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김경진 외] 데프콘 1부 한중전쟁 1-4

일루젼 2023. 11. 15.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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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경진 / 진병관 / 윤민혁 / 신재호 / 손중극
출판 : 씨앗을뿌리는사람들 
출간 : 2009.06.25 


     

저자 : 김경진 / 진병관 / 윤민혁 / 신재호 / 손중극
출판 : 씨앗을뿌리는사람들 
출간 : 2010.03.02 


 

 

그렉 이건의 <내가 행복한 이유>를 읽은 뒤로 계속 생각나는 책이 있었다. <데프콘> 시리즈. 아마 수록 작품 중 <바람에 날리는 겨>에서 채프 chaff 라는 단어를 접했기 때문일 것이다. 잠수함과 전투기에서 유도미사일을 속이기 위해 심해로, 허공으로 흩뿌려지던 채프들. '채프 발사!'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특정 시기는 보통 그 시기에 읽었던 책들과 함께 떠오르곤 한다. 고교 진학과 동시에 처음으로 완전한 타지에서 생활하게 되었을 때, 낯선 도시에 읽었던 책들이 <쥐>, <데프콘>, <적루>다. 당시에는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기억에 남는 책들이 될 줄은 전혀 몰랐었지만. 그 책들을 읽을 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해당 시기는 내게 아주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내가 본가에서 독립해 생활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도 알 수 있었고. 

 

당시에는 <데프콘> 2부인 '한일전쟁'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사전 지식이 얕았던 내게는 거대한 규모의 전략-전술이나 밀리터리적 요소는 조금 버거웠다. 그보다는 일대일 전투처럼 느껴지는 내용들에 재미를 느꼈는데, 2부는 주로 함대함 전투 위주로 전개되어 특히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다. 

 

잠시 생각이 나다 말 줄 알았는데 이후로도 계속 생각이 났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1부부터 천천히 정주행 중이다. 내가 처음 읽었던 버전은 90년대 출간되었던 타출판사 판이지만, 크게 달라진 점은 없을 것 같아 -그리고 구하기가 힘들어서- 반가운 '씨앗을뿌리는사람들' 판으로 읽고 있다. 

 

90년대에 저술된 작품이니만큼 작중 시대상이나 설정이 지금과는 다른 부분들이 눈에 띈다. 그럼에도 몇몇 장면은 놀라울 만큼 현실을 잘 담아내기도 했다. 소설 속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 대만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현재 표면으로 드러난 국제 정세만이 다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섬뜩함이 올라온다.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를 분석하는것은 큰 의미가 없다. 현실화되지 못한 예상과 추측은 모두 허구의 영역에 남겨지지만, 그것들 중 무엇을 현실화할 것인가를 선택하기 위한 노력과 대처는 언제나 굳건한 현실을 디디고 있다. 

 

밀덕이 아닌 일반 대중 독자로서 작중 설정들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마치 영화 장면들을 묘사해놓은 듯 시간과 장소를 휙휙 옮겨가며 전개되는 순간순간의 페이소스와 그것들이 맞물리며 드러나는 커다란 세계적 규묘의 이권 다툼은 세부적인 밀리터리 지식이 없더라도 충분한 감동과 전율을 선사한다. 지나치게 많은 등장인물들이 파편적으로 등장하지 않느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그점이 전쟁이라는 거대한 상황에 휩쓸리고 마는 개개인의 삶을 잘 담아내는 표현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차분히 읽어 나가다보면 전혀 뜬금없는 듯 보였던 등장인물들이 다시금 등장해 알듯 모를듯한 서사를 이어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더 영화적이라고 느꼈는데, 각 인물들을 이미지로 상상하며 그려 읽어보신다면 더 특별한 즐거움을 느끼실 것 같다.)

물론 즐거움과 함께 다양한 상황에서의 타자간 입장 차이, 다각화된 시선, 자신만의 가치관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해 보실 수 있으실 것이다. 

 

3부 한미전쟁까지 다 읽고 나면 저자의 다른 저서인 <동해>와 <남해>도 찾아 읽어보고 싶다.      

끝.

 

 


   

신재호 - 전략·전술 분야 검증

진병관 - 해상전 분야 검증

손중극 - 지상전 분야 검증

이 작품은 김경진 외 3인의 공동창작물입니다.

 

 

 

- 만약 한국이 주변 강대국들과 전쟁을 치른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바로 그 궁금증을 푸는 것이 이 책을 쓴 목적입니다. 그러나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지금, 한국이 다른 외국과 전쟁을 하는 경우는 거의 생각해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전쟁이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남북한 사이에 다시 전쟁이 벌어진다면 우리 민족에게는 치명적입니다. 그리고 더할 수 없는 불행이기도 합니다.

 

- 데프콘 제1부는 지금으로부터 몇 년 후에 평화통일을 이룬 통일한국과, 대만을 무력으로 복속시킨 중국이 두 국가의 미래를 놓고 벌이는 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입니다. 소설에는 특별한 주인공이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운명이 바뀌고, 불행해지고, 그리고 끝내는 죽어갑니다. 그러나 그런 불행 속에서 따스한 인간애가 피어납니다.

 

- 독자 여러분께서 이 책을 읽으시는 동안 민주주의와 통일, 그리고 전쟁과 평화에 대해 한번쯤 생각할 기회를 가진다면 이 소설을 쓴 저희들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그리하여 평화를 지키려는 강한 의지를 갖게 된다면, 저희들은 그것으로 족할 뿐입니다. 

 

- 10월 24일 14 : 20 (베이징 표준시) 중국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실크로드의 진주, 몽골어로 아름다운 목장이라는 뜻인 우루무치(烏魯木齊)의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게 물들었다. 절기로는 첫서리가 내린다는 상강,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이며 고대 실크로드의 중간기착지인 이곳은 이제 서서히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인구 80만으로 서역 최대 도시인 우루무치는 한낮인데도 조용했다. 시내에는 사람은 물론 움직이는 차도 보이지 않았다.

 

- 우루무치에서 카자흐족의 기름진 방목지인 난산무창(南山牧場)으로 가는 길 옆 작은 마을에 위구르인 200여 명이 잔뜩 겁에 질린 채 모여있었다. 이들을 둘러싼 무장군인들이 살벌한 눈빛으로 엄중히 경계했다. 울긋불긋한 위구르 전통복장 차림을 한 부인이 겁에 질려 우는 아이를 달랬다.

 

- 중국정부를 상대로 위구르족이 중심이 되어 벌어진 신장(新疆) 자치구의 분리주의 독립운동은 이제 거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위구르 민족혁명전선(UNRP)과 이슬람 해방전선을 위시한 무장독립단체들의 연합부대를 섬멸하고 지도부 대부분을 공개총살형에 처했다. 살아남은 수니파 회교도 전사들은 뿔뿔이 도주하고 지금은 소탕전이 한창이었다. 그것은 중국군에 의한 일방적인 살육이었다.

 

- "저는 카자흐인, 하싸커 족입니다! 살려 주세요!"
위구르 마을 사람들 중 유일하게 카자흐인 복장을 한 노인이 유창한 베이징어로 인민해방군 군관에게 매달렸다. 젊은 군관이 귀찮다는 듯 권총을 빼들었다. 그 군관이 보기에 카자흐인이나 위구르인이나 외모에서 약간 차이가 나는 것만 빼면 둘 다 불순한 회교반군에 불과했다.

 

- 인종의 전시장이라는 우루무치에는 43개 인종이 살고 있다. 회족, 타지크인, 우즈베크인 등 대부분이 한족을 무신론자라고 경멸하는 회교도들이다. 지금도 중국 중앙정부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많다.

 

- 깃털 달린 모자를 쓴 그 노인이 신분증을 내밀자 권총을 쏘려던 군관이 주춤했다. 그것은 중국정부가 아닌 인민해방군 난주군구에서 발급한 통행증이었다. 난주군구는 산시성(陝西省), 간쑤성(甘肅省), 칭하이성(靑海省), 신장자치구 등을 관할한다. 젊은 군관은 벨리야예프라는 이름을 가진 이 노인이 뭔가 대단한 배경이 있거나, 아니면 해방군 상부에 돈을 쓴 모양이라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이봐, 늙은이! 빨리 꺼져 버려!"
"감사합니다. 제 마누라도 부탁..."
노인이 분홍색 머리수건을 두른 젊은 여자를 가리켰다. 기다랗게 땋은 머리에 울긋불긋한 위구르 전통의상 차림을 한 여자는 상당한 미인이었다. 군관이 험악하게 인상을 썼다. 
"빌어먹을 늙은 놈! 썩 데리고 꺼져!"

 

- 눈부시게 빠른 진급이다. 
그러나 이제는 끝장이었다. 공군 참모차장으로 근무하던 작년에 휘하에 있던 말단 군속 하나가 저지른 거액의 독직사건에 휘말렸다. 그는 결백한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결국 지휘책임을 지고 해임되어 이곳, 통일참모본부라는 거창한 이름의 허수아비 지휘부로 쫓기듯 밀려났다. 비리가 있어도 대충 덮고 지나가던 옛날과는 확연히 달랐던 것이다.

 

- 양석민이 옆자리를 훑어봤다. 육군의 정지수 대장은 육군 참모총장 자리를 놓고 김재호 대장과 경쟁하다 패해 이곳으로 밀려났다. 아마 올해 안으로 군복을 벗을 것이다. 해군 심현식 중장은 현대전에 익숙지 못한 무능력한 인물로 낙인찍혔으며, 공사 5년 선배이기도 한 이호석 중장은 대단히 우유부단한 장군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한마디로 다들 정년퇴임만 기다리는 희망 없는 자들이었다.

 

- 양석민이 고개를 설레설레 젓다가 물끄러미 건너편 빈 좌석을 바라보았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인민군 장성들은 더 한심해서, 이 사람들만 보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머리카락이 더 빠지는 것 같았다. 통일참모본부 의장인 이종식 차수는 70세가 넘은 퇴물이고 김병수 대장과 박정석 해군 상장도 환갑을 넘긴 노인들이었다.

 

- 양석민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예편을 신청하면 당장 수리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나이에 사회에 나가 뭔가 해야겠는데 옛날 같지 않아 요즘은 공기업에 취직하기도 어려웠다.     

- 그리고 어떤 경우라도 국군이나 북한 인민군은 결코 통일참모본부에 지휘권을 이양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 군부 강경파는 이제 포기상태인지 어떠한 도발적인 행동도 자제했다. 거의 흡수통일이나 다름없는 현재 상황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음이 분명했다.

 

- 따분했다. 역시 전투기 조종사 시절이 좋았다. 강력한 중력을 뿌리치며 하늘을 날 때는 부러울 게 없었다. 푸른 햇빛이 비치는 뭉게구름 위로 검은 하늘을 오르내릴 때가 인생에서 최고의 황금기였다. 이제 그날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 '민항기는 어떨까... 쩝...'

아직은 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여객기는 너무 느려 조종하기 싫었다. 게다가 예전에 예편한 부하들이 기장을 하고 있을 텐데 그래도 공군 중장인 그가 옛 부하들 틈바구니에서 느려 터진 여객기를 모는 것도 시원찮을 것이다. 항공대나 인하대에 교수자리라도 나면 좋겠지만 워낙 경쟁이 치열하고 지원자들 경력이 화려해서 그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렇게 내 인생도 가는구나...'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 "자네는 일이, 그러니까 경쟁 피티(PT : 프리젠테이션)를 담당한 AE(광고기획자)로서 PT에서 이기는 게 우선이겠지만, 나는 이 회사에서 살아남는 게 우선이야. 자네가 옳다는 건 알지만 좀 참아. 우선 최 전무 말대로 그런 쪽도 대충 갖춰 놓으라고 전무님은 아마 프리젠테이션에 참가 안 할 걸세. 책임지기 싫어서 말야. 자네도 알잖아. 잘한 것은 윗분 덕택이고, 못한 건 아랫놈 탓이란 말야. 조직이란 게 다 그런 거지 뭐... 그렇다고 너무 걱정 마. 내가 책임질 테니까." 

"그럼 전무님 보시라고 시안을 더 만들어야 합니까?”
"할 수 없지 뭐... 자네도 잘 알잖아. 저 양반이 재 뿌리면 되는 일없다는 거."
이승재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죽어라고 일하는데 전혀 쓸데없는 사람으로부터 모욕을 받았을 때의 그 기분, 당한 사람만 알 수 있는 법이다.

 

- 윤준혁은 '훈'으로 시작되는 아이디를 갖고 있는 이들을 이곳 너럭바위라는 통신망에서 만나 채팅할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다물선양회의 여러 방계조직 가운데 하나로, 외국 언론에도 심심찮게 그 활동이 보도되는 만주수복국민운동본부 의장인 전직 국회의원도 겨우 밝79에 불과했다. 이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궁금했다. 현역 군인은 아니지만 분명 군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했다. 아니면 최소한 군대 내에 여러 정보수집 루트를 갖고 있을 것이다. 
 

- [雨師(21) *복희* 자부선생 말에 따르면 조만간 중국이 우리나라를 침공할 것이라고 하는데 현역 장교로서 치우천황의 생각은 어떻소?]

 

- 윤준혁이 알기로 자부선생(先生)은 젊지만 상당히 실력 있는 국제정치통이 분명했다. 이들은 중국내전 발발에 대한 정보를 자신보다 더 빨리 갖고 있었는데, 이는 자부선생이 알려준 정보라고 했다. 화면을 바라보던 윤준혁의 눈이 반짝 빛났다. 

 

- [치우천황(밝137) 지금 당장은 아닐 겁니다. 대만문제와 남사군도 분쟁, 그리고 일본하고 조어대 문제가 걸려 있는데 우릴 먼저 공격할 리는 없습니다.]

[神誌(36) *혁덕* 흠... 자부선생도 그런 말씀은 하셨소.]
[치우천황(137) 중국 인민해방군의 군사력은 내전기간을 통해 급성장했습니다. 물론 그전에 덩샤오핑이 있을 때도 군사비가 매년 몇십 퍼센트씩 급증하기는 했지만 무기체계가 이렇게 발전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입니다. 그리고...]
[雨師(21) *복희* 만약 그들이 우릴 공격한다면?]
[치우천황(밝137) 해공군력과 지상군의 기계화가... 네. 알겠습니다.]

 

- "중앙정부는, 아니, 북부중국은 경제뿐만 아니라 민심을 얻는 데에도 실패했습니다."
신은숙 교수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남부중국은, 아니, 모든 중국인들은 북경과 상해 출신 고위 당관료들의 권위를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개방화 초기에는 이들의 주도하에 성공적으로 경제개혁을 이루어냈지만 아직도 개방 속도 문제로 다투고 있는 등 어느 정도 개방화가 이루어지고 나자, 개방의 주역들이 오히려 개방의 장애물이 될 정도로 시대에 뒤떨어져 버렸습니다." 

- 신 교수의 주도하에 회의가 계속되었다. 결국 결론은 경제력에서 훨씬 우월한 남부중국이 당시 중국정부를 탐탁지 않게 본 미국과 유럽의 지원을 업고, 그리고 돈이 궁한 러시아로부터 최첨단 무기를 대량구입하여 군사력에서 우위를 보였고, 확인하기 어렵지만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발생한 국경분쟁은 아마도 미국과 러시아가 합의한 사항일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결국 물량면에서 앞서고 외국의 지원을 업은 광동복건 연합이 기존의 북경-상해 연합을 대체했다는 것이다. 또한, 내전 중의 핵전쟁 발발 가능성은 상호파멸과 사용한 측에 대한 국제적 압력을 우려하여 핵폭탄의 사용이 자제되어 다행이라는 결론이었다.
"다음 전쟁을 예상한다면, 아무래도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것이 되겠죠. 아니, 그전에 베트남과 필리핀이 될까요?"
좌중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현재 상황에서 중국이 대만이나 베트남을 공격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 "아니, 지금 중국과 대만은 밀월관계 아닙니까? 내전 중에 대만이 음양으로 남부중국을 도운 것도 사실이고... 물론 중국내전 중에 남사군도 몇 개 섬을 대만이 점령한 문제도 있고, 자유왕래가 잠시 막히긴 했지만 내전이 끝났으니 곧 원상회복될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자원과 노동력, 그리고 대만의 자본과 마케팅으로 세계 경제계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역할이 어느 정도인데... 설마 중국이 경제위기의 부담을 지고 대만을 공격하려 하겠습니까?"
이재영 중장이 깜짝 놀라며 물어보았다. 신은숙의 주장은 정보사단의 최근 평가와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대만과 중국은 80년대 이후 경제적으로 밀접히 결합했다. 대만독립문제로 약간의 위기가 있었으나 곧 긴장상태가 해소되어 구태여 침공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또한 경제를 중요시하는 광동-복건 연합이 정치적 주도권을 쥔 마당에 대만에 눈을 돌릴 만한 여유가 없다는 것이 정보사단과 외교통상부 및 국가정보원 등 정보업무 담당부서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중국 공산당의 개혁주의자들이 어느 정도 경제발전 후에 보수주의자들로 몰린 것처럼 대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만의 보수적 정치체제가 보다 자유로운 복건성과 대만 간 인적·물적 유통을 막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뿐만 아니라 중국 본토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대만과는 아무래도 충돌이 불가피합니다. 중화민족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강한지 아실 겁니다. 한족(漢族)은 수없이 많은 이민족의 침입을 받고도 수천 년 동안 중국에서 살아왔습니다. 그 거대한 땅덩이와 함께 말입니다. 중국과 대만 이 두 나라는,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견해도 많지만 어쨌든, 결국 하나로 합쳐질 것입니다.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하는 것이 아쉽겠지만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 신은숙이 잠시 쉬며 유리잔의 물을 마신 다음 반쯤 남은 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당연히 생수였다. 인간은 물을 더럽히고 그 대가로 비싼 물을 사서 마시니 무척 비경제적인 동물이다. 

- "베트남과 필리핀은 남사군도 때문인가요?"
신은숙이 소리가 난 쪽을 보니 중년 군인들 사이로 신사같이 말쑥한 젊은 대령이 보였다. 저 나이에 이 정도 계급이면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고 할 수 있었다.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신 교수가 짧게 대답했다.

- 중국은 산업화가 진행되어 바다의 중요성이 커지자 드넓은 남중국해(남지나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남사군도는 고대부터 중국 어부들이 어로활동을 해왔다는 후한(後漢誌) 기록을 근거로 강력하게 영유권을 주장했다. 
그러나 필리핀과 베트남 등 주변국들은 이에 반발하여 중국과 분쟁 중이며, 자원수입국인 한국과 일본은 유사시 해상교통로가 봉쇄될까 우려하여 은근히 중국의 남사군도 영유에 제동을 걸고 있었다. 이 해로는 두 나라의 사활을 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주변의 중소국가끼리 분할하거나 공동영유하게 하자는 유엔의 방안을 지지했다. 무역량 등당장의 이익을 본다면 당연히 중국을 지지해야 하지만, 중국이 더 강해졌을 때 만약 중국과 분쟁이 생긴다면 남사군도는 한국과 일본의 목을 겨누는 비수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 "자원 말인가요? 막대한 석유매장량... 중국경제에 엄청난 도움이 되겠죠."
나영찬이라는 이름의 젊은 대령 말에 신은숙이 빙긋이 웃었다. 한참 망설이다가 다시 신은숙이 자리를 같이 한 고급장교들의 얼굴을 보며 입을 열었다. 
"만약에, 만약에 말입니다. 중국과 일본, 또는 중국과 한국 간에 분쟁이 발생한다면 남사군도의 전략적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요? 아니, 한국과 일본 간의 분쟁에서도요."
젊은 정치학 교수의 단순한 가정이지만 군인들 입장에서는 전혀 심상치 않은 이야기였다. 이웃나라란 항상 분쟁의 소지를 안고 있고 언제나 제1의 가상적국이기 때문이다. 우호적인 관계일 때도 이웃나라에 파견되는 대사는 정치적 비중이 장관급 이상이며 정보관계 종사자들 숫자도 다른 나라에 파견되는 주재원보다 훨씬 많은 것이 상례다. 예로부터 전쟁은 항상 이웃나라의 침략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인식이 지금도 있으며 역사적으로 쉽게 증명된다.  

- "남사군도가 중국에 의해 봉쇄되면 한국이나 일본은 호주를 우회해서 석유류 등 자원을 수송해야 합니다. 이 경우 운송기간은 호주 남부해상의 복잡한 해로를 감안하면 15일 이상 늦춰집니다. 전략비축분이 3개월치니까 큰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 하는 생각은 큰 오산입니다. 전시에는 석유류의 소비가 급증하는 것이 상례이고, 연료저장시설에 대한 적의 공격과 사재기로 인한 과수요까지 감안한다면, 그리고 해상운송수단의 부족을 감안한다면 1개월 내에 비축분은 모두 소모됩니다. 전략비축분이 3개월치라는 것은 단순한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 "현물시장에서의 구입이나 미국이나 멕시코 같은 곳에서 수입한다면?"
이재영 중장이 입이 바싹 탄 목소리로 물었다. 이 중장이나 다른 육군출신 고위장교들은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남사군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중국이 남사군도 주변상을 봉쇄하면 아시아에서 가장 큰 싱가포르 석유 선물시장은 시장 자체가 붕괴됩니다. 미국은 풍부한 부존자원에도 불구하고 유독 석유만은 전략적으로 수입해 왔습니다. 알래스카산 원유를 1995년에야 수출을 허가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은 원유를 거의 수출하지 않습니다. 멕시코는 현재 정치적 불안정 때문에 안정적인 공급원이 되지 못합니다. 또한 미국과 멕시코 두 나라는 너무 멀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그리고 브루나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산유국들로부터 원유수입을 한다고 해도 유조선이 남지나해를 통과하지 않으면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대만에서 출격하는 중국 전투기 행동반경에서 벗어나려면 태평양 마리아나제도 가까운 곳으로 우회해야 합니다." 
표 중령의 설명에 이 중장이 허탈해지는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며 호통을 쳤다. 
"그럼 중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분쟁이 생기면 우리나라는 무조건 중국의 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단 말이오?"

 

-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그 전단계는 필리핀과 베트남인데 필리핀은 중국의 요구를 수용하기 쉽죠. 아마 중국은 베트남과 일전을 각오하고 있을 겁니다. 베트남을 치는 것은 대만 점령의 전단계가 분명해요. 그리고 대만 다음은 우리나라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결국 신은숙 교수는 예언을 하고 말았다.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중국내전을 예상했던 신 교수가 이번엔 더 가능성이 없는 중국의 한국침공을 예언했다. 이재영 중장을 필두로 대다수 군인과 정치학자들이 들고 일어나 신은숙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러나 그들도 일말의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신은숙이 중국내전을 예상했을 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공상가 ...

 

- 짧게 외친 그의 말은 분명 중국어였다. 이 배 선장은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북해함대 사령 리둥하이(李東海) 소장이었다. 그리고 이 거대한 배 밑에는 중국 해군의 제식명 033식(나토 코드 로미오급) 재래식 잠수함 40여 척이 배터리를 이용한 무음항해를 하고 있었다. 상선으로부터 전기와 산소를 공급받으며, 통신선을 통해 사령관의 명령을 받고, 또한 수상 상황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장시간 무음장항이 가능했다. 

- 물론 많은 잠수함들이 좁은 수중공간에서 잠항하기 때문에 잠항 중 잠수함끼리의 충돌을 막기 위해 상선에 있는 잠항통제관이 땀을 흘리며 교통정리를 해야 했다. 그러나 상선의 통제관과 잠수함들은 모의훈련과 실전 훈련을 거쳐 상당히 익숙해져 있었다. 잠수함은 거대한 구로마루 아래 3척씩 4줄, 위아래로 4층을 만들어 질서 정연하게 항진했다.

 

- 8월 7일 06 : 30 (현지시각) 대만 가오슝 남동쪽 근해 
같은 시간, 대만 남부의 최대 항구인 가오슝 앞바다에는 구로마루의 자매선인 상선 호오류가 항구를 향하고 있었다. 자동차 운반선인 호오류는 명목상 일본산 전기자동차 2천 대를 가오슝항에 하역하기 위해 대만 영해에 진입했으나, 호오류도 역시 구로마루와 비슷한 역할을 하기 위해 중국 해군에 의해 개조된 배였다. 호오류는 입항 직전에 이미 잠수함들을 떼어놓았다. 

 

- 그 광경을 보고 넋이 나간 딩 중위는 갑자기 울리는 레이더경보 수신기의 경고음에 놀라 정신을 차렸다. 즉시 급상승 후 채프를 뿌리며 오른쪽으로 급강하했다. 미사일이 기체 우측을 지나며 폭발했다. 폭발 전에 급선회를 한 덕택에 기체는 큰 손상이 없었으나 놀라움과 흥분에 자기도 모르게 숨이 막히며 손이 떨렸다. 그에게는 최초의 실전이었다.

 

- 딩더원 중위가 정신을 차리고 레이더를 보았다. 레이더 스크린에는 막강한 수호이-33의 중국제인 섬(-15형 함재기 형태)의 공격목표 50 여기와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순항미사일이 표시되었다. 가장 가까운 적은 벌써 5km 전방 상공에 있었다. 뒤쪽에서 아군 전투기들이 속속 이륙했다. 그러나 또 하나의 활주로가 다시 붕괴되었다. 이제 활주로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 딩 중위는 즉시 급강하하며 플래어를 연속 발사했다. 우측으로 급선회한 후 다시 급상승하며 하늘에 큰 원을 그렸다. 그러자 숨이 막힐 듯한 중력가속도가 느껴지며 시야가 어두워졌다. 급선회 시 원심력 때문에 피가 조종사 쪽으로 쏠려 시야가 어두워지는 블랙아웃이었다. 전투기 조종사에게 선회 시의 중력가속도는 흔하게 겪는 일이었지만 심한 경우에는 의식을 잃고 추락하는 수도 있었다. 딩더원 중위는 아랫배에 힘을 주고 숨을 짧게 끊어 쉬며 중력가속도를 이기려고 노력했다. 

 

- 10월 9일 10:20 북위 37도 14분 10초, 동경 131 52분 42초 
"어때! 좋지 않나?"
"예. 정말 멋집니다. 이런 장면을 상상하고 왔는데, 역시 지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울릉도 경찰서 소속 안국선 경위와 곽순철 상경은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하얀 괭이갈매기가 하늘을 뒤덮는 광경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간만에 날씨가 좋아 헬기장에서 보이는 바다는 짙푸른 수평선이 끝없이 펼쳐지는 멋진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두 사람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 "독도에 대해 대충은 알겠지만, 오늘 처음 왔으니까 내가 확실하게 말해 두지. 자넨 군인이 아니고 경찰이야. 그렇지?"
"예, 그렇습니다."
"만약 일본군이 독도를 침공한다면 어떻게 행동하겠나?"
"독도는 1,500년 전부터 우리 땅입니다. 당연히 목숨 걸고 싸워야죠."

"흠... 기개가 좋군. 나도 그럴 생각이라네. 하지만 우리 신분상 법적인 보호는 못 받아. 무슨 뜻인지 알겠나?"
"예?"

- 곽 상경은 무슨 뜻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의무경찰이나 전투경찰은 군복무를 대신한다. 비록 행정자치부 소속 경찰이지만 스스로를 군인으로 생각했고, 울릉도 경찰서에 있을 때에도 일본군이 독도를 침범한다면 가만 놔두지 않겠다고 큰소리치곤 했다. 하지만 안 경위의 말이 그를 놀라게 했다. 
"일본이 독도를 공격할 경우... 그래. 일단 일본군의 한국영토 침공에 대한 국제법적 책임은 논외로 치세. 국제법상 일본의 정규군인 자위대의 침략에 대해 우리가 적대행위를 하면 전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우리가 정규군이 아니라 경찰이기 때문이야. 대한민국 법률과 국제법에 의하면 경찰은 비교전자(非戰者)인 평화적 인민, 즉 민간인이라네." 

"예? 그런 엉터리가 어딨습니까?"

- 곽순철 상경은 이해할 수 없었다. 50년 가까운 분단상황에서 대부분의 젊은 남자는 현역 군인이나 예비군에 소속된다. 게다가 민간인과 군인의 구별이 거의 없어지는 전쟁상황에서 자신이 전범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아주 생소하기조차 했다.

 

- 안 경위 말처럼 헤이그 협약은 사람을 교전자와 비교전자인 평화적 인민으로 나누고, 교전자는 정규군과 비정규군으로 세분한다.
정규군은 다시 전투원과 비전투원으로 나뉘고, 비정규군에는 민병과 용병, 군 민병 등이 있다. 그러나 경찰, 또는 대한민국의 전투경찰은 국토방위의 임무를 수행하는 교전자가 아니라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민간인에 불과하다. 
"물론, 전쟁이 일어나면 비상조치에 의해 경찰도 정규군에 편입되겠지. 하지만 아마 우리는 해당 안 될 걸세. 이미 늦을 테니까."
바닷바람에 맞서고 있는 안 경위를 보며 곽 상경은 1950년대 중반에 독도의용수비대장으로 활약한 홍순칠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어쩌면 안국선 경위가 일본인들을 독도와 울릉도에서 몰아낸 안용복의 후손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애써 지웠다. 

 

- 10월 14일 14 : 40 서울, 정부종합청사
"정말 골 때립니다."
최창식 국무총리가 평소의 그답지 않은 말을 내뱉고 한숨을 쉬었다. 긴급소집된 국무회의에서 브리핑을 마친 행정자치부 장관도 더 이상할 말을 잃었다.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은 일이 전국 곳곳에서, 그것도 동시에 발생한 것이다. 
"이거 원, 대통령께 보고하기도 송구스럽구만. 대전, 대구, 부산, 광주... 이거 뭐 딴따라 스텝 밟는 거요? 어찌 이런 일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단 말입니까?" 
"갑자기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봐서 불순세력의 책동이 분명합니다."

"불순세력? 어느 불순세력 말이오? 북한 강경파? 아니면 전라도나 경상도 분리독립주의자? 도대체 어느 쪽이요?"
아무리 지역감정이 심하더라도 어느 지역이든 분리독립운동이 일어난 적은 없었다. 총리 말은 혹시 북한의 공작이냐는 뜻이었다.

"그들을 가장한 전혀 다른 세력일 수 있습니다. 경산경찰서의 보고서에는 배후가 국내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신중히 검토해 봐야 합니다."

- 행정자치부 장관의 보고에 각료들이 갑자기 긴장했다. 비교적 신중한 외교통상부 장관이 입을 열었다.
"그럼 일본? 악착같이 통일을 방해했으니까. 하긴, 어제오늘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소. 일본이 배후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오."
"일본은 아닐 겁니다. 일본은 우리와 전면전을 벌일 능력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해상봉쇄하는 수준이겠죠. 물론 그 정도도 우리에겐 치명적이겠지만... 저는 중국이 배후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오석천 국정홍보처장이 다른 견해를 밝혔지만 다른 국무위원들에게 별로 동의를 받지 못했다.

 

- 행정자치부 장관이 우려를 표하자 국무위원들 시선이 이철웅 국방장관에게 집중되었다. 국방장관은 뜻밖의 시선집중에 당황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시위진압에 군 병력을 동원하고 싶지 않았다. 대부분의 국무위원들 모두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아직 최악의 상황은 아닙니다. 외국 불순세력의 책임이 분명한 증거가 없는 한 군 병력 동원은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 얼마 후에 수신된 전화통지문에 따르면, 경북 경산시에서 생포된 무장군인은 사망하고, 인종학적인 정밀검사 결과 사살된 무장군인들은 모두 우리와 같은 인종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소지한 신분증과 인식표는 가짜로 밝혀졌고, 지문 대조 결과 주민등록증이나 북한의 주민증(공민증)을 소지한 어떤 한국인과도 일치하지 않음이 판명되었다. 이들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통일에 반대하는 북한 군부가 배후조종을 했는지, 아니면 외국의 소행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최소한 소문처럼 호남이나 영남의 분리독립주의자들은 결코 배후가 아니었다. 통일참모본부 간부들은 사건이 끝나가자 다시 한번 역할도 없이 철저히 국외자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며 씁쓸한 표정들이었다. 

 

- 10월 16일 13 : 30 대전, 정보사단 종합상황실 
"현재 5개의 장갑사단이 단둥(丹東)에 집결했습니다. 주력은 제13합성집단군의 3개 장갑사단이지만, 심양군구 내 다른 집단군의 장갑사단과 오토바이사단(기계화보병사단), 포병사단, 2개 고사포여단 등이 집결했습니다. 특기할 만한 점은 심양군구, 즉 동북 3성의 나머지 병력이 모두 서진(西進)하고 있으며 북경군구의 병력은 동진(東進)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외신이 맞다면 이는 전형적인 내전 직전의 병력이동 양상입니다. 중국에 새로운 내전이 일어났다고 봐야 합니다. 항공전력과 해상전력은 아직까지 별 이동이 없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공군과 해군의 관망 속에 각 군구 간의 알력으로 인한 또 한 번의 내전, 특히 심양군구의 반란으로 여겨집니다."

종합상황실의 정보분석 반장 나영찬 대령이 대형 스크린에서 만주지역 지도를 짚어 가며 설명했다. 그의 설명을 듣고 국제정보를 담당하는 제2여단장 권순철 준장이 반박했다. 외국에 관한 정보라면 2여단의 정보분석이 우선적으로 반영되어야 하지만 정보사단의 정보취득 경로는 다양하다. 국가정보원과 외교통상부, 북한 정찰국과 국가보위부가 정보사단에 정보를 제공한다. 종합상황실은 이들 모든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기 때문에 2여단의 판단과 다를 수가 있었다. 

 

- "우리는 150만 대군과 현대적 무기가 있소. 중국은 대만과 동남아 몇 나라를 제압했지만 결코 우리를 넘보지는 못할 거요."
조용히 듣기만 하던 참모장 최영묵 소장이 나섰다. 최 소장은 병력보다는 현대화된 장비와 새로운 전략이 전장을 주도한다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중국군은 병력이 500만이 넘습니다. 준(準)군사력인 인민 무장경찰이나 각 지방의 민병대는 즉각 동원이 가능합니다. 이들은 내전을 겪으며 실전을 쌓았고 동남아 각국과의 전쟁에서 확인된 바로도 무기체계의 비약적인 향상이 있었습니다." 
권순철 준장이 단말기를 조작하여 중국과 대만의 해상전에 관한 데이터를 스크린에 올렸다.
"대만과의 전쟁을 보십시오! 중국 해군의 무기체계는 완전히 현대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략과 전술체계도 다른 군사강국 못지않습니다."

"중국은 내전을 겪었지만 극소수를 제외하곤 아직 재래식 무기 위주의 병력 편성이요. 게다가 중국의 경제력으로는 우리를 공격할 수 없어요. 물론 해군과 공군의 전력이 상당히 증강된 것은 사실이지만 육군의 경우 아직 장비가 낙후되었고..."

 

- 10월 16일 19 : 00 평안북도 선천, 국군 장교사택
차영진 중령은 오랜만에 관사에 일찍 돌아와 요리를 하고 있었다. 귀가 길에 할인점에서 산 거문도산 갈치와 주문진 물오징어, 개마고원 삼수에서 난 감자와 평남 강동에서 생산한 돼지고기를 굽고 회치느라 신바람이 났다. 
동침하지 않는 동거인, 쉽게 말해 차영진에게 빈대 붙은 이혜숙 대위는 차영진이 요리하는 동안 TV와 음악을 들으며 한 손으로는 연신 과자를 집어먹고 있었다. 책을 보는 동시에 다리 운동을 하던 이혜숙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궁금한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전투병과가 아닌 정훈장교지만 그녀는 최근 사태를 심각히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중국에 다시 내란이 일어났다면서요? 심양군구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혹시 위장작전 아닌가요? 우리나라의 경계를 누그러뜨리려는 중국의 작전일지도..."
"지금 북경에선 공습경보가 내리고 시내 여기저기 스커드 미사일이 떨어지고 있답니다. 실제상황이 틀림없겠죠."

 

- 차영진도 약간 의심을 했지만 설마 수도에 미사일을 터뜨리면서까지 위장작전을 쓰지는 않을 거라 확신했다. 그러나 속옷 세탁까지 차영진에게 맡기는 게으른 동거인의 생각은 달랐다. 

"중국이 개발한 스커드 E형 미사일은 명중률이 굉장히 높아요. 위성위치파악 시스템 덕택에 특정 건물의 특정 층을 정확히 명중시킬 수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아직까지 북경 중심부의 중요 건물들은 피격되지 않았어요. 물론 중남해의 공산당 건물에 명중했지만 주요 인물들의 생사는 불확실해요. 미리 피할 수도 있고요."
이혜숙은 대학 때부터 각종 시뮬레이션 게임을 많이 했기 때문에 군사지식이 상당히 풍부했다. 입대하고 나서 배운 것보다 게임에서 배운 게 더 많다고 할 정도였다. 사실 군인들도 전문분야 외에는 잘 모르는 법이었다.

- 그가 가장 많이 한 게임은 온라인상에서 몇 사람씩 편을 짜서 공중전을 벌이는 그래픽 게임인 '에어 워리어스(Air Warriors)'였다. 이혜숙은 적의 무기체계와 전장지형을 파악하는 작전통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가 속한 팀은 국내는 물론 통신게임 인구가 많은 미국과 일본에서도 유명했다. 매일같이 그들의 인터넷 메일박스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도전장이 쌓였고, 인터넷 에어워리어스의 홈페이지에는 그들의 전력에 대한 분석과 게임 후기가 자주 올라왔다. 도전자 중에는 현역 공군 조종사들로 조직된 팀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팀 그린 윙스(the green wings)는 무적이었다. 

 

- "중국 무기체계가 중국내전과 동남아 정복을 통하면서 급성장한 것은 사실이오. 게다가 병력은 내전 후에도 500만이 넘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동남아 약소국들과 달라요. 지난 몇십 년간의 남북한 대치상황을 통해 실전 못지않은 훈련을 쌓은 강군이란 말이오. 게다가 최근 통일과정에서 군사력이 배증했으니 중국이라 한들 쉽게 침공할 수는 없을 거요." 
차영진이 전자레인지에서 꺼낸 갈치를 식탁 위에 올리며 육군본부에서 시달된 정보분석집을 외우듯 말했다. 사실 그도 별로 자신이 없었다. 

그가 인터넷을 통해 자주 만나던 연변조선족들과는 보름이 넘게 연락이 되지 않았다. 중국 측 통신망이 차단된 것이다. 차영진은 기술적 이유가 아닌 정치적·군사적 의도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중국이 우리나라를 점령하면 어떤 이익이 있죠?"

 

- 차영진은 어머니가 이 모습을 본다면 당장 이혜숙을 쫓아낼 거라며 잠시 미소 지었다. 이혜숙이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차영진도 잘 알고 있었다. 
"먼저 영토적 야심. 한반도라는 땅의 넓이보다는 그동안 공유했던 서해를 독점하고, 나아가 러시아나 일본과의 대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죠. 그렇게 되면 최소한 일본이 중국 눈치를 보게 될 거요. 일본이 중국에 우호적 입장을 보일 수밖에 없으면, 세계 역학구도에서 미국의 입지가 많이 약화되고, 러시아가 아직도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어?"
차영진이 대답하면서 깜짝 놀라 이혜숙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양손으로 두 다리를 잡고 쫙 벌리다가 차영진의 눈길에 놀라 얼른 오므렸다. '식탁 위의 체조'와 과다노출은 차영진의 집에서 묵시적인 금지사항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은 국가존망이 달린 문제가 있었다. 차영진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 "그래요. 중국이 세계 초강대국이 되는 길은, 그리고 세계 사회주의를 이루는 그 첫 발걸음은 우리나라를 점령하는 거예요. 내전을 끝내고 남사군도와 대만을 점령한 중국은 더욱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하겠죠. 어머! 고기가 좀 탔네요. 이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유럽 열강의 식민지 다툼이나, 2차 대전의 원인으로 볼 수 있는 경제불황 타개책과 거의 같아요. 중국은 정치적·경제적 이유 때문에 우리나라를 필요로 해요. 일본의 투자유치를 위해서도 말이에요."  
이혜숙은 객관적이고 냉정했다. 일상생활은 여성스럽지 않게 지저분하고 게을렀지만 상황분석에 있어서 만큼은 정치학을 전공하는 박사과정 학생다웠다. 그녀의 주된 관심사는 국제정치와 전쟁분야였다. 방금 말한 것은 그녀의 의견과 약간 달랐는데, 그녀가 석사논문에서 다룬 것은 2차 대전의 발발 원인에 대한 분석이었다. 이혜숙은 2차 대전의 원인을 1차 대전의 전후 처리에 대한 독일의 불만으로 단정했다. 차영진은 그녀가 군에 입대한 것도 연구과정의 일부일 거라 생각했다. 

 

- "그렇다고 해도 설마 우리나라를... 유사 이래 중국이 자주 침략했지만 원나라나 청나라 같은 기마민족 외에는 아직 한 번도 우리나라를 점령한 적이 없소 우리는 싸웠고, 최소한 한족에게는 항상 이겼소." 
"그건 국력을 기울여 우리나라를 점령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죠. 19세기까지는 국경선 유지와 조공만으로 충분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자본주의 경제를 위장한 중국은 현재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해요. 일본의 경제투자는 중국에게 결코 흡족하지 못했어요. 지금까지 중국이 침공한 나라는 모두 일본의 자본투자가 많은 지역이었어요. 일본은 중국이 부강해지면 동북아의 안정을 해친다며 중국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자제해 왔어요. 지금 일본이 가지고 있는 아시아에 대한 종주권이 중국에 의해 위태롭다는 뜻이죠. 중국이 일본까지 침공하지는 않겠지만 일본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을 생각할 수 있지 않겠어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생각이었다. 차영진은 이혜숙의 단순한 걱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국제정치에 대한 이혜숙의 생각을 존중했다. 그러나 도대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녀의 생각에 수긍을 하고는 있지만 중국이 우리나라를 침공하다니...

식사를 마친 차영진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TV를 키고 뉴스 전문 채널을 선택했다. 뉴스에서는 중국내전에 대한 보도 일색이었다. 이혜숙이 이 집에서 하는 유일한 가사활동인 커피 끓이기를 하는 동안 차영진이 캄포스터(composter)를 가동시켜 음식찌꺼기를 갈아 퇴비로 만들었다. 아무래도 불안한 마음에 차영진이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 "쓰러져 있는 것도 폭발 파편이나 폭풍에 의해 죽은 시체가 아니오. 나는 법의학자는 아니지만 의구심을 가지고 보니까 잘 보이는군요. 저기 건물에서 저격하고 있는 병사 얼굴도 너무 깨끗합니다. 격렬한 시가전 상황에서는 저런 얼굴이 될 수 없어요. 그리고... 저 포로들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져 있군요. 이번 내전의 이유는 잘 모르지만 중앙군과 심양군 사병들이 서로 적개심을 가질 이유는 없다고 봐요. 전투 중에 가혹행위가 있더라도 공포나 수치심은 나타날 망정 분노는 표출되지 않지요. 아마 분노하는 표정을 지으라고 교육을 받은 모양이오. 전쟁사를 전공한 내가 본 건 이 정도요. 어떻소?"
김선영 중위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소령님은 역시 군인이시군요."
"예? 무슨 말이오?"
이현우가 당황했다. 칭찬인지 비웃음인지 알 수 없었다.
"저는 그렇게 자세히는 못 봤어요. 소령님 말씀을 들으니 정말 그렇군요. 맞아요. 저 화면은 연출된 거예요."
"그런데 김 중위는 저 화면이 가짜인 줄 어떻게 알았소?"
"화면이 흔들리지 않았어요. 정지해 있는 중계차나 레일 위에서 카메라가 움직이며 찍은 거죠. 전투 종료 후라면 이해가 가지만 아직 전투가 끝난 건 아니잖아요. 영화에서 흔히 쓰는 스테디캠이나 플라잉캠도 분명 아니에요."
김 중위가 간단히 지적했다. 이현우는 당황스러웠지만 이는 너무도 중요한 사실이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아무리 용감한 종군기자라 해도 몸을 드러내놓고 촬영한다는 건 도무지 말이 되지 않았다. 
"문제는 왜 중앙군이 저 화면을 외신에 제공했냐는 거죠."
이현우는 갑자기 벼락을 맞은 기분이 들었다. 이현우가 버튼을 눌러 녹화된 DVD를 꺼내고 출구로 뛰어나가면서 김 중위에게 외쳤다.

 

- 사단 정보분석반장 나영찬 대령은 고민하고 있었다. 중국내전이 진행되는 만주지역의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사단 각 부서에서는 한결같이 정보수집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더구나 중국 측이 우리나라의 정보수집 활동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있는 듯한 의심마저 들었다. 주변에 야간당직 장교들의 고민에 잠긴 모습이 보였다.

 

- 먼저 만주지역에 대한 광범위한 전파방해가 문제였다. 전쟁지역에 대한 광대역 전파방해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범위와 정도가 너무 심해 전파정보는 거의 수집이 힘들었다. 여기에 이틀 전부터 발생한 우주폭풍도 전파통신에 심각할 정도로 악영향을 미쳤다. 또한 만주지역에 파견된 첩보활동 인원인 지사원들의 보고가 전무했다. 무선 보고가 끊겼을 뿐만 아니라 인적 왕래가 차단되어 2차적인 정보수집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정찰기에 의한 정보수집도 중국의 전파방해로 막혔다. 몇 년 전부터 도입된 호커-800XP 정찰기는 중국 전투기의 집요한 요격을 받아 영상정보 수집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 [방금 중국으로부터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연설문인데 정치국원과 군사위원들이 연서한 것입니다. 내용은 한국과 일본에 대한 비상식적인 불만을 토로한 게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서명한 군사위원 중에 심양군구의 고휘 중장, 아니 승진한 고휘 상장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뭐요? 고 중장은 이번 군사반란의 주모자로 발표되지 않았소? 그럼 반란은 가짜란 말이오?"
나 대령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아마 병력이동을 위장하기 위한 책동이었던 듯합니다.]
이현우 소령의 설명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군사적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했다.
"비상! 각 군 1급 비상경계! 대(對)중국방어전 실전배치하라! 박중위. 즉시 국방부와 육군본부에 연락해서 이 사실을 알리고, 평안도 지역 각 군에 비상출동대기 명령을 내려! 신의주 부근에 어떤 부대인가? 즉각 신의주 진입을 명하라! 만약 신의주에 중국군이 진주했다면 즉각 교전하여 섬멸하라. 반복한다. 교전 후 섬멸하라! 신의주 상공을 정찰하도록 어서 공군에 연락해!"

 

- "기럼 적은 중국이오?"
인민군 해군 박정석 상장이 뻔한 질문을 했다. 그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북한 입장에서는 50년간의 형제국이 일순 적국으로 돌변한 것이다. 

'비록 중국내전과 한반도 통일로 변화는 많았지만 사람은 같지 않은가. 북해함대 사령 리둥하이 소장, 아니, 대만 점령전에서 수훈을 세워 이제 중장이 된 그 사람도 나하고 오랜 친구 사이인데...'


- 중국과 북한은 오랜 군사교류를 통해 고급장교들끼리는 상당히 친했다. 특히 리둥하이 중장과 박
상장은 해군장비가 너무 낙후했다고 울분을 토하며 같이 술잔을 기울인 적도 많아 비슷한 연배인 그들은 쉽게 친구가 되었다. 박정석 상장이 보기에 리 중장은 상당히 전략가다운 면모가 많았다. 만약 본토에서 대만을 친다면, 그의 계획대로 하면 일주일 내에 대만을 점령할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해냈다. 그런 친구를 둔 것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적이 되었다. 박정석 상장은 결코 양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그렇습니다." 

양석민 중장의 짧은 대답은 인민군 장성들에게는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무거운 압력으로 다가왔다. 보다 큰 문제는 중국의 군사력이었다. 

 

- "현재 평안북도 선천에 주둔 중인 국군 제11기계화보병사단에 출동명령을 내렸습니다. 동시에 인민군 제15사단과 인민군 공군 제3전술기사단이 비상출동 대기 중입니다. 전시 교전권 부여에 대한 정식 제청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양 중장이 자위 이외의 공격권을 각 군이 가질 수 있도록 요청했다. 중국의 침공이 확실하다면 이제 국군과 인민군을 아우른 통일한국군은 한반도 내에서의 침략군 격퇴임무 외에도 필요시 중국 본토에 대한 공격권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 이즈음의 전시 지휘권은 남북 수반이 공동위원장인 통일군사위원회가 소집되어 남한 대통령과 북한 국방위원장이 공동으로 군 지휘권을 통일참모본부에 부여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남북총선거에 의해 구성된 통일의회는 있지만, 아직 통일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지 않아 이 경우에 최고사령관은 비록 임시지만 자동적으로 통일참모본부 의장인 이종식 차수가 임명된다. 평화시에는 명색뿐인 통일참모본부 의장이 전시에는 일약 통일한국군 최고사령관이 되는 것이다. 

 

- 이종식 차수는 착잡하면서도 한편으로 가슴이 뭉클해졌다. 150만의 대군을 지휘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전시에! 게다가 동족상잔의 비극이 아닌, 외국의 침략에 대한 방어전쟁이다. 군인으로서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 "피양으로부터 급전입네다!"
인민군 김병수 대장 얼굴이 하얗게 질려 보는 사람들을 불안케 했다. 김병수 대장이 인민무력성과 통화를 마치고 놀라운 사실을 참모들에게 전했다. 인민무력성이나 청와대나 경황 중에 잠시 통일참모본부의 존재 자체를 잊었을 정도로 현재 이 기구의 존재가치는 미미했던 것이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지도자 동지께서 서거하셨습네다. 85호 집무실이 중국군 특수부대인 권단의 습격을 받았습네다. 동지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총을 노티 않았다 합네다!"
"뭐요? 그게 사실이오?"
남북을 가리지 않고 장성들 입에서 비명과 한숨이 동시에 새어 나왔다. 곧이어 한국 육군 정지수 대장도 부관의 보고를 전해 듣고 놀란 표정으로 보고했다.
"청와대도 중국군으로 추정되는 특수부대에 습격을 당해서 대통령님이 암살 직전에 구출됐다고 합니다! 국방부와 육군본부도 괴한들로부터 공격받았는데 조금 전에 간신히 몰아냈답니다. 그리고 과천에 있는 비상지휘용 벙커인 D-2가 방금 붕괴됐답니다."
참모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지수 대장이 모니터를 보며 말을 이었다.
"부산항과 인천항이 잠수함으로 추정되는 적으로부터 공격당했습니다. 그리고 김해공항이 적기의 공습을 받았고 서울 한강 교량 다수가 무너졌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대구와 광주 등 대도시 공단에 대화재가 발생했으며 고속도로와 철로 몇 군데가 폭발로 유실됐습니다. 본격적인 침공 직전의 양상입니다!"
"이북에서도 곳곳에서 공격을 받았습네다. 남포, 홍남, 김책, 청진, 김형권시 등에서 테러가 일어났습네다."

김병수 대장이 아직도 북한 국방위원장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듯 말을 더듬거렸다. 김책은 성진, 김형권시는 풍산이다.

 

- 중국군은 전통적으로 전술적 임무의 완수보다는 적 주력의 섬멸전을 선호했다. 모택동의 말대로 적의 열 손가락을 상하게 하는 것보다는 손가락 하나를 절단하는 것이 낫다는 식이다. 

 

- 10월 17일 02 : 00 제주항 
제주시의 항구인 산지항에 정박 중인 한국 해군 군함들에 비상이 걸렸다. 갑자기 한라산 레이더기지가 섬광과 함께 사라지자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적 출현을 직감한 제3함대 제주 분함대 사령관 김성우 준장이 비상출동 명령을 내린 것이다. 
중국의 침공위협이 있다며 정보사단이 발령한 비상경계령과 그 직후에 내려진 비상계엄하에서도 함대를 전투 배치하지 않고 경계만 강화시킨 것은 뼈아픈 실책이었다. 김 준장은 지프를 타고 지휘함으로 가던 도중에 구축함이 폭발하는 것을 보았다. 제독은 차를 세운 채 구축함이 완전히 침몰하기까지 부릅뜬 눈으로 지켜볼 뿐 전혀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하네.'

 

- KDX-1, 또는 KDX-2000으로 불리며 한국 해군이 대양해군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첫 번째 시도인 이 한국형 구축함은 실전에 투입되어 보지도 못했다. KDX-1 계획에서 세 번째로 건조된 만재배수량 3,900톤의 양만춘함이 제주항 인근 해역에서 중국 핵잠수함이 발사한 대함미사일 한 발에 그대로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만 것이다. 

