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크리스 고스든 / 추선영
출판 : 시공사
출간 : 2025.03.27
날이 선선해졌다.
한 차례 격동이 지나간 일상은 적당히 고요하고, 적당히 평온하다.
조금은 낯설다 싶을 만큼 잘 정돈된 휴일.
이대로도 좋고.
무료해진다면 다른 걸 해봐도 좋겠지.
<마법의 역사>는 아주 재미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마법이란 개념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이 책은 넓고 얕게, 깔끔하지는 않은 분류로 다양한 국가와 시대의 마법들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그 '실재했던 현상'들로부터 문화인류학적 가치를 살펴보고자 하며, 현대에 마법이 가질 수 있는 가치와 의의 또한 '보이지 않는 공존'으로 보고 있다. 이런 시각은 개개인마다 모두 다를 수 있겠으나, 이런 쪽의 책들 중 과학과 마법 어느 한쪽도 배척하려 하지 않는 접근법은 신선했다.
한 권으로 전체를 아우르기는 어렵지만, 교양 삼아 읽어보며 연결된 관심사로 뻗어나가기 좋은 책이다.
또 완벽한 번역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이런 책을 한글로 읽을 수 있게 번역하고 출간해 준 역자분과 시공사에 감사드린다.
- 수만 년 동안 그리고 사람이 거주하는 모든 곳에서 사람들은 마법을 행했다. 많은 사람들이 마법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법은 그것을 근절하려는 시도조차 이겨내고 살아남아 오늘날에도 여전히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삶과 죽음이라는 커다란 문제에 직면할 때, 미래를 알고 싶거나 과거를 이해하고 싶을 때, 해(害)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거나 질병을 치료하고 싶거나 안녕(安寧)을 증진하고 싶을 때, 사람들은 마법에 의지하곤 한다. 마법의 무수한 형태 가운데 몇 가지만 살펴보면, 주술은 해를 유발하는 것처럼 보이고, 죽은 사람의 영혼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보이며, 악령의 눈(Evil Eye) 부적은 가정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법은 학문적이고 철학적인 것으로서 실재의 본질과 의미에 대한 더 너른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고, 또는 일상적이고 실무적인 것으로서 사마귀 제거나 병든 암소의 치료에 사용될 수 있다.
- 그들의 죄를 입증하는 궁극적인 증거이자 지은 죄에 대한 처벌이 되었다.
이와 같은 질의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 집단은 사회적 동기와 긴장을 조사했다. 마법은 누가 주술사였는지, 그들의 동기는 무엇이었는지, 그들에게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같은 사회적인 책임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던지는 무대가 되었다. 토지 분쟁, 결혼 지참금, 상해(傷害) 또는 배임 혐의는 모두 주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사례 가운데 일부는 일회성인 것이었고 나머지 일부는 그 집단에서 오래 지속되어 온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잔데족의 탐정이 위험한 사건이 발생한 이유와 그것들을 유발했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조사하는 목적은, 사건의 기저에 자리 잡은 원인을 식별하는 데 있었다. 그 집단이 원인을 밝혀내어 대처하지 못하면 불만이 곪아 터지면서 보다 더 많은 논쟁과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 아잔데족의 마법은 어떤 기준에서 보아도 합리적이었다. 아잔데족의 마법은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기능하고 있는 사법 체계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사회적 긴장, 의견 충돌의 진단과 해결은 오직 마법을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여기에서 요점은 마법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사람들이 비합리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과 마법과 과학을 대비시킬 때 비합리성과 합리성으로 대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상이한 전제를 통해 논증되는 다양한 논리 형식을 가지고 작업을 수행한다. 우리는 8장에서 아프리카의 점복(占卜)과 마법에 대해 보다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 마법은 유럽에서도 행해졌고 지금도 행해진다. 옥스퍼드 대학교(OxfordUniversity) 보들리언 도서관(Bodleian Library)에는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통치 말기인 17세기 초부터 찰스 2세(Charles II)가 즉위한 1660년까지 기록된 약 8만 건의 점성술 상담 기록이 보관되어 있다.
- 전부터 행성, 별, 달, 태양을 면밀하게 관측하여 점성술뿐 아니라 천문학의 토대를 마련한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어 유럽과 중동으로 퍼져나갔다. 우리는 기원전 3200년경 작성되기 시작하여 오늘날에 이르는 마법에 대한 믿을 수 없을 만큼 풍부한 기록물을 보관하고 있다. 다행히도 설형문자) 전문가에서부터 고대 중국 전문가 및 복잡한 근대 필사본 전문가에 이르는 여러 학자들이 수많은 정보를 내가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준 덕분에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충분히 참고할 수 있었다.
- 적어도 19세기까지 영국에서는 포먼 및 두 명의 네이피어와 유사한 부류의 종사자들이 발견되었다. 중세 시대와 초기 근대 시대의 영국 사람들은 점성술에 의지했다. 점성술사들은 그들이 가장 먼저 상담을 의뢰하는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점성술사들의 방법은 증명된 것으로 간주되었고 아마 초기 의학만큼 위험하지는 않았을 것이었기 때문이다(그림 1.1 참고). 모든 점성술사들이 보다 더 이전 세대의 점성술사들만큼 진지하게 점성술에 접근하는지 여부는 미심쩍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앱을 통해 자신의 천궁도 상담을 의뢰할 수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점성술을 접하고 그 밖의 다른 많은 마법적 가능성을 탐구한다. 마법의 잠재력을 완벽하게 믿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일 마법에 정말 무언가가 있다면 어떨까?'를 궁금해한다. 나는 이 마지막 질문을 따라가 그것이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지 살펴볼 것이다.
-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마법의 실존과 효능에 대해 회의적일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으로 회의적인 시각에 반박해보자면, 우선 마법은 이상한 변덕도 아니고 일부러 비합리성을 표방하는 것도 아니다. 서양적 사고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 기계론적인 우주를 구축해 왔다. 기계론적인 우주 안에서 행성이나 원자는 힘에 의해 운동하고 생명체의 특징은 생화학적 반응 ...
- 숙련된 점성술사는 하늘의 천체들이 하늘 아래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 개인적인 훈련에 의존한다. 이와 같은 지식은 한 세대에서 또 하나의 세대로 전수되지만 수천 년에 걸쳐 하늘을 관측하면서 하늘 위에 있는 것이 하늘 아래에 있는 것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심사숙고하여 얻은 결과에도 의존한다. 점성술의 오랜 역사는 사람들이 사고나 비판적인 시각이 없는 상태에서 전통적인 지식을 적용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각 시대와 문화에는 실험과 수정을 거친 각자의 고유한 점성술이 있다. 비금속(卑金屬)을 금으로 바꾸려고 시도(유럽과 중동)하거나 영생의 묘약으로 이어질 수 있는 화학적 변형을 시도(중국)하는 연금술에도 유사한 역사들이 존재한다.
- 프랑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는 마법을 우주의 인간화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의지 또는 행동과 우리를 둘러싼 세계 사이에는 연속성이 존재한다. 그 반대도 참이다. 즉, 별의 운동을 통해서이든 움직이는 돌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통해서이든, 우주는 마법 덕분에 우리에게 들어올 수 있다. 우리는 공유된 참여를 통해 세계와 복잡하게 상호 작용하면서 존재한다. 마법 관행은 세계에 대한 지적인 이해와 관련될 뿐 아니라 심리학적 및 영적인 상태인 정서를 통해 인간의 보다 더 완벽한 측면을 끌어낸다. 분노는 곡식 창고의 치명적인 붕괴를 유발하곤 하는 주술의 원인이었고 두려움과 경외심은 행성의 운동에서 비롯될 수 있었다. 마법은 서양적 사고가 물리적 영역과 심리적 또는 정서적 영역으로 분리해오곤 했던 것을 결합한다.
- 마법은 매우 다양한 형태의 참여로 나타나므로, 한층 더 세분화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참여는 초월, 변형, 거래의 세 가지 형태로 구별할 수 있다.
- 초월의 고전적인 사례는 점성술이다. 즉, 천체는 인간의 삶을 형성하지만 인간은 별이나 행성의 운동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하늘 위에서와 같이 하늘 아래에서도'는 중세와 초기 근대시대 유럽에서 점성술에 관한 격언이었다. 이 격언은 일련의 일방적인 영향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초월적인 영향을 이해하고, 헤치고 나아가며, 거기에 적절하게 반응할 수 있지만 그것들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 변형은 참여의 한 측면이다. 예를 들어 연금술 관행은 납을 금으로 또는 평범한 화학물질을 영원한 젊음의 묘약으로 바꿀 수 있다. 또한 마법은 강력한 변형을 둘러싸고 거기에 영향을 미치곤 한다. 이와 같은 사례로는 금속 가공을 꼽을 수 있는데, 8장에서 탐구하는 것처럼 아프리카 대륙의 많은 사례에서 대장장이는 작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마법적 수단을 사용한다. 또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변형한다. 유라시아 스텝(Eurasian Steppe)의 샤먼은 순록이나 곰 같은 또 하나의 생물에 깃들 수 있거나 영혼이 되어 영혼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샤먼으로 입문하는 과정은 종종 사람을 분해했다가 참신한 힘을 지닌 새로운 형태로 재조합하는 과정과 관련된다. 호주 원주민은 엘처링거 시대(Dreamtime) 동안 무지개 뱀(Rainbow Serpent) 같은 조상의 영혼의 행동에 의해 경관이 변형되어, 사람들이 의식을 통해 동참할 필요가 있는 일련의 힘과 위험이 땅에 부여되었다고 생각한다.
- 여기에서 변형은 거래와 혼합된다.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의 마법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우주와 교섭한다. 중국에서는 조상에게 향연(饗宴)을 베풀고 제물을 바쳐서 살아 있는 후손에 대한 조상의 선의(善意)를 보장받았고, 점복(占)을 통해 조상과 접촉할 수 있었다. 신들이 신탁을 통해 질문에 응답했던 고대 그리스 같은 다른 많은 사례에서도 점복은 흔하게 나타났다. 일부 문화, 특히 일신교에서는 사람들이 악마, 천사 또는 성인 같은 ...
- 하나 이상의 접근법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타일러의 삶은 퀘이커 교도로서 시작되었지만, 타일러는 비교적 젊었을 때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과학자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타일러의 관점에 따르면 종교와 과학은 모두 변화하고 진화해 왔다는 점에서 각자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마법은 변함없는 상태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수되는, 낡고 무기력한 믿음의 기층(基層)에 불과했다. 만일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인간 진보의 정점으로 여겨지는 오늘날의 영국에 마법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잠시나마 우연히 살아남은 일종의 화석이나 다름없었다.
- 전체로서의 인류사는 마법, 종교, 과학으로 구성되는 삼중 나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법, 종교, 과학의 경계는 어렴풋하고 변화무쌍하지만 그것들이 상호 작용하는 과정에서 유발되는 긴장은 창조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마법, 종교, 과학은 각자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 가운데 하나만을 선택한다는 것은 건전하지 않다. 만일 우리가 잠시 마법과 과학에 집중해 본다면, 마법은 우리를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다른 모든 사물과의 촘촘한 실타래에 연결하고, 과학은 우리가 우주의 작동에서 한 발 물러나 사심 없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우주를 관조할 수 있다는 강력한 허구를 창조한다.
- 나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인물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가 최초의 과학자가 아니라 최후의 마법사라고 묘사한 뉴턴(Newton)이다.
- 순수하게 기계론적인 우주를 창조하는 데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뉴턴 자신은 그것을 절대로 믿지 않았다. 뉴턴은 자신의 삶의 대부분을 성서의 예언에 쏟았지만 연금술에도 몰두하여, 케임브리지(Cambridge)에 자리. 잡은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의 자기 방에서 두 개의 용광로를 가동했다. 연금술과 예언은 위대한 지성인 뉴턴의 이상한 기벽(奇癖)으로서 묵살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뉴턴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지면서 기이한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믿음은 모두 연결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주의 물리적 작용을 우주에 대한 인간의 몰입 및 전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유일신의 행동과 더불어 이해하는 거대한 만물이론(萬物理論, Grand Theory of Everything)에 대한 시도의 일부로 간주될 수 있다(9장 참고).
- 매우 상이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마법과 과학은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마법과 과학은 모두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과 사람들이 세계의 작동으로부터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이해하기 위해 애쓴다. 과학은 세계를 물질과 에너지로 나누고 그것들을 형성하는 힘이나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화학적 및 생화학적 동학을 추구한다. 마법은 대지에서 영혼을 보고, 사람과 동물이 관계를 맺는 방식을 염두에 두며, 출생과 죽음을 둘러싼 변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과학이 정의하는 힘은 영혼이 세계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마법의 주장에서 반향을 발견한다. 우리의 보다 더 피상적인 사고와 논의 아래에는 우리와 세계의 관계에 관한 보다 더 깊은 직관과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서 마법과 과학이 갈라진다. 마법 관행과 마법의 철학은 다른 생명체, 경관, 하늘과의 친밀감에서 비롯된다. 마법을 통해 우리는 상호성, 즉 우리가 우주의 나머지에 이어지는 방식을 탐구할 뿐 아니라 일련의 도덕적 관심사가 중심적인 요소인 참여 방식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사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식을 탐구할 수 있다. 과학적 이해는 수학이라는 수단을 활용하여 물질, 에너지, 힘을 정량화하는 추상화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뉴턴의 법칙(Newton's Laws) 같은 기본적인 출발점에서 시작하여 진정 풍부한 세계로 나아가는 논리적인 추론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 어느 정도 인간으로 간주되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매우 여러 개의 작은 동물 입상은 소였는데, 그 가운데 두 개는 마치 사냥당한 것처럼 작은 부싯돌 날이 박혀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언급했던 것처럼 (두개골 묘가 비교적 흔함에도 불구하고) 아나톨리아에서는 회반죽을 입힌 두개골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과 이 지역에서는 피의 의례를 행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 등 지역별로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아나톨리아 남동부의 차이외뉘(Çayönü) 유적지에서는 한 건물에서 커다랗고 평평한 돌이 발견되었다. 시대에 맞지 않게 '제단'이라고 묘사된 이 커다랗고 납작한 돌에는 아마도 희생의 결과로 보이는 인간의 피와 오로크의 피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레반트나 자그로스 산맥에서는 괴베클리 테페 같은 유적지가 발견되지 않는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도 일어났다. 그 가운데 주요한 변화는 의례 활동의 이행이다. 선토기 신석기시대 A에서는 괴베클리 테페같이 건축물은 있지만 주택은 없는 유적지에서 의례 활동이 행해진 반면 선토기 신석기 시대 B에서는 주택 안팎에서 다양한 의례가 이루어졌다. 후대인 선토기 신석기 시대 B에서는 핵가족 형태가 보다 더 중심이 되었다. 따라서 마법 의례가 가족 구성원이 거주하는 가정적인 공간 안팎에 보다 더 집중되었다. 가문의 계보 및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 사이의 내밀한 관계 형성이 보다 더 크게 강조되었고 죽은 사람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일하며, 잠을 자는 바닥 바로 아래에 묻혔다.
- 고고학적 유적은 정적이지만 피, 두려움, 출산, 죽음으로 가득한 능동적인 마법 체계를 나타낸다. 거기에서 동물, 작은 입상, 사람은 출생과 생식력 또는 생명을 얻거나 생명을 잃을 때 수반되는 변형에 대한 관심 속에서 연계되고, 분화되며, 합쳐졌다. 사람뿐 아니라 작은 입상도 목이 잘렸고, 동물은 사람을 대신할 수 있었으며, ...
- 만일 유령이 사람을 괴롭히면 (따라서) 그의 귀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나면, 당신은 유리한 날을 골라 자신을 정화하고 그(환자)는 우물물에 목욕한다. 당신은 스텝으로 가서 야자나무 잎으로 바닥을 쓴다. 당신은 토기를 만드는 구덩이에서 나온 진흙으로 작은 병자(입상을 만들고 임시로 지은 의복을 입힌다. 당신은 일곱 개의 작은 입상으로 이루어진 일곱 개의 집단을 만들고 그 집단을 위한 음식을 마련한다. 당신은 작은 입상의 머리에 방추를 묶고 카펫을 덮은 (뒤) 핀을 꽂는다. 당신은 사마쉬(Šamaš, 억울하게 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태양과 정의의 신) 앞에 갈대 제단을 세운다. 당신은 대추야자(와) 고운 밀가루를 붓는다. 당신은 향나무를 [태우는] 향로를 설치한다. 당신은 [바닥이 뾰족한] 용기를 준비한다. 당신은 그 작은 입상을 사마쉬 앞에 놓는다. 그런 다음 당신은 반드시 '제발 풀려나기를, 제발 제거되기를, 제발 제거되기를'로 끝나는 복잡한 주문을 암송해야만 한다. 그런 다음 당신은 작은 병자(病者)의 입상을 나무에 묶어야 한다.
- 이것은 유령이 이성의 사람과 결혼을 시도할 때 귀에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부작용이 나타날 경우, 메소포타미아의 전문 마법 치료사인 아시푸(sipu)가 추구해야 할 지침이었다. 나무 같은 또 하나의 사물과 결혼하도록 유령을 설득하면 치료가 효과를 발휘할 터였다. 이것은 길고, 복잡하며, 비용이 많이 드는 치료법이었다. 약초를 이용하는 치료법도 수반되었다. 이 인용문이 포함된 책에서 조앤 스컬록(JoAnn Scurlock)은 치료에 수반되는 이와 같은 일련의 복잡한 행동은, 오늘날의 용어로, 치료가 효과가 있을 것임을 환자에게 심리적으로 설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볼 수 있다고 썼다. 또한 스컬록은 '오늘날 우리가 무언가가 "마법처럼" 작동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실패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약초와 그 사용법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매우 다양한 텍스트를 통해, 우리는 적어도 기원전 4000년부터(그리고 거의 확실하게 그 이전에도)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약과 유사하다고 인식할 수 있을 법한 수준의 약이 개발되고 있었다는 것뿐 아니라 이것이 (우리는 마법으로서 묵살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중요했던 것, 아마도 약초의 효능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그 밖의 다른 다양한 관행에 동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마법은 지중해 연안 지방과 메소포타미아 사이에 자리 잡은, 즉 남쪽으로는 이집트에서 북쪽으로는 아나톨리아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직사각형 모양의 땅에서 찬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나중에는 크레타(Crete)섬과 그리스 본토에서도 마법을 수용한다.
- 우주에 깊이 참여했기 때문에 이것들은 마법에 대한 믿음과 종교 신앙의 형태로 가장 잘 이해된다. 즉, 신은 인간의 힘을 초월하지만 사람들도 자신들을 둘러싼 지각을 지니고 있는 세계에 개인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
-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모두에 많은 신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숭배의 대상이 전체로서의 우주였다는 점에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신학은 우주론적 신학으로서 다소 무성의하게 묘사되어 왔다. 우리는 이집트의 우주론과 메소포타미아의 우주론 사이의 차이점을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고유한 특징은 공유되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묘사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모두의 우주론에 유용하다. '이집트의 우주는 살아 있었다. 그것은 성적인 동시에 영적이고, 물질적인 동시에 종교적이며, 매혹적이고 마법적인 동시에 과학적이었다.' 대부분의, 아마도 모든 고대의 국가와 철학은 우주가 살아 있고, 지각을 지니고 있으며, 인간에게 반응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존재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 초점을 맞추기 전에 고대의 믿음의 공통점뿐 아니라 중요한 차이점을 간략하게 조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 고대 세계에서 사람들은 우주에서 한 발 물러나 있지 않았다. 그 대신 고대의 국가와 사회는 사람들이 지각이 있는 우주의 협력자가 될 방법을 탐구했다. 우주는 규칙적인 변화와 주기적인 사건을 통해 작용했다. 사람들은 계절의 규칙성이나 천체의 운동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사전에 규정된 사람 ...
- 기원전 3000년 무렵의 우루크(오늘날의 바르카(Warka)) 도시에 접근함에 따라, 평원 위로 솟아오른 산이 보였을 것이다. 가장 중요하고 가장 널리 알려진 도시 가운데 하나인 우루크는 아마 250 헥타르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에 약 4만 명이 거주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우바이드 건축물에서 비롯된 T자 모양 주택에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 중심부에는 평원 위에 약 12미터 높이로 솟아오른 눈부신 하얀 사원(White Temple)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사원은 진흙 벽돌로 만든 지구라트(Ziggurat) 위에 세워졌는데, 네 면은 경사져 있었고 꼭대기는 평평하여, 마치 끝을 잘라낸 피라미드 같았다. 이 지구라트를 건설하는 데 9만 4,000인(人)의 인력이 소요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것은 도시 전체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인력의 오직 일부에 불과하다. 사원들의 뿌리는 지하 세계까지 뻗어 있고 꼭대기는 산처럼 구름에 덮여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것은 하늘의 신 아누의 사원(Temple of Anu)이었다. 네 모서리는 동, 서, 남, 북 사방을 향하고 있었는데, 동쪽 모서리 아래에는 사자와 표범의 사체가 묻혀 있었다. 메소포타미아에는 이러한 유형의 정초매장물(定礎埋藏物)이 흔하지만 이와 같이 강력한 동물을 묻는 경우는 특이하다. 이 사원은 벽에 회칠을 하여 놀라울 정도로 하얗게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었다.

- 도시를 둘러싼 육중한 벽에 난 관문(關門)을 통해 우루크로 걸어 들어가면 사람들로 가득한 지역에 자리 잡은 어느 동네를 지나가게 된다. 각 지역에는 아마도 한 혈통의 신들에게 봉헌되었을, 훨씬 더 소박한, 각자의 고유한 사원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를 지나 도시의 중심부에 도착하면, 그 아래에 자리 잡은 세계의 냄새, 소리, 인파를 뚫고 위로 솟아오른 지구라트를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짐작에 따르면, 대부분의 경우 지구라트는 보다 더 희귀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지구라트의 계단을 올라가려면 허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마침내 사원 앞에 자리 잡은 대(臺)에 올라서면 대 아래에 자리 잡은 도시와 도시를 둘러싼 벽 너머의 도시를, 그리고 경작지, 가축 무리, 일하거나 여행하는 사람들로 뒤덮인 평원을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사원의 높은 벽 쪽으로 되돌아서면 측면을 통해 사원으로 들어가야 했을 것이다(그림 3.2). 그리고 거기에서 얇은 금판으로 덮은 신의 목조 조각상들과 마주쳤을 것이다. 청금석이나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조각상의 눈은 제법 어두운 공간에서도 반짝였을 것이다.
- 신들은 인간 조력자들이 제공하는 구운 고기를 먹고 정제된 음료를 마시는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즐겼다. 사원 안에서는 몰약, 유향, 소나무, 삼나무, 향나무, 테레빈나무의 냄새가 풍겼는데, 그것들의 대부분은 상당히 먼 거리에서 획득한 것이었다. 사원의 북쪽, 지구라트 대의 바깥에는 깊은 구덩이가 있었다.
- 시리아 시대(표 3.1) 니네베(Ninevch)의 아수르바니팔(Assurbanipal)왕의 도서관(2만 개가 넘는 판이 발견됨) 같은 주요 도서관에 이르는 곳에서 비롯된다. 이 가운데 상당수, 아마도 3분의 1은 아시푸의 전승(傳承)과 관련된 것이다. 많은 판이 고(古)바빌로니아(기원전 2000년-1600년) 시대 또는 신(아시리아(기원전 911년-609년경) 시대의 것이지만, 판에 기록된 지식의 일부는 기록이 시작되기 이전 시대부터 존재했던 지식일 터인데, 아마도 대부분이 보다 더 이전의 기록일 것이다.
- 장엄한 메소포타미아 세계는 진흙의 문화이다. 작물은 강을 통해 관개되는 습한 토양에서 재배되었고 항아리, 주택, 사원, 판은 강에서 나온 진흙을 이용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진흙에 뿌리를 두고 있는 메소포타미아는 신을 창조했다. 메소포타미아의 만신전은 혼란스럽고 변화무쌍하다. 동일한 신이라도 수메르어와 아카드어 이름이 상이했다. 그들은 세계의 다양한 요소와 측면을 구현한다. 아누(Anu)는 하늘을, 신(Sin)은 달을, 금성과 연결된 여신 이슈타르(Ishtar)는 사랑과 전쟁을 구현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양한 집단이 권력을 차지했다(표 3.1). 바빌로니아가지배하게 되면서 인간은 그들의 신 마르둑(Marduk)을 보다 더 우월한 힘으로 인식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3000년에서 2000년 사이의 기록으로, 그 기록에서 신은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존재하는 경향을 가지는 존재이다. 신은 자연 안에 존재했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연적인 존재였다. 이와 유사하게, 인간 사회는 자연의 일부였고 이러한 방식으로 신과 연속선상에 있었다. 일신교인 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교에서 유일신은 전능하지만 궁극적으로 알 수 없는, 광범위하고 일반적인 힘이다. 그러나 초기 메소포타미아 신들은 태양, 달 또는 물의 힘이었다.
- 왕이 여행을 떠나거나, 원정에 나서거나, 새로운 사원을 짓는 것 같은 주요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전에 필요한 조언을 구할 때도 사용되었다. 대중이 수행하는 보다 더 소규모 프로젝트에서도 이와 유사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당연하게도 개인들에게 이러한 소규모 프로젝트는 통치자에게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가 중요한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었다. 악마, 인간 유령 또는 주술사는 출산 과정에서 산모와 아이가 죽거나 여행하는 동안 길에서 폭행을 당하는 등의 개인적인 재앙을 가져올 수 있었다. 암소의 죽음 같은 사건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재앙을 일으킬 수 있는 악마나 주술사에 대항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현재의 고난에 대한 조치뿐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위험에 대한 대비도 아시푸가 처리해야 할 작업이었다.
- 우리는 텍스트를 통해 여러 세대에 걸쳐 아시푸로 활동한 여러 가문에 대해 알고 있다. 분명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법사는 그 밖의 다른 능숙한 종사자들이 그러한 것처럼 사람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는 명예로운 직업이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르곤 2세(Sargon II)의 위대한 조언자였던 나부-주크프-케누(Nabu-zuqup-kenu)는 칼후(Kalhu)를 바탕으로 활동했고 그의 아들 아다드-수무-우수르(Adad-Sumu-usur)와 나부-제루-레시르(Nabu-zeru-lešir)는 기원전 7세기 초에 각각 에사르하돈(Esarhaddon)의 수석 아시푸와 수석 서기관으로 활동했다.
-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독일 팀이 발굴한 우루크의 한 주택에는 기원전 420년경까지 산구-니누르타(Sangu-Ninurta) 가문이 여러 세대에 걸쳐 거주했고 약 1세기 후에는 에쿠르-자키르(Ekur-zakir) 가문이 거주했다. 두 가문 모두 아시푸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세기 동안 우루크에서 아시푸에게 상담을 의뢰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 어느 집에 방문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집과 가문은 통치자 및 피통치자 대부분의 일상생활 및 관행 구조의 일부로서, 고대 메소포타미아 전역에서 흔했을 수 있다.
