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 524쪽 | 210*150mm | ISBN(13) : 9788956604992 2011-03-30 |
뭐야. 발표된지 1년 밖에 안된 책이었나?
사실 발표 시기는 그리 크게 관심을 뒀던 부분은 아닌데,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불과 1년 조금 넘은 책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놀랍다.
먼저, 아마도 이 리뷰는 별점을 보면 알겠지만 엄청나게 학학거리는 글이 될 것이기 때문에,
미리 조금 아쉬웠던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띠지에도 강렬한 글씨로 인쇄되어 있었던 "그녀는 괴물 같은 '소설 아마존'이다"라는 박범신의 문구.
아마도 아마존 같은 헤어나올 수 없는 정글같은 글이라는 말에 더해, 그녀가 여류 소설가를 점을 빗대 '아마조네스'의 이미지를 덧입히고 싶었던 모양이다.
[정유정 작가를 생각하면 그리스 신화 속의 여전사인 '아마존'이 떠오른다. .... 뒤돌아보지 않는 힘 있는 문장과 압도적인 서사 그리고 정교한 취재를 기반으로 한 생생한 리얼리티가, 여성작가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여러 문학적 함정들을 너끈히 뛰어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 <7년의 밤>은 강력한 전사로서의 그녀가 가진 역량을 총체적으로 보여준 '결정판'처럼 읽힌다. .... -박범신]
나는 이 말이 못마땅했고 내심 화도 났다.
그녀의 글이 무척 힘차고 매력적인 것도 사실이고, 여성보다는 중성- 솔직히 말하자면 남성 작가의 글에 가까운 글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여성작가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여러 문학적 함정'인지는 의문이다. 그녀를 굳이 여성형인 '아마조네스'가 아닌 '아마존'이라고 잘라 말하는 것도.
또한 그녀 역시 '여성적'인 글로 평가 받는 것이 두려웠던 모양인지 캐릭터 운용이라는 면에서 상당히 남성적인 전개를 보이는데...
사실 나는 이 점이 남성들이 칭찬하고 좋아할 점이 아닌, 불편하고 안타깝게 여겨야 할 점이라고 본다.
연애를 해보면 느끼겠지만 확실히 남성과 여성은 다르다. 이것은 개체적 차이와는 또 다른 차이이다.
그렇기에 이성 작가가 쓴 글을 읽으면 당연스럽게 불편감과 이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다름'을 접하는 또하나의 길이 되는 것인데, 슬프게도 '여성 작가 => 감성적, 탄탄한 구성은 무리, 여성적인 캐릭터의 전면화나 주체화는 페미니즘'이라고 보는 일종의 도식이 남녀 모두에게 세뇌된 탓인지 쓰는 이도 읽는 이도 그런 점에 상당히 예리한 각을 세우고 보게 된다.
물론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글이 문제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그런 것이 아니라, '여성적의 시각'으로 본 '인간' 역시도 '인간적인' 것인데... 우리는 지나치게 '남성'의 시각에서 본 '인간'이 남녀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인간상'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한 편으로는 아직 이런 도식을 깨트려줄 만한 적절한 작가나 작품이 -존재야 하겠지만- 많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라 본다. 오히려 이런 도식을 굳건화 시켜줄 작품들만이, '그래, 여성 작가니까,' 라는 묘한 아량이랄지 경원이랄지 접바둑처럼 논외로 잘라둔 분야에서 경쟁하는 것이 안타깝다.)
자, 그래서.
글 자체로 수다를 떨어보자. (아, 나는 스포에 그리 민감한 편이 아니므로 그 점은 미리 감안하길 바란다.)
소설 안의 소설이라는 형식을 사용해 자연스럽게 시점과 시간을 재배치한 점은 매우 좋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나칠 정도로 빠른 전환도 피하면서 적절히 드러내고 싶은 점을 잘 드러냈는데, 개인적으로 좀 아쉽다면 문체의 차이를 두었다면 하는 점이다.
승환의 글과, 작가의 글 사이에 문체라거나 분위기를 조금 틀었더라만 훨씬 소설 속의 소설이라는 구성이 살아나지 않았을까 싶다는 점인데 (like 은교), 어찌 보자면 등장 인물들이 연결되고 호칭이 달랐다는 점으로 충분히 표현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혹은 그렇게 끊어짐 없이 이음으로 해서 더욱 7년의 밤이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살렸다고도 볼 수 있고.
