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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로워리] 그린 나이트 The Green Knight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Watch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1. 8. 26.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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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나이트
˝녹색 기사의 목을 잘라 명예를 지켜라˝ 크리스마스 이브,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 앞에 나타난 녹색 기사, ˝가장 용맹한 자, 나의 목을 내리치면 명예와 재물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단, 1년 후 녹색 예배당에 찾아와 똑같이 자신의 도끼날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이 도전에 응하고마침내 1년 후, 5가지 고난의 관문을 거치는 여정을 시작하는데…전설이 될 새로운 모험, 너의 목에 명예를 걸어라!
평점
6.5 (2021.08.05 개봉)
감독
데이빗 로워리
출연
데브 파텔, 알리시아 비칸데르, 조엘 에저튼, 새리타 커드허리, 에린 켈리먼, 랄프 이네슨, 케이트 디키, 배리 케오간, 숀 해리스

 

 

 

 

정말 매력적인 영화다.

영화관에 간 게 거의 1년 반 만인 것 같은데, 이 영화는 꼭 영화관에서 보고 싶어서 내려가기 전에 관람했다.

 

<그린 나이트>는 14세기 후반 영문학 시 <가윈 경과 녹색 기사>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로, 감독 데이빗 로워리는 기본 줄거리와 디테일들을 충실하게 재현하면서도 자신만의 해석을 잘 섞어냈다. 어두운 색감과 분위기도 멋진데, 음향과 영상미 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하다.

 

 

뇌절 스포 해석이 넘쳐나므로,
스포 없이 영화를 보시고 싶으신 분들은 여기서 멈추실 것!

 

 

 

크리스마스 연회

 

영화는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으로 시작한다. 중세의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 당일부터 1월 6일까지 약 12일간의 축제 기간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시기 동안 궁정에서는 매일 미사를 드리고 음식과 여흥을 즐겼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가웨인(가윈, 가웬 등)은 아서(아더, 아수르, 아르투스 등) 왕의 조카이다.

 

다만 여기서 설정이 조금 갈라진다. 아서왕에게는 판본에 따라 여러 이부누이들이 존재한다. (어머니는 동일하다)

안나, 모르간, 노르케데트, 장기베, 일레인, 모르고즈 등.

 

12세기 제프리의 가계도에 따르면 아버지까지 동일한 누이 안나가 등장하며 그의 아들인 괄가누스가 가웨인이다.

같은 시기의 크레티앙 드 트루아의 가계도에 따르면 노르케데트의 아들 코뱅이 가웨인이다.

14세기 후반 말로리의 가계도에 따르면 모르고즈의 아들이 가웨인이다. 

 

즉 가웨인은 마녀로 유명한 아서의 이복누이 모건 르 페이(모간, 모르간)의 아들은 아니다.

역시 다양한 판본이 존재하지만 모건의 아들은 이웨인(오웨인, 이웬, 또 다른 이웨인도 존재)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가웨인의 어머니에게 신비스러운 마법력이 있음을 드러내는 장면을 다수 배치해 그녀가 모건 르 페이임을 암시한다. 

 

 

가웨인

 

크리스마스 이브를 유곽에서 보내는 가웨인은 여러 면에서 아직 어리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young이라고 불린다)

기사 작위도 받지 못했고, 업적을 쌓지도 못했으며, 그의 세계라고는 태어나고 자란 성 안이 전부이고, 예법과 화법도 능숙하지 못하다. 

<가윈 경과 녹색기사>나 <파르치팔>, 그리고 다른 아서왕을 다룬 이야기들에서 랜슬롯과 우열을 다투는 최고의 기사의 면모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그는 철저히 '인간적'이다.

 

어머니는 올해는 크리스마스 연회에 참석하지 않겠으니 '다녀와서 들려달라'라고 말하며 가웨인을 홀로 아서왕에게 보낸다.

그리고 다른 여인들과 함께 그린 나이트에게 일종의 초대장을 보내는 소환 의식을 치른다. 두 눈을 가리는 행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영역의 일임을, 혹은 그녀가 보아서는 안 되는 것들로부터 보호 받음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를 돕는 여인들의 머리 장식이나 의복에 녹색이 섞여있다는 것은 그녀들이 자연의 힘을 빌리고 있음을, 녹색 기사와 적대적이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나타낸다. 

 

가웨인의 어머니가 쓰는 편지가 후에 녹색 기사가 전달해 왕비가 읽은 편지와 동일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두 편지 모두 동일한 녹색 밀랍 봉인으로 봉해져 있으며 저절로 타서 사라진다. 

