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슈테판 클라인]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 - 그 모든 우연이 모여 오늘이 탄생했다

일루젼 2024. 5. 8.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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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슈테판 클라인 / 유영미
출판 : 포레스트북스
출간 : 2023.02.22


       

           

'우연'과 '운명'을 과학의 관점에서 해석한 책이다.

읽기 쉽고 편하게 쓰여진 점이 장점이지만, 강렬한 제목만큼의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저자는 법칙과 규칙을 찾고자 하는 뇌의 습성을 통해 우리가 흔히 운명적이라 부르는 놀라운 연결부터 일상적으로 익숙해져 버린 연결까지, 인과관계와 상관관계 및 단순한 우연을 설명해 나간다. 그에 따르면 완벽하게 논리 정연할 것 같은 수학과 물리, 컴퓨터에게도 언제나 '우연'은 존재한다. '현재'는 수많은 우연들이 모여 탄생한 또 하나의 거대한 우연으로, 아마도 결코 재연될 수 없을 단 하나의 상태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연'을 그저 '우연'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약간의 빈틈을 스스로에게 허락해야 한다. 그것을 다른 무언가와 연결 짓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그런 자의적인 연결로 인해 자신의 삶과 선택이 얼마나 큰 영향을 받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해서 '우연'의 가능성과 영향력을 인정하는 겸손을 갖추고 살아갈 때, 우리는 '운명'이라 부르던 미심쩍은 굴레를 벗어나게 될 것이다. 

 

-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다른 저서들에서도 많이 언급된 실험 및 사례들을 제시했다는 점이 오히려 신선했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최대한 독자들에게 친숙한 사례들을 가져오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같은 내용을 근거로 얼마나 다양한 주장이 나올 수 있는가?'라는 호기심이 생겼다. 이 책 또한 사례와 주장 간에 '인과관계'는 성립하기 어려운 것이다. 재미있는 아이러니 아닌가? 

 

흥미롭게 읽었다.    

   


   

 

- 집행관들은 외할아버지 집으로 들이닥쳐 가구마다 딱지를 붙였다. 파산을 맞은 가족들은 가난에 시달리는 형편이 되었다. 그 바람에 당시 대학생이었던 그 집의 큰딸, 나의 어머니는 뮌헨에 유급 조교 자리를 얻어 집을 떠났다. 그때 어떤 사람이 어머니에게 하늘색 폭스바겐을 몰고 다니는 젊은 화학자를 소개해주었다. 그 남자 역시 직장이 있는 뮌헨과 고향인 인스브루크를 일주일에 한 번씩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의 차를 얻어 타고 다니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남자는 금요일마다 그녀를 티롤의 집까지 태워다 주었고 일요일이면 다시 함께 차를 타고 뮌헨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둘은 별다른 감정 없이 수년간 카풀 상대로 지냈다. 그러다가 어느 아름다운 가을의 일요일, 전날 밤 축제에서 늦게 돌아온 어머니는 늦잠을 자고 말았다. 친구들은 모두 약속했던 산행을 떠나버린 후였다. 바깥은 화창하여 눈이 부셨다. 따분해진 어머니는 문득 폭스바겐을 모는 화학자를 떠올렸고 그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날씨도 좋은데 오늘 함께 보내지 않을래요?" 화학자는 좋다고 했고 1년 후 둘은 결혼했다. 

- 나는 가끔 이런 일들 중 하나가 다르게 진행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자동차 판매상이 큰아버지에게 자동차를 한대만 팔았더라면, 외할아버지의 통장에 돈이 제때 입금이 되어 직조기 회사가 부도를 면했더라면, 1963년 그 가을날 알프스 산맥에 구름이 끼어 흐렸더라면 지금의 나는 존재했을까? 정말로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런 사소한 일들이 모여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일까? 

- 이런 질문은 매혹적인 동시에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철학자 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도 이런 감정을 맛보았던 듯하다. 그는 "인류를 지배하는 독재자가 둘 있는데 그중 하나는 우연"이라고 말했다(다른 하나는 시간이라고 했다). 자연과학자들 역시 자연이 얼마나 상상과 다른지 깨달을 때마다 우주의 카오스 앞에서 경악하곤 했다. 프랑스 분자생물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자크 모노는 1970년 인간을 "자연이 주관한 복권에 당첨되었으나 결국은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묘사했다.

- "인간은 희망과 고통과 범죄에 무심하고, 자신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우주의 가장자리에 놓인 집시와 같은 존재다.”

- 최근 몇 년 사이에 학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예측할 수 없는 현상에 몰두하여 우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발전시켰다.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수학자들은 엄격한 규칙이 지배하는 수학에서도 우연이 끼어든다는 것을 증명했고, 물리학자들은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어떻게 발생하며, 어째서 우리는 거기서 빠져나갈 수 없는지 연구하고 있다. 또 진화생물학자들은 인간의 존재 자체가 우연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며, 심리학자들은 인성이 어떻게 발달할 것인지와 어떤 배우자를 택할지는 예측할 수 없다고 본다. 그리고 뇌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은 그럼에도 우리가 우연을 왜 그리도 받아들이기 힘든지, 그리고 운명이라 불리는 즉 '더 높은 계획'에 대한 믿음이 왜 이토록 우리 안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지를 규명한다. 

- 우연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강력하다. 우연에 관한 연구는 크게는 우주나 생명의 탄생에 관한 연구처럼 학문의 커다란 수수께끼를 밝혀내는 작업이며, 작게는 우리 각자의 인생 여정에 관한 것이다. 계몽주의자 헤르더는 우연을 무질서의 독재자로 보았으나, 영어권에서는 예부터 우연의 다정한 면모를 강조했다. 영어의 'chance'라는 단어는 우연을 뜻하는 동시에 '기회' 또는 '행운'이라는 뜻을 품고 있으니 말이다. 

- 과학에서는 이미 우연의 긍정적인 측면을 깨닫고서 그것을 활용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전기 회로 같은 민감한 시스템은 우연한 효과로 안정화될 수 있으며, 우리의 뇌도 그렇게 기능한다. 또한 우연은 진화의 엔진일 뿐 아니라 창의성의 엔진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타심, 동정심, 도덕심 같은 타인을 위한 마음도 인간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존재한다.

- 물론 우리는 이러한 우연의 선물을 얻기 위해 대가를 치러야 한다. 대가는 바로 불확실함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는 불쾌함을 느끼므로 우리는 불확실한 상황을 가능하다면 피하려 한다. 그리고 그 결과 많은 기회를 잃어버린다.

- 그렇다면 어떻게 불확실한 것에 잘 대처할 수 있을까? 우연에서 유익을 구할 전략이 있을까? 행운아가 되는 방법이 있을까?

- 이 책의 목적은 우리가 '우연'과 친해지는 것이다. 우연은 우리의 행동, 감정, 생각 등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포괄적인 시각으로 보아야 평가할 수 있다. 우연은 예측할 수 없는 많은 연관들 속에 있다. 그래서 한 가지 측면만 살펴보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커다란 틀 속에서, 전체적인 관계 속에서 볼 때 비로소 우연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 파트 1에서는 우연이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우연은 무척 다양한 형태를 띠지만 그 형태는(도박에서건, 물리학 영역에서건, 인간 사회에서건) 크게 두 가지 원인에 의해 비롯된다. 복잡성과 자기 연관성이 그것이다.

 

- 그렇다면 우리에게 우연으로 다가오는 일은 정말로 어떤 법칙도 없는 것일까? 아니면 법칙을 따르지만 우리가 그것을 파악할 수 없을 뿐일까? 이런 질문의 배후에는 "우연인가 운명인가?" 하는 태곳적 질문이 숨어 있다.

- 물론 이런 기회가 완전 공짜는 아니다. 우연에서 유익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우리가 계획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사랑스러운 착각과 결별해야 한다. 우연을 인정하는 것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 우리는 기본적으로 안전한 척, 확실한 척 위장하고 사는 존재다. 그러나 우리가 우연이라는 현상에 다가간다면 이런 불안은 우연에 대한 믿음에, 그리고 우연에서 최상의 것을 유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자리를 비켜줄 것이다. 우연을 아는 것은 우리를 안심시킨다. 우연을 인정해 주면 우리는 기대하는 것보다 자주 우연이 주는 선물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감탄하게 될 것이다.

 

우연은 신이 자기 이름으로
서명하기 싫을 때 사용하는 신의 가명이다.

- 아나톨 프랑스

 



 
- 하지만 우연에 관한 이런 체념적 태도는 약 500년 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 도박이 사교계의 문화로 자리 잡았고 수학자들이 도박의 도움으로 우연에 대해 밝혀낸 내용들은 지금까지 현대문명의 최대 성과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 발견의 의미가 도박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기 때문이다. 

- 주사위건 카드건 룰렛이건, 모든 도박은 아주 단순화된 인생의 모델이다. 일상에서와 마찬가지로 통제할 수 없는 영향력이 상황을 결정한다. 룰렛 구슬이 회전판의 가장자리에서 구를 때는 아무도 어떤 숫자에 떨어질지 말할 수 없다. 룰렛이 인생과 다른 점은 인생에서는 무한한 가능성 앞에 놓이지만 룰렛 구슬이 떨어지는 숫자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생과 달리 도박은 전체적 파악이 가능하며, 그래서 우연의 효과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기에 더없이 좋은 수단이다. 

-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 페르마와 밀라노 출신의 의사 지롤라모 카르다노 같은 선구자들은 실러의 표현처럼 "우연이라는 무시무시한 현상 속의 친숙한 법칙"을 파악하기 위해 도박에 빠졌다. 카르다노는 "나는 주사위 놀이를 하면서 적지 않은 위안을 얻었다"라고 고백했다.
카르다노는 우연을 추적하기 위해 무척 간단한 방법을 발견했는데, 바로 수를 헤아리는 것이었다.  

-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1748년 뉴턴의 결정주의를 인간 행동에 적용하였다. 다른 철학자들 역시 사회를 뉴턴 역학처럼 정돈하고자 사회생활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규칙을 발견하고자 애썼다. 이른바 사회물리학의 탄생이었다. 천문학자 피에르시몽 드라플라스가 뉴턴의 천체 역학에 관한 방대한 저작을 발표했을 때 나폴레옹은 왜 이런 방대한 글에서 우주의 저작권자인 신에 대한 언급이 한마디도 나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라플라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 이제 그런 가설은 필요가 없습니다."

- 나폴레옹 시대에 잠시 내무부장관을 지냈던 라플라스는 뉴턴적인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미리 정해져 있다고 확신했던 사람이었다. 라플라스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데이터를 분석할 만큼 포괄적이고 완벽한 지성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완벽한 지성의 눈에는 불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미래는 과거처럼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질 것이다. 인간의 이성은 이런 완벽한 지성의 희미한 그림자다."

- 사람들은 라플라스가 상정한 이런 초자연적인 지성을 '라플라스의 악마'라고 불렀다. 라플라스에 의하면 우연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역학은 단순한 법칙에 복종할 뿐이다. 그래서 진화이론가인 카를 지그문트는 라플라스의 악마는 "한 장의 스틸사진을 보고 우주전체의 역사를 유추해 낼 것"이라고 말했다.

- 이런 견해에 의하면 우리가 예기치 못한 일을 경험하는 이유는 우리의 지성이 모든 개별적인 것 속에서 세계의 계획을 이해할 만큼 '포괄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라플라스는 정계에 입문해서도 지나치게 분석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리하여 나폴레옹은 그의 참기 힘든 꼼꼼함에 대해 한탄하며 6주 만에 내무부장관을 갈아치웠다. 


- 라스베이거스의 룰렛 구슬은 뉴턴의 법칙에 따라 구르고 튀므로 원칙적으로는 구슬의 경로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구슬이 어떤 숫자 칸에 들어갈 것인지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구슬이 처음에 어디에서 얼마만큼 빨리 회전하는지를 초자연적인 정확성으로 알아내야 했다. 구슬이 첫 번째 마름모꼴에 부딪혀 중심으로 튀어 들어갔다가 다시 다른 마름모꼴에 부딪히고 하다 보면 측정의 아주 작은 오차도(마치 입 모양만 보고 말을 전달하는 게임에서 작은 오해가 곧이어 엉뚱한 메시지로 발전하는 것처럼)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마련이었다. 그리하여 구슬이 마름모꼴에 부딪힐 때 측정에서 0.1밀리미터의 오차만 생긴다 해도 구슬은 전혀 다른 각도로 튀어나가고 구슬이 회전판 내부의 경사 부분을 올라갔다가 다시 마름모꼴로 질주할 즈음이면 이런 오차는 몇 배로 늘어난다. 

- 어떻게 한 치도 어긋나지 않게 구슬을 추적한단 말인가? 파머 일당들은 이런 어려움을 알았기에 꼭 집어 하나의 숫자에 걸기보다는 대충 숫자판 이쪽에 떨어질 거라고 예상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아무 숫자나 찍는 다른 게이머들에 비하면 엄청나게 유리한 고지에 서 있었다. 하지만 이런 예측에도 실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종종 모종의 부정확성이 끼어들면 구슬은 예측한 곳으로 떨어지지 않았고, 구두창 밑 컴퓨터의 계산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 그러므로 어떤 시스템이 법칙을 따르고 우리가 그 법칙을 정확히 안다고 해도 그 시스템의 행동을 아무 때나 정확히 예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시선은 그리 예리하지 않고 그럴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지식이 언제나 인식에 이르게 하는 것은 아니다. 뉴턴 이후의 낙천적인 지식인들에게 이런 통찰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 구두 속의 컴퓨터로 무장한 파머와 그의 친구들은 지식을 가진 자들에 속했다. 그들의 도전은 수년 후 '결정론적인 카오스'라고 대서특필되었다. 결정론적인 카오스! 그렇다. 한편으로 일은 자연법칙에 의해 예정된 대로 진행된다. 따라서 결정론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카오스로 경험한다.  

 

- 앞으로 더 살펴보겠지만 자기와 관련된 것은 종종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을 낳고, 그로써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우연의 작용에 내맡겨지게 된다.

