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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딤 젤란드] 리얼리티 트랜서핑 1 - 러시아 물리학자의 시크릿 노트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5. 8. 27.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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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바딤 젤란드 / 박인수
출판 : 정신세계사
출간 : 2009.02.04


       


영성도서들을 읽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가르침을 적용해 볼 만한 상황이 생긴다. 그 순간에 알아차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상황이 모두 종료된 후 '아- 다른 선택을 할 걸'하고 되짚어보는 과정에서 깨닫는 편인데. 

 

정말 이해했는지 시험하는 것인지, 시험해보고 싶은 내 마음이 그런 상황일 찾아내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이전까지는 모르고 넘어갔던 상황들이 달리 보이는 것인지. 

 

파도는 밀려들고 쓸어간다.

끝없이 이어지는 것만 같은 그 반복 속에서도 해안선은 변화한다.   

그러기만을 바랄 뿐이다.

 

<리얼리티 트랜서핑>은 <여사제 타프티>와는 다른 방향성과 기법을 다루는 책이다.

둘 모두 '현실'은 일종의 '시나리오'로서 개인이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차이가 있다.

 

<트랜서핑>은 '펜듈럼'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원하는 흐름에 몸을 맡기는 '서핑'에 가까운 기법을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흐름에 저항을 일으키는 '잉여 에너지'를 만들지 않는 일이다. 무언가가 '반드시' '꼭'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집념도 '잉여 에너지'를 만들지만, 반대로 '절대로' '정말' 싫고 없애고 싶다는 집념도 마찬가지로 '잉여 에너지'를 만든다는 것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사과 따위 정말 싫다고!'라고 불평하며 끊임없이 사과를 주문하고 입 안에 쏟아 넣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트랜서핑>에서 권하는 가장 좋은 접근법은, 원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그 외의 것들에는 최선을 다해 '무시'하는 것이다. 이는 필요한 물건은 검색해서 주문하되, 그 과정에서 당신의 주의를 끌기 위해 끊임없이 반짝이는 광고들에는 눈길을 주지 말라는 것과도 유사하다. 싫은 광고를 빤히 바라보며 '왜 싫은가'를 외치기보다, 그냥 빠르게 새로고침을 선택하는 편이 효과적이고 에너지 절약적이라는 것. -선택 알고리즘은 구글이 알아서 해줄 테니까- 

 

그다음으로 추천하는 방법은 '중요성'을 부여하지 말고 그저 상황에 자신을 빌려주는 것이다. '빌려준다'는 것은 일종의 배역을 연기하는 것과 비슷한데, 최선은 다하되 그 역할이 곧 나는 아니라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 상태에 가깝다. 무시하거나 피할 수 없는 상황일 때는, 요구되는 바에 성실히 응하되 자신을 '빌려주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관조'할 것. 

 

그리고 언제나 '자신의 느낌'에 귀를 기울여 영혼의 인도를 받는 것에 익숙해질 것,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사제 타프티>는 보다 적극적이다. 무한에 가까운 시나리오들 중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실현 가능성을 높이고, '땋은머리' 기법을 통해 끌어당기는 법을 알려준다. 물론 <타프티>도 상황을 흘려 넘기는 방법인 '아말감' 기법이나 '라다'의 활용을 권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가장 중심이 되는 가르침은 '땋은머리'의 활성화였다.

 

'호사다마 好事多魔.'

내가 완전히 털어내지 못한 고정관념은 '호사다마'인 것 같다. 매끄럽게 풀려나갈 때, 가르침이 실제로 잘 작용된다고 느낄 때, 삶이 정말 만족스러울 때. '정말?'이라고 묻는 것 같은 상황이 찾아올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순간에, 달갑지 않은 상황을 진심으로 반기면서 자신의 믿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이에게 다음 스테이지가 열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 지금의 내 생각이다. 

 

앗...!? 이게 바로 <트랜서핑>에서 말하는 '상황과 싸워이기는' 방식이 아닐까...?

<디바인 매트릭스>에서 말했던 '영혼의 어두운 밤'은 아닐까...?

 

등등의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지금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흐름이 만족스럽다면, 그대로 힘을 빼고 몸을 맡기는 게 좋을 것이다.

평이하다면, 원하는 흐름을 향해 방향을 트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니면, 가만히 순응하며 평정심을 유지하면 -힘을 빼면- 가장 좋은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리라는 믿음대로 행동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끝으로 불만족스럽다면-. 

조금씩 다른 수많은 영성 도서들 중, 무엇이 '작은 불씨'가 되어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신에게 맞는 것, 그 상황에 적합한 것, 혹은 가장 믿기/행하기 쉬웠던 것.

 

왜 이렇게나 많은 책들이 있고, 이렇게나 많은 '서로 다른' 가르침들이 있는지 혼란스러워서 헤매는 분들께 감히 몇 마디를 얹자면.

모두 맞기도 하고, 그중 하나가 맞기도 하고, 모두 틀리기도 하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

 

-라고 지금의 나는 믿는다.

나는 그렇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끝.

 


   

 

 

- 누구나 그렇듯이 당신도 분명 편안하고 풍요로운 삶, 질병과 정신적 고통에서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종종 당신의 삶은 엇나가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바라는 대로 전개되기는커녕, 삶은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에 떠 있는 한 점 종이배처럼 느껴지도록 당신을 희롱하고 있는 것만 같다. 당신은 행복을 찾으려고 이미 소문에 떠도는 온갖 방법들을 많이 시도해 보았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해서 대단한 성공을 거둔 적이 있는가? 

- 이 책에는 별나고 이상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서 당신에게 충격을 줄지도 모른다. 당신은 이런 이야기들을 믿으려 들지도 않을 테지만, 믿어야 할 필요도 없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을 직접 시험해 볼 수 있는 모든 도구가 주어질 것이다. 그것을 다 시험해보고 나면 당신의 평범한 인생관은 완전히 바뀔 것이다. 

