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024)

[우다영, 조예은, 문보영, 심너울, 박서련]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

일루젼 2022. 4. 19. 04:44
728x90
반응형

저자 : 우다영/조예은/문보영/심너울/박서련
출판 : 허블
출간 : 2022.04.05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음


       

이번 서포터즈 활동 작품은 두 권 모두 너무 좋다.

특히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은 한동안 쉬고 있던 SF 소설이라 그런지 홀린 듯이 읽어 내려갔다. 모든 작품이 저마다의 빛깔로 반짝인다. 

이런 조합의 단편집이라니! 이어질 장편들에 대한 기대 또한 크다.

 

다섯 작품 모두를 관통하는 주제가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하다. 굳이 집어보자면 '초월'일지도 모르겠다.

 

박서련 작가의 말처럼 SF는 현실과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그 세계관 안에서는 당연한 원칙이어야 한다.

그 '다름'이 현실과 겹쳐질 때, 독자는 매직아이처럼 떠오르는 '낯섦'을 즐긴다. 때로는 그것에 현실의 부조리를 드러내기도 하고, 꿈꾸던 이상을 가리키기도 하고, 곧 다가올 근 미래를 예측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SF에는 언제나 '인간'이 있다. 단 한 명의 지구인도, 포유류도 등장하지 않는 SF라 할지라도, '우다영' 작가가 <긴 예지> 안에서 표현했던 것처럼 그 안에는 '인간의 시선'이 반드시 존재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SF'다.    

 


 

긴 예지 :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면, 미래를 느끼는 것은 어떨까? 양자역학과 신비학이 녹아들어 있는 이 단편은 특유의 색감이 느껴져서 더욱 좋았다. 어쩐지 '문목하'의 <돌이킬 수 있는>이 연상되던 초입부터 근원으로 회귀하는 결말까지, 묘하게 차가우면서도 따스한 느낌. 처음 만난 작가 분에게 반해버렸다.

          

돌아오는 호수에서 : 여섯 글자는 무엇이었을까. 무엇이든 받아들여 삼키는 호수는 그 자체의 현실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무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깨끗하고 맑은 수면 아래로 삼켜진 것들이 무엇이 되어 돌아올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다시 마주하고 싶은 기억이 있다면, 그렇다면...

 

슬프지 않은 기억칩 : 타인의 기억을 이식받아 곱씹고 곱씹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는 내가 그인지, 그가 나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 '나'를 구성하고 있는 위태로운 토대가 쌓여온 기억과 경험들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기억'은 가장 본질에 가까운 조각일지도 모른다. 나는 기억이 사라지면 입맛도 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유전적인 알러지는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연구가 더 필요하다.)

거기에다 똑같은 기억을 나눠가진 이들이 일종의 독서모임처럼 모여 기억들을 재해석한다면? 그런데 그들이...?

작가 후기에서 등장하는 '가짜 일기'가 매우 흥미롭다. 지속적으로 쓴다면 어느 순간 가공된 기억이 자리를 잡게 될지도...

 

커뮤니케이션의 이해 : '김보영'의 <얼마나 닮았는가>의 초인들이 떠오른다. 마블 히어로와 COVID-19가 뒤섞인 듯한 세계관. 심너울 작가는 일종의 증강현실처럼 현실에 기반을 두되 살짝 비틀어 보는 능력이 강점인 듯하다. 그러면서도 세부적인 설정은 매우 현실적이라, 거기서 오는 갭 차가 흥미롭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내 안에 가지고 있는 조각들을 최대한 그와 닮게 그러모으는 것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 결국 자신의 세계를 넘어서서는 감각할 수 없는 것이다. '대화'란 그렇게 공허하다. 

 

이다음에 지구에서 태어나면 : 지구가 다른 행성의 사후세계라면. 그렇다 해도 취업과 생활고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곳이 지옥인지 천국인지는 이 세계에 속한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에서 기본 설정을 차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위로 얹혀지는 문장들은 은빛이다. 부디 어서 본편으로 만날 수 있기를. 

