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제리 스피넬리 / 최지현
원제 : wringer
출판 : 보물창고
출간 : 2012.03.20
주기적으로 리뷰 쓰기보다 책 읽기가 훨씬 더 즐거워지는 시기가 찾아온다. 지금도 좀 그러한데, 대략 십 여권 정도의 책이 밀려 있다 보니 이제는 씀 없이 읽는 행위가 당연하게 느껴진다.
<잔혹한 통과의례>는 제목이 눈에 띄어서 선택했는데, 다 읽은 후에는 원제인 '링어 wringer'가 훨씬 와닿았을 것 같다. '링어' 자체가 비틀어 짜는 사람이라는 의미고, 본문 내에서 주인공이 꿈에서 듣는 외침 또한 'wringer'였을 테니... 하지만 원서와는 달리 번역 표지에서는 글에서 강조되는 검은색과 오렌지색을 중심으로 사용해 분위기를 더한 점 등을 보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리라 생각한다.
이 책과 같은 날 읽었던 책이 스미노 요루의 <밤의 괴물>이었다. 그 작품도 마찬가지로 제목만 보고 선택했었는데, 마침 두 작품이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집단의식과 그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 그들이 느끼는 압박과 두려움, 그렇지만 무시할 수 없는 내면의 목소리.
<잔혹한 통과의례>의 경우는 아이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성인들의 부조리라는 측면에서 좀 더 순수함이 강조되었다면, -물론 아이들 간의 동료의식과 자신만 다르다는 두려움도 나타나지만- <밤의 괴물>에서는 아이들 간의 시선과 그들만의 사회를 중심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훨씬 압박적이다. 그 세계를 깨트렸을 때 그들이 속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잔혹한 통과의례>에서는 다르다. 주인공 파머의 선택을 지지해주는 어머니와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아버지가 있다. 또 그의 생각을 들어주고 지지해 주는 동료인 도로시도 있다. 9살 꼬마에게조차 '이상론'을 펼치는 것처럼 보이는 두 여성 인물을 통해 저자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가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때로 이러한 식의 질문은 올바름이 정해져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어디까지나 각자에게는 각자만의 답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답'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에서 멈출 수 있는 것 또한 큰 용기이고 힘이다. 우화를 통한 교훈이 몇 세기를 지나면서도 살아 숨 쉴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하나의 답으로 고정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잔혹한 통과의례> 또한 그렇게 읽히길 바란다. 뉴베리 수상작들은 아이보다는 성인들에게 더 추천되어야 할 작품들이 많은 것 같다. 다양한 생각과 감정들이 표면으로 드러날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팔머는 질문한다.
"어떻게 한 사람이 비둘기를 쏘아 죽이는 사람과 동시에 사랑하는 아빠가 될 수 있는 거냐고."
그 해 가장 많은 비둘기를 사살했다는 트로피를 자랑스럽게 거실에 장식해두는 남자.
자신을 사랑하는 다정한 아빠.
이 두 사람이 과연 같은 사람일 수 있을까?
이것은 인간의 양면성일까? 아니면 그저 타종에 대한 감수성 부족일까?
내 '아이'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일까, '내' 아이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일까?
시튼 동물기 중 비둘기 편이 다시 읽고 싶다.
끝.
- 시골 마을과 그 주변의 명사수 수백 명은 토요일에 있을 63번째 '비둘기의 날'을 대비해 엽총을 손질하고 있다. 미리 참가비를 낸 참가자들은 오전 여덟 시에 시작하는 이 대회에서 상자에서 풀려나오는 비둘기를 열 마리에서 스무 마리까지 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사수들은 점수제에 따라 득점을 하는데, 대회가 끝날 무렵 가장 정확하게 쏜 한 사람에게 누구나 탐내는 명사수 트로피를 수여한다. 대회 수익금은 이 지역에 있는 160 제곱킬로미터의 공원을 관리하는데 쓰이게 된다.
- 주최 측에서 밝힌 바로는 약 5천 마리의 비둘기가 행사에 필요하다고 한다. 그 가운데 일부는 지역의 사육자에게서 구입하고, 나머지는 대도시의 철도 조차장에서 잡아 온다. 비둘기들은 하얀 상자 안에 있다가, 상자에 붙어 있는 밧줄을 당기면 한 마리씩 풀려난다. 이때 사수 한 사람씩 차례 대로 그 새들을 쏘게 된다. 대부분의 비둘기들은 총에 맞고 떨어진다. 그중 대부분이 그 자리에서 죽고, 일부는 상처를 입는다. 떨어진 새들은 이른바 '링어 보이'들이 수거하는데, 이들은 다친 새들의 목을 꺾어 죽인 뒤 새들을 전부 비닐봉지에 담는다. 이 새들은 비료용으로 팔려 나간다. 몇 마리만이 가까스로 살아 도망친다. 이 대회는 바비큐 치킨과 슬러시가 준비되어 있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노는 즐거운 소풍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작년 참가자는 4천 명 가까이 되었다. 비둘기의 날은 놀이기구 타기, 파이 먹기 대회 등 일주일 동안 계속되는 가족 축제의 절정에 해당하는데...
링어가 되고 싶지 않았다.
- 이것이 그가 자신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언제라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꽤 일찌감치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일찍부터 그 사실은 아주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뱃속 허기처럼.
- 하지만 그것은 허기와는 달랐다. 오히려 더 심각했다. 그것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허기는 저녁 식사 전이나 차를 오래 탔을 때처럼 가끔 찾아올 뿐이다. 그리고 채워지면 곧 사라진다. 하지만 그것은 채울 길이 없었다. 아마 한 가지 정도 방법이 있겠지만,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 사실 사라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칠 수 없는 것 이상으로 그 사실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잊는 것이었다. 가끔은 잊기도 했다. 몇 분, 몇 시간, 어떤 때는 하루나 이틀.
- 그 순간은 이미 그의 꿈속에 들어와 있었다. 꿈속에서 비둘기목을 감싸고 있는 자신의 두 손이 보인다. 보드랍다. 비둘기의 눈은 셔츠 단추처럼 반짝인다. 그 눈은 오렌지색이고 가운데가 단추처럼 까맣다. 그 눈이 그를 올려다본다. 깜빡이지도 않는다. 마치 뭔가 말하려는 것 같은데 말을 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릴 뿐이다.
