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에린남] 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 할 일은 끝이 없고, 삶은 복잡할 때

일루젼 2022. 6. 1.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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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에린남
출판 : 상상출판 
출간 : 2020.05.25  


       

내가 좋아하지만 잘 어울리지는 않는 패션 스타일로 놈코어 룩이 있다. 심플하고 깔끔하면서도 어딘가 후줄근하지 않으려면 기본적으로 소재와 재단이 좋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것도 꾸안꾸로 소화할 수 있는 미친 센스가 필요하다. 나는 살짝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각 잡힌 옷들이 어울리는 편인데, 또 화려하거나 곡선적인 디자인은 피해야 해서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옷을 사는 것도 고민스럽지만 그것들을 맞춰서 입는 것은 더욱더 고민스럽다.

그래서인지 가지고 있는 대다수의 옷들이 원피스다. 하나만 선택하면 되니까. 

(다른 계절보다 활력이 돌아서 뜨거운 여름을 가장 좋아한다. 그런데 문득 옷 선택이 간편해서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조금씩 집을 정리한 게 대략 6개월은 된 것 같은데, 사실 책은 거의 그대로다. 약간 더 증식한 것 같기도 하다.

대신 자잘한 잡동사니들은 눈에 띄게 줄었고, 매주 집 안으로 들어오는 물건들보다 나가는 물건이 더 많다는 것에 위안을 느끼고 있다.  

 

미니멀리즘. 비거니즘. 제로 웨이스트. 

 

수많은 삶의 방식들이 있다. 사소한 부분들은 모두 제각각이라 각기 다른 색깔들인 것 같지만, 사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를 더 소중하게 대하고 싶다'는 마음만은 모두 같다. 모든 라이프 스타일들은 그 지점에서부터 출발하는 것 같다. '정답'과 '완벽'을 위해 노력하는 삶보다는, 내가 행복해하는 순간들이 많아지는 삶을 살고 싶다. 

 

예를 들면, 지금같은. 

 

적절한 햇살, 시원한 바람,

흔들리는 불꽃, 은은한 인센스 향,

달그락 소리를 내는 커피 얼음, 기분좋은 홈웨어, 그리고 달각 달각 거리는 키보드. 

        

 


   

 

- 집안일은 점점 현실이 됐고, 나는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집안일'이라는 친구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어디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사람을 어찌나 곤란하고 귀찮게 하는지! 집안일은 하지 않으면 안 한 티가 났지만, 열심히 해봤자 티가 나지 않았다. 

- 밥을 먹기 위해서는 장을 봐야 했고, 밥을 다 먹은 뒤에는 사용한 그릇들을 설거지해야 했다. 설거지를 안 하면 다음 날 밥을 먹을 때 곤란했다. 깨끗한 옷을 입기 위해서는 빨래를 해야 했고, 세탁물을 건조대에 넌 다음 바싹 말랐다면 개서 옷장에 다시 넣어야 했다. 빨래를 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입을 옷이 마땅치 않아졌다. 냉장고나 생필품이 보관된 서랍장을 살펴보며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시시때때로 수량이 충분한지 헤아렸다. 그러지 않으면 여러모로 불편했다. 나는 곤란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집안일을 했고,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점점 더 싫어하게 됐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집안일을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 결국 나는 진지한 태도로 '집안일하지 않을 방법'을 찾았고, 오랜 고민 끝에 결론을 냈다. '집안일을 안 하면 된다!' 너무도 간단명료하고 확실했지만,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다. 집안일을 대신해줄 누군가를 고용하는 일도, 집안일을 모른 체하고 지내는 것도 지금 상황에서는 불가능했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집안일을 싫어하지 않을 방법을 고민해보기로 했다. 그런 방법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거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지만, 밑져야 본전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찮게 미니멀리스트 사사키 후미오 씨가 나오는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됐다. 텅 빈방 안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보고, 홀린 듯이 클릭할 수밖에 없었다. 