 

한편 연회장 상석에서 자신의 옆 자리-누이의 자리-가 빈 것을 바라보던 왕은 왕비와 시선을 교환한 뒤 낮은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가웨인을 옆 자리로 불러올린다. 아마도 가웨인의 어머니는 이를 예상하고 모든 것을 계획한 것이라 보인다. 지금까지 네 존재는 알았으나 너에 대해서는 잘 몰랐으며 이를 후회한다고 입을 연 왕은 가웨인에게 이제 친해져 보자며 너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왕의 옆자리가 빈 것만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아서왕에게는 수많은 동료가 있으나, 그의 자리를 이을 '후계'는 없는 것이다. '피를 이은 자'로서 왕이 가웨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일상사나 담소가 아니다. 나의 피를 이었음을 증명하는 기사로서의 노래다. 그러나 가웨인에게는 노래할 만한 것이 없다. 아직은.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 

그들 각각이 가지고 있는 무용담들은 어디에서도 빠지지 않을 쟁쟁한 것들이나, 왕은 새로운 것을 원한다. 아서를 이을 것을.

그리고 그 순간, 그린맨- 녹색 기사가 등장한다.

 

 

 

중세 로망스에 자주 등장하는 그린맨은 대개 우아하고 강하며, 신비로운 힘을 지닌 것으로 그려지는데 자연력 그 자체를 인물화 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손에 들고 있는 호랑가시나무는 그가 이 연회에 평화적인 의도를 가지고 왔음을 암시한다. 

 

녹색 기사가 제안하는 것은 목 베기 게임이다. 용감하게 나서는 기사는 자신에게 어떤 용감한 행동을 해도 좋으며 어떤 상처를 내어도 좋다. 그러나 그는 1년 뒤 크리스마스까지, 이곳에서 6일이 걸리는 녹색 예배당으로 자신을 찾아와 행한 대로 돌려받아야 한다는 조건이다. 

만인 앞에서 자신의 용기를 내보이기 위해서는 녹색 기사의 목을 날려야 하지만, 그것의 대가는 자신의 목이다.

 

 

 

고요한 가운데 홀로 나선 가웨인. 왕은 이것은 게임일 뿐이라고 말하며 조건을 이해했는지를 묻는다.

왕은 그에게 만용을 부릴 필요는 없음을 전하고 싶었으나, 어린 조카는 아서왕이 내어준 검을 받아 들고 취해버렸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 기사가 되고 싶은 욕망,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욕망.

 

 

 

싸움을 원하지 않는다는 듯 두 팔을 벌리고 목을 내밀어 가웨인의 검을 받아낸 녹색 기사는 잘린 자신의 머리를 주워 들고 첫 입을 연다.

"One year hence!"를 외치며 웃음소리를 남기고 사라진 기이한 존재와 남겨진 가웨인. 그는 검을 반환하며 얼떨떨해한다. 그는 그의 노래를 시작했으며 검을 가지고 싶다면 이 게임에서 승리해야 한다. 스스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말이다.

 

기사의 목이 떨어지고 남겨진 도끼에서 피가 번져나가는 장면에서는 흐릿하게 역오망성이 드러나며 이것이 악마적임을- 적어도 인간의 영역이 아님을 암시한다. 반면 남겨진 가웨인은 정방향의 오망성 끝에 서 있다. 오각별은 솔로몬의 인장이며 그리스도의 다섯 상처이자 성모의 다섯 기쁨이고, 또한 기사의 다섯 덕목이다. 처음과 끝이 없는 매듭은 크리스마스에 시작하여 크리스마스까지 이어지는 원형임을 암시하며, 동시에 이 기이한 사건이 마법적임- 즉 그의 어머니의 계획임을 암시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1년 뒤 - one year hence

 

 

1년 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불안에 떨며 술에 절어 지내는 그에게 왕이 찾아온다. 이제는 떠나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약속을 지킬 것을 말하며 이 이야기의 끝을 내고 '돌아와서 말해달라'고 요구한다. 기사는 모험을 떠나 영광과 함께 돌아와야 한다.

 

가웨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녹색 천으로 만든 보호의 허리띠를 둘러주며 '돌아왔을 때'를 강조해 말한다. 너는 무사히 돌아올 것이라고,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말하는 그녀는 돌려주어야 할 도끼를 룬 부적과 함께 감싸고, 아들이 입을 의복과 금색 오망성이 수놓아진 붉은 방패를 준비한다. 장면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놓쳤는데, 룬 조각은 두 글자 또는 세 글자였다. 아마도 알기즈(ᛉ)와 투리사즈(ᚦ), 혹은 아이와즈(ᛇ)의 조합이 아닐까 싶다. 

 

 

 

검을 챙겨가라며 달려오는 아이들을 모른 체하고 가는 가웨인은 이미 녹색 기사가 그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안다.

