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
저자 : 정세랑, 김인영, 손수현, 이랑, 이소영, 이반지하, 하미나, 김소영,
니키 리, 김정연, 문보영, 김겨울, 임지은, 이연, 유진목, 오지은, 정희진, 김일란, 김효은, 김혼비
출판 : 창비
출간 : 2021.09.17
어쩌다 보니 언니들의 편지를 받게 되었고, 그렇게 쌓인 편지들이 엮여 책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구석 어귀에 작게나마 이름자를 올리게 되었으니 종이로 다시 읽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사실 저는 '언니'라는 호칭이 참 싫었더랬습니다. 직장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대뜸 저를 '언니'라고 부르면 당황하곤 했어요.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존칭은 쓰기 싫고, 얕잡아 부르는 듯한 그 특유의 어조가 너무 싫었거든요. 해서 사적 자리에서는 부러 잘 쓰지도 않던 '희야'라는 말을 찾아 쓰기도 했었지요.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일하는 지인들은 '오빠'가 아니라 '형씨' 같은 느낌이라고 말해줘도 이해하기 어려워했었지만요.
이제는 '언니'라는 말이 불편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할 때, 어떻게 그 나이에 그렇게 어른스럽게-어른스럽다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저를 대해주었나 싶어서... 언니들을 떠올리면 눈물이 핑 돌아요. 당시의 언니들의 나이를 지날 때마다, 저는 매번 놀라고 또 감사합니다.
이제는 영원히 저보다 나이가 어려진 언니도.
소식을 알 길이 없어진 언니도 있습니다만.
그때의 언니들처럼 멋있지는 못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는 언니가 되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언니로, 또 그 언니의 언니로.
울고 웃고 화내고 싸웠던 모든 기억들이 이어질까요?
그런 마음으로 저도 언니들에게 행운의 편지를 남깁니다.
행운만이 전해졌으면.
- 언니에게 이름이 있어 저는 기뻐요. 언니에게 이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생각하곤 해요. 언니가 받은 이름은 '아름다운 여성', 언니가 지은 이름은 '고결하고 글재주가 좋은 여성'이라지요. 언니가 '허씨 부인'이 아니어서, 이름도 없이 전해지는 '작자 미상'도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하지만 당신에게 이름이 있어서,
당신이 그렇게 일찍 죽었던가요.
- 언니가 여덟 살 때 썼다던 글을 봤어요. 달에 백옥루를 짓는다고 상상하고 그 건물에 상량할 때, 그러니까 들보를 올리면서 송축할 때 외는 축문을 쓴 거라면서요.
들보 북쪽으로 떡을 던지네.
북해가 아득해서 북극성이 잠기고
붕새의 깃이 하늘을 치니 그 바람에 물이 치솟네.
구만리 하늘에 구름이 드리워 비 기운이 어둑하네.
들보 위쪽으로 떡을 던지네.
새벽빛이 희미하게 비단 장막을 밝히고
신선의 꿈이 백옥 평상에 처음으로 감도는데
북두칠성의 국자 돌아가는 소리를 누워서 듣네.
들보 아래쪽으로 떡을 던지네.
팔방에 구름이 어두워 날 저문 것을 알고
시녀들이 수정궁이 춥다고 아뢰네.
새벽 서리가 벌써 원앙 기와에 맺혔네.
- 허난설헌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 중 일부
- ... 언니 미쳤어요? 이런 걸 여덟 살 때 썼다고요?
- 정말이지 언니가 지금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 태어나서 나랑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면 얼마나 멋진 글을 썼을까. 그런 부질없는 질문을 멈추기가 힘들어요.
