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김명철] 수의사는 오늘도 짝사랑 중 - 동물을 돌보는 기쁨, 동물의 아픔을 보는 슬픔

일루젼 2023. 8. 16.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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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명철

출판 : 김영사
출간 : 2023.02.28


       

 

'수의사는 어떤 과정을 거치며 어떤 일들을 하나요? 무엇이 힘든가요?'   

 

이 책은 고양이 집사들 뿐 아니라 다양한 반려동물의 반려인들과 비반려인들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특히 수의사라는 직업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는 꼭 필요했던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중에게 가장 친숙할 소동물 수의사, 그중에서도 고양이 전문 수의사라는 직함으로 살아가며 저자가 겪어온 다양한 경험들이 소개된다. 수의과대학의 교과 과정과 학부 실습, 대체복무인 공중방역 수의사 및 임상과 비임상 수의사의 다양한 진로 등도 다룬다. 해서 '수의사'라는 직업에 관심이 있던 분들께는 진로 탐색과 선택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다른 이의 신발을 신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반려동물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는 동일하지만 치료자와 보호자는 약간씩의 입장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틀림없이 애환이 많으시리라 생각한다. 여러 에피소드에서 반복해 서술된 경우는 아마 저자가 그 내용을 무척 강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조사나 설명이 조금만 더 다듬어졌더라면 하는 점이다. 한 직업의 힘겨움에 대한 예시로 타업종이 언급되며 비교 아닌 비교가 된 점이 아쉽다. 각자의 고충에 대한 격려로 이어졌더라면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더 명확하고 덜 불편하게 와닿지 않았을까 한다.

 

사실 사람과 반려동물의 진료비용이 크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장비와 인력 문제도 크겠지만- 아무래도 보험 적용 여부일 것이다. 물론 사람 병원의 보험과와 비보험과의 입장 차이를 고려해보면 이에 대해 언급하기는 상당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적지원과 반려세에 대한 언급은 반려동물 보험과도 충분히 연결되는 지점이라 생각한다. 

 

저자가 주원인으로 꼽은 장비나 인건비는 주진료과목에 따라 사람 병원이 훨씬 큰 비용이 필요하며 치과 또한 저자의 설명에 모두 해당한다. 해서 그보다는 입원 시설과 유지비용(입원동물 및 보호동물),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더 중요해지는 검사의 필수성, 응급 수술 및 마취의의 부담 등을 강조하는 편이 더 와닿지 않았을까 싶다. 

 

세금에 관해서도 조금 더 상세한 세법 비교가 나았을 것 같다. 본문에 언급된 부가세는 보호자에게 부과되는 세금이자 진료 총액이 결정된 후 발생하는 세금이다. 기왕 사람 병원과의 비교를 시작했다면 의료기관 자체에 부과되는 세금 비교가 더 와닿지 않았을까? 본문에서 후술되는 반려동물 보험이나 등록과도 더 연계되는 내용이었을 텐데 조금 아쉽다. 특히 동물병원은 의약분업 예외 업종인데 이에 관련한 보험수가 지정에 대해서는 어떨까. 아마 수의사 분들마다 입장이 다 다를 것이다. 

 

좋은 책을 읽고 아쉬운 점에 대한 이야기만 줄줄이 늘어놓았다. 다만 가장 민감하다면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이니 각자 최대한 오해가 없도록 나름대로의 보완점이라 생각하는 점들을 언급했다고 봐주셨으면 좋겠다. 그 외의 모든 이야기들을 통해 일반인으로서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수의사의 아픔과 고뇌에 조금이라도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째서 해당 종의 전문병원으로 가야 하는가.

놀라고 당황한 보호자와의 커뮤니케이션(반려동물의 상태에 관한 사전 정보를 얻고 필요한 조치에 대해 쉽게 설명하는 등)의 어려움.  

병원에 왔으니 당연히 다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는 믿음의 무게. 

최선을 다했지만 안타까운 결과를 전할 수밖에 없는 고통.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아이이지만 동시에 수의사에게는 역시 단 하나뿐인 아이들이 계속해서 온다는, 미처 생각하기 힘든 고충 등이다.

 

고양이에 관한 수의사적 관점에서의 구애송인 줄 알고 읽었다가 조금 당황했지만 (순전히 내가 사전 정보를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많은 생각을 하며 읽었다. 이 책이 많은 반려인과 비반려인들에게 잘 '전달되기를' 응원한다. 모두가 함께 생각해보고,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공동의' 내용이 되기를. 이전까지 많은 이들이 몰랐던 것들이 '알려짐'으로써 변화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전해지고 전해지다 변해가기를. 

 

의미깊게 읽었다.           