떠나기 전, 그는 돌아오면 자신을 그만의 레이디로 만들어 줄 수 있느냐는 에셀의 말에도 침묵만을 고수한다. 그것은 그가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해서보다는 그녀의 신분이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 뜻을 알아채고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도 그녀는 가웨인에게 방울을 건네준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비약의 우려가 있긴 하지만, 나는 그녀의 방울이 성 패트릭의 종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고급스럽게 세공된 종을 살 수는 없었던 그녀가 건네준 작은 종 - small bell- 은 악마를 쫓는 금속의 부적이며, 아일랜드의 초록 성인의 가호를 비는 성물이다. 녹색 기사가 선한 존재라면 그는 성인의 가호로 선한 행동을 할 것이고, 악한 존재라면 쫓겨 나가라는 것이다.

 

어머니와 연인의 마음이 담긴 탈리스만들을 들고 떠난 가웨인을 양 떼를 모는 노인이 스쳐 지나간다. 그의 길이 그리스도와는 멀어지는 이교의 길임을 암시하는 듯도 하고, 죽음을 품고 떠나는 그리스도적인 길임을 암시하는 듯도 하다. 첫 장면에서 '예수가 태어나셨어'라는 에셀의 말에 '그리고 돌아가실 것이라'라고 답했던 것이 떠오른다.

 

 

 

가웨인의 말 '그린고렛 gringolet'은 사실 흰 말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감독은 나귀를 연상시키는 작은 갈색 말을 선택했다.

투구도 없고, 왕으로부터의 하사품도 없다. 그는 아직 시험 중이다.

 

그가 기사의 다섯 미덕을 갖출 수 있을까?

너그러움과 동료애, 순결과 예의범절, 동정심을.

 

이제 그가 들어서는 교차로는 말 그대로 십자가의 모양(crossroad)이기도 하고, 모든 것들이 교차하는 선과 악의 마법적 공간이기도 하다. 

 

 

너그러움 또는 친절 Kindness

 

 

가웨인은 시체들로 가득한 공터에서 그에게 길을 알려준 소년에게 기사의 격에 걸맞는 감사를 표현하지 못한다. 

북쪽 개울을 따라가라고 알려준 다음 가웨인의 등 뒤에서 목 뒤를 긁으며 '점점 더 어려워질 테니까'라고 소년이 말하는 장면이나, 가웨인의 말과 도끼를 빼앗아 들고 '너의 모험을 끝내주겠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의 섬뜩함은 그가 단순한 도적 소년이 아니었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하나의 관문이고 시험이었다. 가웨인이 '녹색 예배당'은 어디냐고 물었을 때 소년은 '이미 들어와 있다'라고 답한다.

 

부서지는 성모 마리아의 그림은 가웨인의 방패 안쪽에 그려진 성화를 의미한다. 이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할 수 있는데, 가웨인의 인색함으로 가호-방패와 성화-가 부서졌음을 나타낼 수도 있고, 여기서부터는 가웨인이 나고 자란 영역이 아닌 마법적 영역임을 나타낼 수도 있다. 또한 유사한 의미로 그가 이미 녹색 기사의 땅, '그린 채플'에 들어와 있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가웨인이 묶여있던 자리에 그와 동일한 의복을 입은 해골을 보여주는 장면 역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가웨인이 이미 죽었고 그 뒤의 이야기들은 환상임을 암시한다.

뒤에서도 유사한 꿈속의 꿈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둘째, 그가 시험에서 실패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는 첫 관문을 실패했지만 어머니의 녹색 허리띠의 도움으로 두 번째 기회를 얻게 된다고 보았다. 

이 경우에는 상징적인 죽음일 수도 있고 실제적인 죽음일 수도 있다.

 

셋째, 그가 실제로 죽었으나 영계를 거쳐 부활하는 장면으로 해석했다.

이후 등장하는 거인들 -영혼, 망자들-의 이미지와 가웨인이 도끼를 십자가처럼 지고 산을 오르는 이미지, 호수에서의 하강과 상승의 이미지들을 겹쳐보았다.

 

결국, 신체적 죽음이건 정신적 죽음이건 여기서 이전의 가웨인은 죽는다.

그는 인간적인 모든 감정과 고통들을 겪으며 자신만의 길을 걷는 중인 것이다. 

 

 

 

여우 - 성 위니프레드

 

위니프레드(윈프레드) 성녀는 12세기 웨일스 귀족으로 수녀가 되기로 결심했으나 그 결정에 격분한 구혼자에게 목이 베였다고 한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그녀의 머리는 다시 결합되고 성녀는 부활했다. <가윈 경과 녹색 기사>에서 언급되는 '홀리헤드'를 이 성자의 설화로 유명한 '홀리웰 Holywell'이라고 보는 해석이 있는데, 영화는 그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적으로도 적절하고, 목이 베인다는 반복된 메시지를 주기에도 적합했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원전 마지막 사냥에 등장하는 여우를 성 위니프레드의 등장 직후에 보여준다. 나는 이 여우가 붉은 머리의 위니프레드라고 해석했다. 연못에서 그녀의 머리를 건져주면 대가로 무엇을 줄 수 있느냐고 묻는 가웨인에게 그녀는 '왜 그런 것을 묻느냐'라고 말한다. 그렇다. 기사는 대가를 바라고 선을 행하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물속으로 뛰어드는 가웨인은 하강이 아닌 상승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그의 얼굴 위로 비추이는 녹색과 적색의 빛은 후반 안주인의 대사와 이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탐욕과 열정과 인간성의 적색과 죽음과 재생과 자연의 녹색. 가웨인은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해골을 집어든다.