 


 


  우다영, <긴 예지>

조예은, <돌아오는 호수에서>

문보영, <슬프지 않은 기억칩>

심너울, <커뮤니케이션의 이해>

박서련, <이다음에 지구에서 태어나면>

 

 

 

-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은 장르 작가와 비장르 작가를 구분하지 않고 SF를 선보이는 허블 초월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며, 시리즈의 출간 예정작 다섯 편을 선정해 그 프리퀄에 해당하는 중·단편 SF를 모은 앤솔러지다. 시리즈의 제목이자 책의 제목에도 포함된 '초월'이라는 단어는 "어떠한 한계나 표준을 뛰어넘음(超越)" 그리고 "초승달(初月)"이라는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허블은 이 시리즈가 한국문학의 장르와 비장르 경계를 뛰어넘는 도전의 장, 데뷔 연차와 상관없이 모든 작가가 자신의 첫 SF 세계를 선보이는 탄생의 장이 되기를 바라며 '초월'이란 제목을 선택했다. 이 책에서는 '초월'의 뜻이 하나 더 추가되는데, 바로 "시공간 초월"이다. 시리즈의 출발점이자 다섯 작가가 창조한 SF 세계의 출발점이기도 한 이번 중·단편 SF들은 아직 존재하지 않은 장편 SF에 대한 속편이다. 즉, 미래에만 존재했어야 할 세계가 시공을 초월해 현재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나 시공간 초월 정도에 그렇게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SF 세계에서 시공간 초월 정도는 평범하게 일어나니까.

 

 

더보기

- 어떤 시기에는 며칠 밤낮을 꼼짝하지 않고 뉴스와 그 관련 영상을 찾아봤다. 놀랍게도 세계의 모든 대륙에서 전쟁과 폭동과 테러가 일어나고 있었고, 재해와 질병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효주가 보기에 지구는 곳곳이 곪은 한 알의 사과였고 이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무섭게 치닫고 있는 결과는 단지 국지적인 위태로움에 한정되지 않았다. 이것은 명백히 사과 전체의 죽음을 암시했다. 효주는 탱크와 다연장 로켓포와 지뢰가 작동하는 전쟁터에서 가족과 터전을 지키기 위해 소총을 든 투기 넘치는 사람들의 영상을 보았다. 그리고 영상 아래, 그들이 모두 며칠 전 폭격을 받은 방송국 지하에서 이미 사망한 이들이라는 글을 읽은 뒤 가슴이 내려앉았다. 몇 년 전 다른 여행지에서 그 나라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짧은 대화에서 그가 의대에 진학하기 전에 세계 여행을 하는 중이며 어릴 적 네 번의 심장 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지막 수술을 받기 전 그를 심폐소생술로 살린 의사가 당시 얼마나 희박한 확률에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이야기하며 공포와 경이로 물들던 얼굴, 미래의 전쟁이나 피난 같은 건 조금도 떠올리지 못하던 어리고 무구한 얼굴을 기억했다. 효주는 자신이 세상 곳곳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며 기웃거리지만, 결국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이내 다시 자신의 차가운 아파트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곳에서 효주는 늘 혼자였다.  

 

- 효주가 사회적인 의미로 다시 밖으로 나온 것은 반년만의 일이었다. 쓰레기봉투를 들고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거울 옆 공고란에 붙은 구인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전단지 사이에서 유일하게 자필로 쓴 글씨라 무심히 따라 읽기 시작했는데 주중 하루 두 시간씩 여섯 살 쌍둥이 자매를 돌봐줄 단지 내 베이비시터를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거기까지 훑었을 때 곁에 있는 줄도 몰랐던 여자가 불쑥 자기가 쌍둥이 엄마라고 말을 걸었다. 붙임성 있게 웃으며 아이들이 순하고 겁이 많아 장난도 심하지 않다고, 유치원 하원 차가 단지 안까지 들어와 내려주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와 함께 간식을 먹으며 놀아주는 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효주는 여자가 곧 사라질 것 같다고 생각했고, 이어 정말 무서운 생각을 했다는 죄책감을 느꼈다. 여자는 귀여운 아이들이니 일단 한번 만나보라고, 그러지 말고 지금 올라가서 차나 한잔하자고, 나 좀 살려달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효주는 여자가 물에 빠진 사람처럼 느껴져 그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 효주는 쌍둥이 중 동생이 계속해서 일곱 개 내지 여덟 개의 볼을 맞히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봤다. 똑같은 얼굴의 언니는 겨우 두 개 내지 세 개를 맞힐 뿐이었다. 동생은 한 게임이 끝날 때마다 엄마를 바라보며 그림을 완성하거나 장난감 박스를 다 정리했을 때처럼 칭찬받을 준비를 했다. 여자는 그때마다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잊지 않고 언니도 품에 꼭 안아주었다. 효주는 여자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아무런 이상함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런 단서도 없이 베일 너머에 있는 수백 가지의 답 중 하나를 직감으로 알아맞히는 아이가 있고, 그 아이와 유전적으로 또 후천적으로 거의 동일한 조건에 놓인 쌍둥이 언니가 다른 결과에 직면한다는 것. 이 상태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 효주는 이전에도 비슷한 상황을 마주한 경험이 있었다.  

