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롤란트 슐츠] 죽음의 에티켓 - 나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모든 것

일루젼 2022. 5. 27.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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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롤란트 슐츠 / 노선정

원제 : So sterben wir 
출판 : 스노우폭스북스 
출간 : 2019.09.16


       

        

아주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무거운 주제를 적당한 무게감으로,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세 명의 다른 존재들이 죽음을 맞는 과정과 그 이후의 상황들을 풀어나간다. 세부적인 규정들은 독일의 기준으로 설명되어 있지만 장례와 추모의 기본적인 틀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케이틀린 도티'의 저서에서 설명된 미국과 다른 나라들의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티의 책을 읽기 전이었다면 '세상에 이런 책도 있구나!'라고 경탄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죽은 자 자신과 주변인들의 시선을 오가며 일어날 수 있는 상황과 알아둬야 할 정보들을 알려준다. 사실 과거에 비하면 살아가는 동안 주변인의 죽음조차 쉽게 접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매 순간 어디선가에서는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다. 이 모순은 현대인들의 다소 강박적인 '죽음과의 거리두기'로 인하여 발생한다. 그러나 누구나 한 번은 -보통은- 자신의 죽음을 경험할 수밖에 없으므로, 아무것도 정해두지 않은 상태에서 맞게 되는 죽음이 얼마나 혼란스러울 수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 이해하게 된다면, 보다 나은 마지막을 위해 천천히 준비해두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고인의 유지대로' 행하고 싶은데 그 '유지'를 알 수가 없을 때만큼 막막할 수 있을까. 슬픔으로 가득찬 이들에게 수많은 결정을 채근하는 것도 잔인한 일이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아지면 매순간의 삶이 조금 더 가벼워지고 즐거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아직 검은 초대장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의 상상일 뿐이며, 누구나 그러해야 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지나친 두려움으로 생각조차 떠올리는 것이 힘들다면, 그 또한 일종의 회피가 아닐까. 

 

 

 

 


   

 

-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피해 왔습니다. 정확히 언제 죽을지는 알 수 없지만 죽음을 앞둔 며칠 전 어느 날 당신의 심장은 펌프질을 멈추고 손가락 말단까지 피를 보내는 일을 그만둡니다. 머릿속, 허파 그리고 신체의 가장 핵심인 심장과 간, 발가락의 피도 거둬들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발은 차가워지죠. 호흡이 잦아들고 감각이 사라지고 신체가 생명에게 작별을 고하는 과정을 시작합니다. 나중에 의사가 사망진단서를 끊을 때가 되면 마치 당신의 죽음은 엄격하게 정해진 흐름을 따라 진행된 듯 보입니다. 하지만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죽어간다는 것은 매우 역동적인 과정이에요. 

 

- "인간은 평생 자신이 반드시 죽는다는 걸 부인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로 생각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말이죠. 사실 죽음은 너무 멀리 있었습니다. 그건 언제나 다른 사람의 죽음일 뿐, 단 한 번도 당신의 죽음이었던 적은 없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당신은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너무나도 확실한 사실을 보지 않고 회피해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죽어간다는 사실 말입니다. 죽음이 언제 나에게 닥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았는지도요. 사실 죽음을 묘사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걸 잘 압니다. 죽음을 설명하는 것 자체로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죽음의 기운에 휩싸입니다. 죽음에 있어서만큼은 합리성과 사고, 이성이 한계에 부딪힙니다. 더 이상 확실성은 존재하지 않죠. 아무도 실제로 죽어 본 다음 경험을 들려준 적 없으니까요. 

 

- "너는 분명 곧 나아질 거야." 
(아니거든. 아, 신이시여. 이 친구를 좀 내보내 주소서!)

그래서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잘 있어."
(너나 더 잘 있어. 사는 동안 나보다 더 잘 있으란 말야.)

그래서 당신이 말합니다.

"너도."

