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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저자라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하지만 당시 나는 너무 어렸... 풉)
그리고 그 책을 꽤 좋아했었기 때문에, 작지 않은 기대를 가지고 읽었다.
흐음. 뭐라고 해야할까.
좋은데, 아무래도 나는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미묘한 찝찝함이 남는다. 해서 일단은 읽은 것으로 분류는 해놓지만 시간이 좀 흐른 뒤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시간과 화자가 교차해가는 전개 방식을 가지고 있는데, 화자에 따라 말투와 단어 사용이 미묘하게 다르다.
또한 초반의 긴 호흡의 교차와는 달리 왕의 행차에 다다르면 거의 문단 수준으로 교차되기 때문에 누구의 시점인지를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어려울 정도는 아니다)
주 흐름을 꼽자면.
교제 중이던 여자친구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정치적 농담을 던졌던 주인공은 그 농담이 문제가 되어 제명을 당하고 징집된다.
그 안에서 고립되고 버림받은 자신을 추스리지 못해 괴로워하던 중 루체라는 여인을 알게 되고,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 그녀를 잃게 된다.
그리고 15년이 흐른 뒤, 자신의 고향에 돌아온 시점.
거기에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하지만 그의 기억 속에서의 루체는 일부분이었을 뿐이고, 이 책에는 결국 루체의 시점은 등장하지 않지만 그의 친구인 코스트카를 통해 그녀의 과거가 드러난다.
는 것인데. (그 외에도 블라디미르라거나 제마네크, 헬레나 등 이야기할 부분이 많지만, 아무래도 지금 언급해두면 다시 글을 읽은 다음 많이 부끄러워 질 것 같기 때문에 자중하고 싶다.)
현재의 느낌만 가지고 말하자면, 나는 루드비크가 버겁다.
나는 농담의 파괴력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악의를 가진 농담은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고, 나는 그리 재치가 뛰어난 편이 아니라 그 농담에 담긴 진의까지는 파악할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농담을 통한 매끄러운 되받아침까지는 무리이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편이다.
특히나 비아냥거림이나 관심을 끌기 위한 농담은, 사실 싫어한다.
(적당한 것은 괜찮지만- 사실 나는 익살이나 경박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지만 체면이나 위신에 꽤 신경을 쓰는 편이다. 그렇게 챙길 체면 따위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더더욱 할 말이 없겠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인기인은 아니지만- 매사에 진지했던 마르케타를 닮아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제마네크의 위선적이면서도 비열하고 권위주의적인 그런 부분들을 교묘하게 가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루체일지도. 그녀처럼 적극적으로 오해를 조장하지는 않더라도, 굳이 묻지 않은 사실을 100% 말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설사 묻는다 해도, 무언가를 모두 다 말해야 할 필요는 없는 거니까. 적당히 덜어서, 적당한 부분만을 말해 내 보호색과 껍질로 이용한다고 해서-
나는 비난받아야 할까?
결국, 저자는 의도와는 달리 어긋나고 어긋나 농담처럼 우스워져버린 현실을 비웃고 싶었던 걸까?
모든 것을 하나의 농담으로?
진지하게, 모든 것을 진실이라 믿어도 결국 그것은 그 이면을 보지 못한 단편들 뿐이라는 것을?
흠. 그래.
나는 농담을 이해하지 못한다. 웃을 여유가 없는 건지도 모르지. 그래서 이 작품이 뭔가 미적지근한 것 같아.
(나는... 순수한 농담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 듯 싶다. 아니, 순수한 농담이라는 게 있기는 할까? 농담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는 말하고 싶지만 직설적으로 말하기 힘든 것을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풍자나 쿠션이 아닌가?)
[발췌]
매일 어떻게 지내느냐고 그는 내게 물었어, 나의 일상 생활을 들려주었더니 그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헬레나 씨, 그것은 칭찬할 만한 생활 방식이 아니군요, 하고 말하더군, 그의 목소리가 지금도 나의 귓가에 남아 있어, 그리고 그는 이렇게도 말했지, 그런 생활 방식은 바꾸어야 하고, 다른 생활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거야, 조금은 인생의 즐거움을 맛보아야 한다면서.
나는 그에게 말했지, 당신 말이 맞아요, 나는 항상 즐거움의 신봉자이기 때문에, 지금 유행하는 비애나 우울만큼 싫은 것은 없어요, 하고, 그랬더니 그 사람이 말하는 거야, 내가 한 말은 틀린 표현이고, 즐거움의 신봉자란 대개 가장 슬픈 사람들이라고, ....