 

나는 그가 여기서 두 번째 시험은 통과했다고 본다. 그는 그녀를 존중했으며, 선의를 베풀었고,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가 머리를 건져 나오자 바로 밝아진 태양-가웨인의 상징-과 돌려받은 도끼도 같은 흐름으로 해석했다.

 

 

 

그는 봇짐을 메고 여우와 함께 여정을 떠나는 자이기도 하고, 기사가 되기 위한 입문의 길을 걷는 자이기도 하다.

그의 머리 위로 희뿌연 태양이 빛난다. Fool이 연상되지만, 사실 가웨인은 본디 태양의 기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태양은 사라진다. 그가 도끼를 어깨에 짊어지고 힘겹게 산을 오르는 장면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연상케 한다. 

힘겹게 예정된 죽음을 향해 도망치치 않고 걸어가는 그는, 처음의 가볍고 경박했던 가웨인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는 두려움에 휩싸여 집으로 달아나지 않고 자신을 이끄는 길 위를 계속 걷는다. 

 

<가윈 경과 녹색 기사>의 가웨인(가윈)은 이미 완성된 기사였다. 위풍당당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길을 떠나며, 여행길에서의 고난과 괴물들은 단칼에 베어버린다. 그는 칭송받는 궁정 예절과 매끄러운 화술까지 갖추었던 '기사'였지만, 영화 속의 가웨인에게 그런 모습은 전혀 없다. 그는 그저 고뇌하고 두려워하는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바로 단테의 <신곡> 속 거인들을 떠올렸는데, 그래서 이들이 망자의 영혼이라고 생각했다.

이미지도, 북쪽을 향한 여정도, 인간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신성한 노래를 부르기도 하니까.

 

반드시 하나의 해석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자연의 섭리라고 볼 수도 있겠고 그저 캐릭터라고 볼 수도 있겠다.

 

가웨인이 헤매는 길에는 '녹색'이 존재하지 않는다. 회색의 길이다. 그러나 회색이 곧 녹색이기도 했음을 떠올려보면 이 또한 의도한 설정이다. 전통 웨일스어에서는 'glas'가 파란색과 녹색, 그리고 회색을 모두 표현했고 게일어에서는 'glas'가 초록색과 회색을 의미했다. 기네비어 왕비를 포함한 중세 로망스의 미녀들이 회색 눈이 많은 것은 같은 이유로 '아름다운 눈'으로 묘사된 색이 파랗기도 하고 회색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윈 경과 녹색 기사>와 <널 위한 문화예술>에서 해당 내용들이 나온다)

 

푸른색의 안료가 극히 희귀했고 빛을 섬세하게 관찰했던 중세에는 하늘도 바다도 파랗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녹색과 파란색을 엄격히 구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도둑 소년도 '녹색 예배당'을 이끼가 껴서 푸르스름하긴 하다고 말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했을 때 굶주린 가웨인이 삼키는 것이 버섯이라는 점, 그래서 토하고 환각을 본다는 점은 흔한 설정이기도 하지만 '녹색 풀'을 먹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설정이기도 하다.

 

돌길에서 굴러 떨어지는 가웨인과 그의 옆으로 또르륵 흐르는 에셀의 방울, 그 옆의 여우는 가웨인을 보호해주는 여성성들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그 장면에서 방울을 잃었는가에 대해서는, 후에 안주인이 가웨인에게서 방울을 떼어가는 장면이 있으니 방울과 여우, 가웨인을 함께 담기 위한 그림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합당할 듯하다.

 

 

 

내가 가웨인과 함께하는 여우를 성 위니프레드라고 생각하는 다른 이유는 여우가 마법을 상징하는 녹색 허리띠와는 함께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웨인이 잘못을 저질러서이건, 혹은 신성한 영역에 들어서서이건, 그는 어머니가 주었던 허리띠를 잃었고 그 직후 자신이 행한 행동으로 여우를 만난다. 그리고 자신이 먹을 것을 나눠주고 함께 추위를 피하며 여우와 동행한다. 여우는 길을 알려주기도 하고, 거인의 손을 비껴가게 해주기도 한다. 여우는 그가 행한 미덕으로 얻은 동료이며, 성녀의 보답이고, 자연의 부름이다.