- 당신은 이 기만적인 대화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죽음은 당신과 타인의 관계가 어느 정도인지를 결정하는 힘을 발휘합니다. 특히 별로 친하지 않던 이들과의 관계에서 말입니다. 죽음을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대부분은 그걸 감지합니다. 누군가는 의식적으로, 누군가는 무의식적으로. 그건 마치 당신과 세상 사이에 존재하는 팽팽한 긴장 같은 것입니다. 당신은 가야 합니다. 다른 이들은 남고요. 이 긴장은, 단단한 관계는 더욱 단단하게 하고 위태로운 관계는 더욱 위태롭게 합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죽음은 관계가 얼마나 질긴지를 시험하니까요. 당신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중적 사고를 읽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 그들은 당신에게 용기를 북돋우지만 사실은 절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당신 기분을 좋게 해 주려고 하지만, 사실은 어쩔 줄 몰라합니다. 그들은 당신에게 조언을 해 주지만, 사실은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그들은 당신이 가진 병에 투쟁을 선포하지만, 사실은 죽음을 이길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답답한 감정을 당신 앞에서 조금이나마 견디기 쉬운 것으로 바꾸려는 겁니다.

 

- 당신은 세 가지 유형의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이 듣는 말 중 대부분은 세 가지 패턴 중 하나입니다. 첫 번째는 과소평가하기입니다. 그 지혜들 속에는 단 하나의 교훈이 들어 있습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기'입니다. 두 번째는 스승 스타일로 '교훈 주기'입니다. 이들은 당신의 병을 귀중한 경험으로, 일종의 생존 훈련으로, 육체 외의 정신과 영혼을 위한 훈육으로 보는 겁니다. 모든 것에는 깊은 뜻이 있나니, 이제 좀 그것을 깨달으라는 식이죠. 세 번째는 '해법 제시'입니다. 당신을 구할 수 있는 길을 예견하고, 당신의 병을 고칠 요법을 안다고 주장합니다. 마인드 컨트롤이나 기도문 같은 게 당신을 낫게 해 줄 거라면서 만약 그걸 시도하지 않으면 애석한 일이 될 테고, 치유는 오직 당신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으니 결코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 죽음이 임박한 환자들 중에는 이런 순간에 건강한 사람들이 자신 위에 올라앉아 재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대화의 방향이 죽음과 얼마나 관련이 없는 곳까지 와 버렸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역설적인 현상이 아닌가요? 사실 죽음은 도처에 있잖아요. 매일 아침 신문에, 매일 저녁 TV 뉴스에, 하루 종일 인터넷에 있는 데도 일상에서는 죽음을 거의 볼 수 없으니 말입니다. 

- 사실 현대 문화는 명명백백한 죽음을 의식으로부터 밀어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이가 오십 혹은 육십이 되어서 그들의 부모가 죽을 때에야 난생처음 시신을 보기도 하니까요.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그건 변칙적인 현상입니다. 죽어가는 것과 죽음은 수천 년 넘게 감지 가능한 삶의 한 부분이었고 그것도 모든 연령대에서 일어나 왔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 죽음은 무엇인가 추상적인 것이 돼 버렸습니다. 현대에 들어와서 사람들은 죽음을 마치 미지의 우주처럼 대합니다. 죽음은 의심할 나위 없지만 내가 겪을 일은 절대 없다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당신이 곧 죽을 거라는 사실에 그토록 부적절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 그들에게 있어 중요한 건 단 한 가지, 죽음 앞에 있는 사람과 마주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 기분이 언짢은가? 답답하거나 절망적이고 무기력한가? 환자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가?' 

 

- 이 모든 건 인간적이긴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니까요. 하지만 왜 이런 감정이 엄습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죽어가는 이가 나에게 소중해서?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 역시 언젠가 이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걸 상기시키기 때문에? 아니면 언젠가는 죽음이 나에게도 닥칠 일이라는 진실이 떠오르기 때문에? 어떤 감정이 내 안의 진실에서 생겨난 감정이고, 어떤 감정이 죽어가는 사람에게 생겨난 감정인지 따로 분리하는 게 좋습니다. 이렇게 분리하면 상황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냥 '쉽게'가 아니고 '비교적 쉽게' 말입니다. 죽음을 체험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 한탄하거나 울어 버리거나 짐을 내려놓고 싶을지라도 원 안의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안쪽을 향해서는 오로지 위로만 해야 합니다. 중요한 건 죽음이 임박한 사람의 소원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원하는 게 우선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죠. 사실 죽어가는 이를 위해 무언가를 꼭 하고 싶다면 그만두는 게 낫습니다. 당신이 이미 잘 알다시피 그들의 소원은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가득 담은 일이라도 친절한 행동이거나 아니면 전면 공격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이미 누군가는 일찍부터 준비를 시작합니다. 인생의 중턱에서 말입니다. 또 누군가는 늦게 혹은 위기나 병을 면전에 두고 준비를 하기도 하죠. 어쨌든 죽음을 준비하는 건 정말 중요합니다. 준비해 두지 않는다면 죽음이 임박한 나 자신 그리고 내가 죽은 뒤에도 나를 돌봐 줘야 하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의사나 장의사나 운구자나 가족이나 친구들이 당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면 그들은 해 줄 수가 없습니다. 준비에 많은 것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환자처분서, 사후 방식 유언장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됩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쓰는 글이지만 내가 죽은 후의 관점에서 써야 합니다. 환자처분서라는 게 가장 까다롭습니다. 이 서류는 더 이상 의사 표현을 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서 자신의 의지를 미리 말해 놓는 것입니다.  

