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오마르
출판 : 팩토리나인
출간 : 2019.09.30
'오마르'라는 유튜버를 좀 많이 늦게 알게 되었는데, 조곤조곤한 것 같으면서도 한 칼씩 꽂는 촌철살인이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전 서가를 돌다가 눈에 띈 책을 살펴보니 그 '오마르'가 낸 책이었다. 신간인가 싶었는데 19년도에 출간된 책이라 다시 한번 놀랐다.
창작물 -책, 글, 영화, 음악, 그림, 동영상 등- 이란 얼마나 손쉽게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이야기를 전하는가.
그리고 이 얼마나 일방적인 대화인가. 발화자와 반응자 모두 내 안에 있다. 창작자가 담고 싶었던 것이 잘 전달되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라는 등의 잡념을 잠시 하다가 읽어보았다. 시원시원하게 읽히고, 재미있고, 한 포인트씩은 곱씹어보게 만드는 맛이 있었다. 사람들이 사는 건 그렇게나 다르면서 이렇게나 통속적인가- 라는 뻔한 생각을 하며 읽었다. 웃은 다음에는 반드시 생각할 것.
'나는 그렇지 않았나?'
즐거웠다.
- 그리고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그런 별명이 생긴 것이다. '인생 2회차'. 인생을 한번 살아보고 다시 사는 거라 만사를 현명하게 대처하는 모든 문제의 답을 알고 있는 사람. 한 번도 정확한 정의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아마 그런 뜻일 거라고 생각한다. 글로 적는 지금도 낯이 뜨겁다. 삶에는 아주 다양한 문제들이 있다. 직업, 취미, 사랑, 우정, 가족, 아르바이트 혹은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이상한 마음 같은 것들. 성격상 어떤 문제를 겪고 나면 꼭 시원하게 털지 못하고 찔끔찔끔 뒤를 돌아본다. 나는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확실히 피곤한 타입이다. '그때 그랬으면 어땠을까', '그래, 그 사람 그럴 수도 있었겠다', '앞으로는 이렇게 하는 게 욕을 덜 먹을 것 같다.' 뭐 그런 생각들. 그리고 그것들을 글로 쓰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업로드하기를 반복하다가 '인생 2회차'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억울하다. 사실 2회차인데 3회차라고 오해받으면 조금 덜 억울할까? 나는 아직 1회차도 다 못 살아봤는데. 그러니까 이 책은 내 시행착오들의 기록이다. 나는 어디 높은 의자 같은 데 앉아서 깨끗한 차림으로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다. 모두와 다름없이 늘 문제들과 싸우고 또 화해하며 30년 넘게 삶의 진흙탕 위를 뒹굴고 있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 "모두를 끌어안을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일 수 있다."
인생에서 멀리해야 할 사람은 있다. 여러 가지 유형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건 무거운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그만큼 살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소개한다. 사람들 중에는 서로 알게 되자마자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이가 있다. '나는 가끔 자해를 한다', '어머니는 어릴 적 바람을 피워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나와 동생들을 학대했다', '남자 친구는 화가 나면 손찌검을 하고 나를 창녀라고 부른다'
- 안타깝고, 또 충격적인 이야기들이다. 누구나 위로를 건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겠지만 한다면 어떤 식으로? 어떤 말도 쉽게 하기는 어렵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의 관계다. 그 사연들이 얼마나 안타까운 것인가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우리는 이제 알게 된 지 이틀밖에 안된 사이이다. 카페에 앉은 지는 15분이 채 되지 않았다. 실제 상황을 떠올리면, 일단 난감함을 느끼는 것이 보통이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왜 이러는 걸까?
-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정말로 불행 속에서 괴로워하는 사람과 불행 포르노에 심취한 사람. 둘을 나누어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의도가 너무나 다르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양쪽 다 가까이하는 것을 말리고 싶다. 그 이야기가 진정성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누구나 슬프고 아픈 사연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을 토로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상대방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상황과 맥락이 필요하다. 깊이 있는 대화를 하려면 관계 역시 깊이가 있어야 하고 그걸 만들려면, 당연히 시간이 필요하다.
