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교고쿠 나쓰히코 / 금정
출판 : 비채
출간 : 2011.07.20
연(緣)이란 연(煙)과 같아서 덧없고 허망해서 아름다운 것이다.
닿았기에 끊어지고, 끊어졌기에 이어진다.
<속 항설백물어>는 <항설백물어>와 이어지는 이야기이지만, 전편을 읽지 않았더라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을 듯하다. 물론 마타이치와 오긴, 모모스케의 연을 알고 있다면 보다 수월하게 읽히겠으나 그들의 얽힘은 전편에서와 같이 은은하게 암중하여 겉으로 쉬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 이어지는 듯하면서도 독립적이다. 지난 일들을 단단히 굳힌 지층 위로 쌓아 올라가는 연작물들이 있는가 하면, 느슨하게 짜인 그물망처럼 각각의 눈이 끝없이 펼쳐지는 연작물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속 항설백물어>는 후자에 더 가까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하 <속>)
내 경우에는 순서대로 읽어나갔지만, <속 항설백물어>부터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해결할 길이 없는 아쉬움을 품어본다.
여섯 편의 이야기가 담긴 <속>은 모모스케와 마타이치 일행의 연을 정리하며 마무리된다. <항설백물어> 시리즈에 담긴 이야기들은 반드시 시간 순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전후의 흐름대로 흘러간다고 볼 수 있는데, 특히 첫 이야기였던 <아즈키아라이>가 이들의 확실한 첫 만남이었다면 <로진노히>는 그 마무리 매듭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전까지 매 이야기가 상당히 독립적이었던 것에 비하면 <히노엔마>부터 <사신 혹은 시치닌미사키>,<로진노히>는 등장인물뿐 아니라 사건과 사연까지 시간 순으로 얽혀있다는 점이 특징인데, 그래서인지 <속>의 마지막 장면은 한 판 거하게 벌어졌던 놀이판이 화려함을 잃지 않고 절정의 순각 막을 내리는 느낌을 준다.
의도하지 않았던 모모스케의 등장까지도 헤아려, 첫 만남처럼 끝 만남까지도 하나의 이야기로 마무리짓고자 하는 마타이치 일당의 모습에서는 실리에 따라 연을 맺고 끊는 셈이나 조롱의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한바탕 꿈으로 남겨 두시지요' 하고 산뜻하게 웃으며 돌아설 듯한 다정함이 남는다. 소악당들은 자신을 가리켜 '신분이 불확실한 자' '죄인' '미천한 신분' 등의 무숙인으로 칭하지만 이들의 인품은 사(史)에 이름자를 남기면서도 표리부동한 동심이나 무사와 선명하게 대비된다.
드러낼 수 없기에 수면 아래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이들.
수면 아래에서 움직여야 하기에 드러낼 수 없는 이들.
그들의 삶이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만 이루어졌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자부심 있게 살아가는 선 너머의 생은 매혹적이다.
누구라도 모모스케의 위치에서, 그들의 바로 곁에서 지켜보았더라면- 고민스럽지 않았을까.
'경계를 넘어설 각오가 되어 있는가.'
기연(機緣)은 그 우연함과 기이함이 아름다운 것.
끝없이 이어지는 가연(佳緣)으로 마무리지어지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찰나의 스침조차 충분히 의미 있는 만남일 것이다.
즐겁게 읽었다.
- 모모스케가 아는 한 그 역사는 상당히 길다. 시작은 막부의 문을 연 이에야스 공의 에도 입성 시에 대대관(大代官)이었던 오쿠보 나가야스 아래, 멸망한 다케다 가문의 옛 가신을 중심으로 조직된 것이라고 한다.
본래는 다케다 가문이 세력을 떨쳤던 가이 지방의 국경 경비나 치안 유지에 임했다고 하는데, 후일 닛코 산의 화재 예방 및 소화 활동을 명 받았으며, 한때는 에도의 소방 직무를 맡은 적도 있다고 한다. 에조 봉행소 설치 시에는 경비를 위해 멀리 에조 땅까지 파견되기도 했다고 들었다.
에조 땅은 모모스케조차 가본 적이 없다.
- 무인(武人)... 인 것이다.
- 거들먹대기만 하는 얼간이 무사가 많은 가운데 참으로 희귀한 인종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어찌 된 까닭인지 이 하치오지 천인동심의 조장 중에는 의외로 지식인이 많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 너즈러진시절, 문무 양도에 뛰어난 이는 한층 더 드물다. 닛코나 하치오지의 지리지를 편찬하는 자까지 있다고 하므로 명실상부한 실력가일 것이다. 그 때문인지 부하인 동심들도 난학이나 의학, 해방론(海防論) 등에 달통한 자가 많다고 한다.
동심 야마오카 군파치로도 그러한 이들 중 한 사람으로, 최신 의학사정에 훤하여 시골 동심으로는 보이지 않는 통인(通人)이다.
- 모모스케를 부른 이는 바로 군파치로였다. 수하가 가져온 서찰에는 '의논할 일이 있으니 화급히 오기를 바라네'라고 쓰여 있었다. 부름을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허둥지둥 채비를 갖추고 집을 나서니 놀랍게도 말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이는 예삿일이 아니다.
- 모모스케의 심중은 평온하지 못했다.
야마오카 군파치로는... 모모스케의 형인 것이다.
- 모모스케도 군파치로도 근본을 따지자면 도쿠가와의 선봉先鋒 조총부대 집안에서 태어났다. 모모스케는 철들기 전에 상가의 양아들로 보내어졌기 때문에 말단 무사인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태생에 관해 전혀 듣지 못한 탓도 있어 소상한 사정은 모르나, 모모스케가 양자로 보내진 것도 궁핍함이 그 연유였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도무지 형편이 피지 않았는지 동심의 자격까지 팔고 낭인으로 살다가 실의에 빠진 채 죽었다고 한다. 그 무렵의 사정은 나중에 재회한 군파치로에게서 들었다.
- 모모스케는 결국 양부모의 상점도 잇지 않고 멋대로 부초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데, 군파치로는 꾸준히 정진한 끝에 다시 동심의 자격을 사서 하치오지 동심이 된 것이다.
모모스케는 우러러볼 수밖에 없다고 절감한다. 모모스케가 형의 처지였다면 도저히 그렇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모모스케가 필명으로 야마오카라는 성을 사용하게 된 것도 바로 그런 형을 적잖이 존경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야마오카라는 성으로 행세하는 것을 허락해준 군파치로 쪽도 모모스케에 대해 같은 감정을 품고 있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군파치로의 입을 빌자면 '자신으로서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모모스케와 같은 삶은 도저히 살지 못하리라'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알듯 말듯. 그러한 느낌이다.
- 군파치로는 모모스케의 모습을 확인하더니 왠지 안심하는 듯한 표정으로 오느라 수고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드십시오, ... 저어."
남들 앞에서 형님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모모스케는 동심의 피붙이로 보기 어려운 차림새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 거적 아래에는 훌륭하게 차려입은 무사가 누워 있었다.
격식을 다한 차림새에 손등 토시와 각반, 허리의 두 칼은 뽑히고 없었으나 착의에 흐트러짐은 일절 없다. 아니, 거의 더러워진 부분조차 없다. 당연지사, 칼 맞은 상처도 혈흔도 없었다.
그러나.
"이, 이것은 대체..."
- 모모스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사의 시신은 칠칠치 못하게 입을 벌리고 있다. 눈도 찢어질 듯 크게 뜨고 있다. 경악의 표정... 혹은 공포의 표정일까.
문제는 그 이마였다.
무사의 이마에는 돌멩이가 박혀 있었던 것이다.
특수한 돌은 아니다. 아무리 보아도 흔히 굴러다니는 자갈이다. 그것이 이마에 박혀 있었다.
- 분명 기이하다.
이마에 돌을 세게 맞으면 다치는 일쯤이야 당연히 있을 테고, 혹 맞은 곳이 급소라면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설령, 아무리 세게 던진다 한들 꽂히는 일은 없으리라.
큰 돌도 아니고 자갈이다. 상처쯤이야 쉽사리 낼 수 있겠으나, 이마를 깨고 박히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두부나 겨된장 같은 것이라면 모르되, 표적이 곤약 같은 것일 경우라도 그처럼 탄력을 가지고 있다면 동그란 돌멩이를 던져 박아 넣기란 어려울 것이다.
- "나도 투석기 같은 물건을 썼나 하는 생각을 했네. 허나, 설령 그러한 도구를 쓰더라도... 그렇다 한들 이렇게는 되지 않을 걸세."
군파치로는 그렇게 말했다.
과연 최신 학문에도 눈길을 돌리는 인물다운 면모다. 논리적이다.
투석기를 사용할 경우, 탄이 되는 돌멩이는 일단 상방을 향하여 발사된 다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다. 손으로 던지는 것보다는 살상력이 훨씬 높겠으나 이동하는 표적에 명중시키기란 매우 어려울 테고, 운 좋게 맞았다 하더라도 이러한 상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머리에 맞았다면 두정부에 상처가 생겨야 한다.
이 경우, 표적인 무사는 날아오는 돌을 올려다보는 모습으로, 닉하하는 방향 각도에 맞추어 고개를 들고 착탄하기를 기다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알아차렸다면 보통은 피할 것이다.
피하지 못했다 해도...
- "이는 무리겠군요" 하고 모모스케는 말했다.
무리일 것이다. 돌이 너무 작다. 투석기와 같은 도구로 날려 명중시키려면 오히려 그 나름대로의 중량이 필요하다. 이 돌은 지나치게 가볍다.
- "예전, 화약으로 돌을 깨는 모습을 본 적이 있지. 그 단단한 돌이 깨지며 엄청난 기세로 산산이 흩어지더군. 옆에 사람이 있었다면 이러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네. 허나 시신이 발견된 장소 주변에 화약을 사용한 흔적은 없었단 말이지. 돌 파편도 흩어져 있지 않았고. 게다가..."
군파치로는 송장의 이마에 박힌 돌을 가리켰다.
"이것은 깨진 돌이 아닐세. 둥그렇지 않은가. 약간 그을린 듯한 느낌은 나지만, 결코 큰 돌이 깨진 파편은 아니지."
- "없었네. 게다가 촉으로 쓰기에 이것은 아무래도 기묘한 돌이 아닌가. 이 돌은 어찌 보아도 촉이 되지는 못할 걸세. 뾰족하지도 않지. 뽑아내지는 않았으나 여기 나온 부분을 보아도 화살에 이어졌던 흔적은 아니 보인다네."
- 군파치로는 사고라기보다 천재(天災)라고 말했다.
"낙뢰를 비롯하여, 하늘은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할 진기한 재해를 낳지 않는가. 자갈비가 쏟아지거나 짐승이 파열했다는 이야기도 간혹 듣는데..."
"고다마네즈미 말이군요. 과연 박식하십니다. 북녘의 산중에 있는 짐승이지요. 사람의 눈에 띄면 스스로 몸을 파열시킨다고 합니다. 이 파열은 산신의 노여움을 사기 때문에 그날은 사냥이 잘 되지 않는다더군요."
- 오호라.
모모스케는 그제야 불려 온 이유를 깨달았다.
요컨대 인간의 지혜를 초월한 불가사의 현상이라는 증언을 다른 이에게서 얻을 수 있다면, 어떠한 결론을 지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리라.
- "무엇보다 이런 날씨이지 않는가."
군파치로는 얼굴을 찌푸리며 거적을 다시 시신에 덮었다.
"오늘이라도 매장하지 않으면 감당을 못하게 된다네. 유족들에 대한 입장도 있고, 자네에게 시신 검분을 부탁하려면 날이 훤한 동안에 도착해야 할 필요가 있었지. 그래서 급히 부른 것일세. 사정도 묻지 않고 무작정 불러들여 정말 미안하네."
- 객실은 봉당보다 후덥지근했다.
오호라. 이 집에서는 좀 전의 그 봉당이 가장 더위를 버텨내기에 수월한 장소인 모양이다.
시신을 가장 서늘한 장소에 보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리라.
매미 소리를 등진 채, 군파치로는 천천히 물었다.
"하여... 자네는 어찌 생각하나?"
- "글쎄요... 형님은 모몬가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모몬가" 하고 느닷없이 괴성을 지르더니 군파치로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아낙이나 어린아이들이 말하는 요괴... 이매망량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가. 어류를 꼬기, 의류를 때때라고 하는 것처럼 말일세."
"뭐, 그렇기는 합니다만."
모모스케는 허리에 매달린 필첩을 넘긴다. 이 필첩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집한 기담과 요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모몬가는 지방에 따라서 모우코, 못코, 가모우 등 여러 가지로 불립니다만... 에도에서는 모몬지이라고도 합니다."
- 군파치로는 "모몬지이" 하고 반복했다.
"그것은 짐승고기를 다루는 생업이 아니던가?"
"맞습니다. 멧돼지나 사슴 고기 그 자체, 그리고 그 고기를 요리해 파는 가게도 그렇게 부르지요. 전의되어 욕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저 놈은 모몬지이다!"
"수상쩍다는 뜻이로군."
"그렇습니다. 가까이 못할 교활한 여자라는 의미도 있는 듯하더군요. 이는 그러한 짐승 고기 요리에 빗댄 의미도 있겠지요. 통상은 먹지 못하는 것, 혹은 조리해 버리면 정체불명이라는 뜻일까요. 허나 형님, 모몬가란 날다람쥐의 일종이기도 합니다."
- "묵은 날다람쥐를 노부스마(野襖)라고 하지요."
"노부스마?"
"예. 이는 말 그대로 들의 장지문이라는 의미입니다."
"들의 장지문이라니, 어떠한 뜻인가?"
"예, 이것은 말이지요. 걷고 있을 때 별안간 눈앞을 무언가가 가로막는다는 괴이입니다. 차단할 만한 것이 없는 산야에서 흡사 장지문이 확 닫히는 것처럼 홀연히 장애물이 나타나 가는 길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도사 지방에 많지요. 치쿠젠 일대에서는 이러한 불가사의를 누리카베라고 부릅니다. 이키 고을에서는 누리보(坊)라고도 하고요. '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괴이라기보다 요괴 부류로 인식되고 있을 테지요. 명칭은 지방에 따라 다양하지만, 모두 같은 것입니다."
- 모모스케는 웃음을 참는다. 군파치로는 성실한 인물이다. 그처럼 황당무계한 일이 없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다.
"글쎄요. 이 관동 일대에서 노부스마는 보자기 같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도에서는 단순히 후스마로 부르지만, 이 또한 작은 것이지요."
"작은 장지문이라... 참으로 야릇허이, 머릿속으로 그려낼 수가 없네만."
"예. 이 경우는 침구인 후스마겠지요. 가는 길을 가로막는다면 문짝인 후스마여야 할 테지만, 날다람쥐의 형상을 생각하면 침구가 더 그럴듯하니까요. 밤새라든가 사각쟁반 등도 있는데... 이는 둘 다 박쥐 종류를 말합니다. 이것이 훌쩍 날아 얼굴로 덮쳐드는 것이지요."
- "예. 이 노부스마, 사람의 얼굴에 들러붙어 정혈을 빨아들인다고 합니다만... 이것을 날리는 것은 오소리라고 하는 자가 있습니다."
"오소리라면 그 굴을 파고 사는 짐승 말인가? 그건 너구리나 족제비류가 아닌가?"
모모스케는 "어떻게 구별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 종류지요" 하고 답했다.
"허나 너구리와 날다람쥐는 상당히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크기도 형체도 다르지 않나, 날다람쥐는 박쥐... 아니, 그보다 다람쥐에 가까운 것일 터. 너구리와는 다르지."
"예, 그 말씀이 맞습니다. 이들을 동일시하는 설도 있기는 하나, 날다람쥐가 오래 묵어 오소리로 변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요. 그래서 저는 노부스마 자체는 날다람쥐고 오소리가 그것을 날린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 "으음, 머릿속으로 떠올리기가 어렵네만, 이를테면 바람총처럼 날린다는 말인가?"
"저도 본 것이 아니니 어디까지나 상상입니다만."
"그렇다면 상당히 세찬 기세로 날게 될 듯 싶은데."
"예, 세차게 날아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노뎃포(野鐵砲)로도 불리기 때문입니다."
- "돌멩이를 던지는 괴이가 전국 곳곳에 있습니다만..."
철포(뎃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달리 없다고 모모스케는 말했다.
- "그렇습니다. 아마도 노부스마 자체는 훌쩍 날아와 덮이는 듯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노뎃포의 경우는 퍽 하고 맞는다고 할지, 철포라고 할 정도이니 상당한 기세로 부딪혀오겠지요. 심산에는 그러한 요물이 있습니다. 날다람쥐를 발사하는 짐승이 실제로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짐승이 돌멩이를 날리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도 없지요."
- "방금 말씀드린 것은 저 모모스케가 분명 북녘에서 듣고서 수집한 이야기. 결코 저의 망상으로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허나."
"허나 무언가?"
"허나 혹 이것이 사람의 손에 의한 소행이라면..."
"사람의 손에 의하다니, 범인이 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만일 그러하다면 형님은 범인을 잡아들이겠다, 그리 생각을 하실 테지요."
군파치로는 "물론일세"라고 답했다.
"실상을 털어놓자면 상관께서는 체면만 말씀하신다네. 이것이 혹 살인이라면... 하치오지 천인동심의 위신이 흔들릴 중대한 사건. 즉각 범인을 잡아들여 엄중히 처벌을 내리지 않으면, 자네 말대로 체면을 지키지 못한다고 말이지. 이는 이해가 가네."
- 모모스케는 황급히 에도로 돌아온 후, 교바시의 자택으로 가지 않고 먼저 고지마치로 향했다. 얼마 전 여행 중에 알게 된 한 인물의 거처를 찾아간 것이다.
그 인물, 이름은 잔머리 모사꾼 마타이치라고 한다.
- 잔머리 모사꾼이란 감언으로 상대를 구워삶는 재주가 특출하기 마련이니, 그리 좋은 의미로 쓰이는 말은 아니다. 그러한 별명을 가진 이상, 마타이치라는 사내가 어떠한 사람일지도 능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된다.
- 모모스케는 봄부터 수개월간 에치고를 돌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괴담을 수집해 왔는데, 그 여행 중에 어떤 사건과 조우했다. 그때 알게 된 이가 바로 이 잔머리 모사꾼이다.
어쩌다 보니 모모스케는 그 소악당과 의기투합해 에도까지 여정을 함께 했다.
이 사내, 분명 소악당이기는 하지만 의외로 참 대단한 걸물이다. 세간의 이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세상살이에 정통한데, 그럼에도 주눅 든 구석이 없으며 무도(無道)한 짓은 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길을 가며 말을 섞는 사이, 모모스케는 그 사람 됨됨이에 흠뻑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 '소생은 요쓰야문(門) 바깥의 염불장옥(念佛長屋)을 본거로 삼고 있습니다.'
마타이치는 헤어질 때 자신의 거처를 모모스케에게 알렸다. 딱히 접할 일도 없겠으나 절연, 불화, 중신 등의 용무가 있으시면 기별을 한 번 주시지요.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 '그 사내라면 무언가 알지도 모른다.'
형 군파치로는 고지식하고 성실한 성품이 유일한 장점인 사내. 말하자면 세상의 외표만을 보는 인간이다. 불초 아우 모모스케로서야 공공연히 협력할 수 있을 만한 일이 아무것도 없으리라. 허나 혹 형의 눈이 닿지 않는 곳, 세상의 이면을 보는 것이라면 모모스케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일을 하고자 할 때 마타이치와 같은 사내는 누구보다 듬직한 조력자가 된다.
- 비슷한 공동주택이 몇이나 있어 어디가 어디인지 잘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주위는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다. 땅거미의 차이가 희미해져 풍경은 한층 더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었고, 혼잡스러움에도 모든 것이 다 밋밋하고 비슷한 형체로 보이기 시작했다.
- 여름날이 제아무리 길다 하여도 이미 상당한 시각이다.
잠시 찾아다니고 있는 사이에 해는 완전히 저물고 설상가상으로 소나기까지 쏟아졌다.
허둥지둥 골목으로 뛰어든다. 이러한 공동주택의 지붕에는 빗물받이가 없으므로, 널지붕을 타고 내리는 비는 모조리 골목 중앙에 그야말로 폭포처럼 떨어지게 된다. 차양 밑으로 뛰어들지만, 습기가 도는 응달의 땅바닥은 원래 물이 잘 빠지지 않으므로 골목은 순식간에 개천처럼 변해 튀는 빗물만으로도 흠뻑 젖고 만다.
그칠 기색도 없어 될 대로 되라 하고 발을 내딛으려 했을 때, 드르륵 하고 등 뒤에 있는 문이 열렸다.
- "어허, 궁리 선생 아니시오?"
문을 연 사람은 마타이치 본인이었다. 흰 홑옷에 손등 토시와 각반, 머리에는 백목면 행자두건, 가슴에는 시주함을 걸고 있다. 여행 중에 만났을 때의 차림새 그대로다. 마타이치는 그 상자 속에 든 액막이 부적을 뿌리고 다니는 떠돌이 어행사(御行師)를 표면적인 생업으로 삼고 있었다.
"어이쿠, 다 젖으시겠소. 자, 들어오시길."
모모스케는 잡아 끌리듯 안으로 들어갔다.
- "화약만 있으면 세공물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요. 전국난세(戰國亂世) 전부터 해적이란 자들은 대륙과 왕래를 했다고. 그 무렵부터 철포 비슷한 물건이 있었다더구먼. 물론 화승총 하고는 다르지. 만듦새가 훨씬 조잡한 물건이었을 테지만..."
"그것이 돌을 날리는 철포였다는 것입니까?"
"석궁이나 석총 등, 아주 여러 가지로 불렸던 듯하지만 요컨대 철포인 게지."
"맙소사. 도쿠가와시대 이전의 물건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말씀인지..."
- "이보시오, 선생."
지헤이는 작은 체구를 굽혀 앞으로 숙였다.
"빗자루고 나막신이고 막부 이전부터 있었소. 게다가 점점 쓰기 편하게 되지 않았나."
"그야 그렇습니다만... 그러한 물건은 평소에 쓰이는 도구이기 때문이잖습니까? 허나 그렇게 단절된 기술이..."
지헤이의 모난 얼굴에 벙시레 웃음이 번졌다.
"... 단절되지 않은... 것입니까?"
"이보시오, 에도의 직공은 손끝이 여물잖소. 이 나라의 기술은 아주 제법이라니까. 어떠한 것이라도 궁리를 하고, 한 솜씨 더해 쓰기 편하게 만들지. 그런데 어떻소? 화승총은 달라진 게 없잖나. 이유가 뭔지 아시오?"
-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야 선생, 화승총은 이미 완전한 꼴을 이룬 물건이었기 때문이오. 똑같이 만들면 그만. 이는 간단해."
- "그 노뎃포라는 게 바로 이 영감이 말하는 돌멩이를 날리는 철포를 가리키지요. 시마조란 분은 아마도 이키 출신인데 젊은 시절에는 현해탄을 주름잡던 악당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나가사키에서 난학을 배웠다는 소문도 있고요. 그런 이가 흘러 흘러 세토나이의 해적 두목으로 자리를 잡았지요. 거기에서 전해 내려온 석총을 접하고 더 개량해 쓰기에 편한 연장으로 탈바꿈시킨 겁니다. 농구(農具) 대장장이가 만드는 철포라서 노뎃포. 이건 위협이 되었습죠."
- 그러나 마타이치는 말을 이었다.
"이 석총이 어떠한 구조인지는 모르지만, 조잡한 화승총보다 훨씬 정밀도가 높았다고 하더구먼요. 화약 조합에 비결이 있는지, 무언가 특별한 장치가 있는 것인지, 명중률은 백발백중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사용하는 탄은 돌멩이. 게다가 직접 고안한 것이니 몇 자루든 만들 수 있지요. 뭐, 시마조 어른은 훌륭한 분이었기에 이 석총을 써서 사람을 해치는 일은 일절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말입니다. 허나 영주도 아닌데 철포를 장비하고 있는 도적이란 그리 없지요. 이는 공포의 대상이 될 수밖에..."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러한 물건이 있다면...
있다면, 그 일도...
- "지금은 없소."
지헤이가 잘라 말했다.
- "노뎃포 어르신이 궁리해 만든 석총은 이미 없수다. 다만 내가 아까부터 하는 소리는 말이오, 비슷한 물건을 누군가가 만들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게지. 돌을 날리는 철포라면 옛날부터 있었다고. 어르신이 그것을 개량해 자신이 쓰기에 편한 노뎃포를 만든 것처럼 다른 누군가도 만들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는 게요."
- "자아" 하고 마타이치는 말했다.
"예?"
"선생, 소생은 털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라면 남김없이 싹 다 했습니다. 선생께서도 감추지 말고 말씀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아, 예에..."
이리된 이상 더는... 어쩔 도리가 없을 터.
모모스케는 전부 이야기했다. 바다에서 천 년, 산에서 천 년을 굴러먹은 미륵삼천 잔머리 모사꾼에게 무언가를 감추려면 그야말로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멀었다는 이야기이리라.
- 그런데.
모모스케가 찾아온 이유를 이야기할수록, 소상한 사정을 풀어놓을수록, 두 소악당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특히 신탁자 지혜이의 표정 변화는 심상치가 않았다. 이윽고 부릅뜬 작은 눈은 충혈되었고, 입술은 그 빛을 잃었다.
모모스케가 모든 이야기를 마쳤을 무렵... 비는 말끔히 그쳤고, 그 대신 방안은 캄캄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개구리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 "그 죽은 동심은... 하마다 기주로라는 인물이오?"
그렇다고 답한다.
"그럼 선생의 형님께서 속하신 조의 부조장 이름은..."
어둠은 모모스케에게 다가왔다.
분명... 형은 다가미라고 했다.
그렇게 알리자, 어둠은 침묵했다. 그리고 조용히 떠는 것처럼, 모모스케에게는 느껴졌다.
- 이윽고 암흑 속의 소악당들은 희미하게... 아주 잠시이긴 했으나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 모모스케로서는 알 수 없었다.
개구리 울음에 섞여 우둔우둔, 자신의 피가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때야 비로소 모모스케는 자신이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공포와도 유사한 감정을 뒤늦게나마 느끼기 시작했다.
- '사는 세계가 다르다.'
- 모모스케는 분명 군파치로처럼 반듯한 생활을 살고 있지는 않다. 여기로 어정어정 저기로 어정어정, 흡사 밀물에 뜬 지저깨비처럼 불성실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눈앞의 암흑 속에 잠긴 두 사내는 그렇지 않다. 군파치로와는 정반대로 당당히 어둠에 몸을 담근 채 살고 있다. 모모스케 같은 얼치기가 다가가도 될 인간들이 아닌 것이다.
- 모모스케가 마타이치에게 끌린 이유와 모모스케가 군파치로를 따르는 이유. 필시 그 근원은 같다. 군파치로가 낮이라면 마타이치는 밤이다. 이도 저도 아닌 모모스케는 낮과 밤 모두를 동경, 그리고 그 양자에 대해 아마도 똑같은 무게로... 질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모모스케는 마른침을 삼켰다.
