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아리예 카플란 / 김태항
출판 : 하모니
출간 : 2015.09.09
'아글라'가 어떤 문장의 머리글자를 딴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모른 채 쓰더라도 작동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카발라 명상>은 실천법을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카발라에 대한 시대별, 랍비별 해석과 접근 방식, 그들이 신의 이름과 명상을 통해 체험했던 것들과 주의사항들을 나열하는 책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신의 이름을 활용한 영적 수행은 시대에 따라 중심이 되는 접근법이 달라졌다. - 히브리어 알파벳들의 파자법과 게마트리아, 발성법 등 -
그리고 그 부작용 또한 점차 줄어들어 마지막 세대에 이르러서는 일상적인 명상과 기도로도 어느 정도 다뤄볼 수 있는 영역으로 변화했다. - 여전히 십계명은 살아있지만 -
이런 변화 또한 구약에서 신약으로, 또 현대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변화해 가는 교리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시도해 볼 생각은 없지만, '붉은 암소'가 없어서 수행이 불가능하다면 '꿈' - 또는 환시 - 을 통해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그것이 있던 시대로 가거나, 만들어내거나.
아마 그 시대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작업에서 안전하게 이끌어줄 가이드에 대한 열망이 '마기딤' - 또 다른 시각에서는 HGA - 과 이어지는 게 아닐까.
많은 영성 도서에서 기본적으로 쌓아야 할 자질로 평정심을 말한다.
어떤 경우에도 화를 내지 않고 - 물론 옛 성인들도 필요할 때는 불같이 화를 내셨다지만 - 온화하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것.
나는 여기서부터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한 가볍고 안전하게 작업하려 한다.
날이 흐리다.
가을이 머지않았다.
- 카발라의 숨겨진 신비를 담고 있는 이런 종류의 책을 쓰려면 엄청나게 부담스럽고 한편으로는 전율마저 느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정보를 인쇄물로 특히 영어로 전달하는 것이 현명하고 올바른 방법인지에 대하여 질문을 하기도 한다. 사실 시중에는 너무도 부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는 책들이 독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신뢰할만한 내용을 담은 책이 시급히 간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여왔다. 이런 이유와 그리고 사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다른 이유(현존하는 위대한 카발라 스승들의 책 발간의 필요성 인정과 승인)로 인하여 이 책을 발간하게 되었다.
- 카발라는 사변적 분야, 명상적 분야 그리고 실천적 분야로 나뉜다. 사변적 카발라는 신비 영역과 천사 영역 그리고 세피로트(신의 발출)를 다룬다. 사변적 카발라는 많은 철학 학파가 제기한 문제들을 성공적으로 다루고 여러 이론적인 개념들이 모순 없이 서로 어울릴 수 있는 개념적인 틀을 제공한다. 더욱 중요한 점은 우리가 이론 카발라를 통하여 명상 카발라와 실천 카발라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기본 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 대략 3천 권의 카발라 문헌이 간행되었고 이들 대부분은 주로 카발라의 이론적 분야를 다룬다. 이런 범주에 들어가는 문헌으로는 조하르(Zohar)와 바히르(Bahir)가 있고 이들 책은 거의 카발라의 이론적인 분야를 다룬다. 이런 경향은 위대한 카발리스트로 인정받고 있는 이삭 루리아(Isaac Luria, 약칭: Ari)에게서도 마찬가지이다. 나중에 아리 학파는 주요한 카발라 개념을 철학적으로 세분화하고 깊게 파고들어서 아주 심오하고 조리 있는 철학 체계를 만들어내었다.
- 실천 카발라는 초자연적인 힘을 불러올 수 있는 기법을 다루는 백마법이다. 이것에는 수상술, 관상, 점성술만이 아니라 신의 이름과 주문, 부적(탈리스만과 애뮬릿)의 사용도 포함된다. 아리가 주도한 이론 카발리스트들은 이런 기법의 사용에 대하여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이것을 위험하고 영적으로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로 낙인찍었다. 그 결과로 아주 소수의 텍스트만이 그것도 거의가 필사본 형태로 살아남았고 이들 중에서 무해하다고 인정된 아주 소수의 문헌만이 간행되었다. 이런 단편적인 문헌에 언급되는 기법은 유럽의 비(非)유대마법학파에 의하여 보전되었다. 실천 카발라와 이들 마법학파 간의 관계는 상당히 흥미로운 연구 분야이다.
- 명상 카발라는 이 두 카발라의 중간에 위치한다.
- 초기 명상 기법 중에는 실천 카발라의 경계선에 위치하는 것도 있으며 후대의 카발라 마스터들 특히 아리 학파의 마스터들은 이런 기법을 금지하였다. 탈무드 시대로부터 살아남은 소수의 텍스트가 이런 범주에 속하였는데 13세기 마스터인 랍비 아브라함 아불라피아(Rabbi Abraham Abulafia)의 가르침이 그러했다. 그의 명상 서적은 인쇄되지 않고 필사본만으로 살아남았다. 대부분의 내용은 명상 매뉴얼인 "샤레이 케두샤(Shaarey Kedushah, 신성의 문)"에 실려 있다.
- 탈무드 기간이 끝나고 이런 방법은 아주 작은 비밀 단체들에 의하여 보전되었다. 조하르와 바히르는 이들 단체 외부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 초가 되어서야 비로소 드러났다. 특히 바히르의 출간은 신비 연구에 자극을 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비밀 기법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들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이 랍비 아브라함 아불라피아(1240~1295)였다. 초기 원전(자료)으로부터 전승된 가르침을 받은 후에 그는 그것을 실제로 글로 남긴 첫 번째 인물이었다. 이것 때문에 여러 단체로부터 비난받았지만 대부분의 카발리스트들은 그의 기법이 믿을만하고 신뢰할만한 전승에서 그것을 가져왔다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하였다. 그와 동시대의 카발라학자들도 명상 기법에 대하여 언급하였고 특히 아코의 랍비 이삭(Rabbi Isaac of Acco)과 랍비 요세프 기카탈리아(Rabbi Joseph Gikatalia)가 그러했다.
- 그러나 이들 작품 대부분은 1290년대에 조하르가 발간되면서 빛을 잃었다. 이 위대한 고전 작품은 그 시대의 거의 모든 카발리스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다른 학파의 가르침은 거의 잊혀졌다. 그러므로 이전에 써진 많은 책이 발간되지 못한 것은 우연히 아니었다. 사라져 간 책들 중에 상당수는 필사본만으로 존재한다.
- 조하르는 명상기법에 대한 구절이 거의 없어서 유명한 카발리스트들은 이런 주제에 대하여 무시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수백 년 동안 숨겨져 왔던 조하르에 담긴 신비를 파헤치는데 전념하였다. 예외적으로 그들은 아불라피아, 기카탈리아 그리고 랍비 이삭의 기법은 받아들였다. 그러나 2백 년 동안 조하르의 저자가 사용한 명상기법을 규명하기 위하여 조하르를 탐구한 사람은 없었다.
- 이런 흐름에 반하는 중요한 시도가 16세기에 번성한 사페드 학교(Safed School)에서 일어났다. 이것은 이삭 루리아(1534~1572, 아리)의 가르침에서 그 정점에 도달하였다. 그는 조하르에서 발견되는 여러 문자 조합이 실제로 어떻게 명상장치로 사용되는지를 보여주었다. 아리가 직접 저술한 책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은 제자들에 의하여 24권이나 되는 두꺼운 분량으로 기록이 되어 보존되었다. 이들 책은 거의가 아리의 명상 체계와 관련되는 방법론에 대한 소개이다.
- 조하르가 발간되었을 때 모든 학파들을 압도하였듯이 아리의 작품도 마찬가지로 3세기 동안 다른 학파들을 압도했다. 그의 가르침은 카발라의 궁극적인 표현으로 간주되었고 2백 년 동안 카발라 문학은 거의가 아리 작품의 해석에 치우쳤다. 대부분의 카발리스트들은 명상의 실제보다는 이론 연구에 헌신하였고 소수의 사람들과 한두 개의 작은 단체만이 아리의 이론이 아닌 명상기법을 사용하였다.
- 카발라 명상 부흥은 바알 솀 토브(Baal Shem Tov, 1698~1760)가 창시한 하시디즘(Hasidic Movement)의 발흥과 함께 찾아왔다. 바알셈 토브의 작품을 조사해보면 그와 그의 제자들이 카발라의 초기 명상 문헌을 열심히 공부한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시디즘 고전문학에는 이들 문헌의 글이 인용되어 나오기도 한다. 18세기 중반과 19세기 초반(1810~1820년 무렵)에 많은 사람들이 카발라의 고전 명상기법을 수행하였는데 이것을 통하여 그들이 높은 영적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해진다.
- 명상은 영적 해방을 얻는 수단이다. 여러 명상기법은 육체의 속박을 느슨하게 하도록 고안되어서 수련자가 초월적이고 영적인 영역으로 올라가도록 도와준다. 이것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사람은 깨달음에 해당하는 루아흐 하코데쉬(Ruach HaKodesh, 성령)를 얻는다.
- 가장 잘 알려진 명상기법은 일정한 시간 동안 단어나 구절을 반복하여 낭송하는 만트라 기법이다. 실행자는 만트라에만 집중하여 마음에서 모든 생각을 비워서 마음을 일상적인 의식 흐름으로부터 분리한다. 이 때 만트라는 말이나 마음 즉 유성이나 무성으로 발성된다. 이런 명상기법은 카발라에서 특히 초기 카발라학파에서 드러난다. 예를 들자면 헤칼로트(Hekhalot) 문헌에 보면 수행자는 신의 이름을 112번 반복하여 말하여 영적인 상승을 시작한다.
- 만트라 명상은 외부 지향적이며 체계적인 명상법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생각보다는 단어와 구절에 집중하기 때문에 외부 지향적이라 할 수 있고 일정 시간 동안 반복하는 수련이므로 체계적인 명상법이라 할 수 있다.
- 이런 명상기법으로는 특정 대상을 응시하면서 그 대상에 모든 집중력을 쏟아붓는 관조명상(contemplation)이 있다. 이것은 특정 대상을 응시하여 생각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기법이다. 오컬트 수련에서 많이 사용하는 응시 도구에는 수정구슬이 있다.
- 카발리스트들은 최고의 수준을 "아인(문자적 의미는 Nothingness, 공)"으로 부르는데 사실상 이것은 비-지향적인 명상법에 의해 도달되는 모든 지각과 심상이 사라지는 궁극의 수준을 시사한다. 최종적 단계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 이러한 3가지 기본적인 분류법 외에도, 명상기법은 사용되는 수단에 따라 지성, 감정 그리고 육체로 분류될 수 있다.
- 지성의 길은 사변적 카발리스트들과 비-카발라 학파에서 많이 행해졌다. 수행자들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토라(Torah)의 여러 측면에 대하여 명상하고 그 계명의 내면적 의미를 탐구하였다. 또한 지성을 통하여 상위 세계들의 구조에 대하여 깊게 탐구하였다. 이 방법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높은 황홀 상태를 맛보았다. 이 방법은 하시디즘의 하바드 체계(역주: Habad System, 하시디즘으로 알려진 종교적, 사회적 운동에서 갈라져 나온 유대교 운동과 그 교리)의 근간을 형성하였다.
- 또 다른 형태의 지성적 방법으로 기도 서적 연구가 있다. 이것은 자기 개선을 위하여 서적에 나오는 개념들을 명상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하시디즘 운동에 반응하여 19세기에 일어난 무사르 운동(Mussar Movement)의 근간을 형성한다. 이러한 명상(Hitbonenut, contemplation)은 위대한 카발리스트인 랍비 모세 하임 루짜토(Moshe Chaim Luzzatto, 1707~1747)가 저술한 기도서 "메실라트 예샤림(Mesilat Yesharim, Path of the Righteous)"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최종적 깨달음인 "루아흐-하코데시(RuachHaKodesh)"에 이르게 되는 모든 단계를 대략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루아흐~하코데시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설명이 없다. 자신이 바라는 단계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각 단계에 해당하는 가르침을 명상하고 그 가르침을 통하여 삶을 정화해야 한다. 이 방법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 감정의 길도 카발라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카바나 명상(Kavanah-meditation)에서 특히 중요하다. 수행자는 기도문에 나오는 단어에 모든 감정과 느낌을 집중한다. 이를 통해서 수행자는 마침내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 길은 고대 성경 예언자들의 명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음악과 관련되는 명상에서도 발견된다.
- 지성과 감정이 혼합된 길은 사랑의 길이다. 뛰어난 철학자인 랍비 모세 마이모니데스(Moses Maimonides, 1135~1204)가 이 길에 대하여 잘 설명하고 있다. 그는 수행자가 신의 전능함과 경이로운 창조에 대하여 생각하고 신에 대하여 깊게 명상을 할 때, 신의 지혜를 깊게 자각하게 되고 신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을 가져온다고 했다. 그는 감정이 고조되면 모든 생각이 대상에 완전히 몰입되는 "헤쉑(Cheshek, 열정)"이라고 하는 사랑의 단계를 언급한다. 신에 대한 이러한 사랑은 매우 강렬해서 혼은 말 그대로 육체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은 가장 높은 깨달음 수준의 하나로 간주되며 보통 고령에 이르러서 얻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 세 번째 길은 육체의 길이다. 이 방법은 랍비 아브라함 아불라피아(1240~1296)의 명상체계의 핵심인 신체 움직임과 호흡훈련을 포함한다. 기도하면서 몸을 움직이고 절을 하는 것은 육체의 길과 관련되며 예배 명상의 질을 높인다. 육체명상 중에 가장 중요한 기법으로 춤이 있다. 이것은 하시다즘 학파에서 여러 명상기법들이 버려진 후에도 깨달음과 황홀경을 획득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하시디즘에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옛날부터 춤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중요한 방법이었다.
- 탈무드의 가르침에 보면 예루살렘의 초막 축제(Feast of Tabernacles, 황야에서 방황했던 천막생활을 기념하여 거행하는 가을 수확의 유대축제)에서 끌어당김의 축제(Festival of Drawing) 동안 "성자들과 백성들이 횃불을 들고 경배의 찬송을 하면서 대중 앞에서 춤을 추었다"고 한다. 이 축제는 특히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복된 시기였다. 예루살렘 탈무드에 "왜 이 축제를 끌어당김의 축제(Festival of Drawing)라고 하는가? 왜냐하면 사람들이 루아흐~하코데시(깨달음, 성령)로 끌리는 시기이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춤은 깨달음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서 깨달음의 궁극적인 장소로 간주되는 미래 세계는 “모두가 손으로 가리키는 축복받은 사람이 이끄는 춤"으로 묘사된다.
- 솔로몬 성전의 파괴와 함께 예언자의 시대는 끝이 나고 암흑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성경에 대한 주석서도 써지지 않은 기간이 여러 세기 이어졌다. 탈무드 시기가 올 때까지 거의 어떤 중요한 문헌도 간행이 되지 않았다. 이 시기에 몇몇 역사적 기록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거의 구약성서 외전(외경)에서 발견되고 실제로는 이 시기에 어떤 신비 문학 작품도 존재하지 않는다.
- 살아남은 예언자의 신비 가르침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주 폐쇄적인 비밀 단체에서 이것을 가르치고 보존하였다. 1세기의 유대 지도자인 랍비 요하난 벤자카이(Yochanan ben Zakkai)는 ''메르카바'의 운영(The workings of the Merkava)에 대한 가르침은 자신의 지식으로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 현명한 사람에게만 주어져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들 신비는 심지어 비밀 단체에서도 공개적으로 가르쳐지지 않았고 자격이 있는 준비된 제자에게만 개인적으로 주어졌다.
- 탈무드에서 사용되는 "메르카바의 운영(전차의 운영)"이라는 용어는 에스겔의 비전을 말하는 것이다. 이 용어가 에스겔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것은 "전차의 모형을 위한 금, 이 전차는 야훼의 언약의 궤를 날개로 덮은 케루빔이다(연대기상 28:18)."에서 드러난다. 메르카바는 성궤 위의 케루빔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되나 에스겔은 케루빔을 자신이 비전에서 본 천사와 동일시한다.
- 하루에 3번 낭송해야 하는 18개의 찬양 기도를 만들었다. 이것이 첫 번째 하시딤이 사용한 기도였다. 하루에 3번 낭송하는 이 기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만트라가 되었다. 이것을 거의 자동적으로 낭송하는 동안 마음은 낭송하는 단어에 완전히 몰입되었고 명상가는 깊은 명상 상태로 들어갔다. 18개의 찬양기도는 정상적으로 2~3분 안에 낭송되었기 때문에 집중의 강도는 확실하였다. 하시딤은 이것을 낭송하면서 한 시간을 보냈다.
- 메르카바 명상기법은 거의가 신의 이름과 관련이 된다. 기원전 1세기의 지도자인 힐렐(Hillel)은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왕관을 사용하는 사람은 죽을 것이다."라고 경고하였다. 초기 원전은 이것을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 메르카바 학파와 관련되는 초창기 인물로 힐렐의 제자인 요하벤 자카이가 있다. 그는 모든 분야에 박식하였지만 힐렐의 수제자는 아니었다. 힐렐의 수제자는 뛰어난 신비가로 알려진 랍비 요나탄 벤우지엘(Jonathan ben Uziel)인데 그의 행적은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반면에 요하난 자카이는 탈무드에서 잘 알려진 유명한 인물이다. 요하난 자카이의 방대한 율법자료는 제2성전이 파괴된 AD 70년에 그가 야브네(Yavneh)에서 설립한 학교에서 나왔다.
- 랍비 요나탄 벤 우지엘은 탈무드에서 약간 언급되는데 그는 예언서를 아람어로 번역한 타르굼(Targum) 성경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점에 비추어보면 그가 예언서에 나오는 예언자들의 신비 가르침에 대한 직접적인 전승을 지니고 있었고 그 시대의 신비 전승에 대한 위대한 제자 중의 하나였음을 알 수가 있다.
- 제2 성전이 파괴된 후에 요하난 자카이는 유대사회에서 중요한 종교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의 제자 중에는 랍비 엘리제르(Great Rabbi Eliezer), 랍비 요슈아(Rabbi Joshua), 랍비 엘레아자르벤 아라크(Eleazar ben Arakh)가 있었는데 모두 그 시대의 위대한 성자로 그리고 종교 지도자로 인정받았다. 랍비 자카이는 그들에게 메르카바의 신비를 가르쳤으며 제자들에게 존경심으로 이런 가르침을 대하라고 당부하였다. 탈무드에 보면 자카이는 신비 가르침을 랍비 요슈아에게 전하고 요슈아는 랍비 아키바(Rabbi Akiba)에게 전한다. 당시 위대한 종교 지도자이며 최고 논리학자였던 아키바는 그 시대의 대표적인 신비가이기도 했다. 탈무드에 보면 동시대의 4명의 현자 중에서 아키바만이 해를 입지 않고 깊은 신비를 통과할 수 있었다.
- 아키바의 저작으로 인정되는 신비주의 문헌이 몇 권이 있다. 그의 학파는 히브리 알파벳 문자의 신비를 다루는 아키바의 문자(The Letters of Rabbi Akiba)로 아주 유명하였다. 그가 카발라의 최고 고전 작품 중 하나로 간주되는 "세페르 예치라"의 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명상분야의 전문가인 아키바는 높은 의식 상태를 현시하는데 능숙하였다고 추측된다.
- 높은 명상 상태에서 체험하는 중요한 경험은 소리가 보이고 색상이 들리는 공감각(역주: 共感覺, 하나의 감각이 다른 감각을 작용케 하는 일) 현상이다. "모든 사람들은 소리를 보았다(출애굽기 20:18)."
- 네 명이 과수원(Pardes, 역주: 여기서는 에덴동산 의미)에 들어갔다. 그들은 벤 아자이, 벤 조마, 다른 한 사람과 랍비 아키바였다. 아키바가 그들에게 "순수한 대리석에 가까이 다가갈 때에 '물, 물' 하고 말하지 말라. 성경에 '거짓말하는 자는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시편 1017)'라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라고 경고했다.
벤 아자이가 응시하다가 죽었다. 이에 대하여 이렇게 쓰여 있다. "야훼께 충실한 자의 죽음은 그분께 귀중하다(시편 116:15)."
벤 조마는 응시하다가 다쳤고 이에 대하여 이렇게 쓰여 있다 "꿀을 봐도 적당히 먹어라. 너무 많이 먹으면 토하리라(잠언 25:16)."
다른 사람(엘리샤 벤 아부야, Elisha ben Abuya)는 응시하다가 식물을 꺾었다(이교도가 되었다).
아키바는 평화롭게 들어가 평화롭게 나왔다. 천사들이 아키바를 아래로 던져버리려고 했으나 축복받은 신성한 하느님께서 "이 사람은 나의 영광을 사용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므로 그를 놓아두거라."라고 말하였다.
<탈무드>
- 그들은 과수원에 들어갔다. : 그들은 신의 이름을 통하여 천국에 올라갔다.
- 순수한 대리석 : 맑은 물처럼 투명함.
- "물, 물"이라고 말하지 말라 : 여기에서 어떻게 더 나아갈 수 있는가?
- 조마가 응시했다 : 신의 현존(셰키나)을 향하여 응시했다.
- 그가 다쳤다 : 실성하였다.
- 야훼께 충실한 자의 죽음은 그분께 귀중하다 : 아자이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죽었기 때문에 신의 눈에는 죽음이 가혹하게 보였다. 그러나 "나의 얼굴만은 보지 못한다. 나를 보고 나서 사는 사람이 없다(출애굽기 33:20)."에서 보듯이 그가 살 수는 없었다.
<랍비 슐로모 이츠하키 야르히(라시, 1040~1105)의 주석>
- 성자들은 "과수원"을 의인(義人)을 위한 장소 즉 에덴동산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한다. 이것은 가장 높은 하늘 안에 있는 장소이고 의인의 혼들이 모여 있는 장소이다. 헤칼로트에 보면 자격 있는 성자들은 기도하여 모든 불순한 것을 정화한다고 설명되어 있다. 그들은 단식하고 미크바(Mikvah, 역주: 정결의식, 혹은 그것에 사용하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정화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신의 이름을 사용하여 하늘에 있는 방들(Chambers, 천궁)을 응시한다. 그들은 천사의 경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방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방에 무엇이 있는지를 본다.
- 아키바는 그들에게 이렇게 경고하였다. "그대 마음을 깊이 응시하면서 수순한 대리석에 접근할 때에 물, 물 이렇게 말하지 말라."
여기서 실제로 물은 전혀 없고 단지 하나의 형상만이 보인다. 물이 있다고 말하면 그는 불손한 말을 한 것이 된다.
이것은 "헤칼로트 라바타이" 문헌에서 설명이 된다. 대리석 문이 있는 방의 감시인은 수많은 물결을 일으키나 실제로는 단 한 방울의 물도 없다. 아키바는 "마치 물결이 이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단 한 방울의 물도 없다. 우리가 보는 것은 그 방 안에 있는 순수한 대리석으로부터 나오는 공중의 불빛이다. 그 빛남은 물을 닮았다. 그러나 '이 물이 목적이 무엇인가?'라고 말하면 불경을 저지른 것이 된다."라고 말하였다.
- 그들은 실제로 하늘로 올라가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을 깊게 응시하여 그것을 보았다. 그들은 흐릿한 거울(dull mirror)을 통하여 응시하는 것처럼 그것을 보았다.
- 벤 아자이가 응시하였다는 의미는 그가 깨끗한 거울로 보기 위하여 신의 이름을 계속 발성하였다는 뜻이다. 그 결과로 그는 죽었다. 벤 조마가 응시하였을 때 그는 다쳤는데 이것은 실성했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엘리샤 벤 아부야)은 식물을 꺾었는데 그 장소가 과수원으로 불렸으므로 성자들은 그가 "식물을 꺾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가 불경을 범했음을 의미한다.
- 그는(엘리샤 벤 아야) 이스라엘의 이익을 새기기 위하여 한 시간 동안 앉아 있을 권한이 주어진 천사 메타트론(Metatron)을 보았다. 그는 "나는 하늘에 있는 그 장소에 앉아 있도록 허락되지 않음을 알았다. 아마도 두 개의 권위 있는 힘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하였다.
<랍비 하나넬 벤 후시엘(990~1055)의 상기 내용에 대한 주석>
- 성자들은 4명이 과수원에 들어갔다고 가르쳤다. "대헤칼로트와 소헤칼로트" 문헌에서 이것은 이렇게 설명이 된다.
"그들은 어떤 명상 실제를 실행하였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그리고 '왕관을 사용하였다(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 그러고 나서 그들은 방들을 응시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실제로 높이 올라갔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 마음의 방 안에서 그것을 응시하고 보았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눈으로 깨끗하게 보이는 것처럼 그것을 보았다. 그들은 성령의 눈으로 듣고 보고 말한다. 이것은 라브 하이 가온(Rav Hai Gaon)의 설명이다.
<랍비 나탄 벤 예히엘(1035~1106), 사전 편집>
- 성자들은 자격을 갖춘 사람만이 그 방법을 알고 그 방법을 통하여 메르카바를 응시할 수 있고 하늘의 방들(천궁)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여러 날 단식을 해야 한다. 그리고 머리를 양 무릎 사이에 넣고 전통적으로 전해지는 찬양과 찬송의 노래를 소근대듯 땅에 대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7개의 방들을 지각할 것이다. 이것은 환상 속에서 하나의 방에서 연달아 다른 방들로 들어가서 각각의 방 안에 있는 것을 응시하는 것과 같다.
- 이것에 관한 두개의 문헌이 있다. 하나는 "대헤칼로트(Greater Hekhalot)"이고 다른 하나는 잘 알려진 "소헤칼로트(Lesser Hekhalot, Hekhalot Rabbati):이다.
- "봉인된 눈으로 아래쪽에서 잠을 자는 그대들이여, 일어나라.