- 이들은 그걸 기다릴 수 없거나 기다릴 생각이 없다. 일단 그냥 아무튼 내 이야기를 들어달란 거다. 이것은 그들이 관계가 정상적인 속도로 발전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듣는 사람의 곤란함 역시 관심 밖일 것이다. 이들에게 지금의 관계는 서로 간의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인 감정 배설, 고통 호소의 창구로 쓰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그들에게는 관심과 사랑, 따뜻한 위로, 전문적인 치료나 상담이 필요할 것이다. 당신 역시 그 도움에 동참한다면 좋은 일이 될 수 있겠지만, 나는 지금 그들보다는 오히려 이걸 읽고 있는 사람을 걱정하는 중이다.
- 처음 그렇게 두 시간, 세 시간 그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면 당신은 어느새 그에게 간택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는 아마 앞으로 계속 없겠지. 애초에 그는 당신의 기분과 생각에는 아무 관심이 없으니까. 그리고 그는 감정의 짐을 당신에게 짊어주는 것에 점점 망설임이 없어질 것이다. 당신은 지치겠지. 나는 그에게만 당장은 좋은 상황으로 흘러가며 당신의 내면이 황폐화되는 것과 당신이 지쳐 그를 저버리거나 하여 결과적으로 그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쪽 모두에 반대한다. 다독임은 늘 책임을 동반하며, 모두를 끌어안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오만일 수 있다. 그런 사람이라면 아주 상종을 말라는 것이 아니다. 가까이하지 않는 것, 거리를 분명하게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 어쩌면 2번 선배도 그 사실을 전혀 모르진 않을 거다. 하지만, 그는 명예욕을 해소하고 존중받는 기분이 더 짜릿하기 때문에 후배들을 또 자리의 다른 사람들을 살피지 못하게 된다. 딱히 멋있지도 재밌지도 능력이 있지도 않은 자신이 맘껏 떠들 수 있는 곳은 어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뿐이니까. 그래서 꼰대들은 어린 사람들 앞에서 유독 말이 많아진다. 뭔가 가르치려 들고 조언하는 걸 좋아하고, 아무도 원하지 않는 걸 알려주고 싶어 한다는 건 무슨 뜻이냐면, 아는 게 없다는 뜻이다. 아무 문제가 없는 젊은이들을 문제 삼고 싶어 한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면, 지한테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꼰대가 되는 걸 예방하는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잘살아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한 인간으로 스스로 만족할 만큼 제 몫을 하는 제대로 된 인간이 돼야 한다. 아니면 정말로 고장 난 인간, 어처구니없는 인간이 될 수 있다.
- 우정에 너무 큰 기대를 안 하는 것이 좋다.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거라는 기대,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편을 들어줄 거라는 기대, 뭐 그런 것들. 그런 건 가족이나 연인에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쪽은 번지수가 안 맞다. (그렇다고 연인과 가족이 절대 안 변한다는 말은 아니고 그냥 친구보다는 좀 낫다는 거지.) 그리고 이 우정의 속성에 허탈함을 느끼지 않는 게 중요하다.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그 관계가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그 안에도 발견할 수 있는 의미와 행복은 충분하다. 마음을 주고받음에 있어 적당함을 모르는 이들은 언제나 관계를 그르치고 그 자신도 상처를 입게 된다. 누군가에겐 너무한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모든 관계는 언제든 변할 수 있다.