모모스케는 실로 부주의하게 낮과 밤을 이어버린 것이 아닐까. 그것은 해서는 아니 될 일이 아닐까.
- 굼실굼실, 어둠이 움직였다.
드륵, 하고 문이 열렸다. 그 순간...
후욱, 사방등에 불이 들어왔다. 희미하게 행자두건이 떠오른다. 마타이치다. 사방을 끌어안다시피 앉은 마타이치의 그림자는 좁은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 마타이치 씨...?"
- 일렁.
그림자가 흔들렸다.
지헤이의 모습은 이미 없다.
- "선생..."
"예, 예에..."
"참으로 잘 알려주셨습니다. 역시 선생과의 연은 예사로운 인연이 아니었던 듯합니다."
"그... 그렇습니까?"
'무슨 의미지?'
- 마타이치는 서서히 몸을 돌렸다.
그림자도 빙글 돈다.
"그 동심을 해친 것은 선생께서 짐작하신 대로 노뎃포일 테지요."
마타이치는 그렇게 말했다.
그것이 요괴 노뎃포를 말하는지, 도적 노뎃포를 말하는지, 물론 모모스케는 판단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묻기 전에 마타이치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아마 내일쯤 대대적인 노뎃포 수색이 펼쳐질 것입니다."
- '어떻게 그런 것을 알지?"
"그렇다면 그... 노뎃포는..."
"허나, 적은 요물. 웬만한 수로 퇴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물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요괴 쪽인가... 모모스케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마타이치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단, 노뎃포를 막을 방법은 있습니다. 우선 도꼬마리라는 풀을 품속에 숨겨둘 것. 이렇게 하면 오소리는 노부스마를 뿜어내지 않습니다. 혹여 노부스마에게 얼굴을 덮이게 되면, 이는 날붙이로 가를 수가 없습니다. 노부스마를 찢어놓을 수 있는 것은 검게 물들인 치아뿐이지요. 그것이라면 쉽게 끊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허나 도꼬마리는 당장 구할 수가 없고, 무사님께서 이를 검게 물들이기도 어려운 일이겠지요. 그러니..."
마타이치는 시주함에서 부적을 한 장 꺼내어 모모스케에게 건넸다.
"이는 마를 불살라버리는 다라니 부적. 이것을 선생의 형님께 전해주시기를. 이것을 어깻죽지에 붙여두시면 난은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마타이치는 그렇게 말한 후 짤랑, 하고 요령을 울렸다.
- 천인동심은 그 이름대로 천인장(千人長) 아래에 조장이 열 명, 한조당 백 명의 동심이 속한 천인 체제다. 그 각 조가 교대로 다양한 임무를 맡는 것이다.
다가미는 조장이 아니다. 봉행소로 치면 필두동심과 같은 지위이므로 부하 동심은 죽은 하마다와 군파치로를 포함해 열 명 정도다. 거기에 수하 한 명씩을 더해 약 스무 명이 수색에 임하게 되었다고 한다.
군파치로의 말로는 아무래도 이 사건이 조장에게까지 알려지지는 않은 듯하다고 했다.
"요괴 상대로 수훈에 안달을 낼 일도 없겠으나, 이번에는 다가미 님의 동태가 참으로 기묘하단 말이지. 물론 부하가 살해당했으니 그 원한도 있기는 할 터이나..."
- 모모스케는 어젯밤에 들은 마타이치의 설명을 그대로 고한 다음 다라니 부적을 건넸다. 군파치로는 무엇 하나 미심쩍게 여기는 표정 없이 그것을 받았다.
정말 표리가 없는 인물이다. 어제 모모스케가 하루를 기다려달라고 한 것도 모두 자신의 몸을 걱정해 이 액막이 부적을 입수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받아들인 듯했다. 모모스케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은 고마운 반면 조금 가책이 느껴지는 일이기도 했으나...
- 군파치로는 머리띠를 동여매고 부적을 가슴팍에 반쯤 꽂아 넣더니 수하를 이끌고 산으로 향했다. 모모스케로서야 이로써 용무가 끝나게 된 것이지만 돌아갈 마음이 내키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동행하겠다는 말을 꺼내지도 못해 그대로 남았다. 설령 가겠다고 말해본들 동행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은 만에 하나도 없었으리라 생각하지만.
- 결국 모모스케는 형이 없는 관택에서 빈집을 지키는 꼴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무사의 집이라기보다는 농가에 가깝다. 그래도 사몬도노초 쪽에 있는 공동관택보다야 훨씬 넓을 것이다.
군파치로는 독신이라 이웃 농부의 아내 등이 오가며 식사를 챙겨주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취사를 제외한 신변의 허드렛일은 숙식하는 머슴 하나가 도맡고 있다. 머슴이라고 해도 상당한 노인이다. 귀가 약간 어두운 듯하지만 아주 기민한 사내로, 듣자 하니 젊은 시절에는 포리(捕吏)를 도왔던 적도 있었다던가 그러했다고 한다. 짐작컨대 에도에서 딴꾼인가 무언가를 했으리라. 이 머슴, 이름은 다스케라고 한다.
- 어제만큼 덥지는 않다. 바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모스케는 골마루에서 마당으로 내려가 크게 기지개를 켰다. 개방감이 있다.
에도는 가도 가도 평평하기만 할 뿐이며 그 평평한 땅에 키 낮은 건물이 복작복작 늘어서 있으므로 볼품이 나는 전경이 아니다. 게다가 에도 내에서는 배수가 잘 되지 않는다. 여러 고을을 돌아다니고 있자면 불쑥 드는 생각인데, 에도는 원래 살기 불편한 장소인 것이다. 그러한 곳을 억지로 정비해 살고 있다.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악지(惡地)를 우르르 합세해 고치고, 몹시 무리를 해가며 많은 이들이 정착해 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 여파가 도처에 나타난다.
- "터무니없는 일. 그것을 계기로 세상이 어지러워질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이 시마조란 분은... 그 상황에서 신념을 관철했던 것이옵니다."
"신념...이라 함은?"
"일반 백성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신념이지요. 도둑에게도 일말의 명분이 있다고 할까요. 시마조 어른은 석총 도면을 태우고, 거푸집을 부수고, 예 있는 한 정만을 남긴 후 모든 것을 다 말끔히 없애 버렸던 것이옵니다. 어떠한 일이든 조리가 서야 한다. 그 의지를 일관하였기에 따님과 손녀는..."
"살해당했구려."
- "그로써 끝이 났지요. 전가의 보도를 스스로 버렸으니 을러댈 맛도 나지 않을 터. 몰려들었던 무리도 그대로 칼끝을 거두어들이고, 박쥐파는 해산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시마조란 인물은 딸도 손녀도 잃고... 피붙이의 목숨과 맞바꾸어 손을 씻은 것이나 다름없지요. 모든 것이 인과응보, 악업의 죗값, 자업자득, 그렇게 말하면 그뿐이기도 하겠으나... 그 대가가 너무도 무참하지 않습니까."
군파치로는 입을 한일자로 다물고 생각에 잠겨 있다.
모모스케가 생각하기에, 군파치로는 자신의 입장을 옆으로 미루어두고 더없이 정직하게 동정하고 격노하며 분개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 그러한 의미였던 것인가.
모모스케는 식은땀을 닦았다.
군파치로의 시선은 잠시 동안 황망하게 허공을 더듬고 있었다. 모모스케도 당혹스러운 참이다. 혼란에 빠졌음이 틀림없다. 올곧기 이를 데 없는 동심은 이윽고 동요를 감추지 못하는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 "다만... 아무리 원수라 해도 현재의 다가미 효부는 지위도 이름도 있는 어엿한 동심. 나랏일 하는 관리가 떠돌이의 손에 죽었다 하면 언걸을 입는 분도 많을 터이고, 나아가서는 상부의 위신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겠는가, 그리 생각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 두 사람에게는 가족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가족에게는 누를 끼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첫 번째일 듯 싶었던지라, 그래서..."
"요괴의 소행으로 꾸민 것이군요."
모모스케는 무람없게도 감탄했다. 내막을 밝히지 않았다면, 아마도 가장 핵심에 접근해 있었을 터인 모모스케조차 알 수 없었던 일이다. 그 큰 너구리도 이 일을 위해 준비한, 그저 묵은 너구리의 사체였던 것이리라. 허나...
- '형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군파치로는 침묵하고 있다.
속아서 분한 마음도 있을지 모르나, 형은 오히려 다가미를 상관으로 받들고 충성을 맹세했던 자신에게 분통을 터뜨리고 있지 않을까. 몰랐던 일이라고는 하나 상관은 도적보다도 못한 패덕한이었던 것이다.
- 형의 성품을 고려하면... 군파치로라는 인물은 범죄 사실을 알아버린 이상 무마하고 넘어갈 일이 없을 것이다. 허나 전부 백일하에 드러낸다면 눈앞의 소악당들은 당연히 오라를 받고서 참수당하는 처지가 되겠지만, 그와 동시에 다가미와 하마다의 옛 죄업도 폭로시킬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동료 동심들은 한층 더 엄한 처분을 받을 것이고, 다가미와 하마다의 가족도 틀림없이 처벌을 받게 된다. 무뢰한을 채용한 조장이나 천인장에게도 책임 추궁의 손길이 뻗치리라.
그럼에도...
'형은 정의를 밀어붙일 것인가.'
- "어찌 되었건 소인들은 야마오카 님을 속였으니 말입니다. 동료분들께도 위해를 가했습니다. 게다가 상관 나리의 목숨까지 거두어들였지요. 그것은 사실. 당연지사 대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 꼭 상책이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군파치로는 침묵하고 있다.
"입을 다무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도 했습지요. 모든 것을 털어놓으면 상관 나리의 과거를 들추어내게도 됩니다. 처하신 입장 상 여러모로 곤혹스러운 일도 겪으실 터. 그럼에도... 나리를 계속 속이는 것은 내키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모양새로 수습이 되든지 그것은 저희가 알 바 아니오나, 그저 야마오카 님의 마음에 족한 쪽으로 해주시었으면 하는 것이 저희들의 마음이올습니다. 여기에서 베어버리든, 형장에서 참수를 시키든, 원대로 하시기를..."
지헤이는 목을 내밀었다.
- 시마조도 풀썩 앞으로 쓰러져 머리를 조아렸다.
마타이치는 그 옆에 조용히 서 있다.
모모스케는... 눈을 깜빡이는 것마저 잊고 있다.
- 군파치로가 스윽 일어섰다.
그리고 "언제까지 그러한 곳에 계실 참이오"라고 말했다.
모모스케는 귀를 의심했다.
"형님..."
"연로하신 분을 마당에 세워두고서 높은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다니, 인륜에 어긋나는 작태가 아니던가. 세 분 모두 자랑스러운 아우와 오랜 친분이 있는 귀한 손님이시오. 자아, 올라들 오시구려."
- "지헤이 공. 그대들은 무언가 오해하고 있지 않으신가? 평판 자자한 하치오지 천인동심, 하나같이 실력 출중한 무사라오. 인지를 초월한 둔갑요괴에는 못 당해낼지도 모르나, 한낱 늙다리 직공이 보자기를 덮어씌웠다고 혼절할 만한 얼간이는 단 한 명도 없소. 게다가 나의 경우는 액을 막는 부적을 소지했기에 둔갑요괴조차 손을 대지 못했소이다. 그렇지 않소, 어행사?"
"맞사옵니다."
마타이치는 웃었다.
"영험이 나타나는 것도 인덕 중의 하나이지요."
"암, 그렇고 말고."
군파치로는 처음으로 쾌활하게 웃었다.
- "요괴도 참으로 용한 영물. 해할 상대를 잘못 고르는 일은 없을 것이니, 죽었다면... 그 나름대로 죽은 이유가 있을 터. 허나 너구리의 경우까지는 알 길도 없고, 조서도 벌써 다 쓰고 말았구먼, 애당초 요괴를 잡아들이는 것은 동심의 일이 아니지. 모모스케..."
- <노뎃포>
- 도저히 똑바로 갈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이 방향으로 목적지까지 가려면 천초사를 빙 둘러 우회하는 셈이 된다. 멀리 돌아가는 것이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발을 내딛었다.
- 이 일대는 논과 사원뿐이다.
다시 곁길로 빠진다.
얼기설기 이어지는 길을 시적시적 걸어가자 수양버들에 둘러싸인 신당 측면이 나왔다.
이곳은 예전에 온 적이 있다. 그렇게 느꼈다. 공터를 가로질러 앞쪽으로 돌아가 도리이 아래에 서서 확인해 보니 오노노 다카무라를 모신 오노테루사키 신사였다. 오노노 다카무라라 하면 매일 밤 명부로 내려가 염라대왕을 보좌했다는 전설이 있는 옛 재상이다. 모모스케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도리이며 고마이누를 둘러보았다.
'저 세상과 이 세상을 왕래하며...'
모모스케는 얼굴을 찌푸리며 발걸음을 돌렸다.
- 모모스케는 오른편으로 펼쳐진 논밭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심한 끝에 방향을 틀지 않고 말았다.
논두렁길을 걸을 기분이 아니다.
바람이 강을 넘어오는 탓인지 아무래도 공기가 눅눅하다. 원래 이 일대는 습한 풍토인 것이다. 아예 이대로 스미다 강까지 가서 센주대교를 건너버릴까 하는 생각도 한다.
이토록 근접했음에도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 솔직히 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 직진하면 아스카 신사에 이른다.
고즈카하라의 수호신을 모신 곳이다.
'들렀다 갈까.'
그렇게 생각하자 참을 수 없게 되었다.
- 모모스케라는 인물은 어찌 된 까닭인지 신사불각에 들어서면 마음이 설레는 성격인 것이다. 청정한 장소에 발을 들여놓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마음이 차분해지기 마련이리라. 허나 모모스케의 경우는 참으로 다르다.
설렌다. 흥분이 인다.
선향의 향기. 호마(護摩)의 연하(煙霞). 이끼 핀 묘석의 냄새. 박장(拍掌) 소리. 요령이며 악기의 소리. 제문, 경문.
금줄의 소지. 연화좌의 금세공.
도리이의 붉은빛. 불상의 검은빛.
- 기에몬은 봉행소나 단자에몬의 부랑비인 임시 검거 등의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거나 주거 및 일자리 등을 알선하며 이런저런 편의를 봐주는 대신 그들을 통솔했을 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수입을 착취했다. 원래 단속되었어야 할 무리를 거느리고 있었던 것이므로 그 실태는 명확히 파악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것부터가 이미 비합법 행위이나, 기에몬이 악인인 까닭은 그러한 배하의 무리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듯한 얼굴로 최하층민들을 끌어들여서는 그 약점을 파고들어 자신의 악행에 도구로 이용했던 것이다.
- 그럼에도 기에몬은 잡히지 않았다. 남북 양 봉행소는 물론이고 화도개방까지 골머리를 앓으며 애를 먹었던 모양이다. 물론 본인의 거처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점도 있었을 것이나, 자기 자신의 손은 전혀 더럽히지 않는 교활한 수법이 큰 이유였던 듯하다. 악행이 드러난 경우도 실행범은 항상 무숙자라, 기에몬에 이르기 전에 악행의 꼬리가 잘리고 마는 것이다. 많은 무숙자가 기에몬을 대신해 죽었는데 그 수는 헤아리기조차 어렵다고 한다.
- 무도한 이야기다.
이용당하는 자들로서도 기에몬에게 받은 은혜가 아예 없다고 할 수야 없겠으나, 그래도 목숨 바쳐 섬겨야 할 정도의 도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최하층민들로서는 살아가기 위해 기에몬 같은 악당이라도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고달픈 현실의 사정이 있었으리라. 단지 그뿐이었으리라고 모모스케는 생각한다. 기에몬이라는 사내는 그 약점을 쥐고 흔들었던 것이다. 이는 힘으로 제압해 강제로 착취하는 것보다 악질이리라.
기에몬이라는 자는 그러한 사내였다고 한다.
- 그러나 그 악당도 마침내 죗값을 치러야 할 때가 오고야 말았다. 교활하고 치밀한 속임수와 농간의 어디쯤에서 물이 샌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일설에 따르면 관동팔주 천민들의 우두머리인 단자에몬이 마침내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해 노여움을 드러낸 것... 이라고 한다.
어찌 된 일인지 별 검거 소동도 없이, 기에몬은 맥없이 잡혀 들어갔다.
그리하여... 이틀 전에 시중(市中) 회시(回示) 후 참수되었던 것이다.
- "그러게요..."
오긴은 건성으로 대답하며 나른하게 물어왔다.
"그래서 선생은 그 대악당의 악한 낯짝이 어찌 생겨 먹었는지 구경하러 가겠다는 심산이유? 그리도 무리까지 해가면서?"
"뭐, 악한인지 아닌지 하는 점이야 저로선 상관이 없습니다."
"상관이 없다?"
"예에... 제 관심은 또 다른 소문 쪽이니까요."
"소문이라..."
"오긴 씨도 알고 있지요? 기에몬이란 자는 뭐라고 할까. 불사신이라지 않습니까? 죽여도 죽지 않는다는 둥, 아니, 죽고 또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는 둥, 그러한 풍문이 있었잖습니까. 참인지 거짓인지 모르겠지만 과거에도 두 번쯤 죽은 적이 있다며 떠벌리고 다녔다는 말까지 들었지요. 염라대왕을 위협해 되살아났다던가..."
- 그러한 소문이다.
'이나리자카 기에몬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 "뭐 저도 그러한 이야기를 믿고 있지는 않습니다. 허나 그러한 소문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니까요. 저는요, 오긴 씨, 딱히 옛 이야기만 모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이것도 세월이 지나면 옛 이야기가 되지요. 전해 들으면 아무래도 원형이 손상되는 법,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세부는 알 수 없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덕지덕지 살이 붙지요. 이야기의 씨앗이란 열매가 생기기 전에 수집해 놓는 게 가장 좋다는 거지요."
"그게 글쟁이의 본성이유?"
"본성이라기보다 업이랄까요."
글쟁이의 업은 아니다. 모모스케 개인의 숙업 같은 것이다.
- "싫은 기색인데."
오긴은 모모스케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본심을 꿰뚫어 보고 있다. 모모스케는 흠칫 놀라 오긴의 얼굴을 마주 본다. 가까이에서 보니 선득하다. 각도에 따라서는 천진한 소녀로도, 또 요염한 아낙으로도 보인다. 신비한 여자다.
"그야... 싫지요. 무엇보다 저러한 큰길에 시신을 내놓는 것 자체가 마뜩찮습니다. 우리 서민에게 본보기를 보여 높으신 분들의 위신을 단단히 다지려는 심산이겠지요. '어이쿠, 무섭다. 나쁜 짓은 할 것이 못 된다.' 그리 생각하라는 뜻일 겁니다..."
- "좀 기다려주십시오!"
모모스케는 잰걸음으로 오긴을 쫓았다. 오긴은 발이 빠르다. 대금을 치르는 사이에 휙휙 앞으로 가고 있다. 불러본들 멈추어주지도 않는다. 가까스로 따라잡아 나란히 서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하다.
- "구경꾼이라 했잖수."
"정말로?"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두터운 친분은 아니지만, 모모스케도 사람을 보는 눈은 있다. 오긴은 좋아라 하며 효수 구경을 하러 갈 여자가 아니다. 거듭 물음을 던지자, 산묘회는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무, 무슨...?"
모모스케가 당황해 얼굴을 살피자, 오긴은 똑바로 앞을 응시한 채 툭 한마디를 던졌다.
"원한이 있어서 그래요."
- "네."
냉기가 돈다.
- 소생은 없었는가. 목을 베었기 때문인가.
그러나.
모모스케는 오긴의 말이 못 견디게 마음에 걸렸다.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으나, 오긴은 무언가 알고 있다.
- '여전히 살 참인가...'
오긴은 붉은 입술은 분명 그렇게 움직였다. 어찌 받아들여도 참수된 머리를 보고 흘릴 말은 아니리라.
게다가.
한층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형장을 떠날 때 보인 오긴의 미심쩍은 태도다.
수긍이 가지 않는다. 반드시 무언가 있다.
- 한번 생각이 쏠리면 뒤로는 물러서지 못한다. 모모스케는 그러한 성격이기도 하다. 고집불통인 것은 아니다. 미적미적 떨쳐내지 못해 단념이 아니 되는 성격인 것이다. 다만, 물러서지 못한다고는 하나 무엇부터 더듬어가야 할지 방향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로 모모스케는 요 며칠간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그저 끙끙대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 교바시.
양초 도매상 이코마야의 별채...
이곳이 모모스케의 거처다. 다다미 열 장짜리 방은 엄청나게 많은 서책으로 메워져 있다.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괴담과 기담을 수집할 때를 제외하면, 모모스케는 거의 이 쾨쾨한 방 안에 있다. 글쓰기를 하든가, 조사를 하든가, 문헌을 탐독하든가, 그중 어느 한 가지이다.
- 유익한 조사는 아니다.
괴담집을 쓰기 위한 준비다.
고생하여 수집한 각지의 괴담 기담을 모음집으로 엮어 개판한다. 그것이 모모스케의 당면 목표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모모스케는 인기 높은 작가도 아니거니와 저명한 학자도 아니다. 그처럼 진묘한 야망은 좀처럼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현재 모모스케는 판원(版元)에 간청해 아이들 대상의 수수께끼를 짓는 일이나 받고 있는 곰곰궁리 선생에 불과한 것이다. 수입은 거의 없다.
그러나 먹고살기에 곤궁할 일도 없다.
왜냐하면...
- 모모스케는 고개를 든다.
본채 쪽은 활기에 넘친다.
책력은 이미 섣달이다. 이 집도 이럭저럭 장사를 하고 있으니 활기가 없는 편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더구나 이코마야는 에도 제일로 꼽히지는 않더라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이라는 나름대로 큰 상점이다. 바쁘지 않을 리가 없다. 아니, 이곳이 상가가 아니더라도, 세밑에 아무 일 없이 한가롭게 생각에 잠겨 있을 수 있는 팔자는 자신 정도일 것이라고 모모스케는 생각한다.
- 모모스케는 목을 움츠렸다. 많은 이들이 이마에 땀을 흘리며 이리 허둥 저리 지둥 일하고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빈둥빈둥 놀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참으로 처지가 옹색하다.
식객보다 마음이 편치 않다.
사실을 말하자면.
모모스케는 원래 이 이코마야의 후계자다. 다시 말해 이 상점은 모모스케의 소유... 이기는 한 것이다.
- 허나.
모모스케는 상점 일을 하지는 않는다. 거들지도 않는다.
선대가 세상을 떴을 때 모모스케는 지체 없이 상점을 큰 행수에게 물려주고 퇴은 -그야말로 퇴은- 해버렸다. 매우 놀라워들 했으나 반대하는 자는 없었다. 아니, 반대할 수 있는 입장인 사람이 없었다. 모모스케는 양자다. 그리고 이코마야에는 상속받을 수 있는 가족도, 참견할 만한 친척도 없었기 때문이다.
- 허나 모모스케가 '무가 출신이니 장사 따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해 일을 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무사는 자신에게 더욱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애당초 모모스케가 자신의 근본을 알게 된 것은 장성한 후의 일이다. 모모스케는 상인의 아들로서, 상인이 되도록, 상인으로 길러졌다. '태생보다 자라난 바닥' 이라는 말은 맞을 것이니, 그렇다면 모모스케는 뼛속까지 철저히 상인일 수밖에 없다.
- 그런데... 이와 같은 몰골이다.
스스로도 더없이 난감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자신이 장사에 맞지 않는다는 점은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맡았다가는 반드시 망한다. 대대로 이어온 이코마야의 간판을 양자인 자신의 대에서 말아먹을 수는 없다. 길러준 양부에게도 면목이 없다. 고용인들을 볼 낮도 없다.
그러하기에 물러난 것이다.
- 사리에 어긋난 고집은 아니리라. 그렇지만 노력조차 하지 않고 물러나는 것은 비겁하다는 생각도 든다. 허나 재능이 없는 것은 어쩔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노력한 사람은 하늘을 날지 못한다. 그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 물러난 이상, 모모스케는 점포에 신세를 질 생각은 없다. 그러나 상점 식구들은 지금도 모모스케를 도련님이라고 부른다. 상점의 주인부터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래저래 살뜰히 챙겨준다. 도움을 받을 생각이 없다고는 하나, 밥벌이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현 상황이므로 집을 나가 장옥에 살 수도 없다.
결국 모모스케는 밥벌레라는 이름을 감수하고 있다.
이 팔자, 식객보다 마음이 편치 않다. 멋쩍고 거북하기가 이를 데 없다.
성가시게 여기지 않는 점이 또 괴롭다. 명백히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면 달리 처신할 길도 있건만, 상점 식구들은 모두 모모스케에게 호의적이다. 이는 따지고 보면 주인부터 고용인 출신이므로 어쩔 수 없는 면이기는 하겠으나...
- 모모스케는 당혹스럽다. 정말 그 말 그대로였던 것이다.
"그나저나... 마타이치 씨, 용케도 이곳을 아셨군요. 교바시라는 것 외에는 알려드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만..."
"별안간 들이닥쳐 폐가 되었는지요?"
마타이치는 송구한 얼굴로 말했다.
"다. 당치도 않은 말씀. 폐라니요. 그게 아니라... 저는 말입니다. 글쟁이라 해도 아직 무명인 신출내기이니 이곳에 산다는 것은 아무도 모를 듯하여..."
모모스케가 펄쩍 뛸 듯이 부정하는 모습을 올려다보며 마타이치는 싱긋 웃었다.
"글쎄, 글 쓰시는 야마오카 선생 댁이 어드메에 있냐고 물어본들 누구 한 사람도 알지 못하더구먼요. 허나 젊은 은거 도락가가 계시는 양초 도매상이라면 이 교바시 일대에서 모르는 이가 없습지요."
"맞는 말씀입니다."
모모스케는 웃으며 마타이치에게 올라오라 일렀다.
마타이치는 미천한 신분이니 여기로 족하다며 사양했다.
- "아이구, 이런 날씨 아닙니까. 상대를 하는 저도 추우니까요. 실은 찾아와주셔서 매우 기쁩니다. 차 한 잔이나마 대접하게 해 주시지요."
마타이치는 몸을 낮춘다.
"제발 봐주십시오. 이곳은 본채에서 이어지는 별채이잖습니까. 방으로 오르려면 본채로 들어갈 수밖에 없지요. 소생 같은 부랑배가 이런 대(大) 상점의 정문을 들어선다면 간판에 흠이 가고 말 것입니다."
그도 그러하다. 허나 그렇다고 창으로 들어오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일 터.
모모스케는 별 수 없이 창 너머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 "뭐... 별채살이라는 게 참 불편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어디를 가려도 본채를 지나야 하니까요. 그럴 때마다 저는 살이 쑥쑥 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지요. 얼굴을 가리고 목을 움츠린 채 살금살금 출입하고 있습니다."
"말씀이야 그리 하셔도 이곳은 자신의 상점. 그렇게까지 마음 쓰실 일은 없을 텐데."
