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다카하시 히데미네] 네, 수영 못합니다 - 물이 무서워 수영을 못하는 남자의 포복절도 수영 입문기

일루젼 2024. 4. 15.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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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다카하시 히데미네 / 허하나
출판 : 폭스코너
출간 : 2023.07.28


       

나는 언제나 조금쯤 가볍고 불성실한 자세로 살아왔던 것 같다.

결과가 좋으면 운이 좋았던 것이고, 결과가 나쁘면 최선을 다했던 건 아니니까 괜찮은 것인.

그렇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채 애매하게 발을 걸쳐둔 채로 대부분의 시간을 슬렁슬렁 살아왔다.

       

물론 그런 나에게도 몇 번인가, 정말 다시 한다 해도 그만큼은 할 수 없을 거라 생각될 정도로 최선을 다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경험을 통해 '최선'은 결과가 아니라 '흔적'으로 스스로를 남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신의 한계에 제대로 도달해 본 자만이 한계 너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음- 거창한 이야기가 되었는데. 

사실 내게 수영은 벌써 4번째인가 5번째인가 하는 해묵은 도전이다. 그럭저럭 배영까지 배우고 접영으로 들어갔던 레슨도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새롭게 등록하면 물에 뜨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니 나로서도 당황스러운 노릇.

물에 떠서 나아가는 느낌보다는 그대로 포근하게 잠겨드는 느낌을 훨씬 자연스럽게 느끼기 때문일까. 

그런 점에서 딱 취향인 프리폴(free fall) 다이빙에 도전해보고 싶었지만, 스노쿨링과는 달리 기본적으로 수영을 잘해야만 한다는 조건 때문에 번번이 포기하곤 했었다. 

 

꾸준하게 즐길 운동을 새롭게 시작하려다 문득 수영이 떠올랐다. 

어쩌면, 이번에는.

언제나 이번만은 다를 거라 생각하며 도전했다가 부스스 스러지곤 했지만, 정말 이번만은 뭔가 느낌이 다르다. 

 

강습 초기부터 진도가 목적이 아니라, 정말 '수영'을 할 수 있게 되고 싶다고 부탁 드리고 내게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강습을 받고 있다.

덕분에 한 달 내내 여전히 발차기만 하고 있지만 원하던 바다. 기본 근력과 자세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동시에 움직이려 하면 곧바로 고장나 버리는 나 같은 타입에게는 하나씩 완성해 가는 조립식 접근이 답이다. 고로 호흡도, 팔 돌리기도 중심이 무너지지 않는 상태에서 함께 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줄창 발차기로만 레인을 도는 중이다.    

그래도 매번 조금씩 중심선이 잡히는 느낌, 물을 밀어내는 느낌이 느껴지기 시작해서 즐겁다.

 

수영만이 아니다. 

삶에는 흔들리지 말아야 할 중심선이 있다. 

그리고 각자에게는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추진력이 존재한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 어떤 경우에도 그것 만큼은 스스로를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잘 단련하는 것. 

 

어쩌면 삶은 이것을 발견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일지도 모른다.  

 

 


   

 

- 바다, 호수, 강 그리고 연못... 
물이 가득 차 있는 장면을 눈앞에 두면 나는 발이 얼어붙는다.
멈춰 있으면서도 일렁일렁 흔들리는 그 모습이 무섭다. 지진이 난 것도 아닌데 일렁거리다니 정상이 아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바람이 그쳐도 흔들리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일렁거리는 걸까, 하고 가만히 쳐다보다 보면, 나까지 일렁일렁 흔들리는 기분이다. 내가 안 볼 때도 계속 일렁이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한결같음이 좀 소름 끼친다. 컵이나 세면기 혹은 욕조에 담긴 정도라면 물은 단순한 물체에 지나지 않지만, 그 이상으로 양이 늘어나면 거대한 생물처럼 보인다. 조용히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인간을 집어삼켜버릴 것 같기도 하다.  

- 수영할 수 있는 사람의 마음도 모르겠지만, "수영을 못한다"라고 고백하는 사람도 믿을 수 없다. 사람들의 "할 수 있다", "못한다"라는 말에는 반드시 내막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 어찌 되었든 학교 교육을 마치고, 나는 완전히 수영장에서 해방되었다. 더 이상 주위에 수영장은 없다.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는 한평생 맘 편히 살아갈 수 있다. 실제로 수영을 못해도 일상생활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나는 지금 이곳에 있는 걸까? 

    

- 나는 공포에 휩싸였다. 우선 첫 번째로, 잡을 곳이 없다. 
육지 생활에서 사람은 반드시 어딘가에 접촉하면서 살고 있다. 누구나 발바닥이나 손과 같은 몸의 일부를 땅, 바닥, 의자, 침대 등 어딘가에 반드시 접촉하고 있다. 다들 접촉하고 있으니, 지구상의 사람들은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처럼 지금까지 줄곧 이어져왔던 인간이 갑자기 뚝 떼어내지면, 불안에 떠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어디에도 닿아 있지 않으니까 피부 감각이 둔해져서, 계속 떠 있다 보면 어디까지가 자기 몸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윤곽이 사라져 버린다. 