"비틀어! 비틀어! 비틀어!"
-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비틀지도, 놓아주지도 못한다. 정말 간절히 놓아주고 싶지만, 손가락이 돌처럼 굳어 버렸다. 여전히 목소리들이 외친다.
- 때때로 그는 자신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 그것이 자신을 쫓아왔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면 최소한 그것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을 테니까. 숨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그것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기다리기만 했다. 그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그는 결국 다가가게 될 것이다. 숫자 8 다음에 9가 오고, 9 다음에 10이 오는 것처럼 확실하게 그것에 다가가게 될 것이다. 자전거 페달을 밟거나 달리거나 걷지 않아도, 심지어 어떤 근육을 움직이지 않아도 그것에 다가갈 것이다. 숨을 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 품에 굴러 떨어질 것이다.
- 결국 하루하루 사는 것만으로 거기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 파머는 식탁 위에 선물들을 털썩 내려놓고는 제대로 살펴봤다. 선물들은 신문지로 대충 싸서 검은 테이프로 고정시킨 것들이었다. 리본도, 나비매듭도, 화려한 포장지도 없이.
- 피시페이스는 도로시 그루지크를 부르는 이름이다. 빈즈와 녀석들은 도로시를 미워했고, 틈만 나면 도로시를 괴롭혔다. 파머는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 그들과 한패가 되었으니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조만간 도로시의 얼굴에서 생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 "팔이 왜 그러니?"
파머 엄마가 파머의 셔츠 소매를 들추더니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을 했다.
"왜 그랬느냐니까?"
"생일 의식이겠지."
아빠가 방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아빠는 파머의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그렇지, 다 큰 총각?"
- 아빠는 멍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부드럽게 휘파람을 불더니,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세게 아홉 방. 그렇지?"
"맞아요."
- "이 동네 전통이야. 생일에 나이만큼 맞는 거지. 난 많이 당해 봤다고."
아빠가 파머 대신 이야기해 주었다.
"그래서 파머도 당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겠죠?"
엄마가 비웃었다.
- "도로시는 여자잖아요."
"그리고 이웃사촌이지. 네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하고."
파머는 큰 소리로 웃었다. 가끔 엄마는 말만 하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 도로시는 대답도 하지 않았고,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 결국 파머는 도망치듯 달려가, 놀라서 멍을 바라봐 줄 다른 아이들을 찾았다. 파머는 녀석들과 놀았다. 녀석들이 도로시를 욕할 때도 그전만큼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녀석들은 도로시를 "피시페이스!"라고 놀리며 콩주머니를 사각형에서 멀리 차 버렸다. 파머는 뒤에 서서 교활한 웃음을 흘렸다.
- 하지만 동시에 파머는 혼란스러웠다. 도로시는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고 대꾸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집으로 달려가지도, 울지도 않았다. 도대체 뭐 이런 여자애가 있단 말인가? 도로시는 마치 그곳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돌차기 놀이를 계속했다.
잠시 뒤 빈즈 일당은 더 이상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다들 어딘가로 가 버렸다.
- 소년이 두 손으로 비둘기 목을 감싸 쥐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비틀었다. 그때 파머는 나뭇가지를 밟을 때 나는 작은 소리를 들었다. 소년이 한 손을 떼자 비둘기의 목이 푸른 잔디밭을 향해 대롱대롱 매달렸다. 너무나 슬프게 축 늘어졌다. 그러나 비둘기의 눈은 여전히 동그랗고 오렌지색이었다.
- "저 형이 왜 그랬어요?"
파머가 엄마에게 물었다.
"비둘기가 괴롭지 않게 해 주려고."
엄마가 말했다.
"비둘기가 괴로웠어요?"
"응."
"왜요?"
엄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하늘을 보고 있었다.
- "저 형은 비둘기를 데려가서 키우고 싶지 않은 거죠?"
엄마는 아무 대답 없이 계속 하늘만 올려다봤다. 공기에서 음울하고 시큼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갑자기 엄마가 파머의 손을 쥐더니 잡아끌었다. 사람들 속을 헤치고 나가는 동안 사람들의 행복한 얼굴과 환호와 웃음소리와 바비큐 소스로 빨개진 손가락을 보며, 파머는 파티를 떠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그 소년이 바로 '링어'라는 것을 파머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다친 비둘기를 괴로움에서 구해 주는 것이 링어가 하는 일이었다.
- 다음 1년 동안 파머는 그것에 관해 자주 생각했다. 다친 비둘기가 괴로워한다면 왜 애초에 총으로 쏴서 괴로움을 주는 것일까? 왜 비둘기들을 그냥 날려 보내지 않는 것일까?
- 파머 엄마는 이 물음에 대답해 주지 않았고 파머는 혼자서 생각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다쳤든 다치지 않았든 모든 비둘기는 괴로운 것이어서 총으로 쏴야 한다고. 그리고 비둘기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상자가 열리고 축구장 하늘로 날아오를 때 멀리 날아가려고 애쓰지 않는다고. 비둘기들은 총잡이들에게 좋은 과녁이 되어 주는 것이다. "우리 여기 있어요. 우리를 고통에서 구해 주세요."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 비둘기는 얼마나 슬픈 존재인가. 주저하지 않고 비둘기를 돕는 사람들은 얼마나 선한가. 총을 쏘고 목을 비틀고, 필요하다면 주먹으로 치고 수류탄을 던지고 총검으로 찌를 것이라고 상상했다. 사람들은 가엾은 새의 괴로움을 끝내 주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행복한 것 같았다. 오렌지색 눈이 있는 머리가 대롱대롱 매달릴 때마다 사람들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괴로운 생명체들이 하나씩 줄어들 것이다. 파머는, 천국은 비둘기들로 가득할 것이라고 웃으며 생각했다.