 

- 남자는 양해를 구하듯 효주를 천천히 뒤로 물리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문을 닫고 마주 서자 그는 의외로 효주의 또래로 보였고 초대받은 손님처럼 편안해 보였다. 남자는 사무적인 태도로 말했다. 
"29세. 직계가족은 없으며 독거 중, 무교, 특정 단체 소속 확인되지 않음. 특이하게도 대학에서 미학을 전공한 뒤 코인 거래소에서 일한 이력이 있으시네요."

"똑같이 패턴을 보는 일이니까요."
남자가 흥미롭다는 듯이 효주를 바라봤다.

- 그는 방 안을 둘러보다가 침대 옆에 놓인 정육면체 모양의 원목 협탁을 가리켰다.
"저 안에 뭐가 들었죠? 문을 열지 않고 알 수 있습니까?"
“거기에는..."
"선생님이 그것을 아는 방법은 과거에 저 안에 무얼 넣어두었는지 기억하는 것이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기억이라는 경로를 통해 대상을 보는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 식으로 사고합니다."
효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계속했다.
"그렇다면 한 가지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과거에 겪었던 일을 떠올리듯이 미래에 겪게 될 일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방법을 택할 수도 있을 겁니다."
남자는 걸어가 협탁 전면에 달린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몇 권의 소설책이 들어 있었다. 그는 다시 문을 닫고 제자리로 돌아와 협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저는 문을 열지 않고도 저 안에 든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책이 들어 있군요."
“방금 문을 열고 확인했으니까요."
효주가 지적했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았다.
"문을 열어보기 전의 저에겐 문을 열어본 지금이 미래겠죠. 지금의 저는 방금 전 과거에 문을 열었던 경험을 떠올리는 방식으로 협탁 안에 든 물건을 알고, 반면 과거의 저는 미래에 문을 열게 될 제 모습을 떠올리는 방식으로 협탁 안에 든 물건을 아는 겁니다. 미래를 안다면 이런 식으로 사고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으니 그런 식으로 사고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잖아요."
"미래는 왜 알 수 없죠?"
"그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까요."
"바로 그겁니다."
남자는 손을 들어 효주의 안에 무언가가 보인다는 듯이 똑바로 가리켰다.
"미래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 사람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한 그 믿음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 이들이 있습니다."

- "근래 모든 일에 무기력해지지 않으셨나요? 이유 없이 무력감을 느끼고 어딘가에 묶여 옴짝달싹할 수 없는 기분은요?"
효주는 소름이 끼쳤다.
"점점 더 심해질 겁니다. 위험한 충동을 느끼시겠죠? 모든 것을 끝내버리고 싶다는 마음 말입니다. 처음에는 일상을, 그리고 주변을, 나아가 삶을 정리하려 들 겁니다. 그런 충동을 느끼는 건 실제로 그런 충동을 느낄 만한 미래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게 무슨...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말하자면 그 무기력증 또한 예지의 일종이라는 겁니다. 자신이 미래를 본다는 자각이 없는 예지자들에게 흔히 생기는 증상이죠. 그들은 기분이나 욕구로 예지에 대한 반응을 보입니다."
효주는 혼란스러워하며 물었다.
"이 모든 게 예지라면, 대체 어떤 미래를 봤다는 거죠?"
한순간 남자의 얼굴에 절망감이 스쳤다. 절망감이라고? 효주는 그가 입을 열길 기다렸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남자는 돌아서서 거실 한쪽 구석을 향해 걸어갔다. 

 

- 남자가 효주의 인생에서 사건과 인과를 선별해 하나로 이어 붙이자 그것은 이제 세상에 존재하는 새로운 이야기가 되었다. 그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며 효주가 살아온 삶 그 자체가 되었다. 효주는 한순간에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만든 남자에게 증오를 느꼈고 그를 영원히 미워하리라고 예지했다. 

