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이나가키 에미코] 인생에는 특별한 것과 평범한 것이 모두 필요하다

일루젼 2023. 10. 10.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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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나가키 에미코 / 김미형
출판 : 엘리 
출간 : 2021.02.26 


       

이 저자가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의 저자라는 걸 알게 되었다. 피아노를 시작하면서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돌고 돌아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 (정작 그 책은 아직 읽지 않았다) 

 

<인생에는 특별한 것과 평범한 것이 모두 필요하다>는 저자의 프랑스 리옹 2주 살기에 대한 글이다. 개인적으로는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를 읽었더라면 좀 더 만족스럽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래도 즐겁게 읽었다.

 

여러 장소에서의 '한 달 살기'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관광지를 돌거나 유행하는 체험을 하는 것이 아닌, 그 장소에서의 '삶'과 '생활'을 경험해보고 싶어 하는 선택일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들은 자신의 일상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하는 것을 원해서 떠나는 것일 테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어디서든 나는 나로서 내 생활을 똑같이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떠난다는 것이다.

 

굉장히 미묘한 차이 같지만 엄청나게 다르다.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느냐의 문제다. 지금의 내 삶에 만족하지 못해서 -환경이건, 생활패턴이건, 어떤 것이건- 떠나는 것이 아니다. 뭔가가 다르기 때문에 떠나는 것도 아니다. 지금과 많은 것들이 달라지더라도 '나는 여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을지를 확인해 보고 싶어서 떠나는 것이다. 말도 통하지 않고 사전 정보도 거의 없는 낯선 타국의 도시에서도, '나'는 언제나처럼 '나'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훌쩍 비행기를 탄다. 물론 내가 이해한 바가 정확하게 저자가 전하고 싶었던 바와 같은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어디건 상관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리옹에서도 저자는 일본에서처럼 사람들과 소통했고, 생활을 유지했고,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틀림없이 다른 점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다름'을 통해 발견한 건 '나'였다.

 

떠나있을 때보다 돌아와서 더욱더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여행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이주나 이동에 더 가까운 어떤 것이리라. '여행'은, 아무리 길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이 포함된 일이다.

 

삶 또한 하나의 여행이다.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되 새로운 것을 밀어내지 않을 수 있는 여유를 갖추고 살고 싶다.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날씨다. 

가을이다.  


   

-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 어릴 때부터 그런 꿈을 꿨다. 도대체 왜,라는 질문은 말아주시길. 요즘 사람들이야 어쩌면 상상조차 할 수 없겠지만, 우린 아주 예전부터 외국을 무척이나 동경했었으니까. 그것은 어쩌면 섬나라 사람들의 숙명적인 로망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결국, 아주 작은 세상에서 부대끼며 살고 있다는 콤플렉스.

 

- 얘기인즉슨, 국내에 발이 묶인 채 일에 치여 살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외국 생활은커녕 장기 여행을 떠날 기회조차 없더란 거다. 
이러면 안 되지. 나이 오십 줄에 삼십 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 데 이유를 꼽자면 여럿 있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이대로 회사에 남아 있다가는 하고 싶은 일은 하나도 못 하고 수명이 다해버리겠다'는 위기감이었다. 물론, 그 '하고 싶은 일' 중 하나가... 맞다, 동경하던 외국 생활이었다.

 

- 회사에 얽매이지 않다 보니 일과 모임 약속을 상대방 사정에 맞춰주다 보면, 주말이고 뭐고 없다. 해외 유학은 개뿔, 시간에 질질 끌려 다니며 살다 보니 어느새 이 년 경과... 
이래선 안 돼. 이러다간 분명 눈 깜짝할 새 오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나고, 야무지게 조기 퇴사까지 한 보람도 없이 그냥 정년퇴직하는 나이가 되어버리겠어. 내게 필요한 것은 발상의 전환이야! 그래. 준비를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언제까지고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거야. 무작정 떠나면 어떨까? 준비 따위 없이 눈 질끈 감고, 말하자면 '셀프 특파원'인 거지. 아무도 특파해주지 않으니 그냥 내가 나를 특파해버리는 거야.

 

- 이렇게, 일찍이 그 누구도 증명해 본 적 없는 유니크한 가설을 가슴에 품고, 53세의 나는 혼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뻔뻔스럽게, 달랑 몸뚱이 하나 들고, 말도 안 통하는 유럽으로 날아갔다.

 

- 출발 전에야 물론 불안했지만, 만약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그야말로 획기적인 일이라는 야망에 뜨겁게 불타고 있었다. 그렇지 않나, 이런 터무니없는 방정식이 실제로 성립한다면 말이다. 딱히 능력이 없어도, 그 나라 말을 못 해도, 여행이 서툴러도, 성격이 특별히 좋지 않아도, 그리고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꿈에 그리던 '외국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말일테니까!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정말로 이루어진다면 내 가능성이 활짝 열릴 테니까! 그렇게만 된다면야 그야말로 '어디로든 문’을 손에 넣는 셈이다. 국민 만화 <도라에몽>에서도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대인기 아이템을! 남녀노소 누구나 가졌으면 하고 염원해 마지않는 그것을!

