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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의 위트가 넘치는 유머 소설로 알고 집어든 책이었다.
물론, 허삼관의 이야기는 눈물로 얼룩진 무겁고 딱딱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내게는 딱 체온보다 조금 높은 온도의 피가 흐르는, 피. 피의 이야기다.
허삼관의 곳곳에 배치된 모든 것들은 '피'를 상징한다.
몇 번이고 아들이 아닌 손자라고 말하는데도 '아들아'라고 부르는 할아버지부터 그러하다. 앞에 있는 이가 아들이건 손자건, 그는 자신의 피를 이은 존재이므로 그는 결국 자신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보인다.
그에게 상냥했던 넷째 삼촌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그는 피는 이어졌어도 자신에게 상냥하지 않았으므로 있으나마나한 다른 삼촌들과 대비되며 '일락'과 '허삼관'의 관계를 매개할 복선이 된다.
'피가 내는 힘이 있고 살이 내는 힘이 있다.'
'피를 판다.'
여기서의 피는 말 그대로의 피이기도 하고, 또 그렇지 않기도 하다.
처음으로 피를 팔아 돈을 버는 허삼관.
35원은 반년 동안 땅을 파도 얻기 힘든 정도라는 말에서 시대상이 엿보인다.
이 글을 지은 저자가 현대 중국인임을 생각하고 보자면, 이 책은 다른 의미로 상당한 유머 포인트들을 갖고 있다.
한국인들은 오히려 놓치기 쉬운 부분인데 중국인 가정에서 남녀 관계는 한국의 것과 상당히 다르다. 그 점을 놓치면 초중반부에서 허옥란과 허삼관의 관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꽈배기 서시인 '허옥란'을 얻기 위해 그의 아버지를 만난 '허삼관'의 논리는 놀랍다.
집안에 딸이 하나뿐인데 하씨 성인 '하소용'을 사위로 맞으면 허가는 끊어지지만 자신과 허옥란이 맺어지면 어느 쪽 성을 따라도 허가는 이어진다는 것인데, 이 역시 핏줄에 대한 이야기이다.
(눈여겨 볼 것은, 중국 역시 데릴사위 제도가 있었으며 이 경우 아이들은 남편의 성이 아닌 아내의 성을 따른다. 췌서라고도 하는데 좀 더 찾아볼 일이지만 구이저우(貴州) 한야오족(瑶族) 마을은 대대로 자연스럽게 데릴사위를 보낸다고 하니 유교적인 시각으로만 볼 것도 아니다)
[ 또 한 가지 재미있다면 재미있고 씁쓸하다면 씁쓸한 것인데, 허옥란을 얻기 위해 85전의 돈을 쓴 허삼관에게 허옥란이 한 말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게 결국 내 것인데, 이렇게 먹지 말 것을 그랬다'는 말.
이는 여성적인 사고로 볼 수도 있으나, 크게 보자면 중국인 전반에 흐르는 것이기도 하다. 확연하게 '자타'를 가리는 심리가 뚜렷한데, 결혼 이후였다면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눈여겨 봐야한다.- 뭐 이건 이대로 여성에 대한 유머로 놓고 지나가도 좋겠다. ]
이어서, 혼인이 결정하며 쐐기를 박는 '허옥란'의 명절 역시 피에 관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무남독녀 외동딸에 대한 언급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데, 그래서 데릴사위도 그리 귀하지 만은 않았다. (물론 아주 명예스러울 일까지야 아니었지만)
여기서 엿볼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처럼 그렇게까지 '아들'에 집착하지는 않았었는데, 허삼관에서는 그런 요소를 사실은 어느 정도 '유머'로 사용했었는데 이 점이 아직도 유교적 사상이 강한 우리나라 독자에게는 크게 어필하지 못하는 것 같다.
[ 덧붙이자면 중국 가정의 가사 분담이 제대로 전파를 타고 다큐로 방영이 된다면 한국은 크게 들썩일 것이다.ㅋㅋㅋ 여기서는 크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므로 적당히 넘어가지만, 만약 위생 관념이 서구화된 중국 남성이 있다면 결혼상대로 꽤 환영받을 것이다.]
그리고 태어난 삼형제 '일락', '이락', '삼락'과 '허옥란', '허삼관'은 행복하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듯 했다.
허나 또다시 '피'에 관련된 사건이 일어난다.
그것은 맏이 '일락'이 사실은 '허삼관'의 아이가 아닌 '하소용'의 아이라는 것.
(그러나 정말 그런지는 끝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만이 되풀이될 뿐이다.)
이에 얽혀 일어나는 일들은 '허삼관'에게 '피'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도 아내의 부정이라는 점으로 시선을 끌며 유머로 승화시켜 줄곧 이어지는 '피' 이야기를 살짝 순화시켜주기도 한다.