- 아시푸가 되기 위해서는 수메르어, 아카드어, 아람어(Aramaic)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형태의 언어를 포함한 여러 언어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다. 점토판에 텍스트를 기록하는 것은 학습의 중요한 수단이었지만, 특정한 의뢰인을 위한 공연의 일부로서 텍스트를 기록하여 세계의 작동에 영향을 미치는 언어의 힘을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가 아래에서 만나보게 될 점성술을 행할 때는 두 가지 일련의 텍스트가 중요했다. '아누 신과 엔릴 신이 할 때'로 번역되는) 에누마 아누 엔릴(Enuma Anu Enlil)은 천체에서 읽을 수 있는 징조에 대한 정보가 모여 있는 주요 개요서였다. (이것들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불완전할 수 있지만) 여기에는 68개 또는 70개의 판에 기록된 6,500개 이상의 징조가 담겨 있다. 개인이 이 모든 징조를 암기했을 가능성은 없지만, 주요 징조 유형에 대해서는 숙지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만일 어느 달의 첫 번째 날에 달이 보인다면 이것은 일반적으로 행복을 시사한다거나 만일 이날 달무리가 생긴다면 왕의 성공을 예고하는 전조(前兆)였다.
- 징조 목록은 고(古)바빌로니아 시대(기원전 2000년-1600년)에 편찬되었고, 적어도 다음 세기에 공식화되었다. 징조 목록은 기원전 4세기와 3세기에 인도에 전파되어 그곳의 점성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기원전 1000년경에 편찬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오늘날 물.아핀(MUL.APIN) (영어로 북두칠성(Plough)으로 알려진 별자리의 이름)으로 알려진 일련의 판에 담겨 있는, 다소 후대의 별 목록에는 66개의 별과 그들의 배치에 대한 정보가 하늘을 가로지르는 세 가지 경로를 기준으로 판단한 각 천체의 뜨는 날짜, 정중(正中) 날짜, 지는 날짜와 함께 담겨 있었다. 이와 같은 정보 덕분에 사람들은 이러한 별들이 인간사(人間事)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천문학의 기본으로 여기는 바빌로니아 성도(星圖)의 토대가 되었다.
- 사람들은 지식과 인지 사이의 연계를 인정했다. 왜냐하면 오직 충분한 훈련을 받은 사람만이 자기가 본 것의 의의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지식은 불평등을 조장하는 요인이었다. 사회적 스펙트럼에서 보다 더 높은 계층에 위치한 사람일수록 보다 더 많은 지식에 접근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점복 텍스트의 대부분은 '아는 자는 볼 수 있을 것이고 모르는 자는 볼 수 없을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끝났다. 세계는 다양한 얼굴과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었다. 어느 날 밤의 구름의 대형, 달무리, 바람의 본질 또는 소규모 유성우(流星雨)는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예시일 수 있었다. 오늘날 모든 형태의 과학적 관측에서 그러한 것처럼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를 아는 것은 결정적이었다. 지식은 관측 자체에서 비롯될 뿐 아니라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의의의 틀거리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 아시푸는 메소포타미아 사회의 엘리트 계층에서 고도의 훈련을 받고 활동했지만 우리는 도시와 마을의 거리에서 서비스를 제공했던 뱀을 부리는 사람(무슬라후(Mušlahhu)), 에세부(Ešebú) 또는 '올빼미 인간', 카디슈투인(Qadištu-Woman) 같이 보다 더 가려져 있는 인물들도 엿볼 수 있다. (아마 뱀을 부리는 사람을 제외하면) 이러한 사람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가 항상 분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 세계의 거리와 주택에서는 마법 활동이 일상적으로 등장했다. 뱀을 부리는 사람과 올빼미 인간은 주술을 행했다는 혐의로 일상적으로 고발당했고 외국인 역시 종종 혐의의 대상이 되었다. 주술은 사람들에게 질병이나 불운을 초래할 수 있었다. 질병과 장애의 목록은 카트 아멜루티(Qat Amélüti), 즉 '인간의 손'(질병)으로 알려졌다. 질병을 치료할 때 약은 즉각적인 증상을 다루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의례 행위는 종종 어떤 식으로든 영혼 세계로부터 발산된 문제의 근본 원인에 영향을 미쳤다. 금지된 주술 형태에 대한 목록이 작성되었는데, 그 가운데 일부는 보다 덜 공식적인 인물들에 의해 행해졌을 수 있다. 불운은 주술사로부터 비롯된 결과일 뿐 아니라 악마로부터 비롯된 결과 또는 금기 위반을 처벌하는 저주, 금기된 물질, 분노한 신 또는 유령과의 접촉으로부터 비롯된 결과이기도 했다.
- 악마의 특징은 눈에 띄었고 여전히 완벽하게 기록되지 않은 각자의 고유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악마는 신성한 영역에서 지위가 낮은 존재였고 황야와 산을 배회하면서 인간의 정착지나 주택을 습격할 수 있었다. 악마는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다가 창문을 통해 또는 문의 빗장을 벗기고 주택 안으로 들어왔다. 악마의 대부분은 괴물이었다. 라마슈투(Lamaštu)는 사자 머리에 당나귀의 귀, 개의 이빨, 독수리의 발톱을 가진 존재였다. 라마슈투는 출산 전, 출산 중, 출산 후 영아와 여성을 공격하는 경향이 있었다. 라마슈투에 대항하는 예방 의례가 행해질 수 있었다. 그 예로는 라마슈투 형태의 작은 입상(立像)을 파괴 또는 제거하거나, 라마슈투를 묘사한 부적을 몸에 지니는 것을 꼽을 수 있다.
- 이집트의 지도자에게는 마법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공학과 건축에 대한 지식도 필요했다. 이와 같은 지식 덕분에 한 사람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더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 가지 기술은 모두 지금까지 전 세계에 지속되는 유산을 남겼다. 이집트의 마법은 나일강을 따라 건설된 피라미드 및 사원과 더불어 후대에도 오랜 세월 동안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후대의 마법 전통의 중요한 가닥이 되었다.
- 이집트 우주의 중요한 힘들 가운데 하나는 신들과 인간 모두를 지배하는 헤카(Heka)이다. 헤카는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힘으로, '마법'으로 번역되곤 한다. 이집트인들에게 마법은 우주의 힘인 동시에 일련의 관행이었다. <스타워즈(Star Wars)>의 포스(Force)처럼 헤카는 본질적으로 선한 존재도, 본질적으로 악한 존재도 아니다. 헤카의 효과는 그것을 행사하는 사람의 의도에 달려 있다. 헤카에는 도덕적 차원이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흑마법이나 주술은 거의 감지되지 않는다. 신들은 사람들보다 헤카를 오용할 가능성이 보다 더 높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신성한 세계와 세속적인 세계를 거의 구분하지 않았다. 이집트인들의 일상생활에는 신들과 악마들의 행동이 스며들어 있다. 그 결과, 자연 위에 우주적 영역이 존재한다는 관념이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과학과 종교를 분리하게 되었지만 이집트는 과학과 종교를 분리하지 않았다.
- 나아가 마법과 종교는 연속선상에 있었다. 신들은 헤카의 지배를 받았을 뿐 아니라 헤카 힘의 실체화이기도 했다. 그리고 일부 인간은 그 밖의 다른 인간보다 헤카를 보다 더 크게 통제할 수 있었다. 따라서 마법은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와 같이 거대한 과업에는 분명 복잡한 훈련과 상당한 기술이 필요했을 것이다.
- 신들과 더불어 사원의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시면서 다양한 수준으로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원의 목적은 조화였지만 매일 밤 생명에 사소한 위협을 가하는 위기는 되돌아올 것이라는 절대적인 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태양이 지하 세계로 내려가는 통로, 즉 마법적 종교적 구조에 구축되어 있었다.
- 신들은 많았고 각각의 신은 다양한 종류의 형태를 취할 수 있었다. 이집트적 사고와 역사의 중심에는 두 가지 담론의 순환이 있었다. 바로 오시리스(Osiris) 이야기와 태양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오시리스, 이시스(Isis), 세트(Seth)의 설화는 이집트 역사의 대부분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견되었다. 파라오로 화신한 호루스는 수호신 이시스의 아들이었다. 이시스는 첫 번째 자리 또는 각 파라오의 왕좌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이시스의 이름을 의미하는 신성문자는 왕좌를 닮았다. 호루스의 아버지는 동생 세트와의 전투에서 살해당한 후 미라로 만들어진 오시리스(이시스와는 남매 사이. 아버지는 대지의 신 게브(Geb), 어머니는 하늘의 여신 누트(Nut))였다. 이 이야기는 늦어도 제5왕조(기원전 2400년)의 것으로, 이집트적 사고와 신앙에 결정적인 많은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오시리스는 질서 및 마아트(maat)와 연계되었고 세트는 혼돈과 연계되었다. 두 신의 경쟁과 싸움은 질서와 무질서 사이의 투쟁을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오시리스가 살해당하는 장면은 절대로 분명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이집트인들은 말을 함으로써 그 말이 지칭하는 상황이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아래에서 말의 힘에 대해 보다 더 자세하게 설명할 것이다). 한 시나리오에서는 세트가 왕좌에 오른 뒤 무질서의 시기가 뒤따른다. 이시스는 (때로는 죽은 사람을 미라로 만드는 자칼의 머리를 가진 신 아누비스(Anubis)의 어머니일 수 있는 그들의 여자 형제인 네프티스(Nephthys)와 함께) 매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오시리스를 찾아 나선다.
- 신(新) 왕국에 이르면, 이 이야기는 이시스의 눈물이나 오시리스의 체액이 유발하는 나일강의 범람과 연계된다. 세트와 호루스의 전투는 다양한 폭력과 성적 공격에 관련된다. 세트는 호루스의 왼쪽 눈을 제거하고 호루스는 세트의 고환을 손상시켜, 세트는 정력과 강함을 잃게 된다. 호루스는 하늘의 신으로, 호루스의 오른쪽 눈은 태양을, 왼쪽 눈은 달을 나타낸다. 호루스의 왼쪽 눈이 제거되었다는 것은 달이 일부 위상에서 어두워진다는 것을 시사한다. 투쟁은 다양한 종류의 결말로 이어지지만 대부분의 경우 호루스가 왕좌에 오른다. 따라서 세트와 호루스의 전투 이야기는 통치자의 힘을 설명하는 담론을 제공한다.
- 이집트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알고 있었을 만큼 이러한 신화가 만연해 있었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많은 문화와의 주요 차이를 시사한다. 광범위하게 공유된 신화를 통해 주관적인 경험을 이해하는 것은 개인과 집단 사이에 상이한 균형을 자아냈다. 이러한 방식으로 개인과 집단의 경험이 이어졌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사건이 태양, 달, 우주의 그 밖의 다른 측면의 운동과도 연계되었다. 오시리스 신화 같은 이야기는 천문학적 사건과 통치자의 힘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뱀에 물린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주문 또는 뱀에 물리는 것으로부터 또는 사실 뱀이 나타내는 위험한 에너지로부터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주문 같은 많은 마법 주문의 토대가 되었다. 아동으로서 오시리스가 겪은 고난과 오시리스의 여자 형제인 이시스의 보호 행위는 인간 보호의 토대가 된다. 우리가 보기에 보다 더 특이하게도, 오시리스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은 오시리스와 성행위를 하기 위해 이시스가 사용했던 주문은 죽은 남편이 아직 살아 있는 아내가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사용될 수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이 신화의 사례는 호루스의 눈(Eye of Horus) 형태의 보호 부적이었다. 이것은 다양한 질병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는데, 아마도 호루스가 세트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혼돈을 막고 결국 물리친 것이 토대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신들은 모양을 바꾸거나 형태를 결합하곤 했다. 타와레트(Tawaret) 여신의 조상은 몸은 하마, 등은 악어, 대롱거리는 가슴은 인간, 발은 사자의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타와레트는 종종 칼을 들고 '보호'를 의미하는 신성문자를 만진다. 이러한 방식으로 속성을 결합하는 것은 혼란이나 모호성의 흔적이 아니라 여러 동물과 인간의 특징을 결합하여 강력한 효과를 내는 고급 마법 기법이었다.
- 타와레트는 여러 물건과 함께 등장한다. 거기에는 하마 상아, (영어로 들어온 소수의 이집트어 가운데 하나인) 흑단 또는 매끈매끈한 동석(凍石)으로 만든 이른바 마법 지팡이나 칼이 포함되는데, 이것은 하마상아 같은 물질의 힘을 마법사의 손에 부여한다(그림 3.4). 지팡이는 기원전 2800년경 처음 등장하는데, 그 끝부분에는 흑표범이나 자칼 같은 사나운 동물의 머리가 달려 있다. 기원전 2100년부터는 복잡한 동물 조각이 발견되지만, (개의 특징과 그 밖의 다른 많은 생물의 일부분을 결합한 합성 형태인) 세트(Seth) 동물, 타와레트, 그리핀, 두 얼굴의 스핑크스, 사자 갈기를 가진 벌거벗은 안짱다리 난쟁이(베스(Bes)라고 알려진 대중적인 수호신) 같은 상상의 존재도 발견된다. 때로는 호루스의 눈과 호루스를 돕는 토트(Thoth)도 묘사되어 있다. 이후의 사례로는 사회적 지위가 보다 더 낮은 사람들을 포함하여 지명된 사람들의 보호를 요청하는 명문(銘文)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지팡이들이 마지막으로 제작된 시기는 기원전 1650년경이었다. 그 후 처음으로 비엘리트의 무덤에 신들이 묘사되면서 훨씬 더 다양한 도상이 등장한다. 보호는 지팡이에서 무덤과 봉헌 석주(石柱)에 새겨진 이러한 형상으로 이동했을 수 있다.
- 형상은 그려진 사물이나 사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다. 형상은 사물 또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형상을 재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직 비활성 상태에서만 형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사람을 공포에 떨게 하는 미라나 최신 영화를 통해 생명을 얻은 사원의 조각상은 이집트인들이 견지했던 발상을 변형한 버전이다. 형상과 조각상은 휴면 상태 또는 활성 상태로 간주될 수 있다. 따라서 정확한 마법절차를 통해 깨우고 활성화할 수 있다.
- 여기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사물은 활성화되고 어떤 의미에서는 살아 있는 것이 될 뿐 아니라 말의 힘을 통해 활기를 얻게 된다. 이집트인들에게 말은 기록된 형태일 때 그리고 특히 발화되었을 때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발화는 어떤 일을 일으킬 수 있는 행동이었다. 큰 소리로 주문을 암송하거나 노래하는 것은 마법의 필수적인 일부였다. 강력한 지식에는 사물의 진정한 이름을 알아내는 일이 관련되었다. 신들의 실제 이름은, 분명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비밀이었다. 만일 무언가의 실제 이름을 부른다면 실제 이름이 불린 무언가가 저항하기란 어려울 터였다. 물건과 물질 사이의 연계를 추적하면 하나의 사물에 미치는 영향이 또 하나의 사물로 흘러갈 수 있었다. 색(色)이나 이름의 소리에 관한 부분들은 신이나 사물을 복잡한 인과(因果)의 사슬로 연결할 수 있었다. '초록색 일을 하다'라는 표현은 초록색과 생명 사이의 연계를 통해 생식을 돕는 행동이나 일반적인 목적을 가지는 행동을 시사했다. 반대로 '빨간색 일을 하다'라는 표현은 피의 색(色)과 연결되어 위험이라는 형상을 불러오는 부정적인 의미였다. 토트(지혜의 신)를 재현한 조각상은 일반적으로 파란색으로 표현되었다. 이것은 광대함, 창조의 힘과 지식의 힘을 함의하는 하늘과 맑은 물에 연계되었다.
- 약초학과 마법이라는 두 가지 요소는 모두 신체가 작동하는 방법에 대한 정교한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많은 치료법의 토대에는 유사성과 상반성에 대한 인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배설물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 근거는 장의 기능 저하나 소화불량 같은 질환에는 파리나 타조 배설물 같은 다른 형태의 노폐물로 만든 촉진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뱀에 물렸거나 전갈에 쏘였을 경우에는 사제가 상처를 잘라 독을 제거할 수 있었지만 질병이나 상처를 묘사한 조각상에 물을 부은 뒤 그 물을 마시는 행위도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기원전 2000년에서 1000년 사이의 후반에는 목구멍에 뼈가 걸린 환자가 삼킬 빵에 거는 주문이 있었다. 이 주문은 제거되어야 할 음식과 밤에 지하 세계를 통과하는 태양의 통로를 연계했다. 접골(接骨)같은 일부 문제에는 주문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이지만 두통에는 항상 주문이 필요했던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 우리가 질병의 심리적인 차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강조되곤 해서, 어떤 행동이나 접촉으로 인해 아픈 사람이 악마의 공격을 받게 되었는지를 알아내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곤 했다. 사람들은 최근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사건과 그것이 개인에게 미칠 가능성이 있는 영향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우리 역시 진단과 치료에서 심리적인 차원의 중요성을 서서히 깨닫고 있다.
- 이집트인들은 죽음에 대한 집착으로 유명하다. 피라미드는 그 상징이고 오시리스 신화는 그것을 부분적으로 설명한다. 죽은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만큼이나 활동적인 사회의 구성원이었지만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사실 우리는 살아 있는 상태를 일시적인 것으로, 변모된 혼(아크(Akh))은 오시리스와 함께 영원히 낙원(두아트(Duat))에 거주하는 영원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러한 원하는 상태를 달성하기 위해 최근에 사망한 사람은 지하 세계의 다양한 공포를 헤치고 나아가야만 했고 여기에는 살아 있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혼이 다소 분리되어 있다는 비이집트인들의 관점과는 다르게, 사람의 생명력, 즉 카(Ka)는 신체와 연결되어 있었다. 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신을 미라로 만들어 신체를 보존하고 좋은 무덤에 안치해야만 했다. 미라로 만드는 과정에는 몇 달이 소요될 수 있었고 그동안 죽은 사람의 혼을 돕기 위한 의식이 행해졌다. 담당 사제는 미라를 만드는 자칼 신, 아누비스의 가면을 쓰곤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오래된 지도는 죽은 사람이 지하 세계를 헤치고 나아가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무덤 바닥에 그린 지도이다. <두 가지 길에 대한 책 The Book of Two Ways>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지도에는 언덕, 강, 불의 호수 같은 물리적 위험과 칼을 들고 있는 악마 같은 형이상학적 위험이 함께 제시되어 있다. 죽은 사람이 이러한 악마들을 제압할 힘을 얻기 위해서는 악마들의 진정한 이름을 알아내야 한다. 궁극적인 공포는 신체적 죽음에 이은 두 번째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개인을 영원히 소멸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 일단 죽은 사람을 제대로 묻고 나면 그들에게 계속해서 제물을 바칠 필요가 있었고, 많은 주택에는 이러한 목적을 위한 소규모 신전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관행에는 상당한 자원이 필요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위험한 영혼이 거주하는 사막에 자리 잡은 무덤에 미라가 아닌 상태로 묻힐 가능성이 보다 더 높았다. 만일 죽은 사람이 낙원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면, 분노한 혼이 살아 있는 사람에게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모면할 수 있었다. 기원전 2000년에서 1000년 사이의 이야기에서 아문-라(Amun-Ra)의 대사제는 테베 네크로폴리스(Theban Necropolis)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영혼에 직면한다. 유령에게 진정한 이름을 드러내라고 강요한 대사제는 무덤이 무너져 황폐해졌기 때문에 유령이 불행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대사제는 그 영혼의 안식을 위해 새로운 무덤을 짓고 제물을 바치기로 약속한다. 보다 더 긍정적으로, 특히 점복에 대해 보다 더 많은 것이 알려진 후기에는 죽은 사람이 미래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여, 계획을 세우는데 강력한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죽은 사람은 힘을 집중시켰다. 사망한 사람의 머리카락이나 잠시 동안 무덤 근처에 묻혀 있었던 물건은 상당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말의 힘을 감안할 때 죽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따라서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논의하고 죽은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에는 에둘러 말할 필요가 있었다(그림 3.6).
- 외지인들에게 이집트는 마법사들의 어머니였다. 예수(Jesus)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예수가 이집트에서 마법사로서 훈련을 받았다는 혐의로 예수를 고발했다. 이집트는 피라미드, 무덤, 사원을 짓기 위해 대대적인 노력을 기울였고 각각에는 각자의 고유한 그림 장식이나 글씨 장식 또는 문자의 도서관이 갖춰져 있었다. 이집트의 사원은 마법 활동과 종교 활동의 중심지였고 사제들은 겹치는 부분이 있는 이 두 가지 관행 모두에 대한 전문가였다. 피라미드는 미라로 만들어진 파라오(와 그 수행원들)의 시신에 초점이 맞춰졌다. 죽은 사람이 살아생전에 누렸던 사물 가운데 대부분을 제공함으로써 권력자들이 죽음 이후에도 죽음 이전과 완벽하게 동일한 방식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피라미드의 거대한 크기와 피라미드 건설에 필요한 막대한 노력과 기술은 이집트인들에게 죽음이 매우 중요했을 뿐 아니라 죽음을 헤치고 나아가기 위해 매우 많은 물리적 노력과 마법적 노력을 기울였음을 시사한다. 마법은 이집트 사회의 학문에서 결정적인 부분이었고, 이것은 종종 막대한 학식과 관련되었다. 모든 사람들은 부적, 주문, 특별한 물질을 사용하여 마법을 행했다.
- 외계인이 피라미드를 건설했고 만일 우리가 그 수단을 재발견할 수만 있다면 다양한 유형의 힘을 생성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 옆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그들이 내민 증거 가운데 하나는 미국 달러 지폐에 인쇄되어 있는 피라미드 형상(눈 주위에서 힘이 발산되는 것처럼 보임)이었다). 처음에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그 대화가 진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고학 전문가인 나는 이와 같은 주장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자, 식사를 함께한 그 사람은 내가 고대 이집트와 그 힘에 대한 진실을 숨기려는 학문적 음모에 가담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대화는 놀라울 정도로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이어졌고 나의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게 되었다. 대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측면은 그 대화가 이집트와 이집트의 신비주의적인 힘 또는 마법의 힘에 대해 계속 이어지는 집착에 대한 증거를 제공했다는 점과 이러한 관심이 종종 다소 광적인 형태를 취한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집트 문화의 보다 더 특별한 측면에 주목해왔는데, 신성문자가 해독된 이후 지난 2세기 동안 이와 같은 관심에 다시 불이 붙었다. 죽음에 대한 보다 더 최근의 불확실성에 대한 증언인 <사자의 서(書)>는 오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서양인들은 윌 셀프(Will Self)의 <런던 북부 사자(死者)의 서(書) North London Book of the Dead>를 보고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했다. 이후에 등장한 문화들에서는 메소포타미아의 매력에 빠졌지만 이집트와 동일한 정도는 아니었다.
- 이집트와 사실 메소포타미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놀라움을 자아내는 강력하고 눈에 띄는 시각적인 스타일과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통해 고도로 심미적인 문화를 창조했다. 당시 그것은 복잡한 언어, 공연, 음악, 냄새, 음식, 음료로 보완되었다. 두 문화의 결정적인 요소는 엘리트 계층과 교육받은 사람들만 깊이 있게 알 수 있고 개인은 절대로 완벽하게 숙달할 수 없는 숨겨진 지식의 발전이었다. 전문가는 마법의 힘을 통해 우주의 힘을 활용할 수 있다. 어쩌면 이러한 숨겨진 측면이 오늘날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의 일부일 것이다. 두 문화 모두가 간직한 신비는 충분한 인내, 지식,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꿰뚫고 이해할 수 있을 터였다. 프리메이슨(Freemason)이 이집트의 상징체계를 사용한 일은 널리 알려져 있다. 나아가, 지식은 세속적인 위계와 영향력이라는 의미에서 힘과 연계되었지만 질병, 부마(付魔), 죽음을 다루거나 변형을 통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우주의 궁극적인 힘을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통해서도 연계되었다.
-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국가 문화이다. 두 문화에서 마법은 국가 운영의 중심이었고 힘의 본질에 필수적이었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실존적 삶의 조건을 형성했다. 두 문화 모두 우주가 살아 있고 지각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고 인간은 지적인 전체를 구성하는 분명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두 문명은 모두 매우 다양한 전문 기능과 전문종사자를 발전시켰다. 거기에는 우주가 전개되는 방식에 대한 흔적을 포착하고, 적절한 행동 과정을 발전시키며, 해를 막고, 안녕을 증진하는 마법사가 포함된다. 아시푸와 헤카를 행사하는 사람들은 고도로 훈련되었고 통치자와 국가의 정치적 활동에서 눈에 띄었다. 통치자가 힘을 주장함에 있어 결정적인 측면은 그들이 생식력, 건강함, 인간이든 아니든 그 밖의 다른 힘들과의 긍정적인 관계를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통치자는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그리고 피통치자들은 삶, 건강, 죽음 같은 보다 더 너른 문제를 다루기 위해 마법사에게 의지했다.

-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관계에 결정적이었던 청동 용기에는 죽은 사람을 기리는 의례용 식사를 위한 음식과 음료를 담았고,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그 외에도 다수의 청동 무기, 청동 종(鐘), 청동 칼과 청동거울 4개, 청동호랑이 조각상 4개가 있었다. 남쪽 연안 해역에 서식하는 개오지 조개껍데기는 거의 7,000개가 있었다. 뼈로 만든 500개의 머리핀은 왕실 머리장식과 외모를 꾸미는 일이 본질적으로 얼마나 정교했는지를 시사한다. 석재 물건 및 755 개의 옥과 함께 상감(象嵌) 세공한 상아도 발견되었다. 일부는 동시대에 정교하게 조각한 공예품이었고 나머지 일부는 묻힐 당시 이미 수백 년이 지난 것으로, 아마도 가보로서 보관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아래 구덩이에는 부호가 죽을 때 희생된 개 여섯 마리가 있었고, ...

- 즉각적으로 알아보기는 어려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슴돌들은 인간의 모습을 한 인물의 재현이다. 전형적으로 얼굴이 없는 이러한 사슴돌들은 거기에 그려져 있는 다양한 장신구와 인공물을 통해 정체성을 얻는다. 사슴돌 윗부분의 원은 귀걸이를, 그 아래 부분은 구슬 목걸이를, 사슴돌 맨 아래 부분은 패턴이 있는 허리띠를 나타낸다. 허리띠의 위와 아래에는 다양한 인공물이 마치 허리띠에 매달려 있거나 인물의 보이지 않는 손에 들려있는 것처럼 배치되어 있다(형상의 오른쪽에 묘사된 물건들을 참고). 사슴돌 표면의 나머지 부분에는 양식화된 사슴이 그려져 있어, 이 돌에 사슴돌이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사슴돌들은 장신구가 달린 의복, 문신 또는 (보다 더 난해하게도) 사회에서의 개인의 지위를 재현하는 것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된다.
- 마법적 허구는 마법적 사실에 의해 뒷받침된다. 아서왕(King Arthur)의 전설은 초기 중세 시대에 처음 기록되었는데, 1136년경 몬머스의 제프리 Geo-ffrey of Monmouth)가 쓴 <브리타니아 열왕사(列王史) Historia regum Britanniae(History of the Kings of Britain)>는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완벽한 기록 가운데 하나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서왕과 마법사 멀린(Merlin)뿐 아니라 또 하나의 주요 등장인물인 아서왕의 검 엑스칼리버(Excalibur)(아마도 웨일스 설화에 등장하는 칼라드볼그(Caledfwlch)라는 이름을 가진 무기의 라틴어 버전일 것이다)를 만나게 된다. 그 이후에야 비로소 등장하는 호수의 여인(Lady of the Lake)은 아서왕 이야기뿐 아니라 서유럽의 여러 지역의 설화에도 등장한다. 호수에서 아서왕에게 검을 건네는 인물이 바로 호수의 여인이다. 이야기의 일부 버전에서는 아서왕이 죽은 후 엑스칼리버는 물속으로 되돌려 보내진다(그림 6.1).