마스트의 아르고(ARGO) ESM 안테나만이 무참히 찌그러진 채 물 위에 떠 있었다. 양만춘함은 안시성 전투에서 태종이 이끄는 당나라군을 물리친 고구려 명장의 이름을 붙인 전투함인데, 공교롭게도 중국 핵잠수함의 공격을 받고 가라앉은 것이다. 김 준장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파괴된 것은 한국형 구축함뿐만이 아니었다. 2,300톤의 울산급 프리깃함 FF-958 제주함과 포항급 코르벳함인 1,200톤급 781번 남원함까지 가라앉고 있었다. 또 다른 군함 3척이 침몰하고 이제 항구에 남은 것은 백구급 쾌속미사일정 겨우 두 척뿐이었다. 제주도 서쪽 해상에서 초계중인 청주함으로부터는 무선연락이 끊긴 지 30분이 넘었다. 

 

- 초계기들을 피하기 위해 남쪽으로 30노트 속력으로 20분간 이동해서 다시 서진했다. 과연 북쪽 멀리 검은 바다 위로 거대한 함정의 대군이 보였다. 실루엣을 보니 중국 해군의 루다급 구축함과 지앙후이급 프리깃함들이 분명했다. 백구 59호는 시동을 끄고 바다에 표류하기 시작했다. 주변어선들이 오징어 채 낚기 작업을 하고 있어서 들킬 염려는 없었다. 집어 등은 엄청난 촉광의 불빛으로 오징어 떼를 끌어들이지만 뜻밖에도 주변 바다 위를 밝히지는 않는다. 

"정장! 하픈은 4발 다 있겠지?"
갑작스런 공습과 분함대 사령관의 승선에 놀란 대위는 아직도 정신이 없었다.
"그, 그렇습니다. 육안수색 결과를 미사일에 입력시키겠습니다."
"아니야, 적은 상륙부대가 틀림없다. 항속거리가 짧은 미그-29가 섞여 있는 걸로 봐서 항공모함이 있을지도 몰라. 조금 더 기다려. 적은 아직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어."

김성우 준장은 복수심에 불타 이성을 잃고 무작정 공격하는 무분별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적 함대의 핵심을 공격하려는 것이다. 멀리 수평선상으로 구축함과 프리깃함의 그림자가 동쪽으로 흘러갔다. 10분쯤 기다리자 훨씬 큰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 "항모와 전차상륙함, 수송함입니다!"
백구 59호 정장이 망원경으로 중국 함대를 보다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거대한 함체가 바다를 압도하고, 주변 프리깃과 수송함 들은 고목에 붙은 매미처럼 작아 보였다. 미국의 대형 항공모함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3만 2천 톤급 항모 하이진은 한국 해군 승무원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 "중국이 확실하오? 우리 측 피해는?"
이종식 차수는 남반부 해군이 통일참모본부로 보고해 줘 다행이라 생각하며 물었다.
"제주항에 정박 중인 남해함대 제주 분함대가 크게 당했습니다. 한국형 구축함인 양만춘함이 침몰하고 제주함과 남원함이 침몰 중이거나 반파됐습니다. 청주함은 연락이 끊겼답니다. 그리고 중국 전투기의 공격으로 제주공항 기능이 완전 마비됐습니다. 레이더기지와 대공기지도 대부분 파괴됐습니다. 분함대 사령관 김성우 준장의 보고에 따르면, 제주항 서쪽 20km 지점에 항모를 포함한 대규모 함대가 제주도 쪽으로 항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심현식 중장이 이종식 차수의 질문에 답하다가 헛기침을 하더니 계속 보고했다.
"김 준장은 몸소 백구급 미사일정을 이끌고 중국 함대를 공격해 전차상륙함 한 척과 수송함 두 척을 명중시켰다고 합니다. 현재는 소식이 끊긴 상댑니다."

해상전투 중 연락이 끊겼다면 전사가 거의 확실했다. 인민군 9사단장은 행방불명으로 처리됐으니 김 준장은 확인된 최초의 장성급 전사자가 되는 셈이다. 참모들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 그러나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한국 육군 정지수 대장의 부관이 정 대장의 통신용 단말기를 급히 조작해 손으로 짚었다. 정 대장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깜짝 놀라더니 급히 읽어나갔다. 
"제주도 상공에 대규모 수송기 편대가 나타나 공수부대를 낙하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점령전!"
박정석 상장이 비명을 질렀다. 중국의 목표가 한국 점령인 것이 확실해진 것이다. 참모들 사이에 여러 가지 상념이 뇌리를 스쳤다. 이번 전쟁에서 패한다면... 잘못하면 한국은 중국의 주변국이나 식민지로 전락할 것이다.

"공군의 준비 태세는 어떻소?"

 

- "한국 공군에는 야간해상전을 수행할 만한 전투비행단이 얼마 없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깁니다만, F-16 야간투시장치인 랜턴(LANTIRN) 120대를 미국 록히드사로부터 구매하기로 했는데 개발비용 중에서 1,170억 원 정도를 바가지 쓰는 바람에 이를 환수하느라 아직 모든 F-16에 장착이 되지 않았습니다. 랜턴이 장비된 비행단도 야간공중전이야 수행할 수 있지만, 대함미사일이 부족해 대함공격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일단 광주비행장에서 1개 대대의 전투기가 출격했지만 요격임무만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더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KFP 사업이 시작되기 전에 도입한 구형 F-16은 하픈을 장착하지 못합니다." 
"그럼 지금 당장 적 상륙부대를 격퇴할 전력이 없다는 거요?"
이 차수가 되물었다. 현대전에서 전투기들은 전천후 능력이 요구된다. 이것은 전투기 성능과 대수에서 빠졌지만 한국 공군의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 한국정부는 록히드사로부터 부당이득을 환수하기 위해 1995년 미 법원에 제소해 장기간에 걸친 재판 결과 대부분을 환수받았지만 록히드사는 이를 빌미로 아직도 모든 기자재를 한국군에 넘겨주지 않은 상태였다.
"제3함대도 부산에서 출발했지만 아직... 새벽까지는 제주도에 주둔 중인 제92연대가 버텨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만약 제주도가 중국군에 점령당했을 때 우리가 이를 탈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지수 대장이 비관론을 폈다. 한국군에도 해병대가 2개 사달이 나있지만, 이때까지 수송수단을 미군에 의존해 온 한국군은 미군이 철수한 지금 독자적인 상륙작전 능력을 상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상륙작전은 완벽한 제해권과 제공권을 보유했을 때만 가능한 작전이다. 

 

- 10월 17일 03 : 15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도 상공 
광주에서 출격한 제5전투비행단 소속 전투기들이 급거 제주도로 향했다. 대함공격 무기가 없는 전투기들은 중국 함대의 영해침범을 알고서도 공격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공습 중인 중국 전투기에 대한 요격임무를 맡고 출발했으나, 중간에 중국 수송기들이 공수병력을 투하 중이라는 연락을 받고 목표를 이들 수송기로 정했다. F-16 전투기 24기는 편대진형을 갖추고 낮게 깔린 구름을 스치듯 비교적 낮은 고도로 남쪽을 향했다. 전투 직전의 긴장감이 조종사들을 휘감을 때 강력한 레이더전파가 탐지되었다. 해남 상공에 떠 있는 한국군 전자전기 E-2C에서 그 전파원은 영국제 전자정찰기 님로드의 레이더라고 알려주었다.

 

- [미사일은 러시아제 알라모다. 40 여기 접근 중, 회피준비!]
아군기를 향해 오는 미사일이 지금은 전투기에서 발사한 전파에 유도되는 반능동레이더유도(SAR) 중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 미사일의 최종 유도방식은 아직 알 수 없었다. R-27(나토 코드 AA-10 알라모) 공대공미사일에는 수많은 파생형이 있어서 최종 유도가 능동레이더 유도방식(AR)인지, 적외선 유도방식(IR)인지, 아니면 수동레이더 유도방식(PR)인지 중간유도 중에는 파악하기 어렵다. 게다가 F-16 전투기들이 장비한 암람과 사정거리에서 두 배 이상 차이가 나서 반격하기도 힘들었다. 
"저공으로 피해!"
[옵니다!]


- 편대장 최기호 중령이 채프를 뿌리며 급강하를 시작하자 전투기들이 그를 뒤따랐다. 뒤늦게 강하를 시작한 전투기 2기가 명중하며 밤하늘을 수놓았다. 1기는 정통으로 명중하고 1기는 꼬리날개 바로 20미터 후방에서 일어난 폭발에 빨려 들어 엔진이 부서지고 오른쪽 날개가 찢겨나갔다. 저 아래로 낙하산 한 개가 펼쳐지는 것이 보였다.
미사일들은 다양한 유도방식으로 목표를 노렸다. F-16 전투기들은 채프와 플레어, 그리고 전자적 재밍뿐만 아니라 ALE-50 예인식 유도체까지 동원해서 이 미사일을 피했다. 기동성이 좋은 F-16이지만 3축 도끼형 날개가 달린 알라모의 기동성이 더 좋았다. 거대한 탄두가 기체 바로 뒤에서 폭발하자 또 다른 F-16이 추락했다. 

 

- 현역 최강의 전투기라는 수호이-27. 여기에는 여러 가지 파생형이 있는데, 중국이 보유한 것은 해군형인 수호이-33의 개량형인 섬-15이다. F-16 조종사들이 전율했다. 조종사들은 강력한 엔진을 가진 수호이만이 가능하다는 후크기동과 코브라기동, 서머솔트기동을 떠올렸다. 그 거대한 전투기가 어떤 경전투기도 흉내내지 못할 기동성을 갖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한국 조종사들은 바짝 긴장하며 목표를 선정했다.
 

- F-16 전투기들이 암람(AMRAAM) 중거리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했다. 미사일은 수호이 전투기들에 접근하다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며 헛되이 작렬했다. 
"젠장! ECM이야!"
어쩔 도리가 없었다. 미국의 지원으로 개조된 중국의 수호이-27 계열과 미그-29 전투기에 비해 원래 설계된 전자장비조차 제대로 탑재하지 못한 F-16 전투기의 전자전 능력이 훨씬 떨어졌다. 편대장은 근접전을 각오했다. 날렵하다고 평가받는 F-16 전투기지만 근접 기동성에서 수호이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장거리 전에서도 불리하고 근접전에서도 안 된다면 이제 난전밖에 없었다. 

 

- 차영진은 총격전의 수학에 대해 생각했다. 9명의 청색 분대와 6명의 적색 분대가 교전에 들어간다. 병력수는 50% 차이, 명중률이 1/3로 같은 조건이라면 1회의 일제사격 후에 청색 분대는 7명, 적색 분대는 3명이 남는다. 두 번째 일제사격 후에는 6대 1. 병력수 50%의 차이는 수적으로 열세인 쪽에 파멸적인 결과를 낳는다. 9 대 6의 병력 비율이 실제 전투에 있어서는 그 제곱인 81 대 36의 전력 비율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군사학과 경영학에서 많이 원용되는 이른바 랜체스터 제2법칙이다.  

 

- 잠시 후, 결국 하늘은 중국이 점령했다. 드디어 중국군의 공습이 시작되었다. 수호이-24 전폭기 수십 대가 전투기 편대의 엄호를 받으며 나타났다. 공습은 치열했다. 기계화사단이 전 화력을 동원해 공중의 침략자와 싸웠으나 전투기와 전차의 싸움은 애초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전투기들이 대공미사일 탑재차량들을 휩쓴 뒤, 전폭기들이 전차와 자주포에 대한 공격을 가해왔다. 

 

- 중국 해군은 내전과 대만 침공을 계기로 전술과 무기체계가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미 지상군의 공지전을 빼다 박은 항공기 운용기술은 배울 만했다. 그리고 장 중장은 이곳이 비록 수심이 얕은 서해이지만 중국 잠수함들을 특히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국은 재래식 잠수함 100여 척뿐만 아니라 핵잠수함도 10여 척이나 보유하고 있었다. 장 중장은 불현듯 핵미사일 생각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중국 잠수함에서 핵어뢰 한 발만 발사하면 함대 전멸...'

이런 생각이 들자 함대를 더 넓게 분산시킬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대잠초계망을 자꾸 넓히다가 적 잠수함이 함대 중간으로 슬며시 들어오는 날엔 함대에 치명상을 입게 된다. 그는 일단 핵에 대한 우려는 떨쳐 버렸다.
'중국이 설마 핵을 사용하지는 않겠지...'

 

- 대공포마저 파괴되자 중국군의 장갑집단군은 속수무책이었다. 차영진은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곧 이혜숙 대위가 한 말이 생각났다. 
'전쟁은 모두를 패배자로 만들어요. 승자는 패자든, 살아남은 자든 죽은 자든 모두 비참해지죠. 전쟁을 정치 수단, 또는 적에 대한 이쪽 정치의 강요로 생각하지 말아야 해요. 직업군인들의 영웅인 클라우제비츠는 1,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원흉에 불과해요. 군대는 전쟁 억지력으로 작용하는 것만이 이상적이죠. 전쟁은 게임이 아니에요.'

 

- 10월 17일 07 : 30 개성, 통일참모본부
"중국은 핵을 사용하디는 않을 겁네다."
"당연하죠. 통상전력만으로도 우리 몇 배인데..."

어느 인민군 장령의 말에 양석민 중장이 가볍게 응수했다. 참모본부의 고민은 혹시나 중국이 핵을 사용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대부분 참모들과 군사전문가, 정치학자들의 견해는 부정적이었다. 중국은 국경지대 영토 일부가 일시적으로 점령당했을 때도 핵을 사용하지 않은 전례가 있다. 
"아시다시피 전선은 협소한 편입니다. 축차투입된 인민해방군을 모조리 섬멸한다면, 그래도 중국이 핵을 쓰지 않을까요?" 

 

- 토론을 지켜보던 이종식 차수가 미소 지었다. 젊은 사람이라 역시 패기가 있다고 이 차수가 양석민 중장을 다시 보았다. 북조선의 경직된 사회 분위기보다는 역시 남조선의 자유분방함이 사나이의 기백을 키우는 데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공화국 젊은이들은 너무 결패가 없다고 생각하며 이 차수는 젊은 날들을 떠올렸다. 

 

- "기 문제는 일단 적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서리 생각해 봅세. 우선 제주도는 어드렇게 되었소?"
이종식 차수가 의장답게 급박한 문제를 제기했다.

"중국 해군육전대가 북제주항에 상륙해서 현재 치열하게 교전 중입니다. 3함대는 아직 제주해역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제주도 상공에서는 현재 공중전이 치열하답니다. 방금 벌어진 공중전에서 적기 25기 격추에 아군기 피해 17기입니다."
양 중장이 종합해서 보고했다. 아직 지켜볼 일이었다.

 

- "대공미사일 발사! 채프 추가 발사. 좌현 90도 급선회! 왼쪽에 보이는 섬 뒤로 숨어!"
함장은 함에 장비된 모든 무기를 써 버릴 생각이었다. 이 해역에서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곤 애초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다. 지금 대전함은 공대함, 지대함, 함대함미사일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함대함미사일 2km까지 접근. 아! 방향이 바뀝니다! 빗나갑니다."

대공레이더를 맡은 전탐병이 신이 나서 떠들었다. 어차피 구형인 중국제 잉지 함대함 미사일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함장은 생각했다. 문제는 공대함미사일이었다. 비교적 명중률이 높은 데다가 채프에 얼마나 속아 줄지가 불투명했다. 게다가 커다란 함대공 미사일에는 잘 맞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 "지금이야. 재밍! 채프 발사!"
함 전체가 진동하며 채프가 발사되었다. 채프는 대량의 알루미늄 박지나 유리섬유에 알루미늄을 코팅하여 레이더파를 반사하는 수동적인 미사일 방어 도구이다. 대전함에 탑재한 ULQ-6 재머가 몰려오는 미사일에 적극적으로 전파방해를 시작했다. 드디어 대전함이 섬 어귀에 도착했다. 하지만 중국군 미사일도 거의 같은 시간에 도착했다. 

 

- 전투함을 지키기 위해서 상부의 명령이나 보고도 당분간이나마 묵살할 수 있는 것이 함장, 또는 함대사령관의 권한이었다. 그러나 통일참모본부는 해군에 대해서는 눈뜬장님이나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간간이 해주 상공에 있는 호커 800-XP 정찰기가 정보를 주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명령을 할 수도 없었다. 
"제주도는 현재 제주시와 서귀포시가 점령당했고 한라산 산정 일대도 대부분 중국군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미 늦었습니다. 공중지원부대가 출동했지만 적 항공기들에게 제지당해 제주도에는 접근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군 정지수 대장이 분통을 터뜨리며 보고했다. 참모들의 표정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개전 후 최초로 도 하나가 점령당한 것이다. 참모들은 이제 후방인 남부지방까지 중국 공군기들의 공습권에 들게 되었다며 걱정했다. 제주도가 함락되면 한반도는 남, 서, 북의 세 방향에서 공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 10월 17일 19:00 평안남도 신안주, 청천강 
통일참모본부는 국군과 인민군들에게 청천강 이남지역으로 후퇴하도록 명령했다. 박천까지 중국군에게 점령당해서 기동력과 화력이 우세한 중국 전차부대에 대한 방어선을 청천강으로 정하고 모든 병력을 후퇴시키고 민간인도 소개했다.
도로를 따라 피난민 행렬이 이어졌다. 노약자와 어린아이가 있는 부녀자들이 중심이 된 피난민 행렬에는 젊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한국의 동원예비군 격인 교도대나, 민방위와 흡사하지만 이보다 전투력이 있는 조직인 노농적위대에 입대해서 인민군과 같이 움직였다.
중국군 전투기에 의한 폭격과 전차부대의 포격이 계속되었다. 도로 위에서 서둘러 남쪽으로 향하던 민간인 차량들이 대거 파괴되었다. 사방에 비명이 난무하고 피난민들이 도로 밖으로 뛰었다. 도로는 순식간에 붉은 피로 포장이 되고 불붙은 자동차와 시체로 통행불능이 되었다. 

 

- 인민군 16사단 사단장 백영림 소장은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중국군의 포격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데 후퇴가 만만치 않았다. 국군 12사단이 먼저 후퇴하고 인민군 16사단이 뒤를 따르는데, 국군은 피난민의 안전을 고려하여 너무 천천히 후퇴했다. 

 

- 백 소장은 지휘차로 먼저 달려가 도로관제원들을 닦달했다. 트럭으로 후퇴하던 국군들이 구경하듯 보고 있었다. 백 소장이 화가 나서 권총을 빼들고 도로관제를 맡은 하급군관 한 명을 즉결처분했다. 놀란 도로관제 담당군관이 민간인들을 도로에서 몰아냈다. 쫓겨난 민간인들은 길 옆으로 차량을 버리고 걸어갔다. 남쪽에 신안주시의 불빛이 보였다.

박천을 빼앗긴 통일한국군은 청천강을 건너 안주로 넘어갔다. 이미 도착해서 방어진을 구축 중인 후방부대와 정주 등에서 후퇴한 부대, 그리고 피난민들로 안주는 혼잡했다. 중국군은 공격 전에 사전 정지라도 하려는 듯 전 포병을 동원해서 안주와 신안주 일대에 포탄을 퍼부어댔다. 피난이 늦은 민간인들 머리 위에 포탄이 우박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 10월 17일 09 : 30 (현지시각) 미국, 뉴욕 
중국이 국경을 넘어 침공해 오자 뉴욕 시간으로 다음날 오전 한국 측의 요청에 의해 긴급 유엔총회가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동 제안으로 열린 유엔총회장은 한국인들이 약소국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장소로 바뀌고 말았다. 
"조선은, 특히 남조선에는 우리 중국의 만주지역 침공을 주장하는 호전적인 단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 주장대로 옛날부터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다는 만주는 수천 년 간 중국 땅이었으며, 조선족은 명백하게 중국인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민족통합운동, 또는 고구려 고토회복이니 만주수복운동이니 하는 거창한 구호를 들먹거리며 호시탐탐 만주지역을 노려왔습니다. 자, 이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 유엔주재 중국대사 첸밍산이 발언권을 얻어 열변을 토하다가 비디오를 틀었다. 그것에는 중국내란 중 서울에서 우익단체들이 만주수복을 결의하며 궐기대회를 하는 광경이 담겨 있었다. 또한 민족선각자인 양하는 사람들이 쓴 책에서 문제가 되는 내용들, 심지어는 중국내전 중 국정원이 작성한 '중국내전 중 한국이 만주지역을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라는 비밀문건도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북한 혜산이라는 지역에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는데 그 희생자 대부분이 중국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중국 단둥에서 일어난 조선인들의 폭동도 중국을 무시하는 조선인들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게다가 남조선은 우리 중국내전을 이용하여 양측에 무기와 군수품을 팔며 내전의 확산을 획책했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중국인들의 피를 요구했습니다."

- 유엔주재 중국대사의 연설은 반은 사실에 기반을 두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지만, 큰 나라답게 수많은 작은 나라들을 설득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최근 중국과 적대관계에 있는 동남아 국가들은 중국의 눈치를 봐야 했으므로 침묵을 지켰고, 구 사회주의권 국가들은 중국을 지지했다. 다른 수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후진국들은 이미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보다는 아직은 낙후한 중국에 심정적 공감을 표시했다. 
"그 말이 사실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쟁을 일으킬 만한 원인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왜 우리가 먼저 공격하지 않았는데도 침략했다고 강변하시오?"
박윤흔 한국대사가 반박하자 중국대사가 바로 맞받아쳤다.
"역시 그럴 줄 알았소 여러분! 이 화면을 보십시오. 한국의 침략 행위를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10월 12일 자로 되어 있습니다."
화면이 움직이자 어느 시가지가 나왔고, 곳곳에 건물이 불에 타고 있었다. 장면이 바뀌어 사방에 널려진 참혹한 민간인 시체들, 그리고 총검으로 그 시체들을 찌르며 웃는 모습의 군인들이 보였다. 각국 대사들이 잔인한 그 장면을 보고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 기자가 목숨을 걸고 촬영한 것이오. 저 군인들을 보시오. 틀림없는 한국군이오. 단둥의 조선인들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우리 국경을 넘은 한국군들이 단둥 시내에 들어와 중국인들을 참혹하게 학살했소 이것을 보고도 거짓말하겠소?" 
"이건 명백한 조작이오! 한국군은 월경한 적이 없소!"
박 대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외쳤으나 첸밍산 대사는 콧방귀를 뀌었다.
"이런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보고도 조작이라니, 한국대사는 한국군이 국경을 침범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댈 수 있소?"
박 대사는 말문이 막혔다.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어찌 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유엔총회가 개최되기 전에 무관이 브리핑한 내용이 퍼뜩 생각났다. 
"아시아 각국이, 물론 주일 미군도 포함되지만, 중국 측의 최근 며칠간에 걸친 지독한 전파방해를 감지했소. 이는 각국 위성통신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주었소. 이는 중국이 한국을 침공하기 위한 사전준비가 아니란 말이오?"  
"그것은 한국군의 공습을 막기 위한 조치였소 우리는 전쟁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미국 전투기로 무장한 한국군의 공습을 막기 어려웠기 때문이오. 자, 아까 그 화면의 날짜를 보시오. 비서관!"
중국대사가 변명하며 비서를 불렀다. 비서가 비디오를 조작하자 다시 같은 화면이 흘렀다. 화면 아래에 날짜가 표시되었는데 틀림없이 중국이 전파방해를 시작한 날이었다. 

- "저 화면은 조작이오. 전쟁 5일 전에 그 화면을 찍었다면 왜 그리 오랫동안 저 화면을 공개하지 않았소?"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중국대사가 대답했다.
"전쟁은 이미 그때 시작되었소. 우리는 5일에 걸쳐 월경한 침략군을 몰아내고 부대를 이동배치해 이제야 중조(中朝) 국경에 다다른 것이요. 우리는 확실한 승리를 담보할 때까지 국제사회의 비웃음을 살까 봐 저 화면을 공개하지 않다가 이제야 침략군을 몰아내어 공개하는 것이오."
중국이 체면을 중시한다는 것은 유엔대사들뿐만 아니라 외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중국대사의 대답에 각국 대사들이 수긍하는 눈치였다. 중국대사가 각국 대표들의 눈치를 보더니 드디어 비장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물론 대부분의 유엔대표들은 무미건조한 톤으로 말하는 통역을 통해 듣지만 그의 목소리가 이어폰에서 나오는 소리를 압도했다. 
"침략국은 자국이 공격을 당해야 정신을 차리는 법이오. 이는 2차 세계대전 때의 일본이나 독일과 같은 경우요 한국은 침략국이므로 우리 중국은 한국을 공격할 국제법적 권리가 있으며, 이는 침략이 아닌 자위권의 발동에 불과하오. 아울러 우리 중국은 한국을 돕는 국가는 중국의 적으로 간주하겠소."

 

- 아랍계 복장을 한 사나이가 말하자 팔짱을 끼고 있던 말레이계 여인이 책상 위에 얹었던 손을 들고 말했다.
"그런 식이면 우리 모임은 의미가 없죠. 우린 우리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야 해요. 우리는 중국이 동남아 각국을 침공하고 있을 때 국제적 여론으로 압력만 넣었지 거의 방관했어요. 결과는 어땠나요? 자, 중국이 한국을 점령하고 나면 다음 차례는 누가 될까요? 그래요. 일본이겠죠. 그다음은? 언젠가는 분명히 러시아나 미국과 한판 벌일 게 틀림없어요. 그렇다면 핵전쟁은 피할 도리가 없겠죠." 
"우리 레인보에서도 현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다. 중국은 10여 척의 핵잠수함이 있고 다량의 핵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핵전쟁 가능성은 아직 적지만 중국이 불리해졌을 경우는 정말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중국이 한반도를 해상봉쇄할 때 잇달아 발생할 유조선 침몰과 원유 유출 사태를 생각하면... 끔찍하군요. 물론 한반도 산림과 환경의 피폐화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국가의 존망을 건 전면전에서 누가 환경문제를 염두에 두고 전쟁을 하겠습니까?"
국제적 규모의 환경보호단체인 레인보에 적을 둔 스웨덴의 쏘르가 말하자 위원들 모두가 심각해졌다.
"그렇소. 우리 모임은 비밀결사기구이긴 하지만 더 이상 우리의 안위만을 위해 침묵할 수는 없소. 이제 우리가 나설 땝니다. 싱께서는 준비가 되셨습니까?" 
의장인 카를이 한 사람을 지목하자 모두들 싱이라는 인도인을 주목했다. 하얀 터번을 쓰고 수염을 잔뜩 기른 전형적인 시크교도인 그는 반전전사 집단 PEACE의 무력부문인 레드 피스를 담당하고 있었다. 칼등이 휘어진 칼을 하나 쥐어 주면 더더욱 시크교 전사 같아 보일 사람이었다. 
 

- 나이가 들어 활동이 힘들어지고, 원주민과 농민들의 의식이 깨이자 현지인들에게 지도권을 넘기고 자신은 고국에 돌아와 산호세대학 의학부에서 연구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는 10여 년 전에 PEACE 위원들의 추천으로 이 조직의 무력부문 위원을 맡았다가 최근에 의장이 되었다. 싱은 카를이 무력부문 위원일 때 그의 무장조직의 하나에서 리더를 했지만 실제로 싱은 카를의 부하인셈이다. 그러나 상하관계 때문에 카를을 존경한 것이 아니라 그의 인종을 떠난 인류애 때문이었다. 
"한반도 지역 주변을 살펴보겠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지정학적 요건을 먼저 검토하겠습니다."
싱이 화면을 확대해서 한반도와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 러시아까지 넓은 지역을 보이게 했다.

 

"저는 중국이 한반도를 침공한 목적은 다른 데 있다고 봅니다. 중국과 한국과의 전쟁뿐이라면 의외로 쉬운 결과를 예측할 수 있지만 중국이 한반도를 차지한 후의 상황을 보면..."
싱이 단말기를 눌러서 중국과 한국을 같은 색깔로 표시했다. 중국이 한국을 점령했을 경우의 동아시아 지도가 되는 셈이다. 이미 점령한 대만과 베트남, 그리고 베트남 점령 이후 중국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는 동남아 여러 나라를 계속 같은 색깔로 표시하자 중국은 아시아 대부분을 장악한 대제국이 되어 있었다. 
"한반도는 작지만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한국이 중국에게 점령되면 일본은 버틸 수 없게 됩니다. 일본이 중국의 세력권에 들어가면 중국은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태평양에서도 대제국이 됩니다. 그리고 시베리아 지역은 중국이 꾸준히 관심을 둔 지역입니다. 원래 중국의 영토였다는 것이죠. 중국이 한국을 점령하면 동해를 통해 시베리아 지역을 손쉽게 공략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약체화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이를 보면 중국은 짧게는 일본, 길게는 러시아나 미국과의 한판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한마디로 세계대전의 전초전입니다." 
위원들이 잠시 웅성거렸다. 이는 정보위원인 짜르의 정보보고를 넘어서는 판단이었다.
"핵전력에서 중국은 러시아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생각입니다."
짜르가 불쾌하다는 투로 단언하자 싱이 고개를 흔들었다.
"중국인의 인내심과 장기적인 안목을 몰라서 하는 말씀입니다. 여기 위원 중에도 중국인이 계신데..."
위원들이 재정부문을 맡고 있는 창 위원에게 눈길을 돌렸다. 창이 약간 당황하며 검은 윗도리의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 "1949년 중국혁명 이후 중국은 왜 티베트를 침공했습니까?"
싱의 질문에 창이 머뭇거리다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티베트는 원래 중국의 영토였소."
창이 한마디로 싱의 질문을 일축하자 싱이 껄껄거리며 웃고 나서 반문했다.
"티베트 수천 년 역사 중에서 도대체 몇 년 간이나 중국 영토였나요? 처음으로 점령한 13세기에는 중국을 지배한 것이 한족이 아니라 몽고족인 원나라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문화적으로 중국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죠?"
창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이야기했다.
"그래도 중국은 티베트인들을 그 땅에서 몰아내지 않았소.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경우와는 다르다는 말입니다. 자치권도 주고 소득 수준도 중국 내에서는 상당한 수준이오. 티베트는 승려가 지배하는 봉건종교 국가였소. 조상의 해골을 불경스럽게도 여러 가지 목적으로 사용하는 열등하고 비위생적인 민족이란 말이오. 어쨌든 저도 중국의 티베트 지배를 찬성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들의 문화를 개혁할 필요가..."

"현실을 직시하시오. 다른 나라 문화를 개혁해 주기 위해 침공하는 경우가 어디 있소? 영토적 야심 아닌가요?"

 

- 미국인 메인은 팔짱을 낀 채 싱과 창의 말다툼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메리카 인디언이 독립을 쟁취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인구에 있어서도 그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제 미국은 백인들의 땅이었다. 그리고 메인은 조상들의 잘못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 "사실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면 국가방위에 유리하기 때문이오."

창이 실토하자 싱이 더욱 몰아붙였다.
"국가방위라뇨. 어느 나라의 침공에 대비한 것입니까? 주변에 있는 네팔인가요? 아니면 부탄? 이 나라들이 중국을 침략할 정도가 됩니까?"

창이 묵묵히 생각하더니 갑자기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 나라 인도요. 물론 아직까지는 인도의 국력이 약해 위험은 없지만, 인도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중국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나라요.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면 히말라야 산맥을 배경으로 인도의 침략으로부터 방어하기 쉽단 말이오. 그리고 티베트는 인도와 비슷한 문화권이니 두 나라의 관계를 단절시킬 필요가 있었소. 하지만, 서유럽 열강들이 몰려오던 청나라 말기에도 중국은 티베트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었소 중앙이나 지방정부에서 관리도 파견하고 말이오."
싱이 이제야 화난 얼굴을 풀고 미소를 띠며 위원들에게 말했다.
"중국은 50년 후에 인도가 국력이 강해져 중국을 침략할까 봐 이미 100년 전에 티베트를 점령할 정도로 미래를 보는 안목이 넓습니다. 1997년의 홍콩 반환만 해도 그렇습니다."

 

- "중국은 넓은 러-중 국경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바다에서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는 시베리아를 중국의 침략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위험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위원들이 러시아의 위험한 결단이라는 말에 부르르 떨었다. 이는 핵전쟁을 의미함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주변 모든 나라의 완충지대라는 사실을 위원들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이 한국을 점령하면 일본과 러시아뿐만 아니라 미국도 위험했다. 미국이 태평양을 잃으면 한낱 지역국가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
짜르가 지도에서 일본을 짚으며 말을 이었다.
"최근 일본의 동향이 수상하다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중국은 일본이 한반도를 침공할 줄 알고 선수를 친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은 한국 정도는 점령할 정도의 군사적 역량이 있습니다. 물론 병력동원에 시간이 좀 걸리지만... 이럴 경우 지도가 바뀝니다."


- 짜르가 일본과 한반도의 지도를 같은 색으로 바꾸자 이번에는 일본이 태평양의 대제국이 되었다. 한반도와 제주도, 일본 남부 가고시마에서 오키나와를 포함한 난세이제도가 대만까지 뻗어 중국을 완벽하게 해상으로부터 봉쇄해 버리는 것이다.
만약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면 필리핀 군도와 더불어 중국이 태평양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완전히 막히게 된다. 대만해협 남쪽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이곳은 물길이 사납기로 유명하다. 중국은 대만 남쪽의 좁은 바시해협을 통해서만 태평양으로 나갈 수 있는데, 이 해협은 유사시에 1개 함대, 또는 잠수함 몇 척만으로 봉쇄될 수 있는 극히 취약한 곳이다. 
"그럼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중국의 한반도 점령을 저지해야겠습니다."

 

- 10월 18일 10 : 30 (현지시각) 인도 북서부, 다람살라
티베트 망명정부 총리 텐진 테트론은 다람살라의 초라한 임시정부집무실에서 고민에 빠졌다. 모든 티베트인들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절대 비폭력을 외치지만, 중국이 다른 나라를 점령할수록 티베트 독립은 멀어져 간다는 생각이었다. 

 

- 텐진 테트론은 어린 시절에 본 장대한 티베트 고원을 회상했다. 창탕(羌塘: 북쪽이라는 뜻의 티베트어, 중국명으로는 藏北) 고원의 광활한 초원에서 방목되는 야크의 무리, 멀리 보이는 눈 덮인 흰 산, 일 년 내내 불어오는 차가운 서풍. 

그는 어릴 적에 부친의 장례식을 보았다. 부친은 독실한 라마교 신자인데다 부유한 편이어서 라마승의 결정에 따라 자토(鳥葬)로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승려들이 북을 울리며 부친의 시체를 메고 도우토우(鳥葬場)로 올라갔다. 가족과 친척들이 도우토우 입구에 있는 흰색 제단에서 향불을 피우고 기도하는 동안 그는 몰래 언덕 위에 숨어서 내려다보았다. 


- 도우토우에서 라마승이 강당(사람 뼈로 만든 퉁소)을 불며 독수리를 불러 모으는 동안 조자바(전문 장의사)는 날이 선 돌칼로 새들이 먹기 좋게 부친의 시체를 해체하고 있었다. 조자바가 커다란 돌을 내리쳐 두개골을 부수자 안구와 뇌수가 튀었다. 어린 그는 이 끔찍한 광경을 보고 눈을 감았지만, 부친의 시신이 우주의 원소가 되어 되돌아가고 혼은 새들의 인도를 받아 하늘로 날아가 49일 만에 또 다른 윤회를 시작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 15세에 그는 승려가 되기 위해 아미타불의 화신인 펜 라마와 함께 라사의 부다라궁(布達拉宮)에 들어가 불교를 연구했다. 부다라 궁은 1,300년 간 티베트 민중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관음보살의 화신인 달라이 라마의 거처로 사용되는 곳이기도 했다.

 

- 1959년, 중국의 세 번째 침공으로 14대 달라이 라마는 추종자들과 함께 걸어서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망명했다. 그러고 나서 티베트 내에서 일어난 몇 차례의 민중봉기는 언제나 피를 불렀다. 특히 89년에 일어난 봉기에서는 8천 명의 티베트인들이 중국군에게 학살당했다. 달라이 라마는 아직도 비폭력을 외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텐진 총리는 티베트 독립을 주장하는 무장세력과 은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 총리는 이제 일어설 때라는 확신이 생겼다. 티베트 독립은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 노선보다는 총이라는 구체적인 힘으로 쟁취해야 한다는 확고한 결심이 섰다. 더 이상 늦출 수 없었다. 텐진 테트론은 티베트 독립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 수도 있었다. 총리는 전화 수화기를 들고 버튼을 눌렀다(실제로 인도 다람살라에는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다. 1989년의 티베트 민중봉기 때 8천 명의 티베트인들이 사망했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는 인도의 간디처럼 비폭력 노선을 고집하며 무장독립운동을 반대해 왔다. 달라이 라마는 1989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 김의화가 절벽 위의 참호에서 나가지도 않은 채 낚싯대의 탄성을 이용해 천천히 줄을 던졌다. 크릴새우가 바늘에서 빠져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케미라이트(화학약품을 배합한 형광물질)가 허공을 가르며 물속으로 곤두박질쳤다. 연도에서 총소리만 들리지 않는다면 이들은 늦가을의 내림 감성돔 낚시꾼들로 보일 것이다. 
김의화는 찌 없는 낚시를 하고 있었다. 물이 소용돌이치는 곳을 찾아 찌와 봉돌이 없이 미끼만 던져서 미끼가 파도에 쓸려 다니면 의심 많은 감성돔이 덥석 미끼를 문다는 가정하에 여수 지역 낚시꾼들이 자주 써먹는 낚시법이다. 

 

- "행임은 연도 사람들이 걱정도 안 돼요? 직업은 못 속이요."
작은 낚싯배 선장 방영훈이 낚시점 주인 김의화에게 핀잔을 주었다. 연도가 중국군에 완전 점령되면 다음은 안도 차례라는 것은 너무도 뻔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가하게 낚시를 하는 김의화가 부럽기도 하고 너무 무책임해 보이기도 했다. 

"연도는 벌써 끝장이 나뿌렀다. 여그도 얼마 못 버틸 꺼여. 어차피 우린 소모품 아니겠냐. 시간만 끌믄 되겄지. 근디 영운이 니 헤엄이나 칠 줄 아냐?" 
김의화는 방영훈에게 눈도 돌리지 않고 낚싯대 끝만 주시하며 물었다. 낚싯대 끝의 작은 케미라이트가 스타라이트라는 상표명에 걸맞게 밤하늘의 작은 별처럼 어둡게 빛났다. 그것은 파도에 따라 천천히 오르내리며 깜박였다. 
"아, 나가 그래도 뱃놈 아니요. 헤엄은 칠 줄 아요만, 머덜라고요?"

조금 젊은 방영훈이 김의화에게 물었다. 강 일병도 궁금하다는 듯 김의화를 쳐다보았다. 김의화는 돌아보지도 않고 낚싯대 끝만 노려보고 있었다.

 

- "안도는 째끄낭께 도망갈 데도 없을 것이다. 싸우다 안 대믄 금오도로 튀야지 어쩌겄냐. 강 일병도 헤엄칠 줄 안당가?"
강일섭 일병이 머뭇거리다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강 일병은 여수 출신이지만 수영을 배울 기회가 별로 없었다. 바닷가에 살면 다들 수영을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는 법이다. 

 

- 김의화가 갑자기 긴장했다. 파도에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오르내리던 초리 끝이 한 템포 빨리 작게 움직였다. 강 일병과 방영훈도 초리 끝을 보았다. 밤에 다섯 칸(약 9미터짜리 낚싯대 끝을 보는 것은 쉽지 않아서 낚시에 문외한인 두 사람은 자꾸 눈을 깜박였다.
갑자기 낚싯대 전체가 휘었다. 감성돔이 미끼를 물고 바다 쪽으로 도망가자 김의화가 낚싯대를 챈 것이다. 낚싯대를 바로 세우자 초리 끝이 바로 눈앞에서 춤을 추었다. 낚시꾼과 고기와의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 "아가~ 총소리가 멈처뿌렀다! 인자 우리 차례구만이~"
김의화는 고기와 실랑이를 하면서 연도 쪽에도 신경을 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 김의화가 조심조심 낚싯대를 들어 올렸다. 마지막으로 줄을 잡고 끌어올리자 하얀 비늘의 감성돔이 펄떡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삐까리는 감성돔 새끼를 부르는 전라도 사투리다. 감성돔은 성체로 성장한 후에도 성전환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물이며, 맛이 좋고 낚시할 때 힘이 좋아 낚시꾼들이 즐겨 잡는 어종이다. 보통 추석 전후 한 달간은 남해 먼바다로 떠나 월동을 할 감성돔들이 닥치는 대로 먹어 피둥피둥 살이 찌는데, 낚시꾼들은 이 시기를 노려 감성돔 낚시를 많이 한다. 
"아따 고놈 참 이뿌게 생겨뿌렀구마. 쐬주하고 초장에 기냥, 캬~"

방영훈이 고기를 보고 입맛을 다셨다. 전쟁만 아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갑자기 밤하늘의 유성처럼 수십 개의 노란 불빛이 남쪽 바다에서 날아왔다. 김의화가 얼이 빠진 듯 그 모습을 보다가 정신을 차렸다. 
"어서 피해, 포탄이다."

 

- 김의화가 낚싯대를 쥔 채 몸을 참호 속으로 숨겼다. 방영훈과 강 일병도 멋모르고 따라 숨었다. 잠시 후 밤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폭음이 섬 전체에 연속적으로 울려 퍼졌다. 절벽 사이에 돌로 만든 이 참호의 30미터쯤 위쪽에도 포탄이 작렬했다. 먼지가 참호에 우수수 떨어지고 돌이 굴러 떨어졌다. 
"아까 본께 10분 동안 함포사격하든디 이번엔 어쩔랑가 모르겄네. 니가 한번 내다바라. 갠찮다."
김의화가 낚싯대를 접으며 말했으나 방영훈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참호 속에 머리를 파묻었다. 포격이 잠잠해지자 김의화가 고개를 내밀어 바다 위를 살폈다. 어두운 밤바다 위에는 수십 척의 상륙정들이 악몽 속의 유령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이곳에 투입되기 직전에 사진으로 본 85톤의 유친급 상륙정과 128톤의 유난급 상륙정들이었다. 상륙정 위로 전투기들이 폭음을 울리며 섬으로 다가왔다. 

 

- "두 척은 이미 침몰했습니다. 2척 대파, 1척 반파입니다."
한국 해군 제3함대 기함인 문무대왕함 함교에서 대공전 담당장교가 고개를 푹 숙이고 함대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중국 함대의 수상타격력의 핵인 잉지(鷹擊-1 대함미사일)의 사정거리 속에 있는 섬 사이에 숨어 함대함미사일을 발사한다는 작전은 크게 빗나갔다. 중국 함대뿐만 아니라 항공모함과 제주도에서 출격한 전투기들까지 대대적인 공격을 가해 남해함대를 반신불수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울산급 프리깃 마산함(FF-955)과 포항급 초계함 세척, 그리고 분통 터지게도 한국형 구축함 건조계획 KDX-1의 1번함 광개토대왕함이 침몰당해 운행불능이 되었다. 

 

- 특히 광개토대왕함의 대파는 충격이었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상당한 대공방어망을 갖춘 광개토대왕함이 초전에 대파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광개토대왕함이 일제히 쇄도하는 중국의 대함미사일에 시 스패로(Sea Sparrow) 대공미사일 16발을 모두 발사한 다음에, 채프의 구름이 중국 해군의 대함미사일에 대한 방벽을 두르고 2기의 30밀리 골키퍼(Goalkeeper) 대공포로 요격에 나섰지만, 몰려오는 대함미사일의 숫자는 함대 대공방어망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 기함인 문무대왕함은 반응이 신속한 수직발사기 체계를 갖춘 대공미사일 SM-2의 덕을 톡톡히 입었다. 대공방어망을 뚫고 들어온 미사일도 300미터 전방에서 30밀리 골키퍼가 간신히 명중시켜 미사일 파편에 의해 약간의 손해만 입은 상태였다.


- 문무대왕함에서 하픈 함대함미사일이 8발 연속 발사되었다. 탑재헬기인 웨스트랜드사(社)의 수퍼 링스에서도 밤하늘에 2기의 하픈을 발사했다. 평상시의 탑재무기인 시 스쿠아(Sea Skua) 대함미사일 4발 대신 오늘은 보다 대형인 하픈을 발사했는데, 발사 순간 앞부분이 뾰쪽한 링스헬기가 화염에 휩싸이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함정에서도 동시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함대에 소속된 2척의 포항급 코르벳함에서는 보다 소형의 엑조세를 발사했다. 엑조세는 사정거리가 42km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직선코스를 취했다. 욕지도의 상공에 불꽃놀이가 벌어지고 검은 바다와 하늘이 노랗게 빛났다. 

 

- 10월 19일 07 : 00 동지나해, 제주도 남방 80km 
푸르른 동지나해를 헤치며 함대가 조용히 북상하고 있었다. 인도의 중형 항모 1척과, 그보다 소형이지만 수직이착륙기를 운용하는 항모 1척, 그리고 최신형 순양함과 프리깃함들, 기타 지원함으로 구성된 이 군함들의 마스트에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푸른색 국기가 게양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국기가 아닌 반전전사그룹 피스의 깃발이다. 평화를 사랑하며 2차 대전 때문에 크나큰 상처를 입은 일단의 지식인 그룹에서 출발한 반전그룹 피스는, 어느덧 군대를 보유할 정도로 세력을 신장해 국가 간 전쟁에 간섭하려는 것이다. 

- 상륙함 갑판에 나온 병사들은 각양각색의 인종으로 구성되었다.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이들끼리 과연 언어소통이 될까 의문스러웠다. 그러나 이들은 피스 소속의 국제지원병과 용병들이다. 국제지원병들은 세계평화에 관심이 있을 정도의 지식인들이라 한두 가지 외국어는 구사할 줄 알며, 용병들은 직업상 어떤 언어에도 잘 적응했다. 네팔 출신 구르카 용병들도 당연히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었다. 그들은 모국에서도 엘리트일 뿐만 아니라 전쟁에도 프로였다. 

- 네팔 국민은 네와르족, 구릉족, 마가르족과 히말라야 등반에서 뺄 수 없는 존재인 셰르파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네팔의 샤하왕조는 인도의 크샤트리아(무사계급) 출신이며 구릉족이다. 유명한 구르카 용병은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때 협력했던 구릉족이 주축이 된 용감한 전사들을 지칭한다. 네팔에 구르카족이라는 부족은 없으며, 단지 구릉족의 전사들이 중심이 된 용병이 바로 구르카 용병이다.

 

- 인도 시크교도들이 주인에게 충성스러운 것으로 유명하다면 구르카 용병들은 두려움을 모르는 군인들로 이름이 났다. 구르카 용병들은 산업이 낙후한 네팔에서는 농업과 관광산업에 이어서 제3의 외화 수입원이다. 중국 반환 이전에 홍콩정청의 주요 시설 경비는 이들 구르카 용병이 맡았다. 

 

- "카를 씨께 질문입니다. 이 조직은 언제 생겼고 인적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아, 그리고 레드 피스라고 하는 부대의 병력은 얼마나 됩니까? 무장 수준은 어느 정도죠?" 
"한국군에 배속되어 작전할 계획인가요?"
"NGO가 국가 간 전쟁에 개입해도 됩니까?"
"혹시 동지나해에 있다는 소속 미확인 함대가 피스의 함대입니까?"

"미국은 중국에 대규모로 무기를 판매하고 있는데, 혹시 미군과 충돌하지 않을까요?"
"앞의 질문과 상반되는데요. 혹시 미국 정부가 피스 배후에 있는 건 아닙니까?"
기자들이 카에게 몰려와 질문공세를 퍼붓자 카를이 딱 한마디만으로 답변을 대신하고 회견장을 떠났다.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여러분의 직업이고, 비밀을 지켜야 하는 것이 저의 책임입니다. 이만, 안녕히!"

 

- "잠깐만요. 피스에서 돕더라도 한국은 결국 중국에게 점령되지 않을까요?"
당돌한 여기자의 질문에 카를이 멈춰 서서 그 여기자를 보았다. CNN의 유명한 흑인 민완기자 캐럴 골드버그였다. 금발의 흑진주라는 별명에 걸맞게 아름다운 금발과 멋진 흑갈색의 피부를 가진 미인이었다. 그녀는 미모보다는 능력으로 방송계에서 살아남았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골드버그 양, 당신은 강간당할 위기가 오면 저항을 포기하오?"

 

- 상하이에 기지를 둔 해군항공대 전투기들이 날마다 한반도 남쪽 지방을 폭격하고 있었다.
여수의 한국비료 공장뿐만 아니라 옥포의 대우조선소도 당했다. 장갑차와 자주대공포를 생산하는 광주의 아시아자동차 공장과 전차를 생산하는 창원 현대정공 공장이 중국 전투기들의 폭격에 호되게 당해서 전차와 장갑차를 빨리 보내 달라는 전선으로부터의 빗발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 싱이 보기에 장기전으로 가다가는 한국에 승산이 전혀 없었다. 중국에는 아직 무한정의 병력과 장비가 있는 반면 한국군 전력은 사흘 만에 거의 바닥이 난 것이다. 특히 해군과 공군의 소모가 심했다. 이들은 장기간의 교육기간이 필요하다는 참모의 설명이 없더라도 한국은 풍전등화의 상황이었다. 
문제는 제주도였다. 중국 산둥반도로부터 출격하는 전투기들은 항속거리의 제한 때문에 한반도에 사실상의 위협이 되지 못했으나 제주도에서 출격하는 전투기들은 달랐다. 그리고 상하이 쪽에서 출격한 중국 해군 소속 공격기들은 제주도를 중간 기착지로 삼아 재급유한 후 한반도 남부를 폭격했다. 
그러나 한국군 해병대는 미군철수 후 상륙전용 수송수단이 부족해 제주도 상륙작전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민간인 배를 다수 징발할 수는 있지만 속도가 느린 배들로 상륙작전을 펼치다가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한 지금 상태에서는 막대한 손해가 예상되어 통일참모본부에서도 아예 포기하고 말았다. 이때 피스가 나선 것이다. 

 

- 그러나 중국 전투기들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미사일을 먼저 막아야 했다. 서방의 분류번호 AA-12인 러시아제 중거리 미사일이 전투기들을 향해 날아왔다. 사정거리 90km인 이 미사일은 중국 전투기들의 가시선 훨씬 밖에서 날아왔다. 능동형 미사일이 아닌 것을 확인한 중국 조종사들은 일단 날아오는 미사일을 피하기에 바빴는데 격자형 핀이 달려 있고 12.5G의 고기동까지 가능한 이 미사일을 전투기의 순발력으로 피할 수 있다는 오해는 참혹한 결과로 나타났다. 

 

- 게다가 이 미사일은 능동형 공대공미사일이었다. 관성유도로 목표에 접근한 다음 액티브 레이더가 최종 작동하는 AA-12는 같은 러시아에서 만든 수호이-33 전투기들을 하나씩 떨어뜨렸다. 수호이 전투기들이 채프를 뿌리며 최고속도로 제주도 쪽으로 도망갔다. AA-12 미사일은 채프의 효과 한계주파수인 20기가 헤르츠를 넘는 30기가 헤르츠의 주파수를 발산한다. 미사일이 채프의 구름을 뚫고 전투기를 포착해 마하 3의 속도로 수호이 전투기들에 명중했다. 
  

- 양 중장이 속사포처럼 질문을 퍼부었다. 정보사단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도 침입하지 못한 중국군 전산망이었다. 전시가 되자 중국의 모든 컴퓨터들은 국제통신망과의 접속을 끊어서 침투해 볼 기회도 없다는 것이 정보사단의 보고였는데 어떻게 침입했는지 궁금했다. 중국 국내의 인터넷 통신망인 차이나넷은 이미 작동이 되지 않았다. 한국과의 전쟁을 시작하자마자 중국은 중국 본토뿐만 아니라 홍콩과 대만까지 국제통신망을 폐쇄해 세계 경제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고 각지에 금융공황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각국 주재 대사관과 국제기구와의 통신망도 끊겼다. 중국은 이런 손해를 감수하고도 통신망을 차단할 정도로 컴퓨터 보안에 철저했다. 

"저희들은 얼마 전 중국에 항복한 베트남의 행정컴퓨터망을 통해 침입했습니다. 중국은 기밀유출을 우려해 국제통신망과 연결되는 모든 컴퓨터망을 차단했습니다만, 베트남 주둔군을 빼먹었더군요."

 

- 이 차수의 말에 인민군 참모들이 즉시 동의했으나 국군 참모들은 모두 의아해했다. 
"아니, 겨우 1개 대대로 어떻게 적의 주공을 막습니까? 아무리 대전차대대가 전문 전투집단이지만 적 규모는 1개 집단군, 즉 우리 측 군단 규모를 훨씬 넘습니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닐까요. 괜히 시간낭비나 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 정지수 대장이 반발하자 다른 국군 참모들도 끼어들어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이들의 주장은 아무리 대전차대대가 효율적인 대전차 방어부대라도 적 규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이들을 영국 기갑사단의 대전차연대처럼 사단규모의 전투에서 전술적으로 이용할 수는 있어도 집단군을 상대로 하는 전략적인 임무에는 규모가 너무 작다는 것이다.  

