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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야겠다, 고 생각했다.
지금껏 서점에서 몇 번이나 들었다 놓았다 했던 책이었다. 지금은 그 순간의 망설임들이 너무 아쉽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때를 느낀다. 어쩌면, 모든 일에는 연과 때가 있는 것 같다는 그런 생각.
지금이 아니라 다른 때에 이 책을 읽었다면 지금만큼의 느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필요한 순간에 필요했던 책과 만난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그리고 인터뷰어 지승호를 보며 능동적인 듣기가 가능하다는 점에 놀랐다.
상대방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서 꺼내고 싶은, 혹은 다른 이들이 듣고 싶어할 만한 이야기까지 끌어내는 듣기. 성급한 비교일지 모르지만, 마침 읽고 있던 오리아나 팔라치의 인터뷰가 겹쳐보였다.
이 책을 진보의 책이라고 말하는 것은 조금 조심스럽다. 진보적 인사들이 꽤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수에 가까운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도 있으며 이야기의 주제 역시 사회 전반과 하는 일에 대한 것들로 정치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리고, 김어준.
아... 어쩜 그리 생각하고 말하는 바가 콕콕 마음에 드는지....!!!
(물론 100% 동조하는 건 아니지만 그 특유의 짐승적인 어투는 너무 즐겁다)
나꼼수에서의 모습과는 또 다른, 딴지 일보 때와는 또 다른(내게는) 모습을 보았다.
꼭꼭꼭 읽었으면 좋겠다.
[발췌]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보통 사람은 자기보다 열 배의 부자에 대해서는 욕을 하고, 백 배가 되면 무서워하고, 천 배가 되면 그 사람 일을 해주고, 만 배가 되면 그 사람의 노예가 된다."
2000년 이상 전에 했던 이 말은 지금 사회에서 더 철저하게 구현되고 있다.
김어준 : 상어도 재밌어. 어떤 점에서 매력적이냐 하면 얘네들은 수백만 년 이상 더 이상 진화를 안 했어. 기본적인 기능은 변화가 없어요. 그러니까 기능적으로 진화의 끝에 도달한 동물들이 가지는 매력이 있어. 상어나 악어같이. 그런 애들은 그런 매력이 있고, 또 다른 쪽으로는 원숭이 중에 술 취한 영국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원숭이가 있어. 걔 얼굴이 빨개, 보통은 히프가 빨갛잖아. (웃음)
남미에 있는 원숭이인데, 걔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 인간의 관점에서 진화라는 것은 생물학적인 적합성을 찾기 위해서, 마치 인간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반복되어온 거대한 과정이라고 이해한다고. 우리가 그것을 진화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웃음) 진화를 진보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거지. 점점 나아져서 결국은 인간이 나왔다는 거야. 그런데 실제로 한 종이 어떻게 갈라지는가를 보면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그냥 다양성이야. 우리도 그냥 다양한 한 갈래의 끝에 있을 뿐이야. 그런데 우연하게도 두뇌 기능의 일부가 대단히 창조적인 역할을 하게 된 거지.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사람이 스스로를 각별하다고 여기는 게 얼마나 오만한지, 그런 생각도 하게 되는 거고.
그렇게 따지고 보면 그런 생각도 들어. 좌우를 나눌 때 역사가 방향성이 있느냐, 사실 좌파들은 역사가 방향성이 있다고 생각하거든. 역사가 후진 곳에서 더 나은 것으로 가기 위해 경합을 거듭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좌파의 사고잖아. 좌파는 인간의 기획에 의해 탄생한 개념이야. 실제 자연은 진보하는 것이 아니고 어쩌면 생태계에 더 가까울지도 몰라. ...
지승호 : <한겨례 신문> esc 면을 통해서 상담코너인 '그까이꺼 아나토미'를 맡아 했는데, 이미지가 남한테 조언하는 이미지는 아니잖아. 어쩌다가 그걸 하게 된 거야?