- 몬머스의 제프리는 영국 본토의 역사가 트로이족(Trojans)에서 시작되었다고 기록한다. 따라서 우리는 제프리가 기록한 역사를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다. 아서왕의 역사는 뒤를 이은 시대마다 다시 기록되었고, 그것들은 토머스 맬러리(Thomas Malory)에서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 그리고 할리우드 판타지 작품에 이르기까지 베스트셀러가 되곤 했다. 이 이야기들은 강력하고, 뒤얽혀 있으며, 논란을 불러일으킨다.그리고 사실과 환상이 얽히고설킨 그 이야기 속에는 고고학을 통해 그 깊은 역사가 발견되고 있는 오래전 소실된 마법 관행이 숨어 있다.
- 선사시대 유럽에는 세 가지 일련의 마법 전통이 공존했다. 천체들 중에서도 특히 달과 태양을 바탕으로 하는 점성술, 장소의 영혼과 아마도 죽은 사람의 영혼과 거래하는 수단으로서 인공물과 시신의 매장물을 경관 곳곳에 정성껏 안치하는 일련의 행위, 재료를 끊임없이 다루는 행위에서 뿐 아니라 이후 철기 시대(Iron Age)의 이른바 켈트 미술(Celtic Art)에서도 나타나는 변형과 강력한 물건의 창조에 대한 관심이다. 이전 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켈트 미술에서 우리는 스텝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유럽은 초월, 거래, 변형의 조합을 제시하는데,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후자의 두 가지, 즉 거래와 변형일 것이다. 아서왕 전설의 두 가지 요소, 즉 가장 귀중한 검을 그 검이 처음으로 출현했던 물속에 던져 넣는 행위와 사물이 사람과 유사한 방식으로 힘과 생명을 가진다는 발상은 선사 시대 유럽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는 유럽의 역사를 부분적으로 기술의 역사와 기술 혁신으로 인한 변화의 역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서왕 전설은 고대 유럽인들이 물건과 맺은 많은 관계가 과학적이라기보다는 마법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 다른 유적지들 가운데 레펜스키 비르를 선택한 이유는 가정용 구조물, 무덤, 조각상이 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 레펜스키 비르는 다뉴브강의 세르비아 방향에 자리 잡은 몇 미터 높이의 단구(段丘)에 건설된 정착지였다. 이 정착지는 많은 수의 주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주택의 석회암 바닥이 정교한 사다리꼴 모양이라는 점(그림 6.6(a))과 주택의 중앙에 돌로 둘러싼 노가 자리 잡고 있고 사암 석(石) 조각이 많이 발견된다는 점(일부는 인간과 물고기의 혼종을 묘사(그림 6.7))에서 주택들의 고고학적인 특징이 나타난다. 또한 주택들 사이에서 인간의 묘가 발견된다. 이러한 특징의 대부분은 기원전 6200년에서 기원전 5900 년 사이의 중석기/신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러한 주택과 특이한 미술의 조합은 1970년대 레펜스키 비르가 처음 발굴된 이후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 주택들의 크기와 모양은 매우 표준적인데, 주택의 모양에서 기하학적 속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주택은 긴 축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는데, 중앙에 자리 잡은 노는 이러한 대칭을 강화한다. 전면의 벽은 구부러져 있다. 주택의 모양은 황금 분할(Golden Section)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사다리꼴 형태는 원에서 60도 각도에 대하는 부분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측벽의 길이가 뒷벽의 길이와 1대 3의 비율을 이루고 앞 벽의 길이와 1대 4 비율을 이루도록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일련의 이등변 삼각형이 생성되는데, 그것을 이등분하면 보다 더 큰 삼각형과 동일한 속성을 가진 새로운 삼각형이 만들어진다(그림 6.6(b) 참고). 각각의 주택을 배치하기 위해 삼각측량이 필요했을 수 있다. 레펜스키 비르의 주택들은 700년에 걸쳐 지어졌는데, 주택에 적용된 비율은 그 기간 내내 유지되었다.
- 레펜스키 비르의 다뉴브강 정반대편에 자리 잡은 트레스카벡산(Mount Treskavec)의 모양이 눈에 띈다. 트레스카벡산도 사다리꼴 모양을 하고 있는데 철문 협곡을 따라 솟아 있는 그 밖의 다른 봉우리에서는 사다리꼴 형태가 보다 덜 뚜렷하다. 아마도 사람들은 트레스카벡산의 모양을 모방하여 주택을 지었을 것이다. 나아가, 묘 가운데 하나에서는 시신이 다리를 접은 채 누워 있는데, 아마도 산과 주택의 모양과 비율을 반영하기 위해 이렇게 매장한 것으로 보인다(그림 6.6(c)). 경관과 인간이 거주하는 주택 사이의 이와 같은 연계는 둘 사이에 수학적 수단을 사용하여 공명을 일으킬 정도로 그 중요성이 분명했다.

- 금박을 입혀 묘사한 두 개의 호선은 부채꼴 모양을 그리면서 운동하는 일부천체 또는 천체들의 운동 흔적일 수 있다. 네브라 원반(Nebra Disc)은 천체의 위치와 운동에 대한 지식을 부호화하여 기억을 자극하거나 하늘을 가로지르는 천체의 운동을 논의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래에서 청동기 시대 우주론에 대해 다시 다룰 것이다.) 이와 같이, 네브라 원반은, 이것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우리에게서 소실되고 말았을, 보다 더 널리 퍼진 일련의 기술의 일부였을 수 있다.
- 고천문학이라는 주제는 오랫동안 상당한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각자의 고유한 천문학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는 현재의 일부 연구자들은 환상열석, 묘실을 갖춘 무덤, 그 밖의 다른 기념물의 배치에서 정교한 천문학적 지식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명한 천문학자인 프레드 호일 경(Sir Fred Hoyle)은 스톤헨지가 매우 정교한 천문학적 계산의 도구였다고 생각했다.
- 이러한 논쟁에 참여한 사람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알렉산더 톰(Alexander Thom)이었다. 저명한 공학 교수로서, 당시에는 은퇴한 상태였던 톰은 신석기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많은 기념물이 밤하늘을 관측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주장했다. 톰은 자신이 관측한 내용을 토대로 기념물을 배치하는 데 사용된 초기의 측정 단위를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단위를 '거석 야드(megalithic yard)'라고 불렀다(톰은 10진법이 도입되기 이전이었던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이 연구를 수행했다). 또한 톰은 자신이 관측한 내용을 사용하여 기념물에서 반복되는 방향을 토대로 선사 시대 달력을 복원했다. 이 달력에는 일 년 내내 여덟 번의 축제가 있었다. 그러나 톰은 자신의 연구를 당시 고고학자들 사이에 출현하고 있었던 이해, 즉, 신석기시대 사회 및 청동기 시대 사회와 관련된 고고학자들의 연구를 반영한 이해와 연계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반대로 고고학 전문가들은 수학이나 천문학에 능하지 못했기 때문에 톰의 연구를 톰 나름의 연구 방식을 활용하여 평가하고 비평할 수 없었다. 또한 톰은 동시대의 이교도 및 그 밖의 다른 집단과도 불편한 관계였다. 그들은 톰의 계산에서 고대의 정교한 지혜의 흔적을 찾기 위해 애쓰면서, 통로 무덤 및 환상열석을 배치한 뒤 그 안에서 복잡한 관측과 불가사의한 의례를 모두 행하는 초기 드루이드교 사제의 모습을 창조했다.
- 고대의 지혜는 1925년에 출판된 책이자 그동안 브리튼의 선사 시대에 관해 기록한 가장 영향력 있는 책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은 알프레드 왓킨스(Alfred Watkins)의 <오래된 직선 경로 The Old Straight Track>에서 영감을 받은 이른바 레이 라인(Ley lines)에서도 발견되었다.
- 더링턴 벽에는 금속 통로가 건설되어 사람들이 일렬로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이러한 경관을 통한 이동은 태양을 따라 이루어졌다.
- 오래전부터 스톤헨지에서 매우 중요한 이른바 블루스톤의 출처에 대한 논쟁이 이루어졌는데, 이제 그 논쟁은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블루스톤은 사실 다양한 화성암(火成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조립현무암(粗粒玄武岩)이라고 알려진 중간 입자의 경암(硬岩)이다. 스톤헨지 블루스톤을 화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온갖 종류의 블루스톤이 아마도 솔즈베리 평원(Salisbury Plain)에서 직선거리로 약 250킬로미터 떨어진 사우스 웨일스(South Wales)의 프레셀리 힐스(Preseli Hills)에 있는 다양한 종류의 노두(露頭)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밝혀졌다. 훨씬 더 놀라운 것은 프레셀리 힐스에 자리 잡고 있는, 노두일 가능성이 있는 것을 발굴한 결과, 스톤헨지의 블루스톤과 크기와 모양이 유사한 돌이 채석되었다는 증거가 발견되었다. 즉, 스톤헨지의 다양한 돌 유형의 배열이, 그 돌들이 비롯된 프레셀리 힐스의 노두 배열을 반영했을 가능성이 있다. 돌의 출처가 확인되면서, 그 돌들의 유래와 관련된 실무적인 질문은 해결되었다.
- 그러나 이러한 돌들을 그토록 많은 노동력을 투입하여 그토록 먼 곳까지 운반한 이유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운반이라는 실무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강과 바다, 모든 물이 결정적인 운반도구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러한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팀 다빌(Tim Darvill)과 제프 웨인라이트(Geoff Wainwright)는 스톤헨지 자체와 프레셀리 힐스를 발굴했고, 그 결과, 선사 시대에는 블루스톤이 치료적인 속성을 가진 물질로 간주되었다고 주장한다. 두 사람은 기원전 2400년경의 유명한 '에임스베리 궁수(Amesbury archer)' 같은 스톤헨지 근처의 묘에서 특이한 수준의 질병과 상해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 물건을 제공함으로써 장소의 영혼과 거래하는 일은 '내가 주므로 너도 나에게 줄 것'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문구 '도우트 데스(Dout des)'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만일 영혼, 신 또는 힘에게 적절한 영양을 제공하거나 그들을 적절하게 기리면, 그들이 땅의 생식력이나 사람의 생식력을 유지함으로써 또는 일반적인 안녕을 보장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인간이 제공한 호의를 되돌려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 선물 교환은 제공할 의무, 받을 의무, 되갚아야 할 의무라는 세 가지 의무와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선물을 제공하지 않으면 아무런 관계가 맺어질 수 없다. 선물받기를 거부한다면 관계를 거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무언가를 받았다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여겨지는 형태로 반드시 되갚아야 한다. 더욱이, 강력한 힘에게 선물을 제공할 때는 선물을 제공하는 사람이 중대한 희생을 치를 만한 선물을 제공해야 한다. 즉, 선물을 제공하는 사람이 아쉬워하지 않을 만한 사소한 선물은 선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지 않다. 금속 가공품 같은 사물이나 인간의 시신 일부를 마땅한 정성을 기울여 올바른 장소에 안치했다는 것은, 이것들이 어떻게 생각되었든 관계없이, 세계의 힘에게 제공하는 선물이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 네덜란드 남부의 모든 청동은 유럽 중부나 대서양(Atlantic) 연안 지방에서 수입되었다. 보다 더 초기에는 완성된 물품을 수입했고 이후에는 청동의 구성 요소를 수입하여 현지에서 주조했다. (청동은 주요 성분인 구리와 그것보다 적은 양의 주석이나 납으로 이루어진 합금이다. 저지대 국가(Low Countries) 지역에는 이러한 금속 가운데 어느 것도 매장되어 있지 않다). 청동의 출처가 이국적이었기 때문에 청동기, 특히 힘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만들어진 청동기는 중요한 선물로 평가되었다.
- 후기 철기 시대에 처음으로 땅에 지은 신전이 출현했다. 매우 많은 수의 인공물이 한정된 구조물 안에 안치되었고, 아마도 향연의 잔해일 것으로 추정되는 동물의 뼈 덩어리와 일부 인간 뼈가 함께 안치되곤 했다. 이런 일은 프랑스 북부에서 흔한 일이었다. 이와 같은 신전은 청동기 시대나 초기 철기 시대에서 발견되는 것보다 더 구조화된 일련의 마법 관행이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어쩌면 그것들은 로마 세계와 로마 세계 만신전의 영향을 받은 결과, 보다 더 정의된 신들과 연계되어 있었을 것이다.
- 초기 철기 시대에는 그 시대 이름의 기원이 된 변화가 일어났다. 즉, 철이 도입되었고 청동의 사용이 쇠퇴했다. 그러나 청동기 시대 말기에 청동의 사용이 쇠퇴했다고 해서 유럽 북서부의 많은 지역에서 철이 즉시 흔해진 것은 아니었다. 기원전 400년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철이 실제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이 시점에 청동도금 및 은과 함께 다시 한번 흔해지기 시작했다. 철은 청동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철기 시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일련의 재료 내에서 청동의 위상을 재배치했다.
- 재료로 사용되는 금속이 바뀌자 물건의 스타일도 극적으로 변화했다. 기원전 500년경에는 아일랜드와 러시아 서부 사이에서 켈트 미술이라고 불리곤 하는 새롭고 복잡한 물건 스타일이 출현했다. 켈트 미술은 유럽 전체를 일련의 공통적인 스타일로 연계했다. 나는 켈트 미술이 5장에서 논의한 스키타이 미술처럼 세계에 대한 애니미즘적이고, 마법적인 관여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할 것이다.

- 영국 본토 켈트 미술에서 가장 유명한 물건 가운데 하나인 배터시 방패. 제작 시기는 기원전 350년에서 기원전 50년 사이로 추정된다. 정확한 시기는 논란이 되고 있다. 왼쪽 사진의 형상은 방패 전체(길이 77센티미터, 너비 34센티미터)를 보여준다. 이 방패는 청동판 조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안에는 돋을새김 및 붉은색 법랑으로 장식되어 있는 세 개의 원형 무늬가 삽입되어 있다. 오른쪽 사진은 가장 아래쪽에 자리 잡은 원형 무늬의 윗부분을 확대한 사진으로 인간일 가능성도 있고 뿔 달린 동물(또는 이 둘의 조합)일 가능성이 있는 모호한 존재를 보여준다.
- 오른쪽 사진은 방패의 가장 아래쪽에 자리 잡은 원형 무늬의 윗부분을 확대한 것이다. 오른쪽 사진은 두 눈 사이에 코가 있고 코 아래에 곡선 모양의 콧수염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인간의 얼굴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사진을 이렇게 해석한다면, 사진 속 인물은 정교한 투구나 그 밖의 다른 머리 장식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이 사진은 뿔이 달린 어떤 생물, 예를 들면 양식화된 사슴을 묘사한 것일 수도 있다. 또는 돋을새김과 법랑(琺瑯) 작업을 하면서 의도적으로 모호한 형상을 만들어냈을 가능성도 있다. 이것은 사람일까? 사슴일까? 아니면 둘 모두의 일부분일까?
- 그리스도교 이전 유럽의 과거를 기록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경로 가운데 하나를 따르는 경향이 있다. 첫 번째는 아마도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것으로, 로마의 등장으로 인한 최초의 급격한 단절과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완벽하게 출현한 그리스도교 세계를 강조하는 것이다. 두 번째 경로는 정반대 방향으로, 이른바 이교도 유럽과 현재 사이에 깊지만 숨겨진 연속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 이러한 두 가지 선택은 모두 정치와 관련된다. 그리고 각각의 중심에는 대조를 이루는 방식으로 마법이 자리 잡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마법이 수천 년에 걸쳐 세계에서 차츰 축출된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마법이 근대성의 다양하고 맹렬한 공격에 맞서 토착신앙을 지탱하는 중심 실마리이다. 지점이 되면 스톤헨지 같은 유적지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이는 현상이 보여주는 것처럼 근대의 이교(異敎)주의와 고대의 마법은 서로를 정의하는 데 도움이 된다. 모이는 사람들 가운데 자신들이 영국 본토 원주민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그 유적지가 자신들의 것이라고 느낀다(이교주의에 대해서는 10장에서 추가로 논의할 것이다).
- 유럽의 과거와 현재에서 마법은 변함없는 요인이다. 그러나 고대의 지혜가 수천 년에 걸쳐 선택된 소수의 원주민을 통해 전수되어 온 것은 아니었다. 유럽의 주민들이 혼합되고 재혼합된 것처럼, 고대의 지혜는 발명되고 재발명되었다. 유럽의 사람들은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이라는 철학적인 수수께끼를 해결하기 위해 오래 지속되어온 일련의 주제를 다루었다. 즉, 인간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하늘에 존재하는 힘, 생성하는 힘과의 호혜적인 관계, 변형과 모호성의 문제였다. 각 시대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러한 문제에 접근한다. 소규모 집단이 새롭게 온화해지고 풍부해진 경관에 직면했다. 인구가 희박한 중석기 시대의 연구가 희박한 인간 세계는 후대의 철기 시대와 시간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인구가 조밀한 철기 시대의 공동체와도 다르다. 그러나 중석기 시대와 철기 시대 모두에서 사람들은 중요한 인공물을 물에 던져 넣고, 사람이나 말에 사슴뿔을 달아 생물종의 힘을 혼란스럽게 하고 결합했으며, 나무, 돌, 금속을 다루는 인간의 기술을 발전시켜 주변 세계에 전파했다.
- 이와 같은 관계에 대한 실험은 로마의 등장이나 중세 세계의 부상으로 인해 멈춘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9장에서 살펴볼 것처럼, 그리스도교 교회는 매장 행위를 금지하는 대신 매장물을 안치할 새로운 장소를 제공했다. 변형에 대한 오랜 실험은 처음에는 연금술이라는 형태로 나타났고 화학이라는 보다 더 객관화된 형태를 거쳐 궁극적으로는 과학으로 유입된다. 세계에 대한 인간의 참여와 인간에 대한 세계의 참여는 최종적인 답이 존재하지 않는 일련의 질문, 즉 오늘날의 우리가 여전히 씨름하고 있는 질문으로서, 오래 지속되어 온 관심사를 형성한다.
- 호수의 여인은 엑스칼리버를 끌어내어 아서왕의 손에 넘겨주었다. 과거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일부로서 존재하게 된 자원을 끌어내는 호수이다. 그러나 사물은 힘을 가진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과거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일 뿐 아니라 동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정체성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고, 우리와 우주의 연결에 관련된 것일 수도 있으며, 보다 더 일상적이고 실무적인 문제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과거의 마법은 각 시대에 따라 재작업된다. 마법이 아무런 쓸모가 없어질 때 비로소 마법은 사라진다.
- 유대 마법: 카이로 게니자 및 그 밖의 다른 자료의 출처
- 수행되어야 할 연구가 아직 많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 마법에 대한 관심이 크게 되살아나고 있다. 그것은 내가 연구를 수행하는 동안 운이 좋게 알게 된 기드온 보학(Gideon Bohak)의 <고대 유대의 마법 Ancient Jewish Magic>이라는 밀도 있고 훌륭한 책이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기드온의 학식은 상당하다. 몇 가지만 꼽아보자면 보학은 영어와 히브리어로 글을 쓰는데, 히브리어로 기록된 고대 텍스트를 참고하고, 추가적으로 그리스어와 아랍어 저술도 참고하며, 다른 언어 가운데 무엇보다도 고대 아람어와 만다야어(Mandaic)로 기록된 텍스트도 읽는다. 거기에 더해 보학은 다양한 종류의 언어가 다양한 종류의 문자로 기록되었다는 사실과도 씨름해야 했다. 예를 들어 중세 시대에는 아랍어가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기록되었다. 또한 (이 분야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JPA로 통하는) 유대 팔레스타인 아람어(Jewish Palestinian Aramaic) 같이 이국의 영향을 받아 변형된 형태의 언어도 존재한다. 이것은 히브리 문자의 변형으로 표현된 아람어였다. 고대 지중해 동부의 매력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개방적이고 국제적이며 다양한 많은 전통에서 출발한 믿음과 관행이 혼합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레반트 남부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주기적으로 그곳에서 추방당한 탓에, 보다 더너른 유대 문화가 그러한 것처럼, 유대 마법에는 다른 세계 가운데 특히 이집트,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그리스, 아람 세계의 영향이 결합되어 있었다. 유대 마법은 이러한 모든 요소를 추출하여 독특한 것으로 바꿨다. 화학 반응에 상응하는 이 문화적 구성 요소의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수십 년에 걸친 언어 연구를 통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 역사에 대한 이해가 크게 바뀌었다. 꽤 많은 텍스트가 마법 관행을 언급하고 있는데, 역사의 보다 더 정통적인 측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 부분을 무시하거나 경시해 왔다. 이 텍스트들을 종합하면 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그러나 아랍인들이 이집트를 정복하기 이전인 기원후 6세기에서 7세기 사이의 후기 앤틱 시대에 대한 일련의 직접적이고 상세한 기록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제2성전 시대와 아마도 그 이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대를 엿볼 수 있는 기록도 존재한다. 쿰란(Qumran)에서 발견된 사해문서(死海文書, Dead Sea Scrolls)는 (아마도 기원전 6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보다 더 초기 시대의 직접적인 증거로서 이 자료를 보완한다. 사해문서는 남아 있는 다른 자료, 예를 들어 초혼을 기록한 금속 태그나 (우리가 아래에서 보다 더 자세하게 마주치게 될) 바빌로니아에서 비롯된 주문 그릇 같은 자료와 결합될 수 있다. 물론 풍부하지만 논란이 분분한 자료는 히브리 성서와 신약 성서이다. 유대 마법을 이해하는 것은 비교적 널리 알려진 후기 앤틱 세계에서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기원전 1000년에서 0년 사이의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문제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재구성 작업은 학문적으로 매우 주의를 기울여 신중하게 수행해야 한다.
- 유대 마법은 다른 시대와 다른 장소에서도 친숙한 방식으로 크게 나눠볼 수 있다. 유대 마법은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걱정거리와 문제뿐 아니라 그 시대의 커다란 우주론적 질문에도 대처하기 위해 다양한 기법을 발전시켰다. 유대 마법에서는 두 가지 특징이 두드러진다. 첫 번째 특징은 악마, 유령, 영혼으로부터의 보호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리스와 로마의 저주와는 대조적으로 유대 마법에서는 공격적인 마법이 비교적 덜 발전했다. 둘째, 특히 중세 시대 유대 마법은 난해하고, 신비주의적이며, 복잡한 것을 강조했는데, 이것은 종종 글자와 숫자 사이의 연계, 유일신의 이름, ...
- 악마의 부정적인 본성은 천사의 긍정적인 특성으로 평형이 맞춰졌다. <토비트 Book of Tobit>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천사의 도움을 받는 것은 효과적이었다. 천사 라파엘(Raphael)은 사라(Sarah)의 결혼식 전날 밤 그녀의 예비 남편들을 살해했던 악마 아스모데오(Ashmedai)를 속박하는 데 도움을 준다(아스모데오로 인해 사라의 남편이 될 뻔했던 7명이 목숨을 잃었다). '진 노(怒)의 악마'인 이란의 아에즈마 데바(Aésma daeva)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스모데오는 유대 악마학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존재이다. 아스모데오를 제거하는 데는 티그리스강에서 잡은 특정한 물고기의 심장과 간을 훈제하는 기법이 사용되었다. 사라의 경우, 냄새를 맡은 아스모데오가 이란의 엑트바나(Ectbana)에서 상(上) 이집트로 도망쳤고 (나중에 아스모데오가 탈출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라파엘이 아스모데오를 속박했다(기드온보학은 아스모데오의 탈출과 관련하여 아스모데오가 앞으로 수세기 동안 유대 악마학의 "스타" 가운데 '하나'가 될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 기원후 70년-694년 : 유대 마법이 뚜렷해진다. 훌륭한 기록 자료인 <카이로 게니자 Cairo Geniza>가 중요하다. 바빌로니아 주문 그릇과 부적이 흔하다. 보호 마법 - 의학과 연계, 디아스포라가 점점 더 촉진되어 마법 관행을 확장된 유대 세계 전역으로 전파
- 중세 시대의 마법 : 기록 자료 <세페르 라지엘 하-말라크 Sapher Raznel ha-Malakh>, <세페르 하-라짐 Sapher InaaRazim>, <모세의 검 Sword of Moses>이 중요하다. 이것들은 아마도 보다 더 이전의 자료에 의존할 것이다. 특히 세파르디 유대인 사이에서, 실무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카발라(Kabbalan)의 발전, 일부 점성술, 유일신의 이름(Names of God)과 게마트리아(Gematria)가 중요한 조작 및 방법, 성가의 마법적 사용, 부적이 중요. 아시케나지 유대인 사이에서 골렘(Golem)
- 근대 시대의 마법 : 중세 시대의 신비주의적인 전통과 실무적인 카발라의 연속. 그러나 또한 마법에 대한 계몽주의적 비판, 최근 유대 마법이 유명인을 포함한 비유대인에게 영향을 미침
- 악마가 냄새에 민감하다는 사실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다. 특정 악마를 쫓아낼 수 있는 냄새를 발산할 수 있는 특별한 식물과 동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악마를 쫓아내는 요령이었다. 이러한 식물과 동물을 획득하는 과정은 까다롭고 위험할 수 있었다. 보다 더 이른 시기의 유대 전승에는 중세 세계에서 맨드레이크(mandrake)라고 알려진 식물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유대 전승에서 바아라스(ba'aras) 뿌리라고 알려져 있었던 맨드레이크 뿌리는 사람에게 위험한 존재이다. 기원후 75년경 요세푸스(Josephus)는 마카에루스(Machaerus)라는 소도시 근처에서 발견되는 이 뿌리가 불꽃 색깔을 띠고 있다고 묘사하면서 저녁 무렵이면 찬란한 빛을 발산한다고 덧붙였다. 이 뿌리는 '그것을 뽑으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이 접근하면 움츠러들어 사람이 붙잡지 못하게 피한다. 여성의 소변이나 생리혈을 뿌린 뒤에야 비로소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 맨드레이크 뿌리를 붙잡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그 뿌리를 직접 붙잡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따라서 또 하나의 뿌리를 손에서 늘어뜨리거나 다음과 같은 수상쩍은 절차에 관여할 필요가 있다. 식견이 풍부한 사람들은 맨드레이크 뿌리를 발견하면 '뿌리를 덮고 있는 흙을 아주 조금만 남기고 그 주위를 모두 파낸 다음 개를 묶어둔다. 개가 자기를 묶은 사람을 따라가기 위해 달려 나가면, 뿌리를 쉽게 뽑을 수 있다. 대신 개는 즉시 죽는다. 그러고 나면 이 뿌리를 만져도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 말하자면, 개는 이 식물을 뽑으려는 사람 대신 죽는 것이다.' (그림 7.2). 만일 이 식물을 환자에게 묶어두거나 악마의 코앞에 가져다 대면 악마는 도망칠 것이다. 그리스 세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뿌리가 알려져 있다. 유대인들은 나일강에서 가져온 돌을 이용하여 악마에게 겁을 주거나 시끄러운 개가 더는 짖지 않게 만들었다. 보학이 주목한 것처럼, 가짜 뿌리, 가짜 돌 또는 그 밖의 다른 가짜물질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사기를 칠 가능성은 상당했지만 지중해 동부에 자리 잡은 시장(市場)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사기의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 제2성전 마법의 결정적인 측면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구두로 전수되었다는 점이다. (부족한 증거가 이와 같은 결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지만) 문자 기록과 그 이후에 기록된 문자와 이후에 발견되는 숫자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우리가 살펴보게 되는 것처럼, 후대의 유대 마법에서는 무언가를 기록한 부적을 매우 흔하게 사용했다. 고대에 부적을 사용한 흔적은 보다 더 불분명하지만, 제2성전 시대와 아마도 심지어 제1성전 시대에서도 모든 단어 가운데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유일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등의 부적 관행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흔적이 존재한다. 기원전 2세기 유다 마카베오(Judas Maccabeus)가 셀레우코스(Seleucid) 왕조의 군대에 패배한 이유를 현지 지휘관들이 유다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죽은 병사들이 토라(Torah)에서 금지한 '이아메네이아(Iameneia) 우상의 형상'이 새겨진 부적을 착용했기 때문이라고 보는사람도 있다.
