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정식 제공될 때까지 기다리려 했었는데, 동명의 원작을 다 읽었더니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어 아마존 미국 계정의 힘을 빌렸다. 현재 <라스트 듀얼>은 디즈니 플러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애플티비, 유튜브 영화 등에서 서비스 중이지만 한국에서는 정식 공개가 되지 않은 상태다. (우리에겐 미국 계정이 있다)
영화는 시간 순으로 진행되지 않으며,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각 부는 이 사건의 핵심 인물 세 사람 각각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원작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평도 있고, 그 이상으로 잘 구현했다는 평도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 내 개인적으로는 일부 각색되거나 추가된 설정들이 있지만 원작과 영화는 한 쌍의 페어라고 느꼈다. 르그리의 문장이 푸른 바탕의 은빛 뱀으로 바뀐 점, 마르그리트의 회상에서 암말이 가지는 상징성과 추가된 장면들, 전투 과정과 갑주의 각색 등은 심각한 변경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감독은 원제에 등장한 설명이나 주요한 상황을 최대한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배열해 녹여냈다. 실제 장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는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표현했는데, 영화를 관람한 관객 중 특정 대사가 불편했던 분들께 드릴 수 있는 말씀은 '그것이 실화'이며 감독의 의도가 들어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리들리 스콧은 이전작들을 생각해볼 때 -내가 느끼기에- 이 작품에서는 놀라울 만큼 뒤로 물러섰다. 나는 이 방식이 그가 이 사건에 대해 취한 최대의 존중법이라고 느꼈다.
원작은 사료들에 기반하여 하나의 시선 속에 일관된 흐름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는 다르다. 같은 사실이 '어떻게' 보일 수 있는지에 집중하였으며, 그것은 이 사건의 '본질'과도 같았다. "사건의 진상을 정말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언제나 절대적이고 틀림이 없는 단 하나의 사실이 존재할 것이라 믿는다. 그런 시각을 원한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이 이 사건의 진정한 본질이라는 것을 감독은 치밀하게 준비된 영상으로 우리에게 전한다. 똑같은 상황을 보고 겪고도 다른 이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명백하게 눈 앞에 들이대는 형태로.
<라쇼몽>과도 비교되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라스트 듀얼>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영상미나 영화의 완성도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다. 세 사람에게 삶은 똑같은 강도의 현실감을 가진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긋나는 기억에 대한 소설을 예전에 읽었었는데, 기록 어플이 지워지면서 책 제목이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비슷한 설정들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라쇼몽>, <루머의 루머의 루머> 등이 떠오른다.)
올해 본 영화가 손에 꼽힌다.
다시 본 것들을 제외하면 <그린나이트>와 <라스트 듀얼> 정도인데, 둘 모두 정말 만족스러웠다.
개인적으로는 원작을 읽고 보는 편이 훨씬 좋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의 영역이라 이 부분은 조심스럽다.
영화 자체는 꼭 한 번 보시길 추천한다.
이후 이어지는 리뷰는 스포가 다수 포함되어 있으므로,
영화를 보실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여기에서 백스텝하시길 부탁드립니다.
1부 : 카루주
기억 속의 자신은 대개 자신의 이상을 담는다. 내 기억속에서는 내 모든 행동과 발언에 '나의 의도'가 함께 녹아있으므로. 미화는 필연적이다.
카루주는 마르그리트를 사랑했고, 그녀의 지참금에 관한 설전에서도 매우 신사적이었으며 그녀는 그의 행동을 자신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언제나 그녀의 편이었고, 아내의 말을 믿었으며, 자신의 생명과 명예를 걸고 그녀의 뜻을 이루어 주기 위해 결투장에 섰다.
그것이 그의 진실이다.
2부 : 르그리
같은 장면에 대한 다른 기억이 시작된다. 리들리 스콧은 그것들을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르그리의 의도 속에서 그는 언제나 친우 카루주를 존중했고, 그의 걍팍함을 감싸안았으며, 마르그리트에게 진심으로 애정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의 화답을 받았다고 느꼈기에 '강간'은 없었다.