"제 상점이라니요... 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부터 이곳은 지금 주인이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양모가 타계한 후 점포를 유지하고 병상의 양부를 봉양했던 이는 큰 행수와 고용인들이었다. 자신은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사내라고 모모스케는 말했다.
- "돌아가신 아버지는 핏줄도 이어지지 않은 저를 참으로 아껴주셨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 꼴이지 않습니까. 생부도 설마 이런 얼간이로 만들려고 저를 양자로 보낸 것은 아닐 테지요. 상가를 잇지 않겠다고 결심한들 무가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돌아간들 망한 가문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야 어림도 없으니까요. 저는 이중으로 불효자일 따름입니다."
마타이치는 오호라, 하고 작게 말했다.
"그렇다면 선생께서 이 별채에 살고 계시는 것은 재산에 미련이 있기 때문은 아니로군요."
"당연하지요."
그런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다.
- "제가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 별채... 아니, 호사가였던 선선대가 남기신 이 방대한 문서류입니다. 저는 이 먼지내 나는 서책 속에서 자랐지요. 이것과는 도저히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어허, 정말이지 대단하군요."
마타이치는 방을 들여다보더니 기가 막힌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 "별일... 말입니까?"
마타이치 같은 자가 말하는 별일이란 과연 어느 정도나 별스런 일일지, 모모스케는 짐작이 되지 않았다. 모모스케가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마타이치는 이어서 이렇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이나리자가 기에몬이 효수되었다지요."
- 모모스케는 마타이치가 오기 전까지 바로 그 기에몬에 대해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옥문형은 별일로 꼽을 만한 일은 아닌 듯 싶기도 하다. 다섯 냥을 훔치면 목이 날아간다는 이 험한 시절, 매일이야 물론 아니더라도 참수된 목은 빈번하게 내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마타이치처럼 음지의 업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자들에게는 드문 일도 아니리라.
그렇게 말했다.
-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모모스케는 굳이 단언한다. 다만 그것은 자신에게 이르듯 흘린 말일뿐이다.
단언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 "선생께서 그리 생각하시는 데에는... 무언가 근거가 있으신지...?"
아니나 다를까, 마타이치는 지그시 눈을 올려 뜨고서 물어왔다. 이 사내, 교묘히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인물이다.
"근거고 뭐고..."
죽은 자가 되살아난다는 이야기란 보통은 덥석 받아들이지 못하지 않느냐고 모모스케는 대답했다.
"아니 믿습니다. 믿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이치에 맞지 않아도 유분수지요."
"고금동서의 괴담에 정통하신 선생께서도 들은 적이 없다. ... 그러한 말씀이신지."
"삼도천을 건너다 말고 돌아온다. 이른바 가사상태에서 생활한다는 이야기는 많습니다. 그러나 기에몬의 소문은 다르지 않습니까?"
- "항간을 떠도는 소생담의 대부분은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있었다 하는 것입니다. 사흘째 되살아난 할아버지나 봉토를 밀쳐내고 무덤에서 나온 할머니 등, 예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요. 그 모두, 제 보기에는 의원의 진료가 틀린 것입니다. 매장이 지나치게 빨랐을 뿐이지요. 완전히 숨통이 끊어지고... 정말로 죽었는데, 그런 다음에 되돌아온다면 그것은 망령이나 원혼이라고요."
- "그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무엇을요?"
"순시하러 온 관리의 이름 말입니다."
"아하. 음, 자백하자면, 궁금해서 기에몬에 대해 좀 알아보았습니다."
- "사마귀... 말입니까?"
"복사마귀라 하는 것이겠지요. 이마 한복판에 있었으니 잘못 보지는 않았을 겁니다."
마타이치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모모스케는 조금 경계한다.
방심할 수 없는 사내다. 이 어행사, 언변으로 상대의 흉중에 비집고 들어선다. 깨달았을 때, 이미 상대는 이 사내의 의도대로 휘둘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본심도 알지 못하고 진정도 헤아릴 수 없다.
- 그러한 까닭에...
이 사내, 마타이치는 '잔머리 모사꾼'이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다. 잔머리 모사꾼이란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니다. 허점을 찾아내 파고들거나 농간을 부리고 감언이설로 사람을 속인다는 뜻이다. 결국 잔머리 모사꾼 마타이치는 말이 무기인 것이다.
- 그러한 마타이치가 말을 멈추었다. 경계해서 나쁠 것은 없다.
마타이치는 그대로 잠시 머리를 숙이고 있었으나 이윽고 고개를 들었다. 평소의 얼굴이다.
- "선생..."
"어, 어찌 그러시는지?"
"단벌 홑옷에 이 중대가리는 어찌 보아도 여름철 행색. 걸식 어행사에게 섣달 바람은 역시 찹니다요. 잠시만 안으로 들여보내... 주시겠습니까?"
모모스케가 어안이 벙벙해 건성으로 답을 하자마자, 마타이치는 몸을 스윽 낮추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지문이 스윽 열리고 마타이치가 들어왔다. 본채와 별채를 잇는 복도로 들어왔으리라. 손에는 짚신을 들고 있다.
- "괜찮으신지요?"
"예에... 비, 비좁습니다만."
모모스케는 허둥지둥 문서와 종이다발 무더기를 밀쳐내고 바닥을 드러내 앉을 자리를 만든다. 이 방에는 방식도 없다. 거치적대는지라 전부 본채로 옮겨 치워버린 것이다.
마타이치가 앉았기에 모모스케는 차라도 부탁하려고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어행사는 짤막한 동작으로 모모스케의 움직임을 막았다.
"어허, 마음 쓰지 마시기를."
"하지만."
"현관을 지나지 않은 객이 있다는 것은 묘할 텐데요."
그도 그렇다.
- "실은, 선생..."
마타이치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오긴은 떠돌이 예인, 소생은 보다시피 거렁뱅이 중 차림새를 하고 있습지요. 출생지는 있어도 신원보증인은 없는 몸. 이른바 무숙자올습니다."
"저는 그러한 점, 개의치 않습니다."
그런 말이 아니라고 마타이치는 말했다.
"기에몬의 이야기입지요."
- 어행사는 좀 전까지 자신이 머물렀던 창쪽을 보았다.
"표면이 있으면 이면이 있고, 낮이 있으면 밤도 있는 법. 바깥쪽에서는 전혀 모습이 보이지 않는 기에몬도 안으로 들어서면 잘 보이지요. 기에몬은 소생들, 소악당 패거리 사이에서는 모르는 자가 없는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오호, 그러하군요. 그럼, 저, 마타이치 씨도 면식이 있습니까?"
훗, 하고 마타이치는 웃었다.
"그러니 사소하게라도 얽혀 있으면 한도 생길 법하지요. 오긴도 그 길에 몸담은 지는 오래됐습니다."
그야 그러하리라. 오긴이라는 여자, 과연 몇 살인지 외모로는 가늠할 수 없으나, 그럼에도 그 행동거지는 여간내기가 아니다.
- "그런데..."
마타이치는 얼굴을 가까이 댄다.
"기에몬은. "
"기에몬은?"
"정말로... 과거에 두 번 죽었습지요."
- 모모스케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고서야 가까스로 마타이치의 말을 알아들었고, 이어 그 얼굴을 쳐다보았다. 진지한 얼굴이다. 하기야 모모스케 같은 인물이 바다에 천 년 산에 천 년 나누어 산 미륵삼천 잔머리 모사꾼의 얼굴빛을 읽는 일 따위, 애당초 불가능한 이야기이기는 하겠으나.
- 배콧자리 훤하게 살쩍까지 밀어내고, 단출히 틀어 올린 은행잎 상투, 문장 박힌 검정 겉옷 허리춤에 말아 넣고, 가로누운 칼자루에 소매 끝 살풋이 얹어... 라고 노래로 불릴 정도로 세련된 모습. 장군 행차 시에도 그 평복 차림이 허용될 만큼 멋스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멋스러워야 할 평복 차림도 이런 식이면 게으른 자가 단순히 하의를 잊고서 입지 않은 듯하여 이만저만 꼴불견이 아니다.
-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나는 자네의 형 야마오카 군파치로와는 동문인데..."
모모스케의 친형은 하치오지 천인동심이다.
모모스케와 달리 매우 반듯하며 검술도 상당한 실력이라고 들었다. 동문이라고 하는 이상, 같은 도장에 다녔다는 의미일까.
- 짐작대로 퉁명스러운 대답이다.
그보다 얼른 들어오라며, 노인은 이쪽을 돌아보았다. 몹시 언짢은 표정이나, 이것이 평소의 얼굴임을 모모스케는 알고 있다.
그래서 잠자코 들어선다.
- "저어... 마타이치 씨는 지금...?"
"마타 공은 오긴과 함께 있수다. 그 계집애가 일을 그르치게 되면 우리까지 위험하니."
"또... 무언가 작업을?"
"흥. 이 세밑에 성가셔 죽을 지경이라고. 하지만... 뭐, 이번만은 어쩔 수가 없지. 오랫동안 곪아온 농을 덜어내려면 지금밖에 없으니 말요."
- 지헤이는 모모스케가 알아듣지 못할 푸념을 늘어놓더니 누덕누덕한 방석을 내밀었다.
"뭐요? 어째 어두운 얼굴이구먼. 팔자 늘어진 도락가면 극락잠자리다운 표정을 지으란 말요. 우리 같은 가난뱅이와 달리 먹고 사는데 곤란할 일도 없을 텐데."
지헤이는 언제나 이렇게 진지한 얼굴로 악담을 퍼붓는다. 어디까지가 본심인지 알 길이 없다.
"유감스럽지만 고추좀잠자리에게는 계절이 가혹해서요. 겨울철은 난감합니다."
모모스케가 가볍게 받아치자 노인은 아아, 하고 신음하듯 말하더니 몸을 옆으로 틀었다.
- "어째서... 그런 걸 묻는 거요?"
"아니, 마타이치 씨도 오긴 씨도 알고 있는 것 같기에 혹시나 싶었던 겁니다. 오긴 씨의 입에서는 원한이 있다는 말까지 나와서."
"원한이라..."
마타이치와 같은 반응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상당히 달랐다.
"그렇겠지. 마타 놈은 일단 미뤄놓더라도, 오긴 녀석으로서야 한 서린 한 마디쯤 당연히 뱉고 싶어질 거라고."
- 지헤이는 실로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모모스케는 그게 대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몹시도 알고 싶다. 오긴 같은 여자에게도 인간적인 한이 있단 말인가. 물론 있기야 하겠으나.
지헤이는 다시 한번 흥 하고 콧소리를 냈다.
"오긴이란 계집은 말요, 그것이 그리 보여도 고생이 참 많았다고. 어쨌거나 원래는 이 시궁창에 뒹구는 듯한 생활과는 연이 없었을 계집이니."
- "으음. 어렸을 적에는 애지중지 갖은 보살핌을 받으며 고이 자란 아가씨였지. 다도에 꽃꽂이에 읽고 쓰기며 노래, 춤, 악기에 이르기까지, 배우고 익히기도 얼추 다 시켰다고 하더구먼."
"예에..."
모모스케는 약간이지만 놀란다.
소악당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서는 입이 무겁다.
그뿐 아니라 그것은 묻기 껄끄러운 것이기도 하다. 모모스케가 마타이치 일당과 어울리게 된 이후로 가장 신경을 쓴 것은 바로 무얼 감추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조차 어디까지 끼어들어도 될지 늘 망설임이 앞서는 것이다.
- "오긴에게는... 아비가 없었소."
"돌아가셨는지?"
"아니, 애초부터 없었소. 그 녀석은 아비 없는 자식이었다고. 그... 오긴의 모친 되는 이가 그 요정의 무남독녀였는데, 이 이가... 뭐, 사내와 눈이 맞았고, 아니나 다를까 배가 불렀지. 허나 사내 쪽은 뭐, 그렇고 그런 게요."
"불성실한 남자... 였습니까?"
"아니, 들은즉슨 서로가 진심으로 연모했다고 하더구먼. 허나 선생, 세상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게 있지 않소."
- "암. 이를테면... 선생은 어찌 구른들 우리하고야 다르지. 근본을 따지자면 무가 출신이고, 지금도 번듯한 상점의 젊은 은거인. 형님께서는 동심 나리잖소."
"예. 허나."
"나는 죄인이고 무숙인이오. 장적도 없고 가족도 없지."
-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다. 그렇게 판단했던 것이다. 모모스케는 이대로 괜찮을 리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것이 마타이치의 뜻이기도 한 것처럼... 모모스케에게는 느껴졌기 때문이다.
- 왜냐하면 마타이치가 지헤이에게 부적을 맡길 때 부적의 용법을 알려주기는 했으나, 그 부적을 어떠한 목적에 쓰는지는 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부적은... 기에몬이란 존재를 멸하기 위한 주구(呪具)다. 그러나 어행사는 지헤이에게 요괴 고와이를 퇴치하는 부적이라는 말밖에 전하지 않은 듯했다. 부생(復生)에 회의적일 뿐 아니라 일을 벌이는 데에도 소극적인 지혜이에게 혹여 사실을 이야기한다면, 그 부적은 십중팔구 모모스케의 손에 전해지지 않을 터... 그러한 모사꾼의 뜻을 모모스케는 민감하게 알아챈 것이다.
- 다도코로는 크게 기뻐하며 모모스케를 안으로 들였다.
모모스케가 보기에 살림살이는 상당히 궁핍한 듯했다. 외관은 둘째치고 안은 지헤이의 장옥과 별 차이가 없었으며, 게다가 놀랍게도 다도코로는 홀몸이었다. 세인이 놀려대기를 홀아비 살림은 뭐가 몇 말이라고들 하지만, 정말이지 그 말 그대로의 살림살이였다. 하인도 없고 드나드는 허드레꾼조차 없는 모양이었다. 풍모가 신통치 않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모모스케는 다라니 부적을 다도코로에게 건넨 후, 지헤이로부터 들은 그 사용법을 극진하고 정중하게 전했다.
다도코로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지극히 진지하고 성실하게 모모스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크게 감사했다.
- 되살아났다는 것을 전제로 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 정보를 신뢰한다는 것은 봉행소가 기에몬의 재생을 일단 인정한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하지는 못할 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나랏일을 맡은 자의 입장이다. 풍문에 휘둘려 경망하게 움직일 수는 없다. 거창하게 나섰는데 헛걸음질로 끝난다면 개망신이 따로 없다. 더구나 그것이 함정이기라도 하다면, 그래서 무언가 불상사가 생기기라도 한다면, 봉행소의 위신은 그야말로 땅에 떨어져 버리게 된다.
- 그러나 아무리 미심쩍은 정보일지언정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다.
부활 운운은 차치하더라도, 기에몬을 자처하는 누군가가 모종의 이유 - 이를테면 병이나 부상 등- 로 그 장소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든지 하는 경우는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자가 여력 납치에 무언가의 형태로 관련된 자일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는 천재일우의 호기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다도코로 출동의 대의명분이 되었던 듯하다.
- 관아로서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역시 인원을 대거 투입할 수도 없었던 모양이다.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기에 말리는 이도 없었다고 다도코로는 말했으나, '이번 일은 가고 싶어 하는 바보한테 맡겨두자'라는 판단도 있었던 듯하다. 출동은 어디까지나 다도코로의 판단, 관아는 그것을 마지못해 용인했을 뿐이라는 모양새로 해두면 설령 헛걸음질로 끝나더라도 다도코로 개인의 책임이 된다. 함정이었을 경우라도 걸려드는 이는 다도코로 뿐이다. 미운털 혼자 목숨을 잃을 뿐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 다도코로는 기척을 죽이고 가까이 다가가 격자문 너머로 사당 안의 상황을 살폈다.
'좌선이라도 하고 있는 듯했다. 꼼짝달싹하지 않았다'고, 후일 다도코로는 술회했다. 어쨌거나 일반적인 상태로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다도코로는 안에 앉아 있는 자가 미동조차 하지 않는 것을 확인, 돌입하기로 결의했다. 수하 두 명은 좌우로 배치, 딴꾼이 격자문을 열어젖힌다는 계획이다. 다도코로는 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다도코로는... 아교가 듬뿍 칠해진 다라니 부적을 오른손에 들고 있었으므로.
- 혹여.
안에 있는 자가 기에몬이 아니라고 해도... 이마에 부적을 붙이는 것뿐이라면 수습도 어렵지 않으리라. 칼로 베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혹여.
기에몬이 둔갑요괴가 아니라서 부적의 효력이 없다고 해도...
- 마타이치는 깍듯이 예를 다해 말했다.
"좀 늦었습니다만, 새해 인사를 드리러 찾아뵈었습니다. 사실을 아뢰자면... 예 있는 오긴과 소생은 선생께 꼭 드려야 할 말씀이 있사옵니다."
- "잠시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어행사는 그렇게 말했다.
"섭섭하게 무슨 말씀이시랍니까. 저는 세밑부터 꽤나 찾아다녔습니다."
"어허."
마타이치는 한쪽 무릎을 꿇고 한 손을 땅에 짚고서, 고개를 들지않은 채 대답했다.
"보시다시피 빌어먹는 중의 차림새. 소생은 부정하고도 미천한 자이니 정초에는 아무래도 꺼려지실 것입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천만의 말씀. 그러하옵니다."
마타이치는 얼굴을 들었다.
- 모모이치는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다.
지헤이의 말을 떠올린 것이다.
모모스케와 눈앞의 두 사람 사이에는 분명하고도 확고하게 선이 그어져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신분이나 계층의 차가 아니다. 그 차이는 이른바 각오와 같은 것이다. 세상을 마주하는 자세가 다르다. 모모스케와 같은 사내에게는 압도적으로 그 각오가 부족한 것이다.
- "이번 일... 정말 고맙습니다."
마타이치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머리를 숙였다.
- "허나, 마타이치 씨."
"미리 모든 것을 아뢰지 않았다는 점은 사실. 그러나 선생을 속인 것은 아닙니다. 그 증거로 이렇게 찾아뵙고서 머리통을 조아리고 있는 것이지요."
"설명... 해주시겠습니까?"
마타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이나리자가 기에몬은 맨 처음 조서에 적힌 대로 천민들의 우두머리이신 단자에몬 님 배하의 공사 중개인이었습니다. 다만 인품은 다르지요. 의리 있고 인정이 두터운 까닭에 의지하는 자와 따르는 자가 꼬리를 물고 이어져, 무숙인과 천덕구니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을 만큼 덕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그러나."
마타이치는 말을 이었다.
"그 인품을 이용하려고 작심한 악당이 있었던 게지요. 자리의 성격상, 기에몬은 공사인의 내밀한 사정을 알게 됩니다. 또한 신뢰를 받고 있으니 이것저것 털어놓는 자도 많지요. 허나 모여드는 무리는 하나같이 세간을 꺼리는 신분의 자들뿐 늘어놓는 이야기도 음지의 생업에 관한 것들. 그리하여 기에몬의 거처에는 어느새 많은 비사(秘事)가 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 "하지만 그리 뜻대로 풀린답니까?"
"높은 인질을 잡았던 것입니다. 시키는 대로 하면 잘 보살펴주고, 죄도 과오도 눈감아주겠다. 허나 저항하면 엄벌에 처할 뿐 아니라 부모와 자식을 죽이겠다..."
"그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아무리 약점을 잡고 있다 한들, 그놈 역시 같은 무숙인 아닙니까?"
"아닙니다" 하고 마타이치는 말했다.
"그 생각을 해낸 이는 무사 놈들은 소생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지요."
- "아아..."
시정 봉행소와 단자에몬은 밀접한 관계이다.
단자에몬은 관동팔주에 거하는 천민들의 우두머리... 비인, 길거리 예인, 원숭이 조련사 등 천민 신분의 총괄자이다. 신분은 낮지만 권세는 높다. 봉행 친견도 가능하다. 천민이라 해도 사농공상의 틀에 들지 않을 뿐, 사람이라는 사실에 격차는 없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직업이 다를 뿐, 그들을 업신여길 연유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고 모모스케는 생각한다. 허나 그들이 일반 백성과 다른 지배 체계에 속해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이는 결국 나라 안에 또 다른 나라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한 사정은 막부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업신여기는 척하여도, 단자에몬은 매년 막부에 이래저래 상납을 하고 있으며, 막부 또한 노무(勞務)를 할당하고 있다. 그들 없이 에도의 행정은 성립되지 않는다.
봉행소도 정보 교환을 위해 당연지사 단자에몬의 거처로 출입하게 되는 것이다.
- "끔찍한 이야기이지요" 하고 마타이치는 말했다.
"기에몬을 믿고 찾아오는 자는 하나같이 단자에몬의 그늘에도 들지 못하는 따라지 인생. 이 세상에 자신의 편이란 한 명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무리이지요. 놈은 그런 이들을 자신의 탐욕과 이득을 위해 이용해먹고서 가차 없이 버렸습니다."
- "역시... 인질이 잡혀있었던 게지요."
"인질."
"처와 아이. 그것도 법도로 금한 처자였습니다."
"법도로 금한?"
"기에몬은 신분 차이가 있으면서도 상가의 딸과 정을 통하고, 자식을 낳았던 게지요."
- 모모스케는 그제야 술책의 전모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 그럼, 그때 그 형장에서 오긴 씨는..."
오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왔더군요. 그놈이. 나는 그곳에서 평생 잊지 못할 얼굴을... 증오스러운 원수의 얼굴을 똑똑히 보았던 것입니다."
- "참으로 주도면밀한 사내인지라" 하고 마타이치는 말했다.
"예 있는 오긴은... 혼자 복수를 할 작정이었습니다. 허나 아무리 허세를 부려본들 이 녀석은 암여우, 기껏해야 소악당. 감히 봉행소 여력님께 맞서다간 무사할 리 만무하지요. 도리어 당하는 게 고작. 그러니..."
오긴은 눈을 감았다.
마타이치는 모모스케를 올려다본다.
"선생께서 그 자리에 함께 계시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일을 소생에게 알려주시지 않았다면 소생은 틀림없이 때를 놓쳤을 것입니다. 놈의 술책이 먼저 부활해 버리면 더는 손쓸 도리가 없는지라 무얼 어찌하든 한발 늦게 되지요. 선수를 친 것은 선생 덕분입니다."
- "그럼... 항간에 소문이 다시 나온 것은..."
"그것은 소생이 퍼뜨렸습니다. 사사모리는 당혹했지요. 어떤 자가 자신의 술책을 흉내 내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술수 대결은 먼저 당황하는 쪽이 패합니다. 놈은 결국 꼬리를 드러냈지요. 진짜는 바로 이쪽이란 듯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제야, 그제야 얼굴이 보였지요." 여느 때와 달리 마타이치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 "처형은 소생들에게 주어진 몫이 아니지요. 소생도, 놈에게 부모를 잃은 오긴조차도 무숙인에 불과할 따름. 남을 심판할 입장이 못 됩니다. 사람을 베고서도 당당히 활보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관부뿐. 이놈만은 관(官)의 손을 빌어 목을 베어야 조리가 서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전, 오긴 아버지의 머리가 효수되었던 그 옥문대에 똑같이 내걸어야겠다고 말이지요."
"그럼 그 부적은..."
- 마타이치는 웃었다.
"지울 수 없는 증거... 배에 있는 여우 문신, 그리고 목둘레에 그어진 붉은 선. 그건 전부 그 영감이 새긴 것입니다."
"아아..."
그때 지헤이는 그것을 새기고 있었나.
반침 속에 고와이가 있었던 것이다.
- "그러니, 선생..."
"알고 있습니다."
- 알고 있다.
마타이치도, 오긴도, 지헤이도, 결국 저편의 인간이라는 뜻이리라. 너와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 그러니 깊숙이 발을 들여놓지 말라. 마타이치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 틀림없다. 미리 모모스케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 않는 것도 무언가 일이 터졌을 때 누를 끼치지 않겠다는 소악당들의 배려이리라. 당연한 일이다. 알고 있었던들 도움이 되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모모스케는 여염사람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모모스케는 반쯤 속는 것이나 다름없는 꼴을 당하여도 놀라기는 하나 노여운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 "그래도 올라오지 않으시겠습니까?"
모모스케는 그렇게 말했다.
"오긴 씨가... 추위에 떨고 있으니까요."
오긴은 얼굴을 돌린 채 아주 가늘게 떨고 있었다. 마타이치는 그 모습을 흘깃 보더니, "그럼 따뜻한 차나 한 잔 얻어 마실까요"라고 말했다.
- <고와이>
- 모모스케가 간다에 있는 책장수 헤이하치의 점포를 찾아간 것은 바람도 뜨듯해지기 시작한 오월 중순이었다.
- 점포라고는 하여도 장옥의 일각일 뿐, 번듯하게 차려놓은 것은 아니다.
책장수란 발로 걸어 다니며 장사를 하는 이른바 등짐장수이므로, 본시 가게는 필요가 없다.
그러나 책장수는 물품을 파는 여느 행상과는 좀 다르다. 상품을 지고 돌아다니기는 하지만, 주된 객은 거의 정해져 있다. 단골 거처를 돌며 요망하는 책을 빌려주고 그믐날에 대금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여느 장수들처럼 목청 높여 물품을 팔러 다니지는 않는 것이다. 책은 팔아치우는 것이 아니라 사흘 기한으로 빌려준다. 요청만 있으면 어떠한 책이라도 가져다준다. 빌려주는 것이므로 상품은 곧 자신의 손에 돌아온다. 새로운 책만 취급하는 것은 아니므로 재고도 어느 정도 껴안고 있게 된다.
- 그러므로 헤이하치의 방은 책 천지다.
다만, 똑같은 책 천지라도 모모스케의 한적한 거처와는 달리, 헤이하치의 방은 어딘지 모르게 화려하다. 빛깔이 있기 때문이다. 모모스케의 골방에 있는 것은 이른바 기록, 고문 종류지만 헤이하치의 거처에는 책뿐 아니라 풍속화에 춘화, 안경집 등도 있다.
그러한 물품들은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판매한다.
- 책장수에게 안경집이라니 참으로 생급스럽다는 인상을 주는데, 한마디로 눈이 나빠서야 책을 읽을 수가 없다, 고로 안경도 소중히 다루자는 의미이다. 다만, 안경 자체는 고가의 물건이기도 하고 초보자가 팔아치울 수 있을 만한 상품도 아닌 까닭에 취급하지 않는 듯, 그 결과 안경을 보호하는 갑을 취급하게 되었다고 한다.
- 헤이하치는 에도뿐 아니라 경계의 바깥, 이웃하는 여러 지방 등도 돌고 있다. 시골로 갈수록 확실히 책을 구하기 어렵다. 신간이 환영받는다는 이치야 모르는 바도 아니다. 그러나 여행이란 돈이 들기 마련이다. 거금의 노자까지 들여가며 그토록 먼 곳을 도는데 과연 이문이 남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반쯤은 도락 삼아 돌고 있을 것이라는 의심도 하고 있다.
- "아무래도 천성 같은 것이 아닐까요?"
"천성이라니... 어째 흘려듣지 못하겠군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처럼 섬뜩한 소행을 저지를 심성을 가지고 있다, 헤이하치 씨는 그런 말씀입니까?"