- 우리는 어떤 사건의 원인을 완벽하게 알 수 없을 때에 우연을 경험한다. 하지만 어떤 사건이 발생한 원인의 일부가 자신이라면 이 원인은 관찰되는 사건과 분리될 수 없고, 이런 상황에서는 피드백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 피드백은 원자물리학에서와 같이 규명하고자 하는 현상이 그 연구에 투입되는 수단과 분리될 수 없는 경우 개입된다. 피드백은 우리 일상에서도 끊임없이 등장한다. 가령 부모는 자녀를 양육하면서 도리어 자녀의 영향을 받는다. 주식 투자자들은 앞으로 어떤 주식이 오를까를 생각하여 매수를 결정하지만 주가의 등락은 바로 투자자들의 결정에 영향을 받는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이런 식으로 삶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상황에 대해 더 살펴볼 것이다. 

-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내고, 우리의 결정으로 미래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바로 그렇기에 미래에 대해 제한된 진술밖에 할 수 없다. 우리가 어떤 일에 더 많이 관여하고 더 큰 영향을 끼칠수록 그 결과는 더욱더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을 임의로 계획할 수 없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대가라 할 수 있다. 우리의 뇌는 미래를 내다보도록 만들어지지 않고, 프랑스 작가 폴 발레리의 말처럼 "미래를 만들어나가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 가장 정확한 학문인 수학에도 우연은 존재한다. 수학은 순수한 이성의 학문으로서 몇 안 되는 확인 가능한 공리에 기초하여 명확한 규칙에 따라 지어진 사상의 집이다. 세상에서 계획적으로 진행되는 곳이 있다면 바로 수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하지만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엄격한 절차와 공식의 세계에도 우연이 있음을 경험했을 것이다. 마우스 포인터에 모래시계가 등장할 때 괴델의 명제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이처럼 신경을 소모시키는 기다림은 논리학의 한계와 깊은 연관이 있다. 우리는 이 모래시계가 언제 사라질지 알기만이라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컴퓨터가 또다시 다운되었다는 것을 바로 알 수는 없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그저 프로그램을 실행시킨 후 그것이 적당한 시간에 결과에 도달하기를 바랄 뿐, 컴퓨터 시대 선구자들이 깨달았던 것처럼 어떤 프로그램이 그 연산을 언제 끝낼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운이 나쁘면 끝내 대답을 듣지 못할지도 모른다.  

- 컴퓨터로 하여금 그가 연산을 언제 끝낼지, 아니 끝낼 수나 있을지를 예측하게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것은 컴퓨터에 자신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피메니데스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암시조차 얻어낼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 컴퓨터는 주어진 일을 끝낸 후에야 재귀적인 진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때는 사용자 역시 계산이 얼마나 걸릴지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사용자는 프로그램이 중단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계산이 끝나지 않으면 답도 없다"고, 1940년대 컴퓨터의 원칙을 고안했던 앨런 튜링은 말했다.

- 알 수 없는 데이터 셋을 가진 프로그램이 특정 시간이 경과한 뒤 연산을 끝낼 것인가 끝내지 않을 것인가는 동전 던지기처럼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프로그램의 처리가 끝날지 말지는 어떤 의미에서 동전 던지기보다 더 우연하다. 동전 던지기에서 앞면과 뒷면이 나올 비율은 50 대 50이다. 그러나 어떤 프로그램의 계산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보람 있을지는 일반적인 확률로 표현할 수 없다. 이런 확률은 계산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해결되지 않는 자기 연관성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확률은 미국의 수학자 그레고리 카이틴이 증명한 것처럼 우연의 수로 표시할 수밖에 없다. 

- 그리하여 우리는 순수하게 논리적인 문제의 답으로 논리나 이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숫자를 얻게 된다. 카이틴은 그 수를 오메가로 표시하였다. 오메가는 기독교에서 세상의 끝을 상징하는 말이다. 카이틴은 "하느님은 도박에 약하신 듯, 순수 수학에서까지 주사위 놀이를 한다"라고 말했다. 

- 양자의 세계에서는 작용이 임의로 미세하게 세분될 수 없고 작은 팩, 즉 양자 단위로만 교환될 수 있다. 자연이 뜀뛰기를 하는 것이다. 이 뜀뛰기는 우리가 보통 깨닫지 못할 만큼 미미하다. 그러나 원자와 소립자들의 세계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 그리하여 전자의 스핀은 특정한 값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 값은 각 방향으로 1/2의 단위에 달한다.  

- 따라서 우리가 위쪽으로 향하고 있는 전자의 스핀 값을 수평 방향으로 잴 때는 어떻게 되겠는가? '0'은 금지되어 있기에 전자는 '오른쪽'이나 '왼쪽' 중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즉, 1/2이나 -1/2의 값에 해당한다. 이미 말했듯이 스핀은 측정 시 반정수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연필이 책상 위에 수평으로 누울 때만이 가능하다. 그리고 진짜 실험에서 물리학자들은 실제로 그런 장면을 보게 된다. 측정 시에 전자가 그의 상태를 바꾸는 것이다. 

- 이것이 바로 양자역학의 특징이다. 우리는 상태를 변화시키지 않고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데에 익숙하다. 와이셔츠 깃을 쟀을 때 42센티미터가 나오면 목둘레를 재도 같은 치수가 나온다. 그러나 양자의 세계에서는 다르다. 양자의 세계에서는 측정이 시스템에 개입한다.  

- 그러나 원자의 세계에서 그런 전략은 통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우연이 우리의 무지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연법칙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 우연은 물리학의 토대가 된다. 그리하여 우리의 익숙한 생각이 소립자의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룰렛 구슬이 전자처럼 작았다면 파머는 결코 그 경로를 계산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전자는 가는 길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전자의 지점과 속도를 잴 수 있다. 그러나 그 자료는 전혀 예측 능력이 없다. 입자는 유령처럼 공간을 돌아다니며 한 번은 여기에, 한 번은 저기에 출몰한다. 원자물리학의 여러 가지 실험 보고서를 읽으면 마치 방금 무선으로 위치를 확인한 결과 지브롤터 해협을 12노트 knot로 달리고 있던 배가 다음 순간 태평양이나 북해를 가로지르고 있다는 설명을 듣는 기분이다. 

- 우리는 보통 현재의 지점과 경로, 그리고 속도에 근거하여 한 시간 후에는 배가 어디쯤 있을지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소립자의 세계에서는 그런 예측이 불가능하다. 입자의 장소와 임펄스 impulse, 힘의 크기와 힘이 작용한 시간의 곱은 방금 살펴보았던 스핀과 비슷하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장소나 임펄스 중 한 가지를 확인하자마자 다른 하나는 규정이 불가능해진다. 우리가 장소를 확인하면 임펄스의 크기는 우연에 맡길 수밖에 없고 임펄스를 정확히 재고자 하면 입자가 위치한 장소를 더 이상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 즉, 측정이 입자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물리학자들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대체 라디오 안에 무엇이 들었기에 이렇게 좋은 음악이 나오는지 궁금해하는 호기심 많은 아이의 심정이 된다. 그 아이가 그렇듯이 물리학자는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없다. 음악을 들으려 한다면 라디오 내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라디오를 분해한다면 라디오 속에 든 부속품들을 마주하게 되겠지만 음악 감상은 끝나버린다.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발견한, 양자 이론의 그 유명한 '불확정성의 원리'가 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장소와 임펄스, 에너지와 시간이라는 측량 단위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 그리하여 우리가 한 가지를 결정하면 다른 한 가지는 불확실하고 우연한 결과가 된다는 것, 장소와 임펄스를 함께 확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시스템이 담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캐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 하지만 수십 가지의 연구를 통해 내린 결론은 무척 허탈했다. 어떤 사람과 대화하는 동안 받게 되는 인상이 우리의 이성에 강력한 영향을 행사하는데, 문제는 이 인상이라는 것이 상대방에 대해 그다지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의식 중에 상대방의 객관적 특성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나와 잘 맞는지에 대해 판단하기 때문이다.  

- 의미심장한 결론이다. 첫인상을 중시하는 우리는 환경에 따라 사람의 행동이 좌우된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히스테리컬 한 상사가 집에서는 자애로운 어머니일 수도 있다. 반대로 자애로워 보이는 상사가 집에만 가면 폭군으로 변할 수도 있다. 우리는 매일 다른 역할 속으로 들어가, 각각의 환경이 요구하는 행동을 한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을 어떻게 경험하느냐는 상당 부분 우리 자신의 몫이다. 상대방은 우리가 보내는 신호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 우리는 상대방에게 특정한 행동을 하게 하고 그것으로 우리가 처음 상대방에게 가졌던 이미지를 확인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행위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을 통해 그에게 투박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거나 간사하고 영리한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게 된다. 이러한 꼬리표는 상대방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붙여지지만 그것은 어느새 진실이 되고 만다. 

- 창조적 사고를 위해서는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필요하다. 우리가 제어할 수도 없고 예언할 수도 없는, 우리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들, 여기에 우연이 작용한다.

- 파리의 화가이자 물리학자였던 루이 다게르는 빛에 민감한 판에 그린 그림을 오래 보관하는 법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했으나 번번이 헛수고로 끝났다. 그러던 1835년 봄, 다게르는 은도금이 된 동판 하나를 화학약품을 넣어두는 장에 아무렇게나 세워놓았다가 얼마 후 다시 꺼냈다. 그런데 그곳에 그림이 나타나 있는 게 아닌가. 부주의한 행동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약품 장에서 수은이 흘러나왔고 수은 증기에 의해 노출된 부분에 상이 생겼던 것이다. 다게르는 그 현상에 착안하여 사진술을 발견했다. 

- 이런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다. 연금술사 요한 뵈트거는 작센의 선제후에게 금을 만들어내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실패가 거듭되자 전전긍긍하던 중 유럽 최초로 도자기를 만드는 데 성공하여 간신히 교수형을 면했고, 스카치테이프라고 불리는 투명 접착테이프는 원래 반창고를 만들려다가 생겨난 것이다.  

 

- 리히텐베르크는 "모든 발명품은 우연의 작품"이라며 "똑똑한 사람들이 책상 앞에 앉아 편지를 쓰듯이 발견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 새로운 발견은 불만의 해결책과 오류를 참아내며 많은 실험을 하고 적은 선택을 하는, 다소 불편해 보이는 진화의 법칙을 통해서 탄생할 뿐이다. 우연과 직관이 이성을 대신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논리적 사고가 있어야 우리의 착상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2차적 단계다. 처음에는 언제나 우연에 대해 열려 있는 개방적인 사고가 존재한다. 그리하여 프랑수아 자코브는 혁명적인 발견을 추구하는 것을 "밤의 과학 night science"이라 명명했다. 

- 인류는 서서히 자연이 보여 주는 마구잡이 실험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연구자들은 진화로부터 배워 우리의 익숙한, 목적 지향적 사고와는 상당히 배치되는 진화의 방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
 
- 우연은 미래의 실험실에서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다. 많은 문제는 계획과 계산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행동 가능성이 너무 크거나 어떤 식으로 해결해야 할지 도무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 운송업체의 화물차가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고객들에게 배송을 마칠 수 있을지 하는 문제도 그렇다. 언뜻 보면 그리 복잡하지 않을 것 같지만 이런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결하려 했다가는 큰코다치기 쉽다. 한 집 한 집 옮겨가면서 계산해야 할 것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사람과 기계는 금방 한계에 다다른다. 

- 하지만 컴퓨터로 꼭 계산만 할 필요는 없다. 다양한 대안을 시험해 보는 데 컴퓨터를 활용할 수도 있다. 원칙은 간단하다. 하나의 가능한 접근 방식을 우연한 방법으로 몇 번 변형시켜 가면서, 다양한 버전이 얼마나 일을 잘 해내는지를 컴퓨터를 활용해 비교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좋은 대안들은 남기고 나쁜 대안들은 버린다. 다음 판에 게임은 새로 시작된다. 진화도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자연은 이렇게 하는 데 종종 수만 년이 걸리는 반면 컴퓨터 모니터에서는 몇 초 간격을 두고 세대교체가 일어난다. 그리하여 배송업자는 화물차를 위한 가장 짧은 코스를 찾는 것이다. 복잡한 여행길은 사멸하고 짧은 길이 살아남으며 시간은 점점 단축된다. 

- 더 좋은 유전자는 금방 많은 개체에 확산되고, 거의 사멸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발 빠른 영양들이 어미가 되기도 전에 벌써 사자의 뱃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종의 미래에 기여하지 못한다. 자연의 혁신은 적당한 시대에 적당한 환경에서 이루어질 때만이 승산이 있다. 기존의 무리 속을 뚫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거주자들과 새내기 간의 경쟁이 어떤 모습이 될지는 예상할 수 없다. 새로운 형질이 어떤 개체군에 확고하게 뿌리내린다 해도 기후변동이나 운석의 추락이나 인간의 남벌 같은 재앙이 탁월한 유전자를 가진 동물을 휩쓸어버릴 수도 있으며 그로써 진화는 한 걸음 후퇴할 수도 있다. 

- 따라서 자연의 발전은 좋은 수가 중요한 체스와 비슷하다기보다는 거대한 제비뽑기와 비슷하다. 미국의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자연사의 필름을 다시 돌리면 지금과는 다르게 흘러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 똑바른 길이 언제나 목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진하려는 자는 때로 후퇴를 감수해야 한다. 파리는 조상들의 탁월한 비행기술을 희생하고 강인함을 얻었다. 손실에 대한 균형은 훗날에야 이루어질 때가 많다. 하나의 우연이 당장 새롭고 더 우월한 생물을 탄생시키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대부분의 경우 진정한 이익이 눈에 보이기까지 수많은 진화 단계를 거쳐야 한다. 발 빠른 영양이 탄생하려면 먼저 절름발이 단계를 거쳐야 할 수도 있다. 절름발이 단계에서 뼈 구조의 변화는 오히려 핸디캡이 되지만, 계속된 돌연변이를 거치면 유연한 다리를 가진 후손이 배출된다. 진보를 원하는 자는 우선 설익은 상태를 참아내야 한다. 귄터 그라스의 말마따나 진보는 달팽이처럼 느리다. 

- 그리하여 진보는 보이지 않게 이루어진다. 새로운 버전은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까지 한동안 견뎌내야 한다. 자연과 사회에서 새내기는 처음에 불리한 경쟁을 견디고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가능하려면 새로운 것을 배출하는 공동체가 실험 공간을 허락해야 한다. 경쟁의 압력 또한 너무 거세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성숙해야 할 발명품의 싹이 잘려나갈 수 있다.