- 트랜서핑 transurfing은 보통 사람의 관점에서는 아예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이룰 수 있게 해주는 강력한 도구다. 다시 말하면, 당신 마음대로 운명을 바꿀 수 있게 해 준다. 무슨 기적 같은 것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더 큰 뭔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드러나지 않은 현실이 그 어떤 마법보다도 훨씬 더 놀랍다는 것을 당신은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 부자가 되고 행복해지는 법을 가르치는 책은 많이 있다. 물론 그 모두가 우리를 무척이나 유혹한다. 부자가 되고 행복해지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렇지만 그런 책들을 열어보면 부단한 노력을 요구하는 명상법이나 훈련법들이 등장한다. 그것은 우리를 정말 좌절하게 만든다. 삶 자체가 실로 하나의 힘에 겨운 시련인데도, 그들은 더 열심히 노력해서 당신 안에 남아 있는 것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두 짜내라고 한다.

- 그들은 당신이 완벽하지 않으므로 변해야만 한다고 설득하려 든다. 그러지 않으면 당신에게 좋은 일이란 일어날 가망이 없다고 말한다. 아마도 당신은 현재의 자신이 흡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마음 깊은 곳 어디에선가는 전혀 변하고 싶지 않음을 느낀다. 그것은 당연하다. 당신이 옳기 때문이다. 당신이 완벽하지 않다고 설득하려는 말들을 믿지 말라. 당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를 그 누가 알겠는가? 자신을 변화시킬 필요가 없다. 당신은 지금 엉뚱한 곳에서 탈출구를 찾고 ...

- 논쟁을 벌이고 싶었다. 하지만 감시인은 아무 말도 들으려 하지 않고 말했다.

"멍청한 사람이구먼! 자네는 선택할 권리가 있는데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 거야. 자네는 선택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모르고 있는 것일 뿐일세."

나는 생각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내가 원하는 것을 뭐든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이 세상 모든 것이 내게 허용되어 있다는 말인가? 그때 나는 문득 알아차렸다. 이 모든 것이 꿈이라는 것을.

 

- 꿈속에서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난생 처음의 경험에 당황한 나머지, 나는 이 기이한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것이 꿈임을 알아차렸을 때, 나는 그 늙은이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던 것 같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꿈속에서는 온갖 말도 안 되는 말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며, 그것이 그가 가진 자유의 전부라고. 그러나 감시인은 내 말에 꿈쩍도 하지 않는 듯했다. 냉소만 던졌으니까. 나는 상황이 우스꽝스러워진 것을 알아차리고서(꿈속의 인물과 말씨름을 벌일 게 뭐람?) 그냥 꿈에서 깨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늙은이는 내 생각을 읽은 것 같았다. 그가 말했다.

"자, 이제 그만 두세. 우린 시간이 많지 않아. 저들이 자네 같은 멍청이를 내게 보낼 줄은 몰랐네. 하지만 어쨌거나 내 임무는 완수해야지."

- 나는 그 '임무'란 것이 무엇이고 저들은 누구인지를 캐물었다. 그는 내 질문은 무시한 채 느닷없이 수수께끼를 하나 던졌다. 그때는 그 수수께끼가 실없는 소리로만 들렸다.

"누구든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자유를 얻을 수 있다네. 수수께끼는 이거야. 이 자유를 어떻게 얻겠는가? 이 수수께끼를 푼다면 사과가 하늘로 떨어질 걸세." 
사과는 또 뭐야? 나는 이미 인내심을 잃고 있었다. 나는 수수께끼 따위는 풀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꿈이나 동화 속에서만 온갖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 사과는 언제나 땅으로 떨어진다. 이 말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제 됐네! 가세. 자네에게 보여줄 게 있으니까."

- 잠에서 깼을 때, 아쉽게도 그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감시인이 내 머릿속에 모종의 정보를 집어넣어 주었다는 분명한 느낌이 들었다. 그 정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단 하나의 낯선 단어가 기억에 남아 있다. 트랜서핑 transurting. 머릿속에 맴도는 유일한 생각은, 나의 세계를 내가 나서서 갖추려고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내가 끼어들기도 전에, 오래전에 이미 창조되어 있었다. 그것도 나의 행복을 위해서 말이다. 좋은 지위를 얻으려고 세상과 씨름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가장 비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내가 선택하는 것을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터무니없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꿈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잊어버렸을 줄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그 감시인이 '자신의 세상을 선택한다'는 표현을 빌어서 말하고자 했던 것을 내가 아주 구체적으로 자세히 기억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어떻게 선택하는지도 말이다. 감시인의 수수께끼에 대한 답은 난데없이 저절로 떠올랐다. 나는 날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주 놀랐고 거의 두렵기까지 했다. 이 모든 지식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한 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내게서 나온 지식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 그러나 인간의 이성은 모호한 구석을 피하여 발을 디딜 수 있는 단단한 기반을 찾으려고 노력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이성은 한쪽 이론은 산산이 부숴버리고 다른 쪽만을 우러러 받들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학자들이 수천 년 동안 해온 일이다. 진리를 얻기 위한 모든 싸움 끝에, 그 싸움터에는 오직 하나의 사실만이 쓰러지지 않고 남아 있다.

모든 이론은 다면적인 현실의 특정한 한 측면을 보여줄 뿐이라는 사실이다.

- 각 이론은 그것이 개발된 시대의 지지를 받아 존재의 정당성을 획득한다. 운명의 개념도 이와 마찬가지다. 만일 당신이 운명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어서 아무나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결론짓는다면 그것은 그렇게 될 것이다. 이럴 경우, 당신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다른 사람의 손에 넘겨주는 것이다. 그것이 누구의 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요는, 당신이 파도가 치는 대로 밀려다니는 작은 종이배와 같은 신세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창조한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의식적으로 책임을 떠맡는다. 당신은 파도와 싸우며 자신의 항로를 따라 배를 조종한다. 그래서 당신의 선택은 항상 실현된다. 당신은 스스로 선택한 것을 얻는다. 어떤 세계관을 선택하더라도 그것은 항상 옳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당신에게 동의하지 않고 반박할 것임을 알아둬야 한다. 그들도 자신의 세계관 안에서는 역시 옳기 때문에. 