- 엘리야, 엘리사, 모세 같은 카리스마 넘치는 성자들로 이루어진 중요하지만 모호한 마법사 집단이 있었다. 그들은 마법사로서, 종교 신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홍해를 가른 모세의 기적은 널리 알려져 있다.
- 엘리야와 그의 후계자 엘리사는 특히 가뭄을 시작하거나 끝내고, 죽은 사람을 되살리며, 식량의 공급원을 생산하고, 요르단(Jordan) 강을 둘로 갈라 건너며, 오염된 물을 정화할 수 있었다. 성자들의 이러한 힘은 다소 불분명하지만, 유일신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꽤 높다. 그들의 힘은 공익(또는 해)을 위해 사용될 수도 있었고 사익을 위해 사용될 수도 있었다.
- 유대교 전통과 그리스도교 전통 사이에 겹치는 부분이 예수라는 인물 속에 존재한다. 예수는 보다 더 이전의 유대 성자들이 지녔던 대부분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예수는 빵과 물고기의 수를 늘려 5,000명을 먹일 수 있었고, 물을 가르지 않고도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다. 예수는 병자를 치료할 수 있었고,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죽은 뒤 죽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살아났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기적과 마법을 행하는 유대의 전통에 딱 들어맞는다. 후대 교회사가들이 설명하기 어려워하는 부분은 예수가 자신의 기적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마법에 대한 모호한 태도는 그리스도교 기원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후 그리스도교는 이 문제와 계속 씨름해 왔지만 이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 마법사들이 싸움에 활용했던 힘이 유일신에게서 직접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악마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보다 더 오래전부터 존재해 온 영적인 존재가 종교적 어법으로 번역되었을 가능성이 꽤 높다.
- 축귀와 유일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 외에도 매우 잘 발전된 형태의 점복이 있었다. 여기에는 점성술, 손금 보기(chiromancy)(손바닥 읽기), 관상학, 수상학(手相學, palmomancy) (사람들에게 있을 법한 씰룩거림과 경련을 통해 그들의 미래 읽기), 고랄롯(gorallot) (제비를 사용하여 미래 점치기), 풍수학, 달력 연구, 역학(특정 행동에 길한 날 찾기), 서적점(bibliomancy), 천둥이나 지진 같은 자연 현상을 사용한 미래 예측, 해몽(解夢), 연금술이 포함된다. 대부분의 기법은 다양한 징후를 민감하고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는 훈련, 따라서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되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수되는 지식의 집합체를 민감하고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는 훈련과 관련되었다. 다른 지중해 동부의 신앙과 비교하여 무엇이 없는지에 대해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조각상이 종종 신성한 힘의 살아 있는 구현으로 간주되었지만, 유대교에서는 조각상에 대한 제물과 봉헌이 금지되었다. 유대 마법은 이러한 성상파괴주의(聖象破壞主義, iconoclasm)를 후대의 이슬람교와 공유했지만, 성인의 조각상과 성모 마리아(Virgin Mary)의 조각상에 기적의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비개신교적 형태의 가톨릭 그리스도교와는 성상파괴주의를 공유하지 않았다.
- 제1성전에서 제2성전으로 이행하면서 다신교에서 일신교로의 이동이 일어났다. 전능한 신이 하나뿐인 세계에서 어떻게 마법이 작동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광범위하게 대답하자면, 마법은 단일한 유일신이 아니라 오히려 보다 더 서열이 낮은 방대한 존재들의 활동과 관련된다. 이러한 존재들은 부정적일 수도 있고 긍정적일 수도 있는 존재로서 악마와 천사의 형태로 나타났다.
- 기원후 7세기에 아랍이 확장하기 직전의 수세기 동안 유대 마법은 후기 앤틱 시대라는 새로운 맥락 속에서 다시 발전했다. 이 시기에 대부분의 유대인은 이스라엘 바깥, 즉 이집트, 바빌론 또는 유럽에서 생활했다. 기원전 167년에서 160년 사이 셀레우코스 왕조에 대항한 마카베오 전쟁(Maccabean revolt) 이후 유대인의 대량 학살과 강제 이주가 일어났다. 그러나 기원 후 70년 제2성전이 파괴되면서 새로운 종교 기관, 즉 건축 형태로서는 회당이, 인간적인 형태로서는 랍비 공동체가 성장했다.
- 후기 앤틱 시대의 마법은 다양한 관행에 대한 필사본 증거를 통해 훨씬 더 완벽하게 알려져 있다. 그러나 주문이 기록된 여러 종류의 마법적 물건도 존재한다. 후기 앤틱 시대 유대의 마법에는 두 가지 광범위한 영역이 존재한다. 하나는 바빌로니아를 중심으로 하는 동쪽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하는 서쪽 영역이다. 동쪽 영역은 궁극적으로 메소포타미아의 유산으로부터 물려받은 영향에 뒤얽혀 있었고 서쪽 영역은 그리스, 로마, 이집트, 유대 세계 사이의 깊은 상호 연관성에 뒤얽혀 있었다.
- 동쪽 영역의 마법적 세계를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창 가운데 하나는, '바빌로니아 주문 그릇'이다(그림 7.3). 바빌로니아 주문 그릇이 1,500여 개 발견되었으나 지금까지 다양한 학술 연구를 통해 조사된 것은 300여 개에 불과하다. 어쩌면 최대 1,0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훨씬 더 이전의 사례가 일부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그릇들은 기원후 5세기에서 8세기 사이라는 짧은 기간에 제작되었다. 이 그릇들을 통해 오늘날의 이란 서부와 이라크 같은 한정된 지역에서조차 고대의 종교 관행 및 마법 관행의 변동성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주문 그릇의 사용은 기원후 7세기 아랍의 침략과 함께 종말을 고했다. 우리는 주문 그릇이 기원후 5세기에 인기를 끌기 시작했던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보다 더 썩기 쉬운 매개체에 기록되어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지 못한 것일 뿐, 보다 더 이전에도 유사한 주문이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 주문 그릇은 오늘날 사용하는 시리얼 그릇 정도의 크기로 대량 생산된 평범한 점토 그릇이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주문 그릇이 불법 발굴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우리는 주문 그릇의 고고학적 맥락에 대해 알지 못한다.

- 우리가 맥락을 알고 있는 주문 그릇 가운데 대부분은 주택 내부나 문지방 아래에서 뿐 아니라 묘지에서도 발견되었다. 주문 그릇은 작업장으로 추측되는 곳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주문 그릇들은 일반적으로 주택의 다양한 위치, 아마도 특정한 방 또는 방의 네 귀퉁이 같은 곳에 위와 아래가 뒤집어진 상태로 안치되었다. 때로 주문 그릇은 쌍으로 존재하고 잉크로 주문을 기록한 달걀 껍데기 같은 사물과 함께 발견되기도 한다. 주문 그릇 안쪽에는 문자(실제 문자이거나 또는 글자처럼 보이도록 디자인된 보다 더 무작위적인 낙서 - 제작자 또는 의뢰인이 문맹이었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음)가 기록되어 있고 종종 족쇄에 묶인 악마 같은 형상이 그려져 있다. 사용된 그림과 신의 도상, 공식, 주문은 메소포타미아의 문화적 형태를 상기시킨다. 주문 그릇의 주요 목적은 악마나 요술을 막아내고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주문 그릇은 개인, 가족 또는 보다 더 광범위한 집단을 악마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도록 디자인될 수 있다. 지명된 개인을 특정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거나 지명된 개인이 앓고 있는 특정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경우, 우리는 병상 아래에 주문 그릇을 안치했을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
- 보호 주문은 가장 흔하게는 아람어와 만다야어로, 훨씬 더 드물게는 시리아어(Syriac)로 기록되었다. 적은 수는 번역되지 않은 팔라비어(Pahlavi) 문자로 기록되었고 (아직 공개되지 않은) 한 개나 두 개는 이슬람교적 요소가 있는 아랍어로 기록되었다. 정사각형 아람어 문자로 기록된 그릇에는 히브리 성서의 구절이 담겨 있다. 만다야어 문자로 기록된 그릇들에는 만다야교의 특정 용어가 사용되는데, 이것은 하나의 표현 양식 내에도 지역적 가변성과 문화적 차이가 존재함을 시사한다. 이러한 그릇에는 그리스어가 지극히 드물게 쓰인다. 이는 동쪽 영역의 문화적 환경에 대한 추가적인 흔적이다. 반대로 서쪽 영역의 유대 마법 전통에서는 외래어인 페르시아어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학은 주문이 특정한 목적과 의뢰인을 위해 일반적인 비결들을 맞춤화했던 전문가 집단 사이에서 구두로 전수되었다고 주장한다. 주문은 마법사의 언어로 기록되었던 것처럼 보이는데, 이따금 그릇 겉면에 (아마도 의뢰인이 사용하는 언어로 추정되는) 상이한 언어로 '부엌에서' 같은 내용을 기록한 지침이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이 그릇을 제작했다는 것은 이러한 관행이 본질적으로 만연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동일한 주문이 여러 그릇에서 발견된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대량작업도 존재했을 것으로 보인다.
- 유대 마법의 서쪽 영역은 이집트, 그리스, 로마 세계에 딱 들어맞는다. 이 세계에는 부적과 음각된 보석을 포함하여 몸에 착용하거나 몸에 가까이 두는 일련의 작은 물건들이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적은 납, 청동, 금 또는 은으로 만든 얇은 판에 새겨져 있다. (라멜라(Lamellae)라고 알려진) 가로와 세로 모두 몇 센티미터의 크기로 된 이러한 직사각형 금속 조각에 뾰족한 첨필을 사용하여 주문을 새겨 넣었다. 그런 다음 라멜라를 말거나 보다 더 드물게는 접어서 금속 관, 상자 또는 가죽 주머니에 넣었다(그림 7.4). 라멜라를 목에 걸거나 팔이나 다리에 묶을 수도 있었다. 주로 사용된 언어는 아람어와 히브리어 또는 이 두 언어의 조합이었다. 부적이 사용된 시기는 기원후 5세기와 6세기에 한정되지만 지리적으로는 시칠리아(Sicily)에서 조지아(Georgia)에 이르는 유대인 디아스포라 전역에 퍼져 있었고, 대부분은 팔레스타인에서 발견되었다. 적어도 40개의 부적이 알려져 있는데, 더 많은 부적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부적은 무덤, 주택, 공공장소에서 발견되었다. 회당에서 무더기로 부적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볼 때, 아마도 이 관행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우리가 발견한 부적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아마도 엘리트 시장을 겨냥한 것이었을 것이다. 비어 있는 부적용기가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썩기 쉬운 파피루스나 가죽에 기록된 부적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 예를 들어 어떤 부적은 열병처럼 흔한 질환으로부터 의뢰인을 보호하기 위해 대량 생산되었다. 나중에 그 부적에 의뢰인의 이름을 추가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부적은 환자에게 괴로움을 유발하는 악마를 쫓아내거나 부마와 악령의 눈으로부터 의뢰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질병의 원인이 매균설의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가 있지만, 우리는 많은 부적이 대체로 의학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고 간주할 수 있다. 우리가 살펴보게 되는 것처럼, 그리스와 로마 세계에서는 (종종 라틴어 용어인 저주 판(tabulae defixiones)으로 알려진) 납판에 기록된 저주가 흔했다. 저주 납판은 팔레스타인에서 발견되지만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 따라서 유대의 문화적 배경에서 직접 유래한 것은 아니다. 그리스인과 로마인은 저주한 반면, 유대인은 보호했다는 점이 두 마법의 중요한 차이점이다.
- 현재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사막 북동부에 자리 잡은 호르바트 림몬(Hor-vat Rimmon)에서 기원후 5세기에서 6세기에 지어진 회당 지구가 발굴되었다. 이곳에서 무언가가 새겨진 일련의 파편이 발견되었다. 젖은 점토에 기록한 텍스트를 불에 구워 보존한 것이었다. 점토를 굽는 것은 실제 불의 열기가 열정의 불꽃에 불을 지피는 공감 마법의 결정적인 요소였다. 이 발견에 대해 논의하면서 보학이 언급한 것처럼, 근대 학자들은 후기 중세 시대에 사용된 비슷한 주문을 토대로 이 텍스트를 복원해 왔다. 다음은 보학이 인용한 복원된 텍스트이다. '성[스러운 (...)] 천사들아, [내가] 너희들에게 [명하노라]. [이 파편이 불타는 것]처럼, [마(Ma)]린[의 딸?] 라[헬?]의 심장[도 마땅히] [Y의 아들인] 나[X]를 따라 타오르리라.' 이 주문은 1,500년 넘게 유행했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그 효과를 인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 몸에 착용하는 보석, 반지, 펜던트는 고대 세계 전역에서 흔했다. 이집트어와 그리스어로 기록되어 때로는 그 지역의 신을 불러오기도 했던, 보체 마기카(voces magicae) [옮긴이: 마법의 이름 또는 마법의 단어라는 의미로, 발음은 가능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마법 공식을 지칭] 또는 공식이 새겨진 후기 앤틱 시대의 마법 보석은 전 세계적으로 적어도 5,000개가 넘을 것이다. 특히 유대의 상징이나 히브리어를 사용한 경우는 거의 없다. 일곱 가지로 갈라진 촛대인 메노라(Menorah)가 새겨져 있는 것이 일부 존재하지만 천사나 그 밖의 다른 성스러운 이름이 새겨진 경우는 없다. 성서 구절을 묘사한 장면들(말을 탄 솔로몬 왕이 여성 악마를 창으로 찌르는 장면이나 다니엘(Daniel)이 바빌로니아 뱀 신에게 먹이를 주는 장면)이 그려진 보석은 아마도 그리스도교에서 비롯한 것이었을 것이다. 적은 수의 보석에서는 단어가 다뤄진다. 예를 들어 히브리어 알파벳의 앞 글자와 뒷 글자를 엇갈리게 배치한 다음 (영어로는 AZBYCXDW처럼 보일 것이다) 각 자음 쌍 사이에 모음을 추가하여 단어와 닮은 무언가를 형성하는 것이다. 글자를 거꾸로 기록하기도 했다.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더불어 살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보석을 보다 더 쉽게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의 전통에서는 무언가를 새긴 보석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이것은 희귀하고 당혹스러운 사례이다.
- (후대의 많은 전통에서 중요하게 여긴) 마법 파피루스와 마법 책은 마법을 위한 언어를 신중하게 사용했다. 아람어 마법 파피루스는 흔하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아마도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는 종종 파편화된 상태의 마법 비결이 담겨 있다. 콥트어 마법 고문서의 파편, 그리스어 마법 파피루스, 다섯 개의 아람어 파편으로 구성된 '다국어 마법서'로 알려진 책에서 일람 하나가 발견되었다. 다양한 종류의 전통에서 출발한 마법 텍스트가 나란히 존재하고 한 문화가 그 밖의 다른 문화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이 발견을 통해 마법의 국제적인 차원이 드러난다. 한 아람어 텍스트에는 이른바 신명사문자(神名四文字, Tetragrammaton), 즉 히브리 성서에서 유일신의 이름을 이루는 네 글자 Y-H-W-H(영어로는 종종 야훼(Yahweh) 또는 보다 더 오래된 용법으로 여호와(Jehovah)로 음역됨)가 포함되어 있다.
- 신명사문자의 사용은 제1성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세의 지팡이에 새겨져 있었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훨씬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모세가 요셉(Joseph)의 관을 되찾기 위해 금판에 유일신의 이름을 새겨 나일강에 던졌을 때 마법에 의해 관이 떠올라 이집트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된 것이 그 시작일 수 있다. 신명사문자는 사제가 이마에 착용하는 금으로 만든 각판(板)인 지즈(ziz)에 가장 흔하게 사용되었다. 지즈는 매우 상당한 마법의 힘과 점복의 힘이 담겨 있는 물건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후 200년경 작성된 랍비 텍스트인 탈무드(Talmud)에서는) 문신을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보호의 궁극적인 형태로 신체에 유일신의 이름을 기록하는 일이 흔하게 나타났다.
- 그리스인들의 영향으로 글자를 보호 수단 및 점복의 수단으로 다루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여기에서 중심은 신비로운 카라크테레스(charactères)이다. 카라크테레스는 고대 마법의 본질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원환 글자로 알려진 카라크테레스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지만, 그리스에서 비롯되었거나 그리스 이집트 시대의 전통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카라크테레스는 끝에 원환을 가지고 있는 준 알파벳 기호이다. 그러나 카라크테레스를 간단한 방법으로 이해하기 위한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 우리는 고대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카라크테레스가 천사의 언어를 나타낸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그림 7.5). 카라크테레스는 후기 앤틱 시대와 초기 중세 시대의 모든 마법 전통에서 발견되는데, 그 증거는 에티오피아(Ethiopia)에서 아르메니아(Armenia), (카라크테레스를 카라테라스(carateras)라고 불렀던) 이슬람교 스페인(Moorish Spain) 전역에서 발견된다.
- 중동에서는 카라크테레스가 부적, 주문 그릇에서부터 유명한 유대 마법 텍스트인 <세페르 하-라짐 Sepher ha-Razim> 같은 필사본에 이르는 다양한 매개체에서 발견된다. <세페르 하-라짐>은 아마도 유대의 텍스트일 것인데, 우리가 가진 현재 자료가 본질적으로 합성된 것이라는 이유로 인해 부분적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카라크테레스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그리스 이집트 시대 세계의 영향을 보여준다. <세페르 하-라짐>은 노아(Noah)가 방주에 들어간 해에 천사 라지엘(Raziel)이 노아에게 준 신비의 책으로 추정된다. 이 텍스트의 일부 히브리어 파편은 카이로 게니자에 그리고 이후에 라틴어와 아랍어를 포함하는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번역본에 존재한다. <세페르 하-라짐>에는 일곱 하늘에 대한 묘사, 하늘의 각 구획에 자리 잡은 천사의 명단, 특정한 문제에 대해 특정한 천사의 도움을 받는 방법에 ...

- 들리지 않는 말들은 의미와는 관련이 없고 오히려 소리나 분위기 연출을 통해 그 밖의 다른 효과를 유발하려는 시도와 관련된다.
- 단어를 이용하여 만든 도형(특히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 삼각형)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많은 자료 가운데 특히 카이로 게니자 문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원후 3세기 이후 발견되는 아브라카다브라 삼각형은 하나의 단어를 여러 줄에 걸쳐 반복적으로 기록하는데, 한 줄 내려갈 때마다 단어에서 한 글자를 뺌으로써 삼각형 모양이 된다. 사람들은 질병의 이름이 줄어들면 질병의 힘도 감소한다고 여겼다. 이라크 키시(Kish)에서 발견된 주문 그릇에는 마마(Mama)의 아들인 아카르코이(Akarkoi)가 자신이 겪고 있는 괴로움을 보낸 사람에게 되돌려 보낼 의도로 작성한 주문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것은 아마도 그리스어 케팔라르기아(Kefalagia) ('두통')의 음역에 바탕을 두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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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이와 같은 단어 삼각형은 질병을 일으킨다고 여겨지는 악마의 이름을 기록(하고 축소)할 수 있었다. 모양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단어의 심미적인 특성은 주문 효능의 일부였다.
- 유대 마법에서 일반적인 점성술의 역할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
- 유럽 전역과 가장 최근에 식민화된 세계, 특히 북아메리카 대륙의 디아스포라에서 생활했던 유대인의 복잡한 역사와 내밀하게 연계되는 거대한 주제이다. 마법은 특히 점복을 금지하는 <할라카 Halakha> 또는 종교법에서 공통적으로 복잡하게 성장하면서 발전했다. 이는 마법이 행해졌음을 암시한다. 마법에 대한 여러 책과 비결이 영향을 미쳤다. 위에서 언급한 <세페르 하-라짐>은 비잔틴 시대의 팔레스타인(Byzantine Palestine)에서 기록되었을 것이지만 후대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 종교 저술은 보다 더 마법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중세 텍스트인 <심무쉬 테힐림 Shimmush Tehillim>에는 상이한 성가(聖歌)의 마법적 사용이 나열되어 있는데, 이 텍스트는 가톨릭 교회에서 작성한 금지 도서 목록인 <인덱스 라이브러룸 프로보토룸 Index librorum prohibitorum>에 등재되기도 했다.
- <세페르 라지엘 하-말라크 Sepher Raziel ha-Malakh>는 이른바 실무적인 카발라(Kabbalah) (카발라의 보다 더 마법적인 측면)로 구성된 마법서였다. 중세에 히브리어와 아랍어로 기록된 실무적인 카발라에는 후기 앤틱(Late Antiquity)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었다. 바빌로니아가 유대 문화에 미친 영향을 감안할 때 점성술을 강조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위에서 마주친 오랜 친구 천사 아브라삭스는 후기 앤틱 시대 그리스 이집트 세계에서 유래한 천사로, 그리스어 7글자로 된 이름을 가졌는데, 아브라삭스의 이름은 365라는 숫자로 치환할 수 있어, 태양년과의 연계를 시사한다. 이 한 가지 예는 중세 시대 마법적 사고의 복잡성을 즉각적으로 보여준다. 기록된 (및 발화된) 언어가 숫자의 능력과 연계되어 실재의 모양을 형성하고 모형을 구현할 수 있는데, 이것은 다시 천체의 운동과 천체의 특성으로 연결된다. 이와 같은 난해함을 추구하는 것은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다. 따라서 일반인들은 과학이 아니라 마법에 눈이 멀어 당혹감을 느끼거나 경외심을 느끼곤 했다.
- 유대 마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는데,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이 유대 마법을 행할 때 가장 유명하다. 그것은 거의 모든 문화적 맥락이 제거된 마법으로, 진정으로 근대 시대를 위한 마법이다. 잠시 동안 유대의 카발라에 반했던 마돈나(Madonna)가 런던 중심부에 자리 잡은 큰 주택을 카발라 센터(전 세계적으로 50개인 카발라 센터 가운데 하나)로 전환한 일은 널리 알려져 있다. 13세기에 토라에 대한 주석을 기록한 조하르(Zohar)를 매우 선별적으로 참고한 형태의 근대 카발라는 유일신의 이름, 우주의 본질, 선과 악의 문제, 우주적 에너지의 형태 및 훨씬 더 많은 것을 다시 한번 다룬다. 비평가들은 이와 같은 신앙을 '유대교의 아류'라고 조롱했다. 카발라에 대한 관심은 많은 사람들에게 일시적인 유행이었을 가능성이 꽤 높다. 반면, 이와 같은 관심은 오늘날의 세계에 널리 퍼진 결핍감을 시사한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 주변 세계와 보다 더 깊고, 보다 더 의미 있는 연결, 즉 우주론적이고 도덕적인 토대를 바탕으로 하는 연결을 시도하게 된다.
- 유대 마법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 아주 많지만, 나는 과거에 존재했던 매우 다양한 종류의 관행 가운데 많은 것이 오늘날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우리가 방금 검토했던 마법의 가닥들은 유대적이라는 특징으로 표현되는데, 이러한 특징은 레반트 남부에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려고 했던 초기 시도와 디아스포라에서 겪었던 다양하고 어려운 경험에 대응하면서 형성되었다. 이제 우리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라는 매우 상이한 일련의 문화적 맥락으로 이동하여, 그들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중동과 지중해라는 보다 더 광범위한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창조한 마법을 살펴볼 것이다.
- 고전 그리스 시대의 마법적 경관은 종교의 경관과 겹쳐졌다. 이것은 규모가 큰 사원에서 나온 신탁은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한 매우 다양한 마법 서비스를 제공하는 변화무쌍한 전문가들도 있었다. 가정에서 가정으로 또는 인상적인 기관에 신탁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선견자(만테이스(manteis) 또는 크레스몰로이(chresmologoi)), 주문을 노래하는 사람(에포도이(epodoi)), 경이(驚異)를 행하는 사람(타우마토포이오이(thaumatopoioi)), 경이(驚異)를 해석하는 데 능숙한 사람(테트라스코포이(tetras-kopoi))이었다. 이들은 죽은 사람의 혼을 되살리는 전문가(고에토이(goetoi))뿐 아니라 보다 더 세속적일 수 있는 뿌리 자르는 사람(리조토모이(rizotomoi)), 약초 전문가이지만 기적적인 치료를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파마케이(pharmakeis)와 경쟁했다. 마법사를 이와 같이 선명하게 분류해두면, 어쨌든, 깔끔하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마법 기술을 혼합하여 현재의 수요에 부응했을 수 있다. 만일 국가의 통치자가 전쟁과 평화라는 무거운 문제에 대한 조언을 원하거나 개인이 보다 더 개인적인 조언을 필요로 할 때, 조언을 의뢰할 수 있는 마법사 집단은 (특정한 마법 기술로 유명한 가문의 후손부터 우연히 신탁의 책을 발견하여 새롭게 전문가로 자리 잡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당혹스러울 정도로 다양했다. 그러나 미래를 예측하기란 어려웠다. 예를 들어, 선견자들은 기원전 413년/412년에 아테네(Athens)가 시칠리아에서 전쟁을 해야 하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반대했다(아테네 함대가 파괴되었을 때 이 전쟁에 대해 경고했던 사람들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선견자들은 많은 도시 국가에서 공식적인 직책을 가지고 정책과 행동에 대한 상담을 의뢰받았고, 국가의 행동에 마법적 차원을 부여했다.
- 마법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회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친 방식을 살펴보기 전에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민족성을 지닌 그리스 도시 국가의 세계와 우리가 주로 관심을 가지게 될 로마의 제국적 발전을 보다 더 긴 역사적 배경에 자리매김해두고 파악할 필요가 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와 로마의 마법은 역사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겹치는 부분이 막대하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와 로마의 마법을 함께 다룰 것이다.
- 유대인 세계의 발전과 마찬가지로 고전 그리스 세계의 발전도 후기 청동기 시대의 국제적 상황 변화와 함께 출현했다. 앞서 우리는 오늘날의 튀르키예 남부 해안의 울루부룬에서 난파된 배가 미케네의 항구나 왕궁으로 향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와 같은 왕궁은 보다 더 이전의 미노스의 크레타(Minoan Crete)섬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거대한 크레타섬은 마지막 빙하기 말의 어느 때에 초기 선원들이 처음 정착했던 섬이었다. 신석기시대와 초기 청동기 시대를 거치면서 크레타섬의 농경민들은 올리브와 포도를 작물화했고 그것을 경작했다. 그들은 올리브를 기름의 형태로 또는 통째로, 포도를 포도주의 형태로 저장하면서 에게해와 지중해 동부 생활 방식 발전에 기여했다. 이러한 작물과 곡물, 가축화된 일반적인 동물들 덕분에 인구가 정착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저장된 식량은 식물이 성장하는 계절 이외의 시기에 중요한 식량이었다. 기원전 2000년경부터 크레타섬에 최초의 왕궁이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크노소스(Knossos)이다. 미노스의 왕궁들 각각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거주했다. 미노스의 왕궁은 농산물과 무역품을 기록하는 서기관과 행정관들의 도움을 받는 왕과 귀족의 거처이기도 했다. 여러 문자가 차례로 기록에 사용되었다. 가장 초기의 문자는 신성문자이고, 그 뒤를 이어 이른바 선형문자(形文字)A(Linear A)가 사용되었으나 어느 것도 번역되지 않았다.