가장 아끼고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자신의 피를 잇지 않았다는 것이 그에게 주는 허탈감은 결국 넷째 삼촌으로 이어져 마무리지어지지만, 그렇게 서로 받아들이기까지 '일락'과 '허삼관'의 이야기는 자못 찡하다.
(결국 거기에 이르러 허삼관에게 '피'는 반드시 혈연으로만 이어지는 것만은 아님을, 다른 삼촌들과 그는 같은 피가 흐르는 친족임에도 넷째 삼촌과는 달리 '눈물'로 이어져 있지 않음을 보이며 좀 더 넓은 개념으로 변한다.)
그리고나자 모택동(마오쩌뚱)의 시대가 왔다.
급변하는 세태 속에 아주 넉넉치는 못해도 배 곯지 않고 살던 이들 식구에게도 파란이 인다.
당장 먹고 살기가 팍팍해 묽은 옥수수죽으로 57일을 연명하는 식구들을 보다 못한 그는 결국 다시 피를 팔기로 한다.
시간은 10여년이 넘게 흘렀는데 피값은 여전히 35원이다. 먹을 것은 1원도 않던 국수가 1원 70전이 되었는데도.
(여기서 또 하나의 유머 포인트는, '허삼관'이 말로 해주는 요리 '홍소육(紅烧肉)'은 모택동이 아주 좋아하던 음식이다. 글 내부에서는 모-까지만 언급될 뿐이나 이 음식으로 그가 모택동임을 확실히 보여주며, 또한 반어적으로 '허삼관' 식구들의 궁핍을 강조한다.)
'허삼관'은 '허옥란'을 얻기 위해 맨 처음 피를 팔았고.
두 번째는 일락이가 때린 방씨네 아이의 병원비를 위해 팔았으며.
세 번째는 임분방을 위해 피를 팔고,
네 번째는 식구들에게 먹을 것을 먹이기 위해 피를 판다.
크게 내다붙은 대자보로 인해 '허옥란'이 고초를 겪게 되고, 남의 시선이 따가워 결국 집 안에서조차 비판회를 열게 되는 허삼관.
거기서 그는 '임분방'과의 일을 고백하며 결국 자신과 '허옥란'은 같다고 말한다.
(이전까지 그가 내세웠던, 똑같이 한 번이지만 자신은 자식을 낳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역시 혈연, 즉 '피'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일락과 이락은 국가 정책을 따라 성 밖 농촌으로 떠나게 되고 삼락만이 남게 된다.
이후 일락이 간염이 걸렸음이 밝혀져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고, 이락의 생산대장이 접대를 받기 위해 집을 방문한다.
한달 간격으로 몇 번이고 피를 판 '허삼관'은 맨 처음 피를 팔 때 만났던 방씨는 방광 파열로 사망했음을 전해 듣게 되고, 다른 한 명인 근룡 역시 함께 피를 뽑은 다음 돼지간볶음과 황주를 먹던 승리반점에서 '허삼관'의 눈 앞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져 사망한다.
(함께 매혈을 했던 이들이기데 그렇겠지만, 지인들이 죽음을 맞게 되는 질환 역시 매혈과 관련된 것들이다)
결국 다른 도시를 전전하며 피를 팔아 돈을 모아오려던 '허삼관'은 거기서 돼지를 데리고 다니는 노인과 래희, 래순 형제를 만나게 된다. 여관에서 만난 노인과 돼지에 대해서는 사실 다소 의문스러운 점들이 좀 있는데,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다른 세대 간의 삶의 양식을 보이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돼지고기를 즐기는 중국에서 허삼관 이전 세대의 농경과 축사를 상징하는 돼지를 데리고 다니는 노인은 몸에 지닌 피를 파는 '허삼관'과는 다른 방식을 선택했으나 그에게 '돼지'는 '허삼관'의 '피'와 대치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확신이 없는 이유는 실제로 그러한 사회 양식이 유행했었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그리고 하지 않을 것이다; 좀 귀찮 ㅠㅠ)
생사 공장에 다녔던 '허삼관'을 생각해보면, 그 이후로는 공장과 산업이 부흥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래희'와 '래순' 형제는 생사를 팔러 다니는 이들이다. 그들이 형제라는 점도 '혈연', 즉 '피'를 암시하는데 여전히 35원인 피 값에도 불구하고 '허삼관'이 매혈을 알려주자 그들은 기뻐하며 함께 피를 판다. 이는 여전히 이들 사회에는 '반년 동안 땅을 파는' 것만큼은 아니어도 피를 파는 것이 고부가 가치임을 보여준다.
(바꿔말하면 허삼관이 살아온 방법이 이 시대에서도 아직 통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가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일락'이 입원한 병원에 돌아오자 걱정과는 달리 '일락'은 호전되어 있다.