-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영양이 사자에게 잡아먹히듯 혁신의 시대가 도래하기도 전에 우연이 혁신을 몰아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우연이 새로운 것을 도울 수도 있다. 전염병이 기득권 무리를 쓸어버리는 등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기존의 것들을 밀어내고 비실거리는 발명품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 우연은 종종 약한 자의 편에서 싸움으로써 약한 자들에게 우연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기회를 허락한다. 

- 진화에서도 꼭 더 좋은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는 데 성공한 것이 이긴다. 그것은 앞으로의 일을 더욱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누가 더 나은지는 종종 쉽게 판단할 수 있지만, 누가 시합에서 승리할지는 우연에 달려 있다. 경쟁에서 한 번 이긴 자는 자신보다 더 나은 대적자가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승자가 모든 것을 취하는 것이다. 

- 컴퓨터 자판을 보라. 자판의 철자가 이해할 수 없는 배열로 이루어져 있다. QWERTY의 순서로 된 배열을 힘들여 외우거나, 외우지 못한 사람은 자판을 칠 때마다 먹이를 찾는 독수리처럼 자판 위에서 손가락을 뱅뱅 돌려야 한다. 자판의 철자가 왜 이런 식으로 배열되어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 이에 대한 대답은 타자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조금 위로가 될 것이다. 자판의 철자 배열은 의식적으로 우리의 직관에 역행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야기는 타자기가 처음 나왔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기술자들은 타자기의 타이프 바가 계속 엉키는 문제와 씨름해야 했다. 1868년 미국 발명가 크리스토퍼 솔스가 지금의 자판과 같은 배열을 생각해 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크리스토퍼 숄스는 연달아 나오는 철자를 치기 쉽게 나란히 배열하는 대신 서로 멀리 떼어놓아 엉킴 현상을 방지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가장 빈도수가 높은 철자들을 반대 방향으로 배열했다. 솔스는 특허를 출원하였고 뉴욕의 레밍턴 사는 숄스의 배열을 넘겨받아 세계 최대의 타자기 회사로 급성장했다. 그렇게 해서 쿼티 QWERTY 타자기가 보편화되었다. 당시는 자판 배열의 이런 특별한 논리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다른 배열법이 고안되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1930년대에 어거스트 드보락이라는 사람이 손가락의 동선을 절약하고 더 빠른 속도로 타자를 칠 수 있는 자판 배열을 생각해 냈다. 드보락의 버전은 의심할 여지없이 더 수월한 것이었고 기술이 발달하여 엉킴 현상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배열 방식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모두가 QWERTY에 익숙해 있어 타자를 새로 배우기를 원치 않았던 것이다. 

- 기술의 발달은 이런 이야기로 얽혀 있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일단 한 번 정착되면 그것을 포기하기는 힘들다. 경제에서든 자연에서든 어떤 분야에서 가장 처음 자리를 잡기는 쉽다. 이미 자리를 차지한 기득권자는 공격에 집요하게 저항할 수 있다. 주변 세계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미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일종의 피드백이다. 

- 모래언덕 위에 맨 처음 떨어진 빗방울은 우연히 길을 뚫는다. 이어 빗방울이 많이 떨어질수록 빗방울들은 처음의 길을 더 깊게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모든 물이 같은 흐름을 탄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것은 환경에 영향을 끼치고 환경을 되돌릴 수 없게 변화시킬 수 있다. 모래 위에 떨어진 빗방울처럼 그러는 와중에 처음의 우연은 굳어지고 길이 정해진다.

- 그렇다면 DNA를 해독한 프랜시스 크릭의 말처럼 자연은 '굳어진 우연'일 뿐일까? 어쨌든 우연이 첫 순간부터 진화를 결정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유전분자가 하필이면 이중 나선 구조로 되어 있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실험에 의하면 유전자가 다른 화학적 구조로 되어 있거나 유전 정보를 번역하는 코드가 달라도 가능했을 거라고 한다. 아마도 40억 년 전 진화 초기에는 지금과는 다른 화학구조를 가진 생명의 대안들이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의 구조와 같은 단세포 생물들이 우연히 약간 더 일찍 확산되는 바람에, 다른 화학구조로 이루어진 생명은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자연사에서 생물들은 언제나 만회할 수 없을 만큼 앞장섰기에 살아남았다. 때로는 재앙이 상황을 뒤집기도 했지만 말이다.

- "자본주의 윤리의 반영이자 성공을 우상화하는 행위"라며 "공룡의 멸종 원인이 소행성 충돌이었다면 설사 공룡이 더 큰 뇌와 날씬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해도 별 도움이 안 되었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 가상의 시나리오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은 만약 일이 다르게 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우주물리학자이자 학술 저술가인 칼 세이건은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가상의 시나리오를 썼다. 칼 세이건은 호모사피엔스를 대치할 만한 후보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볼 수 있는 영리한 작은 공룡 사우로르니토이데스를 꼽았다. 세이건은 "뇌와 몸집의 비율로 판단할 때 사우로르니토이데스가 가장 지능이 높은 공룡"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그들은 체중 50킬로그램에 뇌용량이 50그램 정도로 몸의 비율이황새와 비슷했으며 실제 모습도 황새를 닮아 있었다... 사우로르니토이데스는 작은 동물들을 사냥하고 네 손가락을 활용하여 여러 가지 과제를 수행했을 것이다. 만약 공룡이 멸종되지 않았다면 사우로르니토이데스의 후손이 오늘날의 지구를 지배했을까? 그러면서 책을 쓰고, 독서를 하며 '만약 포유류가 승리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를 상상할까? 산술에서도 팔진법을 당연한 듯 활용하면서 십진법은 '새로운 수학'에서나 잠깐 언급되는 아주 말도 안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할까?"

- 우리는 결코 그 대답을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자연사의 필름을 되감아 다시 돌리면 이야기의 마지막에 지금처럼 인간이 존재하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반복되지 않을 너무 많은 사건이 우리의 종이 승리하는 데 기여하였다.

- 찰스 다윈은 우리의 기대를 앗아갔다. 모든 생명이 인간의 존재를 목표로 발전했다는 환상 말이다. 우리의 존재는 우연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을 가능케 한 것은 제멋대로 구는 우연만은 아니다. 유전자의 변화가 예측할 수 없는 돌연변이를 통해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연의 제한 없는 지배를 허락하지 않는 두 가지 힘이 있다. 첫 번째 힘은 새로운 것이 출현하면 그것은 경쟁 속에서 기존의 것에 대항하여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무의미한 고안품은 제거된다. 자연에는 아주 탁월하여 언제나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고안품이 있다. 예를 들면 진화 과정에서 다양한 동물을 거치며 발전을 거듭해 온 눈과 뛰어난 뇌가 그런 것들이다. 그러므로 설사 인간이 승리하지 않았다 해도 오늘날 지구는 공간을 분별할 수 있고 스스로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생물이 지배할 것이다. 우연을 조절하는 두 번째 힘은 진화가 가진 것만으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은 기존의 것을 다르게 조합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결코 아무 때나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다. 우연은 그런 한계 내에서만 작용한다.
 
- 냉전 중 원자 무기를 실은 미국의 잠수함이 대양 아래를 가로지를 때 잠수함에 상주하는 지휘관들의 중요한 소지품 중 하나는 주사위였다. 그들은 주사위로 잠수함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결정했고, 그럼으로써 소련의 공격을 잘 피해 다닐 수 있었다. 미리 세운 전략은 적군의 감시나 스파이 활동을 통해 찾아낼 수 있어도, 주사위로 내리는 우연한 결정은 어떤 방식으로도 대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사실 싸움에서 우연을 이용하는 것은 태곳적부터 활용되어 온 성공 전략이다. 토끼가 도망칠 때도 마찬가지이다. 토끼가 달리다가 급하게 방향을 바꾸는 걸 보면 추적자를 따돌리려는 행동 같지만, 사실 토끼는 추적자가 멀리 보이지 않을 때도 지그재그로 달린다. 추적자가 오래전에 포기한 다음에도 계속 그렇게 달린다.  


- 물론 상대가 우리 생각을 엿보기 시작할 즈음이면 잔머리도 통하지 않지만 말이다.

- 가위바위보에서 이기려면 어떤 전략을 쓸 수 있을까? 가장 간단한 방법은 계속 같은 것을 내는 것이지만 이런 전략은 몇 판 못 가서 금방 들통난다. 그렇다면 보 다음에 바위를 내고 바위 다음에 가위를 내는 식으로, 계속 같은 순서를 반복하면 어떨까? 이 역시 얼마가지 못한다. 상대가 우리의 전략을 금방 알아챌 것이다. 상대가 바로 전에 냈던 것은 절대로 내지 않는 등 상대편의 행동과 연관하여 어떤 특정한 공식을 따르는 것 역시 좋은 전략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전략이 최상일까? 결국 정답은 우연에 맡기는 것이다. 상대편보다 앞서거나 최소한 뒤처지지 않으려면 예측 불가능하게 무작위적으로 내는 것이다. 들판을 지그재그로 달아나는 토끼처럼 말이다.

- 가위바위보는 게임 이론의 면모를 보여준다. 게임 이론이란 헝가리 출신의 미국 수학자 존 폰 노이만이 1920년대에 정립한 개념으로 다양한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 이론은 인간 또는 동물들이 서로 경쟁하며 사는 곳이면 어디에나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임금 협상을 할 때도, 독수리와 뱀의 먹고 먹히는 생존 싸움에서도, 포커를 칠 때도 말이다.

 

- 게임 이론을 한 마디로 말하면 이렇다. 상대편이 어떻게 행동하든 상관없이, 언제나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해결책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 파이를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고 혈안이 된 두 소년을 생각해 보자. 한 소년이 파이 조각을 자르고 다른 소년이 파이 조각을 집을 때 칼을 든 소년은 파이 조각을 정확히 이등분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래야 친구가 어떤 걸 집든지 절반은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크기가 다르게 자른다면 더 작은 파이 조각을 먹을 위험이 있다. 이런 간단한 경우 게임 이론은 언제나 '50 대 50'으로 나눌 것을 추천한다. 여기서 소년은 이성적으로 늘 이런 행동을 추구할 것이므로 '순수 전략'이 적용된다. 그러나 가위바위보에서는 우리가 보았듯이 순수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 가위바위보와 다른 많은 상황에서는 다양한 가능성을 무작위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계산이 불가하므로 상대가 대처할 수 없는 '혼합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 게임 이론은 예측하기 힘든, 얽히고설킨 상황에도 적용된다. 하지만 우리는 폰 노이만의 생각과 다르게 행동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일이 어떻게 될지 곰곰이 따져본 다음 거기에 따라 행동한다. 예를 들어, 한 회사원이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의 경쟁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거절할 생각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머물면 곧 승진될 거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지금 팀장직을 맡은 사람이 곧 육아 휴직을 신청할 예정인데, 지난번에 자신은 육아 휴직이 끝나도 회사에 복귀하지 않겠다고 귀띔했다. 게다가 사장은 자신을 꽤 괜찮게 보고 있는 듯하므로 팀장 자리가 비면 자신에게 그 자리를 맡기는 수밖에 다른 뾰족한 대안이 없으리라. 그러나 일상에서의 의사결정은 대부분 매우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므로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진행될 확률이 높다.

 

- 이 회사원이 가정한 것은 다섯 가지이다.
1. 지금 회사에 머물면 곧 승진할 것이다.

2. 팀장이 육아휴직을 신청할 것이다.

3. 팀장은 휴가가 끝나도 복귀하지 않을 것이다.

4. 사장은 나를 꽤 괜찮게 생각한다.

5. 사장은 팀장 자리를 나에게 맡길 것이다.

- 이 각각의 가정들이 들어맞을 확률이 80%라고 하자. 그래도 모든 일이 자신이 기대한 대로 이루어질 확률은 3분의 1에 못 미친다(다섯 가지 가정이 모두 명중할 확률은 0.8×0.8×0.8×0.8×0.8=0.327로 32.7%다). 이것은 가장 낙천적으로 계산했을 때다. 80%의 명중률이면 아주 높게 잡은 것이고, 대부분의 경우 어떤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다섯 가지가 아니라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상대편이 이러저러하게 행동하겠지 하는 우리의 예상은 언제나 빗나간다. 게다가 상대편에서 의식적으로 우리가 계산할 수 없는 수를 써서 우리의 예상을 뒤집어엎으려 할 수도 있다. 게임 이론을 알고 있는 것이 어찌 우리뿐이겠는가?

 

- 이것이 폰 노이만의 게임 이론의 배후 논리다. 상대편의 반응을 예측할 수 없다면 상대편의 결정에 상관없이, 어떤 우연한 일이 일어나도 상관없이 행동하는 것이 최상이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게임 이론의 신봉자들은 승리만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보다는 어떤 상황이 되든 가능하면 손해를 최소화하는 데 목적을 둔다.

 

-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는 이러한 게임 이론의 핵심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당신이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결정은 가장 최악의 것을 피하는 것이다."

- 지금까지 미군의 공식적인 독트린은 적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 기대하지 말고 적이 내릴 수 있는 가장 최악의 결정에 근거하여 전략을 선택하라는 폰 노이만의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앞서 언급한 회사원도 마찬가지로 생각해야 한다.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할 것이라면, 기대한 승진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더라도 이 회사를 계속 다닐지 자문해야 한다. 

- 폰 노이만은 게임 이론을 고안했고, 양자역학과 컴퓨터 공학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원자폭탄 개발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폰 노이만은 "다른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비겁하다며 한탄하는 것은 자기장이 왜 전기장 안에서 강해지느냐며 한탄하는 것만큼 미련한 일"이라며 "두 가지 모두 자연법칙"이라고 말했다. 폰 노이만은 나쁜 것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강한 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확신했으며 게임 이론으로 그 수단을 손에 쥐고 있었다. 

