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최지현
출판 : 다른
출간 : 2020.03.27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추가로 읽어보고 싶어서 시도해봤는데,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점들이 꽤 있다. 혹시라도 '맞춤형화장품조제관리사'를 준비하는 분들이시라면 조금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 거칠게 요약하자면 "기본적으로 성분 검사를 철저히 하니 성분표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질감과 향, 디자인, 브랜드 등을 고려한 선택을 하라"는 내용이다. 첨가물질들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을 구분해주며 대략적으로 합리적인 선의 가격대를 제시하는데, 반드시 그에 맞추기 보다는 자신이 마음에 드느냐를 고려해서 일단 사용해보고 판단할 것을 권한다. 알러지 반응 또한 개인차가 크므로 무턱대고 기피하기 보다는 시도해보라고.
읽기 쉬운 향장품학 느낌인데, 국내 대부분의 화장품이 콜마에서 위탁 생산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저자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레티노이드 제품들은 조금 주의할 필요가 있겠지만)
기대했던 방향과는 달랐지만 자신만의 선택 기준을 세우기 위해 참고용으로 가볍게 읽어보기에는 적절한 정보성 책이었다.
- 나는 화장품에 대해 설명할 때 가공식품 이야기를 많이 한다. 가공식품은 많은 오해를 받고 있다. 향, 색소, 조미료, 보존제 등 식품첨가물이 위험하다는 주장에서부터 포장, 위생, 환경호르몬, 유전자 변형까지 안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식품첨가물은 화학물질 덩어리가 아니다. 대부분 자연에서 유래한 것이고 천연 식재료에도 존재하는 것들이다. 가공식품은 재료의 선별부터 제조 환경, 위생, 포장, 원재료명 표시까지 철저한 규제를 받고 있다. 과학자들이 안전을 검증하지 않은 원료는 절대로 사용할 수 없다. 오직 '식품공전'과 '식품첨가물공전'에 허락된 것만 허락된 양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가공식품을 구입할 때 성분 하나하나를 의심하고 합성이다, 발암물질이다 따지는 것은 지나친 걱정이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많이 먹으면 다 발암물질이다. 먹어도 탈이 없는 것만 식품이 될 수 있고 조금이라도 탈이 날 수 있는 것은 양을 제한한다. <식품에 대한 합리적인 생각법>의 저자이자 식품 공학자인 최낙언은 식품에 대해 "맛으로 즐기고 과학으로 이해하자"라고 말한다. 걱정을 내던지고 맛으로 즐기고, 좀 더 알고 싶다면 과학으로 이해하면 된다.
(리뷰자 주 : 현재 시점에서 보자면 맞는 말이지만, 지금의 시스템이 생기기까지 수많은 사건사고들이 있어왔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물질의 경우 장기노출 결과에 관해서는 예측이 어려우니 위험성을 완전히 검증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 나는 화장품에 대해서 똑같은 말을 하고 싶다. 화장품에도 피부를 보호하는 것 외에는 별 효과가 없는 성분들만 사용된다. 조금이라도 그 이상의 효과가 있는 것은 허락된 양으로만 쓰인다. 그러니 우리는 화장품을 그저 즐기면 된다. 화장품은 성분 하나하나를 치밀하게 따져야 할 정도로 예민하게 선택할 물건이 아니다. 자신의 피부에 맞는 점도와 질감을 찾고 원하는 향을 찾아서 선택하면 된다. 그리고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피부의 외관을 개선하고 노화를 지연시킬 수 있는 성분들에 대해 공부하여 현명하게 사용하면 된다. 취향으로 즐기고 과학으로 이해하는 것, 그것이 화장품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 좋은 화장품을 고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유해 성분 목록도 아니고 전문가의 추천 제품 리스트도 아니다. 화장품의 효과와 한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 자신의 필요와 취향에 대한 분명한 인식만 있으면 충분하다. 성분표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 불량 정보와 전문가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 그리하여 누구나 쉽고 즐겁게 자신에게 필요한 화장품을 스스로 고를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책의 궁극적 목표다.