-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비둘기를 죽이는 것과 비둘기를 괴로움에서 구해 주는 것은 결코 같은 의미가 될 수 없었다. 파머는'괴로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총을 쏘는 것이 괴로움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은 아닌 것 같았다. 파머가 괴로울 때는 엄마 아빠가 꼭 끌어안고 눈물을 닦아 준다. 파머의 엄마 아빠는 파머를 괴로움에서 구해 줄 때 총을 쏘지 않았다. 대신 과자를 주었다. 그럼 왜 비둘기의 날에 사람들은 과자 대신 총을 가지고 오는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 "아빠, 아빠도 링어였어요?"
"그래."
"나도 링어가 되나요?"
아빠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당연한 일이지, 총각."
당연한 일. 파머는 며칠 동안 몇 번이고 그 말을 되뇌어 보았다. 당연한 일.
- 파머는 남자 아이들이 열 살이 되면 링어가 된다고 들었다.
- 하지만 도시 사람들은 비둘기에게 신경 쓰지 않았고, 아무도 엽총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네 살 때 파머 눈 앞에서 목이 비틀어졌던 비둘기를 제외하고, 비둘기를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비둘기는 더럽고 불결해 날개 달린 쥐나 다름없다고 들었다. 파머는 보고 또 보았지만 아무리 봐도 반짝이는 깃털을 가진 통통하고 예쁜 새일 뿐이었다. 파머는 특히 비둘기가 움직이는 모습에 매료되었다. 비둘기들은 참새나 울새처럼 뛰지 않고 마치 사람처럼 분홍색 발을 다른 발 앞에 두면서 '걸었다.' 그리고 걸을 때마다 마치 '그래, 그럴게 맞아, 네가 옳아.'라고 말하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파머가 보기에 비둘기는 가장 기분 좋은 새였다.
- "자, 좋은 쪽으로 생각해. 날씨가 너무 나빠 오늘 썰매를 탈 수 없는 정도라면 아마 내일 아침에는 버스도 다닐 수 없을 거야. 그럼, 분명히 폭설 때문에 하루 더 쉴 수 있을걸."
엄마가 맞았다. 1월 3일은 제설차와 장화, 눈뭉치와 썰매의 날이었다. 동네 아이들 모두가 밸런타인 언덕에 나온 것 같았다. 하루 종일 파머와 빈즈, 머토와 헨리는 새 썰매를 타고 네 겹 샌드위치를 만들며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가고, 또 내려갔다.
- 붉은 태양이 지붕 아래로 떨어질 때쯤, 지쳤지만 행복한 파머는 썰매를 끌고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파머는 저녁을 먹으러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전에 잠깐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제까지 바깥 풍경에 신경 쓴 일이 없었는데, 그 순간의 풍경이 파머 마음속의 무언가를 건드렸다. 지는 해가 시럽처럼 달콤한 빛을 눈 위에 뿌린 것 같았고, 모든 것이 사라져 가는 그 순간에도 집과 뒷마당이 먹음직스러운 라즈베리 디저트처럼 보였다. 그때 문득 현관 지붕 위로 시선이 갔는데, 쌓인 눈 위에 새 발자국이 보였다.
- 겨울 방학이 좋은 점 한 가지는 숙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있다고 해도 파머가 다 했을 리 없었다. 파머는 여덟 시까지 푹 잤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 있는데 어디선가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진짜 비둘기였을까?
파머는 종종 비둘기 꿈을 꾸었기 때문에 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파머는 블라인드를 내렸다.
- 파머도 거리낌 없이 눈을 던졌다. 여름 이후로 도로시와 말을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파머는 자기 인생에 도로시와 녀석들 모두를 위한 공간은 없음을 알게 되었다. 땅콩버터와 피클처럼, 그들은 섞이지 않았다. 녀석들이 좋아하고 지지하는 모든 것들을 도로시는 싫어했다. 녀석들 덕에 파머는 도로시가 멍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로시는 소리 내어 웃지도 않았고 즐겁게 놀지도 않았다. 도로시는 가만히 웅크린 채 투덜대지도, 소리 지르지도, 울지도, 도망가지도 않았다. 보통의 여자 아이들처럼 말이다. 도로시는 늘 잘난 체했다. 3주 전에는 처음으로 파머를 자신의 생일 파티에 초대하지 않았다.
- 잠에서 덜 깬 파머는 간신히 손을 뻗어 블라인드 끝을 5센티미터 정도 들어 올렸다. 거기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새가 멍청한 머리를 숙이고 오렌지색 단추 같은 눈으로 이쪽을 뚫어져 라 바라보고 있었다.
- 파머는 기도라도 하듯 두 손을 모았다.
"네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 우리는 네가 여기 있는 걸 원하지 않아."
비둘기는 유리창을 톡톡 두드렸다. 파머는 주먹을 흔들며 블라인드를 홱 잡아당겼다.
- 아침을 먹는 동안, 파머는 시리얼을 씹으며 한 가지 문제를 알게 되었다. 먹을 것이었다. 비둘기는 배가 고픈 것이다.
좋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준다고 하자. 그럼, 그다음에는? 비둘기가 먹이를 먹고 다른 마을로 날아갈까? 아니면 마지막 식사를 했던 침실 창문으로 다시 날아올까?
파머는 자신이 답을 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동물에게 먹이는 강력한 유인책이라는 것을 파머도 알고 있었다. 엄마도 언젠가 길 잃은 고양이를 보며 말했다.
"먹이를 줘서는 안 된다. 먹이를 주면 계속 찾아올 거야."
이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돌아오라는 초대장을, 재앙을 불러들이는 초대장을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파머는 알면서도 시리얼 한 줌을 가지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스스로에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이제부터 제 방에 들어오실 때요, 그러니까 노크를 좀 하시겠어요?"
파머는 최대한 평범한 목소리로, 무심코 말하는 듯이 보이려고 애썼다. 엄마가 그 제안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며 "물론이지. 그럴게."라고 대답해 주길 바라며.
- 그런데 엄마가 그렇게 쉽게 허락한 적이 또 있었나? 엄마는 마치 파머가 방금 외국어로 말하기라도 한 것처럼 멍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며 문간에 서서 파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재미있다는 표정을 살짝 짓더니 말했다.