- 반면, 선형문자 B(Linear B)는 번역되었고 일종의 그리스어 기록으로 입증되었다. 미노스 크레타섬에서 생활한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인이었지만 그 이후 시대의 그리스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인은 아니었다. 우리가 왕궁과 후대 도시 국가 사이의 연계를 살펴볼 때는 매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 크노소스와 다른 왕궁들은 작물을 재배하고 가공하는 소규모 농장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 세계가 여러 면에서 매우 상이한 세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올리브 나무, 포도, 곡물, 양, 소, 돼지가 있는 이 세계의 경관이 오늘날의 경관과 닮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구릉지와 산 꼭대기에는 치유를 위해 제공되었을 수 있는 신체 부위의 봉헌을 포함하여 제물을 바치는 봉우리 성소(聖所)가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기록을 통해 고전 그리스 시대의 만신전에 자리 잡았던 신들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신성한 인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당시에는 사원과 사제가 없었으므로, 이 시대의 종교적 감수성은 후대의 종교적 감수성과 매우 상이했을 것이다. 기원전 1800년 이후부터 국제적인 연계가 점점 더 많이 발견되는데, 오늘날 시리아 해안에 자리 잡은 우가리트 유적지는 모든 시대의 이집트가 그랬던 것처럼 무역과 연결의 중심지로서 중요했다. 중동의 왕궁 사회에는 크레타섬과의 무역을 시사하는 기록이 있는데, 그리스와 동양과의 연계는 당시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중요했다(지도는 그림 7.1 참고).
- 이것은 신을 대함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거래하려는 자세를 시사했다. 마법과 종교는 모두 후대의 과학에는 낯선 방식으로 우주적 힘과 교섭했다. 적절한 방식으로 신에게 접근하면 신이 응답을 내려줄 터였다. 즉, 신탁에 질문하고 답을 얻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필멸하는 존재는 신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 그리스 사회는 개인주의적이고 경쟁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 마법을 각자의 고유한 이익을 위해 유적 힘을 활용하려는 시도로 간주해왔다. 그러나 그리스 마법 전문가인 에스더 에이디노우(Esther Eidimow)는 관점이 약간 다르다. 그는 그리스 마법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사람 사이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이해하는 불안의 문화로 간주한다. 타인에게 대항하는 주문 역시 프토노스(phtonos)(시기(猜忌)) 같은 부정적인 정서에 의해 주도된다. 사업, 사랑, 스포츠 경기 또는 전쟁에서 사람들은 암암리에 또는 공개적으로 경쟁했다. 프토노스에서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그 밖의 다른 사람들의 불운을 즐김)의 정서가 엿보인다. 이보다 더 은밀한 형태의 경쟁은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경로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마법을 통해서도 추구되었다. 시기, 경쟁, 불안이 널리 퍼지면서 마법의 기술이 크게 발전되고 많이 사용되었다.
- 그리스도교 이전의 로마 제국 전역에는 수많은 의례, 신앙, 신들이 표출되었다. 사람들이 반드시 각자의 고유한 종교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역의 신들에 대한 숭배가 받아들여졌을 뿐 아니라 실제로 행해졌다. 이집트를 침략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 지역의 신전에서 그들의 신들에게 숭배했다. 이제 학자들은 그리스 종교처럼 로마의 종교 관행도 종류의 다양성과 창조성을 보다 더 강조하는 방향으로 제고한다. 여러 면에서 오늘날의 분석가들은 암묵적인 그리스도교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려 ...
- 그리스는 보다 더 통합된 면모를 보이게 되었고 델포이의 역할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것은 델포이가 독립적인 도시 국가의 정치와 이로 인해 발생한 경쟁과 연계되어 있었음을 시사한다. 우리가 살펴볼 것처럼, 델포이는 후기 로마 시대까지 계속해서 사용되었다.

- 델포이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아폴론에게 직접 상담을 의뢰하지 않았다. 그들은 훨씬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는 인물인 여사제이자 영매인 피티아(Pythia)를 통해 상담을 의뢰했다(그림 7.6). 질문자는 모두 남성이었고 일년 가운데 9개월 동안 한 달에 오직 하루만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보다 더 이전에는 아폴론의 여사제를 사원의 권력 정치에서 무기력한 호구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다양한 국가에서 온 대표단이 질문을 제기하고 답을 받은 뒤 그들의 행동 과정을 바꿨기 때문에, 오늘날 일부 사람들은 아폴론의 여사제를 고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으로 여기기도 한다. 멀리에서 왔든 가까운 데서 왔든, 델포이 신전을 찾아온 사람들은 신탁을 구하는 질문을 던지기 전에 먼저 자신을 정화하고, 다양한 선물과 희생을 바칠 필요가 있었다. 정화를 하고 신에게 선물을 바친 후 나쁜 징조가 나타나면 상담이 중단될 수 있었다. 만일 상담이 진행되면 질문자들은 사원으로 안내되었다. 피티아는 사원 아래에 자리 잡은 작은 방의 (다리가 3개인) 의자에 앉아, 아마도 지면의 갈라진 틈 사이로 올라온 연기를 흡입했을 것이다(연기가 존재했었는지 여부와 그것이 무엇이었는지(어쩌면 그 기원이 화산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피티아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던진 질문에 답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피티아가 제공한 답의 본질에 대한 의견이 충돌한다. 어떤 사람들은 피티아가 운문(韻文)과 수수께끼로 답했다고 생각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운문들이 나중에 지어졌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수수께끼 같은 답이 주어졌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질문에서 언급되었던 행동이 일어난 후에야 비로소 피티아가 내놓았던 답의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하곤 했다.

- 중반 무렵에는 아테네와 흑해의 올비아(Olbia)에서 저주 판이 등장한다. 기원전 4세기 중반부터 저주는 그리스 로마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모든 고전 시대 저주 판의 주요 주제는 (그 시대 이후로는 비교적 드물어지는) 소송인 것처럼 보인다. 로마 제국 시대 이전의 저주 판 가운데 가장 많은 수의 저주 판은 아티카(Attica)에서 발견되었는데, 그 대부분은 아테네의 아고라(Agora)뿐 아니라 케라메이코스 묘지(Kerameikos Cemetery)에서 발견되었다. 로마 제국 시대에는 저주 판이 지중해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영국 본토에서도 발견된다. 지리적으로 분산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저주 판은 양식적인 측면에서의 유사성이 특징이고 기원후 2세기부터는 이집트와 유대 세계로부터 받은 상당한 영향도 발견된다.
- 당연하게도, 라틴어로 기록된 판은 주로 제국의 서쪽 지역에서 발견된다. 가장 최근에 사용된 저주 판은 기원후 6세기에서 8세기 사이의 것이다. 유대인의 보호 부적과 마찬가지로 저주는 납판에 가장 흔하게 기록되었고, 일부 귀금속을 사용한 경우도 있지만 와륵(瓦礫), 석회암, 보석, 파피루스, 밀랍, 도기 그릇에서도 저주가 발견되었다. 오늘날 라틴어로 기록된 저주는 종종 라틴어 이름인 데픽시오네스(defixiones) (단수형은 데픽시오(defixio))로 알려져 있다. 이것들은 밀랍, 점토, 양모, 때로는 납이나 청동 또는 매우 이따금 대리석으로 만든 사지(四肢)가 묶이거나 뒤틀린 작은 입상과 더불어 속박 마법의 일부이다. (이러한 판에 대해 언급한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인 플라톤은 이러한 종류의 마법은 속박 저주인 카타데스모스(katadesmos) (복수형은 카타데스모이(katadesmoi))를 사용했다고 기록했다.) 따라서 피해자가 저주를 거는 사람의 의지에 속박되었다. 사람들은 판을 감싸거나 말았고, 드문 사례에서는 못을 이용하여 판에 구멍을 뚫었다. 흔히 핀이나 못으로 구멍을 뚫는 방식으로 고문당한 작은 입상은 종종 불안감을 조성한다. 기본적인 속박 공식이 존재했는데, 이것은 법, 운동 경기, 드라마, 사업, 복수와 정의 구현, 성행위 또는 결혼 같은 분야에서 사용하기 위해 조정할 수 있었다. 일부 저주 판에는 문자가 제대로 쓰였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이것은 때로 전문서기관이 저주를 통해 여분의 수입을 얻었음을 시사한다. 인간 생활의 많은 부분이 저주로 덮여 있었다.
- 저주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4중 관계가 필요했다. 바로 저주를 의뢰한 의뢰인, 종종 구축된 공식에 의존하여 저주를 작성하는 전문가, 저주를 실행하는 신(또는 때로 죽은 사람의 영혼), 저주로 고통을 받는 피해자이다.
- 이 저주는 조이스를 지하 세계의 신들에게 배정하여, 그 신들이 조이스의 신체 일부와 조이스의 행동에 대해 힘을 행사하게 만든다. 에스더 에이디노우가 주장하는 것처럼, 조이스는 남성들의 술 파티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고용된 헤타이라(heraira)로, 키타라 연주와 관련된 조이스의 음악적 재능은 조이스가 지니고 있는 매력 가운데 일부에 불과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저주가 조이스의 성공을 억제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조이스를 의뢰인에게 사랑으로 속박하기 위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 사랑의 마법은 고전 시대 이후에 흔해진다. 우리는 마법의 파피루스에서 에로스(Eros)를 형성하고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다음과 같은 주문을 발견했다.
- "뽕나무로 만든 조수를 획득하는 의례가 있다. 날개 달린 에로스가 만들어진다. 망토를 두른 에로스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고 있고 등은 비어 있다. 냉간 단조(冷間鍛造)한 구리 첨필(尖筆)로 금박에 아무개의 이름을 기록하고] '마르사부타르테(MARSABOUTARTHE)-나의 조수이자 조력자, 꿈의 발신자가 되어라'라고 기록한 뒤 비어 있는 등 속에 금박을 안치한다. 밤늦은 시간에 원하는 여성이 사는 집으로 가서 에로스를 들고 문을 두드리면서 '보라, 아무개야. 아무개가 여기에 산다. 그녀 옆에 서서 그녀가 숭배하는 신이나 다이몬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내가 제안하는 것을 말하라'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서 탁자를 준비하고 그 위에 깨끗한 아마포(亞麻布)를 펼친다. 탁자 위에 그 계절에 피는 꽃과 그 작은 입상을 올려놓는다."
- 늦은 밤, 신의 조각상을 가지고 연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상대방이 사는 거처로 찾아가 신인 척해야만 한다니, 당황스럽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당황스러움보다는 흥미로움을 느낀다. 이 마법이 성공하는 전략이 되기 위해서는 마법을 행하는 사람이 이 마법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만 할 터였다. 특정 재료는 행동의 효능에 중요한 것으로 등장하는데, 이러한 재료(조각상을 위한 뽕나무, 금박, 차갑게 벼린 구리 첨필(尖筆))에 대해서는 세심한 설명이 뒤따랐다. 만일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에로스는 애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상대방에게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꿈을 보낼 것이다. 에로스는 수동적인 욕망의 수단이 아니라, 다시 한번, 게임에 참여하는 능동적인 행위자였을 수 있다. 후기 앤틱 시대에는 조각상이 독립적인 자유의지나 에너지를 가지고 사실상 움직일 수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 널리 알려진 사례가 아니었다면, 조각상이 자력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야기는 공상적인 이야기로 간주되었을 수 있었다. 타소스(Thasos)의 테아게네스(Theagenes)는 운동선수였다. 매우 무거운 청동 조각상을 시장에서 자신의 주택까지 옮겼다가 다시 시장으로 옮기는 것이 테아게네스가 자신의 강함을 보여주는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 테아게네스가 죽은 후 그의 청동 조각상이 세워졌다. 테아게네스의 적은 테아게네스를 때리는 대신 밤마다 테아게네스의 조각상에 채찍질을 했다. 테아게네스의 조각상이 넘어지면서 그 남자가 죽었고, 테아게네스의 조각상을 때리는 일도 중단되었다. 그리스인들은 우리처럼 선명하게 생명이 있는 것과 생명이 없는 것 사이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았다. 테아게네스의 조각상은 우리가 무생물 물건으로 간주할 수 있는 존재에 대한 재판을 위해 마련된 특별 법정인 프뤼타네이엄(Prytaneum)에서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이 조각상에게는 유죄판결이 내려졌고 추방형에 처해졌다. 이 경우에는 바다에 던져졌다는 의미였다. 타소스에 기근이 닥쳤을 때 델포이의 신탁(Oracle of Delphi)은 추방당한 모든 사람들에게 되돌아오는 것을 허락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추방당한 사람들이 되돌아왔을 뿐 아니라 테아게네스의 조각상도 바다에서 건져지게 되었다. 그 이후 기근은 약화되었다.
- 로마법에는 마법에 대한 중요한 금지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것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증가했다. 마법은 제국 시대에 이르러 말레피키움(maleficium)('화' 또는 '해로운 마법'-또한 후대의 마녀에 대한 고발에서 흔히 사용되는 용어)이라는 보다 더 광범위한 발상과 융합되었고 이때부터 모든 마법은 부정적인 어조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영향 아래에서 보다 더 강화되었다. 베네피키움(veneficium)이라는 용어는 약물 또는 독을 의미할 수 있었는데, 그리스어 단어인 파마르콘(pharmakon)처럼 보통 말레피키움을 가능하게 만드는 마법 물질, 즉 활성 성분을 지칭하는데 사용되었다. 사람을 늑대로 변하게 만들거나 한 농부의 작물을 다른 농부의 밭으로 옮기게 만드는 약초는 분명 해로운 마법이었다. 누군가 중독되었다면 사용된 베네피키움의 종류가 논의의 핵심이었다. 그것이 중요했던 이유는 그것을 토대로 독을 사용한 사람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 로마의 저주는 제국 전역에서 발견되지만 그 형태는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특이하게도, 영국 본토에서는 발견된 150개의 저주 판 가운데 적어도 3분의 1이 강도에 관한 것이었다. 이것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집중된 것이었다. 저주 판은 기원후 43년 클라우디우스(Claudian) 황제의 영국 본토 침략 이후 수십 년이 지난 기원후 2세기에 처음 발견되었다. 영국 본토에서 발견된 저주 판 가운데 약 130개는 바스(Bath)의 로마 목욕탕과 사원에서 발견되었고, 나머지는 그 밖의 다른 성소나 물속에 안치되었다. 바스에서 발견된 판 가운데 오직 두 개만 동일한 사람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것은 아마도 사람들이 전문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판을 기록했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 이것은 저주에 대한 지식과 아마도 그 밖의 다른 형태의 마법에 대한 지식이 인구 내에 널리 퍼져 있었거나 적어도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음을 보여줄 수 있다. 영국 본토에서 발견된 이러한 저주 가운데 일부에는 피해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훨씬 더 적은 수의 저주에는 저주를 기록했거나 의뢰한 사람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다. 신에게 제공된 정보의 수준이 다양하다는 것은 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알 수 있는지에 대한 상이한 관념을 시사할 수 있다. 일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어서, 사건의 상황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지만 나머지 신은 보다 더 많은 배경 지식과 도움이 필요할 수 있었다.
- 로마 제국의 마법은 부분적으로는 그리스 로마 시대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비롯되었지만, 지역 속주의 문화의 영향도 받은 혼종 형태로 발전했다. 처음에는 그리스에, 그다음에는 로마에 정복되는 이집트에서는 상당한 마법적 혼합이 일어났다. 이것은 상당한 공명을 불러일으키면서 미래의 이집트에서 추가적인 혼종 마법을 발전시킬 터였다.
- "이 텍스트는 번역되지 않은 채로 두어 그리스인들에게 이러한 비밀이 숨겨진 상태로 남아 있도록 하라. 그럼으로써 그들의 불경하고, 연약하며, 과장된 말투가 우리 언어의 존엄과 활력, 그리고 이름의 에너지를 훼손하지 않도록 하라. 겉으로는 인상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인들의 담론은 공허하고 그들의 철학은 장황한 소음에 불과하다. 대조적으로, 우리는 말이 아니라 에너지로 가득한 소리를 사용한다."
- 기원전 332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한 후 이집트에서는 합성 마법 전통이 서서히 발전했다. 처음에는 그리스와 이집트의 형태가 혼합되었지만 유대, 페르시아, 로마, 결국에는 아랍 문화의 영향도 받았다. 이와 같은 지식의 집합체는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주로 이른바 헤르메스 문서(Hermetic corpus)를 통해 중세 시대의 마법에 미친 영향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헤르메스 문서는 기원후 2세기부터 시작된 일련의 텍스트로, 이것을 통해 고대의 지혜가 오늘날의 세계로 전수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스 학자들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Library of Alexandria)에 매료되었고, 일부 이집트 사제들은 헬레니즘 시대부터 기원전 31년 옥타비아누스(Octavian)가 이집트를 로마에 합병할 때까지 국제 언어였던 그리스어를 말하고 읽는 법을 학습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알렉산드리아와 카이로에 유대인 공동체가 세워졌고, 많은 퇴역 로마 군인들도 이집트에 정착했다. 초기 그리스도교와 (플라톤 학파적 발상, 그리스도교, 유대교, 페르시아의 지적 전통을 융합한)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가 모두 발전하고 번성했고, 특히 기원후 42년 이후에는 이집트에서 콥트 그리스도교(Coptic Christianity)가 발전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영향의 혼합은 이국적인 사고의 양식을 낳을 수밖에 없었고, 그 종류의 다양성은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 그리스 이집트 시대의 마법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자료는, 그리스어로 기록되어 (아마 테베 (Thebes)에서 발견된 단일 텍스트 무더기에서 비롯한 소수의 텍스트는 이집트어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 마법 파피루스(Greek Magical Papyri)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집트 로마 시대에 기록된 일련의 파피루스이다. 일반적으로 이집트 마법은 죽은 사람을 보호하거나 죽은 사람에 관한 것이었지만, 그리스 이집트 시대의 마법은 저주와 속박을 강조하는 그리스 마법의 경쟁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역의 신을 초혼(招魂)하고, 동물을 미라로 만들며, 때로는 미라를 감싸면서 그 안에 저주판을 안치하는 관행을 통해 이집트 마법의 가닥도 선명하게 발견된다. 환상이나 꿈을 통해 신을 소환한 다음 신에게 질문하는 것은 공통적인 특징이었다. 파피루스에는 특히 이따금 그리스어 모음 일곱 개를 원이나 삼각형 모양으로 배치한 마법 기록이 등장했다. 그리스어 단어, 글자, 이름을 보석에 새기면 단어, 형상, 돌의 색깔이 복잡하게 상호 작용했다. 예를 들어 흰색 돌에 기록하면 모유가 촉진될 수 있고 포도주색 자수정은 중독을 방지하는 등의 효과를 나타냈다.
- 후대의 필사본만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헤르메스 문헌은 기원후 1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기록된 그리스어 텍스트의 집합체를 통해 특히 영향력을 발휘했다. 헤르메스 문헌은 현자(賢者)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Hermes Trismegistus) (기원전 2세기에 토트에게 부여되었던 '세 번째로 위대한'이라는 의미의 이집트 용어의 그리스어 버전)의 저술로 알려져 있다. 헤르메스 텍스트는 이론적인 부분과 기술적인 부분을 아우르는데, 후자는 마법, 점성술, 연금술에 대해 가르친다. 이 시대의 점성술은 그리스적 사고와 수학을 이집트 및 메소포타미아의 천문 전승과 조합한 것으로부터 발전했다. 황도 12궁은 그리스의 발명품일 가능성이 있다. 어떤 형태의 마법은 각자의 고유한 별자리 아래에서 보다 더 잘 작동했다. 보다 더 일반적으로, 별이나 행성의 에너지와 보석, 귀금속 및 신체 부위가 연계되었다.
- 초월적인 차원이 중요했는데, 가수 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신체의 영향에서 벗어나 신과 소통할 수 있었다. 일부 버전에서 연금술은 주로 비금속(卑金屬)을 귀금속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혼을 물리적인 신체에서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 이러한 관점에서는 마법이라는 기예가 우주의 신비로 들어가는 통로가 될 수 있었다. 그리스도교가 보다 더 지배적인 종교가 되어감에 따라 기원후 4세기에는 대부분의 오래된 사원이 사라지고 교회가 흔해졌다. 그리스도교도들은 종종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를 이교도로 간주하면서도 중요하게 여겼는데, 그 예로는 히포(Hippo)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를 꼽을 수 있다. 7세기 아랍의 침략은 새로운 문화적 영향을 가져와, 가장 유명한 헤르메스 텍스트인 <에메랄드 판 The Emerald Tablet>을 탄생시켰다. 아마도 기원후 9세기에 작성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에메랄드 판>은 후대의 연금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 중세 시대 내내 아랍어와 그리스어 텍스트가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1462년 마르실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가 그의 후원자인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를 위해 14개의 헤르메스 텍스트를 번역하면서 헤르메스 문서가 유럽 르네상스 시대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S.J. 패리스(S. J. Parris)의 역사 소설을 통해 잘 연구된)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같은 철학자들은 자연의 힘에 대한 이해가 자연 철학의 새로운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발상에 매료되었다. 이 이야기는 9장에 등장할 것이다.
- 1903년 네덜란드의 침략을 받은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식민지가 되었다. 인도네시아의 큰 섬 수마트라(Sumatra)에서는 과거의 식민지 시대와 현재 모두에서 여러 형태의 마법이 행해진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일무 케발(ilmu kebal)이라고 알려진 마법으로, 사람을 불사신으로 만들었다. 케린치 산(Mount Kerinci)을 둘러싸고 있는 케린치 지구(Kerinci District)에 자리 잡은 롤로(Lolo) 마을의 데파티 파르보(Depati Parbo)라는 사람은 장기간 치러진 네덜란드 군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현지 주민들은 네덜란드군의 총알이 파르보가 입고 있던 옷에 구멍을 냈지만 파르보의 신체는 꿰뚫지 못했다고 말한다. 데파티 파르보는 (인도네시아 무술인) 펜칵 실랏(pencak silat)을 훈련하고 현지 샤먼과 함께 공부하면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인근 화산에서 수행한 명상은 파르보의 마법 능력을 특이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파르보는 이 마법을 사용하여 네덜란드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지원했지만 실패한 것으로 밝혀졌다. 여성 무용수들도 일무 케발을 습득한다. 따라서 그들은 못 위나 검날 위에서 또는 타오르는 불 속에서도 맨발로 무사히 춤을 출 수 있다.
- 조상의 영혼에 부마되면 전쟁에서 필요한 불사의 힘을 얻는다. 보다 더 최근의 분쟁인 스리랑카 내전(1983년-2009년)에서 주요 반군 세력 가운데 하나인 타밀 타이거스(Tamil Tigers)는 죽은 전쟁 영웅을 화장하는 것이 아니라 매장하는 새로운 관행을 만들었다. 죽은 사람은 유령이나 보다 더 서열이 낮은 악마 같은 존재로 전환되어, 전쟁에 나서는 살아 있는 사람을 도울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타밀 타이거스는 삭발을 하거나 결혼할 때 여성이 처음 착용했던 목걸이를 연상시키는 목걸이에 시안화물 한 병을 매달아 착용하는 것 같은 보호 조치를 취했다. 그들은 이러한 조치가 자신들을 해로부터 구해주리라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 (선사 시대로 밀려나, 보다 더 이전의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단어인) 원시적인 유럽인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그렇게 된 원인과 그 증상을 제거하기 위한 처방은 성서와 과학을 통한 구원이었다. 이러한 집단이 겪은 모든 신체적 및 문화적 약탈 가운데 마법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의 피해가 가장 적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꼬리표의 영향은 심대하고 지대했다. 방대한 범위의 인간 행동(여기에서 내가 그저 스케치만 할 수 있을 정도의 깊이를 지닌 인간 행동의 독창성)이 무시되거나 주변으로 밀려났다. 그런 일은 그것들이 사회적 행동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었을 때조차 종종 일어났다.
- 아프리카 대륙에서 시작하여 아메리카 대륙, 호주 대륙을 차례로 검토할 것이다. 이야기할 내용이 매우 많기 때문에 각 대륙이 지닌 유구한 역사의 맥락에서 오직 우주론적 믿음에 대한 맛보기만 제공할 수 있을 뿐이다.
- 옥스퍼드 피트 리버스 박물관의 아래층 전시관(Lower Court)에는 마분구(Mavungu)라고 불리는 조상(그림 8.1)이 전시되어 있다. 원래 마분구는 중앙아프리카(Central Africa) 대륙에서 거대한 지역을 이루는 콩고강 유역(Congo River Basin)에 자리 잡은 콩고 족(Kongo people)에게 속한 것이었다. 마분구는 은콘디(nkondi)라고 불리는 목조 조상으로, 유럽인들에게는 때로 못 애호(nail fetish)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마분구의 얼굴은 눈에 띈다. 마분구는 입을 벌리고 눈을 크게 뜨고 있는데, 눈동자는 아주 작다. 한쪽 팔을 들어 올리고 있는 마분구의 다리는 붉은색이다. 마분구의 몸통 앞쪽에는 작은 상자가 두 개 달려 있고 상자의 앞쪽에는 거울이 달려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마분구의 몸에 못과 금속 조각이 박혀 있다는 것이다. 마분구를 만들고 마분구와 상호 작용했던 콩고 족에게 마분구는 물건이 아니라 일종의 사람이었다. 그들에게 마분구는 세계를 상대로 행동하고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였다. 망가아카(Mangaaka)라고 불리는 또 하나의 유명한 은콘디는 족장처럼 가마를 타고 이동했다. 은콘디는 다른 사람처럼 신체와 살아 움직이는 영혼으로 구성된 존재로 간주되었다. 그들의 영혼은 또 하나의 몸으로 옮겨질 가능성이 있었다.
- 자연의 영혼은 네 가지로 범주화되는 강력한 존재들 가운데 하나이다. 나머지 세 가지 범주의 존재는 유령, 인간의 조상, (섬유, 점토 항아리 또는 나무로 만든) 다양한 유형의 의례용 조상이고, 마분구는 다양한 유형의 의례용 조상의 강력한 예이다. 콩고 족에게 물의 영혼은 때로 인체에 깃들 수 있고, 자신이 지닌 물의 본질로 인해 인체에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 물의 영혼은 인체에 자연적으로 깃들 수 있지만 또 한 사람의 악성 의도를 통해 인체에 깃들 가능성이 보다 더 높다. 영혼을 쫓아내려면 영혼을 부마시킨 주술을 물리쳐야만 했다.