그대들 중에 누가 여기로 오기 전에 어둠을 빛으로 그리고 괴로움을 달콤함으로 변화시켰는가? 그대들 중에 누가 왕이 여왕을 방문할 때 눈부시게 빛나는 그 빛을 매일 기다렸는가? 왜냐하면 신의 영광이 중대되는 시기이고 그분은 세상의 모든 왕들 위의 왕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이것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여기에 자신의 몫이 없도다."
- 그 순간 히야는 우뚝 서 있는 기둥 주변의 사람들이 하늘 학당으로 들어 올려지는 것을 보았다.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 위에는 날개들의 마스터(Master of Wings)가 있었다.
- 그는 서약을 하고 나서 장벽 뒤로부터 이렇게 들었다.
"매일 왕은 육신 안에 사는 여왕(Doe, 셰키나)을 기억하고 그녀를 기다린다. 왕이 390개의 하늘을 차니 하늘 모두가 그 앞에서 당황해하며 덜덜 떤다. 왕은 이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자 불처럼 끓어오르는 눈물이 거대한 바다로 떨어진다. 눈물은 거기에 남아 머물고 그 눈물의 힘으로 바다의 마스터(Master of the Sea)가 신성한 왕의 이름을 정화할 수 있다. 왕은 창조된 모든 물을 삼켜서 자신에게로 끌어 모을 것이다. 이때 모든 사람들이 신성한 사람(Holy People)에게 모여들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마른 땅으로 지나갈 수 있도록 물은 증발될 것이다."
- 이것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 "시몬의 학당으로 오시는 왕이신 메시아를 위한 길을 내라." 라는 소리가 히야에게 들려왔다.
"그와 그의 아들이 그대 학당에 들어올 수 있도록 두 사람이 죽게 하라."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시몬이 "그에게 지상에서 시간을 더 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시간이 더 주어졌다. 그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전율하면서 그곳을 나왔다. 히야는 눈물을 흘리고 전율하면서 말하였다. "의인이신 시몬의 몫이 하늘에 있어 행복하도다. 그럴 자격이 있는 그 아들의 몫이 하늘에 있어 행복하도다."
<조하르 1:4a>
- 랍비 아바(Rabbi Abba)가 말하였다.
어느 날 동쪽에 사는 사람들의 도시에 갔는데 그곳 사람들이 내게 고대로부터 물려받은 지혜를 이야기했다. 그들은 또한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여러 지혜서 중의 한 권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 책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명상할 때 영(루아흐)이 하늘로부터 전해지며, 영의 형태는 명상하는 사람이 집착하는 욕망에 따라 결정된다. 명상할 때 성스럽고 고상한 것에 집착하면 그것이 명상하는 사람에게 전해지나, 그 반대 속성에 집착하여 명상하면 그것이 명상하는 사람에게 전해진다.
그들은 "모든 것은 말과 행동 그리고 자신을 묶어버리는 욕망에 따라 결정된다. 이런 말과 행동 그리고 욕망을 통하여 사람은 자신이 집착하는 것을 자신에게 전한다."고 말하였다.
- 신비가들이 이것을 "메르카바로 하강"으로 부르는 이유는 메르카바의 신비를 심상하기 위해서는 유리한 지점인 최고 수준의 생각에서 내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 네후니아의 제자로는 랍비 이슈마엘 벤 엘리샤(Ishmael ben Elisha)가 있는데 그는 제2 성전의 마지막 시기에 대사제로 봉사하였다. 탈무드에 보면, 랍비 이슈마엘이 네후니아로부터 토라에 나오는 단어의 중요성과 상관없이 토라에 나오는 모든 단어로부터 교훈을 끄집어내는 방법을 배우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슈마엘 엘리샤가 신비 명상 분야에서는 그의 수제자였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자료가 살아남은 것은 그 덕분이었다.
- 탈무드에 랍비 이슈마엘의 신비 체험에 대한 예가 나오는데 여기서 그는 만군의 주님인 아크테리엘 야(Akhteriel Yah)가 높은 옥좌에 앉아 있는 것을 본다. 천사 이름인 아크테리엘과 신의 이름이 합쳐진 것은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 초기 신비 작품, 특히 헤칼로트 문헌에서는 여러 번 이런 유사한 표현이 보이므로 이것은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주석서에는 아크테리엘이 천사의 이름인지 신의 영광 그 자체의 호칭인지에 대하여 좀 혼동이 있다. 이것은 예언과 비전이 늘 거울이나 렌즈로 번역되는 이스파클라리아(Ispaklaria)을 통하여 온다는 가르침을 생각하면 이해될 수가 있다. 실제로 비전가는 신의 영광을 지각하지만 영광은 직접 보이지는 않고 이스파클라리아를 통하여 반영된다. 이스파클라리아는 천사나 다른 어떤 초월적인 존재일 수 있고 여기서는 천사 아크테리엘이다.
- 신비 문학에서 천사의 이름이 신의 이름 앞에 나오는 경우는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이해하면 된다. 이것은 천사가 비전을 위한 거울로서 혹은 신의 대변인으로 봉사한다는 의미이다. 성경에는 천사가 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신이 천사에 대하여 "내 이름이 그 안에 있노라(출애굽기 23:11)"라고 말한 것에 담겨 있는 의미이다. 이 천사는 의례히 메타트론(Metatron)으로 확인된다. 그리고 이 천사에 관하여 탈무드는 "그의 이름은 그의 마스터의 이름과 같다."라고 말한다.
- 탈무드의 다른 곳에 보면, 랍비 이슈마엘이 "수리엘(Suriel), 얼굴의 왕자, 나에게 말하시오."라고 말한다. 천사 수리엘 혹은 수리아(Suriah)라는 이름은 헤칼로트 문헌에서 많이 나오고 이 천사는 "얼굴(Face, 신?)"을 위한 대변인으로 보인다. 이런 여러 자료로부터 판단해 본다면 랍비 이슈마엘이 이런 비전에 친숙하였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 신비 전통은 이러한 초창기 세대로부터 랍비 유다왕자(Judah the Prince, 120~189)에게 전해졌다. 그는 탈무드의 초기 형태인 미슈나의 편찬자로 유명하다. 그로부터 신비전통은 예루살렘 탈무드의 편찬자인 랍비 요하난(Rabbi Yochanan)에게 전해졌고 이어서 그의 제자 랍비 아시(Rabbi Assi)에게로 전해졌다. 이 전통은 마침내 라브요세프(Rav Joseph)와 라브 제이라(Rav Zeira)에 도달하였고 이 두 사람은 메르카바 신비에 대하여 박식하였다. 그래서 신비 전통은 탈무드 성자들의 손에 들어왔고 5세기 중엽까지 사용되었다.
- 랍비 하임 비탈은 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여러 명상기법이 효력이 있으려면 수행자가 붉은 암소(Red Heifer)의 재로 정화되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이것은 아리(Ari)의 중요한 가르침이었고 이것은 그의 저작물에서 자주 언급된다.
- 붉은 암소는 성경(민수기 19장)에 자세히 언급이 되는데, 이것은 특별한 제물로 시체와 접촉한 불결함이 제거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붉은 암소가 필요한 이유는 불결한 상태로 사원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죽은 자와 접촉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붉은 암소의 재로 정화가 되어야 했다. 이와 비슷하게 신비 의식을 행하는 사람은 먼저 이런 방식으로 정화되지 않고는 신의 이름을 낭송할 수 없었다. 붉은 암소는 일종의 제물이었으나 제물은 사원이 존재하였을 때에만 바쳐졌다. 예루살렘의 사원이 70년에 파괴되었을 때, 적은 양의 재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재를 사용할 수 있으면 이런 정화는 가능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재는 5세기에 다 사용되었다. 그 후에는 헤칼로트 문헌에 나와 있는 신의 이름을 낭송하는 방식은 더 이상 사용될 수 없었다.
- 이것은 헤칼로트 문헌에서 증명이 된다. 헤칼로트 문헌에 보면 랍비 이슈마엘과 랍비 아키바가 랍비 네후니아를 신비 상태에서 나오게 하려는 내용이 나온다. 그들은 월경이 있는 여자와 접촉한 천을 그에게 닿게 하여서 그렇게 하였다. 천이 닿자 즉시 그는 영광의 옥좌 앞에서 퇴거되었다. 유사하게 붉은 암소의 재로 자신을 정화하는 것을 포함하여 자신을 영적 불순함과 의식(儀式)적 불순함으로부터 정화하여야만 이러한 신비로 들어갈 수가 있다. 헤칼로트 문헌은 잘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 메르카바 신비로 들어가려고 할 때 그를 기다리고 있는 위험에 대하여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 랍비 이슈마엘이 말하였다.
"나는 속죄일에 향을 피우기 위하여 지성소의 가장 깊숙한 방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나는 거기서 높은 옥좌에 앉아있는 만군의 주님인 아크테리엘 야를 보았다. 그는 내게 '이슈마엘, 나의 아들아, 나를 축복하라.'고 말하였다. 나는 '주님의 의지로 주님의 분노를 자제하였으면 하나이다. 주님의 사랑이 주님의 덕목 위에 드러났으면 하나이다. 주님께서 자녀를 사랑으로 다루어서 그들과 함께 율법 너머로 들어가서.'라고 응답하였다." 그러자 주님이 머리를 끄덕였다.
<탈무드>
- 랍비 이슈마엘이 말하였다. 나는 13살 무렵에 공부하기 위하여 랍비 네후니아에게 갔다. 나는 그에게 "토라의 왕자는 누구인가요?"라고 물으니 그는 "그의 이름은 요피엘(Yofiel)이다.'라고 응답하였다." 나는 이미 단식을 하고 있었으나 고행을 강화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이전 단식에다 추가로 40일을 단식하여 모든 즐거움에서 벗어났다. 40일의 마지막 날에 위대한 이름을 발성하였고 천사 요피엘을 아래로 불러내었다. 그는 불타오르는 불로 내려왔고 얼굴은 번쩍이는 번갯불 같았다. 그를 보자 온몸이 떨리고 몹시 당황스러웠고 사지가 해체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만 뒤로 쓰러졌다. 그는 나에게 "나의 아들아, 감히 그대가 하늘의 거대한 회합을 뒤흔들다니."라고 말하였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그대들 여기로 불러낸 것은 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대의 주인의 의지를 행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말로 세상을 창조한 신 앞에 알려져 있고 드러나 있습니다."라고 응대하였다.
- 그는 즉시 "인간의 아들아, 그대는 악취 풍기는 물방울, 벌레, 구더기로다! 그대 혼이 정화를 시작하였더라도 그대는 여전히 불결한 육체에 매여 있다. 내가 그대에게 모습을 드러내기를 바란다면 40일을 단식하라. 하루에 24번 자신에게 몰입하라. 냄새를 풍기는 어떤 것도 맛보지 말며 콩이나 야채도 먹지 말거라. 어두운 방에 앉아 어떤 여자도 보지 말라."라고 말하였다. 이것을 한 후에 그는 내게 신의 이름 하나를 가르쳐주었다. 그 이름을 가지고 나는 위로 올라가고 내려오고 했다.
<미드라시>
- 랍비 아키바는 랍비 엘리에제르(Rabbi Eliezer the Great)에게 "얼굴의 천사(Sar HaPanim)가 지상에 내려와서 위와 아래의 신비를 드러내도록 서약으로 묶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라고 물어보았다.
- 엘리제르는 "나는 천사가 아래로 내려와서 세상을 파괴하도록 원한 적이 있었다. 그 천사는 위대한 왕자이며 천상의 어떤 천사보다도 위대하다. 그는 주인의 영광을 위하여 청결과 절제, 정화, 그리고 공포와 경외감으로 우주의 왕에게 끊임없이 복종하고 봉사하고 있다. 신의 현존이 늘 그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응대하였다.
- 아키바는 그에게 "나는 서약으로 그 천사를 묶을 것입니다. 그가 나에게 드러낼 지식을 통하여 배우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그것을 하려면 천사를 부르는 날 온종일 단식하면서 앉아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전에 먼저 붉은 암소의 재를 가지고 7일간 그대 자신을 정화해야 한다. 흐르는 물속에 몸을 담그고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단식과 정화를 다 마치고 마지막 날에는 물에 몸을 목까지 잠기게 하여야 한다. 서약으로 천사를 구속하기 전에 이렇게 말해야 한다. '순수하지도 깨끗하지도 못하면서 감히 하늘의 신하를 사용하려는 사람을 때려눕히도록 임무가 주어진 긍지와 공포의 왕자시여, 나는 그대를 서약으로 묶습니다. 나는 영광스럽고 엄청난 이름을 통하여 이것을 합니다.'"
<라조 셸 산델폰(Razo Shel Sandelfon)>
- 4개의 우주가 있다. 세피로트의 우주인 아칠루트계(Atzilut, 가까움), 옥좌의 우주인 베리야계(Beriyah, 창조), 천사의 우주인 예치라계(Yetzirah, 형성), 형상의 우주인 아시야게(Asiyah, 구성)가 있다.
(역주: 아침루트는 영계, 베리야는 멘탈계, 예치라는 아스트럴계, 아시야는 물질계로 번역되어 불리기도 한다)
예언가가 아칠루트 세계를 보았을 때 그들은 베리야 세계의 빛 속에서 아침루트 세계를 볼 수 있었다. 에스겔은 솔로몬 성전이 파괴(BC. 586)된 후에도 살았던 사람으로 그는 아칠루트계가 베리야계 ...
- 여기서는 선만을 지각하기 어려워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의 결합만을 지각한다.
여기서 실천적 카발라(카발라 마법)의 문제가 드러난다. 악은 반드시 선과 결합하므로 실천적 카발라 기법의 사용은 금지된다. 혼을 정화하려고 하더라도 악의 존재 때문에 실제로는 혼을 오염시키게 된다. 어떤 지각을 얻더라도 진실은 거짓과 엉켜버린다. 붉은 암소의 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지금은 특히나 그러하다. 자신을 정화할 수 없으므로 껍질(킬리포트, 악)의 불결함이 실천적 카발라를 통하여 깨달음을 얻으려는 사람에게 달라붙는다. 그러므로 "혼을 지키려는 사람은 이것을 멀리해야 한다." 혼의 오염만이 아니라 그 사람은 연옥(Gehinom)에서 벌을 받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도 벌을 받을 것이다. 자신만이 아니라 자식들도 아프거나 빈곤해지거나 배교자가 될 것이다. 실천적 카발라를 행하다 죽음에 이른 요세프 델라 레이나(Joseph Della Reina, 자살하였음)와 랍비슐로모 몰호(Rabbi Shlomo Molcho, 화형을 당함)로부터 교훈을 배우라.
- 이 모든 것은 위에서 언급된 이유 때문이다. 실천적 카발라는 선에 악이 늘 따라다니는 영역에서의 기법이다. 이외에도 실천적 카발라 실행자는 천사의 의지에 반하여 서약을 강요한다. 이들 천사는 실행자를 유혹하여 그들 혼이 파괴될 때까지 악의 길로 이끌어서 복수한다. 이런 서약의 방법은 앞선 세대의 사람들에 의하여 숨겨져서 우리는 이런 기법에 대하여 익숙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이런 기법을 멀리해야 한다.
<랍비 하임(1543-1620}>
- 오른편에 서 있는 천사들에게 주님인 투트르뱔(TUTRBYAL)의 표장을 왼편에 서 있는 천사들에게는 얼굴의 왕자인 자하프니라이(Zachapniryai)의 표장을 보여준다. 즉시 여섯 명의 천사들이 앞에서 세 명, 뒤에서 세 명이 그대를 붙잡는다.
- 여섯 번째 방의 수호자들은 메르카바 안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을 공격하므로 권한 없이 내려가려고 하지 마라. 천사들은 자격 없는 사람들을 둘러싸고는 때려서 불에 태운다. 그들은 이런 행동에 어떤 뉘우침도 없고 "왜 우리가 이들을 불태우지? 허락 없이 메르카바로 내려가는 사람들을 공격하면 무슨 즐거움이 있는 거지?"라는 생각도 질문도 하지 않는다. 이것이 6번째 방을 지키는 천사들의 특징이다.
- 모든 일행이 랍비 이슈마엘에게 묻기를, "고상한 분이시여, 그대는 랍비 네후니아 벤 하카나처럼 토라의 빛으로 다스립니다. 그대가 네후니아를 이곳으로 모시고 올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분을 오시게 하여 누구는 메르카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6번째 방의 수호자들에게 공격받고 누구는 메르카바로 들어가면서도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는지 그 차이를 설명해 주도록 해주시오."
- 랍비 이슈마엘은 즉시 솜털로 만들어진 옷감을 랍비 아키바에게 주었고 그는 그것을 하인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하인에게 이 옷감을 미크바(정결의식용 욕조)에 몸을 담갔으나 정확하게 행하지 못한 여성에게 만지도록 하였다. 이 일에 대하여 성자들은 그녀가 금지되었다고 말하고 일반 사람들은 그녀가 허락이 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 하인은 지시를 받고 여자에게 그 옷감을 가운데 손가락 끝으로 만지라고 하였다. 누르지 말고 눈에서 살짝 재를 제거하듯 가볍게 손끝을 대기만 하라고 하였다. 이렇게 하고 나서 그들은 옷감을 랍비 이슈마엘 앞에 놓았다. 그는 그 옷감을 맑은 발사문 강에 담겼던 향기 나는 도금양(桃金孃, 향기 나는 상록관목) 가지에 걸었다. 그리고 그것을 랍비 네후니아의 무릎 위에 놓았다. 그러자 그는 즉시 영광의 옥좌로부터 물리쳐졌다.
- 이때 사람들은 그(네후니아?)에게 물었다.
"메르카바로 들어가려 했으나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는 이렇게 응답하였다.
"그들은 메르카바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이끌리어 간 사람들이다. 그들의 안내자는 그들을 자신들의 머리 위에 올려놓고 또한 앞에 앉히고 그들에게 '응시하고 보고 듣고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것과 우리가 영광의 옥좌 앞에서 듣는 것을 기록하라.'라고 말한다. 이들은 이럴 자격이 없어서 6번째 천궁 수호자에게 공격당한다. 그러므로 그대는 적격한 사람을 선택하도록 하고 그들은 선별된 단체 회원들이어야 한다. 그대가 6번째 천궁 문 앞에 설 때 수호자들에게 3개의 표장을 보여주라. 2개는 손에 검을 뽑아 들고 있는 카츠피엘(Katzpiel)에게 보여주어라. 그로부터 번갯불이 나오고 이것은 왕과 그의 옥좌를 응시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폭파시키고 눈멀게 한다.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고 그가 내민 검은 "파괴와 소멸!"을 외친다. 그는 문의 오른편에 서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표장을 두미엘(Dumiel)에게 보여주어라."
- 아보트(Aravot)로 불리는 최고 높은 천궁에 있는 모든 방들을 덮고 둘러싸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모든 것을 창조한 존재와 같다. 모든 것을 창조한 존재에 대하여 이렇게 나와 있다. "영광이 하늘을 덮었다(하박국 3:3)." 이것은 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신의 하인인 천사 안피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다른 여섯 천궁의 수호자인 천사들보다 더 사랑받는 이유는 7번째 천궁의 문을 열기 때문이다.
- 7번째 천궁의 문 맞은편에 서있는 신성한 하요트(Chayot) 각각은 256개의 얼굴을 지닌다. 그러므로 이 위대한 천사들 각각은 512개의 눈을 가진다. 7번째 천궁의 문 맞은편에 4개의 하트가 있다. 하요트 하나의 모습은 인간의 얼굴, 사자의 얼굴, 황소의 얼굴, 독수리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 4개의 얼굴 각각은 연달아 16개의 얼굴을 가진다.
(역주: 4개의 얼굴에 4가 연달아 곱해지는 식으로 하면 4, 16, 64 그리고 256의 얼굴이 나온다)
- 그대가 메르카바로 내려가기를 바랄 때, 천사 안피엘이 천궁의 문을 연다. 이때 그대는 7번째 천궁의 문지방에 선다. 신성한 하요트는 512개의 눈을 들어 올려 그대를 응시한다. 각각의 눈은 거대한 부셸(역주: 곡물·과일 등의 중량 단위: 8 gallons, 약 36리터)와 같다. 응시하는 눈빛은 번갯불 같다. 신이 현존하는 석탄의 화염 같이 강력한 케루빔들의 눈과 오파님들의 눈을 제외하고도 ...
- 또 다른 이유로는 그가 세페르 예치라(창조의 서)의 방법을 따랐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는 세페르 예치라 체계가 다른 카발라 가르침과는 다르고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10개의 세피로트를 사용하는 카발라 학교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10개 숫자보다 오히려 22 히브리 문자와 관련되는 세페르 예치라의 명상기법이 색다르고 수준이 높다고 분명하게 말하였다.
- 세페르 예치라가 그의 경력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확실하다. 자서전 초안에서 그는 주요한 인생 전환점으로 세페르 예치라의 신비로 입문한 것을 들고 있다. 그는 카발라와 철학의 관점에서 주석이 달린 12권의 세페르 예치라 주석서를 가지고 세페르 예치라를 공부하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 그의 세페르 예치라 스승은 아코의 랍비 이삭에게 영향을 준 랍비 바루흐 토르가미(Baruch Torgami)이다. 바루흐는 "카발라의 열쇠(Maftechot HaKabbalah)"를 저술하였는데 이것은 세페르 예치라에 대한 주석서로 아불라피아의 기법과 매우 유사한 숫자 조작(게마트리아)이 나온다. 이외에도 아불라피아는 랍비 바루흐로부터 여러 신비 전승을 배운 것으로 보인다. 랍비 바루흐 토르가미의 성(性)인 토르가미는 터키(Togarmah)로부터 왔다. 이것은 신비전승이 끊어지지 않고 그곳에서 보존되어 왔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당시 터키에는 알렉산더 대왕 시대 이후부터 한 유대 사회가 번성하여 왔으므로 가능성이 크다.
- 아불라피아란 인물이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매혹적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그의 삶 때문이 아니라 그가 남긴 작품 속에 담겨있는 엄청난 신비 지식 때문이다. 이런 지식은 그 시대의 다른 스승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아서 이런 카발라 실제에 관하여 분명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불라피아는 "나 이전에 어느 카발리스트도 이 주제에 대한 신뢰할 만한 책을 쓰지 않았다."라고 쓰고 있다.
- 그는 이런 주제에 관하여 책을 쓴 초기 작가들이 그 실제를 감추었다는 말을 여러 군데에서 하였다. 그는 그들이 책의 핵심 내용을 확실하게 드러내지 않았고 슬쩍 지나가는 형식으로 언급만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불라피아는 "나는 내 책에 모든 핵심적인 내용과 기본적인 체계를 드러냈다."라고 말하였다.
- 그가 이런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자신의 긍지를 높이기 위함이 아니라 신의 요청을 감지하고 행동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그는 환상/비전을 통하여 엘리야와 에녹의 명령을 받고서 이런 비밀을 드러냈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사라진 예언은 1285년 무렵에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는 자격이 되는 사람들에게 예언 수준에 이르는 방법을 가르치려고 책을 저술하였다.
- 카발라(קַבָּלָה) 용어를 둘러싸고 상당한 논쟁이 있다. 대부분의 권위자는 이것이 "받다(to receive)”를 의미하는 어근 카발(Kabal, קבל)에서 근원한다고 한다. 아불라피아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자신이 예언자나 그 예언자의 제자로부터 전승받았기(kibel, received) 때문에 신비가인 자신이 카발리스트로 불린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카발리스트들처럼 그도 자신의 전승을 예언자의 전승으로 보았고 자신의 방법이 예언자가 최고의 신비 체험을 얻기 위하여 사용한 것과 같다고 생각하였다.
- 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아불라피아의 체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는 이것이 이스라엘 족장(역주: 이스라엘 조상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예언자로부터 근원하는 전승이라고 확신하였다. 아브라함이 "신의 이름을 불렀다(창세기 12:8)"에 대하여 대다수의 주석가는 이것을 그가 기도하였다거나 그가 신의 위대함을 선언하였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많은 카발리스들처럼 아불라피아도 이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 즉 아브라함이 실제로 신의 이름을 발성하였고 이 명상실제를 통하여 최고의 신비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아브라함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세페르 예치라는 이런 식의 해석을 지지하는 증거로 보인다.
- 아브라함이 응시하고는 이들(히브리 문자)을 보고, 숙고하고, 탐구하고, 이해하였다. 그는 이들을 새기고(chakak) 자르고(chatzav) 결합하여 (charaf) 만들어서 마침내 성공하였다. 그러자 위대한 신께서 그에게 나타나셨다(세페르 예치라 6:4).
- 여기에 사용된 3개의 핵심 단어가 새기다(chakak), 자르다(chatzav), 결합하다(tzaraf)이다. 카발리스트들에 따르면, 이런 과정은 문자 조작을 수반하고 이것으로부터 아불라피아가 자신의 핵심 체계를 끄집어냈다고 한다. 아불라피아에 앞서 살면서 100여 년을 유명한 주석가로 활동한 바르셀로나의 랍비 예후다 벤 바르질라이(Yehudahben Barzilai of Barcelona)는 "새기다(chakak)"라는 단어는 쓰는 것을 의미하고 "자르다(chatzav)"라는 단어는 문자의 형상을 의미하고 "결합하다(tzaraf)"는 단어는 아브라함이 문자를 치환한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하였다.
- 아불라피아는 자신의 작품에 이 해석을 풀어썼으며 이것은 카발리스트들 사이에는 잘 알려진 일이다. 세페르 예치라에 나온 것처럼 아브라함이 사용한 방법은 주로 히브리 알파벳 문자를 쓰고 그것을 치환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명상기법으로 사용되었고 아브라함은 높은 예언 상태에 도달하였다. 이것은 아불라피아 체계의 핵심이기도 했다. 그는 이것을 "세피로트 카발라(Kabbalah of Sefirot)"와 구분하여 "문자 카발라(Kabbalah of letters)"로 불렀다.
