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양지아링]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은 버리기로 했다

일루젼 2022. 5. 30.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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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양지아링 / 허유영

원제 : 我決定, 生活裡只留下對的人 
출판 : 심플라이프 
출간 : 2019.11.30 


       

약간씩이지만 정리한 것이 티가 나는 공간들이 늘어가고 있다. 서랍을 열다보면 정말 10년도 넘은 기념품, 악세사리들이 나오곤 해서 깜짝깜짝 놀랐다. 무심코 넣어둔 채로 긴 시간 동안 보관하고 있었던 것들을 정리하는 일은 일종의 무의식 청소와 가까웠다. 더는 사용하지 않을 물건들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활용처를 찾은 것들을 맞아들이며 이전보다 일상에 들이는 품이 늘었다. 신기하게도, 생각보다 기분이 좋다. 

 

저자는 삶에서 정리해야 할 것은 물건 뿐이 아니라고 말한다. 저장만 되어있을 뿐 연락하지 않는 번호-관계들, 부담과 압박을 느끼지만 '어쩔 수 없지'라는 마음으로 내 옆에 두고 있는 건강하지 못한 거리의 관계들을 새롭게 살피고 정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타인의 시선, 어린 시절 학습된 가치관들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관계성을 추구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가장 중심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고 두려워하는 것들을 두어야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마찰과 고통이 따를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 관계가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면 이 시점에서 끊어지더라도 서로를 위한 선택을 내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가족이더라도 말이다. 

 

또한 저자는 새로운 관계로 변화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두렵다면, 기존 관계에서 내가 얻고 있는 이득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바뀔 수 없는 이유를 대는 이들은 사실 관계를 정리할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현재에 안주하면서 내 입맛대로 모든 것이 변화해주길 바라는 것이 아닌가 날카롭게 꼬집는다. -그런 방법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나는 본문 중에서 자신이 내린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제대로 독립한 성인이라는 저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바꿔 말한다면, 책임질 수 있다면 자신의 선택을 밀고 나갈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로도 들린다. 

 

매일 더 좋아지는 일상들이 되기를.       

 


   

 

- 나는 오랫동안 심리상담과 소통 교육을 해오면서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은 사람을 많이 만났고, 그들이 상처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자신의 표현 방식을 깨달아 소통 능력을 키우도록 이끌고, 성장기를 회상해 감정적인 에너지를 분출하게 했다. 인생 경험을 긍정적으로 재해석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그 밑바탕에는 한 가지 가설이 깔려 있었다.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어떤 기교가 부족하거나 감정의 응어리를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과 상호작용하기 혹은 관계 맺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원인을 찾아내 보완하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다. 다시 말해 당사자의 노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 많은 사람이 이런 생각에 동조하고 환호를 보냈다. 자립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이 사회는 각자의 문제는 스스로 책임지길 바란다. 문제가 생겼다는 건 개인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므로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내공을 갈고닦는다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어딘가에 그 해결방법이 있는 것일까? 

 

- 인간관계에 틈이 생겼을 때 그걸 회복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은 없을까? 관계로 인해 상처받는 이유는 우리가 그 관계에 너무 집착하기 때문은 아닐까? 관계란 두 사람의 일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그저 상대에게서 심리적 만족감을 얻고 싶어 할 뿐인 건 아닐까? 어느 한쪽이든 움직이지 않으면 그 관계에서는 행복을 얻을 수 없다.

 

-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데 어째서 관계를 놓지 못하는 걸까? 자신을 아끼고 스스로 너무 많은 부담을 떠안지 않는 것은 용감하게 문제를 돌파하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 가구 정리, 물건 정리에 관한 책들이 서점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물건을 버림으로써 불필요한 짐을 떨쳐내고 홀가분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물리적 공간 말고 우리 내면의 심리적 공간을 가볍게 하는 방법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있는가? 그 속에 몇 명이나 들어갈 수 있을까? 그들이 나의 심리적 공간을 어떻게, 얼마나 차지하고 있을까? 그중 남겨두어야 할 사람은 누구이고, 떠나보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 한 번은 어떤 기관과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 담당자의 오만한 태도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했다. 그와 연락하는 날이면 번번이 화가 나서 퇴근 후에 집에 가서도 계속 그 일을 떠올리며 화를 냈다. 어느 날 저녁 심란한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진공청소기를 들고 바닥을 청소했다. 먼지를 빨아들이다 갑자기 아주 중요한 생각이 떠올랐다. 집 안을 깨끗하게 하려고 이렇게 열심히 청소하고 불필요한 물건을 사지 않으려 애쓰면서 정작 내게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이 내 심리적 공간에 들어와 쌓이는 건 내버려 두고 있지 않은가? 