- 현실 속의 어떤 현상을 기준으로 잡아놓으면 그것을 중심으로 하나의 과학 분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 분야는 그 자체 내에서는 모순점이 없다. 그래서 그것은 실제로 현실의 여러 면 중 하나를 멋지게 반영해 준다. 과학의 한 분야와 같은 하나의 지식체계를 이루어내려면 그 지식체계 안에 한 자리를 차지하는 몇몇 사실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 사실들은 완전히 이해되어야 할 필요도 없다.

- 그 예로, 양자물리학은 몇 가지의 증명할 수 없는 사실, 곧 '공리'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 공리들은 그 자체가 양자물리학의 최초의 기준점이기 때문에 증명될 수 없다. 양자물리학에서 미립자는 어떤 경우에는 입자처럼, 또 다른 경우에는 파동처럼 행동한다. 과학자들은 이 이중적인 행동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그저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였다. 양자물리학의 공리들은 현실이 취할 수 있는 엄청나게 다양한 생김새와 형태를 수용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장님들이 코끼리가 때로는 나무기둥처럼, 때로는 뱀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점에 동의하는 것과 유사하다. 

- 미시세계의 대상을 기술할 때 그것을 입자로 바라보기를 택한다면, 우리는 저명한 물리학자 닐스 보어가 최초로 만들어냈던 것과 같은 원자모형을 얻게 될 것이다. 이 모형에서는 태양계의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도는 것처럼 전자들이 원자핵 주위를 돈다. 만일 그것을 파동으로 바라보기를 택한다면, 원자는 물감이 번진 점처럼 보일 것이다. 이 두 모형은 각각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면서 현실이 취하는 각기 다른 측면들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도 역시 우리는 자기가 선택한 것을 얻는다. 

- 기본적으로 현실 속의 어떤 현상도 기준점이 되어서 하나의 지식체계를 이루어낼 수 있고, 현상계 속에서 분명히 자신의 자리를 점하고 자신의 역할을 한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우주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늘 애써왔다. 그들은 사물의 특정한 성질을 연구한다. 반면에 자연은 이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형태, 곧 무한수의 원인과 결과로서 품고 있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존재 가능한 모든 물체와 그 동선상의 무한수의 지점에 관한 데이터는 정보의 장場속에 저장된다. 이 정보의 장을 우리는 가능태 공간(space of variations)이라고 부를 것이다. 가능태 공간은 과거에 존재했던 모든 것과, 현재에 존재하는 모든 것, 그리고 미래에 존재할 모든 것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 정보체(informational structure)인 가능태 공간은 물질적이라고 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다. 이 무한한 정보장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의 모든 가능태를 품고 있다. 그러니 이 가능태 공간 안에는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정보가 어떤 방식으로 저장되는지는 논하지 않기로 하자.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가능태 공간이 시간과 공간 속을 움직이는 물질의 형판, 혹은 좌표시스템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 가능태 공간의 각 점은 어떤 사건의 특정한 가능태를 품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모든 가능태가 시나리오와 무대장치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해 보자. 무대장치는 현실이 펼쳐지는 외적 형태, 즉 현상이고, 시나리오는 물질이 움직여가는 트랙이다. 편의상 가능태 공간을 섹터별로 나눌 수 있다. 각각의 섹터가 고유한 시나리오와 무대장치를 가지고 있다. 섹터 간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시나리오와 무대장치의 차이도 크다. 사람의 운명도 이처럼 무수한 가능태로 이루어져 있다.

- 가능태 공간은 무한하기 때문에 이론상 인간 운명의 시나리오와 무대장치의 형태와 수는 무한하다. 그래서 사소하기 짝이 없는 사건 하나가 운명의 흐름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인간의 삶은 물질의 움직임과 마찬가지로, 원인과 결과의 사슬에 지나지 않는다. 가능태 공간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서로 가까이 배치되어 있다. 원인 다음에는 곧 결과가 따라온다. 그래서 한 사람의 운명의 구역이 한 생애의 트랙을 이룬다. 그런 한 인생트랙의 시나리오와 무대장치는 그 성격이 비슷하다. 한 사람의 삶은 시나리오와 무대장치를 바꾸어놓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하나의 트랙을 따라 평범하게 흘러간다. 그러다가 운명이 커브를 틀면 다른 인생트랙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 당신이 어떤 연극을 봤다고 상상해 보자. 다음날 당신은 같은 연극을 보러 또 극장에 간다. 그런데 오늘은 무대장치가 조금 바뀌어 있다. 이 두 연극은 가능태 공간에서 서로 비교적 가까이 배치된 인생트랙들이다. 다음 연극시즌에 당신은 같은 배우들이 출연하는 같은 연극을 보는데, 이번에는 시나리오가 많이 바뀌어 있다. 이것은 맨 처음에 보았던 것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인생트랙이다. 마지막으로, 같은 연극을 다른 극장에서 보는 경우가 있다. 거기서는 동일한 희곡작품을 아주 다르게 해석한 연극을 보게 된다. 이것은 처음 것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인생트랙이다. 

- 가능태의 수가 무한하다는 바로 이 이유로 인해서 현실은 그 모든 다양성을 펼쳐낸다. 모든 출발점으로부터 인과의 사슬이 흘러나온다. √출발점을 선택하면 그에 따른 현실이 펼쳐져 나온다. 선택된 출발점에 따라서 다른 인생트랙을 따라 현실이 전개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선택한 것을 얻는다. 무한한 가능태가 이미 존재하므로, 당신은 당연히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당신이 마음에 드는 운명을 골라잡는 것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운명을 지배한다는 것은 결국 단 하나의 단순한 일, 곧 골라잡기로 귀착된다.  

