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배진수
제공 : 네이버시리즈
상태 : 완결
개인 별점 : 3.9 / 5
대부분의 전근대 사회에서는 구어와 문어의 분리 현상이 심했다.
사회 구성원으로 활동하며 '의사소통' 자체는 가능하지만, '문자'를 몰라 정보 및 신분의 비대칭을 경험하는 이들이 존재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의외로 그런 어려움은 한쪽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언문'이 워낙 익히기 쉽고 음의 표기에 뛰어난 문자라 그렇지, 서로 다른 계층끼리는 상대의 '문자'나 '표기'를 이해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따라서 같은 정보를 '읽고 이해한다', 다시 말해 '해독할 수 있다'는 건 그 사람 역시 무리의 구성원 자격이 있다는 의미였다고도 볼 수 있다.
'표준어', '표준 맞춤법'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하지만-
처음에는 일종의 밈이었던 표기들이 이제는 일종의 '사투리'처럼 분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는구나'라고 쓰는 사람과 '하구나'라고 쓰는 사람은, '드러났다'와 '들어났다'라고 쓰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거나 살고 있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자주 접하는 매체나 커뮤니티가 다를 테니까)
사실 표기만의 문제도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서양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자세, 억양, 발음 등으로 서로를 판단하고 분류해 왔으니까. <마이 페어 레이디> 시절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현대에도 포쉬(posh)나 슬랭(slang) 등 같은 언어구사자끼리도 서로 의사소통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으니까.
<퍼니게임>은 내가 이런 잡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이다.
금융 지식도, 일종의 금융 문맹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빨리 생각을 바꿀수록 적은 기회 비용이 든다는 생각에서 파생된.
<퍼니게임> 자체는, 다소 작위적이다.
스토리 전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전 작품들에서 지력, 광기, 가치관 등의 '비무력적인' 수단들이 중심이 되었으니 이번에는 오히려 '힘'이 중심이 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결말이 걸렸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에 대한-
이 사회가 어릴 때부터 지속적으로 세뇌에 가깝게 강조하는.
하지만 기존 체제 전복을 노래할 게 아닌 다음에야, 어쩔 수 없고 당연한 결론이라고도 생각한다.
같은 이유에서,
<게임 3부작>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가장 충격적으로 느껴야 할 부분은.
조금 다른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사족.
<게임 3부작>을 읽고 나면 상당히 많은 상황에서 화가 줄어든다. 이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걸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그걸 얻기 위해 사료를 먹을 필요까지는 없지만, 초기의 고통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언제나,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 물어보는 내용이 달라지더라구.
수익률 쫙쫙 뽑아 올릴 땐, 투자금은 어떻게 구했냐, 종목 좀 추천해 줄 수 있냐, 겁은 안 나냐.
수익률 곤두박질 칠 땐, 무슨 깡으로 그랬냐, 대책도 안 세워놨냐, 나였음 겁나서 못 한다.
- 두 질문 다 내가 돌려준 대답은 똑같았어.
그냥, 주사위를 너희보다 빨리 굴렸을 뿐이라고.
- 평생 반지하에서 말라가는 통장 잔액이나 힐끔대며 사는 게 싫다면.
그것보단 한강뷰 아파트에서 매일 이자 불어나는 거 감상하며 사는 게 좋다면.
어차피 인생에서 한 번은 승부를 걸었어야 했다고. 그걸 남보다 조금 빨리 했을 뿐이라고.
- 최종정산 되어 내 통장에 입금된 돈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빚을 갚고 월세 보증금을 내니 만져보지도 못한 돈이 0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완전한 0은 아니었다.
- 초대장.
1을 수십 수백 억대로 불릴 수 있는 마법의 초대장.
결심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 언젠가 자기개발 채널에서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아낀다고 다 부자가 되는 건 아니지만, 부자는 모두 아끼는 습관을 가지고 있어요. 부자의 소양을 갖춘 사람은 아무리 돈이 많이 모여도 여전히 잔돈 한 푼이라도 아끼려 들지만. 소양 없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모였다 판단하는 순간 소비를 늘리기 시작하죠. 이게 바로 리바운드입니다. 경계해야 해요. 다이어트로 따지면 요요 같은 거니까. 이걸 극복 못하면, 장담하는데 평생 다이어트도 못 하고 돈도 못 모아요."