 

- 나는 평소 미술관에 갈 일이 거의 없는 데다 가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파리에 갔다고 루브르나 오르세를 돌아들, 따분하지 않고 배길 리가 없다. 다시 말해, 진심으로 내가 루브르에 가고 싶었는지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 파리에 가면 루브르에 가야 한다고 가이드북에 쓰여 있기에 그렇게 했을 뿐이다. 잡화점도 마찬가지. '파리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을 잡지에 추천하는 사람들은 평소 그런 쪽에 애정과 관심을 쏟아온 덕에 그곳에 차고 넘치는 '보물'을 알아보는 것이다. 평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그런 곳에 간다고 보물을 캐낼 수 있으리라 믿는 것은 그야말로 착각이다. 여행을 갔다고 해서 평소에 흥미가 없던 것에 갑자기 흥미가 생기는 게 아니다. (써놓고 보니 너무 당연한 소리지만.)

 

- 그렇다면. 
평소에 자신만의 취향을 가꾸다 보면 어디를 가든 뜻깊은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도예를 하는 사람이라면 도예품을 보고 공방에 가야 자극이 될 것이고 도예 하는 사람과 만나야 소통도 할 수 있지 않을까...?

 

- 노력이 부족해서 그래, 그렇게 또다시 라디오 강좌 교재를 사고... 같은 짓을 되풀이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닌 것만 같다. 누군가와 진심으로 소통하려면, 우선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내가 진심으로 알고 싶은 것, 진심으로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없다면, 말이 통한들 무슨 소통을 할 것이며, 애초에 소통이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럴 수가, 그런 거... 없잖아... 내 일이 글 쓰는 일이긴 한데, 이건 외국에서는 공유하기가 힘든 분야다. 다루고 있는 게 말인데, 외국어를 못하면 그야말로 말이 안 되니까. 그래서 열심히 생각했다. 어딜 가든 통하는, 지금의 내가 진정으로 흥미를 느끼는 것, 평소에 진지하게 하고 있는 게 뭘까 하고. 
그때 떠오른 것이다. 그건 바로 '생활'이었다!

- 요리를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근처에서 장을 보고, 아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 이런 '생활'을 외국에서도 열심히 하다 보면 뭔가 저절로 드러나는 게 있지 않을까?

 

-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목적지는 상관없다. 생활이라면, 어디서든 할 수 있으니까. 내가 그냥 나로 존재하기만 하면,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진짜 모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느 나라에서든 마음껏 모험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어쩌면, 낯선 이국땅의 사람들과 소통이란 걸 할 수도 있지 않을까? 

 

- 그래도 프랑스까지 갔는데...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개미굴처럼 내 여행은 아무개들이 쏟아내는 정보 속에서 허우적대고 말 것이다.

 

- 나의 생활은 언뜻 무미건조해 보일 것이다. 분명 아무런 즐거움도 없어 보이겠지. 하지만 매일 질리지도 않고 이 생활을 반복하는 나는, 별일 없이 아주 잘 살고 있다. 무리하는 것도 아니고, 꾹 참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진짜라니깐요! 

무미건조한 게 어때서.
오히려 그게 포인트다.

 

- 나는 매일, 변함없는 간소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같은 시간에 집안일(요리, 빨래, 청소)과 일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 정말 단순한데, 그래서 좋다. 이 정도 일쯤이야 혼자 힘으로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 특별하고 반짝이는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약간의 노력만으로, 적어도 매일 깨끗이 정돈되고 청결한 곳에서, 깔끔하게 몸단장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세상을 위해 땀을 흘린다. 

인생은 그것으로 족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활은 '혼자서 완결되는 법'이 없다. 
이렇게 무미건조한 생활일지라도, 나는 나의 삶을 영위함으로써 다른 이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 매일 아침 두부를 만들어주는 두부 집 아저씨, 맛있게 구워진 토스트 세트를 내어주는 카페 주인...

 

- 아니 현실적으로 말해서, 이런 생활이 있기에 사막 같은 도쿄에서 중년의 독신 여성이 홀로 그럭저럭 건강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확실해. 틀림없어. 아, 인생이란 단순한 거야. 으하하하... 그래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흘러갈 거야(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러니 뭘 그렇게 열심히 맛집과 관광명소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래요, 아무것도 필요가 없지요! 

 

-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할 생각이었다. 외식은 물론 관광이나 쇼핑은 할 생각이 없었다. 따라서 맛집을 포함해 현지에서만 살 수 있는 멋진 물건들, 꼭 둘러봐야 할 관광지 정보도 전혀 필요 없었다. 그래서 사전 조사도 하지 않았고 가이드북도 챙기지 않았다. 짐뿐 아니라 머릿속까지 완벽하게 가벼운 여행이었다. 내 인생에 이런 여행은 처음이었지만, 막상 해보니 편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 단지 준비 시간이 비약적으로 줄어든 것만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니 지금까지의 여행에서는, 이것도 해야 하는데, 저것도 아직 안 했잖아, 하는 식으로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을 출발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즐거워야 할 여행이 어느새 '업무'가 되어버린 꼴이었다.

 

- 그래, 지금 생각해 보니 알 것 같다.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 건지 정확히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무작정 열심히, 끊임없이, 필사적으로, 정보를 모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님은 다르시다!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불안해서 두리번거릴 이유가 없다.
아, 뭐지.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은 이 기분은. 