- 그럼 모든 이들이 날 섭섭하게 할 수 있는 이 판국에 제일 믿을 만한 사람은 누굴까. 그런 친구라면 자신 있게 한 명 소개할 수 있다. 바로 당신 자신. 일단 물리적으로 당신을 떠날 수 없으니 시작부터 나쁘지 않군. 그 친구가 내 곁을 든든히 지켜주면 된다. 그러면 다른 친구들이 삶에 들고 나는 일에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 얼마나 타인보다 나은 게 없으면 영화 한 편 먼저 본 게 지식이 될까. 친구가 아직 안 본 영화를 내가 먼저 봤다는 사실, 친구가 모르는 걸 내가 안다는 것이 너무 기쁘고 자랑스러운 것이다. 자꾸 뭔가를 가르쳐주려 하는 것. 이것은 자격지심을 가진 사람들의 대표적인 행동이다. 아니, 언제 물어봤냐고. 묻지도 않은 걸 설명하려 드는 건 듣는 사람을 위하는 게 아니다. 본인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지. 그래서 신나게 또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매우 안쓰러운 행동이다. 자기가 텅 빈 인간인 것을 스스로 털어놓는 것과 다름없다. 사실 문화생활로 아는 척하는 것만큼 간편하게 우월감을 즐기는 방법도 없다. 뭔가를 공부할 필요도, 노력할 필요도 없으니까. 하지만 이런 간편함에 빠지게 되면 우리 자신 역시 스포를 하는 건지도 모르는 채 스포를 하는 사람이 될지 모른다. 그리고 그건 당연히 자신의 바닥을 드러내는 행동이지.
- 사람은 기본적으로 우월감을 즐긴다. 행복을 지탱하는 데에는 다양한 감흥이 필요하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남보다 잘났다는 기분은 큰 짜릿함을 선사한다. 문화생활이나 취향에 대한 것들도 그 짜릿함의 재료가 되곤 한다. 희소성, 마이너 감성, 특이한 취향들은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꾸미는 데에 가성비 좋은 재료다. 그런 이유로 음악을 구성하는 가사나 연주처럼 '많은 사람이 모른다는 것' 그 자체가 음악의 매력이 되기도 한다. 나만의 맛집을 친구들에게 소개할 때 느끼는 뿌듯함과 그 성격이 비슷하지 않을까. (가게에 화분 하나 보탠 적 없으면서 마치 내 가게인 양 우쭐해지는 것이다. 뭐, 다들 그런 거 아니겠나.) 아무튼 그런 감정이 마음 안에 일어나는 것 자체가 이상할 건 없다는 거다. 다만, '내 가수는 나만 들어야 해. 이 가수는 내가 직접 발굴해낸 나만의 보물이야. 이때까지는 전혀 몰랐으면서 '무한도전' 나오고 '쇼미더머니' 나오니까 이제야 이게 좋은 건가 싶어서 뒷북이나 치고 있는 주제에 감히 나랑 동급으로 팬인 척을 해? 너네 같은 취향 천민들은 그냥 공중파 음악방송이나 보고 멜론 톱 100이나 돌려 들으세요. 나랑 맞먹으려 하지 말고.'라는 식으로 가수와 음악에 대해 전혀 근거 없는 소유권을 표출하게 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심각하게 졸렬하고 이기적인 인간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실제로 그렇고) 기억해야 한다.
- 불안하기 때문이다. 겁먹은 개가 더 크게 짖는다고 하지. 자신의 입지가 낮다고 느끼는 사람 중에선 다른 사람들을 깎아내려 자신과 그 높이를 맞추려는 이들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입지가 낮다고 생각하면 열심히 살아서 그걸 높이는 게 맞는 거 아닌가? 그건 지금의 입지가 불안한 만큼, 발전을 위한 도전도 두렵기 때문이다. 그 노력을 감내할 자신도 없고, 그래서 비겁하고 편리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지. 실제로 성장하려면 긴 시간 많은 땀을 흘려야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말로 남을 깎아내리는 건 별 노력 없이 빠르게 자신의 낮음을 잊게 해 주니까. 상당히 중독적이다. 누구나 이 빈정거림으로 얻어지는 쉬운 쾌락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주의해야 한다. 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불안함을 광고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빈정거리거나 남을 공격하는 것이 강해 보일 거라 생각한다면 정말 큰 착각이다.
- 한편, 항상 칭찬을 잘하는 사람들도 있다. 앞서 말한 이들과는 정반대이다. 남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것은 여유와 자신감이 있어야 가능하다. 친구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그걸 질투하지 않고 진심으로 축하하려면, 당연한 말이지만 자신의 삶도 잘 굴러가고 있어야 한다. 쉽게 생각하면 빈정거리지 않는 것이나 칭찬하는 것 모두 그 대상을 위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건 남보다 나에게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빈정거리는 말투가 습관이 되면 사람들은 당신이 가진 불안감과 열등감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칭찬을 많이 하면 실제 나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 그러니 빈말이라도 남을 칭찬하는 습관을 들여보라. 여유 있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잖아?'라고? 그래 당장은 아니지.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말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엄청나다. 점점 그렇게 보이다 보면 진짜 마음의 여유가 생기게 된다. 이건 마땅한 근거가 없으나 해봐라. 정말이다.