- 차라리 재주가 없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곤 했나요. 재주가 있어서 이렇게 고통을 받는구나, 차라리 글문을 몰랐으면, 똑똑하지 않았으면, 세상에 아무것도 질문하지 않았으면 나았을까 몇 번이고 되뇌었나요. 그러다가도 책이 주는 무한한 세계를 포기하지 못해 가슴을 치고 또 쳤나요. 도망치고 싶어 책을 읽고, 말할 수 없어 시를 썼나요. 삶을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어 마음속으로 하늘을 거닐었나요. 밀려들고 다가오는 죽음이 원망스러웠나요. 그래서 그렇게 많은 시에 신선이 등장하고 꿈이 등장하나요.
- 언니, 저는 명치를 타고 끊임없이 올라오는 불같은 의문들, 가슴을 짓누르는 삶의 불가해성을 받아들이는 데에 오랜 시간을 보냈어요. '왜 이런 삶이 주어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미친 사람처럼 책 속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게 우연이고, 나에게 이런 삶이 주어져야 할 이유가 없듯 이런 삶이 주어지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는 결론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지만 피할 수도 없는 과정이었어요.
- ... 당신의 삶을 두고 저는 차마 '인생의 우연성' 같은 말을 꺼낼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언니의 삶에서 언니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없으니까요. 언니의 삶은 차라리 '사회의 필연성'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제 삶을 두고 번민할 수 있었던 것조차 언니의 삶 앞에서는 사치일 거예요.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파요.
언니, 우리 똑똑한 언니,
울고 또 울었을 언니.
언니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나는 것을 멈추기가 힘듭니다.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를 넘나들고
파란 난새가 채색 난새와 어울렸구나.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하여라.
- 허난설헌 「꿈에 광상산에 노닐다」
- 언니, 언니는 시를 하나도 남기고 싶지 않았겠지만. 그 모든 게 저주 같았겠지만, 언니의 시가 이렇게 아직도 남아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요. 언니가 불태우고 싶었던 언니의 시는 재가 되지 않고 저 같은 사람들의 소지(燒紙)가 되었답니다.
거긴 어때요?
당신은 바라던 대로 신선이 되었나요?
초희 언니. 초희 언니.
- 언니,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해?
- 언니,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무서워. 그래서 자주 언니를 불러. 어떤 사람들이 간절한 순간에 신을 찾는 것처럼 나는 언니를 불러.
- 그리고 언니, 언니 대신 내가 태어나서 미안해.
- 우리는 항상 앞서간 누군가에게 빚을 지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요.
- "정확한 것이란 항상 상대적인 것이고, 그러나 정확한 것을 탐구하는 과정이 중요하고, 그 과정 자체가 정의롭다고 할가. 포기하면 끝이야. 동생아, 살아서 다시 보자."
- 나는 누군가가 정성껏 잘게 씹어 뱉어주는 부드러운 유동식 버전의 당신 이론들로도 충분히 나의 지적 허영을 채울 수 있습니다.
- 무엇이 인간의 고통을 심화할까요? 저는 재난 그 자체보다도 그것을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상황들,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부정하게 만드는 조건들이 고통을 심화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나의 고통을 인정받지 못하다 보면 당사자조차 스스로의 고통을 의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고통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고통은 이야기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달빛에 반짝거리는 냇가에 다다르자 언니들은 한복 저고리와 치마를 벗고 하얀 속치마만 입은 채로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물에 동동 뜬 하얀 속치마는 달항아리같이 부풀었어요. 그 사이로 달빛은 빛났고 언니들은 까르르 웃었어요. 그때부터였어요. 인생의 한 조각 아름다운 순간을 보면 애잔한 마음이 먼저 밀려오는 게.
우린 이렇게 사랑하고 웃고 그러다가 죽겠지. 헤어지겠지.
- "사는 것도 마찬가지야.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적응한다고? 오, 그건 참 오만한 생각이야. 내가 태어남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적응하느라 애먹었을 뿐이지. 엄마, 아빠, 그리고 형제의 삶이 나로 인해 송두리째 바뀌었으니까. 나야 뭐 자고 먹고 싸기나 했을 뿐. 그래서 이렇게 생각해. 내가 세상에 적응하고 있는 만큼, 세상도 나에게 적응하고 있다고."
