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024)

[박초롱] 야망 있는 여자들의 사교 클럽

일루젼 2022. 4. 22.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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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초롱
출판 : 딴짓 
출간 : 2020.05.20 


       

<어른이 되면 단골바 하나쯤은 있을 줄 알았지>를 읽고 저자 박초롱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마침 리디셀렉트에 다른 저서가 떠 있길래 바로 이어서 읽었다. 이 책은 저자가 여러 명의 여성 활동가들을 만나 인터뷰한 것을 정리한 책이다. 박초롱의 시선으로 만난 '은유', '이서현', '은하선'은 반가우면서도 낯설었다.  

 

각자에게는 모두 각자만의 체험과 삶이 있다. 그럼에도 특정 조건의 사람들이 그룹화되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체험이 있다는 점, 그리고 그것에 유쾌하지 않다는 점은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부분이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한다면 세계는 그만큼 좁아질 것이다. -물론 다양성을 고려하면 삶은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해진다. 감수할 수 있는 만큼 받아들일 뿐이다.-

 

잘 살자. 잘 살아남자. 스스로의 삶을 온전히 책임지고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만났을 때, 그 만남은 더욱 편안하고 의미 있어질 것이다. 

      

 


 

- 나도 마찬가지다. 남성 작가들에게는 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내게는 편하게 하실 때도 많다. 

 

- 예전에는 무례한 질문에 대답해놓고도 내가 상대방을 무안하게 한 건 아닌가 고민하기도 했다. 혹은 더 친절하게 말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하기도 하고. 나는 이제 그런 걸 '착한 여자 귀신이 붙었다'고 한다. 여자는 늘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하고 웃는 얼굴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면화한 것 같다. 친절한 건 좋지만 선의가 늘 선의로만 통용되지 않고 여성비하적인 상황으로 변할 여지가 보인다면, 태도를 다르게 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 책임감이 있는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 정리 능력, 생활 능력을 갖추는 과정 같다. 스스로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일하면서 1인분의 온전한 독립이 가능한 삶. 좋은 직업을 갖고 일에서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을 잘 꾸려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삶의 균형. 그걸 위해 초기 세팅을 잘해뒀으면 좋겠다. 일상이 탄탄하지 않으면 삶이 쉽게 무너진다. 

 

- 은유 작가에게 글쓰기란 '직업'이라기보다는 '삶의 자세' 혹은 '수련'에 가까워 보였다. 그는 글쓰기가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거나, 법당 가서 백팔배를 하는 행위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성찰하면서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상처를 받은 후에는 어디를 다쳤는지, 어디가 아픈지 정리하고 마주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상처가 왜곡되어 타인에게 투사되고, 내면의 분노가 약자를 억압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단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작가는 요즘 자신의 언어를 가지지 못한 사람, 소외된 사람의 이야기를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들의 목소리를 이끌어내거나,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단다.

 

- 나는 꽤 엉덩이 가볍게 회사를 옮겨온 사람이라 과연 조언을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굳이 조언한다면 첫 번째는 회사에 적을 두고 있을 때, 하고 싶은 것들을 배우고 익히라는 것이다. 사이드잡이든 프로젝트이든. 내일배움카드 같은 것들도 재직자들을 위한 혜택이다. 자영업자가 되면 쓸 수 없다. 만약 창업에 관심이 있다면 회사 다닐 때 대출을 받아두는 편이 유리하다. 시작 단계 창업가들에게 주어지는 지원이나 대출도 한시적이다. 3년 후쯤 꼭 돈이 필요해서 알아보면 대출이나 지원금 규모가 확 줄어든다. 결국 요점은 회사에 있는 동안 작은 테스트들을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 이서현 대표가 말하는 야망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그 '야망'과 달랐다. 돈을 많이 벌고, 더 많은 사람에게 명성을 얻는 야망만은 아니다. 자신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규모가 작은 곳에서 일지언정 직접 제 손으로 일구는 것. 그 야망은 더 이루기 어렵다. 아무도 똑같은 길을 걸어본 적이 없기에, 노하우가 담긴 책도 없고 정답이 담긴 해설서도 없기 때문이다.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인터뷰를 위해 만난 여성들은 대개 '자랑할 수 있고' '물리적으로 부피가 큰' 야망보다 '내실 있고' '의미 있는' 야망을 꿈꾸기를 즐겼다. 사회적 인정보다 자신만의 만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듯 보였다. 그녀들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일까?

 

- 내가 야망이 있다니. 진짜 야망 있는 사람들을 못 봤나 보다. (웃음) 야망이 있다기보다 이상주의자라서 그렇게 보신 것 같다. 에브리마인드라는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는데, 양적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직원들이 만족할 만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야망이 더 크다. 그런데 그게 정말 힘든 목표인 것 같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내가 진짜 원하는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걸 남들이 야망이라고 보는 것 같다. 

