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스미노 요루] 밤의 괴물

일루젼 2023. 11. 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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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스미노 요루 / 양윤옥
출판 : 소미미디어
출간 : 2018.06.30


 

이 책도 제목만 보고 선택했다. 읽던 도중에 저자가 '스미노 요루'라는 걸 알았는데, 개인적으로는 크게 의식하지 않고 읽었다.

 

리뷰를 쓰는 지금 시점에서 출판사를 확인하니 '소미미디어'. 얼마 전 <창룡전 13>을 출간해 주신 고마운 출판사였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혹시 <뱀파이어 헌터 D>나 <아루스란 전기>를 재출간하실 생각은 없으신지 조심스레 여쭤본다.)  

 

<밤의 괴물>은 환상소설과 사회소설의 경계에 존재한다. 등장인물들을 묘사할 때 입시를 준비하는 3학년이라는 표현이 나오지만, 모두 중학생들이다. (일본은 에스컬레이터 형 사립재단이 아닌 경우 대개 고등학교도 입시가 있다.)

 

저자는 같은 학급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낮의 일'과 '밤의 일'을 담담하게 그려나간다. 

 

주인공인 아다치는 밤이 되면 괴물로 변한다. 어째서인지, 언제까지인지는 알 수 없다. 잠 대신 괴물로서의 시간을 얻게 된 그는 밤이면 자유롭게 도시를 쏘다닌다. 바다를 보러 가기도 하고, 크기를 키워 도시 저편까지 달려보기도 한다. 하지만 낮의 아다치는 자신의 자리를 확실히 알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실수만 하지 않으면, 편하니까. 

 

야노에게도 낮과 밤은 다른 시간이다. 낮의 야노는 학급 내에서 '쉴 수 없다'. 그녀는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이다.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지만 모두와 상호작용하는 야노. 그녀는 밤이 되어야만 '쉬는 시간'을 누릴 수 있다. 

 

<밤의 괴물>은 표면적으로 읽었을 때 청소년 기에 일어나는 준거집단 내에서의 문화를 다루고 있다. 암묵적으로 정해지는 규칙, 그것을 어겼을 때 따라오는 유형-무형의 제제, 그리고 그 규칙을 정하고 유도하는 파워게임까지. 그런 '공기를 읽는' 행위는 섬세하고 변덕스러운 사춘기적 특성일까, 사회로 나가기 전 거쳐가는 예행 연습일까? 정말 '어른이 되면 조금쯤은 자유로워'지는 걸까? 

 

이렇게 읽었을 때 주인공 아다치의 선택은 상당히 이상적이고, 또 그래서 따뜻한 위로로 다가온다. 

 

하지만 아다치의 '괴물'을 사회적으로 읽게 되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아다치가 야노 이전의 따돌림 대상이었다고 읽어본다면 어떨까. 이전부터 자주 찾곤 했던 양호실, '착실하다'라는 칭찬과 비꼼 사이의 야유, 그런 티를 내면 '진짜 괴로우니까' 책을 좋아한다는 것도 숙제를 챙긴다는 것도 숨기는 조심성. 가사이에 대해 '몇 가지 있지만 그런 있을 리 없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하는 그 '생략'에는 어떤 것들이 담겨 있었을까. 

 

'괴물'이 되는 것을 극심한 불면증으로 바꿔 읽어본다면 어떨까.

 

야노는 어째서 집이 아닌 학교로 쉬러 오는 것일까. 문은 왜 '당연하게' 열려 있었을까.

 

아다치가 마주하게 된 자신 안의 어두운 부분, 그것은 단순한 '괴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읽었을 때- 그럼에도 그런 자신을 외면하지 않기로 한 그의 결정이 훨씬 더 큰 무게가 되어 짓눌러온다. 마치 야노의 웃음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을 때처럼. 

 

때로 괴물이 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 

 

끝. 

    

 

        

 


   

 

밤이면 나는 괴물이 된다.

 

  

- 어두운 방에서 나 혼자, 잠을 자도 앉아 있어도 서 있어도 웅크리고 있어도 그것은 한밤중에 느닷없이 찾아온다. 어느 때는 손가락 끝에서부터, 어느 때는 배꼽에서부터, 그리고 어느 때는 입에서부터. 

- 오늘은 눈에서부터 검은 알갱이가 눈물 한 방울의 모습으로 떨어져 내렸다. 한 방울 한 방울, 그치지 않는 눈물 같은 그것은 서서히 기세를 올리더니 이윽고 폭포처럼 양쪽 눈에서 쏟아졌다. 우글우글 꿈틀거리는 검은 알갱이는 얼굴을 덮고 목에서 가슴, 팔, 허리, 그리고 손가락 하나하나에까지 흘러가 온몸을 뒤덮어나갔다. 

- 몸의 표면에서부터 검정 이외의 색깔을 상실하고, 그때부터는 내 몸이 어떤 식으로 변화하는지 객관적으로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다만 온갖 뼈란 뼈, 살이란 살, 피부란 피부가 모두 검은 알갱이들과 동화하면서 몸의 형태가 바뀌어가는 감각이 든다. 그 광경은 아마도 엄청 끔찍할 것이다. 아니, 객관적으로 본 적이 없으니까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는 건가.

 

- 인간의 기척은 금세 멀어져갔다. 그 남자는 내일이면 꿈을 꾼 모양이라고 착각을 해줄 것이다. 실제로는 꿈이 아니다. 나는 이곳에 있고 창문은 깨졌고 개집도 여전히 밟아 뭉개져 있다. 

 

- 해가 뜨기 전까지는 내 방으로 돌아가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파자마 차림에 맨발로 길바닥에 서 있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그리고 동쪽 하늘의 색깔이 어떤지를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 즉각 내 몸이 녹는 이미지를 떠올려서 담장 사이의 작은 구멍으로 흘러 들어가 교정(校庭)으로 잠입했다.

 

- 몸을 약간 작게 줄여 대형견인 척하면서 가능한 한 교정의 가장자리를 타고 걸어갔다. 하긴 그런 척해봤자 자칫 누군가 다가오기라도 하면 찢어진 입과 여덟 개의 눈, 그리고 여섯 개의 발, 거기에 네 개의 꼬리가 목격자의 마음을 위협하게 된다. 몸 전체의 크기를 바꾸는 것이나 순간적으로 변형하는 것은 가능해도 기본적인 이 모습은 유지하도록 규칙이 정해져 있는 모양이다. 누가 그런 규칙을 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 "아, 밤의쉬 는시간 끝났다."
그녀가 호주머니에 핸드폰을 꺼내 터치하자 벨소리가 딱 멈췄다.

 

- 밤의 쉬는 시간이라니, 그게 뭔가 이상한 행동에 이상한 말만 꺼내는 야노에게 나는 약간 짜증이 났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검은 괴물의 얼굴을 보면서도 이 여자애는 전혀 짐작이 안 되는지 내게 손바닥을 쓱 내보였다. 
"자,그럼 이이야 기는내 일또하 자."
"내, 내일?"
설마 내일 학교에서 또, 라는 뜻인가? 그건, 뭐랄까, 절대로, 안 될 일이다. 

 

- 그런데도 오랜만에 꿈을 꾼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괴물의 모습으로 변신한 채 한밤중에 학교에 갔더니 우리 반 여학생이 그곳에 있다가 나한테 말을 걸었고 그 아이와 밀회 약속을 했다,라니 그런 꿈을 왜 꾸었는지 모르겠다. 몇 주 동안 괴물이 되었다는 것까지 포함해, 모든 게 다 꿈이었다.

 

- 그래, 엄청 아쉽기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이다. 그나저나 그런 꿈을 꾸다니, 내 머리 진짜 맛이 간 모양이다. 괴물 따위로 변신하고, 그리고 하필이면 꿈속에서 만난 사람이 그 야노라니.

 

- 어젯밤에 결국 가져가지 못한 수학 교과서를 사물함에서 꺼내 내 책상으로 옮겼다. 이 시간에 쓱쓱 해치워버리면 되지만, 숙제를 깜빡했다고 그걸 열심히 만회하려고 하는 녀석은 이 교실에는 없다. 범생이라고 놀리면 진짜 괴로우니까 오늘은 얌전히, 안 해왔습니다,라고 자진 신고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그래서 나는 아침 이 시간에는 딱히 할 일이 없어서 괜히 휴대폰이나 만지작거리고 등교하는 주변 자리의 친구 놈들과 인사를 하고 시시한 잡담이나 하는 것뿐인 한때를 보내게 된다. 옆자리에서 쪽 고른 이를 내보이며 웃는 구도는 1학년 때부터 계속 같은 반이라 나름대로 친하기도 하고 뭐, 그리 나쁜 시간은 아니다. 

 

- 화장실에서 나 스스로도 잘 알 수 없을 만큼 꼼꼼하게 손을 씻고 복도로 나오자 마침 그곳에 미도리카와 후타바가 있었다. 마치 연예인이나 만화 캐릭터 같은 이름을 가진 그녀는 책을 손에 들고 등까지 길게 기른 머리칼을 찰랑거리며 부루퉁한 얼굴로 이쪽을 흘끔 쳐다보았다. 아침부터 대조적인 여학생 두 명을 접견하다니, 피잉 현기증이 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들킬 수는 없는지라 나는 누구에게나 던지는 작은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 미도리카와는 웃었는지 말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미묘하게 입끝을 올리며 작은 소리로 대꾸했다. 그리고 쓸데없는 말은 한마디도 않고 마치 나를 만난 기억 따위 이미 잃어버린 것처럼 교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화가 나 있는 것은 아니다. 항상 이 아이는 이런 것이다. 늘 히죽히죽 웃고 목소리 크고 쓸데없는 말만 하는 야노와는 그야말로 대조적인 미도리카와의 등을 보며 나도 뒤따라갔다. 그녀의 등도 야노의 구부정한 어깨와는 달리 꼿꼿이 서 있었다. 

 

- 야노와 똑같은 정도로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데도 미도리카와는 우리 반의 그 왕따 아이와는 대조적인 대접을 받고 있다. 이유는 이래저래 다양하다. 

 

- 아, 오늘은 여학생 수가 짝수구나. 체육 선생님은 여학생 수가 홀수일 때, 유연 체조의 짝 만들기에서 번번이 야노 혼자만 남아버리는 게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어른들은 자기들이 중학생이었을 때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우리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잔혹한 마음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 "가사이, 하지 마! 앗치는 너랑 다르단 말이얏!"
그 발언에 와하고 웃음이 끓어올랐다. "그래, 앗치에게 접근하지 말아 줘, 제발"이라고 여학생 쪽에서 날아온 동의의 목소리에 다시 한바탕 웃음바다. 입으로는 앗치, 앗치,라고 하면서도 다들 가사이 쪽을 보고 있었다. 나도 가사이를 향해 일단 웃어뒀다.

 

- 불룩한 배를 떠안고 우리는 점심시간의 남은 삼십 분을 축구에 쏟아부었다. 솔직히 축구를 그리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가사이와 다른 친구들의 어시스트 역할만 하면 되니까 아무 생각 없이 찰 수 있어서 좋았다. 인간에게는 저마다 역할이나 입장이라는 게 있다. 서로 간에 그런 점을 잘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걸 그 아이는 도무지 알지 못한다.

 

- 가사이는 한순간 위를 보고 나서 "오호, 그래"라고 맞장구를 쳤다.
"앗치, 너, 노토 선생 만나려고 일부러 다쳤구나! 그렇다면 내가 따라가면 안 되지!"
느물 느물 웃는 얼굴에 "아니야"를 던지자 가사이는 "어린애가 아니라는 건 그런 뜻이고?"라느니 뭐니 해가면서 골포스트 근처에 서 있는 친구들 쪽으로 뛰어갔다. 그다음은 가사이가 애들에게 잘 얘기해 줄 것이다. 나는 운동장에서 교실 쪽으로 돌아가며 내심 안도했다. 

 

- 양호실 안에 다른 아이들은 없고, 노토 선생님은 책을 읽는 중이었던 모양이다. 책상 위에 문고본이 놓여 있었다. 인간실격. 읽은 적은 없지만, 밤이면 괴물이 되는 이야기 같은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 "요즘 어때?"
"요즘... 뭐, 그냥 괜찮아요."
설마, 밤이면 괴물로 변합니다,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혹시 말한다면 당장 카운슬링이 시작될 것이다.
"아직 점심시간 십 분쯤 남았는데, 좀 쉬었다가 가지? 요즘 무리하는 거 아니니?"
"... 아뇨, 친구들이 기다려서요."
실례합니다,라고 인사하고 나는 양호실을 나왔다. 심장이 평소보다 조금 빨리 뛰었다. 