이 마지막 얼굴이 진짜였을가?
아니다. 모든 것이 진짜였다. 위선자들처럼 내게 진짜 얼굴 하나와 가짜 얼굴 하나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젊었고, 내가 누구인지 누가 되고 싶은지 자신도 몰랐기 때문에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이 이미지는 나 자신보다 비교할 수도 없이 더 실제적이며, 그것이 나의 그림자가 결코 아니라 나, 바로 나 자신의 내 이미지의 그림자였다.
나는 이 밖에 다른 시도 읽어 주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그녀의 모습을 생각케 하는 시도. 그것은 다음의 3행으로 끝나고 있었다.
어리석은 말이여, 나는 너를 믿지 않는다, 믿는 것은 침묵
그것은 아름다움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나은
최고의 이해 (理解)
모습에 덧칠을 하지 않은 추억이란 어떤 것일까? 현재와 과거라는 두 개 얼굴의 동시 노출이 아닌 추억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내가 실제 어떤 인간이었는가 하는 것은 결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시 말해 나는 그녀를 몰랐던 것이다. 그녀가 실제로 어떤 여자였는지, 나 자신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에게 있어 그녀가 어떤 여자였는지 몰랐던 것이다.
나는 자기 중심적인 젊은 혈기로 인해, 직접 내게 (나의 고독에, 나의 부자유에, 상냥함과 친절에 대한 나의 갈망에) 향해져 있던 그녀 실재의 측면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않았던 것이다.
내게 있어 그녀는, 나 자신의 살아 있는 상황의 지수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구체적인 살아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 있던 모든 것이, 바로 그녀 자신이었던 것을 나는 보지 못했던 것이다
...
즉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고, 그녀가 나를 향해 있던 면뿐만 아니라, 그녀 혼자만의 것도 사랑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숙했던 나는 나 자신에게는 물론 그녀에게도 상처를 주고 말았다. 나 자신에게는 물론 그녀에게도 상처를 주고 말았다. 나 자신에 대한, 그리고 그 무렵의 내 연령, 어리석은 서정적인 연령에 대한 노여움이 치밀어 올랐다.
그 연령에는 누구나, 자신에게 없는 여러 가지 수수께끼를 상대하기에는 자기 자신이 너무나 큰 수수께끼여서, 그들에게 있어 타인은 (그 상대가 비록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단순히 움직이는 거울에 지나지 않아, 그 속에 자기 자신의 느낌, 자기 자신의 감동, 자기 자신의 가치 등을 보고 놀라움을 금하지 못한다.
이윽고 이 약통은 내게 다른 약통, 알렉세이의 수면제가 든 두 개의 약통을 생각케 했다. 그리고 소년은 사실상 헬레나의 목숨을 건진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설령 그 약통 안에 알게나가 들어 있었다 하더라도, 소년과 내가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 헬레나는 위가 좀 상하는 것이 고작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절망은 죽음의 문턱에서 멀리 덜어진 아주 안전한 곳에서, 목숨과 흥정을 하고 있었으니까.
[저자 후기 중]
... 그것은 1979년의 일이었다. 나중에 믿음직스런 친구가 된 젊은 철학자 알랭 핀켈클로드가 <콜리에데 델라 셀라>지를 위해, 나와 오랜 시간 인터뷰를 했다.
"<농담>과 <우스꽝스런 관계> 사이의 문체의 갑작스런 변화를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농담>에서의 당신의 문장은 화려하고 바로크 적이었는데..."
나는 그날 저녁 당장 <농담>의 프랑스어 판을 읽어 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작품의 번역판을 일일이 점검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 번역 문장은 내게 충격을 주었다. 프랑스 판 <농담?은 번역된 것이 아니라, 완전히 개작되어 있었다! 프랑스인이 말하는 아름다운 문체로.
내가 쓴 그대로의 문장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고, 모두가 수정되어, 때로는 길게 늘려 놓기도 하고, 흔해빠진 은유와 은어적 표현으로 과장된 문장이 되어 있었다.
-> '마치 귀x니의 소설의 중국 번안판 같은 상황이로군. 물론 작가의 반응은 매우 상반되겠지만 말야.'
이런 게 농담인가?ㅋ 어쨌든, 정말로 그 소설들의 중국 번안판에서는 이모티콘들과 당황스러운 외계어들이 싹 빠져서 (한문이니까...) 상당히 소설다운 소설로 변모한 것을 보고 놀라워했었다. 그리고 잠깐 생각했는데, 그래서 사대부들은 한자를 숭상한 걸까 싶기도 했다. 풉.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저자라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하지만 당시 나는 너무 어렸... 풉)
그리고 그 책을 꽤 좋아했었기 때문에, 작지 않은 기대를 가지고 읽었다.