- 이미 겪어 알고 있으니까.
다수결의 가장 큰 단점은 소수 의견의 묵살이란 것을.
어차피 무시될 의견이라면, 숨기는 게 낫단 것을.
- 그러니까, 이 '경험'이 무서운 거다.
이제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단 거다.
개 사료나 건빵이나 사탕의 시절로, 다시는.
그러니까 지출 역시 수입을 따라 한없이 커져갈 것이다. 저지하지 못한다면 한 없이 늘어질 것이다.
- 들은 적 있다. 인질범의 각오가 결연할수록 협상가의 접촉에 반응하지 않는다고.
그나마 다행인 건, 그는 '멍청'하고도 '착한' 인간이란 것. 멍청한지라 식음료 독점까지는 생각이 닿지 않았을 것이고 착한지라 멸망전을 감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본능이 경고하고 있겠지. 여기서 한 발,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퇴장 같은 형벌로 끝나진 않는다는 걸.
- 하지만 그렇다 해서 안심해도 된단 건 아니다.
지금 그러지 않는다 해서 나중에도 그러하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으니.
- 6명의 이익. 즉 돈을 위해 1명의 목숨을 담보로 잡는 게, 진짜, 선인가?
- "안에서 1원 한 장이라도 써봐라, 니도 무사하진 못 할기다, 어?! 우리가 가만 안 있을 기라고!"
기세가 오른 6번은 턱을 처올리며 위협한다.
하지만 딱히 그가 무서운 건 아니다.
오히려 신경 쓰이는 건,
'우리'.
- 이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다면 6번의 바람 대로 비난의 화살은 나를 향할 테니.
어쩌면 공공의 적이 될 수도 있으니.
- 우선은 당근을 내밀어 주의를 끈다.
하지만 말에 신뢰를 부여하는 건 당근 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의심스럽다.
- 현실적인 제안. 채찍을 섞는다.
이 쪽이 오히려 더 신용이 생긴다.
- "결국! 결국 나쁜 사람이었어! 1번 님도!! 친구라고 했으면서! 다 똑같아! 전부! 돈! 돈! 돈에 미쳐서!!!"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린 단 한 번도 친구였던 적이 없다.
난 그저, 당신을 이용하고 있었을 뿐이다.
- 하지만... 내게 얌전히 이용 당해 줬으면.
그거라도 잘해줬으면.
훨씬 나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 선택지를 쥐여주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게 정의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모르겠다.
선택지를 주는 게 언제나 옳은 선택인 건지.
- 어쩌면, 나쁜 선택지만 거듭 고르는 인간.
그렇기에, 선택지를 가질 자격이 없는 인간.
도 있는 게 아닐까...
- 그리고 이렇게.
'진짜' 게임이 시작됐다.
- 결국, 다시 이렇게 됐다.
결국 다시, 이전 게임들의 재현이 됐다.
결국 저들의 말이 맞는 건가.
내가 했던, 또 하는 모든 게임은 그저 주최 측의 '인간론'을 증명하는 즐거운 시뮬레이션일 뿐인 건가.
- [네. 인간은 다 똑같... 잖아요. 사회에서 격리시키고, 한 겹 ... 체면을 벗겨내면.]
[그냥 다 동물일 뿐이라고.]
[미끼가 먹음직스러울수록 더 빨리 짐승이 된다고.]
- 어쩌면 그럴지도. 오래 관찰하고 분석한 저들의 말이 맞을지도.
그러니 이제부터는.
- 스튜디오는 철저하게 닫힌 폐쇄 사회. 이곳에서 한 번 공포가 퍼지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잠식됨을, 늘 겪었다.
공포의 전염성과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 그의 말.
중 하나의 단어에.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돌아왔다.
- [친해지고 싶어서 그래요]
- 그 바람은 진실이 아닐 것이다.
내가 아니었던 것처럼, 너 역시.
- 정신이 돌아오니 보였다. 그리고 들렸다.
3번이 구사하고 있는 대화의 전략은 전형적인 콜드리딩.
- 즉, 본인의 정보는 아무것도 내놓지 않은 채 상대의 정보만을 취하려는 대화의 전략.
그렇다면.
