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미야베 미유키 / 김소연
원제 : 初ものがたり
출판 : 북스피어
출간 : 2015.02.19
쌓여있는 책들 중에서 골라 읽다 보니 구간 위주로 읽게 된다. 읽는 동안에는 발표된 지 오래된 책이란 생각이 그리 들지 않는데, 리뷰를 쓰려고 출간일을 확인하다 깜짝 놀라곤 한다.
김보영의 단편 중에서 이런 문장이 나온다.
'어린 시절이 가장 느리게 흘러간다는 걸, 네 1년과 내 1년이 같지 않다는 걸...'
어떤 밀도로 시간을 보냈느냐에 따라 같은 사람에게도 1년은 같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은 그 당시에는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기억을 되짚어 봤을 때,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희미하게 사라진 시간들. 어쩌면 최근의 몇 년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희미한 기억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요즘의 내게는 책들이 기억의 갈피가 되어주고 있다. 이 책을 읽을 때 쯔음- 이라고 돌이켜보면 그 근처의 일상들이나 책을 읽던 상황들이 떠오르는 식이다. 아주 조금, 책의 미로에 갇혀 헤매고 있는 기분이기도 하다. 사실 상당히 기이한 느낌이다. 찰나들은 투명하고 명확한데, 그것들을 모아 보면 유리 조각들을 겹쳐놓은 듯 부옇게 흐려지고 만다. 틀림없이 순행 중이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돌아보니 홀로 역행하고 있는 기분에 가깝다. -아마도 오래전 모아둔 책들을 읽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은데, 리뷰를 쓸 때도 다소 멍해진다는 게 문제다-
아주 즐겁게 읽었다.
'미야베 미유키'는 '히가시노 게이고'에 준할 만큼 다작을 하는 작가로 현대물과 시대물의 인상이 상당히 달라지는 편이다. 지금껏 <모방범>을 읽어 보려고 시도한 적이 3번 정도 있었는데, 매번 중도 하차하고 말았으니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현대물과는 그리 상성이 좋지 않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시대물의 경우는 다르다. 순서를 맞추어 모두 읽은 것은 아니지만 드문 드문이라도 즐겁게 읽었다. 원체 기담 -백물어 같은- 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 특유의 시선이 좋았다. 꼬집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따뜻한 느낌이 들어서.
그에 더해 이번 책은 에피소드마다 매 계절에 따른 음식-세시 풍속이 함께 다뤄져 있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절분(입춘)에 팥을 뿌리는 일본의 경우와는 달리, 한국은 팥알보다는 쑨 팥죽을 바르거나 뿌리는 동지 풍습이 있다. 메밀을 좋아하고 팥을 싫어한다는 도깨비의 특징이 일본의 오니와 어디에서 갈라지는지는 더 살펴봐야 알 수 있겠지만, 나는 말 피가 두렵다는 한국 도깨비들에게 좀 더 정감이 간다.
(문득 떠오르는 잡생각. 운동회 때마다 했던 팥주머니 던지기는 사실 일본의 팥 뿌리기 풍습에서 나온 것이 전해진 게 아닐까? 한국 세시에서는 단오에도 팥을 먹었지 뿌리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국의 세시 풍속, 계절 음식이나 맏물도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귀하고 귀했던 타락죽 말고 좀 더 당 시대의 식문화와 풍속, 생활사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이 등장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단오도 지나갔고, 하지까지 얼마 남지 않은 초여름의 나날들.
이런 시즌에는 '교코쿠 나츠히코'의 작품들이 떠오르지만, 어쩐지 이런 풍의 한국 작품은 없을까 싶어 주절거려 보았다.
여름이다.
- 과연 이건가. 이러니, 놈은 자신이 의심받는 것도 무섭지 않은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싶어 노자키야에서 물러날 때, 오토지로는 뒷문까지 배웅을 나와 마룻바닥에 손을 짚고 인사를 했다. 머리를 들 때, 오토지로는 불유쾌했던 대화를 떠올렸는지 어딘가가 아픈 것처럼 살짝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무엇이 아픈지는 모르겠지만 오세이의 죽음에 마음이 아픈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고, 모시치는 생각했다.
