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오마르]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 그들이 배운 미덕에 대한 불편함

일루젼 2022. 6. 1.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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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오마르 / 유은 / 송현진
출판 : 레터프레스 
출간 : 2018.05.15 


        

이런 유머를 좋아한다. 자신만의 잘 다듬어진 생각을 기반으로 한, 날카롭지만 특정인을 비하하지는 않는 디스들. '찔릴 사람은 알아서 찔리세요, 하지만 정작 너는 모르겠지' 같은.  

 

이전의 <모두와 잘 지내지 맙시다> 리뷰를 쓰다가 그 이전에 출간된 첫 번째 책이 있다는 걸 알고 찾아읽게 되었다. 대부분의 내용들은 삶의 단상들 속에서 뽑아올린 촌철들이다. 이를 소비하는 사람에게는 짧고 명징한 문장이지만, 이 미묘함을 건져올려 다듬은 사람에게는 길고 긴 고찰의 시간이 녹아든 글들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좋아하게 된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관찰하고, 생각하고, 또 곱씹어 생각했음이 느껴져서. 무언가를 자신만의 생각으로 소화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가 유튜버로서 성공했다는 것은 나만 좋다고 생각한 건 아니라는 의미다. 그의 지난 영상들을 출퇴근 시에 하나씩 보고 있는데, 꽤나 재미있다. 한 번 시도했다가 돌림노래와 돈쭐만을 남기고 사라진 라이브, 큰 마음 먹고 다시 시도해줬으면.

 

문득 최근 읽은 책들 중에 유튜버가 저자인 경우가 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줄어드는 독서인구를 감안할 때, 안정적인 판매 부수를 보장하리라 생각하기 때문일까? 이제는 등단이 아니라 채널 오픈이 필요한 시대일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그렇게 찾아 읽게 된 것 뿐일지도 모른다. 앗, 그렇다면 김겨울 작가가 쓸 인문서도 유튜버가 쓴 책이 되는 건가?)

 

어쨌든 실컷 웃으며 읽었고, 몇몇 문장은 센스가 마음에 들어 저장해두었다.

'상황이 많이 안 좋다고 생각한다' ㅋㅋㅋㅋ 

정말 즐거웠다.  

 


   

- '당신이 나보다 먼저 태어난 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 이상한 일이다. 피차 서로 처음 보는 사이인데 당신은 왜 나한테 당연하게 반말을 하고 내 어깨에 허락 없이 손을 올리는 거지? 나이 차가 반 토막도 아닌데 왜 나는 당연히 당신에게 존댓말을 써야 하고 당신의 그 재미없는 말에 웃어 줘야 하는 거지? 당신이 나보다 먼저 태어난 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교수나 조교는 다르다. 나이나 직급을 떠나 그들은 나에게 중요하고 또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잘 보일 필요가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싶다. 그런데 당신은? 쓸모가 없다. 나에게 그다지 필요 없는 사람이다. 물론 필요한 사람만 만나겠다는 게 아니다. 도움이 안 되는 당신에게 내가 고개를 숙일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 무언가가 싫으면 그냥 싫다고 말하면 된다. 그것이 가장 정확하고 무탈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에 이유다운 이유를 붙이고 싶어 한다. 자신이 제대로 된 이유도 없이 뭔가를 싫어한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싫어서다. 그래서 원래대로라면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은 되지 않을 수 있는데도 굳이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 보려다가 정말로 나쁜 사람이 되는 쪽을 선택하고 만다. 

 

- "나는 자기 관리를 못하는 사람이 싫어. 그래서 뚱뚱한 사람들이 싫은 거야."
그냥 뚱뚱한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끝냈어야 한다. 하지만 당신은 뚱뚱한 사람을 그냥 싫어하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뚱뚱한 사람들을 싸잡아 자기 관리 못하는 사람들로 치부하고 말았다. 뚱뚱한 사람을 안 싫어하는 사람이면 참 좋았을 테지만 싫은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어쩌겠는가! 당신은 딱 그만큼 별로인 사람이다. 그냥 인정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자신의 못난 면이라도 그게 진실이면 받아들이고 솔직하게 마주해야 밖으로나 안으로나 탈이 없다.  