내가 가장 소름이 끼쳤던 것은 오영제인데.
소름이 끼친 것이 그 인물의 집요함이나 섬뜩함이라기 보다는.
크크크. 아 이런 놈이 또 있네.... 싶어서다.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고 아니고를 떠나서, 기본 사고관이 오영제 같은 사람이 의외로 꽤 많다는 것과 나 역시 몇몇을 실제로 알고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소름이 돋았고, 동시에 더욱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의사와 치과의사를 모호하게 지칭한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음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강은주.
그녀의 강인한 생활력 야망, 신분상승에의 집착은 글 속 인물들 중에서는 정작 남편이자 실질적으로 마찰을 빚는 최현수보다는 오영제와 좋은 대구를 이룬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갖추고 있었고, 그것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완벽한 세계를 이루어 손에 틀어쥐려는 오영제와 그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강은주는 닮아있다.
그녀는 실체로서 존재하기 보다는 많은 인물들의 대구로 존재하는데, 그렇기에 가장 현실적이며 또한 가장 불편한 캐릭터이다.
그녀는 어머니 '지니'와 닮지 않기 위해 기를 쓰는 인물이며
삶 자체를 즐기고 여유를 즐기는 태도와 직업으로 열등감을 자극하는, 원래 '현수'의 소개팅 상대였던, 자신보다도 그와 더 잘 통하는 것 같은 동생 '영주'의 언니이고
그녀가 그토록 바라는 집과 물질적인 안정을 이루었으나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고 선택했었는지 모호하나 영제의 독백을 보건데 자의적이라 생각하기는 어려운- 그 것들을 모두 놓고 도망치고 싶어한 '화영'과는 대조적인 옆집의 아내이며
또한 그러면서도 '배운 것들'이라고 -이는 은주의 생각일수도 있으나 은주에 투영된 작가의 시각일수도 있다- 욕할 수 있는 인물.
어째서 그녀가 영재와 닮았다고 말하느냐 하면.
그녀와 영재는 '역할'을 분명히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세계 속에서 자신이 수행해야 할 '역할'과 타인이 해주어야 할 '역할'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그리고 그것이 틀어졌을 때 분노하고 질타하는 점이 그렇다.
그녀에게 최현수는 '남편'이고, 그 누구라도 '남편'이 되었다면 수행해야 할 '의무'와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이 점은 영재 역시 마찬가지다. '아내'와 '딸'이라는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화영과 세령을 교정하려 드는 것은 그들을 존재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가 정해둔 배역을 맡은 이로서만 보기 때문이다.
아. 한 명 한 명을 집어 말하자면 참으로 할 말이 많다.
다만 가장 정체성이 모호했던 자는 관찰자 '안승환'이다. 그는 각 인물들 사이의 가교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동시에 관찰자이고 모든 단편적인 정보를 모았다가 풀어놓는 '키'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기에 그는 가장 개성이 약하며, 통일성 또한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독자가 가장 따라가기 쉬운 시각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SNU 출신이라는 이력이 있음에도, 극 중에서는 현수의 압도적인 피지컬에 눌리고 오영제처럼 덩치에 대해서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의 특질은 적당히 건장한 남성이며 잠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나, 이는 글을 쓰고 싶어하는 그의 소망과 더불어 기묘한 이미지로 정립된다. 세월의 흐름을 드러내고 싶었다고는 해도, 12살의 소년이 19살이 되는 정도의 단 7년 동안, 정작 소년의 아버지보다는 젊었던 이가 급속도로 노화하여 -물론 마음 고생을 했지만- 철인 경기에서는 9패를 하면서도 마지막 순간에는 덩치를 제압한다니.)
이 글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시선의 무게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우리는 많은 충격적인 사건과 사고들을 접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보여주기' 위해서 맞춰진 겉자락에 불과한 것도 사실이다.
'7년의 밤'은 철저히 '가해자의 아들'에 초점을 맞춰 그려져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잠시 균형점을 잃게 되는데,
최서원은 실제로 가해자의 아들이다.
오영제가 어떻게 장치하고 유도했다 해도, 최현수는 무고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해도 실제로 그의 행동의 결과로 수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고, 그렇기 때문에 서원은 가해자의 아들이 맞다.
그렇다면 그 일로 가까운 이를 잃은 자들의 분노를 생각해보자. 글을 읽을 때처럼 서원의 편과 입장에 설 수 있겠는가? 힘들 것이다.