김어준 : 일이 커진 거지. 몇 년 전에 어떤 자리에서 잡지 기자들과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잡지에는 상담코너가 있잖아. 그것을 씹었어. "니네 왜 사기를 치냐, '좋은 게 좋은 거고, 다 잘 될 거야' 하는 것이 상담의 대부분인데, 거짓말 아니냐, 나는 무례하다고 본다. 니네가 조심조심 상담하는 태도 자체가 질문자에 대한 무례라고 본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 하면 그렇게 조심하고 다독거리고 이르고 하는 것은 상대방의 고민을 엄살, 옹알이하는 것이라고 보고, 조금만 잘못하면 크게 다칠 불완전한 영혼으로 대하는 거거든.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삶의 특정 국면에서 고민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상담해주는 사람보다 특별하게 하자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자정능력, 문제해결 능력이 있다. 그것을 기본적으로 신뢰해주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주는 것이 상대에 대한 제대로 된 존중이다", 뭐 이런 얘기를 해줬더니 '그럼 니가 해봐라' 이렇게 된 거야. (웃음)
지승호 : "다른 사람들이 상대방의 고민을 엄살로 보고, 불안정한 영혼으로 대한다"고 했는데, 총수가 상담자를 찌질이로 보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잖아.
김어준 : 그건 사실대로 말하는 거지. (웃음) 고민 좀 있다고 해서 어린애 취급하면 안 된다는 거야. 상담을 할 때 상대방은 나보다 훨씬 취약하고 열등하고 불안전한 존재로 상정한 다음에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조금만 잘못해도 이 사람은 자살하지 않을까'라고 지레짐작을 하면 안 된다는 거지. 내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상담하지 않아. 일반적인 상담이 기만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상담해주는 사람이 의뢰인에게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말은 되게 조심스럽고 우아하고 정제되게 한다고. 나는 그게 무례라고 생각한다는 거지. 그 사람이 찌질하게 행동했으면 찌질하다고 말해줘도 그 사람이 스스로 '나는 찌질했구나' 하고 충격을 흡수하고, 거기서 나름대로 껍질을 깰 자기 치유능력이 있단 말이야. 찌질하면 찌질하다고 말을 해줘야 된다고. 다칠까봐 조심스럽게 하는 것은 애들 다루듯 하는 거거든, 그러면 안 된다는 거지. 나는 그 사람이 감당해야 될 몫이라고 생각하고, 내 맘대로 말하는 거지. (웃음) ...
상담의 기능 중 하나가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동의를 얻고 싶고, 격려를 얻고 싶고, 이해를 구하고 싶고, 그래서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단 말이지.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아주 어리고, 예를 들어 10대가 '내가 대학을 원하는 데를 못 갔는데, 내가 하찮은 사람처럼 느껴져요'라고 다독거려주겠어.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이미 성인이 되어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면 못 다독거려주겠다는 거지.
지승호 : 늘 얘기하는 거지만, 한국 사람들이 30대, 40대가 되어도 성인이 되지 못하는 구조가 있잖아. 그렇게 생각하면 더 불쌍한 거잖아. 애들은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나 있지. (웃음)
김어준 : 그것을 다 구조의 탓이나 사회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거지. 물론 그것이 큰 함수이기도 하고, 애초에 어른이 되기 힘들도록 사회구자가 타이트하게 짜여 있긴 한데, 그게 모든 것의 핑계가 될 수 없다는 거지. 어쨌든 고민상담을 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뭐냐 하면 사람들이 자기가 언제 행복한지 모른다는 것이었어. 하고 싶다고 다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그리고 내가 언제 기분이 좋고 행복한지 굉장히 쉽게 파악이 되거든. ...
우리나라 부모들 교육이 잘못되고, 크게 각성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게 이런 거야. 애들을 조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부모들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선택을 대신해준다고. 왜냐하면 최소한의 기회비용으로 최선의 선택만 하게 하려고 하는 거야, '내가 다 해봤는데 이게 제일 좋아'라고 애들 대신 선택해줘. 그래서 대학생들 수강신청도 대신해주고, 직장도 대신 선택해주고, 결혼상대도 대신 선택해주는 거야. ... 이게 정말 바보같고 위험한 생각인 게, 사람은 절대 그런 식으로 배울 수가 없고, 공짜로 배울 수가 없다고. 자기가 실수하거나 오류를 저지르고,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선택해서 그 선택의 결과를 지가 맞이 해가면서 배울 수밖에 없는 거라고. ...