죽은 줄 알아 울었으나 이제 살아있어 운다는 그의 말에는 나 역시 울컥하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이후 식구들의 형편은 점차 나아져 평온한 노후를 보내게 된 '허삼관'.
불현듯 승리반점 옆을 지나다 '돼지간볶음' 냄새를 맡고 향수에 젖어든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피를 팔기 위해 병원을 찾는다.
그의 인생 처음으로 그 자신을 위해 피를 팔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앞에 선 새로운 혈두인 심혈두는 당신같은 노인의 피는 필요 없으니 가구 칠쟁이에게나 가서 팔아보라고 말한다. 가구에는 돼지피를 바르니 당신 피를 사줄 것이라면서.
(여기서 나는 문득 여관에서 만났던 노인과 돼지가 떠올랐다. 이제는 지나간, 더는 통하지 않는 양식이나 무시받는 노년과 돼지가 어떤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고.)
그는 분하고 서글퍼 눈물을 흘리며 성 안을 걷고 또 걷는다.
그의 슬픔의 가장 큰 부분은, 더는 피를 팔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피를 판다'는 행위가 사라졌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전 세대를 상징하던 '이 혈두'는 죽었으나 젊은 '심 혈두'가 왔다. 즉 여전히 '매혈'은 가능하나 '허삼관'은 그것을 허락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자신이 평생을 살아온 방법을 빼앗긴 상실감과 좌절감에 사로잡힌 '허삼관'을 데리러 온 아들들은 '창피하다'고 말하고 '허옥란'은 그런 아들들을 꾸짖으며 '허삼관'과 승리반점으로 향한다. 그리고 돼지간볶음 세 접시와 황주 한 병하고도 두 냥을 사준다. 그것을 다 먹고서야 만족스러워 하는 '허삼관'. 그의 '피'가 허했을 때마다 그를 채워준 것은 돼지간볶음과 황주였고, 결국 그의 '피'가 거절 당했을 때도 그 상실감을 채워준 것 역시 그것들이었다.
"좆털이 눈썹보다 나기는 늦게 나도 자라기는 길게 자란단 말씀이야"
한 권 내도록 피에 대해 말하면서도 이렇게 따뜻한 글이라니.
결국 '허삼관'이 판 '피'는 말 그대로의 피일뿐 아니라 한 인간의 노동력이었고 가치였다.
좋은 글이었다.
[발췌]
- 서문 : 기억의 문을 두드리는 작업 -
이 소설은 작가가 오래도록 버리지 못하고 간직해 온 미련에 관한 이야기다. 한 줄기 길과 한 줄기 강물, 비 온 뒤의 무지개, 면면히 이어져 온 한때의 추억, 시작만 있고 끝이 없는 무한히 이어져가는 한 자락의 민요, 그리고 한 인간의 생애...... 이 모든 것들이 타래에서 풀려나오는 새끼줄처럼 이어져서 그 길의 끝자락에까지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져갔다.
이런 공간에서 작가가 할 수 잇는 일이란 때로 아무것도 없는 법이다. 붓을 놀린 그 순간, 작가는 허구 속의 인물들 역시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를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이들의 목소리를 마땅히 존중하여 그 목소리들 스스로 바람 속의 해답을 찾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결코 자신이 서술하고 있는 세계에 함부로 침입할 수 잇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그 세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존재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ㅡ 인내심과 세심함, 남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헤아릴 줄 아는 자세를 갖추어야 하고 늘 경청자의 태도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작가는 이처럼 애써야 한다. 글을 써내려 갈 때, 작가로서 자신의 신분을 용해시켜 스스로를 한 사람의 독자로 위치시켜야 한다. 실제로 이 소설의 작가 또한 작품을 완성하고 난 후, 자신이 이 소설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이 결코 남보다 많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늘상 입을 열어 작가에게 말을 건네오곤 한다. 때로는 이들이 작가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경우도 있다. 허구 속에 살고 있는 이 이야기 속 인물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절묘한 언어를 맞닥뜨리게 될 때 작가는 돌연 자괴감에 빠져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야, 나라면 절대로 이런 말을 할 수 없어."
그렇지만 그가 그야말로 진정한 독자로서 다른 사람의 작품을 읽을 때에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가끔 짓게 된다.
"그래. 언젠가 나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지."