 

- 이 무음 상태도 무섭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물속에서는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도 없다. 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로 얼마간 지나면, 머릿속의 '생각'이 선명해지는 느낌이 든다. 몸의 윤곽은 사라지고, '생각'만 둥둥 뜬다. 육체를 벗어난 '나'가 떠 있는 것이다. 얼굴을 물에 담갔을 뿐인데, 이토록 단숨에 세계가 변화한다.  

- "일단, 헤엄쳐볼까요?"
처남은 그렇게 말하더니 벽을 차고 물속으로 사라졌다. 무시무시한 물보라 때문에 처남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가라앉으면 안 된다,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기백이 느껴지는 자유형이었다. 수영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한번 시작하면 멈춰지지 않는 모양인지, 처남은 단숨에 풀을 왕복했다. 그러고는 출발 지점으로 다시 돌아와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어, 수영 안 하세요?"

- 그렇게나 "수영을 못한다"라고 말했는데. 여기에 뭘 하러 왔는지 잊어버린 걸까. 처남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수영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실태를 보여주기로 했다.

 

- 얼굴을 물에 담그고, 몸을 뻗으면서 힘껏 벽을 찬다. 물살을 가르면서 힘차게 나아간다. 하지만 처음만 그럴 뿐, 점차 속도가 떨어진다. 기세를 유지하려고 발을 퍼덕거린다. 팔도 돌려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진다. 뭔가에 쫓기는 것 같고 점점 숨이 찬다. 어느 팔부터 돌려야 하지? 실수했다, 이런 건 시작하기 전에 미리 정해뒀어야 했는데. 나는 후회하면서 일어섰다. 

- 왼쪽 다음은 당연히 오른쪽이지만, 오른팔을 움직일 타이밍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몸이 조각조각 분해되는 느낌에 사로잡혀, 순식간에 숨이 막혀왔다. 풀의 바닥 풍경은 아까부터 내내 움직이지 않는다. 즉 나는 같은 장소에 멈춰 있는 것이다.

 

- "여러분은 지금 열심히 물을 저으려고 하시는데요, 그러지 마세요. 물을 저어서 앞으로 나가려고 하지 마세요."
코치는 두 팔로 주위의 물을 세차게 자기 쪽으로 저었다.
"이렇게 저으면 자기 몸에 물이 부딪쳐서 앞으로 안 나갑니다. 그러니까 물을 저으려고 하시면 안 돼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물을 안 젓고, 여기서 뭘 해야 하지?

- "물을 누르는 겁니다. 물을 누르고, 무게중심을 이동시켜서 앞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그렇군. 우선 물의 일렁임을 누르면 되는구나, 하고 나는 이해했다.
 

- "힘을 빼면, 부력으로 손이 떠오릅니다."
확실히 뜬다.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걸 꾹 누르는 겁니다."

 

- 완전히 떠오르기 전에 물을 가볍게 누른다. 하지만 아주 적은 힘으로 눌러야 해서, 누른 느낌이 나지 않는다. 그저 물속에서 손을 멈추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확인을 위해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니, 떠오르는 건지 누르는 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주위 수강생들이 입을 모아 "어머, 정말이네"라고 하기에, 나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이며 물속에서 손을 띄웠다가 누르고, 띄웠다가 눌렀다. 마치 부채질이라도 하듯이.
"뜨려고 애쓰지 마세요!"

- "뜨기 위해 물속에서 손을 올리려고 하면, 엄청나게 힘이 들어갑니다."
해보면 안다. 물속에서 양팔을 내리고, 거기서 위로 올리려고 하면 물의 무게 때문에 팔이 뒤틀릴 것 같다.
"뜨려고 애쓰면, 부력이 작아집니다. 그러니까 뜨려고 하시면 안 돼요. 어디까지나 저절로 떠오르니까 그걸 누르는 겁니다."

- 뜨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떠오른다. 저절로 뜬다.
의지가 아닌 단념의 경지다.
"시체랑 똑같습니다. 힘을 빼면 떠올라요."
일단 죽어야 한다는 말이군. 나는 시체, 시체하고 생각하면서 몸을 눕힌다. 확실히 처음에는 떠 있지만, 조금 지나면 발부터 가라앉는다. 도무지 제대로 죽을 수가 없다. 떠오른다기보다는 가라앉는다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죽어본 적이 없어서, 이런 요령은 잘 모르겠다. 

- "자, 얼굴을 물에 담그고, 그대로 머리를 깊이 가라앉혀보세요."
숨을 들이마시고, 가쓰라 코치가 시키는 대로 선 채로 머리를 물속 깊이 쑤셔 넣어본다. 그러자 이게 무슨 일인가? 엄청난 힘으로 내 머리가 떠올랐다. 마치 물에서 튕겨 나오는 것 같아서, 나는 깜짝 놀라 혹시 내 머리가 텅 빈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떠오르는 것을 실감하기 위해서는 일단 가라앉아야 한다. 가라앉았기 때문에 떠오른다. 처음부터 뜨려고 하니까 가라앉는 것이다. 