"그야 아니겠지요" 하고 동안의 책장수는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 지 같은 놈이야 태생이 일단 미천하니 말이 선생 하고는 달리 품성이라는 게 없거든. 그러니 코흘리개 시절에는 꽤나 잔인한 놀이를 했다고요."
"잔인한 놀이요?"
"예, 뱀의 생가죽을 벗기거나 벌레의 다리를 뜯어내고. 지금 돌이켜 보면 어째서 그런 짓을 했는지, 무엇이 재미있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단 말이지요. 하지만 그때는 즐거웠다우. 선생도 했지요?"
"뭐, 조금은요. 허나 헤이하치 씨, 아이들은 무분별하기 마련이잖습니까."
"어른도 다를 바가 없을걸요" 하고 헤이하치는 말한다.
- "세 살 버릇 여든 간다지 않수. 세상에는 오만 사람이 다 있다고요. 유아 취향이니 남창이니, 남색 정도야 지금 세상에는 당연하잖수. 빨간 속치마만 보면 몽롱해지는 어르신이며, 여자 목을 조르지 않으면 일도 못 치르는 무사며."
"뭐, 성벽(性癖)은 각양각색이겠지요. 허나 그러한 면은 남에게 피해야 아니 주지 않습니까."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헤이하치는 말했다.
"들은 이야기인데, 정분을 나눌 때마다 상대 남자의 피를 빨지 않고는 못 견디는 성격의 여자나, 불난 것을 보지 않으면 흥분이 안 되는 여자까지 있답디다. 그리 되면 성벽이라고 해도 남한테 피해를 끼치지 않고서는 만족을 못하지. 그러니 말이우, 작년의 노두참살처럼 잔인무도함을 즐기는 성벽인 분도 있기는 있겠다 싶은데. 다만 그게 유행을 해버린다면 난감한 노릇이지요."
"그러한 것에 유행이 있을까요?"
"있다마다요." 헤이하치는 동그란 얼굴의 동그란 눈을 부릅떴다.
- "지 생각인데, 이건 유행병 같은 것이 아닐까요? 옛날하고 달리, 요즘은 말(言)에 발이라도 달린 듯 하잖우. 금세 퍼지지. 따라해보고 싶어질지 어떨지, 그야 알 수 없지만서도, 전염되는 게 아닐까요? 아 글쎄, 선생, 도읍 쪽은 지금 전전긍긍이라고요."
- 모모스케는 눈을 가느스름히 뜨며 노골적으로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헤이하치 씨, 당신은 그런 이야기를 제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입니까? 싫다고 하지 않습니까."
책장수는 피식 웃더니 검지로 뺨을 긁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이거 뭐, 발칵 뒤집히기만 했지 범인이 오라를 받을 기색은 도무지 없는지라, 아무래도 위험하다, 일단 목숨부터 부지하고 볼 일이다 싶어, 지는 총총히 도읍에서 나왔단 말이지요. 한데 돌아오는 길에 또..."
- "호리코시 고개에서 샛길로 빠져 좀 멀찍이 돌았지요."
늘어진 팔자다. 평생토록 여행은 해볼 수도 없는 가난뱅이가 대부분이건만... 모모스케는 거기까지 생각하고서 자신과 자신의 처지를 일고(一顧), 남의 일이 아님을 깨닫고 자중했다. 헤이하치의 경우는 일단 스스로 벌어서 먹고살며 노는 것이다. 수입이 없음에도 어정어정 나돌아 다니는 만큼, 모모스케가 훨씬 더 변변치 못하다는 이야기가 되리라.
- "시치닌미사키라?"
참 의외의 이름이 튀어나왔다고 모모스케는 생각했다.
"별난 이름이지요" 하고 책장수는 웃었다.
"일곱이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당연히 일곱이 있습니다."
"알고 계신 거유?"
"알고 있지요."
- 마음먹고 여러 지방의 괴담을 모으기 시작한 지 오 년. 모모스케는 상당한 지식을 축적하고 있다.
"그것은 도사 일대에서 말하는 액신(厄神)의 일종 같은 것입니다. 맞닥뜨리게 되면 죽는다는... 뭐, 재앙을 내리는 귀신이지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하직한 망자를 묻지 않고 연고가 없는 상태로 방치해 두면 이것이 된다고도 합니다."
"연고가 없는 송장이 그리 되는 것입니까?"
"뭐, 미사키라 함은 성불하지 못한 영... 이라는 의미일까요. 야마(山) 미사키, 가와(川) 미사키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산에서 죽은 자, 강에서 죽은 자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지방에 따라서는 산신과 수신의 권속, 사역신이라고도 하니 단순히 악령과 같은 존재로 여겨버리는 것은 경솔한 생각이지요. 미사키 신앙이란 좀 더 복잡하고 심오한 것이잖습니까. 뭐, 어쨌거나 사람에게 불행을 가져오는 마(魔)임은 틀림없지요."
- "시치닌미사키는 일곱이 있습니다. 한 사람을 앙화로 죽이면 일곱 중 하나가 성불. 그러나 앙화를 입어 죽은 자가 새롭게 한패로 가세하니 수는 줄지 않지요."
"골치 아프구먼요."
"아니, 아니, 이는 한 사람당 일곱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자신이 죽은 그 장소에서 일곱 명의 인간을 양화로 죽이지 못하면 부처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그러한 것이 일곱."
- "어마어마한 새끼치기일세. 이거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형국 아니우? 그곳은 작은 번이라서요. 그런 식으로 가면 새해가 밝기 전에 영민과 번사, 그리고 번주에 이르기까지 목숨을 잃고 말겠구먼요."
"허나" 하고 모모스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기타바야시 번은 와카사의 산속에 있잖습니까? 도사와는 너무 많이 떨어져 있지요."
"다른 요괴일까요?"
무어라 답을 할 도리가 없다. 무엇보다 요괴가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 "아니, 그런 것 같기는 한데요."
책장수의 말은 영 시원스럽지 못하다.
"지는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맨 처음엔 하인들의 쑥덕거림을 들었단 말이지요. 작년 말의 일인데, 아 글쎄, 요괴가 저주로 죽였다지 뭡니까. 저주로 죽이다니 심상치가 않다, 전해에는 일곱이 죽었다더라, 저주를 내리는 것은 시치닌미사키라는 귀신이라나 뭐라나... 시치닌미사키란 이름, 에도 언저리에서는 귀에 설잖우. 그래서인지 살짝 호기심이 동하더라고요."
"그래서 샛길로 빠져가면서까지?"
방랑자가 따로 없다.
- "뭐, 방금 말했다시피 사람이 죽기는 했더구먼요. 지가 들어가기 전날에도 한 명이 당했고... 한데, 뭐니뭐니해도 시골이잖수, 도회지와는 연이 없는 촌무지렁이들뿐이라 돈주머니도 안 열리고 입도 안 열리더라고요. 타관바치인 지한테는 입도 뻥끗 않는 데다, 장사 쪽도 영 시원찮아서."
"구슬려 삶기의 명수인 헤이하치 씨의 솜씨로도 실패했단 말입니까?"
으헷헷, 하며 헤이하치는 이마를 쳤다.
- "저주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글쎄요..."
모모스케는 피식 웃었다. 모모스케 머릿속의 둔갑 요괴는 결코 그러한 존재가 아니며, 또한 창작이라 하여도 그래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 모모스케의 생각이다.
"무엇보다 요괴는 거죽을 벗기거나 배를 가르지 않습니다."
- 헤이하치의 부탁이란, 대부분을 생략하고 간단히 말하자면 사람을 찾는 일이었다.
책장수는 여자 한 명을 찾아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 여행에 익숙하다고는 하나, 모모스케는 헤이하치보다 훨씬 발이 좁다.
모모스케의 생업은 글쓰기다. 이는 오로지 방에 틀어박혀 있기 마련이다. 책장수와 달리 유곽이며 상가며 도박장 같은 사람이나 이야기가 모일 만한 장소에 출입하는 일도 일절 없고, 게다가 능수능란하게 대인관계를 끌어가는 재주도 가지지 못했다. 모모스케의 정보원이란 대부분이 서책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듣기는해도 모모스케의 경우는 옛날이야기나 전승 쪽이 전문이다. 사람 찾기의 적임자라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는다. 허나.
그런 점은 헤이하치도 충분히 알고 있다. 헤이하치가 믿는 구석은 모모스케가 아니라, 모모스케의 등 뒤에 있는 패거리다.
- 헤이하치는 알고 있는 것이다.
모모스케가 웬만한 수로는 다루지 못할 발칙한 패와 교류가 있다는 사실을...
- 세상에는 정정당당히 정면으로 맞서 싸워서는 해결이 나지 않는 일이 있다.
옳건 신중하건 잘 풀리지 않는 일도 있다. 어차피 세상은 그러한 법이다.
그것은 모모스케도 그렇게 생각한다. 약한 자만 피눈물을 쏟는다든가, 악이 판치는 세상이라든가, 그처럼 틀에 박힌 말에는 전혀 동조할 수 없으나, 그럼에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일이란 역시 엄연히 있기 마련이다.
그 패거리는 그처럼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일을 어떻게든 해결하는 것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 아무리 사방팔방 다 막힌 상황이라 할지라도 이 술수, 저 술수, 꼼수에 비장의 수를 구사하고, 앞으로 뒤로 온갖 책략을 펼쳐 어떻게든 해결해 버린다. 당연히 비합법적인 행위를 하는 적도 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세간을 속이게 된다. 칭송받을 만한 일은 아닐지 모른다.
아니, 어떠한 경우든 밥벌이로 하는 일이므로 선악이나 옳고 그름, 강자와 약자는 상관이 없다. 한 마디로 그저 부탁받은 일을 수행할 따름이며 대의명분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악당은 아닌 것이다.
- 그것이 친분을 맺은 모모스케가 방관자로서 갖고 있는 견해다. 물론, 해가 비치는 곳에 당당히 있을 수 없는 무리라는 것은 틀림이 없으나, 그들은 결코 도리에 어긋난 짓은 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그토록 감쪽같이 세상을 속여 넘길 수 있다면 잇속도 원하는 대로 챙길 수 있을 텐데... 그리 생각하는 적도 왕왕 있으나, 일당의 살림살이는 하나같이 먹고살기에 급급한 형편이다. 폭리를 탐하는 경우도 없다. 천한 신분을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다.
굳이 말하자면 소악당... 이라 할까.
- 헤이하치는 모모스케가 그 일당과 접촉하고 있다는 것을 어디선가 냄새 맡고 온 듯했다.
모모스케는 헤이하치에게 발설한 기억이 없다.
"끼리끼리는 통합지요" 하고 헤이하치는 말했다.
그리고 "소문 자자한 잔머리 모사꾼에게 다리를 놓으려니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라서요"라며 보탰다.
그렇게 돌아가는 법일까.
... 잔머리 모사꾼.
- 잔머리 모사꾼이란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거나 꼼수를 부려 덫에 빠뜨리는 이를 말한다. 그다지 칭찬이라 할 수 없는 그 별칭을 가진 사내... 잔머리 모사꾼 마타이치야말로 소악당들의 중심인물이다. 헤이하치는 그 마타이치에게 일을 부탁하고 싶다는 것이다.
마타이치는 확실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이기는 하다. 항간의 풍설에 따르면 이 마타이치, 속이고 흘리고 어루쇠고, 달래고 부추기고 추어올리고, 어르고 뒤흔들고 간살을 부리는 등 별의별 언설을 펼쳐 담판을 뜻대로 이끈다고 한다.
- 그러나.
모모스케도 늘 농락당하고 있는 처지다.
헤이하치의 청에 모모스케는 솔직히 당혹했다.
모모스케는 마타이치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는지,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연인지 어떤지 모르지만, 마타이치는 언제나 적절한 시기에 훌쩍 모모스케 앞에 나타난다. 때문에 불편을 느낀 적은 없었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모모스케 쪽에서 다리를 놓은 전례는 없는 것이다.
- 그럼에도 모모스케는 헤이하치가 빌다시피 사정사정하는 통해 마지못해 알았다고 대답한 후에야 그 집을 나섰다.
모모스케는 어쩔 수 없이 고지마치로 향했다.
- 모모스케는 팔짱을 끼고 스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짤랑.
요령 소리...
돌아보자, 맞은편에 비스듬히 자리한 유녀옥 이층의 철단(鐵丹)격자, 그 사이사이로 백장속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마타이치 씨."
백목면 행자두건에 홑옷... 어행사 차림의 마타이치다.
- "마타이치 씨, 찾아다녔습니다."
"소생을 찾아다니셨단 말입니까? 오카바쇼에 모모스케 선생이라니, 이것 참, 별스러운 풍경이다 싶은뎁쇼. 그나저나 만만치 않구먼요. 용케 이곳을 다 알아내시고..."
"그야 뭐..."
소 뒷걸음에 쥐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올라오시겠습니까?"
"돼, 됐습니다."
"에이, 여랑이 사람 잡아먹지는 아니합니다. 지극히 심성 고운 이들뿐입지요. 그리 정색할 것 없다니까요. 그보다 선생, 그런 곳에 뻣뻣이 서 있다가는 애먼 봉변당하실 겁니다. 이 일대의 호객꾼은 악질인지라."
그 말을 듣고 시선을 내리자, 가가호호의 틈새로 많은 시선이 모모스케에게 쏟아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더는 배겨낼 수가 없다. 모모스케는 부리나케 마타이치가 있는 가게로 달려가 발을 젖히고 들어섰다. 계산대의 포주 할멈이 매섭게 노려보았다.
"저어."
어이쿠, 하는 마타이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분은 이 몸의 귀한 손님이신데..."
유녀들에게 둘러싸인 마타이치가 계단 위에서 보고 있었다.
"오로쿠 씨, 미안하지만 잠시 동안 이층 좀 빌립시다. 자, 선생, 올라오시오."
- 마타이치는 무슨 심산인지 쌔물쌔물 웃음 지은 채 간드러지는 손짓으로 모모스케를 불러 방 안으로 들이더니, 유녀들을 향해, "승부는 다음에 자리 좀 비워주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화투를 치고 있었던 모양이다. 유녀들은 까르륵대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머나. 옆구리를 찌르고 또 찔러도 눈썹 하나 까딱 않는다 싶더니만... 아휴, 마타 씨, 이쪽이었던 거유?"
"아, 아닙니다! 맙소사..."
모모스케는 펄쩍 뛰며 부정했지만, 마타이치는 그저 웃기만 하며, "엿보지들 마셔!" 라고 하더니 장지문을 닫았다.
- 마타이치는 별로 걱정할 필요 없다며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앉았다.
"소생에게 그쪽 기호(嗜好)는 없습니다."
"그야 당연히 그렇겠지만, 아무래도 오해를."
"아아, 오카바쇼는 격이 낮은 곳인지라."
마타이치는 유쾌하게 웃었다.
"이런 곳에서 점잔을 떨어봐야 별 소용없습니다, 선생. 좀 전의 무리는 다들 사연이 있어서, 소생이 이 가게에 주선한 이들이지요. 매매꾼 노릇은 마뜩찮지만,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으니까요. 창기조차 될 수 없는 자도 있습지요. 그보다..."
무슨 일로 오셨냐고 물으며, 마타이치는 맨바닥에 놓여 있던 물잔에 차를 따랐다.
- 잔머리 모사꾼에게 의뢰가 들어왔다는 말은 하기 껄끄럽다. 잔머리 모사꾼이란 찬사가 아니라 욕이다.
"음, 제게 손을 좀 빌려주실 수 없을까 해서."
"다름 아닌 선생의 부탁이라면, 저야 물불 가리지 않고 어떠한 일이라도 기꺼이 합지요. 자, 무얼 도와드릴까요?"
"예, 사람 찾기를 좀..."
"궁리 선생께서 사람을 찾으신다고요?"
마타이치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사람을 찾는 것이 그리도 의아합니까?"
"아니, 딱히 이상할 바야 없지만... 선생은 살아 있는 인간은 상대하지 않는 분이다. 멋대로 그리 생각하고 있었던지라."
- 그 말대로 모모스케는 서책만 상대하며 사는 듯한 면이 있다. 퀴퀴한 곰팡내나 풍길 뿐, 그 일상생활에서 산 자의 냄새는 맡을 수 없 ...
- "그거 참. 큰일일세" 하고 마타이치는 말했다.
"병환은 아니로군요. 마음의 병, 정신의 병,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간절해 그리 되고 말았다는 것일까요?"
"명답입니다."
이야기가 빠르다.
- "죽도록이라고 하니 호들갑스럽게 들리지만, 식욕까지 없어질 정도니까 과장은 아닐 테지요. 너무도 간절히 보고 싶어서 한 번 만나기 전까지는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다고, 그 마음을 버팀목 삼아 살고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여자입니까?"라고 마타이치는 물었다.
"여자입니다"라고 모모스케는 답했다.
- "교에몬이라는 인물은 뜬소문 하나 없는 착실한 분이었다고 합니다. 이름난 큰 상점의 주인씩이나 되면 일단 첩실 한둘쯤이야 있다는 것이 통념. 그렇지 않더라도 화류계에 염문 하나쯤은 뿌린 과거가 있기 마련이지요. 한데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십오 년 전에 반려를 먼저 떠나보낸 이후 십오 년 동안 여색은 전혀 가까이하지 않았답니다. 여자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라면 암코양이 한 마리조차 가까이하지 않았다지요. 너무도 꼿꼿해, 아드님은 어딘가 편찮은 데가 있는 게 아닐까 걱정까지 했을 정도라 하는데..."
"거참 배부른 걱정일세. 절조가 굳다고 걱정을 하다니, 어째 거꾸로구먼."
"뭐, 그렇기는 하지만요. 그래서 차근차근 물어보니, 이 교에몬 씨, 재산을 송두리째 날리기라도 할까 싶어 근신했던 모양입니다. 아니, 인색해서 그리 생각했던 것은 아닌 듯합니다만..."
"자식이나..."
마타이치는 손에 들고 있던 화투장을 따닥하고 놓았다.
"손자에게 남길 재산을 생판 모르는 남에게 빼앗기게 될 수도 있다. 그리 생각했던 것이로군요."
- "십 년 전이라고 하더군요. 그러한 교에몬 씨에게 여자가 생긴 겁니다."
"오호..."
"교토 여자였다는 모양인데, 출신은 물론 어떠한 경위로 알게 되었는지는 저도 소상히 듣지 못했습니다. 그 이전에 잘 몰랐던 모양이더군요."
"도읍의 여자란 겁니까?"
"말투가 교토 말씨였다고 하더군요. 곱고 나긋한 말솜씨에 행동거지도 고상했다고... 뭐, 미인이었을 테지요. 그러나 스스로 염려하고 있었다시피, 도락의 선은 알지 못하셨던 모양입니다. 빠지고 또 빠지고 아주 푹 빠져서 결국 후처로 들이겠다고 결심을 한 것입니다."
마타이치는 다시 한 번 오호, 하며 무릎을 세웠다.
- "아닙니다. 그 아들이란 사람은 에이키치라는 이름이라 하더군요. 이 사람이 상인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욕심이 없는 인물이라더군요. 일단 외동아들이라고 합니다만, 후계자 문제도 말입니다. 만약 부친이 후처를 얻어 그 여자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자신은 물러나겠다. 그런 말까지 했다고 하더군요. 아드님은 아직 홀몸이었지요. 자신이 살림을 차리는 날이 오면 따로 가게든 뭐든 내달라... 그런 기특한 말까지 했답니다. 그러니 재산이 아쉽다는 이야기는 아니지요."
- "만나서 어쩌겠다는 것일까요? 자신을 버리고 달아난 여자 아닙니까?"
마타이치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어떠한 연유가 있었다 한들, 그 여자는 떠날 때 가네시로야의 간판에 먹칠을 한 여자, 주인을 개망신시킨 여자가 아닙니까? 만난다 한들 어찌 되지도 못할 텐데요. 설마 십 년이나 지나 다시 합친다는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글쎄요..."
모모스케는 남녀 간의 미묘한 심리를 알지 못한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리 되기란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 다시 합치지는 못하리라.
달아났다면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테고, 더욱이 혼례씩이나 올리는 자리에서 달아났다는 상황이라면 그만한 각오가 있었기에 감행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런 상황에서 달아나버린 이상, 어찌 손을 써도 소용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원만히 재결합하지는 못하리라.
게다가 십 년이나 지난 상태다. 십 년이란 세월은 길다. 그것이 상처라면 깊기는 해도 차차 아물 것이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골이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깊게 패일지언정 메워지는 일은 없을 듯이 느껴진다. 아니,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거리는 멀어지는 법이 아닐까.
다만...
- "다만 말이지요."
마타이치는 웬일로 궁금해하는 표정을 보였다.
"실은..."
- "재작년, 가네시로야의 고용인들이 일 관련으로 에도에 나왔을 때에 그 여자를 보았다고 하더군요."
"에도에 머물고 있었다?"
"예, 그게 말이지요. 실은 희한한 일인데, 그 여인, 어떤 신분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옷차림이었다더군요."
"판단하기 어렵다니... 대체 어떤?"
"예에. 어딘가 출가한 듯한 행색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무가, 상가를 불문하고 부인 마님의 차림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고용인으로 보이지도 않고. 다만 미천한 행색은 아니었던 듯, 외려 화려하게 차려입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결코 길거리 창부나 유녀 부류, 이른바 논다니는 아니었다는 것이 그 고용인의 말입니다."
"화려한 차림새라..."
마타이치는 다시 턱을 문질렀다.
- "예에. 어떠한 차림새인지, 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라고는... 이를테면 오긴 씨와 같은 예인 정도입니다만, 그 부분은 분명치 않습니다. 다만 그 목격담을 들은 후로, 겨우 몸을 추스르기 시작했던 교에몬 씨는..."
정신을 놓아버렸다는 것이 헤이하치의 말이었다.
모모스케는 말을 옮기고 있다. 헤이하치가 한 말 그대로는 전해지지 않는다.
- 미련이 넘친다.
"그런 다음에 말이지요. 여자를 데리고 올 때까지 나는 여기서 한 걸음도 나가지 않겠다며, 교에몬 씨는 그 저택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게 되어버렸다고 하더군요."
"칩거입니까."
"예, 기행 끝에 농성인 것이지요. 점포 식구들도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며, 뭐, 이건 실상 기이하지 않습니까. 그런 일이 과연 있기나 할까요?"
- "있지 않을까요?" 하고 마타이치는 말했다.
"사모의 정에 애태우다 몸마저 사르더라. 기요히메는 뱀의 몸으로 변했다지 않습니까. 연정의 행로에 적당한 선이란 없습지요. 그래도 보통 대단한 일은 못 벌이는 법입니다. 끙끙 앓기만 할 뿐. 그 노대인의 경우는 유감스럽게도 전이 많아 저지르고 말았던 게지요."
- 오호라.
이도 저도 다 돈이 없어서는 할 수 없는 일뿐이다. 혹 가난뱅이였다면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마타이치의 말대로 그저 끙끙 앓다가 끝을 냈으리라. 교에몬에게는 웬만큼 분별력도 있었을 터이나, 그와 동시에 이리저리 발악해볼 여유도 넉넉히 있었던 것이다.
결국은 돈이 있었기에 벌어진 불행이라는 것인가.
- "그리 잘 풀리지는 않을 겁니다" 하고 마타이치는 말했다.
"의원님도 백약이 무효라지 않습니까. 색도 지옥은 밑 빠진 독입지요. 선생, 한 번이 두 번, 두 번이 세 번 되어 지옥행. 만나지 못하면 애가 타는 법, 만나면 헤어짐이 괴로운 법, 헤어지면 미련이 남는 법인데 그토록 그리움이 사무친다면 이는 매듭짓기가 이만저만 어렵지 않겠습니다. 쌓이고 쌓인 미련을 끊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요."
"그렇습니까..."
- "뭐, 그것을 어떻게든 하는 것이 모사꾼의 본분이겠지만서도. 다만 말입니다, 선생."
마타이치는 다시 화투를 한 장 뺐다.
"사랑하는 여인을 어떻게든 만나고 싶다. 찾아주었으면 한다. 귀에는 그럴싸하게 들리는 이야기입지요. 허나, 이것은 만난다고 끝날 이야기가 아닙니다요. 붙여놓든가 떼어놓든가, 좌우지간 결판을 내지 않으면 그야말로 수습이 아니 되는 이야기입지요. 절연이든 중신이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을 다루자면 그 나름대로의 각오가 필요합니다. 소생의 세 치 혓바닥으로 생사가 결정되고 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것이다. 반했다. 빠졌다. 한마디로 그치지만, 무언가 하나가 엇갈리면 큰일이 되기도 할 것이다. 물론 모모스케로서는 헤아리기 어려운 영역이기는 하지만.
- "소생은 절절히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마타이치는 말했다.
"절절히 느낀다 함은?"
"예, 모사꾼은 사람을 속이는 것이 생업입니다. 허나 속인다고는 해도, 원망의 대상이 되어서야 업을 이어갈 수 없지요. 속이고 달래는 것도 방편. 꽃이 피지 않는 메마른 땅을 이 술수 저 술수로 어름어름 달래고 갈아엎어 꽃을 피워야 비로소 모사꾼이지요."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하고 마타이치는 말했다.
모모스케에게는 알 리가 있겠느냐는 말로 들렸다. 하지만... 마타이치는 웃었다.
- "행복이란 말입니다. 선생. 어딘가에 둥둥 떠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다만 그것을 행복으로 느낄지 어떨지에... 달린 것이겠지요. 사람은 모두 꿈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악몽 꾸는 것은 아니라고, 소생은 그리 생각하지요. 전부 꿈이라면 거짓도 거짓임을 알기 전까지는 진실. 하지만 거짓이 진실로 변해..."
마타이치는 자신의 삭발머리를 만졌다.
"해를 끼치는 일도 있지요."
- "자아."
마타이치는 뽑은 화투장을 눈을 내리깔고 보았다.
"그런데 소생과 선생의 친분을 냄새 맡은 놈은 어디 사는 누구인지?"
손바닥 안... 이었다는 것인가.
- "마타이치 씨, 저어."
"맨 처음 아뢴 대로, 다름 아닌 선생의 부탁이니까요. 소생은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다만 이야기의 출처만은 알아놓고 싶습니다. 에도가 넓다 하여도 선생과 소생의 사이를 알고 있는 녀석은 그리 없을 터."
"그, 그렇습니까?"
"선생은 마지막 패니까요."
마타이치는 그렇게 말하고서 화투패를 놓았다.
오동.
어떠한 의미인지 모모스케는 알지 못했다.
- 모모스케는 헤이하치에 대해 설명했다. 말하기 껄끄러웠을 뿐, 본인으로부터 함구해 달라는 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마타이치는 다들은 후 책장수였냐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무언가 납득하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듯 찾는 여자의 이름을 물었다.
"시라기쿠(百菊)라 하더군요."
모모스케가 그렇게 알리자, 어행사는 매우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시라기쿠라..."