"그래."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를 으쓱하며.
놀라운 일이었다. 엄마는 웃는 얼굴로 문을 닫았다.
- "그러기엔 아직 넌 좀 어리지 않을까?"
"전 나이에 비해 성숙해요."
엄마는 생각에 잠겨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 파머는 문을 닫았다. 그리고 잠시 뒤 파머는 웃음을 터뜨렸다. 파머는 그날 밤 방긋 웃는 얼굴로 잠자리에 들었다. 난생처음 자기 방에서 누군가와 함께 자게 된 것이다. 파머는 야간등도 켜지 않았다.
- 귓불을 깨무는 느낌에 파머는 잠에서 깨어났다. 한쪽 눈을 떠보니 오렌지색 단추가 자신을 말똥말똥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둘기는 가글하는 소리를 내며 베개 위에 있었다. 비둘기가 다시 파머의 귓불을 깨물었다.
- 비둘기에게 시리얼을 줘도 좋지만, 비둘기가 밖에 나가면 돌멩이를 먹을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돌멩이는 모래주머니로 가는데, 들어오는 먹이를 갈아 준다. 비둘기 입속에는 씹을 수 있는 이빨이 없기 때문이다. 파머는 또 비둘기가 먹는 것에 그리 까다롭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비둘기의 혀에는 미뢰가 서른일곱 개밖에 없기 때문이다.
- 파머는 비둘기의 심장이 도토리만 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몸집으로 보면 여러 생명체 가운데 심장이 큰 편이었다. 또 비둘기는 야생에서 높은 바위 절벽의 구석진 곳이나 갈라진 틈에 산다. 그래서 비둘기들이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오면 높은 바위 절벽처럼 보이는 곳으로 가게 되고, 높은 건물이나 초고층 빌딩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많은 비둘기가 큰 도시에 사는 이유다.
- 파머는 여행비둘기에 관해서도 읽었다. 여행비둘기 떼는 수백만 마리로 이루어져 있다. 숫자가 너무 많아 비둘기 떼가 날아갈 때면 태양까지 가려 땅에 사는 사람들이 횃불을 켜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둘기를 총으로 쏘기 시작했고,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키기도 했다. 여행비둘기는 1914년에 멸종되었다.
- 비둘기에게는 사람들이 총을 쏘게 만드는 뭔가가 있는 것이라고 파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무엇인지 책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 그 밖에 많은 것들을 읽었다. 그 책은 89쪽이나 되었고, 그 사실이 파머를 놀라게 했다. 비둘기에 관해 이야기할 것들이 89쪽이나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 니퍼가 파머의 팔을 걸어 올라가 머리 위에 선다. 기분이 좋다. 니퍼가 방을 살핀다. 니퍼가 만화책에서 미끄러진다. 웃음이 터진다. 니퍼와 공놀이를 한다(파머가 고무공을 던지는 동안 니퍼는 농구 골대 위에 올라앉았다. 공이 지나갈 때 니퍼가 공을 깨물었다. 가끔은 그물을 통과하기 전에 공을 잡기도 했다.).
- 파머는 집을 나서는 순간 이 일과 중에서 가장 힘든 부분과 매일같이 맞닥뜨렸다.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한다.' 비둘기를 죽이는 동네에서 어떻게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할 수 있단 말인가?
- 엄마는 의자 위에 서서 전구를 바꾸고 있었다. 파머가 그 말을 하자마자 엄마는 비틀거리며 눈을 흘겼다. 엄마가 넘어질까 봐 파머는 겁이 났다. 엄마는 낯선 사람을 보듯 파머를 내려다보았다.
"다시 말해 볼래?"
- 파머는 다시 말했다.
엄마는 전구를 다 갈아 끼우고 내려와서는 의자에 앉았다.
"이게 네가 다 컸다는 두 번째 표시니?"
- "엄마는 이제 그 일을 하지 않으셔도 돼요."
파머는 엄마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자리를 떠났다.
파머는 등 뒤에서 깜짝 놀라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엄마를 느낄 수 있었다. 파머 스스로도 충격을 받았다. 내가 원래 이랬나?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입맞춤을 한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파머는 그리 감상적인 편이 아니었다. 파머는 평소와 다른 일들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비밀을 지키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해야 하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 하지만 곧바로 날아가지 않았다. 위로 솟구쳐 올랐다가 집 주변을 한 바퀴, 때로는 두 바퀴 돌았다.
도서관에 있는 책에는 비둘기가 자신이 돌아와야 할 곳의 범위를 마음속에 새겨 두기 위해 그렇게 한다고 나와 있었다. 하지만 파머는 비둘기가 떠나기 싫어서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어쨌든 니퍼는 멀리 날아가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니퍼는 파머의 방에서 나가면 전혀 서툴지 않았다.
- 그런데 도로시가 한 행동은 바로 무시하는 것이었다. 도로시는 녀석들이 자기 앞에 자리를 잡고 서 있을 때 녀석들을 피해 돌아가는 것 말고는 그들의 존재를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느 날, 그런 도로시를 바꿔 보겠다고 결심한 빈즈가 녀석들에게 학교 바로 앞에서 도로시를 만나 나무등걸을 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도로시네 현관에 도착할 때까지 한 걸음 뗄 때마다 계속하라고 했다. 녀석들은 그렇게 했다. 그래도 도로시는 단 한 번도 녀석들을 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녀석들을 애먹이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을 통과하며 빠른 길을 택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가게로 들어갈 수도, 친구 집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도로시는 그러지 않았다.
- 바람 부는 어느 날, 빈즈가 도로시의 책을 치는 바람에 종이들이 날아가 버렸고, 도로시는 그 종이들을 쫓아가야 했다. 어느 날엔 도로시의 팔락이는 빨간 모자를 낚아채 자기 머리에 쓰고, 도로시 앞에서 바보 같고 꼭두각시 같은 그 춤을 또 추었다. 길거리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지나가는 자동차도 속도를 줄였다. 그러나 도로시는 웃는 법이 없었다. 옆으로 비켜서지도, 물러서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모자를 집에 두고 오지도 않았다.