 

- "우리 공화국 저격여단은 러시아군 같은 일반 보병여단이 아니라 정규전용 특수부대입니다. 특히 제10저격여단은 정찰국 직속 정찰대대처럼 아주 특별한 존재이고, 몇 가지 특수전 대대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투 목적에 따른 병과별로 대대가 있는데, 시가전대대, 야간전대대, 대전차대대, 산악전대대 등이 그것입니다." 

김병수 대장이 평안도 사투리가 거의 없는 문화어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먼저 국군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저격이란 단어에 대한 통념부터 깨야 했다. 일반적으로 러시아 보병사단은 저격사단이라고 통칭된다. 그 부대는 소총수들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저격이란 말은 적 공격부대의 예봉을 꺾는다는 뜻이다. 바로 여기에 큰 차이가 있다.   
 

- "이들 모두 대 전차전의 최고 전문가들입니다. 물론 적이 집단군이라는 대규모이긴 하지만 실제로 중국 장갑집단군과 맞부딪칠 경우 승패를 장담할 수는 없으며, 아무리 이들의 능력을 낮춰 잡아도 최소한 3일 정도는 적을 막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대전차대대는 개성 전면의 국군 기계화보병사단에 맞서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다는 데에 주목해 주십시오." 
"아니. 그러면 인민군은 유사시에 우리 국군 제1기보사를 대전차대대에 맡길 생각이었소?"
정지수 대장이 비꼬듯 말하자 김병수 대장도 맞받았다.
"국군이 북침할 경우 우리 인민군은 대전차대대로 국군 제1기계화보병사단을 섬멸시키고 815기계화군단과 820 전차군단으로 서울을 점령할 계획이었소. 내 말은, 우리 인민군 부대들을 너무 우습게 보지 말라는 뜻이오." 
"적은 집단군이오. 1개 대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겠소? 하긴, 후퇴하는 아군을 엄호할 정도의 시간만 벌어 주면 되겠죠. 저는 대전차대대의 투입을 찬성합니다. 전선을 유지할 시간만 좀더 벌면 좋겠습니다. 후방의 부대가 배치될 때까지 아직 시간이 부족하니까요."
국군 정지수 대장도 결국 찬성했지만 극히 냉소적이었다.

 

- 급유를 마치고 수원비행장으로 돌아오자 자신이 한국 공군 통틀어 세 번째의 에이스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편대기 12대 중에서 살아남은 조종사는 김종구 중위를 빼고 4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나마 2명은 격추되어 낙하산으로 비상탈출했는데, 전장 한복판에 떨어져 아직 구조를 못하고 있었다. 수원에 돌아온 F-16은 떠날 때 12대에서 3대로 줄어든 것이다. 잠시 후 인민군에게 구조된 편대장 조장호 중령이 헬기로 귀환 중이라는 연락이 왔다. 

 

- 10월 19일 21:00 필리핀 상공 
대한항공 소속 여객기 KAL 638기가 필리핀 루손섬 동쪽 200km 해상의 상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이 여객기는 호주 시드니에서 이륙했는데 기내에는 승객이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승객용 좌석이 모두 치워진 이 여객기는 대만과 남사군도가 중국에 점령된 후 붕괴된 싱가포르 무기시장을 대신해 시드니에서 열린 무기시장에서 각종 미사일을 구입해 싣고 한국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 이 여객기의 유일한 손님은 국가정보원에서 근무하는 요원 한 명뿐이었다. 호주로 갈 때는 조달본부 소속 육해공군 장교가 한 명씩이 더 있었지만 불시에 중국 첩보요원들의 공격을 받아 모두 유명을 달리했다. 전쟁은 한반도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존의 호주-한국 노선은 크게 동쪽으로 옮겨졌다. 오늘 오전에는 한국에서 호주로 향하던 여객기가 중국 전투기에 격추되어 승객 전원이 몰살당했다. 국제항공기구(ICAO)가 중국의 범죄행위를 규탄했지만 중국 정부는 이 행위는 국가안보를 위한 정당한 활동이라고 반박했다.
KAL 638은 항공등도 켜지 않은 채 여객기로서는 엄청나게 낮은 고도인 고도 1,000피트로 북쪽을 향해 비행했다. 비행기 아래쪽 해상에 흰 항적을 끌고 있는 선단이 보였다. 

 

- 같은 시간, 참치냉동선 동원 139호 
장봉수 선장의 동원 139호는 최고 속도로 북쪽을 향했다. 서사모아에 기항 중이던 그의 배는 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즉시 냉동창고를 모두 비우고 필리핀 루손섬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공산반군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소총과 수류탄 등 소화기를 가내생산하고 있는 집들을 돌며 이들 무기를 값을 가리지 않고 구입했다. 사정을 전해 들은 무기중개인이 국제무기상인 호세를 소개해줘 그를 통해 대량의 휴대형 지대공미사일과 대전차미사일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돈이 부족했다. 비상시를 대비해 회사에서 입금해 준 아메리카뱅크 계좌의 예금잔고를 훨씬 넘는 큰 금액이었다. 선장은 본사의 회장을 설득해 대금을 송금시키고 이를 호세에게 주었다. 그가 루손섬을 떠날 때 호세는 신의의 상징으로 자기가 소지하고 있던 콜트 38구경 권총을 장 선장에게 주었다. 무기에 이상이 있으면 언제든 다시 돌아와 그 권총으로 자신을 쏘라는 의미였다.

- 장 선장은 한국으로 향하는 중에 중국 잠수함에 의해 두 척의 어선을 잃었다. 중국 잠수함들은 한국 상선들이 기존 항로를 크게 우회한다는 사실을 알고 필리핀 근해까지 침범해서 한국 국적의 배를 공격했다. 장선장은 배를 잃고 나서야 태극기를 내리고 선미에 일장기를 게양했다.

- 10월 19일 
일본 정부는 중국이 한반도를 침공하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전시 연립내각을 구성했다. 가장 먼저 내각이 한 일은 일반산업체의 방위산업체로의 전환이었다. 자동차를 만들던 공장라인은 장갑차 등 군용차를 생산하고, 조선소 독은 모두 함정 건조에 사용되었다. 미쓰비시 중공업 공장에 설치된 전투기 생산라인이 매일 두 배씩 늘어났다. 군사전문가들도 예상치 못한 빠른 속도로 일본은 전시체제로 돌입했다. 

예비역 자위관들이 소집되었으나 아직 징병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조만간 징병제가 실시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한반도에 자위대를 파견하겠다는 일본 수상의 제의를 한국의 홍지영 대통령이 거절했다는 외신보도가 있었지만 두 나라 정부는 모두 부인했다. 

- 일본이 그런 제의를 하더라도 한국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일본군의 한반도 진주는 한국민의 감정상 너무 꺼림칙했던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야심도 무시할 수 없었다.

 

- 일본 해상자위대의 함정들이 대마도 서쪽에 자리 잡았다. 한국 해군 제3함대는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1개 구축함대를 부산 쪽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한국 정부가 일본에 무기 수출을 요구했지만 일본은 이를 거부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화물선과 여객선은 일본 해안순시선이 임검을 한다는 명목으로 며칠씩 항구에 붙들어 두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한중전쟁이 발생하자 엉뚱하게 한일 간의 감정싸움은 더 심해졌다. 

 

- [이번 참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소속 특수부대인 제10저격여단 야간전대대의 소행으로 추정됨. 절대 인민군이나 남조선군의 패잔병집단이 아님. 야간전대대는 야간전 전문 전투부대로서 특수훈련을 이수하고 무성무기를 주로 사용하며 백병전에 능함. 달빛이 전혀 없는 암흑상태의 야간에도 10미터 이상 떨어진 상대방의 명찰을 인식할 정도임. 
참고로 저격여단은 전원이 각종 무기와 폭발물의 전문가들임. 적이 소수라고 무시하는 행동을 절대 하지 말 것. 주간에 적 발견 시 반경 40km 이내를 포위, 추적하여 섬멸할 것이며 이들과의 야간전은 부득이한 경우 외에는 회피할 것. 이상.

중화인민공화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리루이환]

 

- 10월 20일 05:00 평안남도 개천군 
비상이 걸린 중국군 제16병단 사령부가 북경으로부터 온 전문을 받은 바로 그 시간, 인민군 야간전대대의 병사들은 산길을 타고 동쪽으로 40여 km 행군했다. 이들은 안주로 급히 향하는 25집단군과 엇갈려 개천군에 있는 용사 남쪽 숲 속에 도착, 나무 밑둥을 파고들어 가 안대로 눈을 가리고 자기 시작했다. 새벽이란 이들에게는 암흑의 시작을 뜻했다. 너무 밝아 활동을 못하는 것이다. 

밤에만 활동하기 때문에 자신들을 드라큘라라고 자조하는 병사들도 있었지만 모두들 밤을 좋아했다. 부득이한 이유로 낮에 전투를 수행해야 할 경우에 이들은 야간전투 시 일반보병이 착용하는 야시경처럼 광량조절필터가 달린 안경을 반드시 착용해 햇빛으로부터 자신들의 눈을 보호해야 했다. 무덤 뒤쪽에서는 대대장이 중대장들을 모아 회의를 하고 있었다. 

 

- "현재 남북의 공군력은 전쟁 전의 절반 수준입니다. 격추 및 파손, 또는 정비 중이라서 실제 가용 전력은 전쟁 전의 전투기와 공격기 합계 1천500대에서 현재 800대 정도입니다. 특히 F-16의 손실이 큽니다. 그렇다고 중국의 신예전투기들을 상대로 숫자가 많기는 하지만 성능이 떨어지는 F-4나 F-5를 투입하기도 무리입니다. 미그-23 이하급은 더욱 힘들고요." 
"..."
참모들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일단 전북의 32사단을 충청도 해안으로 돌리고, 북쪽으로 이동 중인 전남의 61 예비사단을 긴급배치하면 어떨까요? 어차피 해군이나 공군의 지원은 힘들 것으로 보이는데..."
양 중장이 현실적인 방안을 내놓았지만 이는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육군의 막대한 피해를 각오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을 참모들은 잘 알고 있었다. 

"역상륙은 어떨까요? 일단 상륙을 허용하고 적의 상륙지점에 우리가 역상륙하면..."
심 중장이 안을 내놓았으나 모두들 고개를 저었다. 일단 해군력이 강하지 못한 통일한국군에는 역상륙할 자원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역상륙은 상륙병력 전원의 전멸을 각오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작전이다.
세계전사상 역상륙이 시도된 적은 많았지만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적의 군수물자에 대한 타격을 목적으로 한다면 별개의 문제 ...

 

- 그러나 일본 해상자위대의 이 시킹은 대공레이더 포드를 장착하고 있었다. 한국 헬기들은 이 엉뚱한 시킹 때문에 이제 수평선 아래로 숨을 수 없게 되었다.

"1기 회피, 또 접근합니다!"
부기장의 얼굴이 사색이 되며 비명을 질렀다. 기장은 미사일을 피하면 꼭 하픈을 발사하겠다고 결심했다. 그가 군법회의에 불려 가더라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만약 그가 일본의 미사일에 맞아 전사하면 일본은 그가 일본 함대를 먼저 공격했다고 생떼를 부리거나 국제사회에서의 힘을 이용해 얼버무릴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 분했다. 

- 오른쪽 상공에 섬광이 번쩍였다. 편대기인 헬기가 미사일에 맞아 공중폭발한 것이다. 기장이 급선회 및 급상승해서 간신히 미사일을 따돌렸다. 그는 헬기를 급하게 조정해 고도를 올렸다. 이미 기장은 이성을 잃고 있었다.
"발사!"

잔뜩 상기된 기장이 명령하자 부기장이 얼떨결에 하픈 2발을 발사했다. 영국의 웨스트랜드사에서 제작한 수퍼 링스의 한국 해군 인도분 중초기형은 시스쿠아(Sea Scua) 대함미사일 4기를 장착했다. 이 미사일은사정거리가 짧고 탄두의 위력도 약해서 한국 해군은 하픈을 탑재할 수있도록 헬기를 개조했다. 하픈이 목표를 향해 날았다.  
"함대사령관이 나왔습니다. 하픈을 발사했다고 난리인데요?"

부기장이 보고하자 기장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니기미, 지랄하지 말라 그래. 우린 죽기만 하란 말야? 내 말 그대로 전해."
황당해진 부기장이 기장의 말을 동해함대인 제1함대사령관에게 그대로 전하다가 경악했다.
"적 전투기가 나타났습니다! 미사일 경보!"

 

- 저공으로 한국 영공을 침입한 일본의 F-15J 전투기 두 대가 남쪽 상공에서 나타나 가시거리 훨씬 밖에서 한국 해군 헬기에 스패로 대공미사일을 발사했다. 스패로 4발은 채프를 이미 다 써 버린 수퍼 링스 헬기로 쇄도했다. 마지막 수단으로 ECM(전자전)을 걸었지만 소용없었다. 헬기는 피할 곳이 없었다. 저공비행 중이던 헬기가 그대로 물속에 기체를 처박았다. 기장은 일본의 미사일에 죽기는 싫었던 것이다. 미사일들이 목표를 잃고 침몰하는 헬기 위를 스쳐 지나갔다. 
수면에 부딪친 충격으로 부기장이 실신했다. 기장이 문을 열고 헤엄쳐 자동으로 펼쳐진 구명보트를 끌고 다시 헬기로 돌아가 부기장을 옮겼다. 이때 일본 전투기들이 나타났다. F-15J 전투기가 물 위에 아직 떠있는 헬기에 기관포를 마구 쏘아댔다. 해면에 하얗게 물보라가 튀었다. 포화를 뒤집어쓴 수퍼 링스 헬기는 순식간에 폭발했다. 폭발 순간의 강력한 폭풍이 구명보트를 뒤집었다. 
전투기들은 상공을 몇 번 선회하더니 동쪽으로 날아갔다. 빈 구명보트 근처에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이 준장이 통신기 옆의 벽을 주먹으로 쳤다. 주먹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통신기에서 잡음이 잔뜩 실린 채로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통신실의 수병들이 따라 부르기 시작하더니 함 내에 울려 퍼졌다. 원래는 코믹한 리듬의 노래지만 지금은 장엄하게 들렸다. 
 

- 10월 21일 08 : 30 독도, 동도 천장굴 
"통참에서는 우리더러 응사하지 말고 그냥 죽으라고 명령했다."

안국선 경위가 침통한 목소리로 상부의 명령을 부하들에게 전했다. 사실, 함대에서 전한 통일참모본부의 명령은 저항하지 말라는 것인데, 일본 함대와 항공기들이 공격하고 있는 와중에 저항하지 말라는 명령은 앉아서 죽으라는 명령과 다름없었다. 물속에 몸이 반쯤 잠긴 의무경찰들이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경찰공무원법이나 전투경찰대설치법에 따르면 경찰은 정규군이나 비정규군이 아닌 민간인이며, '육전법규관례에 관한 헤이그협약(육전규칙)'에서 규정한 교전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경찰신분인 독도경비대가 한국 영토인 독도를 침공해 오는 일본군에 대해 적대행위를 하다가 체포될 경우, 국제법상 전쟁범죄자로 처벌받게 되며 포로로서의 대우를 받을 수 없다. 이는 외국군의 영토침범에 따른 자위권의 행사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천장굴 바깥에서는 일본 전투기에서 투하한 폭탄과 일본 함대의 함포에서 발사된 포탄이 연이어 작렬하고 있었다. 관측소에 있다가 중상을 입고 천장굴 남쪽 입구 쪽으로 후송된 김 수경은 바위틈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 10월 21일 09 : 30 일본 통막회의
"저는 조선이 막강한 중국의 침공을 막고 있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됩니다. 조선은 분명히 전력 외의 다른 뭔가가 있습니다. 이런 조선을 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중국군을 반도에서 몰아내면 조선군은 틀림없이 열도를 공격할 것입니다. 우리는 병력이 훨씬 열세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자위대 통합막료회의(統合幕僚會議 회의실에서 항공막료장(航空幕僚長)인 야마다 마사오(山田正雄) 공장(空將)이 해상자위대의 독도점령에 우려를 표했다. 독도의 점령은 일본인 입장에서 보면 실지회복이라는 의미가 강했다. 
일본의 영토인 독도를 2차 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자 식민지에 불과했던 한국이 강점했다는 인식을 가진 일본인들은 이번 자위대의 독도점령을 열렬히 환영했다. 어차피 한국은 중국과 전쟁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으므로, 결국 한국은 독도를 일본에 양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 방위청의 방위국에서 파견된 사토 가쓰미(佐藤勝巳) 조사 제2과장이 씩 웃으며 한국이 이번 전쟁에서 우세한 이유를 설명했다. 조사 2과는 해외정보를 담당하는 부서이며, 각국에 파견되어 있는 방위주재관(대사관의 무관)들이 외무성을 경유해서 보내오는 정보와 문서를 분석·번역하는 임무를 맡는다. 

 

- 소집 대상도 아닌 나이 든 남자들과 젊은 여자들의 자원입대가 급속히 늘어났다. 
각지의 임시모병소와 군부대 앞에는 입영지원자들이 쇄도했다. 국방부는 일단 전선에 여유가 생긴 상황이므로, 이들이 가진 기술과 건강상태 등을 따져 선택적으로 입영을 허가했다. 군은 이들을 철저히 교육시킨 다음 전황을 봐가며 전선에 배치할 계획이었다. 한국전쟁 때처럼 총한 방 쏘아보지 않고 최전선에 투입되는 불행한 사태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각 지방 공업단지들은 급속히 군수산업으로 전환되어 속속 무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의류를 생산하는 업체들은 즉시 군복 생산에 들어갔고, 다른 업종에서도 무전기, 실탄 등을 생산했다. 피스 함대가 중국에 대한 역해상 봉쇄를 실시한 다음부터 말레이시아 등의 항구에서 대기하던 화물선들이 들어오기 시작해 원료와 원자재난은 해결되었다. 

 

- 참모본부 상황실의 좌측통신용 화면에 대통령이 나타났다. 그동안 묵묵히 통일참모본부를 옹호했으며 신중하기로 유명한 홍지영 대통령도 그런 결정을 한 참모본부에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통일참모본부에 독도의 무력 회복을 명령하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았다. 
이종식 차수가 허허 웃으며 대통령의 불평을 들어주는 것이 마치 칭얼거리는 손자를 달래는 듯했다. 이 차수는 대통령을 보며 육군 상병으로 제대한 보충역 출신치고는 상황판단이 냉철하다며 감탄했다. 이 차수는 대통령에게 전혀 설명할 필요도 없었으며, 대통령은 미리 보고하지 않은 것만 이 차수를 탓할 뿐이었다.  

 

- "씁쓸한 비난의 화살이로군요."
대통령과의 화상통신이 끊기자마자 양석민 중장이 투덜거렸다.

"내래... 약소국에서 태어난 사실에 비애를 느낍네다."

 

- "기건 길코... 준비는 잘 되어 가오?"
이 차수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홍 대통령의 불만 같은 것은 신경 쓰지도 않고 양 중장을 보며 준비상황을 체크해 나갔다. 치밀한 양석민 중장이 훈련상황과 침입예정 루트를 참모들에게 보고했다. 아주 중요한 결정이었지만 참모들은 별로 간섭하지 않았다. 

 

- 정지수 대장은 여전히 어두운 얼굴이었다. 도대체 이 작전 자체가 두려웠다. 대통령의 결정은 비밀유지를 위해 삼군총장과 합참의장, 국방부 등의 라인을 소외시킨 채 통일참모본부의 건의 형식을 빌어 홍 대통령이 단독으로 결정했다. 망설이는 대통령을 현재 북한의 최고실력자이며 인민무력상 최호 원수가 설득해 겨우 재가를 받을 수 있었다.  

암호명 '장마'라고 명명된 이 작전에는 한국의 국가정보원과 인민군 정찰국 직속 정찰대대가 동원되었고, 이들의 호송은 한국 해군의 잠수함대가, 그리고 루트 개척은 한국 해군 UDT와 공수특전단 등에서 동원된 인원이 맡았다. 그들은 정규군은 아니지만 이번 한중전쟁에서 가장 위험하고도 중요한 임무를 떠맡게 되었다. 모든 한국인의 미래를 건 건곤일척의 승부수였다. 

 

- 이윽고 달이 기울자 야간전대대 대원들이 움직였다. 달 없는 밤의 움직임이었지만 이들은 신중했다. 어제의 실패가 모두를 신중하게 했다. 어제는 중국군 야영지에 접근하다가 청음초소의 초병들에게 발각돼 공격도 못 해보고 후퇴했다. 선발대가 중국군 초소에 접근하던 중에 한 대원이 살얼음을 잘못 밟아 뽀드득거리는 소리를 낸 것이다. 중국군의 주둔지에 비상이 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미처 공격진형을 갖추지 못한 야간전대대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군의 추격을 피해 약 30km를 북쪽으로 후퇴한 후에, 대대장이 처음 소리를 낸 대원을 즉결심판했다. 소음권총에 의한 총살이었다. 그 대원은 자결을 간청했지만 대대장이 들어주지 않았다. 대대장이 권총을 뽑아 그의 머리에 대고 한 발을 쏘았다. 다른 부하들이 즉시 땅을 파고 시체를 묻었다. 그리고 그 위에 눈과 썩어가는 낙엽을 덮어 위장했다. 

이 부대가 정주에 나타난 것은, 중국군의 추격도 피하고 상대적으로 경계가 덜한 청천강 북쪽의 적을 치기 위한 것이었다. 여단본부와의 무선은 끊어진 지 이틀이 지났고, 임시 비트가 적에게 탄로나 휴대한 비상식량도 바닥이 났다. 어제의 야습이 성공했더라면 대원들은 배불리 먹을 수 있었을 테지만 오늘은 하루 종일, 아니 그들 표현대로 밤새도록 굶었다.  

 

- 양석민이 화면에 중국 북해함대의 편성표를 올렸다. 항모 2척과 구축함 등 각종 대형전투함 20여 척, 잠수함과 상륙함, 수송함 등이었다.

"대만 상륙전에서 유명해진 리둥하이 중장이 지휘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어떤 작전을 쓸지 주의해야 합니다."
참모들이 술렁거렸다. 중국은 2개 함대로 각각 남해안의 여수와 서해안의 태안반도를 노렸으나 한국군은 방어전의 유리함을 업고 이들을 격퇴시켰다. 
그러나 한국군의 남해함대와 서해함대도 이미 전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숫자는 어느 정도 갖춰져 있지만 신형인 대형함정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동해함대에서 지원해 주기로 했던 한국형 구축함들은 독도문제가 발생하자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다시 동해바다로 떠났다. 
공군은 더 처참한 지경이었다. 이미 구식이 되어 버린 F-4 팬텀까지 요격임무에 동원되었다. 간신히 장악한 제공권이 중국군의 압도적인 수적 우세 때문에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 피스 함대가 동지나해로 떠나간 지금, 참모들은 그들을 붙잡아두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중국 함대를 막을 전력이 별로 없었다. 

 

- "걱정 마시라요. 남포는 까딱 업시. 남포 인근해에 적 잠수함들에 정찰활동이 많다는 걸 알고도 냅뒀시요." 
인민군 해군 박정석 상장이 큰소리쳤다. 이 차수도 느긋한 표정이었다. 국군 참모들은 영문을 몰라 인민군 참모들의 표정을 살폈다.
"중국은 상륙지점을 잘못 선택한 것이오. 물론 남포는 평양을 공략하기 좋은 위치이긴 하지만 우리 공화국을 잘못 봤소. 아, 미안하외다. 우리나라 말이오."

 

- 함장의 말에 리 중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북한의 수도가 위협받고 있으므로 인민군이 함대와 공격기편대를 보낼 줄 알았으나 하늘과 해상에는 아무런 위협이 없었다. 함대를 호위하는 잠수함들로부터도 위협에 대한 보고가 없었다. 
"무슨 일을 꾸미는지 몰라도 차라리 잘됐군. 함대는 해안 30km까지만 접근시키고 상륙준비를 하도록 하시오. 석도(席島)와 초도(椒島)의 상황은?"

 

- 상공에는 미그기의 중국식 개량형인 각종 섬형 전투기와 공격기들이 이미 어두워진 동쪽 하늘을 향해 날았다. 상륙부대의 작전을 돕기 위해 해안폭격을 목적으로 요동반도에서 발진한 대규모 편대였다. 함대는 어느새 해안에서 30km까지 접근하고 있었다. 아직 인민군의 대응은 없었다. 지대함미사일의 공격도 없었다. 함대를 호위하며 상공을 선회 중인 전투기나 조기경보기에서는 아직 어떤 공격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해 왔다. 
리 중장이 점점 불안해졌다. 준비성이 대단한 박정석 상장이 있는 통일한국군이 이렇게 무력하게 중국의 상륙을 방치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가 알고 있는 박 상장은 전투의 승패는 이미 전투 전에 결판난다는 전략우위적 전쟁관을 갖고 있는 군인이었다. 리 중장이 함대의 해상초계를 강화시켰다. 마지막까지 항모에 남아 있던 초계기 두 대도 긴급전투발진시켰다. 산둥반도의 칭다오와 웨이하이 웨이, 랴오둥 반도의 다이렌에서 출격한 초계기들이 함대 상공에 속속 도착했다.  

 

- 잠시 후 해안을 공습한 공격기 편대가 함대 상공을 지나 서쪽으로 날아갔다. 공격 전보다 눈에 보이게 숫자가 많이 줄어 있었다. 리 중장은 개전 초부터 지금까지 출격한 통일한국 전투기들의 숫자를 컴퓨터로 조회해 보았다. 전투기들은 하루에 최소한 7회의 출격을 했다는 계산이 나왔다. 격추된 전투기 숫자를 감안하면 통일한국군의 조종사들이 거의 살인적인 중노동을 한 결과였다. 이륙 전에 전투기의 정비도 완벽하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친 짓이다. 조선은 여기까지가 한계다.'
리둥하이 중장은 역시 전쟁의 대원칙이 이번 전쟁에도 들어맞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너무나 간단하다. 전쟁에서는 결국 병력이 적은 쪽이 지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신무기나 절세의 전략가가 나오더라도 병력의 압도적인 열세는 극복하지 못하는 법이라고 믿었다. 

 - "적 어뢰의 최종속도는 300노트로 추산됩니다. 스킬입니다!"
폭발의 와중에 고막이 터진 소나담당 전업군사가 고통스런 표정으로 보고했다. 함대사령관이 일어나 상황을 파악하려 했으나 함내상황을 보여주는 시스템이 다운되었다. 리 중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각 부서는 피해상황을 보고하라! 남아 있는 프리깃함을 발사지점으로 보내! 헬기와 초계기도..."

 

- 스퀄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위치한 세르고 오르조니키제 항공연구소에서 1995년에 개발한 초고속 어뢰이다. 개발 당시에는 속도가 약 200노트(시속 360km)에 유도장치가 없었으나, 나중에 유도장치를 부착하고 속력도 300노트(시속 540km)까지 올렸다. 서방 세계에서 개발한 어뢰의 속도가 보통 35~60노트인 것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속도인 셈이다. 300노트라면 초속 150미터로서, 음속의 반이 약간 안 되는 정도의 빠르기이다. 

제인연감의 군사정보 관계자는 이 미사일이 물과의 접촉을 제거함으로써 속력 향상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는데, 개발자인 러시아의 항공연구소에서는 물속에 진공의 관을 형성해 그 안을 이 미사일 어뢰가 날게 된다고 밝혀 제인 측의 추정을 확인해 주었다. 
이 어뢰는 러시아의 신형 아쿨라(Acula)급이나 시에라급, 빅터-3형 공격잠수함의 탑재용으로 개발되어 구경이 650 밀리나 되는 대형 어뢰이다. 아쿨라(Acula)급이나 시에라급, 타이픈급, 델타-IV형, 빅터-3형 및 오스카-2형 잠수함들은 530밀리 외에도 650밀리 발사관을 갖추고 있으며, 여기에 웨이크(wake : 항적) 추적방식의 80형 어뢰를 장착한다. 이것도 탄두가 450kg이나 되며 속도는 50노트인 막강한 어뢰인데, 스퀄은 아예 어뢰의 상식을 뒤집은 수중로켓이다. 이 스퀄이 남포 앞바다를 휘젓고 있었다. 

- 다시 한번 굉음이 울리자 갑자기 정전이 되며 함내가 캄캄해졌다. 컴퓨터와 레이더가 모두 작동이 중지되자 항공모함의 레이더유도를 받아 날아가던 미사일의 레이더 시커가 자동으로 켜지고, 미사일은 진행방향 상공에 있던 상륙주정 위의 중국군 헬기들을 향했다. 
반능동유도방식인 미국의 SM-2 대공미사일을 중국군이 유사시에 대비해 능동-반능동 혼합방식으로 개조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20여 기의 헬기와 헤리어, 나중에 출발한 상륙거점 확보용 수직이착륙항공기 MV-22A Osprey 10여 기가 갑자기 뒤에서 날아온 자기편 미사일에 당했다. 비상전원이 들어온 것은 아군끼리의 오인사격이라는 비극이 끝난 후였다. 

 

- "전원 퇴함 하라! 본국에 구원을 요청하라. 연락이 되는 함을 찾아 상륙주정들도 후퇴하라고 일러. 철저한 함정이다!"
리둥하이 중장이 비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몇 명의 군관이 통신이 끊긴 지역으로 함대사령의 명령을 전하러 뛰어나갔다. 캣워크(cat walk : 비행갑판 바로 옆의 작은 공간)의 점멸등이 급하게 깜빡였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까지 침몰하지 않고 바다 위에 떠 있는 항공모함과 몇 척의 프리깃함에 미사일이 쇄도했다. 이 모습을 본 리 중장이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래, 이렇게 침략자는 응징을 당해야지. 하지만 만약 조선이 중국을 역으로 침략한다면 마찬가지로 응징을 받을 것이다. 박 상장도 알고 있겠지만...'

 

- 10월 22일 19 : 50 개성, 통일참모본부
"중국 북해함대는 완전히 소멸됐습니다. 수중의 어뢰플랫폼과 공군의 2차에 걸친 공습으로 함대와 상륙부대, 그리고 전투기들을 모조리 수장시켰습니다. 이제 해군력에서는 우리가 앞설 수도 있습니다. 적은 항모가 하나도 없으며, 구축함과 프리깃함의 수에서는 차이가 역전되었습니다."
양석민 중장이 중앙화면의 내용을 바꿔 가며 자신 있게 보고하자 참모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참모들이 평양 근해의 상륙전에 대비해 무인어뢰 시스템을 장비한 인민군 해군 박정석 상장의 주도면밀함에 대해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피스에서 파견된 짜르도 박 상장의 기가 막힌 무기운용과 공격 타이밍 선정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북해함대 사령인 리둥하이 제독과 개인적으로 친했던 박 상장은 오랜 친구의 안위를 걱정하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친구에게 이기는 것은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 10월 22일 20:45 평안북도 박천 상공 
F-16 조종사 김종구 중위는 연일 계속되는 출격으로 거의 탈진할 지경이었다. 한국 공군은, 특히 F-16 전투기들은 개전 초부터 너무 혹사당해 왔다. 공군에 있다가 예편한 민간 여객기 조종사들이 급히 현역으로 복귀했지만 이들은 대부분이 팬텀이나 F-5를 몰던 조종사들이었다. 

 

- 통일이 되고, 돈을 벌기 위해 남반부 서울에 간 그녀는 술집을 전전하며 죽도록 고생만 하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남은 것은 몇 가지 병으로 망가진 몸과 빚뿐이었다. 그녀가 느낀 자본주의는 겉으로는 풍요로울지 몰라도 인간에게 가혹한 제도였다. 그리고 남이나 북이나 남편을 잃은 여자가 살기는 너무 힘들었다. 공회당에 번지는 불길 사이로 남편이 순박하게 웃었다. 

 

- 10월 23일 10:50 평안북도 선천
차영진 중령은 북한제 평양410 승용차를 몰고 대목산 요새를 내려왔다. 선천 시가지 곳곳에는 무너진 건물 잔해가 쌓여 있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제11기계화보병사단이 중국군을 막는 동안 모두 남쪽으로 피난 가거나 북부군에 입대했기 때문에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눈이 쌓인 숲과 도로 곳곳에는 인민군 초소들이 설치되어 그를 보고 있겠지만, 그들은 명령 없이는 몸을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차영진은 쓸쓸한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다. 

- 차영진이 집으로 향하는 작은 도로에 들어섰다. 멀리 그의 관사가 보였다. 북한에 주둔하는 제11기계화보병사단 장교들을 위해 지은 소규모 3층짜리 연립주택이다. 차영진이 관사 정문 앞에 차를 세웠다. 정문경비실 유리창이 모두 깨어져 있었다. 집에 들어갈까 말까 하다가 아무도 없을 이곳에 혼자 들어가기는 싫었다. 이혜숙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혜숙은 그가 전사한 줄로 알 것이다. 혹시 이혜숙은 살아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개전 첫날 저녁에 대목산 요새에서 위성수신되는 텔레비전으로 자신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본대의 후퇴를 위해 장렬하게 산화한 차영진 중령과 그의 제3전차대대라는 말을 아나운서를 통해 들었을 때 그는 씁쓸하게 웃어야 했다. 그는 확실히 죽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 보름 전에 식사를 마친 후 커피를 마실 때였다. 이혜숙은 심각한 얼굴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녀는, 차영진이 이혜숙을 사랑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피식 웃으며 아니라고 했다. 여자는 남자가 사랑해 주길 바라지만, 동시에 어떤 관계든 확실한 걸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를 좋아하면서도 그는 그녀의 남자가 아니라고 느꼈다. 그래서 계속 잘해주면서 함께 있기를 바랄 뿐,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한 어떤 의도적인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만약에 사랑을 고백하더라도 그녀가 거절했다면 둘 사이의 관계는 ... 

 

- 10월 23일 11 : 00 경기도 강화 
신승주는 강화도에 있는 국가정보원 교육처에서 며칠 동안 여러 가지 교육과 훈련을 받았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처럼 해군 UDT출신도 있지만 국가정보원 요원과 북한 특수부대인 총참모부 직속 정찰대대 소속 군인들도 많았다. 
훈련은 해상침투와 시가지전투가 주였고 교육내용은 중국어와 컴퓨터가 거의 전부였다. 중국어는 정찰대대원들이 잘했고 컴퓨터는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신승주처럼 UDT 대원들은 수업진도를 따라가기도 벅찼다. 
예비역 해군 대위인 그는 도대체 무슨 임무 때문에 이런 교육을 받는지 궁금했다. 작전지역은 일단 중국이 확실했다. 그러나 전시에 컴퓨터는 왜 배운단 말인가? 

어제 대통령과 인민군 원수라는 사람이 함께 이곳을 방문한 것으로 봐서 수행할 임무는 극히 위험하고도 중요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교관이나 교수들도 이들의 임무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랐다. 단지 오늘 저녁에 작전에 투입된다고만 이야기할 뿐이었다. 

 

-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제2특공여단에서도 소문난 왈패였다. 그녀가 한 유명한 말이 '군기는 발로 잡는다'는 것인데, 그녀를 우습게 본사병이나 후배 장교들은 아주 호되게 당했다. 그녀의 특기는 태권도 발차기기술 중 남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낭심차기였고, 신승주도 거기에 당해 20분 넘게 매트 위에서 떼굴떼굴 굴러야 했다. 
"괜찮아. 결혼해서 써 보니까 고장은 안 났더라고 걱정 마. 아직은 쌩쌩하니까."
"그래? 아직 소박 안 맞았어?"
"왜! 소박맞으면 니가 책임질래?"
"낄낄! 난 고자는 필요 없어."

 

- "무기판매를 위해 한국과 전쟁을 하지는 않겠다는 것이 미합중국 대통령 각하의 의중이십니다."
대사의 대답을 들은 주석은 미국이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미국대사가 극구 부인하기는 하지만 그가 알기로는 지금도 미국은 중국과 한국 양쪽에 무기를 팔고 있었다. 싱가포르 대신 호주에서 열린 국제무기시장에서는 주로 미국제 미사일이 거래되었다. 그래서 한국 공군은 비록 충분치는 않지만 그런대로 공대공미사일의 재고를 유지하고 있다는 정보소위의 보고서 내용이 기억났다. 만약 전선의 균형이 무너진다면 19세기말의 경우처럼, 세계열강들이 중국을 나눠 먹기 위해 떼 지어 몰려올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했다. 
'그렇다면 핵이 용서치 않을 거야.'
주석은 중국 각지에 배치된 핵미사일을 믿고 있었다. 공격에 사용하지는 않더라도, 영토가 침입당하는 경우 세계 어느 나라든 공격할 수 있는 장사정 대륙간탄도탄의 위력을 그는 굳게 믿었다. 

- "피스 함대는 강력합니다. 최신 무기로 무장했을 뿐만 아니라 핵을 탑재했을지도 모릅니다. 러시아에서는 핵무기를 해제하고 항모와 순양함을 판매했다지만, 소형 전술 핵탄두의 경우 국제 무기거래 암시장에서 살 수도 있습니다. 전에 수십 개의 핵무기를 만들 만한 양의 플루토늄이 러시아에서 분실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주석은 대사의 말을 듣고 무척 당황했다. 비정부 무장단체인 피스가 보통의 작은 나라들은 보유할 꿈도 못 꾸는 핵까지 가지고 있다면 조선점령을 다시 생각해야 했다. 처음에 조선 점령은 단지 시간문제일 것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벌집을 건드린 꼴이었다. 

본토에서는 전쟁이 일어난 것도 모르는 인민들을 원정일 뿐이라고 안심시켰으나, 상하이와 항우가 20일 밤에 폭격을 당하자 중국 대륙 전체가 뒤흔들렸다. 해안의 여러 도시에 살고 있는 인민들이 일제히 내륙 쪽으로 피난 가서, 대부분의 공업지대가 몰려 있는 해안공단은 심각한 일손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군수산업은 주로 내륙에 있고 노동자들이 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었지만, 생산되는 무기의 질이 너무 낙후되어 전선에서는 최신무기의 보급을 독촉하고 있었다. 

 

- 미국대사는 중국 국가주석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빙긋 웃었다. 미국이 원하는 대로 중국이 핵을 사용치는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대사는 대통령에게 보낼 암호전문의 내용을 머릿속에 미리 준비했다. 그는 '그 얼간이 협박에 약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할까 하고 고민했다. 

 

- 10월 23일 11 : 30 (현지시각) 중국 북경, 중난하이(中南海) 
늦가을의 베이징 거리는 한적했다. 가끔 군인들을 가득 태운 군용 트럭 몇 대가 거리를 오가는 것을 뺀다면 북경의 중난하이는 유령의 거리처럼 보였다. 평소에도 정부 고관 외에는 행인들이 별로 없지만 전쟁이 터지고 나서 군인들에 의한 검문검색이 강화된 지금, 이 넓은 거리에서 민간인은 전혀 볼 수 없었다. 이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호화주택의 2층 창문이 약간 열려 있었다. 


- 3년 전까지 세계 각국의 내전에서 맹활약하던 동양계 용병 암호명 구스타프는 무기들을 점검했다. 구스타프는 저격수로서는 특이하게 미니미 경기관총을 애용했다. 이 총은 미국 육군과 해병대가 M60 분대지원기관총의 후속 병기로 제식화한 벨기에 FN사 제품이다. 총이 가볍고 M16과 같은 5.56밀리 탄약을 사용하며, 또한 발사속도가 MEA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점 때문에 미군은 M-249 SAW(분대기관총)라는 제식명으로 이 총을 채용했다. 

일반적으로 저격수들은 M-24나 M-40계열의 스나이퍼 라이플을 선호한다. 가볍고 명중률이 높기 때문인데, 거의 대부분의 저격총은 파괴력이 높은 7.62밀리 탄이나 그 이상 위력의 총을 사용한다. 미국 해병대가 제식 채용한 맥밀런 M-87ELR 같은 경우는 사정거리가 2,000미터나 되며 구경은 12.7밀리나 되는 원거리 저격총이다. 

 

- 10월 23일 01 : 00 (워싱턴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전혀 뜻밖이군요. 한국이 이렇게 오랫동안 버티다니. 지금은 오히려 중국군을 몰아내고 있지 않소?"
NSA(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미국 대통령이 장관들을 힐난했다. 대통령 커티스는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두려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는데, 의외로 한국전선에서 중국이 고전하자 내심 고소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전황예측을 잘못한 장관들과 군장성들을 질책할 필요가 있었다. 
정보부서에서 일하는 군인과 관리들이 얼굴을 들지 못했다. 이들은 중국의 전력이라면 일주일 안으로 한반도 남단인 부산까지 점령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커티스가 노란 티를 입은 울버린(wolverine : 미시간 주립대의 상징동물인 북미산 족제비) 열쇠고리를 빙빙 돌리며 아무나 대답하기를 기다렸다. 
"한국이 이렇게 계속 버틴다면 중국이 핵을 쓸지도 모릅니다."

국무부 제프리 차관보가 두려운 듯이 연신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핵이라... 2차 대전 후 최초로 실전사용될 수 있는 기회로군. 매퀄리스 국장.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중국이 과연 핵을 쓸 거라고 보시오?"

 

- 대통령이 CIA 국장을 지명하자 국장이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기는 모습이었다. 이미 정보부의 결론은 나 있을 것이므로 결론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떻게 첫마디를 멋있게 꺼낼까 하는 것으로 대통령에게 비쳐졌다. 
'저 빌어먹을 놈부터 잘라야겠군.’
대통령은 그를 정치적 야심이 없는 것으로 파악해 중책에 앉혔는데 멍청한 놈이 욕심이 많다고 본업인 정보분야보다는 의회관계자들과의 친선유지에 시간과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물론 이 보고는 CIA와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정보기관들로부터 받은 것이다.
"아직은 중국이 핵을 쓸 단계는 아닙니다. 동양의 작은 나라뿐만 아니라 앞으로 있을 러시아나 인도와의 분쟁을 생각한다면... 중국은 다음 전쟁을 생각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제 핵공격은 어느 나라에게나 악몽이니까요."
뜸을 들이던 국장이 계속 보고했다. 대통령은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그의 목을 자를 커다란 망나니칼을 갈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는 국장이 계속 떠들었다. 
"중국은 96년까지 지하핵실험을 계속해서 그들의 핵제조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그 운반체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중국이 제대로 된 핵미사일을 발사하려면 아직 10년은 더 있어야 할 것입니다."
"좋소."
미 대통령은 비서실로부터 받은 보고와 별다를 게 없는 회의 참석자들의 말을 들으면서 늦은 밤까지 이따위 회의를 계속 진행해야 되나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 "그럼 이 단계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오?"
"당연히 중국과 한국 양쪽, 그리고 일본이나 주변에서 위협을 느끼는 다른 국가들에게 최대한 무기를 많이 팔아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특히 일본의 무기수입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무기수출액은 미국 역사상 올해가 최고를 기록할 것입니다." 
호블랜드 국무장관의 보고를 들으며 대통령은 분을 삭였다. 자신은 아마도 무기를 가장 많이 팔아먹은 죽음의 대통령으로 미국 역사에 남을 것이다. 그래도 무기판매를 중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의 의회는 대통령이 하는 일을 사사건건 트집 잡았다. 하원의원들은 자기네 주에서 생산되는 무기의 판매를 위해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했으며, 일부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비밀리에 한국까지 날아가 열심히 세일즈하고 있었다. 

 

- 사흘 전에는 각국 군함으로 구성된 피스 함대에 의해 중국 근해에서 미국의 전투함 2척이 침몰하고 다른 배들은 대파되거나 제주도로 나포되는 수모를 당했다. 미국의 조야는 잠시 한국에 대한 분노로 들끓었지만, 한국 정부가 충분한 피해보상을 약속하며 수송선에 있는 무기는 중국에서 제시한 금액의 두 배로 사들였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미국에 추가적인 무기판매를 거듭 요청했다. 

 

- 결국 미국은 한국과 중국 양쪽에 모두 무기를 판매하기로 하고 양 교전국 모두로부터 중립을 보장받았다. 미국 정부는 두 나라의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무기판매를 통해 분쟁을 부추긴다며 미국과 세계의 양심적 지식인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미국의 유권자 대부분은 중산층과 노동자인 것이다.  
중국의 확실한 한국 점령이 보장되지 않는 지금, 미 정부는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커티스는 마음먹었다.

 

- "한때 유일한 초강국이었던 미국이 양쪽에 무기나 팔아먹고 있다니, 이게 무슨 창피한 일이오?"
대통령의 한마디에 참석자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으나 무기수출로 인해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사람은, 차기 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대통령 자신이었다. 

 

- "목표 0-8-5, 어뢰발사 준비."
부함장이 함장의 명령을 어뢰발사실에 명하고, 잠망경과 연결되어 있는 비디오를 통해 목표물을 확인하고 놀란 얼굴을 했다. 잠망경에 비친 바다 위에는 신돌석함이 홍콩으로 숨어 들어올 때 이용했던 상선의 모습이 있었다. 깜짝 놀라 함장을 본 부함장은 함장이 분노를 감추고 있음을 깨달았다. 
"함장님... 이건 민간선입니다... 일본의 참전을 부를지도..."

이 중령이 힐끗 부함장을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어려 있었다. 함장이 부함장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저 빌딩에 있는 사람들도 민간인이야. 이곳은 한국 정부에 의해 교전지역으로 선포되었다. 그리고 저 배는 교전당사국 중 일방을 지원했다. 이미 저들은 중립이 아냐. 일본이 한국에 쳐들어오든 말든, 우리는 일단 홍콩을 봉쇄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 임무를 수행하면 되는 거야!"

- "1번 어뢰 발사!"
수중을 어뢰가 달렸다. 어뢰는 홍콩섬과 주룽반도 사이의 해협을 순항하는 상선을 노리고 일직선으로 접근했다. 빅토리아항에 접안하기 위해 방향을 틀던 상선의 중앙에 어뢰가 명중했다. 밤바다에 물기둥이 솟구치고 시뻘건 불길이 갑판 위에서 춤을 추었다. 상선이 천천히 침몰하기 시작했다. 선원들이 밤바다로 뛰어들었다. 
"됐어, 당분간 홍콩은 완전 봉쇄다. 잠수! 좌현 180도." 
함장이 잠망경을 내리고 서둘렀다. 좌현 180도라는 말을 들은 승무원들이 깜짝 놀랐다. 

 

 




 

- 언론은 국민에게 사실을 전하기보다는 거짓을 전하거나 정부의 선전기관으로 전락하기 쉽다는 사실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 북한의 TV전파 송출방식은 러시아나 서유럽과 같은 PAL방식이다. 미국이나 일본, 대한민국을 포함한 몇몇 국가에서 쓰는 NTSC 방식과는 호환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남북합의에 의해 남북한 모든 TV방송국이 이 두 가지 방식으로 동시 전파송출을 하고 있어서 북한 텔레비전을 통해서도 KBS를 볼 수 있었다.

 

- 중국 인민해방군의 보병사단은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갑종 사단은 현대화된 중장비로 편성되어 화력과 기동력이 우수하며, 분쟁위협이 있는 일선에 배치된 1급 부대이다. 을종 사단은 경장비로 편성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예비병력이 여기에 포함된다. 병소형 경사단은 장비로 편성되어 있으며, 주로 유격전이나 산악전을 수행하는 부대이다. 물론 세 종류의 사단 모두 현역부대이다.   
 

- 박 중위가 참모로부터 지도를 받아 들고 이를 스캐너에 넣었다. 그녀가 잠시 자판을 두들기더니 화면에 평안북도의 지도가 뜨고, 뉴스에 나왔던 화면과 지도의 비율을 조절해 두 가지를 일치시켰다. 
"도로와 정확히 일치하는군요. 통일참모본부가 우리의 진격방향을 지시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차영진 중령이 지적하며 참모들을 돌아보니 그들은 감격해서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대장 동지! 상부에서는 우리에게 진격을 명령하고 있습네다. 우리는 고립되지 않았습네다."


- 홍종규 대좌는 무척 흥분하고 있었으나, 차영진은 이들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지휘관이었다. 통일참모본부가 TV뉴스를 통한 우회적인 공격명령을 내릴지라도 중국 정보기관도 당연히 한국의 모든 뉴스를 모니터링하고 있을 것이므로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우리를 희생양으로 삼고 공격하려는 것입니다."
저격여단장 최성인 대좌는 홍종규 대좌와 반대로 자신들을 희생시키고 승리를 얻으려는 지휘부에 적개심을 나타냈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 차영진 중령이 불안한 감정을 감추며 통신군관에게 물어보았다. 천소좌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전시지정 주파수는 적에게 고립된 부대의 명령수신을 위한 것입네다. 길고 광대역 전파방해로 인해 상부와의 통신이 불가능하디요. 텔레비죤 전파래 첨부터 막디 않은 건 아냐, 하디만 이 전파는 위성서 오고있습네다.같은텔레비죤이라도공화국 조선중앙방송이나 만수대방송이 수신되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있습네다. 이 주파수대는 계속 전파 방해를 받고 있다는 말씀입네다. 안타깝게도 요새엔 위성신장비가 없습네다."
차영진 중령은 중국의 침략 첫날 전투에서 위성통신 장비를 갖춘 대대의 통신차량이 중국 헬기의 공습에 파괴된 사실을 떠올렸다. 통신차는 외형이 대공미사일 지휘차와 유사하기 때문에 제1의 공격목표가 된 것이다. 

 

- 통신중대가 상급부대와의 교신을 위해 급박하게 움직였다. 검산의 통신병이 수신기를 지상에 올리고 통신용 고무풍선을 하늘로 띄웠다. 케이블에 연결된 풍선은 북서풍을 타고 흔들리면서도 계속 하늘 높이 올라갔다. 통신군관이 시계를 보며 다른 사람들에게 준비시켰다. 
차 중령은 천 소좌에게 대전차무기와 대공미사일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통신에 꼭 넣어달라고 했다. 한국군이 이를 요새에 공수해주지 않더라도 이를 알리는 것이 작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 박 중위가 북한방송 특유의 간드러지는 전달식 입말투로 방송을 시작했다. 입말투란 북한에서의 구어체이며 전달투는 입말투 중에서도 새로운 사건과 사실을 알려줄 때에 쓰는 말투이다. 이야기의 내용을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는 만큼 뜻을 똑바로 전달해 주게 된다. 
"처음 보내드릴 노래는 조선예술영화 '목란꽃은 다시 피였다' 가운데서 주인공 분옥이가 역경에 처했을 때 자기를 품에 안아 키워준 당의 품을 그리워하면서 충성을 노래한 것입니다." 
박수경 중위가 비교적 속도가 느리고 어조가 부드러운 설명투로 노래를 소개하며 CD를 작동시켰다. 차영진 중령은 그녀의 말투가 너무 간사스럽게 들려서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박 중위는 북한표준말인 문화어를 잘 구사했지만, 평양 출신인 최성인 대좌에게는 그녀 말투가 약간 어색하게 들렸다. 

 

- 대중을 감동시키는 말투인 느낌투는 속도가 느리고 휴식이 많으며 음의 고저가 큰 곡선을 그리며 오르내리기도 한다. 천 소좌가 그 시는 선천 북쪽에 대규모 적 부대가 남진 중이라는 뜻이라고 차영진에게 속삭였다. 
"이번에는 7491 노동자구 동지 여러분들이 즐겨 부르시는 노래 한곡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이 곡은 평양에 홍종규 씨가 원산에 차영진 동지께 띄워 달라는 신청곡입니다. 곡명은 '하늘 아래 천리마처럼 달린다'입니다." 

차영진은 천리마가 전차이며 하늘은 대공미사일이라는 것을 눈치챘으나 왜 자기 이름이 이 여자 아나운서의 입에서 나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 그동안 잦은 고장으로 말도 많았던 K-1 전차, 일명 88전차는, 명중률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4백 미터 거리에서 동전만 한 목표물을 명중시키는 전차는 한국군 전차병이 탑승한 K-1 전차밖에 없었다. 120밀리 활강포를 장착하고 나중에 엔진을 강화한 한 K-1A1은 화력과기동력에서 기존의 K-1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제11기계화보병사단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전차 여섯 대는 여기서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기 시작했다. 

 

- "공격하시오. RPG와 기관총으로만 공격하고, 적이 역공하는 경우 즉시 후퇴하시오. 알겠소? 절대 무리하지 마시오."
차영진 중령이 무전기를 박수경 중위에게 넘기는데, 그녀는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다. 아마 그에 대한 신뢰의 표시이겠지만, 부대원 전체가 지휘관에게만 너무 의존하면 그 부대의 전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폴레옹이기보다는 차라리 무능력해 보이는 힌덴부르크이길 바랐다. 
지휘관은 참모와 전선의 하급 지휘관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역할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신념이었다. 그는 너무 대대장 때의 지휘습관에 물든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도 대규모 부대를 지휘하는 것이 처음이라 하급부대에 자질구레한 것까지 지시한 것에 대해 반성했다. 이런 지휘방법은 지휘관의 능력에 과도하게 의존해서 위기상황에서는 최악의 지휘방법이 될 수 있었다. 