- 대충 사서 빨리 어디로 들어가려는 태도를 보이면 사실 여자 입장에서는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놈은 나랑 이거 하려고 만나나'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는 침대 위만이 아니다. 그러니까 특이한 장소에서도 그걸 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물론 가능한 것도 사실이지만) 굳이 그걸 하지 않아도 사랑을 확인할 방법은 많다는 이야기다. 영화도 보고, 산책도 하고, 쇼핑도 하고, 이런저런 체험도 하면서. 얼마나 다채롭고 좋은가. 근데 남자는 계속 피곤하다 혹은 춥다 혹은 덥다 혹은 춥지도 덥지도 않다 하면서 계속 단둘이 밀폐된 공간에 있으려고 한다. 아마 둘 중 한 명 이상이 자취를 하고 있다면 그런 상황은 더 쉽고 자연스럽게 발생할 것이다. 자, 그렇다면 여자들의 궁금증. 그래서 그 남자는 정말 당신을 그러려고 만나는 걸까. 본인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면, 이미 그러고 있는 것이다.
- 남자는 여자들의 생각보다 무엇을 생각하는 훨씬 더 단순한 동물이다. 게다가 섹스에 대해서라면 다른 문제보다 훨씬 더 본심을 숨기거나 머리를 쓰지 못한다. 연애에서 섹스를 위한 시간이 다른 시간들보다 압도적으로 늘어나 있다면, 그래서 여자가 섹스 이외의 다른 것들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면 이미 남자는 그러한 목적으로 여자를 만나고 있다고 봐도 문제가 없다. 방금 '문제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남자가 정말, 진심으로 그것을 목적으로 만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해도 그러한 판단은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왜? 중요한 것은 그쪽의 진심이 전혀 아니니까. 여성이 이미 남자가 자신을 욕구 해소의 수단으로 여긴다고 느끼는데, 거기서 남자의 진심이 이쪽이든 저쪽이든 뭐가 중요하겠나?
- 울면서 전화가 온다. 나 어쩌면 좋으냐고. 그래서 무리 중에 또 착해 빠진 친구들은 뛰어 나가서 술 사주고 넋두리 들어주고 울면 달래주고 같이 욕도 해준다. 그러면 뭐 하나, 며칠 있으면 또 화해하고 럽스타그램이 올라온다. 당연히 연락은 뜸해진다. 친구는 다시 필요가 없어졌거든. 그 지랄을 반복하다가 결국 헤어진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연애를 꾸준히 하지 못한다. 이 사람들은 단지 친구 관계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관계 맺음에 서툰 사람들이다.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해서 인지가 떨어진다. 그러니 연애라고 해서 친구 관계와 다를 리가, 감정을 되는대로 밀어붙이거나 연인의 일상 속에서 다른 것들을 밀쳐내고 본인의 지분을 늘리며 만족감을 얻는 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완전히 이별을 하고 나면, 그러면 그제야 친구들이 보고 싶어진다. "야, 우리 얼굴 본 지 오래됐잖아. 만나야지. 술 한잔해야지." 하며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아니, 정확히는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고 믿는다. 그러다가 또 새로 연애를 시작하면? 당연히 떠나겠지.
- '왜 나는 연애를 해도 행복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매였던 때가 있다. 연애 경험이 많지 않았던 20대 초반이었다. 하지만 이후 살아가며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고 그 경험치가 쌓이다 보니 조금씩 생각이 변했다. 왜 연애를 해도 안 행복할까? 나는 그 질문 자체에 질문을 던졌다. 어쩌면 이 연애라는 것에게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의무가 없는 게 아닐까? 더 행복해질 수도 있는 거지만, 그게 당연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연애를 통해 행복을 얻겠다는 생각은 연애를 하지 않는 현재는 그리 행복하지 않다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그 해결책으로 연애를 선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타인과의 관계에 나의 행복 전체에 대한 책임을 위탁하겠다는 뜻이다. 사랑스럽고 특별하지만, 결국 연인도 남이지 않나. 행복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맡겨버리는 것, 이것은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의 시작이 된다.