+) 배낭여행 결혼 이론. 이 글이 이 책에 실린 것이었구나!! 정말 동의한다. 하지만 함께 여행을 해보기란 쉽지 않다는 점.ㅋ
지승호 : 물론 극단적인 사례겠지만, 라디오 상담에서 그날 처음 만나서 '이 여자가 나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고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거기에 대해서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더니 그분이 화를 냈다면서요.(웃음) 어떻게 보면 요즘 사람들이 인내하지 못하고, 바로바로 결과를 얻고자 하는 세태를 반영한 것 같기도 합니다. 예전같이 삐삐도 없고, 핸드폰도 없던 시절에는 편지를 보내서 '어디서 기다릴게'하고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데 하루 종일 기다리던 시절도 있었지 않습니까?
김혜남 :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의 저자) 예전에는 작업에 들어가서 기다리고, 서로 가까워지는 시기를 거치고, 좋아하고, 그러다가 사랑으로 발전하는 시기들을 거쳤는데요. 요즘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오늘 만나서어떻게 상대방의 마음을 아냐?'고 했더니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싫은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웃음) 사람들이 상처받기를 극도로 꺼려하는 것 같아요. 자기는 좋아하는데, 상대방이 싫어할 경우에 상처받을까봐 아예 단칼에 Yes냐, No냐, 흑백논리에 따라서 관계를 맺는 것 같습니다. 싫으면 그만두라는 거죠. 요즘 말로 쿨한 건데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자아가 약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지승호 :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에서도 노숙자를 이유 없이 두들겨 패는 인상적인 장면이 나오는데요. 자기도 언제든지 장애인이나 노숙자 또는 사회적 약자가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약한 것은 나쁘다는 것을 교육받아왔기 때문일 텐데요.
김혜남 : 약한 것은 나쁜 것으고, 약한 모습을 보면 자기의 약한 모습이 투영되니까 그것을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자기도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요.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초등학교 때 공부를 못하면 '너, 그렇게 공부 못하면 길거리에서 청소하는 사람밖에 안 돼' 라는 식으로 부모가 얘기했다고 하는데요. 청소를 하는 사람이 나보다 더 행복할 수도 있잖아요. 아이들에게 그런 것이 실패자라고 가르치게 되면 그런 사람을 보거나 하면 실패자로 보거든요. 자기가 그렇게 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자기도 낙오자가 되고 실패자가 되는 거니까요.
지승호 : 앞으로 정치를 어떻게 할 지 모르겠지만, 미국이나 일본이 큰 변화를 겪지 않았습니까? 미국은 흑인 대통령이 나왔고, 일본도 자민당 50년 정권을 종식시켰는데요. 오히려 한국만 반대의 흐름이 생긴 것 같은데요. 이번에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를 쓰시면서 일본 생각도 많이 하셨을 것 같거든요. 일본도 조용히 뭔가 벌어지다가 투표로 확 바뀌었는데요. 한국에서 조용한 혁명의 씨앗이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석훈 : ('88만원 세대'의 저자) 어떻게 보면 80년대와 비교하면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바뀐 거거든요. 그러니까 운동진영에서 대학생들이 떠나간 거죠.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는 것이 없잖아요. 결국은 나머지 사람들이 비슷비슷할 거라고 치면 대학생들이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되는 것 같아요. 여성진영도 이미 10년 전에 움직였잖아요. 더 나올 패가 20대밖에 없고, 20대에서 그나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대학생밖에 없는데요. 지금 좌파는 대학생들을 버리고 가잖아요. 싸가지 없다고 하고. (웃음)
이게 논리적인 것 아닌가요? 방법은 모르겠지만, 거기에 마음을 사고 움직이고 변화를 할 수 있게 뭘 해야 되는 것은 너무 명확한 거죠.
지승호 : 경제 같은 경우에도 국민들한테 신뢰를 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할 텐데요. 지금 정부의 경우 신뢰를 못 얻는 편 아닙니까? 그런 면에서 국민들을 화합시키고 통합시킬 필요가 있을 텐데, 한나라당이 그걸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하셨다고 신문에 났던데요.