 

- 중요한 건 당신이 죽음을 한 번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선행 조치를 취하느냐는 자유입니다. 이건 당신의 죽음이니까요. 그러나 당신 자신에게만 속한 죽음은 아닙니다. 나중에 장례업체 사람들이 당신 시신을 모시러 오면, 그들은 세 가지를 알고자 할 것입니다.

화장을 하나? 아니면 매장을 할 건가?
당신의 재나 시신을 어디에 묻을 것인가?
당신에게 특별한 소원이 있는가?

당신이 그들에게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미리 알려 준다면, 남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유족에게는 당신 시신이나 장례에 대한 문제를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법률에 따르면 그걸 주검 돌봄권이라 부릅니다. 이 권리는 범위가 넓습니다. 당신이 의지를 표명해 놓는 경우를 제외하곤 말입니다. 그러니 대략적으로라도 정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장례식의 종류와 장소를 지정한 문서 한 장, 주검 돌봄 권리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한 전권들, 친구들이나 장례업체들까지도 자세히 결정할 수 있습니다. 

 

- 당신이 익명의 무덤에 묻히고 싶다면 성직자에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서면으로 적어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서명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당신의 소원에 구속력이 생깁니다. 이 서면 진술들은 장례업자에게 맡겨 놓을 수 있습니다. 비상시에는 공증인에게도요. 유언장의 한 부분에 적어 놓는 내용은 별로 소용이 없습니다. 당신이 죽고 유언장을 열어 읽게 되는 때는 대개 이미 장례절차가 끝난 다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확실히 하고 싶다면 두 가지를 다 해야 합니다.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하기, 그리고 서면으로 적어 두기.

 

- 더 확실히 해 두고 싶다면, 시신이 되었을 때 좋은 대우를 받고 싶다면, 장례업체를 직접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능하면 빨리요. 죽기 훨씬 이전에요.

 

- 여기에 하나의 유혹이 있습니다. 죽음에 지나치게 사로잡혀서 본인의 장례식을 마치 무대에 올리는 연극처럼 상세히 규정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관은 무엇으로 하고, 옷은 무엇을 입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은 또 무엇을 입어야 한다. 어떤 묘지에, 어느 무덤에, 어떤 묘석을 써야 하고, 어떤 꽃을 쓰고,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한다 등. 누가 말을 하고, 누가 하지 않는지. 어떤 초를 쓰고, 손님은 누가 오며, 화환은 어떻게 꾸밀 것인지. 관 옆에는 어떤 사진을 놓고, 부고장에는 어떤 사진을 담을 것이며, 문상객 식사는 어디에서 할 것인지. 거기에 좌석배치와 요리 나오는 순서까지. 물론 그 모든 것을 당신이 정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장례식은 사실 당신을 위한 게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장례식은 당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한 의식입니다.

- 수술실의 수건이 초록색인 이유는, 그 위에 묻은 피가 끔찍한 빨간색이 아닌 어두운 색의 얼룩으로만 보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 종양이 터질 가능성이 있는 환자의 침대 시트는 하얀색이면 안 됩니다. 오직 초록색이어야 합니다. 그런 지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불안한 가운데서도 안정을 가져다주니까요. 