 

- 필요한 물건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미니멀리스트 사사키 후미오 씨의 집은 아무리 정리해도 어수선한 우리 집과는 확연히 달라서, 구경하는 것만으로 개운해졌다. 식기의 수도 적어서, 모든 식기를 꺼내서 설거지한다 해도 10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 집도 똑같이 물건을 줄이면 해야 할 집안일도 줄어들지 않을까?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 다른 선택권은 없었다. 나는 당장! 미니멀리스트가 되어야 했다. 그러니까 나는 집안일이 하기 싫어서, 너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한 것이다. 

 

- 그렇게 나는 초보 미니멀리스트가 됐다. 우선 '초보 미니멀리스트'라는 이름에 어울리도록 집 안의 필요 없는 물건들을 비워내기로 했다. 이전까지의 나는 평화롭고 안일하게 물건을 모아두는 사람이었다. 대학생 시절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다가 본가로 다시 들어왔을 때도, 퇴사하며 회사의 짐을 정리해야 했을 때도 나는 작은 종이 하나까지 버리지 않고 챙겨 나왔다. 그 물건들은 고스란히 집 어딘가에 잘 처박아두었는데, 이 같은 습성은 결혼을 하고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하루가 다르게 신혼집이 좁아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물건이 빠르게 늘어났지만 문제의식을 갖지는 않았다. 시간이 흐른 만큼 물건이 쌓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 "이건 언제 샀더라? 왜 샀지?" 언제 이 집에 왔는지조차 가물가물한 물건들이 우리 집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껏 내 공간을 애정도, 쓸모도 없는 물건들이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 분했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소용없었다. 그저 구석구석의 물건들을 하나씩 들춰보고 비우면서 원인을 파악해볼 뿐이었다. 일종의 오답 노트랄까. 


- 고작 작은 습관 하나를 들였다고 당장 큰 변화를 바라는 건 너무도 큰 욕심이라는 사실을 안다. 단지 시작일 뿐인, 정말 좁은 보폭의 한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목적지 없는 긴 여정의 첫걸음 말이다. 그러나 뿌듯하다. 변화하고 있는 나를 보며, 지난 시간과 달라진 나를 비교하며. 

 

- 편리함의 달콤한 유혹을 포기할 수 없는, 나의 나약함은 변화하려 시도하는 작은 습관들을 무색하게 한다. 그렇다고 그만둘 수는 없다. 할 수 있다면 해야 한다. 그게 작은 움직임이든 큰 행동이든,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 확실히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미니멀리스트로서뿐 아니라,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삶을 살려면. 어쩌면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은 생활이나 주변 환경보다 나 자체가 달라져야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스스로에게 관심을 더 가지면 내 삶이 더 나아질 수 있으려나.

 

- 어느 순간부터는 하루를 잘 지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을 얻었다. 나의 하루, 나의 생활, 다가올 내일 같이 당연하고 사소한 것들이 기다려졌다. 물론 나의 하루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언젠가 내가 꿈꿨던 목표에 닿을 수도 있다. 그러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해야 할 일을 하며 오늘 하루를 후회 없이 잘 살아내고 싶다. 
 

- 가진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나의 취향이나 가고 싶은 방향이 뚜렷해졌다. 남들이 다 가진 물건을 갖지 않아도 되고, 잘난 사람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끼게 됐다. 그러다 보니 이미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을 엄청나게 줄였는데도 불편함 없이 생활 중이라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내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게 됐고, 다른 누군가의 삶과 내 삶을 비교하지 않는 편이 건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 물건을 비우면서 나에게 꼭 필요하거나 가치 있는 물건을 알게 된 것처럼, 삶의 많은 것을 비우다 보니 내게 남겨진 것들을 소중히 대할 수 있게 됐다. 정리가 안 되는 삶의 부분들과 생각, 그리고 인간관계를 미련 없이 비워내자 중요한 것들이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내게 소중한 것들만 신경 쓰고, 마음 주며 살아가고 싶다. 

