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다시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간 친구에게 축하를.
얼마 전 치른 시험에선 좋은 성적을 얻었기를 바라며.
현재 내 최우선 목록은 KAIST 선정 추천도서 목록이고, 얼마 전까지 친구의 우선 목록은 (아마) 가대 것이었다.
친구가 보내준 목록에서 반가운 책들이 보여, 이미 벌여놓은 판에 낼름 추가시켰는데 그 중 한 가지가 이 기생수이다.
흠, 만화가 섞여있다는 점이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는데, 닥터 노구치(닥터 K는 너무 멀리 가니까...) 같은 의학 만화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할 만 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아무리 잘 그려도 만화라는 장르의 특성상 오류나 과장을 범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일부러 피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의사와 인간으로서의 고뇌는 굳이 만화가 아니어도 충분히 표현될 수 있다. 에릭 시걸의 닥터스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다시 한 번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목록에도 있고 해서 바로 순서를 바꿨다.
교복을 입고 다닐 때 봤었는데, 다시 읽어도 여전히 재밌다.
인간은 과연...?
세기말에 접어들고, 환경오염 등이 이슈로 떠오르면서 '인류는 지구의 암'이라는 슬로건까지 등장했었는데-
나는 이 작품에서 좀 더 독특한, 아니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을 보아서 좋았다.
아직 이 부분에 있어서 명확하게 생각을 정리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인간이 지구의 암이라는 생각조차 오만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다지 득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지구라는 행성을 파멸로 이끌 정도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인류가 멸종해도 지구는 살아남지 않을까, 싶다. 즉 자신들이 지구에 그만큼 중요하다는, 핵심적이라는 생각이 은연 중에 깔린 것 같다는 거다. 인류의 종말 = 지구의 파멸로 생각하는 식.
이 작품은 어느날 생겨난 패러사이트들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을 먹어라' 라는 본능을 가진 이들은 인간의 신체에 침투, 뇌를 차지한 다음 그 몸을 이용해 살아간다. 주인공은 우연히 뇌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오른손만을 잠식한 한 패러사이트와, 그와 공존하는 소년이다. 소년은 인간의 뇌를 잃지 않았으나 '오른쪽이'와의 공존 도중 조금씩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그렇다고 염세적이고 우울한 이야기는 아니다. 여러가지 입장들, 개체 차이들이 드러나는데 그 '개성'이 인간에게서도 나타났지만 패러사이트들에게서도 나타났다는 점이 묘하게 현실감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나는 현실감 있는, 빨려들어갈 수 밖에 없는 캐릭터들의 충돌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런 점에서 잘 맞았던 듯 하다.
인간이야 말로 기생수라고 주장하는 국회의원.
패러사이트들 역시 처음의 무차별적인 학살, 사냥에서 서서히 사회적인 개념을 배워가며 공존을 모색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들 무리 중 지도적인 역할을 맡았던 자다.
하지만 여기서의 아이러니는, (아마도 의도된 듯 하지만) 정작 인간을 기생수라고 주장한 이 자는 인간이었다. 패러사이트가 아닌.
이 장면에서 나는 이 생각이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점을 더 강하게 느꼈는데, 이 전에 나오는 다른 패러사이트들의 말과 대조되어 더욱 그랬다.
- 사전에 '악마'의 정의를 읽었는데, 그에 가장 부합하는 것은 역시 인간인 것 같다.
-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 인간도 가축들과 공존하지 않는가, 물론 한 쪽이 일방적으로 사육하고 있긴 하지만.
또한 연쇄 살인마의 대사도 재밌었다.
- 나는 진짜 인간이지? 그것들은 단지 먹기 위해 사람을 죽이지만, 나는 달라.
본능이나 섭식, 생식 이외의 목적으로, 유희를 위해 생명을 (특히 동종의) 빼앗는 종은 유일할 것이라 생각한다.
크게 한 쪽의 편을 들며 기울어지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인간을 객체화해서 보려는 작가의 시각이 즐거웠다.
주인공 신이치의 고뇌도 좋았고, 패러사이트 타무라 역시 흥미로웠다. 마지막에, 판단을 신이치에게 넘긴 오른쪽이의- 동족 살해에 대한 발언도.
깊게 생각할 것 없이 그냥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으니, 딱딱하게 생각할 것 없이 가볍게 한 번 보는 것도 좋겠다.
(만화책을 본다, 와 만화책을 읽는다 사이에서 고민했던 적이 있는데 지금은 나만의 기준으로 어휘를 선택한다.)
사족을 좀 더 덧붙이자면, 대중적으로도 재미를 주면서 그 안에서 반짝이는 지점들이 있는 작품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나는 이영도를 꽤나 좋아한다. 물론 폴라리스 랩소디와 퓨쳐 워커는 조금 멀리 갔지만, 눈물을 마시는 새와 피를 마시는 새, 그리고 드래곤 라자는 정말 한국 판타지의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외에도 바람의 마도사, 하얀 늑대들 등등 많지만, 나는 이영도 편애가 좀 있다.)
그래서 요지는, '기생수'는 그냥 봐도 재미있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 또 다른 재미도 있으니 한 번 시도해볼 만한 작품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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