- 매일 아침 모자는 조금씩 빨간색에서 회색으로 바뀌어 갔지만 변함없이 도로시 머리 위에 얹혀 있었다.
"내 생각에 도로시는 괴로운 걸 좋아하는 것 같아."
머토가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 빈즈의 마음속에 노여움이 쌓여 갔다.
빈즈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그중에서 가장 간단한 것이었다. 그 일은 금요일 오후에 일어났다.
- 그러고 나서 도로시는 했다. 드디어 말을 한 것이다. 하지만 도로시가 말을 한 상대는 빈즈가 아니었다. 파머 라루였다. 도로시는 빈즈에게서 한 걸음 물러서더니 곧장 파머에게로 걸어가 정면에 서서 말했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 파머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난 몇 주 동안 도로시는 상처를 받았으며, 도로시에게 가장 상처를 준 사람은 빈즈가 아니라 파머 자신이라는 사실을.
-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한 날이었다. 하늘은 푸르고 공기는 따뜻했다. 야구 방망이에 공이 탕 맞는 소리가 멀리까지 울렸다. 주변 나무에 새로 나기 시작한 나뭇잎들이 연둣빛 팝콘처럼 보였다. 덤불을 이룬 양파가 달콤한 향기를 풍기며 축구장 여기저기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하지만 파머의 코에 들어가자 그 향기는 엽총 연기의 시큼한 냄새가 되었다. 수천 마리의 비둘기가 떨어진 땅 위를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욱신거렸다.
- 생일 의식을 받는 동안 빈즈의 두 눈은 빛났고 얼굴은 흥분으로 상기되었다. 생일 의식을 끝낸 파커는 빈즈의 얼굴에 전혀 고통스러운 표정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파커는 자신의 유명한 주먹을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몸을 굽혀 빈즈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괜찮니?"
빈즈는 방금 전까지 어느 쪽 팔도 맞은 적이 없다는 듯, 두 팔을 번쩍 치켜들며 소리쳤다.
"난 위대하다! 난 열 살이다!"
- 그러고는 뒷걸음치더니 홀로 축구장에 섰다. 나무에서 노래하는 새도, 머리 위를 나는 새도 없었다. 빈즈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맞잡았다. 얼굴의 웃음이 일그러지고 이빨이 드러나더니, 쥐어짜는 듯한 소리가 목구멍에서 새어 나왔다. 그러곤 맞잡은 두 주먹을 반대 방향으로 확 풀어 버리며 환성을 질렀다.
"나는 링어다!"
파머는 오싹했다. 석 달 뒤엔 파머의 생일이다.
- 지난여름, 엄마는 파머를 Y 야외 수영장으로 데려가 수영 강습을 받게 했다. 첫 수업은 물에 뜨기였다. 수영 강사는 그냥 머리를 뒤로 하고 발을 들어 올려, 물 위에 등을 대고 누우라고 했다. 파머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파머의 인생 경험은 발을 떼는 순간 아래로 떨어진다고, 물에서는 가라앉는다고 말하고 있었다.
- "긴장을 풀어. 물을 믿으라고. 물이 널 받쳐 줄 거야."
수영 강사는 계속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파머는 물을 믿지 못했다. 그 상태는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다 결국 물에 가라앉게 하지 않겠다는 강사의 약속을 받고 나서야 파머는 시도를 했다. 강사의 손이 등허리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목과 귀에 물이 느껴질 때까지 뒤로, 뒤로 몸을 눕혔다. 강사의 손이 부드럽게 떠받쳐 주었고, 파머의 두 발은 수영장 바닥에서 떨어졌다.
- "누워... 긴장을 풀고, 네 침대라고 상상해 봐. 물을 믿어."
강사가 말했다.
파머는 누워서 물을 믿으려고 애썼다. 강사의 얼굴과 그 너머 광활한 파란 하늘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강사의 얼굴이 사라지고 손도 사라졌다. 그리고 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넌 지금 떠 있어."
- 파머는 도로시에게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냥 편안히 내버려 두면 도로시가 자신을 붙잡아 줄 것임을 알고 있었다.
- "난 링어가 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다들 열 살이 되면 링어가 돼. 난 71일 뒤에 열 살이 될 거고 그러면 링어가 되어야 해. 하지만 난 되고 싶지 않아. 난 도대체 어떤 아이일까? 나만 빼고 모두들 비둘기를 죽이고 싶어 해.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파머 눈에 눈물이 고였다. 눈물이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 파머는 모든 것을 말했다. 몇 년 동안 생각하고 느끼던 것들을 말했다. 자기 입에서 나온 말을 듣기 전까지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아빠가 어느 해인가 가장 많은 비둘기를 총으로 쏘고 타게 된 황금 비둘기 트로피를 자신이 얼마나 싫어하는지도 도로시에게 말했다. 파머는 그것이 자신을 혼란스럽게 만든다고 했다.
어떻게 한 사람이
비둘기를 쏘아 죽이는 사람과
동시에
사랑하는 아빠가 될 수 있는 거냐고.
- 파머는 나무 등걸 놀이에 끼었던 것과 놀린 것을 사과했다.
"넌 전혀 물고기처럼 안 보여."
"고마워."
도로시가 대답했다.
- 머리 위로 니퍼가 날아가는 것이 아이들에게 목격된 것과 마을에서 비둘기와 함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리고 밤에 꾼 꿈들도 이야기했다. 가끔은 녀석들과 어울리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는 것과 정말로, 정말로 링어가 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 도로시가 책상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방을 가로질러와서 파머 앞에 섰다. 그리고 파머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하지 마."
- 도로시는 아주 쉽게 말을 했다.
파머는 히죽히죽 웃었다. 그러고는 침대에서 일어나 공을 찼다.
"그래, 안 하면 되지. 넌 그렇게 말하기 쉬울 거야. 넌 남자가 아니니까. 넌 자라면서 열 살이 되는 것이 두려웠던 적이 없을 테지."
- 파머가 발을 구르자 니퍼가 골대에서 푸드덕 날아올랐다.
"하나도 안 웃기거든."
도로시가 어깨를 으쓱했다.
"내 진지한 답이 별로 마음에 안 드는구나. 링어가 되고 싶지 않으면 되지 마."