 

- "눈이여 덟개고, 다리는 여섯개, 꼬리는 여러개."
일일이 손끝으로 가리키며 내 몸의 특징을 열거하는 통에 나는 인체모형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어떤 기분인지 인체모형과 얘기해 본 적은 없지만. 
어째서 이런 모습이 된 것이냐는 질문이 날아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른다"라는 대답을 여기에 오기 전에 준비해 왔다. 거짓 없는 대답이다. 
그렇건만 야노의 질문은 엉뚱한 방향에서 날아왔다.

- "이쪽이 진짜모 습이야?"
"... 뭐?"
"왜인간 으로둔 갑했어?"

 

- 그런 쪽의 가능성은 전혀 생각을 못해봤다. 늘 핀트가 어긋나는 클래스메이트에게 "변신은 밤에 해"라고 솔직히 대답한 뒤에야 변신이라는 단어가 무슨 히어로 같은 느낌이 들어 창피했다. 

 

- "나는깜 빡네가 지금그 모습으로 태어난 줄알았 어."
"그렇다면 굳이 인간이 되어서 학교에 다니지 않아."
"그런괴 상한모 습으로 살아가 는게힘 들어서 인간으 로둔갑 했나보 다했어.”
괴상한 모습이라는 말에 불끈 화가 났다. 게다가 리얼하게 상상해 봤지만 그것도 그다지 힘들 것 같지 않았다. 적어도 야노의 하루하루보다는.
"야노 너야말로 왜 학교에 와 있어?"
너에게 이곳은 결코 즐거운 장소가 아닐 텐데,라는 야유의 뜻도 담았다. 앙갚음을 하려고 해준 말이었는데 그녀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낮에는 쉴수없 어서밤 의쉬는 시간에 쉬려고."

 

- 창문으로 비쳐드는 달빛을 받아 생기는 그림자, 거기에 몸의 검은 알갱이가 조금씩 이동해서 또 하나의 그림자 괴물을 만든다. 그것은 마치 게임의 조연캐릭터처럼 내 의지대로 조종할 수 있고 학교 내 정찰도 물론 척척 해낸다. 그런 능력이 있다면 꽤 멋질 것이다.

 

- "그런것 도할줄 알아?" 
야노의 말에 내 꽁무니를 돌아보고 흠칫했다.
"분신, 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분신술이라니, 그게 뭔가.

- 내 꽁무니에는 방금 전에 내가 상상한 그대로 시커먼 또 하나의 괴물이 딱 붙어 있었다. 나와의 차이는 눈 부분까지 시커멓다는 것이었다. 방금 전까지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을 터였다. 창밖을 보니 달빛은 약간 앞쪽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 신기하다는 듯이 그림자를 빤히 응시하는 야노를 무시하고 나는 마음속으로 '움직여!'라고 주문을 외쳐보았다. 나를 훌쩍 넘어서 저 앞으로 뛰어나가는 이미지, 반신반의였지만 시도해서 손해 볼 것은 없다. 

 

- 눈을 몇 번 깜빡거린 시간만큼 늦어졌지만, 그림자는 대략 내가 이미지를 떠올린 그대로 움직여주었다. 그 이미지가 흔들리지 않게 조심조심 복도 저 건너 모퉁이 쪽까지 가게 했다. 
내 명령을 정확히 알아듣는 그림자를 보고 새삼 나 자신에게 놀랐다. 설마 진짜로 이런 능력이 있었다니. 

- 나는 상당히 놀랐다. 야노가 말한 그룹은 결코 비밀을 털어놓듯이 말할 부류의 가수들이 아니다. 분명 전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고, 실제로 나 역시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있었다. 친한 애들 앞에서 그 그룹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하면 몸이 오그라들 듯한, 아직도 그런 노래를 듣고 있냐고 비웃음을 사버릴 듯한 그런 그룹. 솔직히 말하면, 지나치게 대중적이고 지나치게 달달한 그룹이다. 
그런 가수들을 야노는 마치 자기만의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너무좋 아"라고 말했다. 
놀랐다. 

 

- "체육 수업 끝나고 발로 차버린 거 미안하다."

"낮의일 을밤에 사과하 지마."

뭐야. 애써 사과했는데. 역시 밤은 혼자서 보낼 일이다.

 

- 따돌림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이유가 있어서 따돌림이 시작된다. 행동이라든가 인품이라든가 그런 사소한 것 역시 분명한 이유다. 물론 항상 따돌림을 당하는 쪽에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가해자 쪽, 혹은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이유가 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어떻든 이유는 반드시 있다. 하지만 이유에는 좋은 이유도 있고 나쁜 이유도 있어서 이유가 된 사람이 반드시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 그렇다면 우리 반에서 시작된 따돌림은 완전히 따돌림을 당한 그 아이 쪽에 이유가 있었고, 전적으로 그 아이가 잘못했었다. 야노 사쓰키는 자진해서 그런 힘든 상황에 뛰어들었다. 

 

- 내가 야노를 알게 된 것은 2학년이 되고 난 다음이었다. 둔하고 분위기 파악 못하고 목소리는 쓸데없이 크고 말투는 특이한 그녀는 원래부터 남학생이나 일부 여학생에게서 너무 짜증 나는 애라고 뒷담화로 까이기도 했지만 그런 것은 따돌림으로 직결될 만한 이유는 아니어서 나름대로 무난한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즉 우리 반 아이들은 나름대로 양식을 가진 인간들이라는 얘기다. 

 

- 그 양식은 2학년 중간 무렵, 야노가 일으킨 한 가지 행동을 계기로 대의명분에 먹혀버렸다. 

- 야노는 그때 이미 그 무신경한 태도 때문에 매일매일 가벼운 무시를 당하고 있었다. 그것이 야노와 클래스메이트 사이의 기본적인 거리였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단 한 사람 예외가 있었다.

 

- 아무튼 야노는 갑자기 창문 쪽의 미도리카와의 책상으로 가더니 그녀가 읽고 있던 책을 빼앗아 창문을 열고 아래층 화단으로 휙 던져버렸다. 비 오는 날이었다. 자리 순서까지 똑똑히 기억난다. 미도리카와의 뒷자리에 앉은 이구치는 아예 한참 동안 바짝 얼어 있었다. 

- 야노가 상대를 영 잘못 택했다는 것도 치명적이었다. 미도리카와라는, 평소에 감정을 그다지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우리 반의 조용한 아이, 그런 그녀가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던 것이다. 야노를 나무란 것도 아니고 그냥 눈물만 흘렸다. 나중에, 밖으로 내던져져 비에 젖은 그 책이 미도리카와가 특히 아끼던 책이라는 게 밝혀졌다. 

- 하지만 그 책이 미도리카와에게 어떤 가치를 가진 책이었는지는 나중에야 알려진 일이다. 우리 반 아이들 모두가 야노를 악한 자로 판단하고 강력히 비난하여 마지않게 된 이유는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었다.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과도 없이, 미도리카와는 울고 있는데, 그 옆에서 빙긋이. 

 

- 나는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를 보면 항상 생각하는 게 있다.

서툰 것이다. 처신이. 야노는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예라고 해도 무방하다. 
좀 더 요령껏 처신했다면 따돌림당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 열린 문 너머에 야노가 눈을 껌뻑껌뻑하며 서 있었다가 아무 말 없이 종종걸음으로 자기 자리로 향했다. 야노의 머리 일부에 분필가루로 보이는 허연 것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본인은 그런 자기 머리 꼴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 야노는 가해자니까 그 나름의 괴로움이 있다고 해도 그건 어쩔 수 없다. 자업자득이다. 

 

- 나는 딱 한 마디 "그러지 마"라고 주의를 촉구했다. 내 목소리에 이구치는 비로소 자신도 시선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급하게 책상 위의 프린트로 시선을 떨구었다. 나는 이구치가 스스로 나서서 다치게 되는 어리석은 짓을 중단한 것에 안도했다. 

 

- 우리 반에서의 야노의 입장은 그녀 자신과 우리 반 아이들이 함께 만들어낸 것이기는 하지만, 당연히 개중에는 적극적으로 야노에 대한 악의를 표하지 않는 자들도 있다. 
그 선두에 선 자가 이구치였다. 야노와 나란히 서면 마치 초등학생 친구 사이 같은 이구치는 야노 이외의 누구에게나 다정한 웃음을 흩뿌리는 착한 아이다. 이구치는 그걸 숨기기로 마음먹은 모양이고 그건 지극히 올바른 판단이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야노가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항상 마음에 걸려하고, 너무 지나친 게 아닌가 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 하지만 그녀는 야노가 아니라 우리 반 전체의 편에 서 있었다. 자신의 입장을 어느 한쪽으로 딱 정해버리면 이구치도 조금쯤 편해질 텐데,라고 야노를 무시해야 할 때마다 잔뜩 긴장한 얼굴이 되는 그녀를 보며 항상 생각했다. 동시에 나 자신을 참 오지랖도 넓다,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 원래 학교 생활에서는 사건 따위가 그리 자주 일어나는 게 아니다. 장기 파손이라느니 상해라느니, 그런 건 지나치게 극단적인 경우이고, 우리 반에서 일어나는 괴롭힘이라고 해봤자 야노의 소지품을 더럽히거나 물에 빠뜨리는 정도다. 그녀는 자주 다치기는 했지만 그건 우리가 예기치 못한 그녀의 굼뜬 동작에 의한 것이어서 어디까지나 사고일 뿐이었다. 눈에 보이는 폭력은 휘둘러진 적이 없었다. 그 정도의 교활함은 아이들 모두가 갖고 있었다. 

 

- 그래서 과학 수업 뒤에 일어난 일 역시 사건도 뭣도 아니었다. 정말로 사건도 뭣도 아니고 그저 서툴렀던 것뿐이다. 

 

- 교실로 돌아가는 길, 복도의 몇 미터 앞을 야노가 걸어가고 있었다. 
나와 그녀 사이에 몇 명쯤이 마찬가지로 가고 있었다. 이 거리감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 혹시 야노가 갑자기 웅크리고 앉더라도 내가 발로 걷어차는 일이 없도록 하려고 조금 걸음을 늦췄다. 그 계산은 꽤 성공적이어서 나는 그 거리에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래서 방심하고 말았다.

 

- 나는 똑똑히 그것을 시야 한가운데서 포착하고, 작기는 했지만 엇 하는 소리를 내버렸다. 그게 좋지 않았다. 내 목소리가 주위 친구들 모두의 시선을 그쪽으로 이끌었다. 

- 분명 깜빡 저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 우리 반 여학생들이 몇 명 무리 지어 걸어가는 가운데, 야노 바로 뒤에 있던 이구치가 깜빡 반사적으로,라는 느낌으로 야노가 떨어뜨린 지우개를 줍고 만 것이다. 
안 돼,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내 경고가 전해지지는 않았다.
이구치도 줍고 나서야 퍼뜩 깨닫고 스스로에게 흠칫 놀랐을 것이다. 뒤돌아본 야노를 마주 보면서 몇 초 동안 딱 얼어붙어 있었다.

- '무시'라는 건 버릇이나 습관 같은 것이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무시하다가 그게 익숙해지면 대상이 아예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게 자연스러워지고 마침내 몸이 저절로 무시를 실행해 주게 된다. 
하지만 이구치는 야노를 무시하는 버릇이 아직도 몸에 배지 않았던 것이다.
그 대신 이구치는 분명 평소부터 누군가 물건을 떨어뜨렸을 때는 주워주는 게 버릇처럼 몸에 배어 있었다. 

 

- 이구치에 대한 나의 그런 염려는 유감스럽게도 기우가 아니었다. 그날 방과 후였다. 항상 하던 대로 누구와도 대화하는 일 없이 "안녕~"이라는 목소리를 끌고 야노가 교실을 나간 뒤였다. 