 

- 효주의 적의를 긴장감으로 읽은 도경은 센터에서 필요한 이런저런 숙지 내용을 전해주었고, 여전히 효주가 아무 말이 없자 자기 이야기를 떠들기 시작했다. 도경의 어머니가 점을 칠 때 사용하던 찻잎에 대한 이야기였다. 따뜻한 유리 주전자 속에서 얇고 부드럽게 펼쳐지며 느리게 휘돌던 암갈색 리본들, 궤적을 따라 연기처럼 퍼지던 붉은 빛깔의 꼬리들. 얼핏 보면 그저 마구잡이로 뒤섞이고 있는 작고 연약한 물보라를 그의 어머니는 길이 있는 지도처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고 했다. 

 

- "당신이 선택하지 않은 길은 애초에 모두 막혀 있고 단 한 번이라도 다른 선택을 했다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을 겁니다. 테스트는 의도적으로 2의 49제곱 분의 1의 확률인 유일한 길을 맞혀보라고 요구하지 않고 그저 길을 나아가라고 지시함으로써 당신의 예지를 자유롭게 한 거예요. 예지를 가로막는 건 다름 아닌 스스로 만든 벽이라는 걸 꼭 기억하세요." 

 

- "늘 느끼지만 예지는 도무지 알고 싶은 걸 알려주지 않네요." 

- 정말 사흘째 되었을 때 변화가 생겼다. 효주는 더 이상 눈앞에 놓인 갈라진 길의 양쪽을 쳐다보지 않았고, 저곳에 길이라는 개념의 공간이 있다는 것도 떠올리지도 않았으며, 자신이 지금 이곳에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얼마 후에 예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알게 되었지만, 바로 그것이 예지에 임하는 기본 태도였다. 선형적인 인과의 조건들을 모두 잊는 것. 예지는 정답인 길을 알아맞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음 길 위에 있는 자신의 위치와 상태를 보는 것이다. 그것은 눈앞에 존재하지 않고, 머릿속이나 마음속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미래에 존재한다. 효주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그저 보는 방법을 어렴풋이 터득했다. 물론 본다는 것은 은유적인 표현이었다. 효주가 느끼기에 미래는 보이지 않았고, 보이지 않지도 않았다. 마치 잠을 자려고 누워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애쓰지만 끝내 떨칠 수 없는 느낌과 비슷했다. 시야의 가장자리에 무언가가 붙어 있는데,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 뿐 도무지 그것을 정확히 볼 수 없는 처지와 같았다. 그러나 효주는 이제 미래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 항상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사실의 조합을 바꿔 다른 이야기로 만드는 그의 화법이 비열하게 느껴졌다. 그가 사람의 인생과 세상을 손에 넣고 주무르려 든다고 생각했다.  

 

- "사실 그렇습니다. 강력한 예지는 미래를 바꿀 수 있습니다." 

 

- 이것의 표준 집단을 충분히 모으면 가장 많이 중첩된 사탕들을 먹는 행위가 미래로 결정된다. 이 예시 역시 최소한의 단위로 축소한 것이고, 실제로 시뮬레이션 안에서 예지자들이 마주하는 상황은 훨씬 더 고려 사항이 많은 유기적인 복합체다. 하지만 모두 원리는 같았다. 예지의 중첩이 미래를 결정했다.
"그리고 또 흥미로운 결과가 눈에 띈 겁니다. 일단 과반수의 예지가 한쪽으로 쏠리면, 그러니까 최종적인 분포에서 결정될 미래가 확정되면, 후에 시뮬레이션에 응하는 예지자들의 예지는 모두 다 확정된 미래를 그대로 보았습니다. 놀랍지 않나요? 관측된 예지의 중첩이 그저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생성하는 거라면, 또 미래의 확정성이 예지를 결정짓는 거라면, 명제는 이렇게 다시 정의될 수 있습니다. 예지와 미래는 이미 존재하지만 여러 가지 가능성이 중첩된 채 동시에 존재하며, 예지와 미래가 서로의 확정에 영향을 끼친다.

 

- 이름은 일종의 주술이다. 사람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혹은 갓 태어난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준다. 사라-17이 보기에 그건 북상하는 태풍에 이름을 붙이는 것과 같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사람들은 이름을 붙인다. 별 관련도 없는 메기, 날개, 장미와 같은 이름을, 태풍은 어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태풍이 언제 장미라는 이름을 가져보겠는가? 대상에 대해 잘 모르면서 이름 짓기, 본질과 상관없는 별명 짓기, 무관한 두 대상을 연결하기. 사라-17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일종의 작은 파티였다. 인간답지 않아서 아름다운, 이름이란 예감이자 소망이다. 