- 그리고 여기에 이런 반문을 한번 해본다. 그렇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아무것도 희생도 안 할 거면 뭐 하러 연애를 하나. 그냥 혼자 살지. 일리 있는 말이다. 연애를 하면 서로 배려하고 물러나야 할 부분들은 당연히 생긴다. 다만 연인의 삶에서 꼭 유지되어야 할 것과 나를 위해 희생해도 좋을 것들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좋지 않다. 예를 들어 연인이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모임에 나가야 하는데, 그게 내 생각에는 뭐 그리 대수인가 싶어도 그에게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삶에 중요한 가치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서로 충분히 상의하고 조율해도 합의점을 찾을 수 없다면 (어떤 이는 연애를 해도 클럽만은 꼭 가야겠다고 말하니까. 조롱이 아니라 그냥 그런 사람도 있긴 있다고.) 안타깝지만 둘은 잘 맞는 짝이라고 보기 어렵겠지. 상대를 서운하지 않게 하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그게 이후에 내가 불만을 가질 만큼 내 중요한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거면, 그 희생 그리 추천하지 않는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흔치 않은데, 절대적으로 진리라고 믿는 말이 하나 있다. '혼자서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은 함께여도 행복할 수 없다.' 연애가 당신 삶을 꽃밭으로 바꿔줄 거라 기대하지 말라. 타인과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반드시 홀로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 믿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노력을 안 하지 괴롭게 노력하긴 싫고 당장 불안하니까 상대를 발가벗긴다. <달의 요정 세일러 문>에는 이런 명대사가 나온다.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그들이 이런 식이다. '사랑의 이름으로 너에게 폭력을 행사하겠다!' 상대의 마음은 어떻게 될까? '아, 우리 자기가 나를 너무너무 사랑해서 이렇게 민간인 사찰을 하는 거구나, 나는 사랑받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할까? 아니 그냥 괴롭다. 미친 듯이 괴로운데 그냥 버티는 것이다. 사랑하니까.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터져버리겠지, 빵.
- 당신 혹시, 정말 혹시, 만약 혹시라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나? '나는 과거에 배신당한 경험이 있어서 불안함을 감당할 수가 없어. 안 그러고 싶지만 나는 상처받았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거야.' 정말 그런 생각이라면 나는 제발 당신이 빨리 그 의심으로 지금의 관계를 망치고 연인과 이별했으면 좋겠다. 당신이 그 이후에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고 그냥 지금 당신 연인이 너무 불쌍해서. 왜 건대에서 뺨 맞고 홍대에서 화풀인가.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상처를 줄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 자, 금사빠라는 이름부터 한번 따져보자. 나는 이 이름에 함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금방'이라는 건 확실히 알겠는데 '사랑에 빠진 건' 맞을까? 금사빠들은 필연적으로 금사빠이긴 하다. 뭔 말이냐면, '금'방 '사'랑에 '빠'지는 만큼, '금'방 '사'랑에서 '빠'져나온다는 것. 빨리 타는 만큼 빨리 식는다. 그리고 대상을 바꾸면서 그걸 반복한다. 어쩌면 금사빠적인 행동은 실은 보편적인 사랑과는 속성이 다른 행위일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왜 금사빠가 안 될까. (아니, 못 될까.) 그건 대상을 신중히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물론 이성보다 끌림이 먼저일 때도 있지만 가능한 오래 지켜보고 알아가며 판단해서 누군가를 좋아하려고 노력한다. 이 과정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금사빠들은 이 과정을 아예 생략하거나 매우 대충 넘긴다. 그럼으로써, 아니 그래야만 높은 회전율이 유지되니까. 금사빠들에게 중요한 건 대상이 아니다.