 

- 김명철 : 고양이에 완전히 빠져버린 고양이 전문 수의사. 고양이 집사들에게 캣통령, '미야옹철 김명철 수의사'로 알려져 있다. 2012년 고양이 전문병원 원장이 되었고 2016년부터는 고양이만 진료하는 수의사가 되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EBS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고양이 행동 전문가로 출연했으며 SBS <동물농장> 등 다양한 TV 프로그램에서 고양이 자문 수의사로 활동했다. ... 현재 한국고양이수의사회의 부회장으로 재임하고 있으며, 저서로 <미야옹철의 묘한 진료실>이 있다. 

 

- 내가 수의학과에 입학했을 때 수의사라는 직업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농업대학에 속해 있던 수의학과가 독립적인 단과대학으로 분리되면서 4년제였던 교육과정도 6년제로 바뀌었다. 막 반려동물이 우리 일상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 각종 현실적인 문제와 갖춰지지 않은 시스템, 기대보다 낮은 교육 수준, 그리고 졸업 후 맞닥뜨리는 열악한 업무 환경 등은 당시 우리가 몸으로 일일이 부닥쳐가며 해결해야 하는 숙제였다.

 

- 20년이 지난 지금, 오늘의 수의학과 수의사라는 직업은 어떨까? 지난날과 비교해 보았을 때 교육 수준이나 업무 환경 등 모두가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뛰어난 교수진들에게 깊이 있는 학문을 배울 수 있고, 더 나은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점들이 많이 보인다.

 

- 어린 시절 내가 접할 수 있는 동물은 어른들에게 편견의 대상이거나, 목줄에 묶여 하루 종일 집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거나, 도축을 목적으로 길러지는 동물이 대부분이었다. '반려'동물은커녕 '애완'동물의 개념조차도 흐릿했던 나의 유년기에 우리 집은 앙고라 품종의 토끼를 기르는 농장을 했었다. 

 

- 밤이 되면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놀라는 날들이 있었는데, 그 울음소리가 발정기 울음이고, 또 어떤 소리는 막 출산한 새끼들을 사람이 죽여 버려서 울부짖는 어미 고양이의 울음소리였다는 것을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 이처럼 어린 시절 나에게 동물이란 항상 주변에 있는 친숙한 존재였으나 '제 수명을 다해 늙어서 죽는 반려동물'은 너무도 낯선 개념이었다. 

 

- 대학원 실험실, 공무원, 산업동물, 대동물, 야생동물, 소동물 분야가 가장 흔하게 알려진 진출 분야였다. 나는 직접적으로 동물을 접하는 분야가 나에게 더 맞는 것 같아서 임상 수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임상은 다시 산업동물(닭, 돼지 등), 대동물(소), 소동물(개나 고양이) 정도로 분야가 나눠지는데 학교를 다니는 6년 동안 방학 때마다 실습을 다니며 어떤 분야가 나에게 가장 어울릴지 탐색했다. 분야별로 장단점이 있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동물을 살리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소동물 임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산업동물이나 대동물은 산업과 연계되기 때문에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경우 도축이나 살처분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이런 모습은 어린 시절 매일 죽어가던 토끼들을 떠오르게 해서 나에게는 너무 힘든 분야였다. 

 

- 이 과정이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의견들이 하나둘 모여, 현재는 실제 동물을 이용하지 않고 3D 시청각 자료 교육, 더미(실제처럼 만든 모형)를 이용한 해부 실습 등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점은 동물권 신장의 관점에서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수의사는 건강하고 예쁜 상태의 동물보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동물을 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단순히 동물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수의사가 되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 또는 오히려 현장을 경험해 보고 임상 수의사보다는 비임상 수의사로 방향을 전환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는데, 이런 경우에는 검역원, 각종 반려동물 관련 회사 등으로 진로를 바꿔 미래를 준비한다. 

 

- 보통 수의학에서 다루는 동물의 개념만 살펴보아도 대동물과 중동물, 소동물 분야로 나뉘고 또 임상과 비임상 분야로도 나뉘다 보니 분야별로 하는 일이 크게 달라진다. 수의학과 학생들은 교과 과정을 거치면서 졸업 후 어느 분야로 진출할지를 결정하기 위해 평소 관심 있던 곳으로 실습을 나가게 된다. 

 

- 임상 수의사로서 동물병원에 첫 출근한 날, 하루 일과를 끝내고 퇴근 후 침대에 누워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지금이라도 그만둘까?'와 '난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였다. 수의과 대학 6년 내내 때 배운 지식과 실습을 통해 습득했던 것들은 어느덧 안드로메다 성운에 우주쓰레기로 폐기해 버린 듯 머리는 백지 상태인데,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개와 고양이들이 하염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능숙하게 채혈을 하고 처치, 수술을 하는 선배 수의사들 사이에서 나는 흔한 처치 도구 이름 하나 말하기도 익숙지 않은 나날이었다. 

 

- 당시 나는, 주로 소나 돼지와 같은 대동물 농가를 관리하고 처치하는 공중방역 수의사로 3년간 대체복무를 막 마친 터라 대동물을 다루는 데만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 내가 소 몸무게의 100분의 1도 되지 않는, 심지어 예민한 동물인 고양이를 보정했으니, 나름 힘을 뺀다고 뺐지만 고양이 입장에서는 아주 불편했을 것이다. 가뜩이나 영역 동물인 고양이는 개와는 달리 동물병원에 오는 일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인데, 익숙지 않은 손길이 닿자 있는 힘껏 방어적 공격성을 보인 것이다. 