- "이게 부력입니다. 그러니까 헤엄칠 때도 이마로 물을 누르는 거예요. 이마가 천장을 향하고 있으면 물을 누를 수 없습니다." 
이마로 물을 누른다. 손으로 물을 누르고, 공을 감싸듯이 뒤로 돌린다. 다리도 좌우 번갈아 물을 누르고, 떠오르면 다시 누른다. 
누르면 떠오른다. 떠오르니까 다시 누른다.
이것이 수영의 기본 원리다. 물속에서 생사의 기로를 떠도는 것이다.

 

- 나는 덜컥 겁이 나서 일어섰다.
아무래도 나는 죽음이 무서운 모양이다. 죽고 싶지 않다. 그동안 계속 물을 피해온 덕분에 살았던 것이라서, 물속에서 죽을 가능성이 남들보다 크다. 죽지 않더라도, 물에 빠져 구급차에 실려 가서 검사를 받은 결과 다른 병이 발견돼,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결국 죽을 가능성도 있다. 수영장 때문에 죽는다면, 지금까지 물을 피해 살아온 일이 물거품이 된다.

-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지금부터는 몸의 일부가 아니라 온몸으로 움직이기로 하자.
등을 펴서 몸의 중심을 바로잡고, 온몸의 균형을 생각하면서 커피 잔을 들었다. 이렇게 하니 자연히 움직임이 느려져서, 마음도 아주 안정됐다. 수영장에서 돌아올 때, 전철 표도 허리 회전을 이용해서 샀다. 밥도 제대로 정좌하고 먹었다. 이렇게 하니 '식사'라고 말하고 싶어 진다. 비디오 대여점에 들렀을 때도, 자유형의 요령으로 천천히 오른팔을 돌리고, 공을 던지듯이 무게중심을 이동시켜서 비디오를 손에 들었다. 그러고는 "좋아, 이렇게 하는 거군"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 "반드시 수영할 수 있을 거예요."
함께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이 나를 격려해 줬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한 명이 말했다.
"원래는 했었잖아요."
"언제요?"
"태아 시절에 엄마 양수 속에서. 그때를 떠올려봐요."

 

- 물은 엄마다. 두려워하지 말고, 몸을 맡기는 마음이 중요하다. "맡겨야지"라는 생각 없이.

- 미국인이 종종 "Why?" 같은 말을 하면서 손바닥을 뒤집는 요령이다.
그러자 이게 무슨 일인가? 물속에서 손바닥을 뒤집으면서 가볍게 옆을 보듯이 몸을 살짝 틀기만 했는데도 몸이 열리고, 점차 얼굴이 올라가서 수면이 보였다. 앞서 언급한 수영 교재에 적혀 있었던 "얼굴을 든다"라는 말은 틀렸고, '손바닥만' 생각하고 있으면 얼굴은 저절로 '올라가는' 것이다. 

- 이게 옆에서 본 물과 공기의 경계구나.
훨씬 더 물속 깊이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의외로 수면 근처에 있었다.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기뻐서, 나는 저도 모르게 일어섰다.
"서지 마세요!"

- 즉 이 움직임을 하면 들이마셔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가슴이 열려서 자동으로 공기가 들어온다. 

"이게 바로 호흡입니다. 이걸 물속에서 하시면 돼요."
육지에 서서 하는 심호흡 동작을 물에 누워서 하면 된다. 이 동작을 양팔 동시에 하면 접영이고, 한 팔씩 교대로 하면 자유형이다.
"이때, 반드시 팔이 뻗어 있어야 합니다. 팔이 뻗어 있으니까 가슴이 열리고, 가슴이 열리니까 공기가 들어오는 거예요."
요컨대 호흡이란, 뻗어 있는 팔이 돌아간 결과인 것이다. 가슴이 열리면 저절로 공기가 들어오고, 가슴이 닫히면 저절로 나간다.

- 뒤집힐 뻔한 내 옆에서 혼자 침착하게 잠수함의 잠망경처럼 팔을 똑바로 세우며 헤엄치는 모습이 눈부시게 빛났다. 
"코치님이 하는 말 듣고 계세요?"
단도직입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물론이죠. 하지만 헤엄칠 때는 아무 생각도 안 해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는 말씀이세요?"
"그렇지는 않아요. 수영하다가 종종 '아, 코치님이 한 이야기가 이거구나' 하고 생각나거든요."

-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난다"라는 경지다. 생각하는 것은 의지가 필요하지만, 생각나는 것은 자연발생이다. 의지가 금물인 물속에서는 생각하지 말고, 생각나야 한다. 무슨 일이든 생각나려면 일단 잊어야 한다. 물에 들어간 순간에 잊고, 방금 들었던 이야기도 땅 위에서의 어렴풋한 '추억'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아시겠어요? 모르면 모른다고 확실하게 말하세요"라고 반드시 확인하는 가쓰라 코치의 이야기를 잊을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이것도 물이 가져다주는 효과인 걸까?

 

- "안 움직여도 된다고요?"
"네."
가쓰라 코치가 딱 잘라 대답했다.
"그러면 어떻게..."
"지금 양다리를 쭉 펴고 모으려고 하고 있잖아요?"
가쓰라 코치가 물 위에 누워, 양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뻗었다.