- 사람은 원래 혼자다. 그리고 감정은 뭔가를 좋아하는 상태가 아니라 아무것도 좋아하고 있지 않는 상태가 제자리다. 원래는 제자리였다가 특별한 일이 있으면 마음이 움직이는 거다. 그런데 금사빠들은 계속 누군가를 좋아하는 상태가 디폴트 값이다. 왜? 제자리가 불안하고 공허하니까 밖으로 나도는 건 내부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사람은 누구나 존재 가치를 느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살아지니까. 근데 그걸 혼자서는 확인할 길이 없으니 누군가에게 감정을 던지는 것으로 세상 위에 놓인 자기의 체중을 느낀다. 좋지 않다. 관계와 소통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허한 자아를 외면하려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상대방에게도 많은 피해를 줄 수 있다. 하지만 당연히 가장 피해자는 자기 자신이겠지. 자존감 훈련은 그래서 중요하다.
- "그들의 말이 재밌었던 적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없었다."
입만 열었다 하면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사람, 주변에 그런 사람 있지 않나? 없을 수도 있는데, 아니 없으면 정말 다행인데, 주변에 한 명도 없다면 매우 높은 확률로 그게 자기 자신일 수 있다. (슬퍼라) 사실 본인은 잘 모른다. 알면 그렇게 안 하겠지. 대화가 즐겁게 무르익는데 자꾸 산통을 깨는 사람, 무슨 말을 하기는 하는데 듣고 있으면 뭐라고 대꾸해줘야 할지 알 수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
- 사람이 이런 식으로 고장 나는 것의 대표적인 원인은 애정결핍이다. 개인적으로 애정결핍이야말로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자기 위주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야 다들 가지고 있다. 다만 애정결핍이 있는 사람들은 그걸 참고 기다리는 게 너무 힘든 나머지 타이밍과 맥락을 고려하지 못한다. 그래서 앞뒤 없이 자기 이야기를 들이밀어버리는 것이다. 이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대부분의 문장에 자기 자신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함께 대화하는 사람들은 각자 이야기를 하는 주체가 아니라 그저 나에 대한 견해를 말해주는 역할일 뿐이다. 그러니까 다 함께 치킨을 언제 먹으면 맛있는가를 주제로 재미있고 조화롭게 대화하고 있는데 그 상황 자체를 못 견디는 것이다. 치킨이고 나발이고 빨리 너희가 나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뭐 그런 마음인 거다. 그러니까 조급해져서는 제 딴에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치킨이라는 단어만 끌어와 제 하고 싶은 말을 던지게 된다.
-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그러면 일상 대화가 <백분토론>도 아니고 꼭 그렇게 맥락에 맞는 말만 해야 하는가?' 물론 아니다. 그것에 대해선 이렇게 답할 수 있다. 대화를 재미있게 끌고 갈 자신이 있으면 흐름을 깨뜨려라. 그게 아니면 흐름에 맞춰 조화롭게 대화에 참여하시고. 자신 있으면 뜬금없는 소리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난 그 사람들이 뜬금없는 말을 던져서 터뜨리는 걸 본 적이 없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그들의 말은 슬프지만 재미있을 수가 없다. 왜냐면 사람들이 뭘 원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전혀 관심이 없으니까. 남을 즐겁게 할 줄 아는 사람들,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들은 갑자기 아무 말을 하는 게 절대 아니다. 흐름을 잘 이해한 상태에서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말을 하는 것이지. 앞의 경우와 이것은 천지 차이다.
- 혹시 주변에 이러한 문제를 가진 친구가 있다면 이 글을 읽어보게 하라. 개인적으로 그들의 반응이 너무 궁금하다. 아마 절대 자기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주변에 그런 친구가 없다면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사실 또 별 상관은 없다. 당신이 이미 읽고 있지 않나.
- 좋아하는 여성의 마음을 얻고 싶은 바람이야 남자라면 다 같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저기 찾아보면 이래라저래라 하는 팁들은 많은 것 같은데 '이건 제발 하지 마라' 하는 팁은 적지 않나 싶다. 여성의 마음을 얻고 싶다면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있다. 어쩌면 '하면 좋은 행동'보다 우선적으로 알아야 할지도. 얼핏 생각하면 좋아할 것 같은데 실은 비호감이 될 수 있는 행동을 몇 가지를 알아보자.