- 관계도 집과 같아서 정기적으로 대청소가 필요하다. 나는 정기적으로 청소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온갖 잡다한 관계를 머릿속에 쌓아놓고 있었다. 좋은 관계와 나쁜 관계가 뒤죽박죽 뒤엉켜 좋은 관계마저 금세 더러워지고 파묻혀버렸다. 그날 이후 나는 관계도 정기적으로 정리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관계의 넝쿨이 어지럽게 뻗어나가도록 내버려 두면 내가 짊어져야 하는 부담과 고통만 더욱 커질 뿐이다. 

- 심리적인 공간도 물리적인 공간처럼 정리해야 한다. 그저 버리기 아깝다는 이유만으로 쓸모없는 물건을 꽉 붙들고 놓지 않으면 에너지가 과거에 집중되어 현재를 아름답게 하는 데 사용할 수 없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시 이어 붙일 수 없는 관계를 놓지 못하고 상대의 마음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건 훗날의 행복을 바라며 현재를 낭비하는 행위다.

 

- 매년 음력설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집 안에 쌓아놓은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고 새로운 행운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집 안의 기운이 잘 흐르도록 말끔히 청소해 행운이 들어오길 바란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처럼 불안하고 찜찜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심리적인 공간도 정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심리적인 공간도 물리적인 공간과 마찬가지로 이미 식어버린 관계, 감정이 올가미가 되어 나를 옴짝달싹 못 하게 옭아매는 관계를 떨쳐내고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공간을 비워놓아야 한다. 
 
- 양쪽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을수록 적극적인 흥정이 가능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거나 상대의 요구를 거절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상대가 고의로 자신을 골탕 먹이려 하거나 자기 요구를 거절하는 것이 아님을 두 사람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상대의 기대를 무한정 충족시켜줄 필요 없고, 상대에게 자기 의견에 맞추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양쪽 모두 만족하는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 심리학자들은 이런 입장 차이를 '타인의 기대'(부모)와 윈팅의 '자기 정체성(self-identification)'의 차이로 해석한다. '자기 정체성'이란 내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즉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대한 타인의 생각과 스스로 만족감이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조건 및 기준을 의미한다. 

 

- <겉으로만 가까운 관계(假性關係)>라는 책의 저자 스슈숭은 "고통스러운 관계에서 도망치는 것은 악어에게 다리를 물린 것과 같다. 다리를 포기하겠다는 결심이 없으면 목숨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극단적인 비유 같지만 동양 문화권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충고다. 인간관계가 너무 많은 것을 제약하는 사회에서 자란 우리들은 타인의 기대를 내면화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억누른 채 남들이 간 길을 따라가기 쉽다. 학교를 졸업한 뒤 사회에 나가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등 남들과 똑같은 척 살아가며 그 속에서 안정감과 귀속감을 얻는다. 하지만 타인이 만족하는 인생이 반드시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인생인 것은 아니다. 

 

- 지금까지 우리가 받은 교육은 관계를 맺는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졌을 뿐 관계를 끊고 포기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억울하고 서러운 마음에 남몰래 울음을 삼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고통을 유발하기만 하는 관계를 잘라내고 옳은 답을 찾아야만 자신이 바라는 관계를 맺고 스트레스뿐인 인간관계에 고통받지 않을 수 있다. 사사키 후미오는 자신의 책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에서 일과 감정이 슬럼프에 빠졌을 때 물건을 버림으로써 인생의 의미를 되찾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했다. 집 안에 극히 최소한의 물건만 남기고 텅텅 비우다시피 했지만 그는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다. 