 

- ROTC 출신인 정지수 대장은 육사 출신 장성들에 대해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다. 소위 임관일은 정 대장이 2년 빨랐으나 장성 진급은 이도형 대장이 1년 더 빨랐다. 그러나 학군 출신에 대한 배려 덕택에 정지수대장이 다시 1년 빨리 별 넷을 달았다. 그는 ROTC 중에서는 선두그룹이었지만 보직에 있어서는 항상 육사 출신 장교들에 비해 홀대받았다고 느꼈다. 그는 결국 육군 참모총장 경쟁에서도 밀리고, 임관 후배인 이도형 대장에게까지 괄시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명령권자는 정지수 대장이었다. 그는 대한민국 육군 대장이 아닌 통일참모본부 수석 참모로서, 그리고 현재 남북통일한국군 전체의 군령권을 가진 의장 이종식 차수의 대리인 자격으로 다른 육군 대장에게 명령했다. 

 

- "국제적인 압력 때문에 조선반도에 대한 핵공격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중국의 영토나 영해에 핵을 써서라도 적의 기세를 꺾고 우리에게 유리한 휴전협정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이런 소모적인 전쟁은 이제 그만둘 때가 됐습니다." 
인민해방군 해군 사령 창리엔충 상장(上將)이 총서기의 책상에 두 팔을 짚고 총서기를 어르듯 말했다. 창 해군 상장은 일반적으로 중장이 맡던 해군사령에 다시 임명된 퇴역장군이다. 
그는 내전 당시 군부에서의 그의 영향력을 높이 산 총서기의 요청으로 현역에 다시 복귀해 해군과 공군, 그리고 일부 중립을 선언한 대군구를 남부중국 편으로 만들었다. 이 공로로 정치국 위원에까지 오를 수 있었고, 군사위원이 되지 않고 현역에 남아 총서기의 후견인을 자임했다. 그는 원래 조선침공을 반대했는데, 총서기와 군부에서 침공을 결정하자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따른 인물이었다. 70대 초반의 창 상장이 손자를 달래듯 50대 후반인 젊은 총서기를 설득했다. 

 

- 창 상장은 의도적으로 해군 소속 1개 항공사단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감추고 있었다. 제한된 해역에 몰려 있는 함대를 향해 사방에서 대함미사일을 발사했으면 항공기의 피해도 줄이고 피스 함대를 격퇴시킬 수도 있었지만, 창 상장은 잔인하게도 해군 항공대를 자살공격으로 내몰았다. 그는 항공기들의 무모한 돌격으로 인한 피해가 클수록 총서기의 결단이 빠를 것으로 믿은 것이다.

 

- '자기들이 패전 책임을 지기 싫으니까 핵을 사용하자고 꼬드기는 모양이지...'
총서기는 핵을 사용했을 때의 파급효과를 생각했다. 겁먹은 한국군은 아마도 더 이상 공세를 강화하지 못할 것이다. 현재의 전선이 고착되고 잘하면 정전협상 테이블에서 의외의 양보를 얻어낼지도 몰랐다. 중국이 가장 욕심 내고 있는 곳은 두만강 유역의 일부였다. 
북한과 러시아에 의해 동해로 빠져나가는 길이 막힌 중국은 두만강에서의 자유항행권은 계속 유지했으나, 수로가 얕고 유사시에 통행이 막혀 버리기 때문에 이 수로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다. 그는 한반도를 장악하지 못하더라도 동해에 진출할 수 있다면 한반도쯤이야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국은 승전하더라도 막강한 중국의 위협에 놀라 계속 방위비를 증강하느라 쪼들리게 되고, 일본은 중국과 접하게 되어 크게 놀랄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번 전쟁의 의미는 충분했다. 다만, 한국을 점령할 줄 알고 남동임해공단을 초토화시키지 않은 것은 큰 실책이었다. 이제 그곳은 공습을 하고 싶어도 장거리 폭격 능력이 떨어져 못하게 되었다. 

 

- 그러나 그가 망설이는 이유는 국제관계였다. 일단 미국과 러시아가 핵의 사용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아직까지 단 한 차례도 핵이 사용되지 않았다. 
핵이 사용될 경우의 보복이 두려워서이기도 했지만, 다른 나라와 분쟁이 생길 경우, 핵공격에 먼저 시작한 나라는 다른 나라로부터 핵공격을 당할 각오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제였다. 중국에게는 미국과 러시아가 가장 큰 가상적이므로, 이들 핵강대국을 상대로 선제 핵공격을 받았을 경우 과연 중국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자국 영해에 침공한 적에 대한 핵사용이라면...?'
총서기 리루이환은 이들의 유혹에 넘어갈까 생각해 보았다. 어차피 그 해역은 대만점령 뒤부터는 국제해양법의 기선주의에 따라 자국의 영해로 인정받을 수도 있는 해역이었다. 그리고 중국은 지금도 댜오위타오(釣魚臺, 센카쿠열도)를 놓고 일본과 영유권을 다투고 있었다. 중국이 한국을 침공한 후, 일본 해상자위대 제2호위함대가 그 해역에서 초계하고 있어서 중국 입장에서는 상당히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 '만약 그곳에 핵을 쓴다면...'
일본이 겁을 집어먹고 조어대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핵 보유를 천명할 것인가. 제대로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핵공격을 받은 경험이 있는 일본은 엄청난 충격에 빠질 것이다. 그가 바라던 바였다. 그러나 일본의 배후에 있는 미국이 문제였다. 지금은 그런대로 관계가 좋다고는 하지만, 일본과 영토분쟁이 벌어지면 미국은 일본 쪽에 설 게 분명했다. 

 

- 리루이환 총서기가 잠시 분노하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핵을 쓸 것인가. 쓰게 되면 사전에 미국과 러시아의 대통령들에게 핫라인(비상전화)으로 통고해야 하는가. 그는 한참 동안 고민했다.

 

- "지금 광저우가 불타고 있습니다. 시내가 온통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거대한 미사일이 아직도 하늘을 날고 있답니다."
통신군관의 말에 장성들이 놀랐다. 이 정도 거리까지 도달하는 미사일이라면 해상발사 토마호크나 북조선 인민군의 대포동 미사일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피스 함대는 인공위성과 초계기들의 주요 감시 대상이므로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낱낱이 이곳에 보고되고 있었다. 

 

- 10월 24일 06 : 15 경기도 개성, 통일참모본부 
"피스 함대로부터 급전입니다! 함대를 향해 중국이 핵으로 보이는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함대는 요격에 나섰지만 자신 없다는 보곱니다. 곧 모든 통신이 단절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살든 죽든 간에..."
양석민 중장의 보고에 참모 모두가 얼이 빠진 모습이 되었다. 정지수대장은 회의탁자 위로 고개를 숙인 채 뭔가를 골똘하게 생각했고, 인민군 박정석 상장은 담배를 꺼내 피우기 시작했다. 그가 인민군의 최고어른인 이종식 차수 앞에서 담배를 입에 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으나 참모 중 어느 누구도 이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우리가 너무 압박한 거요? 몰아붙이기가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드오."
이 차수가 침묵을 깨고 양 중장에게 물었다. 양 중장이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피스 함대는 특정 정부로부터 명령을 받지 않지만 워낙 위력이 강해 중국의 해안을 봉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핵공격을 받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고 참모들은 판단했다. 언제든 핵을 발사할 수 있으니, 한국은 까불지 말라는 경고로 받아들였다. 한국은 그동안 핵강국을 상대로 싸워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다가 이제서야 상대를 뼈저리게 느꼈다. 
"방어 측으로서는 당연한 권리입니다. 음... 이제 더 이상의 교전은 무리입니다. 휴전을 제의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 "이 상황에서 정치적인 휴전협상이라면 거의 항복과 다름없습니다. 중국의 요구는 한국이 받아들이기에 무리할 정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중국을 상대로 핵전쟁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이 대목에서 인 중위는 코리아를 한국이라고 통역했으나, 인민군 장성들의 표정을 보고 즉각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수정했다. 그는 다음부터 코리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직 한반도를 완전 수복하지 못했습니다. 현 상태에서 전선이 고착된다면, 휴전협상 과정에서 조국은 평안북도 일부와 함경북도에 상당 부분을 잃게 될지도 모릅네다."
박정석 상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해답이 없는 방정식이었다.

"기래서... 우리 공화국에서 핵을 개발하려 했디요."
김병수 대장이 한탄했다. 핵이 있었다면 이런 수모는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표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좀 더 두고 기다립시다."
이호석 중장은 아직 희망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군 지도부의 양식을 믿고 싶었다. 

 

- "그리고 중국은 현재 자기네들이 점령하고 있는 조그만 땅덩어리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오. 북경에 있는 중국대사가 총서기로부터 언질을 받았소.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따로 있는 모양인데, 휴전협상에서 밝히겠다고 하오. 우리나라에 그리 중요한 곳은 아닌 모양입니다. 그게 뭔지 대충은 알겠는데..."
"중국은 선봉과 웅기만(雄基灣)을 요구할 것입네다. 절대로 안 됩네다, 대통령님!"

인민군 해군 박정석 상장이 벌떡 일어나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차수와 김 대장도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대통령이나 국군 장성들은 의외로 강한 그들의 거부감이 이해되지 않았다. 중국의 핵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들이 지키고자 하는 웅기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양 중장이 조용히 일어나 회의실 뒤쪽의 대한민국 전도 맨 위쪽에 있는 웅기만을 보았다.

 

- 함경북도 경흥군 웅기. 일제강점기에 한반도 최초로 구석기 유물이 발견된 곳이다. 90년대 이후 북한이 나진선봉지구라고 하여 나진과 함께 무역항으로 개발한 선봉이 바로 웅기이다. 선봉의 바로 앞바다는 아직도 웅기만이라고 불린다. 중국군은 막대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지역을 방어하고 있었다. 중국이 왜 한만국경 쪽인 혜산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웅기 쪽을 집중방어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잠시 숨을 돌리며 진정을 한 박상장이 말을 이었다. 
"중국에게 선봉을 주는 것은 동해를 송두리째 주는 것이며, 또한 태평양을 주는 것입네다. 러시아와의 연결이 끊어지면 조선반도는 완전히 중국에 둘러싸인 섬으로 전락하고 맙네다. 양강도와 자강도를 다 주는 한이 있더래도 선봉은 절대 안 됩네다. 조국에 미래를 생각하십시오, 대통령님!" 

- 양강도와 자강도는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신설된 도이다. 북한은 황해도를 남북으로 나누고, 평안북도와 함경남북도의 일부를 분리시켜 자강도와 양강도를 신설했다. 이렇게 해서 북한은 평양특별시와 개성직할시, 남포직할시를 빼고도 도가 9개나 될 수 있었다. 행정구역 숫자에서도 남북간의 자존심 대결이 묘하게 작용한 것이다. 

 

- 중국이 이번 전쟁을 통해 웅기, 즉 선봉을 얻는다면 동해로 직접 진출할 수 있는 출구를 얻게 되는 셈이다. 남쪽으로 우회해야 하는 지금의 중국-미국 항로는 선봉을 얻음으로써 엄청나게 짧아진다. 그리고 선봉은 한국과 중국, 러시아뿐만 아니라 일본과도 가까운 위치에 있다. 선봉이 중국에 넘어가면 국가경쟁력에서 중국은 획기적인 변신을 할 수 있다. 중국이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한국을 제친다면 한국은 이제 중국 변방의 조그마한 나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 "대통령님! 인민무력상 최호 원수로부터 장마 작전에 대한 말씀을 들으셨을 겁니다." 
대통령이 놀라서 눈이 둥그렇게 커졌고 다른 국무위원들은 무슨 뜻인지 몰라 의아해했다. 이 차수는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그리고 삼군 참모총장들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이들이 그 작전에 대해 모른다는 표정이기 때문에 이 차수는 그 작전의 성공을 확신할 수 있었다. 

- 대통령이 아연 긴장했다. 개전 초부터 그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잘못되면 한민족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작전이라 최대한 작전시기를 늦추려 했다. 가능하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실시하지 않는 것이 좋을 작전이었다. 그는 설령 한국이 중국에 패배하더라도 실시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아직 아무에게도 말씀을 안 하셨군요. 잘하셨습네다. 감사합네다."

이종식 차수가 어린애 달래듯 말하자 약간 불쾌했으나, 대통령은 그에게 이 작전의 당위성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물어봅시다. 과연 민족의 생존을 걸고 도박할 정도로 선봉의 가치가 크단 말이오? 만약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 아니오?]
이 차수는 대통령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대답을 잔잔한 미소로 대신했다. 대통령은 이 차수를 보다가 옆의 양 중장과 정 대장을 보았다.

- "그들이 전쟁을 일으킨 이상, 어차피 중국은 뭔가를 손에 넣어야 할 것입니다. 한반도의 다른 지역은 그 정도의 가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웅기를 내줄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휴전협상이 시작되어도 서로 간의 이해가 상충되어 조만간 결렬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중국에게 시간만 벌어 준 꼴이 되고 맙니다. 주도권을 중국에게 넘겨줄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중국은 자국 영토 밖에서 결코 핵을 쓰지 못할 겁니다."

 

- 미야코열도에 포함되는 민나섬은 따뜻한 구로시오(黑潮) 해류가 흐르는 오키나와제도의 섬답게 거초(치맛자락처럼 섬을 둘러싸고 있는 산호초산호초와 섬 사이의 바다인 초호(lagoon)가 있으면 보초, 중간에 섬이 없고 도넛 모양의 산호초만 있으면 환초라고 함)에 둘러싸인 평탄한 섬이다. 바로 직전의 핵폭발과는 무관하게 이 해역의 바다는 눈부신 빛이었다. 

 

- 샤르코프는 어쨌든 서둘러 망원경을 들고 밖으로 나가 남동쪽을 바라보았다. 과연 점점 밝아오는 남동쪽 수평선상에서 뭔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군함의 점멸등 신호였으나 그는 이것이 무슨 뜻인지알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뜻이야?"
샤르코프가 더듬거리는 영어로 함장을 따라나선 항해사관에게 물었다. 캐나다 출신 항해사관은 점점 어두워지는 표정을 지었다.
"일본 영해에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더 이상 접근할 경우 공격하겠답니다."
"... 미친놈들!" 

 

- 샤르코프는 짜르로부터 일본이 한국을 공격할 우려가 있다는 정보보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럴 경우 지상군이 취약한 일본은 한국군의 공군과 해군을 먼저 공격하고, 이것이 성공할 경우 해상봉쇄를 실시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되었다. 
만약 러시아나 중국이 한국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한국은 한 달 이내에 일본에게 항복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으나, 피스 함대가 있다면 전개과정은 전혀 달라질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중국처럼 거꾸로 일본이 해상봉쇄를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피스 함대는 한중전쟁개전 이래 계속 일본 함대의 추적을 받고 있었다. 

 

- 연안해군과 대양함대는 단독작전 수행능력의 여부로 구분된다. 피스함대의 존재는 중국이나 일본 모두에게 심각한 위협이었다. 중국은 통일한국과의 전투에서 항모를 모두 잃었으며, 일본은 주변국, 특히 미국의 견제로 아직까지 항모가 없었다. 계속되는 불황으로 미국이 세계경찰로서의 임무를 포기한 최근부터 항모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일본의 야당들은 항공모함 같은 공격무기를 용납하지 않았다. 섬으로 이뤄진 일본열도와 해상수송로 방어에는 항모가 필요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일본 방위청은 반공개리에 이미 항모의 기본설계와 탑재기의 선정을 마친 상태였다. 핵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 요즘, 항모의 추진기관은 당연히 원자력으로 결정되었다. 

사실 일본 입장에서는 피스 함대가 거의 전투력을 상실한 지금이 공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일본이 한국에 대해 야심이 있다면 당연히 지금 공격해야 했다. 

 

- 어제 위성수신된 해상자위대 정보 보고에는 한국 해군 최초의 항공모함이 조만간 진수될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아직 진수도 하지 않았지만 이순신함, 또는 충무공함으로 명명될 예정인 이 항공모함은 배수량 4만 톤급의 중소형 항공모함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일본의 영웅 중의 하나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패하게 한 조선 장수 이름을 항모 이름으로 삼은 것 자체가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 4만 톤급의 소형 항모는 2만 톤급의 최소형 항모에 비해 비용 대비 효율성에서 우수한 면이 있다. 공간의 제약으로 F-14 같은 대형 전투기는 운용할 수 없으나, S-3 같은 대잠기와 필요한 만큼의 대잠헬기, 그리고 F/A-18이나 수직이착륙기를 운용할 수 있는 크기이다. 또한 현측에 장갑을 붙임으로써 생존성이 높기도 하다. 생존성이 높다는 것은, 대량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도 침몰하지 않고 모항으로 돌아가 수리를 받은 다음 짧은 시간 내에 다시 전투에 투입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의 대함미사일의 위력과 배수량으로 따져 볼 때, 4만 톤급부터 현측 장갑의 장비가 가능하고, 또한 이로 인해 침몰할 가능성이 적어진다. 

- 미야기 일등해좌는 한국형 항모의 제원을 알고 코웃음 쳤다. 추진은 원자력이지만 소형 항모의 한계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탑재기는 이미 구닥다리가 되어 버린 F-4 팬텀으로 결정 났고, 위성정보에 의하면 함수 부분에 고유무장이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제 중무장 항모의 건조사상에 따른 것이겠지만, 공간이 적은 소형 항모에 무장이 필요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에 비하면 일본에서 건조준비 중인 항모는 정말 멋졌다. 일본의 해상자위대 전력증강 사업에 포함된 이 신형 항모는 배수량이 약 7만 5천 톤 대형 항모로 분류할 수 있으나 일본의 발전된 전자 및 조선기술에 의해 미국의 9만 톤급 최대 항모인 니미츠급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미야기 해좌는 이 항모가 진수될 때 대일본해군이 드디어 세계로 웅비한다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 속도가 느린 통상형 잠수함으로 구축함과 프리깃함에 둘러싸인 항모를 공격하는 것은 자살행위다. 한국의 재래식 잠수함들이 상륙작전을 위해 접근하는 중국 함대를 공격해 잠수함 발사 하픈으로 항공모함 한 척을 격침시키기는 했지만, 이는 미리 기다렸다가 공격한 것이라 다르다는 평가였다. 

- 한국의 항모가 진수되고 일본과의 한판이 벌어진다면, 그는 일단 항모의 함재기를 모두 없앤 다음 항모전투단을 공격해야 된다는 전제를 기본으로 한국 항모를 격침할 수 있는 작전구상에 들어갔다. 아직 취역하지도 않은 한국의 항모는 이미 일본 해상자위대 구라마의 함장, 미야기 일등해좌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침몰하고 있었다.

- 10월 24일 07 : 40 평안북도 철산군 차련관 
"최대좌 동무! 정신차리기요."
제10저격여단 여단장 최성인 대좌는 정신이 혼미한 중에 몸이 계속 흔들리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격전 중에 총에 맞은 것 같았지만 고통은 없었다. 단지 구름 위에 둥둥 뜬 기분이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이미 치명적인 부상을 입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고 더럭 겁이 났다. 
모든 동물은 회복 불가능한 중상을 입는 경우, 뇌분비 물질의 하나가 작용해 고통을 차단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즉사하고 있는 사람이나 동물이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은 고통에 못 이겨서가 아니라 쾌감에 관계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바로 자신이 그런 상태가 된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간신히 눈을 뜨자, 바로 위에 36연대장의 얼굴이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36연대장의 주름진 얼굴이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꿈결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흑과 백, 그리고 약간의 회색이 가미된 세상은 천천히 돌아가는 활동사진처럼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 "반(反) 마찰 폭탄입니다. 윤활제인 테플론(Teflon)의 일종이죠. 하지만 테플론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이제 저들 비행장에서는 비행기의 이착륙이 불가능함은 물론 자동차의 주행도 불가능합니다. 모조리 미끄러져 버리니까요."
테플론 계열의 윤활제는 표면을 미끄럽게 만듦으로써 철도나 활주로, 경사로, 계단 또는 중장비까지 상당 기간 동안 사용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어 버린다. 바퀴가 달린 모든 탈것은 이 윤활제 성분이 없어질 때까지 그 자리에 고정시키는 수밖에 없다. 바퀴가 헛도는데 항공기가 이착륙할 방법도, 이들을 다른 곳으로 옮길 방법도 없는 것이다. 윤활성분을 희석시키든지, 아니면 강력한 캐터필러를 가진 차량이 이들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테플론은 환경에 무해한 성분이라서 사용자 측이 망설일 까닭도 없는 것이다. 

- 다만, 기존의 테플론이 비싸고 효과도 적었으나, 과학기술연구원이 개발한 이 윤활제는 낮은 농도에서도 활주로에 흡착되어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과기연은 항공기와 각종 무기류를 시험, 개발하는 정부기관이다. 전부터 연구해 오던 무기들이었으나, 전쟁이 시작되자 개발에 가속이 붙어 이틀 전에 완성이 되었다.
"아마 지금쯤 목표가 된 비행장에서는 난리가 났을 겁니다. 만약 전투기가 착륙 중이었다면 틀림없이 활주로 끝에 처박혀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는 착륙하는 여객기가 없으니 다행히 민간인 피해는 없겠죠." 

 

- "한국이 통상형 탄도미사일로 광저우를 공격해서 그 보복으로 동지나해에서 중국 해안을 봉쇄 중이던 피스 함대에 핵을 사용했다는 겁니다. 멍청한 놈들이 잠수함 발사 하픈과 탄도미사일도 구분을 못하는군요. 게다가 탄도미사일은 지들이 먼저 사용하고선... 혹시 중국은 탄도미사일에 대한 경보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은 건가요? 추가적인 탄도미사일의 공격이 있을 경우 중국은 한반도에도 핵을 쓰겠다는 위협을 하고 있습니다. 얼라리오? 휴전도 제안하는데요?" 
핵과 휴전.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었다. 일단 한반도에 대한 핵공격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신돌석함의 광저우 공격으로 인해 위기의식을 느낀 중국군 지도부가 그동안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피스 함대에 핵공격을 한 것이라면, 그리고 한국군 지도부도 신돌석함이 광저우를 공격한 것을 모르고 있다면, 신돌석함 승무원들만이 이 사태의 전말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된다. 함장 이승렬 중령은 꼭 살아 돌아가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 두 섬 사이에 소노부이선이 설치된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대잠수상함정들의 위치는 홍콩 서쪽의 란타우섬과 마카오 사이가 될 게 분명했다. 섬들에 의해 소나의 탐지범위가 가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란타우섬 왼쪽으로 해서 홍콩으로 들어간다. 짜식들은 설마 하겠지. 그리고 중국의 대잠초계기는 별 거 아냐. 하얼빈 H-5 대잠초계기나 하얼빈 Z-5 대잠헬기는 이미 구식이고 센서도 별로..."
함장이 승무원들 들으라는 듯 자신만만하게 떠벌이며 탈출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눈치 없는 부함장이 또 끼어들었다. 
"그래도 다이캐스(DICASS : 방향지시 액티브 소노부이), 매드(MAD : 자기 탐지장치), FLIR(전방감시 적외선장치) 등 갖출 건 모두 갖췄는데요?"
함장이 물끄러미 부함장을 쳐다보았다. 조만간 잠수함의 함장이 될 20대 후반의 이 젊은 대위는 별명처럼 항상 썰렁한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10월 24일 07 : 58 중국 주장강 상공, 우주 
중국 상공을 지나던 저궤도 과학위성 우리별 3호가 주장강을 중심으로 촬영을 시작했다. 강의 하구에서 잠수함을 찾고 있는 녹스급 대잠프리깃함 세 척과 지앙웨이급 프리깃함 두 척, 그리고 잡다한 종류의 초계정들의 화상이 위성촬영 즉시 데이터 링크를 통해 용인관제소에 전해졌다. 물론 상공에 있던 초계기도 인공위성의 눈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위성은 초계기들이 강 하구에 투하한 소노부이들이 내는 초단파를 잡아 이를 분석해서 같이 보냈다. 
이 정보는 즉시 유성의 정보사단과 진해의 해군사령부에 전달되었다. 잠수함대사령부가 긴급 요청한 정보이기도 했다. 우리별 3호는 갑작스런 궤도변경으로 수명이 절반으로 단축될 운명이었으나, 해군은 핵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신돌석함의 상황을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 이어서 기자들의 질문과 이 차수의 답변이 이어졌다. 미리 질문 내용에 대한 검열을 받은 국내 기자들과는 달리, 외신기자들의 질문은 의표를 찌르는 내용이 많았지만 이 차수는 훌륭히 받아넘겼다. 그가 박수를 받으며 연단을 내려오자, 미리 연출된 각본대로 홍지영 대통령을 대신해서 등장한 이철웅 국방장관이 이종식 차수와 악수를 한 후 그에게 훈장을 달아주었다. 그리고 나서 국방장관은 연단의 마이크를 잡고 북부군의 그동안 공적을 치하하고 이번 신의주 수복작전을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회견은 전파를 타고 세계로 퍼져나갔다. 한반도 침공작전이 인민해방군 해군의 조기 참패와 평안북도의 북부군 때문에 실패했다고 평가하는 중국 공산당의 중앙군사위원회 위원들도 이 회견을 TV로 시청하고 있었다. 회견을 지켜본 차영진은 아무래도 주공은 다른 곳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젠장, 나는 미끼가 되는 거로군.' 

 

- 10월 24일 08 : 40 중국 주장강 하구, 한국 해군 신돌석함 
"소노부이의 선까지 앞으로 2,000미터입니다."
"아직 괜찮아. 일단 1,200미터까지 접근한다."
항해장이 해도를 보며 걱정하자 함장은 계속 접근하라고 명령했다. 주장강 하구의 물살이 의외로 세서 바다의 파도보다 훨씬 소음이 심했기 때문에 그는 통과를 자신했다. 
일반적인 수동형 소노부이의 탐지거리는 약 30마일이나 되지만, 이 소노부이는 10헤르츠 이하의 저주파 포착한다. 수중에서 주파수가 높은음은 감퇴하기 때문에 소리를 듣기만 하는 수동형 소노부이의 하이드로폰(음파 탐지기)은 낮은 주파수대만 탐지하는 특성이 있는 것이다. 지금은 거대한 주장강의 물살이 강바닥을 긁고 있기 때문에 아직 걱정은 없다는 것이 함장의 생각이었다. 

- 신돌석함은 초계기로부터의 레이더와 육안수색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스노클을 함교에 수납하고 외부공기가 필요 없는 디젤엔진인 아르고 엔진을 가동하여 저속주중이었다. 재래식 잠수함이 원자력 잠수함에 비해 소음이 적다지만, 그래도 동력전달장치인 샤프트나 스크루 등에서 상당한 소음을 발하고 있었다.
"음문 입력 다 됐나?"
"예! 2기가 완료됐습니다. 속도에 따라 세 가지 음을 발합니다."
발사관제관이 함장의 물음에 답했다. 신돌석함이 돌파할 곳의 반대쪽으로 이 잠수함의 소리를 녹음한 어뢰를 발사해서 중국 함정과 초계기를 속일 계획이었다. 이 작전이 성공할지의 여부는 알 수 없었다. 기본적으로 중국 초계기들이 투하한 소노부이의 성능과 강 하구의 물살에 달린 것이겠지만, 승무원들은 운이 따라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함장이 해도를 확인했다. 장보고함은 위성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나온 소노부이의 선에서 약 1,500미터 거리까지 접근하고 있었다. 중국 프리깃함의 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았다. 

 

- 어뢰의 목표가 되는 함정의 스크루음과 같은 소리를 내 어뢰를 유인하는데, 녹스급의 경우 SLQ-25 닉시를 장비한다. 녹스급이 프레어리 매스커(Prairie Masker)를 사용해 함 주위에 기포를 발생하는지 목표 3이 갑자기 흐릿해졌다. 

 

- 같은 시간 중국 북경, 톈안먼(천안문) 2층 전각 동쪽 
중국 현대사의 상징물인 천안문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천안문의 2층, 전각의 처마에 의해 그늘진 창문에서 남방계 중국인이 서서히 총을 들어 올렸다. 총은 일반적인 저격용 소총보다 훨씬 컸으나 외관은 조잡했다. 아프가니스탄 회교전사들이 대공포로 쓰는, 20밀리 벌컨 개틀링건을 분해해서 만든 수제(手銃)이다. 
제작자의 이름을 딴 이 총의 이름은 '아브 알 하산', 유효 사정거리가 3,500미터나 되며, 장갑 관통능력이 150밀리라고 알려져 있는 엄청난 놈이었다. 아프간 회교전사들은 이 총으로 높은 산 위에서 아래의 러시아 전차를 향해 쏘아 상부장갑을 뚫고 전차를 파괴시켰다고 전해진다. 볼트액션식 단발이지만 냉각장치에 문제가 있어서 연속사용이 곤란하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 유리창까지의 거리는 레이저 측정기를 통해 652 미터로 파악했으나 그는 여기에 7미터를 가산했다. 그는 창유리의 재질을 이미 알고 있었다. 40밀리 강화방탄유리, 어지간한 기관총에도 뚫리지 않는다. 이 유리의 특징은, 빛이 똑바로 통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입사각에 대해 약 5도 정도 우측으로 기울어지는 성질이 있으며, 동시에 아래로 3도 정도 기울어져 보인다. 창 밖의 원거리 저격으로부터 요인을 보호하기 위한 특수유리다. 
구스타프는 이미 이에 대한 정보를 입수해서 탄도수정을 했으므로 이제 쏘기만 하면 잡을 수 있었다. 다만 그의 퇴로가 안전하지 못하다는 결점과 함께, 스스로 사격 타이밍을 잡지 못하는 상황이 불안했다. 스나이퍼에게는 둘 다 치명적인 약점이다. 

 

- 하지만 이 불행을 누가 먼저 자초했느냐가 중요했다. 허창용 대사는 주석의 다음 말을 예상했다. 입을 연 주석의 말은 대사가 예상한 대로였다. 
"이번에 조선이 먼저 침공하지 않았다면 계속 우호증진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오."
침략국이 구사하는 상투적인 잡아떼기였지만 반박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대사는 주석에게 괜히 꼬투리를 잡혀 회담을 망치고 싶지 않았고, 주석은 대사의 강한 반발을 우려해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대사의 등뒤에 배석한 무관이 순간 움찔했으나,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대사가 이곳에 오기 전에 무관에게 몇 번이나 다짐을 한 것이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제안한 휴전협상에 대해 귀국의 총통 각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중국계 국가에서는 대통령제하의 국가 원수를 총통이라고 부른다. 물론 히틀러 같은 체제는 아니고, 미국이나 제3세계 국가의 권위주의적 대통령을 모두 총통이라고 불렀다. 한자로 대통령이라고 써줘도 소용이 없는데 이는 중국인의 자존심 때문이다. 어쨌든 허 대사는 한국 국가 원수에 대한 호칭을 정정해줘야 했다. 
"대통령께서는 휴전에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국경선의 원상회복이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나머지 중국의 요구는 적극 검토하겠지만, 영토할양 같은 무리한 요구조건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음... 그럼 배상을 할 수 없다는 것이오?"
"저희가 먼저 공격하지는 않았으니까요."

 

- 배상문제는 결국 누가 먼저 공격했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 문제는 결국 피할 수가 없었다. 대사는 회담의 결렬을 각오했다.
"허허... 견해차가 너무 크군요."
"예... 안타깝습니다. 주석님."
허 대사는 이 만남이 끝나고 가질 기자회견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의미 있는 대화가 진행되었다'는 외교적 수사를 쓰게 되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는 외교협상이 어떤 진전도 없이 결렬되었음을 뜻한다. 대사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 허 대사가 이중의 암호문을 통해 본국으로부터 받은 전문에는 선봉 할양은 절대 할 수 없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주석은 지금 집요하게 선봉을 요구했다. 협상은 이렇게 평행선만 그었다. 

 

- "1급 군사비밀이디만, 동무들을 믿고 갈차 주갔서. 이 차수, 설명해주라우!"
최 원수가 이철웅 장관의 눈치를 보더니 이 차수에게 설명을 미뤘다. 군 지휘권을 모두 통일참모본부에 넘겨준 상황에서 최 원수가 표면에 지나치게 나서는 것은 한국정부 입장에서 보면 우려가 되는 일이었으므로 최 원수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종식 차수는 한참 선배이며 권력서열도 엄청나게 차이나는 최 원수의 명령을 받들어 설명을 시작했다. 


- 중국은 한반도 점령에 실패하자 선봉지역의 방어에 역점을 두고 이를 핵위협과 협상을 통해 영구점령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 선봉이 중국에 넘어가면 결국 중국의 의도가 성공하는 것이고, 앞으로 한국이 중국과의 경제전쟁에서 완전히 패배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통일한국군이 선봉지역을 수복하려 하지만 병력집중이 안 되어 지금은 어렵다는 설명을 했다.
"기래서... 어렵갔다만 동무들만으로 신의주를 공격해줘야 되가서. 우리가 테레비 방송을 통해서 북부군의 위용을 과장한 거래이 잘 알고 있다? 길고 아까 기자회견도 말야. 선봉에 추가적인 병력증원이 있으면 우린 못 이겨. 지금 만주에 있는 중국군 병력의 관심을 이쪽으로 돌려야 해. 여기 있는 군은 강계 쪽으로 빼돌리고 말야. 무슨 뜻인지 알간?" 

 

- 밀어내기 방식으로 서부전선의 병력을 동부 쪽으로 이동시킨다는 전략이었다. 노농적위대에서 졸지에 사단장이 된 장교들은 일제히 복명했지만 차영진은 기가 막혔다. 
"의장님, 만약에 우리가 패해서..."
차영진 준장은 당연히 패할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군에서 패전이란 결코 용납되지 않는 용어였다. 뻔히 질 것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해야만 했다.
"신의주에 있는 중국군이 밀고 내려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비부대도 없는 상황이라면 평양까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기건... 그러니끼니 고조 동무들 부대는 양동작전만 수행하라우. 동무들 임무는 신의주 수복도 아니고 의도적인 패배도 아니야. 고조 공격하는 척만 하라우. 알가서 길고 급하면 자강도 쪽 병력을 빼줄 테니끼니 최악의 경우에는 방어만 하라우. 불패에 신화를 지닌 상승 북부군이니끼니 잘 하리라 믿가서." 
최 원수가 끼어들어 이 차수를 도왔다. 결국 이렇게 해서 북부군이라는 허울만 좋은 차영진 준장의 부대는 대규모 적을 향해 공격해야 하는 어려운 임무를 떠맡게 되었다. 그리고 주변지역 6개 노농적위대 연대가 추가로 북부군에 배속되었지만 실제 전력은 별로 남지 않은 이름뿐인 부대들이었다.

 

- "무슨 소리요? 그들도 우리나라 국민이 북한 주민들 중에서 통일한국을 이끌 지도자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잖소? 특정지역 주민들을 소외시켜서 그 나라가 제대로 될 것 같소? 추악한 지역주의가 지금까지 전체 국민에게 얼마나 큰 불행을 가져왔는지 누구보다 원장이 잘 알고 있지 않소?" 
"대통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우리나라의 지역감정이나 외국의 내전을 말씀하시는 줄 잘 압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다릅니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입니다. 뼛속부터 빨갱이란 뜻입니다. 그들은 통일을 일종의 통일전선전술로 활용할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주도권이 우리에게 있지만, 기회가 닿으면 언제라도 흑심을 드러낼 겁니다. 결코 그들에게 권력을 맡겨선 안 됩니다!"
"허허! 그럼 그들을 영원히 우리 민족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오? 너무하시는구려."
"동포애와 사상은 별개 문제입니다. 대통령님이나 저나 저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 것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 눈에 우리는 천박한 자본주의자요 인민의 착취자들일뿐입니다. 타도대상에 불과한 겁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저들도 많은 양보를 해왔소. 그런 식이면 통일이 안 되요."
"위험한 통일보다는 차라리 분단을 택하겠습니다, 대통령님!"


- 원장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대통령은 이 어려운 시기에 그가 국가정보원장을 맡은 것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지효섭 원장은 우익을 표방한 관료 중에서도 비교적 합리적인 인물로 알고 있었다. 부총리보다 더 막강한 자리라는 국정원장을 이런 인물에게 준 것이 잘못이었다. 물론 당연한 애국심의 발로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만약 내가 결심을 밀어붙인다면 원장은 나를 몰아내는 쪽에 서겠군요."
"죄송하지만 그럴지도 모릅니다."
"원장을 해임할 수도 있는데..."
"대통령님 뜻을 돌릴 수 있다면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 국정원장은 만약 최 원수의 반역행위 증거가 드러나면 즉결처분하겠다는 말은 결국 하지 못하고 청와대를 나섰다. 전시에는 군부에 비해 정보부서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급속히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고, 그는 이를 신경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국가반역자에게는 당연히 죽음만이 있었다. 정문을 나설 때, 개전 첫날의 피습 이후 대폭 강화된 청와대 경비병들이 그의 승용차를 향해 눈빛을 번뜩였다. 

 

- 차영진이 준비된 원고를 천천히 읽어나갔다. 
"오늘 우리를 떠나가신 영령들은 혼은 비록 육신을 떠났지만 같이 싸웠던 우리를 결코 잊지 않으실 겁니다. 그분들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군인답게, 아니 이 땅의 주인들답게 용감히 싸우다 장렬히 산화하셨습니다. 저는 이번 전투의 지휘관으로서 그분들 대신 살아남았다는 데에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제가 지휘관으로서의 자격이 부족해 그분들의 생명을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전쟁에서 살아남더라도 평생을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아울러, 이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과, 이 전쟁을 막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금치 못하는 바입니다. 어서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길 이 땅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원합니다. 저는 지휘관으로서 다시는 이런 큰 피해를,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생명의 손실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제 전쟁이 끝나가고 있으니 여러분은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무리한 행동은 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불필요한 살상은 엄금하도록 하겠습니다. 당부드립니다." 

 

- 참가자들이 약간 웅성거렸다. 장례식에서 지휘관이 하는 추모사는 청중에게 적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산 자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는 명령 복종이나 영웅적인 행위보다는 생명의 존엄을 강조함으로써 피해자이며 유족들인 청중을 냉정한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전쟁의 목적과 상관없이 개개인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 장우성 대령이 레이더를 지켜보면서 손에 땀을 쥐고 있었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적한 태백산 레이더기지에서 찬밥을 먹던 흔해빠진 그라운드맨(지상근무 공군)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한반도 북부 상공에 떠 있는 모든 공군기들을 지휘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공군 준장이나 소장인 전투비행단장들은 전투기들이 이륙한 후에는 작전지휘권을 갖지 못한다. 전문관제관의 역량으로 공중전을 지휘하는 것이 한국 공군의 정식 지휘체계이기 때문이다. 

 

- 역시 잠수함에게는 대잠헬기가 가장 무서운 상대였다. 전투함은 엔진음으로 위치가 파악되지만 헬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잠수함으로서는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RBU-1200은 러시아에서 개발한 대잠로켓발사기이다. 사정거리 1,200에서 1,800미터, 탄두중량 34kg의 폭뢰를 5발 연속 발사하는 방식인데, 지앙웨이급에는 5연장 발사기 2기가 있다. 미국이나 서방 각국이 대잠무기로 324밀리 어뢰발사관, 또는 아스록(ASROC: Anti Submarine Rocket Launcher)을 탑재함에 반해,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대잠로켓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 서승원 중령이 심도계를 보니 약 80미터를 가리키고 있었다. 잠수함은 수중 항진속도 약 10노트의 무음잠항 중. 이대로 간다면 중국영해를 벗어나기도 전에 축전지가 떨어져 잠수함은 부상해야 할 지경이었다. 부상 항주 또는 스노클 항주를 위해서라도 일단 이 구축함을 떼어놓는 것이 급선무였다.  
서승원이 시계를 보더니 엔진정지를 명했다. 잠수함의 속도가 천천히 떨어졌으나 속도는 아직 8노트 이상을 가리켰다. 축전지가 전기공급을 멈추고 기관이 정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잠수함은 일정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썰물!"
부함장이 짧게 외쳤다. 이제서야 승무원들은 그가 왜 여유를 부렸는지 알 수 있었다. 발해만에서 서해로 빠져나가는 썰물의 흐름이 잠수함을 한반도 쪽으로 천천히 몰고 갔다. 잠수함은 완전 무음상태에서도 이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썰물을 세 번쯤 이용해야 완전히 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자, 그동안 다들 쉬라구. 하루 반 동안 휴가다. 하하!"

 

- "내래 이것들을 일일이 하픈으로 격침시킬 수도 없고... 기렇다고 설라무네 포격전을 하다가는 놈들이 미사일을 쏘아 댈 티고... 숫자래 많으니끼니 상당히 골티 아프구만. 함장 동무 생각은 어드래?"

고재일 대령은 함대사령관의 동무라는 호칭에 아직도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반공영화에서 익숙해진 '동무는 반동이야!' 또는 '이 종간나이 새끼'라는 말이 자꾸 생각났다. 실제로 동무라는 호칭은 상당한 존경심을 담고 있는데도, 이 말은 아랫사람을 함부로 부르는 호칭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간나새끼'라는 말은 함경남도에서는 결혼한 아들에 대한 호칭이기도 하다. 
"공군의 지원을 받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중국과 접경지대라서 함대를 더 이상 북진시킬 수도 없지 않습니까?"
"기래... 됴은 생각이야. 가까운 곳에 과일기지가 있으니끼니 미그로 미사일정을 잡자우."
"미그보다는 팬텀이 적당하겠습니다. 전투기치고는 지상공격력이 좋은 편이니까요."

"길티만 너무 오래 된 거로 아는데..."

"원래 소형 함선은 팬텀이 맡아 왔습니다. 대해상 훈련도 상당히 받았고요 이 상황에 대한 대비는 충분히 되어 있으니 염려 마십시오."
고재일 대령은 이 훈련이 원래 북한 간첩선을 대상으로 실시됐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서해함대의 장 중장은 이것을 알고도 모른 척하며 명령을 내렸다. 

 

-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그런데 질문이 있습니다."
"메이요?"
"신의주에 대한 지원포격도 하지 않으면서, 왜 서해함대가 며칠째 이해역에 머물며 자꾸 중국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는 겁니까? 선천 쪽 상륙작전도 이미 성공리에 끝났는데 말입니다. 혹시 무슨 비밀작전이라도 있습니까?"
"길세... 나도 몰갔서."
장 중장이 허둥대며 대답했다. 뭔가 아는 체를 하는지, 아니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지 고재일 대령이 보기에는 분간이 가지 않았다.

 

- 그는 여수식 냉콩국수나 갈치구이가 적당하겠다며 입맛을 다셨다. 차영진은 그 광주기갑학교에 있을 때 동료들과 함께 여수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 도시에는 오동도를 빼면 젊은 사람들이 놀러 다닐 만한 곳이 별로 없지만 음식은 마음에 들었다. 여수식 냉콩국수는 시원한 물에다 콩가루를 잔뜩 붓고, 거기에 설탕으로 간을 맞춰 먹는다. 다른 지방 출신인 동료들이 보고 기겁했지만, 여수 사람들은 여름에는 점심으로 그 콩국수만 먹는다고 들었다. 그리고 어느 생선이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갈치는 여수 앞바다와 거문도 사이에서 난 것을 최고로 치며 맛도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수에서 갈치를 먹어 보고 나서 '아~ 이 맛으로 갈치를 먹는구나' 하면서 감탄한 적이 있었다. 

 

- 그는 연이어 달려들던 중국군 세 명을 눈 깜짝할 새에 베어 쓰러뜨리고 북쪽으로 탈출구를 열었다. 강만형 특무상사는 노 전사의 칼춤에서 뭔지 모를 관능을 느꼈다. 중국군 다섯 명이 그를 향해 몰려오자 총검을 다시 곧추세우고 그들을 노려보았다. 그들이 순간 움찔하자 그대로 밀고 나갔다. 

 

- 어느 나라의 해전이든 이는 즉시 세계 모든 해군의 교과서가 되어 교전국 쌍방이 실행한 작전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함장이 생각하기로는 대만의 2함대가 1함대를 구원하기 위해 급속항진했을 때, 녹스급을 충분히 활용했다면 2함대가 그리 허망하게 당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만해군의 녹스급은 대만해협에는 몇 척 있지도 않은 중국 잠수함을 찾는 데 동원되었다. 
함장은 부함장과 함께 탈출계획을 다시 짰다. 아무래도 녹스급 프리깃함에 탑재된 대잠헬기가 문제였다. 함장은 이놈의 시스프라이트는 MK-46 대잠어뢰를 두 발씩이나 달고 다닌다며 투덜댔다. 

 

- 중국군의 피스 함대에 대한 핵공격과 북부군의 신의주 수복을 기점으로 여론은 급속히 종전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국민들에게 충격이었다. 중국이 핵을 썼다는 사실과, 대량의 민간인이 학살된 사실 때문에 나진과 선봉 등 약간의 땅덩어리를 떼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중국과의 위험한 전쟁은 피해야 한다는 쪽으로 여론이 급속히 기울었다. 

 

- "북한 땅이라고 무시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통일한국의 영토가 아닙니까? 결코 우리 영토를 침략자에게 넘길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중국군은 거의 100만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만주에도 속속 중국군 증원병력이 도착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전력으로는 결코 수복하지 못합니다."
이철웅 국방장관이 섭섭하다는 듯 외교통상부장관에게 말하자, 보건복지부장관이 얼굴을 붉히며 이 장관에게 삿대질했다.
"당신네 군부는 그동안 엄청난 예산을 써오면서 도대체 뭘 했단 말이오? 지금 상당한 승리를 올렸다고 콧대가 높아진 모양인데, 개전 초기에 당한 패배를 생각해 보란 말입니다. 그리고 승리라는 것도 외국의 용병이나 북한 노농적위대 같은 예비군들 힘으로 얻은 게 아니오? 이번 전쟁을 보면서 나는 꼭 옛날 임진왜란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어요. 그때도 관군들은 무참히 패배하거나 도망가기 바빴고, 의병들이 일어나 나라를 지켰지요. 도대체 정규군이 한 일이 뭐요? 기껏 과부들이나 양산하지 않았냐 말이오. 지금 통일한국군의 병력은 한국군 60만에 인민군 110만, 그리고 양측에서 동원한 예비군 300만, 거의 5백만에 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현재의 전력으로 나진과 선봉을 수복할 수 없다고요? 그곳에서도 민간인 유격대가 피를 흘려야 되나요? 아니면 신의주처럼 수십만이 물에 빠져 죽어야 하나요? 도대체 이게 말이나 됩니까?" 

 

- "제정러시아가 왜 그토록 부동항을 원했는지는 잘 아실 겁니다. 근대사를 돌이켜보면, 러시아가 개입한 모든 전쟁에는 이 부동항 문제가 개입되어 있었습니다. 20세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지금, 부동항 보유여부는 더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무역전쟁시댑니다. 그리고 해양전쟁시대이기도 합니다." 
청주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평생 역사학을 연구해 온 홍지영 대통령이 러시아의 예를 들어 바다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부동항을 갖기 위한 러시아의 몸부림은 18세기에는 스웨덴이, 19세기엔 영국이, 다시 20세기에는 미국이 방해함으로써 잠재적 초강국 러시아를 포위하는 전략을 썼다는 것이다. 
발트해나 바렌츠 해 및 흑해의 해상출구는 언제든 주변국들에 의해 봉쇄될 수 있으며, 극동의 블라디보스톡은 겨울에 외해가 얼어붙어 러시아는 아직도 제대로 된 부동항을 갖지 못했다는 설명도 했다. 


- 대통령은 중국도 러시아처럼 지금 포위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오키나와 군도와 필리핀 군도가 중국이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통로를 언제든 막을 수 있으므로 중국은 그만큼 나진과 선봉을 원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곳도 일본열도에 의해 태평양으로의 진출이 방해받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해군력을 분산해야 되는 일본이 모든 해상을 봉쇄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조그만 점으로 인해 중국은 일본이라는 장벽을 넘을 수 있는 것이다.  

 

- 또한, 중국이 나진과 선봉을 점령하면 중국과 일본의 해군이 조우하는 기회가 많아져, 당연히 일본은 군사력에 상당한 국력을 소비해야 하는 것도 중국이 노리는 점일 수 있었다. 일본의 재무장을 그 어느 나라보다 우려하는 중국이, 반대로 비경제적인 투자인 군비에 일본 국력을 낭비케 하려는 것은 일견 모순되어 보이지만, 국가 간의 경쟁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미국이 구 소련을 과도한 군비경쟁으로 몰아붙여 결국 소련을 해체시킨 예도 있다. 대통령은 이런 사실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 "여러분도 여기 오시면서 다 읽어 보셨겠지만 통일참모본부나 정보사단의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가 나진과 선봉을 끝내 수복하지 못할 경우 국익에 치명적인 손실이 예상된다고 했습니다. 이번 전쟁처럼 중국이 언제든 다시 한반도를 무력침공할 경우, 우리는 사면에서 포위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번 전쟁에서는 우리 민족의 저력을 충분히 과시했지만, 다음 전쟁에서는 그리 쉽게 국토를 방어하지는 못할 거라는 거죠. 나진과 선봉을 통해 중국 해군육전대가 동해안 곳곳에 상륙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는 대만과 같은 최후를 맞을 것입니다. 대만과의 차이는, 우리는 한족(漢族)이 아니란 겁니다. 우리 민족은 기나긴 세월 동안, 어쩌면 영원히 식민지상태를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역사에 나타났던 수많은 중국 인근의 소수민족들처럼, 우리도 고유의 말과 문화를 잃고 중국에 동화되어 역사에서 퇴장하겠죠." 
외교통상부장관과 보건복지부장관은 아직도 수긍하지 않는 눈치였다. 농림부장관이나 정보통신부장관도 마찬가지로, 대부분 장관들이 총동원령에 반기를 들었다. 무소속 대통령의 한계였다. 전쟁을 수행하는 행정자치부장관과 국방장관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무소속 출신이지만, 다른 당 소속 국무위원들은 이미 당 차원에서 반대 입장을 확고히 한 모양이었다. 

- 그러나 대통령 혼자 밀어붙일 경우 정치적 위험부담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국민들이 얼마나 따라줄지가 더 문제였다. 대통령이 결국 새로운 사실 한 가지를 국무위원들에게 공표했다. 
"조금 전에 일본 총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유엔총회에서 한반도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자는 안이 부결처리됐으므로, 일본 단독으로 자위대를 한국에 파병하려는데 우리가 받아들이겠냐는 겁니다."
국무위원들이 갑자기 술렁거렸다. 중국과의 전쟁에 경황이 없는 틈을 이용해 독도를 강점한 자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다니, 일본은 또 다른 속셈이 있다며 위원들이 흥분했다. 
"거의 수복하고 나니까 승리를 나눠먹자는 겁니다. 일본은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지도 모릅니다. 최소한 독도를 계속 차지하는 조건일 겁니다. 절대 수용해서는 안 됩니다." 
총동원령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하던 외교통상부장관이 대통령에게 일본의 제의를 거부할 것을 종용했다. 정보통신 장관은 또 다른 우려를 표명했다. 
"일본이 개입할 경우, 이 전쟁은 일본과 중국의 전쟁으로 확대될 우려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핵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일본에 다량의 농축 플루토늄이 있다는 것을 상기해 주십시오. 그들은 언제든지 핵탄두를 제조할 기술과 능력이 있습니다. 운반체계도 중국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위성과학기술이 발달했습니다." 

-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의 흥분을 가라앉히며 남몰래 미소 지었다. 역시 일본이라는 카드는 한국민을 단결시키는 좋은 재료였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이 국내 정치위기 때마다 써먹던 일본카드를 그도 썼다는 사실이 부끄러웠지만, 지금은 국민을 단결시켜야 할 때였다. 
 
- "물론 저는 한마디로 안 된다고 했습니다. 자위대의 한반도 접근을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는 경고도 했지요."
국무위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의 잠재적 위험은 이번 한중전쟁을 계기로 급속히 커졌으며, 누구보다도 국무위원들이 실감하고 있었다. 게다가 일본의 독도점령사건과 해상봉쇄 비슷한 항로방해로 국민들의 대일 혐오감정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의 요구는 또 다른 정명가도(征明道)가 될지도 모릅니다. 중국을 친다면서 사실은 한반도에 욕심을 내는 것 말입니다." 
대통령이 임진왜란을 상기시키며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말 것을 당부했다. 대통령은 일본이 중국과 함께 한국으로 진공 하지 못한 것은 전쟁준비가 늦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 해결해야 될 것은 중국에 점령당한 지역의 수복과 핵전쟁 방지였다. 일본과 독도 문제는 그다음의 일이다.