 

- 적어도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강추 정보'에 기대지 않고, 오늘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고, 어디서 뭘 살지, 내 눈으로 보고 정했잖아. 이게 생활이지 뭐야. 그냥 익숙하지 않을 뿐이야... 그렇게 열심히 스스로를 다독인다.
 

- 이것저것 써봤습니다만, 사실 제일 중요한 건 '지나치게 챙겨가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조리기구니 조미료니, 이것저것 다 챙겨 가야지 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부엌칼이 전혀 들지를 않아 감자 칼이나 치즈깎이를 동원해서 양파와 당근을 작게 썰곤 했습니다만, 그건 그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어요. 히익-,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있는 걸로 어떻게든 해본다'는 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요. 

- 그렇다면, 최소한 무엇을 갖고 갈 것인가 하는 고민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죠. 사람에 따라 '이것만큼은' 하는 게 제각기 다릅니다. 자기 식생활의 핵심을 재점검하다 보면 자신의 본질이 자연히 드러나지 않을까... 마지막 매실장아찌 씨를 미련스럽게 빨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리옹의 밤이었습니다. 

 

- 너무 빨리 잠자리에 든 탓인지 눈을 떠보니 새벽 3시였다. 당연히 캄캄하다. 아침이라기에는 너무 이르다.

그렇지만 왠지 머리가 맑아져 침대에서 나와 밖을 바라보니, 차가운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눈앞의 광장 버스정류장 벤치에, 젊은 남자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다. 무척 추워 보인다. 묵을 곳이 없는 걸까? 이틀 전의 내가 떠올라 도저히 남 일 같지가 않다.
그렇다고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방인이 도움을 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아니다, 혹시 마음먹기에 따라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돈을 빌려준다거나? 하지만 실연이나 혹은 다른 일로 그저 혼자 있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아, 아냐, 정말로 돈이 없는 건지도 몰라... 그런 고민을 하는 동안 시간만 흘러간다.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 오늘도 생활이다. 수행이다. 목표는 이미 정해졌다. 카페. 정확히 말해서 카페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여러 번 말하지만, '도쿄에서와 똑같이 생활하자'고 마음먹고 여기까지 왔다. 대충 요약하자면, 아침에 일어나 요가를 하고, 밥을 해서 먹고, 카페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조금씩 내 진지를 구축해 가다가 이 동네에 익숙해지자는 작전이다. 
아침에 일어나 요가를 하고 밥을 해 먹는 데까지는 그럭저럭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일단은 해냈다.
이제, 카페가 남았다.

 

- 하지만 내가 목표로 하는 건 그냥 카페 가기가 아니다. '카페에서 일하기'. 이 두 가지는 하늘과 땅 차이다. 적어도 내게는. 

 

- 도쿄에서는 집 근처에 단골 카페가 몇 군데 있다. 그 카페들을 어떤 날에는 순례하듯 돌면서 원고를 쓴다. 물론 집에서도 원고를 쓸 수는 있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공과 사를 구분하고 싶은 마음이 계기가 되었다. 회사를 그만두면 일과 일 이외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게 된다. 경계가 사라지다 결국엔 24시간 365일 일을 하고 있는 상태가 될 수도 있다. 그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매일이 일요일이겠다 싶었는데 그 반대였던 것이다! 그런 비극을 피하기 위해 집에서는 노트북을 켜지 않기로 했다. 

 

- 그런데 매일매일 같은 카페에 다니는 것만으로, 단지 그것만으로, 인간관계가 굉장히 넓어졌다. 

 

- 그리고 어제부터 신경이 쓰였던 사과가게와 치즈가게에도 들렀다. 그렇답니다. 프랑스 시장엔 '사과가게'란 데가 있답니다. 과일가게가 아니라 사과만 파는 가게. 다양한 종류의 사과가 좌악 펼쳐져 있고, 가만히 보니 'FUJI'라 쓰인 것도 있었다. 일본의 부사 사과! 반가워서 부사를 포함해 종류가 다른 사과를 세 개, 치즈는 형태와 색깔이 다른 걸 적당히 세 종류, 모두 손가락으로 가리켜 무사히 구입한다. 

 

- 숙소로 돌아와 치즈가게에서 사 온 염소 치즈를 넣은 샐러드를 먹는다. 꽃다발 수준의 거대한 샐러드 채소를 두 개나 먹어야 하기에, 숙소에 있던 올리브유와 일본에서 들고 온 매실식초 간장을 뿌려 토끼처럼 우적우적 먹는다. 맛있다. 고마운 일이다. 

- 그래, 이걸로 충분해.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한다.
하지만 내 마음을 속일 수는 없었다.
간신히 억눌렀던 감정이 어느새 수면 위로 떠오른다.
난 대체 뭐 하러 이 먼 나라까지 왔을까?

 

- 하지만 거기엔 '나'가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뭘 할 수 있고, 뭘 좋아하고, 어떤 성격이고... 그런 것 따위에 그 누구도 관심이 없다. 통 크게 지갑을 열 때만 활짝 웃어준다. 난 그게 참 싫었다. 자의식과잉도 가지 가지지. 돈줄이 뭐 어때서! 그래 봐야 결국 '관광객' 아닌가... 그렇게 툭툭 털어버릴 수가 없었다.

