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 양장본 | 304쪽 | 183*128mm | ISBN(13) : 9788925840796 2010-01-20 |
미나토 가나에.
나는 그녀를 떠올리면 에반에센스가 함께 연상되곤 한다.
첫 작품이 너무나 명작이라 자기 자신이 넘어서야 할 벽이 되고 만 이들....
작가는 '고백'에서의 기본틀, 즉 각 인물의 독백을 한 챕터로 구성해 하나의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의 기억들이 파츠가 맞춰지듯 큰 그림으로 맞춰져가는 방식을 고수하기로 결심한 듯 한데....
'고백'에서 한 조각 한 조각이 드러날 때마다 뒤통수가 쿵 아려오는 충격이 있었다면 후속작인 '속죄'에서는 갸우뚱하게 되는 의문과 이질감이 남는다.
우선, '속죄'의 경우는 '고백'과 확연이 다른 점이 '시간'의 흐름이다.
이미 벌어진 하나의 사건에 대한 인물들의 회상이라는 점에서는 같으나, 고백의 경우는 각 인물들이 중점으로 기억하는 장면 위주로 독백이 흘러가기 때문에 실질적인 시간의 흐름과 독백 내에서의 시간의 흐름이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시 말하자면 이미 모두 밝혀졌다고 생각한 부분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충격이 더욱 커졌던 것이다.
그러나 '속죄'에서는 한 인물의 독백이 모두 끝난 시점에서 그 다음 인물의 독백이 이어진다. 시간의 흐름이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앞선 인물에게서 얻어낸 정보가 당연스럽게 다음 인물에게로 이어질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슬쩍 흘리듯이 복선을 던지기가 훨씬 어려워졌다. 그런데다 전작을 의식한 탓인지 '강렬한 반전'을 주고 싶었던 작가는 다소 무리스럽게 조각들을 끼워넣는다.
즉, 전체 그림의 통일성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차라리 자연스럽게 버리는 편이 나았을 조각들이 억지로 끼워맞춰지는 불편함이 강조되어버린 것이다.
뜬금없다 싶게 나타나는 작고 여성스러운, 하지만 경찰서에 바이러스를 보낸 적 있는 양호 교사라거나,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앗!'하고 한 마디를 흘리는 (그것도 너무 티나게) 사촌 오빠 부부라거나.
그런 점들이 지나치게 표면에 드러났고, 또한 그것들 간의 결합도 그리 매끄럽지 못했다.
(아마도 모든 것은 마지막을 위해서였듯 한데.... 슬프게도 그것은 그리 큰 충격이 되지도, 반전이 되지도 못했다....)
또한 이어진 살인의 대상들이 모두 '이성'이었다는 점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울지 모르나 지나치게 의도되어 맞춰진 느낌을 더한다.
하지만 전작 '고백'보다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 바로 인물에 대한 것이다.
이전에도 말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고백'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같은 캐릭터들이다. 즉 지적 능력의 차이만이 있었을 뿐 내면적으로 다른 인간들이라 볼 수 없었단 이야기다.
그러나 '속죄'에서는 각기 다른 개성과 가치관을 가진 인물을 그려내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 점에 있어서는 정말로 박수를 보낸다. 아직까지 그녀의 발표작들은 모두 '고백'보다는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이런 노력들이 모여 다시 한 번 찬사가 쏟아지는 작품이 탄생하기를 바란다.
[발췌]
# 타나베 선생님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나요? 내 아이가 공포에 떨었던 것이 분하다면 여러분은 왜 세키구치는 욕하지 않는 건가요? 서른다섯 살에 무직인 남자가 정신과 통원 치료를 받은 이력이 있어서인가요? 아니면 이 지역의 지체 높으신 의원님 아들이라서 그런가요?
그보다는 단지 타나베 선생님이 더 비난하기 쉬운 상대였기 때문이 아닌가요?
직장 동료에 지나지 않는 저조차도 그분에게 동정심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하물며 그분과 결혼을 약속한 애인이라면 어떠했을지 여러분은 상상이 되시나요?
# 공부나 운동을 잘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간적인 그릇까지 큰 것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체격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요. 하지만 몸집이 크고 웬만큼 요령 있게 해내면, 주변에선 다들 똑똑한 이아로 보게 되죠.
# 여러분들로선 새로운 비난 대상이 생겨 즐겁지 않으셨나요? 타나베 선생님을 궁지에 몰아넣은 건 자신들이면서, 마치 제가 그런 것처럼 불쌍하다는 둥, 아이가 말이 없어졌다는 둥, 아이의 집중력이 떨어졌다는 둥 하며 사건 이전부터 있어 왔던 아이의 문제점까지 모두 제 탓으로 돌리면서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 아닌가요? 피 묻은 목욕 타월을 물어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땐, 정말 기가 멱혀 아무 말도 안 나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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