- "그런데 모으려고 해도 몸을 움직이다 보면 다리가 좀 벌어져버리죠?"
확실히 그렇다.
"그렇게 되면 다시 모으세요. 그러면 됩니다."
다리가 벌어지면 다시 모은다. 가위 같은 모습이 상상되는데, 몸이 좌우로 흔들리면 각도가 바뀌기 때문에, 발차기와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한다.

- 이제 발차기를 안 해도 되니까 편했다. 뒤를 신경 쓰지 않으니, 마음이 앞으로 나아간다. 다리가 벌어진 느낌이 들면 모아야 하지만, 그런 느낌이 들지 않으니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상반신만 천천히 뻗어 있다. ... 뻗어 있다. ... 하고 반복한다.
그러자 이게 무슨 일인가? 다리 쪽이 둥실 떠올랐다.

- 다리가 일렁일렁 흔들린다.
물속에서 내 다리가 미역처럼 일렁이고 있다. 그 일렁이는 느낌이 점차 위로 올라와, 이윽고 전신이 일렁였다.
마치 요람에 누워 있는 것 같았다. 왜인지 호흡 걱정도 사라졌다. 요람이 오른쪽으로 올라갔을 때 저절로 공기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졸리다.
어쩐지 졸음이 몰려왔다. 이대로 잠들기는 아깝다. 일렁임을 유지하기 위해, 물에 맞춰서 천천히 허리를 흔들었다. 요람을 즐기는 아기처럼. 아, 편하다. 이 흔들림에 맞춰 팔을 번갈아 뒤로 보내면 된다. 
"잘하고 있어요. 잘하고 있습니다!" 
 
- "아무리 못생긴 사람이라도 물에 들어가면 예뻐질 수 있습니다."
나도 그렇다는 의미일까?
"얼굴이나 몸매가 예쁜 게 아니에요. 부분이 아니라 전체가 예쁜 겁니다. 바로 그 사람 자체의 아름다움인 거예요."

- 생김새가 아닌, 존재 자체의 아름다움. 가쓰라 코치에 의하면, 예쁘기 위한 최소 조건은 다음의 두 가지다.
좌우 균형

리듬
이 두 가지를 겸비하면 수영이 예뻐 보인다고 한다.  

- 우리는 속도나 기술을 겨루는 것이 아니다. 물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아름다운 존재감을 연출해야 하는 것이다. 
몸을 펴고, 허리를 흔든다. 수영의 기본을 배운 나는, 육지에서도 그렇게 움직이면서 생활하고 있었다. 걸을 때도 등을 곧게 펴고, 허리를 흔들어서 그 기세로 걷는다. 체중을 좌우로 흔들며 진자처럼 앞으로 나아가면 기분이 좋다.

 

- 안 되리라 생각하면서 오른손을 뻗자, 잡혔다. 왜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니, 몸을 비틀고 있다. 몸을 비트니 오른쪽 어깨가 앞으로 쑥 나와서 팔이 더 앞까지 늘어난 것이다. 나는 마술을 본 것처럼 깜짝 놀라서 거듭 확인했는데, 역시 늘어난다. 
"팔이 늘어난 게 아니에요. 팔은 그 길이 이상으로는 늘어나지 않습니다. 늘어난 것은, 옆구리 아래부터 허리에 걸쳐 위치한 근육이에요. 이것을 외복사근이라고 합니다."

- "이것도 잡아보시겠어요?"
그렇게 말하고, 가쓰라 코치는 내 왼쪽 옆에 있는 테이블에 컵을 놓았다. 나는 있는 힘껏 몸을 비틀면서 오른팔을 뻗었다. 아슬아슬하게 안 닿는다.
"안 닿습니다..."
"왼쪽 어깨를 당기세요."
그러자 이게 무슨 일인가? 오른손이 3센티미터 정도 더 앞으로 늘어났다. 반대쪽 어깨를 당기니 몸이 열려서, 아주 쉽게 몸을 비틀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가슴의 답답함이 사라진 것처럼 숨 쉬기도 쉬웠다.

- "이게 바로 수영입니다. 힘은 넣지 않는다. 옆구리를 늘리고 몸을 비튼다. 이게 물속에서 힘을 만들어 냅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좌우 번갈아 옆구리 아래를 늘리고 몸을 비틀었다. 가면라이더의 변신 포즈 같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였구나. 기쁜 나는 컵을 향해 공중을 헤엄쳤다.

- 확실히 팔이 아닌 옆구리 아래가 늘어나고 몸이 뒤틀려, 그로 인해 팔이 이동해서 그 무게로 몸이 뒤집힌다. 인간의 움직임은, 팔다리의 미세한 근육보다 외복사근처럼 커다란 근육을 쓰는 쪽이 더 편하다.
물속에서는 옆구리를 해방할 것.

 

- 움직이려고 하면 전신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져서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가쓰라 코치는 아픔을 참으며 수영장에서 재활을 했다고 한다.
"움직일 수 없게 되고 처음으로 몸을 움직인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알게 됐습니다. 어딘가가 움직인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이고 있을 뿐, 그곳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어요." 