문학이 주는 즐거움이 아마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우리는 문학의 영향을 필요로 하고, 또 이를 통해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생각을 교정해 간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수많은 위대한 작품들이 작가에게 영향을 미치듯, 작가는 자기가 쓴 소설에 등장하는 허구의 인물들 역시 자신에게 꼭 같은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사실 한 자락 긴 민요라고 할 수 있다. 그 리듬은 회상의 속도를 따르고, 따듯한 선율은 도약하여 그 운율이 마침내 쉼표를 뛰어넘어서 나래를 펴기 시작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단지 두 사람의 역사를 허구적으로 꾸며낸 것에 불과하지만 그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불러내오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지나간 삶을 추억하는 것은 그 삶을 다시 한 번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마티에르는 말했다. 글쓰기와 독서, 이 모두는 기억의 문을 두드리는 일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것은 이미 지나가버린 삶을 다시 한 번 살아보고자 하는 뜨거운 욕망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북경에서
위화
# "이 쪼그만 자식, 개 같은 자식, 밥통 같은 자식.... 오늘 완전히 날 미쳐 죽게 만들어 놓고는.... 가고 싶으면 가, 이 자식아. 사람들이 보면 내가 널 업신여기고, 맨날 욕하고, 두들겨 패고 그런 줄 알 거 아냐. 널 11년이나 키워 줬는데, 난 고작 계부밖에는 안 되는 것 아니냐. 그 개 같은 놈의 하소용은 단돈 1원도 안 들이고 네 친아비인데 말이야. 나만큼 재수 옴 붙은 놈도 없을 거다. 내세에는 내 죽어도 네 아비 노릇은 안 할란다. 나중에는 네가 내 계부 노릇 좀 해라. 너 꼭 기다려라. 내세에는 내가 널 죽을 때까지 고생시킬 테니...."
일락이 눈에 승리반점의 환한 불빛이 들어오자 아주 조심스럽게 허삼관에게 물었다.
"아버지, 우리 지금 국수 먹으러 가는 거예요?"
허삼관은 갑자기 욕을 멈추고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그래."
# "전 정말 술을 못 마십니다. 지금 몸이 좋지 않아서요. 머리가 어지러워서 머릿속의 혈관이 터져 버릴 거라구요...."
이락이네 대장은 탁자를 부서져라 내리치며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두려움을 없애려고 술을 마시는 건데, 설령 술 마시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마셔야지. 몸은 상하더라도 감정이 상해서는 안 된다 이 말씀입니다. 형씨와 나 사이에 정이 두터운지 아닌지 어디 한번 봅시다."
(중국의 술 문화를 살피면, 장비 역시 자신의 술을 거절했다고 유표의 장인인 조표를 매질하는데 이는 상대가 받아 마시는 술만큼 술을 권하는 자에게 호감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허나 예전에는 독한 술도 많지 않았고, 술이 비어가면 물을 채워 마셨던 만큼 그렇게 말술을 마실 수 있었겠지만. 우량예를 말로 마실 수는 없는 일. (우량예는 도수보다 값이 문제지....ㅋ))
# "아니, 먼저는 힘을 싹 팔았고, 그 다음엔 온기를 싹 팔았다더니, 그럼 이제는 목숨만 겨우 남았을 텐데, 또 피를 팔면 그건 목숨을 팔아 넘기는 거 아니요?"
"설령 목숨을 파는 거라도 난 피를 팔아야 합니다. 아들이 간염에 걸렸거든요. 지금 상해의 병원에 있는데, 가능한 한 발리 돈을 모아서 가야지 몇 달을 더 기다렸다가는 아들이....."
허삼관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저야 내일 모레면 쉰이니 세상 사는 재미는 다 누려 봤지요. 이제 죽더라도 후회는 없다 이 말이죠. 그런데 아들 녀석은 이제 수물한 살 먹어서 사는 맛도 모르고 장가도 못 들어 봣으니 사람 노릇을 했다고 할 수 있나요. 그러니 지금 죽으면 얼마나 억울할지...."
(역시 자식을 '소황제'로 키운다는 말까지 나올만하다. 부정은 모정과는 또다른 느낌이 있다.)
# "아까는 일락이가 죽은 줄 알고 운 거였고, 지금은 일락이가 살아있어 우는 거야....."
# - 역자문-
누구나 그럴 수 있다. 누구든 그런 처지에 빠질 수 있다. 당신이 비록 서울역사에서 또 어느 다른 자리에서 점점 한기를 더해가는 찬바람을 신문지로 가린 채 잠들어야 하는 처지와는 전혀 다르게 살고 있다손 치더라도, 어찌 그 삶이 당신과 전혀 별개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양지만 삶이 아니다. 양지는 반드시 음지를 압축하고 있는 법. 그러니 예로부터 삶의 그늘을 모르는 자는 인생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을까.
# - 1999년 위화와 편집자의 '서면 인터뷰' -
Q : 한국의 '신세대 작가'들은 정치적 가치보다는 대중 소비문화의 조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중국에서 '신생대 작가'로 분류되는 당신의 견해를 듣고 싶다.
A : 훌륭한 작가라면 정치나 사회적 가치에 대해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대중문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인간'에 대한 관심이다. 그가 정치적 인간이든 대중소비적 인간이든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작가라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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