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017)

[황석영] 어둠의 자식들

일루젼 2012. 7. 29.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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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어서 구해 읽게 된 '어둠의 자식들'.

호기심으로 읽게 된 글이었지만 참 잘 읽었다 싶다. 

 

 

 

 

 

이 글은 황석영 씨가 지어낸 것이 아닌, '이동철'이라는 이의 삶을 정리해 엮은 글로 아마 지금도 곳곳에서는 사라지지 않은,

누군가에 의해서 이어지고 있을 생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특히 마지막 공병호 목사의 이야기들이 꽂혔다.

두렵고, 무서운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함께 울어라도 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국 나의 이런 이야기도 [인품]스런 소리에 지나지 않겠지만.

 

 

 

다리를 절게 태어나 기지촌에서 자라난 이동철은 어린 시절부터 그에게 익숙했던 대로 자라난다.

소매치기, 앵벌이, 폭력, 매춘, 사기, 인신매매는 그의 삶이었고

그 외의 세상은 그에게는 존재하더라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삶들 속에서 몇 번이고 구속되며 그 안에서 결국 세상이 어떤 것인가를 나름대로의 눈으로 보게 된 그는

없는 이들, 힘든 이들의 힘을 모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자신만의 신념을 갖게 된다.

 

새로이 노력을 통해 번 돈으로 서로 서로 상처주고 물고 뜯지 않고서도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던 그는

그 와중에 알게 된 공 목사와 교류하며 '은성학원'이라고 불리는 단체를 운영하며 노력하지만

그가 지내던 동네는 개발 붐에 휩쓸려 철거되고 만다.

 

 

글의 중후반까지 이어지는 그의 삶은 내게 충격까지는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선뜩선뜩한 것까지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의 이야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불과 한 세대 전의 이야기이다.

 

 

쉽게 구해 접할 수 있는 책은 아니라 추천이 다소 조심스럽지만, 꼭 한 번 읽어봤으면 싶은 글이었다.

 

 

 

 

[발췌]

 

# 수용자들은 신명도 나지 않아 억지 춘향이 격으로 오락회를 하다가 다시 방으로 비실비실 몰려 들어가곤 했다. 사실 반 이상이 숨을 쉬니까 살아있는 것이지 산송장들이었다. 인생의 패배자인 데다가 사회로부터 격리까지 당하여 오랫동안 수용되어 있는 동안에 모든 감정이 말라붙어 버린 것이다. 나는 난동을 부린 덕인지 전보다 조금 편해질 수가 있었다. 새로 임명된 통장이라는 자도 매우 친절하게 해주었고 먹을 것도 가끔 갖다 주곤 했다. 특별 부식이 나오는 금요일은 통장이 직접 한 그릇 퍼서 갖다 주는 것이었다.

 

 

# 나는 다시 형사 대기실로 가서 기다렸다. 가서 쭈그리고 앉았으니 벼라별 생각이 몰려왔다. 나는 아무리 건달 논다리로 꼴통이나 죽이면서 다니지만, 좋은 일이나 한번 하고 죽었으면 원이 없었다. 매일 성난 개같이 싸움질이나 하면서 잔뼈가 굵었으니 죽기 전에 사람 구실이나 한번 해보았으면 싶었다. 그러나 막연한 생각일 뿐 뭐가 사람 구실이고 어떻게 사는 게 사람답게 사는 길인지 나는 그때에는 알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을 돌이켜 보니까 사람다운 생각을 가지고 생각도 하며 산 게 아니라, 남이 살아 가니까 나도 살아 간다는 흐리멍텅한 삶이엉ㅆ다. 아루미 싸움질이나 하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저놈 버린 놈이라는 손가락질을 받는 녀석일지라도, 혼자 가만히 있을 때면 언제든 사람 구실을 하며 살고 싶다는 욕망은 다 갖고 잇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해골을 썩히며 궁리해봤자 사람답게 사는 것은 돈만 있으면, 환경만 좋으면 될 수 있다는 데서 한 걸음도 못 나갔다. 그래서 언제나 나는 오까네를 왕창 실려야 한다고 다짐하곤 했었다. 돈을 벌어서 우리 뭉치를 호강도 시켜주고 불쌍한 사람도 도와주고 억울한 사람도 도와주는 착한 일을 해야겠다는 것이다.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공부를 많이 해서 높은 자라에 앉아, 많은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으면서 인품 잡고 살고 싶었다. 그러나 배운 것도 없고 특별한 재간도 없이 아는 것이라곤 곤조통과 쌍소리뿐이니 돈을 벌 수도 없고, 어쩌다 돈푼이나 털어봤자 시다이 값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환경도 더욱 그 꼴이었다.