- 일반적으로 수영은 팔을 뻗고, 어깨를 돌리고, 발로 차서 앞으로 나아간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가쓰라 코치에 의하면, 그것들은 겉으로 보이는 결과에 불과하다. 전신의 힘을 빼고, 옆구리를 번갈아 늘리면서 몸을 비튼다. 이를 반복하면, 결과는 저절로 나타난다. 
"누가 '예쁘게 수영하시네요'라고 하면, 이렇게 대답하시면 됩니다. '아니요, 수영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그냥 몸을 늘리고 있을 뿐이에요'라고."
 
- "밑으로 떨어지잖아요. 밑으로 늘어나면 안 돼요. 나는 위로 늘어나고 싶어. 거슬러 늘어나고 싶은 거예요. 그래, 날고 싶어요."
팔을 치켜들고, 당장이라도 헤엄쳐 나갈 듯한 기세로 핫토리 씨는 말했다.
평소 억눌려 있다고 느끼기에, 분명 이토록 시원스럽게 몸을 늘리는 것일 테다.

- 인간의 선조는 수생 유인원이었다는 진화론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수렵생활을 하던 유인원이 생활상의 필요(멀리 보고, 싸우는 것)로 인해 직립보행을 하게 되면서 인간이 되었다고 여겨지는데, 이 가설은 그것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유인원은 바다를 헤엄치던 중 일어서는 것을 배웠고, 인간이 되어 육지로 올라온 것이라고. 
증거 중 하나는 '서맥'이라는 현상이다. 바다표범이나 비버 등 수생 포유류는 육지에 있을 때보다 물속에 있을 때, 심박수가 낮다고 한다. 숨을 쉬지 않아도 산소 부족에 빠지지 않기 위한 생리적 메커니즘이다. 이 서맥이 왠지 우리 인간에게도 있다고 한다. 나처럼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오히려 심박수가 높아지겠지만, 보통은 낮아지는 모양인데, 그것이 바다 생활의 흔적이라고 한다. 

- 이 가설을 열심히 주장하는 사람이, 영국인 일레인 모건이다. 그녀에 의하면, 인류와 남성이 똑같이 MAN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것이 인류 진화를 고찰하는 데 있어서 편견을 낳는다고 한다. 유인원 중에는 암컷도 있다. "야생 상태의 성숙한 암컷은 대체로 새끼를 임신했거나, 갓 태어난 새끼에게 젖을 주고 있거나, 점점 무거워지는 새끼가 있어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거나 중 하나" (<여성의 유래 또 하나의 인류 진화론>, 일레인 모건 저, 모치즈키 히로코 역, 도부쓰사, 1997)였다. 수렵만 하면서 살았던 것이 아니라, 출산과 육아에도 쫓기는 날들이었다. 열파와 가뭄에 시달렸던 플라이오세(기원전 약 500만 년~200만 년)에는 식량도 구하기 힘들어, 암컷들은 견디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도피처로 바다를 택했다. 

- 즉 물에 의한 암컷 유인원의 해방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일 수 있었던 까닭이다. 여성의 선도로 인간은 바닷가에서 탄생한 것이다. 일레인 모건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의 비극은, 수백만 년을 물속에서 살다가 수생 생활에 적응한 수많은 흔적을 저도 모르게 몸에 주렁주렁 단 채 무리를 지어 육지로 돌아온 데서 시작됐다."


- 여성이 물에 가서 진화를 이루어냈는데, 남성이 육지로 돌아와 손발의 근력에 의존해 육지 생활을 지배했다. 이것이 부자연스럽다고 그녀는 말한다. 
물에서 도망치고 싶다. 수영장에서의 내 원점이 여기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분명 지배권을 잃게 될까 봐 두려운 것이다.

- 우먼 리브 같은 진화론이었던 탓에, 이 가설은 이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털 없는 원숭이>로 유명한 데즈먼드 모리스도 이 가설을 인정하고는 있지만 "그 이상 파고드는 것을 주저했다." 
그에 대한 일레인 모건의 지적은 흥미롭다.
"(데즈먼드 모리스는) 일곱 살 무렵 하마터면 물에 빠질 뻔했다는 그의 경험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마음의 상처 탓에 이후 삼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도무지 수영을 배우려는 마음을 먹지 못했던 모리스에게, 물처럼 몹시 위험한 요소조차 이용할 수 있도록 우리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필시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 사람은 어떤 일을 해내면, 성취감을 얻는다. 전혀 수영을 못했던 내가 이렇게 25미터는 거의 확실히 헤엄칠 수 있게 되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할 수 있겠다. 원래 나는 성취감을 얻기 쉬운 성격이라 10미터쯤 됐을 때 이미 그것을 얻었다. 그러니까 이제 된 거 아닐까. 올림픽을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수영을 계속해야 하지? 

 

- 애초에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수영하는 것일까?
물속에서 숨이 막힐 때면, 나는 항상 이 의문으로 되돌아갔다. 수영을 하는 목적. 그것을 우선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목적이 있어서 수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수영을 하다 보면 목적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그런 기색도 전혀 없고, 목적이 없다는 점이 일어설 '이유'가 되고 있었다. 