- 혹시 봤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당신은 아량이 넓은 사람이어서 그냥 그런 게 신경 쓰이지 않았을지 모르는데 나야 뭐, 속 좁은 인간이니 그게 늘 눈에 거슬린다. 이기적인 거잖아. 자기중심적이고. 누가 뭐라고 하기에는 사소한 문제일 수 있다. 먹는 걸로 치사하게 말이지. 오히려 뭐라고 하는 쪽이 쪼잔한 인간이 될 수도 있고, 그래서 보통은 별말을 안 하게 되는 것 같다. 아까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다고 말했다. 나는 작은 것을 보면 큰 것을 알 수 있다고 믿는다. 고작 밥 먹는 거, 그거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 그리고 무의식 중에 하는 행동이 그 사람의 본질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 모습을 본 이후에 내가 그 사람을 멀리하는가 하면, 뭐 그렇지는 않다. 그냥 똑같이 대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생각하지. '저 사람 저런 면이 있었지' 하면서.
- 그날의 안쓰럽던 B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아직도 그런 마음이라면, 정말로, 정말로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절대 모두와 잘 지내지 말았으면. 그건 사실 그렇게 할거냐 말거냐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니까. 뭔 짓을 해도 안 된다. 아무리 올바른 행동을 해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 보편성을 들며 모두가 좋아하는 인간상이 있을 거라고 믿는 것은 환상이다. 빨간 옷을 입든 파란 옷을 입든 별로라는 말은 언제나 들을 수 있으니까 그냥 입고 싶은 옷을 입어야 한다.
- 착하다는 말, 듣기 좋다.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도 달콤하지. 근데 그 말 듣자고 굳이 잘 맞지도 않는 사람들과 잘 지내고 열심히 잘해줄 필요는 없잖나. 그건 결국 자신을 갉아먹는 일이다. 그래, 내 옛 친구 B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남들 비위 맞추느라 자신의 의사를 외면하지 말자. 좋은 이미지를 위안 삼으며 스트레스를 모르는 척하는 건 한계가 있다. "진작 남들을 실망시킬 걸 그랬지." B의 마지막 그 말은 내게 오래도록 남았다. 그러게. 그랬으면 얼마나 편했을까. 부디 지금이라도 B가 그러고 있기를 바란다.
- 섹시하다는 표현은 보통 외모에 대한 칭찬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하는 섹시함은 조금 다르다. 우리는 근육질 몸매, 날렵한 턱선, 비키니가 잘 어울리는 모습 등 이런 걸 보고 섹시하다고 말하지만 꼭 그것만이 섹시함의 정답은 아니다. 사람이 살집이 많고, 주름이 있고, 왜소하고, 머리숱이 적어도 얼마든지 섹시할 수 있다. 외모보다 조금 더 넓은 의미로.
- 섹시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뭘까? 나는 자연스러움이라고 생각한다. 옷, 말투, 표정, 취미 생활, 주변의 친구들 이런 것들이 붕 떠 있거나 어색함 없이 조화롭게 잘 어우러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어떻게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이들은 트렌드를 급하게 쫓아가지 않는다. 유행어라고 무조건 따라 하거나 유행하는 옷이라고 다 사지 않는다. 그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라도 나랑은 안 맞을 수 있으니까.
- 섹시한 사람들이 유행에 목매지 않고 자연스러운 멋이 나는 이유는 자기 세계가 잘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섹시하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세계관이 확실하다는 것과 동의어일 수 있다. 세계관이 뚜렷한 것은 곧 그 사람만의 색깔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운 그 사람만의 향기.
- 그렇게 되려면 우선, 자기 자신과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가, 뭐가 어울리고 뭐가 안 어울리는가, 어디에 가야 마음이 편하고 누구와 있는 것이 즐거운가. 이 고민들을 자기 자신과 치열하게 토론한 사람들은 단단한 자신만의 세계관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그러면 당연히 삶을 사랑하게 되고 자신의 일에도 열정적인 모습이 나오게 된다. 경상도 사투리로 '짜친다'라는 말이 있다. 이 사람들은 뭘 해도 짜치는 느낌이 없다. 어떤 선택이든 내가 누구인지를 잘 알고 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여유가 나오고 섹시하다는 느낌이 나온다. 사람은 복근이 없어도 섹시할 수 있다. 자기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한 사람들은 주름살이 있어도 섹시하다. 섹시해지고 싶다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와 열심히 대화하라.