- 내가 선택한 것들로 주변을 채우는 인생을 살아가게 됐다. 변하고 있는 삶이 만족스럽지만 가끔은 그런 생활이 번거롭기도 했다. 쓰레기를 줄이고자 익숙한 것들 대신 대안 제품을 찾아 사용하는 것도 낯설었고, 비닐 사용을 줄이기 위해 장 보러 갈 때마다 이것저것 챙겨가는 것 역시 불편했다. 물때가 자주 끼고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식기 건조대 대신 티 타월을, 키친타월 사용을 줄이기 위해 행주를 주로 사용하면서 평소보다 빨래거리가 많아졌다. 뭔가를 살 때도 지나치게 신중해져서 스스로 까다로운 손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불편들이 조금씩 쌓이자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지만 분명 달라진 것이 있었다. 바로 내 삶이다. 불편함은 어느새 익숙함이 됐고, 과거보다는 쓰레기를 적게 만들어내고 있었다. 조금 번거로워졌지만 전보다 편리하지 않을 뿐, 살아가는 데는 문제가 없다. 가벼워진 삶 덕분에 번거로움도, 불편함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 미니멀 라이프는 내 삶에 스며들어서 어느새 나를 변화시켰다. 다행히 조금씩 달라지는 나의 인생이 마음에 들고, 변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게 즐겁다. 지금 나는 "미니멀리스트예요!"라고 말하고 있지만, 다른 많은 미니멀리스트와는 조금 다른 모습일 수도, 많이 부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교할 필요는 없다. 미니멀 라이프든 아니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으니까.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나의 삶은 미니멀 라이프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다른 형태를 띠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때쯤이면 이미 나만의 단단한 삶의 방식에 맞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되는, 그 어떤 비교 대상도 없는, 그 어떤 미래도 정해지지 않은 '온전한 나'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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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싼 옷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저렴하더라도 맘에 꼭 드는 옷이나 가격대에 비해 잘 만들어진 옷이라면 나는 꽤 오랫동안 입는 편이다. 저렴한 옷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싸다는 이유로 쉽게 구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비싼 옷을 살 때는 이것저것 재고 따지며 수십 번 생각하다가, 매장에서 나와 다른 옷 가게까지 둘러보고, 다시 돌아와서도 고민한다. 소비를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저렴한 옷은 가격만큼 쉽다. 소비도, 방치도, 버려지기도. 나는 오랫동안 쉬운 방식으로 소비해왔던 것이다. '이 중 하나는 건지겠지'라는 마음이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돈만 낭비한 꼴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 이제는 잘 안다. 엉망진창인 옷장은 누구도 아닌 100% 내 탓이었다는 것을. 또한 옷장을, 집을, 인생을 구할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엉망인 옷장을 구해낼 것이다.

 

- 나에게 필요한 물건이 아직도 많다고 느끼는가? 내가 가진 물건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비어 있는 공간은 언제나 부족함을 느끼게 했고, 물건에 대한 결핍이 있을 때는 빈곤함과 공허함까지 느꼈다.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채우고 싶은 욕구는 당연히 소비로 이어졌다. 주방용품에 관심이 없고, 우리 집에는 굳이 없어도 될 걸 알면서도 멋스러운 그릇이나 고급스러운 티 세트를 볼 때마다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꽉 찬 옷장을 보고 한숨을 내쉬다가도 예쁜 옷을 보면 꼭 사야 할 것만 같았다. 둘이 살기에 충분한 집이었지만 여분의 방이 없어서 아쉬워했다. 집에서 여백을 발견하면 화분이나 가구 등으로 자꾸만 채우고 싶어졌다. 가진 것들이 충분한데도,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물건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 이제는 물건이 없으면 없을수록 좋다.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더 적극적으로 증명하려고 한다. 그러려면 내 생활 패턴을 잘 인지하고 있어야 했다. 평소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식생활은 어떤지, 집에서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에 대해서. 내 생활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자 나에게 어떤 물건이 필요한지도 잘 알게 됐다. 물건이 전보다 줄었는데도 생활은 불편함 없이 유지됐다. 나는 이미 필요한 만큼의, 아니 그보다 더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가지고 있던 물건을 비워낸 지금, 이제 이렇게 대답할 수 있게 됐다. '나에게 필요한 물건은 충분하게 가지고 있다'고. 

 

- 집 여기저기에는 꿈을 위해 사들였던 물건들이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남겨져 있었다. 선명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미련 때문에 비우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미 내 꿈은 달라진 상태였다. 나의 성향과 잘 맞는 방향으로 목표도 수정했다. 그래서 관련된 모든 물건을 비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누구보다 나를 위해서 비워내야 했다. 