- "두 자루 칼을 차고 살아온 무사는 아무래도 오른쪽 어깨가 약간 올라가게 되지요. 그리고 당신의 머리. 그 깎은 머리 말이오. 모공의 흔적이 보이거든. 평범한 시정 사람이라면 어지간히 긴 병을 앓고 난 후가 아니면 그렇게 되지는 않지. 계속 깎으니 말이오. 하지만 당신의 머리는 한동안 깎지 않다가 오랜만에 면도칼을 댔고, 이제 두 달 정도밖에 안 된 것처럼 보이는군요. 즉 당신은 낭인이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칼을 버리고 상인이 되었소. 틀렸소?"
주인은 손을 들어 깎은 머리를 문질렀다. 감탄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 말씀이 옳습니다, 나리."
"빨리 매끈매끈하게 만들고 싶다면 겨 주머니로 문지르면 된다오."
- 이제 내리기 시작한 눈은 요란하다. 밑에 있는 사람들이 머리 위를 올려다보고는 "아이구, 눈이다", "어머나, 눈이네" 하고 탄성을 지르며 맞이하기 때문에 눈도 좋아하는 것인지 모른다. 조용히 소리도 없이— 하고 내리는 것은 더 많이 내려서 쌓이고 나서의 일이다. 모시치는 손등을 하늘로 향하고 눈송이를 받아내며 문득 생각했다. 이제 내리기 시작한 눈은 아이일지도 모른다. 아이란 어디에 가더라도 말없이 가는 법이 없으니까. 야아, 라든가 와-아, 하고 요란을 떨면서 내려온다. 그러고 나서 나중에 천천히 어른 눈이 쫓아온다—.
- 운 나쁘게, 어젯밤엔 봄바람이 거칠게 불어 닥쳤다.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에 가려져, 아이들의 고통스러운 신음이나 도움을 청했을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없었다. 아니하고 모시치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것을 들었고, 그것이 들려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던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 지신반 안에서 땅을 발로 구르며, 나리는 부르짖었다.
"언제부터 이 마을 사람들은 이런 무도한 짓을 할 수 있게 되었단 말인가. 언제부터 이런 금수도 하지 않을 짓을 하게 되었나? 가르쳐 주게, 모시치."
이 나리의 이름은 가노 신노스케라고 한다. 나이는 아직 스물서넛, 작년 말, 혼조 후카가와 안에서는 가장 고참이었던 이토라는 도신이 병으로 급사하는 바람에 급히 그 뒤를 맡게 된 젊은이였다. 모시치도 아직 그리 친하지는 않다. 가노 나리가 화내는 까닭은 잘 이해할 수 있었고 화를 내는 나리여서 기뻤지만, 반면 다섯 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살해된 터무니없는 사건을 아직 경험이 얕은 도신 한 명에게 맡기고 대충 때우려는 방식에 기가 막혔다. 본심을 말하자면 혼조 후카가와의 나라들 아니, 마을 부교쇼 자체가, 집이 없는 아이들 따위는 그다지 진심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다만 너무나도 더럽고, 여러 가지로 불평이 나오니 기부금을 내게 하여 결국은 남의 손을 빌려서— 구휼소를 지음으로써 어물어물 넘기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 그 말과 함께 유부초밥이 세 개 담긴 작은 접시가 나왔다. 모시치는 접시를 받아 들고 떫은 차가 든 찻잔을 들어 올렸다. 여기에서는 술은 팔지 않는다. 차나 백비탕뿐이다.
"오늘 밤에는 또 뭐가 있소?"
"뱅어 어묵은 어떠십니까?"
들어 본 적이 없는 음식이다.
"그건 뭐요?"
"뭐, 한번 드셔 보십시오."
잠시 후에 나온 것은 그릇 속에 들어 있는, 무언가 하얗고 작은 것이었다. 확실히 모양을 빚지 않은 어묵 같은 모양새지만, 구즈앙(설탕, 간장 등으로 간을 맞추어 걸쭉하게 끓인 갈분 음식. 요리에 쳐서 먹는다)이 듬뿍 뿌려져 있고 꼭대기에 고추냉이가 오도카니 올라가 있다. 맛을 보니 희미하게 생선 맛이 나는데, 살짝 짭짤하고, 입안에서 눈처럼 사르륵 녹는다.