 

-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을 거듭한 결과, 문득 떠오른 생각에 사로잡혀 무모하게도 아무런 준비 없이 이렇게나 멀리 달랑 와버렸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뭘 할 수 있고, 뭘 좋아하고, 어떤 성격인지... 무리를 해서라도 그런 것들을 가지고 가보자고 어디를 가든 나대로, 평소의 나답게 지내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 결과 멋진 여행이 될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어디의 누군지 알 수 없는 '아줌마 A'는 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 결국, 그건 정답이었다고 생각한다. 
식료품을 사고, 요리를 하고, 산책을 한다. 평소와 다름없이. 분명 그것은 모두 나의 일상이다. 그걸 함으로써 내 마음이 차분해지고, 밥도 맛있고, 무엇보다 나란 사람이 그곳에 분명히 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 내 힘으로 나를 만족시킬 수만 있다면 무엇이 두려우랴. 아무것도 없는 생활 속에서 궁극의 구원을 발견한 <호죠키>에도 그렇게 쓰여 있지 않은가. 작은 집. 작은 욕심. 단순한 삶.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마음은 평안 그 자체다. 뭔가가 부족하다거나,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다거나, 그런 번민은 필요 없으니까. 이는 퇴사하고 난 후의 내 삶이기도 했다. 상쾌했다. 해냈다, 싶었다. 이걸로 된 거 아닌가, 뭐야 쉽잖아, 이거면 어딜 가서든 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머나먼 리옹까지 온 것이었다. 

 

-  문득 깨달았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나는 자기 완결형인 평화만으로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가모노 쵸메이처럼 득도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럭저럭 살 수야 물론 있다. 나름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다. 

 

-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쳐 도달한 결론은 이렇다. 중요한 건 말이 아니라는 것, 목욕탕이라는 데가 다들 벌거벗고 들어가는 곳이기 때문에 아무리 돈이 많고 지위가 높고 내세울 게 있어도, 태도가 나쁘면 아무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해,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말로 주장한들 소용이 없다. 아무에게도 먹히지 않는다. 무조건 '느낌 좋게' '깔끔하게' 행동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그것만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섞일 수 있을지 여부를 결정한다.  

 

- 다시 말해, 상대방을 잘 관찰하고, 그가 기뻐하도록 분위기가 좋아지게,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우선은 끈기 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 원래 나는 일본에서도 마트에서 술을 사지 않는다. 옛날에는 그랬다. 술은 마트나 백화점에서 사는 거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어떤 계기로 청주에 매료되면서, '술은 술가게에서 사는 즐거움'에 눈을 뜨게 되었다. 세심하게 질문을 하면 그 분야의 프로가 나를 위해 술을 골라준다! 이런 기회를 이용하지 않을 순 없잖아? 마트에서 술을 사던 무렵의 나는, 장사꾼의 상술에 넘어가지 않고 잡지와 인터넷 정보로 싼 술을 고를 수 있는 나를 '현명하고 합리적인 소비자'라고 착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냥 바보였다! 그런 정보는 어디까지나 일반론일 뿐이다. 당연하게도, 사람들 취향은 천차만별이니까. 지금까지 얼마나 손해를 봐왔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 "아주 살짝 스파이시한 게 좋겠네요. 이게 어떨까요?”
이렇게 말하며 하나를 골라주었다. 8유로대로 가격도 저렴하다. 그래서, 그럼 이거 주세요! 한 다음, 종이로 둘둘 말아 포장한 와인을 받아 들고 돈을 지불한 후 씩씩하게 돌아왔다. 미션 클리어! 와아, 어떻게든 되는 건가 보다. 
그건 그렇고 내가 감탄한 것은, 어디로 보나 와인에 대해 문외한이 들어왔는데도 불구하고 깔보거나 굽신대는 일 없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그 사람에게 맞는 와인을 거침없이 고를 수 있는 주인장의 안목이었다. 소매점이면 당연한 거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일본의 술가게였다면 어땠을까?

 

- 가게 주인 입장에서는 사실, 처음 보는 손님이 술을 추천해 달라는 주문이 제일 막막할 것이다. 그럴 때 '어떤 질문'으로 되물을 것인가.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어떤 음식과 같이 마실 것이냐는 질문이 아주 적절하다 싶었던 것이다. 물론 와인과 음식의 궁합을 따지는 '마리아주 문화'에서는 당연한 질문이겠지만, 식생활에 대해 물어보다 보면 추천할 술이 저절로 정해진다는 게 아주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덧붙이자면 이 가게 이름은 '니콜라'이고 프랑스 어디에나 있는 체인점인데, 체인점이면서도 가게 주인이 '프로'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 이렇게 해서 추천 와인을 맛있게 마셨다. 무엇보다, 나를 위해 골라주었다는 점이 만족도의 80퍼센트를 차지한 것 같다. 다 마시면 또 사러 가야지!

 

- 어제부터 예감은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예감 정도가 아니었다.
역시 분명하게 '흐름'이 바뀐 것이다!

- 와아, 세상에 이런 일이 정말 있긴 있구나. 뭔가를 해보려 필사적으로 매달리다 보면, 처음엔 뭘 해도 안 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모든 게 딸칵 맞아떨어지기 시작한다... 는 건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있는 일인 줄 알았는데, 설마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오는구나.