 

- 미련이 묻은 물건을 과감하게 시야에서 치우자 마음속에 남겨둔 미련도 자연스럽게 비워졌다. 거짓말 살짝 보태서, 나는 미련 가득한 물건들을 비우며 새롭게 태어나는 것 같았다. 이루지 못한 꿈에 얽매여 있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마음속 빈자리에 또 다른 희망을 채울 수 있게 됐다. 대단한 영화나 애니메이션이 아니더라도, 나만의 이야기를 하며 살아가게 될 거라는 믿음도 생겼다. 언젠가 못다 이룬 그 꿈이 다시 나를 찾아올 수도 있다. 그때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미련을 걷어낸 바로 그 자리에 반갑게 맞아줄 것이다. 비워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같은 아이템을 다시 사지 않을 거라고 장담해?" 물건을 비우는 데 집중하다 보면 당장 쓰는 물건이 아니라면 무조건 버리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데,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는 물건을 비우고 후회한 적은 없다. 아마도 이 질문 때문이 아닐까? 앞으로도 물건을 비울 때, 혹은 비울까 말까 고민될 때, 스스로 질문할 것이다. 함부로 물건을 비워낸 나를 탓하거나 미니멀리즘 생활을 후회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 물건을 비우다 보면 '이거 왜 샀지?' 하고 의아해지는 물건들이 나온다. 나의 취향도 아니고, 내 생활에 딱히 쓸모도 없지만 집 안 어딘가에 버젓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물건. 애써 모르는 척해보려 하지만 사실 그 물건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마음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더 나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나를 포장하는 물건.

 

- 평소에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시선에서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 없었던 나는 남들 앞에서 조금이라도 '있어' 보였으면 했나 보다. 예를 들어, 선물 받은 고급 브랜드의 디퓨저를 다 썼는데도 여전히 화장실에 '전시' 해두었고, 유행하는 신발은 더 이상 신지 않음에도 신발장에 남겨두었다. '나도 이런 거 사봤고 써봤어'라고 말하고 싶은 듯이. 하지만 놀랍도록 아무도 그 물건들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더군다나 실제로 살다 보니 나에게는 그 관심이 정말 1원어치만큼도 필요하지 않았다. '있어 보이는 것'은 또 뭔지! 고작 얼마 전의 내 모습인데도 창피했다. 어쨌든 그런 물건들을 싹 비워냈다. 이제 우리 집에는 나에게 정말 필요한 물건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 기준을 세우자 앞으로 옷장을 어떻게 비우고 채워야 하는지 대략적으로 감이 잡혔다. 하지만 추상적인 분위기만을 떠올리다 보면 조금씩 변형된 형태의 옷들로 시작해 마침내는 처음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옷까지 소비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쇼핑할 때나 옷을 비워낼 때 참고하면 좋을 이미지 몇 장을 찾아 저장해두기로 했다. 

- 먼저, 구글에서 ‘Women minimal look’ 또는 ‘Simple style' 등의 키워드를 검색하고 마음에 드는 사진이나 브랜드를 찾는다. 나는 미국 브랜드 ‘에버레인(Everlane)'을 참고했다. 대부분의 옷이 베이직하고 깔끔해서 내가 원하는 스타일과 가장 근접했기 때문이다. 파스텔톤 셔츠와 청바지를 코디한 사진과 기본 티셔츠에 무릎 정도까지 오는 치마를 매치한 사진을 캡처했다. 그리고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이런 분위기가 아니라면 옷을 사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 예전 같았다면 열과 성을 다해서 고작 패딩 점퍼 하나를 사야 하나 싶어서 중간에 포기하고 적당한 옷을 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게까지라도 해서' 마음에 꼭 드는 옷을 사야 한다고 생각한다. 옷뿐 아니라 앞으로 내가 가지게 될 모든 물건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기준이다. 왜냐하면 내 집에 걸려있는 옷은 오랫동안 잘 입고 싶은 것뿐이었으면 좋겠으니까. 나에게는 그저 그런 옷 열 벌보다 정말 마음에 드는 옷 한 벌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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