- 쇠약함이 입술을 헤벌리게 하고 뺨은 움푹 들어갑니다. 두 눈은 눈두덩 깊은 곳으로 쑥 들어가 버립니다. 코가 벌어진 입위로 뾰족이 솟아 있습니다. 옛날 같으면 이런 모습은 의사가 치료를 멈추는 신호였을 것입니다. 이 순간부터는 사제가 작업을 넘겨받았습니다. 당신의 얼굴은 충격적입니다. 죽음이 당연한 섭리가 아니라 생활 습관을 잘못 운용해 온 결과라고 믿는 현대 사회에서는 더더욱 충격적입니다. 젊거나 늙는 것이 자연스러운 육체의 흐름이 아니라 정신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현대 사회의 시선 때문이죠.

 

- 당신은 죽었습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닙니다. 같은 날 같은 시에 죽은 당신의 '죽음 쌍둥이들'이 세상 어딘가에서 함께 죽어갔습니다. 통계가 말해 주죠. 지구 상에서 매 초마다 두 명의 인간이 죽는다고 말입니다. 또, 당신과 당신의 죽음 쌍둥이. 

 

- 망자들은 마치 하나의 고유한 부족 같습니다. 이 망자의 세상에 접근할 수 있는 산 사람들이란 거의 대부분 장례 전문가입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죽음의 특정 한 구간에서만 개별적인 작업을 합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죽음의 전 과정을 모두 아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을 담겠다는 결심을 이야기했을 때 관련자들은 열광했습니다. 오히려 이 일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받았죠. 어떤 일은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채 처리되고 모두가 숨은 것처럼 일이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망자의 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비밀의 의무를 준수해야 합니다. 공무원은 망자에 대한 세부사항을 절대 다른 이에게 공개할 수 없습니다. 경찰과 수사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망 원인을 수사 중인 망자에 대해서는 더 철저히 비밀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주검을 다루는 일은 유족들의 일상적인 임무였습니다. 그들이 직접 시신의 머리를 빗기고, 씻기고, 옷을 입혔으며, 묘지를 파 자신들의 손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망자를 둘러싼 장례업자나 관료들로 이루어진 직업군은 훗날에야 생겨났습니다.  

 

- 일단 눈 하나를 감기고 나서 다음 눈을 감기는 게 더 간단합니다. 계속 눈을 뜨고 있다면 헝겊이나 거즈를 물에 적신 뒤 눈꺼풀을 닫고 그 위에 헝겊을 지그시 눌러 놓습니다. 이제 입 차례입니다. 시신이 입을 벌리고 있다면 손 하나를 머리에 올리고 다른 손은 턱 아래로 가져가 구강을 부드럽게 위로 밀어 입을 닫아 줍니다. 그것으로 어렵다면 만화에서 치통을 앓는 장면에 자주 나오는 것처럼 붕대로 감아 줍니다. 단 너무 강하게 묶으면 그 자국이 계속 남을 수도 있습니다.  

 

- 이제 시신을 닦을 차례입니다. 많은 종교에서 시신 닦기를 누가 언제 어떻게 닦는지에 대해 정확한 규칙을 지키며, 가장 중요한 의식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목적은 죽은 육체를 깨끗이 씻기는 것이지만,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고 매우 중요한 행동입니다. 큰 병원들이나 요양원들에서는 아주 간단한 세수를 하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는 정도로 끝냅니다. 시간이 너무 부족하기도 하고 비용 청구를 할 수도 없으니 장례업자가 있다면 그에게 넘깁니다. 분노할 일이기는 하지만 이런 과정이 병원이나 양로원에서만 사라진 건 아닙니다. 시신을 닦는 일은 이제 가족들조차 거의 하지 않으니까요. 

 

- 사실 시신을 닦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따뜻한 물 한 대야면 됩니다. 아로마 오일 몇 방울을 물에 떨어뜨릴 수도 있겠죠. 그들이 그때 살아 있는 당신을 씻겼던 것처럼 말입니다. 미리 알아 두지 않으면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 있는 시신만의 특징도 있습니다.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경우에 가끔씩 끙끙대는 것 같은 소리가 날 수 있는데, 그건 호흡이 아니라 폐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입니다. 가끔 근육이 한두 번 씰룩댈 때도 있습니다. 방귀가 나오기도 하고 방광에서 오줌이 새어 나오기도 합니다. 씻기는 동안 시신을 돌아 눕히고 싶은 사람은 두껍게 여러 번 접은 수건을 망자의 얼굴 위에 놓는 게 좋습니다. 위의 내용물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지극히 정상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삶의 의지로 움직이던 육체는 이제 오로지 자연의 섭리만을 따를 뿐입니다. 