- 아불라피아가 자주 언급한 중요한 탈무드 가르침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문자로 하늘과 땅이 창조되었고 베차렐(Betzalel, 브살렐)은 문자 치환(tzaraf)법을 알았다."
베차렐은 출애굽 후에 사막에 성막을 세우는 일이 주어진 사람이었다. 그는 창조의 문자를 다루는 신비능력을 통하여 성막이 창조의 영적 에너지를 위한 통로로 작동하도록 성막을 세울 수 있었다. 이것은 모든 창조가 말로 일어났다는 사실과 밀접하게 연결이 된다. 성경에는 우주창조 단계에서 "신이 말하였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러므로 창조는 말을 통하여 일어났다. 이들 말은 문자로 구성되므로 히브리 알파벳 문자는 창조의 가장 중요한 기본 재료이다. 그러므로 이들 문자를 정확하게 조작하는 법을 안다면 우주창조를 가져온 그런 영적 에너지를 사용할 수가 있다.
- 아불라피아는 "신의 길은 완전하고(tamim) 신의 말씀은 치환(tzerufah)이 된다(시편 18:32)." 구절에서 이것에 대한 근거를 찾는다. 비록 이 구절에서 체루파(tzerufah)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정제된 혹은 정화된"의 의미로 해석이 되지만 아불라피아는 이것을 세페르 예치라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섞이는 혹은 치환되는"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이것에 대한 암시는 시편(18:32) 구절에 나오는 "타밈(영적 체험과 깨달음 상태를 의미한다)”이라는 단어에서도 보인다. 아불라피아는 문자의 치환은 그 자체로 입문자를 위한 시험과 "정제" 장치로 작동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문자를 치환하는 방법을 통하여 우리의 내면 자아의 속성을 알 수 있다.
- 여기서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명상법을 보게 된다. 만트라 명상에서처럼 단어를 몇 번이고 낭송하는 대신에 단어를 쓰고 그리고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문자를 치환하고 순환시킨다. 입문자가 높은 상태로 나아가면 더 이상 문자를 쓸 필요는 없으나 대신에 문자를 말이나 마음으로 치환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높은 수준에 이르기 위한 입문이며 이것은 실제로 신의 이름과 관련이 된다. 아불라피아는 이런 방식으로 문자를 다양하게 조작하는 방법을 다루는 종합 안내서의 저자로 알려져 있고 이와 유사한 책들이 제자들에 의하여 저술되었다.
- 문자 치환과 유사한 단어가 두 가지 의미를 지닌 라카브(Rakhav, רכב)인데 이것은 "타다"를 의미하고 또한 "접목"과 "붙임"을 의미한다. 라카브가 최고 신비체험을 의미하는 메르카바(Merkava, מרכבה)의 어근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아불라피아는 이것이 접목과 결합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메르카바 신비"는 문자와 단어 그리고 신의 이름을 결합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메르카바를 응시하는(tzefiyat, gazing) 사람"이 나오는 헤칼로트 구절을 이에 대한 예시로 지적한다. 그는 이것의 의미는 예언자로부터의 전승에 의하여 성자들에게는 알려져 있으며 이것은 "문자 하나를 다른 문자에, 단어 하나를 다른 단어에, 신의 이름 하나를 다른 신의 이름에 접목 harkava)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 이런 결합의 의미를 지닌 메르카바는 신 이름의 힘과 세피로트의 힘 그리고 문자의 힘을 결합하는 것이다. 이들 힘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때, 우리는 그 힘으로 가능한 모든 조합을 만들 수 있다. 이들 힘의 에센스는 치환된 형태에 봉인되어 있어서 모든 지혜의 열쇠는 이것을 "응시하여 보고 이해하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 적절한 방법으로 이런 치환된 조합을 들여다보면 여기서 우리는 모든 창조를 볼 수가 있다. 이것은 유리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얼굴과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과 같다. 아불라피아는 "유입되는 힘이 거울 안을 응시하는 사람에게 드러날 때, 문자와 세피로트는 번쩍이는 번갯불처럼 그 앞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것은 '하요트가 번갯불처럼 앞뒤로 왔다 갔다 했다(에스겔 1:14)'에 나오는 하요트의 비전과 같다."라고 쓰고 있다.
- 이것은 또한 "공(空)인 10개의 세피로트의 모습(tzafiyah, vision)은 번쩍이는 번갯불 같다(세페르 예치라 1:6)"라는 구절의 의미와도 같다. 여기서 "모습(tzafiyah)"이라는 단어는 예언과 신비 환상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 아불라피아는 "세피로트 방법"이 "문자 방법"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간혹 조심스러운 어조로 "세피로트의 사다리"를 통하여 상승하는 것에 대하여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이 방법을 강조하지 않으려고 매우 조심한다. 그는 세피로트에 대하여 명상하면 세피로트를 쉽게 독립적인 실체(엔터티)로 볼 수 있어서 신의 절대적 단일성 안으로 이런 세피로트 같은 복수의 요소가 들어오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세피로트에 대한 실제적인 숭배로 이끌 수 있었다. 한 카발라 원전에서 보면 이것이 이교도를 다신숭배로 이끈 첫 번째 단계였다고 한다.
- 아불라피아가 언급한 또 다른 형태의 명상은 관조명상이다. 그는 특히 탈리트(역주: 유대인 남자들이 매일 아침예배 때 두르는 기도용 어깨걸이)에 달린 장식 술(Tzitzit)의 푸른 실과 관련하여 이 명상을 언급한다. 장식 술에 대하여 토라는 "그대는 그것을 응시하고 신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라(민수기 15:39)"라고 말한다. 탈무드는 이것에 대하여 "푸른 실은 바다를 닮고 바다는 창공을 닮고 창공은 신의 옥좌를 닮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탈무드가 실제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실이 관조명상의 대상으로 사용된다는 것이고 영적 상승의 단계를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 이 실은 소라고둥과 관계있는 연체동물 힐라존(Chilazon)에서 나온 푸른 염료로 염색되어 있다. 아불라피아는 힐라존(חִלָּזוֹן)이 "비전을 위하여"를 의미하는 라-하존(la-chazon, לחָזוֹן)과 같은 히브리 문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이 염료를 통하여 예언에 다가가는 비전을 얻을 수 있었다.
- 그러나 아불라피아의 핵심 명상법은 문자치환과 관련되는 것이었고 더 높은 수준에서는 신의 이름을 발성하는 것이었다. 그런 발성에는 특별한 호흡법만이 아니라 특별한 머리 움직임이 수반되었다.
- 참된 신비 체험은 표현될 수가 없어서 직접 체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설명할 수 없다. 태어나면서 눈이 먼 사람이 색상의 개념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영적으로 눈이 먼 사람은 영적 세계의 눈부신 스펙트럼을 알 수가 없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최고 수준에 이른 사람은 아무에게나 그것을 드러낼 수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깨달은 사람이 봉인된 문을 열 수 있도록 열쇠를 건네주는 일이다. 문은 자격 없는 사람을 배제하기 위하여 봉인이 되어있다."
- 아불라피아는 신비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기회와 위험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신의 지혜는 좌우 측면이 있다고 쓰고 있다. 그는 이 신비는 참된 깨달음을 얻는 법을 가르치기 때문에 최고의 수준이지만,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필요한 모든 기법을 사용해도 높은 수준에 이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위대한 사람들과 성자들이 자신들의 지식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에 많이들 엎어지고 쓰러지고 함정에 빠지고 덫에 걸렸다."
- 그는 계속하여 왕관(Crown)에 해당하는 최고 수준에 대하여 말을 한다. 왕관은 히브리어로 케테르(כֶּתֶר)인데 아불라피아는 이 문자의 일부가 거꾸로 조합되면 "잘라내다"을 의미하는 카레트(כרת)가 된다고 밝힌다. 그러므로 자격이 없는 자가 왕관의 최고 수준에 도달하려고 하면 영적으로 "절단"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아주 강한 어조로 신비 세계로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은 충분히 준비가 되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들어갈 수 없다고 경고한다. 특히 어설픈 영적 지식에 대해서 강하게 경고를 하고 있다. 준비 없이 일시적 호기심으로 신비 영역으로 들어간다면 그들은 영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파괴될 수 있다고 경고를 한다. 그는 그들에게 "그대 마음과 생각은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일 것이고 환상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지 못할 것이다. 상상의 힘이 그대를 압도할 것이고 불필요한 여러 환상들이 나타날 것이다. 상상력은 강해지고 지성은 약해져서 환상이 그대를 거대한 바다로 던져버릴 것이다. 그대는 그것에서 벗어날 지혜가 없어서 익사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작고 조용한 소리"를 얻으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지성으로 카발라의 신비를 이해해야 한다고 경고의 메시지를 준다.
- 최고의 신비는 에덴동산에서 암시가 된다. 토라는 아담이 죄를 범하고 동산에서 추방되었을 때, 에덴동산은 "회전하는 화염검(창세기 3:24)"으로 보호가 되었다고 한다. 아불라피아는 검이 회전하는 방법은 에덴동산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의 준비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자격이 있으면 검은 거울이 되어서 그는 검을 통하여 지각할 수 있으나,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은 검으로 불타서 잘려버린다고 설명한다. 검을 감독하면서 자격 없는 자를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존재는 천사 메타트론이다. 돌아가는 검은 지성의 사이클(cycle of the intellect)이다.
- 아불라피아는 입문자가 사용하는 문자는 지성의 사이클 위에 새겨지고 이 사이클을 통하여 초월적인 것을 지각한다고 한다. 비전의 원천은 이 사이클의 정 중앙에 있는 신성한 궁전이다. 지성의 구체(sphere of the intellect)는 순수 지성(Pure Intellect)의 영적 영역을 통하여 여행하도록 하는 권한을 가진다. 이 영역으로 들어가면 돌아가는 지성의 구체(球體)를 사다리처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실제로 위로 올라갈 때 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생각 과정이 뒤집어지고 전체 지각이 변한다. 이런 의식 상태로 들어가는 것은 극도로 위험하다. 아불라피아는 이렇게 쓰고 있다. "자신의 속성과 개성을 완전히 변화시켜야 하고 느낌의 상태에서 지성의 상태로, 상상의 길로부터 불타는 불의 길로 자신을 옮겨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비전이 변화되고 생각 과정이 파괴되고 환상이 혼란스럽게 일어남을 발견할 것이다. 지성의 구체는 우리를 정제하고 시험하는 곳이고 이것에 관하여 잠언(17:3)에는 '정제소는 은을, 용광로는 금을 단련하지만 신은 마음을 단련하신다.'라고 되어있다."
- 그는 "신은 우리에게 토라를 주었고 치환하는 법을 가르쳤고 문자 신비와 관련이 있는 사다리의 단들에 대하여 가르쳤다. 이런 정보 없이는 신을 아는 수준에 이르기는 불가능하다."라고까지 말한다. 그는 높이 올라갈수록 더 많은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장애물의 크기를 말하면서 그는 신이 어둠과 구름으로 숨겨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성경 구절을 언급한다. 신은 무한하고 아무도 신을 에워쌀 수 없으므로 이 "어둠과 구름"은 실제로는 신을 지각할 수 없는 인간의 지성 안에 있다.
- 장애물을 돌파하는 동안 너무 가까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적절한 경계를 넘어가는 사람은 빛에 삼켜질 수 있고 벤 아자이(Ben Azzai)처럼 황홀감으로 죽을 수 있다. 아불라피아와 다른 카발리스트들에 따르면 이것은 "신의 입맞춤"으로 알려진 죽음이었고 탈무드에 따르면 이것은 아주 위대한 성자들을 위하여 예약되어 있는 죽음이었다. 이것을 피하는 한 가지 방법은 혼이 육체를 떠나지 않겠다는 서약으로 자신의 혼을 육체에 묶는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앞뒤로 움직이는 것"을 계속하여 응시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것의 의미는 세페르 예치라에 나온다.
- 10개 세피로트에 대하여 입으로 평가하지 말고 이들을 생각할 때 마음을 경계하라. 마음이 흐트러진다면 "하요트가 달려서 돌아갔다(에스겔 1:14)."라고 하는 것처럼 다시 원래 상태로 마음을 가져오라. 이것에 대하여 계약이 맺어졌다.
- 그는 수행자가 최고 명상 수준에 있을 때 순수한 영적 힘을 통하여 자연의 법칙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런 목적으로 이런 힘을 사용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하였고 수행자들의 주된 목적은 마법 기법의 습득이 아니라 영적 깨달음으로 보았다. 그는 실천적 카발라의 마법 기법을 여러 곳에서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분명한 어조로 이것을 비난한다
-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 지성이 잘 개발되고 몸의 영향력이 약해지면 최고의 명상을 할 수 있다. 아불라피아는 젊은 사람들이 신비영역으로 들어가려고 하지만 나이가 들 때까지는 높은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거라고 가르쳤다. 이것은 신비 지혜는 "인생의 반"을 살지 못한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탈무드 가르침을 반영한다.
- 이스라엘 땅에 살지 않았지만 참된 예언을 얻었다는 그의 주장은 굉장한 논쟁의 대상이다. 미슈나에 따르면 예언은 아주 엄격하게 규정된 조건하에서만 예외가 인정되고 오직 신성한 땅인 이스라엘에서만 얻어질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아불라피아는 이 규정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며, 탈무드에서 언급한 신성한 땅은 특별한 영적 수준에 대한 언급이라고 말하였다. 이 수준에 도달하면 지정학적 위치에 상관없이 예언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였다.
- 그대가 그를 볼 때, 마음을 강화하고 그의 길을 이해하라. "그(천사)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그에 거역하지 말고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왜냐하면 나의 이름이 그 안에 있기 때문에 그대의 죄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출애굽기 23:21)."
- 신의 이름 샤다이(Shaddai, שַׁדַּי)의 문자 값은 314이므로 이것은 메타트론의 문자 값과 같다.
그러므로 게마트리아에 의하면 메타트론이 된다. 메타트론은 "이름의 왕자(Sar HaShemot, שַׂר השמות)"이며 "이름의 권위(Reshut HaShem, רְשׁוּת השם)"와 함께 말을 한다. 두 단어 모두 같은 히브리 문자로 구성된다.
- 3개 구절로 이루어진 신의 72개 이름에서 첫 구절의 24개 이름(3문자로 이루어진 신의 이름)은 72개 문자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그가 (메타트론) 말하고 응답할 때 이렇게 말한다. "신이시여, 말씀하십시오. 종(Avdekha)이 듣고 있습니다(사무엘상 3:9)."
- 72 숫자와 24 숫자는 Av(צב, 문자 값 72)와 dekha(דך, 문자 값 24)로 분석될 수 있는 Avdekha(צבדך, 문자 값 96)에서 암시가 된다.
- 그대에게 신(YHVH)의 신비를 가르치는 천사 이름은 가브리엘이다. 그는 그대가 발성하는 신 이름의 첫 번째 구절(pasuk)에 대하여 말하고 그대에게 예언의 비전(mareh)을 제공하다. 이것이 "나는 그에게 환상(mareh)으로 내 뜻을 알리고 꿈(chalom)으로 말해 줄 것이다(민수기 12:6)"의 신비이다.
- 환상(mareh, מראה, 문자 값은 246)은 이 구절(Pasuk, פסוק, 문자값은 246)의 신비이다. 이것은 가브리엘(גבריאל, 문자 값은 246)의 문자 값과 같으므로 가브리엘이 된다. 꿈(chalom, חֲלוֹם, 문자 값은 84)은 "나의 증인(Ed-iy, עדי, 문자 값은 84)"의 신비이다(역주: 즉 문자 값이 같으므로 같은 의미를 가진다는 뜻). 이것은 또한 에녹(Chanokh, חנוך, 문자 값은 84)의 문자 값과 같으므로 에녹이 된다.
"보아라, 지금 나의 증인은 하늘에 있다. 나의 보증인은 저 높은데 있다(욥기 16:19)."
이 말은 카발라 전승이 진실하다는 의미이다.
- 하늘이 금한다면 그대는 첫 번째 구절을 발성할 때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 그러면 첫 번째 구절을 다시 하고 2번째 구절을 시작한다. 2번째 구절의 신의 이름을 발성하라.
NuThaHe HeAaAa YoReTha
נָחָה הַאָאָ ירַתָ
ShiAaHe ReYoYo AaVaMe
שְׁאָה רֵיי אָוָמֵ
- 최대한 집중하고 각각의 문자를 발성할 때, 해당 모음에 해당하는 움직임과 함께 숨을 내쉰다. 5개의 모음이 있고 그 순서는 o, a, e, i, u(오, 아, 에, 이, 우)이다.
o a e i u (אֹ אַ אֶ אְ אֻ)
- 이 모든 것은 성궤 덮개 위의 나무 한 그루 같았고 무지개 때문에 이것은 그렇게 만들어져야 했다. 이들은(케루빔) 모든 혼이 나오는 카테고리 이름인 신의 이름을 감독한다. 그리고 마법사는 이들 기법에 의존하므로 모든 혼은 마녀이다.
- 그러나 토라는 "마녀는 살려두지 마라(출애굽기 22:17)"라고 말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살지 못할 거라는 의미이다. 악인에 대한 복수에 대하여 신은 이렇게 명령하였다. "모든 사람들 하나도 살려두지 마라(신명기 20:16)"
- 그러나 2번째 것으로부터 나오는 호흡은 마음의 성막이다. 이름을 발성하는데 있어 생겨나는 모든 어려움을 합일로 설명하기 위하여 신의 이름을 가지고 하늘로 올라간다. 이것만이 이름 안에 있는 생명이다. 이것은 생명의 서(Book of Life)에 기억되고 봉인이 된다. 모든 영혼과 생각이 생명의 서에 집중되어질 때 이것은 우리가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고 계속하여 혼을 깨운다.
These are bound
הם משכעוח
=818
Until they raise
אשר ישאו
= 818
A change, a change in nature
שנוי שנוי הטכע
= 818
- . 다음 장에서 우리는 유다 알보티니에 대하여 논의하게 된다. 또 다른 중요한 카발라 문헌인 "쇼샨소도트(Shoshan Sodot, 신비의 장미, 저자는 Moshe ben Yaakov, 1449~1518)"에서는 이 작품의 이름을 직접 인용하고 있다.
- "정직의 문" 저자는 육체에서 벗어나는 3가지 방법으로 일반적인 방법, 철학적 방법 그리고 카발라적 방법을 언급한다. 일반적인 방법은 삭제(mechikah)로 불리는 방식인데 여기서는 마음에서 모든 이미지를 삭제한다. 저자는 책에서 무슬림 수피들도 이 기법을 사용하며 알라(Allah)를 되풀이하여 낭송하는 방식이라고 언급한다. 수피는 이런 방법으로 일정한 수준의 황홀경을 얻을 수는 있지만 그들이 카발라 전승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알 수는 없다고 쓰고 있다.
- 철학적 방법을 논하면서 저자는 벤 시나(Ben Sina)라는 철학자에 대하여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 철학자는 명상(hitbodedut) 상태에 있으면서 많은 책을 썼으며 특히 어떤 어려운 개념이 있으면 그것에 집중하여 생각하였다. 더러는 알코올 도수가 높은 와인 한 잔을 마시며 그 문제에 대하여 생각을 하였다고 한다.
-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내용인데 왜냐하면 아코의 랍비 이삭이 이와 유사한 기법에 대하여 언급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두 사람이 공동의 전승을 공유했다는 암시로 보인다.
- 아불라피아의 가르침은 "정직의 문(Shaarey Tzedek)" 작가를 통하여 이스라엘에 알려졌고 그곳에서 그의 가르침은 확고한 뿌리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후 200년이 지나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저명한 성자인 예루살렘의 랍비 수장을 만나게 된다. 그가 바로 "술람하알리야(Sulam HaAliyah, 상승의 사다리)"의 저자인 랍비 유다 알보티니(Judah Albotini, 1453~1519)이다.
- 그는 탈무드 학자들에게는 미슈나에 대한 마이모니데스의 주석서에 뛰어난 주석을 단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 주석서는 미슈나에 대한 주석가로 유명한 랍비 슐로모 이드니(Shlomo Idni, 1567~1626)에 의하여 간행되었다. 알보티니가 1501년에 저술한 이 주석서는 미슈나의 아주 중요한 버전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마이모니데스의 율법서에 대한 알보티니의 기념비적인 주석서는 필사본으로만 존재하며 이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사생활도 아버지가 리스본의 유명한 학자인 모세 알보티니(Moshe Albotini)라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그의 가족은 대대적인 유대인 추방이 있었던 1496년에 포르투칼에서 추방되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아불라피아의 가르침에 매우 반대하였던 랍비 유다 하이트(Judah Chayit)도 이 기간에 포르투칼에서 추방되었다. 유다 하이트가 아불라피아의 가르침을 비난하였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에서 아불라피아의 가르침이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 알보티니는 이스라엘로 이주하였고 이주 후에 1509년까지 예루살렘 학당(Jerusalem academy)의 회원으로 있으면서 학자들의 인두세를 면제하는 법령에 사인을 하기도 하였다. 그는 예루살렘 학당의 수장이었던 트리엘의 랍비 야코브(Jacob of Triel)의 뒤를 이어 예루살렘의 모든 랍비의 공식적인 수장이 되었다. 카발라 명상 수행자이며 교사였던 그가 랍비 수장으로 선택이 되었던 당시에는 아불라피아의 명상을 가르치는 카발라 학당이 예루살렘에서 충분히 수용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얼마 뒤에 명상기법을 전하는 또 다른 교사가 나타난다. 그는 예루살렘의 랍비인 요세프 차야흐(Joseph Tzayach)였다.
- 이 책에서 알보티니는 카발라 명상가들을 잘 조직된 그룹으로 이야기한다. 그 당시에 저술된 문자 조작을 다루는 여러 책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이들 책에는 실수가 많다고 경고를 한다. 그는 아불라피아 체계에 아주 친숙하였다. 그는 아불라피아의 가르침에 대하여 많이 설명하면서 명료하고 체계화된 방식으로 소개하였다. 그는 아불라피아의 "미래 세계의 삶"의 책 제목을 두 군데에서 언급한다. 이 책의 앞장은 주로 단어와 문자조작을 다루고 아불라피아의 작품에 많이 의존한다. 이것은 히브리 알파벳 문자와 관련되기 때문에 영어로 이 방법을 평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주제에 흥미가 있어서 더 깊이 파고들 사람은 이미 출간되어 있는 라막(Ramak)의 작품에서 그 뛰어난 내용을 만날 수 있다.
- 알보티니가 자세히 논의하는 또 다른 개념은 "점프(kefitzah)와 건너뜀(dilug)"이다. 아불라피아는 이것에 대하여 언급하고 사용하였지만 그 사용법에 대하여는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알보티니는 아불라피아의 문자치환 체계에 따라 이들 기법을 명확하게 설명했을 뿐만이 아니라 이들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많은 예시를 보여준다.
- 간단히 설명한다면 "건너뜀"은 문자 치환의 표준 기법 중의 하나를 사용하는데 일종의 자유연상 기법으로 구성된다. 이것은 간단한 문자치환, 암호사용, 혹은 같은 문자 값을 가진 다른 단어 찾기 (게마트리아)로 이루어진다. 단어는 여러 방식으로 확장이 될 수도 있다.
- 수행자가 게마트리아처럼 간단한 방식을 사용할 때 그는 "건너"을 하는 것으로 말해진다. 그가 문자 치환법에서 한 방식에서 다른 방식으로 넘어간다면 그때 그는 "점프"한다고 말해진다. 이 모든 것은 높은 수준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명상기법으로 간주되었다.
- 명상 체험을 얻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금욕과 극기인데 알보티니가 이것에 대해서 자세히 다룬다. 이것은 후대 카발리스트들이 많이 논의한 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불라피아는 "참된 열정에 도달한 사람은 타인의 축복이나 저주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는 마치 남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무심하게 지나간다."라고 간단히 언급하고 만다. 금욕과 극기에 대한 알보티니의 가르침은 이것에 대하여 자세히 다루었던 아코의 랍비 이삭의 가르침으로부터 가지고 온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그가 아불라피아만이 아니라 이삭의 제자였기 때문이다.
- 알보티니는 세페르 예치라에 나오는 "자르기"와 "새기기"에 대한 아불라피아의 가르침을 이렇게 설명한다. "높은 명상 상태에 이르면 수행자의 마음은 육체의 감옥에서 벗어나 영적 영역으로 들어간다."
- 이 영역에서 수행자는 여러 비전이나 문자 결합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자르기"는 그가 명상상태에서 이들 비전을 "자르고" 분석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새기기"는 그가 드러난 비전을 잊지 않으려고 혼 안에 비전을 새기는 것을 함축한다.
- 알보티니는 여러 표준 명상 기법에 대하여 언급하면서도 괜찮은 가르침이 있다면 이것도 명상 주제로 사용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명상하는 사람들은 하나의 개념이나 심오한 가르침에 집중한다. 그들은 눈을 감고 숨겨진 지성이 잠재성으로부터 행동으로 모습을 드러내도록 모든 신체기능을 무력화한다. 이때 그들은 가르침을 흡수하고 그것을 영구히 혼에다 새긴다."
- 명상에서 신의 이름을 사용하여 매우 강력한 영적인 힘이 흐르게 할 수 있다. 알보티니는 모세가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하여 신의 이름을 사용하였고 기도하면서 발성한 신의 이름으로 분노와 격정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쓰고 있다. 심지어 그는 10명의 순교자(역주: 제2 성전의 파괴 후에 로마제국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10명의 랍비들)가 신의 이름을 사용하여 구원받을 수도 있었고 바빌로니아와 로마 제국이 저지른 예루살렘 파괴도 방지할 수 있었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이것을 하지 않은 것은 이것이 신의 뜻이었다고 보았다.