 

- 자신들이 이미 성인으로서 스스로 원하는 생활을 선택할 능력이 있음을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부모님의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인생에 대한 만족감은 자기 삶의 무게를 타인에게 지우지 않고 모든 책임을 스스로 감당할 때 누릴 수 있다. 타인에게 의존할수록 자유는 점점 줄어든다. 아무런 대가 없이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관계란 세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독립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며 싸워서 얻어내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만 남에게 존중받을 수 있다. 인간관계를 잘라낼 권력을 갖고,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면 스스로 충분한 능력을 가져야 한다.   

 

- 자신을 소모시키기만 하는 사람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가장 흔한 이유는 '죄악감'이다. 죄악감 때문에 차마 인연을 끊거나 상대와 거리를 두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남의 요구를 거절하는 건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성장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부모나 선생님, 중요한 사람이 죄악감을 주입함으로써 감정을 조종해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려 한 결과다.  

 

- 물론 악의를 가지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하는 말이지만 아이는 자신이 말을 듣지 않으면 어른이 상처를 받고 자기는 나쁜 아이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어른을 기쁘게 하기 위해 또는 자신이 착한 아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걸 포기하고 어른이 원하는 대로 따른다. 사실 그런 논리라면 세상에 착한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아이를 독립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게 하고 자기 주관을 억누른 채 타인이 원하는 대로 반응하게 만든다. 아이들은 원하는걸 스스로 포기하는 게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스러운 마음조차 가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 한번 죄악감이 주입된 사람들은 "당신은 더 나은 대우를 받을 가치가 있어요. 당신에겐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 권리가 있어요." "당신이 바로 당신 인생의 감독이에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영화를 만들 수 있어요"라고 아무리 말해줘도 그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배신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죄악감이 성립하려면 우선 이 말속에 담긴 가치판단 기준과 게임의 룰을 받아들여야 한다. 예컨대 보수적인 전통문화에서는 자식을 낳지 않는 걸 가족의 단결과 조화를 깨뜨리는 행위로 규정한다. 만약 이 논리를 받아들인 여자가 어떤 이유로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경우(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그녀는 심한 죄악감에 시달릴 뿐 아니라 남들에게 배척당하거나 처벌받을까 봐 두려워하게 된다. 하지만 출산을 여자의 유일한 존재 가치로 여기지 않는 문화권에서 자란 여자들은 아이 낳기를 거부하더라도 죄악감을 느끼지 않는다. 


- 다시 말하면 사람에게 죄악감을 느끼게 하는 건 어떤 일 자체가 아니며 그 사람이 어떤 관점이나 논리를 인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똑같은 일이라도 어떤 사회 혹은 환경에 사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은 죄악감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애초에 그것이 죄악감을 느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부모에게 이유를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고, 부모가 자신을 위해 많은 걸 희생했으므로 부모와의 관계를 내려놓고 자기 인생을 사는 것은 죄를 짓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남들의 비난이 두렵다면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라. 이것이 정말로 관심과 사랑 때문인지 아니면 또 다른 도피인지, 부모와 자식 모두 지금 단계에서 극복해야 할 고비를 용감하게 마주하지 않고 도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희생하고 소유하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다. 필요하다면 손을 놓을 수도 있다. 그것이 양쪽 모두 더 완전한 사람이 되는 방법이다. 

 

- 모든 변화에는 시행착오가 따르고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충돌은 불가피하다.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과 거리를 두려고 하면 상대는 거절당했다는 불쾌감에 화를 내며 당신을 나무랄 수도 있고, 조롱하며 더 멀리할 수도 있다. 그러면 당신은 자신이 잘못한 건 아닌지 고민하고, 혹시 보복이나 따돌림을 당하는 건 아닌지 두려울 것이다. 그런 두려움 때문에 상대의 마음을 풀어주고 순종하거나 굴복해 예전 방식으로 돌아간다면 상대는 그 방법으로 당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고 관계는 점점 더 기울어질 것이다. 