- 어떤 전략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러나 다양한 목적에 오용될 수 있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중요한 일에 응용된 폰 노이만의 인식은 전에 없던 참사를 불러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프린스턴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폰 노이만은 일본을 폭격하는 최적의 전략을 짜내야 했다. 폰 노이만에게 이 문제는 가위바위보와 비슷했다. 미국이 주요 군사시설을 공격한다면 일본은 이를 예측하고 그곳에 병력을 집중시킬 것이었다. 그러므로 적에게 최대의 손실을 끼치는 동시에 적군의 입장에서 계산이 불가능한 전략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당시 폰 노이만을 도왔던 메릴 플러드를 위시한 주변의 젊은 수학자들은 이 연구로 일본 사람들이 어떤 일을 겪을지 알지 못했다. 보안 유지상 폰 노이만의 제자들에게는 연구가 어디에 쓰일 것인지 비밀에 부쳤던 것이다. 그러나 폰 노이만은 이 연구의 목적을 잘 알고 있었다.  

-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기본으로 하되 때때로 관대해지는 지그문트의 전략을 선택했다. 그리고 나머지 3분의 2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원칙을 엄격하게 지켜 이전에 자신의 선택이 먹혀들면 그 선택을 고수하고 그렇지 않으면 선택을 바꿨다. 실험 결과 후자의 학생들처럼 과거를 기준으로 행동할 때 더 불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대로 차례가 돌아오므로 우연의 전략을 구사한 사람들이 더 성공적이었다.

- 따라서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행동으로 이익을 얻는다. 예측 불가능한 행동은 경쟁에 유리하고, 협력과 신뢰를 가능하게 한다. 인간 행동을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 뇌가 복잡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 스스로 우리의 의도를 숨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자연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놓은 듯하다.

- 존 메이너드 스미스를 위시한 많은 진화생물학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때때로 자신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메커니즘이 우리 안에 있다고 추정한다. 물론 그 대가로 우리는 더욱 불확실해질 것을 감수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계획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의 의도도 알 수 없으니까 말이다. 확실한 규범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계획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완벽한 포커페이스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리면서 우리 자신을 드러낼 뿐 아니라, 눈빛이나 행동 또는 어쩌다 나온 말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도를 자신도 모를 때만이 그런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메이너드 스미스의 말마따나 우리는 머릿속에 룰렛판을 가지고 있다.

- 미국의 발달심리학자 캐럴 타브리스는 연구 결과를 이렇게 요약했다.
"수십 년간 노력했으나 학자들은 아이를 특정한 개성이나 능력, 문제의 소유자로 만드는, 아니 그렇게 될 가능성이라도 높이는 양육법을 찾지 못했다. 부모들은 어차피 일관성을 유지할 수 없다. 부모들 스스로 아이의 특성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싹싹한 아이에게는 더 관대하게 대하고, 뚱한 아이에게는 더 엄격하게 대한다." 

- "까다롭고 엄격하고 심지어 이상한 버릇이 있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대부분 놀랄 만한 저항력을 보인다. 그리고 그런 부모로부터 장기적으로 정신적인 피해를 입지 않는다. 반대로 마약을 하고 폭력에 가담하고 정신병을 얻는 청소년들은 굉장히 사랑이 넘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인 경우가 많다." 

- 아이가 어떤 생활공동체에서 자랐느냐에 따라 개성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통계상 종일 집에서 지낸 아이나, 탁아시설에서 지낸 아이나, 양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나, 부모의 손에서만 자란 아이나, 이성애자의 손에서 자란 아이나, 동성애자의 손에서 자란 아이나 별 차이가 없다. 

-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은 부모를 대하는 아이의 태도에는 많은 영향을 미치지만, 다른 사람을 대하는 아이의 태도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엄마가 아이들과 놀아줄 때 아이들의 태도는 엄마와 노는 동안에만 지속된다. 아이가 혼자 있게 되거나 다른 친구와 놀게 되면 엄마하고 전에 어떻게 했느냐와 상관없이 행동한다. 성격보다 상황이 아이의 행동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 아이들은 그들만의 세계에서 산다. 어른들이 잘 깨닫지 못하는 아주 미미한 뉘앙스들이 아이들을 다양한 방향으로 인도할 수도 있다. 개성의 형성은 우리 의지로 조종되는 것이 아니며 학문적인 관찰로 추적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한 인간이 성장할 때 부모의 의도보다는 우연이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 그렇다고 자녀를 아무렇게나 키우라는 말은 아니다. 여기에 소개된 연구는 부모가 기본적으로 자녀를 이해하고 밀어주려고 애쓰는 중류층 가정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기본 조건이 충족된 가운데서 아이를 더 엄격하게 키우는가, 자유롭게 키우는가는 발달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에 반해 부부 사이에 폭력이 난무한다든지, 부모가 아이를 무시하고 등한시한다든지, 반복적으로 구타한다든지, 학대를 한다든지 할 경우 아이에게 돌아갈 피해는 심각하다. 만약에 그 아이들이 그런 경험을 견뎌내고 안정된 인성을 갖게 된다 할지라도 그들의 유년은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 두 번째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부모가 자녀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부모의 태도가 아이의 개성 형성에 생각보다 적은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지만 부모와의 관계에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아이들을 보살피되 뭐든지 용납해 주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자 할 때면 언제나 그렇듯이 말이다.

- 그러므로 양육은 의미 없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행동을 개선하는 프로그램은 특히 효과 만점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 프로그램에서 부모는 아이들을 자주 칭찬해 주고 아이가 잘못할 경우 무조건 비난하기보다는 아이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이해하게 만드는 법 등을 배운다. 그런 간단한 방식으로 행동 장애의 기미가 있었던 아이들이 도로 정상적인 궤도를 밟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의 목표는 아이들의 발달을 장기적으로 특정 방향으로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의 위기를 잘 넘기는 데 있다. 부모의 변화된 행동은 아이들에게 안정감과 자신감을 주고 아이들 스스로 펼쳐 나갈 수 있게 한다. 

- 세 번째로, 발달심리학의 새로운 인식은 부모가 자녀의 개성에 전혀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양육이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 즉 교육은 우연하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딸에게 억지로 발레를 배우게 했다고 하자. 아이는 열정적인 춤꾼이나 프로 발레리나가 될지도 모르지만 여차하는 경우 발레를 싫어하게 되어 사춘기가 되면 영원히 발레를 포기해 버릴지도 모른다. 반대로 발레를 배우든 말든 딸의 재량에 맡겼다고 하자.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아이는 발레에 푹 빠질 수도 있고, 오히려 부모에게 원망을 할 수도 있다. 발레를 하라고 억지로 시키지 그랬느냐며 말이다. 

- 룰렛에서도 딜러가 구슬을 어떤 높이로 던지는가, 회전판을 얼마나 빨리 돌리는가 하는 것은 분명히 구슬에 영향을 미친다. 다만 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무익할 따름이다. 구슬이 어느 숫자 칸에 떨어질지 우리로서는 조종도 예측도 할 수 없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은 꽤 충격적이지만 부모를 공연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교육에서 우연의 비중을 인정하면서도 자녀가 잘 자라는 모습을 보는 사람은 아이의 삶의 능력을 신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자녀에게 적절히 고무적인 환경을 만들어주고 자신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를 되도록 많이 주는 것은 아이에게 단순한 재능 계발 이상의 도움이 된다. 그들을 세상에서 유일한 개성을 지닌 존재로 여겨주는 것이 바로 자녀를 존중하는 일이다. 아랍의 철학자 칼릴 지브란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자녀에게 자기 자신이 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녀를 여러분과 똑같이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생명은 뒷걸음치지 않으며 어제에 머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리켄은 500명의 쌍둥이를 대상으로 그들 형제나 자매의 배우자와 로맨스를 상상할 수 있겠느냐고 질문했다.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쌍둥이들의 배우자들 역시 배우자의 쌍둥이 형제나 자매에게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따라서 어떤 특정한 타입을 선호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 테노프는 사랑이 싹트는 중요한 포인트는 늘 똑같다고 한다. 자신에 대한 상대방의 관심을 알아차린 순간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 양상은 테노프가 관찰한 모든 커플에게서 비슷하게 나타났다. 따라서 카스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열을 유발하는 보편적인 요인'이 있긴 있는 것이다. 남성의 지위나 여성의 풍만한 가슴 등이 아니라, 테노프의 말마따나 '스스로가 욕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에 욕망이 깨어난다.

- 사랑의 현기증이 채 가시지 않았을 때 우리는 매우 관대하다. 상대가 더없이 좋아 보인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트집 잡을 일도 사랑하는 사람이 하면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사랑은 결코 우리를 눈멀게 하지 않는다. 처음의 도취 상태에서라면 몰라도 시간이 좀 지난 후에는 말이다. 모든 만남이 연애로 이어지지는 않으며, 모든 연애가 장기적인 파트너 관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 반대다. 제7의 하늘에서 시작된 만남의 대다수는 실망으로 끝나버린다. 

 

- 20세기 초 드라마 개혁의 선두 주자였던 스위스의 유명한 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는 두 번째 결혼에 실패하자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야 했다. 스트린드베리는 자신의 신비한 경험을 담은 <지옥>이라는 작품의 후기에, 개인적인 위기를 겪으며 "삶을 황폐화하는 회의적인 태도를 깨끗이" 포기하고 "실험적으로 믿는 자의 위치에 섰다"라고 썼다. 스트린드베리는 더는 우연을 믿지 않았다. 이제 스트린드베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통합하는 우주적 이론을 옹호했다. 전에는 착각으로 보였던 것이 이제는 반복과 합일을 통해 일하는 '세계사의 의식적인 의지'의 작업으로 보였다. 스트린드베리는 곳곳에서 그런 일을 발견했다.  

- 스트린드베리는 당시 쓰고 있던 소설에 "일깨워진 그의 환상은 의미를 추구했다"라고 적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을 말하는 것으로 보였다. 스트린드베리는 일상에서 신비로운 연관을 깨닫고자 했을 뿐 아니라 연금술사처럼 실험도 했다. 그는 자신을 자연과학과 문학을 통합하는 '시화학자 Poetchemiker'로 보았다. 유기적인 것이든, 무기적인 것이든 세상의 모든 것이 의미 있게 연관되어 있으며, 이런 표지들을 읽고 자신의 에너지를 통일시킬 줄 아는 사람은 그 안에서 창조의 계획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 정신병리학자들과 문예학자들은 오늘날까지 스트린드베리가 정신이상자였는지 아니면 그저 괴짜였는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그 중간쯤에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스트린드베리는 편집증이 있었지만 다른 정신병 환자들과는 달리 자신의 행동을 제어할 줄 알았으니까.

- 편집증이 있는 사람들은 곳곳에서 숨겨진 의미를 찾는다. 자신의 지식에 대해 과신하고 다른 사람을 불신한다. 이런 면만 보면 매우 좋지 않은 성격이 분명하다. 하지만 편집증적인 사고도 좋은 점이 있다. 위대한 작가들을 탄생시킨 것 또한 바로 그런 특성이 아닌가. 자고로 작가란 다른 사람들은 무심코 넘기는 것을 날카로운 인식으로 깨닫는 사람들이다.

- 예술가만 그런 것은 아니다. 스트린드베리식의 생각과 감정은 사실 우리 모두에게 친숙한 것이다. 그는 우리가 우연을 대하는 방식을 조금은 과장되지만,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연을 우연으로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말이다. 늘 들고 다니던 우산을 딱 하루 집에 두고 온 날 비가 쏟아지면 대체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화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예지몽을 꿔본 적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우리는 기껏해야 입으로만 우연을 인정할 뿐, 속으로는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을 다진다.

- 우리의 뇌는 기본적으로 '우연'이라는 말로 대충 넘어가려 하지 않는다. 겉보기에 중요해 보이지 않는 많은 것 속에 가치 있는 정보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추리 소설의 매력은 그런 것을 읽어내는 데 있고, 사건이 발생했을 때 범죄심리학자들은 하찮은 증거들에서 범죄의 과정과 범죄자의 프로필을 추정한다. 피해자의 상처, 범죄자가 무기를 든 방식, 도망가면서 열어둔 문 따위의 작고 우연한 증거들이 단서가 되어 수사관이 사건의 전형을 파악하고 범죄자를 추적하도록 도와준다. 모든 게 우연이라고 믿는 것은 그들이 해야 할 일들과 배치된다. 그리고 사건이 해결되면 그들의 예상이 옳았음이 증명된다.

- 학자들 역시 편집증적인 사고 없이 새로운 인식에 이르지 못한다. 연구의 목적은 우주의 질서를 찾는 것이다. 주의 깊은 관찰자가 그동안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았던 연관을 갑자기 인식함으로써 발견이 이루어진다. 사과를 땅에 떨어지게 하고, 행성이 태양 주위를 돌게 하는 힘이 동일하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당연하다. 그러나 뉴턴 때만 해도 이런 이론은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지금 우리가 부리를 비비는 비둘기와 연애편지를 연관시키는 스트린드베리의 생각을 접할 때만큼이나 말이다.

- 학문을 삐딱하게 보는 현상은 예부터 비일비재했다. 오늘날 초등학생들도 배우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발견한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도 수의 신비에 몰두했다. 그들은 숫자와 음악의 조화가 천체의 운행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파이 π 같은 숫자는 두 정수의 비율로 묘사될 수 없다는 발견이 그들을 커다란 혼란 속으로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 현대 자연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뉴턴 역시 초자연적인 것을 선호했다. 뉴턴의 개인 서가에는 연금술, 카발라학, 마술을 주제로 한 책들이 꽂혀 있었다. 뉴턴은 물리학 법칙뿐만 아니라 신의 뜻도 파악하고 싶었다. 뉴턴의 세계에서 우연이 있을 자리는 없었다. 스트린드베리와 마찬가지로 뉴턴은 우주를 모든 것이 연관된 전체로 이해했다. 뉴턴은 학자라면 지난 일들로부터 예감 이상의 것을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날의 자연과학자들에게는 황당하게 들리는 말이다. 그러나 뉴턴을 비롯한 많은 학자에게 이런 추진력이 없었다면 자연에 숨겨진 법칙을 알아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 속에 숨은 뜻을 발견하고자 하는 사람이 더 영리해지기 때문이다. 

 

- 우리는 카너먼이 내민 미끼를 기꺼이 물었다. 그렇다고 이 반응이 반드시 미련한 것은 아니다. 어떤 점에서는 굉장히 효율적이다. 예를 들어, 명백하게 딱딱 맞아떨어지는 곳에서 한 발짝 더 생각하는 것은 때로 시간 낭비다. 특히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 우리는 잘못된 신호에 쉽게 넘어간다.

