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017)

[코맥 매카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일루젼 2012. 7. 31. 21:56
728x90
반응형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6점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사피엔스21

344쪽 | 202*151mm | ISBN(13) : 9788992579629

2008-02-20

 

 

 

'더 로드' 의 저자 '코맥 매카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추천자의 말처럼 피가 흐르고 총알이 튀기는 글이었다.

인물의 대사에서도 "", 따옴표를 생략해 글을 있는 그대로 빠르게 읽어내려가게 한 점은 장점이 되었다고 본다.

 

다소 혼란스러울 정도로 여러 인물을 오가며 진행이 되는데, 그 인물들의 사건은 하나로 합쳐지기도 하지만 그저 보여지기만 하기도 한다. 마침 가즈아키의 '그레이브 디거'와 연이어 읽었기 때문인지 그 점이 더욱 명확하게 느껴졌는데 인물들의 삶이 가지는 의미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름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이들도 있고,

의미없이 (사실 소설에서 진실로 의미없이 인쇄되는 글자는 없다고 봐야하지만) 지나가는 듯 했으나 다른 에피소드와 연결되어 다른 의미를 부여받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주인공 격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을 꼽자면,

 

트럭과 시체들, 그리고 마약과 돈을 발견하게 되는 루엘린 모스.

그 돈을 수거하는 것이 부목적이고 주목적은 살육이 아닐까 의심되는 시거.

그리고 모스가 그의 관할 지역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수사에 참여하게 되는, 그러나 어쩌면 누구보다 전말을 핵심에 가깝게 이해하고 있는 듯한 보안관 벨.

 

이렇게 셋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매카시의 이야기는 권선징악도 아니고, 무언가를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쭉 흘러가는, 정말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글이 잔잔하거나 큰 임팩트 없는 조용 조용한 글일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 책은 표지만큼이나 붉고, 많은 피가 흐른다.

그 피에 대해서 저자는 최대한 언급을 피한다. 흐르고 옅어지고 말라붙고 끈적한 피들. 그 피가 어디에서 흘러나왔고 왜 흘러나왔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최소한 마지막까지 흘러가는데 있어서는)

 

훗날 '조커'의 고 히스 레저에게 그 영광을 빼앗기긴 하지만, 동명의 영화에서 '시거'는 최고의 악역으로 꼽혔다고 한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그는 '주인공'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그의 살인은 그의 신념에 따른 하나의 '확신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서, 혹은 대상이 잘못했기 때문에, 명령이 있었기 때문에.

시거는 그런 살인의 구실과 변명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는 오로지 자신 내부에 내재된 룰에 의해 행동하며 그런 덤덤함과 당당함은 읽는 이, 혹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오히려 그에게 설득되는 (시거에게는 그런 살인이 당연하다는) 결과를 가져온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것은 '모스'인데, 뭐랄까.

꼭 집어 말하기 어려운 인디언스러움이 내 마음을 끌었다. ㅋㅋ

 

 

그리고, 벨.

어쩌면 그가 이 글의 진정한 주인공이 아닐까 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묘한 제목의 의미는 본문 내에서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벨의 생각과 대사를 빌려 조금씩 드러나는 '많은 시간을 겪은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면 그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노인들은 자식들과 손자들을 보며 자신이 그 나이였을 때와는 다른 모습들에 충격을 받는다. 그것은 그 노인이 보내온 시대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에게는 충격을 넘어 경악스러운 일들이 그의 자손들에게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그들의 시대인 것이다.

그러다 더이상 충격을 받기조차 멈추게 되면 그들은 더 이상 살아 있는 것이 아니게 된다. 숨쉬고 존재하더라도 그들은 지나간 시간의 흔적으로서 남아 있는 것일 뿐, 어서 사라져야 할 과거에 속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스가 난사한 총알에 의해 사망한 이 층의 한 노파에게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젊은이들이 벌인 범죄 현장에서 살해된 젊은이들은 시신이 수습되고 신원이 조회되며 각종 신문을 장식하게 된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고 가드가 사라질 때까지도 틀림없이 그 날의 총격으로 사망한 노파는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 채 그대로 자신의 집에 방치되어 있다. 그 노인은 범죄의 희생자로서도 인정되지 못한 것이다.

 

 

사실 매카시가 말하고자 한 바를 내가 온전히 알아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다시 읽는다고 이 이상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읽는 동안 즐거웠다.

 

 

 

[발췌]

 

#

맞히라고요?

그렇소.

왜요?

그냥.

