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기바야시 신 / 엔타 시호 / 김봄
원제 : ドクタ-.ホワイト
출판 : 영상출판미디어(영상노트)
출간 : 2019.03.08
가끔 과거의 내가 가지고 있던 '선택의 기준'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이 책의 어떤 점에 끌렸을까? 아마도 저자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은데...
저자는 <신의 물방울>, <소년탐정 김전일>, <사이코 메트러> 등의 스토리 작가였다. 모두 재미있게 읽었었기 때문에 소설로 만나보고 싶었던 것 같다.
소설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전 작품들의 긴 호흡과 만화 특유의 그림을 통한 표현과는 달리, 단권의 소설 속에 눌러담기에는 다소 무리한 전개가 아니었을까. 설정이 조금씩 현실을 벗어나도 위화감이 없었던 이전작들과는 달리 극히 현실적인 배경인 의학 소설이기 때문에 더 그런 점이 부각되는 것 같다. -김전일은 살인 사건 전문가, 에지는 초능력자다- 닥터 하우스에 영향을 받았던 게 아닐까 싶은 느낌.
이번에 실사 드라마화되며 후속 소설이 발표될 수도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더 찾아 읽지는 않을 것 같다.
- 마리아는 머리도 좋고 지식도 풍부하지만, 융통성이 없는 구석이 있다. 자기가 경험한 범주 안에서 만사를 판단하려고 해서 가끔 큰 실수를 저지른다. 그런 점은 중학생 시절부터 여전하다.
- "조금 전에 여동생은 채식주의자라 채소만 먹는다고 했었지요? 그런 식습관 때문에 비타민 B가 만성적으로 부족한 데다 헬리코박터균에 의한 위축위염이 악화하여 비타민 B12 흡수에 필요한 당단백질인 내인자가 위의 점막에서 분비되지 않게 되어 급속도로 결핍 증상이 나타난 거겠지요."
마리아가 깜짝 놀라 니시지마와 센도를 보았다. 두 사람도 허를 찔린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세 명의 의사들은 뱌쿠야의 가설을 이해한 모양이다. 묵묵히 듣고 있던 다카모리 원장도 당연히 그러했다.
"잠깐만 있어 봐. 비타민 B가 결핍되면 신경이 이상해지고, 환각이 보이기도 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마사키가 묻자, 뱌쿠야는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급성 연합성 척수변성증(subacute combined degeneration of spinal cord)이라고 해서 척수 후 기둥과 척수의 외측 기둥에 변성이 생기고, 손발에 힘이 빠지거나 저리고, 경성 마비가 발생합니다. 또 악성 빈혈이라고 불리는 증상을 동반한 말초신경, 시각과 미각의 이상 증상 외에도 우울증이나 정신 착란을 일으킬 때도 있어서 알츠하이머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위축 위염이 원인이라면 아시다시피 토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증상이 환자의 증상과 일치합니다."
- 뱌쿠야의 등 뒤에서 무릎에 손을 얹은 구부정한 자세로 그녀의 시선 높이의 정원을 보았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화초. 한가로이 노니는 몇 마리의 나비. 귀를 기울여 봤지만, 아까처럼 시내의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그렇구나. 기분이 좋네. 계속 이렇게 있고 싶은 기분도 알겠어. 그래도 이만 슬슬 방에 들어갈까? 바람이 차가워서 너무 오래 나와 있으면 감기 걸려."
말하다가 문뜩 떠올랐다. 아아, 그래서 '감기(風邪)' 라고 쓰는구나. 바람(風)이 가져오는 나쁜 기운(邪気)이라는 의미이리라.
- 바쿠야는 앵무새처럼 따라 했다. 전에도 있었다. 분명 뱌쿠야가 이곳이 어디냐고 물었고, 마리아가 병원이라고 대답했을 때였다. 그때도 마사키는 그녀가 '습득'했다고 느꼈다. 병원이라는 단어와 존재를 지식으로는 알고 있어도 실제로는 처음 보지 않았을까 생각되어서였다. 어쩌면 타인의 '분노'라는 감정을 눈앞에서 본 것이 처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녀는 습득했으리라. 인간을 가장 충격적으로 만드는 감정 중 하나를.