두 사람이 장 크리스틴에게 초대받은 연회에서 조우했을 때 '누가 먼저' 상대를 불렀는지, '누가 왕의 신하로서' 화해의 말을 했는지에 대해 각자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보라. 눈치챘는가? 1부에서 카루즈는 자신이 먼저 르그리를 부른 후 화해의 말을 건냈다고, 그리고 르그리는 2부에서 자신이 그렇게 했다고 기억하고 있다. 같은 대사를 누가 하는지를 떠올려보라.
그의 시선 속의 마르그리트는 카루주의 시선 속의 그녀와는 사뭇 다르다. 그렇다면, 그녀의 기억은 어떨까?
3부 : 마르그리트
1부에서 해맑게 달려와 초대에 응하자고 말하던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는가? 마르그리트의 기억 속에는 그에 앞선 종마와 카루주의 대응만이 남아있다. 그녀에게 이 결혼은 처음부터 거래의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카루주의 기억에서처럼 존중과 사랑이 가득한 결혼생활은 아니었다.
리들리 스콧은 각 인물들의 장면에서 '그들이 아는 것'만을 보여준다. 따라서 공통된 서사를 가진 장면은 각자의 기억으로 드러나지만, 그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것은 '나타날 수 없다'. 재정 걱정만을 늘어놓던 카루주가 영지 관리를 어떻게 해왔는지, 영토의 농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는 그녀의 시선 속에서만 드러난다. 그녀는 풍요로운 땅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으며, 많은 이들이 그 땅을 탐냈었지만 이런 장면들을 통해 영화는 그것은 gift가 아님을 암시한다. 그 풍요는 그녀가 만들어낸 것이다.
신발이 벗겨지고, 괴로움을 고백하는 모든 순간들은 한 문장으로 기록해놓으면 같은 사실이 되고 만다. 그 인물의 시선을 통해 보았을 때만 드러나는 두려움, 압박감, 공포심 등은 상대의 시각에서는 담을 수 없다. 그렇기에 각자는 다른 기억들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그것들 중에 과연 '진실'은 존재하는가?
세 사람이 각자 기억하는 연회의 입장 장면이 각 캐릭터를 가장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장면이라 생각한다.
카루주가 기억하는 당시 르그리와 귀부인의 대화는 굉장히 공적인 것이었고,
르그리가 기억하는 당시 대화는 유혹과 거절의 플러팅이었으며,
마르그리트가 기억하는 당시 대화는 신사와 숙녀의 대화였다.
사람은 자신이 믿는대로 세상을 보고, 제각기 같은 시공간 속에서 다른 세상을 살아간다.
이제 이 사건을 결투에서 한 발 멀어져서 다시 살펴보자. 고통을 겪은 것은 그녀이지만 그것을 사실대로 밝히기 위해서는 남편의 허락이 필요하다. 진실을 진실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치욕스러운 공개 재판을 겪어야 하고, 수근거림과 추문을 버텨야한다. 그것은 그녀의 죄가 아님에도, 그저 자신의 진실을 주장하기 위해 생명을 걸어야만 한다.
나는 원작에서는 다뤄지지 않은 퇴장하는 마르그리트의 속내가 가장 인상깊었다. 원체 탄탄한 '실화'의 구조 속에, 감독에게 허락된 얼마되지 않는 '창작'의 장면. 그녀의 고통은 그녀의 생명을 건 도박을 통해 남편의 승리와 영광이 되었다. 일어난 범죄를 '인정'해달라고 청했을 뿐인데, 그것은 그녀의 손을 멀리 벗어나 두 남자의 힘겨룸에 '인정'의 여부가 달리게 되었다. 마르그리트는 자신의 일에서 철저하게 소외당했다. 결말에서조차도. 자신의 말을 믿어달라는 청의 결과는 그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그녀가 느끼는 아득함의 뿌리라고 생각한다.
| [데이빗 로워리] 그린 나이트 The Green Knight (0) | 2021.0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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