장하준 :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저자) 제 생각에는 그래요. 복지제도 같은 것을 만들면, 보편적 복지라고 하면 누구나 다 덕을 보는 거지만, 아무래도 돈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덕을 덜 보게 되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기들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정당이 그런 것을 하면 저항이 덜하거든요. 그러니까 닉슨이니까 중공하고 수교했지, 소위 민주당의 진보적인 대통령이었으면 절대 못했죠. 공산당하고 내통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닉슨은 믿었거든요. 저 사람은 확실한 우파니까 공산당하고 수교하면 공산당과 타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하겠지, 도리어 우파 정당들이 그런 것을 하기가 정치적으로 쉽다고요. 제가 거기서도 얘기한 게 진정한 보수라면 복지국가 정도는 만들 줄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복지국가를 세계에서 최초로 만든 것이 누구입니까? 보수 정치인으로 유명한 비스마르크잖아요.
지승호 : 일본은 너무 차이가 있고, 한국은 몇 년 정도 앞서 있으니까, 그렇다면 한계가 있다는 건데요. 중국도 눈이 높아지면.
진중권 : 그렇죠. 우리가 일본 베끼듯이 그렇게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어떤 도약이 필요한데, 제가 미디어 아트 쪽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그런 거예요. 예술적 감성과 공학적인 사고방식, 인문학적인 깊이, 이런 것이 같이 갖춰져야 사회가 발전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 기술이라는 것이 대개 모방적 기술이라는 말이에요. 남이 개발해놓으면 갖고 와서 약간 고쳐서 싼 노동력을 결합시켜서 나간다는 말이죠. 대부분이 수출을 해서 흑자를 내면 흑자의 대부분이 대일 무역적자로 가잖아요. 왜 그러냐 하면 대부분의 핵심부품과 소재는 일본에서 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대기업이 잘 나가도 트리클 다운 (대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면 덩달아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가 총체적으로 경기를 활성화시키게 된다는 경제이론이다) 이 안 되는 거죠. 이런 데 대한 리모델링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진보 쪽에서 이런 그림들도 그려나가야 돼요. 진단 좀 하고. ...
지금껏 서점에서 몇 번이나 들었다 놓았다 했던 책이었다. 지금은 그 순간의 망설임들이 너무 아쉽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때를 느낀다. 어쩌면, 모든 일에는 연과 때가 있는 것 같다는 그런 생각.
지금이 아니라 다른 때에 이 책을 읽었다면 지금만큼의 느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필요한 순간에 필요했던 책과 만난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그리고 인터뷰어 지승호를 보며 능동적인 듣기가 가능하다는 점에 놀랐다.
상대방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서 꺼내고 싶은, 혹은 다른 이들이 듣고 싶어할 만한 이야기까지 끌어내는 듣기. 성급한 비교일지 모르지만, 마침 읽고 있던 오리아나 팔라치의 인터뷰가 겹쳐보였다.
이 책을 진보의 책이라고 말하는 것은 조금 조심스럽다. 진보적 인사들이 꽤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수에 가까운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도 있으며 이야기의 주제 역시 사회 전반과 하는 일에 대한 것들로 정치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리고, 김어준.
아... 어쩜 그리 생각하고 말하는 바가 콕콕 마음에 드는지....!!!
(물론 100% 동조하는 건 아니지만 그 특유의 짐승적인 어투는 너무 즐겁다)
나꼼수에서의 모습과는 또 다른, 딴지 일보 때와는 또 다른(내게는) 모습을 보았다.
꼭꼭꼭 읽었으면 좋겠다.
[발췌]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보통 사람은 자기보다 열 배의 부자에 대해서는 욕을 하고, 백 배가 되면 무서워하고, 천 배가 되면 그 사람 일을 해주고, 만 배가 되면 그 사람의 노예가 된다."
2000년 이상 전에 했던 이 말은 지금 사회에서 더 철저하게 구현되고 있다.