 

- 유일한 방법은 자기 입장을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다.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그의 선택이며, 우리는 그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 관계에 새로운 소통 방식이 생긴다. 그것 외에는 그 어떤 방법도 상대를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는 수단일 뿐이다. 

 

-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입장을 분명하게 말하는 것. 딱 그것뿐이다.

 

- 정리란 어떻게 보면 관계의 재정립을 넘어 자아에 대한 개념을 다시 세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관계를 조금씩 조정하면서 자기 생각을 분명히 말하고, 바깥세상에 대한 의존을 줄이며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습관을 줄여가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자아와 타인의 감정을 구분하는 법을 배우고 더는 남의 감정을 자신의 책임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다시 말해 상대가 기분 나빠하는 게 자신의 '잘못'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정리의 과정에서 아무리 조심하고 아무리 완곡하게 표현해도 상대는 불쾌할 수 있다. 그건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상대도 자기감정과 실망감을 스스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 당신이 상대의 반응에 너무 연연 하면 당신은 자기 위치를 벗어나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 영국의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한 사람이 맺을 수 있는 사교 관계의 최대치가 150명이라는 유명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던바의 수(Dunbar's Number)'라고 불리는 이 이론에 따르면 아주 가까워질 수 있는 친구는 150명 가운데 다섯 명밖에 되지 않는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인 1990년대에 실시한 연구 결과지만 최근에 진행된 비슷한 연구에서도 이를 크게 넘지 않는 숫자가 나왔다(페이스북 사용자의 평균 친구 수가 155명이라고 한다). 또한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네 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 실질적으로 무의미해진 관계 또는 스치듯 만난 관계들을 정리하고 조정해야만 유지할 가치가 있는 관계에 집중하며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바쁘게 산다고 해서 반드시 삶에 충실한 것은 아니다. 나에게 행복감과 편안함을 주는 관계를 골라낼 수 있다면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매몰찬 거절이나 냉정함이 아니고 끊지 못하는 미련이 다정함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두려움'과 '습관'은 더 나은 변화를 시도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 다시 말해 우리를 힘들게 하는 신념 혹은 작은 목소리를 찾아낸 뒤, 직접적으로 그걸 없애거나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신념이 존재하는 필요성을 분석하고 그것이 어떤 욕구를 만족시켜주는지 알아내야 한다. 

 

-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선입견을 떨쳐버린 뒤 자신이 갖고 있는 관념들을 차분히 적어가며 분석한다면 습관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깨닫고 변화의 포인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 정리에는 원치 않는 물건을 버리는 것뿐만 아니라 집착을 내려놓으면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포함된다. 다음의 네 단계 방법이 당신을 짓누르고 있는 제약과 신념을 잘라버리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1단계: 스트레스의 원인을 찾아라.
2단계: 스트레스의 원인을 버리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을 때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파악하라.
3단계: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라.
4단계 : 새로운 관점에서 새롭게 쓰는 법을 배우라.

 

- 관계는 기복이 있기 마련이다. 더는 나아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면 걸음을 멈추고 서로에게 변화를 강요하지 않으며 현재의 모습을 받아들인 채 잘 이별하는 것이 성숙한 모습이다. 누구 없인 절대로 안 되는 건 이 세상에 없다. 자신에게 관계를 수립할 능력이 있음을 믿는다면 누가 떠나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 나의 삶에 부담과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정리의 기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생을 솔직하게 마주할 용기와 결심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어떤 관계에 의지하는 건 대부분 외로울까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이 함께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이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보다 훨씬 더 시리고 아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두려움은 사람을 통제하고 공포는 사람을 아무렇지 않은 척 위장하게 만든다. 관계를 유지하는 이유가 정말로 좋아서인가, 아니면 채워지지 않은 결핍 때문인가? 이 질문의 답은 각자에게 맡기겠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답할 때 마음에 작은 거리낌이라도 생긴다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닐 수 있으나 이 관계를 떠났을 때 다가올 도전이 두렵기 때문에 쉽게 정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 진정한 용기란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에게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자신이 내린 선택에 의문을 갖고 그 선택을 수정하는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한 책임을 스스로 짊어질 때 진정으로 성숙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 원래 그녀는 남에게 인정받으려면 양보하고 순종하고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필요한 기대와 관심을 정리하고 난 뒤에는 자기 위치를 정확히 찾았다. 그녀는 회사에서 가장 순발력 있고 아이디어가 풍부한 직원은 아니었지만 안정감과 꼼꼼함으로 사장의 신임을 얻었다. 이건 그녀가 원래 가지고 있던 장점이 충분히 발휘된 것이었므로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바꿀 필요가 없었다. 슈잉은 일에서 진정한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꼈다. 업무의 경계가 명확했기 때문에 퇴근 후 슈잉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배우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균형 잡힌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늦은 저녁을 허겁지겁 먹을 필요도, 배고픔을 참을 필요도 없었으므로 몸이 더 건강해졌다.