 

- 총동원령 결정을 앞두고 휴회가 선포되었다. 국정원장이 대통령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물었다. 정말로 일본 총리가 자위대를 파병하겠다고 전화했냐는 질문이었다. 대통령이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원장은 내가 거짓말하는 걸 본 적 있소?”
지효섭 국정원장이 당황했다. 그가 가진 정보 루트로는 그런 정보를 얻은 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통령이 거짓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위정자로는 너무 고지식하다고 생각해 온 터였다. 
"아닙니다. 대통령님께서는 항상 진실만을 말씀하셨죠."
"그렇소. 나는 일평생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아 왔소." 
대통령은 약간은 어색하게, 약간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단기적으로 불리하더라도 항상 진실로써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했다는 것은 그의 정적들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예... 그렇습니다. 일본을 조심해야 되겠습니다. 일본에 대한 정보수집활동을 강화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그런데 아까 내 말은 거짓말이오."
 
- 국정원장 눈이 휘둥그레졌다. 항상 진실만을 말하던 고지식한 교수 출신 대통령이 거짓말을 하다니, 그것도 한일 양국의 외교관계를 크게 손상시킬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그렇소, 근데 목소리가 너무 크군요."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 "일본 총리의 전화를 받은 적이 없소. 일본대사가 그런 제안을 한 것도 아니고. 하지만 충분히 그럴 수는 있지 않소? 만약 이것이 언론에 공개되고 일본정부가 사실이 아니라며 펄쩍 뛰더라도 누가 일본의 말을 믿겠소?"
"..."
국정원장은 대통령을 다시 보게 되었다. 작은 일에는 불리하더라도 항상 진실만을 말하다가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완벽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었다. 그 덕분에 국민총동원령은 국무회의 심의에서 의결되었고, 이제 해당 국무위원들의 부서(副署)만 남게 되었다. 

 

-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듯, 갑작스런 적막이 찾아왔다. 중국군은 거의 저항을 하지 못하고 당했고, 여기저기서 목표를 찾을 수 없다며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운 좋게 저격을 모면한 중국군 한 명이 겁에 질려 북동쪽으로 뛰는 것이 발견되었다. 병사들이 총을 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가 가는 곳은 지옥의 입구였다. 길을 버리고 산 쪽으로 뛰던 중국군은 바로 앞에 쌓인 눈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눈 속에서 번득이는 하얀 물체였다. 그의 머리가 하얀 눈밭 위를 굴렀다. 이것을 본 구르카 병사들이 환성을 질렀다. 
빠뜨랭이 실눈을 뜨고 자세히 보니, 그곳에는 안쪽으로 굽은 쿠크리검을 든 구르카 병사가 유령처럼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 속에 매복하고 있다가 단칼에 중국군 병사의 목을 베어 버린 것이다. 

 

- '이 냄새가 좋아.'
그는 화약냄새는 정말 자극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냄새를 잊지 못해 세계 각지의 전장을 떠돌았다. 짜릿한 화약연기, 전장의 긴장감과 동시에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졸음이라는 이 이율배반, 이 모든 것들이 좋았다. 전쟁터를 전전하기 전에 그는 로베르 에스까르삐(Robert Escarpit)라고 불리웠다. 그는 90년대 초반까지 전통적인 향수의 고장인 프랑스 그라스 마을의 향수공장에서 조향사로 일했다. 가장 창의력이 뛰어로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다는 향기의 마술사, 조향사. 그는 대학에서 학업을 마친 후에 향기에 끌려 조향사 전문학교를 나와 몇 년 간 이 공장에서 근무했다. 마을 뒷산에 가득 핀 은은한 재스민 향기는 마약처럼 그를 이 마을에 붙들어맸다. 

- 그의 운명을 바꾼 것은 선임조향사의 자살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예민한 후각을 잃고, 창의성에서도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뒤떨어졌다는 강박관념에 짓눌린 그의 늙은 선배는 자살을 택했다. 노인이 몇 번이나 끄 세주(que sais-je)를 되뇌더니 로베르에게 잠시 자리를 비켜 달라고 해서 그는 연구실을 나갔다.

 

- '끄 세주'는 몽테뉴의 <수상록>에 나오는 말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뜻이다. 갑작스런 총소리에 놀라 로베르가 달려갔을 때 이미 그 노인은 절명해 있었다. 회색 타일을 깐 바닥에 선홍색 액체가 스멀스멀 흐르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권총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와 매캐한 화약내음이 그를 매혹시켰다. 그의 후각에 강렬하게 각인된 그 화약냄새를 그는 그 어떤 것으로도 지울 수 없었다. 
 

- 빠뜨랭 중령은 1개 소대를 중국군이 오던 방향으로 내보내고, 주력은 현 위치에 대기시켰다. 3중대원들이 구르카 용병의 상징인 쿠크리검을 쥐고 뛰쳐나갔다. 포로 획득이 아니고 육박전 상황이라면 당장에 사람들의 머리가 바닥에 뒹굴었을 것이다. 이들이 부상자와 포로를 잡아 후방으로 이송시켰다. 포로가 된 중국군은 중상자가 대부분인 20여 명이라고 3중대장이 보고했는데, 일발에 적을 죽이지 못하고 부상자로 만들어 고통을 준 데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처럼 보여 빠뜨랭을 전율시켰다. 내세를 믿는 것인가 자문했지만 그들의 생활과 종교를 잘 모르는 그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 영국군에 소속된 구르카 여단의 지휘관은 네팔어로 말해야 한다. 만약 그가 네팔어를 구사하지 못하거나 용맹과 지구력에서 이들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판단이 들면 병사들은 가차 없이 지휘관을 몰아냈다. 전쟁에서 이룩한 신화만큼이나 구르카 용병의 자존심은 강했다. 그러나 피스에 소속된 구릉족들은 네팔인들이 가장 명예로 생각하는 영국군 소속이 아니었다. 이들은 세계 각지에서 경호원이나 경찰 등으로 활동하다가 용병이 된 사람들이다. 
빠뜨랭은 그들이 전쟁에서 프로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인정하고 있었다. 전통적인 구르카 용병은 그 어느 군대보다도 전투력이 강했고, 특히 육박전과 유격전에서 그랬다. 그러나 이들은 교육 수준이 낮기 때문에 대규모 부대의 지휘관은 맡기 어려웠고, 이 기회에 빠뜨랭이 지휘관을 할 수 있었다. 계급은 곧 봉급이다. 이는 그의 방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원천이 되었다. 

 

- "지금까지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해커는 우리가 중국군 컴퓨터를 해킹한 경로로 침입해서 데이터를 일본 쪽으로 유출케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을 거쳤기 때문에 우리가 중국을 해킹한 사실이 그들에게 노출될 가능성은 충분히 예상해야 했습니다. 현재 그들의 해킹 프로그램을 분석하고 있으며, 차후의 보안대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중국이 아니고 분명히 일본이 우리 컴퓨터를 해킹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본이!"
"일본이 넘겨줬구만!"
이 차수와 동시에 최 원수가 신음을 발했다. 일본이 중국에게 모든 정보를 다 내주었을까 하는 것은 의문이었다. 두 사람이 잠시 손익계산을 해보았다.
"기럼 방법이 있습네다."

 

- [아... 이들에겐 다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작전이 끝날 때까지 밖으로 나가지 못하지요. 그리고 방금 통참의 양석민 중장에게서 중국측이 우리 작전을 눈치챘을 거라는 보고도 들었습니다. 일본이 정보를 넘겨줬다죠.]
"네... 기럼 어카실 생각이십네까?"
대통령은 너무나 평온한 얼굴이었다.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는 사실이 최 원수에게는 더 이상했다.
[할 수 없죠. 작전 시간을 약간 당기는 수밖에... 중국이 그렇게 함부로 핵을 쓰지는 못할 겁니다. 그리고 공군요격부대가 출동준비중이니 그쪽을 믿어야죠.]
"중거리지만 탄도탄입네다. 요격은 매우 힘들 겁네다. 길고 서울이 가장 큰 목표라는 사실도 아시갔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떡합니까. 잃은 땅은 회복해야 되고, 핵은 맞으면 안 되고... 어쩔 수 없죠. 절대로 나진과 선봉을 중국에게 넘겨주어선 안 됩니다. 우리 민족에게 비수가 되어 되돌아올 것입니다.]

- 최 원수는 대통령이 북한 땅을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사실에 너무 놀랐다. 그리고 자기보다 그 땅의 중요성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도 새로웠다. 최 원수가 결심했다.
"주조 중국대사가 장마작전에 투입된 요원들의 아지트를 넘겨두디 않으면 자정 무렵에 핵공격을 실시하갔다고 포고했습네다. 넘겨줄 경우, 인민공화국이 북남통일의 주체가 되도록 도와주겠다는 약속도 했습네다."
옆에 앉은 국정원장이 의외라는 듯 최 원수를 응시했다. 그가 얻은 정보와 같은 내용을 최 원수가 실토하고 있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저 간나이... 날 둑이려 했다...'
최호 원수는 국정원장을 분노에 찬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국가정보원의 미행은 거의 드러내놓고 하고 있었다. 그는 이것을 자신에 대한 암살위협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남반부 대통령이 그 계획을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대통령은 빙긋 웃더니 말을 이었다. 
[허허~ 그래요? 엄청난 협박이군요. 조건도 그렇고... 그럼 어떡하시겠습니까? 말씀하시는 걸 보니 그렇게는 안 하시겠군요. 감사합니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군요.] 
최 원수는 가슴이 찡하게 울렸다. 젊은 대통령치고는 과연 대단한 배짱이었다. 최 원수가 가장 큰 위기의식을 느낀 것은, 지난 중국내전 때였다. 중국이 내전으로 정신이 없을 때 한국이 북조선을 봉쇄하고 전쟁을 시작했다면, 전쟁물자 비축분이 바닥난 인민군은 일패도지할 것이 분명했다. 일부 남조선의 극우언론은 남조선정부를 그렇게 하도록 부추기고 있었다. 그러나 홍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최 원수는 그 이후로 남조선에 대한 의심을 상당히 떨쳐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작전시간을 대폭 당겨야 합네다. 길고 일본은 차후에 꼭 응징할 것을 약속해 주십시오."
대통령이 미소 지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뜻으로 최 원수는 받아들였다.

 

- 그것보다 문제는 중국군이 어떻게 여단본부를 포위할 수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아마도 북쪽에 있던 3대대가 전멸해 방어선이 뚫린 모양이었다. 빠뜨랭은 친구인 멕시코 출신 의용병 페르난도가 걱정되었다. 가난한 나라에서 용병이 아닌 의용병이라니, 처음 그를 만났을 땐 놀랐으나 알고 보니 멕시코도 빈부격차가 큰 나라였다. 상류층은 대학교육을 받고 민중의 존경을 받는다. 이들의 의식 수준이 선진국 지식층에 비해서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페르난도를 만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스스로의 안위를 걱정할 때였다. 

 


 

 

 

- 개전 초반에 입은 피해를 제외한다면, 요즘의 피격대수는 상당히 줄어들었다. 게다가 거의 중국군 지상포화나 지대공미사일에 의한 피격이었다. 중국 전투기들은 초반에 신예전투기를 모두 많이 소모한 것이 패착이었다.

- "미사일이 안 맞으면 몸으로 때워야 되나? 미사일 요격훈련은 한국 공군에서 전혀 없었잖아?”
김종구 중위가 비번일 때 대신 조종을 해야 할 황인호 중령도 걱정이 많았다. 그가 비행중일 때 그 임무를 해야 한다면... 정말 자신이 없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조기경보기에서 지시하는 대로 해야죠 뭐.."

 

- 김종구 중위와 황 중령은 그들에게 떨어진 임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탄도미사일 CAP이라니! 암람이나 스패로 따위로 중국의 핵미사일인 동풍-31호를 잡으라니. 이런 황당한 명령을 받으리라고는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목표발견이야 조기경보기들이 알아서 해준다지만 대기권에 재돌입 하는 초고속 중거리탄도탄이 전투기에서 발사한 공대공미사일에 명중하리라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 김종구는 급한 마음에 F-16 전투기를 탄도탄 요격에 내몬 지휘부가 불쌍했다. 아직까지 한국에는 전역방공망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방공망도 없었다. 겨우 2개 대대밖에 없는 패트리어트-2 미사일 포대는 전국 주요 도시에 흩어져 있었다. 중국이 어느 기지에서 얼마나 많은 숫자의 미사일을 발사할지 모르기 때문에 이런 배치는 어쩔 수 없었다.

"그때 미국이 극력 반대했어도 S-300 그림블(Grumble)을 수입해야 했어요. 결국 우리만 죽어나는군요. 죄 없는 수백만 국민도..."

 

- 1993년부터 한국 국방부는 서방에서 SA-10C로 분류하는 러시아제 S-300PMU-I 중장거리 대공·대탄도탄 유도탄 수입을 추진한 적이 있었다. 
한국은 적성국으로 분류된 러시아제 무기의 수입을 주저했지만 그럼블이라는 나토명을 가진 이 항공기 탄도탄 요격시스템은 국방부가 욕심낼 만한 무기였다. 그러나 미국이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방해하자 항상 그랬던 것처럼 물러서고 말았다.

 

- S-300이라면 탄도탄이라도 어느 정도 방어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놈의 패트리어트는 믿을 만한 놈이 못되었다. 명중률도 형편없지만, 무기 자체가 방어개념에 입각한 것이라 명중하더라도 목표 미사일의 궤도를 약간 바꿔줄 뿐이다. 활주로나 특정 소규모 기지방어에나 쓰일 놈이었다. 과거 스커드미사일이 이스라엘을 공습할 때 패트리어트가 요격에 나섰지만, 명중률은 둘째 문제고 목표인 스커드 파편과 패트리어트 미사일 본체가 도시 곳곳에 낙하해서 더 큰 피해를 입힌 적이 있다.

 

- 멀리 막사 쪽에 잔뜩 겁먹은 어린 얼굴들이 보였다. 전투복을 입은 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가끔 이곳저곳을 힐끗거리는 모양이 촌스러웠다. 이들을 훑어본 황인호 중령이 여자가 있다며 수군댔다. 
"전투기 조종사 중에는 아직 여군이 없는데요?"
"그렇지. 쟤들은 공사생도 같은데? 여자가 있다니..."
"생도 4학년까지 실전에 투입되는 모양이군요. 쯧쯧~"
"설마. 사관생도는 전쟁이 나도 최악의 경우에도 실전투입되지는 않아. 만약 그렇다면... 그런 결정을 한 놈이 또라이지."

 

- 10월 24일 05 : 30 (현지시각) 워싱턴, 주미한국대사관 
"이런 망할 놈들!"
"왜 그러십니까?"
이현종 참사관이 전화기를 놓더니 벌레 씹은 표정을 지었다. 소파에서 졸다 깬 무관 한영순 대령이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나 생각하며 참사관에게 물었다. 뜻밖에 이현종이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 
"미국 놈들이 물건을 팔겠다는군요. 팔아 달라고 통사정할 때는 못 들은 척하더니 우리가 중국을 거의 몰아내고 나니까 이제야..."
"그래요? 정말 반가운 소식입니다. 그동안 암시장에서 구입하느라 고생한 걸 생각하면... 어떤 무겁니까?" 

- 한 대령은 미국도 결국은 중국의 팽창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한중전쟁을 예의주시해 온 것이다. 늦긴 했지만 그래도 무기란 없는 것보다는 남아돌더라도 있는 게 훨씬 나은 법이다. 
"지대공미사일 하고 공대공미사일 종류와 어셋? 뭐, 그런 거요. 어셋이란 무기는 일본에서 바로 공수해 준다고 합니다. 국방부에는 이미 통보했다는군요. 공대공미사일 재고가 바닥났다고 난리더만 이제 한숨 돌리게 되겠죠." 
"어셋? ASAT, 대위성궤도미사일 말입니까?"
"어셋이 그런 무기요? 근데 그걸 왜 우리에게...?"
참사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중국의 정찰위성을 요격하란 뜻인가? 그는 목표가 될 만한 중국 스파이위성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통신위성이 없더라도 다른 나라의 상업용 위성을 쓰면 그만이므로 구태여 어렵게 서로의 위성을 파괴할 필요는 없었다. 만약 레이더 정찰위성이라도 있다면 몰라도 피차 없는 판에 위성무기라니,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 "탄도탄 요격무기로도 쓰일 수 있습니다. 맙소사! 정말로 핵위기인가 보군요. "
주미 대사관은 본국에서 어떠한 훈령도 받지 않았다. 이곳 현지의 언론보도대로, 중국은 영해 내에서만 핵무기를 쓰고 한반도에는 사용치 않을 줄 알았던 것이다. 미국이 어떠한 정보를 갖고 있든, 어떻게 이 정보를 얻었든 간에 참사관은 본국에 이 사실을 보고해야 했다. 이현종 참사관이 외쳤다. 
"이런! 당장 본국에 연락을... 필요한 무기 목록을 더 달라고 하시오!"

 

- 양석민 중장은 소파에 앉아 구성회 소령과 김준태 소령이 설명하는 앞에서 라면을 먹고 있었다. 두 젊은 소령이 자꾸 쳐다보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후루룩 거리는 소리와 함께 정말 맛있게 먹었다. 
"양 중장님, 그들은 아마 제대로 깨지는 못했을 겁니다. 성윤이 형, 아니, 오성윤 대위의 말처럼 일본은 우리 전화회선을 도청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일본으로 우회해서 중국군 컴퓨터를 해킹할 때 공짜로 중국군에 관한 정보를 얻고, 동시에 그 회선을 통해 해킹 프로그램을 침투시키는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완전히 독자적으로 활동하면서 모뎀까지 움직이는 프로그램이 있거든요. 대상 컴퓨터에 새로운 파일이 저장되면 자동으로 해커의 컴퓨터에 자료를 전송하는 식입니다. 이동하면서 무선전화를 쓰거나 몇 단계 다른 호스트를 거치면 전혀 해커의 위치를 알 수 없습니다. 해커세계의 거장인 오 대위님이 아직도 그 프로그램, 음... 바이러스 기능을 할지도 모릅니다만, 그걸 못 찾고 헤매는 걸 보면 김 소령 말대로 정말 후지야마 같습니다. 그놈이 수퍼유저 권한을 가졌으면 진작에 드러났을 텐데 그런 실수는 안 하는군요. 전화비나 안 나오게 레드박스라도 쓸 것이지... 나쁜 놈! 그놈은 미 국방성이 가장 경계하는 해커예요. 혼자서도 미국을 멸망시킬 수도 있다고 큰소리친 놈이죠." 
양 중장은 구 소령이 말하는 것을 흘려들으면서 라면 국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알지도 못할 얘기 들어 봤자 피곤할 뿐이다. 곤하게 자다가 대통령의 화상통신을 받고 잠을 깬 그는 당번병을 시켜 라면을 끓이게 해서 참치와 김치 팩을 반찬 삼아 먹었다. 다른 장군들은 체면상, 두 젊은 소령은 군번이 딸려서 같은 자리에서 먹지 못하고 구경만 했다.  

"아무 컴퓨터나 마구 들어갈 수만 있다면 그게 불가능하지는 않겠군. 어때, 자네들도 세계 정복 한번 해보지 않겠나?"

 

- 함장은 탑재 대잠헬기인 시 스프라이트를 목표가 진행하던 반대방향으로 보냈다. 통상적으로 잠수함은 노이즈 메이커와 반대방향으로 움직일 거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최소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고 그는 배웠다. 그리고 목표 해역에서 발사된 통신용 전파의 존재는 함장에게 잠수함이 기만행위를 하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었다. 하지만 헬기나 친양함의 소나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 녹스급 프리깃함 우측 현에서 섬광이 일고 물기둥이 치솟았다. 하의 두 배나 되는 탄두가 갑판을 뚫고 들어와 함 밑바닥에서 폭발한 것이다. 2초 후에 다시 섬광이 일며 함교가 통째로 날아갔다. 프리깃함 전체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연기 사이사이로 보이는 함은, 함미가 완전히 떨어져 나가고 함교 앞 함수 중간 부분은 파도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치고 있었다. 

함수는 용골 부분만 남은 것이다. 친양함은 즉각 침몰하지는 않았으나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다. 잠시 후에 몇 명의 수병이 차가운 서해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 "수상에 돌발음! 다시 돌발음! 프리깃함이 있던 위치입니다!"
장보고함의 음탐수 이준엽 중사가 함체를 울리는 굉음에 지지 않을 정도의 큰소리로 외쳤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했다.
"오~ 예!!!!"
서승원 중령이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으이그! 이쁜 것들~ 누군지 몰라도 오늘 저녁 술독에 빠지게 해 주지. 이 중사! 어떤 공격이었나?" 
"모르겠습니다. 어뢰는 아니고 미사일인데 폭발 규모로 봐서는 하픈보다 훨씬 큰 놈입니다. 아무래도 인민군 스틱스 같은데요?"
"호~ 그럼 같은 해군이구만. 좋았어. 통일과 승리, 장보고함의 무사귀환을 축하하며 그 친구들과 한잔하자고."

 

- 나이만큼 그의 말에는 무게가 실렸다.
"조선이 현재까지 동원한 병력은 500만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인구의 10분의 1을 동원하다니 대단한 나라이긴 틀림없지만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도대체 그 많은 병력이 지금 다들 어딨냐는 겁니다. 신의주 쪽과 후방에 많이 잡아 각각 100만, 동부 선봉지역에 200만 정도가 있다고 쳐도 약 100만의 병력이 사라졌습니다." 
조선공작회의에 배석한 교관급 군관이 중국과 조선의 국경선 부근을 화면에 잡았다. 현재 인민해방군의 위치와 조선군의 추정위치가 표시되었다. 사라진 병력은 군 정보기관이 심혈을 기울여 찾고 있지만 위치를 알 수 없었다.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 "파이터우산(백두산) 근처는 현재 전투가 없는 곳입니다. 만약 그쪽에 대규모 부대가 잠복하고 있다면 그것은 조선이 만주에 대해 침공 의사를 갖고 있다고 간주해도 됩니다."
"에이~ 설마!"
곳곳에서 창 상장의 의견을 비웃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창 상장은 불쾌한 기분이 들었지만 계속 설명했다. 

 

- 10월 24일 22 : 15 (베이징 표준시)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우루무치 동쪽 15km 
중국의 서쪽 끝, 신장웨이우얼(維吾爾) 자치구 우루무치 외곽의 사막에서 20여 마리의 말이 어둠과 사막의 모래바람 속을 뚫고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말에 탄 10여 명의 유목민들은 입을 굳게 다문 채 계속 달리기만 했다. 터번을 두르고 사막복장을 한 그들은 얼핏 보기엔 근처에 사는 위구르족처럼 보였다. 
위구르족은 원래 투르크계인데, 서역에 정착하면서 백인의 피가 많이 섞여 지금은 오히려 서양인처럼 보인다. 오랜 세월을 햇빛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가 이들의 강인함을 말해주는 듯했다. 광대한 타클라마칸 사막을 달리는 그들 북쪽으로 톈산(天山) 산맥이 달빛을 받으며 우뚝 서있었다. 
그들이 가던 방향으로 헤드라이트를 켠 사륜구동차가 멀리서 나타났다. 선두의 말이 갑작스런 불빛에 놀라 앞다리를 들고 길게 울었다.

"순찰차입네다!"
"모두 침착하시오! 자연스럽게 행동하시오."

 

- "야히미시즈(안녕하십니까?)."
"야히미시즈."
일행 중의 한 명이 먼저 위구르어로 인사하자 중국 군인도 위구르어로 인사를 받았다.
"웨이우얼(위구르의 중국명)족이시구만. 이 밤중에 어딜 그렇게 급히 가는 거요?"
두툼한 겨울용 녹색 야전복을 입은 중국 병사는 중사계급장을 달고 있었는데, 이 지역에 상당히 오래 근무한 것처럼 보였다. 중국군이 베이징어로 묻자 선두의 유목민이 짤막한 위구르어와 더듬거리는 중국어를 섞어 대답했다. 
"메르 헤메티(죄송합니다). 투루판(吐魯)에 계시는 저희 일족의 큰 형님께서 말년에 아들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밤까지 도착해서 이 경사를 축복해 드리려고요. 차는 믿을 게 못 되거든요. 우리 식구들도 많고..."
선두에 선 유목민이 뒤에 있는 식구들을 가리켰다. 나이도 다 다른 데다 여자도 한 명 있었다. 지난번 위구르족의 반란 이후 2, 30대 청년은 이 지역에 거의 없는데 젊은 사람들을 만나자 중사가 약간 의심하는 눈치였다. 여자와 젊은이 하나가 고개를 숙이며 덜덜 떨었다. 중사가 그 모습을 힐끗 보고는 만족스런 미소를 띠며 유목민들에게 경고했다. 
"오늘밤에 이 지역은 통행금지요. 더 이상 동쪽으로 가지 마시오 비상이 내렸거든. 혹시 수상한 사람은 못 봤소?"

"츄시엔미딤. 잘 모르겠습니다. 워낙 급하게 와서. 아까 한참 전에 차 몇 대가 반대쪽으로 지나갔는데요."
유목민 일행은 중국인과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이 빨리 대화를 끝냈으면 좋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 나무현판에는 7291 부대 제1대대 제3경비중대라는 부대명이 검은 페인트로 초라하게 칠해져 있었다. 차영진은 여기가 과연 500만 통일한국군을 지휘하는 통일참모본부인지 의심스러웠다. 바리케이드 뒤에서 병사들이 나와 그의 차를 정지시켰다. 
"여기가 통일참모본부인가?"
차영진이 차 유리창을 내리면서 물었다. 시원한 가을 강바람이 불어왔다.
"아닙니다. 이 근처에 그런 데가 있습니까? 죄송하지만 신분증 좀 보여주십시오. 여긴 군부대라서 민간인 통제구역인데요."
"이봐! 여기 계급장 안 보이나?"
차영진이 화가 나서 조수석 아래에 감춰둔 야전상의 계급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병사는 별로 놀라지도 않은 채 막무가내로 신분증을 유구했다. 
"죄송합니다. 신분증을 보여주십시오."
차영진이 분을 삭이며 육군수첩을 건네주자 경비병이 이를 통제소로 가져갔다. 다른 병사는 총구를 그에게 향한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라도 발사할 수 있게끔 앞에총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최전선에서 목숨 걸고 싸운 장교에게 저런 행동을 취하다니! 편안하게 보내는 후방병력은 군기가 빠질 대로 빠진 데다 시건방지기까지 하다며 투덜거렸다. 그러나 통일참모본부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가 더 난감했다. 신분증을 가져갔던 병사가 다가오자 차영진이 연대본부에 전화할 수 있느냐고 물으려는데 그 병사가 먼저 말했다. 
"정문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쭉 올라가십시오 2층이 상황실입니다. 통일참모본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장군님!"
이제야 병사들이 받들어총을 하며 경례를 붙였다. 차영진은 약간 황당했으나, 병사가 신분증과 출입증을 주자 정신을 차려 차를 몰고 안으로 들어갔다. 50미터쯤 가다가 작은 2층 벽돌건물 앞에 주차를 시키고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경비가 삼엄했다.

 

- 10월 24일 22 : 25 서울 용산구, 국방부 지하벙커 
90년대 중반까지 전시지휘소로 쓰였던 국방부 지하벙커에서 비상국무회의가 계속 이어졌다. 국무위원들은 삼엄한 경비 속에서 줄줄이 버스를 타고 도착했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버스에 탑승했기 때문에 이들은 불만을 터뜨릴 수도 없었다.

회의는 계속 이어졌다. 이 긴긴밤이 새야 이들은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만약 살아남더라도...

- "서울이 제1의 목표가 될 것은 분명합니다. 핵폭탄의 위력은 전선에서는 사실상 크지 않습니다. 밀집한 대규모 기갑부대에나 유효한 거죠. 어쨌든 시민들을 대피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창식 국무총리의 말에 대통령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국무위원들은 대통령 눈치만 살폈다. 전쟁 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 국무위원들은 무슨 일만 있으면 대통령을 사정없이 몰아붙이기 일쑤였던 것이다.
"글쎄요. 과연 중국이 핵공격을 감행할까요... 그리고 대피령을 내렸다간 아마 엄청난 혼란이 발생할 겁니다. 두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시민이 대피할 수 있을까요?"
홍지영 대통령의 말에 최창식 총리가 비상소개령이 내려진 한밤중의 서울 거리를 상상했다. 도로에 넘쳐나는 차들, 피난민들... 오늘밤이 새더라도 서울 시민의 10분의 1도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도로망이 집중된 서울 인근 국도의 차량통행이 마비된다면 전방으로 수송 중인 군수품은 제시간에 도착할 수 없게 될 것은 뻔한 사실이었다. 이 상황에서 비상소개령을 발령한다면 핵보다 더 큰 재앙이 발생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며 이철웅 국방장관이 설명했다. 결국 핵공습경보나 소개령은 없는 것으로 했다. 
"그렇군요. 그럼 할 수 없습니다."
총리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놈의 도시는 너무 거대했다. 전쟁 같은 극한상황에서는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것이 대도시였다.

 

- 총리는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할까 겁부터 났다. 단군이래 가장 만만한 국가지도자라는 평을 듣던 무소속 출신 대통령이 전쟁이 발발하자 몰라보게 달라졌다. 사람은 소탈한 그대로였지만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이 모든 일에서 그에게 매달리게 했다. 대통령은 이 위기상황을 이용해 권력을 확대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인간의 욕심이란 모르는 것이다. 
"총리께서는 대전으로 가 주시오. 유성에 있는 정보사단 위치를 헬기조종사가 잘 알고 있소. 그곳으로 가서 지휘관들을 격려해 주시오."

총리가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대통령님! 혹시..."
"그렇소, 유고시에 총리가 권한대행을 맡아 주시오."
"대통령님!"

- 총리는 눈물이 핑 돌았다. 대통령의 가장 큰 반대세력은 사실 총리가 소속된 당이다. 대통령은 연립내각을 구성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총리직을 그 당에 배분했으며, 당 총재는 대통령을 우습게 봤는지 정치경력도 길지 않고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재선의원을 총리로 천거했던 것이다. 
대통령은 그러한 굴욕을 감수하고서야 간신히 안정의석을 가진 내각을 구성할 수 있었다. 총리는 절대로 대통령이 그에게 권한대행을 맡기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다른 국무위원들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 "비서관!"
미리 준비한 듯 30대 중반의 비서관이 검은색 가방을 가져와 대통령에게 주자 그가 이를 총리에게 넘겼다. 총리가 물끄러미 가방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했다.
"총리께서는 의외로 배짱이 있으시더군요. 사용법은 아시겠죠. 잘하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출발하시오."
대통령이 총리에게 신뢰의 눈길을 보냈다. 그가 당 총재의 명령만 수행하는 허수아비가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대통령이 그동안 총리의 의견을 군말 없이 수용해 온 것은 제1 연립여당의 위세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매사에 합리적인 총리를 믿어서였다. 국무위원들이 무서운 대통령에 무서운 총리라며 쑤군거렸다. 

- "명령이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대통령의 명령은 확고했다. 그가 총리에게 명령이라는 말을 쓴 것은 처음이었다. 거역할 수 없는 무게가 실려있었다. 
"... 예. 대통령님!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 총리가 나간 것을 확인한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마 오늘밤 모두 같이 죽거나, 아니면 모두 살 것이다. 

 

- 중국 지도부가 바라는 것은 한국의 항복, 또는 이에 준하는 선봉지역의 할양이었다. 만약 인민군과 한국군 사이에 내분이 발생해서 어부지리를 얻는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런 어설픈 공작이 성공하리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발사할 도탄(導彈: 미사일) 숫자를 늘립시다. 세 발 정도가 적당하지 않겠소?"

- "어차피 핵을 발사하는 만큼 다른 나라 눈치를 볼 필요는 없소. 한 발일 경우 한국군이 요격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단 말이오. 확실하게 끝장을 봅시다."
"하하하! 절대 요격할 수 없습니다. 탄두가 대기권에 재돌입 할 때는 보통 음속의 12배 이상의 빠르기입니다. 조선이 가깝더라도 재돌입 속도가 음속 6배는 됩니다. 패트리어트, 나이키, 호크 등 한국이 보유한 어떠한 대공도탄으로도 요격불가능입니다. 하지만 3기로 늘리자는 창 상장님 제안에는 동의합니다. 이 기회에 한국을 재기불능으로 만드는 것이 조국의 백년대계에도 유리할 것입니다." 
쏭 중장이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그도 내심으로는 단 1기만 발사하는 것이 불안했다.

 

- 미국이나 러시아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모종의 행동을 할 수도 있고, 핵을 사용했다는 빌미를 잡아, 그럴 일은 없겠지만 유엔이 전면에 나설 수도 있었다. 전쟁에서 핵을 사용하는 것은 전 인류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는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대륙간탄도탄을 보유한 중국을 공격할 배짱을 가진 나라는 있을 수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불안했다. 
"세계 여론의 비등을 막기 위해서라도 민간인 피해를 줄여야만 합니다. 미국이 지난 아세아전쟁에서 사용한 핵 때문에 아직까지도 비난을 받고 있지 않소? 그러니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봅시다."
"탄두의 위력이 적은 것을 발사하고 지중폭발을 시키면 됩니다. 하지만, 낙진이 더 많이 발생해서 방사능 오염지역이 확대되니 마찬가집니다만... 발사계획을 많이 바꿔야겠군요. 산시성의 발사는 취소하겠습니다."
총서기의 말에 쏭 중장이 발사계획의 상당 부분을 수정해서 보고했다. 원래 산시(山西) 성에 밀집한 여러 핵미사일 기지 중에서 서울을 향해 3메가톤급 미사일 한 발을 발사할 계획이었지만 세 발이라면 여러 곳에서 발사할 수 있게 되어 좋았다. 

- 그는 인민해방군 제2포병의 위력을 다른 장관이나 다른 핵강국에 과시할 수 있다는 영웅심에 불타 올랐다. 그는 이 기회에 인민해방군 주력이 하지 못한 조선 항복을 멋지게 받아낼 참이었다.
"그래요. 그게 좋겠소. 여론이라는 것은 처음 발생한 사상자에게만 관심이 있을 테니. 히로시마에 떨어진 게 어느 정도요? 그 정도 위력이면 딱 좋겠소."
"그럼 둥휑(DF, 東風)2호가 좋겠습니다. 비슷한 20킬로톤입니다. 사정거리가 짧으니 둔화와 상하이에서 발사해야 합니다. 지중폭발로 하고... 하나 정도는 메가톤급으로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위력과시용으로 하나쯤은..."

 

- 이들은 얼마나 많은 인명을 살상할지 결정하고 있었다. 자기 딴에는 고양이가 쥐 생각해 주듯 상대방이 불쌍해서 봐준다는 의미도 있었다. 둥휑2호는 중국이 1970년에 MRBM으로 실전배치한 핵미사일이다. 사정거리는 개발 시에 1,200km. 탄두위력은 20킬로톤급이다. 서방측 분류번호는 CSS-1. 
  

 - 10월 24일 22 : 40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 
성남에 있는 서울공항은 확장공사 이후 가장 덩치가 큰 손님들을 맞았다. 거대한 C-130 허큘리스 수송기 12대가 착륙한 것이다. 테러, 또는 사고를 우려한 군 지휘부는 김포공항이나 영종도공항이 아닌, 서울공항에 이 수송기들의 착륙을 유도했다. 지금은 거의 모든 화물의 하역을 마쳤다.   
"화물은 ASAT 6기, 패트리어트 1개 대대분, ABM 3개 포대입니다. 수령증에 확인을 해주시오."

- 공군 중령인 이 나이 든 조달관은 ABM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조달관은 단지 이번 일이 위성공격을 위한 미제무기의 인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ABM이라니... 전혀 예상 밖이었다. 그 조달관이 서류를 자세히 보았다. ABM은 HOE-3 미사일이라고 되어 있었다. HOE라면 대륙간탄도탄인 미니트맨의 로켓에 팝업용 추진체를 결합시킨 비핵요격미사일 개발실험의 명칭이었다. 이것이 현실화됐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ABM은 수령항목에 없습니다만, 이건 혹시 아직 실험 중인 미사일이 아니오?"

"귀국의 통신보안을 신뢰할 수 없어서 미리 연락하지 못했소. 실험 중? 그건 외부적으로는 아직 그렇소."
미 공군 조종사는 고개를 뻣뻣이 쳐들고 말했다. 자신감의 표현인지, 아니면 이 장교는 그 성능을 모르는 것인지 조달관은 궁금했다.

"우린 사용법을 모릅니다만... 고문단도 같이 왔습니까?” 

"난 전달하라는 임무만 받았소. 궁금하면 매뉴얼을 보시오." 

"... 알겠소."

 

- ASAT의 제원표를 보니 길이 17.7피트, 직경 1.6피트 발사무게 2,643파운드 사정거리 90해리인데 뜻밖에 적외선 유도방식이다.
"우리 무기는 매우 정밀합니다. 그리고 만약 중국이 10기 이상의 핵미사일을 발사하면 모두 요격하더라도 어차피 한국은 끝장이오. 자, 빨리 서명해 주시오." 
편대장은 최근 한국이 러시아제 무기를 다량 수입한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중국이 만약 다수의 핵을 사용하면 방사능 낙진 때문에 한국은 완전 폐허화되리라는 것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의 말은 그런 뜻이다. 
조달관은 이곳에 올 때 느꼈던 서울과 성남의 시내 분위기를 생각했다. 비록 전쟁 중이지만 폭격위험이 사라지자 비교적 평화로운 도시가 되었다. 오늘 새벽의 핵폭발로 상당한 위기감이 감돌았지만 다들 설마 하는 분위기였는데, 미국은 벌써부터 중국의 핵공격을 예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 조달관이 수령을 확인하는 사인을 하자 미 공군 조종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송기로 돌아갔고, 잠시 후 12대의 거대한 수송기가 이륙을 시작했다. 누구도 전쟁지역에 있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핵공격의 위협을 받는 도시 근처라면... 조달관은 국방부에 무기수령을 보고하고 미사일 운용병력의 추가지원을 요청했다. 국방부 차관 강경석 대장은 즉각 지대지미사일 운영병력을 차출해 서울공항으로 급파시키고 무기분배 및 배치작업에 즉각 착수했다. 

 

- 이 차수의 묘한 표정이 그를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핵이야. 중국이 핵을 쏘갔다는 게디."
"네? 설마... 그럼 어떡하실 작정이십니까?" 
차영진이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거의 반세기에 걸친 남북대치상황에 맞춰 남북의 군편제는 핵전에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남북 모두 지상군만 세계 10위권에 드는 육군왕국일 뿐이다. 차영진은 통일한국의 항복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이제 한국인은 최소한 앞으로 한 세대는 중국이 내치는 대로 휘둘려질 것이다. 그러나 이 차수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전혀 뜻밖이었다.   

 

- "어카긴 어케? 기기야 요격하믄 되지 않았어?"
"예? 그치만 우리나라엔 요격용 무기가 없잖습니까?"
"미 제국주의 원쑤놈들이 웬일인디 요격무기를 됴금 넘겨듀더구만. 하디만 동무도 알갔다시피 별 도움이 되딜 않아."
이 차수의 표정은 절망 중에도 실낱같은 희망이 있다는 듯이 보였다. 뭔가 있긴 있었다. 차영진이 핵탄도탄을 요격할 수 있는 무기체계의 리스트를 뽑아 보았다. 패트리어트, 나이키 등 느려 빠진 지대공미사일로는 불가능했다. 미국제 레일건이나 요격용 핵미사일, 또는 별들의 전쟁계획으로 알려진 입자빔무기는 없더라도 최소한 러시아제 그럼블 정도는 있어야 했다. 러시아는 93년부터 SA-10C로 알려진 이 대공/대탄도탄 미사일시스템을 한국에 판매하려 했지만, 항상 그랬듯이 미국의 방해로 이 거래는 성사되지 못했다.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지만 이제 이미 늦었다. 차영진은 이 노장군이 신참인 자기에게 가르쳐 주지는 않겠지만 은근히 떠보기로 했다. 

 

- "다른 작전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길티... 동무, 웃디 말라우, 특수부대가 핵기지를 장악하기로 해서."
"윽... 절대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차영진은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핵강국끼리의 핵전상황이라면 당연히 선제공격으로 적의 핵기지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최우선이다. 적이 이미 미사일을 발사했다면 이쪽도 핵미사일로 보복을 하거나 요격용 핵미사일을 발사하여 직접적인 피해를 최소화하면 된다.
그러나 비핵국이라면 핵보유국에 대항하는 방법은 이런 것밖에 없었다. 그는 너무 창피했다. 약소국의 지상군, 핵을 보유하지 못한 나라의 육군이 핵전쟁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 10월 24일 23:00 경기도 남양주 통일참모본부 
"대규모 함대가 한반도에 접근 중입니다! 북위 32도 22분 동경 127도 50분! 제주도 동남방 150km 정도입니다."
놀란 표정으로 단말기를 보고 있던 해군의 심현식 중장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내일 아침에 긴급편성될 사단들의 전선배치에 대해 협의하던 참모들이 놀란 얼굴로 심 중장을 보았다.
"중국에 아직도 대규모 함대가? 그쪽은 우리 함대가 없지 않소? 규모는 어느 정도요?"
전선상황을 체크 중이던 정지수 대장이 묻자 심 중장이 계속 보고했다. 어깨에 커다란 계급장이 달린 인민군 제복을 어색하게 걸쳐 입은 짜르가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로 심 중장의 표정을 살폈다. 
"완벽한 전파관제를 하며 접근했습니다. 심지어 초계기도 없이 움직여서 발견이 늦었다고 합니다. 대형함만 16척 이상입니다. 항모전투단이 틀림없습니다!"

 

- "초계기에 선도래 없다면 위성지원을 받는 미제 신속억제군일 겁네다. 항모 2척에 해병대 1개 단일 가능성이 크디요."
심 중장의 보고에 이어 박정석 상장이 의견을 제시하자 참모들의 의구심이 풀렸다. 이런 대규모 함대를 운영할 수 있는 나라는 세계경찰을 자처하는 미국밖에 없다는 것이 참모들의 일치된 견해였다. 
"미군이 미군이 왜 우리나라로 옵니까?"
"설마 상륙작전을 감행하디는 않았디만... 신경이 쓰이는군요."
아무래도 미국에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인민군 박정석 해군상장이 투덜거린 반면, 국군 출신 참모들은 혹시나 미군이 한국을 돕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박 상장이 한마디 더 추가하자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꿈 깨시라요.  터디는 거 구경하러 온 기야요."

 

- "반드시 중국이나 미국 함대라는 보장은 없수다. 더 자세히 확인해보기요. 일본 함대 위치도 파악해 보구... 아무래도 요즘 일본 국내동향이 수상하니끼니." 
이종식 차수가 투덜거리듯 명령하자 심현식 중장이 마지못해 제3함대를 호출해 제주도 동남방에 위치한 소속 미상 함대의 확인을 지시했다. 그동안 이 차수가 약간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참모들을 살펴보았다. 다들 기력이 극도로 약화되었다. 일일이 전선상황을 확인하기보다는 대충 추론하고 마는 식이었다. 이 차수는 중국의 핵보다는 그런 것들이 더 걱정스러웠다. 

 

- 이호석 중장이 패널을 조작해 탁자의 중앙스크린에 지도를 전송했다. 중국 공군은 아직 수적으로 통일한국 공군을 압도하고 있었다. 한반도 북부를 작전반경에 둘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기지에 배치된 전투기의 숫자가 무려 600대 이상에 달했다. 오늘밤의 작전에 심각한 차질을 빚기에 충분한 숫자였다. 게다가 각공군기지 부근에 대공방어망이 극도로 강화되어 공습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이호석 중장은 담담한 표정으로 기기를 조작해 각 공군기지에 배치된 전투기의 유형과 제원을 잠깐 설명했다. 그러나 전혀 걱정스런 표정이 아니었다. 
"오늘은 상공이 조용했습니다. 내일도 침묵시키겠습니다."
이 중장이 자신 있게 말하자 박정석 상장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 "물론입네다. 00:00시 정각에 5개 지점에서 2개 사단이 한 시간 내에 도하할 수 있습네다. 총 16개의 부교 및 가교래 가설될 예정입네다. 단, 어케  일인디 오늘밤 아군 항공지원이 뎐혀 없습..."
"제 말씀은, 지금 당장이라도 도하가 가능하냐는 뜻입니다. 공군은 아마 오늘밤에 바쁠 것이오." 
김 대장이 허 대장의 말을 자르고 다시 물었다.

"언제든 가능합네다."

참모장인 인민군 허석우 대장이 지도를 보며 보고했다. 가을에 접어들어 갈수기가 되면서 압록강 상류의 강폭은 좁고 수심도 얕았다. 도강은 크게 문제가 될게 없었다. 부교를 설치할 필요도 없이 단 한 대의 가교전차만으로도 병력과 장비를 도하시킬 수 있었다. 혜산 앞의 강폭은 현재 17미터이고, K-1 가교전차는 20.5미터의 도하능력이 있다. 다만 압록강 건너에서 직면하게 될 적의 저항이 어느 정도인가가 문제였다. 

 

- "중국에 핵이 앙이 있다믄 만주래 우리 땅이디오."
"우리는 침략을 하는 것이 아니오, 허 대장."
"알고 있습네다, 사령관동지!"
허석우 대장이 김 대장의 말에 흠칫 놀랐다. 그는 동원가능한 병력으로만 본다면 중국은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북남인민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북남 간의 대치상태로 인해 대부분이 의무병역을 복무해 별다른 훈련 없이도 바로 전선 투입이 가능하다. 북남 간 공히 500만씩, 단기간에 최대한 1천만의 훈련된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조선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의 병력이 내전기간 동안 증가해서 민병과 인민무장경찰까지 합하면 약 1천만이라고는 하지만, 그 이상 동원하기는 무리이고, 실제 전투력은 훨씬 이하라는 생각이었다. 

 

- 먼저, 병참이 따라 주지 않는다. 개인화기에서부터 차량 등 이동수단, 동절기를 맞아 중요해진 군복 등을 단기간에 충당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중국이 인구가 많다지만 총 한 번 쏘아보지 못한 사람들을 전쟁에 투입하기 위해서는 소집과 훈련, 이동 등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상식이다. 훈련이 되지 않은 민간인을 전선에 투입하는 멍청이는 군인이라고 할 수 없었다. 
 
- 허 대장은 이 기회에 중국을 넘보는 것이 어떻냐는 생각이었고, 전쟁이 유리해지면서 상당수 군장성들이 갖게 된 욕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김재호 대장은 그런 장성들에게 구 일본 관동군을 꿈꾸느냐고 핀잔을 주곤 했다. 하지만 그도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핵문제에 부닥치면 말이 달라진다. 이 문제에 있어서 한국은 약자일 수밖에 없었다. 천만이라는 어마어마한 동원가능병력은 이 순간에 있어서는 단지 골육상쟁을 위한 숫자놀음밖에 되지 않았다. 또 다른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나 의미 있는 숫자인 것이다. 이것이 남북한의 모든 직업군인들이 통일 전까지 자괴감을 느낀 이유였다.

 

- 징발된 자동차를 배치한 부대가 대부분 예비군으로 구성된 동원사단이니 운전병이 모자랄 리는 없었다. 다만 5만 대의 차량을 운행할 연료와 소모성 무기의 보급이 문제였다. 과연 '전투는 사기, 전쟁은 병참'이라는 격언을 떠올릴 만했다.  

"경유는 보급에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전국적으로 휘발유 부족사태가 심각해서 이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징발된 사륜구동차의 연료는 두 가지인데, 휘발유차가 약 3분의 1을 점하고 있습니다. 휘발유 부족이 심각합니다. 원유가 더 들어와야 할 텐데 아직 남지나해의 통행이 자유롭지 못해 유조선들이 필리핀 동쪽해상으로 우회하고 있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 유조선 한 척이 또 놈들한테 당했답니다." 

 

- "원유 비축분은 30일, 민간시설 재고를 포함하면 45 일치입니다. 정권 바뀔 때마다 비축분을 60일로 늘린다고 말만 하고는 아직도 이 모양입니다. 비축기지를 늘린 만큼 석유소비량도 늘어났으니까요. 그리고 사실 45일분이라는 것도 평상시 기준이지 실제 전시상황이 발발하면 순식간에 거덜 나 버립니다. 이 정도 수준으로 계속 기름을 소비하면 일주일 정도는 버틸 수 있습니다." 

 

- 부관은 학사장교 출신이지만 그의 말로는 말뚝 박았다고 했다. 넓디넓은 만주벌판에서 보병부대는 의미 없다면서 사륜구동차의 대량투입을 제안한 젊은이였다. 기동성도 살리고 전투력을 올릴 뿐만 아니라 장기간 도보로 인한 전투력 소모를 막기 위한 좋은 방안이라 생각해서 김 대장은 며칠 전에 전국에서 징발된 지프형 차량을 2군에 집중 배치했고, 지금 이 시간에는 무기탑재와 일선부대 배치까지 거의 끝난 상태였다. 5군에 배속된 동원사단들도 사륜구동차 중심의 새 편제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차량들이 얼마나 위력을 발휘해 줄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 김 대장은 부관을 작년 말부터 휘하에 두었다. 패기도 없고 게으르기까지 했으나 상식의 틀을 깨는 머리는 사줄 만했다. 군에 말뚝 박고 장군까지 되겠다는 놈이 겁도 없이 사사건건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기 일쑤고, 사령관이 토요일 밤에 공식일정이 있는데도 부관은 외박까지 나갔다. 그래서 윤 대위 대신 당번병이 부관 역할을 할 때도 종종 있었고 김 대장은 그것 때문에 화가 날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 신세대 부관은 항상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다른 참모들은 감히 그에게 대꾸도 못하기 때문에 이 젊은이의 용기와 두뇌를 사기로 한 것이다. 

  

- 매퀄리스 국장에 이어 대통령의 오랜 친구이며 선거참모였던 호블랜드 국무장관이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중국에 항복하거나 점령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각하께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중국을 내버려 둘 경우에는 핵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제3세계의 빈국뿐만 아니라 테러단체마저도 핵을 구하느라 눈이 뒤집힐 겁니다. 강력히 제재해야 합니다."
극우강경파이며 공산국가에 대해 철저한 매파로 알려진 국무장관의 조언은 대통령을 섬뜩하게 했다. 그는 중국과의 핵전쟁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가 힘을 못쓰는 지금, 중국만 제거하면 미국에 위협이 될 만한 나라는 없었다. PAX Americana, 즉 미국지배하의 세계평화에 대한 꿈이 실현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핵이라니... 

 

- "보복능력이 없다? 글쎄요... 잠수함발사 탄도탄이 마음에 걸리는군요. 1차 공격에 절반은 살아 남고, 이들이 발사한 미사일의 절반은 우리 합중국에 도달할 수 있을 거요. 난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그따위 모험을 하고 싶지 않소."
커티스가 의문을 제기하자 호블랜드가 다시 나섰다. 
"중국이 급성장할 수 있습니다. 일본도 중국에 넘어갈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면 중국은 세계 강국이 됩니다! 인구와 경제력을 보십시오."
"차라리 한반도를 중국에 넘겨주시오. 일본의 군비증강을 어느 정도눈감아 주고 무기나 팔아먹읍시다. 중국은 해군력이 약해 일본을 절대 칠 수 없어요. 게다가 이번 전쟁에서 중국 해군은 거의 전멸한 것으로 알고 있소. 당분간 다른 나라를 넘보지 못할 것이오." 
"그럼 비난만 하고 대충 넘어가는 것으로..."
국무장관이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비난은 하되 무기수출은 계속 추진하시오. 한국으로 간 무기대금도 중국에게 받으면 되니까..."
"자유세계 국가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됩니다, 각하!"
호블랜드가 강력히 권고했으나 대통령의 결심은 확고했다.
"날더러 핵전쟁을 하라는 거요? 당신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하든지 하시오. 난 도저히 자신 없소."

 

- 10월 24일 22 : 50 (베이징 표준시) 중국 상하이 총밍섬
"젠장! 발사했습니다!"

"이런 종간나이!"
"아!"
시뻘건 빛줄기가 캄캄한 밤하늘을 뚫고 천천히 하늘로 치솟았다. 길이 21미터, 직경 1.65미터, 발사중량 26톤인 이 거대한 둥휑2호 핵미사일은 점차 가속하여 정신이 나간 채 이 모습을 보고 있는 요원들의 시야를 벗어나 하늘로, 하늘로 계속 상승했다. 시뻘건 불이 하늘로 치솟는 장면은 과연 장관이었다. 

 

- "신중하시오!"
"무시기 신중이오? 동포들이 떼죽음 하게... 진작 공격했으면..."