 

- 이구치가 여학생들에게 추궁을 당하고 있었다.
교실 한쪽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라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이구치가 울먹울먹 하면서 계속 뭔가를 부정하고 있었다.
서툰 것이다. 집에 갈 준비를 하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구치도 서툰 것이다.
여학생들 사이의 대화에 끼어드는 현명하지 못한 짓은 결코 하지 않는 나는 가사이와 다른 친구들과 함께 교실을 나가기로 했다.

 

- 가사이의 발랄한 목소리에 얼굴을 든 이구치는 힘없이 웃으면서 "응, 수고했어"라고, 아무리 봐도 자기 쪽이 더 지쳤을 텐데도, 대답해 주었다.
작고 연약한 이구치의 쓴웃음은 비통하게 보였다.
그래도 역시나 가사이다.
그가 "낼 보자"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손을 흔들자 이구치는 아까보다 조금쯤 더 환하게 웃음이 짙어진 얼굴을 보여주었다.
이구치와 헤어지고, 나는 이번에는 가사이가 걱정이 되었다. "방금 그거, 괜히 시끄러워지면 안 좋은데."
그러자 가사이는 "아니, 이구치가 걔를 편들어준 것도 아니잖아"라면서 웃고 있었다.

- 나도 가사이처럼 할 수 있다면, 이라고 생각했다. 생각만 했을 뿐,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 그렇구나, 노트가 쓰레기통에 있었던 것은 누군가에게 당한 게 아니라 자기 손으로 버렸던 것인가.
낙서 테러는 언제 당했을까. 설마 이미 다 쓴 노트를 골라 낙서해 준 것이 최소한의 선의에서 나온 선택은 아닐 것이고.

 

- 그림자를 만들어냈으니 불도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라고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 될 것이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집중해서 상상을 해봤다.
화염을 뿜으려면 온몸이 푸르르 떨릴 만큼 힘을 넣어야 한다. 그렇게 괴물 내부의 검은 알갱이들이 엔진처럼 위이잉 돌면서 열을 높여간다. 이윽고 알갱이들은 발화하고 그것들이 모여 큰 불길이 되어 입으로 단숨에 뿜어져 나온다. 
갑자기 눈앞이 강한 빛으로 뒤덮였다. 

 

- 입에서 튀어나온 불길은 내가 상상한 만큼 큼직하게 뿜어져서 하마터면 야노의 교복에 닿을 뻔했다. 당황해서 다급하게 불길을 삼키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쑤욱 빨아들였다. 그러자 불길은 아슬아슬하게 야노에게 해를 입히는 일 없이 내 몸속으로 되돌아왔다. 

 

- 몸속에 불길이 아직도 머물러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도 한껏 고조되었다.

"굉장하 다,앗치. 어떻게 한거야?"
어떻게 한 걸까.
"아마 이런 느낌일 것이라고 상상을 했더니 됐어."
멈칫멈칫 다가오는 야노의 눈을 보면서 있는 그대로 설명을 시도했다.
그녀는 괴물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상력 으로뭐 든되는 구나."

 

- "상상력..."
세상에 그런 게 있을까. 마치 마법사 같은 능력이?

- 야노의 그 눈빛은 조금 전까지와는 명백히 달라져 있었다. 그 눈빛은 강한 선망으로 보였다.
괴물을 동경하다니, 야노는 역시 이상한 애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뭐든 다 가능하다는 건 분명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 하지만 만일 뭐든 가능하다고 한다면...
생각하다 보니 약간 두려워졌다.
뭐가 두려우냐고?

 

- 혹시나 뭐든 가능하다면 나 좀 도와줘,라고 부탁하는 건 아닐까 하고 두려웠다. 

 

- 그래서 그녀의 말을 가로막고, 원래 학교에 온 목적에 집중하기로 했다. 

 

- "안해,그 런짓."
야노는 오늘 처음으로 평소의 빙긋이 웃는 웃음을 내보였다
"나를위 해서복 수같은 거하면 상대하 고똑같 아지잖 아."

- 상대와 똑같아진다고?
즉 모토다와 똑같아진다는 말이다. 똑같아진다,라는 것은 말하자면 야노는 그걸 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다.
"너 자신을 위해서는 아니라도 개구리를 위해서는?"
"안해. 그개구 리가어 떻게생 각했었 는지나 는모르 는데? 난그런 어리석 은애같 은짓, 안해.”

 

-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거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지만, 특히 야노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분명한 견해를 갖고 있다는 게 놀라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평소에 좀 더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 거냐는 의문도 들었고, 동시에 노트 표지에 적혀있던 험한 비방과 욕설은 완전히 빗나간 소리라고 아주 조금 생각했다. 
물론 야노를 긍정해 줄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지만. 

 

- 나는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뭔가를 체념한 채 그 자리에 앉았다.
"인기가 있다고 아버지가 사다 줘서 우리 집에도 있어."
"우와, 극장파 가아니 고DV D파구 나?"
"... 책파야."
가만 생각해 보면 남이 안다고 해서 창피할 만한 개인정보도 아닌데 나는 잠깐 대답을 망설였다.
왜냐하면 어떤 책을 읽느냐는 화제 따위, 우리 반 누구도 내게 물어보는 장면을 상정해 본 적이 없어서 제대로 된 대답도 준비하지 못했던 것이다. 

 

- "그두꺼 운책을 읽었다 고? 와아,대 단하다. 책좋아 하는구 나."

"그렇게 많이 읽는 건 아니고."
하지만 해리 포터는 읽기도 쉽고 재미있어서 다 읽었다. 하지만 책을 읽었다,라는 내 취미 얘기를 열나게 늘어놔봤자 상대가 난감해할 뿐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나는 그 얘기는 덧붙이지 않았다. 

 

- "볼거라 면영화 로도좋 잖아? 책은글 씨만눈 으로쫓 다보면 피곤해. 그만큼 시간도 필요하 고,날마 다책을 읽는사 람도있 지만난 만화쪽 이더쉽 고재밌 어."
"... 소설도 재밌는 건 꽤 재미있어."
그녀의 의견에 나도 모르게 반론 같은 것을 밝히고 나서야 아차, 했다. 하지만 야노는 "그런가?"라고 고개를 옆으로 흔들 뿐이었다.

- 내 입으로 말해버린 것에 내심 동요했다. 이 자리에 있는 게 그녀뿐이라서 다행이라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밤이고 괴물인 것에 홀렸던 것이다. 낮에는 남의 말에 내 의견을 들이대는 일 없이 대화할 수 있는데, 깜빡 나도 모르게 내 취미를 강하게 주장해 버렸다.

 

- "계속책 만읽으 면바보 가되는 것같아."
노래라도 하듯이 야노는 그런 말을 허공에 던졌다.
어쩌면 그 말은 단 한 명의 클래스메이트를 지목한 것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 사실 생각해 보면 야노가 밤의 쉬는 시간이라는 명목으로 학교에 몰래 잠입하는 것도 날마다 책만 읽는 그 아이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다.
미도리카와 후타바. 야노가 그 뒤로 그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해결할 의지도 없는 문제에 머리를 들이밀 마음은 없어서 결국 물어보지 않았다. 

 

- 눈을 감아버리면 그렇다는 얘기지만, 선생님들이 그런 말을 하는 마음은 이해가 된다. 모토다처럼 떠들어대는 놈이나 가벼운 교칙을 위반하는 놈들은 있어도 폭력이나 경찰 신세를 지는 등의 말썽은 일으킨 적이 없는 우리 반은 다스리기도 쉬워서 이른바 얌전한 반일 것이다. 
동료의식. 야노 한 사람을 악으로 규정하면서 생겨난, 구성원 모두가 사이좋게 지내기 위한 대의명분이 우리 반에는 존재했다. 그래서 얌전한 교실이다. 

 

- 물론 야노가 따돌림의 희생자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이런 사태를 초래한 것은 야노 자신이다. 그 아이가 우리 모두를 행동에 나서게 했다. 이 따돌림의 원류(源流). 상대가 미도리카와였던 것은 야노가 처신에 서툴렀다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실은 미도리카와에게 저지른 행패가 특히 안 좋았던 것은 그녀가 모두에게 호감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 가사이는 틀림없는 우리 반의 중심인물이다. 야노에 대한 적의로 똘똘 뭉쳐있는 이 교실의 한가운데 가사이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가사이가 야노에게 뭔가를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가사이와 야노의 관계, 그것은 가사이가 이 교실에서 가장 야노에 대해 화가 나 있다는 단지 그것뿐이었다. 
단지 그것뿐인 일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이 야노로서는 큰 비극이었다. 

 

- 우리 반 아이들은 나 한 사람만 빼고는 낮에도 밤에도 인간이다. 모두가 기계처럼 똑같은 움직임이나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야노에 대한 대응도 제각각 다르지만, 대략 세 가지 부류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보란 듯이 위해를 가하고 그것을 재미있어하는 자. 모토다와 다카오, 어제 이구치를 비난했던 여학생들이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는, 명확한 적의를 품고 있지만 소극적으로, 즉 야노가 접근해 올 때만 그것을 드러내거나 뒤에서 은근히 괴롭히는 자. 옆자리의 구도 등이 이런 부류다. 어쩌면 여기에 속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지도 모른다. 
세 번째는, 야노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만 딱히 행동에 나서는 일은 없이 철저히 무시만 하기로 마음먹은 자. 이구치와 가사이, 그리고 내가 여기에 속하는 몇 안 되는 희귀한 부류다. 

- 야노와 미도리카와를 제외하고 우리 반 아이들 거의 대부분이 위 세 가지 부류 중 어느 하나에 속한다. 아마도 야노의 의자에 물을 뿌려놓은 것은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부류의 누군가일 것이다. 사실 두 번째 부류는 모토다나 다카오 같은 첫 번째 부류와는 달리, 적이 눈에 보이지 않는 만큼 야노로서는 가장 성가신 상대인지도 모른다. 

- 누가 했느냐는 것 따위,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행동 자체는 각기 달라도 우리는 똑같은 하나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는 생각이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자진해서 이름을 밝히고 나서지 않는 한, 범인을 찾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암묵적인 약속처럼 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친구를 고자질하는 건 따돌림보다 더 나쁘다고 1학년 때 어떤 선생님이 말했던 게 생각난다. 그것을 옳은 말이라고 생각하느냐 마느냐는 판단도 사람에 따라 제각기 다르다.
 
- 그녀는 대답은 없었지만 내 쪽을 쳐다보고 있어서 나는 시선을 피한 채 말을 이어갔다. 
"요즘 그런 얘기가 떠돌고 있어, 한밤중에 밖을 내다봤는데 시커멓고 거대한 괴수가 돌아다니더래. 근데 사진을 찍었는데도 아무것도 안 찍혔대."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구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흘끗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고 말았다. 그리고 그 즉시 후회했다.
그녀는 힘겹게 웃고 있었다.
 

- 이구치는 여전히 웃는 얼굴을 보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다치, 그거 봤지?"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심장이 크게 뛰었다.

 

-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아무 의미도 없는 충고라고 나 스스로도 생각했다. 신경 쓰고 싶지 않은 것을 신경 쓰지 않을 수만 있다면 다들 훨씬 더 편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안 되니까 이런 식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것이다.
"금세 잠잠해질 거야."
그래도 말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었다. 침묵이 두려웠고, 이구치가 마음속을 털어놓을까 봐 두려웠다. 양쪽 다,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응. 근데 어쩔 수 없어."

- 어쩔 수 없다. 분명 우리 반 아이들 모두가 이구치의 침울함에 대해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구치도 똑같은 마음이었다니, 그건 뜻밖이었다. 어쩔 수 없어, 어쩔 수 없어, 나는 저 야노의 지우개를 아무리 우연이라지만 직접 주워줬으니까 어쩔 수 없어. 우리 반의 동료의식에 그런 식으로 찬물을 끼얹었으니까 어쩔 수 없어. 비난을 받아도, 노트에 낙서를 해도, 어쩔 수 없어...

 

- 이구치의 고백은 야노 본인에게는 할 수 없는 사죄를 그녀 대신 나에게 하는 듯한 말투였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야노에 대한 배려를 입에 올리는 것을 제지했겠지만 지금은 나와 이구치뿐이라서 굳이 가로막지는 않았다.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준 것이 이구치의 마음을 가볍게 해 준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교실에서 어긋나간 것은 이구치 쪽이라고 생각했으니까.