- 모든 검사가 끝났습니다. 가족 중 가장 침착해 보이는 한 사람을 불러 이 곤욕스러운 질문 하나를 마치면서 말입니다. 
"청구서를 어느 분께 보내면 될까요?"
어느 검안의는 이 질문에 대한 유족들의 반응을 견디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고 고백합니다. 이 모든 상황을 비현실적인 일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벌컥 화를 내며 마치 분노와 절망을 풀 기회를 잡았다는 듯 행동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감당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죽어가는 사람은 독일의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습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그 서류들을 만드는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 이제 시신은 고유의 존엄성을 지니고 특별한 종류의 보호를 받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시신은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신은 어떤 소유권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주인이 없죠. 오직 유족들에게만 시신을 처분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건 특정한 틀 안에서 일정한 제한을 받아 행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독일의 어떤 주에서는 시신을 무조건 관 안에 넣어야 하고 다른 주에서는 안 그래도 됩니다. 몇몇 장례법은 시신을 방부 보존하도록 허락하지만 다른 주의 법들은 미리 승인받은 예외의 경우에만 허가합니다. 어떤 주에서는 시신이나 시신의 재가 반드시 지정 관할 묘지에만 묻혀야 하는 법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통제를 비판합니다. 죽으면서도 시간과 규정을 지켜야 하고, 서식을 채워야 하니까요. 누군가는 이 규정들이 유익하다고 보기도 합니다. 이 규정들 때문에 모든 망자들이 똑같은 원칙으로 평등하게 다루어지니까요.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이 누구였는지와 관계없이 말이죠.

 

- 이렇든 저렇든 망자가 지켜야 할 기한들은 법에 따로 규정돼 있습니다. 주마다 다르고 지방자치단체마다 다르지만 결과는 모두 같습니다. 죽음이 증명서로 기록되는 즉시 시간과의 달리기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 근본적인 건 가장 좋은 전문가를 대면해 좋은 업체를 골라야 한다는 겁니다. 빨리 결정을 해야 한다거나 친절하지 않은 태도, 이런 건 절대 불가능하다느니 하는 말을 하는 곳이라면 제외해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장례업자가 죽음 후의 촉박한 시간을 어떻게 잘 다루느냐 하는 점이죠. 우수하고 경험 많은 장례업자는 지켜야 하는 기한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유족들을 재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 무엇이든 맹목적으로 사인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먼저 견적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 곳의 장례회사에 묻는 것을 주저하지 마세요. 불쾌한 장례업자에게 주문했다면 그것을 취소하고 시신을 돌려받기를 꺼려해서는 안 됩니다. 결코 허풍에 속아 넘어가지 마세요. 양로원이나 병원에서 자기들과 전속으로 계약된 곳에서만 해야 한다고 하는 그런 주장 따위요.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장례업자를 고르는 일은 언제나 자유입니다. 

- 가장 좋은 경우는 당연히 미리 선택을 해 놓는 일입니다. 자신의 장례라면 더더욱 그래야 합니다. 과거, 현재 그리고 죽은 상태에서라도, 살아생전에 결정해 놓은 일을 누리게 되는 것이죠. 

 

- 어쩌면 아무도 그걸 모를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살아 있을 때 한 번도 당신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그러면 당신의 유족들은 자기 마음대로 하고 맙니다. 

- 관을 들어 올립니다. 시신의 머리가 절대 발보다 낮아져서는 안 됩니다. 이제 시신은 길을 나섭니다. 고속도로에는 여덟 대 또는 더 많은 숫자의 관이 화물차에 실린 채 화장장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죽음을 다루는 방식의 변화를 연구하는 민족학자들은 말하죠. '망자들의 이동은 살아 있는 자들의 이동과 병행해서 늘어난다'고 말입니다. 