- "몸의 중심선을 똑바로 하세요."
그날의 주제는 '똑바로'였다.
수영의 기본은 물속에서 몸을 똑바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물의 저항이 적어서 원활하게 나아갈 수 있다. 이론은 알고 있다. 다만, 우리는 아직 그걸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 코치의 말에 따르면, 포인트는 세 곳이다. 머리, 꼬리뼈, 발꿈치. 팔다리를 움직이면서도 이 세 곳이 일직선이 되도록 해야 한다. 발로 킥을 할 때도, 차는 것이 아니라 이 직선에 발뒤꿈치를 되돌리듯이 킥을 한다. 문제는 이 직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문제를 깨달았는지, 가쓰라 코치는 이렇게 지시했다.

"지금 그 자리에서 있는 힘껏 점프해 보세요."

 

- 우리는 물속에 선 상태로 물보라를 일으키며 싱크로나이즈드처럼 점프했다.
현기증이 났다. 가볍게 점프한 셈이었는데, 엄청난 기세로 뛰어오른 것이다. 분명 부력의 도움을 받았을 테다.  

- 수면 위에 둥둥 떴다. 이것을 '우키미(浮身)'라고 부른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떠 있는 방법이 예사롭지 않다. 발끝이 수면에서 나와 있다. 그뿐만 아니라, 배까지 나와 있는 사람도 있다. 모리야 씨에 이르러서는 물 위에 뜬 채 천천히 몸을 옆으로 돌려, 한쪽 팔을 팔베개처럼 머리 아래에 놓고 빙그레 웃고 있었다. 
"이게 '유메마쿠라(夢枕)'입니다."
이 또한 수영 기술 중 하나였다. 모리야 씨는 거기서 더 나아가 양다리를 구부려 양반다리를 하더니, 천장을 보고 누운 채 좌선을 했다.

- "머리가 무의식 중에 올라가 있어요. 머리가 올라가면 다리는 가라앉습니다. 그러니 머리는 귀까지 물에 담그도록 하세요."
참고로 이 "우키미"의 비법을 철저히 구명한 것은 시마즈번(가고시마 현)의 신토류다. 이 유파는 일본 남단에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유파에서 영향도 받지 않고, 비밀주의를 관철했다고 한다. 그들은 "우키미"를 "스테노와자(捨の)"의 하나로 삼고 있다. 사심을 버린다는 의미다.
(역자 주 : 스테노와자. 와자미시나(業三品)라 불리는 신토류 영법 중 하나. 이외에 사시노와자(差), 누키노와자(の業)가 있다.)
 
- "정직한 마음으로 어느 정도 숨을 들이마신 다음,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뒷머리를 물에 담그고, 조용히 몸을 늘리며 양팔을 몸 쪽으로 뻗는다." (<도설 일본 영법-12 유파의 비법>, 시라야마 겐자부로 편저, 니치보출판사, 1975)

- 호흡도 몸의 움직임도 항상 '조용히 실시하는 것'이 비법이다. 결과보다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물속에서 얻어진 경지를 '범중와(梵中瓦)'라고 부른다. '범'은 범천(梵天), 즉 대자연이다. '중'은 '중순(中)', "사람의 기술에 깊이 몰입하여, 감득하는 힘을 깨닫는 것." '와'는 와륵(瓦礫). "하찮은 것의 소소한 생명을 체험하고, 버려진 돌멩이의 마음을 느끼는 힘을 터득하는 것." 즉 자신을 버리고 기술을 통해서 세세한 부분까지 자연의 신비를 맛보는 것이다. 

- 이런 일로 고민하는 사람은 분명 나 뿐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보려고 하는 것'은 보려는 주체를 불러들인다. 부름을 받는 것은 '나'다. 이 '나'는 물속에서 고민하고 헤매는 나이기 때문에, 괴로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반면, '보이는 것'은 현실을 그대로 비추는 경지이므로, '나'는 필요 없는 느낌이 든다. 
육지와는 달리, 물속에서는 멸사의 시선으로 있어야 하는 것이다.
불상이 분명 그런 눈이었던 것 같은데, 하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 그래서 수업이 끝나자, 그 길로 근처에 있는 불단 하세가와 매장으로 향했다.
석가여래, 대일여래, 아미타여래, 약사여래... 가게 안에는 종파를 초월한 온갖 여래상이 늘어져 있었다. 깨달음을 얻은 여래상은 모두 눈을 가늘게 뜨고 있으면서도, 무언가를 '보려고' 하지는 않는 듯하다. 점원의 말에 따르면, 이 눈을 '반안(半眼)'이라 부른다고 한다. 

- "그런 게 아니라요..."
"나는 뒤에도 눈이 달려 있어요. 늘 삼면거울로 보니까 익숙하기도 하고, 내 뒷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항상 신경 쓰거든요. 게다가 치한도 무섭잖아요. 그래서 뒤쪽은 늘 주의하고 있어요."
자주 뒤를 보고 그 잔상을 눈에 새긴 덕분에, 앞을 보고 있을 때도 잔상이 겹치는 모양이다. 간단히 말해서, 주위를 살피는 주의력이 뛰어난 것이다. 