- 이구치는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부터 이 교실에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긴장이 풀어졌을 것이다. 아니면 자포자기 상태였던 것일까. 이 교실에서 결코 입에 올려서는 안 될 의문을 털어놓았다.
"다들 야노에게 끔찍한 짓을 하고 있는 상황에, 나, 이상하지?"

나는 그렇다고도, 그렇지 않다고도 말하지 않고 이구치와의 대화를 뚝 끊은 채 다시 당번 일을 시작했다.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최소한 양쪽 중 어느 한쪽으로 딱 정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 "어쨌거 나고마 워."
이런 때야말로 빙긋이 웃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남의 감정을 강요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고 싶지 않아서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힘겹게 웃던 이구치의 얼굴이 생각났다.

 

- "앗치는 라퓨타 파? 나우 시카파?"
"음... 토토로파."
잠깐 망설인 것은, 남들에게서 지브리 애니메이션 중 무엇을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으레 하는 대답과 실제로 내가 좋아하는 것, 둘 중 어느 쪽을 말할지 머리를 굴렸기 때문이다. 

 

-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그 말투에 불끈했다. 나는 엉터리 헛소문이라는 객관적인 정보를 전해줬을 뿐이다. 꼭 그렇다고 단언한 것도 아니고 그걸 밀어붙인 것도 아니다. 그런데 야노가 그런 비난하는 듯한 말을 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굳이 반론에 나서지 않은 것은 괴담은 괴담대로 재미있다는 말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런 반감보다 지금은 꼭 전해야 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 "착한아 이가상 처입는 것은싫 지,그치?"
창문으로 뛰쳐나오기 전, 헤어지면서 야노가 한 말에도 나는 검고 거대한 머리를 분명하게 가로저을 수 없었다.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비가 온몸을 덮쳐도 괴물인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 만일 그때, 그렇다고 대답했다면 뭔가가 달라졌을까.
아니라고 대답했다면 뭔가가 달라졌을까. 

 

- 싹 울리는 뺨 때리는 소리, 그 직전에 이구치가 내뱉은 "헉" 하는 소리, 그 직후에 누군가 벌떡 일어서는 소리, 그리고 내 입에서 깜빡 새어나온 "어이"라는 소리, 그 모든 소리가 일시에 귓속으로 몰려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거기서부터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자신이 들고 있던 가방으로 이구치를 내리치는 야노, 대체 무슨 짓이냐고 야노를 뜯어말리는, 방금 전까지 이구치를 무시했던 여학생들.

 

- 야노도 변명할 도리가 없었는지 계속 침묵했다. 그 대신 왜 그런지 웃고 있었다. 평소와 똑같이 빙긋이.
나는 그 얼굴을 보고, 무섭다고 생각했다.

 

- 모두가 분개하고 있었다.
"낙서 좀 했다고 이구치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어?"
"응? 응, 그러게 말이야."
옆자리 구도의 말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고 실제로는 구도가 하는 말에 선뜻 공감하지 못했다는 것은 물론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구도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노트에 장난 좀 친 것에 대한 앙갚음으로 폭력을 휘두른 것은 큰 문제라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었다. 
분명 폭력은 잘못이다. 그것에는 나도 마음속으로 수긍했다. 
하지만 물건을 더럽히거나 망가뜨린 행위는 폭력보다 죄가 가벼운 것처럼 말하는 것에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 아이들의 생각은 옳았다. 야노가 진실을 말해봤자 반 전체가 큰소리로 혼이 나고, 흡사 도덕 수업 같은 설교를 듣고, 그냥 그걸로 끝이다. 그거야말로 직접적인 폭력을 휘두른 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처벌도 없다. 분명 아이들 모두가 그것을 알고 있었다. 
화를 내고 혼을 내봤자 이쪽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 
좀 더 음습해지고 좀 더 색출하기 어려워지고, 지가 잘못한 주제에,라고 좀 더 지독해질 것이다. 적이 보이지 않는 그런 방식이 더 괴롭고 성가시다. 

 

- 그리고 그다음은 누구라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1교시가 끝나자 아이들이 이구치 주위로 모여들었다. 걱정, 동정, 그리고 여학생들의 과장스러운 사과. 

- 그런 말 따위, 아무도 야노에게 하지 않았다. 단지 쉬는 시간에 말없이 책상을 걷어차고 수업 중에 휴지를 던지고 청소시간이 끝나자 실내화를 물에 처넣었을 뿐이다. 
머리가 이상한 야노는 그래도 여전히 빙긋이 웃었다. 집에 돌아갈 때 실내화 발꿈치를 밟혀 앞으로 풀썩 고꾸라진 야노를 보고 나는 또 한 번, 그녀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 밖으로 나가자 구름 틈새로 달이 보였다. 달 아래를 나는 달려갔다. 그리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런 걸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잘못된 사명감까지 갖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앗치에 게뭔가 한것도 아니잖 아."

 

- 그건 그렇다.
아닌 게 아니라 듣고 보니 그렇기는 하지만,
그러면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뒤흔들린 걸까, 새삼 생각해 보고 금세 알았다.

- "착한 아이가 상처 입는 건 싫다고 말한 사람이 대체 누구냐고."

"응,그건 싫어."
"근데 왜?"

 

- 다시 한번 묻자 야노는 입이 삐뚜름해졌다. 그 얼굴은 어렸을 때 본 어른들의 표정과 비슷했다. 마치 떼쓰는 어린아이를 보며 난처해서 어쩔 줄 모르는 듯한 표정.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진한 한숨을 내쉬더니 야노는 그 삐뚜름한 입을 열었다.
"이구치 는이제 따돌림 당하지 않게됐 잖아."

- 하기 싫은 말을 억지로 하라고 하니 툭 내던져준다,라는 듯한 느낌을 풍풍 풍기면서 야노는 다시 핸드폰 게임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말을 어금니로 잘근잘근 씹던 나는 내가 먼저 물어봤으면서도 답할 말을 미처 준비할 수 없었다. 마치 천변지이(天變地異)가 일어난 듯한 기분이었다. 일어난 적은 없지만. 

- 나는 당황하고 있었다. 야노의 말 때문에.
야노가 설명해 준 자신의 행동의 의미 때문에.
하지만 그래도 그건 좀 이상하잖아.

 

-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이구치는 착한 아이다. 하지만 그건 동료의식이라는 울타리 안의 우리에게는 그렇다는 얘기다. 방금 말한 대로 야노는 지난 몇 달 동안 이구치에게서 줄곧 따돌림을 당해왔고, 그건 야노도 알고 있을 터였다. 지우개를 주워준 순간, 이구치가 동요했던 것도. 결국, 아니, 처음부터 이구치는 그 거리와 그 타이밍이 아니었다면 야노가 떨어뜨린 물건 따위 주워줄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기껏해야 그런 정도의 착함에 야노는 스스로 희생을 떠맡았다는 것인가.

 

- "이해가 안 돼."
"앗치는 같은말 을자꾸 자꾸하 고,자기 가한말 도잊어 버려."

"뭐가?"
"이상한 것은이 상한그 대로이 상해서 좋다고 했잖아."

"그건 이구치가 했던 말이야."

- 온몸의 검은 알갱이가 술렁거렸다. 답답함이 원인인 것도 아니고 오한이 원인인 것도 아닌, 마치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나 생각을 가진 것을 목격했을 때처럼, 내 마음이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몹시 불편한 뭔가를 느꼈다.

 

- 전보다 훨씬 더 상황이 나빠졌잖아,라는 말을 과연 내가 해도 될지 망설여졌다.
말로 내뱉지 못한 나의 망설임을 야노는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빙긋이 웃었다.
"모르겠어."
그것은 내 질문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뜻일까. 아니면 자기 스스로도 그 행동이 괜찮은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뜻인가.

- 앞쪽이라면 좋다. 앞쪽이라면 역시 이 아이는 남과의 대화의 맥도 못 짚고, 분위기 파악도 못하는 이상한 녀석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만일 뒤쪽이라면, 이라고 상상하자 나는 두려워졌다.

 

- 나는 그녀를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 할 사고회로로 움직이는 이상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무시를 당해도 말을 거는 것을 멈추지 않고, 따돌림을 당해도 빙긋이 웃으며 하루하루 즐거운 듯이 살아간다. 아침에 등교해서는 느닷없이 클래스메이트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머리가 이상한 아이.
그런 애니까 그녀가 처한 상황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 하지만 혹시라도 그녀가 필사적으로 자기 나름대로 생각한 끝에 행동하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
토요일과 일요일의 주말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자신의 일에 휘말려 힘든 상황에 빠져버린 클래스메이트를 구해주기로 한 것이라면, 어떻게 되는 건가.

 

- 문득 미도리카와에게 한 그 만행도 뭔가 이유가 있어서, 야노 나름의 생각이 있어서 저지른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몹시 마음에 걸리는 의문이었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묻지 않았다. 물어봤다가 혹시라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뭔가의 이유가 있었을 경우, 우리 반에서 정당성이라는 도피처 따위는 사라지고 만다.
나는 휘휘 고개를 저어 생각을 꺼버렸다. 그럴 리가 없다.

 

- 만일 그녀가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그런 지독한 하루하루를 빙긋이 웃으며 살아갈 수 있을 리 없다. 더구나 그 지독한 하루하루를 자신을 좋아해 주는 것도 아닌 클래스메이트를 위해 더욱더 악화시키다니. 애초에 뺨을 때리는 거친 짓이 아니더라도 다른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 것 아닌가. 
역시 이 아이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갖고 살고 있다. 틀림없다.

 

- "섀도가 사라져 버렸어."
"그그림 자를섀 도라고 하는거 야? 아,오글 거려."
"쳇, 그게 어때서? 아, 그보다 사람이 있었어."

 

- 야노에게 충고할 수만 있다면 해주고 싶었다. 어젯밤에 미리 해줬더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어떤 표정을 짓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연약하게 부정하고,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지어주면 된다. 그러면 상대 역시 확증이 있어서 한 말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단 진정이 된다. 
그런데 넌 대체 왜 그런 얼굴을 내보이는 거야.

 

- "모오,르은,다아,고."
설마 상대가 듣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다시 한번 한 마디 한 마디를 길게 늘여가며 똑같은 말을 해주더니 야노는 빙긋이 웃는 얼굴 그대로 등을 돌리고 자기 자리로 향했다.
혹시 그녀는 웃는 얼굴만이 이 세계에 통용되는, 상대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기 위한 필살기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건가. 웃고만 있으면, 웃는 얼굴이기만 하면, 분명 친해질 수 있다는 빗나가도 한참 빗나간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 그렇다면 알려주고 싶다. 아니야. 웃는 얼굴 따위, 원치 않는 상대에게 던져봤자 비위를 상하게 할 뿐이야. 
그런 얼굴 표정을 지으니까 일이 점점 더 꼬이는 것이다.

 

- "이게 어디서 느물 느물하고 있어!"

 

- 그리고 망설임 없이 칠판닦이를 야노를 향해 내던졌다. 다행히 푹신한 쪽이 야노의 뒤통수를 때리고 바닥에 떨어졌다. 근처에 있던 아이들은 마치 벌레의 사체라도 날아온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피했다. 야노의 몸에 닿았던 것이기 때문이다. 
야노는 "아얏!"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를 만졌지만 역시 빙긋이 웃는 얼굴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 그 얼굴을 보고 나는 다시 무서워졌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 웃고 있을 수 있을까.
어쩌면 저 웃음은 야노 나름의 고집 같은 것일까.

 

- 교실 안에서, 나카가와의 실내화를 1층 화단에 던진 범인은 야노,라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져가고 있었다. 물론 실제로 그랬는지 어떤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전체의 의견에 따름,이라는 것으로 해뒀다. 

 

- 체육시간에 체육관의 코트를 반으로 가른 네트 너머로 나카가와와 몇몇 여학생들이 야노에게 공을 세게 던졌던 것이며, 이구치가 그런 상황에 당황해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 등은 괜히 고민해 봤자 별 뾰족한 방법도 없는 일이었다. 
좀 더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생각해 보자.

 

- 가사이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응, 괴수를 잡겠다고 씩씩거리기는 하는데, 진짜 어이가 없어. 그러잖아도 야구부 1학년이 학교 밖에서 싸움질을 해서 문제가 된 상황인데 말이야, 아하하핫."
싸움질로 문제가 되었다고? 그건 처음 듣는 얘기였다.

