨 아니었습니까?

 

- 미쓰루 씨는 잠시 벌레 씹은 듯한 표정으로 있다가 코를 훌쩍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미쓰루 : 어머니는... 잘못 없습니다.

- 다음 날, 나는 다시 우메가오카의 연립주택을 찾아갔다. 구리하라 씨는 녹차를 우리면서 말했다.
구리하라 : 과연. 그 오키토는 소아성애자를 위한 매춘 시설이었던 거군요.
'손님은 늦은 밤에야 찾아왔어. 이놈이고 저놈이고 고급 차를 타고 나타났지. 오키토는 부자를 상대로 하는 장사거든. 한 번에 십만 엔을 받았다나 봐.'
필자 : 한 번에 십만 엔은 현재 시세로 따져 봐도 너무 비쌉니다. 그만한 돈을 지불할 이유가 있었던 거예요. 손님이 늦은 밤에 찾아온 건, 매춘이 불법 행위였던 건 물론이고 '아이를 돈으로 산다'는 사실이 세상에 ...

- 미쓰코 씨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야에코 씨에 대한 애틋한 정이 절절히 전해졌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런 것치고는 미쓰코 씨의 말투가 너무나 담담하게 느껴졌다.

 

- 미쓰코 :  장례식이 끝나고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을 때 뜻밖의 사실을 알아차렸어요. 할머니 방에 의족이 없더라고요. 돌아가셨을 당시 할머니는 의족을 착용하지 않으셨으니 방에 놔두셨겠죠. 어디 있나 싶어 찾아봤지만 아무 데에도 없더군요. 그때 무시무시한 가능성이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저는 부랴부랴 제 방에 가서 책장 문을 열려고 했어요. 하지만 열리지 않았어요. ... 잠겨 있더라고요. 저는 책상 서랍에 넣어 둔 필통에서 열쇠를 꺼내 머뭇머뭇 책장 문을 열었어요. 살색 고무 의족이 들어있더라고요.
온몸에서 핏기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어요. 필통에 책장 열쇠가 들어 있다는 건 저밖에 모르거든요. 따라서 책장 문을 잠근 건... 다시 말해 의족을 책장에 넣은 건 저 말고 없어요...
필자 : ... 어떻게 된 일이죠...?
미쓰코 : 분명 의족을 할머니 방에 되돌려 놓지 않은 거겠죠. 그건 꿈이었던 거예요.

또 어머니에게 거역하고 말았다. 다음번엔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 하지만 무섭지는 않았어요. 분명 자신의 의지로 할머니를 지켜서 기뻤던 거겠죠.
위험한 줄 알면서 남을 지킨 적은 처음이었거든요. 저는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푹 빠진 채 잠들었어요.

- 미쓰코 : 자기 목숨이 아까워서 할머니를 죽이기로 마음먹은, 연약하고 쓰레기 같은 자신의 모습을 인정할 수 없어서 '이렇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내 모습은 얼마나 멋질까' 하는 바람을... 꿈으로 꾼 거겠죠. 그 꿈이 어느 틈엔가 현실과 뒤섞인 거고요. 당신이 어떤 답변을 바랐는지는 모르겠네요.
하지만... 할머니를 죽인 건 저예요.
미쓰코 씨는 일어서서 내게 등을 돌렸다.

- <구리하라의 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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