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017)

[아마노 세츠코] 얼음꽃

일루젼 2012. 8. 2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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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꽃 - 6점
아마노 세츠코 지음, 고주영 옮김/북홀릭(bookholic)

532쪽 | 188*128mm (B6) | ISBN(13) : 9788925811253

2008-11-05

 

 

 

얼음꽃과 속죄, 그리고 아직 읽지 않은 도미노와 제철천사는 시귀 예약 판매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도서들이다.

(이 글에서라도 '북홀릭'에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쇼핑백에 넣어서 부쳐주신 대범함은 지금 생각해도 흠칫 놀라게 된다.)

 

최대한 비울 것을 비워내 인간의 방으로 만들고자 겸사 겸사 시작한 독서.

월별 권수는 늘어나도 목표했던 목록이 지워지는 속도를 보면 자못 한숨이 깊어지게 된다.

내가 원했던 다독은 수량적 다독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이지만 눈에 걸리적거리던 책표지들이 안보이고 낯선 표지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체감적으로 줄었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여전히 구매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이다....)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거냐 하면, 눈에 띄는 대로 빠르게 읽어치우고 팔 건 팔아버리자 마인드가 발동했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표지가 너무 마음에 들어 팔지 말까, 생각도 했으나.

맨 마지막의- 에필로그와도 같았던 결말만 제외하면 꽤 즐겁게 읽었기 때문이다.

(바로 전에 읽은 작품이 '속죄'였기 때문에 반사 작용으로 더 호감이 가기도 했다....)

나름대로는 루브르전도 나와 함께 돈, 정이 들대로 든 책이란 말이다ㅠ

하지만 아무래도 소장할 정도로는.... 음.ㅋㅋ

 

전형적일 정도로 적절한 타이밍에 던져주는 떡밥이 아주 좋았다.

(음 지금 생각하니 단순히 나와 리듬이 잘 맞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진은 왜 언급이 없는가?

모자수첩은 어디로 사라진 것이지?

애초에 주스에 농약을 탄 사람은 한 명인 것인가?

 

등등 적당한 호기심을 유발시키며 밀었다 당기는 호흡이 참 좋았다.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적절한 때에 적절한 단서들을 흘려주었기 때문에 (그래서 깜짝 반전은 없었지만) 이미 예정된 그 순간을 향해 몸부림치면서도 달려가게 되는 아슬 아슬함이었다. 이미 독자 역시 알고 있는 비밀들을 언제 들키게 될까 두근거리며 읽게 만드는 그 호흡. (반면 여성 저자의 섬세함이라고 칭해지는 묘한 단서들은, 글쎄. 개인적으로는 그리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다. 예전에 봤던 영화 '금발이 너무해' 같은 느낌이랄까. "샤워를 하다니!!!")

 

덧붙여 말하자면, 이런 점들에 더불어 나의 내면에서 쿄코와 상당 부분 닮은- 제 멋대로에 고집 세고 거만한, 귀여운 구석이라고는 없는, 애처로울 정도로 오기를 부리는- 면들을 보았기 때문에 좀 더 즐거웠던 것도 사실이다. (세부적인 사항들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아마도 완전히 같은 상황에 놓여 있었다면 내가 가장 비슷한 행동을 할 것이라 예상되는 인물은 쿄코였다.)

 

다만 일부러 그런 것인지, 혹은 고의적으로 그렇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단서와 동기, 내면의 분석이 여성 캐릭터에게 집중되는 것이 조금 걸렸다. 토다는 정보를 모아 종합하고 때로 공감하는 인물에 가까웠으므로 제외한다면 전체 글의 95%의 흐름을 여성이 끌고 가게 된다.

 

또한 모든 것들이 결론지어지고 난 뒤까지도 모호하게 남겨지는 것은 타카유키다.

