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신화로 읽는 남성성 He', '신화로 읽는 여성성 She'를 읽고 다소 실망했었는데 이번 책은 무척 좋았다.
종교색이 다소 드러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와닿는 내용이 많다.
데미안을 읽은 이가 이 책을 읽으며 융의 이론과 헤세의 데미안이 많이 겹치게 느껴졌다고 말했는데 그게 통설인 듯 하다.
개론서라고 부르기에는 많이 가볍지만 얇고 쉽게 읽힌다는 점과
의외로 좋은 구절이 많다는 점, 그리고 요약이 흥미롭게 되었다는 점에서 한 번 읽어볼 만 하다고 생각한다.
단,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축약은 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신화 관련 두 권 역시 그런 축약과 지나친 재해석이 지루 + 거부감을 주었었다. 따라서 이 책이 융을 완벽하게 잘 이해한 저자의 가이드라고 보는 건 잘못된 일이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워밍업 정도로 생각하고 쭉 일독하는 정도가 적절할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느낀 건데,
책을 읽은 후의 글은 역시 꽂혀서 마구 써내려가는 게 제일 좋다.
별다른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데 억지로 쥐어짜 기록하는 건 별로인 것 같다.ㅋㅋ
바로 연이어 데미안을 읽으면 좋을텐데 나의 책은 누군가의 책장에 꽂혀 돌아오질 못하고 있다.... ㅠㅠ
다시 사긴 좀 그렇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야겠다.
좋은 밤이다.
[발췌]
# [옮긴이의 말] 성장한다는 말은 집단 문화가 수용하는 것과 수용하지 않는 것을 가려내어 전자를 습관화하도록 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사회가 수용하는 것은 자아가, 수용하지 않는 것은 그림자가 되는데 성장은 그림자 형성과 함께 필연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이다. 그림자란 한마디로 심리의 어두운 측명이다. 그것은 자아의 기준으로 볼 때, 우리 내면의 유쾌하지 않고, 수치스럽고,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들이다.
# [옮긴이의 말] 이 두려운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면 끝없이 타인이나 다른 그룹에 투사하게 된다. 인류역사의 비극적인 장은 모두 투사의 전시장이다. 남성은 여성에게, 백인은 흑인에게, 그리스도교도는 무슬림에게, 나치는 유대인에게 투사를 해왔고 그 결과는 끔찍한 파괴로 나타났다.
# 도마뱀 꼬리처럼 집요하게 우리들의 심리세계를 따라다니는,
이 알 수 없는 어두운 요소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현대인의 심리에서 이 어두운 요소의 역할은 무엇일까?
페르소나persona는 우리가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인 동시에 우리가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 하는 모습이다. 페르소나는 심리적인 옷이라 말할 수 있다.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바로 자신이 드러내고 싶은 이미지를 대변하듯,
페르소나는 진짜 자신과 주어진 환경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다.
자아ego는 진짜 본연의 자기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자신이자,
자기가 누구라고 인식하고 있는 자신이다.
이에 반해 그림자는 우리 자신의 일부분이지만
우리가 보려 하지 않거나 이해하는 데 실패한 부분이다.
# 인류는 천재적으로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이 과정에서 인류가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특질은 조화롭게 발휘되지만 위협적으로 비치는 특질은 걸러진다. 이런 과정을 겪지 않는 사람은 소위 말해 '원시적'으로 남아 있게 되는데, 문명화된 사회에 이들을 위한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온전하게 태어나지만 우리가 타고난 자연스러운 특질 중 어떤 부분은 살아 있도록 허용하고 또 어떤 부분은 계승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문명이다.
....
나는 이 분리작업이 어린이들에겐 너무 빨리 진행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너무 이른 나이에 이런 분리가 일어나면 어린 시절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문명화 과정을 견딜 만큼 강해질 때까지 에덴동산에 머물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힘이 어느 시점이면 길러지는가?'라는 의문이 뒤따르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개별차를 인정해야 한다.
# 그림자가 우리의 문화적인 삶과 균형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대표적인 의레는 가톨릭 미사다. 이 가톨릭 미사는 어두운 그림자로 가득하다. 근친상간, 배반, 거절, 고문, 죽음 그 이상의 것들도 있다. 이 어두운 면은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결국 이 모든 것들은 계시로 인도된다. 만일 의식수준이 아주 높은 소유자가 미사에 참석한다면 미사에 등장하는 끔찍한 면들로 인해 전율할 것이다.
# 그림자 투사하기 : 의식적으로 그림자 작업을 하지 않으면 그림자를 남에게 투사하게 된다. 이것은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한다는 뜻이다.
# 그림자를 전가하는 최악의 상태는 부모의 그림자를 자녀들에게 짊어지게 하는 것이다. 물론 누구나 성인으로서의 삶을 싲가하기 전에 부모의 그림자를 벗어던지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만일 부모가 자신들의 그림자를 어린 자녀에게 부가하는 경우, 자녀의 마음은 분리된다. 자아와 그림자의 전투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자녀들은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짊어지는 그림자보다 훨씬 더 큰 그림자를 성장기에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이 결혼을 하면 다시 자녀들에게 그림자를 전가하려 든다. 인간으 ㅣ죄가 삼대에 걸쳐 이어지는 것이다.