 

그러나 다시 안주인으로 상징되는 마법의 영역에 들어서면서부터 여우는 사라진다.

가웨인이 허리띠를 숨겼을 때 주인 버틸락은 자루에 담긴 여우를 흔들며 '선물로 주려고 했으나 자연으로 돌려주어야겠다'고 말한다. 가웨인은 그의 것이 될 수 있었던 미덕을 다시금 잘못된 선택으로 잃는 것이다. 

 

 

 

녹색 허리띠를 맨 채로 그린 나이트를 찾아가려 하는 가웨인에게 그대로 가면 죽음의 길이 될 뿐이라고 경고하는 여우.

그가 용기와 정직, 신뢰를 버리고 허리띠의 마법을 선택하자 여우는 그에게 허리띠를 버리라고 말한다. 

교활함의 상징이기도 한 여우에게 이런 역할을 주었다는 것은, 녹색 기사와 여우로 상징되는 대자연의 선을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영화 초반에서의 악마적인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앞서 가웨인과 겹쳐진 그리스도의 모습과, 마녀로 그려진 여성들의 보호/시험을 위한 마법 또한 적대적이지 않다.

녹색 허리띠 자체가 악이 아니라, 그것을 얻은 경로와 진실하지 못함이 악이 되는 것이다. 

 

가웨인의 어머니와 안주인, 쿠키 영상의 여자 아이로 이어지는 여성성과 그것이 상징하는 생산과 순환의 '자연스러움'.

여우와 녹색 기사, 그리고 다시 어머니로 이어지는 연결은 자연적 신비와 인간의 미덕이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또한 낯설 때는 두려움을 선사하는 무의식과 의식의 통합을 암시할 수도 있겠다.

 

이런 부분들은 그린맨-그린 나이트에서 이어서 말하기로 하고, 이제 버틸락의 집으로 가자.

 

 

버틸락 - Exchange

 

 

의식을 잃었던 가웨인이 눈을 뜨자, 그는 호사로운 침대에서 알몸으로 깨어난다.

이 장면에서 목걸이가 있었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데, 내 기억에는 없었던 것 같다. 

버틸락의 공간에 들어오게 된 가웨인은 모든 것이 무장해제된 완전한 자연으로서의 존재가 되었음을 상징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버틸락의 아내, 안주인은 그의 연인이었던 에셀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동일 배우로, 1인 2 역이다.)

그녀는 고급스러운 푸른 옷을 입고 있는데 당시에 '이집션 블루' 등의 푸른 안료는 매우 희귀했으며, 합성염료가 나오기 전 청금석(라피스라줄리)으로 개발된 '울트라마린'은 엄청난 고가였다. 그런 점들을 고려하고 다시 안주인의 의상을 살펴보자. 푸른 드레스는 그녀가 매우 부유하고 높은 지위를 가진 여성임을 상징한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14세기에는 아직 푸른색 Blue과 녹색 Green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던 시기라는 점이다. 중세까지도 녹색과 파란색은 대부분 같은 광석에서 색을 추출했고, 선명한 녹색 안료는 극소수의 지방에서나 존재했다. 현재까지도 이를 구분하지 않는 언어들도 있으며, 중세 그리스에서는 바다를 파란색이 아닌 녹색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즉 안주인의 파란 의상은 녹색 기사의 초록과 연결된다.

 

이슬람 외 여러 이유로 성화에서는 녹색은 사용이 금지된 색이었고, 그래서 마법과 신비, 이교를 상징하기도 했다. -시기는 다르지만 압생트의 이미지를 연상해보라- 녹색은 자연에서는 가장 풍부한 색이면서 일상 물품들에서는 매우 비싸고 희귀한 색이었다. 금성, 봄과 풍요, 생산의 색이기도 했고 죽음과 부패, 마법과 질병의 색이기도 했다. 이후 발명된 합성 녹색 안료는 비소를 포함하고 있어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갔으므로, 녹색이 가지고 있던 죽음의 이미지는 강해졌다. 

 

안주인의 대사를 통해 표현되는 적색과 녹색에 대한 설명들은 감독 스스로 이런 색의 상징들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각으로 뜯어보면 <그린 나이트>에는 유명한 덕후 감독인 데이빗 로워리가 숨겨둔 것들이 엄청나다.

 

 

 

원작에서 등장하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과 늙은 여인의 대비가 영화에서는 이 장면으로 표현되었다.

노인은 눈을 가리고 등장함으로써 가웨인의 어머니임을 암시하며 동시에 그녀가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없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식탁 장면에서 그녀 앞에 식기가 제대로 놓여있었는지를 확인하지 못했는데, 가웨인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이 그녀와 상호작용하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으므로, 그녀가 가웨인에게만 보이는 인물일 가능성도 있다. 노인은 안주인이 허리띠로 유혹하기 전날과 그 직후 가웨인의 앞에 나타나 어머니와 안주인의 연결과 허리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한다.