- 탈무드는 메시아가 오시는 것을 부적절하게 재촉하지 않으려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행한 3가지 서약에 대하여 언급한다. 이것은 "예루살렘의 딸들이여, 내 사랑이 원하기 전까지는 내 사랑을 일으키지 말고 깨우지 마세요(아가 3:5)."에 근거를 둔다. 이 서약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었고 일부 랍비들은 이것을 시온주의(역주: 과거에 나라 없이 떠돌던 유대인들이 조상의 땅이었던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던 민족주의 운동)를 반박하는데 이용하였다.
- 알보티니는 이 서약에 대하여 매우 참신한 해석을 제공한다. 그는 카발라 명상가들이 구원을 서두르기 위하여 그들의 명상기법을 사용하지 말라는 서약에 묶여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메시아의 오심이 우주의 교정을 위하여 필요한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신의 이름에 대한 신비를 알았던 현자와 성인들은 신이 구원을 바란다는 것을 알 때까지는 구원을 불러일으키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였다."
- 그러나 카바나의 문은 조하르의 간행자인 랍비 모세 데 레온(Moshe de Leon, 1238~1305)에게는 잘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 1292년에 저술된 "세켈 하코데시(Shekel HaKodesh, Holy Coin)"에서 모세 레온은 이들 빛의 의미를 분명하게 설명한다. 조하르에도 불과 관련하여 여러 색상이 나오지만 조하르 간행자인 모세와는 상당히 다르게 보인다는 점이 흥미롭다.
<"카바나의 문"에서 발췌>
- 수행자가 무언가에 마음을 집중하면 그 에센스가 그에게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기도하거나 어떤 개념에 대한 참된 속성을 이해하기 바란다면 다음의 방식을 따르라.
[자신을 빛으로 생각하고 주변 모두를 또한 빛으로 상상한다. 이 빛 가운데 빛의 옥좌가 있다. 이 옥좌 위에 노가(Nogah)로 불리는 불빛이 있다. 이것을 향하여 보면 또 다른 옥좌가 있다. 이 두 번째 옥좌 위에 토브(Tov)로 불리는 빛이 있다. 그대는 이 두 빛 사이에 서 있다. 복수를 원한다면 노가로 돌아서고 자비를 원한다면 토브를 향해 돌아서라. 그대가 말하는 단어들은 이 빛을 향해야 한다.]
- [그리고 오른편으로 돌아서면 또 다른 빛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바히르(Bahir)라 불리는 빛이다. 왼편으로 돌아서면 조하르(Zohar)라는 빛을 보게 된다. 이 두 빛 사이와 그 위에 카보드(Kavod)라는 빛이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하임(Chaim)이라는 빛이 있고 그 위에 왕관이 있다. 이것은 소망에 왕관을 씌워주는 빛이고 상상의 길을 밝히는 빛이고 비전의 광명(조하르)을 더욱 밝히는 빛이다. 이 빛은 끝이 없고 깊이를 잴 수 없다. 영광(카보드)으로부터 소망과 축복과 평화와 생명(하임)과 모든 선함(토브)이 나와서 합일의 길을 걸어온 사람에게로 향한다.]
- 이 빛은 길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지고 빛의 반대 속성으로 변해버린다. 그리고 비난과 징계의 결과를 낳는다. 참된 길은 똑바른 길이며 개인의 집중(카바나) 정도에 따라 이 길이 결정이 된다. 수행자는 헤아릴 수 없는 빛의 힘으로부터 나오는 진리에 자신의 생각과 소망을 다하여 집중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집중의 강도에 따라서 그는 소망을 통하여 힘을, 지식을 통하여 소망을, 생각을 통하여 상상을, 노력을 통하여 강인함을, 관조를 통하여 인내를 전할 수 있다.

- 이런 방식으로 접근할 때 최고 의지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그가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을 때까지 그의 힘을 증대시키고 그의 의지를 자극한다. 이것은 최고 의지가 지니지 않은 개인적 소망까지도 포함한다.
- 이에 관하여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다.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신의) 의지를 구하라(잠언 11:27)."
- 불타오르는 빛(노가의 빛, nogah)과 같다. 이것은 드러나 보이지는 않는다. 이 눈부신 빛의 영역은 노가의 빛을 위시하여 4개의 집중(카바나)의 길 사이에 위치한다. 여기에는 "하늘의 광명"처럼 빛나는 바히르(Brilliant), 조하르(Radiant) 그리고 무바크(Scintilating) 빛이 포함된다.
- 4가지 형태의 눈부신 빛은 "바히르 빛", "조하르 빛", "무바크의 빛" 그리고 "조하르 빛"을 받는 빛이다. 물질 빛은 늘 영적 빛으로부터 빛을 받는다.
- 4가지 형태의 불이 있고 이들은 신이 모세에게 보여준 불이다. 이들은 붉은 불, 노란 불, 하얀 불, 검은 불이다. 신은 모세에게 4형태의 불에 대하여 이야기했고 시나이 산(Mount Sinai)에서 그에게 보여주었다. 4개의 불은 논쟁 중인 4개의 빛(luminations)과 대응한다, 신비주의 입장에서 이들 4개의 빛은 신이 모세에게 보여준 "빛의 군단"이다.
- 한편으로 논쟁 중인 빛이 있는데 이 빛은 숨겨지고 감추어진다. 감긴 눈에 보이는 빛이 회전할 때 참된 조하르 빛이 회전한다. 이것은 결코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빛이다. 이것은 숨겨져 있어 보일 수가 없다. 이 숨겨지고 감추어진 빛에 대하여 모세는 이렇게 말한다. "저에게 당신의 영광(Glory)을 보여주소서(출애굽기 33:18)."
- 이 빛이 논쟁 중에 있는 4개의 빛 즉 바히르 빛과, 조하르 빛과 무바크의 빛과 그리고 조하르 빛을 받는 빛을 낳았다. 이들 빛은 볼 수 있는 빛이다. 바히르 빛은 반사 능력이 있는 빛나는 유리거울이다. 조하르 빛은 빛을 흡수하는 유리이다. 이것은 빛나는 빛 가까이에 있을 때 말고는 인식이 될 수 없다. 무바크 빛은 모든 빛의 칼라를 인식할 수 있는 빛나는 유리이다. 이 색상들을 통하여 다른 모든 유리가 빛이 난다.
- "조하르 빛을 받는 빛"은 빛나지 않는 유리이다. 이 빛은 태양의 빛을 받아들이는 반사경처럼 모든 빛을 받아들인다. 태양빛은 "조하르 빛을 받는 빛" 안에서 인식이 된다. "조하르 빛을 받는 빛"은 모든 색상을 흡수하고 이들 색상은 이 빛 안에서만 보인다. 다른 색상의 빛이 이 빛 가까이 와서 이 빛 안에서 빛이 날 때, 이 빛은 이들 색상을 흡수하고 모은다. 이때 색상의 특징이 인식이 될 수 있다. 이 빛은 그다지 밝지가 않아서 좀 더 쉽게 드러난다. 반대로 조하르 빛은 너무 밝아서 눈이 전혀 감지할 수가 없다. 이것은 빛이 너무 강하여 눈으로 볼 수 없는 태양빛 같다. 그러나 덜 빛나는 빛(조하르를 받는 빛)은 감지될 수 있고 드러날 수 있어서 눈으로 볼 수가 있다.
- 이 색상을 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빛 안에 숨겨지고 그 위에 놓여있는 다른 색상들을 인식할 수 있다.
- 다른 높은 색상이 이 빛 안에서 인식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관조해보라. 그들은 눈으로 보이는 빛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은 반짝이고(무바크) 빛나게(조하르) 보이지는 않는다. 예언가와 깨달은 자들은 빛나지 않는 유리인 "조하르 빛을 받는 빛"을 통하여서만 이것을 보았다. 그들이 실제로 본 것은 빛나는 유리인 조하르 빛이었다.
- 그대가 이들 단계를 조사하면 이 모든 것이 하나임을 알게 될 것이다.
- 촛불을 응시하라. 그러면 촛불 밑바탕에 검은 빛을 그리고 꼭대기에는 바히르 빛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두는 하나의 신비이고 하나의 빛이고 어떤 분리도 없다.
<셰켈 하코데시(Shekel Hakodesh)>
- 10개 세피로트(신의 발출, 빛)에 대한 내용은 카발라의 핵심이 되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카발라 명상 어느 곳에서도 이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을 찾기가 어렵다. 물론 약간 언급은 하지만 그 내용은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보잘것이 없다. 유명한 초기 카발리스트들이 최고 수준에 이르기 위한 사다리로 세피로트를 이용하여 명상하였음을 암시하는 글이 다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사용한 방법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일반적으로 초기 문헌은 명상과 세피로트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그러나 단 하나의 예외가 있는데 이것은 랍비 요세프 기카탈리아(1248~1323)가 저술한 '샤레이 오라(Shaarey Orah, 빛의 문)”라고 하는 책이다.
- 위대한 카발리스트로 인정받고 있는 기카탈리아는 카스티야(Castile, 스페인의 옛 왕국)의 메디나 셀리(Medina Celi)에서 태어났다. 그는 젊은 시절에 아불라피아의 영향 아래에 들어갔다. 아불라피아는 그에게 자신의 체계를 분명하게 가르쳤다. 가르침을 받고 즉시 그는 자신의 첫 번째 책인 "기나트 에고즈(Ginat Egoz, 호도 정원)"을 저술했다. 이 책 제목은 "나는 호도 정원(Nut Garden)으로 내려갔다(아가 6:11)"에서 암시가 된다.
- 유일한 이름 YHVH(יהוה)는 우리 창조자의 에센스를 의미하고 모든 것은 이 이름에 의존한다. 그러나 첫 번째 문 즉 우리가 신에게 이르기 위하여 들어가는 통로는 아도나이이다. 이것은 가장 낮은 수준의 신이다. 아도나이 수준으로부터 그 위로 올라가면 우리는 단일성의 신비를 보게 된다. 그 아래는 분리의 세계이다. 아도나이는 창고나 금고와 같다. 이것은 모든 영적 통로를 통하여 YHVH로부터 보내지는 유입과 발출을 보관한다.
- 3개의 이름이 있는데 하나는 다른 것 위에 있다. 아도나이는 바닥에 있고 YHVH는 중간에 있고 에흐예는 꼭대기에 있다. 에흐예로부터 모든 종류의 질료가 발출되고 이것은 무한(아인 소프)인 모든 것의 근원으로부터 온다. 그리고 이것은 축복받은 이름인 YHVH에 도달할 때까지 일련의 단계를 통하여 진행이 된다. YHVH로부터 모든 영적인 통로로 힘이 흐르고 밀려온 힘이 아도나이에게 전해진다. 그러므로 아도나이는 왕이 고안한 모든 것들을 보관하는 창고이고 아도나이의 에센스는 이들을 창조물에게 배분한다. 아도나이는 자신 안에 있는 YHVH의 힘을 통하여 모든 창조물에게 양분을 공급하여 창조물을 유지시킨다.
- 자신을 YHVH에 결속시키려고 접근하는 사람들은 아도나이의 명령으로 들어가거나 떠난다. 아도나이를 통하지 않고는 YHVH과 결합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아도나이는 유일한 이름인 YHVH의 금고이다. 이것은 YHVH가 거주하는 궁전이다.
- 이에 관하여 성경은 이렇게 나와 있다. "그대의 손(yadekha, ידך)을 펴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시편 145:16)." 그러나 여기서 모음을 넣고 읽을 때, "그대의 손" 즉 Yadekha(ידך)로 읽지 말고 "그대의 요드" 즉 Yod-ekha(יודך) 의미로 읽어야 한다. 이 말은 신이 소망의 원천인 YHVH(יהוה) 안에 있는 요드(י)의 신비를 열었다는 의미이다. 이때 신은 요청하는 모든 사람의 소원을 충족시켜 준다.
- 신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사람은 10개 세피로트를 관조 명상해야 한다. 그는 신의 의지와 신의 소망을 아도나이인 최종 소망으로 가지고 내려와야 한다. 이때 세피로트는 그를 통하여 축복받고 그는 세피로트를 통하여 축복받는다. 이것이 "지상(말쿠트)에서 자신을 축복하는 사람은, 아멘의 신에 의하여 자신을 축복하도다(이사야 65:16)."의 신비이다. 여기서 단어 아멘(Amen, אמן)은 신비를 통하여 축복이 에흐예와 YHVH(야훼)로부터 아도나이로 전해진다는 것을 암시한다.
- 이것으로부터 그대는 기도할 때 내가 설명한 방법으로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대는 세피로트를 통합하고 이들을 서로에게 가까이 가져와야 한다. 기도할 때 그대는 집중하고 하나의 세피라(세피로트의 단수형)에서 다른 세피라로 하나의 소망에서 다른 소망으로 상승해야 한다. 무한이라 불리는 최고 의지의 근원에 도달할 때까지 이러 이런 방식으로 계속해야 한다.
- 세피로트의 상승과 이들 간의 합일은 그대의 집중이 의지의 근원에 도달할 때까지 일어나는 일이다.
이것은 천상의 빛 안에 있는 어떤 장소에 자신을 결속시키려는 사람과 같다. 아도나이(말쿠트)는 상승하여 비나(이해)와 결속하려고 열망한다. 이때 YHVH는 엘로힘으로 발성된다.
- 신의 이름이 야훼, 주님(YHVH, Adonoy)으로 쓰여 있으면 이것은 채널을 통하여 아래로 내려와 아도나이에 도달하는 신성한 비나(이해)의 유입에 대한 신비를 의미한다. 이것이 일어날 때 온 우주가 축복받는다.
- 위대하고 영광스럽고 경외감을 주는 이름 YHVH(야훼)는 토라에서 언급이 되는 다른 모든 신의 이름을 포함한다. YHVH에 포함되지 않은 신의 이름은 없다. 이것을 안다면 그대가 이 이름을 발성할 때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지를 알 것이다. 이 이름을 발성할 때 입에 모든 신의 이름을 담아야 한다. 이것은 입과 혀가 모든 신의 이름을 운반하듯이 그리고 그 안에 우주와 모든 것이 있듯이 발성하는 것이다.
- 이것을 이해한다면 그대는 3번째 계명 "너는 너의 신 야훼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출애굽기 20:7)."를 이해할 것이다. 보잘것이 없는 인간이 지상과 하늘에서 모든 창조물을 떠받치는 위대한 이름 YHVH를 어떻게 혀로 담을 수 있겠는가? 심지어 장작 패는 도끼처럼 어떻게 이것을 자신의 개인적인 필요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겠는가?
- 혀를 움직여 YHVH를 발성할 때 그대는 하늘과 땅의 온 우주가 뒤흔들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천사들이 일어나서 서로에게 "왜 우주가 흔들리는 거지?"라고 묻는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한다. "사악한 누군가가 신의 이름을 입으로 발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진동의 결과로 이 이름에 의존하는 모든 이름과 칭호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하늘과 땅이 흔들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이유 없이 신의 이름을 발성하여 우주를 흔든 사악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이날 죄를 저질렀고 다른 날에는 악행을 저질렀다." 그 결과로 그의 모든 죄는 소환된다. 그대가 나무 기둥을 흔들 때 나무의 모든 가지와 잎이 흔들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신의 이름 YHVH를 발성할 때 하늘과 지상의 모든 것이 흔들린다. 왜냐하면 만물은 이 신의 이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 이런 일에 영향받지 않는 유일한 장소가 성소(Holy Temple) 안이다. 제사장이 사원에서 이 이름을 발성할 때 하늘의 모든 천사들이 기뻐하고 신성한 유입이 일어난다. 제사장이 이것을 할 때 그는 상위의 모든 채널을 바르게 교정하게 되고 축복이 우주 만물에 내린다.
- 성자들은 아도나이가 혼자 있을 때 아도나이 속성과 접촉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케테르(왕관)와 그리고 자비와 관련이 있는 다른 신의 이름으로 아도나이에 사랑과 선함을 전하였다. 다윗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아도나이, 말쿠트)은 자비로 가득하고 진실하시며 좀처럼 화를 내지 아니하시는 신(엘, 헤세드, 사랑)이십니다. 저를 굽어보시고 불쌍히 여기소서(시편 86:15)."
- 이것을 이해한다면 많은 천궁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예언자와 성자들은 마르고 비어있는 아도나이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사랑과 자비의 채널이 아도나이로 향하게 했다. 탈무드 성자들은 모든 것이 아도나이로 전송될 때까지 통로를 바르게 하여 자비와 관련이 되는 신의 이름이 아도나이로 향하게 하는 법을 알았다. 그들은 통로를 통하여 아도나이에 집중하는 법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은 세상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었다.
- 중간 기둥(Middle Pillar)의 신비인 축복받은 이름 YHVH는 아타(Atah, Thou, 그대)로 불린다. 이것은 신의 모든 기치와 호칭의 신비이다. 신은 기치와 호칭으로 채워져 있고 이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이것이 단어 아타(Atah)의 신비이다.
- 이 신비는 우주 만물과 모든 메르카바가 문자치환을 통하여 창조되었다는 것을 가르친다. 이것은 세페르 예치라에서 발견이 되는 카발라 전승인데 세페르 예치라에는 문자치환과 문자 사이클링(cycling)에 대하여 나와 있다.
- 22문자의 치환을 통하여 하늘과 땅과 그리고 모든 생명들이 창조되었다. 이것에 대하여 알고 깊게 생각하라.
- 그러므로 문자치환은 가장 깊은 심연에 이르는 문이다. 문자치환을 통하여 지혜의 깊이를 알 수 있고 모든 창조의 신비를 알 수 있다. 또한 메르카바의 구조와 남녀의 신비를 알 수 있다.
- 아타(אתה)의 신비에는 22문자의 치환과 문자 사이클링(cycling)이 숨겨져 있다. 아타의 첫 번째 두 개 문자는 알레프(א)와 타우(ת)이다.
이 두 개 문자는 히브리 알파벳의 처음과 끝 문자이고 모든 메르카바의 시작과 끝이다. 이것은 세페르 예치라에 나오는 "말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이 10개의 세피로트는 불타오르는 석탄과 그 불꽃처럼 끝과 처음은 결합되어 있다."의 의미이다.
- 이것이 22 문자의 신비와 비나의 5개 통로의 신비이다. 이 신비를 통하여 하늘과 땅의 만물과 모든 형태의 메르카바가 그려진다.
- 이것이 토라의 신비이다. 토라는 22문자로 쓰여 있고 5권의 책(모세 5경)으로 구성된다. 5는 히브리문자 헤(He)의 숫자 값이고 헤는 아타(אתה)의 마지막 문자이다. 이 모든 것, 즉 알레프(א)와 타우(ת)와 헤(ה)가 합쳐져서 아타로 소리가 난다.
- 여기에서 내가 준 열쇠에 대하여 관조 명상하라. 그대는 자격이 되므로 열쇠를 가지고 많은 자물쇠로 채워진 문들을 열 수 있을 것이다.
- 호크마(지혜)는 토라에서는 드러난 어떤 것으로 불린다. 그 이유는 첫 번째 세피라 케테르(왕관)는 모든 눈으로부터 감추어지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것에 대하여 관조할 수 없으므로 이것은 공(Nothingness)으로 불린다. 누군가 케테르를 찾는다면 그는 공을 만날 것이다. 아무도 그 깊고 깊은 깊이와 우월함을 관조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어떠한 문자로도 이것을 함축할 수 없어서 요드(yod, י)의 꼭대기가 이것을 나타낸다. 생각이 시작되고 배열이 처음 드러나는 것은 2번째 세피라인 호크마(지혜)이다.
- 메르카바를 응시하는 것은 하강하는 것으로 불리며 그래서 성자들은 "메르카바로 내려간다"라고 말한다. 메르카바를 응시하는 사람은 먼저 빛의 장소인 최고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야 한다. 여기서 그에게 통찰력의 유입이 일어난다. 이때 그는 내려가서 메르카바를 들여다본다.
- 호크마는 "두려움(경외)"으로 불린다. 왜냐하면 호크마의 높고 깊은 장소에 도달할 때 사람은 당황하여 적절한 한계를 너머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에 관하여 세페르 예치라는 이렇게 말한다. "10개 세피로트에 대하여 입으로 평가하지 말고 이들을 생각할 때 마음을 경계하라. 마음이 흐트러진다면 다시 마음을 원래 상태로 가져오라."
- 호크마의 깊이와 본질에 대하여 생각할 때 그는 두려움과 공포의 장소로 들어가기 때문에 자신의 장소로 돌아와야 한다.
그러므로 두려움이란 단어가 일어나면 그것이 호크마(지혜)라고 생각하라. 그것은 크기도 경계도 없는 경외의 장소이므로 마음은 그것을 이해할 힘이 없다. 이것에 관하여 이렇게 암시가 된다.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은 지혜(Wisdom)요 악을 떠남은 이해(Understanding) 이니라(욥기 28:28)."
- "그가 신을 두려워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면 그가 원래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기카탈리아가 "빛의 문(Shaarey Orah)"을 저술한 후에 세고비아(Segovia)에 살았는데 이때 랍비 이삭은 기카탈리아를 동시대의 위대한 카발리스트로 평가했다.
- 아불라피아와 이삭이 명상기법을 설명한 동시대 사람이기에 이 두 사람 간의 연결점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그들이 랍비 바루흐 토르가미(Baruch Targomi)라는 분을 스승으로 모셨을 가능성이 있다. 나는 이삭이 7개의 신비 봉인(Seven Mystical Seals)에 대하여 언급을 하는 미완의 필사본을 가지고 있다. 그는 7개의 신비봉인을 노하니엘 가온(Nohaniel Gaon ?)의 작품으로 언급한다. 그러나 어떤 책에서는 이것이 람반(Ramban, 모세 벤 나흐만)의 작품으로 언급이 된다. 이삭은 이 필사본 여러 곳에서 자신이 바루흐라고 하는 랍비로부터 이 신비 봉인의 의미에 대하여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자신의 토라 주석서에서도 그는 여러 번 바루흐에 대하여 언급한다. 이 사람은 아불라피아의 스승이었던 랍비 바루흐 토르가미가 분명해 ...

- 그대가 결합(Devekut)의 신비에 대한 비밀을 알면 금욕(Hishtavut)의 신비에 대한 비밀도 알 수 있다. 금욕의 신비에 대한 비밀을 알면 명상할(Hitbodedut) 자격이 된다. 명상할 자격이 되면 루아흐 하코데시(Ruach HaKodesh, Holy Spirit, 깨달음)를 얻을 자격이 된다. 여기서부터 그대는 실제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예언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 금욕의 신비를 설명하면서 랍비 아브네르(Rabbi Abner)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
어떤 구도자가 한 명상가를 만나 자신을 그 단체에서 받아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명상가가 "신에게 축복받은 그대여, 그대의 의도는 좋습니다. 그러나 그대가 금욕을 이루었는지 내게 말해주세요."라고 말했다. 구도자는 “스승님,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말씀해 주세요?"라고 했다. 명상가는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그대를 칭찬하고 다른 이가 그대를 모독한다면 그대 눈에는 두 사람이 동등하게 보이는가요?"라고 말했다. 구도자가 "그렇지 않습니다. 나를 칭찬하는 사람에게서 즐거움을 얻고 나를 모욕하는 사람에게서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나 나는 복수를 하거나 원한을 품지는 않습니다."라고 응답했다. 그러자 명상가가 "돌아가시오. 그대는 아직 금욕과 극기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대의 혼은 칭찬이나 비난에 무심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대는 하늘에 그대의 생각을 결속시킬 준비가 되지 않아서 명상할 수가 없습니다. 나가서 겸손함을 배우고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접하는 법을 배우세요. 그렇게 될 때 명상(hitbodedut)할 수 있을 것입니다."
<메이라트 에이나임(눈의 빛)>
- 자아격리(명상, hitbodedut)의 수준에 도달하는 사람은 이번 생에서 평화와 함께 한다. 이 수준에 도달하기 위하여 그는 자신을 3개의 속성에 결속시켜야 하고 3개 속성의 반대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 그때 그는 이 세상에서 평화와 함께 하고 다음 생에서도 마찬가지이다. 3가지 속성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기뻐하고, 명상을 사랑하고, 직위와 명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을 통하여 마음을 복종시킬 수 있다.
- 랍비 이삭이 랍비 요세프 기카탈리아의 제자인 랍비 모세(Rabbi Moshe)의 이름으로 쓴 글이다. 인격과 행동을 완전하게 하려면 최고로 겸손해야 한다. 그는 "모독을 받아도 상대방을 모독하지 않고 경멸을 받아도 응답하지 말아야 한다." 이때 신의 현존이 즉시 그에게 임할 것이고 그는 더 이상 인간에게 배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의 영이 그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 다른 곳에서 이삭은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진리의 길을 걸을 자격이 있는 카발리스트들의 작품에서 이것을 발견하였다.
신을 알기를 바라는 사람이 고쳐야 하는 것으로는 누군가에게 모독을 받아도 상대방을 모독하지 않는 것이다.
- 명상과 마법 간에는 차이가 거의 없어 보일 때도 있다. 카발라의 여러 영역에서 이 양자를 식별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면 마법 주문이 반복되는 과정과 주문이 실제적인 목적을 위하여 만트라로 사용되는 과정은 구분하기가 어렵다. 신 이름이나 주문에 내재하는 초자연적인 힘으로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가 아니면 이것이 이끌어내는 명상상태로 인하여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카발라에서는 만족스러운 답을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마법과 명상은 자주 겹쳐 보인다.