흐음. 뭐라고 해야할까.
좋은데, 아무래도 나는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미묘한 찝찝함이 남는다. 해서 일단은 읽은 것으로 분류는 해놓지만 시간이 좀 흐른 뒤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시간과 화자가 교차해가는 전개 방식을 가지고 있는데, 화자에 따라 말투와 단어 사용이 미묘하게 다르다.
또한 초반의 긴 호흡의 교차와는 달리 왕의 행차에 다다르면 거의 문단 수준으로 교차되기 때문에 누구의 시점인지를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어려울 정도는 아니다)
주 흐름을 꼽자면.
교제 중이던 여자친구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정치적 농담을 던졌던 주인공은 그 농담이 문제가 되어 제명을 당하고 징집된다.
그 안에서 고립되고 버림받은 자신을 추스리지 못해 괴로워하던 중 루체라는 여인을 알게 되고,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 그녀를 잃게 된다.
그리고 15년이 흐른 뒤, 자신의 고향에 돌아온 시점.
거기에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하지만 그의 기억 속에서의 루체는 일부분이었을 뿐이고, 이 책에는 결국 루체의 시점은 등장하지 않지만 그의 친구인 코스트카를 통해 그녀의 과거가 드러난다.
는 것인데. (그 외에도 블라디미르라거나 제마네크, 헬레나 등 이야기할 부분이 많지만, 아무래도 지금 언급해두면 다시 글을 읽은 다음 많이 부끄러워 질 것 같기 때문에 자중하고 싶다.)
현재의 느낌만 가지고 말하자면, 나는 루드비크가 버겁다.
나는 농담의 파괴력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악의를 가진 농담은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고, 나는 그리 재치가 뛰어난 편이 아니라 그 농담에 담긴 진의까지는 파악할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농담을 통한 매끄러운 되받아침까지는 무리이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편이다.
특히나 비아냥거림이나 관심을 끌기 위한 농담은, 사실 싫어한다.
(적당한 것은 괜찮지만- 사실 나는 익살이나 경박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지만 체면이나 위신에 꽤 신경을 쓰는 편이다. 그렇게 챙길 체면 따위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더더욱 할 말이 없겠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인기인은 아니지만- 매사에 진지했던 마르케타를 닮아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제마네크의 위선적이면서도 비열하고 권위주의적인 그런 부분들을 교묘하게 가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루체일지도. 그녀처럼 적극적으로 오해를 조장하지는 않더라도, 굳이 묻지 않은 사실을 100% 말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설사 묻는다 해도, 무언가를 모두 다 말해야 할 필요는 없는 거니까. 적당히 덜어서, 적당한 부분만을 말해 내 보호색과 껍질로 이용한다고 해서-
나는 비난받아야 할까?
결국, 저자는 의도와는 달리 어긋나고 어긋나 농담처럼 우스워져버린 현실을 비웃고 싶었던 걸까?
모든 것을 하나의 농담으로?
진지하게, 모든 것을 진실이라 믿어도 결국 그것은 그 이면을 보지 못한 단편들 뿐이라는 것을?
흠. 그래.
나는 농담을 이해하지 못한다. 웃을 여유가 없는 건지도 모르지. 그래서 이 작품이 뭔가 미적지근한 것 같아.
(나는... 순수한 농담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 듯 싶다. 아니, 순수한 농담이라는 게 있기는 할까? 농담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는 말하고 싶지만 직설적으로 말하기 힘든 것을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풍자나 쿠션이 아닌가?)
[발췌]
매일 어떻게 지내느냐고 그는 내게 물었어, 나의 일상 생활을 들려주었더니 그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헬레나 씨, 그것은 칭찬할 만한 생활 방식이 아니군요, 하고 말하더군, 그의 목소리가 지금도 나의 귓가에 남아 있어, 그리고 그는 이렇게도 말했지, 그런 생활 방식은 바꾸어야 하고, 다른 생활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거야, 조금은 인생의 즐거움을 맛보아야 한다면서.
나는 그에게 말했지, 당신 말이 맞아요, 나는 항상 즐거움의 신봉자이기 때문에, 지금 유행하는 비애나 우울만큼 싫은 것은 없어요, 하고, 그랬더니 그 사람이 말하는 거야, 내가 한 말은 틀린 표현이고, 즐거움의 신봉자란 대개 가장 슬픈 사람들이라고, ....
