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지향점
최근 들어 하는 생각인데,
나는 고전과 인문 모두 읽을 생각이긴 하지만 역시 내가 더 좋아하는 것은 그 응용과 실천이다.
과학 도서를 읽을 때의 편안함과 익숙함은 인문이나 시집에서 느낄 수 없는 기분이다.
물론 시간을 더 들이고 더 많이 읽게 되면 바뀔 수도 있겠지만, 그 때에도 아마 모두 좋아할 것이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과학이다 문학이다 철학이다 나눌 것 없이
내가 가장 두근거리며 즐거워 하는 부분은 결국 현실에 맞닿은 부분들이다.
예를 들자면 수호지를 읽으면 108걸의 성격과 성향에 집중해 유사한 사람을 만나게 될 때의 처세와 대처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고, 그런 인간의 다양한 특질과 그로부터 갈라질 성격들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것들이 인간에 대한 나의 이해를 더 깊어지도록 도와줄 것이며 아마도 그를 통해 나는 인간과 삶에 대해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극찬을 받는 이유는 인간군상을 매우 생생하게 잘 그려냈기 때문이라 한다. 희곡으로 쓰여진 덕도 조금은 있겠지만, 그말인 즉슨 그의 작품들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그로부터 인간을 볼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함께 시작하기로 했던 친우는 학업에 매진하느라 다시 책을 손에서 놓았다ㅠㅠ)
책을 읽는 것은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의 하나의 취미생활이며, 유희이다.
책을 읽었다 말하려면 그 줄거리만이 아닌 인물의, 혹은 저자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해야 한다 생각해 겉핥기로 읽은 책은 셈하지 않아 그렇지 대략 나이의 평균 정도는 읽은 듯 하다.
많이 읽었다 말해주는 이들도 있으나 나의 지인들 중에서는 보통에 가깝다. 되려 잡서들을 제하고 셈하자면 나는 독서량이 무척 적은 편이다.
그러나 접하는 책들이 많아질수록
사상이 깊어지고 생각이 깊어질수록
아집에 휩싸이거나 견고한 성 안에 박히는 경우만은 피하고 싶다.
다양한 사상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는 것은 그로부터 결국 '나는 어떻게 살아있는 시간을 채울 것인가' 하는 것인데, 나의 생각이 어떠하든 다른 이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상처를 주는 것은 원치 않는다. 진정으로 깊어진 자는 설사 생각이 다를지라도 그 다른 이를 불쾌하게 만들지 않는다.
결국 읽는 자체를 즐기는 것은 상관이 없으나.
읽음에 빠졌다 하는 이라면 그 읽음으로부터 독은 피하고 이는 취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정확하고 다양한 정보들도 좋겠고, 인간의 감정이나 행동, 심리나 사회 전반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도 좋겠다.
스토리라는 것은 결국은 인간들의 얽히고 섥힘에서 오는 것이며, 문장의 아름다움은 자국의 언어에서 오는 것이다.
사실 문장을 논하기 위해서는 자국 작가의 글을 예로 드는 것이 옳다. 타국 작가의 저서의 문장을 아무리 논하여도 결국 그것은 한 번 번역을 거친 것으로 결국 그는 원저자가 아닌 번역가에게 찬사를 날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번역을 통해서도 망가지지 않은 명문도 있으나, 원문을 접하여 보면 결국 조금씩은 변질되어 있다. 언어의 한계다.
(해서 나는 아주 마음에 드는 경우, 그리고 원서가 영문인 경우는 가끔 원서로 읽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과학 쪽이다ㅋ)
다시 돌아오면 나는 인간의 다양함을 더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더 잘 알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자신만의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자신이 있을 뿐이고, 자신의 특이점이 개성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오만과 연결되는 것만은 피하고 싶다.
오만은 좁은 세계에서 나온다. 자신이 사는 세상 안에서는 스스로가 가장 뛰어나고 우수하다고 믿을지 몰라도, 그 믿음은 그의 세상이 좁기 때문이다.
개개인은 모두 독특하고 특이하다. 그것을 특이하다고 인정해줄 수는 있겠으나, 사실 그 특이함이 진정으로 인정할만한 특출로 이어지는 일은 많지 않다.
나는 겸손하지 못한 사람과 예의 없는 사람을 아주 싫어한다. 그리고 개념으로 통칭되는 사회적 관념이 부족한 사람과는 동석을 꺼리는 편이다. 또한 잘못된 정보를 확인없이 옮기는 이도 기피한다.
그에 더해, 자신만의 생각이 진리이자 기준인 것처럼 생각하는 이는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
예를 들어 말해보자면.
많은 책을 읽은 이가 있다면 나는 그를 존중할 것이다.
내가 아직 읽지 않았기 때문에 읽지 않은 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면 그의 이야기를 우선적으로 수용할 것이다.