반대로, 선데이를 읽고 서원을 배척하고 경원시하고 따돌린 이들을 생각해보자. 읽는 동안은 눈살이 찌푸려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식적으로 발표된 내용만을 모아볼까?
초반에 언급된 것처럼 한 여아를 살해 유기하고 그도 모자라 자신의 아내를 둔기로 살해하고 한 마을 전체를 수장시킨 희대의 살인마의 아들이 아닌가.
이어진 보도에서는, 그 사고로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최초 살해된 여아의 부친이 당시 사건의 범인의 아들을 납치했다가 붙잡힌 것이다.
기사만을 읽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오영제의 입장에 설 것인가?
아니면 최서원의 입장에 설 것인가?
오죽했으면 저랬을까, 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을 거라 자신할 수 있는가?
피해자와 가해자는 누구이고 누구란 말인가.
작가는 그 점에 대해서는 끝까지 함구한다.
그녀는 7년의 길고 길었던 밤과, 항시 있을 수 밖에 없는 이면의 진실-이라 할지 사실이라 할지-을 보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점들이 소름끼치게 좋았던 글이다.
아 리뷰가 너무 치우쳤는데, 그런 점을 배제하고 글 자체가 무척 재미있다.
앞서서는 단점으로 꼽긴 했지만, 여류 작가라는 인식은 전혀 하지 않고 읽을 수 있을 것이고, -사실 공간적인 배치는 좀, 뭐, 아주 명쾌하진 않지만-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이다.
한 사건의 핵으로 접근해들어가는 방식은 같은데, 아직 그 차이를 명확히 꼬집지는 못하겠지만 일본의 미스테리 소설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아마도 일본의 것들이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퍼즐의 조각들이 맞춰지면서 어떤 종합적인 그림이 나오는가, 하는 퍼즐들의 관계와 마지막 퍼즐을 쥔 자에 대한 글이라면-
7년의 밤은 이미 모두 맞춰진 퍼즐을 하나 하나 해체해 나가며 그 조각들의 뒷면을 확인하는 글이었으니까. 그래서 이미 드러나 있던 대부분의 퍼즐을 뒤집어서 다시 맞추는 글이었으니까 그렇지 않을까 싶다.
아. 하나만 더.
나는 앙괭이를 예전부터 무척 좋아하는데, 그것이 신발을 버리는 행위로 드러나서 너무 좋았다.
정말로 너무.
이런 작은 부분 부분들이 결국은 문화적 색채를 띤다고 보기 때문에.....
한국적이라서 너무 좋았다.
그 세시 풍속을 아는가?
섣달 그믐에 문 밖에 체를 걸어 놓는.
그래야 신발을 훔쳐가려고 왔던 귀신이 체 눈을 세다가 날이 밝아 울며 도망친다는.
신을 잃어버리면 그 한 해는 운수가 좋지 않다던.
그 귀신이 앙괭이이다.
현수의 행동이, 겹쳐 보이는가?
아.... 읽지 않았다면 정말 아쉬웠을 글이었다.
(사실 이 말은 참 재미있는 말이다. 읽지 않았다면 어떤 글인지 몰랐을 테니 아쉽지도 않았을텐데. 결국 이 아쉬움이라는 것은 내가 그 글을 읽었기 때문에 존재하는, '만약'에 대한 두려움과 안타까움인 것이다.)
[발췌]
# 우리는 떠돌이가 됐고 주거지는 대개 항구도시였다. 아저씨는 내게 본격적으로 다이빙을 가르쳤다. 바다는 내게 자유를 주었다. 해저의 어둠 속에 가만히 몸을 옹크리면 세상이 한숨에 사라졌다. 그곳은 누구의 손도 닿지 않고, 누구의 눈길도 미치지 않고, 누구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세상의 절대벽이었다.
# 아쉬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호의를 받을 마음이 없었을 뿐이다. 경험이 가르친바, 호의는 믿을 만한 게 아니었다. 유효기간은 베푸는 쪽이 그걸 거두기 전까지고, 하루짜리 호의도 부지기수였다. 고마워하며 사양하는 게 서로 낯이 서는 길이었다.