 

- 고양이 보정이 강아지에 비해 훨씬 어려운 이유는 강한 힘만으로는 보정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강아지의 경우 대부분 힘으로 제압이 되지만 고양이는 너무 강하게 잡으려고 하면 작용/반작용처럼 오히려 반발이 더 심해져서 필요한 처치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고양이를 보정할 때에는 커다란 타월을 이용해서 고양이 몸의 무게중심을 따라가며 효과적으로 움직임을 차단하면서도 강하게 속박당한다는 느낌은 주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능숙해지기까지 시간이 많이 소요될뿐더러 여러 번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 또한, 수많은 고양이에게 수없이 물리고 할큄을 당한 뒤에야 현재처럼 여유 있고 확실한 보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다른 병원의 수의사 친구로부터 전해 들은 환기구로 탈출한 고양이 일화를 나와는 거리가 먼 전설쯤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아뿔싸, 이런 일은 임상 수의사에게는 현실이자 일상이었다. 만약 순이가 환풍구나 천장으로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한다.  

 

- 처음이라는 단어는 낯설고 긴장됨은 물론 설렘과 기대감까지, 많은 것을 함축한다. 누구에게든, 어떤 일이든 처음은 있고 수의사로서 나에게도 당연히 '처음'이 있었다. 

- 6년간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처음 임상 수의사로 일을 시작했던 시기의 나는 매일이 낯설고 바짝 긴장해 있었다. 학부에서 많은 지식을 배웠지만 경험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의 실수로 또는 경험 부족으로 아픈 환자를 치료할 타이밍을 놓칠까 봐 항상 조마조마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피식 웃음이 나거나 또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철렁한 경험도 더러 있다. 그중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다시금 그 상황이 된다고 하더라도 고민이 될 것 같은 그런 상황 말이다. 

 

- 약속된 일주일이 지나고, 보호자에게서 또 한 번의 연락이 왔다. 조금은 다급한 목소리로 자기가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일이 생겨서 돌아갈 비행기 푯값이 없으니 40만 원만 계좌로 보내주면 당장 내일 귀국해서 모찌를 찾으러 오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급한 목소리에 바로 전달받은 계좌로 돈을 보냈다. 그렇게라도 해서 보호자가 무사히 한국에 돌아와 모찌를 데려가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돈을 보내고 이제 모찌도 괜찮겠지 생각하며 조금은 안심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돈을 빌리던 그 전화가 보호자와의 마지막 연락이었다. 동물병원에 오는 보호자 중에 각종 사연으로 동물병원에 돈을 빌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연차가 쌓이며 알게 되었다. 

 

- 이후 그 보호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보호자와 비슷한 모습의 다른 사람만 봐도 보호자인가 싶어서 쪼르르 뛰어나오던 모찌의 모습은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후의 나는 조금 더 냉철하게 보호자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 눈물범벅이 되어 병원으로 달려온 보호자를 달래며 자초지종을 들었다. 
"아침에 고양이 배를 만지다 보니 이상한 게 만져져요.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배 쪽에 뭐가 나면 유선종양이고 고양이가 유선종양이면 대부분 암이라서 거의 죽는다면서요?" 
보호자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보호자가 말한 내용이 수의학적으로 모두 틀린 말은 아니기에 나도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 촉진을 위해 고양이를 잡으려 해 보지만, 겁이 많은 고양이는 보호자의 품으로 파고들며 이리저리 몸을 피한다. 그러다 우연히 내 눈에 들어온 빈 땅콩 주머니(중성화된 수컷고양이의 빈 음낭). 헛것을 보았나 싶어 차트를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 고양이는 한 살이 갓 넘은 수컷 고양이였다. 무거웠던 마음이 순간 가벼워졌다. 보호자가 우려했던 유선종양은 대부분 암컷 고양이에게서 발병하여 수컷 고양이가 걸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특히나 한 살 된 수컷 고양이에게서 발병할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 "보호자 님, 이건 그냥 젖꼭지인데요."
"아니에요, 선생님. 이게 젖꼭지면 반대편에도 똑같은 게 있어야 하는데 반대편에는 아무것도 없단 말이에요."
"음, 고양이는 간혹 젖꼭지가 홀수로 있기도 합니다. 사람처럼 꼭 짝을 맞춰서 있지는 않아요."
보호자는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한 채 나와 고양이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눈물이 채 가시지 않은 눈으로 꺄르르 웃었다. 