- "누구신가요? 지금 한창 회의 중인데 이렇게 불쑥 들어오시면 곤란합니다."
마리아는 비꼬듯이 말했다. 이 대응이 앞으로 자신을 불리하게 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납득할 수 없는 일에 물러서는 성질이 아니었다. 고집스러운 구석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도 상대가 누구든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리하게 업무를 떠안고, 철야도 불사하며 일하다 뇌경색으로 목숨을 잃었다.
- 물론 불편한 부분은 있지만, 절대 생활에 거슬리지는 않는다. 편리함이 중요하다면 굳이 작은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오랜 가구를 두는 의미가 없고, 애초에 오래된 집에 살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런 모순을 깨닫지 못하고 거금을 써가며 유럽에서 수입한 앤티크 가구를 최신 기능성 설비로 쾌적하게 개조한 낡은 집에 들여놓고 기뻐하는 그의 감성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 "1952년 돔 페리뇽입니다. 제가 와인을 참 좋아하거든요. 오래된 것만 마신답니다. 그 외에도 제 셀러에 올드 빈티지 와인이 많이 있으니 원하신다면 내드리지요."
마치 옛것이야말로 가치가 있다는 듯한 말투다. 마사키도 와인을 좋아하셨던 부모가 아껴둔 것을 어른이 된 이후로 가끔 마시며 즐기는데, 몇 병은 이미 산화로 맛이 변질되어 맛있다고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아예 못 마실 정도는 아니더라도 상큼한 과일 맛을 유지한 와인은 몇 병 없었다. 조금만 더 일찍 열었더라면 더 맛있게 즐길 수 있었을 와인도 적지 않았다. 정말 훌륭한 와인은 그렇게 쉽게 변질되지 않는다는 말을 와인 마니아에게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비록 와인을 좋아하긴 해도 마니아까지는 아니므로 숙성기간이 짧은 와인 향도 즐기고 싶었던 마사키는 자기 나름 와인을 새로 사 넣기도 했다.
- 물건의 가치는 특히나 기호품에 있어서 각인각색이라 딱히 이의는 없다. 하지만 오래된 가옥이나 앤티크 가구와 마찬가지로 옛것에서 특별한 가치를 찾고, 와인조차 올드 빈티지만 즐긴다는 사람이 손대지 않아도 뚜껑이 열리는 화장실을 쓰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다만 오늘은 이런 점들을 비판하려고 온 게 아니었다.
-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 한계까지 힘쓰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힘이 미치지 못했다. 미안하다.
어디에도 상처가 없어 보이는 어머니의 죽은 얼굴을 보면서 마사키는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 그렇게 화제를 돌린 후와는 분명 마카베가 무슨 짓을 했는지 예상했음이 틀림없다. 그래도 절묘하게 화제를 바꿔 대응하는 그의 모습에 가까운 시일 내에 원장이 사망하게 될 이 병원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려는 자신과 썩 괜찮은 콤비가 될 수 있는 상대라고 다시금 확인했다.
- 또 같은 반응이었다. 말하는 상대에게 모든 책임을 맡기겠다는 투다. 내용이 맞고 아니고를 떠나서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 그 입장으로 밀고 나가라. 그런 의도가 슬쩍 엿보였다. 하지만 그런 인물이기에 더욱 이쪽으로 포섭해야 할 의미가 있었다.
- "마취제라."
"네. 케타민에는 광견병 바이러스의 확산을 억제하고, 또 세포막단백질을 차단하여 손상된 뇌의 수용체의 활성을 억제함으로써 신경세포의 사멸을 막는 작용도 있어요. 제나의 샘플에서 광견병 감염이 확인되자, 윌로우바이 의사는 마취의와 뇌장애 전문의들을 모아 '구명 팀'을 결성하고, 제나를 일주일간 혼수상태로 만드는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제나는 살아났구나?"
마리아가 묻자, 바쿠야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나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백신 투여 없이 완전히 발병한 광견병에서 살아났어요."
"바쿠야, 그 밀워키 프로토콜을 재현할 수 있어?"
- 마사키는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들어 다시 한번 보았다.
'Rh null'
연필로 그렇게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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