그러나, 들었을 때 사리에 맞지 않은 이야기를 사실인 것처럼 말했고 그 근거가 미약한 것이었다면, 확인 후 그것이 잘못된 것이었다면 그 이후 그의 이야기는 조금 가려듣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그의 이야기의 근거들이 관련 저서가 아닌 소설이라면, 더욱 가려듣게 될 것이다.
더불어 그에게는 무척 특별할지 모르나 사실은 당연한 것에 가까운 것을 과하게 자랑하기 시작하면 무척 불편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은 나의 오만일지 모르나, 최소한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이들 중에서는 모를 리 없는 것들을 안다고 하여 자랑이 될 수는 없다.
설사 몰랐다 한들 시간의 문제일 뿐- 읽으면 그 뿐이다.
많이 읽었음이 자랑인 것은 언제고 따라잡힐 수 있는 것으로 그것만이 자랑거리라면 안타깝다.
많은 독서량을 통한 깊은 사고와 통찰,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그는 부러워하고 자랑할만 하나, 그렇지 못하다면 불편할 것이다.
사실 직업적 소양 역시 그러하다.
흉금을 터놓는 이에게는 간혹 이런 저런 고충을 털어놓기도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결코 말하지 않는 것들이 더 많다.
같은 직업인 이들에게나 말할까, 그렇지 않으면 결코 이해받을 수 없으며 되려 말이 잘못나는 경우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 하다더라, 내가 아는 oo 이 그러던데?"
그 내용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는 신뢰도의 차원에서 옳지 않으며, 대부분의 경우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옮기다 와전되거나 아주 특수한 (그 지인이 좀.... 그런) 경우인 경우가 많은데.
해서 직업에 관련된 이야기는 거의 피하지만, 피치 못해 한다면 제대로 하는 편이다. 그렇게 해도 간혹 오해가 생긴다.
간혹 아주 우스운 경우를 겪을 때가 있는데, 아예 다른 직종에서 이런 저런 지인들의 이야기를 근거로 논쟁을 벌이는 일이다.
차라리 내용적인 부분에서라면 생각이 충분히 다를 수 있다.
어쩌면 많은 이들은 당혹스러워할지 모르지만, 비타민의 효용에 관해 의학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논문이나 실험 결과도 양쪽 모두 존재한다. 통설이 어느 쪽인가 하는 것일 뿐.
결국 지식은 어느 한계 이상으로 가면 단 한 가지의 답일 수 없다. 수많은 것들이 고려되어야 하고 변수 역시 다양하고 마지막까지 그 누구도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가 되면.
아무렇지 않게 자신이 실제 경험한 것도 아닌 타인의 이야기를 근거로 실제 직업인 나에게 내 직업이나 유사 직종에 대해 아는 체를 하게 되면 실로 곤란해진다.
이런 경우는 사실 왕왕 있었는데, 친근감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려니 하고 넘어가려 해도 불쾌할 때가 많다.
그런 대화를 겪고 나면 다른 모든 이야기에서도 이 사람이 하는 말은 정확한가, 근거가 어떠한가 등을 중점적으로 듣게 된다.
또 크게 기억에 남기지 않게 된다. 잘못된 정보일 수가 많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하는 말을 더 조심하게 된다.
다른 장소에 가서 '내가 아는 ~~가 그러던데' 하고 이상하게 인용되면 큰일이지 않은가.
깊어진 자는 향기가 난다.
그들은 다른 생각에 민감하며 자신의 생각을 진리나 기준으로 삼지 않고 타인을 포용하여 편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이 진리인 양 내세워 타인을 깍아내리는 태도는 모든 이를 불쾌하게 만든다.
다독한 이들에게서는 모두 고유의 향과 분위기가 나지만, 그것은 대개는 은은하고 고아한 것이었는데-
이후 무슨 책을 읽든, 얼마나 읽든, 그런 모습 갖지말자고 생각했다.
이전부터 내게 있었다면 더 노력해 없앨 것이고, 생기려 한다면 의식해 막을 것이다.
내가 되어가고 싶은 모습은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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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는 연습을 하면 는다.
읽지 않은 책은 읽으면 된다.
창작에는 재능이 주요하나 감상에는 재능이 필요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많이 보고 많이 접하면 느껴지는 것들이 늘어난다.
거기에서부터 가호가 갈라지고 자신의 취향이 생긴다.
다만 한번 굳어진 세계는 아무리 아름다울지라도 완고하고 고립된 것이고, 심지어 그 외부는 기괴할 수 있음을 항시 기억할 것이다.
나의 독서는 굳기 위함이 아니다.
'나'와 '타'를 더욱 명확히 분리하되 그 모두를, 특히 '타'를 더 이해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해한다는 것과 곁에 두는 것은 또 다른 것이므로-
나 자신은 타인에게 가까이 하고 싶은 이가 되도록 노력하되
내 곁에 둘 이들은 그 곁에 있어 내가 행복한 이들도 채우고 싶은 것이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