 

- 유머는 사람을 살피는 일이다. 내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때 그것을 상대방이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잘 살펴봐야 할 수 있는 고급 스킬이다. 많은 상황 속에서 경험치를 키워 어떤 말이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또 어떤 말이 분위기를 망치는지 판별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유머 감각을 타고났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은 실은 모두 그 과정을 거친다. 다만 보통 사람들보다 좀 더 수월할 뿐. 결국 신경을 쏟으며 눈치를 보지 않고는 사람을 웃길 수 없다. 반응을 봐야 감을 잡을 것 아닌가! 그러니 과장님은 안 웃길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 아무도 그에게 진심으로 반응하지 않으니까. 

 

- 그리고 걱정되어 하는 말인데,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혹시나 직장에서 과장급의 사람이라면 부하 직원을 붙잡고 이 글을 보여 주거나 언급하며 '내가 정말 그렇게 재미가 없냐?' 같은 질문은 제발 하지 않기를 바란다. 어차피 대답은 정해져 있고, 그 부하 직원만 괴로울 테니. 

 

- 내가 싫어하는 행동만 골라서 하는 사람을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나고 돌아온 날이 있었다. 나는 그가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남들에게 자신의 행동과 말이 얼마나 안 좋은 기분을 선사하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내용으로 나는 그런 사람이 너무 싫다는 내용의 글을 적어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몇 분 뒤 그가 '좋아요'를 누르고 너무 공감한다며 댓글을 달았다. 처음에는 그게 이해가 안 됐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너무 이해가 되었다. 아, 그래. 이 사람이니 가능한 일이겠지. 그는 내가 싫어할 만한 자격이 너무 충분한 사람이었다. 

- '처음에는 낯을 많이 가리지만, 막상 친해지면 활발해진다. 혹은 내 사람이다 싶으면 다 퍼준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성향을 설명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건 거의 '똥은 더럽다' 혹은 '치킨은 맛있다' 정도로 당연한 말이고, 인류뿐 아니라 거의 모든 영장류가 그렇다. 그 문장들로 알 수 있는 그들의 성향은 타인에 대한 관찰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 팔짱을 끼고 선 채 남들의 도전을 평가하고 비웃는 게 일인 사람들이 있다.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에게 화가 났지만,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그것뿐인 사람들에게 그것마저 하지 말라고 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 인생을 지켜봐 주었다. 수많은 말들이 담긴 셀 수 없이 많은 엄지를 서로에게 세워 주며. 
나는 최근에 당신이 즐겨 찾는 그 카페에 간 적 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당신과 나, 거기 앉아 커피를 마시며 나는 우리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알지도 모르지도 않은 사이지만 나는 당신을 모른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어떻게 모르는 사이일 수 있나! 당신은 내 삶에 분명 유의미한 사람이다. 나도 당신에게 그랬으면 한다. 만난 적이 없다 하여 우리 지금껏 서로에게 보낸 그 따뜻한 시선이 아무것도 아닐 수는 없다.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우연히 들어선 이 카페에서 당신을 만나게 된다면. 나는 우리가 오래된 친구처럼 다정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면 우선 크게 한 번 웃고 멋지게 하이파이브를 할까? 아니면 늘 그랬듯 서로 엄지를 세워 줄까. 
나는 그렇게 그 카페 안에서 기분 좋은 상상을 한다.

 

- 내가 싫어하는 어른들의 말버릇이 내 입에서 툭 나올 때가 있다. 아마 좀비에게 팔이나 다리 같은 곳을 애매하게 물려버리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나는 아직 의식이 남아 있는 상태로 내가 감염되었음이 분명한 징후들을 관조하고 있다. 잔인한 감각이다. 이 징후가 뇌까지 잠식하면 나는 오늘의 생각을 모두 잊은 채, 꽉 막힌 동시에 명쾌한 사고로 남은 삶을 꼬장꼬장하게 살겠지. 그것이 두려워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나는 한때 변화를 즐기고, 차이를 존중하며, 왕년에 매몰되어 있지 않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었던 말이 통하는 젊은이였습니다.'