- "아뇨, 괜찮아요. 저도 마찬가지죠. 사회가 맞춤복 마냥 딱 맞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런 사람은 애초에 여기 오지도 않았을 테고."
나 또한 같은 전략으로 대응한다. 건네받은 정보 이상은 돌려주지 않는다.
"참가자들이랑 친하게 지내는 건 언제나 찬성해요.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이 게임은 반목보다는 화합하는 게 승률이 더 높은 것 같으니까."
- 타인의 탈락이 내 이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바꿔 말해, 내 탈락이 타인의 이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은 한껏 나이브해졌다. 서로 견제하고 배제할 이유가 없어졌으니.
그저 사이좋게 잘 지내다 돈 벌어 나가면 될 게임.
으로 인식하고 있으니.
- 하지만 함정이다.
그렇게 쉽게.
생각대로 이뤄질 리 없다.
- 타인의 탈락이 나의 이득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말은 곧, 명분과 정의를 앞세운 손쉬운 단죄가 가능하다는 것.
익히 알던 익숙한 구조의 사회.
오염된 정보와 일그러진 정의가 뿌리내리기 좋은...
- 또한 경험으로 알고 있다.
더욱 경계해야 한다는 걸.
선의지가 충만하고 선행에 적극적인 자.
즉, 본인을 '선'으로 확고히 인지하고 주장하고 심지어 탄원하는 자.
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면.
늘.
눈이 멀거나 몸이 탔었으니.
- 잘 기억나진 않지만 예전에 그런 영화가 있었다.
특정인의 범죄 확률을 계산할 수 있는, 즉, 누군가 미래에 범죄를 저지를지 아닐지 예측할 수 있는 국가조직 소속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가.
그 영화의 화두는 이것이었다. 대상이 아직 범죄를 저지르진 않았지만, 분석 결과 높은 확률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다는 예측이 나왔다면.
사전에 그를 구금/제거하는 건 옳은 일인지 아닌 것인지.
정의인지 아닌 것인지.
- "지가 하는 건 다 옳은 줄 아는갑지."
6번의 마지막 한 마디가 가슴을 후벼 판다.
[내가 하려는 일은 과연 옳은 일인가?]
- 종료일이 가시권에 들어오자 몇 가지 이상한 현상들이 관측됐다.
- 첫 번째는 일 소비액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
즉 사재기가 사라졌다는 것.
끝이 언제일지 가늠되지 않을 땐 마치 두려워 겨울을 대비하는 다람쥐 마냥 각종 식음료 용품 용구들을 그러모았지만, 더 이상, 마침내, 그럴 필요가 없어지니 쥐고 있던 주먹을 편 것이다.
- 두 번째로는, 주먹뿐 아니라 참가자들의 인상도 확연히 펴졌다는 것.
이유는 첫 번째와 같은 궤. 더 이상은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니. 불안을 조성하던 인간들은 모두 떠났거나, 사라졌거나, 묶여 있으니.
- 주먹도 펴지고 인상도 펴지자, 그러니까 어제의 불안이 해소된 오늘을 맞이하자, 사람들은 비로소,
내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진짜 미국에 몰빵 친다구요? 와 3번 님 용감하시네."
"아니죠. 오히려 겁쟁이라 그렇게 하는 겁니다. 제일 큰 나라의 제일 강한 주식 사는 게 장투의 정석이라 생각하니까요."
"주식보단 금이지. 나라가 망해도 금은 절대 안 망하니까. 연금술사라도 나오지 않는 이상."
"와... 다들 플랜이 있으시네요. 난 그냥 강남에 집이나 몇 채 살까 했는데."
-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고 연 2% 수익률만 확보해도 연봉 4억 원을 버는 효과.
월급 3천만 원을 버는 효과.
하루 백만 원을 버는 효과.
- 새삼 느끼는 돈의 파괴력.
부가 창조하는 압도적인 삶의 변혁들.
행복하다, 즐겁다, 안전하다, 평온하다, 기쁘다, 편리하다, 평화롭다, 만족스럽다 등의 존재하는 모든 긍정적 형용사들을 살 수 있는.
돈의 힘.