- "지금이야 어찌 됐는지 모르지. 내가 아는 것은 옛날 일이라고. 그 계집... 뭐, 미색이지. 곱고 하얀 게 살결도 함치르르하니, 아주 백옥이야. 얼굴도 기품이 흘러서, 나 같은 게 봐도 고귀한 느낌이 들더라고. 사내들이 좋아하는 여자란 천한 것들이 많지만, 고것은 기품이 있었거든. 말하고 싶지는 않은데, 타고난 본은 숨길 수가 없는 법이려나."
"고귀한 집안의 태생입니까?"
"공가(公家) 태생이거든, 그 계집."
오로쿠는 화로 테두리를 담뱃대로 탕 하고 두들겼다.
- "호리카와 아무개 귀인의 씨앗이라는 소문이었지. 뭔가 까다로운 예법을 소상히 알고 있었거든. 그 왜 뭐라고 하지 않나, 그..."
- "내놓을 만했거든. 시라기쿠가 그 당시 나이가 열아홉인가 스물 안팎이었는데, 그리 젊지는 않아도 그걸 보완할 만한 기량이었지. 간판 창기로 내세울까, 뭐, 그리 생각한 것은 사실이지. 그런데 아이쿠 이야기를 듣자 하니 웬만큼 괜찮은 지체 아니신가. 그렇다고 이목구비가 빠지면야 쓰려야 쓸 도리가 없지만서도, 기량은 좋고 격이 다르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원래 신마치에서 날리던 계집이면 오카바쇼의 갈보로 끝내기는 아깝고말고. 그래서 나는 안으로 들여보낸 게지."
안이란 곧 요시와라 유곽을 이른다.
안이든 밖이든 하는 짓이야 다를 바 없으니 말이지, 하고 여걸은 관자놀이를 누른다.
"어차피 몸을 팔 거면 비싸게 파는 편이 좋잖나. 박색이나 추녀면 팔고 싶어도 팔리지를 않으니까. 뭐, 달리 할 만한 것도 없고, 할 마음도 없고, 본인이 몸 팔아 살아가겠다고 핏대를 세우니, 그럼 윗물에서 노는 편이 낫잖나. 그리 생각하지 않소?"
- "밑바닥 신세로 끝내지 않을 줄은 알았지, 그 아이한테는 사람을 사로잡는 힘이 있었거든. 내 눈이야 확실하지. 짐작대로 시라기쿠는 금세 격자여랑(格子女郎)으로 올라섰고 단골객도 생겼어. 어쩌면 다유(太夫)로... 그런 말도 있었다고."
"다유라, 아주 대단하군요."
"글쎄, 그 시라기쿠라는 년은 말이지. 지금 생각해 보면 딱한 계집이긴 했지. 자신이 싫고 말고에 상관없이 주위가 미쳐 돌아가거든. 그래도 미치게 만드는 건 자신이니까 자업자득이지만서도. 그런 팔자인 것일 테지."
오로쿠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술잔을 비웠다.
- "팔자입니까."
"팔자지. 그렇게 생각해야 덜 억울할 거 아닌가. 누구든 좋아서 불행해지는 건 아니라고. 그 계집은 말이지..."
그리고 오로쿠는 한참이나 뜸을 들이더니, "그 계집은 병오(丙午) 생이야"라고 했다.
- "아니, 그러니까 그러한 부분은..."
뭐라고 해야 할지. 오로쿠는 찻잔을 탕, 하고 화로 위에 놓았다.
"타고난 운명 따위는 없다, 그 말씀이신가?"
"그리 말하지는 않겠지만, 그것은 미신입니다."
"그런 거야 이미 알고 있네" 하고 오로쿠는 말한다.
- 병오생 여자는 사내를 잡아먹는 마성이라고 한다.
미신이다.
- "똑같은 처지로 태어났어도 불행한 꼴 겪지 않고 평생을 보내는 자야 당연히 있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도 있거든. 행과 불행에 그리 큰 차이란 없어. 사소한 거라고. 아주 작은 엇갈림으로 길도 흉으로 바뀌는걸, 병오생이란 불행을 부르기에는 충분한 차이일 거라고."
모모스케가 당혹스러워하자, 오로쿠는 야단을 치듯 이렇게 말을 이었다.
"한번 생각해봐. 존귀한 분의 핏줄께서 왜 창기 따위가 됐겠어."
"이도 저도 다... 병오생이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까?"
전부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라고 하며, 오로쿠는 몸을 틀었다.
- "병오생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는 말씀입니까?"
"더 그렇지야 않겠지. 어쨌든 그 기량이잖나. 질투에 투기에, 그야말로 이래저래 일이 많을 거라고. 나도 말이지, 이 나이 먹고서도 젊은 애들 보면 샘이 날 때가 있어. 그래도 샘을 내본들 분통 터뜨려 본들, 이기지 못하는 걸 무슨 수로 이기겠어. 그럴 때는 병오생이라는 게 이유가 되어버리는 게지."
- 아아.
그것은 그러하다.
미신이든 속신이든, 이용하는 자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인 것이다. 설령 부당한 이유라도 공격할 구실이 된다면 개의치 않으리라.
때문에 그러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 "의논을... 말입니까?"
"그래. 그 녀석, 꽃 같이 고운 처녀였다고. 아주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지. 나도 승적에만 들지 않았으면 엎어져버려, 그랬을 거라고."
"예."
모모스케는 헤이하치의 얼굴을 본다. 헤이하치도 모모스케를 보고 있었다.
료준은 껄껄 웃었다.
"시라기쿠, 그 아이는 쬐만할 때부터 춤이며 샤미센이며 배우면서 자랐다고 합디다. 뭐, 그 무렵 상가의 딸이라 하면 귀인이나 공가의 부름을 받을 수 있도록 다도며 꽃꽂이며 재주를 익히게 해 입신을 도모했지요. 이건 남한테 전해들은 말인데, 시라기쿠는 무얼 해도 첫 번째였다고 하더구먼. 또 한 명, 다쓰다라는 처녀가 있었답니다. 이 처녀도 뭐, 시라기쿠 못지않은 기량이었다고 하는데, 시라기쿠는 어찌 된 까닭인지 머리 하나만큼은 차이가 났다. 그건 태어난 본이 다르다고, 그렇게 말들을 했답디다. 그 아이는 호리카와 귀인의 씨앗이거든. 그래서 꼭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서도, 뭐, 태생이 아니라 시라기쿠의 재량이라 생각하지만... 태생도 좋고 이목구비도 훌륭하다 해서, 시라기쿠는 다른 처녀들보다 빨리, 열넷 나이로 서쪽 지방의 영주 댁에 고용살이로 들어갔다는구먼."
- 료준은 눈이 부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미인이란 참, 팔자도 반복하지. 시라기쿠는 손을 타고 말았어. 그런데 그 일이 발단이 되어 옥신각신 다툼이 벌어지고 말았지. 결국 내보내겠다는 명이 떨어져 고향으로 돌아오고 말았다더만."
"손을 탔다면 나리의 눈에 들었다는 것이잖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쫓겨나고 말았던 것이지요?"
"질투지" 하고 료준은 짧게 대답했다.
"여느 여자였다면 상관없는 일이었을 테지. 허나 시라기쿠는 역시 빼어났던 게야. 큰 마님인지 작은 마님인지 뭔지 모르겠지만서도, 시라기쿠의 미모가 두려워졌던 게 아닐까. 아이쿠, 나으리가 정말 푹 빠지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지."
미모에 위협을 느꼈다는 것인가.
- 병오생이라는 점이냐며 모모스케는 물었다.
"뭐, 그렇지. 화재였어."
"화재... 말입니까?"
- "안채에서 불이 났지. 투기야 화르륵 낸다고 해도, 진짜로 불을 내면 큰일 아닌가. 어느 정도로 탔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그래서 화재가 난 것은 그 여자가 화기를 두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런 식으로 몰렸을 테지."
"그래서 추방된 것입니까?"
"음. 돌아가자 돌아간 대로... 또 화재였어."
시라기쿠가 돌아가자마자 생가에 불이 났다고 료준은 말했다. 그 화재로 집안 재산을 잃고 세상 체면도 나빠져서, 사내를 죽이고 화기를 불러들이는 병오생 여자라며, 시라기쿠는 도읍에서 쫓겨나 오사카로 흘러들어가 유녀가 되었다고 한다.
- "신마치라는 곳은 에도로 치면 요시와라지요. 오사카에서 '안'이라고 하면 신마치를 말하거든. 시라기쿠는 평판이 자자했지. 그 무렵 아직 열일곱 안짝 아닌가. 더불어 그 기량이라고..."
잘 놀고 색 즐기는 한량들이 드나들어, 고작 반년 만에 시라기쿠는 오라는 데 부지기수인 간판 유녀가 되었다고 한다.
- "사내는 마음이 변하고 말았어" 하고 승려는 말했다.
별안간 발길을 뚝 끊었다고 한다.
변심한 것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유흥이었던 것일까요?"
"그렇게 고상한 이야기였다면 고생은 아니 하지. 객이 진심인지 아닌지야 창기도 알아보는 법이라고. 그 젊은 객은 진심이었어. 허나 사내란 멍청하고 박정한 법이지. 그 사내에게 끌렸던 여자는 더 멍청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사소한 일로 식을 바에는 아예 서방처럼 굴지를 말았어야지."
- "그렇다니까. 사소하고도 사소한 일, 색향에서 노는 자들에게는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거든. 알겠나?"
료준은 모모스케를 검지로 가리켰다. 모모스케는 "글쎄요" 하고 응수했다.
"이보게, 그 젊은 객에게 혼담이 들어왔던 게지."
- "좋은 혼처였을 테지" 하고 스님은 말했다.
"젊은 객의 가업은 목재상이었어. 혼담의 상대는 교토에 있는, 같은 목재상이었다더구먼. 그럼 장사에 있어도 좋은 혼처지. 게다가 혼담의 상대, 이게 또 시라기쿠 못지 않은 절색이었다지. 당연히 갈등되지. 나라도 갈등할 거라고. 하지만 갈등해 본들, 저울에 올려본들, 뒷수습이라는 게 있지 않소."
매듭을 짓는 방식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것이 최악이었다고 료준은 말했다.
- 맞다고 하며 스님은 눈을 가늘게 뜬다.
"시라기쿠 주변에서 말이지. 작은 화재 소동이 이어졌지."
- "또... 병오생입니까" 하고 헤이하치는 말했다.
"그렇지, 병오생이지. 독한 이야기라고. 이보게 자네... 병오생 여자라고 하면 말이야, 은나라 주왕을 태워 죽인 달기에, 유왕을 꼬드겨 주나라를 멸망시킨 포사처럼 어째 못된 여자만 떠올리게 되지만서도, 태어난 해와는 아무 상관도 없을 거라고. 그처럼 사람을 현혹하고 해를 가져오는 악녀는 말이지, 천마파순(天魔波旬)이지. 그래서 그러한 것을 나는 연(緣)의 마라고 써서 히노엔마(飛緣魔)라고 하지요. 병이고 오고 관계가 없어. 오행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 쪽이야."
"히노엔마라..."
모모스케는 몸을 내밀고서 필첩을 펼친다.
"음, 히노엔마지요. 날아오는 마연(魔緣)이라는 뜻이지요. 곧 불법에 맞서 깨달음을 방해하는 악한 존재, 악마인 게야. 악마이니 사내든 계집이든 상관이 없을 터인데, 이게 말이지, 히노엔마, 엔쇼(障女)라고, 어느새 여자로 자리를 굳히고 만 게지."
- "여성은... 불도의 방해가 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방해한 마라(魔羅)도 여자의 형상으로 나왔다고 하지 않소. 번뇌라는 이야기겠지만, 참 알 수가 없어. 그거야, 어쩌다 석가모니께서 남자였을 뿐이라는 이야기가 아닌지. 혹 여자였다면 악마도 남자의 모습으로 유혹을 하지 않았으려나. 나는 그리 생각하네. 허나 내가 수행한 절의 스님은 끔찍한 말씀을 하시더군. 여자가 홍백분을 바르는 것을 화장이라고 한다. 그건 곧 둔갑해 꾸미는 것이니, 색에 현혹되어 여자가 시키는 대로 하는 동안은 아름답게도 흥미롭게도 느껴지는 법이나, 결코 혹하여 탐닉해서는 아니 된다. 여인의 성은 모두 비뚤어져 있는 까닭에 이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집안과 나라마저 잃는다... 라고 말이지."
스님은 참으로 지독하지 않냐고 말하며 색 바랜 입술을 핥았다.
"여자란 참 좋은 것인데 말이지. 뭐, 부처님도 중생을 구한다지만, 여인에게는 참 엄한 말씀을 하신다니까. 여인금제라는 게 있지 않소. 여자는 부정하다, 그런 말씀을 한단 말이지. 나는 그 점이 싫다니까."
- "나는 여자를 존경하고 있다오" 하며 료준은 이 빠진 입을 벌렸다.
"허어, 그래도 여인이라고 해도 여러 사람이 있으니, 여인은 지옥에서 보낸 사신이라는 말이나 외면사보살 내심여야차라는 문구는 맞는 적도 있지."
그게 무슨 말이냐고 헤이하치가 모모스케에게 물었다.
"외양은 자비로운 보살과 같으나 속마음은 악귀처럼 무섭다. 그러한 의미입니다. 아마 화엄경의 한 소절이지요."
- "그렇지 않네" 하고 료준이 말했다.
"뜻은 맞네만, 화엄경에 그러한 구는 없소이다. 보물경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여기에도 없는 듯하더구먼. 이것은 경문의 구절이 아닌 게요. 뭐, 누군가가 만들어낸 것이지."
그런 줄은 모모스케도 몰랐다. 속설을 신뢰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려면 어떻겠소" 하며 노승은 웃었다.
"설령 어디의 아무개가 만들었다 하여도 진실이라면 그것으로 족하지. 경문도 근원을 따지자면 누군가가 만든 것이니 말이오. 어찌되었거나, 뭐, 무서운 여자도 있기는 하나 비열한 것은 꼭 여자만이 아니다. 그런 말이지."
- 실상은 다르다는 어조다.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까?"
그야 뭐 하고 파계승은 여운을 드리웠다.
"시라기쿠는 말이지, 그럼에도 참 한결같았어. 주위에서 어떤 눈으로 쳐다보아도 그저 그 나리를 믿었어. 그래서 솟구치는 그리움을 담아 몇 통이나 편지를 썼지. 하지만 죄다 돌아온 게야. 봉투도 열리지 않은 채, 시라기쿠는 몹시 갈등하고 애 끓이다 마침내 머리칼을 자르고 손가락을 잘라 그 젊은 서방님께 보낸 게야."
"손가락을?"
"모르시나?" 하고 료준은 이마의 주름을 폈다.
그리고 새끼손가락을 세워 모모스케의 얼굴 앞에 들이댔다.
"다, 단지(斷指) 말입니까?"
"음. 손가락을 건다는 것은 아이들 놀이가 아니라고. 연모하는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머리카락이며 손가락을 보내는 것이 유곽의 풍습이지. 몸은 다른 이에게 맡겨도 마음은 서방님 것이다. 그러한 의미지. 성의의 증표라고."
- "사실은 알지 못하네. 허나 내 생각에는 말이지, 역시 시라기쿠를 끊어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네."
"그렇다고... 어째서 불을 지른 건지."
"바로 그 점일세." 스님은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으로 다시 한번 무릎을 쳤다.
"젊은 객 말이지, 그놈은 너절한 사내였어. 혼담 때문에 마음이 흔들렸다는 것은 이해가 돼. 백옥 살결의 유녀와 좋은 혼처의 아가씨, 콕 집어 택할 수 없다는 것도 웬만큼 이해할 수 있어. 그래도 말이지, 그건 어떻게든 흘러가는 일이라고. 혼담을 내치지 못해도 시라기쿠는 유녀야. 유흥으로 딱 치부를 해도 되지 않았겠느냐는 말이지. 그걸 못해서 그래, 결단을 못 내리는 게지. 순 무골충이라고."
- "불을 지르고 병오생의 나쁜 소문을 퍼뜨리면... 가족 중 누군가가 따져 물을 것이고, 싫어도 갈라놓을 것이다. 잘만 풀리면 시라기쿠 씨 쪽에서 물러날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이었던 게 아닐까요. 아니, 틀림없이 그럴걸요."
그것이 진실이라면, 어찌 그리 못난 사내가 다 있을까.
모모스케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료준은 히죽히죽 웃었다.
"뭐, 그런 마음도 있었을 게요. 허나 그렇다면 자네들도 마찬가지지. 불이야 지르지 않을지 모르지만서도, 이래저래 자신에게 이유를 갖다 붙여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게 아니시오."
모모스케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지" 하고 스님은 말했다.
"무얼 하려도 결심이라는 건 어려운 법이지. 누가 결정해 주는 것은 무엇보다 편하고, 선택할 길이 줄어들면 그것도 편해지는 법."
- "그 여자는 대체 누구인지...?"
짤랑.
그 순간...
방울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어왔다.
- 자리의 세 사람은 동시에 뜰로 눈길을 던졌다. 연못가에 백장속 사내가 서 있었다.
"마, 마타이치 씨."
"엉?"
헤이하치는 목을 쭉 내민다.
에이키치는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곧 크게 당혹해했다.
"대, 대체 어디로 들어오신 것입니까? 여기에 이르려면..."
"보시다시피 천한 차림이올습니다. 이처럼 훌륭한 점포의 현관을 더럽혀서는 아니 된다고 분별을 하여, 무례를 범하는 줄은 알면서도 뜰로 이렇게 실례를 하였습니다."
마타이치는 스윽 몸을 숙이고 무릎을 세운 후 일례했다.
"소생은 액막이 부적을 뿌리고 다니는 것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떠돌이 어행사이온데, 마타이치라 하는 어중이이옵니다."
"당신이 마타이치 씨..."
헤이하치도 크게 놀란 듯, 몇 번이고 빈번하게 모모스케 쪽을 보았다.
"찾으시는 여인... 찾아냈사옵니다."
마타이치는 그렇게 말했다.
- "예... 자신의 인생 고비고비에 헤살을 놓아온 불을 시라기쿠 님은 복수의 도구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불로써 자신의 박복한 생에 막을 내렸던 것이지요.”
"아니, 허나 그리하여서는..."
- 그 여자는 대체 누구인가.
- "히노엔마란... 사람의 행로, 깨달음에 해를 끼친다는 악한 존재, 악귀·요괴의 족속이올습니다. 십 년 전, 이 집에 찾아온 여인은 사람이 아니며, 이 세상의 존재도 아니며, 이곳 주인의 자비심 깊은 마음에 비집고 들었던... 무시무시한 마연이올습니다."
"사, 사람이 아니라니."
"그러하옵니다. 사람이라면 아무리 기량이 뛰어난들, 아무리 애교가 넘친들, 그토록 미칠 듯이 사내를 포로로 삼을 수야 없을 터. 그러한 미색, 그러한 아름다움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분별도 처세도 갖춘 이 상점의 주인과 같은 걸물께서..."
마타이치는 등 뒤의 고대광실에 시선을 던진다.
"저처럼 오랜 세월을 앓고 계실 정도로 마음의 병이 심하시지 않습니까. 이는 마에 현혹되었다고 볼 수밖에 달리 생각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러하지만..."
에이키치는 힘없이 모모스케 쪽을 보았다. 마타이치는 말을 이었다.
"대륙에서는 망집음욕을 남기고 귀적에 든 자는 혼백이 이 세상에 머물러 산 자와 정을 맺는다 하였습니다. 죽은 자와 맺어진 자는 음기가 다할 때까지 그 정기를 빼앗겨 결국은 죽음에 이른다고 합니다. 남녀 사이에는 산 자로서 넘지 못할 벽이라는 것이 있사옵니다. 마물에게는 그것이 없지요. 그래서 빠져나오려고 해도 그 바람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 말대로, 한서에 그러한 이야기는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그러나.
- "그러나 마타이치 씨, 시라기쿠 씨는 이곳을 떠난 후에도..."
"그것도... 전부 마물."
- 마타이치에게는 크게 감사하고 상점 전체가 대접을 한 후에 감사의 표시라며 사례금까지 듬뿍 건네주었다. 모모스케도 헤이하치도 여비만으로 족하다며 고집했으나, 웬일로 마타이치는 순순히 받아 들었다.
듣자 하니 상당한 돈이 드는 성가신 일을 수락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게 모모스케 일행은 가네시로야를 뒤로 했던 것이다.
- "그만큼 호화로운 건물을 세우고서, 단 하룻밤에 태워먹고서도 눈하나 꿈쩍하지 않으니... 진짜 대단한 재산입니다요."
헤이하치는 고개에 서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게 정말 마물이었을까요?"
모모스케는 마타이치를 본다.
"무언가... 작업을 하셨습니까?"
마타이치는 싱긋이 웃었다.
- "소생은..."
마타이치는 눈이 부시다는 얼굴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칠 년 전에 그 여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시라기쿠와?"
"이름 같은 것이야 대는 사람이 임자이지요. 가짜고 진짜고 없습니다. 소생이 만난 이는 교토 말씨를 쓰는, 시라기쿠라 자칭하는 여자였을 따름이라."
- "여자가 할 수 있는 위험한 생업이라 하면, 꽃뱀이라든가?"
헤이하치가 알 만하다는 얼굴로 끼어들자, 마타이치는 그렇게 미지근한 것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럼 공갈이라든가..."
"뭐... 웬만한 악한 짓은 빠지지 않았지요. 허나 둘 다 나쁜 병이 있었습니다."
"병?"
"시라기쿠가 손을 잡았던 기라는 여자는 남의 피를 보는 것이 더없는 즐거움이라 참으로 난감한 여자이지요."
- "예, 좋아했습니다. 남자에게 안겨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나, 불을 보고 있으면... 황홀경에 빠진다고 합니다. 잘은 모르겠으나 몸의 중심이 녹아드는 듯하다고 하는데, 타오르는 불길이 크면 클수록 열락을 느끼는, 참으로 까다로운 성격이라고 하더군요. 둘 다 공갈이 위협으로 끝나지 않고, 속이고 뜯어내고 뼈까지 뽑아 결국에는 죽이고, 피를 빨고 태워 죽이고 마는 것이지요."
"그, 그것은."
헤이하치는 마타이치를 가리키며 "백호 오쿄와 주작 오키쿠?"라고 말했다.
"알고 계십니까?" 하고 마타이치는 묻는다.
- "예. 옛날이야기니까요. 확실한 것은 알지 못합니다. 허나 소생이 들은 바에 따르면 다쓰다는 시라기쿠를 몹시도 미워했던 듯합니다."
소꿉친구를 미워하다니, 어째서 그런 것일까.
"자질도 대등, 기량도 대등, 어디를 어떻게 봐도 무엇 하나 처지지 않을 텐데 반드시 차이가 나고 만다. 그것이 이유였지요."
- "알았다. 그야 시라기쿠가 귀인의 핏줄이라는 이야기로군요. 태어난 본만은 아무 노력해도 당해낼 수가 없지."
헤이하치가 그렇게 말하자 마타이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뭐, 사실 그런 점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지요. 사람이 잘나고 못나고에 태생이고 핏줄이고는 상관이 없지요. 이길 수 없다면 이길 수 없는 만큼의 이유가 있습니다. 허나 다쓰다라는 여자는... 그 무렵 아직 어린 소녀였습니다만, 그러한 점을 몰랐던 게지요."
"시라기쿠 씨가 주위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은 귀인의 씨앗이기 때문이다. 다쓰다라는 사람은 그렇게 단정해버렸군요."
"그렇겠지요" 하고 마타이치는 말했다.
- "시라기쿠 씨에게 예기치 못한 불행이 쏟아졌다는 것이군요."
나리의 총애를 받은 시라기쿠는 그 미모가 두려움을 낳아, 병오 여자라는 낙인을 받고 영주 저택에서 추방되고 말았던 것이다.
시라기쿠 자신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는 일이다.
"그... 영주 저택에서 내린 매정한 낙인, 시라기쿠 씨의 삶뿐 아니라 다쓰다의 삶마저 바꾸어버렸으니. 다쓰다는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귀인의 씨앗은 무슨 얼어 죽을. 그 계집은 병오생이다..."
- 그때까지 다쓰다라는 여자는 시라기쿠가 대접을 받는 것도 태어난 본이 좋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태어난 본이 사람을 구렁텅이에 밀어 넣는 일도 있음을 다쓰다는 깨닫고 만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고 마타이치는 말했다.
- "허나 시라기쿠 씨는... 말하자면 실각해 돌려보내진 것 아닙니까. 그렇게 불행의 낙인을 찍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다쓰다가 그렇게까지 미워했던 것인지?"
"다쓰다는 시라기쿠 씨가 주위의 동정을 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게지요. 연민의 정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시라기쿠 씨가 다쓰다에게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역겹게 느껴진 것입니다."
"예."
"병오생 미신... 그런 것이야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지요. 사람이란 말입니다, 알고 있으면서 이용을 하지요. 싫은 녀석에게는 매섭게 대하고 모난 돌에는 정을 내리칩니다."
- <히노엔마>
- 저주란 불행을 관리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모모스케는 생각하고 있다. 어떠한 행동을 하면 저주가 내린다며 금지하는 것은 위험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다. 이를 저주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불의의 사고나 병마에 대한 두려움을 물리치기 위한 방편이다. 사고도 질병도 돌연 덮친다. 이는 원래 피하지 못할 종류인 것이다. 그러나 저주로 판단되면 피할 길도 따라오게 된다.
그러므로 저주로 죽은 자의 대부분은 사고사나 병사에 의한 것이다. 이것은 시치닌미사키 또한 마찬가지이다. 모모스케가 수집한 한, 그것을 만난 자의 사인은 익사, 혹은 열병이었다.
그런데 그 고을에서는 난도질에 거죽이 벗겨지고 목이 날아가 무참하게 죽는다는 것이다.
수긍이 가지 않았다.
- 원래 미사키란 선봉(先鋒)의 의미라고 한다. 그렇다면 전조로서 찾아드는 산신이나 수신이 거느리는 권속을 이르는 것이다. 이는 신령과 같은 존재일 경우도 있으나 구마노의 야타가라스, 야와타의 하토 등과 마찬가지로 작은 동물일 경우도 있다. 대부분은 이리나 여우와 같은 짐승인 듯하다. 물론 쑥 내민 끝이란 뜻의 곶(사키)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한자를 다른 식으로 바꾸거나 '온자키'로 읽는 경우도 있다. 미사키 여우 등은 빙의하는 종류다. 그렇다면 빙의와도 관련이 있다.
어쨌거나 간단한 것은 아니다. 때문에 알기 어려운 존재이기는 한 것이다.
- 오긴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주 먼 옛날이야기 아니우."
"예에, 수영 이 년 구슈로 쫓겨간 다이라 가문은 안덕제를 봉하고, 다시 도읍을 목표로 밀고 올라와 사누키의 야시마에 진을 쳤지요. 그래서 미나모토 요시키요를 미즈시마에서 토벌하는데, 이듬해 이치노타니 대첩에서 패해 다시 야시마로 퇴각합니다. 그 이듬해, 그것을 추격해 치고자 요시쓰네가 세쓰에서 야시마로 향하는데, 시기 탓에 큰 폭풍우를 만나 가쓰우라에 상륙, 이 오사카 고개를 넘어 야시마로 향했지요."