 

- 진실과 거짓 중 무엇에게 더 많은 빚을 졌을까? 살면서 나는 진실과 거짓 중 무엇에게 더 많은 빚을 졌을까? 내 인생이 이렇게나마 별 탈 없이 잘 흘러온 것은 진실과 거짓 중 어느 쪽의 공이 더 클까? 
내게 있어 진실의 좋은 점은 그게 진실이라는 것 자체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거 외에 무엇이 왜 좋은가? 모르겠다. 그래서 진실은 보기 좋고 근사한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장식품 같다. 그냥 거실 장식장 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서서는 '내가 바로 진실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에 비교해 거짓은 더럽고 못생겼지만, 쓸모 있는 빗자루 같다. 살면서 처리가 난감한 부분과 마주할 때 늘 거짓의 힘을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 미안하지 않아도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가 있고 고맙지 않고 행복하지 않아도 고맙고 또 행복하다고 말해야 할 때가 있다. 여태 살아온 내 삶의 대부분은 그런 식이었다. 그런 순간들마다 그래도 진실해야지 하며 마음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다 꺼내 놓았다면 어땠을까? 그 다치는 마음들과 망가지는 관계들을 어떻게 다 감당할 수 있었을까? 분명 앞뒤 없이 진실만 좇았다면 그런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애초에 마음 자체가 진실한 사람이라면 내 말에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진실한 삶이 전혀 문제를 만들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속에 악취를 품고 사는 사람이다. 이걸 잘 가리고 살려면 어쩔 수 없이 거짓과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다. 

 

- "가만히 놔두면 내가 어련히 할 텐데 왜 너는 매번 먼저 해 버리는 거냐!"
쌓여 가는 설거지를 참다못한 내가 결국 팔을 걷어붙이면 친구는 민망한 기색을 하며 그리 말했다. 나는 처음에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하기는 개뿔! 애초에 할 생각 따위 전혀 없었으면서.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그에게 설거지를 시킨 적이 없는데 그는 자발적으로 설거지를 했다. 나만 하기는 너무 억울해서 설거지할 그릇이 쌓여 가는데도 버티고 또 버티던 며칠째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제야 나는 그때 그가 한 말이 진심이었음을 깨달았다.  

- 내가 정답이라고 믿는,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그 당연한 것이 실은 나의 개인적인 기준일 수도 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졌음에도 설거지를 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건 잘못된 행동이지만 설거지를 할 때가 아직 되지 않았다고 판단해서 기다리는 것은 물론 내가 보기에는 도대체 왜 저러나 싶어도 그 사람의 기준일 수 있다. 솔직히 그걸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다.  

 

- 우리 대부분은 자신이 보편적 기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보편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면 이 많은 충돌이 왜 일어나는지 설명할 수 없다. 때문에 나는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개인적이라고 생각한다. 보편적이라는 말은 그 개인적 기준을 주변에 주입해 내가 편하기 위해 보태는 말일뿐이다. 

 

- 다르다는 것은 그렇게 정말로 다른 것이다. 지독하게 다른 것이다. 나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 사람의 세계에서 너무나 정상적인 것일 수 있다. 노력을 통해 수용할 수 없다고 해서 그걸 틀렸다고 말하는 건 잘못되었다.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차라리 피하는 것이 옳다. 나처럼 말이다. "어우, 내가 진짜 다시 친구랑 자취를 하나 봐라!" 

 

- 나는 어린 시절 강아지를 좋아했고 고양이에게는 큰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고양이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몇 번의 만남과 이별. 그것을 통해 마음을 주고받는 일에도 완급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이를 문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 그런 게 사랑의 본질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영원할 것 같던 충성과 순종은 어느 순간 부담과 피로감으로 다가왔다. 
'너를 사랑하지만, 우리에게는 각자의 세계가 필요해.'
고양이의 우아한 몸짓에는 그런 언어가 있다. 나는 그것에 늘 매료된다. 그래, 우리 이 정도의 거리는 두는 게 좋겠지. 그리고 가끔 그 두 세계가 포개어질 때 느껴지는 사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감격스럽다. 진정으로 고양이 같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아마 영원히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양이가 되기에 우리는 너무 약한 영혼들이라 때때로 강아지가 된다. 그것이 고양이도, 강아지도 아닌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덕에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채 아프고 또 행복하다. 