도로시가 침대에 앉았다.
- "난 링어가 안 될 수 없다니까!"
파머가 빽 소리를 질렀다.
- "내가 이 마을 역사에서 링어가 되지 못한 유일한 아이로 남는다면? 그리고 이건 어때?"
파머는 손가락으로 도로시를 찔렀다.
"빈즈가 그냥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둘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녀석들은 나를 이 침대에서 끌어내 공원으로 데리고 갈 거야. 그리고 내 목을 비틀겠지."
- 파머는 자라는 동안 어둡고 끝없는 구멍 가장자리에 서 있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열 번째 생일을 59일 남겨 둔 날, 파머는 그 구멍으로 떨어졌다.
-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 '빈즈 일당들'이 학교를 나섰을 때였다. 앞뜰에는 수선화가 뷰글(*트럼펫과 비슷한 금관악기.) 밴드처럼 무리 지어 피어 있었다. 그날은 모든 것이 가능할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었고, 문제는 무엇을 할지 선택하는 것뿐이었다. 빈즈는 시냇가로 가 도롱뇽을 잡고 싶어 했다. 머토는 돌멩이 싸움을 하고 싶어 했다. 헨리는 야구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듯했다.
- 그런데 파머는 결정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결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파머는 화창한 봄날에 친구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즐기고 싶을 뿐, 따로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냥 있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에게조차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고, 녀석들에게는 더더욱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 "그 비둘기는 네 거야."
뒤에서 들리는 빈즈의 목소리에 파머가 돌아섰다. 녀석들은 열 걸음 뒤에 서 있었다. 그 거리가 10킬로미터는 되는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파머는 두 팔을 벌리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것처럼 몸을 굽혔다.
"뭐?"
머토가 파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건 바로 네 거야. 안 그래? 그래서 네 머리에 앉은 거잖아."
"그리고 전에 우리 위로 날아가던 그놈이 네 집 근처로 날아갔고."
빈즈가 말했다.
- "넌 영웅이야."
"뭐?"
"네가 지금 하고 있는 거 말이야. 넌 아마 우리 학교에 다녔던 아이들 가운데 가장 큰 말썽꾸러기일 거야.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을 니퍼를 구하려고 하고 있잖아."
파머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건 영웅이 아니야. 난 그저 잘못된 마을에 살고 있을 뿐이야. 그게 다야."
- "일 분 전으로 돌아가서. 부상당한 비둘기를 '퍼덕이'라고 한다면, 죽은 비둘기는 뭐라고 부를까?"
남자는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두 눈이 반짝거렸다.
"꼴깍이?"
앞에 있는 누군가가 말했다.
남자가 웃었다.
"함정이 있는 질문이었다. 답은 죽은 새. 죽은 건 죽은 거야. 그것을 대신할 말은 없어."
- "좋아. 너희들은 너희들 비둘기에게 간다. 그게 죽었다면 좋아. 죽지 않았다고 해도 좋아. 어떤 것이든 너희들은 비둘기를 줍고 다음 비둘기에게로 가는 거야. 두 사람이 다섯 마리를 가지고 오는 거야. 그리고 여기서 너희들의 비둘기를 확인하는 거야. 아직 죽지 않은 것이 있다면..."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아이들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목을 비트는 거야."
- 남자가 머리 위로 회색 양말을 들어 올렸다.
"한 손은 여기에 다른 한 손은 여기에, 그러고는 반대 방향으로 비트는 거야. 세게, 재빨리 해야 해. 이 동물들을 괴롭히려고 여기 있는 게 아니야. 우린 이들을 인간적으로 죽이려고 여기 온 거야. 세게 그리고 재빨리. 필요한 건 그게 다야. 그리고 쓰레기봉투에 넣는 거다. 다시 줄 맨 뒤로 간다. 다음 차례가 되면 다른 사람이 상자를 옮긴다. 계속 돌아가면서 하는 거야.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있어. 기억할 단어가 뭐라고?"
"재빨리!"
- "비둘기가 죽었는지 어떻게 알아요?"
아이들 중 하나가 물었다.
"맥박을 짚어 봐!"
누군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남자가 노려보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뚝 멈췄다. 나무들까지 조용했다.
"보면 알 수 있을 거다."
하늘은 텅 비어 있었다. 남자가 손뼉을 쳤다.
- 파머는 맥이 탁 풀렸다. 그 일도 두려웠다. 지금까지 파머의 사회생활은 깔끔하게 두 개의 관계로 분리되어 있었다. 하나는 도로시, 다른 하나는 녀석들과의 관계였다. 도로시가 녀석들이 주변에 있을 때는 파머를 피함으로써, 그런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 게다가 여름 동안 파머의 생존 전략은 그저 '녀석들과 잘 지내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헨리는 제외하더라도, 자신이 한때 함께하기를 너무도 열망하던 그 일당이 이제 너무 두려워졌다는 사실이 최근 몇 주 동안 파머가 깨달은 것이었다. 파머가 배신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그들이 파머에게 할 일에 비한다면 파커의 생일 의식 정도는 아기들의 장난처럼 여겨질 것이다. 파머는 숨겨 놓은 애완동물을 보여 줄 때까지 자신을 고문하는 아이들을 상상해 보았다. 그쯤 되면 니퍼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 "아, 며칠 동안 고양이 한 마리를 요 근처에서 봤거든."
엄마가 말했다.
순간 파머는 거미가 어깨를 기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어디에서요?"
"뒷마당에서. 그게 어제였어. 오늘은 집 안에 있지 뭐니. 계단에 말이야."
파머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무슨 색이었어요?"
"노랑."
엄마가 후추를 집으며 말했다.
- 엄마가 무슨 말인가를 더 했지만 파머는 듣고 있지 않았다. 곧장 위층으로 달려가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건강하고 통통한 모습의 니퍼가 뒤뚱뒤뚱 걸어와 파머를 맞이했다. 파머는 무릎을 꿇고 앉아 주먹으로 몇 번이고 허벅지를 내리쳤다.
- "그 더러운 새들을 저보다 더 미워하시는 거 맞죠, 라룰 아저씨?"