"어머나, 어디서 이런 강석사(講釋師)가 나오셨나" 하고 오긴은 웃었다.
"일단은 작가를 지망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 게다가.
멸망한 다이라 가문은 후세에 진정 많은 괴이를 초래했다. 이치노우라를 비롯한 대첩의 땅에는 다이라 가문의 원통함을 아는 자들이 수많은 괴이를 전했다. 또한 다이라 가문의 잔당들은 여러 지방에 점점이 흩어져 세상의 눈을 피해 조용해 살며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이른바 낙오인 전설이다.
그리고 시치닌미사키 또한 다이라 가문의 원령으로 설명되는 경우도 많다.
- "다이라 가문이라면 게가 아닐까요?"
"게... 도 있습니다만, 다양하답니다. 들었던 바로는 다이라 기요모리 출가를 갓파의 시조로 전하는 지역도 있을 정도니까요. 다이라 가문 낙오인들의 혼령이 시치닌미사키가 되었다고 해도 충분히 납득이 가지요."
"역시 물에 빠져 죽었나?"
"그게 좀 다릅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로는, 그것은 멧돼지를 잡는 덫에 떨어져 죽은 일곱 명의 다이라 가문 낙오인이라고 합니다. 도사의 오가와라는 곳에서 회자되고 있는 모양이지만요. 이는 육지에 나오지요. 그리고 시치닌미사키는 아닙니다만, 해상에 나오는 요괴로 후나유레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다이라 가문의 원령이라는 소리가 있지요."
- "배의 귀신인 거유?"
"아니, 망자선이라든가 유령선이라 함은 배 자체가 귀기를 띠고나타나는 것이지만, 후나유레이라는 것은 대부분 익사자가 집단으로 나타납니다. 히키유레이(引幽靈 )나 소코유레이(底幽靈)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요컨대 물로 끌어들여 죽이려고 하는 물귀신이지요. 배를 전복시키려 합니다."
- "안 좋지요. 게다가 완력이 아닙니다. 흔한 경우로, 우선 표주박을 빌려달라고 합니다."
"표주박이라면, 국자를 말하는 거유?"
"예. 배에는 커다란 국자를 실어둔다는 모양이더군요. 그것을 빌려달라고 하는 겁니다. 이때 절대로 빌려주면 아니 됩니다. 행여 빌려줘버리면 그것으로 연거푸 파도를 퍼 올려 배를 가라앉혀버린다는 모양입니다."
"끔찍이도 싫네" 하고 오긴은 가는 눈썹을 찡그렸다.
"나는 그런 식으로 질퍽질퍽 대는 게 아주 질색이유. 아무리 자신이 험한 꼴을 겪었다고 해도 다른 이까지 함께 데려갈 것은 없잖우."
"그러게요" 하고 모모스케는 대답한다.
"허나 그러한 분별을 하지 못하기에 망자인 것입니다. 사려와 분별이 있어 말이 통한다면 산 사람과 다를 바가 없지요. 사령(死靈)이라는 것은 분별이 거의 사라지고 없는 법입니다. 남은 것은 한밖에 없지요. 때문에 후나유레이들은 배를 전복시켜 익사자를 늘리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저 한결같이 배에 물을 퍼 올리는 것만이 목적이지요."
- "피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밑이 빠진 국자를 건네는 것입니다."
"그런 물건이 정말 있수?"
"큰 배에는 대체로 준비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이것을 건네면 망자는 그것으로 물을 퍼 올립니다. 물론 퍼지지가 않지요. 때문에 배는 가라앉지 않습니다. 하지만 물을 푼다는 행위만은 할 수 있으니, 그것으로 망자는 납득하고 사라진다고 합니다."
- "예, 시치미사키의 경우는 한 명을 죽이면 한 명이 성불한다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후나유레이의 경우는 영원히 성불하지 못하지요. 뭐, 이 후나유레이도 다이라 가문의 원령이라고 하더군요. 그 방면 책에 따르면 망집의 포로가 된 다이라 가문을 딱하게 여긴 한 법사가 시아귀(餓鬼) 법회를 크게 열었고, 그 이후 이러한 괴이는 끊어졌다고 나와 있습니다만."
"이러나저러나 허무하잖수" 하고 오긴은 거듭 말했다.
-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 인생이란 말이우, 입에 풀칠하려고 일을 하는 건지, 일을 하기 위해 먹고 있는 건지, 가끔 헷갈리게 되잖우. 모두 마찬가지로, 밑 빠진 국자로 물을 푸며 만족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시치미사키보다 낫다며 오긴은 말을 맺었다.
자신이 성불하기 위해 남을 끌어들이는 짓을 하는 것보다 그저 같은 행위만을 되풀이하는 무간지옥이 차라리 낫다는 의미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모모스케는 생각했다.
- 이 낭인에게 도움을 받은 일 덕에 그 의심은 결정적인 것으로 변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모모스케도 오긴도 간조에게 사누키로 빠진다는 것을 고했다. 적이 그 말을 믿고 말고는 차치하더라도, 추격자가 따라붙을 가능성은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객사에 돌아가는 것도 산속에 있는 것도 위험하오. 일단 아와로 돌아가 어디에 몸을 숨기는 것이 상책일 것이오."
기후도 좋지 않다며 낭인은 덧붙였다.
실상, 날이 밝았음에도 주위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어둑어둑하니 컴컴했다.
- 모모스케는 그제야 일어섰다.
일각쯤 말없이 걸었다.
오긴은 명백히 경계하고 있었다.
당연하다. 위험한 순간에 구해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과 이 낭인이 신뢰할 만한 인물인지의 여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말하는 내용 또한 곧이곧대로 받아들여도 될지 어떨지 알 수 없다. 분명 낭인은 그 패거리를 베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아까 그 패거리와 이 낭인이 밀통하고 있지 않다는 단언을 내릴 수는 없으리라. 모모스케는 요즘 매우 주의 깊게 변했다. 그것도 마타이치 일행의 작업을 보았기 때문임에 다름 아니다.
- 이래저래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하늘은 더욱 어두워지고, 운 나쁘게도 투룩 투룩, 물방울이 뺨과 정수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젖는 것은 실로 낭패라고 생각했다.
- 삿갓을 쓰고 좀 더 나아가자 건물이 보였다.
보아하니 사당인 듯하다.
빗발도 굵어지기 시작했으므로, 모모스케는 그곳에서 비를 긋자고 제안했다.
- 모모스케는 한순간 주저했으나, 솔직히 말했다.
"저는... 야마오카 모모스케라고 합니다. 괴담집을 개판하기 위해 여러 지방을 돌며 기담·괴담을 듣고 있습니다. 이쪽은..."
"나는 오긴이우."
모모스케가 소개하기 전에 오긴은 짤막하니 그렇게 말했다.
"보시다시피 산묘회고."
모모스케는 덜컥 놀란다. 맨 처음 오긴과 만난 것도 역시 비를 긋기 위한 오두막 안이었던 것이다.
- "자, 이유를 말씀해 주실까요" 하고 오긴은 말했다.
"동쪽 고을의 낭인께서 어찌하여 이런 곳에 있는 것인지요? 봉록무사 자리라도 찾고 계신가?"
"으음..."
우콘은 자세를 바로 했다.
정한한 이목구비의 사내이다. 나이는 마흔 전 정도일까. 나쁜 인상은 주지 않았다.
"이것은 원래라면 발설이 엄중히 금해져 있는 일이오만, 공연히 휘말리게 만들고 말았으니 졸자가 아는 것은 전부 말씀드리도록 하겠소이다."
- "나리는 우리의 정체를 확인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 선생은 또 몰라도, 나는 보시다시피 떳떳한 몸이 아닙니다."
"알고 있소."
우콘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한 시각, 그러한 장소를 지났소. 그대들도 어찌 되었건 켕기는 구석이 있는 자일 게요. 졸자 또한 마찬가지. 소상히 묻지는 않겠소."
"신뢰한다는 말씀이신지?"
"신뢰하고 말고도 없을 터.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지 않소. 그대들에게 누설한 탓에 나의 몸에 재난이 퍼부어진다면 그것 또한 졸자로서는 부덕의 소치라 할 수 있을 터이니."
- 하늘의 계시는 없다.
모모스케는 신비한 힘의 개입에 관해서는 몹시 바라기는 하나... 역시 회의적이다. 잘 풀리는 것도, 나쁘게 풀리는 것도, 모든 것은 우연인 것이다.
그러나 모모스케는 요즘 들어 그 우연조차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마타이치나 오긴이 깔아 둔 함정이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있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디까지가 우연이고 어디까지가 의도적인 것인지, 옆에서는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 우연을 부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 괴이이다.
- "산사태... 아아."
모모스케가 목소리를 높이자, 알고 있느냐며 우콘이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산신의 재앙으로 전멸한 마을이 있다고 도사의 지인에게 들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모모스케는 짐 속에서 필첩을 꺼냈다. 모모스케는 기이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곳에 기입한다. 고금동서의 기이한 이야기를 낱낱이 써두겠노라 하는 심산이다.
- "그렇지, 구보 가는 아와와 도사의 경계를 지키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더구먼. 백찰이라 하면 향사보다 격이 더 위니까."
"그 구보 가가 재앙으로 멸족되었다는 말씀이신가" 하고 우콘이 말했다.
"허나, 그 구보 가가 다이라 가 잔당의 자손이라면, 원래 재앙을 입는 것이 아니라 재앙을 내리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겠소? 한을 남기고 세상을 뜬 자들의 자손이 어찌 재앙을 입는다고 하시오?"
"무슨 재앙인지, 그건 모르오. 허나, 무사 나리. 당신들 무사는 재앙이라 하면 여한이나 원통함을 들지만, 그건 아니지. 재앙을 내리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고."
"사람이 아니라 하심은...?"
"재앙이라는 것은 사람의 재량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악한 것이지. 사람이 이리저리 손 쓸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오. 산도 재앙을, 강도 재앙을 내려, 골짜기도 초목도 재앙을 내린다고. 천지만물 모두가 해를 끼치는 악한 살을 가지고 있지. 사람도 물론 재앙을 내리지만, 여한이네 원통함이네 하는 것은 사소하기 그지없어. 그야 다이라 가문도 재앙을 내릴지 모르지만서도, 혼자서는 어찌 하지 못해. 다이라 가는 다이라 가 전부가 재앙을 내려야지. 한둘이 귀신으로 나타나봤자 그깟 유령 따위, 전혀 무섭지 않거든. 악한 기운은 고여서 재앙을 낳는다고. 사람의 악념이란 것은 묻으면 그만이지만, 들이나 산에 고이는 해로운 기운이야 사람은 어찌할 수가 없다고. 산천이 지벌을 내린 거여."
- "구보 가의 당주는... 무언가 금기를 범했다고 들었습니다만."
"맞소. 구보 겐베라는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참 간덩이 부은 사내였다고 하더구먼. 이 겐베가 톱장이인가 목기장이인가 하고 함께 도도로가마에서 공천류를 했다더라고..."
"도도가마라 함은?"
"도도로는 폭포, 가마는 못인데, 겨울의 폭포나 못을 통틀어 그렇게 부르지. 첫째 가마, 둘째 가마, 셋째 가마가 있는데, 대단한 기세로 떨어지는, 뭐, 용소(龍沼)지. 아주 대단한 곳이라고. 물밑에는 이 무기가 살고 있다고도 하고, 그 근처에서는 희한한 일이 끊이지 않는 마소(魔所)라고 볼 수 있지. 수신께 제를 올려 강의 잡귀를 떨쳐내지 그렇게 접하는 장소라고."
신성한 곳이라는 뜻일까.
"공천류라고 하는 것은 공금류라고도 하는데, 쇳가루에 산초 껍질이며 회토 따위를 조합한 맹독을 강에 흘려보내 강 속의 생물을 송두리째 죽여버리는 거칠기 짝이 없는 고기잡이법이여."
"독을 푼 것입니까?"
"그렇지. 그런데 겐베 씨는 겁도 없이 도도로가마에서 그 짓을 했거든. 당연히 잡히지. 고기가 얼마든지 잡혔을 테지. 허나 당연히 동티가 나고 말았다고. 묘한 곳에 버섯이 돋고, 못의 물이 핏빛으로 물드는 흉사가 잇따라 일어났는데, 어린아이가 별안간 사라지기도 했다더구먼. 끝내는..."
"대규모 산사태가 일어났다는 거지요?"
- 그리고 밤이 찾아왔다.
모모스케는 이상야릇한 고양감에 휩싸여 있었다. 기괴한 무대였다.
가쓰라하마.
끝없이 펼쳐진 칠흑의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은 듯 수많은 별이 패여 있었다.
만약 별이 어두운 밤에 뚫린 구멍이라면 검게 가로막은 밤의 저편에는 반드시 광명이 있으리라.
그러나 이 밤하늘을 끝없이 빚어진 어둠으로 생각한다면, 밝은 낮의 하늘은 거짓 허울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은 어두운 밤 가운데에 덩그마니 떠 있는 교룡(蛟龍)의 숨결 같은 것이다.
- 모모스케는 해상으로 돌출된 선창 위에 묶여 있다.
우콘도, 오긴도, 그리고 가와쿠보 당의 일원들도 마찬가지이다. 선창이라 해도 급조한 것이므로 발치가 몹시도 불안정하다. 얇은 널빤지 아래는 밤 못지않은 암흑이다.
- "살생은 본의가 아니지만, 이번만은 달리 손을 쓸 도리가 없었지요. 자칫 어긋나면 선생도, 오긴도..."
마타이치는 목 위에서 손을 가로로 그었다. 그렇다. 정말로 위험했던 것이다.
"서툴러."
오긴이 꾸짖는다.
"서투르잖아. 뭐야, 그리도 험한 짓, 잔머리 모사꾼이란 이름이 울겠군."
- 분명, 이번처럼 마타이치 일행이 직접 손을 더럽히는 일은 과거에는 한 번도 없었던 듯하다. 궁지로 몰아넣거나 함정에 빠뜨리거나 공멸이나 관아의 체포 등 방법은 그때마다 다양했으나, 모사꾼은 아무리 악한 상대와 맞붙어도 살생만은 하지 않았었다.
"네가 걱정됐던 거라고." 마타이치는 무심한 어조로 맞받아쳤다.
"누가 그 말을 믿겠누." 오긴이 말한다.
"뭐, 힘이 드는 것이야 평상시 그대로이지만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녀석, 진짜 후나유레이도 내세우지 않으면 안 되지요. 시간도 걸리고, 일손도 필요하고. 그래서 결국 이런 대규모 작업이 되고 만 것입니다. 뭐, 그 낭인께는 조금 안 된 마음이 들지만, 증인이라도 되어주셔야 하니까요."
"증인... 말입니까?"
"그 낭인은 사정을 전부 알고 있으니. 그럼에도 후나유레이는 신뢰했을 터. 이로써 전부 거짓이 됩니다. 산에 살던 다이라 가의 낙오인도, 그 사람들이 지켜온 비밀도, 그 모든 것이 다 환상 속으로 사라집니다. 그 낭인이 눈으로 본 것은 전부 꿈이 되지요..."
- "흥. 덕분에 난 조마조마. 증거도 없으니 선생에게 털어놓지도 못했다고."
오긴은 흘깃, 모모스케를 보았다.
"미안하우, 선생. 잠자코 있을 생각은..."
"아아, 아닙니다."
언질을 받지 못하는 데는 익숙하다. 그리고 혹 알았다 한들, 모모스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거치적대기만 했을 뿐이리라.
"전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니까요."
"무슨 소리. 선생은 말이지요, 목숨이 걸리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도 나와 행동을 함께 해주셨는걸. 마지막 한순간에 배의 선수에서 요령만 흔들었을 뿐인 이 인간하고는 천지차이라고요."
마타이치는 "난감하군" 하며 제법 자란 중머리를 쭈륵 훑었다.
- "나야 어떻든 간에... 양인(良人)인 선생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쩔 셈이었어?"
"그야 뭐. 하지만 오긴."
"뭐."
마타이치는 조금 애잔하게, 그리고 어딘가 살가운 눈빛으로 모모스케를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 선생이 양인이긴 하지. 허나 이 유령선에 타버렸다고."
"아..."
오긴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모모스케를 보았다.
"뭐, 뭡니까? 전 이 배에 타면 아니 되는 것입니까...?"
- 그때 모모스케는 깨달았다.
이전의 경우로 헤아리자면, 모모스케는 우콘과 함께 그 자리에 남겨졌어야 했다.
- "저, 저는..."
"그렇게 되는 거지" 하고 마타이치는 말했다.
"그러니 선생도... 그 무사가 보자면 소생들의 동료, 요괴 동료로 들어오신다는 이야기입지요."
마타이치는 다시 한번, 이번에는 유쾌하게 웃었다.
- 지헤이가 웃었다.
"뭐, 타버렸으니 별 도리 없지. 여기서 내리라고 할 수도 없잖나. 뭐, 허둥댈 일이야 있나. '그때 요시쓰네, 조금도 당혹치 않고...' 란 말이지."
"사공은 힘을 쏟으렷다" 하고, 분사쿠가 노래 장단을 맞춰 말했다.
지헤이도 그 장단에 맞추어 "분부대로 하겠사옵니다으아" 하고 응대했다.
- "에이에이, 에이에이, 올라탄 배, 지옥 끝까지라도 길을 가도록 바라봅시다요. 그런데 마타, 이 유령선, 어디로 돌릴 것이냐?"
"참, 그렇지."
마타이치는 다로마루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서 몸가짐을 바로 했다.
"다로마루 님이시지요?"
"그렇소, 다로마루요."
"인사가 늦었습니다만, 소생은 보시다시피 액막이 부적을 뿌리고 다니며 벌어먹고 사는 어행사 마타이치라고 합니다."
- <후나유레이>
- 예사 방법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때로 정해진 도리에 벗어난 행동도 한다. 손수 손을 쓰는 일은 일단 없으나,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사람을 해쳐야만 하는 일이다.
- 그럼에도 모모스케가 아는 한, 마타이치의 작업은 결코 세상에 악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다. 입부터 태어났다고 위세 떨며 공언하는 잔머리 모사꾼의 변설과 기상천외한 요괴 연극으로 모두가 원만하게 정리된다. 그것은 정말 훌륭한 솜씨다.
얼개를 모르는 자의 눈으로 본다면 모든 것이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피안의 존재의 소행으로 비칠 수밖에 없으리라. 알고 있는 모모스케조차 속는다.
사태는 정리되나, 그 결과 요괴가 솟아오른다.
그런 까닭에 마타이치는 요괴술사인 것이다.
- 그것은 때로 우는 자를 달래고, 근심하는 자를 구하며 교만한 자를 제압하고, 사악한 자를 처단하게 된다. 다만 마타이치는 의적이 아니다. 그것은 정이나 의분이 솟구쳐 벌이는 행동이 결코 아니다. 잔머리 모사꾼이 세상을 위해, 사람들을 위해 그러한 작업을 꾸미는 것은 아닌 것이다. 대의명분은 없다. 생업이므로 역시 돈을 위해서이다.
- 지헤이는 예전에 명인으로 불렸던 유인 담당 도적이었던 듯하다. 변장과 연극의 명인으로 각양각색의 사기술에 능하며, 짐승을 부리는 특별한 재주까지 가지고 있다. 도쿠지로의 환술도 대단한 것으로, 고향 오가에서는 마법사라고 불렸다고 한다. 또 한 사람... 오긴이라는 산묘회가 있는데, 이 인물도 마찬가지로 좀처럼 그 능력을 가늠할 수 없는 여자다.
- 하나같이 예사로운 무리가 아니나, 그럼에도 무숙인임은 틀림없다. 칼도 창도 가지지 못하고 돈도 신분도 없는 비력한 자들이 이렇게 적은 인원수로 때로는 영주마저 갖고 노는 듯한 짓을 한다.
정말 대단하다고 감탄할 뿐이다.
- 모모스케는 일 년 전, 어쩌다 우연히 이 소악당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래저래 지내는 사이 그 관계가 깊어져 어느덧 모모스케는 그러한 일을 도울 정도까지 되었다.
단, 모모스케는 무숙자도 죄인도 아니다.
상가에서 자랐다고는 하나 원래는 무가 출신.
게다가 에도에서도 손꼽히는 대점포의 젊은 은거인이기도 하다.
모모스케는 매우 유복한 신분의 상인인 것이다.
- 본시 이 무리와 동류는 아니다.
마타이치 일행과의 사이에는 넘으려 해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다만 모모스케는 자신이 세상에 제대로 얼굴을 들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사람의 가치라는 것은 신분으로 정해지는 것도 아니며 금전으로 가늠되는 것도 아니라고 모모스케는 생각한다. 지난 몇 년간 마타이치 일행과 함께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자 그런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재산이나 성씨, 근본, 그러한 것은 그다지 상관없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모모스케는 좀처럼 구제할 도리가 없는 몹쓸 사람이다.
- 무엇보다 모모스케는 현재 이마에 땀방울 맺으며 일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일단 작가를 지망하고 있기는 하나, 아직 그 싹은 트지 않았다. 전국을 돌며 괴담과 기담을 수집하고 있는 것도 언젠가 괴담집을 개판하겠다는 발칙한 대망을 가진 까닭이기는 하나, 그것도 세간에서 보자면 편한 팔자를 이용해 그저 여기저기 오락가락하는 구제불능 반치기로밖에 비치지 않으리라.
구제불능.
그것이 모모스케가 자신에게 내리고 있는 평가다.
- 때문에 상대가 어떠한 신분을 가진 자라도, 설령 그 상대가 세속적으로 찬사를 듣지 못할 행위를 하는 소악당들이라 하여도, 모모스케는 그 이유만으로 내려다보거나 할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모모스케는 그들 소악당들에게서 비집고 들어설 수 없는 일종의 거부감 같은 것을 의식하면서도 강한 동경이나 공감을 느끼고 있다.
때문에 청이 있으면 돕는다.
위험한 길이다.
허나 그것은 그것...
- 모모스케는 반치기이면서 호사가인 것이다.
대점포의 주인 자리마저 내던진 채 불가사의를 갈구하고 괴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특이한 사내다. 사람의 마음을 교묘히 부려 뜻대로 요물을 출현시키는 패거리에 흥미를 가지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었으리라.
괴담의 이면에 바로 그들이 있었다.
- 한편, 마타이치 일행으로 보아서도 신분이 확실한 모모스케의 신변은 이용가치가 있었으리라. 일반인이 한 자락 걸침으로써 작업 방식도 확 바뀌게 된다. 모모스케는 얼마간은 자각하지 못한 채 극중배우를 연기했다. 사정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무엇이 무언지도 몰랐다.
몰랐으나 모르는 대로 도움이 되었던 모양이다.
모모스케는 나름대로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여겼을 터이나, 결국 소악당들의 손바닥 위. 그들의 뜻대로 구르고 있는 것이 되는 것이다.
- '이용당했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그러한 것이리라.
허나 모모스케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의식은 없다. 소악당들의눈으로 보자면 모모스케 따위는 이른바 도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들에게 묻는다면 그 패거리는 반드시 그렇다고 대답하겠으나, 그럼에도 모모스케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모모스케로 보자면 일이 있을 때마다 너는 양민이다. 자신들과는 사는 곳이 다르다며 잔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설령 방편에 불과했다 해도, 입맛대로 이용당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스스로도 자신이 선량하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실상 마타이치도 지헤이도 처음 얼마간은 모모스케를 끌어들이는 일에 매우 신중했다. 모모스케는 동료라기보다 객의 위치로, 항상 특수한 취급... 유사시에도 결코 누를 입지 않을 취급을 받았다.
일반인에게 작업 일부를 나누어 지게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소악당의 교활한 판단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느새 모모스케는 마타이치나 지헤이의 인품을 접하고, 어떤 상황에서 깊은 동요를 일으켜, 반쯤은 원해서 이 길을 택했다.
- "알 게 무어야." 지헤이는 퉁박을 날렸다.
"녀석이 그렇게 말을 했을 뿐이야. 잔머리 모사꾼을 믿지 말라고. 어차피 입에서 나오는 대로 주절댄 게지."
"부처님의 가르침에 사마(死魔)라는 것이 있습니다만."
모모스케가 그렇게 말하자 "과연 궁리 선생은 박학하시구먼. 도적영감과는 다르시구려" 하고 도쿠지로가 은근히 익살맞게 대꾸했다.
- "뭐, 귀동냥이니 소상히는 모릅니다. 불가는 죽음을 악마로 판단하지요. 악마란 수행을 방해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수행을 방해하는 네 가지 마(魔), 번뇌, 음욕, 오행, 오온을 가리킵니다. 사마(四魔)는 사마(死魔)와 통한다는 것이지요."
오호라, 하며 도쿠지로는 머리통을 끄덕였다.
- "지당하신 말씀. 이는 신령님이 아니지요. 뭐, 불가의 경우는 신이란 게 하나로 정착되지 않지만, 도가에서는 사람의 수명을 결정하는 신이나 임종 시기를 정하는 신이 있지 않습니까? 다만 이는 사신으로 불리지는 않죠. 글쎄요, 사신이라고 한다면... 어디 보자, 액귀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일까?"
"액귀... '귀' 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이번에는 마물인가?"
"마물이지요" 하고 모모스케는 대답한다.
"원래 대륙의 존재이니 마물이라고 해도 사령(死靈)과 같은 것일 테지요. 이는 죽음으로 인도하는 존재입니다. 칼부림이 있었던 장소에서 비슷한 비극이 거듭되거나, 누군가 목을 맨 나무에 몇 번이고 사람이 매달려 있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일이 있지" 하고 도쿠지로가 대답한다.
"목매기 쉬운 모양새의 나뭇가지라는 게 있는 게야."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하고 모모스케는 대답했다.
- "그러니 액귀란... 죽음을 원하는 악념이라고나 할까요."
지헤이는 얼굴을 찡그렸다. 도쿠지로가 다시 묻는다.
"죽음을 원하다니, 그거 재수 없구먼. 선생, 그건 죽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는 것인가?"
"예. 악념을 지닌 채 스러진 자의 기는 그자가 마지막을 맞은 장소에 고이게 됩니다. 그리고 비슷한 악념을 지닌 자는 그 기에 호응한다더군요."
"유유상종이란 건가?"
"그렇지요. 사신은 인간을 나쁜 곳으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말려들어간 사람은 죽음을 선택하고 마는 거죠."
- "악념이란 게 대체 뭔가?"
지헤이가 물었다.
"나쁜 마음... 이랄까요? 대륙에서는 이를 목매달아 죽은 이의 악념이라고 합니다. 목을 매단 이가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 산 자를 끌어들여 목을 매게 하는 것이지요. 목을 매어 죽음에 이르게 하므로 액귀라고 하는 게지요."
"자신과 같은 꼴을 당하게 하는 것인가."
지헤이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태어나지 못한다더군요. 이를 액귀구대(益鬼求代)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 "그럴지도 몰라."
몹시도 작은 목소리로 지헤이가 말했다. 뭐어, 하고 얼이 빠진 목소리로 도쿠지로가 반문한다.