- 이러한 카발라 마법에 관한 논쟁은 1200년대에는 상당히 심하였다. 마이모니데스(1135~1204)는 이런 마법 실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는데 그는 마법이 무지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 어울린다며 이것에 대하여 분명한 어조로 비난하였다. 아불라피아는 마이모니데스의 이런 철학적 이상을 따랐다. 그는 카발라 마법의 비밀 의식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이것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저급한 협잡꾼으로 비난하였다. 반면에 아코의 이삭은 이런 마법 실제에 대하여 인정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논쟁은 16세기까지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아리는 이런 마법실제를 완전히 없애려고 하였고 실천적 카발라로 불린 이들 기법을 강하게 비난하였다. 반면에 아리의 수제자인 하임 비탈은 이들 실제에 친숙하였을 뿐 아니라 사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의 또 다른 유명한 카발리스트인 랍비 요세프 차야흐(Joseph Tzayach, 1505~1573)는 많은 마법 의식에 대하여 설명은 했지만 이들을 사용할 때 동기가 순수해야 한다고 경고하였다. 이 기간 동안 이들 마법의식이 널리 알려져서 사용되었던 것은 확실하다.
- 이스라엘에 살았던 랍비 요세프 델라 레이나(Joseph Della Reina, 1418~1472)는 실천카발라(카발라 마법)의 대표적 실행자였다. 그의 이름으로 많은 마법 공식이 보전되었고 위대한 마법 마스터로 간주되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최종 구원을 얻으려고 자신의 힘을 사용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고 그 과정에서 영적으로 상해를 입었다고 한다. 어떤 설명에 보면 그는 배교자가 되었다고 하고 다른 전언에 의하면 미쳤다고도 하고 자살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의 사례는 마법을 수행하는 것에 대한 경고로 많은 문헌에서 인용이 된다.
- 카발라 마법 학교의 기법은 주문과 부적(amulets)을 수반하는데 이들 기법은 더러 아주 사소한 목적으로 심지어 의문이 가는 이상한 목적으로 사용이 되었다. 여행의 안전, 폭풍의 바다 잠재우기, 난산의 임산부 도와주기 같은 실제적인 목적을 위한 것도 있고 마음 열기와 깨달음 비슷한 것을 위한 것도 있다. 적으로부터 보호를 위한 마법공식이나 심지어 적을 제거하는 마법공식도 있다. 이들 기법 중에는 물고기 잡는 것과 같은 아주 사소한 목적을 위한 것도 있고 도박의 행운을 위한 공식 같은 의심스러운 목적들도 있다. 또한 사랑 마법 공식, 심지어 원하는 여성과 육체적 접촉을 목적으로 하는 공식도 있다. 환각제로 보이는 약초의 사용과 관련이 되는 공식도 있다. 명상과 철학적인 사색에 종사한 카발리스트들은 이런 카발라 마법을 크게 비난하거나 아니면 기피하였다.
- 그러나 실천적 카발라 전승은 아주 오래되었고 더러 왜곡이 되었을지라도 여전히 깊은 명상 상태를 얻을 수 있는 기법들이 존재한다. "하르바 데모세(Charba DeMoshe, 모세의 검)", "세페르 하카스딤(Sefer HaCasdim, 갈대아의 서)", "세페르 하라짐(Sefer HaRazim, 비밀의 서)", 그리고 "세페르 하말부시(Sefer HaMalbush, book of the Garment)" 같은 문헌은 오랜 세기 동안 심지어 탈무드 시기부터 존재하여 왔다.
- 16세기와 그 이전부터 실천 카발라와 관련되는 문헌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문헌 대부분은 단편(斷片) 보다 더 작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로 관련이 없는 불완전한 여러 페이지로 구성되어 한 권으로 제본이 되어 있는 문헌도 많다. 실천카발라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대부분 이런 단편적인 문헌으로부터 온다. 이들 마법 기법들이 포함되어 있는 여러 소책자가 간행이 되었는데 랍비 엘리아후 바알솀 토브(Eliahu Baal Shem Tov, 1537~1653)의 "톨레도트 아담(Toledot Adam, 아담의 세기들)"이 가장 유명하다.
- "체로르 하하임"의 확장판인 "셰이리트 요세프(Sheirit Yosef, Remnant of Joseph)"는 1549년에 예루살렘에서 저술되었다. 이외에도 그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또 다른 책인 "차파나트 파네아흐(Tzafanat Paneach)”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의 작품 중에 3개가 아브라함 카스트로(Abraham Castro)에게 헌정된다. 카스트로는 차야흐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 그의 뒤를 돌보아준 사람이다. 카스트로는 이집트 유대 공동체의 지도자였고 매년 엄청난 돈을 기부한 자선가로 유명하였다. 터키 술탄 셀림 1세(Selim I, 1467~120)는 1517년에 알레포(Aleppo) 전투에서 승리하고 이집트를 정복하였다. 이후 그는 곧 스페인 유대 후손인 아브라함 카스트로를 새로운 터기 화폐를 발행하는 주조소 총책임자로 임명하였다.
- 랍비 차야흐는 아불라피아의 학교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그가 논의하는 많은 개념은 아불라피아의 작품에서 그대로 가지고 온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아불라피아는 케테르(왕관, Keter, כתר)의 최고 수준에 도달하려는 사람은 잘려지지(Karet, כרת)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그는 이 두 단어가 같은 히브리 문자로 구성되었다고 설명하는데 이런 내용이 정확하게 차야흐의 작품에서 언급이 된다는 사실이다.
- "문자"를 의미하는 오티오트(Otiot, אותיות)에 대한 해석에서 이것이 더욱 분명해진다. 이 단어는 타브와 알레프(א), 그리고 타브와 요드(י)로 나누어질 수 있다. 여기서 알레프 문자값은 1이고 요드 문자값은 10이다. 이것은 히브리 문자와 10자리 수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준다고 한다. 이것은 아불라피아의 "오르 하세켈"과 차야흐의 "체로르 하하임"에서 동일하게 논의가 된다.
- 차야흐가 많이 언급하는 책이 바하르이다. 그가 "쇼샨 예소드올람"이나 이보다 앞선 책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 곳에서 "쇼샨 예소드(Shoshan Yesod)"라고 불리는 책에 대하여 말하면서 여기에서 마법사 할라티노(Chalatino the Magician)의 제자인 아라마스(Aramas)라고 하는 사람을 언급한다. 실제로 "쇼샨 예소드 올람"에는 이 마법사에 대한 언급이 없으므로 이 내용은 분실된 여러 페이지 중 하나에 나오는 것일 수 있다. 또한 쇼샨 예소드 올람이 먼저 나온 "예소드 올람"으로 불린 책의 확장판이나 보충판일 가능성도 있다.
- 차야흐가 조하르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수상술을 논하면서 그는 조하르 체계를 따르지 않고 지금도 서양 오컬트 수행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수상술 체계를 사용한다. 랍비 알보티니도 자신의 저서인 "술람 하알리야'에서 조하르를 언급하지 않는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정보이다.
- 이런 이유 때문에 어린 아이는 자주 엄지를 빤다.
- 이것은 그냥 흥미로운 통찰력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작가는 세페르 예치라에 나오는 히브리 알파벳을 5개 군으로 나누어 이것을 이들 5개 개념과 연계시킨다.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서 이것을 5개의 문자치환 방법과 연계시킨다. 그는 "이것에 대해서 이미 논의하였지만 글로 드러내는 것은 허용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글을 끝낸다.
- 더욱 흥미롭고 특이한 것은 그가 10개 세피로트를 손금과 연계시킨다는 것이다. 상위 9개 세피로트에 대한 설명과 3개로 이루어진 쌍은 전통적인 카발라 방식과 일치한다. 가장 낮은 세피라인 말쿠트는 전통적인 수상술에서는 심장 선을 나타내고 아마 금성대(비너스 거들)를 나타낼 수도 있다. 차야흐는 "가운데 손가락 아래에서 시작하여 새끼손가락까지 이어지는 손금은 작은 왕관(말쿠트)을 가리킨다. 이것은 10개의 신성한 세피로트를 둘러싸면서 '앗수르 동편으로 흐른다(창세기 2:14).' 이들(신성한 세피로트)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10개의 불결한 세피로트이다. 이 모든 것은 손금 안에서 암시가 되고 이들 신비를 아는 사람에게는 이해가 된다."라고 말한다.
- 차야흐는 이 체계가 어떻게 사용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그는 서문에서 자신이 이런 방법을 모호하게 만들었다고 숨김없이 말한다. 그는 명상적인 차원에서 이 손금을 관조할 것을 주장한다. "손금이 빛이 날 때까지 응시하면 실제로 세피로트를 닮기 시작한다. 수행자는 앉아서 자신의 손을 응시한다. 손가락에 나있는 선들을 단계로 사용하여 최고의 왕관에 도달할 때까지 손가락의 세피로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다."

- 더욱 흥미로운 것은 마법 사각형(마방진)에 대한 논의이다. 이 숫자배열은 고대 인디아와 중국에서는 잘 알려진 것으로 1400년 초에 콘스탄티노플의 모쇼풀루스(Moschopulus)가 서양세계에 소개하였다. 이것은 고대 카발리스트들에게도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이들 내용은 카발라 문헌에서 많이 논의가 되고 있으며 금속이나 돌에 새겨질 때는 자주 부적으로 사용이 된다. 차야흐는 이런 사용법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으며 "쇼샨 예소드 올람"과 "톨레도트 아담"에 그 내용이 나온다. 유명한 카발라 학자인 랍비 이사야 호로위츠(Isaiah Horowitz, 1560~1630)는 "슈네이루호트 하브리트(Sh'nei LuchotHaB'rit, 2개의 언약 판)"에서 창조의 신비와 관련하여 마법 사각형을 언급한다.
- 가장 기본적인 마법 사각형은 가로와 세로로 3개의 숫자를 채워서 전부 9개의 숫자로 구성된다. 가로와 세로 그리고 대각선으로 모든 숫자 합이 15로 똑같음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가로와 세로, 대각선의 중간을 뺀 양쪽 숫자의 합은 모두 10이 됨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10 이하의 숫자로 이루어진 가장 간단한 마법 사각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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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야흐는 마법 사각형과 행성 간의 관계를 논의하는데 그의 체계는 고대 점성술 그리고 연금술 체계와 매우 비슷하다. 점성술과 연금술 둘 다 고대 전승에서 전해졌다고 하니 비슷한 것이 우연의 일치는 아니다.
- 그러나 차야흐의 체계에서는 행성에 머물지 않고 세피로트까지 나아간다. 이것은 마법사각형의 가로와 세로 숫자가 각각 10개에서 20개까지 배열되어서 표현된다. 이 마법 사각형은 아주 특별한 명상을 위하여 사용이 된다. 여기서 각각의 가로선은 하나의 집이 되고 이 선 안에 숫자는 하나의 방이 된다. 이렇게 하여 케테르(왕관)를 나타내는 가로세로 10개의 숫자로 채워지는 사각형 안에서 첫 번째 집의 첫째 방은 1이고 두 번째 방은 2이고 세 번째 방은 98이고, 네 번째 방은 97이다(p 252~253 표 참조).
- 이 명상체계에서 각각의 숫자는 1천만 파르상(parsang)과 1천만 개의 화려한 빛을 상징한다. 케테르를 나타내는 마법 사각형 안에서 마음으로 방에서 방으로 집에서 집으로 여행하면서 이들 빛을 분명하게 묘사하여야 한다. 이 수련을 통하여 우리는 매우 생생한 방법으로 우리 자신을 세피로트를 통하여 상승시킬 수 있다.
- 케테르를 나타내는 마법 사각형은 그의 작품에서 3번이나 드러난다. 그는 이 사각형을 변화시키거나 개선하려는 것에 대하여 경고를 하면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고인이 된 스승으로부터 이것을 받았다. 이 마법 사각형은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최고의 숨겨진 신비를 암시하므로 이것에다 다른 것을 더하지 말아야 한다. 신의 영광을 고려하지 않고 이것을 개선하려는 사람은 실제로는 이것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각각의 집과 방은 특별한 기능을 지닌다. 그러나 이것은 스승으로부터 배운 것이 아니다."
- 차야흐는 이들 마법 사각형이 어떻게 사용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을 하지는 않는다. 한 곳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집과 방 안에 있는 숫자들의 체계를 자세히 바라본다면 아칠루트계 체계의 신비에 대한 경이로운 개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발광체의 신비를 설명할 권한이 없고, 왜 어떤 방에는 더 많이 있고 어떤 방에는 더 적게 있는지 펜으로 기록할 권한이 없다."
- 그는 이렇게 결론을 짓는다. "이것은 가장 높은 메르카바의 깊은 신비들 가운데 있다. 이것은 책이나 두루마리로 정확하게 기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신비스러운 이유는 어떤 눈도 통과할 수 없는 무한 존재(아인소프)에 의하여 순환되기 때문이다. 신과 신의 이름이 축복되소서! 지성이 있다면 내가 쓴 것으로부터 이해할 것이다."
- 혼자서 명상해야 하는지 교사와 함께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다. 바알 솀 토브는 혼자 하면 위험하므로 동료와 함께 명상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가르쳤다. 차야흐는 이것을 예상하고 이렇게 말한다. "이런 상태로 들어가는데 익숙해질 때까지 처음에는 스승이 그와 함께 있어야 한다. 스승은 제자의 의식이 정상 상태로 돌아오게 도울 수 있다. 제자가 벤 조마처럼 응시하다가 실성하지 않도록 제자가 새로운 의식 상태로 들어가는 비법을 전수받을 때까지 옆에 ... "
- 차야흐는 머리를 무릎 사이에 두는 예언자 자세를 옹호한 마지막 카발리스트로 보인다. 이 자세는 카르멜 산(Mount Carmel)에서 엘리야가 사용한 자세이고 탈무드 성자들이 자주 사용한 자세이기도 하였다. 품베디타(Pumbedita)의 바빌로니아 학당 학장인 하이 가온(939~1038)이 언급한 자세이기도 하다. 약 500년 후에 차야흐는 같은 자세를 언급한다. 그는 명상하는(hitboded) 사람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모든 신체기능이 무력화될 때까지 갈대처럼 몸을 구부려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는다, 감각이 마비된 결과로 그들은 상징이 아닌 참된 비전과 함께 천상의 빛을 본다."
- 이 자세는 마법사각형 안의 집과 그리고 방과도 관련이 된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마방진의 신비로 들어가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말한 것에 집중하라. 방들의 빛과 색상 그리고 문자 조합을 가지고 우리가 논한 방들에 대하여 관조하라(hitbonen). 한동안 이것에 대하여 명상하라(hitboded).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고 시작하라."
- 그리고 그는 예언자 자세에서 말해야 하는 기도문을 보여준다.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Ehyeh Asher Ehyeh), 저에게 왕관(Kether)을 씌어주소서.
야(Yah), 저에게 지혜(Chokhmah)를 주소서.
엘로힘 하임(Elohim Chaim), 저에게 이해(Binah)를 주소서.
엘(El), 그대 사랑의 오른손으로 저에게 위대한 헤세드(Chesed)를 주소서.
엘로힘(Elohim), 그대 무서운 심판(Gevurah)으로 저를 보호하소서.
야훼(YHVH), 그대 자비로 저에게 아름다움(Tiferet)을 주소서.
아도나이 체바오트(Adonoy Tzevaot), 저를 영원히 (Netzach) 지켜주소서.
엘로힘 체바오트(Elohim Tzevaot), 그대의 광휘(Hod)로 저에게 지복을 주소서.
엘 하이(El Chai), 그대의 약속을 저의 토대(Yesod)로 만드소서.
아도나이, 그대 입을 열어 저의 입이 그대를 찬양(Malkhut)하게 하소서.]
- 이 구절에는 10개 세피로트와 이것과 관련되는 신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예언가 자세를 수반하는 유일한 실제적 명상 기법이다. 세피로트를 수반하는 낭송도 특별하다. 차야흐가 이런 초기 기법을 언급하는 것은 그가 이 고대 전승의 상속자였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이다. 아마 이 전승은 하이 가온으로부터 전해졌을 것이다. 차야흐는 성경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유대공동체가 있었던 다마스쿠스에 살았다. 이런 고대 전승들은 이 공동체 안에서 보전되어 왔을 가능성이 크다.
- 사페드의 랍비 모세 코르데베로(Moshe Cordevero, 1522~1570)는 위대한 사변적 카발리스트로 사변적 카발라 철학을 조직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매우 평판이 좋아서 존경의 의미로 머리글자(이니셜)로 불린 첫 번째 카발리스트였다. 오늘날도 카발라 입문자는 그를 "the Ramak, 라막"으로 부른다. 그가 살았던 시대까지는 위대한 탈무드 스승들만이 이런 구별이 주어졌는데 그들이 전승의 충실한 일부분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이니셜 앞에 "the"를 더했다. 예를 들면 랍비 모세 벤 마이몬(Moshe ben Maimon, Maimonides)은 "the Rambam, 람밤"이 되었고, 랍비 모세 벤 나흐만(Moshe ben Nachman, Nachmanides)은 "the Ramban, 람반"이 되었고, 랍비 슐로모 벤 아드레트(Sh'lomo ben Adret)는 "the Rashba, 라슈바"가 되었다.
- 라막은 카발라 중심지로 유명한 사페드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아주 비범한 천재로 명성을 얻었다. 카발라에 대한 지식 외에도 그는 탈무드 학자로 그리고 최고위직 철학자로 이 분야에서 크게 존경받았다. 그러나 그의 주된 관심사는 카발라를 철학적 구조로 만드는 일, 즉 카발라의 체계화였다. 이 일은 먼저 랍비 유다 하이트(1462~1529)와 랍비 메이르 카바이(Meir Cabbai, 1480~1547)가 시작하였다.
- "파르데스 리모님(Pardes Rimonim, 석류나무 과수원)", 줄여서 "파르데스'로 알려진 이 책은 그때까지의 모든 카발라 사상을 체계화한 책이었다. 라막이 카발라의 본질적인 동일성을 보여주면서 초기 가르침을 조하르 가르침과 조화롭게 일치시키려고 한 것은 특히 중요하다. 라막은 카로가 유대율법 작품에서 사용한 것과 같은 논리를 사용하여 어떻게 카발라 체계가 자기모순이 없는 철학적 기반을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철학과 카발라가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않는다면 "파르데스 리모님"은 카발라 분석만이 아니라 철학 분석의 고전으로 간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1548년에 이 책을 끝낸 후에 곧바로 그는 알카바츠 그룹의 회원들과 게루쉰(Gerushin, 분리) 명상을 시작하였다. 1548년은 랍비 요세프 차야흐가 예루살렘에서 "셰이리트 요세프"를 완성한 해였다. 라막은 아불라피아의 기법만이 아니라 차야흐의 기법에도 친숙하였으나 그는 게루쉰으로 알려진 기법을 더 선호하였다. 이 기법은 마기드를 소환하기 위하여 사용된 기법과 관련이 있었다.
- [마기드가 선언하였다:
깨끗한 장소에 있을 때면 끊임없이 토라와 나의 미슈나에 대하여 생각하고 신의 경외감에 대하여 생각하라. 밥을 먹거나 말을 하는 동안도 토라를 버리지 말고 경외하라. 그대의 혀는 신체 중에 가장 무거워야 한다. 온몸은 나에 대한 예배와 경외 그리고 토라를 향하여 하나가 되어야 한다. 탈무드가 라브(Rav)에 대하여 말한 것을 기억하라. 그는 평생 쓸데없는 말을 한 적이 없다.]
-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모든 생각을 신의 경외감과 경배를 향하여 합체시켜야 한다. 성경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나의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따르라(잠언 23:26)." 이것은 그대가 계명을 지키거나 토라를 공부할 때 마음이 신에게 하나로 모아져야 하고 그 어떤 것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 [그대가 기도할 때 이렇게 해야 한다. 마음으로 들어오는 모든 생각을 없애라. 악한 충동을 수반하는 사마엘의 힘과 뱀의 힘만이 아니라 악한 충동과 그 주인을 제거하라. 마음을 끊임없이 하나로 모아서 오직 신과 토라 그리고 경배만을 생각하라.]
- [이것이 문자 그대로 자신을 창조자와 하나로 통합시키는 합일의 신비이다. 혼은 자신의 육체가 신이 현존하는 장소가 되도록 자신을 신에게 결속시키고 신과 하나가 된다. 이것은 토라에 나오는 "너의 주님인 야훼를 경외하고 섬기고, 그에게 너 자신을 결속시켜라(신명기 10:20)."의 의미이다.]
- [그러므로 나의 아들아, 완전한 합일을 완수해라. 그렇게 한다면 그때 "나는 그대에게 여기 서있는 천사들 사이에서 걷을 장소를 주겠다." 나는 그대가 이스라엘 땅으로 가서 내가 사랑하는 슐로모(몰호)와 함께 오도록 하겠다.]
<마기드 메샤림>
- 이것은 색상과 세피로트 간의 관계를 적절하게 해석한 것이다. 색상은 세피로트의 기능과 결과를 비유적으로 암시하기 위하여 사용이 된다.
- 세피로트는 시공간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유를 통하지 않고는 그들을 식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피로트를 비유적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색상을 사용할 때 식별이 가능하다. 이때 우리는 하나의 색상에서 다른 색상 간의 관계에 따라 구별되어지는 어떤 것으로 세피로트를 생각할 수 있다.
- 이렇게 색상을 통하여 세피로트의 역동성이 완전하게 드러날 수가 있다. 색상은 "육체의 귀를 편하게 하기 위함"이며 세피로트 개념에 대한 언어적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므로 색상은 세피로트의 역동성에 대한 문으로 작동할 수 있다. 색상은 주어진 세피로트로부터 나오는 감화력을 전하는데도 유용하다.
- 만약 세피라 헤세드(사랑)로부터 자비의 영향력을 전하려면 이 세피라와 관련이 있는 색상에 대하여 명상하면 된다. 자신이 바라는 속성의 색상을 묘사하면 된다. 만약 순수한 자비를 바란다면 이 색상은 순백색이다. 원하는 것이 낮은 수준의 자비라면 사원의 모르타르 색상 같은 흰색이다. 우리는 "카바나의 문"에서 이것을 좀 더 깊게 다룰 것이다.
- 심판의 힘을 전송하여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다면 붉은 옷을 입어야 한다. 그리고 테트라그라마톤(יהוה)을 붉은색으로 묘사하고 그 문자에 대하여 명상한다. 비슷하게 어떤 행동에서 자비를 원해서 헤세드(사랑)의 힘을 전하려 한다면 흰옷을 입어야 한다.

- 사제들에게서 이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그들의 역할은 헤세드(사랑)으로부터 나오는 힘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평화를 상징하는 흰옷을 입었다. 마찬가지로 속죄일에 제사장은 황금빛 옷을 벗고 흰옷을 입었다. 그날 모든 의식은 흰옷을 입고 행해졌는데 황금빛은 심판을 의미하기 때문에 "고소인은 옹호자가 될 수 없다."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흰색은 제사장이 찾고 있는 자비를 의미하였다.
- 같은 원칙이 부적에도 적용된다. 헤세드(사랑)을 전송하기 위하여 부적을 만들 때 빛나는 흰색으로 신의 이름을 써야 한다. 이것은 신의 이름의 효율성을 높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심판을 구할 때 심판과 관련이 되는 신의 이름을 붉은 색으로 그려야 한다. 염소의 피 색깔이 심판을 암시하므로 염소 피가 종종 이런 목적으로 사용이 된다. 이런 정보는 부적을 만드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 신의 이름이 부적에 그려질 때 심판과 관련이 되는 부적은 붉은색으로 그려지고 사랑과 관련이 되는 부적은 흰색으로 그려지고 자비에 관한 것은 녹색으로 그려진다. 이런 내용은 부적을 만드는 기법을 가르친 마기딤(Maggidim, 유대교 유랑 설교가)을 통하여 알려졌다.
- 이 모든 것은 색상이 하늘로부터 전송되는 힘을 위한 통로로 기능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우상숭배자들의 의식과도 매우 밀접하게 관련이 된다. 그들이 분향을 할 때 특별한 별자리의 힘에 영향을 주는 법을 안다. 이들 의식을 수행할 때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과 관련이 되는 색상의 옷을 입는다. 이런 개념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고위사제가 착용하는 흉곽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은 12개의 보석으로 이루어지고 색상이 다른 12개 보석은 12부족의 영적 원천으로부터 힘이 전해지는 것을 암시한다.
- 이런 개념을 거절하지 말라. 연금술사는 흐르는 물을 응시할 때, 안에서 하얀 담즙이 나온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불면증이 있으면 하얀 담즙을 나오도록 자신 앞으로 흐르는 물에 파이프 관을 설치한다. 이렇게 하면 몸에 수분이 증가하고 잠을 잘 수가 있다.
- 이것은 카발라 수행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입문자가 마음을 통하여 위로 올라갈 때 이 방법은 매우 가치가 있다. 눈에 보이는 색상이나 마음으로 묘사되는 색상은 비록 그것이 물질적이라도 영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 당시 27세였지만 그는 연금술, 점성술, 천문학, 카발라 마법 그리고 다른 여러 오컬트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었다. 하임비탈이 처음 아리에 대하여 들었을 때 그는 자신이 훨씬 뛰어난 카발리스트로 생각하였기에 아리를 방문하는 것을 망설였다. 그러나 그가 아리의 뛰어난 비전과 통찰력을 알게 되는데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아리도 이 고상한 영혼의 제자를 알아보았다. 아리는 하임을 가르치기 위하여 자신이 사페드에 왔다고 말하기도 하였고 자신이 하임을 가르치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하임은 카발라 명상의 모든 영역에서 전문가였고 많은 카발라 학교를 알고 있었다. 하임의 "샤레이 케두샤", 특히 4장은 이런 가르침의 문집이다.
- 하임 비탈은 1543년에 사드에서 랍비 요세프 비탈(Joseph Vital)의 아들로 태어났다. 요세프 비탈은 가족이 이태리 반도 끝단인 칼라브리아(Calabria)에서 왔기 때문에 칼라브리안으로 알려졌다. 랍비 요세프는 테필린(Tefillin)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율법학자였고 그가 만든 테필린 캡슐은 매우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였다. 사페드가 카발라와 다른 유대 사상의 최고 중심지가 되었기 때문에 사페드에서의 하임의 어린 시절은 매우 좋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라막이 "파르데스 리모님"을 끝냈을 때 하임은 5살이었고 그가 7살 무렵에 랍비 요세프 카로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베트 요세프"의 첫 번째 인쇄본이 나왔다. 그가 10살 무렵에는 40년 동안 카이로 랍비 수장으로 봉사한 라드바즈가 사페드로 귀환하였다.