방금 중국군 초소를 점령한 인민군 소속 요원이 씩씩거리며 이우철 과장에게 분노에 찬 시선을 던졌다. 조금 전에 중국군을 찔러 죽였던 대검을 당장에라도 이 과장의 목줄에 들이댈 것 같았다. 다른 요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요원들은 여지껏 미적거리며 공격명령을 내리지 않은 양석민 중장을 찢어 죽이고 싶었다. 공격명령이 늦어 핵기지에 접근하는 중에 이미 미사일은 발사된 것이다. 
"과장님! 더 발사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중해야 하오. 한 번 공격에 꼭 점령하도록 합시다. 계속 시간표 그대로 전진하시오."
대원들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중국 핵기지를 향해 접근했다. 그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

 

- 10월 24일 23 : 51 대전, 정보사단 
"옵니다!"
관제관의 외침에 양석민 중장이 눈을 부릅뜨고 상황판을 노려보았다. 온다. 악마의 화신이 날아온다. 군인의 신앙인 국민의 생명을 노리고 3기의 미사일이 날아오고 있었다. 
"목표는?"
"신강에서 발사한 것은 개성을 노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돈화와 상해에서 발사된 2기는 아직 최고점 도달 전입니다만 방위는 서울과 평양 같습니다! 도달 예상시간은 발사에서 대략 17분 정도, 24 : 00시 플러스 마이너스 1분에 도달 예정입니다." 
"개성을 왜..."
양석민 중장이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화상통신 스크린을 통해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국방부 지하벙커, 평양의 로동당 청사, 통일참모본부 모두 차분한 분위기였다. 관제사가 양 중장에게 잘 알고 있지 않느냐는 투로 대답했다.
"적은 통참이 이전한 것을 모르고 있나 봅니다."

 

- 불행 중 유일한 다행이었다. 그러나 어느 군인이 장성 몇 명의 목숨과 수십만 시민의 목숨을 비교할 수 있을까? 개성 시민들은 통일참모본부가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전멸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통일참모본부는 즉각 개성시에 핵미사일 공습경보를 발령했다. 

양석민은 중국 측의 특수부대를 우려해 통일참모본부를 비밀리에 이전한 것을 후회했다. 차라리 당당하게 이전 사실을 공표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중국은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그곳 농촌지대를 목표로 삼았을 것이다. 아니면 개성의 구 본부 건물에 남아 있던 경비병력을 철수시켜서 최소한 통일참모본부가 이전했다는 정보를 중국이 갖게 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설마 중국이 핵미사일을 개성에 겨눌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양 중장이 이를 악물었다. 

"요격용 전투기나 관제기, 미사일이 부족합니다. 서울과 평양의 확실한 수호를 위해 개성은 포기하겠습니다."
양석민 중장이 30만 개성 시민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통참의 김병수 대장이 벌떡 일어나 뭐라고 외치려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주먹으로 원탁 모서리를 마구 치기 시작했다.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대통령과 최호 원수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국무위원 한 사람이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흐느끼는 모습이 보였다.

 

- [이 따위 미사일에 맞기나 하려나...]
[20세기말에 논개 흉내 내야 되는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몸으로 때우고 싶어도 어려울 겁니다. 너무 빨라요!"
통신망이 순식간에 편대원들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1번기가 미사일을 발사하는 모습이 레이더에 잡혔다. 아니, 지금은 레이더가 아니라 다만 E-2C에서 보내는 영상신호를 보여주는 디스플레이에 불과했다. 대신 탐지범위는 250km나 되고 최대 축척비로 구성된 REO(레이더 / 전자광학표시기)에 목표의 데이터가 나왔다. 방위는 전투기의 진로와 정면이고 목표는 계속 가속하며 내리 꽂히고 있었다. 

- 길이 6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위성요격용 미사일이 목표를 향해 급가속했다. 1번기가 발사한 미사일이 핵미사일에 거의 명중할 뻔하다가 빗나갔다. 곧이어 조장호 중령의 2번기가 발사한 미사일도 빗나갔다. 1번기가 핵미사일과 교차하며 발생한 기류 탓인지 기체가 조종불능에 빠지며 추락했다. 마지막으로 3번기가 발사한 ASAT마저 빗나가자, 놀란 나머지 전투기들이 일제히 암람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했다. 목표식별장치가 완벽해서 아군기가 맞을 가능성은 적었다. 그러나 사실 아군기가 맞더라도 이들은 주저 없이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다. 


- [야 이 개새끼들아! 코스산정 제대로 못 하겠냐?]

E-2C의 레이더 전파가 목표에 닿고 다시 돌아오는 시간, 컴퓨터의 코스계산처리에 소요되는 시간, 그리고 이를 전자신호로 전투기에 보내는 시간 등은 다 합해도 극히 짧지만, 마하 12나 되는 핵미사일을 명중시키기에는 결정적인 장애가 되고 있었다. 이미 핵미사일은 그 위치에 있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도 어쩔 수 없는 편차라는 것도 있었다. 지금도 전투기들이 줄지어 핵미사일의 진로 앞을 막아섰음에도 불구하고 미사일에 어떠한 장애도 되지 못한 것이다. 

 

- 김종구가 휴대용 CD를 통신기에 연결했다. 볼륨을 최대한으로 틀었다. 모든 편대기 스피커에 'The final countdown'이 흘렀다. 1986년, 발사 중에 폭발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승무원 추모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그는 미사일과의 거리 4km에서 기관포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전투기와의 근접전이라면 사정거리도 안 되는 먼 거리지만 그는 지금 발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4km면 핵미사일이 1초 이내에 전투기에 접근할 거리다. 수백 발의 20밀리 탄환이 탄막을 형성하고 미사일이 그 안으로 들어왔다.  

김 중위는 기관포탄이 핵미사일을 파괴시킬 것이라는 기대 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다만 방향이라도 약간 틀어 준다면 감사할 뿐이었다. 혹시나 핵미사일이 공중폭발한다면? 끔찍한 일이다. 
'내가 왜 북한 사람들을 위해 죽어야 되지? 아니, 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죽어야 해? 군인이라서? 젠장~ 전쟁 날 줄 알았나.' 

 

- 미사일에 기관포탄 두세 발이 명중했는지 땅으로 내리 꽂히는 커다란 불꽃에 작은 불꽃을 더했다. 그러나 방향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김중위의 눈에 거대한 미사일 본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미사일은 급속히 커졌다. 지금은 탄두밖에 없기 때문에 사실은 결코 크지 않지만 F-16보다 세 배는 커 보였다. 김 중위의 항상 졸린 듯한 눈도 이때만은 크게 떠졌다. 김종구가 악을 썼다. 
"It's the final countdown!"

 

- "제기랄! 파렌하잇!"
수우족 인디언 이름 같은 높은산을 콜사인으로 쓰는 백기선 대위는 김종구 중위의 기체가 불화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가 튕겨 나오는 것을 보며 외쳤다. 편대 통신망에 김종구의 노래는 딱 한 소절로 끝나고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의 기체는 왼쪽 날개가 부러진 채 빙글빙글 돌며 추락했다. 
불화살은 5번기를 따돌리며 일직선으로 그의 기체를 향했다. 이미 사이드와인더와 암람, 기관포까지, 발사할 수 있는 모든 무기를 발사했다. 유효거리를 따질 여유나 이유는 없었다. 돌멩이라도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 긴급발진한 미그-23 1개 대대의 화망을 음속 20배의 속도로 뚫고 들어왔다. 개성에 주둔하는 고사포대대에서도 가지고 있던 SA-G을 모조리 날렸지만 하나도 요격하지 못했다. 통일참모본부가 있던 건물 상공에서 이 가공할 수소폭탄이 폭발했다. 수억 도에 달하는 초고온이 대기를 노랗게 달궜다. 중성자와 중간자에 의해 원자핵 내에 강력하게 결합되어 있던 양전하들이 클롱반발력을 이기고 서로 충돌했다. 
질량결손이 막대한 에너지를 낳고 이 에너지가 다른 원자핵의 결합을 가속시키자 핵융합반응이 촉발되면서 열선이 대지를 불태웠다. 곧이어 거대한 불의 버섯구름이 형성되며 다시 폭풍이 불타는 땅과 건물을 휩쓸었다. 화구가 계속 커지면서 개성시 전체가 화염에 빨려 들어갔다. 500년 고려의 도읍지였던 개성은 1분도 안 되어 소멸했다. 그 유명한 선죽교도 잿더미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 10월 25일 00 : 00 서울, 국방부 
[평양은 살아남았습니다! 전투기들의 가미가제식 요격이 성공했습니다. 대신 개성이 당했습니다. 현재 통신 두절입니다!]
국무회의에 일순 함성이 터졌다가 싸늘하게 분위기가 식었다. 그러나 잠시 후 평양과 서울의 요격체계가 같고, 발사한 핵기지와의 거리가 비슷해 핵탄두의 강하속도도 같다는 것을 확인한 국무위원들은 서울도 살아남을 확률이 크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대통령이 최호 원수를 불렀으나 최 원수는 장승처럼 우뚝 서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대통령이 최 원수 부르기를 포기했다. 이제는 서울 차례인 것이다.

 

대통령이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미국에서 비싸게 구입한 HOE-3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이다. 아무래도 탄도탄처럼 빠른 물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레이더와 컴퓨터, 전파를 이용한 위치파악보다는 다른 방법이 있어야 했다. 오차가 너무 컸다. 미사일 요격시스템은 이 오차를 수정해줘야 하는데, 문제는 그것이 전혀 쉽지 않다는 데에 있다. 대기와의 마찰에 의한 미사일의 감속, 지구의 중력에 의한 가속, 미약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지구의 자전에 의한 코리올리효과 등, 미사일의 속도와 위치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를 감안해야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고(高) 에너지 레이저에 의한 적 위성이나 대륙간탄도탄의 요격이 주요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SDI가 아직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다. 구 소련이 고에너지 레이저기술이 발달되었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인공위성이나 대륙간탄도탄의 요격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 자체 레이더가 탑재된 요격용 미사일도 마하 20을 넘는 목표에 대해서는 정밀도가 떨어진다. 음속 이하로 비행하는 전투기도 확실하게 명중시키지 못하는 미사일이 초고속의 대륙간탄도탄을 요격하는 것은 난센스다. 게다가 대공미사일은 명중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폭발파편에 의해 목표를 파괴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폭발하는 순간 핵미사일은 이미 그 상공을 통과한 후의 일이다. 미사일은 전혀 손상을 받지 않는다.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미사일은 핵미사일이 아니면 아직까지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인들은 지금 불가능에 도전하고 있으며, 이 방법이 평양을 구한 것처럼 서울도 구할 것으로 기대했다. 1천만 시민이 사는 곳이다. 전략적으로도 결코 잃으면 안 되는 곳이다. 

 

- [패트리어트 12기 모조리 빗나감!]
[위성요격미사일 ASAT 및 공대공미사일 목표 요격 실패!]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관제사들이 연이어 비명을 질렀다. 전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지금 이들의 머리 위로 실로 가공할 만한 핵미사일이 낙하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분노했다.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지효섭 국정원장은 대통령이 공포보다는 격노한 표정을 짓는 것이 신기했다. 대통령은 과연 죽음을 초월한 사람인가? 대단한 배짱이라고 생각했다. 
[미사일 요격기 편대 통과! 목표, 청와대로 최종파악!]

"빌어먹을 미국 놈들 무기들! 비싸기만 하고 엉터리야!"
여기저기서 국무위원들의 비명과 탄식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국무회의가 청와대에서 가까운 정부종합청사로부터 국방부 지하벙커로 이동한 덕에 잘하면 살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메가톤급의 핵이라면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 국방장관 말대로 20킬로톤급의 위력이라면 폭심에서 약간 벗어나긴 하지만, 용산 일대도 직접적인 핵폭발의 영향권에 들 것이 틀림없었다. 

 

- "영부인께서는..."
통일부총리가 묻자 대통령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안주인은 아직 집을 지키고 있었다. 물론 민방위본부의 지시대로 지하방공호에 있겠지만, 폭심 주변에서 별로 깊지도 않은 지하방공호는 의미가 없었다.

홍지영 대통령은 중국이 청와대를 목표로 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전략적으로 의미가 있는 국방부나 서울 시내 한복판이 목표가 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전혀 예상이 빗나가고 말았다. 
몇몇 국무위원들은 삶을 포기했는지, 아니면 국방부 지하벙커의 견고함을 믿는지 두려움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상당수 국무위원들은 이 엄청난 공포 앞에서 사고력을 잃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 "총리! 총리는 도착했소?"
[여기 있습니다, 대통령님!]
헬기탑승장에서 뛰어왔는지 아직도 헐떡이는 총리 모습이 화면에 보였다. 하늘에도 러시아워가 있는지 서울에서 대전까지 헬기로 오는데 무려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각종 요격용 미사일의 배치와 병력수송 때문에 도로 뿐만 아니라 상공도 교통사정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였고, 공습경보가 발령된 마당에 각 도시 상공마다 요격부대에 의한 기종 및 탑승자 신원확인이 시간을 잡아먹은 것이다. 그만큼 온 나라가 어수선했다. 
"서울이 핵공격을 받고 있소. 서울과의 연락두절 시 군 통수권을 총리께 맡깁니다. 끝까지 잘 싸워 주길 바랍니다."
[대통령님...]
[목표 도달 4초 전! 공중폭발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가방에는 암호표가 있소. 양중장과 상의해서 핵공격 여부를 결정하시오. 무거운 짐을 맡겨 드려서 죄송합니다. 대통령 서리님."

- 홍 대통령이 최창식 총리를 대통령 권한대행을 넘어 대통령 서리로 부르자 국무위원들이 스스로의 운명을 예감했는지 비장한 표정들이었다. 국민들의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대통령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 총리나 국무위원과는 격이 다르다. 관행적으로 국회 동의 전에 국무총리 내정자는 국무총리 서리(署理)로 불리는데 이는 한국정치의 좋지 못한 관행으로서 국회의 임명동의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그것을 뻔히 알고 있는 대통령이 총리를 대통령 서리라고 불렀다. 홍지영은 전쟁추이로 보아 헌법에서 규정한 대통령 궐위시 60일 이내에 치르기로 되어 있는 대통령선거가 도저히 치러질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총리가 앞으로 상당히 고생할 거라며 총리를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 거대한 불덩어리가 하늘로 치솟고 강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서울이 온통 불바다가 되고 있었다. TV방송이 갑자기 끊기고 전기가 나갔다. 그때부터 그녀가 창문에서 본 것은 아수라지옥이었다.

시내 곳곳에 수도관이 터지면서 도로는 온통 물바다가 되었다.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가스회사 기술자들이 모두 도망가는 바람에 시내 대부분 지역에서 가스관 차단을 실시하지 못했다. 붕괴된 도로 주변에 허술하게 묻혀 있던 가스관에 균열이 생기며 강력한 압력에서 해방된 도시가스가 분출했다. 물바다가 된 지하철 3호선 녹번역 부근 도로 위로 가스가 두텁게 쌓이며 흘러내렸다. 
도로에 누적된 도시가스는 녹번사거리 근처 서부소방서에서 긴급출동 중이던 소방차 배기가스에 닿자마자 폭발했다. 도로를 따라 폭발이 연속되며 시외로 빠져나가려던 자동차들이 갈기갈기 찢겨 장난감처럼 하늘로 날아갔다. 화염이 용처럼 꿈틀거리며 확장하더니 주변에 있는 집과 자동차를 집어삼켰다. 

- 지하에 얼기설기 매설되어 있던 도시가스 배관망은 한국 특유의 부실공사와 관리자의 도주, 결정적으로 핵폭발로 말미암아 서울을 지옥으로 바꿔 놓았다. 1차 폭발 이후에 발생한 도시가스의 연속폭발과 화재로 인해 발생한 유독가스가 지하방공호나 전철역에 대피해 있던 사람들을 질식시켰다. 
동시에 수백 군데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소방차와 앰뷸런스들이 출동했지만, 도로 곳곳이 붕괴하고 부서진 차량 잔해에 막혀 움직이지 못했다. 부상자들이 울부짖었지만 그들을 도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김수경은 청바지와 간단한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직도 균열된 배관에서 치솟는 도시가스가 밤하늘을 향해 화염을 뿜어대고 있었다. 지금 이 상태에서 방사능 낙진은 문제가 아니었다. 한 사람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 10월 25일 00 : 03 대전, 정보사단
"서울이... 서울이 날아갔습니다..."
관제사가 얼이 빠진 듯 의자에 푹 퍼진 채 천천히 중얼거렸다. 국방부 지하벙커와 연결된 통신상이 지직거리더니 결국 채널을 잘못 맞춘 TV수상기처럼 화면이 나갔다. 6개 TV 방송이 전면 중단되고 위성 TV와 지역 CATV마저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통일참모본부와 연결된 화면은 음성은 들리지 않고 반대편에 있는 사람의 윤곽만 희미하게 보였다. 
"피해는?"
묻고 있는 양석민 중장의 안면 근육이 심하게 꿈틀거렸다. 최창식 총리는 장승처럼 우뚝 선 채 눈을 감았고, 이재영 중장과 강성식 이사관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모르겠습니다. 연락이 완전 두절됐습니다."
"수경사, 아니, 수방사는? 서울 인근 부대에 연락해서 정찰기를 날려! 유무선통신이 안 되면 연락헬기라도 날리란 말야!" 
양 중장이 통신장교에게 고함을 치고 나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김준태와 구성회가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서울과 개성에 명중한 핵미사일은 핵폭발뿐만 아니라 강력한 전자기펄스를 발생시켜 한반도 중부의 유무선통신을 모조리 두절시켰다. 서울 상공에서 미사일 요격에 투입된 전투기들은 살아남지 못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현재 서울과 연락을 취할 방도가 없었다.

 

- 양 중장이 홀스터에서 권총을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권총집 단추는 채우지 않았다. 일어섰다 앉기를 몇 번 반복하는 양 중장을 이재영 중장이 진정시켰다. 
"양 중장은 이번 작전의 책임자요. 부디 냉철하시오."
"... 죄송합니다. 장군님."
양 중장이 고개를 푹 숙이며 천천히 상황실을 떠났다. 이재영 정보사단장이 동해안 쪽으로 멀리 우회하는 유선망을 통해 서울 인근의 연락이 되는 군부대를 호출해서 구조작업에 동원하고 남양주의 통일참모본부와 화상통신을 연결했다. 화면에 얼굴이 벌개져 있는 이종식 차수의 얼굴이 보였다. 이 차수가 경례를 하기도 전에 총리가 울부짖었다.

"서울이 핵에 당했소! 연락도 완전 두절이오."
[완전히 당한 것은 아닙니다. 의외로 위력이 약한 탄두였습니다. 개성은 전멸했지만 서울은 아닙니다.]
[20킬로톤 이하의 위력이었습니다. 게다가 지중폭발이었기 때문에 위력이 더욱 격감했습니다. 대신 인근지역도 상당한 지진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지수 대장이 이 차수 대신 총리에게 차분하게 설명하자 총리는 정대장의 말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피해가 적다는 말을 듣고 다소 안심할 수 있었다.

- "양 중장은 핵보복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소. 이 차수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핵이래 있습네까? 거짓뿌렁 앙이었습네까?]
이 차수는 금시초문이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총리와 양 중장을 살펴보았다. 어느새 들어와 있는 양 중장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것은... 쿨럭! 24 : 00시로 비밀이 해제된 파일에 담겨 있었습니다. 자료를 전송하겠습니다."
양석민 중장이 책상에 앉아 앞에 놓인 패널을 조작하더니 잠시 후 다시 이 차수에게 보고했다. 
"국정원장이 공작을 벌인 모양입니다. 극비리에 국제 무기암거래시장에 나온 240밀리 박격포용 핵탄두 3발과 152밀리 곡사포용 핵탄두 2발을 입수했습니다. 각기 위력은 다르지만 모두 5킬로톤 이하 급입니다. 국가정보원은 이것을 우리별 로켓이나 인민공화국의 대포동 유도탄에 탑재하는 계획을 전쟁발발 직후에 세웠고, 실전사용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양 중장이 잠시 자판을 두드렸다.
"우측 화면에 나온 바와 같이, 전라북도 정읍 부근 기지에 이것을 배치했습니다."
화면에 정읍 남쪽 산악지대, 내장산 위쪽의 특정위치가 검은 화살표로 지정되었다.
[기래서 대포동을 몇 개 달라고 했구만. 알갔소. 긴데 양 중장이 보복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시기요?]
"당한 만큼 돌려주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우리도 핵을 씁시다!"
양 중장의 목에 핏발이 바짝 섰다.
[앙이오. 기건 위력이 약해 중국이 다시 보복에 나설 수 있소. 다금 중국 지도부래 괴멸됐수다. 동지도 알갔디만... 기럼 집단지도체제래 들어서고, 집단지도방식이래... 책임자가 없다는 특성상 강경화 되는 수가 많디오. 길고 우리가 쏘면 연락이 두절된 중국 도탄 기지에서 자체 판단으로 도탄을 발사할 수 있소. 조선반도에 수십 개에 핵이래 쏟아질 수 있단 말이요. 우리 일단 투입된 요원들을 믿도록 합세.]

"..."
[총리께서는 어케 생각하십네까? 작전 장마에 대한 거이 아시리라 생각합네다만.]

 

- "기다려 보십시오. 암호가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암호검색프로그램을 가동하겠습니다."
콰앙! 
폭음에 놀란 이 과장이 승강기 쪽을 돌아보니, 통로 위쪽의 중국군에게 응사하던 요원 한 명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었다. 이 상사가 벽 뒤에 바짝 붙었다가 다시 위쪽으로 응사했다. 비명이 엘리베이터의 통로 위에서 아래까지 길게 이어졌다. 잠시 후 쿵 하는 소리가 밑에서 들려왔다. 
"암호가 나왔습니다! 저쪽은 입구개폐장치의 전원을 내려야 했습니다. 자, 열립니다!"

김 소위가 외치는 동시에 육중한 철문이 위로 열리고 이 과장이 바닥으로 몸을 날리며 반대쪽을 향해 자동소총을 발사했다. 앉아쏴 자세를 취하며 침입자들을 기다리고 있던 중국군 3명이 쓰러지고, 이들 뒤로 신승주 대위가 수류탄을 날렸다. 수류탄의 폭음이 울리는 동시에 엘리베이터 쪽에서 엄호사격을 하던 이 상사가 어느새 뛰어나가며 연사하기 시작했다.

 

- 이때부터 신 대위나 중국군들이 본 것은 일종의 마술이었다.
이 상사는 이 와중에도 한 명당 정확히 세 발씩 명중시켰다. 점사기능이 없는 AK-47 자동소총으로, 게다가 수많은 적에 둘러싸여 연사를 하는 중에 일반 병사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상사가 왼손으로 권총을 꺼내 쏘면서 엄지손가락으로 소총 방아쇠 앞에 있는 탄창멈치를 눌러 삽입된 탄창을 꺼내 돌리고 소총을 약간 위로 던져 올렸다. 미리 테이프로 두 개를 붙인 탄창이 공중에서 짧게 반 바퀴 돌자 이 상사가 탄창 아랫부분을 손으로 툭 쳤고, 탄창은 요술처럼 탄창삽입구로 빨려 들어갔다. 그가 공중에서 낙하하고 있는 소총의 개머리판을 탄띠에 대며 장전손잡이를 잡아당기자, 다시 소총은 사격준비가 완료되었다.

- "그렇다. 너희들은 조선군?"
"당연하지."
가 소좌가 잠시 백 중위 쪽을 보았다. 예정대로 순탄하게 진행되는지 백창흠 중위 얼굴에는 비교적 여유가 있어 보였다.
"북경에 핵을 날릴 것이다. 너희들이 우리 조선에 한 것처럼. 조선이 핵유도탄공격을 받으면 즉각 보복하기로 되어 있다. 방금 저 사람이 수신한 것은 발사암호와 공격목표인 북경과 상해 등 대도시 위치다. 이의 없겠지?" 
우 상교가 파랗게 질렸다. 그는 핵기지를 점령한 한국군들이 핵미사일로 중국 정부를 협박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렇다면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다. 그가 보기에도 지금 한국군 기술병은 미사일 발사 전 단계 중에서 제3단계를 거치고 있었다. 어떻게 암호체계를 풀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아까 추가발사에 대비해 나머지 유도탄에 액체연료를 주입한 것도 문제였다. 액체연료 주입에 시간이 꽤 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이들이 암호를 파악했다면 이제 미사일은 발사 스위치만 누르면 된다. 15억 중국 인민이 핵위협에 완전노출된 셈이다.
"아, 안, 안 된다. 베이징에는 1,500만의 인민이 있다."
가 소좌의 눈이 잠시 잔인하게 빛나며, 그가 주먹으로 우상교의 얼굴을 쳤다. 우 상교가 코에서 피를 흘리며 다시 벌떡 일어났다. 우 상교가 애원하려다가 가 소좌의 말 한마디에 포기했다. 
"서울에 1,000만, 평양에 600만이나 있었다. 너희들은 그곳에 핵미사일을 쏘았다. 너희들도 같은 꼴을 당할 것이다."
우 상교는 이 중년의 인민군 소좌가 복수심에 불타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들은 스스로의 목숨을 도외시한 듯했다. 그의 목숨도 위태롭다는 것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러나 기지사령으로서 마지막 의무를 다해야 했다. 
"우리가 발사한 미사일은 20킬로톤밖에 안 되는 소형탄두를 탑재했다. 그리고 사전에 지중폭발로 세팅했다. 핵폭발로 인한 피해는 생각보다는 크지 않을 것이다. 제발 아랑을 베풀어주기 바란다." 

- "가 소좌님! 입력이 끝났습니다. 대륙간탄도탄 1기, 중거리탄도탄 8기입니다."
백 중위가 핵미사일의 목표에 대한 데이터 입력을 완료했다고 보고했다. 사전에 준비된 암호문을 입력했기 때문에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미사일의 목표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다. 사로잡히는 경우를 가정했을 때, 알고 있는 정보가 적을수록 좋은 것이다. 이들은 당연히 중국의 대도시나 군사적 요충지들이 목표가 될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은 우 상교도 마찬가지였다. 
"안 돼! 중국인들을 몰살시킬 셈이냐?"
우 상교가 악을 썼으나 가 소좌가 냉담하게 명령을 내렸다.
"기럼 발사하기요."
"예!"
백창흠 중위도 가 소좌만큼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틀림없이 이 기지에서 핵미사일을 발사한 것을 보았다. 한국의 어느 대도시, 어쩌면 서울이나 평양이 이 기지에서 발사한 핵미사일에 명중해 수많은 민간인이 처참하게 죽고 도시는 폐허로 변했을 것이다. 서울이나 평양이 당한 만큼 북경이나 다른 대도시도 사라져야 했다. 눈에는 눈, 다른 생각은 있을 수 없었다. 

 

- 중국군 경비병력이 통제실 정면 벽을 폭발시키려 했지만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이들은 아무래도 살아 돌아가긴 틀린 모양이라고 투덜거렸다. 어차피 처음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미사일 사일로가 열리고, 곧이어 로켓이 점화되었다. 거대한 동풍 시리즈 핵미사일 9기가 연기를 뿜으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통제실 스크린에 이들 미사일이 연이어 별빛 가득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솟구치는 장면이 보였다. 팀원들이 넋을 잃고 이 모습을 보았다.
'이렇게 복수를 하지만 수많은 생명들이...'
백창흠 중위는 한국과 중국이 공멸하리라 생각하며 아쉬워했다. 두 나라가 힘을 합하면 서로에게 좋았을 텐데... 하긴 대국인 중국이 조그만 나라 한국의 힘을 빌릴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핵을 발사한 것은 너무했다는 생각이었다. 당연히 중국도 핵세례를 받아야 마땅했다. 백 중위가 허탈하게 웃었다. 출입문 쪽에 다시 폭발음이 이어졌다. 

 

- 창 상장이 옆에서 부관이 영어로 대화하는 것을 들었다. 자기 딴에는 미국 군사고문단과도 영어로 대화한다며 동료들에게 자랑했지만, 지금 부관이 어느 나라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미국인은 비영어권 사람들에게는 천천히, 그리고 큰소리로 또박또박 말하는 것도 알고는 있었다. 한참 듣고 있던 부관의 표정이 심각해지며 창 상장을 힐끗 보았다. 
"... 위즈! 오너~ 키딩! 써! 어 세컨 플리즈. 창 상장 동지. 틀림없이 50기랍니다. 상하이, 둔화, 푸젠 등에서 조선을 향해 탄도탄을 발사했답니다."

- 부관이 자세한 것은 좀 더 조사한 후 통보하겠다고 미국 대통령을 달랬다. 잠시 후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번엔 정치경위국군관이 러시아어로 통화했다. 역시 마찬가지 내용에 준엄한 경고가 포함되었다.
"위성전화는 되는 모양이군. 좋아! 레이더기지를 불러 봐!"
부관이 총서기 자리에 있는 핫라인의 옆, 위성전화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다시 전화벨이 울리고 부관이 수화기를 들었다. 잠시 후 부관의 안색이 노랗게 변했다.
"상장 동지! 레이더기지의 보고입니다. 도탄기지 다섯 군데에서 50기의 핵도탄이 발사돼 지금 조선을 향하고 있답니다. 사실인가 봅니다."

"그런 미친 짓을! 어서 전화 줘! 나, 해군 사령 창 상장이야. 뭐야?"

용을 거듭 확인한 창 상장이 힘없이 수화기를 떨궜다. 50기의 핵미사일이 조선을 향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50기라면... 우리가 보유한 핵 탄도탄의 3분의 1이야. 조선이야 당연히 박살 나겠지만, 우린 핵 보복 능력을 잃었어. 당분간 미국이나 러시아에 배짱을 부릴 수 없겠군."
"어떻게 된 겁니까? 50기를 발사하도록 미리 명령이 내려진 겁니까?"

부관이 물었으나 그건 창 상장 자신이 묻고 싶은 말이었다. 아마도 핵기지들이 연락이 두절되자 자체 판단으로 미사일을 모두 발사한 모양이었다.

 

- 창 상장이 돌아보니 문 앞에 전업기술군관이 서 있었다. 계급은 사단장에 해당하는 대교지만 나이는 꽤 들어 보였다. 중국군에서 기술군관은 진급이 상당히 까다롭다. 최고 승진 가능 계급은 중장이지만, 이 계급까지 오른 고급전업 기술군관은 없었다. 대교가 스스로를 소개하며 보고 했다.

"저는 통신전업군관입니다. 이곳 통신부대장일뿐만 아니라 북경군구 통신대장이기도 합니다. 상장님께 송구스럽지만... 현재 전국 뇌전(유선전화)망이 붕괴됐습니다." 
"뭐요?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요? 이 중차대한 시기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가동 중이던 전화교환기 전부가 과부하로 인해 고장났습니다. 군부대 전용으로 쓰던 전화교환기도 마찬가집니다.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군용 무선망이 붕괴됐다는 것입니다. 단(團)급 이상의 상급부대에서 쓰는 무전기가 모조리 폐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럴 수가... 혹시 적이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누군가가 시험용 회선을 통해 각 뇌전국에 설치된 전전자교환기(全電子交煥)를 원격조작했습니다. 그리고 군용 무선망은 무전기의 암호장치가 파괴되었습니다. 소단위부대간의 무전은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적의 교란작전에 이리 쉽게 당하다니... 그래도 어쨌든 이제 전쟁은 끝났으니 다행이군. 동지는 뇌전망 복구에 최선을 다하시오. 지금 조국은 외국 침략에 대해 벌거벗은 것이나 다름없소." 

 

- 창 상장이 계단을 통해 천천히 1층 로비로 내려왔다. 조선이 마지막 힘을 다해 중국의 통신망을 마비시킨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제 전쟁은 끝났다! 조선인들에게는 정말 안 됐지만, 이긴 자가 모든 것을 갖는 법이다. 노래도 있지 않던가. The Winner takes all. 

 

- 10월 25일 00 : 25 일본 도쿄도 시부야쿠 록폰기 
통합막료회의 참가자들은 조용히 정면 상황판을 응시했다. 모두들이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50여 기의 탄도탄이, 핵미사일이 틀림없을 탄도탄이 조선반도를 향하고 있었다. 
중국이 한반도에 최소한 3발의 핵미사일을 발사하여 자정쯤에 서울과 개성에서 두 발이 핵폭발을 일으킨 사실은 이미 확인했다. 핵미사일 1기는 불발로 판단되었는데, 전역방어망도 없는 한국이 설마 탄도탄을 요격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에 그 미사일은 단지 고장이나 계산착오를 일으킨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중국 여러 곳에 분산된 미사일기지 중 몇 곳에서 또다시 50기의 미사일을 발사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저 정도면 반도 전체가 산산조각 난다. 조선이 항복하더라도 중국이 얻을 것은 없을 것이라며 방위청장이 고개를 저었다. 방사능에 오염된 땅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제 일본도 방사능 오염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 자위대 각 군의 최고지휘관인 막료장들이 모인 이곳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중국은 예상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중국과 조선의 전쟁에서 어떻게 이익을 챙길까 생각하던 그들은 이제 중국의 열도침략을 막는데 부심했다. 
이제 일본이 핵보유를 주저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자체 개발이든 밀수입이든, 모든 역량을 동원해 핵을 보유하기로 결정했다. 방위청장인 요시다 겐스케 중의원이 내각 총리를 기다리는지 자꾸 문 쪽을 힐끗거렸다.

 

- "결단의 순간입니다."
해막장(海上自慰隊長) 하토야마 유키오 해장(海將)이 침묵을 깼다. 그는 뜻밖에 전혀 예상 밖의 발언을 했다.
"우리도 육상자위대를 조선반도에 상륙시킵시다."
"정신이 있소? 중국이 핵을 썼단 말이오. 그것도 수십 발이오."

항공자위대 야마다 마사오 공장(空將)이 하토야마 해장을 힐난했으나 해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중국은 결코 자위대에게 핵을 쏘지 못합니다. 국제여론으로 압력을 넣으면 됩니다. 중국은 대동아전쟁 이후 최초로 핵을 실전투입했습니다. 그것도 대량으로 말입니다. 조선의 비참상은 곧 세계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될 겁니다. 유엔을 이용합시다. 미국이나 러시아도 동참할 것이 분명합니다." 

 

- "그렇죠. 핵을 쓸 수 없다면 중국은 우리에게 도전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전력은 바닥났습니다. 대동아전쟁 때 소련군이 미군보다 먼저 조선에 진주했듯이, 우리도 조선이 항복하자마자 진주하여 조선군을 무장해제시키는 겁니다. 최소한 반도의 절반은 얻을 수 있습니다.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말입니다."
"무슨 소리요? 중국군이나 조선군과 국운을 걸고 피 흘려 싸워 기껏 방사능에 오염된 땅이나 얻자는 거요? 이건 무의미한 침략이오. 쓸데없는 도박이란 말이오." 
듣고만 있던 야마다 마사오 공장(空將)이 나섰으나 이미 대세는 참전 쪽이었다. 오부치 의장이 안타까운지 혀를 찼다.
"중국의 침략에 대비해 일본에 안전지대가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고마쓰 육장이 나서서 반대를 무마하려는 순간 귀한 손님,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이 중앙지휘소의 주인이 나타났다.

"총리 각하!"

통막 참가자들이 전원 기립하여 내각 수상을 맞았다. 자위대 중앙지휘소가 생긴 이후 최초로 일본 수상이 자위대를 지휘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이다. 

 

- 하토야마 해장이 화면 위를 손가락으로 몇 번 누르자 중앙화면에 한국을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의 지도가 나타났다. 
"부산과 진해를 일단 접수합니다. 부산은 조선 제2의 대도시이고, 진해는 해군사령부와 기지가 있는 곳입니다. 해상이나 지상의 저항은 미미할 걸로 예상됩니다. 다만 공군은 수적으로 불리하지만 성능은 우리가 훨씬 우세합니다." 
"좋소. 공격개시일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이미 출동태세가 갖춰졌습니다. 예비역 자위관동원은 이미 끝났고, 지원병 증원과 기술병 징병이 완료된 상태입니다. 일반 동원병력은 훈련에 들어갔습니다. 중국이 더 이상 핵을 쓰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으면 즉시 투입해도 좋습니다." 
고마쓰 육장이 단말기 화면을 손가락으로 눌러 준비상태를 계속 보고했다. 예비역자위관을 포함한 육상자위대 병력배치 40만, 훈련 중인 병력 100만, 동원소집통지 500만! 2차 대전 당시의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벌써 600만이나 되는 병력을 준비했다. 
오부치 의장은 무력감에 빠졌다. 제발 일본 국민이 또다시 고통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 그러나 이것들은 사실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후후, 여우 같은 스미스가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로 변장이 훌륭했군. 내 역할을 맡은 사람은 누구요?"
"내각조사실 소속 일등해좌 사사키입니다, 각하! 총리 각하를 닮아 미남입니다."
상황실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미군은 이미 허수아비였다. 이제 중국의 핵미사일에 의해 한국이 제거되고, 일본이 한국의 일부를 점령하면 중국과의 대결에서 결코 불리하지 않다는 자신이 있었다. 역시 남의 전쟁에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익만 챙기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 "총리 각하! 화면을 보십시오!"
중앙화면을 보던 야마다 공막장이 손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그는 놀란 나머지 벌떡 일어섰다. 수상과 다른 참석자들의 시선이 집중되며 비명이 터져 나왔다. 

- 중앙화면에 나타난 탄도탄의 진로와 예상목표점이 한 점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중국 곳곳에서 출발한 붉은 선이 한반도 중부지방을 향해이동하고, 예상목표 지점으로 표시된 보라색 X자 50개가 한 지점에 고정되었다.
"목표지점은 어딘가?"
하토야마 해장이 관제원들에게 소리쳤다. 중앙화면 오른쪽에 목표지점에 대한 정보가 나타났다.

 

- "충주호? 호수란 말인가? 주변에 대도시나 군사목표는 없잖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중국이 군사목표도 아닌 한 지점을 향해 핵미사일 수십 발을 발사할 리가 없잖아!"
요시다 방위청장이 막료장들의 얼굴을 살폈다. 의혹이 가득한 얼굴들에 서서히 공포가 번졌다.

 

- "맙소사! 저 미사일들은 고도가 낮고 속도도 마하 3에서 4에 불과합니다. 일반적인 부분궤도 탄도탄보다 훨씬 낮은 코스입니다!"
야마다 공막장이 화면을 가리키며 부들부들 떨었다. 막장들이 중앙화면에 표시된 미사일의 고도와 속도를 파악하고 얼어붙었다.

 

- "기폭장치는 국제무기거래시장에 나와 있고, 운반체는 노동미사일을 쓰면 됩니다. IAEA나 미국에서 가장 감시를 심하게 하는 것이 핵물질입니다. 다른 것은 웬만한 나라에서는 충분히 만들 만한 기술이 있습니다. 특히 한국이라면..."
공막장의 설명을 다른 참가자들은 믿고 싶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양중장의 내심은 사실 편치 않았다. 확인된 바로는 중국 곳곳에 산재한 다섯 군데의 핵기지에서 핵미사일을 발사했다. 20팀 중에서 나머지는 모두 실패한 것이다. 하긴, 작전을 성공시킨 팀도 당연히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만주의 핵기지를 공격한 팀원들만이라도 살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이 버텨줄까 생각하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그들을 구하지 못하면 운명을 함께 하기로 한 약속이었다.

 

-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소? 운반체야 북한 미사일을 쓴다지만, 기폭장치는 개발이 상당히 어려운 걸로 알고 있는데, 이건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오?" 
최 권한대행이 묻자 양 중장이 귓속말로 쏘곤거렸다. 심각하던 최 권한대행의 표정이 확 피었다.
"과연... 기폭장치는 가이거 계수기에 걸리지도 않는 기계장치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나중에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미국의 압력도 줄일 수 있고... 대통령님!"
양 중장은 최 총리를 대통령으로 대접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라 대통령님이라는 호칭을 썼다. 그런 건 신경 쓰지도 않던 최 총리는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 10월 25일 00:40 충청북도 제천시 신리 
"옵니다! 40초 전!"
"그래. 대단한 손님들을 맞으러 나가야겠군."
레이더담당 하사가 외치자 강만일 대령이 헬멧을 쓰고 강바람이 몰아치는 밖으로 나갔다. 예정시간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틀림없이 탄도탄이 날아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인근 레이더기지와 연동된 상황판에 약 50기의 핵미사일 진로가 표시되었다.
강 대령이 망원경을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멀리 노란 빛줄기가 쏘아져 왔다. 국방과학연구소의 김 박사가 지휘소로 쓰는 임시 가건물 밖으로 따라 나왔다. 

- 특별훈련을 받은 해군 UDT 대원들은 강변에서 이미 승선대기 중이고, 충주호에 있는 구조선과 크레인을 갖춘 건설용 바지선, 기타 모든 배들이 총동원되어 예정낙하지점 부근에서 기다렸다. 한국전력에서 동원된 조명차들이 호수 위를 환하게 비추고, 긴급상황에 대비해 구조용 헬기들도 이륙준비를 마친 채 대기했다.
"멋지군요."
김 박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강 대령이 망원경을 내리며 동감을 표했다. 박사라면 백발이 성성하고 눈빛이 날카로운 노인들로만 생각했는데, 여기 있는 김 박사는 흐리멍덩하게 생긴 30대 초반의 젊은이다. 이런 사람이 한국 핵물리학계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김 박사는 며칠째 잠을 못 잤는지 부스스한 얼굴에 머리카락은 거의 까치둥지 같았다. 
"그렇죠? 박사님. 근데 정말 방사능이 유출되지 않겠습니까? 여긴 아시다시피 상수도 보호구역이라서요."

 

- 강 대령은 이 상황에서 수원지의 방사능 오염을 걱정하는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작전이 성공리에 끝나고 나면 이곳 상수도 보호구역의 방사능 오염 여부가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요즘은 대부분의 시민들이 생수를 사서 마시지만, 아직도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 사람들도 많다. 정부는, 그리고 정부에 소속된 국군은 상수원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걱정 마십시오. 타원궤도 장축이 길어서... 아니, 저궤도로 비행하기 때문에 저 탄두들은 속도가 느립니다. 마하 3 정도라면 수면에 떨어지는 충격 정도론 탄두가 파손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수심 40미터이니... 빠른 시간 내에 탄두에서 핵물질을 분리해 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다른 쪽은 이미 준비됐습니다. 중앙고속도로는 통제됐겠죠?"
"물론입니다. 수송로의 경계태세도 완벽합니다. 아! 왔습니다."

 

- "아직 대기, 대기. 손님들이 좀 더 올 거란 말야! 진정하고 계획대로 해!"
강 대령이 헤드셋에 연결된 무전기와 지휘소 스피커로 대원들을 제지했다. 얼마나 많은 숫자의 미사일이 이곳에 올지는 몰랐다. 그가 알기론 중국의 핵기지마다 약 10기의 핵미사일이 있다고 들었다. 방금 정보사단으로부터 받은 연락으로는 이곳을 향하는 핵미사일 숫자 약 50기를 확인했다고 한다. 20개의 핵기지 공격팀 중에 5개 팀이 성공한 것이다. 의외로 높은 성공률이었다.

 

-  다시 빛줄기가 이쪽으로 날아왔다가 역시 물속으로 낙하해 들어갔다. 다시 보아도 엄청난 장관이었다. 또다시 미사일이 날아왔다. 강 대령은 혹시나 핵미사일 가운데 하나가 폭발하면 어쩌나 불안했다. 
절대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하나라도 폭발하면 이 작전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간다. 충주와 제천 인근에 거주하는 수십만의 인구와 상수원이 소실되고, 기껏 얻은 핵탄두마저 모두 잃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목숨은 핵미사일이 과연 폭발하지 않느냐에 달린 것이다. 

 

- "음... 우리나라가 아무래도 핵강국이 될 것 같습니다."
김 박사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핵보유국이 되면 미국이나 러시아에서 압력을 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탄두에서 핵물질을 분리하는 작업만 감독하면 된다. 이를 처리하여 다른 미사일 탄두에 넣는 건 다른 기술자의 일이고, 핵강국의 압력에 맞서야 하는 건정치가들 몫이다. 방사능 물질 처리용 차량들이 비상등을 깜박이며 구석에 몰려 있었다.

 

- 10월 25일 01 : 00 경기도 남양주, 통일참모본부 
[햇살. 작전 장마는 성공리에 종료되었습니다. 탄두는 모두 회수, 플루토늄을 분리해서 그곳에 보냈습니다.]
드디어 장마작전이 종료되었다. 햇살이라는 암호명은 핵탄두가 회수되어 새로운 발사체에 장착하기 위한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이다.
대전 정보사단에서 화상통신으로 보고하는 양 중장은 특유의 멋진 머릿결이 기름기에 번들거려 보였다. 하룻밤 사이에 나이도 상당히 들어 보이고, 무엇보다도 피로에 지쳐 있었다.

 

- 10월 25일 01 : 30 서울 용산, 국방부
캄캄한 지하 여기저기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대통령 홍지영은 비참한 심정이 되었다. 유사시 적 항공기의 대대적인 폭격에도 버틸 수 있게 설계되었다는 국방부 지하벙커가 핵미사일에 직격을 당하지 않았는데도 힘없이 무너져 버렸다. 공무원은 뇌물을 받아먹고, 건설업체는 헐값에 하도급 주고, 현장감독은 자재 빼돌리고 하는 등, 군부독재 시절의 총체적 부패가 국방부 청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 분노하던 홍 대통령은 전쟁을 막을 수 없었을까, 최소한 서울에 대한 핵공격을 막을 수 없었을까 다시 생각해 보았다. 모든 걸 양보할 수 있었다. 그렇더라도 대통령으로서 영토를 침략국에 할양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영토보다는 국민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너진 지하에 갇힌 사람들은 이제 조용히 구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지겹게 흐르고, 이들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 무너진 건물잔해 밑에 깔린 희생자들의 상황이 이랬을까 생각했다. 

 
- "항복하지 말아야 하는데..."
"총리는 절대 항복하실 분이 아닙니다, 대통령님!"

 

- "지 부장은 계시오?" 
홍지영 대통령이 어둠 속으로 외쳤지만 지효섭 국정원장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홍 대통령은 지효섭 국정원장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공안 출신이고 극우성향이긴 했지만, 국가정보원이 국내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은 지 원장의 공이 컸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했다. 
대통령은 국가정보원이 전쟁 전까지 경제정보를 집중적으로 취급했던 것을 떠올렸다. 중국에 파견된 요원들도 대부분 경제정보 수집이 주목적이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래도 국정원은 국제무기 밀무역상으로부터 소형 핵탄두 몇 개와 기폭장치 다수를 입수하는 공을 세웠다. 물론 중앙아시아 몇 개 국가에 경제지원을 약속하고 얻어낸 성과이긴 하지만...

 

- "총장님. 경운기라... 그거 꽤 쓸 만하겠는데요?"
경차량 몇 대로 구성되어 독립된 작전을 구사할 수 있도록 편성된 예는 러시아나 프랑스 공수부대에서 찾을 수 있다. 두 나라 모두 공수가능한 경장갑차량 몇 대가 대공, 화력, 대전차 등의 임무를 분담한다. 그러나 1개 보병소대가 전원 차량에 탑승한 채 완전히 독립적으로 편성된 예는 없었다. 
윤 대위는 여러 가지로 무기체계를 조합하느라 골머리를 싸맸다. 너무 다양한 무기체계가 소단위 부대 내에 있으면 화력집중이나 작전수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게다가 대전차 및 대공미사일은 한국군에 그리 많지 않아 충당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러시아로부터 소형 대전차무기와 소형 대공미사일을 대량으로 밀수입하자 이런 조합이 가능했다. 화력도 기존의 보병소대보다 당연히 몇 배 강하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기동성을 살릴 수 있었다. 단지 새로운 무기체계에 적응해야 되는 보병들이 당황했지만, 러시아제 무기는 의외로 사용하기 간편했다. 

 

- "이 중위! 무슨 소리요!”
[사병들이 포로들에게 총을 쏘았습니다.]
"이런! 포로학살은 금지된 것을 모르오? 즉각 제지하시오!"
[지금 다들 흥분한 상태라서... 동원예비군들이 총검으로 포로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맙소사! 어떻게든 제지하시오!"
"내또라!"
"예?"
"내비도라카이!"
윤 대위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서히 바닥에서 일어났다. 김재호 대장은 묵묵히 학살현장을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중국군 포로들은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죽어갔다. 죽음과 피, 광기가 드넓은 벌판을 메웠다. 
"저들을 당장 체포해서 군법회의에 회부해야 합니다. 전시규정을 위반한..."
"치아라. 절마들은 복수할 권리가 있재. 핵 맞은 서울 출신 아들 아이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면 중국인들과 똑같은 인간이 되라는 겁니까? 저들은 무장해제된 포로들입니다. 양민학살과 다름없습니다!"
"시끄럽다! 니가 뭘 안다카노? 핵 땜에 서울서 민간인들 좀 많이 죽었겠나. 치아라 마!"
뜻밖에도 김 대장이 흥분하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윤 대위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김 대장이 홱 돌아서서 지휘차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윤 대위가 학살현장을 돌아보니 이미 상황은 끝난 이후였다. 100여 명의 포로가 있던 자리에는 널부러진 시체만 있었다. 병사들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씩씩대고 있는 모습이었다.
다시 윤 대위가 김 대장 쪽을 보니, 김 대장은 이미 지휘차 안으로 들어가고 없었다. 윤 대위가 천천히 지휘차 쪽으로 걸어갔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평소에 그렇게 합리적이던 김 대장이 저렇게 변하다니...

 

- 그리고, 구조작업이 시작되어 소방차들이 흩어지면 소방차들끼리의 무선연락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서울시 전체적으로 지금도 극심한 전자장해를 겪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방사능 방호복이 없다. 지금 저 선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살아남더라도 평생을 방사성 질병에 시달릴 것이다. 살아남더라도..." 
성기혁이 길 반쪽을 메운 바리케이드와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들을 물끄러미 보면서, 머리가 듬성듬성 빠지고 뼈가 부어오른 모습을 상상했다. 그렇게 평생을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탕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아직 늦지 않았다. 아마 정부는 곧 항복할 것이다. 그렇다면 귀관들이 죽거나 방사능에 오염되더라도 국가가 귀관이나 가족을 책임지지 못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오염지역 구조임무에서 빠지고 싶은 사람은 안전한 곳에서 구조임무를 수행하기 바란다."
무선기에는 침묵이 이어졌다. 성기혁 소방대장 말고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 방사능 잔류량이 엄청난 곳에서 방독면만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살아남은 사람들, 구조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소방관 중에서 몇 명이나 살아남을까? 평생 시달릴 방사능 후유증은? 가족은? 자식들은? 
소방사들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요동쳤다. 심장이 6,000 RPM의 자동차 엔진처럼 박동하며 아드레날린이 최고조로 분비되었다. 

 

- 10월 25일 11 : 30 (워싱턴 표준시) 미국, 뉴욕 
"우리 미국은 이번 전쟁에서 중립을 지킬 것을 선언합니다. 다른 안보리 상임이사국들도 이번 전쟁에서의 중립선언과 전쟁의 조속한 종결촉구 결정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 "스티븐슨 대사의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중국군이 한반도 일부를 점령하고 있으며, 핵미사일에 수도 서울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상태에서 종전을 한다면 한국에게 너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일본은 유엔이 한국을 지원하든지, 최소한 핵전쟁 확대에 대해서만 억지력을 행사하고 한국이 실지를 회복할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한 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일본 자위대는 유엔의 깃발 아래에서 한반도로 파병되어 침략자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첸밍산 중국대사는 얼굴이 벌개졌다. 세계평화를 수호한다는 유엔에서 할 수 있는 말인가? 하지만 실제로 침략국인 중국 입장에서는 전쟁에 불리해진 마당에 할 말도 없었다. 중국이 유리한 국면에서는 당연히 이 전쟁이 중국의 승리로 끝날 줄 알고 다른 상임이사국들이 중국에 대한 비난을 자제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나라들이 은근히 중국을 비난했다. 역시 국제관계는 힘이 수반돼야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유엔군을 한반도에 파병하자는 일본대사의 제의는 중국이 거부권을 가진 이 마당에 당연히 부결될 것이 뻔했지만, 첸밍산 대사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 "저도 일본대사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러시아대사까지 나서자 첸 대사가 분노했다. 러시아는 지금도 한국에 엄청난 양의 무기를 팔아먹고 있는 나라다. 중국이 주로 미국에서 무기를 구입하자 러시아는 이번 전쟁에서 한몫 잡고자 한국과 손잡은 것은 잘 알려진 비밀이었다. 러시아대사의 발언이 이어졌다. 첸 대사가 듣기에 구구절절이 얄미운 말이었다. 
"중국은 침략과 핵공격에 대해 한국에 사죄해야 합니다. 아마도 1개 성(省) 정도는 한국에 할양해야 균형이 맞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은 더 이상의 핵전쟁을 바라지 않으나, 중국이 침략한 후에 즉시 종전결의안을 채택하지 않은 유엔에서, 이제서야 일방적인 전쟁종결을 종용하는 것은 정의와 균형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생각입니다." 


- 유엔에 의한 종전유도는 실패했다. 중국의 외교적인 노력은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상임이사국들은 중국의 몰락을 바라거나, 최소한 중국의 자존심을 철저히 짓밟으려 하고 있었다.