 

 

안주인이 가웨인에게 선물이라며 건넨 책은 심장 모양의, 14세기 한창 유행하던 일종의 사랑의 책이다. 

이 장면 이전에 등장하던 책 속의 도형들은 비교- 마법적인 문헌으로 보이는데, '이 책들을 모두 읽었느냐'는 가웨인의 질문에 그녀는 '모두 읽었다'라고 답한다. 자신이 필사한 것도 있다는 대사, '자신의 방'이라고 칭하는 대사들을 함께 생각해보면 이 공간은 공동의 서재가 아닌 그녀의 방이다. 읽고 쓸 줄 알고, 필사까지 하는 여인은- 그리고 마법과 위치 크래프트를 언급하는 여인은- 마법력을 지닌 여인이다.  

 

그녀가 그려주는 초상화가 매우 단 시간에 완성됨을 주목하자. 영화 초반에 가웨인을 모델로 그리는 미화된 초상화는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는 이 집 안에서의 시간의 흐름이 현실적이지 않음을 의미하거나, 혹은 안주인이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의미한다고 본다. 렌즈를 통해 확대해서 보는 기법은 14세기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거꾸로 그려진 자신의 모습을 보며 기묘하다고 말하는 가웨인. 

초상 속의 그는 물속에 잠긴 듯한, 괴로운 듯도 하고 두려운 듯도 한 표정이다. 거꾸로 매달린 남자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목에 걸린 방울을 가리켜 사랑의 물건이냐고 묻는 여주인의 질문에 '아니'라고 답하는 가웨인. 

그 대답에 그녀는 방울을 뜯어 가져 간다. 에셀의 가호가 사라진 것이다. 가웨인은 그 대답만으로 유혹에 넘어간 것이기도 하며, 동시에 에셀과의 관계가 '진정한 사랑'이 아님을 인정함으로써 기사로서의 미덕을 잃은 것이기도 하다.

 

 

구글 이미지

 

그 다음날, 연인 에셀의 얼굴을 한 그녀가 가웨인을 유혹한다.

진정한 사랑, 순결을 시험받는 것이며 동시에 주인에 대한 예의를 시험받는 것이기도 하다. 

각자가 얻은 것들을 손익을 따지지 말고 교환하자는 주인의 제안은 '등가교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미 손님으로 머물고 있는 가웨인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주인으로부터 나오는 것들이다.

그의 것이 아닌 것을 취할 것인가, 그리고 취한 것을 솔직히 말하고 기꺼이 주인에게 돌려줄 것인가.

이는 <가윈 경과 녹색 기사>에도 등장하는 교환 게임이다. 

 

종교적인 의미로 본다면 신으로부터 주어진 생명과 삶의 모든 것들을 다시 신에게 기꺼이 바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기도 하고, 인간이 자연에게서 무상으로 취한 것들을 제대로 돌려주고 순환시킬 것인가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자신의 것이 아닌 외부로부터 받은 것을 때가 되면 돌려준다는 것은 인간의 일생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인간은 알몸으로 와서 모든 것을 빌려쓰고 돌아간다. 가웨인과 녹색 기사의 목 베기 게임 역시 1년 동안 대가를 유예하고 명예와 명성을 누린다는 점에서 같은 것을 암시한다. 주인에게서 얻은 것을 기꺼운 마음으로 돌려주면 주인이 사냥해온 선물까지 받는다는 호혜는 종교적 시각에서 바람직하게 보는 삶이다. 

 

 

 

원작에서처럼 저속하지 않은 호의와 우정, 예의의 키스만을 주고받았다면 좋았겠지만 영화가 그려내는 가웨인은 언제나 인간적이다. 그는 초월적인 영웅도, 현명한 현자도 아니다. 안주인은 '어떤 존재로부터도 보호해준다'는 녹색 허리띠를 보여주며 가지고 싶다면 풀러 가라고 말한다.

 

그녀가 허리띠를 '자신이 만들었다'라고 말했다는 점을 주목하자. 나는 안주인이 가웨인의 어머니일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자연력 또는 마력을 이용할 수 있는, 여성적 힘과 자연적 힘을 다룰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영화는 두 사람 모두 마녀임을 암시하는데,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가웨인을 내밀하게 내조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안주인은 눈 가린 여인과 동석한다는 점에서 불가능한 해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볼 경우 녹색 기사는 가웨인의 신성한 자아보다는 아더왕-그의 명예-을 나타내게 된다. 가웨인이 무너뜨리고 넘어서야 할 존재이며, 그를 인정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존재이고 그의 어머니와 연결된 '이미 알고 있는 인물'이 되기 때문이다. 