# "... 동네사람들 사이에 도는 말이 있어요. 물속마을에 외주인이 침범하면 잠든 용신이 깨어나고, 그러면 재앙이 일어난다는 거야. 나도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땐 그냥 웃었어. 머리에 물탱크를 이고 사는 사람들이라 걱정이 많나보다, 하고."
# 무너진 돌담, 덜렁거리는 지붕널, 철근이 드러난 벽, 부서진 문설주, 흩어진 기왓장, 쓰러져 썩어가는 나무들, 바퀴 빠진 유모차 하나, 양철뚜껑이 덮인 우물. 인간이 사라진 이후의 세상이 이런 모습일까. 그의 아틀란티스는 황폐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쓸쓸하면서도 매혹적이었다. 단 한 번의 조우로 그의 영혼을 송두리째 홀려버렸다.
# 영제는 생각했다. 이 계집애는 알까, 주철로 만들어진 대관람차가 행운에 힘입어 빗나간 게 아니라는 걸. 제 아빠가 온 힘을 다해 절제력을 발휘한 결과라는 걸.
# 왼팔이 어깨관절에 매달린 채 덜렁덜렁 끌려올아왔다. 팔이 아니라 말뚝이 매달린 것 같았다. 그는 땀이 싹 마르는 걸 느꼈다. 이 이상 징후들이 암시하는 정황은 하나뿐이었다. 용팔이가 돌아왔다.
# "우리끼린 악어라고 부릅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강도를 만나면 지갑을 던지고 튀라고 가르쳤다. 봉변을 모면하는 가장 실용적인 방법이었다. 그는 오영제가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을 던져주기로 했다.
"악어족에겐 세 가지 금기가 있어요. 첫째, 비 오는 밤에는 물에 들어가지 않는다. 둘째, 술을 마시고 들어가지 않는다. 셋째, 서 있는 시체는 건드리지 않는다."
"재미있는 얘기요, 서 있는 시체라니...."
달빛이 오영제의 이마를 붉게 비췄다. 검은 눈이 승환을 똑바로 쏘아보고 있엇다.
# '투수의 굳건한 표적. 어떤 공도 피해서는 안 되는 사람. 판을 읽는 신의 눈과 람보의 배짱과 야수들을 아우를 큰 가슴을 가진 사람. 지난 타석에 뭐로 승부했는지 기억할 수 있고, 타자가 노리는 게 뭔지, 관찰해낼 수 있는 사람. 경기가 끝난 뒤, 상대팀의 숨소리까지 복기할 수 있는 사람. 마스크과 레그 가드, 샅보대를 착용하고 쉴 새 없이 움직이며 9이닝을 버텨야 하는 사람. 홈 플레이트로 돌진해오는 주자를 온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사람.'
"포수가 받는 첫 번째 훈련이 마스크에 공을 맞아도 눈을 깜박이지 않는 거라면서요.":
영주는 양 볼에 보조개를 만들며 웃었다. 남자들로 하여금 모든 걸 용서하게 만드는 강영주표 미소였다. 현수는 감동받은 표정이었다.
# 이번엔 이름쓰기로 해결할 수 없었다. 신발을 숨겨야 했다. 그러나 숨길 곳이 없었다. 꿈속의 남자는 자신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있으므로. 서원에게 직접 감추라고 할까. 혹여 아빠가 네 운동화를 찾아 집 안을 홀랑 뒤집더라도 절대로 내놓아서는 안 된다고.
# "서원아."
책상에서 돌아앉아 냉장고를 열었다. 문을 붙잡고 가만있었다. 뭘 꺼내려 했는지, 또 잊어버렸다. 그 목소리 때문에.
"서원아."
냉장고를 닫고 방 한구석에 옹크려 앉았다. 창밖으로 덜컹덜컹, 바람이 지나갔다. 바람 속에서 그가 불렀다.
"서원아."
다시는 당황하지 않을 줄 알았다. 당황할 일 같은 건 없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전 방위에서 돌진해오는 그의 목소리에 나는 얼빠진 어린애처럼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거리로 나가 아무나 붙들고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어째야 하느냐고. 저 목소리를 멈추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고.
# "한 집안의 희망이 된다는 것, 가족의 희생을 담보로 대학에 다닌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세요?"
# ".... 출근하고, 퇴근하고, 월급 받고, 승진에 매달리고, 한 집안의 가장 노릇하는 미래가 제 앞에 있었어요. 그것이 삶이긴 하겠지만 과연 나 자신일까, 싶었던 거죠. 나와 내 인생은 일치해야 하는 거라고 믿었거든요."