- 남을 위해 버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지요. 저는 그냥 저를 위해 살 뿐입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제 안에 없던 감정이 생겼어요.
- 하지만 알겠어요. 그는 감사하다는 말을 들으려고 가방을 닫아준 게 아니라는 것을.
- 자료나 경험담을 찾기가 힘들었다고 답했더라고요.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3박 4일 같이 밤을 새우든지, 아니면 고작 '행운을 빈다'는 말 한마디를 건네든지 둘 중 하나겠더라고요. 왜냐하면 그가 걷게 될 길은 제 길과는 같은 듯 사실은 완전히 다른 자신만의 가시밭길이기 때문입니다. 제 구체적 경험은 별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 아마 케이트 윈슬렛에게 그건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을 거예요. 그냥 케이트 언니 눈에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벌어질지도 모르는 수많은 일들, 이미 자신의 인생에 일어났던 끔찍한 경험이요. 친하고 안 친하고를 떠나서, 그냥 그런 일이 또 일어나게 놔둘 수 없는 거예요.
- "주인공 당사자에게 말할 수 없는 생각이라면 다큐멘터리에 담아서는 안 된다. 나의 질문이 주인공에게 어떤 의미일지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 "당신에게 슬럼프가 왔다는 것은 이미 잘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따로 극복할 건 없고 하던 대로 꾸준히 된다."
- '내 인생에서 이렇게 크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올까?'
- "지금은 높은 타격점에서도 방향을 조절하며 공격하는 선수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나도 새로운 지점으로 또다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저는 이 책에서 언니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언니는 오래된 관행이나 남들이 가는 길에 늘 의문을 품었어요.
- 언니가 기존의 관행을 깨부수고 경로 의존성에서 벗어나 모험을 감행하지 않았다면 오지 않았을 미래를, 우리는 지금 살고 있습니다. 모험엔 늘 위험 요소가 존재하지만 모험을 떠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 모험의 끝에는 생각보다 더 많은 기회와 가파른 성장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언니의 여정을 통해 깨닫습니다.
- 지금은 좀 다릅니다. 어차피 모두를 위한 정답이란 없다는 걸 받아들였어요.
- 나의 몸을 '보이는 몸'으로서 인식하는 것과(그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아도) '기능하는 몸'으로서 인식하는 건 굉장한 차이입니다.
- 봄을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다른 계절은 그렇지 않은데 유독 봄에는 내성적이 되는 것 같아요. 봄을 타는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밖이 아름다워서 안쪽으로 고이는 것들을 즐기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자신의 위치를 알고, 가진 힘과 정성을 선한 일에 기울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한 일인지요.
- 그때 재일코리안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제가 얼마나 많은 말실수를 했을까 생각하니 머리에서 땀이 나는 것 같습니다만, 언니는 한 번도 저를 비난하거나 가르치려 드는 법이 없었습니다. 제가 자연스럽게 질문할 거리를 찾도록 '항시' 도와주었지요.
- 태어난 곳의 나라 이름은 일본인데, 부모의 국적은 조선이고, 찾아보니 조선이란 나라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분단된 지 오래고, 살고 있는 일본에선 투표권을 포함해 여러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운데, 여권이 없으니 일본 바깥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그야말로 혼란의 카오스였을지도 모르겠어요.
- 서경식 선생은 그 일본 친구의 대답에서 '문제가 없는데 신경 쓰는 네가 문제다'라는 속뜻이 읽힌다고 하더군요. 문제가 없는데 신경 쓰는 너의 문제. 사회적인 차별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신경 쓰지 말라는 말로 문제를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 게 더 큰 문제겠지요.
- 이 편지를 읽는 당신에게도 식물이 전하는 위안이 전해지길 바랍니다.