 

- 슈잉은 예전에 자신이 '과거에 대한 미련'과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전자는 그녀가 '사장님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했는데 당연히 도와드려야지' '이렇게 오래 알던 사이인데 뭘 그렇게 따져'라고 생각한 일들이었다. 이런 생각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무리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후자는 '이직하면 더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을까?' '시댁에서 분가하면 생활비가 더 많이 들 텐데 이대로 사는 게 낫지 않아?'라며 지금 얻고 있는 것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 그녀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건 하나도 없었다. 

- 과거 물자가 부족한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느 것 하나 쉽게 버리지 못했지만, 현대 인류는 새롭고 신선한 것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버리고 새로운 것을 산다. 양쪽 모두 극단적이지만 이것도 최악의 상황은 아니다. 제일 비참한 일은 버려야 하는 걸 버리지 못한 채 붙들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남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중요한 건 물건 자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정확히 인식하고 삶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미니멀리즘에 관한 책이 점점 많아지면서 우리에게 물건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라고 권하고 있다. 

- 하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아직 가능한 많이 쌓아놓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인맥에 관한 책 가운데 90퍼센트 이상이 인맥을 쌓고 회복하고 유지하는 법을 알려준다. 관계를 끊으라고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책은 거의 없다. 그것이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남에게 받아들여지고 어딘가에 소속되길 바란다. 잘라내는 것은 외로움과 분리를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관계에 금이 가면 보완하고 더 단단하게 이어 붙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야만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칭찬받는다. 20세기에 근검절약을 숭상했던 것처럼 말이다.  

 

- 하지만 스마트폰이 시시각각 새로운 교제 수단을 선사하는 오늘날에는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과거의 관념을 그대로 적용해도 될까? 이것은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며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관계에서 벗어나라고 조언하면 대부분 미간을 찡그리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관계에서 떠나야만 나 자신이 남을 수 있단 말인가? 과감하게 잘라내야만 자신과 맞는 사람이 나타난단 말인가? 

- 전작 <거절 잘해도 좋은 사람입니다>가 출간된 후 나를 찾아와 남들에게 상처받는다고 푸념하는 독자가 많았다. 그런데 경계를 긋는 연습을 하라고 충고하면 그들은 '하지만...' '그래도...'라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책에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거나 내 주장에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집필하면서 그 이유를 찾았다. 그들은 경계를 그을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긋기 전과 후를 비교한 뒤 기존의 관계 속에 남을 때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같으로만 이해할 수 없거나 인정하지 않는 척하며 계속 푸념했던 것이다. 원망할 사람이 없는 편이 더 괴로우니까 말이다. 경계를 긋지 않으면 자기 삶에 대한 주도권은 줄어들지만 더 많이 도움받고 보호반을 수 있다. 반대로 용감하게 잘라내면 기댈 곳이 없어지지만 더 많은 가능성과 공간을 얻을 수 있다. 

- 어느 쪽이 자신에게 더 유리한지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자신을 위한 결정을 내릴 때 오롯이 독립적인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다. 세상에 가장 좋은 선택은 없다. 중요한 건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느냐이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실패와 상처가 두려워서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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