 

 

# 화숙이는 남부끄러워서 도무지 옷을 벗어 던질 용기가 없었지만 친구는 손을 잡아끌며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이었다. 탈의장에 가서 친구는 꽃무늬가 들어 있는 오렌지색 비키니 수영복을 빌렸고, 화숙이는 원피스 식으로 된 빨강색 수영복을 빌려 입었다. 처음에는 맨살을 드러낸 것이 쑥스럽고 모두들 자기만 쳐다보는 것 같아 웅크리고 걷던 화숙이도, 일단 물에 뛰어드니까 살 것만 같았다. 쥬브를 빌려서 친구와 번갈아 타며 물가를 맴돌던 화숙이는, 이제는 아예 밖으로 나와 옷 입을 생각을 잊어버렸다. 저녁녘이 되어서야 사람들은 하나둘씩 돌아가기 시작했다. 화숙이들은 제일 끝에 나온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탈의장으로 가보니까 천막은 텅 비어 있었고 웬 낯모를 남자 혼자 오리의자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 옷 주세요.]

남자는 못들은 척했다.

[옷 달라니까요.]

그제서야 남자가 그들을 흘끗 쳐다보았다.

[표 주쇼.]

[삼십 일 번인데 자기 가고에다 넣었어요.]

남자는 귀찮다는 듯이 뭐라고 투덜거리며 선반 쪽으로 가더니 프라스틱 바구니를 그들의 발 아래 내동댕이쳤다.

[씨팔 느이들 누굴 놀리는 거야?]

분명히 바구니에는 삼실 일이라는 표가 붙어 있었지만 겉옷은커녕 속옷도 그리고 신발마저 없었다.

[어머.... 난 몰라.]

[야, 똑똑히 놀아. 이것들 어디 와서 생짜 부릴려구 그러는 모양인데, 썅년들 느이들 상습이지?]

화숙이는 아예 입도 못 떼었고 친구가 또라지게 대들었다.

[여보세요, 이 수영복 댁에 거잖아요. 보면 알잖아요. 세상에 벌거벗구 와서 도둑질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야, 우리 수영복이 몇 벌인 줄 알아? 개 같은 년들.. 느이들이 여기서 빌리구 옷을 맡겼다면 표가 있을 게 아냐? 여기 탈의장이 자그마치 몇 집이라고 그래.]

[여보세요, 조금 아까 쥬브두 가져왔단 말에요. 산호 탈의장 아니냔 말예요. 댁에 말구 모자 쓴 사람이 있었다구요.]

 

..........

 

애초부터 유원지에서 날파리를 노리는 탕치기 식구들에게 걸려들었으니, 화숙이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 그 컴컴한 조명 아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밖으로 지나치는 양가집 처녀들은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들의 오빠나 남편이나 아버지가 그런 곳에서 미치광이 놀음을 하고 있는 거였다. 벽치기, 의자치기, 앉아치기나 맥주 입가심이라면 무슨 뜻인지 모를 것이다.

 

 

# 그러니까 우리는 좆나게 일해도 수고한 댓가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잘못하면 조상 것까지 물려받는 게 아닌가. 한마디로 제 몫은 찾아 먹지도 못하고 밥알이 한 알갱이라도 더 들어갔다간 걸리면 다 토해내는 것이다. 허가낸 도둑놈들은 법을 밥먹듯 어겨도 괜찮고, 송사리 도둑놈은 주머니 털어서 먼지만 나와도 법에 걸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나도 법죄 밥 안 먹고 양심대로 살아가려고 마음먹다가도 허가낸 도둑놈들 하는 짓을 보면 눈알이 뒤집어져서 범죄 밥을 먹게 되었던 터였다. 그렇다, 예를들어 생각해 볼까. 앵무새 한 대 사기 위해서 티상이 손님을 얼마나 받아야 할까. 숏타임, 화대비 천 원 잡구 계산해서 시다이값, 여물 놀리는 값, 꿀림비 다 빼구 최하 백 명의 놈씨와 빠구리를 쳐야 겨우 앵무새 한 대 장만하는 거지. 앵무새는 줄창 자기 것인 줄 알고 있지만 궁짜 끼면 곧 전당포로 간다. 나중에 찾을 돈이 모아지질 않으면 전당표마저 팔아 버린다. 몸을 팔아서 장만한 앵무새가 제 것이 되는 줄 알았지만 임시로 만져보기만 하구 다시 게워 놓는거다. 그러니까 이놈의 세상은 줬다가 빼앗았다가 마음대로 갖고 노는 것이다. 우리에게 앵무새를 사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눈깔이 뒤집혀지도록 황홀하게 사방에서 떠들고 노래하고 지껄이고 보여주는 장사꾼과, 돈을 꾸어 줍니다고 인심 쓰는 척하면서 유혹하는 전당포 주인과, 가장 생각해 주는 것처럼 기한 내에 돈이 없어서 물건을 못 찾은 분을 위해 편의를 봐드립니다, 하면서 표를 사들이는 놈들만 좋은 일 시키는 세상이다. 그럼 우리는 도대체 뭐란 말이냐. 육신은 만신창이로 툭하면 후리가리 때에 달려서 수용소다, 유치장이다, 내 집같이 드나들면서 갖은 수난을 다 겪지, 얻어터지지, 세상 사람들에게 꽈자 창녀라구 업신여김을 당하면서 따돌림당하지, 한마디로 좆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개비나 곰들에게 앵무새 내놓으라구 악장 칠 수 잇는가? 마개비나 곰들도 저희가 가진 앵무새를 빼앗기지 않응려고 발버둥치다가 신경질나면 우리 같은 놈들에게 화풀이라도 하며서 손도 벌리는 불쌍한 자들이다.