- "한국 대표께서도 한 말씀하시겠소?"
안보리 의장인 독일대사가 옵서버로 참석한 한국대사를 지명하자 박윤흔 대사가 천천히 운을 떼었다.
"중국이 침략전쟁에서도 핵을 사용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게다가 인구집중지역인 서울 등 대도시에 대해 발사하다뇨. 중국은 비인도적인 행위를 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서울이 핵공격을 받아 지금 정부와 연락이 되지 않고 있으며, 정부로부터 아무런 훈령을 받지 못해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만,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일단 한반도로부터 중국군의 즉각적인 철수, 한국 국민이 입은 인적 물적 피해에 대한 충분한 배상, 한중국경 300km 북쪽 이내 지역의 비무장화와 중립국 감시,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한국할양 등, 이 네 가지 조건을 중국이 모두 수락한다면 종전협상이 진행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 대사는 영문학 박사답게 그 긴 말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했다. 조건이 길어질수록 첸 대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 번째 조건은 너무하지 않소? 그건 침략이오!"
첸 대사가 거세게 항의했으나 역시 돌아오는 것은 각국 대사들의 차가운 눈빛뿐이었다. 현재 중국은 항의할 만한 입장이 되지 못했다. 곧이어 계속된 표결에서 결국 안보리 상임이사국 회원국 대사들은 실컷 중국을 조롱하고 나서 종전결의안을 부결시켰다. 거부권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표결도 안 된 것이다. 미국이 동의했으나 다른 5개국 전원이 반대했다. 지금은 미국의 압력도 소용이 없어서 전통적으로 미국을 지지해 오던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일본까지 반대했다. 개전 초기가 아닌 현 상태에서의 종전은 중국이 충분히 양보하지 않는 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들이었다.  

 

- 박윤흔 대사는 약간은 걱정스러웠으나 그래도 몇 시간 전보다는 훨씬 상황이 나아진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직도 대통령은 궐위중이고 총리가 권한대행을 맡는 상황이다. 총리로부터 훈령은 받았지만, 아직은 어떠한 종전 시도도 저지하라는 내용이었다. 
박 대사는 총리로부터 통일한국 정부 전체가 소멸한 것으로 위장해도 좋으니 몇 시간 더 기다려 달라는 당부를 받았다. 미국이 한국대사관과 총리와의 전화를 도청했다면? 박 대사는 미국이 알아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 10월 25일 03 : 20 서울 역촌동, 서부병원 
응급환자들이 끊임없이 병원으로 밀려들었다. 병실은 이미 만원이 된 지 오래이고 영안실도 시체로 넘쳐 났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지금, 김수경도 평상시에는 웬만한 인턴이나 고참간호사들이 할 만한 일을 하고 있었다. 수술실에 세 번이나 들어가 수술보조를 했고 끔찍하게 타버린 화상환자들을 소독했다.  
신에게 간절하게 구원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저주를 퍼부었다. 조금 전에는 수술 도중에 여섯 살짜리 어린이가 저세상으로 떠났다. 그러나 그 누구도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조금 전에 식구를 잃은 환자가족들까지 구호에 동참했다. 

 

- "또 열폭풍 피해자들이야? 분류한 담에 응급실로 보내요!"
한 떼의 환자들이 들것에 실려 우르르 몰려들자 젊은 레지던트가 외쳤다. 핵폭발이 일어났을 때 가장 가혹한 것은 방사능 피폭환자가 아니다. 평생 고통을 겪긴 하지만 피폭량이 적을 경우에는 그나마 생명이라도 건질 수 있다. 
그러나 열폭풍 피해자들은 살아날 가능성이 별로 없었다. 전신이 끔찍하게 탄 데다 방사능 피폭량도 많아 병원에서는 죽어가는 환자들을 포기한 채 방관하고 있었다. 다른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 "그래? 또 반마찰제인가 하는 놈이군. 방재반 출동시켜!"

"예! 알겠습니다."
린 대교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같은 공격을 두 번이나 실시하다니, 조선군 지도부는 멍청이라며 비웃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공격할 때였다.
살수차들이 활주로에 액화중화제를 살포하고 다른 공병대 병력이 손으로 직접 중화제를 뿌렸다. 작업을 하는 중국군들은 몸이 약간 간지러움을 느꼈으나 그동안 목욕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은 인민해방군 공군 창설 이래 가장 참담히 패배한 날로 기록되었다. 

 

- 이 차수를 따라 참모들의 시선이 일제히 출입문 쪽으로 돌아갔다. 언제 왔는지 출입문 기둥에 기대 서 있던 차영진이 흐릿한 눈길로 중앙화면을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북경을 공격할 생각이시군요."
"무슨 소리요? 차 장군."
정지수 대장이 뜻밖의 말에 놀라다 서서히 시선을 돌렸다. 중앙화면의 지도에는 100만 통일한국군 병력이 백두산을 크게 우회해 두만강 하구 쪽을 향하고, 또 다른 100만의 병력이 혜산 지역에 집결했다. 

- 국군 육군 참모총장이기도 한 김재호 대장은 틀림없이 5군은 예비병력이라고 했다. 하지만 예비병력치고는 정규군 병력이 너무 많이 집중되어 있었다. 혹시 작전기동군이 아닌가? 정 대장은 짜르의 눈빛이 반짝이는 것을 느꼈다. 
"시속 60km의 쾌속 진군이라면, 그것도 대부대의 이동이라면 남북한 지상군의 장비로는 불가능할 텐데요... 수송기도 없고. 알겠습니다. 민간인 차량을 징발한 거로군요. 사륜구동차..."

"동무!"
참모들이 갑작스런 외침에 깜짝 놀랐다. 지도에만 붙박여 있던 눈길들이 이 차수를 향했다. 분노인지 공포인지 이 차수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차 동지래 기기 가능하리라 믿소? 중국 북경을 공격?"
차영진 준장이 한 번 씩 웃더니 평소에 양석민 중장이 앉던 빈자리에 앉았다. 그는 익숙한 솜씨로 자판을 두드리더니 병력배치와 진격소요시간을 다시 짜기 시작했다. 훈련용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다뤄 본 경험이 많고 이런 용도의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에 수정은 금방 끝났다.

"총장이신 김재호 대장은 아니겠지만 참모 중에 어떤 사람이 북경 공략을 상정하고 작전계획을 짠 모양입니다."

- 참모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수정작업에 열중하던 차영진이 고개를 들고 마지막 엔터키를 눌렀다. 참모들이 중앙화면을 보니, 두만강을 향하던 푸른색 화살표가 천천히 동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화살표는 다시 북쪽으로 급선회하고, 혜산에서 출발한 다른 화살표가 서쪽으로 향했다.
"여기서 문제는, "
차영진은 중앙화면의 동작을 잠시 멈추고 고뇌에 찬 표정을 지었다. 

"어느 쪽이 주공인가 하는 겁니다. 그리고 나진·선봉에 있는 중국군을 섬멸하고 나서 공략에 나설 것인지, 아니면 포위망을 풀고 공격을 개시할 것인지 분명치 않습니다. 어떻게 하든 김 대장이나 그의 참모의 작전계획대로라면 아마도 상당한 지원이 있어야 할 겁니다. 이 계획을 높은 분들이 알고 계실지는 분명치 않습니다만."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은 가운데 침묵이 이어졌다.

 

- 이종식 차수가 이 침묵을 깨뜨리고 발언을 시작했다.
"음... 솔직히 기 작전계획을 승인할 때 본관도 기런 의구심을 가졌더랬소. 실지회복이라문 우리 병력으로 충분한데 와 우회를 하는디..."
"우리가 중국에게서 약간의 핵을 빼앗아 오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중국은 핵강국입니다. 그들에겐 다양한 종류의 전술핵이 있습니다. 아까 2군의 병력편성과 장비를 보았는데 대대 단위로 완전 독립적 편성이더군요. 하지만 중국은 자국 영토에 대한 침략을 용납치 않을 겁니다. 우린 중국의 전술핵에 맞설 만한 무기가 없습니다."
"기렇티. 고롬․ 중국이래 기존에 종심방어전략에서 탈피한 디 오래다. 디금은 적극방어전략이야요."
"2군의 작전계획을 승인하고 계속 지원하실 겁니까?"
차영진의 질문에 이 차수와 참모들의 침묵이 이어졌다. 
차영진이 단말기로 2급 보안문서를 뒤지기 시작했다. 2군 사령부 핵심 참모들의 인사파일이 열렸다.
"김재호 대장, 1980년 5월... 음... 이건 일단 넘어가죠."
김 대장의 인사기록을 보던 차영진이 분노에 가득 찬 눈빛을 지었으나 꾹 참는 표정이 역력했다. 핵심 참모들의 인사기록을 훑던 차영진의 눈빛이 갑자기 빛나기 시작했다.
"윤준혁 대위, 학사장교 출신, 학부 때 대학 다물선양회 회장 역임!"
다물, 다솜, 단군의 땅, 한단고기 등등의 낱말들이 차영진의 뇌리를 스쳤다.

 

- 다물이라는 말은 잃어버린 단군의 땅을 찾자고 고구려의 광개토대제가 외친 구호이며, 다솜은 사랑이라는 뜻의 옛말로서 일종의 인사말이다.
일부 재야사학자들과 극우적인 청년학생들의 주장은, 광활한 만주평원과 황하 이북의 중원땅, 멀리 시베리아 바이칼호까지 모두가 단군조선(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조선이 아니라 쥬신이라고 한다)의 땅이며, 단군의 후손인 우리가 그 땅들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물선양회는 몇 년 전까지는 여러 이름으로 존재하다가 최근에 집결되기 시작해서 남북 지도층 서로가 망설이던 남북통일에 강력한 압력단체로 작용했다.

 

- 중국과의 마찰을 우려하는 인사들은 남북통일을 반대하던 인사 이상으로 비판을 받았는데, 심지어 백주에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일본과 중국도 점점 극우화되었고, 격앙된 민족감정의 대립이 이번 전쟁의 한 원인이기도 했다. 

 

- 이 차수가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권한대행 옆에 앉아 있는 양석민 중장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안 됩니다! 적의 핵기지를 다만 몇 군데라도 점령해야 합니다. 저는 그들을 구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핵기지를 공격했던 요원들을 버리실 생각이십니까? 저는 그들과 운명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저 먼저 죽이고 나서 그런 명령을 내리십시오!]

 

- '일이 꼬였다'는 생각이 모두의 뇌리를 스쳤다. 통일참모본부와 며칠간 떨어져 있던 양 중장은 2군의 우회기동을 만주공격으로 오해해서 요원들에게 그런 약속을 했고, 현지 사령관인 김 대장도 은근히 중국 침공을 기정사실화하려고 중국에 먼저 도발을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었다.
그러나 더 이상의 확전을 막으려는 최 권한대행의 입장은 단호했다. 화면 건너로 섬뜩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귀관의 전역을 명하오. 이제 양 중장은 군대의 작전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소.]
팽팽한 긴장감이 화상통신용 화면 이쪽저쪽에서 감돌았다. 실의에 찬 양석민 중장이 권총을 꺼내 들자 총리실 경호원들이 황급히 권총을 뽑아 들었다. 탁자 위에 권총을 올려놓은 양 중장이 천천히 걸어서 출입문 쪽으로 걸었다. 화면 양쪽에서 한숨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의 등뒤로 권한대행이 말을 이었다. 
[귀관은, 아니, 귀하는 아직 예비역 공군 대장으로서 할 일이 많소. 국방부장관으로서 그 책임을 다해야 하오.]

 

- 16대의 전차가 눈밭에서 횡으로 전개하고 인민무장경찰의 바가 도발사준비를 갖췄다. 다른 보병들은 얼어붙은 눈밭에서 참호를 마드라 분주했다.
퍼펑!
"뭐야!"
갑작스런 섬광에 놀란 대부분의 병사들이 몸을 숙이고, 마 상위는 눈을 손으로 가렸다. 서서히 낙하하는 조명탄 10여 발 뒤로 엄청난 폭음이 이어졌다.
"적이다! 공격헬기다. 응전하라!"
동서남북 사방에서 몰려온 헬기들이 중국군을 향해 토우 대전차미사일을 쏘아댔다. 단 한 번의 공격에 절반의 전차를 잃은 중국군은 서둘러 대공방어에 들어갔으나 헬기에 의한 포위공격에 대항할 수 있는 전력은 없었다. 

 

- 한국군은 호커 800XP 정찰기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통해 중국군의 위치를 확인한 지 오래였다. 마 상위는 김 중위와의 무선교신을 너무 오래 끈 것을 후회했다. 기관포탄이 눈밭 위에 작렬하자 아직 참호를 갖추지 못한 병사들이 거꾸러졌다. 
"젠장! 방어력도 약한 500MD야. 대공사격하라구!"
500MD인가, MD500인가? 두 가지 이름이 마 상위의 입 안을 맴돌았다. 그래, 남조선군에 있는 68대의 공격형 500MD! 아니, 북조선에서 민간용 MD500 수십 기를 독일을 통해 구매했으니까 바로 그 MD500일지도...
'빌어먹을! 500MD든 MD500이든 무슨 상관이야?'

 

- "저기 연길이다! 연길의 불빛이다!"
김재호 대장이 장갑지휘차 해치를 열고 나와 동쪽을 응시했다. 공격헬기의 기습을 받고 불타는 중국군 해방트럭들 너머 멀리 도시의 불빛이 보였다. 압록강을 넘은 뒤부터 방송차에서 반복해 틀어대는 음악인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가 만주벌판에 울려 퍼지자 김 대장의 가슴이 벅차게 뛰었다. 
"네..."
김 대장을 따라 차체 밖으로 고개를 내민 윤준혁 대위가 스키점퍼 깃을 세우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벌판에는 자동차화보병들이 특유의 사륜구동차를 타고 움직이며 소탕전에 돌입했다. 그러나 총성은 거의 울리지 않았다. 

백두산을 크게 우회하고 짧은 시간에 만주를 횡단하여 나진과 선봉지역의 중국군을 포위하는 이 작전은 반은 성공한 셈이었다. 그러나 무인지경의 만주를 횡단한 것은 별 의미가 없었다. 본격적인 전투는 지금부터여서, 윤 대위는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자칫하면 남북으로 협공당하는 불상사가 생기기 때문이다. 윤 대위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중국은 아직도 군사대국이다. 

 

- "예? 총장님?"
윤 대위가 반문하자 김 대장이 씩 웃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통신장교 최영섭 중위가 인민군 4군단에 명령을 전했다. 윤 대위는 마음먹은 대로 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포위망을 완성하면서 사령관은 당연히 포위망 바깥쪽의 위협에 민감해지게 마련이다. 일개 군단 정도를 엄호 내지는 견제부대로 운용하는 것이 당연했다. 다만, 원래 작전계획에는 들어 있지 않은 전력 운용이었다. 통일한국군은 어디까지나 방어전을 위한 공격작전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한중 국경 부근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를 점령하는 것은 당연히 금기시되고 있었다.

 

- 윤 대위는 김 대장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서둘러 인민군 4군단의 편제를 살펴보았다. 보병사단 3, 자동차화보병사단 1, 전차여단 1, 경보병여단 1, 교도대로 구성된 사단급 부대 1, 기타 포병, 공병 등 지원부대. 전형적인 전시의 인민군 군단 편제였다. 
그러나 인민군 4군단은 통일 전까지는 휴전선 서부전선에 전진배치되어 있던 최정예부대이다. 제2미사일여단이 이 부대에 소속될 정도로 통일 전에는 대남 공격전력의 핵이었다. 사실, 이 부대는 본대의 좌측을 엄호하는 데 투입하기로 예정은 되어 있었다. 그러나 200km나 북진하여 모란강시를 점령한다는 계획은 있을 수 없었다. 

 

- "왜 조선은 우리 공화국을 침략하는 겁니까? 당장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썅~ 니들이 먼저 침략했잖아?"
곽 준장이 나서기도 전에 김 대장이 쏘아붙였다. 몇 년 전, 국방부 지침에 이런 게 있었다. 중국 연변의 조선족들, 연해주나 사할린,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을 한국인으로 간주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들은 몇 세대에 걸쳐 남의 나라에 살면서도 문화나 언어면에서는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사상면에서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고향은 한반도라도 조국은 현재 살고 있는 나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 "흠, 그래? 김 중위, 우리 통일한국군에 현지 입대할 생각은 없나? 자넨 동포잖아?"
"내래 중국인이외다. 이름도 진후입네다."
"피는 못 속여. 자넨 한국인이야. 난 김해 김씨인데 자네 본관은 어딘가? 한국 사람이 중국 편을 들면 쓰나?" 
의외로 단호한 대답을 들고도 김 대장은 포로를 살살 구슬렀다.

 

- "당신들은... 결코 중국에 이길 수 없소 당신들은 패해 반도로 도망가게 될 거요. 그런데 우리가 당신네들을 도우면 우린 설 땅이 없게 되오."
"흠... 그럼 우리가 만주, 최소한 연변 지역을 영구점령한다면 자넨 우리 편을 들겠나?" 
김 대장의 말을 들은 윤 대위가 흐뭇한 미소를, 송 소장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침략자의 본성이 드러났군요."
"야, 짜식아~ 만주는 원래 한민족 땅이란 걸 모르나?"
김 중위가 비웃음을 흘리자 옆에서 가만 듣고만 있던 윤준혁 대위가 나섰다.
"어쨌든 내래, 연변 조선족 동포 누구나 마찬가지 갔지만, 당신들을 도울 수 없소. 곧 고휘 상장 동지께서 해방군을 이끌고 당신네들을 참살할 거외다." 
한국군이 연변 쪽을 점령한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는 한 연변조선족에게서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 분명해졌다. 김 대장이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더니, 고 상장에 대한 생각에 미쳤다.  

 

- 10월 25일 04 : 30(베이징 표준시)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이봐요 정 대원! 정신 차려요!" 
"정신 차렸수다."

 

- 그에게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 느낌은, 이를테면 원초적인 욕망이었다.

"모래 속으로 숨자고요?"
"날래 내려놓기요 날래~"
정 대원은 바닥에 눕히자마자 무슨 힘이 남았는지 급히 야전삽으로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사람 키 만한 깊이의 구덩이가 금세 패었다.

"들어오기요."
좁디좁은 곳에 두 사람이 쪼그리고 앉았다. 위쪽을 위장포로 덮은 다음, 정 대원이 다시 옆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열이 땅속에 남아 있어 공기는 후덥지근했다. 이은경의 귀에는 어둠 속에서 사각사각하는 모래 파는 소리만 들렸다. 앞에 쌓인 모래를 뒤로 옮기던 이은경 대원이 킥~ 하고 웃었다. 
"웃디 말고 날래 따라오기오. 5메다는 더 파야 하오."
"아, 미안요 하지만 정말 땅굴 파는 솜씨는 알아줘야 해요. 이런 걸 전호식이라고 하죠?"
정 대원이 삽질을 딱 멈췄다. 이은경의 말에 약간은 당혹스러웠지만 그가 처해야 할 상황은 더 당혹스러운 것이다.
"위장포로 덮는다고 다 전호식은 아니야요. 지형에 따라 달라디디오. 길고 기건 생존술에 기본인데, 자, 기쪽을 메우고 날래 이쪽으로 들어오기요."
이은경 대원이 군홧발로 자신이 있던 모래굴을 무너뜨리며 정 대원이 누워 있는 곳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 정 대원이 비상용으로 갖고 다니는 조립식 쇠막대를 늘여 위쪽을 뚫기 시작했다. 이것은 조립식 원형 텐트의 속이 빈 가느다란 파이프 같은 것이다. 훈련에 의해 익힌 감각으로 막대가 지표면에 닿았음을 느끼자, 정 대원이 줄을 당겨 막대의 위쪽 끝을 열었다.  

 

- "이제 우린 살았습니다!" 
구조대의 굴착드릴이 벽을 뚫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가운데, 이 소리에 지지 않을 만큼 큰소리로 국방장관이 외쳤다. 여기저기 살아남은 자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작은 구멍을 통해 희미하게 비치는 불빛으로 홍지영 대통령은 행정자치부장관이 미소를 짓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이미 싸늘히 식어가고 있었다.  

 

- 굉음과 함께 드디어 벽이 뚫리며 불빛이 환하게 들어왔다. 구조대원들이 좁은 구멍을 비집고 들어오는 모습이 쓰러진 기둥 너머로 보였다. 홍 대통령이 탈진한 채 앉아 있는데, 갑자기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천장이 다시 무너지기 시작했다. 홍 대통령은 아득한 암흑의 나락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 10월 25일 06 : 20 (베이징 표준시) 티베트(시장자치구), 라싸
"자유 티베트 만세!"
"달라이 라마 만세!"
"진짜 판첸 라마를 모시자!"

- 티베트의 수도 라싸(拉薩)의 번화가인 빠지아오지에(八角)의 아침에 때아닌 함성소리가 요란했다. 검붉은 색 또는 진보라색 승복을 걸쳐 입은 라마승 100여 명과 수천 명의 민간인이 혼잡한 노천시장 거리를 행진했다. 이들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티베트 여성 빠르 바티와 청년들은 빠지아오지에의 중심인 칸사(중국식으로 따자오쓰)를 한바퀴 돌고 나서 베이징동로(北京東路)를 따라 부다라궁으로 향했다. 노란 타루초(라마경이 적힌 깃발)를 흔드는 청년 나사날 바타파를 중심으로 시위대 숫자는 급속도로 불어나며 행진속도도 빨라졌다. 빠르 바티가 휴대용 확성기로 외치며 시민들을 계속 선동했다. 
"티베트는 우리 땅입니다. 중국인들과는 문화도, 언어도, 뿌리도 다른 우리들의 땅입니다. 중국 지도자들은 이곳에 중국인들을 이주시켰지만, 보십시오. 중국 여성은 이곳에서 아이를 낳지 못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이 땅이 우리 땅이란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대로에 접해 있는 집들 창문이 열리며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시민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이 시위도 결국 많은 희생자만 남기고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며 어두운 얼굴로 묵묵히 지켜보았다.

- "미스터 타시. 무기를 더 구해줘요. 저 많은 사람들을 모두 무장시키려면 무기가 더 필요해요. 공안청 무기고를 털었지만 한참 모자라요."

죠칸사를 남쪽으로 바라보는 빠지아오지에의 시장, 허름한 2층 건물에서 이번 무장폭동의 지도자 빠르 바티가 화덕 옆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는 남자를 졸랐다. 옆에는 최초의 승리로 잔뜩 상기된 얼굴의 티베트인들이 총을 어깨에 멘 채 웃고 떠들며 식사하고 있었다. 화덕에는 야크 배설물이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미스 팔바티, 군사훈련 경험이 없는 사람들로는 인민해방군 정규군에 맞서 싸울 수 없소. 티베트 해방전선의 진입을 기다리시오."

 

- 타시 구르메라고 불린 이 청년은 다른 티베트인들과 함께 참바(볶은 보릿가루를 물에 반죽한 티베트인의 주식)와 양갈비를 맛있게 먹고 있었으나, 그의 외모는 아무리 보아도 티베트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네팔인 비슷하게 생겼으면서도 또 어딘가 달랐다. 
티베트인이라면 강렬한 자외선 때문에 검붉게 그을리고 씻지 않아 때에 절은 피부로 확연히 구분될 수 있지만, 이 청년은 매일은 아니더라도 자주 목욕을 했음이 분명했다.  
춥고 건조한 티베트에서 목욕이란 곧 죽음을 의미한다. 티베트인들은 심지어 대변을 보고도 뒤를 닦지 않는다. 그들은 티베트의 가혹한 자연환경에 순응하며 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 "무슨 소리예요? 지금 티베트에는 중국 정규군이 얼마 없어요. 작년에만 해도 50만의 인민해방군이 있었지만 한국과 전쟁을 치르는 통에 지금 중국은 티베트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고요.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예요! 그리고 제 이름은 팔바티가 아니라 빠르바티라고요."
망명 티베트 여성답게 깔끔한 모양새의 빠르 바티가 계속 다그쳤지만 타시 구르메의 입장은 단호했다.
"미안하오, 빠르 바티. 어쨌든 나는 학살을 방치할 수 없소 시가체(르카쩌) 인근에 인민해방군 1개 사단이 있어요. 200km... 단 하루면 이곳 라싸로 달려올 수 있소. 우리 해방전선에서 그들을 저지할 수 있느냐가 독립의 관건이 될 것이오. 이곳에서 그들의 승전보를 기다리시오. 이것은 해방전선과의 약속이기도 하오." 
타시 구르메는 학생 때 일본 만화를 너무 많이 봤다며 후회했다. 삼지안 파르바티와 우(无) 후지이 야크모던가?
"그깟 1천 명도 안 되는 해방전선이요? 난 그들을 믿을 수 없어요 우리도 싸울 수 있단 말이에요. 그리고, 당신은 왜 우리가 오늘 봉기하도록 재촉했죠?"
"라싸의 봉기소식을 듣고 틀림없이 인민해방군이 이쪽으로 올 것이오 해방전선이 그들을 몰아낼 거요. 그렇게 되면 티베트는 독립할 수 있소."

 

- "한국 수도에 중국이 핵을 발사했다는 게 사실이죠?"
아직도 타루초를 손에서 놓지 않은 나사날 바타파가 묻자 동문서답하던 타시 구르메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 사실이오."
"흥! 결국 한국이 다급해지니까 이제야 봉기를 허락한 것이군요. 그렇다면 한국에서 계속적인 지원을 해줘야 할 거 아니에요?"
빠르 바티는 어렴풋이 타시 구르메가 한국 사람임을 느끼고 그를 몰아세웠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뛰어난 능력으로 일주일 만에 티베트 해방전선을 장악한 인물이었다. 인도에서 자란 빠르 바티지만 그가 티베트인이나 네팔인, 혹은 다른 동양인이 아님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타시 구르메는 재촉하는 빠르 바티를 쳐다보지도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분명 그대와 같은 티베트 사람이요. 무기는 해방전선에 우선 지원되오."
타시 구르메는 버터차의 향기를 음미하며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 10월 25일 06 : 50 (베이징 표준시) 중국 베이징 자금성(紫禁城)
'나는 아직 살아 있다.'
피스 소속의 킬러인 구스타프는 고궁(宮) 깊숙한 곳인 태화전(太和殿) 다락에 숨어 있었다. 아침인지 다락에 희미하게 볕이 들었다. 대전 부근에서는 아직도 중앙당 직속인 경위국 소속 군인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구스타프는 배낭을 열고 소지품을 점검했다. 미니미 기관총과 200발들이 탄창 하나, 여분의 실탄, 권총 그리고 마지막 임무에 사용할 체코제 플라스틱 폭탄 셈텍스가 그가 쓸 수 있는 무기의 전부였다. 근접전에서 유효한 수류탄이나 최후의 무기라는 대검(帶劍)은 없었다. 얼굴 없는 협력자는 왜 수류탄과 대검을 준비하지 않았을까? 
'자살할 무기는 준비해 줘야지, 젠장!'

 

- 투덜거리던 구스타프는 갑자기 원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스페인 의사 카를이 지어 준 구스타프라는 이름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스페인 사람 카를이, 베트남인과 중국인의 혼혈이며 국적은 미국인 그에게, 치열한 멕시코내전의 와중에서 왜 독일식 이름을 지어 줬을까? 오랫동안 풀지 못한 의문이었다. 
'왜 그는 내 어머니의 조국에 나를 보냈을까? 내가 차이나 마피아와 싸웠기 때문에 믿었을까?'

- 보트 피플인 남부 베트남인 아버지와 밀입국자인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구스타프는 어렸을 때부터 자아정체성(自我正體性)의 심각한 혼란을 일으켰다. 수차례에 걸친 성형수술로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한 것도 원인이었다.
그는 태어난 나라를 떠난 최악의 부모에게서 난 자식이며 미국이라는 절대적 인종차별국가에서 성장했다. 최근 들어 정체성의 혼란은 더 심해졌다. 공산 베트남은 중국에 점령당했고, 어머니의 출신지역인 산둥성은 남부 광둥-푸젠 연합에 의해 식민지 상태로 떨어졌다. 
그는 모두가 싫었다.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키고 아버지를 떠돌이로 만든 베트남, 어머니를 죽도록 고생시키고 결국은 추방해 버린 중국, 철저하게 그를 차별하여 뒷골목으로 빠질 수밖에 없도록 한 미국 모두 싫었다. 그는 복수를 하고 싶었다. 뚜렷한 대상은 없었지만 어렸을 적부터 아무에게나 분노를 폭발시켰다. 이제 그 대상은 중국이었다. 

- '한국은?'

그는 한국을 생각하자 뭔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들었다. 거대한 나라 중국에 당당히 맞서는 한국이라서가 아니었다. 뭔가 본능적인 두려움이었다. 유전자 깊숙이 새겨진 공포, 그것은 뭔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벽처럼, 특정 인종에 대한 공포였다. 
원시시대 인간이 불과 용을 무서워하고 경외하듯, 중국인의 피를 이어받은 자라면 당연히 가지는 심연의 두려움이었다. 뿔 달린 구리투구를 쓴 용맹한 어느 무신(武神)에 대한 경외감, 북쪽 하늘 너머로 엄습해 오는 공포 이것은 중국인의 피를 이어받은 자들에게 수천 년 간 이어져 온 본능적 두려움이었다. 

- '카를 구스타프...'
구스타프는 카를과 그가 지어 준 이름, 구스타프를 되뇌이다가 한 이름이 떠올랐다. 칼 구스타프 융(Karl Gustav Jung)...

 

- 10월 25일 08 : 30 서울 용산, 중앙대학교 부속병원 
"연길을 점령했단 말이죠..."
홍지영 대통령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붕대를 감고 침대에 누워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침대머리에 붙은 진료기록표에는 두개골 복합함몰골절, 좌우대퇴부 연부조직손상, 우측경골 골절, 우복막 출혈 등의 글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응급처치를 끝낸 의사들은 다른 민간인 환자들이 더 급하다며 돌아가 버렸고 그 자리를 10여 명의 군의관들이 메웠다. 경상에 그친 국무위원들은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 "예... 참의 2군 사령부에 대한 지휘권 장악에 문제 발생? 그럴 리가... 아무래도 총리가 당분간 권한대행을 계속해야겠소. 예? 양중장은 현역인데... 알겠소. 이 국방장관은 순직했으니 그 인사는 내가 추인하겠소."
홍 대통령은 허탈했다. 전쟁수행에 꼭 필요한 국무위원과 정부위원들을 모두 잃은 것이다. 국방장관, 국정원장, 행정자치부장관, 합참의장이 지금은 차디찬 시신이 되어 영안실에 누워 있었다. 그들뿐만 아니었다. 부인과 비서실, 경호실 직원 등 청와대 식구들, 개전 첫날 테러범들로부터 그를 구해주었던 93경비대대의 박철민 중령과 병사들,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시민들... 그가 지켜야 할 시민들이 100만 가까이 사망했다는 TV보도는 대통령을 전율케 했다. 
"아니오. 총리께서는 계속 대전에서 지휘하시오. 난 서울을 지키겠소. 예. 수고하시오." 

 

- "내가 무슨 염치로 국민을 뵐 수 있겠소. 국민을 지키지 못한 내가 먼저 죽었어야지." 
"아닙니다. 국민들에게는 대통령께서 다른 곳에 있지 않고 서울에 계속 계셨다는 것, 국민과 함께 하다가 역시 국민들처럼 중상을 입었다는 것, 그리고 계속 서울을 지키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리면 국민들의 사기앙양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역시 나치 선전상(宣傳) 괴벨스(Goebels)인가...'

대통령은 5공 초반기의 언론학살에 관련이 있다는 국정홍보처장을 붕대 사이로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어젯밤 비상각의에 빠진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고, 상처 하나 입지 않은 유일한 국무회의 참석자였다. 물론 공보처장은 국무위원이 아니다. 그는 아무리 보아도 싫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옳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국정홍보처장은 내각과 정부의 대변인이다. 대변인이 대통령에게 배턴을 넘겼다는 것은 뭔가 꿍꿍이속이 있다는 얘기였다. 홍 대통령은 오석천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 10월 25일 08:45 경기도 남양주 화도읍 금남리
"대통령님이래 과연 명하시구만."
이종식 차수가 와이드 TV화면에 비친 장면을 보며 감탄했다. 미라처럼 온몸이 붕대에 칭칭 감긴 사람이 침대에서 몸을 반쯤 일으키고 특유의 느릿느릿한 음성으로 담화를 발표하고 있었다. 발표에서 대통령은 이번 핵공격에서 피해를 입은 국민과 유족들에 대한 조의표명과 함께 그는 끝까지 서울에 남아 있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대통령 맞습네까? 배우 동원한 거 아닙네까?"
인민군 김병수 대장이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한국 입장에서 대통령의 유고를 감출 필요는 없다는 것이 통일참모본부 참모들의 중평이었다. 

- [우리 통일한국군은 남북한 보기관과 함께 작전을 성공시켜 중국의 핵미사일 절반을 빼돌렸습니다. 중국은 이제 핵공격력을 상실했습니다. 더 이상 중국의 핵공격이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자료화면에는 충청북도의 어느 지하비밀기지에서 핵탄두가 대형로켓에 탑재되는 광경이 비쳤다. 이 차수는 뿌듯하다는 미소를, 차영진 준장은 일본과 미국에 대한 걱정으로 우려의 표정을, 인민군 장군 복장을 한 짜르는 알 듯 모를 듯 애매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의 도발이 없으면 결코 핵보복을 하지 않을 것을 선언합니다. 중국은 즉각 우리 영토에서 물러날 것을 권고합니다.]

짤막한 긴장의 순간이 지나고 홍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다시 한번, 이번 전쟁에서 소중한 생명을 잃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다른 나라 국민 등 모든 분들께 삼가 조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이것으로 전쟁은 끝인가요?"
차영진 준장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연 끝일까? 통일참모본부에서 전군을 지휘하고 있는 모든 참모들의 의문이었다. 

 

- 자오 상위는 단 한 대의 여객기에 전투기들이 바짝 붙어 기습공격을 성공시킨 이스라엘 공군이 생각났다. 혹시 저 전자전기는 전투기로 둘러싸인 게 아닐까? 자오 상위는 고개를 저었다. 밀집대형으로 한 대인 것처럼 레이더를 속일 수는 있더라도, 실제 속도에 가까울 정도로 느리게 비행하여 전자전기로 오인시킬 수 있더라도, 전투기는 그렇게 장시간 체공할 수 없었다. 

 

- '온다!' 
중국 전자전기 님로드의 관제관 목소리는 상당히 긴장되어 있었다. 마찬가지로 자오 상위도 속으로 떨었다. 대만공격전에서 몇 번의 공중전을 거치면서 살아남은 자오 상위도 전투 전에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건 전투인 것이다.

- "일본이 지금 이 시점에서 과연 우리나라를 공격할 수 있겠습니까?"

정보분석실장 나영찬 대령이 오래된 의문을 제기했다. 갑작스런 침묵이 길게 이어지고 나서 양석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차피 지금 아니면 앞으로는 영원히 기회가 없습니다."

- "음... 아직은 중국에 집중해야겠소. 일본에 눈 돌릴 겨를이 없어요. 바로 오늘 작전을 진행해야 하니 동해함대도 움직일 수 없고..."
최 총리는 이런 소득 없는 회의는 빨리 끝내고 대통령과 통화를 하고 싶었다. 각 부서 간 전시동원체제 협조문제와 민간인 구조작업 등 할 일이 산적했다.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피스의 지원병이나 용병 구성원 중에서 러시아군과 미군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특히 전투기 조종사 대부분이 구 소련 방공군 또는 러시아 공군 출신입니다."
나영찬 대령이 또 다른 의문을 제기했다. 최 총리가 순간적으로 실룩거리고 양석민의 눈이 빛났다. 이현우 소령이 단말기에서 용병 조종사들의 이름을 죽 훑었다. 그가 자판을 몇 번 두드려 성이 -nov나 -ky, -ya, -ko 등으로 끝나는 이름을 분류했다. 조종사 중에서만 모두 38명이 검색되었다. 

- "그거야... 구 소련이 해체되면서 러시아가 병력을 크게 감축했지 않소? 악화된 경제상태가 작용했을 테고 말이요."
이재영 중장이 얼버무리려 하자 나 대령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회의 참가자 중 몇 명이 당황하는 것을 이현우 소령이 놓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은 민간조종사로 전업할 수 있었는데 왜... 만약 러시아 군부가 간접적으로 개입했다면 어떡하시겠습니까?"
"지난 61년 우리 공화국에서 소비에트 연방과 호상 원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습네다. 러시아가 기 조약을 수행하기 위한 거이 아닌지... 사실 그 조약이래 96년에 폐기됐지요."
북한의 국가보위부에서 파견근무 중인 지창준 상좌가 다소 순진한 의견을 피력했지만 이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글쎄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해군은 미국과 러시아 출신이 반반이고, 지상군, 특히 의용병은 미국인이 압도적입니다. 이 문제를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지금 우리나라에는 세계열강 4개국이 어떤 형태로든 개입되어 있습니다."
나영찬 대령이 매우 걱정스럽다는 투로 이야기했지만 최 총리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나 대령도 총리의 말이 미심쩍었지만 더 이상 이 논의를 지속시킬 수 없었다.
"대통령께 그런 말씀을 들은 적은 없지만 혹시나 그렇더라도 러시아와 미국이 우리나라를 지원하는 것이니 개의치 마시오."
나영찬 대령은 개전 초기부터 피스를 의심하고 있었다. 결국 미국과 러시아는 이 전쟁을 좌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핵강국의 하나인 중국과 직접적인 전쟁을 회피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개입했을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증거가 없었다. 

 

- 양석민 중장이 잔뜩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수화기를 내려놓더니 벌떡 일어났다. 최창식 총리가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작전 장마에 동원된 팀들 중 유일하게 둔화팀의 생존이 확인됐습니다. 그들을 구출하러 가던 헬기가 지대공미사일에 방금 격추됐답니다."
양석민이 헬멧을 쓰며 권총을 확인했다. 최 총리의 안색이 점점 하얗게 변했다. 양 중장이 비장한 각오로 말했다.
"제가 직접 가서 그들을 구해오겠습니다."
"무슨 소리요? 지금 양 장군은 국방장관이오."
최 총리가 양손을 반쯤 치켜올리다가 내렸다. 그는 양석민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늘어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 죄송합니다. 그들과의 약속입니다."
양석민이 마지막으로 보게 될지 모르는 사람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거수경례를 하자마자 뒤돌아 서서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최 총리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재영 중장이 양석민을 향해 외쳤다. 
"군인은 그런 것이오. 명령에 따라 죽고 사는 군인! 양 장군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게 아니란 말이오. 그들은 그보다 훨씬 힘든 작전에도 투입될 수 있도록 훈련받은 사람들이오." 
양석민이 우뚝 섰다가 다시 걸으며 말했다.
"그들 중에는 예비역도 있습니다. 국정원 소속이긴 하지만 행정분야비전투원도 있단 말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살았다면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성공하긴 했지만 결코 말도 안 되는 작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임무를 해냈습니다. 이제 쓸모가 없다고 버리면 안 됩니다."

 

- 10월 25일 09 : 31 (한국시간) 중국 랴오닝성 안산(鞍山) 상공
[목표 2 접근, 적색선 근접! 전기, 1-8-0으로 침로 변경, 가속 하강하라!]
자오 즈윈 상위가 푸른 하늘을 보며 넋이 빠져 있을 때 스피커가 울렸다. 아군 측 전자전기 님로드에서 보내온 목표와의 거리는 이미 40km도 되지 않았다. 미사일을 발사해도 충분한 사정거리였지만 아직 확실한 명중을 보장할 수는 없었다. 팬텀 편대도 아직 스패로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고 있었다.

자오 상위는 동료 전투기들과 함께 심한 마이너스 G를 느끼며 하강했다. 그는 전자전기에서 배당한 목표에 미사일을 조준했다. 섬-7 전투기의 낙후된 레이더에는 보이지 않지만 전자전기가 명중 여부를 판단해 줄 것이다.

 

- [적 편대 급선회! 꽁무니를 빼고 있다. 전기, 1-7-0으로 급속 추적하라!]
잔뜩 흥분된 관제사의 목소리가 헤드폰을 가득 채웠다. 우군 전투기들의 통신이 개방되면서 시끄러운 환호성이 이어졌다. 자오 상위는 스로틀을 잔뜩 열고 애프터버너를 가동시켰다. 새털구름이 칵핏 옆을 스쳐 지나가고, 자오 상위는 속이 뒤집히는 느낌을 받으며 이를 악물었다.
'자식들. 너무 늦었어!”
자오 상위는 전자전기와 연동된 레이더에 비치는 조선 공군의 궤적을 살폈다. 틀림없이 편대를 풀며 황급히 도주하는 모양이었다. 조선 공군은 이제야 이쪽이 공격기가 아니고 전투기인 것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10사단을 따라오고 있는 우군기들이 적 전자전기에 잡혔는지도 몰랐다. 
어쨌든, 잘하면 전자전기의 목표지령 없이 자체 레이더로 유도해 보다 정확하게 공격할 수 있을 것이다. 곧 Jay Bird 레이더의 식별한계인 20km에 접근하면 적외선 유도미사일로도 충분히 격추시킬 수 있는 거리였다. 거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 후퇴하는 적은 이제 반격할 기회도 없었다. 출격전 브리핑에서 조선 공군의 능동형 대공미사일인 암람은 재고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했다. 세계 무기밀매시장에서 중국과 조선이 서로 상대방이 쓰는 무기까지 쟁탈전을 벌였다. 밀매가격이 10배로 뛰어도 시장에 나온 무기는 거의 없었다. 

특히 능동형 공대공미사일은 품귀가 심해, 인민해방군 공군 정보부서에서는 조선 공군의 재고량을 이틀 분으로 추정했다. 팬텀이 암람을 발사할 수도 없거니와, 270도 발사가 가능하도록 사격통제장치를 개조했다는 보고도 없었다. 이제 안심하고 목표에 미사일을 발사하면 캐노피 아래에 한두 개의 킬마크를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하게 조선팬텀기 50기 정도가 고도를 약간 올렸다. 

 

- [적기 미사일 발사! 반능동!]
갑자기 관제관의 비명이 헤드폰을 때렸다. 자오 상위의 숨이 탁 막혔다. 자오 상위의 레이더 경보기에도 분명 전방의 팬텀에서 나오는 연속파조사 레이더의 전파가 잡혔다. 
'반능동? SAR? 그렇다면 미제 스패로?'
갑자기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자오 상위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반능동미사일은 발사한 후에도 전투기의 레이더가 계속 목표를 비춰야 한다. 미사일의 유도를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목표에 계속 접근해야 하는 방식인 것이다.  
피닉스나 암람 같은 능동형 미사일이라면 미사일 자체에 레이더가 있고 적외선유도방식은 레이더가 필요 없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지만, 중거리용 미사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반능동형 미사일을 발사한 전투기가 계속 도주하고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적기는 이탈하고 있잖아? 어떻게 된 거야? 다른 미사일 발사체가 있는 거야?]

익숙한 사단장의 목소리가 헤드폰에서 울렸지만 관제관은 묵묵부답이었다. 아마도 필사적으로 주파수를 바꾸며 보이지 않는 적을 찾는 모양이었다. 자오 상위의 레이더에 잡힌 팬텀편대는 분명 남쪽으로 도수하고 있었다. 선회하여 발사하고 다시 도주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른 적기나 지대공미사일이 아군기를 노리는 것도 결코 아니었다.  

- 그때 자오 상위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으니, 영국에서 발간된 현대항공전에 관한 책자였다. 자오 상위는 깜짝 놀랐다. 즉시 후퇴해서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후부발사다! 당장 회피행동에 들어갑시다!"
자오 상위가 외치며 기수를 돌리려 했지만 바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조종간을 잡은 손을 고정시켰다. 스패로미사일은 벌써 15km 전방에서 급속히 거리를 줄이며 접근하고 있었다.

- [미사일 발사 후에 이탈하라!]
오랜만에 같이 출격한 사단장이 침착하게 명령하자 100여 기의 섬-7형 전투기들이 2발씩의 R-27ET(나토명 AA-10 Alamo-D)를 발사했다. 사이드와인더처럼 적외선 유도방식이므로 탑재레이더의 탐지거리가 짧은 한계는 조기경보기가 극복해 주었다. 
발사기인 팬텀들이 이 미사일을 회피하기 위해 선회하면 반능동형 미사일인 스패로는 곧 유도를 잃고 제멋대로 비행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우군 전투기들이 미사일 발사를 완료하기도 전에 100여 기의 미사일이 날아왔다. 선회 중인 자오 상위는 선두의 전투기 몇 기가 공중에서 폭발하는 것을 보았다. 푸른 만주 상공에 죽음의 불꽃이 피어났다. 

 

- 자오 상위는 레이더 경보장치가 삑삑거리자 즉시 RBC(Rapid Bloom Chaff : 급속전개형 채프)를 방출하며 왼쪽 아래로 기수를 꺾었다. 1초 만에 채프의 구름은 섬-7 전투기의 레이더 반사면적보다 1.5배 정도 크기로 확산되었다. 섬광에 뒤이은 파편들이 조종석 옆을 스쳐 지나갔다.  

- 모두들 바쁜지 통신기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자오 상위가 돌아보니 아군기들은 뿔뿔이 흩어져 미사일을 회피하기 바빴다. 자오 상위도 이런 상황은 처음 겪어 보았다. 
적기가 뒤로 미사일을 발사하면 어떻게 공격한단 말인가? 적기보다 먼저 발사한다고 해도 적기는 미사일에서 멀어지고, 반대로 아군기는 적 미사일에 접근하게 되니 적기 격추 전에 아군기가 먼저 당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적기의 꼬리를 잡는 것은 결코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 다시 2차 경보가 울렸다. 도주하는 팬텀 반수가 상승하더니 또다시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다. 피할 곳도 없는 고공에서 믿을 것은 순발력뿐이었다. 9톤밖에 되지 않는 섬-7 전투기들은 급속도로 상하운동을 하며 가능한 한 북서쪽으로 도주했다. 
'팬텀들은 도주하는 것이 아냐. 단지 발사위치를 잡고 있을 뿐이야...'

자오 상위의 전투기는 천천히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기체 여러 곳에 문제가 생겼지만 컨트롤이 유지되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상처 입은 전투기지만 선양비행장에 도달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 영국 공군전술가들의 단순한 아이디어를 실전에 적용시킨 조선 공군은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전쟁 중에 후미형 레이더로 교체할 시간은 없을 것이다. 구식 전투기인 팬텀에 어쩌다 한 번 쓰는 후미형 레이더를 장착할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포드형 레이더인데, 자오 상위는 러시아제가 아닌가 의심했다. 러시아의 레이더포드에 조선의 전자기술이 가세했다면?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방어 측에게 9시 방향은 상당히 거북한 방향이다. 미그기에 맞서 선회하면 도주를 못하고 팬텀에게 옆구리를 보이게 된다. 섬-7 전투기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200여 기의 적외선 유도미사일이 중국 편대를 덮쳤다. 플래어가 만주 상공을 가득 메우고, 군데군데 섬광이 피어났다. 

 
- "그대들은 이곳 사람이 아니군. 중국인도 아니고 우린 위구르족이 아니라 하싸커(哈薩克: 카자흐인)란 말이야. 누구나 척 보면 아는데... 하긴, 저 처녀는 위구르족이지." 
정 대원을 자리에 눕히며 노인이 중국어로 투덜거렸다. 정 대원이 통역해 주자, 이은경은 그제야 이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위구르족과 공존하고 있는 카자흐족이었다. 대부분 난산무창(南山牧場)의 기름진 방목지에 정착하지만 이렇게 떠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 10월 25일 10 : 10 함경북도 나진 남동쪽 142km 해저 
"목표 침로 2-9-9, 거리 2,300, 속도 20노트."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소나병이 그래픽 처리된 화면을 보며 함장에게 보고하자 함장은 잠망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명령했다. 
"좋아. 그대로... 2, 3번과 89식 유선어뢰 장전."
"함장! 공격은 불가합니다! 아직 선전포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수병들이 놀란 얼굴로 일제히 함장을 돌아보았다. 함장 옆에 있던 부함장이 놀라 함장을 만류했지만 함장은 뜻밖에 단호했다.
"이마무라 군. 자넨 함장의 명령에 불복할 텐가? 이게 명예로운 해자(海自) 장교로서 할 짓이야?" 
"상부의 명령은 조선 해군에 도발하지 말라는..."
부함장 이마무라 삼등해좌가 우물쭈물했다.
"상부의 희망은 조선 해군력을 감축시키는 것이야! 그래서 중국이 결정적으로 패배하지 않게 하는 것이지. 장전해!" 
호통을 치는 함장 하치로 나카이 이좌(一佐)는 단호했다. 부함장이 어쩔 수 없이 함장의 명령을 전하고 인터폰에서는 어뢰반원들의 복창이 이어졌다. 함 내에 갑작스런 긴장감이 퍼져나갔다. 

 

- 함장은 다시 잠망경으로 한국 해군의 FF951, 울산급 프리깃함의 1번함인 울산함을 찬찬히 살폈다. 1979년에 제작된 함치고는 너무 구식함이었다. 울산함은 본대 합류에 늦었는지 급히 가느라 쿵쿵거리는 엔진음이 잠수함의 함체를 울렸다. 
이런 류의 한국 해군함은 예민한 예인소나를 장비하지 않는다. 즉, 함이 전진하면서 좌우로 선회하며 함수의 소나로 확인하기 전에는 후미에 대해서는 거의 무방비이다. 주변에는 조선의 다른 해군함정도 없고 대잠헬기도 물론 없었다. 잠수함으로선 절호의 기회였다. 


- 주변에 조선 해군의 초계기가 없다는 것은 이미 해상자위대 본부에서 3시간 전부터 확인해주고 있었다. 중국 잠수함이 동해 북단까지 오지 못하리라는 섣부른 판단은 지금 한국 측에 귀중한 전투함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었다. 

 

- 이때 윤준혁 대위가 나섰다. 어찌 보면 현 상황에서 가장 합당한 의견이지만, 다른 참모들은 지금은 불가능한 공중공격이나 포격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의견은 즉시 채택되었다. 
"전차대에 연락해서 벌집탄이나 산탄을 쏘게 하면 어떨까요? 어차피 포격 정밀도는 필요 없으니 장거리에서 발사해도 될 겁니다." 

- 전차가 쏠 수 있는 포탄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활강포나 강선포가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탄은 날탄(APFSDS : 날개안정분리철갑탄)과 대단(HEAT : 대전차고폭탄)이 있다. 이 두 종류의 포탄은 회전하면 안 되므로 강선포의 경우 탄에 헛도는 링을 달아 회전을 막는다. 
강선포로만 쏠 수 있는 탄으로 일반 고폭탄, 벌집탄, 산탄, 백린연막탄 등이 있다. 물론 이것들은 일반 야포로도 쏠 수 있지만 같은 구경의 포라도 포탄은 전차와 공용이 아니다. 
벌집탄(APERS)은 크레모어처럼 탄 내부에 쇠구슬이 들어 있고 거리조정신관이 부착되어 있다. 산탄(CSTR)은 벌집탄과 비슷하지만 쇠구슬 대신 작은 화살이 많이 들어 있다. 백린연막탄은 흰 인이 들어 있어서 이것이 공기와 접촉하면 연소하면서 병력을 살상한다. 

- 먼저, 두만강을 도하하고 대기 중인 M-48 전차부대에 연락해서 전차에서 다른 탄종을 빼고 대신 벌집탄과 산탄이 대량공급되었다. 이윽고 포격이 시작되었다. 개선산 정상의 포병관제관이 보내온 화상에는 목표에 명중했는지 어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눈에 띄게 중국군의 포화가 사그러들었다. 일반 포탄과 달리 이들 포탄은 목표가 공격을 받으면서도 직접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을 모르는 수가 많은 것이다. 
어떤 벌집탄은 개선산 정상에서 터졌다. 쇠구슬이 부채꼴로 퍼져 고지 정상으로 접근하던 중국군 보병들이 쓰러졌다. 보병들은 한국군의 일제사격에 의한 것인 줄 알고 그대로 몰려왔다. 
또다시 산탄이 터지고, 작은 쇠화살들이 중국군 보병 머리 위로 쏟아졌다. 포격지원을 해달라고 외치던 중국군 대대장은 병력손실이 심각해지자 후퇴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 10월 25일 11 : 00 경기도 남양주 통일참모본부
"울산함에서 연락이 끊긴 지 30분이 넘었습니다. 인민군 어뢰정의 보고에 따르면, 주변 해역에서 울산함 것으로 보이는 부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곤혹스러웠다. 보고하는 심현식 중장도 착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함장은 분명 어뢰라 했디요?"

이종식 차수는 일면 당황했고, 한편으로는 낙담까지 했다. 하필 이런 상황에서 정체 모를 적 잠수함에 의한 아군 수상함의 격침이라니.
"그렇습니다. 기뢰나 지상, 혹은 항공기에서 발사한 어뢰, 또는 미사일은 아니었습니다."