 

- 가사이는 소리 죽여 웃으면서 내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그랬구나, 모토다가 아침 이른 시간에 교실에 와 있었던 것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그건 뜻밖의 재난이었네. 야노에게. 

 

- "왜, 앗치 너, 그 일에 관심 있어? 너까지 괴수를 잡으려고?"
"학교에 몰래 잠입하는 바보짓은 안 하지."
"하긴 넌 착실하니까."
"그래, 너 같지는 않으니까."
"뭐?"

- 거기서 갑자기 가사이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가끔씩 있는 일이다.


- 극히 드물지만 가사이는 내가 놀리면 갑작스레 불쾌한 얼굴을 보이는 때가 있었다. 누구라도 이따금 불쾌한 기분을 드러내기 마련이지만, 항상 가볍게 낄낄거리던 가사이의 그 돌변한 얼굴 표정은 나를 바짝 긴장시키곤 했다. 

 

- "아니, 그게 아니라..."

"... 아하하핫, 뭐냐, 앗치, 바짝 쫄았네?" 
긴장한 것이 전해져 버렸고 그것이 우스웠던 것이리라. 가사이는 조금 전보다 더 크게 웃으면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안도했다.

- 하지만 가사이의 기분을 풀어주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춘 사람이 우연히도 우리가 화장실을 나오는 참에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타이밍이 기막혔다, 나에게도 그리고 가사이에게도. 항상 교실에서 도시락을 먹던데, 오늘은 주스라도 사러 가는 길인가. 미도리카와가 식당 쪽을 향해 가고 있었다.

 

- "엇, 미도리카와! 매점?"
힘찬 목소리로 가사이가 뒤에서 말을 걸었는데도 미도리카와는 놀라는 기색 없이 천천히 돌아보며 "응"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평범한 인간이라면 여기서 "가사이는 어디 가?” 정도의 대꾸를 해줄 테지만, 미도리카와를 상대로 그런 말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는 해가 저물어버린다. 가사이도 그걸 잘 알고 있는지, 아니면 오로지 좀 더 긴 대화를 하고 싶은 것뿐인지, 평소보다 약간 높은 톤으로 '마이 턴!'을 이어갔다.

 

- 알랑거리는 목소리로 슬금슬금 접근해 대화를 주고받고 그 대화를 빌미 삼아 뒤에서 친한 여학생들과 속닥속닥 비웃곤 했다. 그녀의 표적이 된 것은 야노뿐만이 아니었다. 이구치와 다른 약한 클래스메이트들도 그녀의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 가사이에게 좋은 감정을 품고 있는 나카가와가 이 일로 깊은 상처를 입었으면 좋겠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의 얕은 생각에, 윤리성 결여에. 아니, 거기까지는 아니어도 방금 주의를 받은 것만으로도, 죽죽 상처가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닌 척 허세를 부렸지만 눈빛이 크게 흔들렸던 나카가와의 얼굴이 생각나 가슴속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모두가, 누군가가 상처 입기를 바라다니, 바보 같다고도 생각했다. 

 

- 그래서 가볍고 감정적이지만 명확한 분별력을 가진 가사이, 그의 바람만은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그녀, 미도리카와가 조금만이라도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워주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날은 더 이상 엄청난 뭔가가 일어나는 일도 없이 종료되었다. 

 

- 두 가지 사항에 놀랐다. 첫째는 노토 선생님이 서른세 살이라는 것. 가사이는 서른일 거라고 말했었지만 나는 분명 이십대라고 생각했다. 그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도 논짱, 논짱이라고 마음 편히 별명을 불러대는 것이다. 

- 또 하나는, 야노가 노토 선생님과 생일 얘기를 주고받을 만큼 친하다는 것이었다. 노토 선생님의 조언대로 야노는 지칠 때마다 양호실로 도망쳤던 것일까. 
지쳤다,라는 차원의 일이 아닌 듯한 느낌도 들긴 하지만. 

 

- 선생님에게 생일 선물이라니, 놀랍기는 했지만 그러고 보니 밸런타인데이에 젊은 남자 선생님에게 초콜릿을 선물한 여학생이 있었다는 게 생각났다. 그래서 딱히 이상할 것은 없지만, 야노가 그런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뭔가 위화감이 들었다.
"선물하고 싶으면 하면 되지."

- "선물은 내가좋 아하는 것을고 른다, 아니면 상대가 좋아하 는것을 고른다. 어느파?"
"받아도 난처하지 않은 적절한 것을 고르는 파."
"적절한 것과적 당한것 은다른 건가?"
글쎄 어떨까,라고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다르지,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잘 생각해 보고 어느 정도 좋아해 줄 만한 것을 선택하는 게 적절한 선물이지." 

- "어휴,시 시콜콜 생각하 면서사 느라힘 들겠다.”
너는 시시콜콜 생각을 안 하고 사니까 힘든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물론 지나치게 상관하는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 "좀더단 순하게 살면좋 을텐데."
"야노 너는... 아주 조금만 더 생각 좀 하면서 살아주면 안 되겠니?"
이 정도의 공손한 주의가 바로 '적절'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앗치처 럼힘들 어질텐 데?"
"... 나? 별로 힘들지 않은데?"
너와는 달리,라는 뜻에서 한 말이다.

 

- "괜찮아, 앗치. 너무힘 들어하 지마."
힘들지 않다고 말했건만, 남의 말을 도무지 귀담아들을 줄을 모른다.
필요 없는 위로는 때때로 신경질이 난다.

 

- 혹시 노토 선생님의 성대모사인지 뭔지를 하려는 건가.
"어려운 이론은 필요없 고,일단 살아남 아! 어른이되 면조금 쯤은자 유로워 질수있 어!"

 

- 꺄아아 하고 촐싹거리는 야노는 아무래도 내 침묵을 깊은 감동으로 본 모양이다. 그렇게 감동을 자꾸 재촉하면 쌔하니 썰렁해진다는 건 생각도 못하는가. 


- 실은 침묵이 아니었다. 나는 말문이 턱 막힌 것이었다.
야노가 의기양양하게 읊은 그 말이 가르쳐준 것에.
노토 선생님은 야노의 현재 상황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야노에게 그런 말을 했다면.
무슨 일이 있었고, 애들에게 어떤 취급을 당하고 어떤 학교생활을 보내는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 알고 있다면 어째서 어떻게든 해주지 않는가. 그런 잘난 척하는 말만 툭 던져주고, 왜 구출해주지는 않는 건가. 선생님이면서, 어른이면서.
온몸이 술렁거렸다.

 

- 사실은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이해했다. 
노토 선생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차마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이다.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같은 반이라는 공간에서, 동료의식이라는 공간에서, 교사나 어른들이 얼마나 국외자(局外者)인지, 그 안에 있는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외부에서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뭔가를 해줬다가는 공연히 더 악화될지도 모른다. 

 

- "짧게잘 랐을수 도있지. 아무튼 앗치의 추리는, 가사이?"
"근데 가사이는 그럴 리가 없어."
"왜애?"
"그런 짓을 할 친구가 아니야."


- 나는 가사이를 잘 알지 못하는 야노에게 그가 악의 없는 좋은 친구라는 설명을 시도했다. 물론 나카가와가 하려고 했던 짓도, 가사이가 미도리카와를 좋아한다는 것도, 이미 다들 뻔히 아는 일이지만 일단 덮어두었다. 
가사이가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았다는 것은 야노도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가진 가사이의 이미지에 그녀도 공감해 줄 것이다.
내가 한바탕 의견을 말하자 야노는 "흐응" 하고 콧숨을 내쉬었다.

 

- "그애정 말능숙 한모양 이다."
능숙하다니, 그 말의 의미가 이해되지 않았다.
"머리도 좋은가 봐."
"가사이 녀석, 성적 엄청 안 좋아. 평소에도 아무 생각 없이 살고." 
"그런식 으로생 각하는 구나,그 애를."

- 보는 눈이 없다,라는 식의 야노의 말투에 불끈 화가 났다.
가사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 이어서 야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분명그 아이는 좋아하 는사람, 평생안 생길것 같아."
저거 봐 진짜 아무것도 모르면서.
"앗치하 고는다 르게."

 

- "하하역 시지독 히서툴 다니까."
그 말을 듣고서야 은근슬쩍 떠본 말에 홀딱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내 무덤을 판 꼴이라는 것을 깨닫고 내심 켁 고꾸라졌다. 이건 야노가 파놓은 함정에 빠진 것조차도 아니다. 

 

- 오랜만에 와본 도서실은 양호실과 마찬가지로 학교 안 어느 곳과도 다른 독특한 냄새를 풍겼다. 밤의 조용함과 뒤섞여 특별한 분위기가 내 마음을 스르륵 띄워 올렸다. 

 

- 야노가 가리킨 곳에는 금세 눈에 띄게 해리 포터가 여러 권 주르륵 진열되어 있었다. 해리 포터를 읽는 것이 어긋난 짓이 아니라는 증명을 받은 것 같아 한결 마음이 놓였다. 
 
- 아무래도 오늘은 이대로 평온한 밤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밤에는 누구라도 평온을 누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나는 어두운 도서실 안에서 가만히, 마치 밤의 일부가 된 듯한 기분으로 앉아 있었다. 

 

- "읽고싶 은책이 없어."
"책 안 읽는다고 하지 않았나?"
"응,그래 도앗치 가책도 재밌는 건재미 있다고 해서찾 아봤지."

얼굴에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흠칫 놀랐다. 언뜻 입 밖에 튀어나온 그런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니. 그리고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니.
"하지만 글자만 잔뜩있 고,재밌 을만한 건없었 어."
"잠깐 훑어보고는 모르는 거 아닌가, 책은?"
"잠깐훑 어보기 만해도 재밌어 보이는 게좋아." 

 

- 괴물이 될 수 있는 횟수를 모두 다 써버린 건 아닐까.
그래서는 진짜 큰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만일 그렇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마음도 들었다.
애초에 내가 어떻게 괴물이 되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이 갑작스러운 변신 기능이 갑작스럽게 사라져 버린다고 해도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 이상한 것이 이상한 그대로 이상하다.
괴물도 이상하게 태어나 이상한 그대로 이상하게 사라지는 것인가.
하지만 그게 하필 오늘일 필요는 없는 거 아닌가 말이다.

 

- 맨 처음 괴물이 되었던 날 밤의 일을 떠올려보았다. 
그때 어떻게 변신을 했던가. 
느닷없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온 검은 알갱이들. 처음에는 놀라서 나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지 못한 채 오로지 무섭기만 했고, 그냥 꿈이라고만 생각했었다.

 

- 그러나 꿈같은 일이기는 했지만 그건 꿈이 아니었다.
곧바로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이구치가 말했던 것처럼 내가 어린애 같은 면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리고 괴물이 되면서 희생해야 하는 밤 같은 것은 나에게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키고 싶은 밤 같은 것은 나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 이상한 그대로, 알지 못하는 그대로, 괜찮은 것인가. 아니, 그런 건...

 

- 그렇다, 그런 식으로 나올 것이라고 나는 미리 짐작했다. 이 녀석은 자신보다 약하다는 것을 확인하면 그 즉시 신이 나서 공격해대는 부류의 인간이다. 어리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분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낮 시간에 야노를 노려보던 때의 눈빛과 똑같아졌다. 

 

- 왜 열려 있지? 그런 말이 머릿속을 스치는 것과 동시에 등 뒤에서 문을 잠그는 소리가 났다. 
야노가 항상 앞문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미처 알지 못했다. 혹시 그녀는 뒷문까지 열어둔 것인가. 왜? 그리고 모토다가 마치 그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교실로 도망친 것은 어째서인가. 

 

- 나는 입을 한껏 크게 벌려 청소도구함을 덥석 물어버렸다. 상상했다. 
내 몸속은 우주와도 같다. 외부에서 보이는 몸의 크기와는 다르게 그 안에는 엄청난 공간이 펼쳐져 있다. 입은 그 공간으로 가는 출입구, 나는 어떤 것이든 꿀꺽 삼켜 그곳에 넣을 수 있고 또한 자유롭게 토해낼 수 있다. 
마치 새가 물고기를 한입에 삼키듯이 나는 청소도구함을 몇 초만에 통째로 삼켜버렸다. 