- 문제를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사념 에너지의 파동이 가능태 공간의 특정 섹터 sector를 '밝게 비추어' 그 결과로 그 가능태가 물질화된다고 가정하자. 사념의 파동은 가능태 공간 내에서 자신의 해당 섹터를 찾아낼 것이다. 그러면 그 특정 섹터의 가능태가 물질화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의식이 현실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 이것이 현실이 실현되는 유일한 방법임을 명심해야 한다. 순수한 명상만으로는 바라는 현실을 만들어낼 수 없다. 허공에서 물건을 물질화시키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희귀하고, 자신의 능력을 떠벌리고 다니지도 않는다. 아무튼 생각은 행동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운명에 동일한 영향력을 미친다. 사람들은 행동이 가시적인 결과를 끌어온다는 손쉬운 설명에 익숙해 있다. 생각의 영향은 보통 눈에 띄지 않으므로 설명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다. 생각과 그에 따른 사건들 사이의 일목요연한 인과관계를 보여준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어려운 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곧 한 사람의 생각이 그의 현실에 직 V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은 정확히 자신이 선택한 것을 얻는다'

- 어떤 사람은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바다와 산과 행성과 은하계들, 이 모두가 내 생각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겁니까?" 때로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는 성향은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이다. 사실 인간은 이 무한한 우주공간 속에서 아주 작은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의 세계에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 하나하나가 모두 현실의 형성에 자기 몫의 기여를 하고 있다. 각 생명체는 고유한 사념파와 그 매개변수를 가지고 있다. 

- 학자들은 에너지의 다양한 현상들을 하나의 이론적 틀 속에다 묶어 넣으려고 애쓰고 있고, 우리는 곧 그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다음에도 그 이론에다 더 많은 것을 더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실은 무한수의 방법으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지는 말고, 에너지를 일종의 추상적이고 비가시적이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힘으로 간주해 보자.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는, 인간의 사념 에너지는 전적으로 물질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사념 에너지는 머릿속에 갇힌 채 목적 없이 그 안을 맴돌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념 에너지는 공간으로 퍼져 나와 주변의 에너지장과 상호작용한다. 오늘날 이 사실에 반론을 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 편의상, 라디오 전파를 측정할 때처럼 주파수를 사념파의 한 매개변수로 삼을 수 있다. 우리가 뭔가를 생각할 때마다, 사념 에너지의 주파수는 가능태 공간의 한 섹터에 동조된다. 그러면 그 섹터 고유의 가능태가 물질화하기 시작한다. 에너지는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이 세계의 모든 것을 관통한다. 에너지는 사람의 신체를 통과할 때 그 사람의 생각에 따라 변조되고, 몸에서 나갈 때는 그 생각에 상응하는 매개변수를 얻게 된다. (전파 송신기도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에너지의 매개변수들은 그 생각의 성질을 흡수한다. 그렇게 해서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에너지는 사념파로 바뀐다. 그리고 그것은 가능태 공간의 한 섹터를 물질적 현실로 바꿔놓는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뭔가를 생각할 때 당신은 사념 에너지를 가능태 공간 속으로 방사하는 것이다. 변조된 에너지는 특정 섹터에 작용하고, 이 상호작용이 그에 상응하는 변화를 당신의 삶에 가져온다. 

- 인생의 상황들은 특정 행동에 의해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의 성질에 의해서 형성되기도 한다. 당신이 세상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면 세상도 당신을 같은 식으로 대접할 것이다. 당신이 늘 투덜대며 세상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는다면 만족하지 못할 이유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세상에 대한 당신의 태도가 부정 일색이라면, 세상은 살기 힘든 곳이 될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물론 그렇다. 긍정적인 태도는 당신의 삶을 더 나은 삶으로 바꿔주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당신은 자기가 골라잡은 것을 가진다. 당신이야 좋든 싫든 그것이 사실이다. 

- 당신의 생각들이 대략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으면 당신은 같은 인생 트랙 위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당신이 현실에 대한 태도를 바꾸면 사념파의 매개변수들도 즉시 새로운 특성을 얻는다. 그러면 당신의 물질적 세계는 새로운 트랙으로 옮겨간다. 그 새 트랙에서는 당신이 방사하는 사념파의 매개변수에 따라 완전히 다른 시나리오로 사건이 전개된다. 만일 어떤 이유로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신은 상황을 고쳐보려고 애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장애물을 만나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불만을 표하거나 절망에 빠진다. 그러면 당신의 사념파는 더 많은 장애물이 있는 트랙으로 옮겨간다. 결국 인생은 점점 더 빠르게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 이런 과정은 당신의 통제력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가능태 공간 속의 말썽 많은 섹터로 실현의 에너지를 보낸 책임은 바로 당신에게 있다. 당신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장애물을 효과적으로 제거해 주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사실 당신은 정확히 자기가 선택한 대로 얻은 것이다. 장애물과 싸우기를 선택하면, 싸워야 할 장애물을 넘치도록 만나게 될 것이다. 당신이 문제를 가지고 고민에 빠져 있다면, 당신의 삶에는 언제나 문제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현재의 인생트랙 위의 상황을 바꿔놓으려고 여러 가지로 행동을 취해보지만, 가능태 공간 속 시나리오의 내용을 고칠 수는 결코 없다. 오직 다른 시나리오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가능태 공간 속 시나리오의 불쾌한 사건을 고치려고 애쓸 때, 당신은 정확히 자기가 싫어하는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바로 이를 통해서 당신의 선택은 유감없이 물질화되어서, 원하지 않았던 바로 그것을 얻게 되는 것이다. 

- 현재의 인생트랙에서 어떤 것을 고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구경할 때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전시작품을 없애거나 새로 만들 수는 없다. 거기서는 당신이 대장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발길을 돌려 다른 전시실로 가서 마음에 드는 작품을 구경하는 것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얻을 수 있는 그런 인생트랙으로 건너가는 것은 그저 바라기만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모든 생각이 다 실현될 수는 없으며, 모든 소망이 다 성취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생각의 성질 때문이다. 단순히 꿈꾸거나 바라는 것은 '선택하기'가 아니다. 꿈은 실현되지 않는다. 꿈이 실현되려면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한다. 이 책에서 당신은 그런 조건들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그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 가능태 공간에는 사람마다 무한수의 인생트랙과 운명이 있다. 우리에게는 선택할 권리가 주어졌기 때문에, 운명을 원망할 핑계가 없다. 우리의 유일한 문제는 선택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세상은 마치 있을 수 있는 모든 요구를 다 충족시켜 주기 위해 창조된 것처럼 무수한 가능성으로서 우리 앞에 나타난다.   