"뭐라고 했소?"
"그럴지도 모른다고 했어. 그 무렵 마타 공은 속으로 좋지 않은 생각을 무던히도 쌓아놓고 있었을 거라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몰라."
- "마타이치 씨가?"
도쿠지로와 마찬가지로, 모모스케 또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타이치라는 사내는 항상 초연한 느낌이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동요하지 않고, 두려운 것도 없는 듯 보인다.
어딘가 생사를 초월한 도인 같은 구석이 있는 것이다.
적어도 모모스케의 눈에 잔머리 모사꾼의 모습은 그런 식으로 비춰지고 있다.
그러나 지헤이는 그 마타이치를 겁쟁이라고 단언하고, 죽음을 바란 적도 있다... 는 말까지 하고 있다.
모모스케는 왠지 불안해졌다.
- "내가 마타와 만난 건 부수의 산골짝이야. 난 그 무렵, 도적 일에서 손을 씻고 그곳에 몸을 감추고 있었지. 아니, 감춘 것은 아니겠군, 세상이 싫어졌고, 그럼에도 죽지는 못해서 말이지. 세상을 버린 사람인 듯 살고 있었어. 그곳에 놈이 찾아왔지."
지헤이는 모모스케에게 얼굴을 돌렸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정확히 고에몬이 에도에서 사라진 무렵의 일이었지. 마타 녀석은 말이지, 뭐랄까, 인적이 끊어진 폐가 앞에서 말이야, 얼간이처럼 멍하니 서 있었어."
- "그놈은 차분했다고. 그때 마타 공은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는데, 얼마 후 돌연 내가 눌러앉아 살던 움막에 모습을 드러냈어. 내가 얼마나 놀랐던지. 어허, 그 다 죽어가던 놈이 갑자기 다시 나타났으니 아니 놀랄 수가 있나."
"유령이라고 생각하기라도 한 거요?"
"그렇지. 대략 어디선가 뒈진 게 아닐까 하고 걱정하던 나에게 휘리리리리, 귀신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했지. 민폐도 유분수라고 생각했다고. 일단 그놈은 사시사철 그 차림새니까 수의로 보이기도 하거든. 그런데 말이지, 이것이 아무래도 느낌이 다르더라고."
"어떻게 달랐는데?"
"떨쳐낸 것 같았어."
"깨달았나?"
"미륵삼천이 깨닫긴 뭘 깨달아."
- "그때 그 자식, 이미 지금과 마찬가지였어. 재미있지도 우습지도 않은 낯짝으로 말이지, 내 집 뒤쪽에, 가소롭게 우뚝 서있었다고. 그래서 그때 마타 녀석이 뭐라고 했을 것 같나?"
"글쎄."
"그 애송이, 한바탕 일을 벌일 테니 나더러 도우라고 내뱉었다고."
"일... 이라."
"그렇다니까. '별명까지 얻은 유인의 명인이 산에서 밭이나 갈고 있다니 아까워서 왔다.' 그 자식, 내 낯짝도 정체도 알고 있더라고."
"아배의 얼굴이 알려져 있었군." 도쿠지로가 말하자, "멍청아, 내가 실수를 하기라도 했다는 것이냐?" 하면서 지헤이가 욕을 퍼부었다.
"이 몸의 둔갑은 하루 이틀 묵은 게 아니라고. 도적 패거리도 내 진짜 낯짝은 알고 있는 놈이 거의 없어. 상판이 드러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단 말이지. 게다가 그때 내 농군 모습은 변장이 아니었다고. 본판이었단 말이지. 그런데, 이게..."
"꿰뚫어 봤구먼. 정말 얕잡아볼 수 없는 사내로군."
도쿠지로는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 "그럼 그때 마타이치 씨에게서 죽음을 바라는 마음, 사신은 떨어져 나갔다는 것일까요?"
"그렇겠지." 지헤이는 다시 멈추어 서서 말을 이었다.
"살아도 한 목숨, 죽어도 한 목숨, 그렇다면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다를 바가 없다. 그런 헛소리를 뱉기는 했지만 말이지."
"별안간 달관했구먼. 그 녀석은 역시 깨달은 것이 아닐까."
도쿠지로가 그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엄청난 매미울음이 울려 퍼졌다.
- "어헛, 더워지겠군. 오전 중에 에도로 들어가지 않으면 쪄 죽겠어."
지헤이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오랜만의 에도이건만"하고 도쿠지로가 말한다.
모모스케는... 마타이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 "계속 말입니까?"
"그게, 아무래도 그 재앙이라는 것에 편승해서 사람을 죽이는 어리석은 자도 있는 모양이라..."
"아..."
그래서는 실로 사람들의 마음이 흐트러져 있다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남을 원망하는 마음, 원수를 증오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많든 적든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것일 테지. 졸자는 그리 생각하오."
- 그도 그럴 것이다.
남과 접하는 일이 극단적으로 적은 모모스케조차 자그마한 증오의 마음을 품을 때가 있다. 아니, 약하나마 살의의 불을 밝힐 때까지 있다.
- "그렇다고 해서..."
우콘은 약간 말끝을 흐리며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미운 상대를 죽이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오. 아니,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지."
우콘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분명 세상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들로 가득 차 있소. 참기 힘든 재액도 있을 테고, 용서할 수 없는 부실도, 참을 수 없는 슬픔도 있을 것이야. 어찌 되었든..."
순간적으로 격정이 드리워졌던 우콘의 목소리에서 다시 힘이 빠졌다.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증오하는 마음은 악념이라 해야 할 것이야. 마음이 악한 것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지. 그리고 그 악한 것이 떠난다면, 마음은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겠소?"
- 그럴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은 움직이는 것이다. 영원불멸 사라지지 않는 원념 같은 것은 없다고 모모스케는 생각한다.
- "그런데."
우콘의 말이 이어진다.
"그러한 잔학무도한 행위가 바로 옆에서 항상 일어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실로 간단히 남을 죽일 수 있게 된다오. 마귀가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게 된 건지, 아니면 두려움에 떨며 살아가는 동안에 불안감이 한계에 달해서 백성들까지 미쳐버린 것인지는 모르겠소."
"그리도 심합니까?"
우콘은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심하지. 단 한 명의... 아니, 하수인이 한 명이라 볼 수는 없지만, 그 몇 명인가의 마음이 흐트러진 자들 때문에 영내가 모조리 망가져버리고 말았소. 왕래하는 사람은 없고, 아이들이 노는 모습도, 여인들의 웃는 소리조차 사라져 버리고, 이웃은 이웃을 의심하지. 최근에는 이곳저곳에서 폭동까지 일어나고 있는 것 같더군."
- "백성들은 안 그래도 힘든 삶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일세. 지금까지는 자그마한 소망을 내일에 맡기고 간신히 살아온 것이었겠지. 그런데..."
모모스케는 우콘의 말을 이제야 이해했다.
[재액은 아주 작은 소망을 너무나도 간단하게 짓밟고 말더군.]
그도 그럴 것이다. 밤사이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칼을 맞아 들판의 시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는 선량하게 살라고 하는 것이 무리다.
- "백성들은 이제 도둑질이나 방화는 범죄다,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그런 당연한 것조차 판단할 수 없게 된 것이야. 도둑질과 칼부림이 횡행하면 곤란한 것은 누구보다도 백성들일 터. 하지만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뿐 아니라 악행을 당하는 사람들까지 그것이 나쁜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지."
마비되어 버린 것일까.
우콘은 빈 잔을 다시 채운다.
"아무리 세상이 흉흉해도 흔들림 없는 인륜이라는 것이 있을진대. 아니, 반드시 있네. 졸자는 그리 믿고 있지. 아무리 혼탁한 천하라도 기운이 가득 차면 사람은 이윽고 바른 세상을 향해 가는 법. 하지만 그 반대는 없소. 사람이 길을 잃으면 세상이 삼베처럼 거칠어지는 것은 필연. 이걸 원래대로 돌리는 것은 쉽지 않지."
- "들은 바로는 지금 기타바야시에 돈벌이가 될 만한 일이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만."
"무엇이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우콘 님이 노발대발 화를 내니 요키치 씨는 진퇴양난, 돈을 벌면 한몫을 줄 테니 보내달라고 했다더군요. 그게 탈이었지요."
"더욱 화를 돋우고 말았군요."
- 우콘이 그렇게 말하고 요키치를 때려눕히자 요키치는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말만 번지르르하시군요.
세상이란 어차피 돈이 최고라고.
죽은 사람이면 몰라도, 이쪽은 엄연히 살아 있다고.
살아 있는 이상은 먹고살아야 한다고요.
아니면, 무사 나리께서는 밥 먹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겁니까.
- 우콘은 자신도 모르게 칼 손잡이에 손을 대고 말았다고 말했었다. 아내와 태어날 아이를 먹여 살리겠다는 이유만으로 마음가짐까지 꺾고서 임관이 되기를 바랐던 우콘에게는 가슴속 깊이 박히는 말이었으리라. 무사라고 하여도 먹지 않는 한 살아갈 수는 없음을 우콘은 실감했을 터이다.
긍지나 의지만으로는 배를 불릴 수 없다. 처자를 안고서 처량하게 떠도는 입장에서는, 대의명분 따위는 손과 발을 묶는 굴레가 될 뿐이다. 요키치의 말대로 어차피 세상은 돈이라고, 그렇게 단념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시노노메 우콘은 몸으로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 "하지만 세상은 그리 생각지 않습니다. 요키치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들은 자는 우콘 님뿐이니까요. 세상은 우콘 님이 요키치와 다툰 일밖에 모르는 겁니다. 그리고 요키치의 죽음에 이어 우콘 님의 부인이 죽었다. 시간 차이도 없이 곧바로 이어서 말입니다.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우콘 님이 의심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일반적으로는 그리 생각하는 게 타당할 것입니다" 하고 헤이하치는 말했다.
"그것이 여기 에도에서 벌어진 이야기라면 누구나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겠지요. 허나 일이 기타바야시가 되면 이야기는 달라질 겁니다."
- "생각해 보세요. 살인과 도난이 횡행하고 있잖습니까. 더구나 몇 년이나 계속 말이지요. 이른바, 누가 어디서 살해당해도 결코 드문 일도 아니라는 이야기이겠지요. 다툰 상대와 마누라가 잇달아 죽었다고 해서 그렇게 당장 의심받는다는 건... 저로선 납득이 안 가네요. 게다가 심문도 없이 즉각 수배잖습니까? 일이 지나치게 술술 잘 풀려나간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 그것도 일리가 있다.
여기저기에서 흉행이 빈발하는 상황이라는 것은 요키치 건과 흡사한 사건이 그 밖에도 얼마든지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참살 사건은 우콘이 영내로 넘어오기 이전부터 발생했고, 부인의 사건 또한 그 일련의 사건으로 바라보는 편이 앞뒤가 맞다.
오로지 우콘만이 의심을 받고 수배된다는 것은 기묘하다.
- "함정에 빠진 것 아닙니까?"
"함정에 빠지다니... 누구에게 말입니까?"
"그건 알 수 없지요. 여기에서 얼굴을 마주 보며 모자라는 머리를 굴려본들 별 뾰족한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애먼 생각은 안 하느니만 못하죠. 그보다, 그 기타바야시의 저주 말입니다."
"저주에 대해서도 뭔가 알아낸 겁니까?"
헤이하치는 옆에 놓인 커다란 천 꾸러미 속에서 필첩을 꺼내 들었다.
- 그리고 모모스케는 긴장한다.
경계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모모스케는 저주가 만연한다는 저주받은 땅에 마침내 들어선 것이다.
- 해는 이미 기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모모스케는 오레구치 봉우리에 이르렀다.
황혼이 다가온 마소의 정경은 기이했다.
그때까지 울창하게 우거져 있던 초목이 드문드문해지고 산의 바닥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중에는 암반이 살을 드러낸 곳도 있다. 여기저기에 거대한 바위가 서 있고, 노출된 암반에는 몇 개나 갈라진 틈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오긴 낭자의 말에 따르면 이 일대에는 밤이 되면 바위가 우는 야곡암(夜哭岩)이라는 장소가 있다는 모양일세."
"밤에 운단 말입니까?"
"어느 바위인지는 모르지만 밤이 되면 바위가 운다더군."
"바위가 운다... 엔슈의 밤에 우는 바위와 비슷한 것일까요."
"모르겠네. 먼 옛날에는 덴구가 나온다는 말도 있었다는 모양이야. 애당초 접근하는 자는 아무도 없는 까닭에 무엇을 근거로 전해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일세."
- 모모스케는 귀를 기울였다.
새소리가 들렸다.
"나는 도망칠 때에도 이곳을 지났지만, 그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네. 그래본들 그것은 동이 트기 전의 일이었지만."
우콘은 그렇게 말하며 바위를 올랐다.
- 그러한 소문이 퍼졌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가시무라는 어깨를 털썩 떨어뜨렸다.
"그리도 당치 않은 일이 있을 리가 없지. 그러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을 터. 허나 사소한 부합이 소문을 길게 끌고 말았다네."
"부합이라고요?"
"우선 희생이 된 처녀 수가 이 땅에 전해지는 성주 살해 전설의 백성 수와 동일하다는 점. 그리고 가에데 님의 고향에 시치닌미사키라는 요물이 있어. 사람을 잡아 죽인다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가에데 님이 시집오실 때 동행으로 왔던 고마쓰시로의 번사가 가져온 괴담이었던 모양일세. 원래 가에데 님과는 무관한 이야기였으나, 가신과 영민 모두 관련을 지어 받아들인 게지."
- 그리된 것이었다.
전설은 사람과 함께 이동하는 법이다. 기록은 움직이지 못하나 기억은 움직인다. 기억 속에 똬리를 틀고 사는 요물이 그 기억을 가진 자와 함께 별개의 장소에서 살아남는 일도 있는 것이다.
- "처음에는 그러했지. 다들 아마도 흥미로 그러했을 터이지. 실제로 처녀가 살해당했다는데 불경한 이야기이나, 이 시골의 작은 번에서는 그렇게라도 아니하면 지낼 수가 없었으리라고 생각을 하네. 범인은 잡히지 않았네. 그러자 누군가가... 악당을 만들어 안심하고 싶었던 게지."
- 우, 우리가 잘못을 한 게야.
재미 삼아 고젠 님을 욕하고...
그러다가 격노를 사고 만 것이지야.
- "어째서입니까? 말씀을 듣는 한, 매우 훌륭하신 분이 아닙니까?"
"맞는 말일세. 요시마사 공은 훌륭하신 분이었지. 그러나 가게모토 님은 말일세, 나중에 이렇게 말씀하셨네. 사람은 죽을 때 울부짖는 법일 것이라고..."
"그럴 수가..."
"영주든, 장군이든, 죽음에 직면한 자는 무섭고 두려워 죽고 싶지 않다며 추태를 보이며 울부짖는 법이라고, 가게모토 님은 그리 말씀하셨지. 그렇지 않다면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도 하셨네. 요시마사 공은 병약하게 타고 나신 몸 자신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자라나신 분, 항상 각오를 하고 계셨을 터이지만, 가게모토 님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신 게지."
- 무서운 꼴을 겪어도, 저주를 내리는 대상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면 사람의 마음은 혼돈에 빠지고 불안은 그저 증식할 뿐이다.
사람들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게 하고, 경건한 마음을 심어주며, 나아가 스스로 경계까지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공포의 대상을 명확하게 함과 동시에 그 위력을 명확하게 드러낼 필요가 있었던 것이리라. 때문에 마타이치는 저주에 얼굴과 이름을 부여한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누구나 두려워하는 가에데 아씨의 망령... 미사키 고젠이 출현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 게다가 가에데 님은 저주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시무라는 말했다.
"가에데 님은 이 번의 상황을 탄식하고, 그 길을 염려하고 계신 것일세."
"가는 길...? 그것은...?"
차기 번주를 지정했다고 헤이하치는 말을 했었다.
"맞네. 모든 것은 진실이었지. 나는 얼마 전 가에데 님의 혼령이 내린 계시에 맞는 인물을 찾아내어, 다음 번주로 하고자 그 절차를 마쳤다네."
- 있었단 말인가. 에도 저택에.
"무슨 표식이 있었던 겁니까?"
"있었다네. 이곳에서 보낸 사자의 눈앞에서 한 번사의 등에 후광이 비쳤다고 하더구먼. 또한 많은 번사가 늘어서기 전에 아미타여래께서 모습을 보이셨고, 그자를 가리키셨다고 하더구먼. 몇 사람이나 봤다네. 실로 황송한 일이지."
- "그분... 도라노신 님은 천진하게 웃으시면서 지금 멀리 간다, 효에도 함께 가자... 그리 말씀하셨네. 작은 손을 펼치고서. 여인은 내 쪽으로 오려하는 그분을 끌어안고, 못 본 걸로 해주세요, 당신이 사람이라면 못 본 걸로 해주세요, 그렇게 말했네."
가시무라는 거기서 째내는 듯한 목소리를 흘렸다.
"나는 여인을 베었네. 주군의... 하명이었지."
- 눈물이 가시무라의 뺨을 타고 내렸다.
"가시무라 님의 마음은..."
알 수 없으리라. 모모스케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으리라.
모모스케는 무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군의 하명을 달성한다. 그것은 무사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모모스케로서는 알 길이 없는 일이다.
- 그러나 가시무라는 고개를 저었다.
"사신이... 붙고 말았네. 나는 무사이기 전에 사람이었어야 했던 것이네."
- "그분은 모친의 피보라로 새빨갛게 물들었네. 내가 주저했는지, 여인은 한 번에 죽지 않았지. 때문에 몇 번이고 칼을 그었네. 매달리는 팔을 떨치고, 어머니, 어머니, 하고 울부짖는 그분을 무자비하게 ...
- "그러니 야마오카 군, 영주 나리의 난행은... 모두 복수인 걸세. 모친을 칼에 잃은 그분의 나에 대한 복수인 걸세. 내가 궁지에 몰리면 몰릴수록 그분은 기뻐하시지. 그때와 마찬가지로 인륜을 저버리고 무사의 길을 선택하라고, 그분은 나에게 강요하고 계신 것일세. 설령 사람을 죽인다 해도 주군이라면 지키라, 비도의 행위를 할지라도 이의를 표하지 말라, 그저 묵묵히 신하의 예를 다하라... 고 말일세. 누구의 잘못도 아니네. 나의 잘못일 뿐이지. 그날 아침, 내가 인륜을 따랐더라면 이리 되지는 않았을 것이네."
- 가시무라는 사방 위의 소도를 손에 들었다.
짤랑.
빗소리에 섞이어.
짤랑.
"요령 소리..."
스윽, 빗발이 잦아들었다.
- 섬기라. 받들어 모시라.
섬기라. 받들어 모실지어다.
칠흑의 뜰에 흰 사람 그림자가 떠올랐다.
- "성에는 아무도 없네. 그것은 그대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 비오는 밤에 재앙이 찾아들 것이라고 한 것은 바로 그대가 아닌가. 특히 성 안이 어느 곳보다도 위험하다고... 그러하기에 무사들도, 하녀와 하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저주를 두려워하여 각자의 집에서 칩거를... 아니!"
오오, 하고 가시무라는 소리를 질렀다.
"나, 나리가... 허나, 나리는..."
"말씀대로 오늘 밤은 음양의 기가 혼돈스러운 요물의 밤이옵니다. 피하기 어려운 큰 재앙이 성을 덮칠 것입니다. 영주 나리의 목숨도 위험하지요."
- "바로 그것이 잘못 생각하시는 겁니다."
"무엇이라...?"
"분명, 당신의 행동이 영주 나리의 생을 뒤흔들어 놓았다는 것은 사실일 테지요. 그러나 영주 나리의 난행은 당신 탓이 아닙니다."
"틀리다는 말인가?"
"어렸을 때 입은 마음의 상처가 사람을 바꾸어놓는 일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 어떠한 길을 택하는지는 그분 나름이지요. 상처가 있기에 자비에 눈을 뜨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상처가 없어도 길을 벗어나는 자도 있습니다. 그러니 죽음을 좋아하고 생명을 희롱하는 길을 택하는 것은 사신에게 흘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사람은 슬픈 존재. 사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 누구나 사신에게 홀리는 적은 있습니다. 마음속에 악념이 들끓을 때, 사람은 누구나 사신이 되지요. 다만... 그것만으로는 아무 일도 벌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악념이 고여 응축되려면 악념을 깨워 키울 만한 조건이 필요합니다. 이 땅에는 그 조건이 갖추 어져 있었지요. 이 땅에는 악소가 있습니다. 그곳에 옛 악기가 남아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영주 나리의 광기는 역시 저주 때문입니다."
- "나는, 나는 어떻게 해야 좋겠는가" 하고 부르짖으며, 가시무라는 마루를 기어 마당으로 내려왔다.
"그분을, 영주 나리를 구할 묘책은 없겠는가, 어행사."
- 짤랑.
마타이치는 다시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개의치 않소. 손쓸 도리가 있다면 무엇이든 하리다. 만에 하나라도 희망이 있다면, 이 가시무라 효에, 어떠한 일이라도."
- 마찬가지로 천수각에 있었던 듯한 기쿄의 유체는 무참하게도 난도질되어 있었다고 한다.
구스노키 덴조는 산 쪽의 성을 다 덮은 대량의 토사 속에서 발견되었다. 구스노키는 무슨 까닭인지 이마가 두 쪽으로 쩍 갈라져 죽어 있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흙 속에서 파내어진 가부라기 주나이 또한 괴한에 의해 등이 수없이 베어져 있었다고 한다.
- 어쩌면... 두려움을 모르는 자란,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아니라 두려워한 적이 없는 자를 이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겁쟁이보다 훨씬 더 공포에 약한 자는 아닐까. 공포에 대한 내성이 없기 때문이다.
- "비장의 패가 두 장쯤 있지 않으면 좀처럼 펼칠 수가 없는 연극이었으니까요. 번이 망해선 안 되고, 영민을 해쳐서도 안 되며, 그러고도 저주는 진정시켜야 되는 상황이니... 난제도 이런 난제가 없지."
- 그 모두가 보란 듯 수습되었다.
모모스케는 기가 막혀 어행사의 옆얼굴을 보았다.
마타이치는 오긴을 보고 유쾌하게 웃었다.
- "그나저나 이번에는 대활약이었군, 오긴. 아씨 마님이며, 원령이며, 나중에는 농가 처녀로까지 둔갑할 줄이야. 지헤이 영감 뺨칠 만한 변신술일세. 하지만 오긴, 옷이 날개라는 소리가 있기야 하지만, 그 수더분한 차림새가 가장 잘 어울리는구먼. 당분간 그렇게 지내는 것이 어때?"
"허튼소리 집어치우시지, 이 어행사야."
오긴은 뺨을 부풀리고 쀼루퉁하게 쏘았다.
"나는 지저분한 것하고 촌스러운 것은 아주 딱 질색이라고. 그런데 내내 동굴 안에서만. 아주 지긋지긋해."
"너무 퉁퉁대지 마셔." 마타이치가 말했다.
- "어쨌든 미사키 고젠 님은 효과 만점이었잖나. 대단한 비장의 패였지."
모모스케는 정말 훌륭한 솜씨라고 생각한다.
- "뭐, 상대의 얼굴이 막연하니 불안하기 짝이 없는 법입니다. 무엇의 저주를 받고 있는지 알지 못하면, 그야 누구든 겁나지. 허나 저주를 내리는 상대의 얼굴이 보이면 원망도 사죄도 할 수 있고, 모시고 ..."
- <사신 혹은 시치닌미사키>
- 위협받는 일도 없었다. 남의 눈을 꺼리는 동행자도 없다. 여비도 두둑했으므로 말이나 가마 등도 썼으며, 객사도 번듯한 곳에 머물렀다. 대로를 유유히 가는 여행에 긴장감은 없었다.
다만, 길을 가는 모모스케의 심중이 한 점 근심도 없이 후련한 것이었냐 하면 결코 그렇다고 할 수도 없었다. 야마오카 모모스케는 복잡한 심경에 시달리고 있었다.
- 지난 육 년간 모모스케의 신변은 크게 변화했다.
이 년 전쯤, 모모스케는 희작(戱作)을 개판했다.
오사카의 판원인 주몬지야 니조의 입담에 넘어갔는데, 이것이 그럭저럭 인기를 얻었다. 원래 이것은 모모스케가 염원하는 백물어본(百物語本)이 아니라서 괴담이 등장할 구석이 전혀 없는 서민의 이야기이자 감동적인 이야기였으므로, 모모스케로서는 딱히 기뻤다는 기억도 없다. 그럼 전혀 기쁘지 않았느냐 하면 실은 그렇지도 않다.
쓰는 기쁨은 없었으나 버는 기쁨은 있었던 것이다.
- 그렇게 손에 들어온 금전이 수수께끼를 만들었던 때에 받았던 수고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고액이었으므로, 이전까지 본의 아니게 퇴은 도령, 식객의 신분을 감수하고 있었던 모모스케 같은 사내로서는 신선한 기쁨이기도 했다.
더불어 식구들 또한 기뻐해주었다. 이코마야의 주인 부부는 '이제 돌아가신 선대 어르신께도 얼굴을 들 수가 있겠습니다' 하며 불단 앞에서 합장하더니 요란법석하게 축하연까지 열어주었다. 축하연 자리에는 온마리 도미가 올라왔다. 기껏해야 읽고 버리는 잡서에 아무래도 흥감이 심하다고, 모모스케는 몹시 쑥스럽게 생각했다.
- 형인 하치오지 천인동심 야마오카 군파치로도 크게 기뻐했다. 세상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잡서라며 모모스케가 겸손을 떨자, 고작 희작이라며 얕보지 말라, 이것을 발판으로 삼아 문인으로서 이름을 올리라, 야마오카의 이름을 후세에 남기라 하고 격려해 주었다.
이름이다. 가문이다. 명성이다 하는 것은 모모스케로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기는 했고, 쓴 희작의 내용이나 완성도 측면 또한 숙고하건대 야마오카 가문에 폐를 끼치는 일은 있어도 이름을 드날리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다. 애당초 모모스케는 개판할 때 그 저변의 사정을 고려해 일부러 필명을 바꾸었을 정도이다.
허나, 단 하나뿐인 혈육이 기뻐해준다는 것은 역시 기쁜 일이었다. 은자이자 노라리인 모모스케가 일을 해야 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 한번 인기를 얻으면 주문이 온다. 판원의 요청은 어느 것이나 가벼운 일반물로, 모모스케가 쓰고 싶은 내용의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반대로 모모스케가 괴담 기담을 쓰고 싶다고 말을 꺼내면 완곡하게 거절당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 이것은 이것. 영합하는 마음은 아니었으나, 모모스케는 고심하면서도 기꺼운 마음으로 판원이 요구하는 희작을 몇 작인가 썼다.