-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여 알게 된 당신 이야기의 골자는, 내가 내 몸에 갇힐 수밖에 없을지라도 갇히지는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당신이 무슨 얘기를 시작했고 그 얘기가 누구의 목소리를 들리게 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 "(도서관에는) 착한 영혼들이 행진해 들어왔고, 그들과 함께 몇몇 좋지 않은 영혼들이 몰래 숨어 들어왔지만 우리는 그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라는 언니의 말도 기억할 거예요.
- 제가 열 살이지만 이렇게 성숙한 문체로 편지를 쓸 수 있는 건, 언니도 아시겠지만 저는 열 살 때 이미 영화 <셀부르의 우산>(1964) 마지막 장면을 보고 오열하며 인생의 허망함을 배우고 '마음대로 사랑하고 마음대로 떠나가신'으로 시작하는 <카츄샤의 노래>를 노을 지는 옥상에서 목이 터져라 부르며 이런 엿 같은 사랑은 하면 안 되겠구나,를 온몸으로 깨우친 영특한 아이기 때문입니다. 기억 나시죠?
- 하지만 언니는 생각합니다. 어떤 한쪽 면만 보고 받은 영향이라고 해도 그것이 언니 삶에 끼친 영향이 크다면 거기에 대해 솔직히 쓰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 그리고는 황진이 같이 멋지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마음에 새겨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멋진 남자들을 발밑에 거느리며 그들에게 묶이지 않고 마음껏 자유롭다가 존경할 만한 남자를 만나면 소중히 사랑해주고 예술을 아끼며 독립적으로 내 삶을 살아야겠다고.
- 우습게도 어떤 사진들은 버리기 위해 올리고 싶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만화에도 쓴 말이지만, 누구나 사는 동안 목격자를 필요로 한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사람에게는 오로지 나 자신만이 알고 느낀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은, 타인에게 보여주거나 말해주어야 비로소 그 일이 있었다고 소화해낼 수 있는 이상한 마음이 있는 것 같거든요. '아무도 없는 숲에서 나무가 쓰러지면 소리가 날까?'라는 오래된 철학 질문을 닮아 있기도 하네요.
- 며칠 전에 만난 필리핀 선생님은 싱글맘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일을 한다고 해요. 새벽에 수업을 여는 필리핀 선생님 중에는 혼자 아이를 키우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아이가 일어나기 전에 수업을 하고, 아이를 재운 후에 수업을 해요.
그럼 잠은 언제 잘까요? 선생님은 말해요. "난 잠은 안자. 난 낮잠만 자."
어제 새벽 세시에 제 수업을 맡은 또 다른 필리핀 선생님은 제게 물었어요.
"거기 두시 반 아니에요?" "맞아요." "지금까지 안 자고 뭐해요?" "그러는 선생님은요...? 거기도 새벽이잖아요."
이웃이 모두 자는 시간에 선생님도 나도 깨어 있는 게 좀 웃기고 애잔합니다.
- "오! 나는 거꾸로 생각했어. 나는 내가 새로운 지역과 새로운 사람들에게 적응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나에게 적응하는 거라고 생각했는걸? 그리고 나는 그것을 도울 뿐이라고. 전학생이 오면 뭔가 신비롭고 긴장되지 않아? '뭔가 달라졌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지. 안 그래? 전학생이 온 날은 다른 날에 비해 조금 더 특별하잖아. 새로운 사람으로 인해 우리는 변화를 겪게 되지. 그래서 나는 조금 들뜨고 긴장하곤 했어, 전학생보다도! 반대로 내가 전학생인 경우는 쉬웠어. 나는 그곳에 균열을 가져오는 조금 특별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고, 기존 세계는 이 균열에 적응해야 했지."
- 나는 여자가 서른이 넘으면 저 정도 확신이나 투지를 가질 수 있구나 감탄했어. 또 언니는 누구보다 열정적이었지. 자기 기대에 못 비치는 결과에는 숱 많은 머리를 쥐어뜯거나 눈물을 뚝뚝 쏟았고 그러다가도 작은 성취에 입이 찢어져라 웃어서, 사실 나는 언니가 좀... 미쳤다고도 생각했어...