- 다른 펜듈럼들을 공격하여 파괴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펜듈럼은 언제나 자신의 지지자들을 다른 펜듈럼의 지지자들과 대립시키려고 애쓴다. "우리는 착하지만 저들은 우리와 달라! 저들은 나빠!" 이 싸움에 말려든 사람들은 길을 잃고 그릇된 목표를 따르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그 허위의 목표를 자신의 목표인 양 믿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렇게 하여 펜듈럼의 파괴적 성질이 본색을 드러낸다. 다른 지지자들과 싸우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며, 당신과 상대편 양쪽의 삶을 모두 망치는 짓이다. 

- 지지자를 얻기 위한 싸움 가운데 가장 극단적인 예는 전쟁이다. 펜듈럼은 지지자들을 설득하여 전쟁터로 내몰기 위해 그 시대에 알맞은 명분을 내세운다. 역사상 애용된 가장 원시적인 방법은, 사람들에게 원래 자기 소유였던 것을 무력으로써 다시 되찾으라고 명하는 것이다. 사회가 더 문명화될수록 명분과 논리도 좀 더 교묘한 형태를 갖춰왔다. 어느 한 국가가 스스로를 가장 문명화되고 진보된 국가로 선언하고 다른 국가들은 미개한 후진국으로 선언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 미개한 사람들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고상한 목표가 된다. 그리고 그들이 거부한다면 무력을 사용한다.

 

- 현대의 전쟁은 다음과 같은 식의 수순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숲 속의 한 나무에 벌집이 매달려 있다. 야생벌들이 거기에 살면서 꿀을 모으고 유충을 기르고 있다. 그때 펜듈럼 하나가 그 벌집에 접근해서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들은 야만적인 벌입니다. 아주 위험해요. 그러니 이들은 파멸시켜야만 합니다. 아니면 적어도 이 벌집만이라도 파괴해야 해요. 못 믿겠나요? 그럼 한번 보세요!" 그 펜듈럼은 막대기로 벌집을 여기저기 쑤신다.  

- 펜듈럼은 의기양양하게 외친다. "자, 보세요. 내가 말했지요! 이들이 얼마나 공격적인지 보세요! 이들은 파멸시켜버려야 합니다."

- 전쟁과 혁명을 정당화하기 위해 어떤 슬로건을 사용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펜듈럼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 지지자를 얻기 위한 전쟁이다. 이런 전쟁은 여러 가지 다른 형태를 취할 수 있지만, 그 유일한 목표는 최대한 많은 지지자를 얻는 것이다. 펜듈럼에게는 새로운 에너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새 에너지가 없으면 펜듈럼은 멈추고, 독립적인 존재가 소멸된다. 그러므로 펜듈럼에게 전쟁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당연하고 피할 수 없는 것이다. 

- 전쟁과 혁명의 뒤에는 곧이어 다른 형태의 전쟁이 뒤따르는데, 그것은 덜 공격적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가혹하다. 그런 전쟁의 예를 들어보자. 시장 점유를 위한 경쟁, 정당 간의 싸움, 경제 전쟁, 온갖 형태의 마케팅, 광고 전쟁, 이념 선전 등등.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자체가 펜듈럼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현대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경쟁을 목격한다. 정치적 논쟁에서부터 단체들과 개인들 사이의 경쟁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능한 수준의 모든 곳에 경쟁이 있다. 

- 새로운 것, 평범하지 않은 것,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은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데 늘 어려움을 겪는다. 왜 그럴까? 단지 새로운 개념이 우리의 머리에 자리 잡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일까? 그 주된 이유는, 낯선 펜듈럼이 등장해서 지지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가면 터줏대감 펜듈럼이 불쾌해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자동차 엔진 같은 내연기관은 도시의 환경을 심각하게 오염시켰기 때문에 벌써 오래전에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미 많은 친환경적 대체 엔진들이 개발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런 새로운 엔진은 기존의 석유회사 펜듈럼들에게는 위협이 될 수 있는데, 이들은 아직도 세력이 막강하다. 그들은 몇몇 발명가가 자신을 무대에서 끌어내리도록 좌시할 리가 없다. 결국, 거대 석유회사들을 대표하는 이 괴물 펜듈럼은 대체 엔진의 특허를 사들여서는 비밀로 묻어버린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 새로운 발명품은 효용성이 없다고 강변한다. 

- 펜듈럼은 물질세계에 자신을 구축할 때 인적 자원은 물론, 재정수단, 건물, 설비 등을 가지고 자신의 입지를 강화한다. 펜듈럼은 이 인적자원의 피라미드 꼭대기에다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을 앉혀놓는다. 이들은 작은 부서의 책임자로부터 한 나라의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급의 지도자다. 이들은 특별하거나 뛰어난 자질을 가져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대개는 펜듈럼의 구조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특질을 갖춘 지지자들이 리더로 앉혀진다. 펜듈럼의 총애로 선택받은 사람은 자기가 오직 개인적 덕목으로 인해 인생의 큰 일을 성취했다고 믿을 것이다. 그것은 맞는 말이지만 부분적으로만 그렇다. 펜듈럼이 총애하는 사람의 승진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펜듈럼의 자기 조직적인 구조 자체다. 그 사람이 지닌 변수, 곧 특질이 시스템의 요구에 더 이상 맞지 않으면 그는 무자비하게 제거될 것이다. 