- 몸서리칠 정도로 싫은 것은 아니지만 좋아서 쓰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그것은 반쯤 고행에 가까웠다. 모모스케는 인내했다. 이마에 땀을 맺으며 일하는 자들에게 어딘지 모르게 미안한 심정으로 지내온 모모스케로서는 일은 힘겨우면 힘겨울수록 더 옳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인기를 끌기도 하고 끌지 못하기도 했으나 평판이 나쁜 경우는 없었다. 그 보람이 있어, 그럭저럭 상점에 신세를 지지 않고 먹고살 수 있게 되어갔다. 이전에는 혼담 같은 건 하나도 없었건만, 요즘 들어서는 장가를 들라는 잔소리를 집요하게 듣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 눈도 있으니 가정을 갖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도 하나, 모모스케는 주저하고 있다. 작가란 아무리 생각해도 안정된 업이 아니다. 불확실한 것이다. 처를 얻자마자 주문이 오지 않게 되면 모모스케는 그저 백수건달 서방인 것이다.
- 그리고...
모모스케에게는 아직... 갈등이 있었다.
무엇에 대한 갈등인지, 그것은 모모스케도 알지 못한다. 아니,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명확하게 구분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달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 그러나 모모스케는 여행지에서 그에 대해 불문곡직하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해답을 얻었다. 그것은 각오의 문제였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각오.
그것이 아니 되는 것이다.
- 마타이치 일행과 알게 되고, 행동을 함께 하고, 물밑 세계에 한 발을 담가버린 모모스케는 이후 몇 년간 물 위와 물밑의 경계에 서서 모호한 삶을 살아왔다. 물 위인가 물밑인가, 어느 쪽으로도 기울 결심을 정하지 못한 채 느적느적 소악당들의 뒤를 쫓아 저쪽 세계를 들여다보고, 돌아와서는 이코마야의 간판이나 형의 지위에 보호를 ...
- 모모스케에게 에도 판원을 주선해 준 주몬지 니조 역시 모모스케의 희작을 손에 들지 못하고 세상을 뜬 것이다. 지헤이 정도의 실력자가, 주몬지 너구리 정도의 걸물이 도중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상당히 치열한 술수의 경연이 있었음은 틀림없으리라.
그러나.
마타이치는 이겼다고, 모모스케는 들었다.
- 마타이치가 누구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 그것은 결국 알 수가 없었다. 지헤이를 잃은 이상 통한의 무승부이기는 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러한 세계에서는 살아남은 쪽이 승리자다. 마타이치도 오긴도 죽지는 않았으므로 역시 승리는 승리다.
- 그런데 그들은 사라지고 말았다.
한 달, 두 달은 마음에 두지 않았다.
석 달째에 모모스케는 박정한 마타이치를 원망했다.
어차피 또 뭔가 좋지 않은 일을 벌이고 있을 터. 그럼 한발 걸치게 해 주어도 좋지 않은가 하고, 그런 식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걸쳐본들 결국 아무것도 못하는 무용지물 주제에 오만을 떨었던 것이리라.
- 고지마치의 염불장옥에도 가보았으나, 장옥은 이미 비워져 있었다. 널장이 도로스케에게 물어도 보았으나 아무것도 모르는 듯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나, 모모스케는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어쩌면 마타이치는 약간이나마 이름을 날리게 된 모모스케를 배려한 것이 아닐까.
- 자신은 평생 세상 사람들의 눈을 꺼리는 그늘 인생, 그러한 각오를 확실하게 가진 마타이치다. 이제야 빛이 비치는 곳으로 나온 모모스케와 엮이는 것은 모모스케를 위한 길이 아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잊어라.
그러한 이야기인가.
- 실상 모모스케는 하루하루 일과에 쫓겨 종종 마타이치를 잊었다. 저편의 패거리와 있었던 일을 잊었다.
결국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도 마타이치의 요령 소리가 들리는 일은 없었다. 그 사이 모모스케는 열심히 일했다. 글을 쓰고 있을 때는 그야말로 필사적이므로 쓸데없는 일은 생각하지 않으나, 어떠한 순간에 문득 떠올리는 일은 있다.
그럴 때마다 모모스케는 쓸쓸해졌다.
- 마타이치를 만나지 못하는 일이 쓸쓸했던 것이 아니다.
잊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잊어버리는 것이 쓸쓸했으리라. 햇살이 비치는 곳에서 살고 있으면 어둠 속의 일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볼 필요도 없다.
모든 것은 꿈속에서 벌어진 일 같은 것이다. 요즘 들어서는 모든 것이 거짓이었던 듯한 생각도 든다.
- 허나.
거짓은 아니며 꿈도 아니다.
- 모모스케는 여러 고을을 돌아다니며 악당들과, 요괴를 내세운 연극에 손을 물들여왔다. 그것이 사실이다. 그 사실을 허구로 치부하라며, 거짓으로 생각하라며, 물 위의 생활은 집요할 정도로 모모스케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반듯하게 살겠다고 생각하는 한, 그러한 경험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방해가 될 뿐 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잊는 편이 낫다. 아니, 실상 모모스케는 많은 부분을 잊고 있다.
그... 잊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을 때, 모모스케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을 느끼는 것이다.
- 밤에 사는 그들은 결코 낮에 나오려는 생각은 않는다. 각오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낮에 살 작정이어도 같은 각오가 필요하리라.
모모스케는 그 각오가 아니 되는 것이다.
언제까지고 황혼녘에 있고 싶은 것이다.
- 모모스케는 철없는 어린아이다. 처를 얻을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여행을 떠나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모모스케는 그러한 자신의 무기력함을 새삼 곱씹게 되었다. 모모스케는 대로를 천천히 가며 험한 물밑 세계의 길로 마음을 내달려보았다.
요령 소리가 들리지는 않을까 하는 희미한 기대를 갖고서.
- "현재 기타바야시는 가에데 님과 전 번주님의 영, 두 분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저희 번은 수호를 받고 있지요. 영민도, 우리들 사도,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주란 일어날 리도 없는 것입니다. 졸자는 도저히 수긍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그 스님께..."
"예. 가시무라 님이 앓고 계시는 병환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주십사 하고... 가게모토 공의 저주라는 근거도 없는 풍문이 일어서야 또 무슨 말을 들을지..."
아니.
그것은 가시무라에게는 어떤 의미로 저주일 것이다.
곤도는 모를 것이다. 아니, 알고 있는 것은 모모스케 뿐이리라.
- 전 번주 기타바야시 단조 가게모토는 가시무라의 처와 삼대 전의 번주 사이에 생긴 아이다.
가시무라의 처는 당시 번주의 손을 탔고, 그뿐 아니라 회임을 하고 말았기에, 사실상 측실로 빼앗기고 만 것이다. 그러나 태어난 아이가 사내였기 때문에 후계 다툼을 예감한 가시무라의 처는 아이를 데리고 도주하다 칼을 맞고 만 것이다. 벤 이는 그 누구도 아닌 가시무라 본인이다. 충신 가시무라 효에는 군주로부터 엄명을 받고 그 자신의 아이라고도 할 가게모토 공의 눈앞에서 그 모친이자 자신의 처이기도 했던 여인을, 현재 가게모토 공이 모셔진 장소에서 베고만 것이다.
처절한 이야기다.
- "뭐, 지금은 아무것도 없지만요."
"아무것도 없다? 이를테면 세상을 뜨신 전 영주님이 귀신으로 나타난다든가, 그러한 이야기는 없는지?"
"천벌 받을 소리를 하시네요, 손님" 하고 여종업원은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가게모토 님은 저기, 그 바위가 있는 곳에서 이 기타바야시를 지켜주고 계시다고요. 그런 평판이니까. 저주를 내리기는 무슨."
병상의 가시무라를 덮친다는 괴이의 소문은 성 밑 마을에는 퍼지지 않는 모양이다.
-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가게모토 님은 덴구가 되셨다고, 여종업원은 의외의 말을 했다.
"덴구?"
"덴구지요. 저기 보이지요? 성 위쪽. 지금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곳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었어요. 성보다 더 큰 바위, 아래로 떨어진 그것이지요. 그게 원래는 하나였는데, 상당히 크지요."
- "아아... 야곡암 암굴 말이군요."
"알고 있구먼요" 하고 여종업원은 반가운 듯 말했다.
"그곳이 무서운 장소였다더라고요. 옛날에는, 아주 먼 옛날인 듯한데, 여러 고을의 덴구 님들이 모여서 집회를 열었답디다. 아타고의 다로보 님이며, 구라마의 소조보 님이며..."
"히코산의 부젠보도 말입니까?"
"그런 거요. 그런 영물들이 모여서 술잔이라도 나누는 것인지. 그럴 때는 그게, 파란 불이 오르거든요. 저 근방은 무서운 장소니까 아무도 오르지 않는데, 그런 산속에 퍼런 불이 희미하게 켜지는 거예요."
그것은 수은일 것이다. 금을 정제할 때는 수은을 쓴다. 수은은 암흑에서 푸르스름하게 발광한다.
- 저 오레구치 봉우리는 어쩌면 수험도, 산악종교 수행자들의 수행의 자리였던 것은 아닐까. 데와, 도가쿠시, 구라마, 오미네, 히코산... 산악종교가 성지로 정한 곳을 모모스케는 몇몇 방문한 적이 있다. 모두 험한 바위산이었다. 그러고 보니 경관이 몹시 비슷하게도 느껴진다.
그리고 그러한 산악종교 신자, 요컨대 산사람들은 광산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산속을 헤매는 산사람들은 철 등의 금속 제련에 뛰어난 자들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들 산사람은 향리에서 사는 백성들에게 위협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고, 그 외포심이 형태를 이루게 되었을 때, 그것은 종종 덴구로 불린 것이다. 근세의 덴구 대부분이 수험도 수행자 차림새로 그려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덴구와 수험도, 그리고 광산은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것이다.
- 혹시 오레구치 봉우리의 금은 미쓰가야 번이 통치하기 훨씬 이전부터 그들 산사람들의 손에 채굴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모모스케는 먼 옛날의 오레구치 봉우리로 생각을 달린다.
- "반드시 퍼집니다. 막부와의 관계도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 어떻게 해서든 지난번과 같은 소란을 일으키는 일만은 피해야만 하니... 저희들이 법석을 떨어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기지마는 분하다는 듯 말했다.
"실상, 소문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로님께서 성에서 쓰러지셨으니까요. 그 자리에도 많은 번사들이 있었지요. 사람의 입에 자물쇠를 채울 수는 없는 노릇. 그것은 전 번주가 저주를 내린 것이라고 함부로 말하고 있는 자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영주님도 가슴이 찢어질 듯 통탄해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제야 요시카게 공 휘하에서 결속하여 새로운 기타바야시를 만들고자 걷기 시작한 참입니다. 가시무라 님께는 죄송스러우나, 여기서 대열을 흐트러뜨릴 수야..."
기지마는 수국 잎을 뜯었다.
- "허나, 그분께서는 현재... 우리 번의 짐입니다. 필요치 않은 분."
"그것은..."
말이 과하다.
기지마는 짓뭉개진 잎을 뜰에 뿌리고 모모스케 쪽을 돌아보았다.
"냉혹한 언사임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움직이고 있지요. 구태의연한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그리 길지는 않습니다. 우리 무사들도 언제까지나 그저 태평하게 검을 차고 거들먹대고 있을 수 있으리라 보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찾아야만 합니다. 다행히 우리 영주께서는 젊으십니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 우리 번사와 함께 말씀을 나누려 하시지요. 이제부터입니다. 그러나..."
그분에게는 그러한 길이 닫혀져 있다.
기지마는 모모스케의 눈을 정면으로 보았다.
"이제 와 새삼 저주다 뭐다 법석을 떠는 것 자체가 커다란 폐. 그러다 자진을 하셔도 폐. 번의 가로가 무의미하게 배를 갈라서는 그야말로 저주라는 평판이 퍼지겠지요. 그렇다면..."
감금할 수밖에 없는가.
- "우리가 그 행자님을 찾고 있는 것은 물론 가시무라 님의 실성을 치유해 달라 부탁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으나, 본의는 따로 있습니다. 우리가 그 행자님께 부탁을 드리려는 것은 인심의 장악에 있습니다."
"인심 장악?"
"그렇습니다. 그 행자님은 불과 몇 개월 만에 이 고을 사람들... 무사와 상인, 백성과 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눈 깜짝할 사이에 소란을 진정시키셨지요. 그 대붕괴의 재난 또한 그 행자님이 계셨기 때문에 그저 재해로 끝났을 뿐. 그렇지 않았다면 저주의 소문은 한층 더 퍼지고, 아마 지금쯤 번은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일이리라.
동일한 일이 일어나도 결과는 정반대였음이 분명하다.
- 그것이 이 새로 태어난 기타바야시 번의 선택인 것이다.
그들은 가시무라를 구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 번을 구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분명 마타이치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리라. 모모스케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모스케는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자신은 무엇을 하러 이곳으로 온 것인가.
가시무라의 고뇌를 알고 있는 이는 모모스케뿐이며, 그 모모스케가 가시무라를 만나 이야기하면 혹 그 마음의 상처도 낫지 않을까. 그 정도 일로 얕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어처구니없는 착각이다. 모모스케 따위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각오가 부족하다는 것인가.'
- "고생이 많으셨다는 말씀은 들었습니다."
"무슨 고생이 있었겠나. 정말 고생을 하신 분은 요시카케 공이시지. 그분은 훌륭한 분이시네. 게다가 젊으시고. 요시카케 공과 같은 분을 번주로 맞을 수 있었던 일이 나의 자랑일세."
"허나... 아직도 가로님께서 힘을 써주셔야 할 것입니다."
"천만에. 나는 이미 필요치 않을 걸세. 앞으로는 좀 전의 기지마 같은 젊은이가 이 번을 짊어지고 가야지. 그것이 옳은 길일세. 다만... 나도 물러날 때를 잘 알지 못하는 늙은이라서 말일세."
- 가시무라는 양손을 자신의 얼굴 앞으로 천천히 가져갔다.
많은 주름에, 거무스름하고 뼈마디가 불거진 손가락이었다.
"오래 살다 보면 말일세,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지. 머릿속에는 그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서로 차곡차곡 쌓여서 모여 있지. 그 가운데... 좋은 일만을 본다면 행복하고, 나쁜 일만을 본다면 지옥이지. 그것을 택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일세."
가시무라는 자신의 손가락을 응시했다.
"잊는다는 것은 지워버린다는 것이 아니지. 담아두고 보지 않으며 지내는 것일 뿐. 보지 않아도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네. 그러나 깊숙이 담아둔 악한 것이 불쑥 밖으로 나오는 때가 있네. 그것은 말일세, 야마오카 군.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라네."
- "나는 이 손으로 처를 죽였지"라고, 가시무라는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처를 지키지 못했다네. 아니, 자신이 죽인 것일세."
"허나 그것은..."
이유라면 그 어떤 이유든 붙일 수 있다고 노인은 말했다.
"하지만 그 어떠한 이유도 얼버무림에 불과하지. 나에게는 이 손에 얼룩진 피만이 진실일 뿐. 그리고 나는 도라노신 님도 지키지 못했네. ... 아니, 알고 있네."
가시무라는 모모스케에게 손바닥을 보였다.
"그분은... 언젠가 죽었어야 했을 테지. 아니, 죽지 않으면 아니 될 자란 이 세상에는 없을 터이나, 그만큼 잔학무도한 행위를 벌인 이상 속죄하지 않으면 아니 될 일. 그 난행 또한 먼 옛날 행자님이 말씀하신 대로 나의 탓이 아니라 그분의 책임, 그분의 재량으로 벌이신 일일 터이지. 그 결과 빚어진 응보라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허나 말일세..."
이것은 나의 문제라고 가시무라는 말했다.
- "내 눈에는 지금도 똑똑히 도라노신 님이 보인다네."
모모스케는 화들짝 몸을 움츠렸다.
"두려워할 것 없네. 그것은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니라 내 마음속의 것. 나의 원통함이 나의 미련이 형상을 빚어 나를 질책하고 있는 것일세. 너는 무엇을 해왔나, 네가 무엇을 할 수 있었는가, 하고 말일세."
"가시무라 님께는 훌륭한 공적이..."
"그저 고분고분 살았어도, 이만큼 오래 살고 있으면 무언가는 있을 것이야. 번을 위해, 영민을 위해 이룬 일도 많을 테지.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은 다르네. 나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했는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였다고 노인은 말했다.
- "그리하여 나는 다시 한번 자신을 죽이게 되었지. 도라노신 님을 지키고 싶다는 자신의 마음을 죽이고 번을 위해, 영민을 위해 다시 무사로서 자신의 직무에 힘을 쏟았던 게요. 나는 두 번 자신을 죽였소. 내가 보고 있는 이 환각은..."
"나의 유령이오"라고 가시무라는 말했다.
-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기지마가 말한 그대로다.
모모스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모모스케는 그저 노인의 얼굴에 새겨진 깊은 주름을 바라보았다.
- "전혀 꺼지지 않았습니까?"
"더 타올랐다고 하던데요" 하고 행수가 대답했다.
"그게, 더 타올랐다고 할지, 불이 덮쳐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뭐랄까, 뱀처럼 말이지요."
"뱀... 이라."
- 설마.
모모스케는 예전에 같은 광경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은...
- "그것은 로진노히라는 것입니다."
모모스케가 대답했다.
"로진노히... 란 말입니까?"
"기소의 심산에 나타나지요. 노인이 불을 피우고 있는 형상의 괴이입니다. 산의 기운이 타오른다거나 괴조의 숨결이라는 말도 있으나, 대부분은 덴구의 소행으로 보지요."
- "이것은 마화(魔火)입니다만,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혹여 맞닥뜨린다면 짚신을 머리 위에 올리면 옆으로 스윽 도망쳐갑니다. 허나 섣불리 놀라면 세상 끝까지 따라오지요."
- "뭐, 못된 짓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로진노히는 말이지요, 물로는 꺼지지 않지요. 끄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축생의 털가죽... 짐승 가죽이지요. 그것으로 덮으면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불이 꺼지는 것과 동시에 노인의 모습도... 훅 하고 사라지지요."
"꺄아악."
여종업원이 괴성을 질렀다.
"못된 짓 하지 않아도 무섭네요."
"그렇지요" 하고 건성으로 답하며 모모스케는 발을 닦았다. 방금 모모스케가 이야기한 로진노히 전설은 예전 기소에서 들었던 적이 있으며, 엉터리가 아니다. 엉터리는 아니지만, 모모스케는 그 괴화를 노인불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
그 괴화는 등명 고에몬의 소행이 아닌가.
- 고에몬은 이 기타바야시에서 일을 끝낸 후 에도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타이치 일행과 손을 잡고서 몇 번인가 일을 했다. 모모스케도 몇 번쯤 그 활약상을 본 적이 있다. 고에몬은 원래 도사 지방의 산사람이며 특수한 화약을 쓴다. 오레구치 봉우리의 큰 바위를 쏘아 산산조각을 낸 그 화려한 기술뿐 아니라 불을 뱀처럼 자유자재로 부리는 잔재주까지, 그 능란한 기교에는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 설마 고에몬이.
모모스케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고에몬 또한 마타이치 일행과 함께 모모스케 앞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 고에몬이 움직이고 있다면...
'무언가 벌일 참인가?'
연극의 한 장치라고 한다면 입을 다무는 것이 가장 좋다.
- "당신은... 무언가 미련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시건방지게 입 놀리지 마라, 애송이."
쑥, 그림자가 앞으로 나왔다. 달빛에 얼굴이 떠오른다.
억센 수염으로 뒤덮인 얼굴, 작고 형형하며 예리한 눈, 삼베 법의에 가사를 두르고, 목에는 염주를 걸고 있다. 여기에 두건이라도 쓰고 있다면 그대로 수험도 수험승 차림새다.
- "네가 무얼 아나?"
"고에몬 씨 말씀대로 저는 각오고 뭐고 없는 빙충이어중이입니다. 허나."
그래도.
"상관이 없지." 고에몬은 말했다.
"착각해서는 아니 되지. 어중이인 쪽은 바로 나다. 넌 어엿한 작가 선생이잖은가. 나는 무숙인에 악당이며, 이렇게 구질구질한 늙은이라고. 엮여서는 아니 되지. 넌 이런 곳에 있어서는 아니 된다고. 썩 돌아가라."
고에몬의 눈은 모모스케를 거부하고 있었다.
- 맞설 수가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고에몬 또한 가시무라와는 다른 의미로 수라의 길을 걸어온 사내다. 고에몬 또한 간적의 덫에 걸려 정혼자를 주군에게 빼앗겼다. 그러나 고에몬은 가시무라와는 다른 길을 택했다.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가로를 베고 번을 뛰쳐나와 무사도를 버리고, 들로 내려와 어둠의 세계에 몸을 담갔던 것이다.
- 그것은 기이한 운명이었다.
고에몬의 정혼자가 낳은 아이, 가에데 님은 가시무라의 처가 낳은 아이, 단조 가게모토에게 살해당했다.
그리고 가시무라가 옹립한 현 기타바야시 번주 요시카게 공이 바로 그 가에데 님의 남동생인 고마쓰시로 시로마루인 것이다.
- "고에몬 씨..."
고에몬은 말없이 모모스케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알겠습니다. 저는... 더 이상 관여치 않겠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답해주시기 바랍니다. 고에몬 씨, 당신은 이 기타바야시에서 대체 무슨 일을 벌이려 하고 있습니까?"
- 고에몬은 얼굴을 돌렸다.
표정에 그늘이 진다. 등 뒤의 어둠에 녹아든다.
"매듭을 지으러 온 것이다."
"결판... 이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않다. 넌 알 수 없을 게다. 아니... 넌 알아서는 아니 된다."
-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란 헛된 것이다. 그릇된 일이다. 그릇된 일이나... 도저히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다. 허나, 사람이란 꼭 앞만 보며 살아야 하는가? 유익한 것만 해야 하는가? 옳은 것만 해야 하는가?"
"그것은..."
고에몬은 모모스케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모모스케에게서 등을 돌렸다.
"어쩔 도리가 없는 때라는 것이 있는 법이지, 선생."
- "어쩔 도리가 없는 때지. 이런 노인네가 되어 앞날이 뻔히 보이기 시작하면 '더는 어쩔 도리가 없군' 하고 말이지, 그런 기분이 들기 시작하는 법이라. 우습지 않나?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구별이 되지 않는 구질구질한 인생이건만, 그럴 때만은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지."
- "산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 갖다 버리기에는 미련이 남지. 담아두기에는 무거워지고. 어느 쪽을 택하든 돌이킬 수 없는 일인데 말이야. 그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을, 그럴 때 어떻게든 되돌리려 하지 않는가. 아니... 그런 마음을 먹고 싶은 것뿐이지."
고에몬이 말했다.
"마타 공은 풋내 난다며 비웃었지만, 그처럼 영문 모를 마음이 어디선지 모르게 치밀어 오른다고. 그러니 전부... 헛된 일이지.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은 그러한 일이다. 세상을 위한 길도 아니고, 대의명분도 없다.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지.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그러니..."
고에몬은 그다음 말을 잇지 않고 그저 모모스케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더니, "잘 가라"라고 말했다.
밤의 흑색에 녹아드는 악당의 등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모모스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 "어째서..."
모모스케가 손을 내밀려 한 그 순간이었다.
"만져서는 아니 되오!"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이 목소리는...?'
- 무대 뒤, 커다란 석탑 옆.
"만져서는 아니 되오. 그것은 덴구, 덴구가 둘... 저승으로 간 게요."
- '이 목소리는...!'
모모스케의 뇌리에 그리운 모습이 떠올랐다.
행자 두건에 흰 명주 홑옷 가슴에 시주함을 건 어행사.
- "마... 마타이치 씨! 마타이치 씨로군요."
모모스케는 마타이치를 부르며 앞으로 나가려다 쓰러졌다. 발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사람을 잘못 보셨소."
"예...?"
- 석탑 옆으로 나타난 것은...
검은 천을 늘어뜨린 검은 삿갓을 쓰고, 검은 홑옷에 검은 하의를 차려입은 사내였다.
"사람 중에 친분이 있는 이는 없소이다. 저기 덴구와 동족인 야타가라스라고 합지요."
까마귀는 고에몬 옆까지 스윽 이동하여 한쪽 무릎을 꿇었다.
- "어리석기 그지없는 덴구가 다 있군. 살 때도 혼자, 죽을 때도 혼자. 그렇다면 삶도 죽음도 별반 다를 바 없건만... 죽지 않으면 내리지 못할 막이라면 죽을 때까지 내리지 않으면 될 따름. 서로가 내려줄 때까지 잠시 그대로 놔두는 것조차 하지 못하다니..."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화륵.
고에몬의 몸에서 불기둥이 올랐다.
- "무, 무슨 짓을?”
"이렇게 해달라고 부탁을 받았기에. 그곳에 계신 분, 다리를 다친듯한데, 될 수 있으면 빨리 이곳을 떠나주시지요. 성대 가로 가시무라 효에, 마소에 내려온 덴구를 만나 덴구의 등명에 몸을 살랐다. 그런 줄거리이니."
- "허나... 그렇지만..."
야타가라스는 고개를 저었다.
다가가려는 모모스케의 팔을 차갑고 가녀린 손이 잡았다.
"아니 됩니다."
"당신은...?"
가녀린 그림자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도 얼굴을 감추고 검은 옷으로 몸을 둘렀다.
"자아, 곧 부목을 댈 테니. 어서 가지 않으면... 불에 타고 말 겁니다."
그림자는 모모스케의 발에 나뭇조각을 대고 솜씨 있게 천으로 감았다.
- "걸을 수 있겠소?"
"아..."
가까스로 일어설 수 있다.
모모스케가 일어선 모습을 확인한 그림자는 까마귀 옆에 나란히 섰다.
그 뒤로... 고에몬이 불타고 있다.
- "조심해서 내려가시라. 이것이... 현세의 작별이 될 것입니다."
- ... 까마귀와 그림자... 아니, 두 덴구는 모모스케를 향해 공손히 절을 했다. 그리고 화염에 휩싸인 고에몬과 가시무라에게 일별을 하고, 그대로 오레구치 봉우리 꼭대기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검은 옷이 화염에 비친다.
- 화르르, 커다란 불기둥이 올랐다. 화약이 장치되어 있었던 것이리라.
밤하늘이 진홍으로 물들었다.
"오긴 씨...!"
모모스케의 목소리는 타오르는 화염의 소리에 지워져 누구에게도 이르지 못한다.
타닥 타닥, 무언가가 터졌다. 모모스케는 외친다.
"마타이치 씨!"
- 그림자가 한순간 멈추었다.
- "당신들이 누구라도 상관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이 멋대로 죽어간 어리석은 덴구들에게... 애도의 말을 해주십시오."
모모스케는 그렇게 말했다. 무슨 까닭인지 눈물이 멎지 않았다.
- 야타가라스는 돌아보지 않은 채,
그러나 그 자리에 멈춘 채,
단 한마디,
- "어행봉위!"
- 라고 말했다.
- 야마오카 모모스케가 어행사 마타이치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다만 오레구치 봉우리를 내려올 때, 모모스케는 몇 번인가 요령 소리의 환청을 들었다고 한다.
에도로 돌아온 모모스케는 생애 두 번 다시 여행을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모모스케는 그 이유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 <로진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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