- 사페드에서는 이론적 철학적 형태의 카발라만이 아니라 신비적 형태의 카발라도 번성하였다. 사페드는 손금 보는 사람, 기름으로 점보는 사람, 기타 여러 종류의 점쟁이들로 넘쳐났고 심지어 하임도 수정점과 흙점을 치던 아랍 신비주의들과 교제하였다. 아리가 이런 실제를 반대하였지만 그가 죽은 후 곧 하임은 이들 실제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 성인식 후에 하임은 랍비 모세 알셰흐(Moshe AlShech, 1508~1600)의 제자가 되었다. 알셰흐는 성경에 대한 설교적 주석서로 간주되는 "타라트 마셰(Tarat Mashe)"의 저자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아드리아노플 태생의 그는 그곳에서 요세프 카로 밑에서 공부하였고 나중에는 살로니카에서 요세프 타이타자크 아래에서 공부하였다. 사페드에서 요세프 카로는 마기드(Maggid)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는데 그 내용은 하임이 굉장히 뛰어난 영혼이고 언젠가 중요한 지도자가 될 것이므로 이것을 알셰흐에게 알려서 젊은 하임 비탈에게 관심을 기울이라는 것이었다.
- 하임 비탈이 15세가 된 1558년에 카발라 상황을 영구히 변화시키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것은 이탈리아의 만투아(Mantua)에서 조하르가 처음으로 인쇄가 된 사건이었다. 최고의 신비를 다루는 책을 공개적으로 간행한 것에 대해서는 적절성 논쟁이 크게 일었는데 유력한 권위자인 랍비 이삭 데 라테스(Isaac de Lattes, 1502~1571)가 이것을 허락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제 조하르는 연줄과 능력이 있어 필사본을 구입할 수 있었던 사람만이 아니라 조하르 구입을 원하는 모두에게 이용 가능하게 되었다.
- 또한 이 기법이 라막이 사용한 게루쉰(Gerushin)기법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도 흥미롭다.
또한 4장에서는 이후딤(합일기법)과 관련 있는 명상법에 대한 논의가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것은 다음 장에서 아리의 가르침을 설명하면서 깊게 논의가 되겠지만 기법이 정확하게 설명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샤레이 케두샤"에서는 유사한 기법 하나가 자세히 설명이 되고 있다.
- 입문자는 준비에 하루를 보내는데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고 토라 공부에 전념하고 미크바(목욕)로 준비를 마친다. 그리고 자신을 격리하고 흰옷을 입고 모든 육체 감각을 제거한다. 마음으로는 아라보트(Aravot)로 불리는 최고의 하늘에 이를 때까지 하나의 하늘에서 다음 하늘로 올라간다.
- 입문자가 이 수준에 이르면 그는 하늘을 거대한 흰 커튼으로 생각한다. 이 커튼 위에는 자신이 명상하고 있는 신의 이름이나 문자조합이 있다. 문자는 토라에 사용된 고대 히브리 글씨체(Ashurit)로 쓰여 있다. 모든 문자는 눈부시게 하얗게 나타나고 동시에 특정 세피라와 관련이 있는 색상으로 음영이 되어있다.
- 이런 식으로 문자를 묘사한 후에 문자가 마음 전체를 채울 때까지 이것을 확장시켜야 한다. 각각의 문자는 시야 전체를 채우면서 눈부시게 하얀 산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리고 문자나 신의 이름을 조합하거나 체루프(치환) 기법을 통하여 문자를 치환할 수 있다.
- 이 기법은 랍비 요세프 기카탈리아와 라막이 가르친 신의 이름에 대한 명상 기법만이 아니라 이후딤 기법에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다른 체계의 카발라 명상에서 발견되는 기법들과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아불라피아는 자신의 저서 "하야이 올람 하바"에서 유사한 기법을 언급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문자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뿌리이고 그 자체로 예언의 질료이다. 예언가 비전에서 문자는 단단한 고형물처럼 보이고 이것이 실제로 개인에게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살아있는 천사처럼 보이고 때때로 산처럼 보이기도 한다."
- 매우 비슷한 개념이 아코의 이삭 가르침에서도 발견이 된다. "오차르 하임"에서 그는 신의 이름에 대하여 적절하게 명상하는 방법과 기도하는 법에 대하여 말한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눈앞에 완전히 하얀 불꽃으로 만들어진 책을 심상한다. 읽고 있는 책의 문자와 단어 그리고 문장은 검은 불꽃으로 써 있음을 심상한다. 책을 읽으면서 육체의 눈은 단어에 두고 마음의 눈은 무한(아인소프)에 두어야 한다." 이것은 원래 토라가 "흰 불꽃 위에 검은 불꽃으로" 쓰였다고 가르치는 탈무드를 연상시킨다.
- "샤레이 케두사"의 앞부분은 고급명상을 하기 전에 행해야 할 준비에 대하여 깊게 다룬다. "샤레이 케두샤"는 헤칼로트 가르침만이 아니라 예언가 상태에 대하여도 기술하고 있으며 나는 다른 곳에서 이 자료 상당 부분을 소개하였다.
- (계명)의 준수를 통하여 그리고 숨겨진 동기 없이 토라 연구와 기도에 집중하여 혼을 완전하게 해야 한다. 멍에를 맨 소처럼 육체가 약해질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또한 음식 양을 최소화하고 한밤에 일어나야 하고 가치 없는 속성을 멀리하고 타인에게서 자신을 격리하고 쓸데없는 말을 피해야 한다. 또한 미크바(정결의식, 목욕)를 통하여 계속 몸을 정화해야 한다.
- 이것을 한 후에 신의 경외감에 대하여 명상(hitboded)해야 한다. 마음으로 테트라그라마톤의 문자를 심상해야 한다. 이때 생각은 모든 세속적인 것에서 멀어져야 하고 커다란 열정으로 신의 사랑에 자신을 묶어야 한다. 이것을 통하여 아래와 같은 양상을 보이는 루아흐 하코데시를 얻을 수 있다.
- 1번째 양상은 최고 수준의 혼의 뿌리로부터 자신의 혼에게 최고 빛을 전송하는 것이다. 이런 드러남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깨달음이다.
- 2번째 양상은 토라공부나 계명의 준수를 통하여 온다. 성자들은 "계명을 지킬 때 지지자(천사)를 얻는다."라고 가르쳤다. 이것은 실제로 천사가 사람의 행동에 따라 창조가 된다는 의미이다. 그대가 카바나(Kavanah, 역주: 보통은 집중의 의미이나 기도나 미크바 같은 의식을 의미하기도 한다)와 함께 지속적으로 율법에 따라 행동한다면 천사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것은 여러 작품에서 언급되는 마기딤(Maggidim, 역주: 마기드의 복수형으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동유럽 유대사회의 순회 설교자이고 다른 하나는 천사를 의미한다.)이라 불리는 천사들을 의미한다.
- 세상에는 보통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상위의 인종처럼 보이는 빼어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세상에 가르침을 펴고 수준이 낮은 사람들은 이런 가르침을 조금만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는 산을 세울 만큼 엄청난 정보일 수 있다. 근대 들어 가장 위대한 카발리스트로 여겨지는 랍비 이삭 루리아(아리. 1534~1572)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 그는 통상적으로 아리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 이름은 엘로히 랍비 이삭(Elohi Rabbi Isaac, 신성한 랍비 이삭)의 두문자어이다. 그 어떤 스승이나 성자도 자신의 이름에 엘로히(Elohi, אלהי, Godly)로 시작하는 문자를 가진 적이 없다. 이것은 동시대 사람들이 그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징표이다. 그러나 "신성한"이란 호칭 때문에 겁먹은 후대 사람들이 아리(ארי)의 문자 알레프(א)가 그의 가족이 독일에서 왔다는 것을 가리키는 아슈케나지(Ashkenazi)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원래 의미가 정확한 것이며 오늘날까지도 카발리스트 사이에서는 이삭 루리아만이 "신성한 아리"로 언급이 된다.
- 일반적으로 위대한 지도자가 죽은 후 여러 세대가 지나면 전설적인 인물이 되기가 쉽다. 자신의 시대에는 전혀 전설에 가깝지 않았는데도 전설이 된 사람의 사례도 있다.

- 그는 다른 곳에서는 마찬가지로 "신의 신비가 신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드러나듯이 이것이 나에게 드러났다."라고 쓰고 있다.
- 아리는 토라 정신으로 넘쳐났고 성경, 미슈나, 탈무드, 필풀(Pilpul, 역주: 탈무드에 관한 논의와 논쟁), 미드라시, 아가다, 창조의 운영, 메르카바의 운영에 대하여 완벽하게 알았다. 그는 나무와 새와 천사와 능숙하게 대화를 하였다. 그는 조하르에 설명된 방법으로 얼굴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사람이 행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고 사람들이 미래에 무엇을 할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고 심지어는 생각이 사람들 마음에 들어가기 전에도 아는 경우가 있었다. 그는 미래 사건을 알았고 지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하늘에서 정해지는 것들을 알았다. 그는 윤회의 신비(누가 전생을 가지는지 누가 처음으로 지상에 태어났는지)를 알았다. 그는 사람을 보고 그가 천상의 인간(Supernal Man)과 어떻게 연결이 되어있는지 그리고 아담과 어떻게 연결이 되어있는지 말할 수 있었다. 그는 촛불이나 불꽃 안에서 경이로운 것들을 읽을 수 있었다. 사람을 응시하여 누가 의인의 혼인지를 알 수 있었고, 최근에 죽은 혼인지 고대 시대에 살았던 혼인지를 식별할 수 있었다. 의인의 혼들과 함께 그는 참된 신비를 공부하였다. 사람의 체취로 그가 한 일을 알 수 있었고 조하르를 신성한 아이(Holy Child)에게 돌리는 능력이 있었다. 모든 신비가 그의 품 안에 있고 그가 바라면 언제든지 사용될 준비가 되어있는 것 같았다. 그는 이런 능력을 구하기 위하여 명상할(hitboded) 필요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을 우리 눈으로 보았다. 이것은 전해 들은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시몬 바르 요하이가 살았던 시대 이후 지상에서 본 적이 없는 경이로운 것들이다.
- 이런 신비는 하늘이 금지한 실천 카발라를 통하여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들 기법은 사용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어서 아리는 카발라 고대문헌과 최신 문헌을 여러 해 공부한 다음에 신심과 금욕의 결과로 자동적으로 이런 능력이 생겼다. 그리고 아리는 신심과 금욕, 순수함과 신성함을 강화하여 엘리야가 그에게 계속하여 모습을 드러내어서 직접 입으로 이들 신비를 가르치는 수준에 이르렀다.
- 이것은 레칸티가 진술하듯이 라바드에게 일어난 것과 같았다. 참된 예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깨달음(Ruach HaKodesh)은 엘리야를 통하여 여전히 여기에 현시한다. 엘리야는 "드보라는 예언자이다(사사기 4:4)."라는 구절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나는 하늘과 땅에 맹세하다. 남자건 여자건,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자유인이건 노예건 그 누구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모든 것은 행동에 달려있을 뿐이다."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랍비 하임 비탈>
- 요세프 카로에게 나타난 마기드는 조하르의 내적 의미를 몰라서 종종 실수하였다. 혼은 베리야계에서 오는 데 비하여 천사나 마기드는 예치라계에서 오기 때문에 그러했다. 그러나 성자의 혼은 아칠루트계에서 올 수 있었다. 우리의 스승 아리는 아리크 안핀(Arikh Anpin, 긴 얼굴)의 수준에서 왔다. 이 수준은 아칠루트에서 가장 높은 케테르(왕관) 수준이다.
<프라그의 랍비 모세(Mosheh of Prague, 1630~1705)>
- 아리의 카발라 체계는 문자 그대로 수천 페이지나 되고 많은 사유 영역을 다루고 있다. 이것을 적절하게 요약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사람들이 그렇게 하려고 시도하였지만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뚜렷하게 눈에 띄는 일반 원칙들이 있다. 이들 원칙은 아리의 명상 체계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 아리 체계의 기본 요소는 10개 세피로트와 4개의 세계, 혼의 5개 수준이다. 이들 개념은 조하르에서 폭넓게 다루어지고 있고 라막과 같은 스승들의 가르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아리는 이런 오래된 체계에 근거하여 자신의 가르침을 폈다.
- 조하르를 구성하는 책 중에서 "시프라 데 체니우타(SifraDeTzeniuta, 숨겨진 서)", "이드라 랍바(Idra Rabba, 대집회)", "이드라주타(Idra Zuta, 소집회)"는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책으로 여겨진다. 이들 3권의 책에서는 다른 조하르 문헌에서는 모호한 용어로만 드러나던 개념들이 분명하게 나온다. 다른 문헌에서는 주로 세피로트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만 여기서는 다른 영적인 실체들 즉 파르추핌(Partzufim, 역주: 원초 인간/얼굴, 세피로트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대응시킴)에 대해서 말한다. 아리는 파르핌과 세피로트 간에 존재하는 일대일 관계를 드러내어서 이들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한다.(p320 표 참조).
- 세피로트와 관련이 있는 좀 단순한 카발라 체계가 상위 우주의 정적인 면에 대하여 말한다면 파르추핌 체계는 역동적인 상호작용에 대하여 말한다. 세피로트가 처음 창조되었을 때 그들은 서로 간에 상호작용할 수 없는 단순한 점들이었다. 그래서 서로에게 어떤 것도 줄 수가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한(아이소프)으로부터 받는 것이었고 이런 이유로 이 상태에서는 그들은 "그릇"으로 불렸다.
- 그러나 신의 빛을 받기 위하여 그릇은 신과 연결이 되어있어야 한다.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사이의 기본적 차이는 영적인 영역에서는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세피로트가 물질적으로 신과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유일하게 가능성 있는 관계는 닮음이다. 신의 빛을 받기 위하여 그릇은 최소한 어느 정도는 신을 닮아야 한다.
- 그러나 이것에는 어려움이 생긴다. 만약 신이 최종적으로 주는 존재라면 그릇은 최종적으로 받는 존재이고 이 두 존재는 절대적으로 반대이다. 그릇은 받기 위해서는 또한 주어야만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받고 줄 수 있는 그릇이다. 이런 그릇의 최종적인 표현물이 인간이다. 만약 인간이 신의 빛을 받으려면 먼저 인간은 주는 자가 되어서 신을 닮아야 한다. 이것은 신의 계명을 지키고 영적 질료를 영적 우주에 제공함에 의하여 성취된다. 그러나 인간이 이것을 할 수 있기 전에 자유의지와 자유선택을 가져서 신을 닮아야 한다. 이것은 선과 악이 존재할 때만 가능하다.
- 창조의 첫 번째 단계는 혼돈의 우주로 불린다. 이것은 처음 10개 세피로트였던 그릇은 신의 빛을 받을 수는 있었으나 주거나 상호작용을 할 수 없었던 상태이다. 신을 닮지 않은 세피로트 그릇은 불완전하였고 그래서 빛을 담을 수가 없었다. 그릇은 자신들의 목적을 완수할 수 없어서 빛에 압도당하여 "부서져버렸다". 이것이 "그릇의 깨어짐"에 대한 개념이다.
- 원래의 그릇들은 지금의 아침루트계에 있었다. 그릇이 부서져버리자 깨어진 조각이 낮은 영적 수준으로 떨어졌고 이 수준은 베리야계가 되었다. 이 수준에서 악이 현시하고 악의 근원은 깨어진 그릇의 파편 안에 있다.
- 그릇이 빛을 담을 능력이 없이 창조된 이유는 악이 생겨나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었고 우리가 보았듯이 이것은 그릇의 교정에 필요하였다. 악이 가장 높은 원래의 그릇 안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이 수준까지 악은 교정될 수 있고 그래서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 "그릇의 깨어짐"은 "신이 우주를 창조하고 그들을 파괴하였다."라는 미드라시 구절에서 암시가 된다. 이것은 또한 창세기 36장 끝에 나오는 에돔 왕들(Kings of Edom)에 대한 설명에서 드러난다. 각각의 왕들의 죽음은 특별한 그릇의 깨어짐과 낮은 수준으로 추락을 암시한다.
- 그릇이 깨어져 흩어져버린 후에 그릇은 교정되어 파르핌(Partzufim)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이들 파르핌은 613개로 구성되고 신체의 613개 부분과 대응하고 토라의 613개 계명과 대응한다. 이때 이들 파르추핌은 서로 작용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인간과 토라를 닮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파르핌은 토라를 통하여 인간과 서로 작용할 수 있었고 받는 자만이 아니라 주는 자가 되었다.
- 파르추핌으로 교정된 상태에서 그릇은 신의 빛을 받기에 적합하게 되었다. 아리의 용어로 이 상태는 교정(티쿤)의 우주로 불린다. 아리는 자신이 교정의 우주 안에 있는 파르핌의 신비를 처음으로 드러냈지만 다른 카발리스트들은 혼돈의 우주에 대하여만 언급하였다고 말하였다. 파르추핌은 의인화된 방식으로 계속하여 서로 간에 작용한다. 이런 이유로 성, 출생, 성장의 상징은 아리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초기 카발리스트들은 테트라그라마톤(YHVH)의 4개 문자에 대응하는 4개의 우주(아칠루트, 베리야, 예치라, 아시야)를 말하였다. 또한 이들 4개의 세계 위에는 테트라그라마톤(YHVH)의 요드 문자(Yod, י) 꼭대기에 대응하는 또 하나의 우주에 대한 암시가 있었다. 라막은 이 5번째 우주에 대하여 그것을 차흐차힘(zachtzachim, 광휘)의 우주로 부르며, 조하르에서 이것에 대한 정보를 찾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 그러나 아리는 조하르에서 언급되는 또 다른 신비한 파르프(Partzuf, 파르추핌의 단수형) 영역을 5번째 우주와 동일시한다. 이 파르프는 아담 카르몬(Adam Kadmon, 첫 번째 인간)이고 제1위인 파르프이다. 이 5번째 우주 안에 테트라그라마톤(YHVH)의 4개 문자에 대응하는 또 다른 4개의 수준이 있다. 이들은 테트라그라마톤의 4개 확장으로 보통 그들의 숫자 값인 아브(Ab, צב는 72), 사그(Sag, סג는 63), 마(Mah, מה는 45), 벤(Ben, בן는 52)으로 언급이 된다.(아래표 참조).
- 여기서 자세히 다루게 될 흥미로운 개념은 우리가 이미 앞에서 언급한 천사 대변인인 마기드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는 마기드에 대한 설명만이 아니라 그것이 작동하는 일반적인 구조에 대하여 설명할 것이다. 자세히 다루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개념은 수행자가 자신을 고대 시대에 살았던 성자와 결속시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앞의 하임 비탈의 사례에서 보듯이 이후딤은 성자들 무덤 주변에서 좋은 결과가 나온다. 이런 것에 대한 이론이 깊게 논의가 될 것이다.
- ["샤르 루아흐 하코데시(성령의 문)"에서 발췌]
[예언과 루아흐 하코데시(성령)의 개념 그리고 이들의 다양한 수준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겠다.
올바르고 신앙심 깊은 사람이 토라를 공부하고 카바나(Kavanah)와 함께 기도할 때 중요한 결과가 나와야 정상이다. 조하르에 나와있듯이 막대기로 한번 처도 그 결과로 소리가 나는 법이다. 좋은 명상실제는 확실히 천사와 성령의 창조를 가지고 온다. 조하르에서 언급되듯이 이들은 살아남아 존속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탈무드는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옹호자를 얻는다."라고 가르친다.]
- [티쿠네이 조하르에서 언급되듯이 선과 악의 천사는 둘 다 사람의 말로 창조되고 말에 의존한다. 사람이 토라를 공부할 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숨은 초기 성자들의 혼을 위한 탈 것이 된다. 조하르에서 언급되듯이 이들이 내려와 그 사람에게 신비를 가르친다.]
-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사람의 의도에 따라 결정된다. 사람이 숨겨진 동기 없이 토라를 공부한다면 그 결과로 창조된 천사는 매우 신성하고 고상하고 절대적인 진실을 말하는 것으로 믿어질 수 있다. 토라를 실수 없이 읽으면 천사도 실수가 없을 것이고 그 결과는 신뢰할 만할 것이다. 계명의 준수도 마찬가지이다. 정확하게 지켜지면 매우 신성한 천사가 창조된다. 계명 준수에 부족한 것이 있으면 그 천사에게도 부족한 것이 있을 것이다. 토라 공부로 창조된 천사의 힘은 계명 준수를 통하여 창조된 천사의 힘보다 훨씬 크다.]
- [이들 천사는 많은 책에서 언급이 되는 마기딤(Maggidim)이다. 그들은 개인에게 모습을 드러내어 그들에게 신비를 가르치고 미래 사건을 알려준다. 이들은 계명 준수와 토라 공부를 통하여 창조되는 천사이다. 이들 천사는 개인에게 모습을 가끔 드러내는데 그 조건은 개인의 행동과 혼의 속성에 따라 결정된다. 이것에 대해서는 깊게 다루지 않겠다.]
- [계명을 완전하게 준수하고 토라 공부를 철저히 할 때 진실만을 얘기하는 마기딤이 창조된다. 반면에 진실과 거짓을 섞어 말하는 마기딤도 있다. 그 이유는 계명 준수에 있어서 거짓이나 숨은 동기가 있으면 창조되는 천사가 선과 악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런 천사의 선한 면은 진실을 말하고 악한 면은 거짓을 말한다.]
- [아시야계로부터 창조되는 마기딤은 카바나 없이 행해진 행동으로 창조가 된다. 예치라계로부터 창조되는 마기딤은 토라 공부를 통하여 창조된다. 베리야계로부터 창조되는 마기딤은 토라 공부와 계명 준수를 통하여 수행자의 명상과 생각으로부터 창조된다.]
- 스승인 아리는 마기드가 올바른지 여부를 알 수 있는 기준을 주었다. 마기드는 진실만을 얘기해야 하고 선한 행동을 하도록 자극해야 하고 단 한 번의 예측도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토라의 비밀과 신비를 설명할 수 있다면 확실히 믿을 만하다. 말로부터 그 수준을 알 수 있다.
- 루아흐 하코데시(깨달음)의 신비는 이러하다: 이것은 하늘에서 예언가나 루아흐 하코데시의 자격이 되는 사람에게 보내는 목소리이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는 순수하게 영적이어서 육체 목소리의 옷을 입을 때까지는 예언자의 귀에 들어갈 수 없다. 기도나 토라 공부에 참여할 때 영적 목소리의 외관이 된 육체 목소리는 예언자의 목소리가 된다. 이 목소리는 예언자 목소리로 옷을 입고 그것에 결속된다. 이때 이 목소리는 예언자가 들을 수 있도록 예언자 귀로 들어간다. 육체 목소리가 없다면 이것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 이것은 이렇게 설명이 된다. 우선적으로 하늘에서 보내는 앞선 목소리가 있어야 하고 이것은 예언의 목소리이다. 이 목소리가 예언을 드러내기 위하여 올 때, 개인의 육체 목소리로 옷을 입어야 한다. 이것은 예언을 경험하는 순간에 표현되는 목소리이다. 이것은 "신의 영이 내 안에서 말하고 신의 말씀이 내 혀 위에 있다(사무엘하 23:2)."의 신비이다. "영"과 "말씀"은 그(다윗 왕)의 행동을 통하여 창조된 원래의 목소리이다. 이것은 지금 그의 혀에 있다. 이것은 말을 통하여 입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그의 입이 말하는 것이다. 이때 그는 들을 수 있다. 이것은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세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
- 인간(Supernal Man)이 교정되도록 하는 데 있어야 한다. 신이 인간을 창조하고 토라를 공부하도록 명령하였을 때의 신의 최고 의도가 바로 이것이다.
- 사람이 함양해야 하는 다른 속성들이 있다. 이들 속성에는 겸손함과 겸허, 죄에 대한 두려움이 포함된다. 이 3개의 속성은 최고 수준으로 도야되어야 한다.
- 또한 최대한 피해야 할 속성도 있다. 여기에는 긍지, 분노, 짜증, 천박, 악의적인 험담이 있다. 화를 낼 정당한 이유가 있어도 피해야 한다.
- 앞에서 언급된 5개의 나쁜 속성만큼은 심각하지 않지만 잡담도 피해야 한다. 가족에게도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모든 안식일 규정을 행동과 말로 지켜야 한다. 이것은 깨달음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된다.
- 경외감과 떨림을 가지고 유대회당에 앉아 명상하라. 이 특별한 명상은 성령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된다. 스승은 성령을 얻는 최고의 방법은 주의 깊음을 통해서이고 카바나는 음식에 대한 축복기도라고 가르쳤다. 카바나를 하면 음식에 대한 지배력을 지니게 되고 음식을 먹는 사람을 묶어버리는 껍질(Klipot, 어둠/악)의 힘을 몰아낼 수 있다. 카바나와 함께 음식에 대한 축복기도를 낭송할 때 이런 껍질을 제거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몸이 정화되고 영적으로 맑게 되면 신성을 받을 준비가 된다. 스승은 이것을 많이 강조하였다.
- 한밤중에 일어나 111번째 시편을 낭송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것을 낭송할 때 다른 곳에서 논의가 되었듯이 MNTzPKh(מנצפך) 문자 ...