- 늘 말로 사람을 얻었지만, 또 말로 사람을 잃었다. 존재를 인정받고자 무슨 말이든 해야 했고 때때로 외로움과 불안감이 큰 파도로 나를 덮치면 정말 아무 말이나 계속해야 했으므로 그 와중에 어리석은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이 마구 섞여 나오는 걸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말을 잘했으면 하고 간절히 소망하는 동시에 과묵한 이들을 동경하게 되었다. 존재감을 얻고자 생선처럼 풀린 눈을 한 채 펄떡이는 나 같은 인간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들은 테이블 끝에 앉아 작은 촛불처럼 고고하고 희미하게 웃고 있다. 오늘 밤에도 나는 종종 그쪽에 신경을 쓰겠지만 결국 말을 멈추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입만 열면 내 불안감을 고백하고 상처를 만든다. 그렇지만 이마저도 하지 못하면 쪼그라들다가 결국 의자 밑으로 사라지고 말겠지. 그래서 나는 오늘도 쉬지 않고 입을 놀린다.

 

- 나는 짱이 아니다. 지금껏 음악을 하면서 내가 타고났다던가 감이 좋다든가 하는 생각은 별로 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못하지도, 잘하지도 않는 수준이라고 여긴다. 그런 나에게 어떤 이는 그런 자부심도 없이 어떻게 음악을 하느냐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정말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저 그런 사람은 음악을 하면 안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들이 딱히 내 밥벌이를 걱정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서다. 그들의 말은 마치 자격에 관한 이야기처럼 들렸다. 나처럼 평범한 인간은 선택받은 자들의 영역에 발을 들이면 안 된다는 말 같았다. 

-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그들의 말처럼 어쩌면 나는 음악을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음악을 더 하찮게 여기는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이 치킨을 튀기고 옷을 파는 일보다 딱히 더 고등한 무엇이라고 여겨지지는 않을 뿐이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각자의 쓰임새가 있고 세상에 필요한 일부이다. 그리고 모든 일이 그렇듯, 그 분야에 종사하는 대부분은 그저 그런 사람들이지 않나? 

 

- 어쨌든 나는 계속 그저 그런 재능으로 음악을 할 것이다. 음악으로 큰 인기를 얻거나 돈을 벌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좋다. 나는 내가 좋고 내 음악이 좋고 내가 음악을 하는 게 좋다. 그뿐이다.  

- 우리는 빛나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 사이에 선을 긋고 그 빛나는 것들의 특별함을 이야기하기 좋아한다. 그리고 그 황홀함과 경이로움을 이야기하기 위해 빛나지 않는 것들은 그저 하찮게 치부하고 만다. 지루한 비유지만 밤하늘이 온통 검은색이기에 별은 빛나 보인다. 우리 대부분은 검은 하늘임에도 별을 찬양하느라 우리의 의미를 너무 낮추고 사는 게 아닌가 싶어 나는 가끔 입 안이 쓰다. 

 

- 우리는 왜 더 일찍 만나지 못했나! 여기저기 헤매지 않고 바로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런데 과연 그런가? 우리는 퇴적물이고 콜라주다. 지난 시간 속에서 쉼 없이 무언가에 뒤덮이고 덧대어져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그래서 더 이르게는 없다. 시간을 돌려 과거로 가면 그곳에 당신이 아는 그는 없다. 그건 반드시 그때여야 했다. 끊임없이 퇴적되고 덧대어지며 변화하던 두 사람이 운명의 모퉁이에서 마주친 그때! 당신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그는 오직 그곳에만 있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일은 그의 모든 역사를 끌어안는다는 의미가 된다. 언젠가 흐느끼며 고백한 어린 날의 상처나 그를 아프게 한 사건들도 만약 없었다면 더 일찍 만났을까 싶은 지난 연인들과 긴 방황의 시간까지도 말이다. 