 

- 게다가 오늘은 금요일이라서 시장이 크게 선다. 기쁘다. 카페를 나와 씩씩하게 노점들 사이를 누비고 있자니, 작은 테이블을 붙여서 노란 수선화를 파는 아저씨를 발견. 둘째 날에 본 미모사 아저씨뿐만 아니라 수선화 아저씨도 계셨군요! 
망설이지 않고 다가가 "한 다발 주세요" 하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첫날 미모사를 사지 않았던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 "정말로 원하는 게 있으면 주저 없이 산다"는 장보기 필승법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 그러자 꽃을 사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수선화 아저씨가 무척 기뻐하며 천사 같은 미소를 띠고 메르씨라고 인사해 주셨다. 겨우 2.5유로를 치르고, 무척 좋은 일을 한 기분이 들었다.
... 이게 바로 실속 있는 쇼핑이 아니고 뭐겠어.


- 게다가 이것으로 끝이 아니랍니다.
그 수선화를 들고 걷고 있을 때, 프랑스 사람들 반응이 완전히 달랐다. 지나치는 사람들마다 내 얼굴을 보고 활짝 웃는 것이었다. 노점 사람들도 이상하다 싶을 만큼 친절하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 여우에게 홀린 걸까? 수선화가 마치 마법의 지팡이처럼 보였다. 아니면 리옹에서는, 꽃을 사는 사람은 '착한 사람'으로 인증되는 건가? 
 

- 리옹의 여자들, '열 벌만 갖고 있는' 정도가 아니다! 다들 매일 똑같은 스타일이다! 그런데도 엄청 멋을 잘 부린다!
우선 바지는 딱 붙는 슬림한 검은색 청바지. 신발은 쇼트 부츠, 혹은 스니커즈. 그리고 커다란 후드가 달린 스포티한 재킷을 걸쳤다. 특히 의외였던 것은 모두 '슬림핏 바지'를 입고 있었던 것. 80퍼센트가 검은색, 청바지는 20퍼센트 정도 되려나? 

- 여기서부터는 내 상상인데, 아마도 '올해 유행은 슬림핏 바지!' 그런 게 아니라,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어쩌면 오래전부터 리옹의 여자들은 이 스타일을 고집해 왔던 게 아닐까? 너무 잘 어울리니까. 아마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바지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체형(예쁘고 긴 다리, 위로 쑥 올라간 엉덩이)을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궁극의 스타일이다. 그러니 고민하고 말고가 없다. 언제나 그 차림으로, 똑바로 앞을 보며, 골반을 세우고 가슴을 펴고, 시원시원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그 자세와 자신에 찬 걸음 덕분에, 스타일이 더욱더 살아나는 것이다.

 

- 비가 내리면 얼른 후드를 뒤집어쓴다. 나라가 바뀌면 상식도 바뀌는 법. 이게 또 엄청 귀엽다. 물론 목이 길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 '자연스러움'이 얄미울 정도다. 나 좀 봐요, 나 멋있죠? 그런 자기주장이 없다. 그저 필요한 옷을 입을 뿐, 자연스럽다기보다, '아무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편이 더 가깝겠다. 

 

- 그렇다. 내게 '가장 어울리는 옷'은 하나뿐이다. 그걸 매일 입으면 된다. 그렇기에 리옹의 여자들은 멋있는 것이다. 
그런데, 난 왜 치노 팬츠와 니트 바지와 미니스커트, 아래옷을 이렇게 세 종류나 들고 온 걸까? 왜 '두 번째로 어울리는 옷'과 '세 번째로 어울리는 옷'까지 일부러 챙겨 온 걸까? 

- 대답은 명확하다. 변화를 줌으로써 '멋있는 나'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난 미니멀리스트!'라며 자기만족을 느끼면서도 결국 마음 한구석엔 '옷이 많아야 멋쟁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 패션이란 자신을 알아가는 행위다. 나의 장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최대한 표현할 수 있는 스타일을 발견하는 것. 그럴 수만 있다면, 자신감과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지에서야말로, 그런 '궁극의 멋'을 부려야 하는 게 아닐까. 불안한 외국에선 자신감과 여유가 무엇보다 필요할 테니까. 게다가 한정된 기간 동안 두 번 다시 못 볼지도 모를 사람을 만나는 게 바로 여행이다. 언제든 '제일 어울리는 옷'을 입는 편이 당연히 낫지 않겠는가!

 

- 그러나 아무래도 불안했는지, 다음 날 행동을 시뮬레이션해 가며 잠들었더니 악몽을 꿨다. 고독사한 사람의 시체 처리를 돕고 있었는데, 너무나 비참해 비명을 지를 뻔하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래, 내가 여기서 죽으면 그야말로 고독사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딘가에서 부패해 가는 수많은 고독한 시체를 떠올렸다. 

 

- 아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어짐이란 어째서 이렇게 덧없고 미약하기만 할까.
이어져 있다 싶다가도, 사소한 계기로 쉽사리 끊기고 만다. 그러니 매일, 사람들과의 인연이 끊기지 않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 그렇구나. 그걸 할 수 있다면, 비록 고독사하더라도 불행하지는 않겠다.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좀 가라앉으면서, 다시 잠들 수 있었다.

 

- 이틀째 날에는 겁을 먹은 채 조심조심 처음으로 시장을 향했고, 우연히 빵을 샀다. 그뿐이었다.