파머의 아빠가 문간에 나타났다. 빈즈를 똑바로 바라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니, 난 비둘기를 미워하지 않아. 그랬던 적도 없고."
그러고는 케이크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빈즈가 멍한 표정인 것으로 보아 파머 아빠의 대답이 전달되기는 한 것 같았다.
- "아저씨는 링어였죠?"
빈즈가 다시 소리쳤다.
"그랬지."
"그리고 이제는 스너츠도 링어예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참 뒤에야 주방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파머 스스로 결정할 거다. 파머에게 달렸지."
파머는 놀라 입을 딱 벌리고 문 쪽을 보았고, 빈즈는 주먹으로 식탁을 두드리며 투덜거렸다.
- 다른 아이들처럼 파머도 아이스크림과 케이크를 먹었지만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다. 선물을 열어 봐도 즐겁지 않았다. 파머는 오랫동안 이날을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모두가 힘차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동안 파머는 케이크를 가지고 걸어오는 남자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 남자가 방아쇠를 연거푸 당기고 그때마다 회색 깃털의 니퍼들이 땅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상상했다.
- 헨리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파머는 헨리를 보며 어떤 아이일까 생각했다. 지난밤 일을 알려 줄 만큼 강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약해서 빈즈를 따라다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포로가 헨리였다. 파머는 헨리에게서 자신과 닮은 모습을 발견했다. 더 나쁜 것은 자신이 헨리처럼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 "네가 비둘기를 기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단다."
파머는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다.
"파머, 숨 쉬어라."
엄마가 웃었다.
- "이리 오렴."
파머는 엄마에게 다가가 그 품에 폭 안겼다. 몸속에 있던 모든 힘이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외로웠는지, 부모님의 도움이 얼마나 필요했는지를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 파머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엄마는 파머를 더 꼭 안고 가만히 몸을 흔들었다.
- "언제나 네가 해 둔 대로 물건들이 있지 않았다는 걸 몰랐니? 여기에 먼지가 쌓이지 않는다는 것도 몰랐어? 엄마랑 같이 살면서 엄마를 네 방에 못 들어오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사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어느 날 아빠가 군대의 올바른 배치를 보여 주었다. 지뢰가 터질 때 한 사람 이상 죽지 않도록 얼마나 간격을 두어야 하는지 보여 주었고, 세 면에서 적을 공격하고 그 적이 뒤에서 몰래 공격해 들어오지 못하도록 반원을 만들어 왼쪽과 오른쪽으로 측면 부대를 보내는 법, 예비 소대를 준비하는 법 등을 알려 주었다. 초록색 얼굴의 중위와 대위를 어디에 배치할지를 배우고, 전략상 유리한 고지가 돈으로 살 수 없을 만큼 귀중하며 기관총 사수를 어린이 사전 위에 둔다는 것도 배웠다.
- 보통은 전투 직전의 준비로, 앞으로 몸을 숙인 스물일곱 병사들과 조준된 올리브그린색의 작은 소총 스물일곱 개로 부대를 배치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공격을 했다. 앞으로 움직이고, 세 면에서 지우개를 압박하고, 모든 퇴로를 차단해 흉악한 교차사격을 퍼부었다. 중위는 공격조를 이끌고 대위는 공습을 요청하면서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못된 지우개는 가까스로 살아남아 최전선을 뚫고 기어 나왔고, 다시 지원 부대와 맞닥뜨렸다. 놀랍게도 지우개는 여기서도 살아남아 몸을 일으켜 달려갔다.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할 때쯤, 사전 꼭대기에서 기관총이 사격을 개시했다.
- 기관총이 무자비한 사격을 퍼부었고, 군대도 정비를 가다듬고 사격에 가담했다. 지우개가 갈기갈기 찢어져 죽을 때까지 전쟁의 굉음은 그치지 않았다.
- 다음날 파머는 뒤뜰에 병정들을 묻었다. 흙으로 장난감 병정들을 덮을 때, 작은 초록색 얼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파머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 파머는 계속 비틀 베일리 연재만화를 읽고 그림을 오렸지만, 더 이상 스크랩북에 붙이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오리는 일도 그만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읽는 것도 그만두었다.
- 파머는 아빠와 함께 야간 세미프로 리그, 타이탄 팀의 야구 경기를 보러 갔다. 덴빌까지 차를 몰고 갔다. 다른 마을로 가는 것은 괜찮았다. 그렇다고 아주 좋은 것은 아니었다. 파머는 소스를 곁들인 핫도그와 겨자를 넣은 부드러운 프레첼을 먹고 자작나무 맥주를 마셨다. 자작나무 맥주는 붉은색이었다. 타이탄 팀의 유니폼은 오렌지색이었다. 셔츠와 양말, 모자의 T자도 오렌지색이었다. 벨트에서부터 발끝까지 까만색과 오렌지색 줄무늬가 있었다. 포수의 가슴 보호대도 오렌지색이었고, 유격수의 신발끈도 마찬가지였다.
- 파머는 미래의 일들을 냄새로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가족 축제가 시작되기 전 일주일 내내 음울하고 시큼한 엽총 화약냄새가 느껴졌다. 총소리도 들렸다. 커서 링어나 사수가 되기 위해 연습을 하는 네다섯 살 아이들의 장난감 권총에서 나는 탕 소리였다. 아이들이 조준기를 통해 보는 모든 것들은 비둘기가 되었다. 메뚜기도, 우편함도, 노란 호박도, 모든 것이 그랬다.
- 처음에 파머는 니퍼를 풀어 준 것이 니퍼를 위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창문을 열고 잠을 자고, 더 이상 고양이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안도감을 느끼는 자신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몇 달 동안 자신을 질식시킬 것 같던 긴장이 사라진 것이다.
- 평화의 대가는 비쌌다. 패거리에서 스스로를 쫓아냈고, 스스로를 배신자라고 선언했으며, 사랑하는 애완동물을 쫓아 버렸다. 이런 대가로 얻은 평화는 훌륭해야 했다. 그런데 파머가 평화를 향해 손을 뻗어 맛보려고 하면 평화는 거기에 없었다. 대신 파머는 눈보라가 데려다준 친구의 모습을 추억 속이나 꿈속에서 보게 될 뿐이었다.