 

허리띠를 얻은 가웨인은 부랴부랴 도망치듯 버틸락의 집을 떠난다. 숲에서 마주친 버틸락이 집에서 얻은 것이 있는지 질문하지만 그는 허리띠의 존재를 숨긴다. 안주인과의 키스만을 되돌려준 채 달아나려는 그의 앞에서 여우를 풀어주는 주인. 그는 다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바른 대답'을 요구하지만 가웨인은 정직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녹색 예배당 Green chapel

 

 

 

막아서는 여우를 뿌리치고 도착한 켈틱 십자가의 '그린 채플'.

이 장면은 전형적인 성화의 구도를 보여준다. 초반부에 악마적 인물로 묘사되었던 녹색의 기사는 고요하고 평화롭다. 일견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린 나이트는 가웨인의 거룩한 본성이며 아더 왕이기도 하다. 그는 가웨인에게 죽음 앞에서의 진정성과 용기, 신뢰를 요구한다. 

자신이 남을 위하여 기꺼이 목을 내어놓았으므로, 같은 것을 돌려받기를 원하는 그는 예수의 모습이기도 하고 대자연의 순리이기도 하다. 

 

매해 싹이 트고 푸르르게 자라났다가 인간들을 먹여 살리고 겸허히 겨울을 맞이하는 신록. 

그리고 그를 통해 생을 이어간 자들은 다시금 죽음을 통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낳고 다시 죽여 품는 여성성, 이 신비를 중세에는 '마녀'의 이미지로 분리시켰다. 

그 순환을 거부한 채 달아나는 가웨인의 모습은 자연스러운 죽음을 두려워하며 거부하는 모습이기도 하고, 자연으로부터의 착취만을 원하는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는 주황색으로 봤는데, 스틸샷을 보니 노란빛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다. 원작에서는 태양의 황금빛으로 묘사된다.

 

결국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친 가웨인의 앞에 잃어버렸던 말 '그린고랫'이 나타난다.

이 부분부터는 <가윈 경과 녹색 기사>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내용들이다. 

 

앞서 녹색 예배당에서의 목 베기를 자연과의 화해라고 해석한다면 잃어버렸던 말의 재등장은 실로 의미심장하다.

이는 여우와 함께 걸었던 자연과의 동행이 아닌, 안장과 고삐를 통해 자연적 본성을 억누르고 길들인 지배의 길이다. 가웨인이 떠나왔던 초반 모습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고도 보인다. 

 

잃어버렸던 도끼와 허리띠, 말의 순차적 회수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바라볼 경우 목을 잃은 소녀와의 만남은 의미가 달라진다. 그 장면에서도 가웨인은 대가를 요구하는 실수를 저질렀기에 도둑 소년이 그에게서 가져가 준 시험들이 차례로 그의 죄악이 되어 '복구'된다고 보아야 한다.

 

초췌하고 두려움에 가득 찬 모습으로 도망쳐 돌아온 가웨인.

그의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몸을 닦아준다.

그러나 그녀의 슬픈 듯한 표정을 보면 이것이 그녀가 바란 결말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서왕과 관련된 다른 저작들에서는 가웨인보다 란슬롯이 더 주목받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가웨인은 아서 왕의 적통 후계자다. 

돌아온 가웨인은 죽음 직전의 노쇠한 왕에게서 기사 작위를 수여받고, 그의 왕위까지 물려받는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인 듯 도망쳐 돌아오자마자 에셀과 뜨거운 시간을 보냈었던 그는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얻게 된다. 그러나 병사들을 보내 울부짖는 에셀을 뒤로하고 아들만을 데려오는 가웨인. 그는 '왕국'을 위해 보다 높은 신분의 여성과 성스러운 결혼을 치러야 한다. 

 

 

 

이 장면에서 가웨인의 어머니가 안고 있는 아이는 여자 아이의 옷을 입은 것으로 보이는데, 중세 영국에서 크로스 드레싱은 극장에서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이후 장면에서 어린 아들이 전장을 축소해둔 지도를 건드리는 장면이 등장하므로 아들로 보는 것이 맞다고 본다.

 

가웨인의 옆에 선 교황은 그의 대관식에서 왕관을 씌워준 인물이다. 그리고 그 반대쪽에 선 인물은 아서왕 대부터 등장했으며 가웨인이 아이를 빼앗아오는 장면에서 의견을 표한 바 있는 인물로 멀린을 암시한다. 희고 검은 두 인물은 두 기둥을 연상시킨다. 

 

 

 

엘리자베스 여왕을 연상시키는 착장의 새신부가 등장한다.