- 마분구 같은 조상에 생명을 불어넣고 명령을 내리기 위해 점쟁이가 동원된다. 일반적으로 점쟁이가 사용하는 방법은 마분구의 몸에 못을 박는 것뿐 아니라 마분구의 몸통 앞쪽에 달려 있는 상자들 속에 관련 물질(무덤에 있었던 흙이나 마법적 속성을 지닌 특별한 약물)을 넣어두는 것이다. 이러한 상자의 앞쪽에 달려 있는 거울 덕분에 점쟁이는 상자에 비친 모습을 통해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곳을 파악할 수 있다. 못을 박는 것은 이 의례에서 가장 극적인 측면인데, 여기에는 말장난의 힘도 포함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분구의 몸통 앞쪽에 달려 있는 상자 가운데 하나에 카즈(kazu) 열매의 부스러기를 넣어 두는 것은 마분구가 '깨물다'라는 의미의 카즈와(kazuwa)라는 주술을 행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마분구는 종종 보이지 않는 죽은 사람들의 땅을 여행하면서 조상에게 영혼과의 중보를 간청하곤 했는데, 이 여정이 진행될수록 마분구의 눈동자는 점점 더 작아졌다. 마분구의 눈동자가 사라진다는 것은 마분구가 죽은 사람들의 영역을 완벽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 마분구에 박힌 못이나 금속판은 분쟁, 질병 또는 어려움을 나타낸다. 마분구의 몸은 은간자(Nganza) 마을의 역사와 사회관계에 대해 알려준다. 많은 소규모 공동체가 그러한 것처럼 그들의 사회관계는 종종 걱정거리로 가득하다. 보다 더 세속적인 관점에서 마분구는 지역 내 인간관계의 온도를 살피고 바로잡는 중요한 기술이었다. 주술에 대한 고발을 통해 분쟁과 긴장이 고조되었고 때로는 해결되기도 했다. 주술사로 유죄 판단이 내려진 사람들은 자신이 보다 더 광범위한 힘을 비자발적으로 대리하는 행위자라고 합법적으로 주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만일 이러한 항의를 사람들이 믿어준다면 위법 행위에 대한 처벌이 상당히 완화될 수 있었다. 콩고족은 마분구가 이러한 차원에서 작동한다는 것을 인정할 뿐 아니라 조상, 유령, 자연의 영혼, 의례용 조상과의 복잡한 관계에 말려들어 있는 사람들의 삶의 모든 요소에서 영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 기원후 642년 아랍의 이집트 정복으로 북아프리카 대륙에 이슬람교가 자리를 잡았고 이후 아프리카 대륙 최북단 국경을 따라 빠르게 확산되면서 그리스도교 같은 그 밖의 다른 종교 공동체를 대체했다. 기원후 9세기 초 무렵에는 이슬람교가 동아프리카 대륙의 해안과 사헬 지역 서부까지 전파되었고, 12세기 무렵에는 무역상들이 사하라 사막을 건너 남쪽의 가오(Gao)와 팀북투(Timbuktu) 같은 곳까지 이슬람교를 전파했다. 모든 지역에서 이슬람교는 현지의 색채를 띠면서 상당한 종류의 다양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슬람교는 매우 다양한 마법을 탄생시켰다. 거기에는 악령의 눈이나 파티마의 손(Hand of Fatima) 같은 보호 장치부터 건물, 종종 가옥에 악령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문지방이나 출입구 아래에 항아리, 뼈, 그 밖의 다른 물질을 안치하는 것에 이르는 조치가 포함된다.
- 그리스도교는 기원후 4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누비아(Nubia)와 에티오피아에 도입되었고 현지 건축 형태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신만의 풍토 건축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지역에서 그리스도교는 이슬람교와 항상 적대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복잡하게 상호 작용해 왔다.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에서 두 종교는 그리스도교 성인에 관련된 매우 능동적인 제례를 발전시켰다. 그리스도교 성인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자신만의 조각상과 신전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1491년부터 유럽적인 형태의 그리스도교가 중앙아프리카 대륙에 도입되었다. 이후 서아프리카 대륙으로 전파된 그리스도교는 거기에서 현지의 신앙 형태와 상호작용했다. 아프리카 대륙은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선택적으로 의존해 온 복잡한 패턴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 걸쳐 엮여 있는 다양한 신앙의 가닥을 보여준다.
-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삶은 마지막뿐 아니라 시작도 중요하다. 삶의 시작과 마지막은 모두 성행위의 생성하는 에너지뿐 아니라 탄생이라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 가장 강력한 재료의 변형 가운데 하나인 금속의 제련은 사람의 탄생과 직접적으로 연계될 수 있다.
-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기원전 500년경 서아프리카 대륙에서 철야금술이 확립되면서 제철 작업이 청동 가공 및 금 가공보다 먼저 시작되었다. 특히 암석 형태의 광석에서 철을 떼어내는 제련을 통한 변형의 행위로서의 제철 작업은 종종 인간과 사물을 결합한다. 오늘날 많은 지역에서 금속 가공은 남성이 수행하고 용광로는 여성으로서 건설된다. 예를 들어, 싱가족(Chisinga)의 경우 용광로는 제련공의 아내이고 제련 작업에 관여하는 동안 남성은 반드시 인간 아내와의 성행위를 삼가야만 한다. 짐바브웨(Zimbabwe)의 쇼나족(Shona)과 남아프리카 대륙의 그 밖의 다른 지역에서는 가슴과 배꼽 모양으로 용광로를 건설한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토고(Togo) 및 바사리족(Bassari) 역시 가슴과 배꼽 모양으로 용광로를 건설한다. 제련이라는 뜨거운 활동은 성행위와 연계된다. 두 경우 모두에서 새로운 창조라는 기적이 가능해진다. 오늘날에도 여성과 아동은 제련이 이루어지는 장소에서 배제되곤 한다.
- 금속 가공을 하는 사람들은 강력한 변형의 힘과 파괴의 힘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종종 사회 전반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분야에서 마법을 행할 것을 요구받는다. 거의 보편적으로 제련은 영적인 의미뿐 아니라 신체적인 의미에서, 정착지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위험한 활동으로 간주된다. (적어도 화재의 위험은 그만큼 더 커짐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도, 금속을 뜨겁게 달구거나 주조하는 관행인 대장장이의 작업은 제련만큼 위험하지는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서 남성은 주로 금속을 가공하는 반면 여성은 항아리를 만든다. 각 활동은 모든 사회에서 중요한 그 밖의 다른 일련의 강력한 생산 및 소비 활동, 즉 동물 돌보기에서 식량의 가공과 요리에 이르는 활동을 연상시킨다.
- 나이지리아 이그보족(Igbo)의 이켄가(ikenga), 즉 개인 신으로 알려진 이 물건 같은 다양한 물건이 제련과 대장장이의 작업에 연관된다. 이켄가는 금속 뿔이 달린 양식화된 인물로 구성된다(그림 8.5).
- 이 이켄가는 인간의 모습을 한 인물로, 머리에는 숫양의 뿔이 달렸고 손에는 칼과 코끼리 엄니를 들고 있다. 이켄가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보통은 뿔이 있고 종종 크기가 작다. 따라서 쉽게 들고 다닐 수 있다. 이 특별한 이켄가는 대장장이에게 의의가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수집가는 이켄카가 '대장장이의 마스코트'로 묘사되어 왔고 금전적 번영을 가져올 수 있을 뿐 아니라 악한 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존재였다고 보고했다.
- 우리는 이미 많은 점복 사례를 살펴보았는데, 아프리카 대륙의 집단들은 미래를 예견하는 매우 다양한 방법을 개발해 왔다(그림 8.6). 고도의 형식성을 갖춘 요루바족(Yoruba)의 이바(Iba)에서부터 서아프리카 대륙 전역에 자리 잡은 쿠랑코족(Kuranko)의 다양한 관행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 점복 양식이 거대한 스펙트럼처럼 펼쳐져 있다.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두드러진다. 점쟁이들은 종종, 아마도 꿈을 통해 전해진 메시지를 통해, 외부적 힘에 의해 선택되었다고 느낀다. 즉, 그것은 그들이 선택한 직업이 아니다.
- 이와 유사하게, 점쟁이들은 자신이 의뢰인에게 제공하는 조언이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 밖의 다른 힘(전형적으로 영혼 또는 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종종 강하게 감지하곤 한다. 통로가 된다는 것은 주관적인 요소를 제거한다는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마을 또는 공동체의 정치에 대한 점쟁이의 지식이 점쟁이가 말하는 것에 연루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점복의 결과가 정확하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점쟁이가 메시지를 잘못 해석했거나, 아마도 그 과정에 주술이 영향을 미쳤거나, 매우 이따금, 점쟁이가 상담한 영혼이 악의를 가지고 점쟁이에게 혼동을 일으키는 대답을 내놓았기 때문일 수 있다. 오늘날의 의사들이 이따금 오진한다고 해서 그것이 근대 의학의 포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부정확한 점복으로 인해 전체로서의 체계가 의심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 점복의 결과는 점쟁이가 의뢰인에게 특정한 형태의 행동, 즉 일종의 희생을 바치거나 정화 의례를 치를 것을 권유할 것임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권유를 완벽하고, 정확하며, 지체 없이 따르지 않으면 나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점쟁이가, 이상적인 경우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된 쌍둥이 또는 한 쌍으로 활동한다. 또는 한 명의 점쟁이가 아마도 남성과 여성의 힘을 결합하기 위해 양성(兩性)의 특징을 가진 습관과 복장을 채택할 수 있다.
- 나이지리아 요루바족의 이파(Ifá) 점복은 아프리카 대륙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가장 공식적인 점복 가운데 하나로, 이파 점복에 대한 훈련은 까다롭다. 또한 이파 점복은 주로 노예 무역을 통해 생겨난 요루바 디아스포라를 통해 카리브해(Caribbean)와 남아메리카 대륙에서도 행해진다. 이파 점복에 대한 훈련은 어린 나이에 시작되고 에세 이파(ese Ifá) ('이파의 지혜')라고 불리는, 구두로 전수되는 방대한 전승의 집합체를 학습한다(에세 이파와 관련하여, 일부 해석에서는 이파가 신을 지칭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나머지 해석에서는 전승이나 지식의 집합체를 언급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 '군인들 가운데 일부는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닌지 물었다.'고 기록한 뒤 다음과 같은 가슴 아픈 문구를 덧붙여 글을 맺었다. '그러나 오늘날 내가 보았던 모든 것은 전복되고 파괴되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 아즈텍 국가는 꿈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꿈은 가혹하고, 큰 부담이 따르며,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종종 관객의 참여를 요구하는 의식과 공연이 규범이었던 극장(劇場) 국가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일 수 있는지, 오늘날의 우리 대부분은 상상하기 어렵다. 살아 있든 죽었든 인체는 의식 행사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올멕인 또는 보다 더 이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혈은 흔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흑요석 칼날이나 용설란의 가시로 혀, 귀 또는 허벅지를 찢어 신이 간절히 바라는 인간의 피를 신에게 공급했다. 테노치티틀란의 중앙 사원에서는, 보통은 막대한 전쟁포로들을 인신공희하여 보다 더 많은 양의 피를 신에게 공급했다. 사제가 피를 담은 그릇을 도시의 주요 신들의 조각상에게 들고 가서 그 입술에 발랐을 수 있었다.
- 아즈텍 세계에서는 사람들이 우주적 힘과 관계를 맺는 방법이 결정적인 문제였다. 지구의 힘과 영적인 세계의 힘은 인간 세계와 신성한 세계 사이에서 불러일으켜지는 일련의 반향을 통해 서로에게 스며들어 있었는데, 인간 세계의 동물과 사람들은 신성한 영역에서 보다 더 강력한 측면을 발견했다. <신 스페인 문물의 일반사>와 아즈텍 텍스트 모두에는 시우아코아틀(Cihuacoatl)(여성 뱀(Woman Snake)/'대지의 어머니(Earth Mother)'), 위칠로포치틀리('태양/전쟁의 신(SUn/War God)'), 트랄로크('비의 신(Rain God)') 같은 신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오늘날에는 고정된 만신전처럼 신이 선명하게 정의된 형태로 존재했는지 여부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는 아마도 신성한 힘, 연계된 특성과 상호 작용의 묶음, 이름의 군집이 시사하는 일련의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다 더 많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 신들의 형상은 신들의 속성이 얼마나 과도하게 많은지 보여준다. 위칠로포치틀리는 벌새와 연관되어 있고 때로는 벌새로 묘사된다. 인간의 모습을 취할 때는 머리에 청록색 벌새 깃털이 달린 투구를 썼고 얼굴은 검은색이거나 줄무늬가 있었으며 손에는 파란색 뱀인 시우코아틀(Xiucoatl)을 들고 있다(그림 8.12). 청록색 뱀 또는 불 뱀으로 알려진 시우코아틀은 그 자체로 아즈텍 도상에 공통적인 요소이고 위칠로포치틀리가 들고 있을 때는 창 발사기 또는 아틀라틀(atlatl)의 형태를 취하면서 위로포치틀리의 창을 번개와 연계했다. 터키석으로 만들어 아즈텍 통치자가 착용했던 왕권을 상징하는 머리띠는 시우코아틀의 꼬리였고 장관을 이루는 어느 의식에서는 종이로 만든 시우코아틀이 자신의 불을 나타내는 횃불을 들고 주요 피라미드에서 춤을 추었다.
- 또한 위칠로포치틀리는 독수리 깃털로 장식된 거울과 방패를 들고 있다(독수리는 테노치티틀란의 정초와 관련된 이야기에서 테노치티틀란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할 위치를 시사한다). 주요 사원에 자리 잡은 위칠로포치틀리 조각상은 면직물로 감싸져 있었고 금과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러한 석조 조상은 그것이 신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신인 것처럼 대우받았다. 12월에 열리는 위칠로포츨리의 주요 의식이 행해지는 동안에는 아마란스와 꿀로 위칠로포츨리의 작은 조상을 만들었고 의식에 참여한 사람들은 조상을 쪼갠 뒤 먹었다.
- 또한 이시프틀라(ixiptlas)로 알려진 의식에 복잡한 존재의 범주도 있다. 이시프틀라는 사람, 조각상 또는 빵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신의 대역 또는 신의 현현이었다. 이시프틀라는 신의 힘을 일부 누리는 능동적인 존재로 간주되었다. 신들의 대역인 인간 아바타는 의례가 끝날 때 희생되었다. 신, 석조 조각상, 인간 또는 식물 같은 다양한 범주의 실체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것은 우리가 무생물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사물, 인간을 포함하여 살아 있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사물, 신성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사물을 가로지르는 우주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이다. 아즈텍의 지적 생활의 상당 부분은 세계 전역에서 닮은 점과 변형을 추적하여 유리하거나 위험을 막을 수 있는 새로운 연계나 의의를 추구하는 것과 관련되었다. 신성한 힘은 세계 내에 존재했을 뿐 아니라 분리되어 있지만 연계된 차원에서도 존재했다.
- 많은 민족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미래를 점치는 일은 어렵지만 중요한 일이었다. 그 밖의 다른 중앙아메리카 대륙의 민족, 특히 마야처럼 아즈텍인들도 중국 상나라의 달력과 유사한 방식으로 서로 맞물리는, 시간의 순환이 뚜렷한 복잡한 달력을 발전시켰다. 한편에는 태양력인 시우틀(xiuitl)이 있었다. 시우틀은 18개의 '달[月]'로 구성되었는데, 각 달은 20일로 구성되었고 마지막 5일은 흉한 날이었다. 이것은 의례 달력인 토날포알리(tonalpoalli)와 연계되었다. 토날포알리는 1부터 13까지의 숫자에 고정된 순서로 연결된 20개의 기호로 이루어져 있었고 개별 날짜에 '한 도마뱀(One Lizard)' 또는 '열두 죽음(Twelve Death)'같은 이름을 부여했다. 이것은 전조(前兆) 풀이에 사용되었던 '신성한 날들의 책'인 토날라마틀(tonalamatl)의 토대가 되었다. 각 날짜의 이름과 숫자는 특정신이 관장했고 그 덕분에 문제가 훨씬 더 복잡해졌다.
- 이와 같이 복잡한 체계로 인해 아즈텍인은 (다른 곳과 상이한) 인과에 대한 구상을 가지게 되었다. 즉, 또 하나의 기간에 앞선 기간에 발생한 사건이 반드시 다음에 이어지는 기간의 원인으로 간주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두 개의 달력 덕분에 '연도 묶음(Bundle of Years)'으로 알려진 52년 주기에 걸친 순열이 완성되었다. 긴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동일한 이름을 가진 날들은 유사한 특징과 유사한 결과를 가지고 있었고, 그 덕분에 오랜 기간에 걸쳐 유사한 반향이 울려 퍼졌다. 하나의 연도 묶음으로부터 또 하나의 연도 묶음으로 넘어가는 시기는 위험한 경계의 시기였다.
- 예를 들어 사제들은 아기가 태어날 때 아기의 인생이 취할 수 있는 경로에 대해 말해주기 위해 전조 풀이를 수행했다. 그러나 <신 스페인 문물의 일반사>에서는 (종종 '요술쟁이'라고 불렸던) 그 밖의 다른 의례 전문가들도 많았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적 편견일 수 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요술쟁이가 공식적으로 승인되었다는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는 치료사였지만 나머지는 미래에 대해 점을 치거나 주술의 형태로부터 보호를 제공했다. 전조 풀이나 점복에는 흔히 연마한 흑요석으로 만든 거울이 사용되었다. 물을 담은 그릇도 사용되었다. 전문가는 자신이 들여다보고 있는 물의 표면에서 미래의 요소를 알아내려고 시도했다.
- 거울은 메소아메리카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초기의 형태는 연마한 황철석으로 만든 것이었다. 철 또는 흑요석 거울은 태양과 연계되고 위칠로포츨리와도 관련되었다. 텍스카틀리포카(Texcatlipoca)라는 신의 이름은 '연기를 내뿜는 거울(Smoking Mirror)'을 의미한다. 텍스카틀리포카는 한 발이 거울로 대체되고 또 하나의 발은 자신의 머리 뒤에 자리 잡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흑요석 거울은 힘과 통치에 대한 은유였고, 테노치티틀란의 대사원(Great Temple)에서는 흑요석 거울과 연마한 금 거울이 모두 발견되었다. 다음 장에서 우리가 살펴보게 되는 것처럼, 아즈텍의 흑요석 거울은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마법사 존 디(John Dee)가 사용했던 용품의 일부가 되어 미래에 대한 점을 치고 천사와 연결하는 데 사용되어, 두 마법 세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 아즈텍인들이 발전시킨 다양한 종류의 마법은 오랜 메소아메리카 역사의 일부였다. 아즈텍인의 지적 세계는 추상적인 이론이나 세계의 작동방식에 대한 일반적인 명제를 바탕으로 하는 세계가 아니었다. 그 대신 우리는 인체에 초점을 맞춘 조밀한 물리적인 세계와 마주친다. 많은 경험의 중심에는 고통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모든 형태의 신체적 고통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 오늘날의 우리 대부분에게는 심히 낯설 뿐이다(예를 들어 혀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작은 흑요석 칼날이 달린 밧줄을 넣었다가 잡아당겼을 때 느낄 수 있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상상할 수 없다). 강렬한 신체적 감각은 정서적 및 지적 차원과 더불어 경험의 실재를 신체에 각인시킴으로써 사람들을 ...
- (천둥이나 매의 형태를 취하는) 천둥 새 (Thunder Bird), 개별 동물에게서 표출되는 특성을 정제되고 영원한 형태로 구현하는 이른바 모든 동물종의 주인이라고 불리는 존재이다. 인간 가운데 인간에서 동물로 변형되었다가 되돌아올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샤먼뿐이고 심지어 샤먼에게도 이것은 위험하고 걱정스러운 과정이다. 비인간 사람은 친족 관계에서 사용하는 용어인 '할아버지'로 지칭된다. 할아버지는 일종의 영혼의 안내자 또는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인간을 도울 수 있다. 인간이 힘을 가지려면 이와 같은 할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하다. 올바른 영적인 안내는 사춘기의 소녀나 소년이 유폐, 금식, 기도를 통해 비전 퀘스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비전 퀘스트는 다양한 집단에서 약간 상이한 형태를 취하면서 대평원(Plains)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졌다.
- 사람이 죽으면 그들의 신체는 작동을 멈춘 뒤 부패할 것이지만 그들 내면의 영혼은 동물로 또는 훨씬 더 종종 새로 환생할 것이다. 신체는 의복으로 간주되고 의복은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다. 샤먼의 복장은 그들을 마법적인 존재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반대로 사람들 또한 의복에 힘을 주고, 신체의 움직임으로 옷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남아메리카 대륙과 카리브해 원주민의 언어에서는 의복과 신체를 지칭하는 단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두 경우 모두에서, 의복이나 신체는 겉으로 드러나는 외양과는 상이한 내면의 본질을 숨길 수 있다. 그러나 또한 두 경우 모두에서, 의복과 신체는 능력을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재규어의 몸을 입은 사람은 재규어만큼 빠르고 격렬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재규어의 복장을 차려입은 사람 또한 그 정도는 덜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할 수 있었다.
- 이와 같은 존재 방식은 우리 대부분에게 낯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쩌면 완전히 낯선 것은 아닐 수 있다.
- 일부 돌은 움직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할로웰은 인간 '소유자'를 따라 굴러다니면서 입 같은 표식을 가지고 있어 발화하는 입모양을 흉내 내는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돌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한다. 그 밖의 다른 돌은 움직이지 않을 수 있거나 적어도 돌이 움직이는 것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반면, 이와 같은 돌은 확실히 살아 있었다. 일반적인 분류 원칙을 토대로 결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생물인 사물과 그렇지 않은 사물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살아 있는' 또는 '생물'과 가장 밀접하게 닮은 오지브와족의 용어는 베마.디지와.드(bema.diziwa.d)로, '살아있는 상태의 지속'으로 번역될 수 있다. 아마도 살아 있었더라도 죽을 수 있고 죽었다고 여겨졌던 사물이라도 살아 있는 것으로 밝혀질 수 있었을 것이다.
- 외지인들에게는 이것이 이상한 관점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오지브와 족은 분류보다 평가를 더 강조한다. 이것은 또한 그 밖의 다른 인류의 전통에서도 분명히 중요하다. 움직이는 돌들은 능동적이고, 성장하며, 변화하는 세계의 일부이다. 그것들은 그렇게 이해될 필요가 있다. 서양적 사고에서는 돌이 그렇게 움직인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원자의 운동을 직접 경험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원자 수준에서 만물의 운동을 인식하고 있고 지각이 순환하는 힘으로 인해 대륙이 이동한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아주 작은 운동과 아주 큰 운동 사이에서 우리 모두는 돌이 물과 바람에 의해 침식된다는 것과 이와 같은 힘의 영향을 받아 돌의 형태와 아마도 위치가 변화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서양인에게는 자연이라는 개념이 중요하지만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을 포함한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 이의 중간 상태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좀비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더 큰 두려움은 좀비로 변하는 것이었다. (모든 신앙 체계가 그러한 것처럼) 보두교에는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보두교가 아주 작은 수의 부유층이 지배하는 아이티 같은 사회에서 가난한 대중에게 희망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보두교의 중요한 특징은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이다.
- 아메리카 대륙에서 논란의 여지가 가장 많은 마법의 측면 가운데 하나는 비원주민 집단이 토착 마법의 형태를 사용하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잠깐만 검색하면 북아메리카 대륙의 샤머니즘, 마야 마법, 그 밖의 다른 많은 마법을 다루는 강좌를 찾을 수 있다. 수강료를 지불하고 강좌를 수강한 학생은 자신이 선택한 마법에 대한 자격 증명서를 받고 졸업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원주민 집단은 이와 같은 오용에 대해 지극히 분노한다. 이 마법이 발전해 온 문화적 맥락은 대부분 빠진 채 비원주민이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 및 지식재산이 아닌 것을 활용하여 돈을 벌기 때문이다.
-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례 가운데 하나는 20세기의 영향력 있는 작가 카를로스 카스타네다(Carlos Castaneda)이다. 카스타네다는 자신이 톨텍의 지식을 공표했다고 주장하여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수백만명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카스타네다의 책을 읽었고, 매력을 느꼈으며, 호기심이 발동했고, 신비로움을 느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 카스타네다가 제공한 내용은 유혹적이었다. 카스타네다는 나왈(nagual, 나왈(na'wal)로 발음함) 지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을 제공했는데, 그가 글을 쓰기 전에는 숨겨져 있어 외지에서는 알 수 없었던 지식이었다. 카스타네다는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에서 인류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미국 남서부에서 현장 조사를 하는 동안 카스타네다는 야키족(Yacqui) 마법사 돈 후앙 마투스(Don Juan Matus)의 제자가 되어 가르침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돈 후앙은 '평범하지 않은 실재'라는 평행 우주에 접근할 수 있었다. 거기에서는 우리의 고유한 세계에 자리 잡고 있는 많은 신비를 이해할 수 있고 비행 같은 불가능한 기량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러한 다른 우주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페요테 선인장, 흰독말풀 또는 버섯을 복용해야 했고 다양한 형태의 신체적 금욕이나 명상을 행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보다 더 즉각적이고 신체적인 존재의 양식을 위해 세계에 대한 지적이고 분석적인 접근법을 포기해야 했다.
- 카스타네다의 책을 읽은 서양의 독자들은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시에서 제목을 착안한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책 <인지의 문 The Doors of Perception>을 떠올렸다. 이 책에서 헉슬리는 페요테 선인장을 복용한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만일 인지의 문이 정화되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무한히 드러난다.' 짐 모리슨(Jim Morrison)은 헉슬리의 책을 읽은 뒤 거기에 착안하여 자신의 록 그룹 이름을 '더 도어스(The Doors)'로 지었고, 카스타네다가 로스앤젤레스에서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공부하고 있을 때 동일한 도시에서 도어스의 첫 번째 트랙을 제작했다.
-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초월적인 경험을 탐색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카스타네다는 전통적인 마법적 지식의 기초를 제공했다. 그것은 지극히 유혹적이었다. 카스타네다의 책에는 그 밖의 다른 많은 매력도 있었다. 카리스마 넘치지만 근심이 많은 어느 학생이 단순하지만 매력적인 문장으로 삶을 변화시키는 일련의 경험에 대한 글을 썼다. 그 경험은 그만큼 카리스마 넘치는 원주민 스승, 즉 깊은 문화적 뿌리를 지닌 지식의 형태에 ...
- 호주 대륙의 중앙을 구불구불 가로지른다(그림 8.14). 이 몽환로는 일곱 자매 별 (Seven Sisters), 즉 플레이아데스 성단과 연결된다. 일곱 자매 별은 호주 대륙을 가로질러 여행하는 여성 조상의 영혼이다. 부분적으로는 유를라(Yurla) 또는 와티 니루(Wati Nyiru)라는 욕정에 휩싸인 노인을 피해 도망치는 중이다. 이 남성은 자신의 모습을 변형할 수 있는 변신술사로, 자신의 모습을 먹음직스러운 식물이나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로 변형하여 여성을 유혹했다. 처음에는 일곱 명 이상의 여성이 있었지만, 지형을 실제 존재로 만들어내는 고된 노동으로 인해 그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일부 여성이 지쳐서 바위로 변형되면 나머지 여성들이 그들의 자리를 대신했다. 극적인 사건도 일어났다. 호주 서부 해안에서 내륙으로 약 6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마르투족(Martu) (사막에서 완벽하게 생활하는 마지막 호주 원주민 가운데 하나)의 영토에 존재하는 판갈(Pangal) 물웅덩이에서는 여성들이 유를라의 머리 위로 날아와 자신들의 생식기를 드러내면서 유틀라를 조롱했다. 유라의 성기는 스스로 분리되어 물웅덩이를 뚫고 나갔다. 그 흔적은 오늘날에도 그 구멍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게 남아 있다. 여성들이 남쪽에 자리 잡은 또 하나의 바위 구멍으로 도망치자 유를라의 성기는 개울 바닥을 따라 그들을 뒤쫓는다. 자매들은 북쪽에 자리 잡은 언덕의 안전한 곳으로 앞다투어 달려간다. (오늘날 언덕을 따라 일렬로 서 있는 바위들은 이 자매들로 간주될 수 있다.) 유를라는 자신의 성기(또는 아마도 뱀)를 몸에 감은 채 인근에 숨어서 기다린다. 자매들은 선수를 치지만 유를라를 따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유를라는 남성일 수도 있고 지구 자체로부터 비롯된 일종의 생성하는 힘일 수도 있다. 이것은 매우 불분명하다. 유를라는 자신의 욕정에 못 이겨 모든 전통과 예의를 짓밟는 존재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지켜야 하는 사회의 규칙을 미묘한 방식으로 ...