 

- 초보 수의사가 첫 진료를 볼 때 막막한 것만큼이나 초보 집사인 보호자도 많은 것이 너무 어렵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이 많을 것이다. 특히나 입양을 준비한 기간이 짧거나 갑작스럽게 입양한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름대로 많이 공부하고 입양했다고 생각한 보호자도 글과 인터넷으로 배운 지식과 현실 반려 생활에서 생긴 괴리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 누구에게나 처음은 어렵고 부담스럽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쁨과 설렘을 가득 담은 단어이기도 하다. 오늘도 초보 집사에서 베테랑 집사가 되기 위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경험치를 쌓고 있는 모든 집사를 응원한다. 

 

- "오늘 야간에는 무슨 일로 입원 환자도 없고 응급 내원도 없네요." 
나의 말에 야간 동물보건사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선생님, 그 말은 절대 하면 안 되는 금기어예요."

그 순간 거짓말처럼 울리는 전화벨 소리. 

 

- 처치까지 하고 나니 오전 출근 수의사가 병원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밤새 별일 없었죠?"
"그, 그렇죠. 제가 입방정 떤 거 말고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

결국 물을 부어둔 라면은 먹지 못하고 퉁퉁 불어 터진 채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향했고, 아침 9시 찬란하게 떠오른 해를 보며 장렬하게 퇴근할 수 있었다. 

 

- 아픈 동물을 치료해 줄 수 있는 수의사이지만, 내 새끼 하나도 고칠 수 없다는 나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고 그동안 아이의 질병 진행 상태를 잘 파악하지도 못한 한심한 보호자였다는 사실까지 한없이 나를 자책하게 했다. 수의사라는 나의 직업이 아톰에게 부끄러웠다.  

 

- 밤새 아톰의 입원장 앞에 누워서 아톰과 눈을 맞추고 아톰을 쓰다듬어 주었다. 아톰을 가만히 들어 안아 내 가슴팍에 올려두었는데, 그때 알 수 있었다. 지금 아톰이 쉬고 있는 숨 한 번, 한 번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버거운지를. 
나는 결국 아톰의 안락사를 결정했다. 그리고 내손으로 내 품에서 아톰을 보내주었다. 

 

- 그 일 이후, 멍한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임상 수의사로서 내 자신이 너무나 하찮게 느껴졌고, 우연히 그 당시에 아톰과 같은 질병을 가진 고양이들을 많이 진료하며 더욱더 일에 대한 만족감보다 한계를 크게 느꼈던 시기였다. 내 간절한 마음만으로는 아픈 고양이들을 모두 고칠 수 없다는 무력감과 그런 감정을 매일, 최일선에서 느껴야만 하는 시간은 나를 자꾸만 갉아먹었다. 당시 나는 임상 수의사를 그만두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어떤 선배 임상 수의사는 그런 감정은 시간이 흘러도 결코 쉬워지지 않으니 지금 감정이 버거우면 다른 진로를 찾는 것이 맞겠다는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 아톰에게 수혈이 필요했을 때 두 번이나 자신의 반려묘 헌혈을 해주었던 나의 사수 수의사 선배는 당시 내가 느꼈던 수의사라는 직업의 한계와 더불어, 수의사로서의 역할이 아픈 고양이들을 치료하는 것뿐만 아니라 불치병에 걸린 아이들의 마지막 생을 최대한 잘 보살펴주는 것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이들에게 남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게, 보호자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면 그 수의사는 소명을 다한 것이라는 말과 함께 "임상 수의사로서의 김명철도 집사 김명철도 아톰에게 최선을 다했다"라고 위로해 주었다. 그 한마디에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 다음 날, 어제까지만 해도 하룻밤을 넘길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던 호동이가 입원장에 앉아서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혈액 검사를 해보니 드디어 수치들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다. 아직 안심할 수는 없었지만, 나를 보는 호동이의 또렷한 눈빛은 지난 일주일간의 고생을 한꺼번에 보상해 주는 듯했다. 생명이라는 것이 한없이 나빠질 것 같다가도, 한고비만 넘기면 스스로 회복기로 들어서곤 하는데, 호동이의 눈빛에서 그 생명의 경이로움마저 느꼈던 것 같다. 이후 호동이는 무사히 퇴원했다. 

 

-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고양이 친화적 인간이 되어버린 것일까? 

 

- 가까운 기억으로 수의학과에 다니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당시의 나는 고양이라는 동물에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아니, 매력을 느낄 기회가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주변에 반려동물로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유일하게 같은 과 형이 기르던 '아지라엘'이라는 까만 고양이는 좁은 자취방에서 도통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서 친해지기 힘들었다. 학교 수업 대부분은 소, 돼지 같은 산업동물과 개에 대한 자료들로 가득 차 있었기에 고양이는 해부학 시간에 치식(이빨 종류, 수, 배열 순서를 나타내는 분수식)이나 뼈의 개수 정도를 셀 수 있을 정도의 지식만 있었을 뿐이다. 