<가윈 경과 녹색 기사>는 1400년대이므로 시기가 정확하게 맞지는 않지만, 그녀는 잉글랜드-아일랜드-스코틀랜드의 분열과 결합을 표현하는 듯도 하다. 왕비의 화장과 그녀의 수행원들로 표현된 흰색과 푸른색은 고귀한 색이기도 하지만 스코틀랜드 국기의 색이기도 하다. 그녀의 붉은 머리와 입술과 함께 보면 세 나라의 국기를 한 번에 표현한 영국의 국기 - 유니언잭이 연상된다.

또한 이 푸른색 역시 -앞서 말했듯이- 녹색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가웨인은 혼례 후에도 녹색 허리띠만은 포기하지 않는다. 허리띠와 침상, 누워있는 신부의 이미지는 어쩔 수 없이 군터와 힘의 근원이며 부정의 증거인 마법의 허리띠를 연상하게 한다.

 

 

새로운 퀸과 그들의 아이와 함께하는 가웨인의 왕좌 뒤로 그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그것은 안주인이 그려주었던 초상화와 똑같지만, 이번에는 똑바로 걸려있다. 이는 이것들이 구운몽처럼 가웨인의 백일몽임을 암시하기도 하고, 가지 않았을 길- 역전된 반대의 길을 보여줌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어지는 전쟁 중 가웨인은 장자를 잃고 만다. 비통함에 잠겨 주인 잃은 관을 품에 안고 귀환하는 왕은 환대받지 못한다. 

어두운 표정의 군중 속에서 가웨인은 에셀을 발견한다. 그녀의 표정에서 죽은 아들이 그녀와의 자식임을 알 수 있다.

 

이후 몰려오는 적군들과 공성전으로 인해 부서지는 성, 차례로 곁을 떠나는 여왕과 아이, 어머니. 

홀로 남은 가웨인은 스스로 허리띠를 풀고, 허리띠가 그의 몸에서 떨어지는 순간 가웨인의 목도 바닥을 구른다. 

 

도끼를 메고 돌산을 오르던 가웨인에게,

장자를 잃고 밀려오는 거센 폭동에 결국은 자신의 뜻을 꺾는 파라오를 겹쳐보는 것은 무리한 해석일까?

 

 

녹색 기사 The Green Knight

 

번쩍 눈을 뜨자 장면은 다시 그린맨의 도끼 아래로 돌아온다. 

가웨인은 내리치는 도끼날을 잠시 멈춘 뒤, 스스로 허리띠를 풀고 의연하게 준비가 되었다고 말한다. 

숙여진 그의 목 위로 미소를 짓는 듯 조용한 녹색 기사의 대사가 내려앉는다. 

 

"Well done, my knight.

이제 내가 너의 목을 자르겠다."

 

이는 정해진 결말이기도 하고, 과거의 너는 죽었으므로 세례를 받아 새롭게 부활하리라는 약속이기도 하다. 

혹은 바른 선택을 한 통합자에게 제시하는 합일의 제안이기도 하다. 

 

세 번의 부인 끝에서도 회개한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가웨인은 이제 기사가 되었다.

 

쿠키 영상에서 왕관을 가지고 놀고 있는 여자 아이는 '헛된 욕망'을 순수함으로 다루고 있는 상징일 수도 있고, 존재했을 수도 있었던-어쩌면 완전히 꿈이 아니었던- 가웨인과 여왕 사이의 어린 딸일 수도 있으며, 남성으로 상징되는 가웨인과 아서, 전쟁 등의 종말과 여성과 마녀로 상징되는 자연적 본성, 통합, 조화의 탄생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결론

 

헛소리도 이렇게 길게 적으려면 나름의 정성과 시간이 든다. 

하고 싶었던 소리들을 다 토했는지 어떤지 모르겠다.

 

<캔터베리 이야기> 외 중세 영문학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가윈 경과 녹색 기사>를 읽기 시작했고, 

이렇게 저렇게 손에 닿는 대로 읽다 보니 <널 위한 문화예술>에서 색채에 대해, <세계의 기호와 상징 사전>에서 룬과 십자가 및 기타 상징들에 대해 읽게 되었다. 그리고 우연찮게 <가윈 경과 녹색 기사>를 원작으로 한 <그린 나이트>가 개봉했음을 알게 되어 영화를 보고 와서 끄적이고 있다. 조각들이 이어지는 순간은 항상 놀랍고 두근두근거린다.

 

잠을 포기하고 관람했더니 중간 중간 놓친 장면들도 많고, 잘못 기억하는 내용들도 있을 것이다.

자의적인 해석을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이 계시다면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좋은 영화를 보고 설레고 행복한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어 했음만을 보아주셨으면 한다.

물론 잘못된 부분의 지적과 제보는 항상 감사하다.

 

이제 조금 남겨둔 <가윈 경과 녹색 기사>를 마저 읽으면 좋은 하루의 마무리가 될 것 같다. 

 

항상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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