 

- 혹은 기억을 액체로 만들어 타인에게 주사하면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더 많이 느끼게 될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단지 '아, 고통이 그 청도였구나' 하고 청도를 가늠할 뿐, 그 기억을 자기 것처럼 여기진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조금은 희망을 품었다. 
 

- <슬프지 않은 기억칩>을 쓰면서 내가 빠져 있었던 건 가짜 일기 쓰기였다. 리스본에 가고 싶은데 현실이 따라주질 않아서 리스본 가이드북을 쌓아놓고 읽었다. 구글 맵을 켜놓고 거리뷰를 보며 일기를 썼다. 리스본에 관한 진짜 기억이 있는 사람처럼 굴었다. 리스본의 언덕을 올라본 척했고 과자 가게와 노란 전차를 실제로 본 척했다. 나중에는 친구가 생겨서 함께 여행을 다녔다. 그 친구와 나눈 대화들은 모두 나의 혼잣말이지만. 가짜 일기를 쓰다가 깨달은 건 가짜 일기 속 대화가 나의 혼잣말인 것처럼 소설도 하나의 거대한 혼잣말이라는 사실이다.

 

- 내가 왜 가짜 일기에 매혹되었지 모르겠다. 현실이 부족해서 현실을 수혈받고 싶었던 걸까. 진짜 기억보다 가짜 기억이 더 편해서였나,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였나. 나는 어디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걸까? 가보지 않는 세계에 관한 가짜 일기를 쓸 때의 기분은 SF를 쓸 때의 기분과 유사하다. 다만 SF를 통해 그리는 그 세계가 내가 가고 싶은 곳인지, 피하고 싶은 곳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세계가 나와 관련이 있기에 쓰는 것인지 무관하기에 쓰는 것인지, 현실이 부족해서 쓰는 것인지 현실이 범람하기 때문에 쓰는 것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과 무관하게 쓰는 것인지도 아직 모르겠다. 더 써봐야 알 것이다.  

 

- 최도혁은 권효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권효성은 두 번 생각하기의 이점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머릿속에 어떤 신념이 새겨지면, 그 신념을 웬만해서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그리고 최도혁은 권효성이 결코 그런 생각을 자기 혼자 해내지는 못했으리라는 걸 알았다. 

 

- 최도연은 허망하게 한 번 웃고는 주저앉았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오빠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이주린이 웃으면서 다가왔다.
"꼬마야,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사람은 자기 원하고 싶은 대로 원하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니까. 네가 생각을 바꿀 사람이었으면 네 오빠가 무슨 말을 하건 알아서 바꿨을 테고, 아니었다면 무슨 말을 해도 못 바꿨을 거야."
최도연이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있다가 말했다.
"그럼 대화는 왜 하는 거죠, 상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희망이 없다면?"
"소통을 했다는 환상을 누리려고? 꼬마야, 사람을 바꾸는 건 말 몇 마디가 아니라, 사건과 경험이야. 너는 분명히 바뀌었지. 네 오빠의 죽음을 헛되이 하고 싶지는 않겠지?"

 

- 물론 보낸다는 직원은 다름 아닌 나, 규모가 큰 여행사인 척하려면 가끔 3인칭 화법을 써야 한다. 직원을 보내는 사람은 나, 보내지는 직원도 나. 고객은 그 사실을 알 리 없고 알 필요도 없다. 내방 고객에게도 여기가 번듯한 기업의 지사 중 하나인 것처럼 애매하게 소개하곤 하지만 사실 여기가 본점이며 유일한 지점이다. 거물 고객들을 맡아 큼직큼직한 일들을 하니까 큰 회사가 맞고 실제로 몇 명이 일하는 지점이 몇 개든 큰 회사답게 해야 한다는 것, 그건 대표가 귀에 못이 박이도록 해대는 소리기도 했다. 어차피 내가 공항에서 명함을 내밀면 전화를 받은 사람이 여기에 직접 왔구나 하고 고객도 깨달을 텐데 왜 꼭 그래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지만 이 회사가 일하는 방식을 아직 알 리 없고 굳이 알 필요도 없는 오손 닐바, 예비 고객은 순진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 공항철도가 바다를 지나는 동안에, 한겨울 잿빛 바다를 무심히 수놓은 윤슬의 빛들이 시속 150킬로미터로 따라오는 것을 내다보는 동안에 내가 하고 있던 생각은 온통 그랬다. 
'이게 맞나?'
'다들 이러고 사는 게... 맞나?'