 

- 서른이 되었을 때 40대를 위해 세 가지를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돈, 체력, 관계다. 세 가지를 10년간 준비하다 보면 좋은 40대가 올 거라고 믿는다. 사업하는 사람이다 보니 돈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더 고민하게 된다. 얼마 벌고 얼마를 투자할지도 중요하지만, 내가 돈을 어떻게 바라볼지가 고민이었다. 나는 돈에 감정이입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돈을 쓰는 것도, 잃어버리는 것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업가는 투자도 잘하고 리스크 감수도 잘해야 한다. 그래서 돈을 그냥 숫자로 바라보는 훈련을 하고 있다. 관계도 신경 쓰려고 한다. 나이가 들어도 친구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이 사람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면 '좋은 사람 100명 모임'에 부른다. 내가 만든 모임이다. 100명 중에 결이 비슷한 사람이 있으면 만나서 같이 논다. 등산도 같이 간다. 30대가 되면 이전 친구들하고 멀어지고, 직장 동료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다. 밖에서 사람을 만나고 싶어 지고, 제대로 된 친구를 만들기에도 좋은 나이다. 사람들이 독립이랑 의존이 양끝이라고 생각하는데 잘 의지하는 사람이 잘 독립할 수도 있다. 나는 아이를 안 낳을 생각이라 50년 후에 잘 의지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사람들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그런 연습을 하고 있다. 

 

- 앞으로 이런 일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우리가 어떻게 서로 지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만든 지 2년 정도 되었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만 악플에 상처받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잊어버려", "그런 애들한테 신경 쓰지 마"라는 말도 상처가 되었다. 셀프 디펜스를 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공격을 받으면 더 상처받는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자체만으로 위로가 되더라.

 

-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내 존엄이 훼손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머리끄덩이 잡고 싸운다고 해서 내가 덜 우아한 사람이 되는가? 싸워야겠다면 싸우는 거다. 

 

- 다만 방식이 다를 수 있는 것 같다. 일단, 왕 목을 베고 내가 왕이 되겠다는 방식이 있다. 남성이 가지고 있던 권력을 여성이 가지자는 거다. 그런데 내가 꿈꾸는 건 왕의 목을 베고 새로운 사회를 이루자라는 거다. (누군가 왕이 되지 않고?) 그렇다. 야망 있게 보이려면 사회에서 짜 놓은 야망의 틀을 밟아나가야 한다. 그게 지금까지 있던 자본주의 세상에 탑승하게 되는 거고. 그게 가부장제와 맞닿아 있다. 누군가를 착취하고 누군가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방식이다.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노동을 착취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게 아니겠나. 

(리뷰자 주 : <전지적 독자 시점>의 "왕 없는 세계의 왕".)

 

- 사회 변화에 있어 몸의 움직임이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하다기보다는, 이제까지 우리가 몸을 너무 경시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강의를 듣고 책을 읽고 토론하는 식의 이성 중심의 모임은 이미 활성화돼 있다. 몸의 언어는 하위이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다루기 때문에 몸져눕기 전까지 자신을 잘 돌보지 못하는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고 정보와 자극이 범람하는 시대에서 지속 가능한 일상, 사회운동을 추구하려면 자기를 돌볼 줄 아는 지혜로운 개인들의 관계망이 필수적이다. 더 이상 몸은 이성의 통제하에 도구화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사람 존재의 시작이자 끝, 근본이라는 것을 깨닫는 움직임이 일어나면 좋겠다. 대의를 달성하거나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끄는 것에 앞서 그 과정에 함께하는 몸들이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가 우선 아닐까. 몸의 지속성과 회복력에 대한 확신은 움직이며 변화하는 몸의 경험에서 비로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 내 몸에 대해서 잘 알고, 내 몸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타인을 대할 때도 어떤 도구로나 수단, 대상으로 대하지 않게 된다. 사회가 변하는 시작점이 된다.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할지 방향성을 논할 때 사람으로서 존중하는 '감각'을 회복하는 것을 우선 과제로 삼았다. 형언하기 어려울 때가 많지만 몸을 통해 경험하는 건 아주 근본적인 형태의 관계 맺기, 문화 형성의 작업이다. 몸을 움직이며 배우는 게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 여성뿐 아니라 참가자들의 몸의 맥락에 따라 움직임은 달라져야 한다. 파쿠르 교육을 하면서 느낀 점이기도 한데, 가르치는 사람 몸이 지도 방식의 기준이 되면 안 된다. 건장한 20대 남자 몸을 기준으로 교육하면, 다른 몸을 마주 대했을 때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계속할 수 있다는 막연한 격려(혹은 푸시)와 자기 경험에 대한 믿음만 가지고 교육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교육 방식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감각을 가진 사람은 여러 불편함과 한계를 느낄 수 있다. 그런 분들이 안전한 장이라고 느끼는 곳을 찾아 변화의월담에 올 때가 많다.