 

- "지금도 뒤가 계속 보여요. 여자들은 대부분 항상 360도를 보고 있어요. 몸으로 느낀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남자는 안 되나요?"
"남자들은 뒤를 보려고 하지 않거든. 앞도, 이렇게 조금밖에 안 보고."
우에하라 씨는 양손 검지를 가까이 대고, 그 사이로 들여다보았다. 배려가 부족하다는 말일까?
"왜 그럴까요?"
"분명 무서운 거죠. 뒤를 보면, 본인이 저지른 실수가 잔뜩 굴러다니고 있을 것 같아서."

- 보이는 상황을 정리해서 나는 설명했다. 

"보면 안 돼요, 그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모양인지, 나카무라 씨가 내게 조언했다.

- 안 보려고 하면, 더 신경 쓰인다. 그 거울에 무엇이 비치고 있는지.
나는 숨을 멈추고 물에 들어가, 물속에서 조심스레 수면에 손을 가져가보았다. 그러자 수면에 닿을 듯 말 듯한 곳 언저리에서 손이 수면에 일렁일렁 비쳤다. 이것은 아주 가까운 곳만 비추는 거울이다. 지금까지 이 밑에서 헤엄치고 있었나 생각하니, 나는 무언가 속임수에 걸린 기분이었다. 

- "결국 보고 말았군요... 그것을."
히로시마대학의 나가누마 다케시 조교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심해생물학의 일인자로서 지금까지 잠수정을 타고 북극해, 남극해, 남태평양 등 전 세계의 심해 수천 미터를 잠수해 왔다. 지구상의 물을 밑에서부터 샅샅이 보아온 사내다.
"물속에서 본 수면, 그것이야말로 물의 본질입니다."

- 물의 분자는 수소(H) 원자 두 개와 산소(O) 원자 한 개로 구성되어 있고, 이것이 'ㅅ'처럼 꺾은 선형으로 결합되어 있다. ㅇ 측이 마이너스, H 측이 플러스의 전기를 띤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물 분자는 가로세로 균일한 그물망 형태로 이어져 있다고 한다.
"물은 자기들끼리 뭉치려는 힘이 강합니다. 물 정도의 분자량을 가진 물질은 보통 조금만 열을 가해도 기화, 즉 뿔뿔이 흩어져서 날아가거든요. 그런데 물은 이 힘의 작용으로 상온에서도 액체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적의 물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자기들끼리 뭉치려는 힘은, 동시에 다른 것을 배제하는 힘이 된다. 공기와의 경계인 수면에서는 그 힘이 강하게 발휘되어 물이 단단해진다고 한다. 이것이 이른바 '표면장력'이다. 

 

- "요코하마 베이브리지에서 뛰어내린다고 가정하면, 아마도 충격 때문에 죽을 겁니다. 잘하면 골절로 끝나겠지만, 수영을 못하니까 죽어요. 수면이 콘크리트 도로처럼 되어 있거든요."
"그렇다는 건, 우리는 물의 단단한 부분을 헤엄치고 있다는 말인가요?"
"맞습니다. 그리고 밑에서 수면을 올려다보면, 물고기들도 나오고 싶어 하지 않아요."
"왜죠?"
"바깥에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물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 단단한 것을 뚫고 나가면 죽는다고 생각하게끔."

- 마치 물이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듯이 나가누마 씨는 설명했다. "어심(魚心) 있는 곳에 수심(水心) 있다"더니 수면은 삶과 죽음의 경계인 것이다.

- "그런데 교수님, 수영할 줄 아세요?"
설명 도중이었지만, 무심코 나는 질문했다.
"저, 수영 못합니다."

 

- "나는 진화한 것이라고 믿고 싶어요."
나가누마 교수는 역설했다. 우리는 동료라는 듯이. 그나저나 나가누마 교수는 이런 심리 상태로 용케 심해에 잠수하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무섭지 않은 걸까.


- "괜찮습니다."
"괜찮으신가요?"
"익사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폐에 물이 차서 죽는 경우와 잠수반사로 기도가 막혀서 질식사하는 경우. 수영을 못하는 우리는 후자입니다. 수영할 수 있는 사람은 수영하려고 애쓰다가 물을 다량으로 폐에 집어넣게 됩니다. 우리는 충격으로 숨을 쉴 수 없게 될 뿐이죠. 찬물에서 인간은 가사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있으니, 나중에 소생할 수도 있습니다." 


- "그렇다면 수영을 못하는 편이 안심이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설령 죽더라도 수영을 못하는 편이 죽은 얼굴도 평안합니다."
나가누마 교수는 공포를 법의학적으로 극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심해의 모습이 신비체험인 양 이어 말했다.

"수심 100미터에서 바다는 칠흑같이 어두워집니다. 빛이 없고, 부력과 중력이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위아래 감각도 사라집니다. 램프를 켜면 창문 밖 10미터가량밖에 보이지 않아요. 거기에 심해생물이 있습니다. 그들은 제게 발견되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았을 생물입니다. 이런 어둠의 세계가 사십억 년이나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정말 보잘것없게 느껴지고, 결국 위대한 것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거죠..."