 

- 주의해야 할 것 : 남 신경 안 쓰고 산다고 말하면서 남들의 취향을 부지런히 의식하고 그 범위 밖에 서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

 

- 내가 좋아한다고 그게 꼭 나와 잘 맞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사실 아닌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잡지에서 본 그 근사한 정장이 내 마음에 쏙 들 수는 있겠지만 그게 나에게 잘 어울릴 거라는 보장은 없는 것처럼. 관계도 마찬가지다. 끌리는 사람이 꼭 나와 잘 지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자가 있지만, 그 여자가 나와 잘 지낼 수 있는지와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거다. 친구 A는 내가 보기에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다지 친하지 않다. 왜냐하면 A가 즐기는 취미 활동을 나는 하나도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A는 활동적인 타입으로 오토바이와 스키를 즐긴다. 그것은 그가 내게 매력적인 이유인 동시에 가까워질 수 없는 이유다. 나는 한동안 이런 나 자신이 마음에 안 들었다. 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못할까?

- "책을 좋아합니다." 
나는 그렇게 말한다. 분명히 "책 읽기를 좋아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으니 상대방이 어떤 오해를 할지라도 나는 거짓말한 게 아니다. 나는 책이 좋다. 책이라는 물건이 좋다. 예쁘게 디자인된 표지와 모서리로 인해 책장에 꽂아 놓으면 근사한 인테리어가 되는 그 형태가 좋다. 책을 엄지손가락 끝으로 잡고 조금씩 힘을 빼며 빠르게 넘기면 안의 작은 글자들이 터널 속 풍경처럼 지나가는 모양과 그 '촤라락' 하는 소리와 그때 나는 종이 냄새가 좋다. 기분 전환용으로 한 권씩 사기에 딱 적정한 가격이라 좋다. 서점에 가면 내가 스마트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 좋다. 그렇게 산 책을 가방에 넣어만 두다가 친구를 기다리던 카페 테이블에 그냥 올려놔도 친구와 그것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다. 읽지도 않은 책을 친구에게 추천할 때 꼭 읽어 봐야겠다고 말하는 친구의 얼굴이 좋다. 
나는 정말 책이 좋다. 책의 본질을 제외한 모든 면이 다 좋다.

- 40권에서 완결되는 소년 만화를 예로 들자면 처맞던 주인공이 각성하는 시기는 아무리 늦어도 10~13권이다. 즉, 당신이 주인공이라고 여기는 만화 속에서 27권인 현재까지 당신이 처맞고 있다면 이제는 내가 이 만화의 주인공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의심해 봐야 한다. 

 

- 나는 내가 1편을 보지 않았다는 사실에만 집중하느라 영화 자체를 전혀 감상할 수 없다. 셋째, 시리즈를 모두 본다고 해도, 그것은 정확히 개봉 순서대로여야 한다. 이것을 지키지 못한 적이 딱 한 번 있는데 그 영화는 시리즈 첫 편(실은 4편)이 1977년에 개봉하고 마지막 편(실은 3편)이 2005년에 개봉한 '스타 워즈'다. 참고로 나는 1987년생이고.  

- 위와 같은 이유로 나는 '해리 포터'를 엄청 감명 깊게 읽었음에도 여태 영화로는 단 한 편도 보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내 인생에서 해리 포터 영화 8편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여유는 찾아오지 않고 있다. 그 와중에 '신비한 동물사전'이 개봉해 버렸다. 상황이 많이 안 좋다고 생각한다. 