- 심 중장이 울산함이 보내온 긴급통신을 녹취한 테이프를 다시 틀까 하다가 그만두고 다시 한번 지도를 확인했다. 중앙화면에는 울산함이 침몰한 해역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가 덩그러니 떠 있었다. 육지 쪽에는 통일한국군과 중국군 지상군의 위치가 표시되었고, 각국 공군기들의 움직임이 세밀하게 표시되었다. 
1995년 러시아에서 수입된 킬로급 잠수함이 중국 해군에 있긴 하지만, 만약 중국 잠수함이 동해에 들어왔으면 일본의 소스라인에 당연히 걸리고, 일본 해상자위대의 초계기들이 하루 종일 그 잠수함 상공에 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물론 미국이나 러시아에서 그런 미친 짓을 할 리도 만무했다. 
그래서 참모들이 도저히 인정하기는 싫지만 일본의 짓인 것으로 암목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물론 아무도 그것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이 참모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 "고조~ 울산함이래 중국 해군 잠수함에 의해 침몰한 거야요. 동지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여 주기 바라요. 대신, 이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시라요."
예상대로 이종식 차수가 입을 열었다. 뉴스에는 짤막하게 울산함이 피침당했다고 보도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일본과 맞설 전력이 없었다. 절반 이상의 지상군 병력이, 그것도 통일한국군 전력의 대부분이라 할 병력은 모두 두만강 주변에 몰려 있었다. 공군이나 해군도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도리가 없었다. 더 이상 전선을 확대시킬 수 없었다. 


- "알갔습네다, 의장 동지. 울산함에 비극은 중국 짓입네다. 대잠 경계를 더욱 강화하갔습네다."
박정석 상장이 대답하며 초계기의 전용 후 서해와 남해의 대잠능력을 평가했다. 그동안 겨우 8기의 초계기를 서해와 남해에 각 4기씩 배치했으나, 이제 최소 3기를 동해로 빼내면 그만큼 중국과의 접적해역에 구멍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인민해방군 해군 소속 킬로급 잠수함은 전쟁이래 한 번도 위치가 파악되지 않았다.

 

- 10월 25일 11 : 15 평안북도 영변 
김종구 중위는 기가 막혔다. 아니, 골 때렸다. 하루아침에 해군으로 전속된 것이다. 처음 병원에서 황인호 중령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진담인 것을 확인하자 다리를 다쳐 임시로 배속되는 것이 아닌가 했다. 그러나 전 비행대대가 해군에 배속된 것을 알고 나서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모자라는 제트전투기 조종사를 헬기와 초계기밖에 없는 해군항공대로 전출시킬 리가 없었다. 게다가 해군항공대가 있는 진해나 제주도도 아니고 내륙지역, 그것도 중국과 맞닿고 있는 평안북도 영변으로 전출되자 머리가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 뭉툭한 Mi-8 헬기가 비행장에 착륙했다. 다리에 깁스를 한 김종구가 목발로 땅을 딛고 보니 여기는 정말로 말로만 듣던 영변이었다. 봄이 되면 지천으로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필 것만 같은 이곳은 분명히 영변이었다. 

 

- "저게 500호 건물이야. 북한이 핵시설이 아니라고 잡아뗀 방사화학 실험실이라고 들어 봤어?"
"윽... 그럼 그 유명한 핵물질 추출시설입니까?"
"응, 근데 저 동굴 안에 있는 것들은 뭘까? 다른 전투기들은 주기장에 있는데 전시상황에 동굴 쉘터에 처박혀 있는 전투기라... 한두 대가 아닌데?"
인솔장교를 따라가며 황 중령은 자꾸 컴컴한 동굴 쪽을 쳐다보았다. 김종구는 아무리 보아도 전투기인지 공군기지 일반 시설물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뭔가 끈끈한 인연의 끈이 황 중령과 전투기를 이어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김종구 중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스로를 인민군 제3전술사단 소속 백범수 대좌라고 밝힌 작달막한 이 사내 옆에는 러시아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김종구는 이 러시아인에게 더 관심이 갔다. 조종사들은 아무래도 한국 정부가 러시아에서 미그-29 전투기를 대량으로 수입한 모양이라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은 조종사 모두를 충격으로 몰았다. 
"이제부터 동지들은 수호이를 몰게 됩니다."
'수호이? 수호이-27 플랭커 말인가? 아니면 지상공격용 수호이-34? 설마 수호이-37? 근데 왜 해군이지?' 

- 러시아는 1994년, 중국에 수호이-27을 다수 인도하고 현지생산 계약까지 맺었다. 그러나 중국이 한국을 공격하자 위협을 느낀 러시아는 중국을 견제할 겸, 달러도 벌 겸 한국에 수호이를 판 모양이었다. 그러나 백 대좌의 한마디가 조종사들의 의표를 찔렀다. 조종사들은 의미를 깨닫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호이 중에서도 수호이-33을 몰게 됩네다."

 

- 수호이-33. 해군용 수호이-27K의 다른 이름인 함상용 전투기이다. 옥포조선소에서 소형 항모를 만들고 있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김종구가 알기에도 소형 항모에서 이런 대형 전투기가 이륙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증기사출기의 도움을 받으면 이륙이야 어떻든 할 수 있겠지만 비좁은 갑판에 착륙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벌써 항공모함의 건조가 완료될 시점이란 말인가? 조종사들의 궁금증이 더해 갔다. 

- 중국군은 처음 티베트 해방전선의 매복에 놀라 총알 피할 곳을 찾아 정신없이 뛰었다. 이들이 하늘의 위협에 미처 대처할 겨를이 없는 것이 실로 치명적이었다. 아니, 미개한 티베트에서 상공에 있는 비행체는 모두 중국군의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 패착이었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파키스탄 어느 농장에서 농약을 뿌리는 데 쓰이던 라마(Lama) 헬리콥터가, 이탈리아제 BPD SY-AT 지뢰살포기를 매달자 무서운 하늘의 학살자로 표변했다. 
3,744개나 되는 BPD SB-33 대인지뢰는 헬기 아래 매달린 운반용 탄창에서 나오자마자 충격신관이 작동해 지상에 닿은 즉시 폭발했다. 직경 88밀리미터, 무게 140그램밖에 안 되는 울퉁불퉁한 모양의 이 작은 플라스틱 지뢰는 파괴력이 의외로 강했다. 해방트럭 밑에 숨은 중국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 2km에 이르는 좁은 계곡은 잠시 후 불타오르는 해방트럭 잔해와 중국군 시체로 가득 찼다. 이들은 단 한 명도 계곡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확인사살조가 계곡을 타고 내려가 울부짖는 부상병들을 사살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타시 구르메가 며칠 동안 감지 않아 기름기가 끈적이는 머릿결을 뒤로 쓸어 넘겼다. 
"1개 대대 병력으로 적 1개 연대 완전 소탕이라... 제기랄, 세계 전사(戰史)에 길이길이 남겠군."

 

- 하지만 이름이 그런 걸 어떡하란 말야. Herr Sottel. schwa(액센트가 없는 모음이 약화되어 모호하게 발음되는 현상. 영어에서 september가 섭템버로 Korea가 커리어로 발음되는 것 등이 그 예이다)는 영어보다는 독일어에서 특히 철저히 적용된다. 부기장 놈은 끝까지 조텔이라고 불렀지만 독일어 명사에서 2음절 엑센트라니. 실제 발음이 좆털인 걸 왜 바꿔? 

 

- "그건 스스로를 속이는 짓입니다."
"아니, 난 감정에 솔직하다네. 여자를 시험대상이나 도구로 생각하지도 않고 나 스스로를 억지로 속이지도 않는다네. 어떤 여자든 사랑할만한 구석이 있다고 말한 돈환의 말에 찬성하는 것도 아냐. 그거야말로 자기기만이니까."
휴식을 마친 조종사들이 오후 교육을 위해 입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도 황당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취향이나 사랑하는 이유야 사람마다 다양하겠지만, 나는 사랑이라는 아주 중요한 감정을 갖고 장난치지는 않았어. 수단으로 삼지도 않았고."
"그럼 황 중령님은 왜 그리 많은 여자들을 사귀십니까?"
"난 솔직하다네. 여자를 만나면 맨 처음에 내가 유부남이란 걸 밝혀. 속인다고 속지도 않겠지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여자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그 여자들이 장난으로, 또는 호기심으로 나를 대하지 않는 것을 잘 알아. 그녀들처럼 나도 항상 진지해 자네가 웃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녀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네." 
"황 중령님만 믿고 사는 여자들은 없어요? 그들의 사랑을 배반하시는 게 아닙니까?"
"사랑이란 고통이 아니라 서로를 성숙시키는 거라고 믿어. 그리고 누가 그러더군. 서로 사랑할 시간도 부족한데 남을 미워할 시간이 어딨냐고..."
"난봉꾼의 변명치고는 그럴듯하군요."
"자네도..."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피식 웃었다. 오후 일과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 10월 25일 13:00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 
차영진이 부대 밖에서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상황실로 들어와 보니 참모들 대부분이 의자에 길게 늘어져 있었다. 잠깐씩 잠을 자긴 했지만 일주일째 쌓인 피로를 극복할 수 없었다. 
벽에 걸린 200인치 멀티비전에서는 TV방송이 한창이었다. 역시 서울 피폭 이야기가 머리 뉴스였다.
우주인 같은 방사능 방호복을 입은 기자는 광화문 네거리에 서 있었다. 아니, 광화문 네거리가 있던 자리라고 기자가 보도했다. 붕괴된 교보빌딩과 세종문화회관이 보이고, 멀리 시커멓게 그슬린 북악산이 보였다. 그 앞에 있던 광화문은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 [모든 것이 파괴되고 불탔습니다. 하지만 광화문 네거리에 있던 이순신 장군 동상과 이 작은 거북선은 무너지거나 부서지지 않았습니다. 핵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는 거의 기적이라고 합니다. 성웅 이순신 장군께서는 하늘에서도 우리 민족을 보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충무공의 호국정신을 이어받아 기필코 이번 전쟁에서 침략자 중국을 몰아내고...]

 

- "저런 사기를..."
뜻밖의 소리에 참모들이 문 쪽을 돌아보았다. 차영진 준장이 TV뉴스를 보며 흥분하는 모습이었다. 이종식 차수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흠... 이유가 뭐기요, 차 동지?"
"폭심이 청와대라면... 충무공 동상은 청와대에서 1마일 이내에 있습니다. 10킬로톤급의 핵이 폭발했을 경우 폭심에서 반경 0.5마일 이내의 모든 물질이 기화하고 1마일 이내의 모든 지상구조물이 파괴됩니다." 
 
- "폭심에서 1마일 이내에 있는 것은 모두 파괴됩니다. 압력 17psi, 풍속 290mph... 사람처럼 부드러운 물체는 생존 가능성이라도 있습니다. 참고로 폭심 반경 1마일 이내에서 사망률은 90%에 달합니다. 물론 즉사하지 않더라도 방사능에 의해 고통받다 대부분 곧 죽습니다만. 그러나 동상처럼 단단한 물체는 여지없이 부서집니다. 어느 기관인지는 몰라도 충무공의 승리 신화를 정치선전에 이용하려고 사기 치는 게 분명합니다." 
차영진은 혐의가 가는 기관의 리스트를 뽑았다. 국가정보원, 국군기무사령부와 정보사령부의 후신인 정보사단,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정홍보처였다. 그는 퍼뜩 국정홍보처장 오석천의 성향이 기억났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이었다. 오죽하면 과거 정치에 개입하던 국가정보원 대신 국정홍보처가 국내 정치를 도맡았다는 말이 나돌까? 
 
-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지수 대장이었다. 정 대장이 핵폭발 시 거리별 피해 정도를 나타내는 표를 원탁 왼쪽의 보조화면에 띄웠다. 10킬로톤급 핵이 폭발했을 경우 차영진의 말은 분명 사실이었다. 그러나 정 대장이 조건을 붙였다.

"그것은 미국의 핵폭발 실험자료입니다만, 이 핵실험에서 폭발은 분명 1,980피트 상공이었습니다. 이번과 같은 지상폭발은 다릅니다. 그리고 이번에 폭발한 것은 아마도 20킬로톤급일 겁니다. 동풍2호에 장착된 탄두는 대개 20킬로톤이거든요."
정 대장이 반박했지만 핵의 파괴력이 적다는 것은 아니었다. 차영진이 보충설명했다.
"물론 지상폭발일 경우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범위는 줄어듭니다. 그러나 지상폭발의 경우 그 충격이 지상에 훨씬 강하게 미칩니다. 지진효과를 감안할 경우 무너지지 않는 것이 이상합니다."

 

- 잠시 뉴스를 본 이 차수가 힘없이 웃었다.
"기럴 듯한 신화야. 이순신 장군이래 살아 있는 거야요. 우린 고조 모르는 척하고 있습세다. 생각이래 있갔디요."

 

- 10월 25일 13 : 15 중국 지린성 둔화 
"가 소좌님!"
수류탄 두 개가 굴러와 지휘석 아래 공간에서 연속 폭발했다. 오른쪽 구멍에서 중국군 세 명이 뛰어들어오자 백창흠이 한 발에 한 명씩 보냈다. 의외로 기분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삶을 포기해서일까? 68식 자동소총의 반동이 의외로 강하게 느껴졌다. 
"조국은 우릴 버렸습니다. 잊어버렸을 수도... 만약 살아 돌아간다면 그 거짓말쟁이 양 중장의 모가지를 비틀어 버리고 싶군요. 꼭 구원팀을 보내 주겠다고 큰소리치더니 소식도 없네요."

 

- 잠시 총격이 잦아들었다. 적은 다시 재정비해 쳐들어올 것이다. 이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찾아왔다. 실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기럼 동무는 참말 아군이 구출하러 올 줄 알았나?"
"그런 건 아니지만요... 하하! 허탈해서 그렇습니다."
"기래도 작전이래 성공해서리 다행이다. 암, 다행이다. 이제 전쟁은 곧 끝날 기야. 핵 몇 발을 쐈으니끼니 이미 끝났을지도 모르다. 우리가 쏜 미사일이 어드레 떨어졌는디 몰갔다만, 우린 조국을 구한 거야." 
가 소좌가 같은 말을 계속 반복했다. 그의 무거워진 눈까풀이 끔벅거렸다. 백창흠이 보기에 그는 너무 힘들게 느껴졌다. 그가 오래지 않아 죽으면, 무척 외로울 것이다. 
"그래야죠. 우린 죽고... 항복하더라도 중국군들이 내버려 두질 않을 겁니다. 결국, 우린 소모품이었어요."
"소모품? 길티... 길티만 우리 특수요원들에 숙명이디 않았서?"

백창흠은 자신이 예비역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주장하고 싶었지만, 국가의 녹을 먹는 어엿한 공무원이었다. 허울 좋은 국가정보원 국제국요원.

 

- 사실 전쟁 전까지 그가 하던 일은 국가에서 키우는 산업스파이에 불과했다.

한국기업과 경쟁관계에 있는 외국회사의 기밀을 빼내 한국기업과 국가정보원에 넘기는 일이 그의 전문이었다. 유령회사를 차린 다음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어 경쟁사 관리자의 아이디를 유인한 후, 그 아이디를 다운시킨 사이에 경쟁사 컴퓨터 자료를 해킹하는 것이 특기였다. 
게임전문가니 주식투자니 하는 것은 단순한 위장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게 더 재미있었다. 전쟁이 나기 직전, 미처 완성하지 못한 그 게임을 마치면 완전히 체계가 다른 게임을 만들기로 했었다. 그러나 이젠 모든 것이 틀렸다. 

 

- 그때 통로 저쪽에서 자동소총 연사음이 길게 울렸다. 비명과 총성이 시끄럽게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 폭발음이 두 번 짧게 울렸다.
"구원팀 가 소좌님! 구원부대가 왔습니다!"
"..."
"틀림없다니까요!"
백창흠 중위가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정말 온다던 구원팀이 온 것이다. 약속을 지킨 것이다. 가 소좌의 상태를 보니 아직은 괜찮아 보였다. 빨리 치료만 받는다면 살아서 돌아가 전쟁영웅 칭호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가 소좌의 인상이 점점 일그러졌다. 
"동무! 속디 말라우. 뎌건 술수야!"
백 중위의 등골이 싸늘하게 식으며 총구를 다시 돌렸다. 가 소좌의 우려는 충분히 있을 만했다. 도대체 여기에 구원팀이 올 리가 없었다.

"동무들~ 거기 누구누구 있지? 구원팀이래 왔슴!"
함경도 사투리가 들리자 가 소좌와 백 중위의 눈이 마주쳤다. 가 소좌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동무, 속디 말라우. 연변에 조선족 동포들이 많은 거 알디?"

"..."

- "구원팀이래 왔다니끼니... 와 대답이 엄서?"
다른 목소리로 평안도 사투리가 들려왔다. 백 중위는 심하게 떨렸다. 살고 싶었다. 혹시 들이 아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창흠이 참지 못하고 외쳤다.
"암구어!"
"무지개!"
"맞잖아요!"
백 중위가 가 소좌를 바라보았다. 가경식 소좌가 희미하게 웃었다. 백창흠 중위는 스스로가 너무 순진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구원팀이래 당한 기야."
가 소좌의 말이 맞았다. 구원팀이 왔더라도 그 많은 중국군을 모두 처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부상당한 동지가 고문에 못 이겨 자백했으리라. 강인한 요원들이 암호를 말하지 않더라도 자백제를 쓰는 경우 어쩔 수 없을 것이다.

- "거기 가경식 소좌 있나? 우리가 간다. 쏘지 마라!”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오자 가 소좌와 백창흠의 눈이 마주쳤다.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기다려! 확인해야겠다. 거기 책임자 누군가?"
백창흠이 바깥을 향해 외치자 좀 전과는 달리 서울 말씨가 들렸다.

"이번 작전의 총책임자인 양석민 중장이다. 난 국정원 강 과장이야. 거기 백 중위지? 자네, 내 목소리 알잖아?"
"정말이요? 젠장, 빌어먹을! 왜 이제야 온 거요?"
백창흠은 양 중장이 이곳에 직접 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지만 화는 풀리지 않았다.

 

- "알겠다. 잠시 기다려라. 내가 들어가겠다."
강 과장과는 다른 목소리가 나고, 강 과장이 당황해 외쳤다.
"쏘지 마라! 그분은 국방장관이시다!"
"쓰펄! 국방장관이든 대통령이든 무슨 상관이야."
양 중장, 이제는 국방장관이 된 양석민이 구멍을 통해 기어 들어왔다. 흰색 설상복에 흰색 헬멧을 쓴 양석민이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분노한 백창흠이 양석민에게 총을 겨누고 벌벌 떨며 일어섰다.
"왜 이제야 온 거요. 왜... 조금만 빨리 왔으면 다들 살았을 텐데..."
"백 동무... 그만하기요."
가 소좌가 간신히 몸을 움직여 백 중위의 다리를 움켜잡았다.
"미안하다. 첫 번째 구원팀이 적기에게 격추되고 두 번째 팀은 대공미사일에 맞았다. 그보다 먼저 가 소좌를 치료해야겠네."
"제기랄... 빌어먹을.. 근데 당신 정말 양 중장 맞소? 그리고... 내가 열받아서 당신을 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 안 해봤소?"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먼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귀관 맘대로 해라. 늦었지만 난 약속을 지켰다. 귀관이 그런 행동을 하더라도 나는 후회 안 한다. 안타깝게도 자네들은 이번 장마작전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유일한 생존자들이다. 첫 번째 질문은... 백 중위가 판단해라."
양석민이 헬멧을 벗고 고개를 숙였다. 소갈머리가 없었다. 양석민이 틀림없었다. 출발 전 브리핑 때 그의 대머리를 보고 여러 요원들이 키들거린 적이 있었다. 겉모습은 아주 젊어 보였지만 머리카락은 많이 빠져 있었다.
백 중위가 바닥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그동안 너무 무서웠다.

 

- 하픈을 발사하기 전에 목표에 대한 정확한 위치파악은 일반적으로 레이더나 공격용 능동소나로 한다. 그러나 그럴 경우 이쪽의 경제와 위치가 쉽게 폭로되어 손쉬운 공격목표가 될 수 있다. 

- 함장은 잠시 고민했다. 그에게 목표에 대한 위치 파악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중국이 보유한 킬로급 잠수함은 아직 잠수함 발사 미사일을 장착하지 않는다. 하픈을 발사하면 틀림없이 일본 잠수함인 것이 들통날 것이다. 아직은 일본 잠수함이라는 비밀을 지켜야 했지만 함장은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중국 킬로급 잠수함이 동해에 진입할 정도로 항행능력이 충분하고 잠수함발사 미사일을 탑재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일본이 잡아뗄 수가 있고, 최악의 경우라도 일본이 참전할 구실이 될 수 있었다. 함장은 후자 쪽에 비중을 뒀다. 

- "하픈, 목표 데이터 입력."
함장이 명령을 내리자 이마무라 삼등해좌는 위험한 장난감을 가진 어린애 생각이 났다. 함장은 실제로 무기를 써보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였다. 어뢰발사관에 하이 장전되고 쉬익~ 하는 주수음이 함체를 울렸다. 
이마무라는 명분 없는 전투가 싫었다. 만약 함이 격침된다면 누구에게 하소연한단 말인가? 일본 정부는 유족에게 와카시오함은 일본 해역 부근에서 사고로 침몰했다고 거짓말을 할 것이다. 

 

- 갑작스런 고주파 액티브 소나음에 놀란 소나병과 일부 승무원들의 머리카락이 곤두셨다. 함장은 직감적으로 발신지가 매우 가까운 거리임을 알고 소나담당장교를 재촉했다. 
"2-7-5, 거리 2,700! 심도...!"
당황한 소나병이 데이터를 읽었다.
"뭐야? 수상함이 아냐?"
하치로 이등해좌가 놀라 소나실 쪽으로 뛰어갔다. ZQR-1 예인소나에 기록된 음원(音源)은 분명 수중에서, 그것도 하루시오급 잠수함은 엄두도 못 내는 깊은 수심에서 나는 음이었다.
"심도 600미터! 엄청난 잠수함입니다!"
"빌어먹을! 러시아 핵잠이 경고하는군. 알파급인가?"

- 러시아 원자력잠수함이 왜 이 해역에 나타났는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린 하치로 이좌는 갑작스런 상황변화에 속으로는 떨고 있었다. 해상자위대 고위장성들의 생각은 일치하고 있었다. 조선정벌이었다. 어차피 지금밖에 기회가 없었다. 이를 위해서는 사전에 조선 해군의 함정을 최대한 줄여 놓을 필요가 있었다.
중국은 일본 군부의 기대를 별로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런데 러시아가, 경제파탄으로 엉망이 된 러시아가 뭐 먹을 게 없을까 하고 나선 것이다. 하치로 이좌가 분노했다. 

 

- 함장 하치로 나카이 이좌가 짜증을 냈다. 러시아 잠수함이 본함에 적대적인 행동을 취한 이상, 통상형 잠수함으로서 이쪽의 위치를 알고 있는 원자력 잠수함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러시아 함선과 교전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미국보다는 못하지만 일본으로서는 상대할 수 없는 핵강국인 러시아에 시비를 걸 자위대 잠수함은 없었다. 물론 그 정도 심도에서 어뢰를 발사할 잠수함은 없다. 압축공기를 지나치게 많이 소모하기 때문에 잠수함이 부상하기조차 어려울 수가 있다. 

 

- "새로운 어뢰입니다! 01-0! 목표 1이 확인됐습니다. 경주함이 아니라 진주함입니다!" 
소나병이 다시 경고를 발했다. 함장이 진주함이라는 말을 듣고 놀랐다. 한국형 코르벳함 경주함과 진주함은 같은 현대조선소에서 건조되었다. 상부구조물과 탑재병장이 약간 차이가 있지만 엔진이나 디자인 등 두 함은 거의 모든 것이 똑같았다. 소나병이 진주함을 경주함으로 착각한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단, 차이점이 있다면 진주함은 대잠수함 전용이다. 거리가 멀다면 사정거리가 긴 하픈으로 공격하고 피하면 되지만, 지금은 진주함과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와카시오가 정신없이 어뢰를 피하는 사이에 진주함이 접근하여 어뢰를 발사한 것이다. 게다가 진주함은 러시아 핵잠수함의 액티브 소나에 의해 와카시오의 위치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침로 18-0, 전진 전속! 제기랄! 로스케놈은 조선 해군이 우릴 공격하도록 유도한 거야!"

- 이 방송을 못 본 모양이라고 생각한 차영진이 설명했다. 
"이 상태에서 만주를 우리 땅이라고 하면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중국이 죽자 사자 싸울 건 눈에 뻔히 보이지 않습니까? 또 핵미사일이 날아올 텐데요?" 
참모들은 말이 없었다. 어쩌면 이 공연은 통일참모본부에서 사전에 승인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었다. 차영진이 다시 주장했다.
"이번 공연을 주도한 국정홍보처장에게 항의하고 공연에 협조한 지휘관들을 문책해야 합니다. 국민을 호도하여 전쟁을 지속시키려는 불순세력의..." 
"이봐요, 차 준장!"
차영진이 돌아보니 정지수 대장이었다. 잔뜩 신경질이 나 있었다.
"만주가 우리 땅이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 아뇨. 그리고, 중국이 나진하고 선봉을 점령하고 내놓지 않는 마당에 우리가 만주를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면 어떻소? 나는 차라리 지금 상태에서 휴전이 되어 국경이 고착되면 좋겠소."
놀란 차영진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다물선양회라는 이름이 그에게는 아주 크게, 그리고 무섭게 다가왔다. 

 

- 10월 25일 14 : 40 (베이징 표준시) 티베트 라싸 남쪽 5km
"눈이 옵니다, 타시 구르메."
티베트 해방전선의 지도자, 소남 툰두프가 스스로를 티베트인이라고 주장하는 젊은 아시아인에게 공손히 보고했다. 타시 구르메가 라싸 주변의 전술지도를 살피다가 고개를 들었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에 회색빛 조각구름이 점점이 흐르고 있었다.
"중국군 본대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방향으로 오는 모양입니다. 멍청이들은 아닐 테니까요."
"시가체(르카쩌)에서 라싸로 향하는 제대로 된 길은 이곳밖에 없습니다, 타시 구르메. 강 쪽은 진창이라 오기 힘듭니다만, 걱정되신다면 정찰병을 더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강이라... 그쪽은 진흙탕이지만 땅이 얼어서 대부대가 기동 하기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을 것이오. 우리가 매복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지만 중국군에게도 라싸가 먼저요. 그쪽을 강화하는 편이 좋겠소." 
타시 구르메가 멀리 살얼음이 반쯤 덮인 야루짱부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게릴라전에서는 본거지가 있어야 한다. 티베트 같은 고원지대에서 대병력이 숨을 곳이 도시 외에는 없다. 그리고 중국 국공내전의 모택동처럼 광대한 영토를 이용하여 공간을 내주고 시간을 버는 전략을 구사할 수도 없었다. 현재 인구밀집지역인 라싸가 해방구가 된 지금, 그들은 라싸를 지켜야 했다. 
 
- 그는 라싸의 티베트인들에게 판첸 라마의 현신으로 통했다. 아무래도 톈진 테트론 총리의 심리팀이나 칼 첸의 티베트정보망(TIN)이 라싸에서 공작을 벌인 모양이었다. 이제 싫더라도 졸지에 관세음보살 대접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며 타시 구르메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장갑찹니다!" 
툰두프가 외친 후에 무전기가 울렸다. 장갑차 10여 대를 앞세운 1개 연대 병력의 중국군이 이쪽 계곡으로 몰려온다는 소식이었다.

"1개 연대라고요? 그럴 리가..."
놀란 타시 구르메가 짤막한 명령 몇 개를 내리고 서둘러 병력의 절반을 빼내 강 쪽으로 뛰었다. 기관총 소리가 계곡에서 길게 울려 퍼졌다.

- 10월 25일 16:05 함경북도 회령 제봉(542고지) 
김재호 대장은 장갑지휘차 내부에 깔린 전자상황판을 노려보고 있었다. 흑룡강성에 있던 중국군의 진격속도는 의외로 빨랐다. 잘못하면 나진과 선봉의 중국군을 양분하기도 전에 먼저 배후를 공격당할 수 있었다. 5군의 진행방향을 살피던 윤준혁 대위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북쪽으로 움직이던 푸른 화살표가 그 순간 갑자기 서쪽으로 꺾였다. 
"5군으로 북쪽을 막는 게 아니었습니까?"
"응!?" 


- 김 대장은 다른 사람들에게 별로 말해주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윤 대위가 얼핏 고개를 돌려 최영섭 중위와 눈이 마주쳤다. 최 중위가 윤대위의 자리 쪽으로 눈짓을 했다. 아까 사령관이 쪽지를 최 중위에게 넘겼는데 그것이 5군에 내린 명령서였던 모양이다. 어쩐지 아까부터 최중위가 자꾸 눈치를 주는 게 이상했다. 
"부관을 이토록 무시하시다니... 흑흑. 저는 게임이나 하렵니다."

윤 대위가 장갑지휘차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잠시 훌쩍대더니 전술 컴퓨터에 노트북 컴퓨터를 연결시켰다. 그러나 통신 내역을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노출시킬 수밖에 없으며, 통신 내용은 암호체계가 거의 완벽해서 그의 능력으로는 해킹할 수도 없었다. 이럴 경우에 대비해서 최영섭 중위와 약속한 것이 게임 네트웍에서의 정보교환이었다. 
 
- 윤준혁 대위가 화면을 다운시키고 가상현실 게임용 고글과 헤드셋을 썼다. 드넓은 만주벌판에 점점이 고인돌이 퍼져 있는 입체화면이 나타났다. 저 멀리 피라미드 모양을 한 거대한 석제 고분 옆에 고구려군 막사가 다가왔다. 
[치우천황님, 어서 오십시오. 23장의 시간이 도착했사옵니다.]
윤준혁이 직접 CG작업을 해서 만든 여덟 명의 시녀, 팔선녀가 그를 반갑게 맞았다. 익숙한 솜씨로 손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무선게임기를 조작하자 반바지를 입은 근육질의 우편배달부가 달려와 종을 두 번 울리더니 편지 뭉치를 건네주었다.
게임 내 메일이 하루 사이에 꽤 많이 쌓여 있었다. 제목을 대충 훑어보니 서울 피폭이 게임매니아들을 상당히 놀라게 한 모양이었다.

 - 난청치 중위가 시체 무더기 속에서 위 중위를 찾았다. 위생병이 위중위의 허벅지를 압박붕대로 싸매는데, 기가 막히게도 그는 웃고 있었다. 선두에 서고도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의 웃음이었다. 
이제 2소대 차례였다. 멀리 뒤에서 연대장이 수신호를 하는 것이 보였다. 난 중위의 눈에는 연대장이 사형집행인처럼 보였다. 2소대가 있던 곳에 한차례 소란이 일어나자 중대장이 나섰다. 중대장이 뭐라고 소리치자 병사들이 2소대장 쉬엔(소위를 꿇어앉혔다. 중대장이 권총을 꺼낸 것과 동시에 그를 향해 발사했다. 쉬엔 소위가 앞으로 거꾸러졌다. 잠시 적막이 감돌았다. 
중대장이 권총을 흔들며 뭐라고 하자 선임분대장인 군사장이 나섰다. 군사장은 덜덜 떨고 있었다. 조만간 그의 모습이 될 것이라며 난 중위가 한숨지었다. 포복은 소용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사단장의 재촉이 심해 가능하면 빨리 라싸에 진입해야 했다.
중대장이 재촉하자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마지못해 그 군사장이 소대를 인솔하고 나섰다.

- '체 게바라 전술이다!'
난청치 중위가 치를 떨었다. 병력이 열세인 게릴라들이 쓰는 전법 중에서, 선두에 서면 무조건 죽는다는 사실을 적에게 각인시키는 심리전이다. 쿠바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가 쓴 전술인데, 공격 측에서는 방법이 없다. 라씨를 점령할 때까지 선두에 선 아군은 죽는 것밖에 도리가 없었다. 운이 좋으면 위 중위처럼 중상을 입고 살 수도 있지만 그건 정말로 운이 좋은 경우였다. 

- 그리고 라싸까지의 길 십 몇 km가 이렇게 멀 줄은 생각도 못했다. 좁디좁은 강변길 매 200미터 정도마다 중국군의 피로 씻으며 나아가고 있었다. 이제 겨우 12km 정도 전진했다. 약 60명의 소총소대 소대장이 전사했다는 계산이다. 처음에는 분대병력을 내보내 봤지만 200미터를 전진하는 사이에 모두 저격당했다. 

- "뭔가? 왜 예비군이 투입되었나 하는 거 말인가?"
"예. 물론 경무장이고 고지방어전에 적합한 편성이라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그들은 현역이 아닙니다. 전투력도 떨어지고... 그들이 부양해야 할 가족도 있고..."
하 중위는 어느 월남전 영화에서 본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부대장이 대부분 귀국을 눈앞에 둔 소대병력을 월맹군에게 미끼로 내던졌다. 소대원들은 몰려오는 월맹군에 맞서 밤새도록 처절하게 싸웠고, 아군 포병대가 포위된 소대 주둔지에 맹포격을 가했다. 
전투가 끝난 아침, 헬기를 타고 온 부대장이 시체로 뒤덮인 참호를 둘러보면서 하는 말.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뒀다... 전쟁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나도 몰랐네. 그런 중요한 작전에 예비군병력이 투입된 줄 몰랐어. 알았으면 진작 바꿨지."
윤준혁 대위가 김 대장이 말하는 모습을 잠깐 보다가 시선을 창 밖으로 돌렸다. 눈발이 점점이 흩날리고 있었다.
하인철 중위는 임종석 병장이 생각났다. 한 시간만 버텼으면 살아서 가족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움이 일었다.

- 모두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정신없이 싸웠다. 그 누구도 전우를 위해서, 또는 조국을 위해서 싸운 것은 아니었다.  

 

- 중국에 사는 대부분 조선족에게 한국은 단지 잘 사는 이웃나라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한국은 원수의 나라이다. 
할아버지는 6.25때 미군의 폭격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10년 전에 서울에서 약장사를 하시다가 사기를 당해 빈털터리로 돌아오셨는데, 결국 이듬해 화병으로 돌아가셨다. 게다가 누이는 한국 농촌 노총각에게 시집갔다가 일이 너무 힘들어서 도시로 도망쳤다고 한다. 아는 사람도 없는 도시로 떠난 조선족 이혼녀의 생활은 묻지 않아도 뻔했다. 
그에게 있어서 한국은, 그의 조선말 식 표현을 빌자면, 좆같은 놈들의 개좆 같은 나라였다. 여기저기서 돈을 물 쓰듯 뿌리며 으스대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볼 때마다 그는 배알이 꼴렸다. 기회만 있으면 모두 쳐 죽이고 싶었는데, 이번 전쟁이 좋은 기회였는데, 3야전사가 예비로 돌려지는 바람에 그럴 기회를 놓쳤다. 
지금은... 너무 늦었다. 멍청한 정치국원들이 조선족 출신인 그를 두려워하여 3야를 예비로 최악의 경우에 중국을 방어할 예비부대로 돌린 때문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 10월 25일 19 : 30 (베이징 표준시)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
"... 저녁놀이 곱디 않소?"
"네..."
서쪽 평원이 붉게 물들며 해가 지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우유차를 마시고 있는 정호근 대원과 땔감을 나르던 이은경 대원이 넋을 잃고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카자흐인 의사가 파오에서 나오며 외쳤다.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 신은 최고의 예술가이시지." 
정 대원이 분노에 찬 표정으로 카자흐 노인을 노려보았다. 이 대원이 정 대원의 어깨에 손을 올려 진정시켰다.
"자네 다리는 이미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네. 어쩔 수 없었지. 인샬라(신의 뜻대로)."
"전사는 죽을지언정 스스로의 다리로 땅을 디뎌야 합니다. 이런 상태로 내가 어찌 인민을 지키는 전사라고 할 수 있겠소? 의사 선생."
정 대원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중국어로 외쳤다. 정 대원은 그의 다리를 볼 때마다 화가 치솟았다. 무릎 바로 위에서부터 뭉텅 잘려진 그의 다리는 지금 차가운 자갈밭 속에 파묻혀 있었다. 

 

- "빌어먹을 인샬라!"
정 대원이 하늘을 향해 저주를 퍼붓자 카자흐인이 고개를 저으며 파오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남반부 괴뢰도당은... 아니, 실수요. 미안하외다. 남한 정부는 신체장애인에 대한 지원을 거의 하디 않는다고 들었소. 이런 상태로 남반부 주도하에 통일이 되면 내래 하층민을 면티 못 하겠소."
정 대원은 경제적 풍요함은 자본주의가 낫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능력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그래도 사회주의가 낫다고 생각했다. 그는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했다. 목발을 짚고 힘들게 계단을 오르는 그의 미래 모습을 떠올렸다. 실로 끔찍한 일이었다.
"아녀요. 국가유공자는 보훈처에서 연금도 주고 직장도 알선해 줘요."
"후후.. 남반부에서는 상이군인에게 최저임금도 안 되는 푼돈을 주는 걸 내 아오. 직장도 천대받는 경비직이나 주고설라무네... 아무튼 국가를 위해 싸우다 다치더라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사회주의에 비해 무척 처지는 거이 확실하오."
"그건 사실일 거예요"

이은경이 정 대원의 분노를 느꼈는지 동감을 표했다. 정 대원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 주체전술에 따라 청진에 설치된 육해공 합동상황실에서 나와 풍산에서 지상군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그에게 백사봉은 악마의 산이었다. 지금까지 이곳에서는 인민군과 중국군, 외국 용병과 지원병으로 구성된 피스 부대까지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었다. 오늘은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죽게 될지 걱정되었다. 
그는 피해가 얼마가 나든 이 차수의 전술을 따라야 했다. 사실 동부전선 최고의 천연요새인 백사봉은 목표가 아니었다. 지형이 험하고 중국군이 밀집한 백사봉은 단지 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불과했다. 그동안의 공격은 적의 주력을 이곳에 묶어두기 위한 양동작전에 불과했다. 
통일한국군 1군에게 있어서 남쪽의 어명산(1,031 고지)이 전략적 목표였고, 적시에 점령하는 것이 중요했다. 어명산을 점령하면 바로 밑의 어석산(866고지) 점령은 식은 죽 먹기고, 그렇게 되면 나진의 이진동으로 통하는 길이 열리며 바다가 보이게 된다. 

- 이 작전이 성공하면 한국군은 청진 쪽으로 펼쳐진 중국군 방어선을 배후에서 공격하고, 인민해방군 100만 병력을 좁은 나진과 선봉에 가둘 수 있다. 지금도 백사봉 주변의 중국군 14개 사단은 2군에 의해 배후를 차단당한 채 묶여 있었다. 

- 배중혁 대장이 참모장과 함께 망원경으로 어명산의 비탈길을 살폈다. 예광탄과 포탄이 밤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불타는 차량들이 골짜기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 멀리 보였다.

- 10월 25일 21:45 경기도 남양주시 통일참모본부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왜 5군이 선양 쪽으로 가고 있습니까?"
피스 연락관 짜르가 탁자에 투사된 지도를 가리키며 펄펄 뛰었다. 참모들이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어느 누구 하나 나서지 못했다. 아까부터 뭔가를 기다리는 듯 초초한 표정이던 정지수 대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휘 상장이 이끄는 중국군은 너무 강력합니다. 잘못하면 2군이 포위될 것이오. 5군의 이동은 아까 사전에 보고가 올라왔듯이 그들을 견제하기 위한 기만작전이니 염려 마시오."
"속도가 갑자기 너무 빨라지지 않았소? 정말로 한국이 베이징을 공격하는 것 아니오? 당신들은 이제 침략자가 되었소. 그렇다면 우리 피스 부대를 당장 한국에서 빼내야겠소! 우린 전쟁을 막고 침략자를 격퇴하기 위해서는 당신들을 상대로 싸울 수도 있단 말이오!"
짜르의 언성과 달리 통역관 인한수 중위는 느긋하게 통역했다. 그래도 참모들은 짜르가 매우 분개했음을 알 수 있었다. 정지수 대장이 나서서 그를 다독거렸지만 짜르의 화를 돋우기만 했다. 

 

- "전쟁에서 기만행동이야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나진과 선봉에 중국군 제1야전사가 섬멸되면 중국이 강화를 요청하고 전쟁은 완전 끝날 텐데 왜 북경을 공격하겠소?" 
"나를 무시하는 거요? 나는 소비에트연방의 군사정보 담당자였소. 화력이 약하다고는 하지만 5군이 3야전사를 상대로 지연전을 펼치면 1군과 2군이 충분히 1야전사를 섬멸할 수 있었소. 나는 전부터 5군이 고휘군 정면에 있지 않고 서쪽에 치우쳐 있어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소. 5군을 지휘하고 있는 2군 사령관이 미친 것 아니오?" 
그는 KGB, 지금은 연방안전국(FSB)이 된 국가정보기관에서 근무한 경력을 별로 내세우고 싶지 않았다. 소속원이야 엘리트 의식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뿌듯하겠지만 정보기관원을 보는 외부의 눈은 항상 차갑게 마련이었다. 

- 그를 호출한 이유를 미리 알고 있었는지 고휘 상장이 미리 쐐기를 박았다. 창 상장이 무슨 말을 할지 뻔하지 않은가? 그러나 베이징을 방어하기 위해 병력을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국군 5군에 대한 추격전이 성공하여 무사히 베이징을 방어한다손 치더라도 그가 지휘하는 3야만으로 조선군 3개 군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게다가 창 상장 스스로도 이를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막을 병력이 없소."
이것은 전략상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선택의 문제였다. 창 상장과 고휘 상장은 결론은 미뤄둔 채 상대를 떠보고 있었다.

- 창 상장의 말을 듣던 고휘 상장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세계 핵강국들의 정보부에서는 이미 중국의 패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중국이 이기고 있다면 결코 그런 엄포를 놓지 않을 것이다. 하긴, 각국 정부와 그 주재국의 중국대사관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핵시위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략무기인 핵폭탄을 쓸데없이 전술목표에 소모했다는 것이 고휘 상장의 생각이었다. 피스 함대와 서울에 대한 핵공격은 전략적 성과도 없이 세계 각국이 중국에게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맹방인 파키스탄마저 중국의 운명을 아는지 매몰차게 등을 돌린 것이다. 

- [동지들께서도 아시다시피, 우리 병력을 서진시키면 승리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1야를 구출해서 그들에게 행동의 자유를 부여해야 합니다. 병력면에서는 그리 불리하지 않으니 우리가 승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지금 1야를 구하지 않으면 야뿐만 아니라 저희 3야도 각개격파될 게 뻔합니다.]
"그럼 날더러 어떡하란 말이오? 우리 군사위원들까지 총을 들고나가 싸우다 죽을까요?" 
'동지는 무엇을 바라는 거요?'
고휘 상장의 표정은 창 상장에게 이런 말을 하는 듯했다. 고휘 상장의 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고 상장의 결론은 단호했다.

[베이징을 포기하십시오.]

 

- [자존심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차피 조선 국경과 베이징은 너무 가깝습니다. 선택을 잘못했습니다. 조선은 중국에 있는 대부분의 성(省)과 자치구보다 가깝습니다. 우리 역사상 수도가 북쪽에 있다가 북방 기마민족에게 멸망한 예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지방에 있는 보병을 집결시키기도 전에 수도는 이미 함락된 경우 말입니다. 
제게 시간을 좀 주십시오. 충분히 적을 무찌를 수 있습니다. 베이징은 나중에 수복하면 됩니다. 공간을 이용해 적 병력을 흡수하는 것이 인민전쟁의 요체 아닙니까?] 

 

- "알겠소. 이제 그만 전쟁을 끝낼까 하오. 어차피 시작부터 잘못된 전쟁이었소."
드디어 고 상장이 기다리던 대답이 나왔다. 한국군이 베이징으로 향하면 그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통일한국군 5군이 지연전으로 응수한다면 어떻게 해볼 수는 있었다. 아마도 1야가 전멸당하거나 항복하는 동안 그의 3야가 한국군 5군과 현재 지연전에 나서고 있는 2군의 일부병력을 패퇴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3야와 2군의 1대 1 결전이 남게 되고, 기동력과 화력이 우세한 3야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군 지도부의 어떤 미친놈이, 수십 발의 전술핵을 뒤집어쓸 위험에도 불구하고 5군에게 계속 서진을 명령했다. 이 상황에서 중국이 핵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패배뿐이었다. 
고휘 상장이 선글라스를 벗고 고개를 들어 바른 자세를 취했다. 고상장의 눈빛이 군사위원들에게 강하게 쏘아졌다. 최대한 예의를 갖췄지만 그 특유의 비꼬는 말투는 숨길 수 없었다. 
[아주 불리한 협상이 되겠습니다. 아마도 조선은 조선반도를 점령 중인 1야를 내버려 두고 협상에 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100만이 넘는 포로를 안고 종전협상이라... 외교부장께서 꽤나 곤혹스러우시겠습니다.]
"내가 직접 조선에 가겠소."
고 상장과 동시에 군사위원들도 모두 놀랐다. 창 상장의 굳게 다문 입술은 전투에 임한 어떤 지휘관의 표정보다 결연했다. 조국을 전화에서 구하기 위해 그가 겪을 치욕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 [그럼 상호 적대행위는 종식해야겠습니다.]
"아니오."
창 상장이 오른쪽 벽의 전략지도를 보았다. 1야가 점령하고 있던 조선땅이 한참 줄어들어 있었고, 반대로 조선군이 점령한 만주땅은 갈수록 서쪽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남쪽으로 내려오는 3야는 거의 속도를 내지 못했다. 그 땅따먹기 게임은 이미 역전된 지 오래였다. 창 상장이 중앙화면을 보니 고 상장도 지도를 보는지 눈길 아래로 뭔가를 조작하고 있었다.
"아니오! 회복할 수 있는 한 한 치라도 회복하시오. 동지가 빠른 시간 내에 가능하다고 판단한 적정선까지 점령한 다음 내게 연락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동지. 그럼 일단 작전은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별 의미 없겠지만...]

 

- "중국군은 현재 전 전선에 걸쳐 모든 적대행위를 종식했습니다. 대통령께서 공격중지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알겠소. 최 총리와 상의해 보겠소. 그런데... 왜 갑자기 5군이 베이징으로 향했지요? 공격계획에 없던 일인데."
오 처장의 눈이 잠시 빛났다. 그에게서 뭔가 자랑스런, 또는 뿌듯한 느낌과 약간의 아쉬움이 전해졌다.
"김재호 대장이 암살당하기 직전에 5군에 서진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통령님! 그들과의 종전회담에 임할 때 간도반환을 강력하게 요구하십시오. 원래 우리 땅인 건 각하께서도 아시잖습니까?"
"그래도 지금은 남의 영토인데 어찌..."
"중국은 티베트를 점령할 때나 남사군도와 조어도 등 다른 영유권분쟁에 접할 때도 수백 년 전의 점유사실을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고조선이나 고구려, 발해의 땅임을 내세워 만주를 돌려 달라는 게 아닙니다. 간도는 겨우 100년도 안 된 20세기 초, 금세기 들어서 일본 때문에 빼앗긴 땅입니다." 
오석천 처장이 대통령의 대답을 기다렸다. 대통령의 대답에 따라 어떤 행동이 이어질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흠... 검토해 보도록 하겠소. 장관은 일단 총리를 중심으로 재정경제부장관, 외통부장관, 국방장관 등에게 연락해서 종전위원회를 구성하시오."

 

- 10월 25일 22:55 중국 옌지(연길) 북쪽 14km 
정지수 대장은 통일한국군 제2군 사령부로 가는 헬기에서 휴전소식을 들었다. 정보사단의 이현우는 이번 전쟁에 관한 세계 각국의 입장을 드러내는 정보를 취합하느라 바빴다. 
김준태와 구성회는 비밀자료를 분류하고 있었고, 서승원의 잠수함은 보급을 마치고 출항 직후에 종전소식을 듣고 다시 남포항으로 돌아갔다. 기종전환훈련을 하던 전투기 조종사 김종구와 황인호, 조장호 등은 영변의 지하격납고에서 동료들과 함께 샴페인을 터뜨렸다. 

- 이은경과 정호근 대원은 낙타를 타고 사막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향했다. 이은경의 허리를 잡은 정호근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핵기지를 탈환하려는 중국군에 맞서 끝까지 저항하던 신승주 대위는 큰 부상을 입고 생포됐다. 그를 다루던 중국군들이 갑자기 당황하는 기색으로 미루어 신승주는 전쟁에 뭔가 큰 변화가 있음을 직감했다. 

- 김수경은 아직도 환자들을 돌보느라 바빴다. 그녀는 이재민이란 중환자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게 놀라웠다. 예비군 김의화는 여수 오동도 절벽가 해안초소에서 볼락을 낚고 있었다. 그러나 감성돔은 좀처럼 낚이지 않았다. 

 

- 저격수 구스타프는 아직도 자금성의 천장에 갇혀 있으면서 호시탐탐 탈출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동안 거의 잠을 자지 못한 통일참모본부의 참모들은 각자 자기 방으로 들어가 늘어지게 자고 있었고, 서열이 가장 낮은 차영진만이 남아 투덜거리며 당직을 섰다.

 

- 윤준혁과 최영섭은 2군 헌병대에게 호출받고 혜산으로 출두했다. 가는 길에 윤준혁은 컴컴한 만주의 하늘을 자꾸 뒤돌아보았다. 전쟁을 끝내고 만주를 돌려받기 위해서는 김재호 대장을 사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안중근 의사처럼 테러리스트가 아닌 확신범이라며 하늘을 우러렀다. 김재호 대장은 다만 희생자였을 뿐이었다. 
5군이 서진을 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더 길게 끌었을지도 모르며,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윤준혁은 내심 불안했다. 

- 홍지영 대통령과 몇몇 국무위원들은 중국 주석 일행을 맞기 위해 김포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 있었다. 북부강변도로를 지나며 보이는 무너진 도시외곽고속도로의 잔해가 흉물스럽게 느껴졌다. 아직도 붕대를 풀지 않아 미라 같은 홍지영은 중국 주석과의 만남에서 불법침략에 대한 배상으로 금전적 배상 외에 무엇을 요구할까 고민했다.
오석천 국정홍보처장 주장대로 연변 일대의 만주 땅 일부를 돌려달라고 하면 그쪽 반응은 어떨까? 분명 부정적이겠지만 이쪽이 강하게 나가면 혹시 잃은 땅을 조금이라도 찾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동지나해와 황해로 표기된 바다 이름을 남해와 서해로 바꾸라고 해야지... 그는 스스로를 어린아이 같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는 중요한 문제였다.

 

- 중국 군사위원회 주석단 일행은 서울로 가는 민항기에 타고 있었는데, 쓸데없는 오해를 살까 봐 호위기는 붙이지 않았다. 창 상장은 앞으로의 일이 더 큰일이라며 걱정이 태산 같았다. 1야전사의 차오양 중장은 병력손실이 너무 크다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3야전사의 고휘상장은 장갑지휘차 안에서 느긋하게 마오타이주를 즐겼다. 

- 미국 대통령 커티스는 국무장관 호블랜드로부터 이번 전쟁기간 중 판매된 무기액수에 대한 보고를 받으며 웃고 있었다. 앞으로 일본에 판매할 무기는 훨씬 많았다. 커티스는 곧 다가올 선거에서 재선이 확실하다며 즐거워했다.

- 일본 통합막료회의 고마쓰 미도리 육장은 이번 전쟁에서 얻은 게 없다며 땅을 치며 훗날을 기약했다.

 

- 라싸의 티베트 사람들은 독립을 축하하며 축제를 벌였고, 타시 구르메는 울고 있는 빠르 바티가 보는 앞에서 짐을 꾸렸다. 

- 통일한국과 중국의 전쟁은 양국 간에 큰 피해를 남기고 이렇게 끝났다. 핵무기를 사용한 데 대해 국제적인 비난이 있었지만, 세계인들은 더 이상 핵무기가 사용되지 않은 데에 안도했다.

- 그동안 전쟁으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은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전쟁의 끝이 아니었다. 통일한국을 질시하는 주변국들이나 다른 나라의 불행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국가들이 아직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 "젠장..."
편지를 다 읽은 차영진은 투덜거렸다.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편지 내용은 어디선가 몇 번 들어본 적이 있는 노랫말과 유사했다. 아마 한일석 대령이 악마 같은 중독성을 가진 노래라고 하던 바로 그 노래일 것이다. 더 깊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노랫말을 약간 바꾼 게 틀림없었다. 
PC를 켠 다음 음악프로그램을 열어 레너드 코헨의 'the famous blue raincoat'라는 곡을 플레이시켰다. 몇 번 반복해서 가사를 듣던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가사는 뒤로 갈수록 편지와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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