팀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실적 경쟁이 알게 모르게 있다 보니, 나를 제외한 팀원들끼리도 은근히 서로 견제하는 편이었다. 다만 그런 암투에 가장 서툰 사람이 나라는 것이 어쩔 수 없이 표가 날 뿐. 팀원들이라고 나를 마냥 쉽게만 생각하는 것도 아닌 듯했다. 예란 님은 참 곁을 안 내주는 사람이네요. 언젠가 어느 팀원이 했던 평가를 나는 문득문득 곱씹곤 했다.  

 

- 그럼에도 메란드가인들이 지구에 크나큰 애착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자명했다. 지구는 메란드가의 사후 세계라고 하므로.
출근길 창밖으로 보이는 고급 브랜드 아파트가 한 동통째로 우주로 발사되는 광경을 나는 상상했다. 다른 행성을 관광하는 데에는 실로 그 정도 비용이 드니까, 그렇게 해서 갈 수 있는 곳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사후 세계라면? 그렇게라도 사후 세계를 체험해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겠지. 그게 지구에 오는 메란드가인들의 심정이겠지. 우주여행으로 천국 또는 지옥에 가볼 수 있게 된다면, 지구인들 역시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도전하려 하겠지. 

 

- 죽은 후에 가는 곳이 정말로 있는지, 어떤 사람은 가고 어떤 사람은 가지 못하는지 같은 것 역시 모두 비밀에 부쳐져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것을 믿고, 그중 어떤 사람은 그 비밀을 알아내는 데에 평생을 바치기도 하는데, 또 어떤 사람은 그것들 모두가 지어낸 얘기라 생각하기도 한다. 여기에 나만의 고유한 의견을 덧붙이기엔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

 

- 최초로 지구에 방문해 자기의 가족을 찾은 메란드가인은 외교관이었다. 메란드가 대사는 지구에 오자마자 이 낯선 행성 어딘가에서 자기 아이가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특유의 생체 파장을 감지해 내는 능력은 메란드가인들이 만드는 바이오 컴퓨터만이 아니라 그들 자신에게도 있기 때문에, 정확히 어디에서, 어떤 이들한테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가까이 가는 만큼 강하게 느껴지는 생체 파장의 특성을 이용해 결국 대사는 아이를 찾아냈다. 모든 일이 비밀리에 이루어졌으나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이 사연은 만천하에 알려졌다. 아이의 지구인 부모가 이 경험을 담은 수기를 책으로 펴냈기 때문이다.

(리뷰자 주 :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

 

- 우주 외교 시대 초기에 일어난 일이어서 지구인들은 자신들의 행성이 다른 어느 행성의 사후 세계라는 사실은 거의 잊고 메란드가인들의 아름다운 이방인 이미지만 기억하게 되었지만, 메란드가인이 환생한 지구인을 찾아와 벌어진 일이 종종 도시 전설처럼 전해지기도 했다. 어떤 메란드가인은 신생아의 부모에게 자기 재산의 절반을 주고 떠났고 어떤 지구인은 장애인인 자기 아이를 메란드가인에게 떠넘겼다. 메란드가인이 찾아왔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꺼림칙하게 여긴 부모가 학대를 저질렀다는 이야기도, 굳이 자기의 원수를 찾아 이 먼 행성까지 온 메란드가인이 다시 태어난 아기를 한 번 더 죽였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 내 생각에, 현실 세계와 다르거나 현실 세계에 없던 조건이 단 한 가지라도 이야기에 등장한다면 그것은 SF다. 가령 음성언어가 주류가 아니라서 춤으로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SF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조건은 공식적인 것이어야 한다. 주인공에게만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이 아니어야 한다는 말이다. 만일 서사 내에서 주인공에게만 이상한 사건이 일어난다면, 적어도 주인공은 그 현상의 최초 발견자로 알려져야 한다. 예를 들면, 두 작품 모두 신체가 식물로 변하는 기이한 현상을 담고 있음에도, 이유리의 <브로콜리 펀치>는 SF이고 한강의 <내 여자의 열매>는 SF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 이미 잘 알려진 일반론인데 내가 처음 발견한 양 호들갑을 떠는 것일 수도 있고, 기존의 정의와는 영 동떨어진 사유를 이야기하면서 모순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SF에 관해서라면 나는 독자로서도 저자로서도 이렇다 할 이력이 없어서 대표성이 있는 일반론을 제시할 자신 또한 없다. 따라서 애초에 내가 하려던 말은... 적어도 내가 쓰고자 하는 SF는 그렇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