- 스승께서는 자선 행위나 기도와 함께 사용될 수 있는 명상도 내게 가르쳤다. 이것은 테트라그라마톤에 대하여 명상하고 VH(וה)에서 분리된 YH(יה)를 합일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행하기 전에 "모든 이스라엘 이름으로 존경과 사랑으로 축복받은 신성한 존재(남성)와 그의 신성한 현존(여성)의 이름을 합일하려고 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 그리고 사랑과 존경을 나타내는 문자 YH(יה)와 그리고 축복받은 신성한 존재(제르 안핀, 남성)와 그의 신성한 현존(세키나, 여성)을 나타내는 문자 VH(וה)를 결합시키는 것에 대하여 명상해야 한다. 자선을 행할 때 히브리어로 페루타(Perutah, פרוטה)인 동전 하나를 손안에 쥔다. 그리고 이 단어에 대하여 명상하고 페루타(Perutah, פרוטה)의 문자와 PRaT VH(פרט וה, VH의 한 단위)를 구성하는 문자가 같다는 것을 관조해야 한다.
- 모든 징벌의 뿌리는 그릇이 깨어져 흩어졌을 때 아칠루트에서 베리야계로 떨어진 288개의 불꽃 파편이다. 이것에 1을 더하면 289이 되고 이것은 PRaT(פרט)의 문자 값이다.
- 이들 징벌의 뿌리는 테트라그라마톤(YHVH, יהוה)의 마지막 문자 헤(ה)에 해당하는 말쿠트(왕위, 여성) 안에 있다. 이 헤(ה)를 남성을 상징하는 바브( ו )에 결속시킬 때 이들 징벌의 뿌리는 하나하나(PRaT, פרט) 개선이 된다. 이것은 자선을 통하여 성취가 된다는 의미이다.
- 회개를 바랄 때 시편 20장을 읽고 여기에 2번 나오는 신비의 이름인 YBK(יבק)에 대하여 명상하는 것이 좋다. 이것은 시편 20장 1절(신이 곤궁의 시기에 그대에게 응답할 것이다. Ya'ankha YHVHB'Yom Tzara)에서 처음 나온다. 여기 나오는 단어들의 첫 번째 문자를 합치면 YYBTz(ייבצ)가 되고 문자 값은 112가 된다. 이것은 YBK(יבק)의 문자 값과 같다. 이것은 시편 20장 9절(우리가 부를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Ya'ane'nu B'Yom Kare'nu)에서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기 나오는 단어의 첫 번째 문자를 합치면 YBK(יבק)이다.
- (실천적 카발라에 관하여)
나는 스승에게 실천적 카발라가 후대 카발라 문헌에서 금지되는 이유와 랍비 이슈마엘과 랍비 아키바 그리고 헤칼로트 성자들이 마음을 열기 위하여 무서운 신의 이름을 어떻게 사용하였는지에 대하여 물은 적이 있었다.
스승은 이렇게 답했다:
"그 당시는 붉은 암소의 재가 이용 가능하였고 이것을 통하여 모든 부정에서 자신을 정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모두는 죽은 자에 의하여 더럽혀지고 있고 이런 부정을 제거하는 유일한 수단인 붉은 암소의 재가 없다. 그래서 죽은 자와 접촉한 결과로 생긴 부정과 여러 다른 부정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정화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신성한 신의 이름을 사용할 수가 없고 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은 매우 심한 벌을 받을 수가 있다."
- 랍비 엘리아후 디 비다스는 내 스승에게 "초기 성자들은 어떻게 신의 이름을 사용하였습니까?"라고 질문을 한 적이 있다고 하였다.
- 죽은 후에도, 토라를 공부하고 고급 수준의 이후딤을 명상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에 끼어들어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은 그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 있기도 한다. 이런 성자들은 같은 혼의 뿌리를 공유하지 않더라도 자신들을 사람들에게 결속시킬 수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은 모든 우주를 함께 묶어서 그 모두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 이들 성자는 준비된 사람들에게 토라의 신비를 드러낸다. 조하르에 보면 랍비 함누나와 베나이아 벤 예호이아다가 시몬 요하이의 아들인 랍비 엘리에제르와 랍비 아바(Abba)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함누나가 "내가 성자들을 발견할 때마다 그들을 따라간다."라고 말한 이유도 설명이 된다.
- 성자의 혼이 같은 혼의 뿌리를 공유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낼 때 이 개인은 매우 큰 깨달음을 얻는다. 성자들이 자신들과 혼의 뿌리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모습을 드러낼 수 있지만 그 영향력은 같은 혼의 뿌리를 공유하는 사람에게 더 크게 미친다. 왜냐하면 그때 성자들은 그 사람이 교정되면 자신들도 교정되기 때문이다.
- 만약 어떤 사람이 특별한 이후드로 명상을 시작하다가 중간에 멈춘다면 그는 큰 해를 입을 수 있다. "하루 동안 이후드 명상을 버린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이틀 동안 버릴 것이다." 이 사람에게 결속하려던 영혼들은 그를 포기하고 그를 쫓아버릴 것이다.
- 토라 공부가 더 위대하다고 말하지 말라. 그러나 이후딤을 명상하기 위하여 토라 공부를 게을리하는 것도 좋지 않다.
- 낮은 수준에 있다면 그대는 그 수준에 부합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헌신을 통하여 결속과 깨달음을 높일 수 있다. 이것을 통하여 신은 그대에게 토라의 경이로움을 드러낼 것이고 그대는 예배와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신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 조하르는 성자의 네페시는 무덤에 남고 루아흐는 에덴동산에 있고 네샤마는 영광의 옥좌 아래에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것은 네페시가 아시야계로부터 루아흐가 예치라계로부터 네샤마가 베리야계로부터 근원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혼의 3개 수준인 네페시, 루아흐, 네샤마가 모두 아칠루트계에서 근원하는 성자들이 있다. 이런 경우는 그의 네페시가 아침루트계에 있는 말쿠트로 올라가고 그의 루아흐가 티페레트로 올라가고 그의 네샤마가 비나로 올라간다. 이것은 이들이 자신들의 뿌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무덤에 남아있는 네페시는 아시야계의 네페시이다. "티쿠네이 조하르"는 사그(Sag)로 확장된 테트라그라마톤은 비나(이해)의 여성물의 신비라고 말한다. 이것을 통하여 아들(제르 안핀)이 아버지 파르추프(Partzuf)에게로 올라간다.
- 성자의 혼들은 말쿠트(Female Partzuf)의 여성 물이다. 유사하게 비나(어머니)의 자녀들인 제르 안핀(남성)과 여성은 비나(어머니)의 여성 물로 활동한다. 이때 티페레트(제르 안핀)는 요드가 더해진 YHVH인 아브를 통하여 호크마와 비나를 합치기 위하여 다트(Daat, 지식)의 신비를 통하여 위로 올라간다. 이때 말쿠트는 사그(Sag)로 확장된 테트라그라마톤을 통하여 비나의 여성 물의 신비 안에 남는다. 이것을 잘 이해하라. 이 모든 것을 나의 스승이 쓴 필사본에서 가져왔다. 이어지는 내용은 스승에게 전해 들은 것이다.
- [3번째 이후드] 마(Mah, YOD HA VAV HA)는 YHVH(7)에 알레프(Aleph, א)가 더해진 테트라그라마톤이다. 이것이 스퀘어 되면 문자 값이 130이 된다(표 참조).

- 이것은 "신성한 고대 존재(Atika Kadisha, 아티카 카디샤)"의 입이다. "아티카 카디샤"는 케테르(왕관)의 가장 윗부분에 해당하는 파르추프이고 아칠루트계에서 가장 높은 파르추프이다.
- 이것은 "누가 사람에게 입을 주었느냐?(출애굽기 4:11)"의 신비이다. 이름 마(Mah)는 문자 값이 45이고 이것은 "인간"을 의미하는 아담(אדם)의 문자 값과 같다. 마(Mah)의 스퀘어(square)는 130이고 여기서 마의 문자 값인 45를 빼면 문자 값이 85인 "입"을 의미하는 페(Peh, פה)가 된다. 그러므로 인간(45)에게 입(85)을 더하면 130이 된다. 이것은 입의 외부 에센스(Outer Essence)이다.
- 혀와 함께 나는 치음은 Daleth(ד), Teth(ט), Lamed(ל), Nun(נ), Tau(ת)이다. 이들 음은 아버지(호크마)와 어머니(비나)의 합일, 그리고 YHVH와 에흐예의 합일에 대응한다. 이것은 혀를 의미하는 다트(Daat, 지식)를 통하여 일어난다.
- 그리고 이에서 나오는 치찰음은 Zayin(ז), Samekh(ס), Shin(ש), Resh(ר), Tzadi(צ)이다. 이들은 YHVH와 엘로힘의 합일에 대응한다. 엘로힘(אלהים)은 5개의 힘에 대응하는 5개의 문자로 구성되고 이들은 5개의 치찰음이다.
- 그리고 입술과 함께 소리가 나는 순음은 Beth(ב), Vav(ו), Mem(מ), Pe(פ)이다. 이들은 YHVH와 아도나이의 합일의 신비를 보여준다. 이것은 두 입술의 합일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입의 외면합일이다. 이들 3개 음운에 대하여 명상한다. 치음, 치찰음, 순음은 YHV에 대응한다.
- DTLNTh _ YHV _ דטלנת _ יהו
ZShSRTz _ YHV _ זשסרצ _ יהו
BVMPh _ YHV _ בומף _ יהו
- YHV(יהו)는 문자 값이 21이다. 그러므로 3개의 YHV 문자 값은 63으로 사그(Sag)와 같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이것은 입의 내면의 에센스이고 이곳에서 이들 소리가 나온다.
- 체바오트의 문자 값 499에 대하여도 관조한다. 이것을 완수한 후에 그대가 바라는 이후드를 사용할 수 있다.
- [7번째 이후드] 이것은 앞선 이후드와 많이 유사하다. 이후드를 통하여 입으로 무언가를 지각하기 시작하는데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입만 움직일 수 있다면 이 이후드를 사용한다. 먼저 이 이후드로 명상하고 그리고 원하는 다른 이후드를 사용한다.
- 우선 3개의 이름 에흐예(אהיה)와 YHVH(יהוה), 아도나이(אדני)에 대하여 명상한다. 이들을 아래와 같이 조합한다.
- AYADHHNVYYHH איאדההנוייהה
- 그리고 이들 순서를 거꾸로 하여 명상한다.
- AYAHHDYVNHHY איאההדיונההי
- 이들을 잘 관조하면 원하는 어떤 다른 이후드도 사용할 수 있다.
- [10번째 이후드] 눈을 꼭 감고 시작한다. 1시간 동안 눈을 감고 명상한다. 그리고 아래의 이후드를 사용한다.
- 천사 이름 메타트론(מטטרון)에 대하여 명상한다. 이것을 다음과 같이 3개로 나눈다.
- MT TR ON םט טר ון
- MT의 문자 값이 49임을 관조한다. 이것은 비나(이해)의 49개의 문이다. 이것은 메타트론의 완전한 본질이다. 메타트론의 MT가 YHVH(יהוה)와 에흐예(אהיה)를 조합한 단어와 관련이 되는 것을 명상한다.
- YAHHVYHH יאההויהה
- YHVH는 26의 문자 값을 가지고 에흐예는 21의 문자 값을 가진다. 이 두 개를 합치면 47이 되고 여기에 2개의 이름을 의미하는 2를 더하면 49가 된다. 49는 MT의 문자 값이다.
- 그리고 TR에 대하여 명상한다. 이것은 YHVH(יהוה)와 엘로힘(היםאל)의 조합과 그리고 YHVH(יהוה)와 아도나이(אדני)의 조합과 관련이 된다. 이들은 다음과 같이 조합된다.
- YAHHVHHYM יאההוההיס
YAHDVNHY יאהדיהני
- 이들 모두의 문자 값을 합치면 203이다. 이것은 "우물"을 의미하는 베르(Be'er, באר)의 문자 값이다. TR(טר)의 문자 값은 209이므로 이것이 우물을 의미하는 문자 값이 되려면 6이 더 필요하다. 6은 위에 언급된 YHVH(יהוה)와 에흐예(אהיה)를 조합한 단어(יאההויהה)를 구성하는 문자 중에 앞에 나오는 6개의 문자에서 가져온다. 이들 6개 문자는 YAHHVY(יאההוי)이다. 그러면 이 조합된 문자에 남는 문자는 HH(הה)이다. 이 문자를 메타트론의 마지막 문자 ON(ון)과 함께 관조한다.
- 이것은 "YHVH의 형상(tzelem)"과 관련이 있다.
- YH(יה) 문자는 인간의 머리에 있는 2개의 정신 활동에 대응하고, V(ו) 문자는 정신활동으로 차있는 몸에 대응하고, H(ה) 문자는 남자의 짝인 "토대의 화관(花冠), Coronet of the Foundation"이다.
- 외면 에센스는 "엘로힘의 형상"을 암시한다. 나(하임 비탈)는 이것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잊어버렸으나 이것이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전부이다.
- 엘로힘(אלהים)의 알레프(א)는 인간 안에 있는 케테르(왕관)와 대응한다. 인간에게 케테르는 두개골이다. 두개골은 두 개의 공동(空洞)을 가지며 이 안에 정신활동(뇌)이 머문다. 이것이 케테르인 알레프이다.
- 엘로힘의 두 번째 문자 라메드(ל)는 문자 값이 30이다. 우리는 10의 가치를 정신활동 하나에 배분하므로 이것은 3개의 정신활동(10x3=30), 즉 호크마(지혜), 비나(이해), 다트(지식)를 나타낸다.
- 엘로힘의 세 번째 문자 헤(ה)는 문자 값이 5이다. 이것은 사람에게 있는 헤세드로부터 호드까지 5개의 "지역"을 나타낸다. 헤세드는 오른팔이고, 게부라는 왼팔이고 티페레트는 몸통이고 네차흐와 호드는 양쪽 발이다.
- 엘로힘의 네 번째 문자 요드(י)는 예소드(토대)를 상징한다.
- 엘로힘(אלהים)의 마지막 문자 멤(ם)은 말쿠트이다. 이것은 남성의 짝인 여성 즉 "토대의 화관"이다.
- 이것은 "엘로힘이 그의 형상, 곧 엘로힘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였다(창세기 1:27)." 구절의 신비이다. "형상"은 이 구절에서 2번 ...
- 모든 신비운동 가운데 하시디즘만큼 대중의 상상력을 잡아끈 것도 없다. 전성기에는 수백 만 명의 추종자들이 있었다. 하시디즘에 대하여 많은 글들이 써졌지만 하시디즘의 명상 분야는 보통 무시되거나 생략되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하시디즘 명상은 초기 카발라 명상기법을 탐구하지 않으면 쉽게 그 모습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명상 실제가 하시디즘에 가장 커다란 자극을 주었고 유력한 카발리스트들을 많이 끌어들였다.
- 하시디즘 운동은 1700년도 중반에 바알 솀 토브(Baal Shem Tov, 1698~1760)로 알려진 랍비 이스라엘(Rabbi Israel)에 의하여 설립되었다. 이 운동이 시작되고 50년이 되었을 때 동유럽의 대다수 유대인 사회의 충성심을 끌어내었고 하시디즘 랍비는 많은 유대공동체의 지도자가 되었다. 많은 카발라 문헌이 이 운동의 비호 아래 인쇄되었고 이들 책 중에서 상당수는 처음으로 인쇄가 되었다. 유대사회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고 전체 사회가 카발라 규정에 따르기 위하여 그들의 예배 의례를 바꾸었다. 이전에 카발라가 위대한 학자들만의 관심사였다면 이제는 대중들의 삶의 일부분이 되었고 심지어 아주 평범한 사람도 카발라 용어에 친숙해졌다.
- 이 시기는 이론 카발라가 우월하던 시대였다. 라막과 그가 세운 학당의 카발리스트들은 카발라를 엄격한 이성적 철학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리는 이 체계를 확장하여 크게 발전시켰다. 유럽에서 랍비 요세프 에르가스(Joseph Ergas, 1685~1730)와 랍비 모세 하임루짜토(Moshe Chaim Luzzatto, 1685~1730) 같은 거장들은 논리적 근거에 의거하여 카발라를 철학 체계와 경쟁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카발라의 이론적 측면과 철학적 측면에 대한 집중으로 카발라의 신비적이고 명상적인 측면은 사실상 잊혀졌다. 이 간극을 조정하기 위하여 하시디즘이 나왔고 엄청나게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 라막과 아리 시대에 카발라는 이미 유럽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스페인의 유대인 추방으로 유력한 유대 사상가들이 이스라엘로 많이 들어갔고 또한 이 사건으로 동유럽의 유대인의 삶도 크게 풍요롭게 되었다. 특히 폴란드와 보헤미아(체코 서부 지방)에서 그러했다. 요세프 카로가 유대율법의 권위 있는 법전인 "슐한 아루크"를 저술하였을 때 유럽의 동시대 인물인 랍비 모세 이스라엘리시(Moshe Israelish, 약칭은 라마. 1520~1572)와 모레노 하라브 슐로모 루리아(Morenu HaRav Shlomo Luria, 약칭은 마하르샬. 1510~1573)는 요세프 카로에게 도전하였고 마침내 자신들의 법전을 썼다. 이 무렵에 동유럽의 유대사회는 강해졌고, 루블린(Lublin), 크라쿠프(Cracow), 프라하 (Prague) 같은 도시가 지적 활동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다.
- 동유럽에는 유능한 카발리스트들도 많았다. 그런 인물로는 프라하의 마하랄(랍비 유다 리바, Judah Liva, 1512~1609)이 있었고 그는 카발라에 근거한 많은 작품을 썼다. 그러나 그는 카발라 작품이 아니라 전설적인 골렘(Golem, גלם)을 창조한 일로 유명해졌다. 진흙으로 만들어지고 세페르 예치라의 신비를 통하여 생명이 부여된 골렘은 일종의 인조인간이었다. 골렘 제작에는 강력한 영적 에너지가 필요하였고 이런 에너지는 특별한 명상기법을 통해서 생겨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사용된 명상기법은 아불라피아의 명상기법과 상당히 비슷하였다. 1653년에 프랑크푸르트 출신의 카발리스트 랍비나프탈리 바하라흐(Naftali Bacharach)는 대담하게 자신의 카발라 저서에 이 골렘 제작 공식을 포함시켜 책을 발행하였다.
- 이 시기에 또 다른 중요한 카발리스트로는 랍비 이사야 호로위츠(Isaiah Horowitz, 1560~1630)가 있었다. 그는 유대율법 권위자로 자주 인용이 되는 인물이다. 그는 인생의 10년을 이스라엘에서 보냈는데 여기서 아리의 가르침과 사페드 학교의 가르침을 접하고 그것에 친숙해졌다. 그가 랍비 요세프 차야흐의 작품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의 대표작인 "슈네이 루호트 하브리트(Sh'nei Luchot HaB'rit, 2개의 언약 판)"에는 마법 4각형(magic squares)에 대한 중요한 내용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 이태리 출신으로 1594년 당시에 크라쿠프에 살았던 랍비 마타티아스 델레크레타(Matathias Delecreta)는 요세프 기카탈리아의 "샤레이 오라(빛의 문)"에 대한 중요한 주석서를 간행하였다. 카발라 분야에서 그의 수제자는 "레부시(Levush, Garment)"의 작가로 유명한 랍비 모르데카이 야페(Mordecai Jaffe, 1530~1612)였다. 이 책은 요세프 카로의 법전에 대한 대안으로 쓰였고 "슐한 아루크"를 대체하지는 못했지만 유대율법의 중요한 기준의 하나가 되었다.
- 그는 비밀 결사의 지휘권을 인계받았다. 그는 죽을 때(1703년)까지 50년 동안 수장으로 남아있었다. 그는 자모시치에다 자신의 거처를 만들었고 자모시치의 바알 셈으로 알려졌다.
- 타이틀, 바알 솀은 문자 그대로 "이름의 마스터"를 의미하고 일반적으로 실천적 카발라에 나오는 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법을 아는 사람에게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후대에 와서는 비밀결사(Society of Nistarim)의 지도자가 이 타이틀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만이 언제 신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지를 결정할 권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기간 동안 비밀 단체의 활동은 완전히 비밀에 싸였고 구전으로 전해진 아주 소량의 정보 외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 엘리아후 바알 솀과 자모시치의 바알 솀의 작품으로 알려진 소책자 "톨레도트 아담(Toledot Adam, 아담의 세대)"이 없었다면 이 두 사람이 사용한 방법은 비밀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이 책에는 4장에서 언급한 "쇼샨 예소드 올람"이라는 작품에서 영향받은 것으로 보이는 온갖 종류의 신비 기법이 나온다. "톨레도트 아담"에는 요세프 차야흐가 자세히 언급한 마방진이 나온다. 그리고 이 책에는 아코의 랍비 이삭과 관련하여 앞에서 논의된 7개의 신비 봉인(Seven Mystical Seals)의 인쇄판이 소개된다. 동유럽의 대다수 카발리스트들이 자신의 훈육을 위하여 이론적 카발라에 관심을 가졌지만 이 단체는 실천적이고 명상적인 카발라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 이 결사단체의 중요한 활동은 여성의 신분과 교육 수준을 올리는 일이었다. 이 기간 동안 대부분의 유대 여성은 읽는 법도 배우지 못하였다. 여성이 드물게 유대회당에 나오는 경우에는 예배의식을 외워서 알고 있는 자가카(Zagaka)라고 하는 나이 든 여성이 그들의 예배를 인도하였다. 비밀단체의 회원은 처음으로 여성을 위한 초급교육 체계를 만들었고 이 체계는 거의 전 유럽에서 받아들여졌다. 이 단체의 아내와 딸들은 공부하도록 격려되었고 많은 여성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이런 권리로 뛰어난 학자와 신비가가 되었다.
- 랍비 요엘(자모시치의 바알 솀)이 지도하던 이 시기에 단체는 엄청난 도전에 직면하였다. 그 하나는 1648년에 악명 높은 대학살을 주도한 코사크 지도자 보그단 흐미엘니트스키(Bogdan Chmielnitsky, 1593~1657)의 출현이었다. 이 학살로 폴란드의 수백 개 유대 공동체가 사라졌다. 10년 동안 폴란드 유대사회는 완전히 황폐해졌다. 현장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은 빈털터리로 집에서 쫓겨났다. 수세기동안의 자료가 보관된 도서관은 방화로 소실되었고 과거의 보물은 무자비하게 파괴되었다. 영적인 삶이 붕괴되고 있을 때에 비밀결사는 동유럽의 붕괴된 유대 공동체를 재건하는데 매우 열정적으로 관여했다.
- 두 번째 도전은 단체의 존재 그 자체를 위협하였다. 왜냐하면 단체의 적들은 이즈미르(Izmir)의 그릇된 메시아를 이 단체와 연계시키는데 적극적으로 이용하였기 때문이었다. 사바타이 즈비(Sabbatai Zvi, 1626~1676)는 어린 시절에 카발라 명상 학교에 깊게 관여하였고 심지어 엘리아후 바알 솀의 제자들과 접촉한 것으로 추정이 된다. 적절한 훈련과 감독 없이 명상을 하면 힘에 대한 그릇된 환영을 ...
- 바알 솀 토브의 명상기법에서 아리의 이후딤 체계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토브는 자신만의 이후딤 체계를 가졌으나 보존된 것은 매우 적다. 바알 솀 토브는 아리의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그럴 경우 그 방법을 크게 확장하여 사용하였다.
- 바알 솀 토브의 알려진 몇몇 안 되는 이후딤 중의 하나가 미크바 명상이다. 아리의 미크바 의식은 이미 앞에서 설명이 되었다. 아리의 기법을 하시디즘 창립자인 토브의 기법과 비교하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 [물에 몸을 담그는 이후드]
미크바에 들어갈 때 KNA(קנא) 이름에 대하여 명상한다. 이것은 문자 값이 151이고 헤(Heh, ה)로 확장된 에흐예(אהיה)의 문자 값이기도 하다.
- ALF HH YUD HH אלף הה יוד הה
- 151의 문자 값은 미크바(מקוה)의 문자 값이기도 하다. 그대가 몸을 담그는 미크바(정결 의식을 위하여 몸을 물에 담그는 도구)는 실제로 영적 하강을 한 KNA임을 관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에 몸을 담그고 이 상태에서 이름 KNA에 대하여 명상한다.
- 이름 아글라(אגלא)에 대하여 명상한다. 이 이름은 힘과 관련이 된다. 아글라는 아미다의 첫 구절, 첫 문자로부터 나온다. "Atoh Gibor LeOlahm Adonai, You are strong for the world O Lord" אַתָּה גִבּוֹר לְצוֹלָם אֲדֹנָי의 첫 문자를 합성한 것이다. 두 번째로 몸을 물에 담그고 이 이름에 대하여 명상한다.
- 그리고 ALD(אלד) 이름에 대하여 명상한다. 이것은 신의 72개 이름에서 10번째의 이름이다.
이 이름은 미크바에서 나올 때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나는 출산할 것이다"를 의미하는 Eled(אֵלֵד)로 읽힐 수 있다.
- 아글라(אגלא) 이름에 대하여 관조한다. 알레프(א)는 문자 값이 1이고 기멜(ג)은 3이다. 이를 합치면 달레트(ד)의 문자 값 4가 된다.
그러므로 아글라를 구성하는 문자 알레프와 기멜은 ALD(אלד)에 나오는 달레트(ד)를 형성하기 위하여 결합한다.
- 세 번째로 물에 몸을 담그고 ALD(אלד) 이름에 대하여 명상한다.
- 그리고 네 번째로 물에 몸을 담그고 머리가 물속에 있는 동안 두 개의 이름, ALD(אלד)와 헤(Heh, ה)로 확장된 에흐예(אהיה)에 대하여 명상하고 아래처럼 조합한다.
- ALF A HH L YOD D HH אלף א הה ל יוד ד הה
- 이제 기도의 주제에 대하여 명상한다. 주제가 이 이름 안에 있고 이것을 위로 올릴 때 이것이 돌보아지는 것을 관조한다.
- 그리고 다섯 번째로 물에 몸을 담그고 ALD( אלד )와 에흐예( אהיה )에 대하여 명상하고 이들을 아래처럼 조합한다.