 

- 상상력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것을 의심 없이 믿었던 것은 아니지만, 만일 할 수 있다면, 이라는 생각은 늘 품고 있었다. 날개가 생겨 하늘을 날 수 있다든가 잠수하듯이 땅 속을 헤집고 들어간다든가 순간이동이 가능하다든가. 그리고 그중 하나가 사차원 포켓이었다. 괴물이라서 꿀꺽 삼키는 방법밖에 없었지만, 

- 만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나 좀 도와줘,라는 말을 듣게 되지 않을까, 그게 두려워서 여태껏 나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지 않았다. 나 좀 도와줘,라는 것은 내게 어떤 뛰어난 능력이 있더라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일이었다. 

 

- 하지만 밤의 내가 해치울 수 있는 일이라면 해도 된다. 그것뿐이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바보는 자진해서 들키고 말 것이다. 그런,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인 것이다.

괴물쯤은 그런 아이를 구해줘도 괜찮다. 

- 어떡하지? 차례차례 무서운 생각들이 떠올랐다.
... 겁을 내고 있어 봤자 별 수 없다. 어떻든 언젠가는 밖으로 꺼내주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용기를 쥐어짜내 천천히 입으로 청소도구함을 뱉어내는 이미지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 항상 생각해 왔던 것을 분위기에 편승해 드디어 말해버렸다. 

"얼굴?"
"말로는 무섭다면서 그런 식으로 웃을 수 있다니, 진짜 이상하잖아."

- 짓궂은 마음까지 담아 놀려줄 생각으로 한 말이었다. 내내 나를 조마조마하게 했다. 이 정도는 분풀이 삼아 말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상처 입히네 마네 하는 것 따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허물없는 친구에게 말하듯이.

- 야노는 한순간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고 그제야 "아,아"라고 알아들었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동안 내게 깜빡 잊고 말하지 못했다는 듯이 찬찬히 알려주었다. 
"나는말 이지."
야노는 뺨에 댔던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자신의 입 양 끝을 들어 올렸다.

"이런식 으로빙 긋이빙 긋이."

 
- "무서우 면억지 로웃어 버려."
"... 응?"


- 야노는 한계까지 입 끝을 쭈우욱 올렸다.
그건 평소의 그 웃는 얼굴이었다.
날마다 보는, 이상하게 웃는 얼굴.

- "버릇이 됐나봐, 항상그 런다니 까."
야노는 자신의 뺨을 비비며 말했다. 

 

- 항상.
어떤 경우에라도?
야노의 말의 의미를 나는 달아오른 뇌로 생각해 보았다.
몸속에 있던 고양감이 단숨에 밤바람에 쓸려간 듯한 느낌이었다.

 

- 나는 제대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 머릿속이 지금까지의 기억에 잠겨드는 것을 느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녀는 그 얼굴로 웃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웃고 있을 수 있는지, 내내 궁금했었다. 머리가 이상한 애니까, 우리와는 다른 신경으로 사는 애니까, 그런 식으로 즐거운 듯이 자기 멋대로,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웃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나와는 다르니까, 그게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걸로 다 알아버린 것처럼 생각했다.
알아버린 척하는 게, 편했다.

 

- 미도리카와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하지만 고개를 갸웃거리지도 않았다. 너무 무리하게 이 얘기 저 얘기를 엮어버렸나. 그녀의 반응으로는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뭐, 됐다. 이 정도만 해두자. 
"그럼 이따 교실에서."
내가 미도리카와를 지나쳐 두세 걸음 계단을 내려갔을 때였다.
"가사이는 나쁜 애야."
누가 한 말인지 언뜻 알아듣지 못했다. 뒤를 돌아보고서야 그게 미도리카와의 목소리라는 게 생각났다.

 

- 가사이는 나쁜 애라고?
미도리카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나는 그녀의 등이 모퉁이 뒤로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날 내내 미도리카와가 내게 전하려 한 것이 무엇인지 필사적으로 생각해 봤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혹시,라고 할 만한 것은 몇 가지 있었지만 그런 있을 리 없는 일을 생각하는 건 좋지 않아서 관두기로 했다.

 

- 오늘 일 중에서 특이한 것이라고 하면 그런 정도였다.
그다음은 이구치의 가방에 아직도 토토로가 달려 있지 않았다는 것 정도일까.

 

- 뭐야.
두려운 거야?


- 어떤 딴생각을 해봐도 결국 그 질문을 맞닥뜨렸다.
야노의 말을 들어버린 나 자신이 두려웠다. 그녀가 말하는 두려움과는 다른 종류의 두려움.
그런 말을 들어버린 것 때문에 내가 가는 방향이 우리 반 아이들이 가는 방향과 어긋나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생각하는 방식이 어긋나기 시작하면, 인식이 어긋나기 시작하면, 어디서 불쑥 말실수를 해버릴지 알 수 없다.
이전에 깜빡 실수로 어긋났던 이구치처럼 내 하루하루가 피해를 입는 일 따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건, 절대로, 싫다.

 

- 어지간히 약이 올랐는지 가사이는 "왜 나야, 다들 갖고 왔는데? 저기 나카가와도 가져왔고"라고 주위 사람들까지 끌어들이려다가 애정 어린 빈축을 사고 있었다. 
가사이가 씩씩거리며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나는 전부터 마음에 걸렸던 일의 의미를 마침내 알아냈다.

- 아, 그래, 그런 거였어.
그래서 이구치의 가방에는 토토로가 달려 있지 않은 것이다.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아차 하면 내 손으로 관리할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릴 수 있으니까.

 

- 이구치를 슬쩍 살펴보았다. 다른 여학생의 말에 방글방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대충 맞춰주고는 있었지만 이구치는 이미 동료의식 밖으로 튕겨나갔구나라고 이해가 되었다.

 

- 그녀도 두려울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얼른 중단해 버렸다. 
다만 이구치의 행동의 의미를 깨닫고 보니, 밤이면 항상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야노가 낮에는 전혀 그런 몸짓을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 아이는 몸소 알고 있었다. 소중한 물건은 상대를 상처 입힐 때 그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어긋나가는 것이 허락된 미도리카와에 대해 나는 이따금 생각하곤 한다. 
부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녀 역시 자칫 잘못하면 야노와 똑같은 처지가 됐을 것이다. 그러던 게 피해를 겪었던 것과 이를테면 그녀의 용모가 단정했던 것, 결코 쭈뼛쭈뼛하는 일이 없다는 것 등을 이유로 비난받지 않는 위치에 섰을 뿐이다. 하지만 그 위치에서 언젠가는 떨려날지도 모른다. 
미도리카와도 그걸 알기 때문에 날마다 보란 듯이 도서실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일까. 가엾게도 나는 집에 있는 책은 무서워서 가져올 수가 없답니다,라는 것으로. 만일 그게 작전이라면, 얄미울 만큼 성공적이다. 

 

- 어젯밤과 별다를 것 없는 밤을 보냈다. 내 기분만 빼고 세상 모든 게 평온한 것처럼 보였다. 

- 잠에서 깨어난다,라는 것이 괴물이 된 이후로 없어졌다. 
그래서 밤과의 경계는 내 몸이 둘 중 어느 쪽의 모습을 하고 있느냐로 결정되었다. 대개 몸이 인간으로 돌아오는 것은 오전 4시부터 5시 사이, 해가 뜰 무렵이다. 물론 괴물의 몸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 가족은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침밥이나 등교 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돌아서 나는 한가한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두 시간쯤이라도 잠을 자볼까 하고 몇 번 이불 속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잠들지 못한 채 1층에서 커피 냄새가 풍겨오는 일이 거듭되면서 이미 포기했다. 

 

- 오늘도 나는 내 방에서 홀로 침대에 앉아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렸다. 방의 전깃불을 켰다가 복도로 불빛이 새어나가면 가족에게 말을 들을 수 있어서 어둠 속에 커튼을 열고 조용히 보냈다. 토요일부터 계속 구름이 짙어서 달이 보이지 않았다. 


- 전에는 핸드폰으로 작은 불빛을 만들고 그것을 이용해 만화책을 읽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그런 짓을 할 마음도 나지 않아 숙제를 끝낸 뒤에는 그저 오도카니 시간의 경과만 기다리는 장식품처럼 앉아 있었다. 
그동안에 사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쉽게 되지 않는다.  

- 앞으로 얼마 동안 야노는 밤의 학교에 몰래 숨어드는 생활을 계속할까. 
언제까지 계속되는가.

- 뭔가 사건이 터지는 경우만 말하는 게 아니다.
야노가 분위기 파악을 못해 사람들을 짜증 나게 하는 것도.
미도리카와가 타인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려 들지 않는 것도. 

모토다나 나카가와가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것에서 기쁨을 찾는 것도.
이구치가 더 이상 주위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것도.


- 언제까지 계속되는 걸까.
이를테면 이 학교를 졸업하면 그때는 끝이 날까.
몇 군데의 고등학교로 갈라져 우리 교실이 그저 기억 속의 것이 되면 클래스메이트를 대하는 태도나 성격, 신뢰, 비뚤어진 취향이 바뀌기라도 하는 걸까.
그 답을 누가 알고 있을까.

- 새삼 노토 선생님은 정말 무책임한 말을 했구나, 하고 엉뚱한 화풀이 같은 원망을 했다.

- 그리고 남의 걱정 따위를 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은 내 일만으로도 벅차다. 교실에서 실수하지 않도록, 모두에게서 어긋나가지 않도록,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다시 세심한 ...

 

- 지금부터가 본방인데.
말하자면 지금부터가 지뢰밭인데.
가사이는 아무런 감개도 없는 얼굴로 교문을 지나 지뢰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척척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 변함없이 대단하다. 

 

- 나는 못한다. 나는 가사이처럼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센스가 없다. 지뢰를 밟지 않도록 한 걸음 한 걸음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그러면서도 그 신중함을 들키지 않도록 주의하며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지 않고서는 모든 것을 들켜버리고 결국 떨려날 것이다. 
그 한 걸음 한 걸음에 갑갑함이 느껴지지만 어쩔 수 없다. 내 성격의 문제다. 그렇지만 때때로 이게 언제까지 계속되는 건가, 하고 오늘 새벽녘처럼 생각해 버릴 때가 있다. 


- 머리에 묻은 빗물을 털어내는 척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는 심약한 생각도 함께 날려버렸다.
조심조심 살아가면 되는 것뿐이다. 올바른 방법을 그때그때 선택하면 되는 것뿐이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 신발장 앞에서 운동화를 실내화로 갈아 신고 드디어 평소와 다름없는 일주일이 시작되었다.
평소와 다름없다는 것을 나는 특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단지 이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 나의 하루하루가, 무너지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뿐이다. 
사실은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 따위는 없다. 자유로운 장소가 이러니저러니, 어른이 되면 이러니저러니, 그런 것 따위. 

 

- 올바르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보다 더 간단한 일이다. 내가 하지 말아야 할 행동만 하지 않도록 잘 챙기면 된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그런 건 여기서는 생각할 일이 아니다.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평범하게 등교할 수 있고 수업받을 수 있고 쉬는 시간을 얻을 수 있는, 이곳에서의 내 위치뿐이다.
평소와 다름없는 것이 한순간에 끔찍한 나쁜 것으로 바뀌지 않게 조용조용 지켜온 내 자리를 앞으로도 지켜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뭐, 그런 정도다, 인간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괴물일 때와는 다르다. 상상력 같은 걸 품어서는 나 자신에게 전념할 수 없다.
평소와 똑같다. 평소와 똑같이 하기만 하면 된다. 
평소와 똑같이, 올바른 행동을 취한다.

 

- 등줄기에 서늘한 것이 흘렀다.
올바른 행동을.
나도 모르게 무심코,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문득 깨닫고 보니,라고 둘러댈 그런 우연 같은 것도 아니다. 나는 똑똑히 발밑의 그것을 확인했다.

-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행동을 결정했다.
나는 그 하얀 봉투를 오른발로 꾸욱 밟았다.
뽀샤샥, 하고 안에 든 것이 소리를 냈다.

- 그 소리가 마법이 풀리는 열쇠 같은 것이었던 모양이다. 나의 한 발짝을 경계로 교실 안의 시간이 다시 돌기 시작하고 모두가 내게서 시선을 거두고 각자의 행동으로 돌아갔다.
나에 대한 의심이 풀리는 소리였어,라고 나는 안도했다. 우리 반의 일원으로서 나는 내가 취해야 할 올바른 행동을 취했다.