김어준 : 상어도 재밌어. 어떤 점에서 매력적이냐 하면 얘네들은 수백만 년 이상 더 이상 진화를 안 했어. 기본적인 기능은 변화가 없어요. 그러니까 기능적으로 진화의 끝에 도달한 동물들이 가지는 매력이 있어. 상어나 악어같이. 그런 애들은 그런 매력이 있고, 또 다른 쪽으로는 원숭이 중에 술 취한 영국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원숭이가 있어. 걔 얼굴이 빨개, 보통은 히프가 빨갛잖아. (웃음)
남미에 있는 원숭이인데, 걔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 인간의 관점에서 진화라는 것은 생물학적인 적합성을 찾기 위해서, 마치 인간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반복되어온 거대한 과정이라고 이해한다고. 우리가 그것을 진화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웃음) 진화를 진보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거지. 점점 나아져서 결국은 인간이 나왔다는 거야. 그런데 실제로 한 종이 어떻게 갈라지는가를 보면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그냥 다양성이야. 우리도 그냥 다양한 한 갈래의 끝에 있을 뿐이야. 그런데 우연하게도 두뇌 기능의 일부가 대단히 창조적인 역할을 하게 된 거지.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사람이 스스로를 각별하다고 여기는 게 얼마나 오만한지, 그런 생각도 하게 되는 거고.
그렇게 따지고 보면 그런 생각도 들어. 좌우를 나눌 때 역사가 방향성이 있느냐, 사실 좌파들은 역사가 방향성이 있다고 생각하거든. 역사가 후진 곳에서 더 나은 것으로 가기 위해 경합을 거듭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좌파의 사고잖아. 좌파는 인간의 기획에 의해 탄생한 개념이야. 실제 자연은 진보하는 것이 아니고 어쩌면 생태계에 더 가까울지도 몰라. ...
지승호 : <한겨례 신문> esc 면을 통해서 상담코너인 '그까이꺼 아나토미'를 맡아 했는데, 이미지가 남한테 조언하는 이미지는 아니잖아. 어쩌다가 그걸 하게 된 거야?
김어준 : 일이 커진 거지. 몇 년 전에 어떤 자리에서 잡지 기자들과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잡지에는 상담코너가 있잖아. 그것을 씹었어. "니네 왜 사기를 치냐, '좋은 게 좋은 거고, 다 잘 될 거야' 하는 것이 상담의 대부분인데, 거짓말 아니냐, 나는 무례하다고 본다. 니네가 조심조심 상담하는 태도 자체가 질문자에 대한 무례라고 본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 하면 그렇게 조심하고 다독거리고 이르고 하는 것은 상대방의 고민을 엄살, 옹알이하는 것이라고 보고, 조금만 잘못하면 크게 다칠 불완전한 영혼으로 대하는 거거든.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삶의 특정 국면에서 고민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상담해주는 사람보다 특별하게 하자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자정능력, 문제해결 능력이 있다. 그것을 기본적으로 신뢰해주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주는 것이 상대에 대한 제대로 된 존중이다", 뭐 이런 얘기를 해줬더니 '그럼 니가 해봐라' 이렇게 된 거야. (웃음)
지승호 : "다른 사람들이 상대방의 고민을 엄살로 보고, 불안정한 영혼으로 대한다"고 했는데, 총수가 상담자를 찌질이로 보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잖아.
김어준 : 그건 사실대로 말하는 거지. (웃음) 고민 좀 있다고 해서 어린애 취급하면 안 된다는 거야. 상담을 할 때 상대방은 나보다 훨씬 취약하고 열등하고 불안전한 존재로 상정한 다음에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조금만 잘못해도 이 사람은 자살하지 않을까'라고 지레짐작을 하면 안 된다는 거지. 내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상담하지 않아. 일반적인 상담이 기만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상담해주는 사람이 의뢰인에게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말은 되게 조심스럽고 우아하고 정제되게 한다고. 나는 그게 무례라고 생각한다는 거지. 그 사람이 찌질하게 행동했으면 찌질하다고 말해줘도 그 사람이 스스로 '나는 찌질했구나' 하고 충격을 흡수하고, 거기서 나름대로 껍질을 깰 자기 치유능력이 있단 말이야. 찌질하면 찌질하다고 말을 해줘야 된다고. 다칠까봐 조심스럽게 하는 것은 애들 다루듯 하는 거거든, 그러면 안 된다는 거지. 나는 그 사람이 감당해야 될 몫이라고 생각하고, 내 맘대로 말하는 거지. (웃음) ...