- 펜듈럼들의 전쟁은 그 지지자들에게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지지자들은 자신이 그 높은 목표를 진정으로 믿기 때문에 그 일에 헌신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지자들의 개인적 신념은 펜듈럼의 손에 꼼짝없이 장악되기 쉽다. 펜듈럼의 주파수에 동조하는 즉시 그와 펜듈럼 사이에는 에너지 차원의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지지자의 사념 에너지 주파수는 펜듈럼의 에너지에 의해 고정된 채 유지된다. 그는 이제 피드백 고리 속에 갇힌 것이다. 지지자는 펜듈럼의 주파수에 맞춰 깊이 중독되어 있다. 뉴스는 대부분 나쁜 일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적이 있는가? 이런 프로그램들은 흥분, 두려움, 짜증, 분노, 시기심과 같은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저널리스트들의 일은 당신의 주의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매스미디어는 그 자체가 펜듈럼이면서, 동시에 더욱 강력한 펜듈럼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그것은 누구든지 모든 정보를 자유롭게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목적은 사뭇 다르다. 특정 펜듈럼들의 주파수에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동조시키는 것이 본래의 목적이다. 

- 펜듈럼이 당신의 에너지에 접근하려고 할 때 가장 선호하는 방법 중 하나는 당신의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다. 균형이 무너지면 당신은 그 펜듈럼의 주파수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로써 당신은 또 그 펜듈럼 자체를 흔들어주게 된다. 물가가 오르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당신은 그 상황이 싫어서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아마도 화가 나서 친구들과 치솟는 물가에 대한 불평을 주고받을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정상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정확히 펜듈럼이 원하는 것이다. 당신은 펜듈럼의 주파수에 맞춰서 부정적 에너지를 세상으로 방사하고 있다. 펜듈럼은 이 에너지를 수확할 것이다. 수확된 에너지는 펜듈럼이 더 크게 흔들리게 만들고, 그 결과 현실 세계에서는 물가가 갈수록 더 치솟는 상황이 벌어진다. 

- 이쯤 되면 펜듈럼은 당신을 마치 꼭두각시 인형처럼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을 잡아당기는 가장 팽팽한 줄은 두려움이다. 두려움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렬한 감정이다. 당신이 정확히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신의 두려움이 어떻게든 펜듈럼의 한 측면과 연결되어 있기만 하면 펜듈럼은 당신의 에너지를 얻어낼 수 있다. 불안과 초조는 그보다 약간 약한 줄이기는 하지만 당신을 잡아당겨 튀어 오르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런 감정들은 방사되는 사념 에너지를 펜듈럼의 주파수에 고정시키는 데 아주 유용하다. 뭔가가 걱정을 끼치고 있을 때 거기서 마음을 돌려 전혀 다른 일에 집중하기란 매우 어려운 법이다. 

- 펜듈럼이 당신에게서 에너지를 뽑아내는 데는 죄책감 또한 아주 효과적인 수단이다. 죄책감은 누구나 어릴 때부터 느끼도록 강요받아 왔다. 죄책감은 사람을 조종하기에 아주 손쉬운 수단이다. "죄책감을 느낀다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해." 죄책감을 가지고 사는 것은 매우 불쾌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느낌에서 벗어나려고 애쓴다. 어떻게? 벌을 받거나 빚을 갚는 것으로 잘못을 속죄하려고 한다. 이 두 가지는 모두 굴복과 순종, 그리고 특정한 방향으로 생각을 맞추는 것을 의미한다. 의무감도 죄책감의 한 형태다. 의무감을 가진다는 것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 결과 진짜 죄를 지은 사람이든 누명을 쓴 사람이든, '죄인'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나아가서 펜듈럼에게 에너지를 갖다 바친다. 암시로써 죄책감을 유도하는 것은 독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무기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다루도록 하자. 

- 인간의 모든 심리적 콤플렉스에는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콤플렉스는 뭔가가 당신의 아픈 곳을 찌를 때 드러난다. 여러 가지 콤플렉스의 예를 들어보자. 열등감 콤플렉스 - 나는 매력적이지 않다. 나는 능력이나 재능이 없다. 나는 머리가 나쁘다, 나는 말을 잘 못하고 사교성이 없다. 나는 쓸모가 없는 사람이다 등. 죄책감 콤플렉스 - 나는 그것에 대해 죄를 지었다. 모두가 나를 심판하고, 나는 그 십자가를 져야 ... 

- 습관을 없애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습관이란 편안한 느낌을 주는 환상이다. 사람은 익숙한 쪽을 더 신뢰한다. 새로운 것은 뭐든 걱정과 두려움을 일으킨다. 오래되고 익숙한 것들은 경험을 통해 이미 그 효과가 입증되어 있다. 마치 오래된 안락의자와도 같다. 일이 끝나고 나면 당신은 거기에 몸을 묻고 휴식한다. 새 안락의자가 더 나을지도 모르지만 오래된 것이 더 편안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편안한 느낌이란 편리성, 신뢰감, 긍정적인 경험, 예측가능성 등의 개념으로서 성격 지울 수 있다. 새로운 것에는 이런 특성이 훨씬 미약하다. 그래서 새로운 습관이 몸에 배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 우리는 펜듈럼이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수법을 살펴보았다. 사람이 펜듈럼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을까? 이제 거기서 탈출하는 방법을 이야기해 보자. 어떤 사람이 자신을 노예로 만들어온 펜듈럼에 반기를 들고일어나 내놓고 맞서는 일은 흔히 일어난다. 사람과 펜듈럼 사이의 전쟁에서 사람은 항상 패배를 맛볼 것이다. 펜듈럼은 오직 다른 펜듈럼만이 물리칠 수 있다.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람이 펜듈럼에 더 이상 복종하지 않고 대항하여 싸운다면 그는 에너지를 잃기만 할 뿐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잘 돼봤자 시스템 밖으로 내팽개쳐질 것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짓밟혀 목숨을 잃을 것이다. 펜듈럼이 세워놓은 규칙을 어길 배짱을 가진 사람에게는 반역자라는 낙인이 찍힐 것이다. 현실 세계의 표면에서 그 사람은 그의 행위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겠지만, 실제로 그를 죄인으로 만드는 것은 그의 행위가 아니라 그가 통제를 벗어났고, 그래서 더 이상 펜듈럼의 에너지원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 그러나 어떤 정보가 자신을 화나게 하거나 겁을 주면, 즉 그 정보가 뭔가 자기와 깊이 관련된 것이면 사념에너지가 거기에 사로잡힌다. 펜듈럼의 올가미에 걸려서 펜듈럼의 공명 주파수에 동조되는 것이다. 그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화를 내기 시작하고 분개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불만을 마구 토해낸다. 무슨 뜻인가 하면, 그는 그 파괴적인 펜듈럼의 주파수에서 에너지를 방사하고 있는 것이다. 펜듈럼이 그 에너지를 모두 수확하지는 않는다. 그중 일부는 가능태 공간의 특정 섹터로 간다. 그 사람의 사념 에너지의 매개변수가 그러하기 때문에, 그는 그가 피하고 싶어 하는 것들만 널려있는 가능태 공간의 섹터로 옮겨가게 된다. 앞서 말한 대로, 사람의 사념 에너지가 특정 주파수에 고정되면 그 사람은 거기에 맞는 인생 트랙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이 경우에 펜듈럼은 그 지지자에게 파괴적으로 작용한다. 펜듈럼이 그 올가미로써 그의 주파수를 붙들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 당신이 대참사나 자연재해에 관한 정보를 듣고 그것을 귓가로 흘려보내 버린다고 생각해 보자. 사실 당신에게 그 영향이 끼쳐오는 것이 아니라면 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런 경우에는 대개 자연재해는 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당신은 피해자가 아니라 지켜보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인생트랙에 있게 될 것이다. 당신이 피해자가 되는 인생트랙은 비껴간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성립한다. 당신이 재난과 불행한 사건에 대한 소문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놔둔다면 당신은 그것을 슬퍼하면서 친구들과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이다. 이럴 경우, 당신은 곧 그런 재난의 피해자가 되는 인생트랙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아주 커진다. 