 

- "이건 잘라서는 팔지 않아, 그럼 이걸 사는 건 어때" 하고 작은 사이즈를 권해주었다. 하지만 그래도 컸다. 으음, 하고 망설이자, "이 빵은 삼사 일 보관해도 문제없어"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 말에 어떻게든 되겠다 싶어, "그럼 그거 주세요" 했다. 아저씨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잘 산 거야! 이 빵, 진짜 맛있거든!" 하며 얇은 종이봉투를 탁 펴서 능숙하게 말더니 "받아" 하고 건네주었다. 

- 그 빵이, 엄청나게 맛있었다!

- 프랑스에 가면 무조건 빵에 버터를 발라 먹으라던 언니의 말을 잊지 않고 시장의 치즈가게에서 손짓발짓 해가며 버터를 사 와, 오븐에 구운 빵에 발라 먹었더니... 우와 정말로 맛있었다! 와일드하면서도 깊은 맛이 나는, 그러나 너무 딱딱하지도 않고 균형이 잘 잡힌 빵. 그게 농후하고 부드러운 버터 맛과 섞이면서, 정말로,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맛이 났다. 

- 그렇구나, 프랑스는 바게트뿐 아니라 이런 뭉툭한 갈색 빵도 맛있구나 하는 마음에 '리옹의 인기 빵집'으로 소개된 근처 빵집에서 비슷한 갈색 빵을 몇 종류 사봤다. 하지만 전혀 달랐다! 맛이 없지는 않지만, 아주 맛있지도 않다.

다시 한번, 그 시장 빵집의 빵이 특별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그 후 몇 번을 시장에서 찾아봐도, 그 빵집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주말에만 오는 가게인가 보다. 

 

- 겨우 내 차례가 와서,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처음에 산 빵(도저히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을 손으로 가리키며, 읽지 못하는 프랑스 빵 이름을 더듬더듬 발음하면서 "이걸로 주세요" 했더니, 아저씨, 활짝 꽃이 핀 듯 진심으로 기쁜 표정으로 "그렇지, 이건 정말 맛있어!!" 하신다. 
아아, 아저씨, 전부 다 기억하고 계셨군요!
내가 처음에 이 빵을 샀다는 것도 그다음에 다른 빵을 샀다는 것도 그리고 오늘 이 빵을 다시 사러 왔다는 것도.

아저씨는 그런 내 행동을 통해, 내가 이 빵을 정말 맛있다고 여겨 오늘 또 사러 왔음을 이해했던 것이다. 아저씨 역시 그 빵을 정말 맛있다고 여기기에, 너도 알아주는구나, 이 맛을! 하고 기뻤던 것이고. 

 

- 비록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마음은 전달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바로 '행동'을 통해서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 단골이 된다는 것은 가게에 대한 응원의 표현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진지하게 가게를 살피고, 마음에 들면 열심히 다니고, 나름 느낌 좋게 행동하면서, 물건이 마음에 들면 분명하게 말로 전달한다. 그럼으로써 내가 있을 자리와 주위 사람들, 친구들을 조금씩 넓히며 살아왔다.

 

- 언니에게 그런 불평의 메일을 보내자, "프랑스엔 모르는 사람에게도 웃으며 싹싹하게 구는 문화가 없을 뿐. 오히려 이유도 없이 실실 웃으면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구석이 있어. 문화가 다를 뿐이지, 딱히 상냥하게 굴지 않더라도 일본인을 싫어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일일이 속상해하지 마"라는 프랑스에서 고생깨나 해본 사람다운 드라이한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언니의 메일을 읽고 아아, 그렇구나 싶었습니다. "이유도 없이 실실 웃는다", 그거 바로 나잖아! 그래서 바보 취급을 당한 건가...

 

- 뭐랄까, '미소를 보이는 타이밍'이 서로 미묘하게 달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보'로 보이지 않으려 웃음을 봉인하고 무뚝뚝하게 행동해야 할까요? 오히려 그게 더 힘이 들 겁니다! 시종일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가는 본인이 더욱 우울해질 테죠. 웃음으로 대하면 확률이 높지는 않더라도 상대방에게서 미소가 되돌아올 가능성이 그나마 있지만, 뚱한 얼굴을 했다가는 미소를 되받을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 냉장고 없는 생활의 기본은 무엇보다 '그날 먹을 음식은 그날 산다'인데, 시장에서는 보통 양을 재서 파는 터라, 그야말로 '그날 먹을 만큼만 사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고기든, 햄이든, 치즈는 한 조각 단위로 구매가 가능하다. 그러니 햄이 먹고 싶을 땐 정육점 진열대에 턱 하니 자리 잡은 커다란 덩어리의 햄을 가리키며 "윈 트랑슈(한 조각)”라고 하면 된다. 그러면 점원이 고개를 끄덕이고, 거대한 햄을 슬라이서에 툭 올려, 슈욱 하고 한 장을 썰어 종이에 돌돌 말아준다. '뭐야, 한 조각만 사는 거야?' 그렇게 싫은 표정을 짓는 일은 전혀 없다. 그걸 고맙게 받아 들고 돌아와 그날 메인 반찬을 삼으면 된다. 치즈도 손으로 "요만큼" 하고 두께를 지정하면 커다란 칼로 싹둑 잘라준다.