- 언어는 그 사람의 성격을 반영한다. 그중에서도 무의식 중에 자주 쓰는 말, 대화의 내용과 관계없이 버릇처럼 사용하는 단어들을 살펴보면 그 사람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어떤 주장이나 특정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는 의도에 따라 꾸며져 얼마든지 본심과 다른 방향을 가질 수 있지만 무의식 중에 툭툭 나오는 단어들은 그렇지가 않다. 길게 구성된 문장보다 오히려 그런 짧은 단어 하나, 표현 하나가 그 사람의 본 성향을 더 잘 보여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당신이 피해야 할 남자들이 자주 쓰는 말은 뭐가 있을까.
- '아, 스쿠터만 하나 있어도 진짜 편할 텐데.'
2019년 현재 나는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시간을 자유롭게 쓰며 일한다. 거실이 있는 투룸에 살고 중고차도 한 대 탄다. 그러고 보니 나는 소원을 다 이뤘네. 그럼 이제 더 바라는 게 없을까? 내가 내 삶의 변화를 열거한 이유는, 결국 이런 과정들이 사는 동안 계속 반복될 거라는 거다. 이제 더 쉽게 더 많은 돈을 벌고 싶고, 옷방도 하나 있는 쓰리룸에 가고 싶고 기왕 탈 거 독일 차도 한번 타보고 싶다. 이것들이 다 충족되면? 그럼 또 그다음을 원하겠지.
- 모든 것이 만족스럽고 더 바랄 게 없는 삶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욕심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욕심은 필요하다. 욕심은 동기부여를 해주고 우리가 열심히 발전적으로 사는 걸 도와준다. 하지만 계속 인생의 다음 장면만 기대하면서 살면 오늘의 행복은 느끼기가 어렵다. 그건 다른 사람의 삶을 부러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연예인이 되면 다 좋을 것 같나? 부자들은 아무 걱정 없을 것 같나? 절대 아니다. 10억이 있어도 고민은 있고 만 명이 사랑해줘도 상처받을 일은 늘 있다. 멋진 미래를 그려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한 삶은, 그런 결말은 없다. 동화책의 마지막 페이지처럼, '그리하여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게 인생이 아니다. 어떤 행복의 도착점 같은 건 없다는 거다. 마지막 페이지 이후로도, 우리는 계속 돈 벌고 밥 먹고 똥 싸면서 살아야 한다.
- 지금, 오늘, 행복한가?
행복을 특별한 무언가로 여기는 사람일수록 행복할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한다. 오늘 친구랑 게임 한판 재밌게 하는 것, 퇴근하고 동료들과 시원한 맥주 한잔하는 것, 가족들과 베란다에서 삼겹살 구워 먹는 것, 이런 일상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없다면 사실 연봉이 두 배로 올라도 그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거다. 어떤 성과가 잠시 특별하게 느껴질 순 있겠지만 결국 그것도 흘러가는 삶의 일부다.
- 행복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지금 힘든 게 있고 괴로운 게 있을 거다. 근데 동시에 행복한 면도 같이 있다는 거지. 그건 옛날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그러니까 하루치의 행복이 있는데, 이게 나중에 좋은 날이 와서 막 엄청나게 커질 거라는 그런 기대는 하지 말자. 왜냐면 '오늘'도 그 언젠가 과거에는 행복하기만 할 거라고 기대했던 날일 수 있으니까. 졸업만 하면, 전역만 하면, 연애만 하면, 합격만 하면, 취업만 하면, 결혼만 하면, 퇴직만 하면, 행복할 거다? 그런 거 없다. 오늘 지금 눈앞에 있는 행복을 발견하길 바란다. 그런 하루하루가 모이면 그냥 그게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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