 

- 그런 내가 처음 인턴 수의사를 고양이 전문병원에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개와는 너무나 다른 고양이를 접하면서 고양이의 습성에 맞춰 진료하고 대하는 방법과 태도를 처음부터 몸에 익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개 진료도 꽤나 있었기에 개를 보정할 때와 고양이를 보정할 때의 차이를 체득할 수 있었는데, 개는 몸체가 단단한 반면 고양이는 항상 물렁이는 물풍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이 말랑한 물풍선들이 가끔은 날카로운 송곳니로 내 손을 물어뜯기도 하지만 말이다). 처음에는 예전부터 익숙한 개들을 보정하고 치료 처치하는 것이 훨씬 수월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양이의 행동 패턴과 습성 그리고 섬세한 감정 상태를 느낄 수 있게 되면서 고양이 진료를 통해 느끼는 만족감이 점점 더 커졌다.  

 

- 개들은 사납게 굴다가도 보호자가 진료실에서 나가는 순간 순한 양이 되어 필요한 치료를 마무리하기가 수월하지만 고양이들, 더군다나 겁먹은 고양이들은 보호자가 옆에서 다독여줄 때 정신을 차리는 경우가 많고 공격을 멈추기도 한다. 무서운 진료실이라는 공간에서 마지막 자기 영역인 보호자가 주는 안정감 때문에 보호자 품에서 주사를 맞는 경우도 많이 있다. "저희 집 아이가 제 품에 이렇게 쏙 안기는 건 처음이에요"라는 말마따나 평소에는 도도하지만 극한의 상황에서는 사람을 최후의 보루로 생각하는 앙큼한 이 고양이들을 매일 보게 되니 그 매력에 점점 더 스며들 수밖에 없었다. 

 

- 게다가 입원한 고양이는 공포심에 만 하루에 가까운 시간을 벽만 보고 처치라도 할라치면 하악질을 끊임없이 하다가도, 3~4일간 교감이 쌓인 이후에는 문 앞을 지나가는 나에게 만져주기를 청하며 입원장 문에 뺨을 부비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의 '밀당'에 도저히 '입덕'하지 않을 방법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 나는 인턴을 시작했던 병원에 동업 원장으로 참여하여 진료의 깊이와 넓이를 계속해서 확장해 나갔다.모든 임상 수의사가 그렇지만 특히 고양이의 진료는 더욱, 책으로는 배울 수 없는 실전 경험이 중요하다. 그리고 원장이 된 지 3년 차 되던 해, 개와 고양이를 함께 보지만 고양이 특화 병원이었던 기존과 달리 100% 고양이만 진료하는 병원으로 병원의 방향성을 완전 바꾸었다. 지금은 고양이만 진료하는 병원이 꽤 많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주변의 우려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당시 대부분의 동물병원은 개와 고양이 진료의 비율이 8대 2 정도로 개 진료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개 진료를 모두 포기해도 병원이 운영될 수 있겠냐는 걱정이었다. 

-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었다. 고양이를 위한 고양이 병원을.

 

- 내원하거나 입원한 개 때문에 고양이가 스트레스 받는 상황을 완전히 막았고, 전문 수술실, 집중 입원치료실, 충분한 개수의 진료실을 만들었다. 고양이는 워낙에 아픈 것을 잘 숨기기 때문에 주기적인 건강검진이 꼭 필요하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원내에 건강검진 센터를 별도로 마련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아픈 고양이를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 확률을 높이고 보호자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했다. 

 

- "입원해서 치료를 이미 하고 있는데 왜 더 상태가 나빠진 거죠?" 
"대부분의 중증 내과 질환은 발병하고 진행 중에 우리가 알게 되어서 입원하게 되는데, 입원 치료를 시작했다고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처럼 바로 좋아지는 방향으로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나빠지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몸이 회복하는 반등의 시기를 앞당기는 것 그리고 스스로 회복할 수 없는 최악의 상태가 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막는 것입니다." 
보호자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알겠다 말하고 돌아섰다.

 

- 지난 5년간 크고 작은 질환을 돌봤던 아이이기에 나 또한 보호자만큼 답답하고 속상하지만 내가 더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예민해지고 속상한 보호자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이럴 때면 수의사라는 직업의 우울함이 나를 감싼다. 문득 내가 요리사였으면 어땠을까 혼자 상상해 본다. 이렇게 생사의 기로에서 울적한 이야기나 하는 직업보다는 누구나 웃으면서 돌아갈 수 있고 즐거운 시간을 제공할 수 있는 요리사가 되었으면 좀 더 신나겠다 생각하지만 이것도 잠시, 곧 현실로 돌아왔다. 

 

- 며칠 뒤 기다리던 아이의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악성종양. 암이다. 결과지를 받아 들고 머릿속이 잠시 하얘졌다. 결과가 악성종양이 아니고 단순 지방간이었다면 이대로 회복만 하면 되는데, 악성종양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미 악성종양으로 진행된 경우 완치할 수 있는 치료법은 없다. 이 이야기를 며칠 전 환하게 웃으며 돌아간 보호자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까? 엄두가 나질 않는다. 지난 열흘간 사선에서 힘겹게 싸워준 고양이의 지친 얼굴과 최선을 다한 의료진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친다.  