 

 

# 우리는 날만 새면 지루한 징역을 깨느라고 돌아가면서 사회에서 일 저지르던 얘기를 나누면서 희희덕거렸다. 그래서는 서로의 실력을 교환하고 견문을 넓혔던 것이다. 어째서 학교라고 그러는가는 징역을 두어 달만 살아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정말로 학교에서 삶에 대하여 여러 모로 배웠다. 우리가 감옥을 학교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삐리가 다니는 곳을 우리는 빵깐이라고 부를 용의가 있다. 도대체 거기서 가르쳐 주는 게 뭐란 말인가. 글자 한 자 더 배워서 자기보다 못한 놈을 여하히 억누르고 밟아서 출세하느냐 하는 방법만 가르쳐 주지 않는가. 글쎄 역설이라면 역설이겠지만, 나는 일단 두툼한 책을 끼고 몰려가는 대학생 애들을 보면 저것들은 이제 내 아우나 새끼들을 누르는 자가 되겟지 하는 생각을 한다. 또 여대생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저애들은 우리 새끼들 억누를 자들을 낳아 기르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 단속반들이 느닷없이 들이닥치면 그렇게 속절없이 당해야 하기 때문에 노점상들은 물건을 팔면서도 눈은 언제나 좌우 앞뒤를 살피고 달아날 때에는 죽어라 하고 뛰어야 하는 것이다. 단속반들 중에는 악착같이 쫓아와서 리어카를 빼앗고 물건을 길바닥에다 던져버리는 자도 있었다. 아무려나 경범인 것이다. 먹고 사는 권리는 하다못해 미물에게도 있는 것이다. 나는 여러가지로 생각했다.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 무력하게 쫓기고 눌리면서 밥을 먹어야만 할까. 그리고는 서로 싸우고 일러 바치고 해치면서 우리끼리만 허덕여야 되는 것일까. 나는 예전의 그 뒷골목에서 여전히 서로 의심하고 노리면서 대가리 달아주고, 조금이라도 힘이 있으면 약한 쪽을 억누르고 착취해 먹는 일이 날마다 벌어지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약한 것들끼리 서로 돕지 않으면 헤어나갈 수가 없는 게 아닌가.

 

 

# 능력대로 부지런하게 양심껏 사는 놈치고 잘사는 놈을 보았던가. 다 빼앗고 훌치고 못된 짓을 해야 잘사는 세상 아닌가. 떵떵거리며 폼 잡고 사는 놈들이 모두 양심껏 벌어서 사는 놈들인가 말이다. 상말로 예전에는 좆 빠지게 궁짜 끼어 살던 놈들이 글줄이나 배워서 좋은 자리는 다 차지해 놓고 저는 허가 내서 오까네를 긁으면서, 만만한 게 홍어좆이라고 우리 따위에게나 게으르니, 범죄꾼이니 하면서 이빨을 까대는 것이다. 내가 제일 듣기 싫은 말 중에 마음 잡으라는 소리가 그것이다. 도대체 누가 마음을 잡아야 된다는 건지 아리까리한 게 헛갈리는 것이다. 잘사는 놈들이나 권세 있는 놈들이 우리에게 마음잡으라고 똥 밟은 얘기를 하는 것은, 저희들에게 짹짹 소리하지 말고 순순히 말을 잘 들으라는 것이다. 노예로 마음을 잡으라는 거다.

 

 

# 병수씨는 우선 자신이 학생이므로 교육을 받는 입장이며 배우는 입장에서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과연 내 자신이 받는 교육과 배움이 올바른 것인가, 올바르게 배웠다는 자신을 갖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교사라고 으시대며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못 배워서 저렇게 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누구에게서 권리를 빼앗겼기 때문에 저렇게 가난하게 사는 걸까. 가난한 너희들도 빨리 배워서 부자가 되어 보라고 가르치는 것인가. 당신들이 가난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권리를 포기했기 때문에 가난하게 산다고 가르칠 것인가. 아니면 당신들이 의식이 없기 때문에 가난하게 되며 당신들이 의식을 갖지 못해서 사회 구조가 늘 이 모양이니, 교사인 우리 대신 당신들이 의식을 갖고 싸우라고 가르칠 것인가. 악마를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병수씨는 자신이 학교에서 악마 잡는 것을 배우고 있는지 아니면 악마 되는 것을 배우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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