 

- 움직임 교육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끊임없이 다양한 경험과 실험, 배움을 해야 한다. 개개인의 우주에 맞는 언어, 접근 방법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끼는지, 힘든지를 알게 될수록, 타인에 대한 조심스러운 호기심과 섬세한 접근법도 생긴다. 

 

- 당신 몸은 항상 옳다고 말하고 싶다. 몸으로 아는 것. 피부로 느끼는 앎. 그게 가장 확실한 형태의 '앎'인 것 같다. 가끔 머리는 알아차리지 못해도 몸은 먼저 아는 것들이 있다. 몸은 늘 신호를 보낸다. 아프다거나 경직된다거나, 호흡이 희미해진다거나, 힘을 받는다거나, 몸이 신기하게 흐르는 느낌이라거나 등.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 여유가 필요하다. 그 여유는 물리적인 시간과 환경도 중요하지만, 그걸 초월할 수 있는 '관계'에서 나온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사람'에 대한 사랑이 순환하는 관계. 종종 스스로를 먼저 사랑하라고들 이야기하지만, 사랑을 받아야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도 알게 된다고 생각한다. 관계를 통해 다양한 형태와 방식의 사랑을 배워갈 수 있다. 

 

- 드렁큰비건 운영도 마찬가지다. 파트너가 요리사다보니 자연스럽게 가게 운영이나 사업을 할 만한 가능성을 찾게 되었다. 

 

- 계획한 것이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아서, 계획하는 걸 멈췄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나는 예중, 예고, 음대를 나왔다. 오보에를 계속했다. 음악을 계속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음악은 안 하고 작가나 사업가로 살고 있지 않나. 음악은 정말 열심히 했는데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에 반해, 방송과 글쓰기는 예상치 않게 반응이 좋았다. 내가 계획을 하거나 노력을 한다고 해서 어떤 일을 잘하게 되지는 않는다는 걸 깨달았달까.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남들이 내가 열심히 하는 걸 알아주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달까. 

 

- 심보선 시인은 산문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에서 예측과 예감의 차이를 이야기한 바 있다. 

"예측과 예감은 미래를 상상하는 두 가지 다른 방식이다. 예측은 연속성과 정체성을 지키는 방식으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미래, 통제는 할 수 없더라도 적어도 준비할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 예감은 연속성과 정체성이 깨지는 방식으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타자의 출현으로부터, 내가 '무엇'이라고 임의적으로 명명하지만 사실 '무엇'이 아닌 어떤 존재의 출현으로부터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

 

- '야망'이 누군가에게는 '노오력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기 착취의 프레임으로 비춰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큰 사람이 되어 이 사회에 기여를 한다'는 식의 스토리는 찬양받지 못한다. 작더라도 내 개인의 것을,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때가 아닌가. 

 

- 은하선 대표는 경계境界에 서서 경계警戒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페미니스트이지만 사회가 정하는 페미니스트의 규율에 따라가는 것을 경계하고, 섹스칼럼니스트이지만 사람들이 섹스칼럼니스트에 대해 갖는 편견을 우스워한다. 바이섹슈얼이라고 하면 자유롭게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들. 편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퀴어의 세계에서 바이섹슈얼은 게이나 레즈비언에게도 배척당하는 존재다. 은하선은 어떠한 직업으로 명명되는 것을 경계한다. 경계선에 있으면 사람들이 묻는다. 너는 어느 편에 설 것이냐고. 

 

- 인터뷰를 하고 돌아가는 길, 은하선 대표가 참 특이하고 솔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대담하고 재치 있는 말 덕분에 많이 웃었지만, 그녀가 한 말은 오래 남아 내게 따라붙었다. "인생이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아서 계획하는 걸 멈췄다", "지위나 직함 대신 그 사람이 사는 삶을 치열하게 보아야 한다", "성공한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편집해서 효과를 보는 이가 있지 않나", "야망이라는 단어는 너무 신자유주의스럽지 않은가." 답을 얻으려고 시작한 인터뷰는, 보다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분명 목표한 바와 멀어지고 있는데 묘하게 만족스럽다. 답을 얻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는 걸까?

 

- 나는 어떤 공동체나 연대가 한 사람에게 주는 힘을 믿지 않는다. 물론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이 모인 공동체나 여성 퀴어들이 모인 공동체가 무조건 희망찬 내일과 에너지, 원동력을 줄 거라는 생각은 판타지다. 오히려 연대에 너무 큰 기대를 걸었을 때, 더 처참하게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잘 살았으면 좋겠다. 삶이 허망하다. 굉장히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20대 중반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일을 겪었을 때 너무 허망했다. 요새도 주변에 죽음이 심심치 않게 있다.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에서 모두 편안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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