- "뱅어 어묵이라고 하는군, 뱅어를 쓰는 거요?"
"그렇습니다. 뱅어를, 예를 들어 한 되가 있으면 똑같은 양의 물 한 되에 담급니다. 아침부터 밤까지요. 그러면 물이 탁해지지요. 그 물을 냄비에 푹 끓여서 굳힌 것을 떠낸 겁니다."
모시치는 놀랐다.
"엄청나게 손이 가는군. 게다가 아까운 것 같지 않소? 뱅어는 초간장을 쳐서 그대로 먹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약간의 양을 말이오. 한 되라니, 그렇게 많이 사면 비쌀 테지."
주인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건 그 말씀이 옳습니다. 하지만 저는 뱅어를 산 채로 먹는 게 아무래도 싫어서요."
"호오, 우리 이토키치와 똑같구려. 아무래도 불쌍하다, 그 점 같은 눈을 보면 먹을 수가 없다고 하더군."
"그런 말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긴 합니다만" 하며 주인은 옷었다. "가다랑어도 삼치도 모두 마찬가지니까요. 하지만 아무래도 뱅어는 어렵습니다. 아아, 나는 살아 있는 것을 먹고 있다, 살생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제대로 느껴지고 말거든요. 분명히 이토키치 씨의 말대로."
- 오센이 취급하는 것은 게이샤들이 방에서 걸치는 고급 물품들이다. 단골 거래처는 다쓰미 게이샤라고 불리는 후카가와 에이타이지 절 앞 마을의 게이샤들이다. 게이샤의 기모노는 본래 소매 진동을 넉넉히 둔다. 춤을 추기 때문이다. 머리를 크게 틀어 올리기 때문에 옷깃도 깊이 파여 있다. 애초에 포목을 마를 때부터 여염집 여자들의 옷과는 다르다고 하지만 오센의 바느질은 거기에 더욱 생각을 짜내어, 천차만별의 체형을 가진 게이샤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각 가장 아름답게 보이도록 미묘하게 옷자락의 길이를 바꾸거나 폭을 조절한다고 한다. 가정을 꾸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오센과 가쿠지로는 야나기바시에 살고 있었다. 즉 그 무렵에는 야나기바시의 게이샤들이 오센의 단골손님이었다. 걸핏하면 경쟁하기를 좋아하는 게이샤이니, 이 부부가 이사했을 무렵에는 다쓰미 게이샤에게 오센을 빼앗겨서 자못 분했을 것이다.
- 붉은색 꽃이 가득 피어 있다. 모시치는 거기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면서 기다렸다. 다과가 나왔다. 색깔도 향기도 좋은 옥로가 나왔지만, 모시치의 혀에는 약간 지나치게 미지근했다. 뜨겁게 끓인 질 낮은 엽차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쪽 성미가 가난뱅이이기 때문일까.
- 아내는 일을 부탁받은 수수한 연보라색의 사메코몬(칼자루에 사용하는 상어 가죽 같은 자잘한 문양, '사메'는 '상어'라는 뜻이다. 가늘고 하얀 점의 반원형을 겹친 무늬로 물들여, 대개 무사의 예복이나 정장에 사용했다)에 어느 안감과 시접을 맞출 것인지, 방 가득 피륙을 펼쳐놓고 피륙의 바다 한가운데에 앉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참이었다. 모시치는 아내가 일하는 방의 문지방 가까이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기둥에 기대어 아내가 대어 보는 색깔의 조합에 가끔 야유를 퍼붓고 있었다.
- "내버려 두라는 말은 아닙니다. 나도 나중에 가게로 찾아가 보지요. 괜찮으시다면 고용살이 일꾼들에게 이야기도 들어 보겠습니다. 다만 소란을 피워 봐야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린 겁니다. 따지고 보면 고작해야 연어 자반 한 마리에서 시작된 일인데. 그 정도 일에 가와치야의 주인이나 되는 분이 직접 나를 찾아온다는 것도 사실은 탐탁한 일은 아니지요. 나리는 가게의 누름돌입니다. 좀 더 묵직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야지."
"제게는 무게가 없습니다."