 

- 수의사라는 직업을 오래 하기 위해서는 모든 진료에 감정이입과 실망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진료를 보는 아이에 대한 애정이 충분하지 않다면 수의사라는 직업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기란 매우 어려워서 임상 수의사를 그만두는 수의사도 많다. 수의사라면 이런 딜레마를 모두 느끼지만 고민을 털어놓을 곳은 사실상 없기 때문에 마음으로만 삭힐 뿐이다.

 

- 나의 말 한마디에 하늘이 무너진 보호자를 보내고 바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음 진료를 봐야 한다. 다음 예약진료는 이제 막 2차 기초접종을 맞는 깨발랄한 아이다. 3개월령이라 너무나 귀엽고, 무엇보다 처음으로 고양이를 길러보는 초보 집사 보호자는 궁금한 것이 많다. 나는 웃으며 질문에 답하고 귀여운 아이에게 접종과 구충약을 발라준다. 

 

- "Not One More Vet." 

 

- 2020년 미국 머크애니멀헬스 Merck Animal Health 가 진행한 미국 수의사 웰빙 연구에 따르면 수의사는 일반 성인보다 2.7배 더 많이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년간 단순히 자살을 생각해 본 수의사도 일반 성인의 두 배 이상이었고 자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던 수의사도 1.7배 많았다. 연구진은 수의사들의 자살 생각에 영향을 주는 큰 요소로 정신적 고통(심리적 스트레스)을 꼽았는데 특히 이는 젊은 수의사와 여성 수의사에서 더 높게 측정되었다.

 

- 많은 수의사가 '동물이 좋아서’ 수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다. 하지만 진료 현실은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쉽지 않다. 내가 처음 임상 수의사로 일을 시작했던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서울의 동물병원은 주 6일, 하루 15시간의 노동 강도가 일반적인 수준이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어 주 5일, 하루 9시간 근무로 환경이 많이 나아졌지만 일반적인 주말과 공휴일에 쉴 수 있는 수의사는 거의 없다. 절대적인 근무시간이 길고, 휴무일도 일정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24시간 병원에 근무하는 수의사라면 낮과 밤이 바뀌는 것도 불사해야 한다.

 

- 또한 진료시 동물의 검사와 치료에만 100퍼센트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환자의 치료만큼이나 보호자에게 현 상황을 전달하고 검사나 치료의 당위성과 치료비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 과정을 거쳐 검사나 치료를 진행하더라도 아직 높은 산이 남아 있다. 수의사는 신이 아니기에, 모든 아픈 동물이 호전될 수 없지만 보호자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수밖에 없다. 다행히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는 경우여도 안심할 수는 없다. 치료 기간이 길어지거나 검사 항목이 늘어남에 따라 치료비가 많이 나오는 경우라면, 밤낮으로 노력해 환자의 상태가 좋아져도 돈만 밝힌다거나 필요 없는 검사로 바가지를 씌운다는 오해를 받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에 안절부절못하는 수의사들도 자주 보게 된다.  

 

- 게다가 근무시간 이후에도 완전한 퇴근을 하지 못한다. 상태가 좋지 않은 입원 환자가 있을 경우, 집에 도착해서도 대부분 편히 쉬지 못하고 환자의 상태가 달라졌다는 연락이 올까 봐 항상 휴대전화 옆에 두고 날이 서 있기 마련이다. 이 시간이 너무 고통스러워 퇴근 후에도 병원에 전화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수의사의 가족들은 대부분 이런 모습과 생활 패턴을 감내하고 응원하지만, 살다 보면 피할 수 없는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일에 대한 집중도가 높은 삶이 이어지면서, 가족과의 일상생활에서 균형을 잡기 힘든 상황도 많기 때문이다. 

 

- 이처럼 수의사라는 직업 특성상 감정 기복이 큰 상태를 겪을 수밖에 없는데, 심한 경우 하루에도 극과 극의 기분을 오간다. 이를테면 오전 진료에서는 귀여운 새끼 고양이의 예방접종을 하며 들뜬 보호자에게 새끼 고양이의 케어 방법을 설명하다가도, 오후 진료에서는 암에 걸린 고양이의 보호자에게 고양이의 시한부 삶을 선고해야만 한다. 먼지처럼 오랜 기간 지켜본 아이라면 이미 고양이에게도, 보호자에게도 감정이입이 되어 있기 때문에 마치 친구에게 시한부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슬픔에 휩싸이게 된다. 

 

-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것은 그런 아이들의 마지막을 편하게 보내주기 위해 안락사를 해야 하는 경우다. 내 손으로 약물을 투여하고 숨이 멎는 아이를 지켜보는 과정은 몇 번을 반복해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내 기분이 그렇다고 해서 진료를 멈출 수도 없다. 다음 예약이 되어 있는 진료는 차질 없이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억지로 감정을 꾹꾹 누른다. 이렇게 하루 종일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긴 하루가 지나고 나면 진이 빠져 집으로 향하기 일쑤다.