# 나는 종종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전가하는 그림자 투시를 내가 거부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하곤 한다. 이 질문의 답은 '할 수 있다'인데,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합리적으로 잘 다룰 수 있으면 가능하다. 대개 다른 사람이 그들의 그림자를 내게 전가하는 경우, 내 안의 그림자가 폭발하여 전투가 불가피해진다. 내 안의 그림자가 점화를 기다리는 석유통 같을 때 내 신경을 거스르는 사람이 등장하면 한판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누군가 자신의 그림자를 투사해오면 먼저 싸움에 대응하기 말고 '싸움꾼'이 그냥 지나치도록 내버려두라.
# 그림자 안에 숨겨놓은 황금 : 우리가 영웅에게 빠져드는 것은 내 안에서 숭고한 특질을 발견하는 것보다 멀리서 남을 추앙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 내 생각에 그림자는 두 가지 모습을 지닌다. 먼저 자아의 어두운 측면이다. 평상시 이 부분은 깊숙이 잘 감춰져 있다. 삶의 어려움에 직면하기 전까지 자아는 이 존재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자아 본위의 삶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우리으 ㅣ내면 깊숙이 억압된 부분이다. 그것이 아무리 사악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이 부분은 근원적으로 자기와 연결되어 있다.
# 나는 그가 전문분야의 삶에서는 완전히 지쳐있으니 새로운 생명력을 찾고자 한다면 지금까지 살아내지 못한 그림자와 접촉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이 사람은 아주 '바른생활인'으로만 살아왔기 때문에 그림자 부분과 접촉하기란 대단히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자기 자리를 박차고 나온 이 사람의 비자발적인 맹세는 좋은 출발점이 되었다. 그가 이런 충동을 올바르게 다루면, 새로운 창의력의 원천으로 인도되어 새 삶을 얻을 것이다. 반대로 그것을 어리석게 다룬다면 파멸로 이끌려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 사랑에 빠진다는 말은 자기 안의 가장 고상하고 무한한 가치가 있는 존재를 다른 누군가에게 투사하는 것을 뜻한다. 드물긴 하지만 이런 투사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 사랑에 빠지는 대상은 일 또는 사물이 될 수 있다. 누구든 치유작업과, 누구는 피카소의 작품과 사랑에 빠진다.
그렇지만 사랑에 빠진다는 의미는 대부분 자신이 지니고 있는 신의 이미지를 상대방에게서 발견할 때의 체험을 말한다.
이 체험은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더 어렵게 느껴진다.
우리가 상대에게서 보게 되는 신성은 상대방의 내면에 실제로 존재해야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우리 자신이 투사로부터 자유로웢기 전에는 상대방의 내면에 존재하는 신성을 볼 권리가 없다. 낭만적 사랑에 빠지는 경험은 일반적으로 사랑하는 느낌과는 다른 의미다. 사랑한다는 것은 훨씬 고요하고 인간적인 경험인 데 반해 사랑에 빠지는 것은 질풍노도와 같다. 낭만적 사랑에는 우리 존재보다 더 큰 무엇이 존재한다.
# 사랑에 빠진다는 심리적 의미 : 결혼은 대부분 투사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반드시 환상이 깨지는 시기를 겪는다. 이럴 때 배우자는 맨 처음 투사 때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 역설을 받아들이는 능력은 정신적 강인함의 척도이자 성숙의 확실한 표식이 된다.
#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능한 한 다양한 선택을 제공하도록 헌신해야 한다."
# 자아는 용기는 있되 윤리와 도덕성이 취약한 사람의 특징이다. 현재 우리시대에 걸맞게 영웅주의를 재정의하자면, 영웅이란 역설을 감당하는 능력의 소유자다.
# 막상 녹음을 하려고 하자 순간 당혹스러웠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시간 뒤 테이프가 다 돌았을 때는 화가 치밀었다.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 테이프로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내게는 아주 의미있는 일이 되었다. 스트레스가 많을 때 녹음을 하다 보면 나의 딜레마르 ㄹ극복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발견하게 되었다. 바른 언어를 적절히 사용하여 프로이트가 말하던 '이야기 치료'를 한 것이었는데 이 방식은 대단한 치유력을 지니고 있다.
사는 곳이 너무 멀어서 자주 만나지 못하는 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로버트, 너와 대화를 할 때보다 너의 테이프를 들을 때 네가 훨씬 지적으로 느겨져. 그 이유가 뭘까? 아니, 답하지 마. 내가 답을 알고 있으니까."
테이프에 대고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아무한테도 방해를 받지 않는다. 그 동안은 나의 감정과 연결될 수 있어서 내 생각을 충분히 소화할 여유가 생긴다.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자유로운 자기표현을 하도록 해주고 싶다면 녹음기를 선물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 고대 연금술사들은 이 과정을 이해했었다. 연금술에서는 4단계의 발전을 거쳐가야 한다. 먼저 니그레도 nigredo 단계에서 삶의 어두움과 우울을 경험한다. 알베도 albedo 단계에서는 모든 것이 빛나는 것을 보게 되고, 루베도 rubedo 단계에서 열정을 발견한다. 마침내 도달한 시트론 citrino 은 삶의 황금을 감사하는 곳이다. 결국 다채로운 만돌라가 만들어진다. 이것이 파바니스 pavanis 인데 이는 앞에 등장한 모든 색채를 포함하는 공작의 꼬리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색채의 향연인 파바니스에 도달할 때까지 이 여정을 멈춰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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