"없어도 무게가 있는 척해 보십시오. 그러다 보면 싫어도 무게가 생길 겁니다. 물건은 형태로 결정되는 법이니까."
- 모시치는 당장은 대답하지 않고, 나온 차를 천천히 홀짝이면서 이것저것 생각했다. 이곳이 마쓰타로의 방이라고 하지만, 도코노마에 장식되어 있는 가레산스이(일본 정원에서 물을 쓰지 않고 돌과 모래를 배치하여 산수(山水)를 나타내는 양식) 족자가 그의 취향에 맞는 물건인 것 같지는 않다. 선대 주인의 방을 그대로 물려받았을 뿐이리라. 역시 가와치야라는 배는 마쓰타로라는 선장의 말만을 순순히 들어주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태에서 집에 기도사 나부랭이를 끌어들이면 그것이 고용살이 일꾼들 사이에 어떤 잔물결을 일으킬지, 마쓰타로는 모르는 것일까.
- "오다마키무시입니다."
"이게 뭐요?"
"차완무시(일본식 달걀찜, 가다랑어포 등을 우린 국물에 달걀을 풀고 고기, 표고, 은행, 어묵 등의 고명과 함께 공기에 넣어 뚜껑을 닫고 찐 것) 속에 우동을 넣은 겁니다. 몸이 따뜻해지니 좋을 것 같아서요."
고맙다며, 모시치는 사발을 끌어당겼다. 육수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 하지만 지금은 아직 캐묻지 않기로 하자. 언젠가 분명히 그것에 어울리는 시기가 오거나, 어울리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무서울 정도로 맑은 달이군요."
주인이 말했다. 모시치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가운데가 빠끔하니 갈라진 채, 내던져져 하늘에 걸려 있는 것 같은 달이 빛나고 있다.
- 어젯밤의 일을 관청에 신고하지 않은 데는 아이오이야 분가의 의향도 있었겠지만 그 이상으로, 이것을 계기로 이것저것 하고 있는 교활한 짓을 들켜서는 곤란하다는 한지로 쪽의 생각도 컸을 것이다. 정말이지. 무슨 이런 놈들이 다 있느냐고 모시치는 생각했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장사에 관한 원한이오. 니치도 님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는 바람에 찬밥을 먹거나 공을 치는 꼴이 된 무녀나 기도사가 있을 테지. 그런 놈들은 당신들을 좋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 테니까.”
- 수양벚나무는 본래 교토의 것으로, 에도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다. 하지만 보통 모시치네가 보는 벚나무보다 개화가 늦는 모양이다. 가지에는 아직 꽃잎이 하나도 없고, 그저 가지 전체가 살짝 붉은색으로 물들어 보일 뿐이었다. 어떤 때에도 바깥 현관으로는 출입하지 않는 것이 오캇피키의 관습이다. 마구간 옆을 지나 안채 뒷문으로 돌아가서, 공무로 여쭙고 싶은 것이 있어서 찾아뵈었다고 말하자 안쪽으로 안내되었다. 도코노마도 없고, 쓸데없는 장식이라곤 없는 간소한 방이지만 다다미를 바꾼 지 얼마 되지 않는지 골풀 향기가 난다. 곧 미요시야의 오타키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우아한 중년의 하녀가 차를 가져왔다. 나온 찻종 안에 든 것을 보니 사쿠라유(소금에 절인 벚꽃에다 뜨거운 물을 부은 차, 경사 때 차 대신 마신다)였다. 소금에 절인 벚꽃 꽃잎이 떠 있다.
- 이토키치는 그 건구상에 갈 때마다 이마모토 공동 주택 터의 유채꽃밭 앞을 지난다. 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곳을 바라보는 것이 즐거워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너무 예뻐서, 모시치의 아내를 끌고 와서 보여 준 적도 있다. 때마침 그 자리에서 잡초를 뽑고 있던 이웃 아주머니에게 참 멋지다고 말을 걸었더니, 나물 무침이라도 하라며 어린 줄기를 싸 주기도 했다. 이토키치는 이마모토의 가세가 회복되더라도 그곳에는 아무것도 짓지 말고 유채꽃밭으로 그냥 두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피부가 희고 가냘픈 자태의 처녀였다. 꽤 야위었지만 뺨에 유채꽃의 밝은 노란색이 비쳐 아름답게 보였다. 처녀의 기모노도 옅은 풀색이고 띠는 검은색, 띠 끈은 노란색. 그 옷차림으로 유채꽃밭 안에, 노란 꽃의 바다에 무릎까지 파묻혀 홀연히 서 있었다. 이토키치 쪽― 즉 길 쪽에서 반쯤 등을 돌리고 양손을 가볍게 기도하듯이 가슴 앞에서 모으고, 고개를 약간 숙인 채.