- '사회적 관념과 가치관이 경제 모델에 미치는 영향'
"자연에는 선악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연 속에서 사는 동물 또한 마찬가지. 우리는 포식자가 피식자를 사냥하는 걸 악하다고 하지 않고 피식자가 포식자에게 먹히는 걸 선하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의문이 하나 생기죠. 인간 또한 '자연' 속에 사는 '동물'일 뿐인데, 어째서 유독 인간에게만 선악의 개념을 적용하려 드는가?"
- "자연을 극복한 고등 동물이라서,라는 쉬운 설명을 하기엔 인간이 만든 이 가치관은 기준과 정의가 너무나 쉽게 변질됩니다. 인간이 발견하거나 발명해 낸 모든 사회/경제 시스템이 그러하듯 선악의 개념 또한 시대나 상황이나 상대에 따라 시시각각 다르게 적용된다는 것이죠."
- "어떤 회사에 A라는 CEO가 있다 가정해 보죠. 그는 지독한 일 중독자에 성공 지향자에 권위 복종자입니다. 그 덕에 회사는 승승장구하고 있죠. 부하직원 입장에서 평가한 A는 끔찍한 사람일 것입니다. 매일 야근을 시키고, 매번 휴가를 반려하고 웬만한 공을 세워도 인정조차 하지 않는 전형적인 '악한' 보스일 겁니다. 하지만, A의 가족의 눈으로 그를 본다면 어떻습니까? 능력 있는 남편, 성실한 아빠, 노후를 책임져 주는 아들이죠. 가족들에게 A는, 그야말로 슈퍼맨 같은 '선한' 사람일 겁니다."
- "즉, 선악의 개념은 관찰자의 입장에 따라 상대평가 된다는 거죠. 절대적 가치를 가진 법칙이 아닌, 방향이나 범위에 따라 얼마든지 바뀌는 '편의적인' 개념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 "1번 님,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리자면... 이건 제 삶의 지침 중 하나로 삼고 있는 이야기인데. 누군가 '어떤 것이 선한 일이야'라고 주장할 때, 그 주장에 따른 결과가 당사자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라면. 그 말은, 믿어선 안됩니다."
- 불세출의 성인도 위인도 아닌지라, 나 또한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온전히 선한 삶을 살아낸 건 아니다. 급할 땐 무단 횡단을 하고, 귀찮을 땐 무단 투기도 하고, 취했을 땐 무단 방뇨도 하고, 선악의 개념의 채 여물지 않았던 꼬마 시절에는 호기심인지 호승심인지에 겨워 소소한 좀도둑질을 한 부끄러운 기억도 있다.
내가 구상하고 실행할 수 있는 악행의 수위는 그 정도 까지였다.
- 하지만 이 '악'의 수위는 세 번의 게임을 거치며 끝을 모른 채 차올라갔다.
이윽고 한계수위라 생각했던 '정당방위'를 넘어선, '적극적 방위' 혹은 '선행적 방위'를 지향하고 집행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항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키워낸 악의는 결코 선의를 넘은 적이 없다고.
- 가장 간단한 정신자위 방법.
본인의 책임분을 온전히 타인의 탓으로 돌려 자괴감을 면하고 우울감을 피하는 가장 쉬운 회피법.
- 그 어떤 상황도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제서야 비로소 알 것 같다.
비로소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 오인했기 때문이다.
오판했기 때문이다.
오만했기 때문이다.
- 내가 주장하는 것들은 상식과 정의에 가깝기에 자의로든 타의로든 동의하고 동참해 줄 것이라 오인했기 때문이다.
- 그들은 늘 내 이해범주 밖에 있는 인간들이었다.
100일만 버티면 수십 억을 버는데 왜 저렇게 위험한 판을 벌이지?
죽치고만 있어도 수십 억이 쌓이는데 왜 저렇게 사서 적을 만들지?
저건 득 보다 실이 더 큰 행동 아닌가?
라며 늘 의아해했었지만.
-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고 큰 수익에는 큰 리스크가 따른단다.'
만용과 용기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그 종이 한 장에 인쇄된 숫자가 바로 수십, 수백억이라는 것을.
- 기존 참가자들의 실패를 지켜보며 어째서 저렇게 멍청한 짓을 할까? 의아해했었지만.
아니었다. 그들은 투자를 했을 뿐이다.
내가 '필요충분'이라 생각했던 리스크의 투입은 투자가 아닌 녹아 사라질 유지비용이었을 뿐.