- '버클리의 마녀(witch of Berkeley)'에 대해 전한 이야기가 있다.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 이 여성은 자신이 시신이 일어날 것을 걱정하여 자녀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나의 시신을 사슴 가죽으로 꿰맨 다음 돌로 만든 석관(石棺) 안에 얼굴이 위를 향하게 안치한 뒤 납과 철로 뚜껑을 봉인해라. 그리고 육중한 쇠사슬 세 개로 돌을 묶어라.' 사람들은 되살아난 망령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에 따른 실무적인 조치를 취한 것처럼 보인다.
- 미사 같은 종교관행뿐 아니라 보다 더 많은 마법적 수단이 사용되었다. 내세로 가는 길을 돕기 위한 부적이 무덤에 안치되었다. 관이나 무덤에는 흔히 다양한 종류의 순례자 토큰이 추가로 안치되었지만 주문이나 성스러운 구절을 기록한 납판도 안치되었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죽은 사람들과 호혜적인 관계를 맺었다고 느꼈다. 그 관계는 상호적인 원조와 이익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었다. 1215년에는 죽은 사람들을 장기간 수용하는 공간인 연옥(Purgatory)의 교리가 공식화되었다. 죽은 사람들은 연옥에서 세계의 종말에 이루어질 심판을 기다리게 되었다. 살아생전의 행실이 천국에 갈 것인지 아니면 지옥에 갈 것인지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었지만, 살아 있는 사람이 드리는 기도와 죽은 사람들을 위한 미사도 유익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그 대가로 죽은 사람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시도할 수 있었다. 이 호혜 관념은 유럽의 선사시대(6장)에서 발견되었던 것과 유사하지만, 그리스도교적 어법으로 재구성되었을 수 있다.
- 천사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중세 시대의 마법을 행하는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천사의 순수성을 감안할 때, 천사와 교섭할 수 있는 잠재적인 인간 상대방은 몇 달이 걸릴 수 있는 정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어떤 경우에는 마법사의 몸이 지구에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 마법사의 혼이 하늘로 올라갔고, 그 밖의 다른 경우에는 천사가 내려와 마법사에게 지침을 줄 수 있었다.
- 천사론에서 가장 중요한 지침서 필사본 가운데 하나는 기원후 12세기에 이탈리아 북부에서 작성된 <아르스 노토리아 Ars notoria>이다. 천사의 계시를 통해 인간 지식의 모든 중요한 영역에 대한 이해를 약속하는 <아르스 노토리아>는 그리스도교의 기도문과 (도식처럼 보이는 단어, 도형, 마법 문자를 결합한 그림인) 일람표(norae)의 검사를 결합했다. 사실, 의례 공간을 배치하거나 마법적 물건을 구성하는 데 유사한 도식이 사용되었다. 만일 <아르스노토리아>를 머리 밑에 두고 잠을 자면 계시의 꿈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천체 및 천사와의 소통을 위해 특별히 설계된 재료 문화가 발전되었다. 수정은 순수하다고 여겨졌다. 따라서 순수한 영혼을 끌어당기고 사실 영혼을 포획할 수 있었다. 수정 구슬은 그리스도교 이전의 유럽의 무덤에서 발견되고, 우리가 살펴볼 것처럼, 중세 시대부터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는 시대에 많이 사용되었다. 마법사와 영혼 사이의 매개자로서 영매를 사용할 수 있었는데, 영매로는 종종 어린 소년들이 선호되곤 했다.
- 강령술(降靈術)을 통해 악마를 불러낼 때는 보다 더 큰 위험과 마주쳤다. 악마에게 질문을 던지는 동안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인의 이름을 사용하여 질문에 답하도록 보장하고 답의 진실성을 보장하려고 시도했다. 유명한 악마 가운데 하나인 플로론(Floron, 때로 플로렌(Floren)이라고 표기하기도 함)은 거울에 나타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 순수한 강철로 만든 거울을 밝게 빛나고 반짝일 때까지 연마해야 했다. 거울을 만드는 사람은 순결한 사람이어야 했는데, 그는 깨끗하게 씻고 청결한 복장을 차려입어야 했다. 순결한 소년만이 거울을 사용하여 점을 칠 수 있었다. 이 의례의 일부 버전에서는 플로론이 말을 탄 기사로 등장해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
- 태양이 뜨면 꽃잎을 열고 태양이 지면 꽃잎을 닫는 연꽃이나 새벽에 우는 수탉이 포함된다. 따뜻함과 빛 같은 태양의 유익한 특성 가운데 일부는 연꽃이나 수탉에게서 발견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연꽃은 어두운 조건과 우울한 조건을 치료하는 약으로 사용될 수 있었고, 후자인 수탉은 태양 에너지의 활용이 유익할 수 있는 시간대에 희생될 수 있었다. 지구에 얽매이지 않고 공중의 보다 더 높은 영역으로 갈 수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어떤 의미에서 수탉은 꽃보다 우월했다. 사자는 수탉을 두려워한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각각의 상대적인 힘을 감안해 보면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이 설명이 태양과 수탉의 연결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또한 피치노와 그 밖의 다른 학자들은 인간의 감각에 위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 위계는 촉각, 미각, 후각, 청각 같은 기본적인 감각에서 시작하여 시각, 상상력, 이성 같이 사람들이 실재의 다양한 수준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감각으로 올라간다.
- 마법과 철학은 모두 즉각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사물들 사이를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실타래를 경험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수행된 실험이었다. 많은 존재의 사슬이 존재했다. 이것들은 지구의 특정한 사물을 지구의 위에 존재하는 사물과 연결하고 태양 너머 그 위에 존재하는 사물과 연결했다. 태양 너머 그 위에 존재하는 사물과 연결하는 경우는 모나드((Monad), 즉 '일자)'로 융합되는 것이었다. 인간의 감각이 닿지 않는, 그러나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중요한 저 너머 위의 영역인 천상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비주의적인 차원도 필요했다. 피코 델라 미란돌라(Picodella Mirandola)는 '원소의 불은 타오르고, 천체는 생명을 주며, 초(超)천체는 사랑한다'고 기록했다. 사슬로 연계된 사물들은 개인적인 행위자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상호 공감하거나 심지어 사랑에 이끌렸다. 예를 들어 목성은 풍요, 관용, 확장뿐 아니라 보다 더 높은 지식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목성의 유쾌한 특성은 이웃 행성인 토성의 보다 더 차가운 본질과 대조를 이룬다.
- 중세 시대와 근대 시대 학문적 마법의 두 가닥인 연금술과 점성술은 매우 중요하고 널리 퍼져 있어 그것들을 각각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우리는 연금술이 고대 중동 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나긴 역사를 지녔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기록된 역사가 그렇다는 것이다. 실제 연금술의 역사는 금속을 다루기 시작했을 때와 아마도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으로 보이는데, 연금술적 사고가 기록된 것은 오직 지난 몇 천 년에 불과하므로 연금술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보다 훨씬 더 길다는 것은 거의 분명하다. 연금술이라는 단어는 아랍어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이것은 아랍 세계가 연금술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선례가 된 그리스에서 비롯된 연금술 가운데 일부는 기원후 13세기 이후 아랍어 필사본의 번역을 통해 유럽에 전파되었다는 점에서 적절할 수 있다. 동양과 서양 사이의 연계는 여전히 완벽하게 탐구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연금술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사이뿐 아니라 인도와 중국 사이를 연계하는 일련의 혼합문화로 구성되었다.
- 서양적인 전통에 대한 결정적인 필사본은 다시 한번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의 것으로 밝혀졌다. 이 필사본은 <녹색 판 The Green Tabler>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가 누구이든 관계없이 <녹색 판>은 기원후 2세기경 이집트에서 그리스어로 작성되었다. 금속은 재료의 위계의 정점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여겨져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납에서 금에 이르는 다양한 유형의 금속 자체에는 지위가 정해져 있었다. 또한 대응 관계의 사슬을 통해 지구의 물질은 하늘의 물질에 연계되었다. 납은 토성, 금은 태양, (퀵실버라고도 부르는) 수은은 동일한 이름의 행성인 수성과 짝을 이루었다. 구리와 주석 같은 금속을 합금하여 청동을 형성하는 것은 금속의 물리적 특성을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행성의 영향을 녹여내는 것이었다. 온갖 부류의 혼합물은 바로 이러한 이유로 힘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었다. 세계가 기반 상태에서 훨씬 더 완벽한 상태로 서서히 진화하고 있다는 관념이 존재했다. 납은 결국 금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연금술은 그저 부자가 되는 방법이 아니라 그것의 보다 더 우주론적 형태에서 세계가 완벽함으로 나아가는 속도를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었다. 연금술은 돈에 눈이 먼 사람과 철학자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장을 형성한다. 이것이 연금술의 수수께끼이자 힘이다.
- 아랍 세계는 자비르 이븐 하이얀(Jabir ibn Hayyān) 같은 여러 결정적인 인물을 배출했다. 유럽인들에게 라틴어식 이름인 게베루스(Geberus) 또는 게베르(Geber)로 알려진 자비르는 이후 화학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통제된 실험을 발전시켰다. 또한 자비르는 아랍어로 된 물질의 이름의 어근문자가 숫자와 연계되어 있고 수비학이 다양한 원소의 물리적 속성에 대한 핵심을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1144년 체스터의 로버트(Robert of Chester)는 <연금술의 구성에 관한 책 Book of Composition of Alchemy>을 아랍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했고, 이는 유럽에 보다 더 체계적인 틀거리를 제공했다. 보다 더 이전의 유럽에서는 재료에 대한 실험이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 12세기에는 톨레도 (Toledo)가 아랍어 번역의 중심지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영어에 묘약, 알코올 같은 새로운 단어가 등장하게 되었다. 13세기에는 쾰른(Cologne)의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us Magnus)와 옥스퍼드의 로저 베이컨(Roger Bacon) 같은 중요한 인물들이 이러한 새로운 자료를 종합하여 그것을 보다 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틀거리 안에 배치했다. 로저 베이컨은 대학이라는 발상에 관심이 있었다. 베이컨에게 연금술과 점성술은 모든 대학이 포용해야 할 중요한 지식의 분야였다. 보다 실무적인 수준에서 베이컨과 그 밖의 다른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실험실에서 실험했다. 연금술은 순수하게 이론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실험의 일부 영역에 중요한 것은 증류였다. 증류는 끓이고 응축하는 연속적인 과정을 통해 액체의 구성 요소를 추출하는 방법으로, 기원전 12세기에 증류를 사용하여 향수를 만들었던 아카드인 사이에 알려져 있었다. 고대 그리스와 아랍 세계에서는 알코올을 정제하고 다양한 의료용 팅크를 창조하는 데 증류를 적용했다. 증류는 연금술 관행의 결정적인 측면으로서, 물질을 정화하거나 본질로 환원하는 방법으로 광범위하게 간주되었다.
- 이와 같은 실험의 이면에는 순수성에 대한 보다 더 우주론적인 차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세계의 다양한 사물의 기저에는 보다 더 순수하고 보다 더 단일한 물질이 자리 잡고 있고 거기에서 개별적인 특성이 분화되어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이와 같은 근원(Ur) 재료를 찾기 위한 탐색이 시작되었다. 철학자의 돌(Philosopher's Stone)로 알려지게 된 이와 같은 물질의 파편을 어느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돌아다녔다. 이와 같은 돌의 조각을 가지고 기반이 되는 어떤 것(예: 납)에 추가하면 그것은 보다 더 높은 금속으로 변형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귀중한 것은 금이었다. 인체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완벽해질 수 있었다. 물론 완벽한 신체는 늙거나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철학자의 돌의 파편을 곱게 갈아 물에 추가하거나 능숙한 증류를 통해 얻은 지극히 정제된 액체는 영생의 묘약(Elixir of Life)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중세와 근대 세계의 많은 사기꾼들이 철학자의 돌과 영생의 묘약에 이끌렸다. 그들은 부유하고 힘이 있으며 쉽게 속일 수 있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이 발견한 기적을 시연해보였고 그 가운데 일부는 성공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 르네상스 시대에는 대응을 통해 연금술의 완벽한 헤르메스주의적 및 신플라톤주의적 토대가 이해되었다. 여기에서 연금술은 이른바 의화학(醫化學, iatrochemistry) (그리스어 이아트로스(iatros)는 '의사'를 의미) 관행을 통해 의학에 접근했다.
-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인물은 파라켈수스(Paracelsus, 1493년-1541년)였다. 파라켈수스는 진단 수단으로서의 점성술적 계산과 대부분 중세 시대 연금술에서 비롯된 화학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다양한 종류의 치료 양식을 결합했다. 파라켈수스는 중세 시대의 사체액설을 재공식화하여 인체에 결정적인 균형은 안정성을 촉진하는 소금, 유황(연소성), 수은(유동성)의 체액 사이에 존재한다고 주장했고 하나의 체액이 그 밖의 다른 두 체액과 분리되면 질병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파라켈수스가 의학에 대한 연금술적 접근법과 점성술적 접근법 방식에서 갈라져 나오기 시작한 것은 일부 유형의 질병이 신체의 바깥에 있는 행위자의 공격으로 인한 결과라는 생각이 커지면서부터였다. 이를 통해 파라켈수스는 매균설의 기틀을 마련했다. 파라켈수스는 비교적 최근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입된 매독에 관심을 가졌고 아편을 원료로 하는 아편제(阿片劑)를 개발하여 통증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대응설을 적극적으로 추종했던 파라켈수스는 '무기 연고'로 유명해(또는 오히려 악명 높아)졌다. 파리켈수스는 우선 단검에 찔린 사람의 상처를 화합물로 치료한 다음 상처의 치유 속도가 빨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상처에 바른 것과 같은 연고를 그 사람을 찌르는 데 사용된 단검에도 발랐다. 파라켈수스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단검에 연고를 바르는 것이 우리에게는 기괴한 행위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15세기와 16세기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따랐던 대응 관계의 논리가 가졌던 힘을 보여준다.
- 연금술은 이해하기 어렵고, 암시적이며, 암호화된 언어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악명이 자자했다. 이것은 보다 더 진지한 숙련자들이 자신들의 발견이 입문자들에 의해 도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른바 지식을 갖추지 못한 연금술사들이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물을 이해하는 척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이 둘을 구분하기는 어렵다. 연금술은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그것의 바탕을 이루는 위대한 지식은 종종 보다 더 미숙하고 보다 더 글을 잘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악용되었다. 중세 시대와 초기 근대 시대 마법의 그 밖의 다른 위대한 분야인 점성술도 그러했다.
- 셰익스피어가 가장 위대한 희곡을 남긴 16세기 말부터 1660년 잉글랜드의 왕정복고(Restoration of the monarchy) 시대 사이에, 주로 두 명의 점성술사가 행한 8만 건이 넘는 점성술 상담 기록이 존재한다. 그들은 우리가 1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이먼 포먼과 리처드 네이피어이다. 포먼은 1597년 네이피어에게 점성술 과학의 원리를 가르쳤고, 포먼이 런던에서 상담을 행하는동안 네이피어는 자신이 교구 목사를 지내고 있던 버킹엄셔의 그레이트 린포드(Great Linford)로 돌아갔다. 네이피어는 (포먼의 기록이 포함된) 자신의 기록을 조카인 리처드 네이피어 경에게 남겼다. 역시 점성술을 행했던 리처드 네이피어 경은 자신의 고유한 상담기록을 추가하면서 1660년대까지 공동 연구의 역사를 이어나갔다. 이러한 모든 기록은 엘리아스 애쉬몰(Elias Ashmole)(1683년 자신의 이름을 담은 애쉬몰 박물관(Ashmolean Museum)을 설립)의 손에 넘어갔는데, 1677년 애쉬몰이 그 기록을 옥스퍼드 대학교에 기증하면서 현재 그 기록은 옥스퍼드 대학교의 보들리언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대부분의 기록은 최근 디지털화되었고 우리는 21세기에 걸맞은 형태로 변모한 기록들을 웹을 통해 새롭게 참조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는 점성술, 포먼 및 네이피어에 대한 유용한 배경 정보, 포먼을 바탕으로 만든 비디오 게임을 포함한 부가 정보도 함께 제공되고 있다. 초기 근대 시대 유럽에서 이루어진 점성술 연구에 대한 단일한 기록으로서는, 가장 방대한 기록인 이 모든 기록은 당시의 사람들이 점성술을 얼마나 진지하게 바라보았는지를 보여준다.
- 이 기록물에 포함된 8만 건의 기록은 오늘날 우리가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포먼과 네이피어를 방문하여 돈을 지불하고 조언을 받은 6만 명 이상의 사람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의뢰인들의 질문 가운데 약 90퍼센트는 질병과 관련된 것이었고 나머지는 결혼, 직업 전망, 실종자, 주술, 법적 소송 등에 관한 것이었다. 의뢰인은 하인부터 귀족,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는 동시대 사회의 스펙트럼을 나타낸다. 포먼을 방문한 의뢰인의 대부분은 런던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셰익스피어가 세 들어 산 집의 여주인이 포먼에게 자신의 천궁도를 점쳐달라고 의뢰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반면 네이피어를 방문한 사람들은 주로 잉글랜드 중남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포먼은 질문, 진단, 답변을 기록하는 체계를 발전시켜 충실하게 기록했다. 네이피어는 동일한 체계를 채택했지만 조금 더 다양한 내용을 기록했다. 기록에는 환자의 이름, 나이, 그들의 상태에 대한 몇 가지 세부 사항, 의뢰인의 질문, 질문이 제기되었을 때 행성과 황도 12궁의 위치에 대한 천궁도가 포함된다(그림 2.2). 대부분의 사례에서는 치료법이나 반응도 시사된다. 따라서 질병의 경우 약초, 사혈, 하제(下劑)가 필요했다. 약 25퍼센트의 사례에서는 환자의 소변이 묘사되어 있는데, 포먼에 비해 네이피어는 소변을 진단 도구로서 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다. 아주 이따금 혈액 샘플도 채취했다. 때로는 천궁도와 그 밖의 다른 수단(예: 주사위 던지기를 통한 점복)이 결합되었다. (대천사에게 어떤 방법으로 질문을 던졌는지는 불분명함에도 불구하고) 1,000건이 넘는 사례에서는 대천사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건강과 관련된 문제를 살펴볼 때, 정신적 건강과 신체적 건강을 구분하지는 않았다.
- 포먼과 네이피어는 다양한 형태의 점성술을 행했다. 지금까지 가장 흔한 형태는 별자리 상담으로, 질문을 하는 순간의 행성과 별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이었다. 당시에 알려진 행성은 많은 사람들이 행성이 아닌 것으로 이해했지만 행성계는 태양과 달의 존재를 바탕으로 하므로) 태양과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이렇게 7개였다. 이 무렵에는 다양한 날짜와 시간에 대한 행성의 위치 기록이 천체력(天體曆, Ephemerides)이라고 불리는 표에 수집되어 점성가가 참조할 수 있었다. 그 밖의 다른 형태의 점성술도 행해졌지만 흔한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병에 걸리거나 잠자리에 드는 순간의 천체의 위치를 파악하여 불운의 원인을 밝히는 의학 점성술, 미래의 어느 시점에 대한 행성의 위치를 예측하여 원하는 행동 과정을 취하기에 길할 수 있는 순간을 확인하는 데 필요한 제비 뽑기, 이미 일어난 행동의 원인이나 결과를 예측하기 위해 천궁도에 질문을 던지는 점성술이 포함되었다.
-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마술사'라는 수상쩍은 평판으로 오늘날까지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존 디와 근대 과학의 창시자인 아이작 뉴턴을 비교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 없는 비교이거나 심지어 불경스러운 비교처럼 보일 것이다. 존 디의 죽음과 뉴턴의 탄생 사이에는 한 세대 정도의 시간적인 차이가 있다. 존 디는 헨리 8세(Henry VIII)의 통치와 종교개혁이 유발한 격동의 시대를 겪으면서 성인이 되었고 인생의 어느 시점에 가톨릭교에 공감했다. (개신교도들이 가톨릭교를 비판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가톨릭교가 마법적이라는 점에 있었다는 것은 중요하다.) 뉴턴은 우주의 작동을 이해하는 이성의 힘을 보여주는 패러다임적 사례인 계몽주의적 사고의 모형을 탄생시키는 데 기여했다.
- 그러나 두 사람은 보기보다 훨씬 더 유사했다. 세 가지 법칙으로 아인슈타인(Einstein)이 등장하기 이전까지의 물리학의 기초를 제공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금술, 점성술, 성서의 예언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뉴턴은 당대의 수학, 지도 제작, 천문학에 매우 정통했던 마법사 존디를 반영하는 인물이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뉴턴이 최초의 과학자가 아니라 오히려 최후의 마법사라고 말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존 디에 대해보다 더 긍정적인 측면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영국 박물관의 계몽주의 갤러리(Enlightenment Gallery)에서는 존 디의 마법 장비를 전시했고, 런던에 자리 잡은 왕립 외과 협회(Royal College of Physicians)에서는 존 디의 서재와 그 밖의 다른 자료를 특별 전시했으며, 데이먼 알반(Damon Albarn)과 루퍼스노리스(Rufus Norris)가 창작한 오페라 <닥터 디 Dr. Dee>가 공연되었다.
- 나는 존디와 뉴턴의 관행과 사고에서 반향을 탐구할 것이다. 여기에는 보다 더 광범위하고 중요한 요점이 있다. 우리는 르네상스 시대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고와 영향을 절충주의적으로 혼합한 것 가운데 오늘날의 원형이라고 느껴지는 몇 가지 가닥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이때 우리는 근대 과학의 기원을 우선시하여 선택하고 마법적 사고는 괴이하고 시대에 맞지 않는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보기에 뉴턴은 소중한 과학의 조상이고 존 디는 마법이라는 막다른 길을 추구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존 디와 뉴턴의 두뇌와 신체 내에는 과학과 마법을 풀어낼 수 없는 방식으로 뒤섞는 믿음과 가설이 존재했다. 예를 들어, 두 사람 모두 빛의 본질에 관심이 있었고 수정과 거울의 굴절 특성을 오늘날의 우리에게 호소력을 가지는 물리적인 측면에서 사고했다. 반면 오늘날의 우리는 공감할 수 없는 사고도 있었다. 즉, 그들은 빛을 천사의 작용에서 발산한 것으로 간주했다. 뉴턴의 중력 관념은 존 디가 기틀을 마련한 것이었다. 존 디는 별과 행성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기 위해 힘을 상정했고 이것은 점성술의 토대가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는 지금보다 더 정통적인 시대였다. 그러나 매우 풍부하고, 비옥하며, 이것저것이 뒤섞인 특징 덕분에 모순이 겉으로 드러나는 불안정한 시대였고, 덕분에 사고의 생산성이 높아졌다.
- 물론 존디와 뉴턴은 문화적으로 다른 시대를 살았고 다른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존 디는 격동기였던 16세기를 살아간 인물이었다. 헨리 8세의 시대부터 왕실 궁정의 언저리에 머물면서 군주에게 마법 조언을 제공했던 존 디는 높은 지위에 올랐던 것만큼이나 큰 좌절을 겪었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했을 뿐 아니라 왕실의 호의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사고와 접근법을 끊임없이 수정해야 했기 때문에 존 디는 일관된 노선의 사고나 연구를 발전시킬 수 있는 안정적인 여건을 확보하지 못했다. 덕분에 존 디가 기록한 작업의 내용은 방대하지만 압도적으로 이질적이다.
- 벨기에 루뱅(Leuven)에서 공부한 존 디는 1548년 8월에 대학에 입학하여, 무엇보다도 케임브리지에서 획득한 산술기하학, 원근법, 천문학을 바탕으로 지도제작자 헤르하르뒤스 메르카토르(Gerardus Mercator)(가장 많이 사용되는 지도 투영법의 창시자)와 함께 점성술에 집중했다. 존 디는 일반적으로 세계의 이러한 원소적인 부분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천상의 영향과 작용에 관심이 있었고, 특히 별에서 빛과 함께 발산되는 천상의 광선을 측정하는데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하늘에 떠 있는 별의 각도, 별의 운동, 별과의 거리를 계산하면 변화하는 별의 영향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가장 강력한 광선은 수직 광선이었다. 1555년까지 루뱅에서 개발한 도구를 사용하여 수천번의 측정을 수행한 존 디는 자신이 점성술에 새롭게 확보한 경험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고 느꼈다.
- 존 디가 행한 가장 유명한 점성술은 엘리자베스 1세의 대관식에 가장 길한 날짜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존 디는 오랜 계산 끝에 그 날짜를 1559년 1월 15일로 정했다. 블안정한 군주이자, 개신교도이자, 여성이었던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대관식의 본질과 그 무대는 지극히 중요했다. 점성술에 의해 대관식 날짜가 결정되었다는 것은 다소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존 디가 그랬던 것처럼 점술이라는 기법이 얼마나 존중받았는지를 알려주는 표식이다. 영국 박물관에는 존 디와 연결된 다섯 개의 물건에 소장되어 있다. 거기에는 수정 구슬, 수학 및 마법 장치가 음각되어 있는 밀랍인장, 아즈텍에서 유래한 흑요석 거울, 금으로 만든 부적 (존 디와의 연계는 다소 수상쩍음), 천사들이 존 디의 동료인 에드워드 켈리(Ettvardd Kelley)에게 보여준 환상의 한 장면이 음각되어 있는 밀랍이 포함된다.

- 존 디는 평생 동안 계시를 추구했다. 그것은 존 디를 그의 활동에서 가장 논란이 분분한 측면으로 이끌었다. 바로 천사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존 디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템스강 모트레이크(Mortlake)에 있는 커다란 주택에 연구소를 설립하기 위해 애썼지만 귀족과 왕실의 지원을 받는 데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트레이크에 자리 잡은 주택에는 유럽 전역에서 유명해진 존 디의 도서관뿐 아니라 다양한 유형의 실험실이 갖춰져 있었다.

- 그림 9.4에서 우리는 존 디의 구체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키가 크고, 수염을 길렀으며, 검은색 의복을 차려입은 존 디가 모트레이크에 자리 잡은 자신의 주택에서 실험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존 디는 연소를 유발하거나 불을 끄기 위해 두 가지 요소를 결합하는 실험을 '행동'이라고 불렀을 수 있는데, 둘 중 어느 것을 위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여왕의 궁정에 소속된 다양한 권력자들이 이 실험을 열심히 지켜보는 모습이 보인다.
- 존 디의 뒤에는 논란의 대상이 된 존 디의 조수 에드워드 켈리가 앉아있다. 켈리는 위조범죄에 대한 형벌로 잘린 두 귀를 숨기기 위해 긴 두건을 쓰고 있다. 1580 년대부터 존 디는 주로 그의 수석 점쟁이인 켈리를 통해 다양한 영혼 및 천사들과 대화를 나누려고 시도했고 이러한 실체들과 나눈 대화는 존 디가 <신비로운 다섯 권의 책 Mysteriorum libri quinque>이라고 부른 책에 기록되었다. 존 디와 켈리는 유일신의 언어로 기록된 외경 <에녹서 Book of Enoch>를 재현하려고 시도했는데, 이 책은 세계 내에서 막대한 힘을 가진 책이었다. 켈리는 수정 구슬과 아즈텍에서 유래한 거울을 통해 많은 영혼과 대화를 나눴다. 거기에는 대천사 미카엘(Michael)뿐 아니라 우리엘(Uriel)과 아나엘(Anael) 같은 보다 더 서열이 낮은 영혼도 포함되었다.
