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017)

[필립 K. 딕]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일루젼 2012. 8. 5.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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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 8점
필립 K. 딕 지음, 이선주 옮김/황금가지

351쪽 | 210*148mm (A5) | ISBN(13) : 9788960172715

2008-12-31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

 

 

추천 도서 목록에 있기도 했으나, 어떤 이의 강력 추천에 이끌려 순서를 확 당겨 읽은 책.

잡자마자 끝까지 한 번에 읽어나갈 수 있었다.

 

SF계의 거장으로 불리우는 필립 K.딕.

(서문은 로저 젤라즈니가 써주어 더욱 좋았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으로도 많이 알려진 이 글은 정말 강력 추천할 만한 글이라 생각한다.

읽는 건 한 순간이었는데 책을 덮은 뒤로도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 시간을 끌다보니 이제서야 리뷰를 쓴다.

그런데도 결국 많은 부분이 내게는 물음표로 남아있다. 아마 그것들에 대한 답은 좀 더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야 형체가 보일 듯 싶다.

 

 

소설의 배경은 2021년.

사실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근미래의 이야기이다.

 

결국 지구상에서는 마지막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대기권에서는 그때 발사된 핵폭탄들로 인한 방사능 낙진이 흩날린다.

대부분의 인류는 화성으로 이주한 상태. 화성으로 이주한 이들에게는 그들을 위한 보상으로 충실한 하인인 '안드로이드'가 주어진다.

지구에 남은 이들에게 허락 없이 지구로 숨어든 '안드로이드'는 좋은 사냥감이다.

주인공인 릭 데커드는 바로 그 일을 하는 현상금 사냥꾼이다.

 

많은 동물들이 멸종했다.

시작은 올빼미였지만 이제는 수많은 종들이 사라졌다.

진짜 '살아있는' 애완동물을 가진다는 것은 지구에 남은 이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이는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능력을 과시하는 일임과 동시에, 화성으로 가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가지 않는 이유가 되어주며

그들이 아직 '정상적'으로 무언가를 돌보며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느낌을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다.

 

그러나 모든 이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수가 살아남지는 못했고 이미 '살아있는' 동물들은 죽을 수 밖에 없었다.  

해서 채워지지 못한 욕망은 대리충족이라도 요구한다.

즉 소설 내의 세상은 1/8 정도의 금액이면 진짜와 똑같은 '전기' 동물을 애완동물로 구매할 수 있는 세상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릭은 '진짜' 검은양을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양은 죽었고, 지금 옥상에서 귀리를 예민하게 감지하며 그를 기다리는 양은 '전기'양이다.

그 사실과 버튼 하나로 손쉽게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데도 고의적으로 '절망'과 '우울'을 즐기려하는 아내는 그를 괴롭히는 현실이다.

 

안드로이드 '레이첼'로 인한 변화는 틀림없이 있었지만 그건은 그가 '로이 부부'와 '프리스'를 은퇴시키는 것을 막지 못했다.
'머서이즘'과 '머서'와의 융합이라는 현상은 혼자이고 싶지 않은, 이해받고 싶은 인류의 본질적인 욕망을 드러내며

결국 그것이 기획된 하나의 거짓이었음이 폭로되어도 '머서'와 융합은 그 기능을 상실하지 않는다.

돌을 맞으면서도 언덕을 끝없이 오르는 '머서'는 '시지푸스'이며 '예수'이다.

 

끝까지 내부의 시선을 통해 폭로되지는 않으나 화성 역시 디스토피아임을 암시하는 단서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미 방사능에 오염되어 특수자가 된 J.R. 이지도어. 그와 릭의 아내는 각각 다른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같은 것을 말한다.

무기력에 빠져들었던 아내가 검은 염소를 보자 반색하며 기운을 내는 것과 이지도어가 프리스 일행을 돌보려 하는 것은 결국 그런 이타심이,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을 위해 자신 이외의 개체를 돌보려 하는 습성이 인류의 본능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안드로이드에 대한 안드로이드 차가운 시선은 '쿨'을 노래하는 현 인류와 닮아있다.

그러나 검은 염소를 밀어 떨어트려버리는 레이첼은, 무엇을 위해 그런 행동을 했을까?

 

유기적 생명체에 대한 질시?

대상의 제거를 통해 상대로부터 원하는 반응을 얻기?

모든 것이 안드로이드화 되기를 바라는 욕망?

 

글쎄. 나는 아직도 심정적으로는 공감하면서도 그녀를 이해했다는 느낌이 들지를 않는다.

모든 것이 흐릿하게 멀다.

 

릭은 검은 염소의 죽음으로 체념하고 두꺼비의 발견으로 고양된 후 그 두꺼비가 전기 두꺼비였음을 깨달으며 화합하는 것이ㅡ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좀 더 미묘한 어떤 정서인데.

 

시간을 두고 소화시키려 노력해보았으나 지금의 내게는 그저 어렴풋한 무엇이다.