상담의 기능 중 하나가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동의를 얻고 싶고, 격려를 얻고 싶고, 이해를 구하고 싶고, 그래서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단 말이지.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아주 어리고, 예를 들어 10대가 '내가 대학을 원하는 데를 못 갔는데, 내가 하찮은 사람처럼 느껴져요'라고 다독거려주겠어.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이미 성인이 되어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면 못 다독거려주겠다는 거지.
지승호 : 늘 얘기하는 거지만, 한국 사람들이 30대, 40대가 되어도 성인이 되지 못하는 구조가 있잖아. 그렇게 생각하면 더 불쌍한 거잖아. 애들은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나 있지. (웃음)
김어준 : 그것을 다 구조의 탓이나 사회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거지. 물론 그것이 큰 함수이기도 하고, 애초에 어른이 되기 힘들도록 사회구자가 타이트하게 짜여 있긴 한데, 그게 모든 것의 핑계가 될 수 없다는 거지. 어쨌든 고민상담을 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뭐냐 하면 사람들이 자기가 언제 행복한지 모른다는 것이었어. 하고 싶다고 다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그리고 내가 언제 기분이 좋고 행복한지 굉장히 쉽게 파악이 되거든. ...
우리나라 부모들 교육이 잘못되고, 크게 각성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게 이런 거야. 애들을 조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부모들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선택을 대신해준다고. 왜냐하면 최소한의 기회비용으로 최선의 선택만 하게 하려고 하는 거야, '내가 다 해봤는데 이게 제일 좋아'라고 애들 대신 선택해줘. 그래서 대학생들 수강신청도 대신해주고, 직장도 대신 선택해주고, 결혼상대도 대신 선택해주는 거야. ... 이게 정말 바보같고 위험한 생각인 게, 사람은 절대 그런 식으로 배울 수가 없고, 공짜로 배울 수가 없다고. 자기가 실수하거나 오류를 저지르고,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선택해서 그 선택의 결과를 지가 맞이 해가면서 배울 수밖에 없는 거라고. ...
+) 배낭여행 결혼 이론. 이 글이 이 책에 실린 것이었구나!! 정말 동의한다. 하지만 함께 여행을 해보기란 쉽지 않다는 점.ㅋ
지승호 : 물론 극단적인 사례겠지만, 라디오 상담에서 그날 처음 만나서 '이 여자가 나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고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거기에 대해서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더니 그분이 화를 냈다면서요.(웃음) 어떻게 보면 요즘 사람들이 인내하지 못하고, 바로바로 결과를 얻고자 하는 세태를 반영한 것 같기도 합니다. 예전같이 삐삐도 없고, 핸드폰도 없던 시절에는 편지를 보내서 '어디서 기다릴게'하고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데 하루 종일 기다리던 시절도 있었지 않습니까?
김혜남 :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의 저자) 예전에는 작업에 들어가서 기다리고, 서로 가까워지는 시기를 거치고, 좋아하고, 그러다가 사랑으로 발전하는 시기들을 거쳤는데요. 요즘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오늘 만나서어떻게 상대방의 마음을 아냐?'고 했더니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싫은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웃음) 사람들이 상처받기를 극도로 꺼려하는 것 같아요. 자기는 좋아하는데, 상대방이 싫어할 경우에 상처받을까봐 아예 단칼에 Yes냐, No냐, 흑백논리에 따라서 관계를 맺는 것 같습니다. 싫으면 그만두라는 거죠. 요즘 말로 쿨한 건데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자아가 약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지승호 :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에서도 노숙자를 이유 없이 두들겨 패는 인상적인 장면이 나오는데요. 자기도 언제든지 장애인이나 노숙자 또는 사회적 약자가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약한 것은 나쁘다는 것을 교육받아왔기 때문일 텐데요.