- 마블 유니버스에 기반을 둔 영화들은 그것들이 연작인지 모르고 몇 편 신나게 보았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그 영화들의 스토리가 한데 묶인다는 이야기를 들어 큰 상심에 빠져 있는 상태다. 등장하는 인물도 죄다 겹쳐서 내가 지금 어떤 히어로 영화를 몇 편까지 봤는지, 중간에 뭘 빠뜨렸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모든 것이 엉망이다. 그래서 개봉 순으로 처음부터 다시 다 본 다음, 후련한 마음으로 '인피니티 워'를 극장에서 볼 생각이었는데 바쁘게 살다 보니 어느새 '인피니티 워'는 이번 달에 개봉 예정이고 앞서 개봉한 마블 유니버스 시리즈는 총 18편이다. 도와줘요, 닥터 스트레인지! 


- 말하다 보니 알게 된 건데 나는 영화를 적게 보는 것치고는 영화 감상에 대한 철학이 분명한 게 아니라 분명한 영화 감상 철학 때문에 영화를 적게 보는 듯하다.

 

- 우리는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는 삶이 행복한 인생이라고 배운다. 하지만 살다 보면 싫어하는 걸 안 할 수 있는 게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과 가까워질 수 없는 건 가슴 아프지만, 가까워지기 싫은 사람과 가까워져야 하는 건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너의 눈 코 입 날 만지던 네 손길 작은 손톱까지 다 아프다는 이야기다. 

 

- 나는 결혼식보다는 장례식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구상하곤 한다. 결혼은 할지 안 할지 장담 못 해도 죽는 것만은 확실해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려면 역시 승부처는 결혼식보다는 장례식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 대부분은 멋진 결혼식을 어떻게 치를지 고민하지, 장례식 고민에까지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장례식 계획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내 계획이 그렇게 막 거창하지는 않다. 그냥 장례식장 한쪽 벽에 빔을 쏴서 내 사진들을 슬라이드 쇼로 보여 줄 생각이다. 물론 친한 친구에게 미리 부탁해 둬야겠지. 내 외장 하드 안에는 스무 살 때부터 연도별로 모아 놓은 사진들이 있다. 그리고 내 엽사만 모아 둔 폴더도 따로 하나 더 있다. 그 사진들을 모두 한 폴더에 넣어서 랜덤으로 슬라이드 쇼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음악은 어느 정도 추모에 어울릴 만한 것으로 틀 거다. 그걸 틀어 보면 아마 열 장 혹은 스무 장에 한 장 꼴로 엽사가 나올 것이다. 주로 눈을 뒤집고 있거나 콧구멍에 볼펜을 꽂은 채이거나 술에 취해 어디 자빠져 있는 사진들이다. 사람들은 편육과 시래깃국을 먹다가 피식피식 뿜을 것이다. 또 전체가 다 엽사가 아니기에 가능한 한 참아 보려고 노력할 거다. 하지만 고비를 넘길 만하면 다시 또 한 장씩 엽사가 나올 테고, 결국은 사람들은 슬퍼하지도, 아주 빵 터지지도 못하는 상태가 될 것이다. 

 

- 그러다가 여러 상에 떨어져 앉아 있던 사람들이 입을 모아 내 욕을 하겠지. 갈 때까지 아주 꼴값을 떠는구나 하면서. 그렇게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자연스럽게 말을 섞다 내 이야기를 나눠줬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내 중학교 친구들과 뮤지션 동료들이 동석하여 각자에게 나는 어떤 놈이었는지를 들어 본다든가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그들 모두가 알록달록한 크레파스와 사인펜으로 방명록을 작성한 뒤 관 뚜껑을 닫기 전에 그걸 내 품에 안겨 주었으면 좋겠다. 화장을 하더라도 그 방명록을 나와 같이 태워 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저승에 가서도 그 방명록을 읽느라 한동안은 외롭지 않을 듯하다. 
이 구상 어떤가? 나는 만족하고 있다. 아마도 꽤 인상적인 장례식이 될 것이다. 

 

- 남들에게 "재미없어"라는 말을 듣고 산다면 차라리 희망적이다. 당신이 많든 적든 재미있을 가능성을 가진, 재미를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구나"라는 말을 자주 듣고 산다면 당신은 태생적 노잼일 가능성이 크다. 
혹시나 이 말에 "그렇구나"라고 대꾸하면 재미있겠다며 자신의 위트에 뿌듯해한다면 그건 그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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