 

다만 모든 것들이 귀결되는 본질적인 질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안드로이드는 꿈을 꾸는가?

꿈을 꾼다면 그것은 양인가 전기양인가?

전기양을 꿈꾼다면, 그는 안드로이드인가?

 

 

흠.

이런 미진한 상태로 리뷰를 쓰는 것이 심히 괴롭다.

 

1년 정도의 텀을 두고 꼭 다시 읽어보고 싶다.

 

 

(덧)

전기양이기 때문에 진짜가 아니라면 결국 안드로이드는 인간이 아니다.

원 주인은 아무리 똑같이 만들어낸 전기 애완동물이라도 진짜가 아님을 느낄 것이다.

그것은 보이그트-캄프 테스트로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분할 수 있다는 사실과 겹쳐진다.

 

그러나 J.R.은 진짜 고양이를 전기 고양이와 구분하는 것에 실패했다.

사냥꾼인 릭 역시 전기 두꺼비와 진짜 두꺼비를 구분하는 것에 실패했다.

그렇다면, 전기 애완동물을 긍정한다는 것은 안드로이드를 유사 인간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되는가?

 

 

 

 

 

[발췌]

 

# 게다가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혹은 누가 이겼는지 (이긴 편이 있다면 말이지만)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표면을 거의 뒤덮은 낙진은 어느 특정 국가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낙진은, 전쟁 당시 적국을 포함해서 누구의 계획에도 들어 있지 않았다. 처음엔 이상하게도 올빼미가 죽었다. 당시 올빼미의 죽음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뚱뚱하고 털이 북슬북슬한 새가 허연 배를 내놓고 마당이며 거리에 여기저기 죽어 누워 있는 광경이란. 살아 있을 때 해가 지기 전에는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새였기 때문에, 올빼미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않고 죽어 갔다. 중세에 흑사병이 번졌던 방식과 비슷했다. 중세에는 하늘의 새가 아니라 땅의 쥐들이 사람보다 먼저 죽었다. 하지만 이제 흑사병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다.

 

 

# 마침내 죽으려고 그곳에 날아왔던 새 한 마리가 거기가 어디인지 알려 주었다. 그는 목숨이 다한 것들이 묻히는 곳, 지하 무덤에 갇힌 것이었다. 주변에 흩뿌려진 뼈들이 다시 살아 있는 생명체로 화하기 전까지 그곳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 거기 갇히기 전에 그는 다른 생명체와 접합되어 신진대사를 공유했고, 이제 죽은 것들이 다시 생명을 얻고 무덤에서 일어나기 전가지는 그도 일어날 수 없었다.

 

 

# 릭은 자문했다. '왜 안드로이드는 감정 이입 테스트를 하려고만 하면 그토록 당황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걸까?' 누구나 한두 번씩 궁금해 했던 점이었다. 감정 이입이란 분명히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능력이었다. 그런가 하면 지능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거비류까지 포함해 모든 동물에게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었다. 감정 이입 능력은 집단 본능이 온전할 것을 요구한다.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유기체, 가령 거미 같은 유기체에게는 감정 이입 능력이 필요하지 않다. 아니, 만일 그런 능력이 있다면 오히려 거미는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 감정 이입 능력이 생기는 순간, 거미는 제 먹이에게도 살려는 욕망이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될 테니까. 그렇다면 모든 포식 동물들, 심지어 고등 포유류인 고양이 같은 동물도 먹이를 먹지 못해 굶어 죽을 것이다.

 감정 이입 능력은 초식 동물이나 아니면 최소한 자의로 육식을 멀리할 수 있는 잡식 동물에게만 있어야 한다고 릭은 결론 내린 바 있다. 궁극적으로 감정 이입이라는 능력은 사냥꾼과 사냥감 사이의 경계를, 이기는 자와 지는 자 사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니까. 머서와의 융합이 보여 주듯이, 모든 이가 함께 높은 곳으로 고양되거나, 아니면 그 주기가 끝에 다다랐을 때 다 함께 지하 무덤의 깊은 웅덩이 속으로 빠져야 했다. 괴상한 방식이지만, 이것은 일종의 생물학적 보험이자 양날의 칼 같은 것이었다. 한 개체가 기쁨을 느끼는 한, 다른 개체들의 존재 조건에도 일말의 기쁨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 하면, 어떤 개체가 고통을 치르고 있는 한, 다른 개체들 역시 어느 정도는 고통의 그림자 아래 있을 수밖에 없었다.

 

# 레이첼은 천진한 미소를 지었다. 방금 한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었다. 릭은 그녀가 얼마나 진지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세상을 뒤흔들 만큼 중요한 이야기를 그녀는 우스꽝스러운 농담처럼 말하고 있었다. '안드로이드의 특징이겠지. 정서적인 면에서 자의식이 없는 거야. 자기가 한 말의 의미를 감정적으론 이해하지 못해. 각각의 어휘에 대한, 공허하고 형식적이며 지적인 정의만 내릴 수 있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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