- 그런 내가 그 시절 언니의 나이가 됐다. 나보다 어린 이들이 반짝거리며 나를 스쳐갈 때, 전만큼 빠릿빠릿하지 못한 스스로가 답답할 때마다 언니를 생각해. 나중에서야 그때 실은 무척 절박했다고 고백하던 언니를. 이십 대가 바글대는 어학원에서 분투하던 삼십 대 초반 언니의 마음 같은 걸 생각하면, 냉방이 너무 강한 카페에 카디건 하나 없이 앉아 있는 것 같아져.
- 언니는 그런 게 어딨느냐고 하겠지. 그런 말 말라고. 야, 넌 쓸데없는 생각이 너무 많다고. 원래 언니는 그런 거라고, 그냥 그렇게 저물어가는 거라고. 알아. 그냥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내.
- 그러다 문득 작가의 일기는 어떨지 궁금해졌어요. 메이슨 커리의 <리추얼>(책읽는수요일, 2014)이라는 책에서 언니가 열한 살부터 자살한 그날까지 평생 일기를 꾸준히 썼다는 걸 알았어요.
- 자기 일도 바빠 죽겠는데 남을 가르치고, 실수를 봐주고, 이끌고, 백업해주고, 그는 그래야 하는 걸까. 내 앞길도 캄캄한데 누가 고민 상담을 청하면 들어줘야 하는 걸까. 분위기가 다운되면 끌어올려보려고 농담을 했다가 후회하거나 할까. 더 이상 서투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더 몰아붙이곤 하다가 몰래 지치고 씁쓸해질까. 전 어느새 누군가의 언니가 되었어요.
- 그렇게 거리를 두는 제 앞에 종종 반짝이는 눈망울로 "버텨주세요!" 하고 외치는 분들이 생겼습니다. 전 홍대의 토템이 된 걸까요?
- 아. 저는 요즘 업계 여성들에게 불쑥불쑥 말을 겁니다. 왠지 제가 5년 전에, 10년 전에 느꼈던 감정을 통과하고 있는 듯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요. 세상엔 참 함정이 많죠. 늪도 많아요. 예술계 또한 그렇습니다. 그래서 뾰족한 수도 없으면서 밑도 끝도 없이 말을 겁니다.
- 강연 중간에 수전 브라운 밀러의 책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에 관해 이야기했었어요. 법, 대중문화, 전쟁, 정신분석 등 거의 모든 영역에 결친 방대한 자료를 망라해 범죄행위로써의 강간을 역사화하는 이 책에 관해 말하자면 4주 세미나로도 모자라기에(그리고 그날 이미 꽤 길게 말했기에) 여기서는 자세한 소개를 생략하겠습니다만, 마지막 장에서 간격을 외친 그가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는 체계적인 자기 방어 훈련이며, 그런 훈련을 통해서만 금지에서 유래한 우리 내면의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여기서 말하는 "금지에서 유래한 내면의 장애"는 "때리는 것에 대한 금기"를 뜻합니다)고 말하며 주짓수와 가라테 훈련을 받은 경험에 관해 쓴 부분은 한번 더 언급하고 싶어요. 그 대목을 읽다가 제가 얼마나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는지 이야기했던가요?
- 흔히 듣는 말이잖아요. 주짓수 도장 전단지에 쓰여 있을 법한, 이 책을 안 읽어도 생각할 수 있는. 그러니까 600면이 넘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만난 어떤 제언이 맥 빠질 정도로 단순했는데, 그 단순함이 역설적으로 만들어낸 통렬한 마음의 요동이 있었어요. 그렇구나.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누구보다 집요하게 연구하고 고민했던 브라운 밀러가 가닿은 지점도 결국 이곳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