- 표피가 벗겨진 곳은 습기와 닿으면 잘 붙는 순간접착제를 발라 피부를 붙이고 눌러 줍니다. 머리카락에 샴푸를 발라 거품을 내서 씻어 준 다음 헤어드라이어로 말려 줍니다. 바짝 마른 피부에 보습 크림을 조심스럽게 발라 줍니다. 솜이 달린 줄을 구강 안으로 넣어 줍니다. 그것으로 목을 막아 줄 겁니다. 위에서 아무것도 흘러나오지 않도록 말입니다. 바늘과 실을 치아 뒤로 그리고 윗입술로 가져갑니다. 그런 다음 실을 바짝 잡아당겨 실의 두 끝 부분을 묶습니다. 입이 열리지 않게 하려는 겁니다. 종지에서 두 개의 작은 플라스틱 고깔을 꺼냅니다. 그건 마치 콘택트렌즈같이 생겼지만, 돌기가 달려 있습니다. 그것들을 조심스럽게 눈두덩에 붙이고 눈꺼풀을 가만히 닫습니다. 눈이 닫힌 채로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사람은 시신용 특수 메이크업으로 뺨과 입술에 색이 돌게 해 주기도 합니다. 
"시신이라도 아름답고 단정하게 보여야 하죠. 하지만 고인임이 나타나야 하고요. 생명이 빠져나갔다는 사실이요."

- 사망과의 민원 개방 시간이 끝날 때마다 호적부 공무원 O는 컴퓨터에 앉아 작업을 시작합니다. 한 해의 모든 생년월일, 결혼, 사망 건들이 순차적으로 기입되고 번호대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O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를 취해 놓았을까요? 그녀는 웃음을 터뜨립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안 죽어요." 

- 60년, 70년, 80년, 90년 이미 오래전 당신의 존재는 훈령으로 존재할 뿐입니다. 증조할머니가 예전에 혹은 증조할아버지는 그 당시에, 같은 물러간 한 시대의 그림자로 말입니다. '이 당시 입었던 옷들 좀 봐! 이 기기들 좀 봐!'라고 하면서요. 아무도 당신이 어떻게 웃었는지 더 이상 알지 못합니다. 당신한테 소중했던 노래가 무엇이었는지 모릅니다. 아무도 당신의 존재를 모릅니다.  

- 한 침대 위에 어느 노인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죽었을 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남자죠. 죽어가는 이 노인 역시 그때의 당신과 같은 모습입니다. 두 눈은 눈덩이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허약함이 입을 헤벌리게 했죠. 뺨이 움푹 들어갔습니다. 코는 뾰족합니다. 얕은 숨을 쉬면서 미동도 거의 없습니다. 턱이 갑자기 떨리고 한 번 더 숨을 들이마십니다. 그리곤 정적.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 본 당신의 존재를 알고 있는 마지막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의 죽음과 함께 당신의 죽음도 완전해졌죠. 이제 당신은 당신의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완전한 망각 속으로 빠져 버렸으니까요. 

- 저는 몇 년 전에 아빠가 되었고, 당시 삶의 출발에 대한 글을 읽는 일에 깊이 심취해 있었습니다. 부모가 될 이들을 위한 책들에는 수정된 난자가 인간의 모습으로 성장해 가는 기적 같은 과정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죽음에 대한 책도 이렇게 많이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안내서 같은 것,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의 답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책. 하지만 그런 것을 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매우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 이상한 일이었죠. '하필이면 병과 죽음과 싸우는 의학이 죽음이라는 주제는 거부한다? 모든 인간이 동의하듯, 죽음이란 삶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이 아닌가? 우리 모두는 죽는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한 내용을 다루는 책들은 어디 있단 말인가?' 결국 저는 맨 뒷줄에서 자연치료법이라는 주제 바로 옆의 좁은 코너에서 죽음을 발견했습니다. 대체의학에 관한 코너였죠.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과목, 그중에서 대체의학 교재라는 두꺼운 책 한 권은 1,400 페이지에 달했습니다. 직접적인 죽음의 과정에 관한 장은 9페이지 분량이었죠. 책으로 가득한 2층 건물 전체에서 단 9 페이지의 죽음. 바로 그 순간이 이 책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전 알고 싶었습니다. 

인간이 죽으면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죽음은 언제 시작되는가?
죽음의 길은 어떤 경과로 진행되는가?
그리고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래서 저는 죽음을 찾아 나섰고 죽음 이후에 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 이것은 오직 당신 자신의 죽음입니다. 

당신이 탄생한 그 순간부터 반드시 있게 될 확실한 종결.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일.

그래요. 그렇기에 우리는, 당신은, 나는 준비해야 합니다.

내 삶이 오직 나 자신의 방식이었던 것처럼 죽음 또한 온전히 내 방식대로 이뤄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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