 

- 채소도 마찬가지. 감자든 양파든 토마토든, 원하는 만큼 집어 들어 건네면, 각각 무게를 재어 가격을 계산해 준다(처음엔 그걸 모르고 대량의 샐러드 채소 때문에 고생했다). 당근 하나, 감자 하나부터 살 수가 있다. 

 

-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찾고자 하는 걸 찾아내게 되어 있다. 없을 것 같아도, 찾으면 의외로 있다. 퇴사하고 '근처에 에도가 있다!'며 즐겁게 살아왔는데, 이곳 프랑스에도 에도가 있었다. 그렇다면, 
세계 어디에든 에도가 존재하는 건 아닐까?

- 에도만 찾아낼 수 있다면, 그곳은 내 '이웃'이 될 수 있다. 내가 내 생활에서 무엇을 원하는지만 알고 있다면, 세계는 내 이웃으로 바뀐다.
 

- 왼쪽부터 검은 무, 돼지감자, 펜넬 뿌리입니다. 시장에서 발견했는데 너무나 신기해 그만 사버렸죠... 하고 가볍게 썼지만, 현지에 와서 지금까지 '신기한 물건이군, 일단 사보자', 이런 걸 잘하지 못했습니다. 식재료라는 게, 비슷해 보여도 실상은 꽤 다릅니다. 음식을 만들어 먹다 보면 그게 은근 스트레스죠. 이상한 것(먹을 수 없는 것)을 사버리면 어떻게 하지? 겁을 먹거나 주저하느라 즐거운 마음으로 장을 보지 못합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뭘 그렇게 겁을 냈는지. 지금은 이렇게 '본 적 없는 물건'을 열심히 사 와,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크하하). 그게 또 즐겁고요.
네네, 순서에 따라 설명을 드리죠. 우선은 '응? 이게 뭐야?' 싶은 걸 발견하는 데서 모든 게 시작된답니다.

 

- 예를 들어 채소가게에서는 당근이니 양파니 감자니,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익숙한 채소를 많이 팝니다. 그렇긴 한데, 색깔이 다르고, 크기가 다르고, 아무튼 미묘하게 다 다릅니다.

좀 다른데? 이게 뭐야? 무슨 맛이 날까?
그렇게 흥미를 느끼는 것. 
이게 무엇보다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그런 흥미와 관심은, 파는 사람에게도 전해지기 마련이니까요. 자기가 파는 물건에 관심을 가져주면, 물건 파는 사람은 100퍼센트 기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당당하게, 넉살 좋게 말을 할 수 있든 없든, 온몸으로 흥미와 관심을 보이세요. 그것만으로도 반은 통한 겁니다.

 

- 하지만 사람은 신기한 걸 봤을 때, 두려운 마음에 멀찌감치 떨어져 보기 마련입니다. 그 마음은 이해해요. 도대체 맛은 있는지, 어떻게 요리하면 좋은지, 다시 말해 사도 되는지 판단이 서지 않으니까요. 그러다 신기해하는 걸 들켜서 주인이 말을 거는 바람에 뭔가 사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어쩌지... 그런 생각을 하죠. 하지만 그런 태도는 장사하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는커녕 정반대 결과를 낳습니다. 그런 태도는 당신을 구경꾼으로 전락시킬 테니까요. 살 생각도 없으면서 쳐다만 보는 그런 손님을, 장사하는 사람은 제일 싫어합니다. 

- 그래서 그런 일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흥미를 느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사겠다는 각오로 ...

 

- 하지만 동시에 마음이 놓이는 부분도 있다. 
뭐라고 할까, '끝이 보인다'는 건 참 개운하고 상쾌한 일이기도 하다. 이제, 내일은 없다. 좋든 싫든 오늘로 끝. 그렇다면 오늘 해야 할 일은 그야말로 분명하다.

어젯밤부터 계속 생각해 온 일이다.
떠나기 전에 아쉬움이 남지 않게 준비할 것. 도움받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처음 들어왔을 때와 똑같은 상태로 깨끗하게 정리한 후, 후회 없이 떠날 것.
 

- 그리고 두 번째 카페. 아, 이곳은 정말 많은 것을 배운 나의 수련도장이었다. 오늘은 머리가 긴 미남 청년이 서빙을 하고, 전의 아가씨는 안에서 커피를 만들고 있다. 미남 청년이 담담하면서도 붙임성 있게 주문을 받으러 왔고, 프티 크렘을 주문하자, 담담하게 ...

 

- 처음 여기에 들어온 이유는 일본에서도 집 근처 북 카페에 다니기 때문이다. 귀국하면 그 카페 주인에게 "프랑스 북 카페는 이런 느낌이던데요~" 하고 얘기해 줄 생각이었다. 가게 젊은이는 과묵하긴 했지만 친절했고, 좋은 의미에서 손님을 방치해 줘서 샤이한 일본인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이었다. 숙소 근처 카페와는 다른, 현대풍 카페라고 할까. 좀 더 일찍 왔더라면 매일 다녔을 텐데. 여기서는 노트북을 켜도 괜찮을 것 같다. 만약 다음에 리옹에 올 일이 있으면 여기서 일을 해야지.