 

- 심리학자들은 이런 효과를 터널 시야 Tunnel vision 현상이라고 부른다. 긴장하고 있으면 시야가 좁아지고, 생각을 점검할 여유도 없이 선입관에 얽매게 된다는 것이다. 그로써 우리는 시간을 조금 절약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의 생각이 금지된 지름길을 통해 잘못된 결론에 이른다. 우연한 일들 속에서 있지도 않은 의미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뇌는 우리가 어느 정도로 무지한지를 의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뇌는 그럴듯한 표지에 달라붙어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을 진실한 것으로 여긴다.  

- 어떤 사건이 동시에 발생할 때(기지국이 들어선 이후 두통이 생겼다) 우리는 자동으로 둘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으리라 추측한다. 그리하여 가설을 세운다. 그러나 흥미로운 단서는 있어도 증거가 없으므로, 가설에 대한 증거를 찾고, 가설을 더 확인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과정을 생략하고 마치 이미 증거를 찾은 듯이 행동한다. 우리가 휴대전화 전자파를 유해하다고 여기는 것 역시 가설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근거가 불분명한 가설의 안경을 쓰고 세계를 본다. 

- 생각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확하게 의식한다면 잘못된 판단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어떤 정보를 추측만으로 연관 짓고 있지 않은지, 아니면 적용 가능한 어떤 법칙을 발견했는지 살펴야 한다. 그러나 후자를 위해서는 그럴듯한 정보를 죽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인과성을 증명할 만한 설명이 필요하다. 

- 당신은 신의 섭리를 믿는가? 독일인의 절반이 섭리를 믿는다. 그리고 여성 중에서는 58%가 섭리를 믿는다고 대답했다. 그 밖의 사람들은 회의적인 태도로 인생은 신이 아니라 우연이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입장이다. 인간은 원래 변덕이 심한 존재니까 살다 보면 입장이 바뀌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입장에 한해서는 별로 흔들리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지금 운명을 믿는 사람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런 입장을 고수할 확률이 높다. 우연에 힘을 실어주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기이한 체험을 해도 그 입장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운명의 힘을 믿든, 우연의 힘을 믿든 그것은 변치 않는 특성인 듯하다. 

- 모어는 "이것은 물리학자들, 특히 우주물리학자들의 연구에서 증명된 바"라고 강조한다. 이런 방식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쌍둥이나 저택도 말이다. 저자는 그 두 가지를 원했고 우주는 그것을 배달해 주었다. 너무 환상적이라고? 하지만 주의사항이 있다. 한 번 주문했으면 원하는 것을 자꾸만 되풀이하여 생각함으로써 우주의 작업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행동은 에너지의 흐름을 차단한다고 한다. 이제 모어의 방법은 통할 수밖에 없다. 우연히 적절한 순간에 주차할 자리가 나면 결과적으로 우주가 응답한 것이다. 하지만 계속 초조하게 근처를 맴돌며 왜 주문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면 벌써 그르친 것이다. 이미 우주를 화나게 한 것이니까 말이다. 그것에 대해 저자는 분명히 경고한다. 

- 모어의 성공 비결은 '선택적 인지'에 있다. 어떤 친구를 생각했는데 때마침 그 친구에게 전화가 오면 통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선택적 인지라는 트릭이다. 사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자주 떠올린다. 이러저러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자주 한다. 그러고는 그런 짧은 생각을 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일상에 빠진다. 그러다가 금방 전화가 걸려오거나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면 '금방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화가 왔네' 또는 '그 일이 이루어졌네' 하고 신기해한다.  


- 꾀병 환자 중 집으로 돌려보내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꾀병 환자들은 병원에서 가끔 신경과민 증상을 보이는 것 외에는 완전히 평범하게 행동했다. 꾀병 환자들의 임무는 의료진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기록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꾀병 환자들은 은밀하게 기록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자 꾀병 환자들은 의사와 간호사들 앞에서 드러내놓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도 아무 의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의료진들은 꾀병 환자들의 메모 습관을 조현병에 동반되는 증상으로 보았다. 의료진들은 꾀병 환자들의 아주 작은 행동까지 이런 맥락에서 해석하여 한 꾀병 환자가 복도에서 발을 삐자 간호사들은 안 됐다는 듯이 "아, 오늘도 역시 신경이 예민하신가 보군요" 하고 말했다. 7일이 지나서야 병원에서는 한 사람을 퇴원시켰고, 52일 후에는 마지막 꾀병 환자까지 퇴원했다. 진단소견은 대부분 '조현병'이었다.

- 의료진들은 꾀병 환자들이 어떤 행동을 하든지 그 행동을 의심되는 질병과 연관 지었다. 꾀병 환자가 지루한 나머지 복도를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조현병의 동반 증상으로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해 있던 진짜 환자들은 속지 않았다. 진짜 환자들은 꾀병 환자들을 어떤 도식에 끼워 맞추고자 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이 꾀병 환자라는 것을 금방 알아챘다. 하지만 의사들은 진짜 환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사람들의 말을 어떻게 귀담아듣겠는가!

- 로젠한이 연구 결과를 발표하자 정신과 의사들은 로젠한을 마구 비난했다. 아무 이유 없이 정신병원에 오는 사람은 없다며 꾀병 환자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로젠한은 그 의견을 받아들여 실험을 다시 하겠다며, 한 정신병원을 지정하여 앞으로 3개월 동안 꾀병 환자를 보낼 테니 어떤 사람이 꾀병 환자인지 맞혀보라고 했다. 이어 3개월 동안 193명의 환자가 그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그중 꾀병 환자로 지목된 사람은 41명에 이르렀다. 실험 기간이 지나간 후 로젠한은 꾀병 환자를 단 한 명도 보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에는 꾀병 환자들이 올 거라고 생각한 의사들이 진짜 환자 다섯 명 중 한 명을 집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 선택적 인지, 즉 상황에 맞는 것만 보려는 경향은 뇌가 우연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트릭이다. 그리고 두 번째 트릭은 뜨거운 손을 가진 농구 선수나 건망증이 있는 룰렛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우연의 작용을 과소평가하는 습관이며, 세 번째 트릭은 인간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해석하는 습관이다.

- 많은 사람은 꿈이 미래를 예언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여러분도 꿈이 들어맞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니면 주위에서 꿈이 맞았다는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꿈이 맞아떨어진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금방 믿는다. 살아가면서 진짜로 예언적인 꿈을 꾸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 뇌는 주변 세계에서 끊임없이 뭔가 특별한 것을 찾고 있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특별한 것을 감지하는 탐지기가 있다. 그런데 이런 탐지기는 운명을 쉽게 믿는 '양' 타입의 사람들에게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염소'들에게는 그다지 어필하지 못한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우선 뇌 해부학을 살펴보자. 인간의 대뇌는, 좌뇌 우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고, 이 두 부분은 뇌량이라고 하는 두꺼운 신경섬유다발로 연결되어 있다. 흔히 좌뇌는 언어와 논리, 우뇌는 창조적인 부분을 관장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작가들은 자신들이 좌뇌로 생각한다고 믿으며,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자신들의 재능이 우뇌에 있다고 믿는다. 이런 생각은 고정관념으로 굳어져서 심지어 광고에도 활용된다. 하지만 실제로 좌뇌와 우뇌의 노동 분담은 그리 간단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는 언어도, 논리적 사고도, 감정도, 창조적 정신도 좌뇌 우뇌가 독점적으로 관장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오히려 좌뇌와 우뇌의 다양한 협연이 중요하다. 

- 그렇더라도 좌뇌와 우뇌가 담당하는 과제에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면 좌뇌가 좀 더 순진하다고 할 수 있다. 좌뇌가 주로 하는 일은 가까운 연관성을 분류하고 간단한 규칙을 찾는 것이다. 언어는 문법 규칙으로 이루어진 그물망이므로 좌뇌는 우리가 단어와 문장을 접할 때 특히 왕성한 활동을 한다. 그에 반해 우뇌는 더 교활하다. 우뇌는 딱히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은 관계를 감지한다. 그리하여 복잡한 그래픽 문양들 속에서 쉽게 윤곽이나 대상을 찾아낸다. 이렇듯 좌뇌와 우뇌가 다른 것은 특정한 신호 물질과 수용분자(수용체들의 미세한 농도 차이) 때문이라 추정된다. 이런 차이가 좌뇌와 우뇌가 각각의 정보를 특별한 방식으로 처리하게 한다. 

- 모든 것이 질서가 잡혀 있는 한 그것이 현실과 부합하는지는 좌뇌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맞지 않는 것은 끼워 맞춰진다. 미국의 신경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는 특별한 실험으로 이것을 보여주었다.  

- 가자니가의 실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체와 뇌가 어느 정도 대각선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우뇌는 왼쪽 팔을 조종하고, 왼쪽 시야가 보는 것들을 처리한다. 가자니가는 분리 수술로 더 이상 양쪽의 뇌가 정보를 교환할 수 없는 환자들에게 양쪽 시야에 다른 그림을 보여주었다. 우뇌에는(왼쪽 시야에는) 눈 쌓인 집을, 좌뇌에는(오른쪽 시야에는) 닭다리를 보여주었다. 그러고 나서 환자들에게 각각 카드를 한 세트씩 주고 그 카드 중에서 방금 본 큰 그림에 가장 잘 맞는 모티브를 고르라고 했다. 실험 대상자들은 눈 치우는 삽이 그려진 카드를 골랐다. 우뇌의 선택이었다. 좌뇌는 집도, 삽도 보지 못하고 닭다리만 볼 수 있었다. 이제 가자니가는 이렇게 물었다. "왜 삽이죠?" 그러자 대답은 좌뇌가 해야 했다. 수술로 인해 언어 처리는 좌뇌가 독점적으로 담당했기 때문이다. 논리를 좋아하는 좌뇌는 신속하게 대답했다. 어떤 환자는 "닭장을 치워야 하니까요"라고 대답했다. 

- 좌뇌가 접근할 수 있었던 정보(닭다리 그림과 삽에 대한 질문)에서 자연스레 나온, 논리적이지만 동시에 뜬구름 잡는 대답이었다. 순진한 좌뇌에게 의심이나 머뭇거림은 없었다. 좌뇌는 삽이 보이지 않는 것에 놀라지도 않았고, 답을 모른다고 하지도 않았다.

- 좌뇌는 특히 질서에 관심을 가지므로 우연에 대한 불신을 조장한다. 우리가 우연의 순서를 생각하거나, 확률의 법칙에 따른 일반적인 불규칙성을 우연으로 인정하기가 힘든 것도 좌뇌 때문이다. 반복은 좌뇌가 우연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좌뇌의 고정관념에 의하면 우연한 사건들은 최대한 무질서하게 배열되어 있어야 한다. 주사위에서 6이라는 숫자가 세 번 연달아 나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좌뇌가 손상되거나 충격을 경험한 환자들은 그런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다. 논리와 규칙에 몰두하는 좌뇌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 좌뇌는 세계가 때로는 아주 단순하며, 어떤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상황도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하다. 좌뇌는 끊임없이 그럴듯한 연관을 고안하면서 불확실함을 몰아내고자 한다. 때로 증권 딜러가 주가의 상승 트렌드를 예측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고객들의 돈을 날리는 것도 좌뇌가 체계와 규칙을 좋아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연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 때 우리는 대부분 좌뇌의 지휘 하에 있는 것이다. 

- 이 모든 것은 규칙을 배우고, 규칙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능력이 고도로 발달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대가다. 이런 능력 덕분에 생존했지만, 이런 능력 때문에 체계와 규칙에 매달리게 되며, 규칙을 찾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심지어 우리를 해롭게 하는 시점이 언제인지를 분별하기 힘들어진다. 미국의 철학자 게일린 플레처는 말했다. 
"설명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알게 되는 중요한 부분이다."
 
- 초자연적인 것을 믿고 우연의 의미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우뇌가 특별히 활동적이다. 이를 발견한 것은 피터 브루거인데, 그는 심리학 전공 학생들을 각각의 입장에 따라 '양'과 '염소’로 나누기에 앞서 학생들의 뇌파를 측정하였다. 그리고 연구를 하면서 뇌파의 측정자료를 확인했다. 브루거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양'들은 연상 능력이 탁월하다. 어떤 개념을 들으면 넓은 반경에 있는 다른 상상까지 일깨운다. 가령 '사자'라는 단어를 제시하면 직접 연관이 없는 단어들도 떠올려, '호랑이'를 지나 곧장 '줄무늬'로 뛰어넘는다. 이런 특징 덕분에 '양'들은 다른 사람들은 특별한 것을 찾지 못하는 곳에서도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회의론자들은 다르다. '염소'들은 '사자 갈기'처럼 명백하게 연결된 단어 쌍에는 반응하지만, 간접적인 연결은 하지 않는다. 

- 우뇌는 좌뇌에 비해 더 창의적이면서도 더 어두운 부분이기도 하다. 우뇌는 우리에게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두려워하게 한다.

 

- 해석도 마찬가지다. 뇌 속에서 사실들끼리의 연결이 이루어진다.
뇌는 끊임없이 틀과 설명을 찾는다. 이 과정 끝에 어떤 해석을 믿을지는 자유다. 가까운 사람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을 경우 죄책감에 시달릴 수도 있지만, 생명이 다한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할 수도 있다. 전자의 시각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고, 후자의 시각은 사람을 위로한다. 이처럼 하나의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시각에 달려 있다. 아이들에게는 동화가 필요하고 어른들에겐 신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삶에서 위기를 겪을 때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경험을 의미와 연관 지으려고 노력한다. 좋은 징조에 대해 기뻐하고, '운명의 눈짓'을 따르며 삶의 중요한 전환기마다 더 높은 계획이 작용했다고 믿는다. 

- 이런 태도는 해석과 사실을 구분하고, 상상의 산물을 결정의 근거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문제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려면 이중장부를 쓰듯이 하나의 경험을 두 가지 현실로 분류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으로는 점검 가능한 사실의 세계에 발을 딛고 사실만을 행동의 근거로 삼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해석과 환상의 영역으로 들어가 경험을 신비로운 시각으로 관찰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두 가지 시각을 모두 포기하지 않으면서 명백히 선을 그으라니. 말로는 굉장히 어려워 보이지만 실제로 해보면 훨씬 간단하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손쉽게 이중장부를 쓴다.  
 