뭣 때문에 맞혀야 하는지 알아야겠소.

그렇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소?

남자가 처음으로 시거의 눈을 마주 보았다. 청금색처럼 푸른 눈. 한때는 반짝거렸지만 이제는 완전히 광택을 잃은. 마치 젖은 돌처럼. 아무튼 맞히시오. 시거가 말했다. 내가 대신 맞힐 순 없소. 그건 공평하지 않지. 정당하지도 않고. 빨리 맞히시오.

나는 아무 것도 건 게 없어요.

이미 걸었소. 당신은 당신의 인생 전부를 걸었지. 단지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 이 동전의 제조년을 아시오?

 

 

#

루엘린?

왜.

아무도 해치지 마. 알았지?

그는 어깨에 가방을 비스듬히 걸쳐 메고 서 있었다. 나는 아무 약속도 못해. 그가 중얼거렸다. 나는 이미 너를 아프게 한 거야.

 

 

#

사람들은 그들에게 닥치는, 그들이 감수할 까닭이 없는 나쁜 일에 관해서는 불평을 늘어놓지만 좋은 일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좋은 일을 겪어도 될 자격이 그들에게 있는지에 대해.

 

 

#

이야기는 전해지고 진실은 무시된다. 흔히들 얘기하듯이, 누군가는 이것을 진실은 승리할 수 없다는 뜻으로 새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거짓만 말하고 그것을 잊는다 해도 진실은 남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진실은 여기저기로 움직이지 않으며 때에 따라 달라지지도 않는다. 소금에 소금을 칠 수 없듯이 진실을 더럽힐 수는 없다. 진실은 그것이 진실이기에 더럽힐 수 없는 것이다.

 

 

#

나이 들어감에 대해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모든 사람이 함께 나이 들어가는 건 아니라는 사실. 우리는 봉급을 주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물론 자기가 남긴 기록에도 신경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

얼마 전에는 여기 신문에서 몇몇 교사들이 30년대에 전국의 여러 학교에 보낸 설문지를 우연히 발견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설문지 문항은 학교 교육에서 부딪히는 어려운 문제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교사들이 발견한 설문지는 답안이 채워져서 전국 각지에서 돌아온 것이었는데 가장 큰 문제로 거론된 것은 수업 중 떠들기나 복도에서 뛰어다니기 같은 문제였다. 껌을 씹거나 숙제를 베끼는 일도. 뭐 그런 따위였다. 교사들은 답이 비어 있는 설문지를 찾아서 그것을 무수하게 복사해 똑같은 학교에 다시 보냈다. 40년 후에 말이다. 그리고 이제 답지들이 도착했다. 강간, 방화, 살인, 마약, 자살. 나는 이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세상이 점점 망해가고 있다고 오래 전부터 말하곤 했지만 사람들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내가 나이가 들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런 것도 하나의 징후다. 하지만 강간하고 살인하는 일을 껌 씹는 일과 구별할 수 없는 사람은 나보다 훨씬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 내 느낌이다. 40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아마도 다음 40년 동안은 난데없이 아주 괴상한 것이 등장할지 모른다. 너무 늦은 게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냐. 네가 그곳에 가면서 아무 것도 가져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요점이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너의 생각. 아니 누구의 생각이든. 그렇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건 없어. 내가 말하려는 게 이거야. 너의 발자국은 영원히 남아. 그걸 없앨 수는 없지. 단 하나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어?

조금은요.

아직 이해 못하는 것 같으니 한 마디 더 하마. 너는 어제 몇 시에 일어났는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중요한 건 어제야. 다른 건 중요치 않아.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서 너의 인생이 되지. 그밖엔 아무것도 없어. 너는 도망가서 이름만 바꾸면 된다고 생각할지 몰라. 다시 시작하겠다고. 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 천장을 바라보며 여기 누워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지, 하고 묻게 돼.

 

 

#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보았다. 여자들이 노라는 대답을 얼마나 힘겹게 받아들이는지 알지? 세 살 무렵이면 벌써 알게 되지.

남자들은요?

남자들이야 이골이 났지. 흔한 일이니까.

 

 

# 그는 일어나서 통로에 올라섰다. 그녀는 문 앞에 서 있었다. 어떤 영화에서 들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뭔데?

세상에는 훌륭한 세일즈맨이 많이 있지만 우리는 벌서 물건을 샀을지도 모른다.

그래, 너는 좀 늦었어. 나는 이미 샀거든. 그리고 나는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해.

그는 통로로 걸어가서 계단을 올라 안으로 들어갔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