-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뉴턴의 경우 마법 관행만이 유일한 오점인 것처럼 보였다. 마법 관행만 아니었다면 계몽된 지성으로 남았을 평판에 마법관행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기 때문이다.
- 뉴턴은 점성술을 제한적인 범위에서 행했지만, 뉴턴의 주요 열정 가운데 하나는 연금술이었다. 뉴턴은 존 디 및 그 이후의 많은 사람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세계에서 겉으로 드러난 다양성의 기저에 자리 잡고 있는 물질과 인과의 합일을 추구했다.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뉴턴도 우주의 기저에 자리 잡고 있는 이루는 합일의 핵심으로서 철학자의 돌(그림 9.5)을 추구했다.
-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뉴턴의 연금술 연구에 대한 최근의 사고는 급격하게 변화했다. 과거에는 뉴턴의 연금술 연구를 일종의 탈선이나 위대한 인물인 뉴턴의 부끄러운 결함으로 보았다면 최근에는 연금술을 뉴턴의 작업과 사고에 중심적인 것으로 여긴다. 뉴턴은 실험실 연구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는데, 처음에는 트리니티 칼리지의 자기 방에서 두 개의 용광로를 가동했고(오늘날 트리니티 칼리지의 보건 및 안전 책임자가 여기에 어떻게 대응했을지 상상해 보면 흥미롭다.) 나중에는 트리니티 칼리지 출입문 근처에 자리 잡은 작업장을 빌려 활동의 범위를 확장했다. 수년간의 강도 높은 실무 작업은 헤르메스주의 철학에서 데카르트(Descartes)에 이르는 매우 광범위한 텍스트를 읽으면서 보완되었다.
- 뉴턴에게 물리학 및 연금술사고는 모두 우주에 대한 근본적인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도구였다. 뉴턴은 우주의 전체 작동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기본 이론을 찾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와 같은 이론은 인류사에서 가장 이른 시기부터, 아마도 타락(Fall) 이전부터 알려져 온 이론일 것이므로 뉴턴은 새로운 무언가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대의 지혜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관심사를 추구하면서 뉴턴은 부분적으로 변모에 초점을 맞췄다. 뉴턴은 기계적 과정과 식물적 과정을 구분했다. 후자는 목표 지향적인 과정으로, 식물이 성장하고 성숙하며 죽는 과정에 필요한 구성 요소를 동원할 수 있었다. 뉴턴과 그 밖의 다른 연금술사들은 물질의 미세 구조 수준에서 일어나는 재료의 변모를 통해 식물의 성장을 반영하고 구성 요소를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연금술은 생명과 신흥 기계론적 우주를 동일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견지했다. 즉, 식물이 씨앗에서 자라나는 것처럼, 어쩌면 물질 속에 아주 작은 '씨앗'이 내재되어 있어, 화학물질의 성장을 유도하고 질적인 차이로 이어지도록 지원할 가능성이 있었다.

- 뉴턴이 마법적 사고의 밝은 측면을 나타낸다면 주술이라는 형태의 명백하고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는 어두운 측면이 있었다. 주술은 많은 마법이 악성이라는 사실을 함의함으로써 마법의 평판을 훼손했다.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 내부에서는 마녀에 대한 광기 어린 숙청이 이루어졌다. 그로 인해 마법이 악마와의 계약에서 비롯되었다는 사람들의 생각을 불식시키기가 더 어려워졌다.
- 유럽의 마을과 소도시에서는 많은 마법이 매일 행해졌다. 그 범위는 점성술이라는 학문적인 기예에서부터 운수 풀이 같은 비공식적인 수단을 통한 미래 예견뿐 아니라 사람, 동물, 작물을 위한 치료약의 조제, 잘 발전된 보호 방법, 이따금 행해지는 저주에 이른다. 마법의 밝은 측면은 유일신이 만든 것으로서의 우주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되고 체액이라는 발상 및 위의 세계와 아래의 세계 사이의 공감과 대응 관계라는 관념을 통해 발전했다. 흑마법은 자신들의 힘을 파괴, 살인, 혼란에 사용하기를 원했던 초기 근대 사회의 무정부주의 세력이 이와 같은 이해를 왜곡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여러 면에서 주술에 대한 두려움은 이 풍요롭지만 혼란스러운 세기들 동안 무정부 상태가 이어질 것을 염려하는 사람들의 공포에서 비롯되었다.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세계의 질서가 재정립되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악마에 대한 공감은 악성 주술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모든 마녀가 여성이었던 것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상당한 여성 혐오의 요소가 관련되어 있었고 마녀가 작은 도깨비 및 악마와 어울리는 내용의 음탕한 이야기에 대한 성적인 관심도 포함되어 있었다.
- ('수염
을 기른 남자'를 의미하는) 바르트만(Bartmann) 병이 선호되었다. 독일에서 제조된 이러한 병은 17세기 후반부터 잉글랜드 같은 곳으로 흔하게 수입되기 시작했다. 벨라민 병은 보호를 위해 다양한 종류의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버크셔 (Berkshire)의 의사 조셉 블래그레이브(Joseph Blagrave, 1610년-1682년)는 <의술의 점성술적 실무 Astrological Practice of Physick>(1671)라는 책에서 자신이 주술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병에 소변, 머리카락, 깎은 손톱을 넣은 다음 못, 가시, 핀을 추가로 넣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 후자의 물건인 못, 가시, 핀이 마녀에게 찔리는 것 같은 고통을 유발하여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게 하고 주술을 멈추게 할 수 있을 터였다. 이와 같은 병을 보다 더 장기적인 보호 양식으로서 정원에 묻거나 주택 안에 숨겨둘 수 있었다. 피트 리버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병의 경우처럼 마녀를 잡아 병에 가둘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물건을 소개한 박물관 카탈로그의 항목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작은 유리병, 안쪽이 은색이고 마녀가 들어 있다'고 한다. 이 병은 브라이튼(Brighton) 근처의 호브(Hove)에서 발견된 것으로, 1915년경 저명한 이집트 학자이자 이교(異敎)주의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인 마거릿 머레이(Margaret Murray)에게 넘겨졌다.
- 머레이는 초기 근대 시대의 마녀가 선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길고 지속적인 주술전통의 마지막 단계라는 이론을 공표했다. 이러한 발상은 1920년대에 올더스 헉슬리와 로버트 그레이브스(Robert Graves) 같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뒷받침할 토대가 없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왜냐하면 머레이의 이론은 오늘날의 마법이 고대 전통으로부터 살아남은 것이라는 가정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이지만 오직 부분적으로만 사실이다. 또한 머레이는 자신이 승인하지 않은 교수 임용을 되돌리려고 시도하기 위해 이상한 주문을 행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행동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수행한 것이라기보다는 보다 더 장난에 가까운 행동이었을 것이다.
- 대중적인 마법과 더불어 의례의 형태를 발전시키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가장 악명 높은 마법사는 1875년 레밍턴 스파(Leamington Spa)에서 태어난 알리스터 크롤리로, 유럽 신비주의, 이집트 종교, 여러 토착신앙을 절충주의적으로 혼합한 텔레마교를 창시한 인물이었다. 2002년 BBC 방송국이 수행한 여론조사에서 크로울리는 역대 가장 위대한 영국인 가운데 73번째 인물로 선정되었다. 크로울리가 참여했던 황금 여명회(Golden Dawn)는 인종차별, 여성 혐오,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을 뒤섞은 불미스러운 잡탕을 발전시킨 조직이었다. 크로울리는 연금술에 관심이 많았고 존 디의 마법 관행 가운데 일부를 되살리는 일에 관여했지만, 이것이 존 디가 근대에 얻었던 평판을 보다 더 높이지는 못했다. 크로울리는 '마법(Magick)'이라는 용어를 '의지에 순응하여 변화를 일으키는 과학이자 기예'로 정의한 뒤, 이 용어를 중심으로 삼은 일련의 잡다한 믿음을 견지했다. 크로울리의 사고와 삶은 사이언톨로지(Scientology)와 위카 운동(Wiccan movement) 모두에 영향을 미쳤다. 크로울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관계없이, 우리가 다음장에서 살펴볼 것처럼 크로울리의 영향력은 마법을 둘러싼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 대중적인 마법의 많은 형태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양파는 동물의 심장이나 심지어 두꺼비처럼 굴뚝에 고정되거나 안치된 훨씬 더 큰 범주의 사물 가운데 일부이고, 연기를 피워 양파를 말리는 행위는 아마도 종종 마녀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목적에서 행해졌을 것이다. 살아남아 기록된 대중적인 마법의 증거는 깊이 숨겨진 훨씬 더 많은 일련의 마법적 사물과 행위의 일각에 불과한 것임에 틀림없다.
- 뉴턴의 죽음과 양자역학의 부상 사이에는 200년이라는 시간적 간격이 존재한다. 이것은 이 책에서 다루는 시간 척도에 비하면 매우 짧은 기간이다. 근대 세계로 이행하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마법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법은 기본적으로 중세 시대 가톨릭 교회라는 맥락에서 17세기 이후 과학적이고 심리적인 환경으로 그 위상이 재배치되었을 뿐이다. 뉴턴은 힘과 질량에 대한 보다 더 수학적이고 추상적인 관점이 자신의 보다 더 광범위한 종교적, 연금술적 믿음에 미치는 복잡한 함의와 씨름하면서 이와 같은 변화를 구현했다. 뉴턴은 최초의 과학자였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 최후의 마법사는 아니었다.
- 니체(Nietzsche)에게서 영감을 받은 크로울리는 사회적 규범이나 예의범절에 제약을 받지 않고 의지를 행사하는 초인(그의 마음속에서 초인은 남성이었다)의 등장을 고대했다. 크로울리가 말했던 의지가 무엇을 의미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크로울리가 말했던 의지는 크로울리가 모든 인간의 자연스러운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충동과 에너지의 추구를 의미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여기에서 크로울리의 사고와 관행은 보다 더 광범위한 형태의 성적 마법에 의존했다. 성적 마법을 통해 사람들은 성행위를 하는 동안, 특히 오르가즘을 느끼는 동안 때로 출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보다 더 광범위한 우주적 에너지를 가장 분명하게 전달했다고 느꼈다. 인간의 에너지는 부분적으로는 신성한 힘의 거주를 통해 지구의 보다 더 광범위한 에너지와 결합될 수 있었고 결합되어야 했다. 크로울리는 로즈 켈리(Rose Kelly)와 결혼한 후 1904년 카이로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던 중 아이와스(Aiwass)라고 불리는 영적 존재와 접촉했다고 주장했다. 아이와스는 크라울리에게 <법의 서 The Book of the Law>를 드러냈다. <법의 서>의 계율은 텔레마교라고 불리는 새로운 종교를 바탕으로 호루스의 이온(Æon of Horus)의 시작을 알릴 수 있었다. 텔레마는 그리스어로 '의지'를 의미하고 <법의 서>의 주요 명령은 '네 뜻대로 하라'이다. 크로울리는 자신의 관행을 기본적으로 이렇게 정의했다. '마법(Magick)은 의지에 순응하여 변화를 일으키는 과학이자 기예이다.' 크로울리는 속박을 받지 않는 의지의 추구를 바탕으로 '마법'을 공표하기 위해 A∴A∴라는 이름의 마법 교단을 설립했다. 크로울리는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의 일원으로 성장했다. 플리머스 형제단은 역사는 다양한 시대로 나누어지고, 각 시대는 저마다 그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각자의 고유한 도전과 과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크로울리는 자신이 세계를 호루스 시대의 도전으로 이끌도록 임명된 구세주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호루스 시대의 도전의 중심에는 대중사회에 속박된 인간의 의지의 해방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른바 뉴에이지 운동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물병자리의 시대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시대의 변화를 고대한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우리는 '뉴에이지'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이와 같은 운동을 따르는 신자들보다는 오히려 비평가들에 의해 사용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 그 이전과 그 이후의 그 밖의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크로울리는 공감마법의 토대를 형성할 수 있는 사물 사이의 연결과 대응 관계를 찾았다. 많은 사물들 사이에 일련의 대응 관계가 잠재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여겨졌지만 이러한 연결은 그것들의 상징이나 개념을 통해 가장 완벽하게 드러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징이나 개념은 크로울리의 사고에 관념론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차원을 부여하여 마법에 대한 보다 유물론적인 접근법과 대조를 이룬다. 크로울리는 미술가 프리다 해리스(Frieda Harris)와 함께 새로운 타로 카드 한 벌을 개발하는 데 기여했다. 그것은 사람들의 특징을 일련의 제한된 유형으로 범주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런 다음 사람들은 자신에게 특히 적합한 검, 지팡이 같은 다양한 물건에 연결할 수 있었다. 카드에 사용된 상징은 유럽과 이집트의 신앙 체계뿐 아니라 전 세계의 신앙 체계와도 공명하여 전 세계적인 연결과 행동의 토대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또한 마법사들은 보다 더 오래되고 보다 더 순수한 형태의 관행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는 감각도 존재했다. 따라서 크로울리는 '마법'이라는 용어를 표기할 때 Magick이라는 철자를 사용했다. 이 고풍스러운 철자는 고대 이집트의 신의 부류에 속했을 수 있는 아이와스가 크로울리에게 전수해 준 것과 같은 보다 더 오래된 신념의 재창조를 시사하는 것이었다. 본질적으로 무작위적인 철학 및 사람들과 마찰을 빚는 성향 때문에 크로울리는 수년에 걸쳐 많은 조직의 일원으로 활동했고, 매우 역설적이게도 후대의 마법 조직, 특히 황금 여명회와 동방의 성당 기사단(Ordo Templi Orientis) 같은 보다 더 위계적인 조직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 마법에 관여하는 조직의 수와 다양한 종류를 살펴본다면 알게 되겠지만, 오늘날 마법은 살아 있을 뿐 아니라 빠른 속도로 새로운 형식으로 변모하면서 특히 젊은 청중들에게 마법적 가능성을 선사하는 소셜 미디어와 앱을 활용하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 19세기부터 막스 베버 같은 사회학자들은 산업화, 교육, 합리주의의 발전이 서양 사회의 세속화를 가져왔고 마법에 대한 믿음과 종교 신앙 모두를 쇠퇴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종교 신앙은 복잡하다. 유럽에서는 과거보다 무신론이 보다 더 널리 퍼져 있지만, 사실 최근 몇 년 동안 과학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는 미국에서는 솔직하게 말해 그렇지 않다. 마법은 분명 오늘날의 세계관의 일부이다. 서양 세계의 성인 인구의 약 75퍼센트가 마법이나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수억 명의 사람들이 주류 바깥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7년 퓨리서치 포럼(Pew Research Forum)이 미국인 3만 5,000명 남짓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79퍼센트가 '고대처럼 오늘날에도 여전히 기적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에서 훨씬 더 작은 표본에 대해 조사한 결과 77 퍼센트가 세계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고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가장 ...
- 13일의 금요일(Friday the Thirteenth)에 대한 경계심, 사다리 밑으로 걸어서 지나가기(재수가 없음을 의미), 또는 누군가 재채기를 하면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이라고 말하는 등 많은 사람들의 삶은 낮은 수준의 마법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많은 사람들은 행운을 가져다주는 물건이나 부적을 가지고 다닌다. 우리 대부분은 거울이 깨질까 봐 걱정하거나 위시본(wishbone)을 부러뜨렸을 때보다 더 긴 쪽을 가지기를 고대하기도 한다. 행운을 가져다주는 색깔이나 길하다고 느끼는 요일을 정하기도 한다. 긍정적인 의미를 담은 숫자(숫자 7)도 있고 부정적인 의미를 담은 숫자(13과 666)도 있다. 사물은 다양한 종류의 방식으로 힘을 발휘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칼로 찌르기를 주저할 것이다. 프린터나 자동차가 작동을 멈추면, 그것들이 마치 고집불통인 동물인 양 욕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대응 관계와 우연의 일치를 탐색한다. 이것은 아마도 세계에 어떤 형태의 힘이 작동하기 때문일 수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행동과 믿음을 부끄러워한다. 우리는 종종 별것 아니라는 듯한 태도 또는 아이러니하다고 여기는 듯한 태도로 이와 같은 행동과 믿음을 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행동과 믿음은 널리 퍼져 있고 행동으로 옮겨진다.
- 많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비공식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마법관행을 발전시키고 공표하는 조직에 소속되어 있다. 19세기 후반의 황금여명회를 시작으로 마법 조직은 마법적 발상의 생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고, 마법적이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조직을 기이하거나 위험한 조직으로 여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보다 더 널리 퍼져 상당한 문화적 영향을 미쳤다. 마법에 전념하는 집단의 역사와 상태는 종종 지극히 복잡했다. 왜냐하면 조직이 분열되었다가 다시 융합하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알리스터 크롤리나 (우리가 살펴볼 것처럼, 위카 운동을 시작한) 제럴드 가드너(Gerald Gardner) 같은 소수의 중요한 인물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담론을 편중시켜 모든 역사가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지만, 사실은 상호 보완적이거나 모순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는 집단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이러한 집단은 때로 동맹을 맺기도 하지만 분리되어 나가거나 해체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 책에서는 유럽의 초기 근대 시대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활동 중인 주요 조직과 집단을 대략적인 연대순으로 정리해 본다.
- 장미십자회(Rosicrucian)와 프리메이슨(16세기부터 현재까지). 프리메이슨이 장미십자회의 지적 틀거리와 조직 내에서 발생했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지만 어느 정도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두 조직은 분명히 분리된 조직이다. 장미십자회를 통해 우리는 위에서 만나보았던 헤르메스주의(Hermeticism), 존 디의 저술, 연금술, 점성술, 카발라 같은 사고와 마법의 많은 가닥과 마주치게 된다. 장미십자회는 세계에 숨겨진 질서가 있다고 확신했다. 세계의 숨겨진 질서를 발견한다면, 큰 힘이 해방되어 세계의 물질적 기층(基層)을 인간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고 인간사회를 죄로부터 자유로운, 보다 더 건강한 상태로 개혁할 수 있을 터였다. 장미십자회의 발상은 뚜렷한 그리스도교적 색채를 드러내면서 17세기 초에 탄생했다. 장미십자회는 종교, 마법, 과학을 결합한 조직으로, 그 중심에는 중요한 지식은 완성될 때까지 반드시 숨겨야만 하고 그것을 드러낼 때가 되면 전체로서의 인류에게 큰 이익을 줄 수 있다는 발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프리메이슨도 자신들의 지식을 숨겨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원이 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주장하는데, 문서로 기록된 최초의 롯지(Lodge)는 1598년 설립된 에든버러(Edinburgh)에 자리 잡은 롯지이다. 프리메이슨은 복잡하고 숨겨진 의례, 걷어 올려 입은 바지, 비밀 악수로 유명하다. (아주 최근까지 남성만) '도제(Entered Apprentice)', '장인(Fellowcraft)', '숙련 석공(Master Mason)'으로 알려진 세 가지 등급의 프리메이슨으로 입문해 왔고, 지금도 입문하고 있다. 프리메이슨의 기원은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Temple of Solomon)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프리메이슨은 장미십자회에 비해 난해한 지식을 발전시키는 데 보다 더 무관심하다.
- 황금 여명의 헤르메스주의 결사(The Hermetic Order of the Golden Dawn)(1887년-1903년). 황금 여명회는 세 명의 프리메이슨에 의해 설립되었고 구조와 일부 믿음 측면에서 장미십자회와 유사하다. 입문은 세 단계로 이루어졌다. 부분적으로 고대의 지혜로 추정되는 것을 바탕으로 한 지식은, 입문 단계가 높아질수록 점점 더 비밀스러워지고 강력해졌다. 세 번째 단계의 지식에 입문하면 우주 내에서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일종의 영적 실체인 비밀 수장(Secret Chiefs)과 소통할 수 있었다. 황금 여명회의 철학은 부분적으로 카발라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지만 점성술, 연금술, 타로, 풍수학에 대한 지식과도 관련되었다. 그들의 근본적인 텍스트는 마법적 지식과 이론을 정리한 개요서 모음인 <암호원고 Cipher Manuscripts>이고 그들의 조직 구조는 사원을 중심으로 구조화된다.
- 동방의 성당기사단(O.T.O.라는 약어로 알려져 있음). 동방의 성당기사단은 1898년에서 1906년 사이의 어느 시점에 시작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동방의 성당기사단은 프리메이슨을 모형으로 삼았고 황금 여명회와도 밀접하게 연계되었다. 알리스터 크롤리가 황금 여명회와 동방의 성당기사단 모두의 회원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다시 한번 점점 더 비밀스러워지는 지식에 대한 입문 과정이 존재하는데, 그 지적인 틀거리는 '네 뜻대로 하라'는 크로울리의 텔레마 관념이 바탕이 되었다. 거기에는 신비주의적인 그리스도교의 반향과 에마누엘 스베덴보리(Emanuel Swedenborg.1688년-1772년)의 영향이 포함되어 있다. 과학자로서 지적인 삶을 시작했지만 영적으로 각성한 후 천국과 지옥을 방문하고 천사 및 악마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스베덴보리의 합성 철학은 신비주의적 그리스도교 및 마법에 대한 믿음뿐 아니라 코난 도일을 포함하는 많은 개인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영지주의 (靈知主義) 미사(Gnostic Mass)와 같은 의례, 우주를 이해하는 수단으로서의 복잡한 상징주의, 부분적으로는 성행위 마법을 통해 에너지를 전달하려는 시도가 강조되었다. 동방의 성당기사단은 새로운 이온의 가능성을 고대하는데, 그 믿음과 구조는 크로울리의 조직인 A∴A∴ 및 그 밖의 다양한 다른 조직과 겹친다. 텔레마에 대한 크로울리의 관념과 성행위 마법에 대한 크로울리의 강조는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또 하나의 비밀 조직인 사이언톨로지에도 영향을 미쳤다.
- 위카(1920년대부터 현재까지). 말레이시아에서 오랫동안 공직에 몸담았던 제럴드 가드너가 영국으로 돌아간 뒤 1939년 햄프셔(Hampshire)주의 뉴포레스트(New Forest)에서 마녀 모임에 입문했다고 주장하면서 위카를 설립했다. 제럴드 가드너는 1947년 크로울리를 만났다. 위키는 단일한 조직이 아니고 구조 측면에서도 위에서 언급한 조직들과 매우 상이하게 훨씬 더 느슨하고 개방적이며 평등하다. '위카'라는 단어는 고대 영어로 '주술사'를 의미한다. 위카는 살아남은 그리스도교 이전의 종교로서 간주되는 주술을 강조하고, 특히 마거릿 머레이의 영향을 받아 남성의 원칙과 여성의 원칙을 모두 강조한다. 위카와 이교주의는 그 믿음의 뿌리를 고대 유럽에 두고 ...
- 지구를 일련의 위도대(緯度帶)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북극에서 열대우림에 이르는 지역에 자리 잡은 거대한 숲, 초원, 사막에서 미생물의 세계를 토대로 곤충, 식물, 동물을 통해 지속적이고 복잡하게 상호 작용하는 일련의 지적인 생태계를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역동적이고 총체적인 배경에서 볼 때 인간은 단지 하나의 지적인 생물종에 불과하다. 인간은 오직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의 연결과 지능을 인정하고 존중함으로써만 그리고 되도록 이와 같은 연결을 끊지 않고 유지함으로써만 생존하고 번성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참여에 대한 강조이다.
- 마법은 구석구석에 생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시베리아 집단에게 숲은 생명으로 가득하다. 나무 사이로 이동하는 단일한 인간 사냥꾼은 절대로 혼자가 아니다. 그는 언덕, 강, 식물, 동물의 형태로 존재하는 그 밖의 다른 형태의 의식에 둘러싸여 있다. 제물을 바치고, 말을 건네며, 존경을 표시할 필요가 있다. 세계의 일체감도 숲을 양호하게 만들지 못한다. 오히려 숲은 곰, 뱀, 질병, 사고를 유발하는 원인으로 가득하다. 호주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집단이 경관 내부에 존재하는 조상의 힘과 영적인 힘의 우물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 힘은 노래, 춤, 그림 또는 인공물로 구현될 수 있다. 영혼인 유를라는 까다롭고, 욕정에 휩싸여 있으며, 어쩌면 파괴적일 수 있는 힘이었다. 유를라를 통해 사람들은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할 필요가 있었다. 이와 같은 문화에서 인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러한 힘을 기리고 죽은 사람을 경관에서 강력한 장소로 돌려보내면서 힘의 원천을 이해하고, 관리하며, 육성하려고 시도한다. 순록 목축민이나 호주 원주민 집단의 창의적인 행동은 수천 년에 걸쳐 그들의 물리적 환경과 문화적 환경에 적합한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이러한 집단이 근본으로 삼고 있는 발상은 생물과학이 사람을 포함한 만물의 지능과 연관성을 중심으로 이제 막 탐구하고 있는 발상이다. 개별 집단이 발전시킨 돌봄의 관행은 외지인들이 모방할 수 없는 것일 뿐 아니라 심지어 완벽하게 이해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민감성과 반응성에 대해 터득해야 하는 것이 많다.
- "물질은 지각을 지니고 있을까?"
오늘날의 물리학에서 가장 도전적인 질문 가운데 일부는 물질의 지각 또는 어쩌면 심지어 의식에 관한 것이다. 물질이란 무엇이고 영혼이나 정신 같은 것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질문은 많은 사람들이 해결하기 위해 애써온 질문으로, 이에 대한 답도 다양하다. 뉴턴은 물질에 대한 고전적인 설명을 제공했고, 그것은 새롭게 출현한 기계론적 우주라는 관념을 뒷받침했다. 뉴턴은 <광학 Optics>에서 물질이 해변의 조약돌처럼 '견고하고, 질량을 가지며, 단단하고, 꿰뚫을 수 없으며, 움직이지 못하는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물질이 원자같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별개의 사물의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철학자 필립 클레이튼(Philip Clayton)은 '우주론에서 상대성 이론과 양자물리학에서 그것을 보완하는 가설은 기본 실재가 일종의 물질-에너지'의 혼종이라고 제안하고 사실 '이 실재는 물질보다는 에너지에 보다 더 가깝다고 제안한다'고 기록했다. 에너지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실재를 해변의 자갈 같은 것이 아니라 바다 같은 것으로 만든다. 에너지는 상대성이론, 열역학, 양자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우주 전역 ...
- 마법은 공동체적 삶, 즉 모든 우주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와 같은 관계의 변화는 어려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많은 것이 걸려 있다. 진정으로 열린 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하기는 어렵지만 지구를 차갑게 식히고 보다 더 평등한 상태에서 살아가야 할 필요성은 시급하다. 만일 실패한다면 지구에 존재하는 연약한 생명의 네트워크에 재앙이 닥쳐 지각을 지니고 있는 수많은 존재를 위협할 것이다. 마법은 생명체이든 아니든 만물과 친밀감을 느낄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리고 친밀감에는 우리가 가족과 친구에게 느끼는 것과 동일한 부류의 책임감이 뒤따른다. 과학은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라고 묻는 반면 마법은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일까?'라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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