 

- 그렇게 바빴던 여름이 한풀 꺾이고 나면 잠깐 한 가해지는 시기를 보내고 추석을 기점으로 동물병원은 다시 정신없어진다. 추석 시즌이면 집에서 맛있는 음식이 차려지고 가족 친지들이 모이기 때문에 개들은 기름진 사람 음식을 실컷 먹어 췌장염과 장염으로 연달아 병원을 방문하고 고양이들은 역시나 스트레스성 질병들로 병원에 온다. 개들은 사람들이 준 음식 때문에 아프고 고양이들은 사람들의 방문으로 아픈 걸 보면 이 둘의 차이가 극명하다. 

 

- 개는 사람과 살기 시작한 오래전부터 사회적 동물이었기에 다른 개들, 다수의 사람들과 지내기가 한결 수월하지만 고양이는 고독한 사냥꾼이었기에 낯선 존재들이 딱히 반갑지 않다. 

 

- 명절에 문을 여는 병원을 찾아와야 하기에 거리가 있는 곳에서 오는 신규 내원 보호자도 많다. 갑자기 반려동물이 아픈데 원래 다니던 병원을 갈 수가 없으니, 이런 보호자들에게서 새로운 병원에 들어서는 약간의 긴장과 낯섦이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신뢰가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의 의사소통이 오해를 낳기도 하고 컴플레인 발생률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 지금은 고양이만 진료를 보는 고양이 특화 병원에서 수의사로 근무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개를 비롯하여 다른 동물들의 진료도 함께 봤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몇몇 동물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다행히도 그때의 진료는 초보 뱀 집사였던 보호자가 쉬거나 잠을 자고 있는 뱀을 보고 아픈 것으로 착각하여 병원에 온 해프닝이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봐도, 당시 그 뱀이 심각하게 아팠던 경우라면 고양이 전문 수의사인 내가 해줄 수 있는 처치가 많지 않다. 때문에 꼭 특수동물 특화 병원으로 내원이 필요한 것이다.

 

- 안타깝지만 아직까지 국내에 특수동물 특화 병원이 많지는 않다. 그러나 반려 문화가 고도화되면 될수록 사람 의학처럼 임상수의학 또한 더욱 세분화되고 심화되는 추세이니, 특수동물 수의사와 특수동물 특화 병원 또한 계속해서 증가할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최근 매체에서도 대동물 수의사나 벌 수의사 등 특수동물 전문 수의사가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인 현상이다. 
    

- 촬영 전에 프로그램 작가님과 여러 차례 미팅을 하며 방송의 방향을 정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마지막까지 견해 차이를 좁히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바로 고양이가 '영역동물'이기 때문에, 스튜디오로 고양이를 데려와서 촬영하면 고양이들이 얼어붙거나 공격성을 보일 수 있어 촬영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불과 몇 년 전인데도 지금보다 고양이에 대한 정보가 훨씬 적었던 터라, 담당 작가들에게 앵무새처럼 '영역동물이란...' 하며 설명을 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나의 만류로 스튜디오 촬영은 무산되고, 출연 연예인의 집에 방문하여 촬영을 하게 되었다. 

(리뷰자 주 : 쫀떡이는 정말 대단한 고양이다...)

 

- 그나마 나에게 동아줄 같았던 희망은, 출연 고양이 둘 중 한 마리가 3개월령 근처의 아기 고양이였다는 점이다. 사회화 시기의 고양이는 영역에 대한 개념이 잡히기 이전이기 때문에 낯선 공간, 낯선 사람에 대한 위화감이 크지 않다. 

 

- 그렇게 촬영이 끝나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아직까지 대중의 고양이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다는 점이었다. 촬영을 위한 미팅을 진행하며 '개는 되는데 고양이는 왜 안 되느냐’라는 질문을 수차례 받고, 고양이는 개와 달리 하는 답변을 수차례 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신비롭고 사랑스러운 고양이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알리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그즈음 했던 것 같다. 

 

- 어느덧 햇수로 5년간 출연했던 수많은 고양이의 상태가 좋아지고, <고양이를 부탁해>를 통해 고양이 반려 문화가 눈에 띄게 개선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만족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고양이가 어떠한 동물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표현하는지를 보호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받아들이기 시작한 모습이 이 방송을 시작하고 난 가장 큰 보람이다. 방송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보호자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다.

 

- 가뜩이나 진료만 보는 수의사로 살아왔던 내가 유튜브를 하다 보니 말하는 내용 대부분이 진료실에서 보호자와 상담하는 것 같은 톤에다 정보를 나열하는 식이었고,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기에는 한계가 많았다. 그 내용을 공부하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에는 너무 지루했던 것이다. 지속적인 시청 시간을 콘텐츠 내용이 끝나는 순간까지 유지시키려면 전달력이 가장 필수적이라는 점을 깨닫는 데 1년이 걸렸다. 게다가 진료를 볼 때 사용하는 화법이 대부분 미괄식이었던 것에 비해 유튜브에서는 두괄식 화법을 활용해야 사람들이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평소 이야기하는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했다.