와카코의 경우엔 귀기 어린 듯한 섬뜩함까지 느껴지긴 해도 아주 이해를 못할 것도 아닌데, 그런 그녀를 다시 만나기로 결정할 정도의 온도도 느껴지지 않는 타카유키는 모든 부분에서 물음표로 존재한다.

 

이것이 남성의 심리까지는 파헤치기 어려웠던 작가의 회피인지, 혹은 부러 남성 위주의 추리 소설을 피해 여성의 심리에 집중한 작품을 쓰고 싶었던 고의적인 누락인지는 짐작키 어렵다. (하지만 너무 모호해서 오히려 글 전반에 대한 인상이 흐려질 정도였다는 것은 좀 문제이다. 물론 내게 그랬다는 말이다.)

 

또한 권선징악적으로 마무리하고 싶었기 때문인지,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인지,

혹은 그것이 처음부터 노려졌던 최후의 노림수이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이것 같지만)

그 마지막 에필로그가 하얗고 빳빳한 책장에 실수로 크게 번진 커피 도장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커피 도장 : 커피 잔을 올려놓았던  동그란 자국을 말한다. 일부러 찍을 정도로 한 때 유행이기도 했다고)

 

사람/경우에 따라 훨씬 아름답고 멋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나는 매우 매우 매우 매우 싫어한다.  -_-;;;;;;;

 

그래서 무척 아쉬웠다. 흥.

 

 

 

 

[발췌]

 

# 오랫동안 가사와 육아에 전념하고 있는 예전 친구들은 말투나 행동이 어전지 느슨해져 있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긴장감 없는 가족이라는 인간관계 안에서 축적되어 온 주부 특유의 분위기일지도 모른다.

 많은 주부들은 당연하다는 듯 남편과 아이들을 말로 지배하고 관리한다. 가정 안에서만 통용되는 권력을 구사하고 자기만족의 안도를 얻고 있는 것이다. 말투가 그 점을 이야이개 준다. 바깥세상을 모르는 그녀들의 화제는 가족에 대한 것밖에 없다. 겸손과 자만과 미련함이 세트가 되어 사이사이에 다른 사람의 험담이 섞인 대화 내용은 종잡을 수도 없고, 결론도 없고, 발전도 없는 채로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쿄코는 그 화제의 빈곤함을 경멸하면서도 애써 웃음을 잃지 않았다.

 

 

# 토다는 자신에게 장인 기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 상반되는 것이 평론가 기질이다. 인간의 기질은 이 두 가지로 크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평론가는 대상과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응시하며 냉철하게 분석하지만, 장인은 대상과 같은 토양에 몸을 두고 자신을 대상과 동화시킨다. 

 범죄는 대부분 사람 사이의 알력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관계자와 접하고 이야기를 듣고 표정을 읽어 내는 것은 가장 중요한 수사였다. 말과 목소리, 표정의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고, 그 이면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를 감지해 낸다. 가급적 현장에서 세세한 것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손에 들고 냄새를 맡고 맛본다. 현장에 떠도는 분위기를 오감으로 감지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체험을 쌓아가는 것이 교과서가 된다.

 

 

# "드세고, 제멋대로. 건방진 여자네요. 남편이랑 완전히 비슷한 타입이에요."

 토다도 동감이었다. 둘 다 풍족한 생활 속에서 묘한 자신감을 갖고, 자신의 가치관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만나는 사람을 한정 짓는다. 전형적인 상류 지향의 인간이었다.

(약간은 찔렸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나름대로는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게 된 것은 독립 이후부터다. 하하.)

 

 

# 쿄코에게서는 마음의 풍요로움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좋은 성장 환경에 비해 느긋한 구석이 없고, 제멋대로에 직설적이었다. 화려한 웃음 뒤에 숨어 있는 날카로운 통찰력, 공손한 말투를 쓰면서 사람을 내려다보는 거만함, 항상 우위에 서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고, 절대 약점을 보이지 않는, 애처로울 정도의 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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