- 이토키치는 걸음을 멈추고 눈을 깜박이며 잠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저것은 누구일까,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기 전에 잘라내 두고 싶은 광경에 넋을 잃고 말았다.
- 주인은 본인도 걸터앉아, 매대 위의 것들을 옆으로 치우고 거기에 손을 올려놓더니 거의 맞장구는 치지 않고 조용히 들어주었다. 계속해서 이야기하면서 이토키치는 과연, 이 아저씨는 평범한 노점 주인이 아니구나, 하고 얼핏 생각했다.
'대장님이 늘 말씀하셨지.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 중에는 뛰어난 인물이 많다고.'
- 이토키치는 목소리도 나오지 않을 만큼 놀랐다.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갑자기 듣고 당장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오늘 밤의 이토키치는 재치 있지 못했다. 주인은 노점 뒤에 몸을 굽히고 뭔가 하고 있다. 잠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한순간 주인이 일어섰다. 작은 꾸러미를 이토키치에게 내민다.
"이걸 가져가십시오."
"저어..."
"유채꽃떡입니다. 신코모치(쌀가루를 더운물에 반죽해서 짠 것을 찧어 만든 속)에 장식으로 유채꽃 새긴 것을 넣었습니다. 조금 달지요. 이토키치 씨는 단것을 좋아하시지요? 대장님의 안주인께도 드리십시오."
오늘 밤에는 돌아가라고 타이르는 것이다.
- "다른 사람에게 독을 먹이는 자는 결코 대담하지 않네. 담이 작지. 얼굴을 맞대고 남에게 호통을 칠 수 없으니, 불만이나 두려움이 점점 쌓여서 상대를 죽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데까지 멋대로 스스로를 몰아넣고 만다네. 그것만 마음에 잘 담아 두면, 뭐, 머지않아 범인은 잡을 수 있을 테지."
- 몸집이 작은 사람이다. 나이를 물었더니 서른둘이라고 한다. 간베에가 그를 매우 젊게 보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약간 히코스케와 비슷한 얼굴이다 아니, 얼굴 생김새는 전혀 닮지 않았다. 차분하고 친절해 보이는 점이 공통적일 뿐이다. 마을 의원 중에는 승려처럼 삭발한 사람이 많지만, 야스카와 의원은 소하쓰 머리로, 그 머리카락은 검고 숱이 많았다.
- "관리께서는 계절상 복수초가 아닐까 하고 말씀하시지만 말입니다. 저는 그런 행운의 풀이 독초라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독초라고 딱 잘라 말하면 복수초가 가엾습니다. 사용법을 잘 알면 약효를 끌어낼 수도 있어요."
"흐음, 어떤 병에 효과가 있습니까?"
"신장에 좋습니다. 몸에서 나쁜 것을 내보내는 작용이 있지요. 심장병에도 처방합니다. 심한 두근거림을 가라앉히거든요."
젊은 의원의 눈과 눈썹 사이는 여전히 새하얗다.
"약과 독은 표리일체라는 뜻입니다."
"그렇군요, 잘 기억해 두겠습니다."
- 모시치는 슬슬 목이 말라 와서 차를 끓이려고 화로 위에 있는 주전자의 손을 움켜쥐었다가 뜨거워서 저도 모르게 앗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주하치로는 슬쩍 손을 내밀며, 제가 하지요, 하고 능숙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익숙한 움직임이다. 어느 모로 보나 손님을 대접하는 데 익숙한, 작은 뱃집의 주인다운 손놀림이었다. 그가 끓여 준 엽차를, 모시치는 찬찬히 맛보았다.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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