 

- "눈동자를 하얀 막이 가리기 시작했다면 어딘가 아프다는 증거일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하지요! 제3안검이라는 구조물은 대부분 고양이가 아플 때 돌출되거든요!" 

- 본인이 알고 있는 전문 지식을 스스로가 편한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점이 전문가들이 유튜브를 할 때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 사실은 콘텐츠 때문이라도 연기를 꼭 배워보고 싶어서 연극을 하는 배우에게 직접 연기를 배우러 다니기도 했다. 

(리뷰자 주 : 큰고양이, 보고 있나? <어느 택시> 화이팅!)

 

-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기획을 할 때 전문가로서 내가 전달하고 싶은 정보와 대중이 관심을 갖고 듣고 싶어 할 만한 재미있는 요소들을 함께 생각한다. 아무리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이 중요한 내용일지라도 상대방이 듣고 싶지 않다면 잔소리일 뿐이니 이런 노력은 필수이다. 

 

-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근무시간의 집중과 퇴근 이후 시간의 휴식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질 경우 취미 생활, 심리치료 등을 통해 스스로의 '멘탈'을 구원하고 스트레스내성을 길러야 할 필요가 있다.

 

- 이상적인 수의사를 적다 보니 이런 수의사가 되는 것이 정말 가능하기는 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 이유는 각각의 요소들이 균형을 잘 잡지 못할 경우 다른 부분으로 금세 추가 기울기 때문이다. 실력이 있는 수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며, 그러면서도 삶의 균형을 잘 채워야 하고 스스로에게는 당연한 지식을 전달하면서도 보호자의 눈높이에 맞춰 쉬운 언어로 설명할 줄 알아야만 한다. 동물에 대한 애정은 있어야 하지만 그것이 연민이 되어서는 안 되며 경우에 따라 냉철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럼에도 모든 환자를 완치시킬 수는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실패를 받아들일 겸허함도 필요하다. 

 

- 198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인간과 애완동물의 관계'를 주제로 하는 국제심포지움에서 동물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콘라드 로렌츠 Konrad Lorenz가 개, 고양이, 새 등 애완동물의 가치를 재인식하여 '반려동물 Companion Animal’이라는 단어를 제안했고, 이때부터 반려동물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보다 늦은 2000년대 중후반부터 언론과 일상생활에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 용어의 힘은 아주 강하다. 애완에서 반려로, 두 글자의 변화만으로 가족의 개념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물건에 대한 책임감과 반려 대상에 대한 책임감은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다. 이처럼 반려동물과 사람 사이의 심리적 거리가 과거에 비해 매우 가까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현재의 우리의 인식은 이 용어에 발맞춰 발전하고 있을까? 

 

- 올바른 반려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많이 남아 있다. 아직 초등학교에서는 동물에 대한 생명존중 교육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민법상 반려동물을 물건으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에 동물학대 사건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물론 현재는 반려동물의 법적 지위를 개선하기 위한 법안이 강화되는 추세다). 게다가 반려인구가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서 유기동물이 급증하는 것 또한 사회문제로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 반려동물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첫걸음은 반려동물에 대한 시민의식 함양이다. 이는 반려인은 물론 비반려인의 인식을 포함한다. 세계적인 흐름에 발맞춰 반려동물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사회의 한 부분임을 인식하고, 공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반려인과 비반려인이 함께 고민하는 자세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 또한 2014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동물등록제에 참여하여 반려동물의 유기 및 유실 문제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 유기동물보호소에 대한 공적 차원의 지원과 반려인들이 일정 부분 반려세를 납부하는 것도 고민해 볼 문제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반려동물 관련 법안이 지금보다 촘촘해지는 것 또한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 동물과의 공존은 우리가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단순히 인간의 즐거움, 즉 동물들이 우리에게 주는 결과물에만 집중할 경우 동물은 하나의 도구 개념에서 멈추지만, 최소한의 공감이 있다면 하나하나의 생명체가 가지고 있고 누려야 하는 권리가 눈에 보이게 된다. 작은 관심이 있다면 시작될 수 있는 큰 변화를 많은 사람이 알게 되면 좋겠다. 

 

 


 

- 수의사라는 직업은 참으로 힘들고도 매력적인 직업입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높고 실질적 업무 강도도 높은 직업이지만, 그만큼 성취감과 만족감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직업이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동물들의 생명을 직간접적으로 지키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 아주 매력적인 직업입니다. 

- 이 글을 읽는 수의사를 꿈꾸는 후배들이 있다면, 꼭 그 꿈에 도전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물론 힘들고 지치는 날이 있겠지만, 그보다 더 빛나는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확신합니다. 여러분이 가는 길에 저는 선배로서 옆에서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후배들이 가는 길에 미흡하나마 제가 걷고 있는 길이 이정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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