 

- 가게에 들어가자 할아버지 손님이 먼저 와 있어 꽤 오래 기다렸지만, 그럴 때 짜증 내지 않는 게 리옹 생활의 비결임을 알고 있으므로, 심호흡을 하며 열심히 기다렸다. 그랬더니 뒤이어 들어온 아주머니가 같이 기다리면서, 프랑스어로 말을 걸어온다. 나는 샴페인을 사러 왔어, 하지만 시간이 걸리니까 당신이 먼저 골라...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상대방이 말하려는 내용을 대충이나마 알아들은 '기분이 드는' 것이 기특하다.  

 

- 그래 좋아. 이걸로 오늘 할 일은 다 했다.
침대에 들어가, 왠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이렇게 모든 것을 깨끗이 끝내고 잠이 든다는 건 말할 수 없이 느낌이 좋다. 

 

- 우리는 언제나 당연히 내일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로 모든 게 끝이 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할까? 나는 오늘, 그런 국면을 맞이한 셈이다. 그리고 뜻밖에도 '도움받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자'는 생각을 했다. 

 

- "진심을 다해 에미코를 게스트로 추천합니다!" 

- 처음엔 의문부호가 머릿속을 떠돌았습니다. 니콜라의 숙소 소개 페이지에 적힌 제 후기는 분명 많은 사용자가 볼 것입니다. 하지만 게스트로 추천한다니 그런 말을 써놓아 봐야 대체 무슨 효과가 있을까요? 뭐 아무래도 좋지만, 나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써준 것일 테지요. 효과가 있을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 이건 공개 메시지, 모든 사람에게 공개된 내용이죠. 그 '모든 사람들' 속에는 숙소를 빌리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빌려주는 사람도 포함되어 있을 테고요. 그렇다면 다음에 내가 에어비앤비를 통해 집을 빌리고 싶어 호스트에게 연락했을 때, 그 호스트는 내가 어떤 게스트인지 알고 싶어 할 테고, 그때 이 댓글이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니콜라는 내 다음 여행의 문을 열어준 것입니다. 내게 새로운 '있을 자리'를 만들어준 것이죠.

 

- 나답게 여행을 한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었습니다. 전 다른 누구도 아닌 '나'로서, 너무나 서툴기는 했어도 낯선 이국의 사람들과 아주 잠깐, 그러나 확실하게,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음 세계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주었고요. 

 

- 이제 나의 세계는 무한합니다.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세상과 이어질 수 있습니다.

 

- 참견쟁이 에어비앤비가 정기적으로 '추천 숙박시설'을 보내준다. 대부분 들어본 적도 없는 나라, 들어본 적도 없는 곳이다. 도회지일 때도 있고 시골일 때도 있고, 바다일 때도 있고 산일 때도 있고, 성일 때도 있고 혹은 나무 위 집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게 어떤 곳, 어떤 환경이든, 시간 나면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어렵지 않게 떠오른다. 

- 왜냐하면 난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즐겁게 생활할 수 있을 테니까. 아침에 일어나 요가를 하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카페에서 일을 한다. 그 정도 일은 분명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적어도 '해보려고' 시도는 할 수 있다. 리옹에서 애썼던 그때처럼. 늘 하던 걸 하고, 하루 네 번 봉주르, 그 정도면 못 할 것도 없다. 그리고 그러면 반드시, 무슨 일이든 일어난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즐겁게 생활한다'는 건 바로 그런 게 아닐까. 그렇다. 내가 있을 자리는 전 세계로 늘어났다. 

- 월드 와이드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외국어 능력과 정보와 연줄과 돈이 필요하다고, 여태껏 생각했었다. 그래서 젊었을 땐 그런 것들을 손에 넣고 싶어 나름대로 노력도 해봤다. 하지만 중년이 되면서 평범한 별 아래 태어난 내게 그런 것들은 불가능하다고 포기하는 마음이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실망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 필요한 건 외국어 능력도 아니고 정보도 아니고 연줄도 아니고 돈도 아닌, 바로 '나'였다. 별 볼 일 없는 나 한심한 나. 지구 끝까지 간다고 그런 내가 완전히 달라질 리 없다. 평소에 하지 않던 것을, 여행을 갔다고 해서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걸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 평소에 하던 걸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다.

 

-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쉬운 일이 사실, 어렵다. 그게 여행일 것이다.
내 나라에 있을 땐 아무 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하던 일인데 국경을 넘어선 순간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게 잘 안 되는 것 투성이다. 그런데 허우적대다 보면, 나의 뿌리 같은 게 보인다. 정말로 내가 원하는 건 뭘까. 
 
- 리옹에 가서 이해할 수 있게 된 건,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프랑스에서는 그게 정말 어려웠다. 역시, 말을 못 하니까. 물론 노력은 했고, 조금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일본에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 일을 더 잘 해낼 수 있는 곳은 분명 리옹이 아니라 일본이다. 일본에서도 리옹에서처럼 진지하게 노력한다면, 가는 곳 어디에서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리옹이 나를 단련시켜 주었다. 

- 그러니까, 늘 하던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 노력해 보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여행이 끝났을 무렵엔 분명 자신이 업데이트되어 있을 테니. 그렇게만 된다면, 반드시 일상은 변한다. 인생이 변한다.

- 과장이 심한 것일까? 그러나 이것은 아마, 진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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