- 그런데 1년쯤 지났을 무렵, 이 모든 것이 틀렸음을 깨닫게 해 준 사건을 겪었다. 추천할 만한 좋은 제품을 찾던 중 미국의 화장품인 세라비 Cerave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브랜드의 모이스처라이징(보습) 로션과 모이스처라이징 크림은 자극적인 식물 추출물이나 쓸데없는 구색 성분이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세라마이드, 콜레스테롤, 하이알루로닉애씨드 등 피부 지질과 동일한 성분들이 성분표상의 위치로 볼 때 충분한 양으로 들어 있었다. 게다가 보기 드물게 무향이어서 추천 제품으로 올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곧바로 두 제품에 최고 점수를 주며 추천하는 기사를 올렸다. 그런데 며칠 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제품의 영어 성분표와 한국어 성분표가 달랐던 것이다. 영어 성분표에서 중간에 적혀 있던 세라마이드와 하이알루로닉애씨드가 한국어 성분표에서는 거의 끝부분에 적혀 있었다. 수입사에 문의한 결과 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제품의 세라마이드 함량은 총 0.02%, 콜레스테롤은 0.007%, 하이알루로닉애씨드는 불과 0.001%였다. 거의 없는 것과 다름없는 무의미한 양이었다. 최고 점수를 주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핵심 성분 세 가지가 극히 적은 양으로 들어 있으니 사실상 이 제품은 무향이라는 장점 외에는 특이할 것이 없는 평범한 모이스처라이저였던 것이다.
(리뷰자 주 : 나 역시 세라비를 즐겨 썼었는데, 특수 기능을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함량이 너무 낮다...!)
- 그제야 깨달았다. 성분표는 화장품을 판단하는 정확한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때까지 나는 성분표가 화장품의 모든 비밀을 품고 있는 완벽한 정보라고 생각했다. 어렵지만 성분표를 잘 해독하기만 하면 좋은 화장품을 고를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모두 착각이었다. 성분표는 그저 화장품에 들어 있는 모든 성분의 이름을 열거해놓은 재료 목록일 뿐이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려주지만 '얼마나 들어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효과에 대해서 판단할 수 없다. 물론 성분표는 함량이 높은 것부터 낮은 것으로 순서대로 적는다는 원칙이 있다. 그러나 1% 이하로 넣은 성분들은 이 원칙에서 제외된다. 화장품은 1% 이하로 넣는 성분이 전체 원료 수의 60~90%에 이른다. 즉, 처음 한두 줄을 제외한 나머지는 1% 이하인 것이다. 이 말은 처음 한두 줄 외에는 순서에 상관없이 아무렇게나 적을 수 있다는 뜻이다.
- 성분표는 전문가들까지도 쉽게 속인다. 그런데 어떻게 소비자에게 성분표를 근거로 제품을 추천할 수 있을까? 성분표를 근거로 좋은 화장품과 나쁜 화장품을 구별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 아니, 도대체 성분표로 알 수 있는 게 있긴 있는 걸까?
- 화장품 분야의 많은 전문가가 호르몬 교란, 발암물질, 장기독성, 생식독성을 이유로 특정 성분을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많은 양을 먹거나 숨으로 들이마시거나 고농도로 피부에 발랐을 때의 독성 toxicity에 근거한 것이다. 독성이란 물질별로 생명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최악의 가능성을 평가해놓은 것이다. 화장품은 먹거나 숨으로 들이마시는 것이 아니라 바르는 물건이다. 바르는 양도 적고 고농도로 바르지도 않는다. 조금이라도 피부 자극이 있는 물질은 법을 통해 함량을 제한한다. 화장품의 위험을 평가할 때는 당연히 이러한 노출 방식과 노출량을 고려해야 한다. 독성 자료에서 떼어온 한 줄짜리 정보를 화장품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매우 비합리적이다. 중요한 것은 해를 끼칠 '확률(위해성 risk)'이지 해를 끼칠 수 있는 '능력(유해성 hazard)'이 아니다. 무엇보다 화장품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장품 산업이 굴러가는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화장품을 기업이 마음대로 만들어내는 상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화장품은 철저히 법의 규제하에 만들어진다. 법을 통해 안전하지 않은 성분은 금지하고, 조금이라도 위험한 성분은 함량을 제한한다.