현수는 자신의 손끝에서 깜박거리는 담뱃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인생과 그 자신이 일치하는 자가 얼마나 될까. 삶 따로, 사람 따로, 운명 따로. 대부분은 그렇게 산다.
# 그녀는 입술을 꾹 물고 세정제를 찾아 들엇아. 여자들은 책상 앞에 모여 앉았다. 과연 들은 대로였다. 명색이 배웠다는 것들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죄다 남의 뒷소문이었다.
# "자네, 수수가 두런대는 소리 들어본 적 있나?"
"아뇨."
승환은 새 종이컵에 물을 따라주었다.
"한여름이면 사방이 아주 조용해지는 때가 있어. 뙤약볕이 내리쬐는데 공기는 유리병 안에 들어온 것처럼 답답하고, 매미도, 아이들 소리도, 뚝 그치는 순간. 그 고요의 시간에 바람 한 점 없는 수수밭에서 기이한 소리가 나는 거야. '쏴' 하는 게 파도 소리 같기도 하고, 태풍에 나무들이 흔들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고양이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그게 신발을 빠트린 사람을 불러들이는 소리라더군. 소리에 홀려 우물로 들어간 사람 인골이 우물에 수십 개나 박혀 있다고. ...."
# 그녀는 노인이 없다는 걸 자각한 지금 이 순간에야 '안다'와 '인식한다'의 차이가 뭔지 깨닫고 있었다.
'안다'는 다음의 문장으로 바꿀 수 있었다. '노인이 수고가 많다.'
'인식한다'는 '내 존재 자체가 구멍이다'였다.
오영제와 면접을 하던 자리에는 노인이 없었다. 나중에야 반대하고 나섰으리라고, 그녀는 추측할 수 있었다. 구멍을 메울 자가 누군지 빤히 보였을 테니까. 관리인의 반대를 무시한 오영제의 행동은 당연하지 않았다. '안다'를 당연시하고, '인식한다'를 외면한 자신은 어리석었다. 자신의 앞가림이 먼저였고, 누군가 재미를 보면 누군가는 피를 보는 게 세상 이치라 여겼고, 재미 본 쪽이 자신이라는 행운에 취해, 던져야 마땅한 것을 던지지 않았다. '왜?'라는 질문 말이다.
# 남편은 세상에서 가족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처음엔 그것이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고 여겼습니다. 나중에야, '자기 것'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라는 걸 깨달았지요. 그에게 아내와 아이는 '자기 것'의 핵입니다. 자신이 정한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 자신의 권위와 영향력과 통제력을 확인하는 대상, 자신이 주는 것만 받고 자신이 요구하는 것을 주는 존재, 자신의 방식대로 움직이는 손가락과 발가락입니다. 그것이 흔들린다는 건, 자기세계의 핵심이 손상당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 [작가의 말]
운명은 때로 우리에게 감미로운 산들바람을 보내고 때론 따뜻한 태양빛을 선사하며, 때로는 삶의 계곡에 '불행'이라는 질풍을 불어넣고 일상을 뒤흔든다. 우리는 최선의 ㅡ적어도 그렇다고 판단한ㅡ 선택으로 질풍을 피하거나 질풍에 맞서려 한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최선을 두고 최악의 패를 잡는 이해 못 할 상황도 빈번하게 벌어진다. (일간지 사회면을 점령하고 있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그 증거일 것이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바로 이 '그러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야기되지 않은, 혹은 이야기할 수 없는 '어떤 세계'. 불편하고 혼란스럽지만 우리가 한사코 들여다봐야 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모두 '그러나'를 피해 갈 수 없는 존재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
이 소설은 '그러나'에 관한 이야기다.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파멸의 질주를 멈출 수 없었던 한 사내의 이야기이자, 누구에게나 있는 자기만의 지옥에 관한 이야기며, 물러설 곳 없는 벼랑 끝에서 자신의 생을 걸어 지켜낸 '무엇'에 관한 이야기도 하다.
소설을 끝내던 날, 나는 책상에 엎드린 채 간절하게 바랐다. '그러나' 우리들이, 빅터 프랭클의 저 유명한 말처럼,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소설은 혼자 힘으로 쓸 수 없다는 걸, 매번 느낀다. 지면을 빌려 이 이야기를 쓰는 데 도움을 주신 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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