- 하지만 실험 참가자들은 열 번 정도 카드를 뽑은 다음에는 고수익·고위험 묶음에서 카드 뽑는 것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의 손이 고수익·고위험 묶음을 가리키자마자 거짓말 탐지기에는 가벼운 식은땀과 가슴 두근거림이 나타났다. 이 시점에서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지 못했고 자신들의 신체 반응도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약 여든 번쯤 지나자 대부분 참가자는 자신이 왜 그렇게 느끼는지를 알고 게임의 규칙을 파악할 수 있었다. 

- 결국, 우리는 자신을 조종하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기 한참 전부터 통계에 따라 행하고 있다. 뇌가 의식적으로 규칙을 확인하기까지는 더 많은 자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확률을 평가하는 것은 규칙을 아느냐 모르느냐와는 상관없이 가능하다. 아이오와 카드 테스트에서 몇몇 뇌 회전이 느린 사람들은 끝까지 게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 

- 그러므로 예측 불가한 우연한 상황에서 우리가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위험을 피하는 직관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직관은 우리가 다른 것에 몰두하고 있을 때조차 우리를 위해 일한다. 이성에 근거한 결정을 하기에는 가진 정보가 충분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훨씬 적은 자료로도 작용하는 직관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 

- 하지만 직관은 때로 위험하다. 복잡한 상황에서는 우리가 내리는 빠른 결정이 최적의 것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직관적인 생각은 나중에 바꾸기도 힘들다. 의식하지도 못하는 가운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들을 충분히 안다 해도 감정은 이성보다 강하다.

- 연구자들은 이제 뇌가 어떻게 통계를 수행하는지를 가장 작은 단위인 뉴런의 차원에서 이해했다. 뉴욕의 신경학자 마이클 플랫과 폴 글림처는 성공 전망을 계산하는 것으로 보이는 세포들을 발견했다. 둘은 원숭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였는데 원숭이들이 과제를 수행하고 나면 한 번씩 한 모금의 주스를 상으로 주었다. 우리 역시 비슷하다. 일을 잘했다고 월급 인상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기껏해야 월급을 올려주지 않을까 희망해 볼 뿐이다. 

- 실험 결과 소비자 대부분이 절대적인 안전을 보장한다면 기꺼이 1.99유로를 주고 사려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에 반해 기존의 리스크가 줄어들기만 할 때는 돈을 절약하는 것을 우선시했다. 생각해 보면 매우 비논리적인 선택이 아닌가? 작년에는 똑같은 돈을 들여 지금보다 위험률을 더 많이 줄일 수 있었다. 당시에는 돈을 두 배로 내면 약물 중독이 될 확률이 1,000명 중 네 명에서 한 명으로 줄어들었고, 지금은 1,000명 중 한 명에서 0으로 줄어든다. 따라서 전자의 경우는 세 명이 줄어드는 데 후자의 경우는 한 명이 줄어든다. 후자의 약품 개발로 얻는 이익은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안전성을 그 자체의 가치로 높이 평가한다. 리스크를 완전히 없애는 것보다 대폭 줄이는 것이 실제로는 더 유익할지라도 말이다. 우리의 인지 기능은 현실을 왜곡한다. 가치를 절대적으로 평가하기보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경우에서 99센트 소독약은 1.99유로 소독약보다 세 배 해롭다. 그러나 두 번째 경우에서 99센트 소독약은 절대적으로 안전한 1.99유로 소독약에 비해 한없이 해로워 보인다. 이처럼 절대적인 안전에 대한 우리의 욕구는 이처럼 뿌리 깊이 박혀 있다. 


- 모든 위험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해도 걱정을 끼치는 요인이 된다. 불확실성이 우리를 얼마나 괴롭히는지는 신체 반응으로도 나타난다. 다가올 일을 알지 못하는 것은 스트레스 반응을 유발하여 맥박이 빨라지고, 숨이 가빠오며, 땀샘이 열리고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 같은 호르몬이 분비된다. 유기체는 불확실한 상황을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듯하다. 미국의 신경학자들은 쥐들에게 불규칙적으로 먹이를 주는 실험을 통해 쥐들에게도 이런 스트레스 반응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고 학자들이 쥐들을 굶긴 것은 아니었다. 쥐들은 먹이를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다만 다음 식사가 언제 나올지 정확히 알지 못했을 따름이다. 쥐들은 다음 식사가 주어지지 않을까 봐 두려워했던 것일까? 

- 사람들이 어떤 불행을 당연하게 여기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상당히 다른 반응을 자아낸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이 폭격당할 때 런던 근교에는 스트레스로 위궤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정작 폭격이 심한 도심에는 그런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도심에 사는 사람들은 독일군의 정기적인 폭격에 대비하여 매일 밤 방공호로 피신해야 했다. 하지만 근교에 사는 사람들은 계속 잠잠하다가 어쩌다 한 번씩 폭격을 당하는 바람에 폭격이 또 언제 있을지 몰라 더욱 마음을 졸여야 했다. 

- 우리는 고통스러울지라도 안전한 상황을 선호한다. 힘들어도 회사 내의 굳어진 위계질서에 복종하는 것이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권력 싸움에 휘말리는 것보다 마음이 편하다. 밥맛없는 상사 밑에 있을지라도 최소한 닥칠 일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동물에게서도 볼 수 있다. 미국의 신경학자 로버트 새폴스키는 세렝게티에 사는 야생 비비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서로 라이벌인 수컷 비비원숭이들을 마취액이 든 화살로 마취시킨 다음 혈액 검사를 했다. 그 결과 서열이 고정되어 있을수록, 매우 서열이 낮은 원숭이라 할지라도 혈관에 스트레스 호르몬이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와 반대로 혼란의 시기에는 수컷 비비원숭이들 모두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권력을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우두머리 원숭이들뿐 아니라 미래가 불확실한 하위 서열 원숭이들도 마찬가지였다.

- 인간의 경우 위험한 상황을 스스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지식이나 믿음이 불안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여줄 수 있다. 평소에는 시속 200킬로미터로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사람이 자동차보다 훨씬 사고율이 낮은 비행기 추락을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차나 오토바이는 스스로 조종하지만, 조종사 의자에는 낯선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다. 또한 스트레스의 정도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가령 바쁜 출근길에 타이어가 펑크가 나면 화가 치밀겠지만, 여유롭게 여행 중이라면 추억으로 남을 재미있는 에피소드처럼 느껴질 수 있다.

- 위험을 견디는 정도에도 개인차가 있다. 두려움 때문에 오토바이를 탈 생각도 못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토바이에 미쳐 있는 사람도 있다. 불안한 것을 싫어하고 피하느냐, 아니면 아슬아슬한 것을 즐기느냐 하는 것은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듯하다. 발달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눈에 띄게 낯선 상황을 싫어하거나, 그 반대의 행동을 했던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비슷하게 행동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리스크를 싫어하느냐, 리스크에 오히려 호기심을 느끼느냐는 타고난 성격에 달린 문제다.

- 하지만 상황이 불확실한 경우에는 누구를 막론하고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것은 이미 살펴본 것처럼 우리가 이윤과 리스크를 왜곡해서 인지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이 긍정적인 감정들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은 일상에서 끊임없이 게으른 타협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할 거리는 두려움에서 사랑하지도 않는 배우자와 마지못해 산다. 혼자 사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수십 년째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에 다니면서도 새로운 직장을 구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단 하나,
자신의 의지로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한 걱정을 멈추는 것이다.


- 에픽테토스




 


- 전염병이 무서운 것은 어떤 규명할 수 있는 틀이 없이 누구나 감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테러가 사회를 그리도 경악하게 만드는 것은 비단 테러로 인해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기 때문만은 아니다(사망자 수로만 따지면 2001년 미국에서 교통사고 사망자는 9.11 테러의 희생자보다 14배 많았다). 테러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인 희생자를 내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람이 죄도 없이 우연히 희생당하면 우리는 충격에 휩싸인다. 그러나 재난 없는 사회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해마다 독일에서 수천 명이 교통사고로 죽는 것을 평범한 일로 여긴다. 가까운 누군가가 이런 불행을 당할 땐 기가 막히고 왜 하필이면 그 사람이어야 했는지 묻는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절망한 나머지 우연의 법칙상 결국 누군가는 그런 고통을 당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 정보학의 아버지 앨런 튜링은 이미 이런 사태를 예견했다. 튜링은 어떤 상황에서도 프로그램은 오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입증했다. 오류 가능성을 완벽하게 테스트하려면 사용자는 애초부터 소프트웨어로 얻을 수 있는 모든 지식을 소유한 상태여야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하다. 성능 좋은 컴퓨터일수록 데이터는 점점 키보드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닌 기계 자체에서 나오게 마련이다. 기계는 계속적으로 사용자와는 무관한 삶을 전개해 나간다. 튜링의 통찰은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이 어째서 더 잦은 고장을 유발하는지를 여실히 설명해 준다. 세계적인 인터넷 연결망과 더불어 컴퓨터의 복잡성은 한 단계 올라간다. 장애가 전 지구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될 수 있게 되었으며, 사용자는 어떤 데이터가 자신의 컴퓨터에 도달하는 것을 거의 막지 못한다. 

- 소프트웨어에 추가적인 안전장치를 다는 것은 별 도움이 안 된다.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모든 코드는 컴퓨터를 더욱 부풀리고 새로운 오류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튜링도 인식했던 이유에서 프로그램을 감시하는 것은 거기서 얻고자 하는 결과를 계산하는 것보다 더 소모적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컴퓨터가 때때로 우연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나마 컴퓨터가 그리 자주 다운되지는 않는다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 한 걸음 한 걸음 돌다리를 두드리며 가는 모질라의 방법 다음으로 파괴자인 우연을 꼼짝 못 하게 하는 두 번째 전략은 바로 그것이다. 오류에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 오류 또는 실수에 관용적인 사람은 고장을 배제할 수 없음을 염두에 둔다. 책임 보험에 들거나 안전벨트를 매는 것은 실수를 관용하는 행동이다. 고양이가 키보드 위를 뛰어다녀도 다운되지 않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엔지니어나 높이 매달린 밧줄 아래 그물망을 쳐놓는 서커스 단장도 마찬가지다. 그들 모두는 우연을 배제하지 않으며, 우연으로 발생할 달갑지 않은 결과를 최소화하고자 한다. 

- 더 복잡한 시스템에서 오류를 관용하는 것은 곧 시스템 붕괴를 막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해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차단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위험 물질을 취급하는 공장에서는 각각의 위험 물질 취급 센터들을 서로 멀찌감치 떨어뜨린다. 그리하여 어느 한 군데에서 폭발사고가 나도 다른 건물까지 피해를 입는 일을 막는 것이다. 새로운 탄두 개발에 대비한 미 해군의 조처도 비슷하다. 새로운 전함은 만약 탄약고에 폭격을 맞더라도 전투 능력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진다. 폭발물을 취급하는 공장이나 전함에서 완벽한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완벽한 안전성을 목표로 삼는 대신 가능하면 위험이 확산되지 않도록 오류에 관용적인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다. 이런 전략은 다른 복잡한 체계에도 적용된다. 그에 반해 리스크 제로에 대한 도전은 더 위험할 수 있다. 

- 우연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려면 우리는 늘 파괴자인 우연의 존재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약간 불안할 때가 가장 안전하다.

- 우리는 가끔 오래 생각하지 않고 선택한다. 그리고 어떤 선택이든 뇌가 주도권을 발휘한다. 하지만 뇌의 결정은 너무 성급한 경우가 많다. 넘치는 자료를 통제하는 동시에 부족한 정보를 상쇄하기 위해 뇌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확신하는 척한다.

- 이러한 뇌의 특성을 안다고 해서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을까? 많은 심리학 실험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실험 대상자들은 실생활과 관련된 과제를 받았을 때, 그 과제에 대해 충분히 알고 생각의 함정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알았음에도 그 함정에 빠졌다. 

- 정보가 주어진다고 뇌가 그것을 모두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뇌는 정보가 너무 많아지면 정보를 단순화해 스스로를 보호한다. 하지만 일이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면 단순화하기도 어렵고, 다양한 현실을 모두 존중하기도 어렵다. 그리하여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선 이들은 혼란스러워진다. 아는 게 너무 적어도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없지만, 너무 많이 알아도 똑같다. 복잡한 상황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모두 생각하려 하면 최악의 경우 어떤 행동도 할 수 없게 된다. 건초 두 더미 사이에서 한 더미를 먹고 다른 더미를 남겨둘 논리적인 이유를 찾지 못해 굶어 죽었다던 중세 논리학자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말이다. 

- 그러므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때로 실수를 저지르고자 하는 용기가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럴 때도 무조건 직관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 실수가 발생할 확률과 그 결과를 제한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 그중 하나는 맨 처음 떠오른 방안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 방안이 최소한의 요구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그보다 더 나은 대안이 있느냐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신속하게 여행 목적지를 결정해야 한다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몇 가지 기준을 생각한다. 가령 '따뜻한 곳일 것', '조용한 곳일 것',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일 것', '출발한 지 여섯 시간 이내에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 등을 최소한의 기준으로 정할 수 있다. 그런 다음 여행 상품을 죽 훑어보다가 이런 기준에 적합한 상품이 나오면 고민을 끝내고 그 상품을 예약한다. 그러면 이제 유쾌한 휴가를 보낼 좋은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더 싸고 더 멋진 상품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상품을 고르려면 시간이 더 들고 골치가 아프다.

- 불확실한 상황에서 단순한 레시피에 따라 빠르고 확실하게 결정하는 방법을 인지심리학자들은 '단순한 발견'이라 부른다. 이런 식으로 여행지를 고르는 것이 석연치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복잡한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이성적인 방법일지 모른다. 그리하여 루프트한자 항공사도 조종사들이 위기를 맞았을 때 이 방법으로 결정하도록 훈련한다. 비행기에 화재가 발생하거나 동력장치가 멈추거나 다른 위험한 상황에 부딪히면 조종사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해결법을 검토하여 그 방법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안전하다면 곧장 그 방법을 택한다. 승객들이 힘들거나 기체에 손상이 가도 개의치 않고 말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어떤 방법이 나을까 계속 고민하다가 최선의 결정을 내리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나은 방법을 찾느라 자칫 때를 놓치면 수백 명의 생명이 희생될 수 있다. 