- 물론 토너 한 병에 10만 원 이상을 쓰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다. 토너는 90% 이상이 물이어서 좋은 성분이 들어가 봤자 얼마 들어가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오직 합리적인 선택에 초점을 맞춘다면 좋은 성분을 아낌없이 쓰면서 쓸데없는 성분을 배제하고 광고, 홍보, 유통 등에 큰돈을 쓰지 않는 중가 브랜드가 가장 좋을 것이다. 유기농 화장품, 한방 화장품, 줄기세포 화장품 등을 선택하는 것도 합리적이지는 않다. 이런 화장품은 원료비가 비싸기 때문에 높은 가격을 치러야 하지만 효과도 그에 비례해 높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그러나 합리적인 선택만이 쇼핑의 정답은 아니다. 쇼핑은 물건의 가치를 사는 것이기도 하지만 심리적, 정서적 만족을 사는 것이기도 하다. 제품을 비교하고 고르는 모든 과정이 만족스러울 때 제품에 대한 만족감도 높아진다. 브랜드의 명성, 또는 그 브랜드가 상징하는 사회적 의미가 누군가에게는 매우 중요할 수 있다. 또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환경보호에 동참하는 브랜드, 화학성분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는 브랜드에 높은 점수를 주고 기꺼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처럼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화장품에 대한 기대부터 쇼핑의 과정, 내가 소유하게 될 브랜드의 가치까지 많은 것을 결정하는 행위다. 자신의 취향에 따라, 가치관에 따라, 그리고 경제적 능력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 정답이다.
- 또한 성분표가 비슷하다고 해서 1만 원대 로드샵 브랜드의 제품과 4~5만 원대의 안티에이징 제품을 똑같다고 봐서는 안 된다. 같은 성분이 적혀 있다고 해서 같은 양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며, 효과의 수준이 같은 것도 아니다. 저렴이 제품으로 '고렴이' 제품을 대체할 수 있다는 사고는 많은 오해를 낳을 수 있다.
- 셋째, 성분표를 올바로 읽으려면 좋은 효과를 내는 성분을 위주로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주름, 탄력에 관여하는 성분, 미백에 관여하는 성분, 항산화 성분, 진정 성분, 각질 제거 성분, 자외선 차단 성분, 보습 성분, 순한 클렌징 효과가 있는 성분 등등 이런 성분들에 대해 알고 있으면 원하는 제품을 찾는 일이 쉬워진다. 단순히 무슨 성분이 어떤 효과가 있다는 식의 단편적 정보를 모으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 성분이 어떤 원리로 효과를 내고 화장품에 주로 쓰이는 함량은 얼마이며 효과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필요 이상의 기대를 하지 않는다.
- 만약 세정력 때문에 비누를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고체 형태가 사용하기 편리해서 비누를 선호하는 것이라면 대안이 있다. 바로 클렌징 바다. 클렌징 바는 비누와 똑같이 생겼지만 화학적으로 비누가 아니다. 비누는 반드시 '비누화'라는 화학반응을 통해 만들어지며 이 과정에서 생성된 비누 소듐염이 세정제 역할을 한다. 클렌징 바는 비누화가 아니라 합성 계면활성제에 지방산, 물 등을 배합한 뒤 고형으로 굳혀서 만든다. 모양은 비누와 똑같지만 화학적 정체성은 클렌저다. 비누는 pH 9~11이지만 클렌징 바는 대체로 5~7 사이다. 그래서 피부를 순하게 씻어주면서 건조하게 하지 않는다. 얼굴용으로도 좋고 바디 클렌저로도 좋다. 머리가 길지 않다면 샴푸로도 무난하게 쓸 수 있다. 비누와 클렌징 바를 구분하기는 다소 까다롭다. 업체들도 정확히 구분하지 않고 용어를 혼용한다. 시중에는 비누인데도 클렌징 바, 모이스처라이징 바 등의 이름을 붙인 제품이 많고, 또 클렌징 바인데도 비누라고 이름을 붙인 제품도 많다. 대체로 '약산성'이라고 광고하는 제품은 비누가 아니라 클렌징 바일 확률이 높다.
- 알레르기가 두려워서 알레르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물질을 피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어떤 물질에 알레르기가 있는지 정확히 알려면 모든 성분을 가리지 않고 다 발라봐야 한다. 정확히 알고 그 성분만 피하는 것이 모든 알레르기 물질을 기피하는 것보다 훨씬 살기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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