- 뭔가를 피하려는 욕구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것을 갖게 될 위험은 더욱 커진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원하지 않는 것에 맞서서 싸우는 것은 사실은 바로 그것을 인생의 한 부분으로 만들려고 갖은 애를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달갑지 않은 인생트랙으로 옮겨가고 싶다면 그토록 별나게 애쓸 필요조차 없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거기다 감정을 실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예컨대 궂은 날씨를 싫어해서 비가 지긋지긋하다는 생각만 계속한다. 이웃이 시끄럽게 굴어서 당신은 늘 그들과 싸우거나, 마음속으로 그들을 경멸한다. 당신은 뭔가를 두려워하고, 그것이 당신을 불안에 빠뜨린다. 직장 일이 지긋지긋해서 일에 대한 혐오의 감정 속으로 빠져든다.

- 두려워하거나 혐오하거나 경멸하는 것과 같은, 당신이 정말 꺼리는 것들은 당신을 어디에나 따라다닐 것이다. 물론 피하고 싶은 다른 것들도 많지만 그것이 지금 당장 당신을 크게 괴롭히지는 않는다. 이런 경우, 그 일들은 당신의 인생에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꺼리는 그것이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허용하여, 혐오감을 느끼고 부정적인 감정을 품자마자 그 원치 않는 일은 틀림없이 당신의 삶 속에 현실화될 것이다.

- 삶에서 원치 않는 일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의 사념 에너지를 사로잡고 있는 펜듈럼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펜듈럼이 집적거리도록 놔두지도 말고 그 게임에 빠지지도 말라. 파괴적인 펜듈럼의 손아귀를 빠져나오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펜듈럼을 그냥 지나가게 하거나 멈추게 만드는 것이다. 이 방법들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 펜듈럼이 그냥 지나가게 하기 : 
펜듈럼과 싸우는 것은 헛수고다. 이미 말했듯이, 펜듈럼과 싸우는 것은 펜듈럼을 당신의 에너지로 먹여 키워주는 짓이다. 성공을 위한 첫째 조건은 펜듈럼과 싸우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 첫째로, 당신을 괴롭히는 것을 싸워서 떼어놓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그것은 더욱 기를 쓰고 당신을 따라다닐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입버릇처럼 될지도 모른다. "제발 나를 편안히 좀 내버려 둬! 모두들 저리 꺼져!" 당신은 당신을 괴롭히는 펜듈럼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 펜듈럼을 당신의 에너지로 먹여주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더욱더 달라붙는다.

- 둘째로, 당신은 이 세상 어떤 것도 비난하거나 바꿔놓을 권리가 없다.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을 볼 때처럼, 좋든 싫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미술관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이 많아도 그것이 보기 싫으니 치워버리라고 요구할 생각은 떠오르지도 않을 것이다. 펜듈럼이 존재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면 당신에게는 펜듈럼을 저 혼자 내버려 둘 권리, 곧 그것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권리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펜듈럼과의 싸움에 말려들지 않는 것이다. 펜듈럼을 비난하지도 말고 화내지도 말고 침착성을 잃지도 말라. 그 모두가 펜듈럼의 게임에 말려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 정반대로 하라. 펜듈럼을 이미 주어진 것, 피할 수 없는 악으로 묵묵히 받아들이고 거기서 떠나라. 어떤 형태로든 싫은 마음을 보인다면 펜듈럼에게 에너지를 뺏기게 될 것이다.

- 선택하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려면 거부하기를 먼저 배워야 한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몰라도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는 분명히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원치 않는 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다가 그와 정반대의 결과를 일으키고 있다.

 

- 거부하기 위해서는 받아들임이 필요하다. 여기서 '받아들임'이라는 말은 무엇을 껴안아 자신의 일부로 만들라는 의미가 아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받아들임이란, 만물이 그 자체로서 존재할 권리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해 주고 그것을 담담하게 지나쳐 가라는 뜻이다. 받아들이고 놓아 보내는 것- 그것은 모든 것이 당신을 통과하여 지나가도록 허용하고, 그것이 떠나갈 때 미련 없이 보내주는 것이다. 그와 반대는 받아들여서 곁에 붙들어두는 것, 그리고 거기에 집착하거나 저항하는 것이다.