- 복합적인 문제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것을 무시하는 것이 종종 성공의 열쇠가 되어준다. 단순한 사고만이 승산이 있는 것이다.

- 그렇다면 이런 방법을 일상생활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우리가 새로 부엌 싱크대를 고를 때나, 집을 옮기려고 할 때, 휴가지를 선택할 때 이 일을 완전히 우연에만 맡겨두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우선 신중한 검토를 위해 중요한 체크리스트를 작성해야 한다. 등반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심근경색 환자를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는 기준이 명확하지만 일상에서는 기준이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은 상당히 잘 알고 있지만, 원하는 것은 그리 잘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안이 최소한 어떤 요구를 충족시켜야 할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당연한 소리처럼 들리지만 어떤 선택에 앞서 우리는 거의 이런 과정을 생략한다.

-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리로 여행 가는 것 같으니 나도 그리로 가겠다는 것은 그리 현명한 기준이 아니다. 유행하는 휴가지는 사람들로 붐비게 마련이고 호텔과 레스토랑의 가격은 마구 치솟은 상태일 것이다. 여행 전단지에 실린 사진을 보고 그곳의 아름다움에 반해 휴가지로 결정하는 것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그곳이 붐비는 거리옆에 있을지 아니면 시끄러운 디스코장 옆에 있을지는 사진에 나타나 있지 않으니까 말이다. 

- 따라서 선택의 첫 번째 단계는 알맞은 기준을 정하는 것이다. 심장병 전문의나 산악 등반가들의 경우는 전문가들이 기준 선정 작업을 대신해 주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이런 과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 선택의 두 번째 단계는 우리가 이런 기준을 도구로 정말로 결정할 수 있을지 자문하는 것이다. 필요한 정보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약간의 노력으로 정보를 구할 수 있을까? 그게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잘못된 기준을 택한 것이고 한 단계 후퇴해야 한다. 여행지 사람들의 친절도는 여행의 즐거움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객관적이고 비교 가능한 정보를 얻는 것은 힘들다. 그러므로 당장 휴가를 떠나려는 사람이 호텔 직원들의 친절도를 기준으로 여행지를 결정할 수는 없다.

- 인기 있는 컴퓨터 게임 '심시티'를 아는가? 심시티에서 게이머는 가상도시의 시장이 되어 도시를 관리하고, 수도가 끊기는 것, 산업의 이전, 폭력 시위 등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야 한다. 이런 관리가 어려운 것은 시장으로서 자신의 결정이 가져다줄 결과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과를 예상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사전에 얻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도시는 규모 있는 대기업처럼 굉장히 얽히고설킨 조직이기 때문이다. 가령 세율을 올리면 단기적으로 시의 재정은 풍부해질 테지만, 동시에 불만을 느낀 시민들이 이사를 가고 이사 갈 수 없는 사람들은 지출을 줄이는 바람에 경제가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세율을 높이는 방법은 한동안은 효과가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전보다 더 형편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 밤베르크의 심리학자 디트리히 되르너는 실험 대상자들에게 단순한 버전의 심시티를 몇 게임 하게 했다. 실험 대상자들은 경제적으로 곤경에 빠져 있는 가상의 소도시 로하우젠을 경영해야 했고, 되르너와 동료들은 가상 시장들이 어려운 상황을 어떤 전략으로 타개해 나가는지 관찰했다. 이 실험을 통해 되르너는 생각의 함정에 대해 두 권 분량의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실험 대상자들은 시시콜콜한 정확성을 중요시하고, 사건의 동시 발생과 연관을 혼동하며, 제어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갖는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행동양식을 보였다.

- 더욱 인상적인 것은 많은 실험 대상자의 옹고집이었다. 이들은 한 번 결정을 내리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끝까지 밀고 나갔다. 상황이 오래전부터 그들에게 다른 메시지를 던지고 있음에도 말이다. 자신의 오류와 잘못을 인정하기 싫은 것 같았다. 차라리 계속 밀고 나가다가 상황이 극도로 나빠지면 냉소주의 같은 자기 방어 전략으로 회피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 당연히 유능한 시장과 무능한 시장이 있었다. 어떤 시장들은 짧은 시간 내에 로하우젠을 폐허로 만들었으며, 두 번째 세 번째로 주어진 기회도 놓쳐버리고, 시를 경제적으로 파멸에 이르게 하였다. 그에 반해 어떤 시장들은 로하우젠을 점점 번성하는 도시로 만들었고 다른 비슷한 게임에서도 뛰어난 경영능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지능, 교양, 나이, 성별 차로는 이들의 성공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 무능한 시장과 유능한 시장의 차이는 예측할 수 없는 일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유능한 시장들은 과제를 더 작게 세분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도시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구했고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자문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들을 줄 알았다. 그리하여 유능한 시장들은 목표를 위해 무능한 시장들보다 더 자주, 더 많은 결정을 내렸다. 대신 각각의 결정이 미치는 영향력은 작았다. 유능한 시장들은 한 걸음 한 걸음 단계를 밟아가면서 예기치 않은 일에 최선의 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 이렇듯 끊임없이 환경에 적응해 가는 것을 기술에서는 피드백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 원칙을 이미 자주 만났다. 피드백은 종종 예기치 않은 행동을 유발한다. 어떤 작용을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눈덩이 효과처럼 어떤 작용을 강화시키는 피드백을 긍정적인 피드백이라 한다. 증권에서 나타나는 히스테리 증상이 한 예다. 투자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다 그걸 산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주식을 사고 그 주식의 가격은 거품이 꺼질 때까지 계속해서 오른다.

- 하지만 반대의 경우가 나타나기도 한다. 바로 부정적인 피드백이다. 부정적인 피드백은 시스템을 안정시킨다. 부정적인 피드백은 사건을 강화시키지 않고, 반작용 효과를 유발한다. 차가 너무 오른쪽으로 향해 있을 경우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라디에이터 내부의 정온기도 그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온도가 너무 오르면 난방을 끄고, 온도가 정해진 수치 이하로 떨어지면 다시 난방을 켠다. 따라서 부정적인 피드백은 예치기 않은 것에 반대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무기로 우연을 쳐부순다.

- 로하우젠의 유능한 시장들의 성공 요인은 바로 부정적인 피드백에 기초한다. 시스템이 선로를 이탈하자마자 부정적인 피드백을 이용해 재빨리 반대 방향으로 조종하면 달갑지 않은 우연은 그리 커다란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다. 물론 불안한 상황에서는 어떤 행동이 부정적인 피드백으로 작용할지, 아니면 달구어진 상황을 더 달굴지를 예측하기 힘들다. 바로 그렇기에 작은 결정을 자주 하고, 불리할 경우 곧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그 영향을 정확히 추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 이런 방법이 복잡한 상황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 되어줄 때가 많다. 처음에 충분한 계획을 세우는 데 필요한 정보가 존재하지도 않고, 얻을 수도 없다면, 도중에 시도하고 실수하는 행위를 되풀이하면서 그런 정보를 쌓아갈 수밖에 없다. 별로 영향력이 없는 작은 결정을 자주 거듭하다 보면 각각의 선택이 유발할 수 있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제한할 수 있다. 작은 걸음과 부정적 피드백의 원칙은 게임 이론에 입각한 것이다. 손해를 가능한 한 줄이는 방향으로 행동하라. 그러면 실수를 용인하면서 미지의 영역으로 돌격할 수 있다. 

- 우리는 진화와 관련해서도 이런 작은 걸음의 유익을 본다. 자연이 상상을 초월한 복잡한 유기체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작은 걸음의 원칙 덕분에 가능했다. 건강한 국민 경제도 이런 원칙으로 기능한다. 오스트리아의 노벨상 수상자 하이에크는 시장경제가 계획경제보다 우위에 있는 이유는 바로 이렇게 단계적으로 더듬으며 나아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장경제에서는 모든 공급자와 수요자가 나름대로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이 계속 시장에 반영되는 반면, 계획경제는 오류를 품고 있을 수밖에 없는 장기적인 전망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 우리는 작은 걸음으로 겸손하게, 하지만 성공적으로 전진하는 것에 그리 익숙하지 않다. 우리는 최종적이고, 단호한 해결책을 찾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기대는 비현실적이다. 삶을 변화시키려고 하거나 변화시켜야 할 경우 작은 걸음으로 가는 것이 최상의 길이다. 삶을 운명적으로 확 바꾸어버리는 것은 영화감독이나 낭만적 작가들이 불어넣은 환상이다. 현실적으로는 너무 위험한 일이다. 

- 한쪽의 손실은 다른 쪽의 이윤으로 만회된다 이렇게 리스크를 분산함으로써 안전성을 선물 받을 수 있다. 이런 전략을 구사하는 사람은 어떤 말이 나가떨어지고 어떤 말이 승리할지 미리 알지 못해도 살아갈 수 있다.

- 불확실성이 만연한 곳에서 우연의 힘을 믿어버리는 것은 이성적인 선택이다. 우연을 믿는 것이 최상의 전략이라는 것은 수학적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행운의 여신에게 결정을 위임하는 사람은 최소한 한 가지 실수, 즉 선입관에 얽매이는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연구자들은 오늘날 특히 어려운 문제에 몬테카를로 법이라는 수학적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몬테카를로 법은 카지노로 유명한 지중해 도시의 이름을 딴 것으로 바로 우연이 결정하게 하는 방법이다. 우주의 별무리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든, 국민 경제를 전망하는 것이든 기본적인 사고는 같다. 추측에 근거하여 맞는지 틀렸는지도 모르는 이론을 세우면 나중에 필연적으로 오류가 발생한다. 반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우연을 전제하면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에 나오는 답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불분명할 뿐이다.

- 우연 발생기는 예기치 않은 것을 흉내 내는 특별한 프로그램이다. 이런 식의 우회로를 거치는 방법은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어김없이 유용한 결과를 안겨준다.

- 이런 이유에서 체스 컴퓨터도 서로 막상막하로 보이는 여러 가지 수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우연 발생기를 가지고 있다. 물리학자 프랭크 티플러는 결정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우리의 뇌 속에도 우연발생기가 갖추어져 있을 거라고 추정한다. 물론 신경생물학자들은 아직까지 뇌 속에 그런 센터가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를 특정 방향으로 인도하는 사소한 일들은 바로 이런 기능을 한다. 우리가 결정을 앞두고 그 결정이 초래할 결과를 그리고 있는 순간 구름 속에서 햇살이 빠끔하게 비쳐 들면 우리는 전화기를 들고 오랫동안 고민해 일을 승낙한다. 그런 작은 우연이 없이는 삶을 꾸려나갈 수 없다. 

- 어떤 일을 조망할 수 없음을 인정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행운의 여신을 믿기는 정말 힘들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진로를 주사위 몇 개나 동전 하나에 위임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의 현실 인식에 커다란 구멍이 있고, 그럼에도 결정해야 한다는 것! 뇌는 우리에게 거짓된 확신을 불어넣으면서 이런 불쾌한 사실을 은폐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은근한 불쾌감을 느낀다. 

- 우리 조상들은 이런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신탁을 구한다든지, 점쟁이나 예언자를 찾아간다든지 했다. 마약에 취한 여사제가 모호한 언어로 던지는 충고들은 동전 던지기나 다를 바 없이 우연하다. 그러나 동전 던지기와 비할 수 없는 안도감을 준다. 높은 힘과 접촉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새들의 비행을 해석하고, 제비를 뽑고, 점을 치고... 결국 우연에게 결정을 맡기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바로 그렇기에 이 모든 방법은 정당성을 가진다. 

- 무엇보다 그런 방법은 우리가 접어든 길이 별로 유리하지 않은 것으로 입증될 경우 후회를 덜어준다. 우리는 '살면서 점점 영리해져 간다'는 것을 알기는 해도 종종 과거에도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고려할 수 잇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하면서 괴로워한다. 물론 그것은 불합리하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다르게 결정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탁에 그 책임을 위임하는 사람, 또는 이런 류의 트릭이 없이는 최적의 결정을 내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런 자기 비난에 빠질 필요가 없다. 

- 사람들은 때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으면 하고 꿈꾸어본다. 모든 것을 다 안다면 정말로 좋을까?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아는 사람에게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어느 폐가의 지하실에 가면 '알레프'가 있다는 말을 듣는다. 알레프는 온 우주를 비추는 작은 자두만 한 물건이다. 알레프의 견딜 수 없는 발광력을 견뎌내는 사람은 세계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단숨에 볼 수 있다. 그러면 그에게 더 이상의 우연은 없어지게 되는 셈이다. 지인은 우리의 주인공을 어두운 계단 아래로 데리고 가더니 주인공에게 똑바로 누우라고 명령한다. 그러자 문이 닫히고 우리의 주인공은 어두운 곳에서 홀로 있게 되는데, 갑자기 무지갯빛의 구슬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주의 모든 일이, 대양의 파도와 심해에 사는 고기들의 생존 경쟁과 태양이 뜨고 지는 모습과 모든 전쟁과 무수한 도시민들의 표정과 그들 체내 장기의 신진대사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주인공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난다. 

- 그러나 다시 밝은 거리로 나온 주인공은 자신이 단단히 속았음을 깨닫는다. 주인공을 알레프에게 인도한 사람은 "이런 계시를 받은 것에 대해 100년 안에는 내게 보복할 수 없다"라고 조소한다. 이제 보르헤스의 주인공은 모든 것을 안다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를 경험한다. 모두가 아는 얼굴들이며, 자신의 삶이 앞으로는 단지 반복에 불과할 것임을 안다. 뜻밖의 일이 전혀 없는 삶! 잠 못 이루는 밤 주인공은 자신이 본 것들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 가벼운 기분으로 밤사이에 멋진 해결책을 찾아냈음을 기뻐한다. 그가 찾은 해결책은 바로 '잊어버리는 것'이다. 