- 지표면의 70퍼센트는 바다, 즉 물이다. 그리고 생명은 물이 지닌 '뭉치려는 힘'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여겨진다. 인체의 60퍼센트도 물.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살아간다기보다 위대한 물이 우리를 살아가게 해주는 것이니, 왠지 내 몸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한번 빨려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곳으로. 


- "거기서 감동하거나, 포근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죠."

대부분 그렇다. 대자연에 몰입하는 것이 요즘 유행이기도 하다.
"저는 다릅니다. 무섭고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거기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 "재능이 있는 사람은 더 대단합니다. 하다 보면 자신의 한계도 알게 되거든요. 기록이 떨어지는 건 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만뒀습니다."
가쓰라 코치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수영을 그만두고, 전문학교에 진학했다.
"저에게 수영은 즐겁다, 즐겁지 않다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헤엄칠 뿐이었죠. 그래서 싫습니다. 전문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도 '수영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살면서 수영밖에 안 했으니까, 수영을 안 하는 인생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 "저는 다른 사람을 가르치게 되고 나서 처음으로 '수영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처음부터 '수영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가쓰라 코치에게는 나처럼 '수영 못하는 사람'이 신선하게 비친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수영할 수 있다'는 감각은 '수영을 못하는' 상태가 전제되지 않으면 맛볼 수 없다.
"수영을 못하던 사람이 수영할 수 있게 되고, 그 사람이 기뻐하거나 실력이 향상되거나 예쁘게 수영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기뻐요."

- 그렇다 치더라도 가쓰라 코치의 수업은 너무 독특하다. 다른 수업을 살펴봤는데, 대부분 '오늘은 발차기' 등을 정해서 '발차기'만 하고, 그것을 단계적으로 쌓아나가서 '수영'을 완성시킨다. 가쓰라 코치처럼 지도 내용이 시시각각 진화하고, 조금 전에 "물을 젓지 마세요"라고 말했으면서, 지금은 "물을 저을 때는 손을..."이라고 말하는 등 모순을 초래하는 가르침은 흔치 않을 것이다.

- "저는 다 같은 수영을 하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가쓰라 코치는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다 같은 수영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 어떤 것을 가르치려고 하시나요...?"
"사람은 저마다 몸이 다르니까, 하나의 방법으로 모두가 헤엄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수영에 정답은 없어요. 게다가 '조금 전'과 '지금'은 다릅니다. 몸 상태도 다르고, 물결도 달라요. 다 살아 있습니다." 

- "여러분이 헤엄치는 것을 보고 나면, 그 모습을 따라서 헤엄쳐봅니다. 그러면 몸 어딘가가 아파요. 그건 어딘가를 무리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아픔을 없애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헤엄치면서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문득 편해지는 방법을 발견하게 돼요." 
가쓰라 코치는 이렇게 해서 '수영을 못하는 원점'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었다. 나와는 역방향이지만, 코치도 지나치게 잘 헤엄치는 탓에 물속에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 "그리고 이번에는 반대쪽. 왼쪽 엉덩이를 올리고, 잡아당기면 오른팔을 돌렸다가 다시 제자리로. 이게 수영입니다. 자, 그러면 매트 끝까지 헤엄쳐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가쓰라 코치는 매트를 세로로 두 개 늘어놓았다. 4미터를 헤엄치라는 말이다.
"다카하시 씨, 가세요."
뭐든지 레인처럼 되면 나는 마음이 조급해진다. 얼른 나아가야지 하는 마음이 앞서서, 나도 모르게 팔에 힘을 넣어버린다. 자위대의 포복 전진처럼 나는 나아갔다.
"엉덩이부터입니다!"

- 한 번 더 복습하자.
1. 오른쪽 엉덩이를 올린다.
2. 오른팔이 당기니까, 그대로 뒤로 가져온다.

 

- 이때, 오른쪽 엉덩이를 힐끗 보면, 그게 바로 호흡의 형태다. 그리고 등을 조금씩 비틀면서 오른팔을 앞으로 돌리고 엉덩이를 원래대로 되돌린다. 그러면 오른손은 왼손보다 2센티미터 정도 앞에 착지한다. 옆구리가 늘어난 만큼이다. 이어서 왼쪽 엉덩이를 올린다... 모든 건 엉덩이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 치더라도 어찌나 지지부진하게 나아가던지, 나는 4미터를 다 헤엄치는데 오 분이나 걸렸다.

- "그래서 물속에서 헤엄치는 겁니다."
물속에서는 '골반을 움직이지 않고 안정시킨다'는 말이었다. 언뜻 보기에 모순된 것 같지만, 육지와 물속은 조건이 다르다. 육상은 바닥이 딱딱해서 엉덩이가 높이 올라가지만, 일정한 형태가 없는 물속에서는 엉덩이를 올리는 몸짓을 하면 허벅지가 물을 누르듯 아래로 움직인다. 이것을 바로 킥이라고 한다. 즉 물속에서 엉덩이를 올리면, 엉덩이는 올라가지 않고 다리가 내려간다. 그 결과, 앞으로 나가면서도 골반이 안정된다. 

- "그러면 그대로 풀에서 헤엄쳐보세요."

나는 다시 풀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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