김혜남 : 약한 것은 나쁜 것으고, 약한 모습을 보면 자기의 약한 모습이 투영되니까 그것을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자기도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요.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초등학교 때 공부를 못하면 '너, 그렇게 공부 못하면 길거리에서 청소하는 사람밖에 안 돼' 라는 식으로 부모가 얘기했다고 하는데요. 청소를 하는 사람이 나보다 더 행복할 수도 있잖아요. 아이들에게 그런 것이 실패자라고 가르치게 되면 그런 사람을 보거나 하면 실패자로 보거든요. 자기가 그렇게 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자기도 낙오자가 되고 실패자가 되는 거니까요.
지승호 : 앞으로 정치를 어떻게 할 지 모르겠지만, 미국이나 일본이 큰 변화를 겪지 않았습니까? 미국은 흑인 대통령이 나왔고, 일본도 자민당 50년 정권을 종식시켰는데요. 오히려 한국만 반대의 흐름이 생긴 것 같은데요. 이번에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를 쓰시면서 일본 생각도 많이 하셨을 것 같거든요. 일본도 조용히 뭔가 벌어지다가 투표로 확 바뀌었는데요. 한국에서 조용한 혁명의 씨앗이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석훈 : ('88만원 세대'의 저자) 어떻게 보면 80년대와 비교하면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바뀐 거거든요. 그러니까 운동진영에서 대학생들이 떠나간 거죠.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는 것이 없잖아요. 결국은 나머지 사람들이 비슷비슷할 거라고 치면 대학생들이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되는 것 같아요. 여성진영도 이미 10년 전에 움직였잖아요. 더 나올 패가 20대밖에 없고, 20대에서 그나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대학생밖에 없는데요. 지금 좌파는 대학생들을 버리고 가잖아요. 싸가지 없다고 하고. (웃음)
이게 논리적인 것 아닌가요? 방법은 모르겠지만, 거기에 마음을 사고 움직이고 변화를 할 수 있게 뭘 해야 되는 것은 너무 명확한 거죠.
지승호 : 경제 같은 경우에도 국민들한테 신뢰를 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할 텐데요. 지금 정부의 경우 신뢰를 못 얻는 편 아닙니까? 그런 면에서 국민들을 화합시키고 통합시킬 필요가 있을 텐데, 한나라당이 그걸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하셨다고 신문에 났던데요.
장하준 :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저자) 제 생각에는 그래요. 복지제도 같은 것을 만들면, 보편적 복지라고 하면 누구나 다 덕을 보는 거지만, 아무래도 돈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덕을 덜 보게 되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기들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정당이 그런 것을 하면 저항이 덜하거든요. 그러니까 닉슨이니까 중공하고 수교했지, 소위 민주당의 진보적인 대통령이었으면 절대 못했죠. 공산당하고 내통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닉슨은 믿었거든요. 저 사람은 확실한 우파니까 공산당하고 수교하면 공산당과 타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하겠지, 도리어 우파 정당들이 그런 것을 하기가 정치적으로 쉽다고요. 제가 거기서도 얘기한 게 진정한 보수라면 복지국가 정도는 만들 줄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복지국가를 세계에서 최초로 만든 것이 누구입니까? 보수 정치인으로 유명한 비스마르크잖아요.
지승호 : 일본은 너무 차이가 있고, 한국은 몇 년 정도 앞서 있으니까, 그렇다면 한계가 있다는 건데요. 중국도 눈이 높아지면.
진중권 : 그렇죠. 우리가 일본 베끼듯이 그렇게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어떤 도약이 필요한데, 제가 미디어 아트 쪽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그런 거예요. 예술적 감성과 공학적인 사고방식, 인문학적인 깊이, 이런 것이 같이 갖춰져야 사회가 발전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 기술이라는 것이 대개 모방적 기술이라는 말이에요. 남이 개발해놓으면 갖고 와서 약간 고쳐서 싼 노동력을 결합시켜서 나간다는 말이죠. 대부분이 수출을 해서 흑자를 내면 흑자의 대부분이 대일 무역적자로 가잖아요. 왜 그러냐 하면 대부분의 핵심부품과 소재는 일본에서 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대기업이 잘 나가도 트리클 다운 (대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면 덩달아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가 총체적으로 경기를 활성화시키게 된다는 경제이론이다) 이 안 되는 거죠. 이런 데 대한 리모델링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진보 쪽에서 이런 그림들도 그려나가야 돼요. 진단 좀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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