- 알고 있다. 보통 상식이라면 비난받을 행동이다. 하지만 이 교실에서는 올바른 행동일 터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선택하고 이 교실에서의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 것뿐이다. 그렇게 나 자신에게 되뇌었다. 

 

-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책상에 가방을 내려놓자 짝꿍 구도가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뭔가 나무라려는 것인가 하고 바짝 긴장했는데 그녀는 상큼한 웃음을 건네고 있었다. 남의 물건을 발로 밟았다. 그것이 나쁜 일이라는 건 구도도 잘알 것이다. 구도뿐만이 아니다. 교실 안의 인간들에게 그런 정도의 상식은 있을 터였다. 
그런데도 구도는 웃고 있고 어느 누구도 나를 나무라지 않는 것은 이곳에서만은 내가 취한 행동이 올바른 것이기 때문이다. 상식보다도 야노에 대한 혐오감이나 분노가 이 교실에서는 하나의 척도로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그 척도야말로 이곳에서는 가장 소중하다. 
그건 잘 알고 있다.

- 그런데도, 거듭거듭 이해했을 텐데도, 내가 이 교실 안의 상식으로는 어떻게도 나 자신의 마음을 달랠 수 없는 것은, 심장의 두근거림이 점점 더 빨라지는 것은 나밖에 나와 야노밖에 알지 못할 터인 사실이 그 올바름이라는 것을 자꾸만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몸이 달아오르고 마음의 어느 부분이 마구 날뛰고 있었다. 만일 허락되기만 한다면 나는 지금 당장 야노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대체 왜! 소중한 것은 낮의 학교에는 가져오지 않기로 한 거 아니었어? 

 

- 그 희고 두툼한 봉투 안에 든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져서 그런 건 돌아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봉투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발로 밟았다.

 

- 상상력을 발동한 것이 아니다. 
단순히 봉투를 언뜻 보고 알아버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 상상력 같은 건 전혀 필요가 없었다.
마음속에 있는 죄책감의 자리를,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그 자리가 점점 커져서 금세 터져버릴 것 같았다.
내가 짓밟은 흰 봉투, 거기에 찍힌 발자국 밑에 삐뚤빼뚤한 글자들, 야노의 이름 외에 또 하나의 이름을 나는 봐버렸기 때문이다. 

'노토 선생님에게'

 

- 께, 잖아.
어쩔 수 없었어,라고 마음속으로 수없이 말했다.

- 나는 숨을 한 차례 꿀꺽 삼켰다. 어쩌면 야노에게는 그런 강함이나 현명함은 없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냥 단순히 궁금하게 생각한 것뿐인지도 모른다. 인간 모습의 나와 괴물 모습의 나, 어느 쪽이 진짜인가. 전에도 물어봤었다. 원래 괴물 모습으로 태어난 것이냐고. 그러니까 야노는 순수하게 질문을 던진 것이라고 보는 게 더 자연스럽다. 그런데도 그녀가 까불까불 연기하는 모습이 나에게는 진짜 감정을 감추기 위한 위장인 것처럼 보였다. 나카가와가 가사이의 따끔한 지적을 웃음으로 얼버무린 것처럼 뭔가를 다른 감정으로 감추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죄책감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걸까.  

 

- 나를 추궁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 눈에는 야노가 나에 대한 원망을 애써 감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인간인 내가 한 그 일에 대해서. 원망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은 지키기 위해서. 이구치나 나카가와와 마찬가지로, 지금 이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화를 내버리면 밤의 시간이 무너질 테니까. 화를 내버리면 나와 야노 사이에 형성된 관계가 사라질지도 모르니까.
그런 이유로 그녀는 감정을 억누르고 자신이 납득할 만한 대답을 내게서 이끌어내 마음의 타협점을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 상상이 정답인지 어떤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야노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면 납득해 줄지도,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한 나는 일단 도망쳤다.

 

- "미안..."
나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야노의 질문을 뛰어넘어 그녀가 정말로 원할 것 같은 말을 내뱉었다.
대충 속이고 넘어가려는 것이기는 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게 우리 둘 다의 원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야노가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던진 질문에 적절한 답을 돌려주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가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야노가 의미 있는 질문을 던져준 것은 나에게도 유리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 평소라면 그 야박한 태도에 괴물인 나는 불끈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만은 그녀의 감정은 옳은 것이다. 나에게 분노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 짓을 했으니까. 
하지만 사과하는 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낮의 나는 사과할 수 없었다.

 

- 괴물인 나라면 할 수 있다.

 

- "엇, 왜?" 
야노는 아직도 이상하다는 척하고 있었다.
어린애처럼 동글동글 큰 눈.
한껏 휘둥그렇게 뜨고 있어서 바보 같아 보였다.

- "그게..."
말을 하려다가 한 차례 입을 다물어버렸다. 용기가, 필요했다. 고의로 나쁜 짓을 해본 경험이라고는 거의 없다. 고의로 나쁜 짓을 저지르고 그 상대에게 사과해 본 경험이라고는 더더욱 없다. 나 혼자 책임져야 할 나쁜 짓을 한 적은 더더군다나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쁜 짓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빴다. 

 

- 나빴다고?
어느 쪽이?

 

- 오늘 저지른 일과 매일매일 저지른 일, 어느 쪽이?
적극적으로 괴롭힌 일과 소극적으로 괴롭힌 일, 어느 쪽이?
모토다와 나카가와와 나, 어느 쪽이?
야노와 나, 어느 쪽이?

- "노토 선생님에게 줄 선물, 발로 밟아서, 미안해."

- 머릿속에는 다른 말과 의문이 가득 차있는데도 나는 개의치 않고 준비했던 말을 그대로 그녀에게 건넸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미적거렸다가는 언제까지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말을 해낸 것을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도, 긴장도 했고 뭐 이런저런 것 때문에 깜빡 눈을 돌려버렸다.

그 즉시 시선을 피한 것이 내 사과를 거짓처럼 보이게 할지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야노의 얼굴을 봤다.
봐버렸다.

- 그 얼굴을 보고 나는 사과를 받아들인 야노의 표정을, 그 변화를, 똑똑히 여덟 개의 눈으로 봐버렸다.
그녀는 입을 실룩거렸다.
야노는 나를 향해 빙긋이 웃지 않았다.

 

- "낮의일 을사과 하지말 라니까?"
입술을 툭 내민 야노의 대답은 전에도 자주 들었던 그 말이었다.

 

- 공과 바닥이 부딪히는 소리가 내 마음속에 있던 막을 찢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깨달았다.
막 속에 있던 진실이 단숨에 머릿속에 쏟아지고 깨달음이 되어 내 온몸을 마비시켰다.

- 아, 그렇구나. 야노의 질문에 나는 말을 돌려줄 수 없었다.
머릿속의 말이 모두 다 없어져버린 게 아니다. 단지 그녀의 질문에 대한 진실한 말이 누군가에게 내보여줄 만한 것이 아니었을 뿐이다.
야노의 말을 듣고, 나는 지금까지 마음속에 품은 것의 이름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마침내 깨달았다.

 

- 그 깨달음은 믿어지지 않는 것이었지만, 어떻게도 속이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마음속에 품은 죄책감이라고 생각했던 그 자리에 바늘 하나가 박힌 듯한 아픔을 느꼈다.
야노의 말에 찔렸기 때문이다.
정곡을.

 

- 나는 야노가 나를 무서워해줬으면 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러면 더 이상 그녀에 대해 신경 쓰고 걱정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나를 무서워하고 싫어하고 지독한 놈이라고 생각해 주기를. 그래서 나를 떼어내 준다면 그게 더 마음 편해서 좋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일단 사과는 했다. 하지만 상대가 거부했으니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렇게 되는 게 더 마음 편해서 좋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내 마음속에 그런 생각은 없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

- 나는 계속 야노가 내게 도움을 청할까 봐 두려워했었다.
그래서 길게 망설일 것도 없이 이렇게 태평하게 사과하러 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분명 마음속 어딘가에서 오늘 일을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다.
마음속에서 발견한 검은 영혼의 자리, 그것의 이름은 분명 죄책감 따위가 아니었다.

- "아,그게 아니면 혹시?"
내 검은 속셈 따위 알지 못하는 것이리라. 야노는 나를 가리키며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쭈우욱 한쪽으로 기울인 채 말했다.
"앗치는 앗치가 무서운 거야?"
"...?"
"괜찮아, 괜찮아, 무섭지 않아."

 

- 나우시카 같은 소리를 하는 야노는 빙긋이, 가 아니라 깔깔깔 웃었다. 하지만 내가 아무 말도 않자 다시 한 번 고개를 반대 방향으로 쭈우욱 기울였다.

- 야노는 내가 아니라 자신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앗치는 앗치가 아니라 내가무 서워?"
그것은 조금 전부터 연달아 내게 던진 질문 중에서 내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유일한 질문이었다.


- 고개를 끄덕이자 야노는 자연스럽게 기분이 상한 듯한 얼굴을 했다. 당연한 그 반응에 나는 멈칫했다.
"왜?나는 지독한 짓하나 도안했 는데?"
맞는 말이었다. 야노는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이상하고 둔하지만, 나한테 지독한 짓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다만 뭔가를 무서워하는 것은 그런 간단한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 "... 모르니까."
"뭘몰라?"
나 자신 속의 검은 부분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교활한 나는 손바닥의 내보일 수 있는 부분만 내보여 대충 속이고 넘어가는 식으로 결백을 증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 계속 품고 있던 본심을 꺼내보였다.
"나하고 너무 달라서 야노가 생각하는 게 뭔지 모르니까."
그래서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 "그야다 른게당 연한거 아냐?"
야노의 그 말투는 나를 경멸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생각하 는게뭔 지,그런 건원래 모르는 거아냐?"
야노는 정말로 내가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전혀 모른다는 듯이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저 얼굴이다. 알지 못한다는 것을 전혀 감추려 하지 않는 저 얼굴이, 무섭고 두렵다.

- "나하고 는너무 다른앗 치는그 러면누 구하고 똑같은 데?"

누구하고 똑같으냐고? 다양한 사람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야노는 자신의 얼굴 앞에 손바닥을 펼치고 엄지를 꼽았다.

"괴롭히 는것을 좋아하 는척하 지만사 실은누 군가를 아래로 내려다 보지않 으면불 안해서 견딜수 없는여 자애하 고?"

누구 얘기일까.
다음은 검지를 꼽았다.
"머리가 좋아서 자기가 어떻게 하면 주위사 람들이 어떻게 움직여 주는지 훤히알 고제마 음대로 갖고노 는남자 애하고?"

누구 얘기일까.
그리고 중지를 꼽았다.
"말다툼 을해버 린예전 친구가 지독한 일을당 해도화 해도못 하고,누 구에게 나고개 를끄덕 이는것 밖에못 하는습 관에자 기멋대 로책임 감을느 끼고본 인대신 앙갚음 을하는 바보같 은클래 스메이 트하고?" 
야노는 대체 누구 얘기를 하는 건가. 

 

- 마지막으로 약지와 엄지를 모두 함께 꺾어 바위를 만들더니 그 주먹을 야노는 내게로 향했다.
"나도앗 치도그 애들도 제각각 달라. 다른게 당연하 지. 그러니 까생각 하는게 뭔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
"그래도 앗치는 내가무 서워?"

 

- 그 물음에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야노가 말하는 것은 내가 말하려는 것과는 전혀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그녀가 하는 말에 그럴지도 모른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내가 존재했다. 
망설이는 사이에 야노의 표정이 바뀌었다. 야노는 눈썹 끝을 축 늘어뜨리고 입가를 아주 조금 올렸다. 그것이 기쁨이나 즐거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건 금세 알았다. 빙긋이, 와는 또 다른, 하지만 거짓 감정을 지어낸 웃음,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보일 만큼 진짜 감정을 감추려고 짐짓 보여주는 얼굴. 
"슬,프다."

- 그 순간, 야노의 호주머니에서 요란한 알람 소리가 울렸다.

 

- 애초에 나는 사과를 해서 뭘 어쩌겠다는 생각이었을까.
사과하고 설마 내일 다시 내 발밑에 뭔가 날아오면 밟을 테니까,라고 말할 생각이었는가.
내일도 마찬가지로 무시할 테지만, 미안해,라고 말할 생각이었는가.