- 어느 날 밤, 파머는 아주 먼 곳에서 길을 건너는 비둘기 꿈을 꾸었다. 그런데 굉음을 내며 지나가던 자동차가 비둘기를 치었다. 그 위를 다른 차 여러 대가 지나가고 곧 비둘기는 납작한 고깃덩어리와 깃털이 되어 버렸다. 그때 물뿌리개를 가진 할머니가 나타나 길에 물을 뿌리기 시작하자 고기는 다시 통통해지더니 깃털과 함께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다시 살아난 비둘기를 손으로 잡았다. 바로 그 순간 그 사람은 할머니가 아니라 아이였다. 링어였다. 그 링어가 비둘기의 목을 조르자 입술처럼 부드러운 부리로 비둘기가 말을 했다...
- 파머는 그날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깼을 때, 온몸은 땀에 젖어 있었고 목이 따끔거렸다. 파머가 꾼 꿈은 몹시 시끄러웠다. 파머의 목소리가 묻혀 버릴 만큼 수천 마리의 새들이 지르는 비명 소리와 날카로운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 총소리가 추억과 뒤섞였다.
- 파머는 이미 그곳에 모여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놀랐다. 땅거미가 질 때까지 5천 마리의 새들을 죽이기 위해, 그리고 비둘기들을 죽이는 것을 보기 위해 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른 시간에 그날 하루를 시작하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 누군가 돌아서며 파머를 보고는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이봐, 여기 링어를 할 아이인가 봐. 늦게 일어난 것 같은데, 지나가게 비켜 줘."
다른 사람들이 돌아서서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파머는 달렸다.
- "어디서 풀어 줬니?"
"니퍼?"
도로시는 마치 모른다는 듯 물었다.
"응, 어디서?"
"도시에서."
파머는 당황했다.
"도시? 바닷가에 간다고 했잖아."
도로시가 산책길이나 바닷가에 서서 니퍼를 날려 보내 주면 니퍼가 모래 위로, 거품이 이는 파도 위로 솟구쳐 오르는 모습을 상상했다. 니퍼가 바닷가에서 행복하게 살 거라고 상상했다.
"바닷가에는 갔었어."
도로시가 말했다. 하지만 말하기가 쉽지 않은 듯했다.
- 파머는 2년 전 도시로 여행을 갔던 일을 떠올렸다. 고개를 까딱거리며 사람들과 함께 여기저기를 산책하는 보행자 비둘기를 보는 것이 즐거웠다. 그것 역시 비둘기에게는 행복한 인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손을 뻗어서 니퍼를 하늘 높이 날려 줬어? 그러니까 니퍼가 멀리 날아간 거야?"
파머는 좀 더 정확히 알고 싶었다.
"아니면 그냥 길에다 놓아주니까 사람들과 함께 걸어갔어?"
도로시는 총소리에 다시 움찔했다. 그러고는 한 걸음 물러섰다.
"아니, 다 틀렸어. 내가 자동차 창문을 내리니까 니퍼가 날아갔어."
그건 파머가 바라던 것이 아니었다.
"달리는 동안에? 아니면 멈췄을 때?"
"멈췄을 때."
- 조차장.
파머는 도로시의 양팔을 붙들었다.
"뭐?"
도로시가 몸부림을 쳤다.
- "다시 나무 등걸 놀이야?"
도로시가 비웃듯이 물었다.
"도로시, 조차장에서 니퍼를 풀어 줬다고?"
파머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런데 왜?"
도로시는 양손을 내밀며 말했다.
"왜냐고? 조차장에서 비둘기를 잡아 이곳으로 데려온단 말이야. 왜 거기서 풀어 준 거야?"
곧 총소리가 들렸고, 어느 때보다 더 큰 환호성과 왁자한 웃음소리가 터졌다.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졌나 보다.
도로시는 놀란 표정으로 파머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우린 몰랐어. 아무도 우리한테 그런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어. 우리 식구 중 누구도 비둘기를 쏘지 않잖아!"
도로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 소년 파머가 맞서야 하는 녹록지 않은 현실이 마치 내 목을 조르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 비둘기를 총으로 쏘아 죽이는 것을 전통 축제로 즐겨 온 마을에서 주인공 파머는 그 축제를 즐길 수 없다고 감히 내놓고 말하지 못한다. 그것은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지켜 내려온 전통에 반하는 일이며, 그것에 용감하게 맞서고 나면 가까스로 들어간 동네의 또래 집단을 잃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다들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듯 아무도 그 축제가 잔인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수가 지배하는 집단 속에서 한 개인이 순수하고 자유로운 자아를 지켜 내기가 얼마나 힘겹고 고통스러운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 그런 파머에게 어느 날 눈보라와 함께 비둘기 한 마리가 나타나 서로 교감하게 되면서, '관습'이라든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행해 오던 수많은 일들이 갑자기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의심은 웨이머라는 미국의 소도시뿐 아니라 이 지구상의 어디에서든, 그리고 우리가 사는 지금 이곳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리라.
- '그래, 맞아. 네가 옳아.'라고 말하는 듯 고개를 까딱거리며 길거리의 소공원을 걷고 있는 저 비둘기들이 우리에게 묻는 것 같다. 이 봄, 새로이 시작하는 이곳에,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순수하고 자유로운 소수의 외침은 없는지, 마음을 열고 돌아보는 것은 어떠냐고.
- 옮긴이 최지현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 > Book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와무라 이치] 예언의 섬 (0) | 2023.11.02 |
---|---|
[스미노 요루] 밤의 괴물 (0) | 2023.11.01 |
[유랑] 망그러진 만화 - 망그러진 곰과 햄터의 귀염뽀짝 일상다반사! (0) | 2023.10.31 |
[미쓰다 신조] 우중괴담 (0) | 2023.10.12 |
[이나가키 에미코] 인생에는 특별한 것과 평범한 것이 모두 필요하다 (0) | 2023.10.10 |
[이나가키 에미코]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0) | 2023.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