이 마지막 얼굴이 진짜였을가?
아니다. 모든 것이 진짜였다. 위선자들처럼 내게 진짜 얼굴 하나와 가짜 얼굴 하나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젊었고, 내가 누구인지 누가 되고 싶은지 자신도 몰랐기 때문에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이 이미지는 나 자신보다 비교할 수도 없이 더 실제적이며, 그것이 나의 그림자가 결코 아니라 나, 바로 나 자신의 내 이미지의 그림자였다.
나는 이 밖에 다른 시도 읽어 주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그녀의 모습을 생각케 하는 시도. 그것은 다음의 3행으로 끝나고 있었다.
어리석은 말이여, 나는 너를 믿지 않는다, 믿는 것은 침묵
그것은 아름다움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나은
최고의 이해 (理解)
모습에 덧칠을 하지 않은 추억이란 어떤 것일까? 현재와 과거라는 두 개 얼굴의 동시 노출이 아닌 추억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내가 실제 어떤 인간이었는가 하는 것은 결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시 말해 나는 그녀를 몰랐던 것이다. 그녀가 실제로 어떤 여자였는지, 나 자신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에게 있어 그녀가 어떤 여자였는지 몰랐던 것이다.
나는 자기 중심적인 젊은 혈기로 인해, 직접 내게 (나의 고독에, 나의 부자유에, 상냥함과 친절에 대한 나의 갈망에) 향해져 있던 그녀 실재의 측면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않았던 것이다.
내게 있어 그녀는, 나 자신의 살아 있는 상황의 지수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구체적인 살아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 있던 모든 것이, 바로 그녀 자신이었던 것을 나는 보지 못했던 것이다
...
즉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고, 그녀가 나를 향해 있던 면뿐만 아니라, 그녀 혼자만의 것도 사랑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숙했던 나는 나 자신에게는 물론 그녀에게도 상처를 주고 말았다. 나 자신에게는 물론 그녀에게도 상처를 주고 말았다. 나 자신에 대한, 그리고 그 무렵의 내 연령, 어리석은 서정적인 연령에 대한 노여움이 치밀어 올랐다.
그 연령에는 누구나, 자신에게 없는 여러 가지 수수께끼를 상대하기에는 자기 자신이 너무나 큰 수수께끼여서, 그들에게 있어 타인은 (그 상대가 비록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단순히 움직이는 거울에 지나지 않아, 그 속에 자기 자신의 느낌, 자기 자신의 감동, 자기 자신의 가치 등을 보고 놀라움을 금하지 못한다.
이윽고 이 약통은 내게 다른 약통, 알렉세이의 수면제가 든 두 개의 약통을 생각케 했다. 그리고 소년은 사실상 헬레나의 목숨을 건진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설령 그 약통 안에 알게나가 들어 있었다 하더라도, 소년과 내가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 헬레나는 위가 좀 상하는 것이 고작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절망은 죽음의 문턱에서 멀리 덜어진 아주 안전한 곳에서, 목숨과 흥정을 하고 있었으니까.
[저자 후기 중]
... 그것은 1979년의 일이었다. 나중에 믿음직스런 친구가 된 젊은 철학자 알랭 핀켈클로드가 <콜리에데 델라 셀라>지를 위해, 나와 오랜 시간 인터뷰를 했다.
"<농담>과 <우스꽝스런 관계> 사이의 문체의 갑작스런 변화를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농담>에서의 당신의 문장은 화려하고 바로크 적이었는데..."
나는 그날 저녁 당장 <농담>의 프랑스어 판을 읽어 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작품의 번역판을 일일이 점검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 번역 문장은 내게 충격을 주었다. 프랑스 판 <농담?은 번역된 것이 아니라, 완전히 개작되어 있었다! 프랑스인이 말하는 아름다운 문체로.
내가 쓴 그대로의 문장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고, 모두가 수정되어, 때로는 길게 늘려 놓기도 하고, 흔해빠진 은유와 은어적 표현으로 과장된 문장이 되어 있었다.
-> '마치 귀x니의 소설의 중국 번안판 같은 상황이로군. 물론 작가의 반응은 매우 상반되겠지만 말야.'
이런 게 농담인가?ㅋ 어쨌든, 정말로 그 소설들의 중국 번안판에서는 이모티콘들과 당황스러운 외계어들이 싹 빠져서 (한문이니까...) 상당히 소설다운 소설로 변모한 것을 보고 놀라워했었다. 그리고 잠깐 생각했는데, 그래서 사대부들은 한자를 숭상한 걸까 싶기도 했다. 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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