- 나한테만 편리한 타협점을 만들려고 한 것뿐이다.
즉 나를 위한 것이었다. 사과하려고 한 것은. 
착한 사람인 척하면서. 모범생인 척하면서.

- "... 미안해."
아무도 없는 암흑 속에서 내가 누구에게 사과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내가 알게 된 것은 야노를 적극적으로 괴롭히는 놈들보다 내가 훨씬 더 끔찍한 생물이었다는 것.
자신보다 약한 놈을 사냥해서 그걸로 연명하는 야수가 오히려 훨씬 더 투명하다.
싫은 놈은 괴롭힌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위치를 결정해 버리는 그들 쪽이 훨씬 더 투명하다.

- 천천히 땅을 기어가는 여섯 개의 다리를 보았다.
표면을 검은 알갱이가 우글우글 꿈틀거리면서 작은 벌레들이 몸을 맞대듯이 한 생물의 형태를 만들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역겹다.

- 하지만 어느 쪽이?

 

- 대체 어떤 쪽을 말하는 것인가.
밤 시간, 검은 알갱이를 걸치고 여섯 개의 다리가 나고 여덟 개의 눈을 부릅뜬 모습.
낮 시간, 인간의 모습을 하고 반 친구들이 가는 방향에서 어긋나가지 않으려고 괴롭힘에 가담하는 행동.
아니면 항상 마음속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야노가 믿고 있는 그런 나를 뒤덮어버릴 만큼 크게 자란 이 검은 것. 

-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가.
괴물이란, 진짜로는 무엇인가.

- 컨디션이 안 좋은 것을 느끼면서 새삼 내 몸이 존재한다는 게 실감 났다. 밤에 넓은 하늘을 뛰어다닐 때와는 정반대의 감각이다. 주위의 공기나 소리로 나 자신이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을 온몸으로 알 수 있었다. 알아서 별로 좋을 것도 없지만. 

 

- 집을 나서자 비는 이제 그쳐 있었다. 하지만 걷기로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어제와 완전히 똑같은 길을 갔다. 이미 셀 수없이 걸어서, 또는 자전거로 드나들었던 길인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느껴진 순간이 있었다. 감기 기운 때문인가.

- 항상 씩씩하고 후배들도 잘 돌봐주고 열심히 즐거운 시간을 꾸려가는 구도.
"요즘 좀 기운 없는 때가 있더라. 괜찮아?"
대화 중간에 클래스메이트의 뒤통수를 향해 망설임 없이 주스팩을 던지는 구도.
"그랬나? 완전 괜찮은데."
어느 쪽이 진짜 구도일까.

- "아니, 역시 앗치는 착실하구나 하고."

착실하다는 말에, 비꼬는 소리인가 하고 내심 긴장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 구도는 소리 높여 웃었다. 사실은 매사에 태평한 구도의 성격에 나도 덩달아 힘이 났던 적이 지금까지 여러 번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뭔가 힌트를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착실한 것, 자신과 다른 인간인 것, 그런 것을 비웃지 않는 구도에게라면 물어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 질문조차 사실은 어긋나가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 "어떤 때의 내가 진짜 나인가, 그런 생각 해봤어?”
"에엥, 어려운 질문이네. 흐음, 글쎄."
구도는 물웅덩이를 폴짝 뛰어넘었다. 나는 피해서 돌아갔다.
"앗치나 우리 반 애들하고 있을 때인가? 검도부에서는 내가 일단 3학년이라 평소와 달리 똑바로 정신을 차려야 해. 그리고 전에 선배랑 사귈 때는 이래저래 나답지 않게 신경을 쓰게 되더라고."
"그렇구나. 미안하다, 이상한 거 물어봐서."
"아니, 전혀."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구도의 기색에 나는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구도가 나름대로 진짜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에 내심 초조해졌다. 다른 애들도 그런가, 알지 못하는 건 나뿐인가. 

- 사실은, 그렇다면 구도에게는 야노를 괴롭히는 행동이 어떤 식으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지 그것도 알고 싶었지만, 그렇게까지 깊이 파고드는 질문은 던지지 못했다.

- 그 뒤로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구도와 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그저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마치 우리 반에는 무시나 따돌림이나 복수 같은 건 전혀 없는 듯한 시간이었다.
나는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답도 나오지 않았다.

- 교문 근처에 다다르자 아이들이 부쩍 많아졌고 그 속에서 크게 하품을 하는 가사이의 모습도 보였다. 그쪽에서도 알아보고 손을 흔들어서 나와 구도도 손을 높이 들었다. 그러자 구도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난 역시 틀려먹었어." 
"뭐가?"
"응? 아, 아니, 아무것도 아냐."

무의식 중이었는지 뭐였는지 구도가 입을 가린 채 그녀답지 않게 수줍어해서 뭔지 궁금했지만 나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어떻든 구도가 틀려먹은 녀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 가사이는 교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려주었다.
"오, 안녕? 앗치하고 구도, 통학로 같았던가?"
"안녕? 언니가 근처까지 차로 데려다줬는데, 중간에서 앗치를 딱 만났어."
오호, 하고 히죽히죽 웃으며 맞장구를 치는 가사이가 귀찮은 농담을 날리는 것을 미리 피하고 싶었는지 구도는 "비 그쳐서 다행이다. 그렇지?"라고 얼른 화제를 바꿨다.

 

- 이렇게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는 학교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구도의 조금 전의 말을 머릿속에서 곱씹어보았다. 정말로 틀려먹은 것은 바로 나였다.

 

- 구도는 자기 자신을 확실하게 알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나는 다르다. 낮이고 밤이고 생각하는 것에 시간을 쓰면서도 나 자신에 대해서조차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오늘도 또 이곳에 와버렸다.
분명 좀 더 빨리 결정했어야 했다.
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오늘, 학교에 도착하기 전에 뭔가를 결정했어야 했다.
전혀 결정하지도 못했는데 또다시 지금부터 평소와 똑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내가 누구인지도, 교실에서 어느 위치에 설 것인가 하는 것도,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 복도를 지나 교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수백 번을 되풀이한 동작이다.
교실에는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주는 친구가 있고 어제의 텔레비전 방송에 대해 열나게 얘기하고 있는 친구가 있고 책상에 엎드려 자는 친구도 있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괴물이 앉아 있는데.
여기에 교활한 내가 앉아 있는데.
진짜 모습 같은 거, 겉으로만 봐서는 알지 못한다.

나 자신조차 진짜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직 아무것도 제대로 결정하지 못했다.

- 야노에 대해 신경을 꺼버릴 수 있다면 마음 편할 텐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경을 꺼버린다는 것은 신경을 쓰는 것과 똑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 그게 머리가 이상해서 짓는 웃음이 아니라는 것, 알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사실은 무서워서라는 것, 알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매일 아침, 무엇이 무섭고 두려워서 그녀는 웃는 것일까. 자기가 먼저 뻔히 무시당하는 줄 아는 인사를 했으면서.
자신의 존재를 들키는 것이 무서운 건가.
괴롭히는 상대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 무서운 건가.

평범하지 않은 자기 자신의 행동이 무서운 건가. 
그것 모두 다인가. 

 

- 하지만 전부 그녀 스스로 관두면 되는 것뿐인 일이다.
그렇다면 그 모두가 똑같이, 가장 무섭고 가장 두려운 것인가.

 

- 야노는 이상한 아이다. 그것을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아직 여기에 엄연히 존재한다.
미도리카와에게 한 짓도, 이구치에게 한 짓도, 정말로 잘못된 짓이다. 그것을 올바르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그런 나 자신을 어딘가에 내다 버릴 수는 없다.
다만 사실은 또 다른 내가 계속 이곳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야노는 완전한 악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나.

 

- 나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하룻밤을 들여서도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 따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야노의 눈에 두 개의 나 자신이 비친 것을 보고, 깨달았다.

- 어느 쪽도, 나고, 나였다. 그런 건 비겁한 일인지도 모른다. 투명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긋난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이것이 어긋난 것이라고 한다면, 여태까지도 계속 어긋나갔었다.
계속 양쪽 다 나였고, 언제 어느 편을 드느냐는 것 따위 알지 못한 채 여태까지 계속 살고 있다.
그런 나 자신인 채로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한 것뿐이다. 아, 그래, 나는 항상 깨닫는 것이 야노보다 한 걸음 늦다.

 

- 그래서 구도에게 똑똑히 대답했다.
"별거 안 했어."
그 대답은, 내 의지에 따라 야노를 편들었다는 결별의 의미로 구도에게는 들렸을지도 모른다.

 

- 하지만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의 나와 똑같다.
밤에 조금 고민되는 일이 있었다. 아침에 구도를 만나 이야기했더니 조금 기운이 났다. 그런 하루하루를 살았던 지금까지의 나와 똑같다.
아이들 모두가 어긋난 놈은 아니라고 생각해 줬던 그 나와 똑같다.
물론 아이들이 양자택일을 못하는 나를 그리 쉽게 받아들여줄 리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어중간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들켜버린 이구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잊어버린 것도 아니다.

- 그래도 나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아이들도 깨달아주기를.

 

- 상대의 아픔 속에, 내가 있는지도 모른다.
미리 정해놓은 나를 나라고 착각하는 것뿐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어긋나고 있는 것뿐인지도 모른다.
정해진 위치 따위, 어디에도 없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알아버렸다.

 

- 그래서 구도가 나를 노려본 것도, 내가 앉은 쪽과는 반대 방향으로 자기 책상을 끌어간 것도, 그녀가 자기 나름대로 어긋나는 중에 생각해 낸 답이 나와는 달랐던 거라고 이해했다. 
그녀의 눈은 언젠가 이구치를 쳐다보던 나카가와의 눈을 닮아있었다.

 

- 그것을 받아들이는 게 너무 힘들어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슬펐다.

- 막상 내 일이 되고 보니, 어쩔 수 없다,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것을 이제야 알았다는 것이 다시금 충격이었다. 

 

 

 

그날 밤에는 오랜만에 푹 잘 수 있었다.

 

 


 

- 학생의 청춘 감동물, 따뜻한 분위기의 스토리를 쓰는 작가라는 이미지가 고착되는 것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최대한 앞의 두 작품과는 다른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 참고로, 두 사람의 대담은 한 음악잡지에 실린 것이다. 이번 소설의 스토리가 아직 흐릿한 이미지로 머릿속을 떠돌 때,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사사키 료스케의 공연을 보러 갔다가 <월면(面)의 풀>이라는 노래를 듣고 '<밤의 괴물>의 주제가는 이거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후로 마치 <밤의 괴물>에서 쓰고 싶은 것들이 <월면의 풀>과 링크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글을 쓰는 내내 테마송처럼 이 노래가 흘렀다. 그런 얘기가 알려지면서 마련된 대담 자리였다. 사사키 료스케는 '소설 <밤의 괴물>에는 한밤의 장면이 많았다. 그것이 내 노래의 서늘한 공기와 비슷한 분위기'라고 말했는데, 음악을 찾아 들어보고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밤의 괴물>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질 때는 사사키 료스케에게 주제가의 작곡을 부탁하고 싶다는 얘기도 있어서 이것 또한 기대해 볼 만하다.  

 

- A. 문학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딱딱함, 근엄함은 없으면 없을수록 좋겠지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처럼 책도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친근하게 읽고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가능한 한 평소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도 읽어보고 재미있다고 생각할 만한 글을 만들자고 항상 의식하면서 쓰고 있습니다. 

- A. 첫 작품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독자를 상당히 의식한 소설입니다. 어떻게 쓰면 독자가 재미있다고 생각할까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또다시 같은 꿈을 꾸었어>의 경우는 나 자신을 위해서 쓴 작품이라서 약간 종류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밤의 괴물>은 수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기보다 '너에게만 전해지기를'이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 A. <밤의 괴물>은 소설가가 된 나 자신을 그려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 상태 그대로 소설가로 살아간다면, 언젠가 어느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괴물이 되어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품고 썼다고 할까요. '밤이면 나는 괴물이 된다'라는 첫 문장이 먼저 머릿속에 떠올랐고, 이 문장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볼까 고민하던 무렵에 한 여학생의 팬레터를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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