-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라고 누군가는 위로하지만 늦은 건 늦은 거다.
- 또한 늦을수록 더 나쁜 이유는 '권리금'이 치솟는다는 것이다.
똑똑한 투자자들은 시장에 눈과 손이 몰리기 전에 미리 선점해 투자를 하고, 고점에 오르면 미련 없이 권리금을 받고 빠진다.
- "8억 6천 가지고 나간들 둘이서 나누면 겨우 4억 3천만 원. 그걸로는 번듯한 아파트 하나도 못 사. 하지만 138억을 차지해 나누면 69억. 상상해 본 적 있어? 이 돈으로 뭘 사고 뭘 할 수 있는지? 놀랍게도, 어떤 것도 안 사도 돼.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
"... 예?"
"이 정도 금액을 한방에 예치하면 비공식 우대금리가 적용돼. 못해도 5%는 받아낼 수 있어. 그러니까, 1년에 받는 이자만 해도 3억 4천5백만 원이라는 거지. 심지어 불어나. 가만히 두면 자기 스스로 몸집을 불린다고. 부의 관성이 작용해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 거야."
- "자본에는 강한 중력이 작용한다고 말했었죠. 제 가르침 잘 따라오고 있네요. 선악 같은, 편의로 발명된 가치에 휘둘리지 않고 상금에 집중하는 것도."
- "이제 알아듣겠어? 거대한 자본을 획득하면 왜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지는지."
- 너는 왜 그런 나쁜 짓을 꾸미고 있느냐.
너는 언제부터 그런 악인이 되었느냐.
같이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들이 가엽지도 않느냐.
무고한 피해자가 나오는 게 슬프지도 않느냐.
- "누군가 학생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이런 반문을 돌려주는 건 어떨까요? 그럼 너는 왜 빈자들에게 전재산을 기부하지 않느냐고. 왜 죽어가는 사람에게 장기를 기증하지 않느냐고. 그건 혹시, 네가 악인이라 그런 거냐고."
- 배수의 진을 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겪어본 적 없는 자들이 들이대는 잣대 따위엔 더 이상 어떤 가치도 느껴지지 않는다.
- 사람은 변한다.
적어도 내가 겪은 바에 의하면 이 게임에 들어온 사람들은 거의 틀림없이 변했다.
처음엔 분위기를 살피고 눈치를 본다. 심지어 진심으로 응원하고 기꺼이 협력한다. 아직은 법과 도덕, 규범과 질서가 더 익숙하니까. 지성인으로서의 마지막 소양을 짜낸다.
하지만 한시적이다. 돈의 위력에 굴종한 사람들은 빠르든 늦든 모두 변해간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방아쇠를 당기고, 그 후로는 예견된 수라장이 펼쳐진다. 변해버린 인간들이 스스로를 변호하는 대사들 또한 이쯤에선 다들 엇비슷해진다. 본인의 위선을 불가항력이라 포장하고 자신의 악행을 정당방위라 항변한다.
- 사람들이 이 게임에 참가하는 이유는, 목숨을 걸고 게임을 하는 이유는, 당연히 돈을 벌기 위해서다. 주최 측이 내건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서다. 모두 이를 위해 가진 모든 걸 내놓는다. 아니 내팽개친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도덕, 양심, 사회성, 인간성 등.
돈 외의 모든 것들을.
- "하지만 아냐. 그게 최종 목표일 리 없잖아. 우리는 단지 돈을 벌고 싶었던 게 아니라."
돈이라는 수단, 매개체, 혹은 촉매를 이용해.
"행복을 얻고 싶었던 거야."
- 인간이라면 모두 행복해지고 싶으니까.
- 하지만 이 논법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
이유는.
- 행복한 사람은 타인의 불행을 즐기지 않으니까.
행복한 사람은 타인의 몰락을 기뻐하지 않으니까.
행복한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바라지 않으니까.
- "너희들은 즐기고 싶은 게 아니라 처절하게 증명하고 싶은 거였어. 아니라면 너무 억울하니까. 비참하니까."
천외천의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감히 상상도 못 할 고통을 감내했을 테니까.
- 저들 스스로가 정한.
저들 스스로의 가치는.
내 자유의 가격은.
- The And.
-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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