- AAHLYDH אאהלידה
- 그리고 기도의 주제를 최고의 수준인 비나(이해)까지 올리는 것을 명상한다. 그때 모든 것은 순수한 사랑과 자비로 변형된다.
- 초기 카발라 명상가들은 자신들의 명상체험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였지만 그 의식 상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의식 상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한 사람은 바알 솀 토브 같다.
- 그가 언급한 의식의 두 가지 상태는 모힌 데가드루트(Mochin DeGadlut)와 모힌 데카트누트(Mochin DeKatnut)인데 간단하게 가드루트와 카트누트로 불린다.
- 이들 용어는 번역하기가 어렵다. 모힌(Mochin)은 문자 그대로 "뇌"를 의미하고 아리(Ari) 용어로 "정신 활동"을 가리킨다. 그러나 바알 셈이 사용하는 문맥에서 이 모힌은 실제로 "의식상태”로 번역이 되어야 한다.
- 카트누트가 "미성숙" 혹은 "작음"을 의미하는 반면에 가드루트는 "성숙" 혹은 "거대함"을 의미한다. 실제로 모힌 데가드루트의 가장 적합한 번역은 "확장된 의식”이고 모힌 데카트누트는 "축소된 의식"일 것이다. 일반적인 명상 이론에서 보면 명상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의식의 확장이다.
- 바알 솀 토브가 사용한 이들 용어는 실제로 빌려온 용어이다. 아리는 제르 안핀의 파르프에 대하여 말하면서 조하르에서 가장 신비로운 파트인 큰 집회와 작은 집회(Greater and Lesser Idras)에서 윤곽이 드러나는 제르 안핀 파르프(Partzuf of Zer Anpin)의 성장 ...
- 바알 솀 토브의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가 평범한 사람도 사용할 수 있는 안전한 명상 기법을 제시한 것이었다. 초기 명상기법들은 신의 이름과 관련이 되었고 이것은 어쩌면 위험할 수 있는 영적 힘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바알 솀 토브가 가르친 기도 방법은 유대인이 하루에 3번 하는 정규기도 의식과 다르지 않았다.
- 기도 의식의 핵심은 18개의 기도문을 모아놓은 셰모나 에스레(Shemonah Esreh)로 불리는 아미다에 있다. 아미다는 하루에 3번 낭송된다. 이 기도는 예언자 시대가 끝나기 직전에 대의회(Great Assembly)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기도문이 하루에 여러 번 낭송되도록 규정된 이유에 대하여는 여러 의견이 있다. 전체 아미다가 긴 만트라처럼 하나의 명상기법으로 사용되도록 의도되었다는 증거는 상당히 많다.
- 몇 년간 매일 아미다 기도를 되풀이하면 기도를 구성하는 단어에 익숙해져서 기도자는 기도와 완전히 일부분이 된다. 단어를 낭송하는데 정신적인 노력이 필요 없어서 이것은 단 하나의 단어나 구절을 반복하여 낭송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음에서 생각을 정화한다면 아미다 낭송은 사람을 매우 높은 정신 상태로 이끌 수 있다. 이런 효력은 만트라 명상에서 뒷받침이 된다. 이것은 매일 낭송되는 기도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때문에 전체의 어떤 부분에 부족함이 있다면 그 부족함은 전체(the Whole)에도 존재하고 그래서 전체도 그 부분의 부족함을 느낀다. 그러므로 전체의 필요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 단어에서 빛을 볼 때까지 모든 생각을 단어의 힘에 놓는다. 이때 하나의 단어가 어떻게 다른 단어를 비추고 어떻게 단어 사이에서 많은 빛이 나오는지를 볼 수가 있다. 이것은 "빛이 의인에게 뿌려지고 기쁨은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뿌려지도다(시편 97:11)."의 의미이다. 문자 안의 빛은 신의 방들이고 신은 이 방안으로 자신의 감화력을 보낸다.
- 육체에서 혼을 분리시켜라. 이때 혼은 그대가 발성하는 단어 안에 있는 생각으로 둘러싸인다. 그러면 하늘에 있는 여러 우주를 지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는 하나의 우주에 요구되는 힘과 그다음 우주에 요구되는 또 다른 힘처럼 많은 힘을 가지게 된다. 그대 혼이 여러 우주로 상승할 때, 그대 혼이 높이 올라가는 것이 적합한지에 대하여 각각의 우주에서 조사를 받는다. 적합하지 않다면 혼은 그 우주에서 물리쳐진다.
- 외부 생각이 들어오면 이것은 그대가 거부당하고 있는 징조이다. 그러나 그대가 현명하다면 자신을 더욱더 신에게 묶기 위하여 그 생각을 이용할 수 있다. 그 생각은 신이 현존하는 장소의 일부분인 문자들로 구성된다. 그들은 (문자) "그릇의 깨어짐"의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이들 문자를 조합하는 것은 껍질과 섞이게 되는 것이므로 나쁘다. 이것은 다른 것들과 섞인 사탕과자와 같다. 사탕과자 각각은 그 자체로는 좋으나 다른 것과 섞여 있어서 나쁘다.
- 그러나 마음으로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인지 이해하면 그것을 상승시킬 수 있다. 그것이 욕망이나 탐욕과 관련된다면 그것은 사랑의 우주로부터 떨어진 것이고 사람을 쇠약하게 만드는 공포와 관련이 되면 두려움의 우주로부터 떨어진 것이고 긍지와 관련이 되면 아름다움의 우주로부터 떨어진 것이다. 다른 생각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창조의 7일에 부합하는 속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 창조자에 대한 사랑과 경외감을 가지고 이들 생각을 신에게 묶으면 이들 생각은 그들의 뿌리로 돌려보내 진다. 이것은 다른 속성에도 마찬가지이다. 각각의 생각은 그것이 떨어져 나온 속성으로 돌려보내질 수 있다. 그래서 그대는 그 생각을 다시 그 속성에 결속시켜서 그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껍질을 좋은 조합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
- 그대가 이것을 할 때 신은 크게 기뻐한다. 이것은 납치되었던 왕자에 비유가 된다. 왕은 자신의 곁을 떠난 적이 없는 아들에 대한 기쁨보다는 납치된 왕자가 돌아온 것에 대한 기쁨이 더 크다.
- 인간이 자신을 신에게 결속시킬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육체 외에도 많은 껍질이 인간을 신으로부터 분리시킨다. "지구가 신의 영광으로 채워지더라도 신은 여전히 많은 장벽으로 숨겨진다. 그러나 그대가 발성하는 단어로 그대와 신을 분리시키는 ... "
- 바알 솀 토브는 토라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더라도 토라를 읽으면 문자에서 빛을 볼 수 있다고 말하였다. 커다란 사랑과 열정으로 토라를 읽기 때문에 신은 그가 정확하게 읽을 수 없다는 것에는 개의치 않는다. 이것은 부모에게 많이 사랑받는 아이에 비유될 수 있다. 아이가 잘 말하지 못해도 부모는 아이가 무언가를 물어볼 때 크게 기뻐한다. 사랑과 헌신으로 토라의 단어를 낭송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신은 그가 정확하게 읽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고 토라를 읽는 것에만 크게 기뻐한다.
- 어떤 목적을 위하여 신에게 기도하려 할 때 바다의 물방울처럼 그대의 혼이 신의 일부분임을 생각하라. 그리고 신이 그대에게 현존하도록 기도하라. 그대가 하는 기도가 신이 그대에게 현존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을 가져라. 그대가 신에게 잘 결속이 된다면 그 감화력은 그대에게 전해진다. 행복할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손뼉을 친다. 이것은 즐거움이 온몸을 통하여 퍼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의 현존(Divine Presence)에도 마찬가지이다. 신의 감화력은 몸의 각 부분으로 전해진다.
- 기도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다. 그런 날도 기도를 포기하는 대신에 자신을 더욱더 강화하고 신에 대한 경외감을 키워야 한다. 이것은 적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자신을 변장시켜야 하는 전쟁터의 왕에 비유가 된다. 현명한 사람은 움직임으로 왕을 찾아낼 수 있다.
- 그 몸값을 계산하고 있는 사람에 비유가 된다. 아이들은 그에게 와서 "몸값을 지불하여 우리가 풀려나게 해 주세요."라고 말한다.
"자신을 정화하려는 사람에게는 하늘로부터 도움이 온다."고 한다. 이것은 자신을 정화하려는 사람에게 다 적용이 되지는 않기 때문에 좀 이해하기가 어렵다.
- 신 앞에서 커다란 열정을 가지고 기도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때 기도가 바르게 되도록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 깊은 기도 속에 있을 때에도 그대는 여전히 외부 생각에 방해를 받는다. 이때 그대는 "도대체 하늘로부터 도움이 있는 거야" 하면서 의심스러워 할 수 있다. 순수하게 기도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하였고 생각을 정화하였는데 여전히 외부 생각으로 방해를 받는다.
- 이것은 실제로 그 자체로 신의 도움이다. 신은 그대가 이런 생각들을 위로 올리도록 이런 생각을 보낸다. 이런 생각은 우연히 오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그들의 뿌리까지 올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 예를 들면 그대는 어떤 사악한 사랑이나 두려움과 관련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신에 대한 사랑과 경외감으로 자신을 채워서 커다란 열정으로 기도를 완수해야 한다. 이때 그대는 생각 안에 있는 악의 껍질로부터 신성의 불꽃을 끄집어내어 위로 올릴 수 있다. 이것은 하늘로부터 그대에게 주어지는 도움이다.
- 기도의 목소리와 토라 공부의 목소리에 결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래 사건을 드러낼 수 있다.
- 하늘로 올라가기를 원한다면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올라가야 한다. 먼저 500년이 걸리는 여행인 첫 번째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마음으로 이 하늘을 사방으로 확장하여 온 마음을 채우게 한다. 일단 첫 번째 하늘에 서면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하여 마음을 강화해야 한다. 단번에 7개 하늘을 통하여 올라갈 수 없으므로 단계별로 나아가야 한다.
- 상승이 가능한 시기는 기도 중일 때이다. 만약 처음부터 자신을 하늘에 적절하게 결속시키면 즉시 7개 하늘 전부로 올라갈 수 있다.
- 여러 수준을 거쳐서 첫 번째 하늘에 올라가면 두 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첫째는 다시는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둘째는 여전히 더 높이 올라가야 함을 주의해야 한다.
- 그대가 첫 번째 하늘에 있기 때문에 다음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 천사들의 세계인 예치라계에 도달할 때까지 하나의 하늘에서 다음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옥좌의 세계인 베리야계에 올라갈 수 있다.
- 최종적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칠루트계이다. 이 수준에 이르면 그대 생각을 신에게 결속시킬 수 있다.
- 위로 올라가기를 원할 때 그대는 먼저 인간의 형상과 개들의 이미지를 볼 것이다. 이들은 아시야계에 있는 악한 껍질(킬리포트, Klipot)이다. 그대는 자신을 강화하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 육체 없이 혼만으로 하늘에서 말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자신을 육체에서 분리시킬 때 가능하고 이것은 "육체의 분리"라고 불린다. 이 상태에서 그대는 육체 감각을 느끼지 못하고 물질세계를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 온 마음은 천사와 대천사가 있는 천상의 우주만을 표현해야 한다.
- 아칠루트계에 도달할 때 모든 감각이 사라진다. 이때 신과 가장 가까운 느낌 즉 천상의 느낌을 경험한다. 이 수준에서 그대는 미래사건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래 3개의 우주에서도 종종 미래사건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미래사건이 거기에서 공표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하늘에서 다음 하늘로 올라가기 위하여 많이 노력해야 한다. 하나의 하늘에서 다음 하늘까지는 500년의 여정이고 도중에 떨어질 수도 있다.
- 이에 관하여 바알 솀 토브는 "생각을 신에게 결속시킬 때 나는 내 입이 바라는 것을 말하게 한다. 나는 내 말을 신 안에 있는 최고 높은 뿌리에 묶는다. 모든 단어는 하늘에 있는 세피로트 안에서 그 뿌리를 가진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또한 "간혹 나는 잡담하는 사람들 사이에 앉는다. 나는 내 자신을 신에게 결속시키고 잡담하는 사람들의 말을 하늘에 묶을 수 있다."라고 말하였다.
- 신에게 바르게 결속되었을 때 그대는 자신이 바라는 일에 종사할 수 있다. 이때 그대는 일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
- 미츠바의 마지막 두 개 문자(바브와 헤, וה)는 테트라그라마톤(יהוה)의 마지막 두 개 문자이다. 이것은 드러남의 측면이다.
- 그러므로 미츠바의 앞 두 개 문자 요드헤(Yod Heh, יה)는 공의 개념처럼 숨겨진 것이고 뒤의 두개 문자 바브헤(Yav Heh, וה)는 드러난 것이다.
- 이처럼 계명은 숨겨진 부분과 드러난 부분이 있다. 숨겨진 부분은 우리가 이것을 알아낼 방도가 없으므로 계명 준수를 통하여 신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어야 한다. 드러난 부분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에게 도움이 되도록 한다.
- 이것은 신명기에 나오는 "숨겨진 것은 우리의 신, 주님에게 속하고 드러난 것은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속한다."의 의미이다
- "숨겨진 것"은 계명의 숨겨진 부분을 암시하고 이것은 "우리의 신인 주님에게 속한다." 신과 관계에서 우리가 성취하는 것은 우리에게서 숨겨진다. 그러나 우리가 가져오는 신의 감화력은 드러나기 때문에 "드러난 것은 우리와 우리 자녀에게 속한다."
- 매 순간 모든 우주는 신으로부터 영양분(질료)과 생명력을 받는다. 인간은 이 영양분을 모든 세계로 보내는 존재이다. 새로운 영양분을 우주에 가져다주려면 자신을 공의 수준에 결속시켜야 한다. 인간이 자신을 완전히 무력화하고 생각을 공에 결속시킬 때 새로운 영양분이 우주로 흐른다. 이것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영양분이다. 에고가 완전히 무력화될 때까지 신을 경외하여야 한다.
- 유대 문헌에서 명상으로 사용되는 전통적인 단어는 자아 격리를 의미하는 히트보데두트이다. 이 용어가 1천 년 동안 이런 의미로 사용됐지만 사실 이 단어와 가장 관련이 있는 사람은 브레슬로프의 랍비 나흐만(Nachman of Breslov, 1772~1810)이다. 다른 스승들이 히트보데두트에 대하여 간혹 언급하는 수준이지만 나흐만은 이것을 자신의 문헌에서 확실하게 보여준다.
- 나흐만이 가르친 히트보데두트 명상은 고전적 용어로는 내부 지향적인 명상으로 불릴 수 있다. 이것은 이름이나 만트라 같은 어떤 외부적인 것에 집중하는 대신에 마음에 일어나는 생각에 집중한다. 나흐만의 체계에서 수행자는 신 앞에서 하는 기도처럼 기도 상황 속에서 자발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에 집중한다. 이것은 자발적인 기도로 언급이 되지만 나흐만의 히트보데두트는 실제로 전통적인 명상기법 중의 하나이다.
- 나흐만은 카발라 명상의 마지막 스승이었으므로 그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이 카발라 명상에 대한 논의를 결론짓게 된다. 역사적 관점에서 명상 분야를 바라보면 현대에 가까울수록 명상기법은 덜 위험해지고 더욱 보편적이 된다. 헤칼로트와 아불라피아의 기법은 고급스럽고 위험하다. 그래서 상당한 기간을 준비하고 나서 이 기법을 사용하여야 한다. 반면에 아리의 이후딤과 카바노트는 생각과 관련이 되고 그 결과는 위험하지가 않다. 바알 솀 토브는 기도의식을 거의 하나의 만트라로 이용하였고 기도의식을 낭송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나흐만의 방법은 가장 대중적이었고 말 그대로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다.
- 나흐만은 중요한 명상학교의 위대한 스승만이 아니라 이야기 작가(야담가)로 커다란 명성을 얻었고 그의 이야기는 세계 고전문학에 포함되어 있다. 일부 사람들은 그가 아리나 바알 셈 토브만큼이나 위대한 수준에 도달한 카발리스트였다고 생각한다.
- 바알 솀 토브의 증손자인 나흐만은 1772년 4월 4일에 메드제보즈(Medzeboz) 마을에서 태어났다. 나흐만의 아버지 레브 심하(RebSimcha)는 바알 솀 토브의 제자인 랍비 나흐만 호로덴케르(Nachman Horodenker)의 아들이었다. 나흐만의 어머니 페이가(Feiga)는 바알 셈토브의 외동딸인 우델(Udel)의 딸이었다. 하시디즘이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을 시기에 랍비 나흐만이 출생했다. 그의 할례일에 하시디즘 운동에 대한 무시무시한 금지령이 공포가 되었다.
- 여러 가지 점에서 나흐만의 어린 시절은 외증조할아버지인 바알솀 토브의 어린 시절과 닮았다. 그도 산과 들판에서 명상하면서 여러 시간을 보냈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천재적 재능과 신앙심을 감추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였고 장인과 함께 서부 우크라이나의 오사틴(Ossatin)에 정착하였다. 장모가 죽자 장인은 재혼하였고 이에 따라 함께 사는 것이 어려워지자 그는 수마일 떨어진 메드베데브카(Medvedevka)로 이주하여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바알 솀 토브의 직계로 유명하였기 때문에 그는 추종자를 모으는데 어려움이 없 ...
- 위엄 있는 존재인 신의 단일성 속에 자신을 넣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무력화시켜야 한다. 히트보데두트(명상) 없이는 자신을 무력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 신 앞에서 명상하면서 자발적인 생각을 표현할 때 그대는 모든 욕망과 악한 속성을 무력화할 수 있다. 이때 그대의 모든 물질성을 무력화할 수 있을 것이고 그대의 뿌리 안에 속하게 될 수 있다.
- 명상은 밤에 해야 좋다. 밤은 세상이 세속적인 관심에서 자유로워지는 시간이다. 낮에는 세속적인 일에 종사하므로 혼란스러워서 자신을 신에게 결속시킬 수 없고 신 안에 들어갈 수 없다. 세속적인 일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세상은 세속적인 무의미한 것에 매여 있어서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무력화하기가 어렵다.
- 또한 격리된 장소에서 명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시 외곽이나 호젓한 거리 혹은 인적이 없는 장소여야 한다. 명상할 때에 주변에 사람이 없어도 통상적으로 그곳이 사람들이 머무는 장소라면 그 사실만으로 명상을 방해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을 무력화시킬 수 없어서 신 안에 들어갈 수 없다.
- 그러므로 밤에 평소에도 인적이 없는 격리된 장소에서 혼자 있어야 한다. 그곳에서 명상하면서 가슴과 마음에서 세속적인 일을 몰아낸다. 이때 참된 자기 무력화를 할 수 있다.
- 격리된 장소에서 밤에 명상할 때 하나의 욕망과 속성이 무력화될 때까지 많이 기도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다른 속성이나 욕망을 무력화하기 위하여 많이 명상한다. 이런 시간과 이런 장소에서 모든 것을 무력화할 때까지 이런 방식으로 계속 명상한다. 만약 남아 있는 에고가 있으면 그것을 무력화해야 한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계속한다.
- 진실로 이런 무력화가 된다면 그대의 혼은 혼의 뿌리에 들어갈 것이다. 혼의 뿌리는 신이기 하다. 이때 모든 세상은 그대 혼과 함께 이 뿌리에 들어갈 것이다.
- 히트보데두트(명상)은 최상과 최고 수준의 예배이다. 하루에 한 시간이나 그 이상 시간을 내어 들판이나 방 안에서 명상하라. 그리고 생각을 신에게 쏟아라. 진실 되게 신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고상한 말로 신에게 갈구하고 간청하고 탄원하면서 설득과 주장을 하라.
- 이런 명상에 사용하는 말은 일반적인 말이어야 한다. 히브리어로 생각을 표현하기가 어려워서 마음이 말에 몰입이 되지 않을 수가 있다. 우리는 평상시에 히브리어를 말하지 않으므로 히브리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므로 자신의 모국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훨씬 쉽다.
- 매일 사용하는 자신의 모국어로 신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고 마음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말하라. 이것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회개거나 미래에 신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요청하는 애원일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수준에 따라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
- 이런 명상을 하는데 매우 조심해야 한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이것을 하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그러면 그날의 나머지 시간은 즐거울 수 있다.
- 이것은 매우 훌륭한 명상 기법이다. 이것은 최고의 조언을 준다. 신과 관계에서 부족한 것이 있다면 이 방법은 도움이 된다. 신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을지라도 여전히 신에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야 한다. 그리고 신이 그대를 신 가까이 데리고 가도록 요청해야 한다.
- 말문이 막혀서 신에게 말을 할 수 없을지라도 여전히 신과의 대화를 위하여 준비해야 한다. 신에게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 자체로 매우 좋은 일이다. 신에게 말할 수 없더라도 말하려고 갈구하고 열망해야 한다. 이 자체로 매우 좋은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기도를 할 수 있다. 자신이 신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서 신에게 말할 수 없다고 큰소리로 말할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신이 그대에게 자비를 베풀어서 입을 열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 많은 성자들이 히트보데두트(명상)를 통하여서만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대가 지혜가 있다면 이 명상실제의 중요성과 이것이 어떻게 사람들을 높은 수준으로 이끌었는지를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위대하든 낮든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할 수 있는 명상이다. 누구나 이 명상을 따라 하여 최고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이렇게 하는 자는 행복하도다. 115)
- 명상을 일관성 있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매일 신 앞에서 생각을 표현해야 한다. 신에게 말을 할 수 없어도 그래도 단어 하나라도 말해야 한다. 이것은 그 자체로 매우 좋다.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면 단어 하나라도 무수히 반복하여 말한다. 이 단어 하나로 여러 날을 명상하며 보낼 수 있다. 이것은 유익할 것이다. 태도를 굳건히 하고 단어나 구절을 무수히 반복하여 말한다. 신은 결국 그대가 모든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그대에게 자비를 베풀고 그대 마음을 열어줄 것이다. 말은 엄청난 힘을 가진다. 말은 심지어 총이 발사되는 것을 못 하게 할 수도 있다. 이것을 이해하라.
- 그대는 매일 주어진 시간에 자신의 삶을 관조하고 회개하면서 명상할 수 있어야 한다. 매일 이런 마음의 평안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적다. 그대가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면 이런 명상 시간을 가져보지 못했음을 알게 된다.
- 그러므로 그대는 삶을 조용히 성찰하기 위하여 매일 특정한 시간을 내어야 한다. 그대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 그것에 그대 삶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하라.
- 명상하지 않는 사람은 지혜를 얻을 수 없다. 이런 사람은 더러 집중은 하나 집중력이 약하여 장시간 집중을 유지할 수가 없다.
- 명상할 수 없으면 세상의 얼마나 어리석은지도 알 수가 없다. 명상을 통하여 마음이 이완되고 통찰력이 생기면 모든 것이 의미 없음을 알 수 있다.
- 도시 외곽의 초원에서 명상하는 것이 좋다. 초원으로 나가라. 초원은 그대 마음을 깨울 것이다.
- 들판에서 기도할 때 모든 풀들이 그대의 기도 안으로 들어옴을 알라. 그들은 그대를 돕고 그대에게 기도할 힘을 준다. 이런 이유로 기도는 시하(Sichah)로 불린다. 이 단어는 "들판의 모든 풀(Siach)... (창세기 2:5)."에서처럼 풀과 같은 어근을 공유한다.
-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다. "이삭이 들판에 명상하러 (Suach) 나갔다(창세기 24:63)." 모든 풀들이 그의 기도를 강화하고 도왔기 때문에 그의 기도는 들판에 의하여 도움을 받았고 강화가 되었다.
- 랍비 나흐만은 다윗 왕이 밤에 침대 커버 아래에서 신에 대하여 명상했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의 시야에서 숨겨진 그는 신 앞에 자신의 마음을 쏟아부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밤마다 침상 위에서 눈물을 흘리며 명상합니다(시편 6:6)."
- 토라 공부와 기도를 위하여 특별한 방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이런 방은 격리된 명상과 신과의 대화를 위하여 유익하다. 나흐만은 이런 방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매우 유익하다고 말했다. 이런 방이 없어도 명상은 할 수 있고 신에게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
- 나흐만은 탈리트를 걸치고 자신만의 특별한 방을 만들 수 있다면서 얼굴 위에 탈리트를 걸치고 자신의 생각을 신에게 표현하라고 했다.
- 침상 커버 아래에서도 신에 대하여 명상할 수 있다."나는 밤마다 침상 위에서 눈물을 흘리며 명상합니다(시편 6:6). "처럼 이것은 다윗의 습관이었다.
- 책을 펼쳐 놓고 앉아있는 동안에도 신과 대화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는 그대가 책을 읽거나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명상하면서 신에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를 진실로 원한다면 이것을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신성함과 참회의 뿌리이고 근간이다.
- 엘리야는 이 세상에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격리된 명상(히트보데두트, 자아격리)을 통하여 그는 죽음을 맛보지 않는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 나흐만의 말로 판단하건대 엘리야가 이런 명상을 통하여서 높은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위대한 성자들도 마찬가지이다.
- 이미 잘 만들어진 기도문과 간청 그리고 애원의 글이 많이 있다. 파괴자와 비난자는 이것들을 잘 알고 있어서 이런 기도를 방해하기 위하여 복병을 배치한다.
- 그대는 모두에게 잘 알려지고 잘 다져진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 그러나 살인자와 강도는 이 길을 알고 잠복하여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대가 사람이 다니지 않는 으슥한 길로 가면 이들은 알지 못한다.
-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신 앞에서 하는 그대의 개인적인 기도는 새로운 길과 같다. 개인적인 기도는 그대 마음에서 만들어진 것이어서 처음에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비난자도 이들 기도를 방해하려고 잠복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 자신이 만든 기도문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그대는 다른 표준이 되는 간청문이나 기도문을 조심해서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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