- 보르헤스는 인간 문화의 환상을 탐구하는 환상 문학의 대가다. 인간 문화가 품은 가장 오래된 환상은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소망이다. 예언을 통해, 신탁을 통해, 마법을 통해 더 높은 존재와 연결하여 지식의 진보를 이루고자 하는 시도는 인간의 사고만큼 오래되었다. 이성의 한계에 도전하는 이 모든 돌격 뒤에는 두 가지 모티브가 존재한다. 그리고 기분에 따라 그중 하나가 우위를 차지한다. 한 가지 모티브는 자신이 누구이며, 우리 앞에 무슨 일이 놓여 있는지를 알고자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자신과 자신의 환경을 이해하고 싶어 한다. 또 한 가지 모티브는 자신의 삶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이다. 무지에 대한 반란은 우연에 대한 반항이다. 

- 우연과 불확실은 자유의 자식들이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의 편리함과 전염병과 기아로부터의 보호, 무엇보다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누리는 대가로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다. 이 모든 혜택은 고도로 발달한 사회에서만 누릴 수 있고, 그런 사회에서의 삶은 어쩔 수 없이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다. 우연이 그다지 커다란 역할을 하지 못하는 과거의 사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돌아가려고 할까? 전화와 중앙난방을 포기할 수 있을까? 마취 없이 치과 치료를 받는 시대로 돌아가려고 할까?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조망 가능한 삶을 동경한다. 우연이 불안감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 세계를 이해하고 상황을 주관하고 싶은 욕구는 삶을 유쾌하게 만드는 많은 발명품을 탄생시켰으며, 예견할 수 없는 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상인들이 속주머니에 성공을 부른다는 부적을 지니고 다니고, 정치인들이 점쟁이들을 찾아다니고, 심지어 아주 이성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조차 재수 없는 행동을 자제하는 등의 태도도 이런 맥락에서 생겨났다. 

-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통하지 않을 때 우리는 최소한 삶의 놀라운 변화들이 사실은 하늘이 정한 운명을 따른 것이라고 믿는다. 질서는 우리를 안심시킨다. 우리 스스로는 영향을 끼칠 수 없을 때 어쨌든 하늘의 섭리가 우리를 이끈다는 생각에 안도하는 것이다. 영국의 물리학자 존 배로는 다음과 같이 경탄했다. 
"현대 민주 시민 중 많은 수가 자신이 모든 생각과 행동을 주관하는 하늘의 독재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전혀 반감을 갖지 않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 우리가 불확실한 것에 대해 혐오를 느끼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불확실함이 제공하는 기회를 과소평가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서는 우연이 필요하다. 확신이 너무 강하면 아이디어가 배태되지 않는다. 일본 선불교에서는 그런 현상을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한다. 제자가 해탈한 스승의 집을 방문했다. 스승은 제자의 찻잔에 차를 따르며 이미 차가 가득 차 흘러넘치는데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제자가 말했다. "잔이 가득 찼습니다. 차가 흘러넘치지 않습니까." 그때서야 스승은 찻주전자를 내려놓더니 제자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도 이 잔처럼 생각으로 가득 차 있네. 먼저 잔을 비우지 않고서야 어떻게 배울 수 있겠나?"

-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불확실한 상태를 견뎌야 한다. 뇌는 상황을 단순화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동시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정보는 몇 개 되지 않기에 우리의 뇌는 우리가 접하는 모든 것을 가능하면 빨리 알고 있는 틀로써 해석하려고 한다. 그것은 중요하다. 우리가 매번 어떤 현상의 배후에 숨어 있는 것을 일일이 숙고하게 되면 우리의 생존능력은 아주 빠른 속도로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선지식을 이용한다. 빛나는 원은 우리가 켰다 껐다 할 수 있는 전등이고, 벽에서 움직이고 있는 어두운 평면은 그림자다. 마약 복용 따위로 이런 메커니즘이 고장 난 사람은 자신의 집에서조차 갈피를 잡지 못한다. 천장의 등이 어느 순간에 UFO로 보이고, 그림자가 갑자기 위험한 형상으로 다가온다. 

- 이렇듯 빠른 판단은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지만, 어떤 문제에 새로운 해결책을 찾으려 할 때는 생각을 가로막는다. 뇌가 친숙한 대답에서 떨어져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재적인 아이디어는 천재의 뛰어난 회색 세포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낭만적인 생각은 틀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뉴턴이나 아인슈타인도 신대륙으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외부 자극을 필요로 했다. 그들의 탁월한 업적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다빈치와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동시대인들보다 아는 게 더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성급한 답변으로 만족하지 않았고, 계속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이 무심코 넘기는 것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들은 고정관념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부부 심리학자인 조던 피터슨과 셸리 카슨은 실험을 통해 지능이 비슷한 사람이라도, 뇌가 데이터 처리 과정에서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정보들을 억압하지 않을수록 더 창조적이며 새로운 경험에 열려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 옛 중국의 철학서인 <주역> 역시 우연한 자극을 이용한다. 조언을 구하는 사람은 49개의 톱풀 줄기 다발에서 반복해서 몇 개를 뽑아야 한다. 그러면 결과는 주어진 도식에 따라 총 64가지의 선 모양 중 하나에 해당되고, 이 모양에 변화의 책, <주역>에 나오는 짧은 경구가 주어진다. 그러면 이런 경고를 숙고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 레오나르도의 벽에 찍힌 점이나 단어의 제비뽑기에서처럼 여기서도 굶주린 자가 자극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선택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사고의 자극을 선택할 수 있다면 다시금 자신의 익숙한 생각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 우연을 영감의 원천으로 이용하는 데 복잡한 신탁은 필요하지 않다. 기대하지 않은 자극들은 어디에나 있다. 내가 아는 그래픽 디자이너는 아이디어가 바닥나면 책상 위에 있는 잡지들을 아무렇게나 뒤적인다. 우연히 눈에 띄는 텍스트나 그림에서 영감을 얻기 위해서다. 거주하는 도시의 낯선 구역을 산책하는 것도 비슷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예부터 예술가들과 작가들은 긴 여행을 하면서 낯선 세계와의 만남을 추구했다. 괴테는 이탈리아를 여행했고 쇼팽은 마요르카를, 폴 클레는 튀니지를 여행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낯선 환경이 주는 자극들을 새로운 스타일을 개발하는 데 이용했다.
 
- "이 두려운 흥분은 견딜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란다."
여행을 즐겼던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썼다. 그렇다. 우리는 서로 상반된 감정으로 불확실한 상태를 대한다. 불확실은 스트레스이면서 동시에 경탄과 기쁨을 예비한다. 바로 이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행의 긴장과 불안을 기꺼이 감수한다. 그리고 복권을 사거나 카지노에 간다. 인간이 어리석어서 복권을 사거나 도박한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승산이 없는지를 잘 알고 있다. 

- 마크 트웨인은 "길에서 주운 1달러가 일해서 번 1달러보다 반갑다"고 말했다. 뜻밖의 일은 뇌 속에서 도파민을 분비시킨다. 그리고 이 도파민은 주의 집중을 조종하고 회색 세포들의 학습을 촉진하며 쾌감을 느끼게 한다. 중요한 사실은 이 호르몬은 유쾌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분비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소망이 이루어질지 말지 확실하지 않을 때 도파민이 가장 강하게 분비된다. 그러고 보면 게임이든 사랑이든 약간 불확실할 때 느끼는 설렘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감정임에 틀림없다. 
 
- 그러므로 우연에 더 많은 여지를 허락하며 사는 것이 좋다. 우리가 우연과 자꾸만 거리를 두는 이유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뿐만 아니라 바로 눈에 보이는 이득을 붙잡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에게 불필요한 사람과 비전이 없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효율성을 추구하는 태도가 지나치면 많은 기회를 잃게 된다. 우리는 제한된 인식을 가진 존재다. 익히 아는 것에 대해서만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낯선 경험이나 낯선 사람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옳은 행동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순전히 선입관 때문에 낯선 사람과의 만남을 포기하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사생활에서건 조직에서건 의식적으로 단기적인 이익을 포기해 보는 것이 좋다. 시간과 자원을 효율적으로만 사용하지 않고, 우연에게도 일부 맡겨보는 것이다. 만약 이 제안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면 이런 시도 역시 장기적인 지식과 이윤을 위한 투자로 여겨라.
 
- 영국의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먼은 다음 실험에서 우리가 얼마나 장님처럼 지내는가를 보여주었다. 와이즈먼은 실험 대상자들에게 신문 한부를 주면서 신문에 실린 사진이 몇 개인지 세어보라고 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사진을 세는 데 약 2분이 걸렸고, 몇 사람은 처음에 센 게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느라고 약간 더 걸렸다. 하지만 와이즈먼이 둘째 면에 엄지손가락만 한 큰 글씨로 "세는 것을 중단하시오. 이 신문에는 43개의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라고 써놓은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더구나 참가자들은 쉽게 벌 수 있는 돈을 놓치기도 했다. 몇 장 뒤로 가서 와이즈먼은 더 큰 글씨로 "세는 걸 중단하시오. 그리고 실험 주최자에게 이 문장을 읽었다고 말하고 100파운드를 받으시오"라고 써놓았던 것이다. 이 문장은 한 면의 거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매우 크게 쓰여 있었다. 하지만 사진을 세느라 정신이 없는 실험 대상자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온통 사진에만 주의 집중을 하고 있었던 탓이다.
우리는 다른 것은 다 백안시할 정도로 어떤 목표에 시선을 고정시킬 때가 많다. 하지만 우연을 활용하는 것은 길의 좌우를 살피는 것이다. 

- 뇌는 가능하면 적은 자료를 처리하기 위해 현재의 눈으로 볼 때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정보를 그냥 흘려보낸다. 그리하여 우리는 손안에 쥔 것도 못 보고 지나치기 일쑤다. 뜻밖의 것이 지닌 의미는 과소평가된다. 우리는 우리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수 있는 관찰들을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비추어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연구의 중요한 발견은 선입관에 희생당할 위험이 별로 없는 문외한이나 신참내기의 몫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 물론 기존의 지식과 목표는 중요하다. 기회는 무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을 바탕으로 예기치 않은 것이 떠오르는 것이다. 따라서 예기치 않은 것을 창조적으로 대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동시에 늘 이런 태도의 한계를 의식해야 한다. 우연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들 간의 새로운 연결을 보여주고, 틈새를 채우면서 우리를 도울 수 있다. 계획적인 행동과 예기치 않은 것을 수용하는 태도는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다.   

 


- 우리는 시간을 앞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처럼 상상한다. 우리의 삶도 그렇게 일직선으로 똑바로 나아가기를, 기업의 성장과 사회의 진보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원하는 것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심한 계획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자책하거나 다른 사람을 비난하느라 여념이 없다.

- 시간을 똑바로 전진하는 것으로 보는 사고는 서구 문명에 깊이 뿌리 박혀 있다. 서양 철학자들은 2,500년 전부터 목적 지향적인 사고를 설교해 왔다. 하지만 시간을 일직선으로 보는 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다. 가령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시간을 원으로 상상한다. 그들에게 세계는 영원히 돌고 도는 것이다. 존재했던 모든 것은 언젠가 새로이 소생하게 되며 먼 미래와 먼 과거는 함께 녹아든다.

- 학문도 더 이상 시간을 직선적으로 보지 않는다. 자연이 우연의 토대 위에 지어진 것임을 알게 된 20세기의 물리학자들은 시간을 화살과 같은 것으로 보는 견해와 결별했다. 시간을 흐르는 것으로 느끼는 것 역시 우연의 작용 덕분이다. 다윈은 보다 훨씬 이전에 어제와 내일에 대한 인간의 시각을 통렬하게 변화시켰다. 생명의 진화에서 시간은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화살이 아니다. 오히려 점점 가지가 무성해지는 나무와 비슷하다.  

- 꼬불꼬불한 인생길과 친해지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생각이 우리의 익숙한 사고와 위배되기에, 사람들이 다윈에 대해 분노하고, 양자물리학자들이 자신들의 연구 결과에 대해 경악하는 일은 이해할 만하다. 우리는 시간이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이 운하가 놓인 강처럼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우리는 이런 생각에 현실을 끼워 맞추고, 이런 고집을 위해 값비싼 대가를 치른다. 물론 우리가 어떤 뜻을 품고, 그 뜻을 추구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진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래전에 다른 행동양식을 추천하는 현실을 도외시하고 너무 심사숙고한 계획에만 집착하다 보면 그 계획은 자칫 함정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계획은 현실에 눈멀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 그런 잘못된 길에 빠지지 않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이 불확실한 상태에 있음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불확실한 상황은 우리가 보았듯이 즐거운 설렘을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불확실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그리고 이것을 피하려고 우리는 거짓된 확신을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아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 우리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과대평가하는 반면 놀라운 것을 유익하게 활용하는 우리의 재능은 과소평가한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결국 인간을 다른 생물과 구별 짓는 것은 불확실한 환경에서 최상의 것을 만들어내는 특별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동물들이 인간보다 한 수 위일 때가 많다. 가령 뱀장어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대양을 횡단하여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귀신같이 정확히 찾아간다. 그에 반해 인간의 강점은 새로운 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것을 찾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그것을 위해 진화는 인간의 대뇌를 고안하였으며, 신체는 다른 기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대뇌에 공급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뇌 속에 있는 은하의 별들보다 더 많은 100조 개의 회색 세포는 자연이 만든 가장 복잡한 구조물이다.  

- 그 때문에 우리는 변화하는 세계에 직면하여 자신감을 가질 이유가 있다. 그리고 태연자약할 수 있다. 미지의 것을 다루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도구는 바로 집중력이다. 변화를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인지할수록 우리는 위험을 더 잘 평가하고 기회를 더 잘 인식할 수 있다. 일방적으로 계획에만 집중하면 그렇게 하지 못한다. 계획이 너무 많은 집중력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존 레논은 언젠가 삶은 결국 "우리가 다른 계획을 따르는 동안에 발생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 우연은 우리에게 머릿속의 사상누각을 떠나 현실에 발을 딛도록 인도한다. 그러므로 예기치 않은 일에 더 많은 여지를 허용하는 것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모험일 뿐 아니라, 우리의 인식을 더 날카롭게 하고 시간에 대해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한다. 우연은 우리에게 신중함을 가르쳐준다. 이것이 바로 우연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우연은 현재에 민감하게 만든다. 현재야말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아니던가? 우연에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은 생동감 있게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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