- 좋아하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한 생각이 당신을 괴롭히고 있다면, 그것은 결국 당신의 삶에 나타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사과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자. 그는 사과가 그냥 싫다. 사과만 보면 역겹다. 그렇다면 그냥 사과를 무시해 버리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사는 세상에 사과와 같은 역겨운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사과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짜증이 난다. 그리고 그 혐오스러운 느낌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한다. 이것은 물질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에너지 차원에서 보면, 그는 탐욕스럽게 대들어 사과를 입에 쑤셔 넣고 우적우적 요란스럽게 씹어 먹으면서 자기가 얼마나 사과를 혐오하는지를 외쳐대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호주머니에 사과를 가득 쑤셔 넣은 채, 목이 메도록 게걸스럽게 먹으면서 사과는 정말 질린다며 또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사과가 싫으면 그것을 삶 밖으로 던져버리면 된다는 생각이 그에게는 떠오르지조차 않는 것이다. 

-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생각이 그런 감정의 대상에 매여 있으면 사념 에너지가 특정 주파수에 고정되고, 그러면 당신은 펜듈럼에 붙잡혀서 당신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대상이 널려 있는 해당 인생트랙으로 옮겨가게 된다는 사실이다. 

- 삶에서 어떤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거기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고 그것을 담담하게 지나쳐가라. 그러면 그것은 당신의 삶에서 사라질 것이다. 삶 밖으로 어떤 것을 내던진다는 것은 그것을 회피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시하라는 뜻이다. 회피하는 것은 어떤 것을 자기 삶 속으로 들어오도록 허용하면서, 동시에 거기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무시한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도 거기에 반응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것을 삶 속에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뜻한다.

- 당신이 라디오 수신기라고 가정해 보라. 잠에서 깨어나면 당신은 매일같이 진절머리 나는 방송을 듣는다. 그 방송이란 바로 당신을 둘러싼 세상이다. 그러니 그저 다른 주파수로 다이얼을 돌리라!

- 당신과 세상 사이에 철의 장막을 쳐놓는다면 좋지 않은 펜듈럼들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일 뿐이다. 그런 철갑의 보호막 속에 있게 되면 당신은 이렇게 혼잣말을 할 것이다. "난 꽉 막힌 벽이야.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아. 난 아무것도 모르고, 그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아. 나에게 다가올 길은 없어." 그런 보호의 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데, 그것도 조금이 아니라 실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의도적으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키려고 애쓰는 사람은 끊임없는 긴장 속에서 살아간다.

 

- 게다가 무엇보다도, 보호의 장의 에너지는 애초에 그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했던 그 펜듈럼의 주파수에 동조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펜듈럼이 노리는 바다. 펜듈럼은 당신이 에너지를 기쁜 마음에서 주든 분노하는 마음에서 주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펜듈럼은 그저 에너지를 얻는 데에만 관심 있을 뿐이다.

 

-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펜듈럼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을까? 그것은 비어 있음이다. 내가 텅 비어 있다면 무엇으로도 나를 붙잡지 못할 것이다. 나는 펜듈럼의 게임에 말려들지 않는다. 펜듈럼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나는 단순히 그것을 무시한다. 펜듈럼의 에너지는 나를 그냥 통과해 가버린다. 나를 건드리지 못하고 그냥 공간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펜듈럼의 게임이 나를 괴롭히지 못한다.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 펜듈럼에게 나는 텅 비어 있는 존재다.

- 펜듈럼의 주된 목표는 가능한 한 많은 지지자를 끌어들여서 그들의 에너지를 얻어내는 것이다. 펜듈럼을 무시해 버리면 그것은 당신을 내버려 두고 다른 사람들에게로 옮겨간다. 펜듈럼은 오직 게임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만, 달리 말해서, 펜듈럼의 주파수에 맞춰서 사념 에너지를 방사하는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가장 단순한 예를 들어보자. 개가 짖으며 당신을 뒤따라오고 있다. 당신이 뒤돌아보면 개는 더 큰 소리로 짖을 것이다. 당신이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적하기 시작하면 개는 한참 동안이나 계속 당신을 뒤쫓을 것이다. 사실 개는 소동 부릴 만한 대상을 찾아다닌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을 간단히 무시해 버리면 개는 다른 대상을 찾아갈 것이다. 개에게는 무시당했다고 모욕감을 느끼는 따위의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라. 개는 에너지를 얻어내려는 목표에 너무나 몰두해 있어서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자, 이제 개를 말썽 일으키기 좋아하는 사람과 바꾸어놓고 생각해 보라.

 

- 어떻게 하면 더 빨리 잘할 수 있을지, 어쩌면 다른 직원은 더 잘할 수도 있지 않을지 물어보라.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그 펜듈럼을 따라 함께 흔들리는 것이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그렇게 한다. 그 게임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바깥에서 그것을 관찰하는 것처럼 한다. 펜듈럼은 게임에 완전히 몰두해서 흔들리고 있다. 그것은 펜듈럼의 게임이다. 펜듈럼이 결정하고, 사람들은 거기에 동의하고 조언을 구한다. 당신은 당신을 향하던 그 에너지가 다른 해결책이나 그 일을 할 다른 사람에게로 방향을 바꾸는 것을 목격할 것이다. 당신에 관한 한 펜듈럼은 헛발질을 할 것이다.

- 펜듈럼이 그냥 지나가게 할 수가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펜듈럼을 간단히 무시하거나 피할 수가 없는 경우다.

- 나에게는 정말 착하고 마음씨 좋은, 그러면서도 엄청나게 힘도 센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밤 우리는 전차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시빗거리를 찾고 있는 깡패 무리가 있었다. 그것은 정말 파괴적인 펜듈럼이었다. 그들은 하나로 뭉쳐서 서로 부정적인 에너지를 먹여주고 있었고, 아무도 자기들을 막을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에너지를 증폭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사람들을 괴롭혀야 했고, 사람들은 그 도발에 반응함으로써 에너지를 주고 있었다. 

- 이 패거리는 내 친구를 집적거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 친구의 착하고 온순한 표정 때문에 별 위험이 없어 보였을 것이다. 그들은 모욕을 주고 비아냥거리며 온갖 짓으로 싸움을 걸어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친구는 어떤 도발에도 반응하지 않고 묵묵히 있었다. 달리 말해서, 그는 펜듈럼이 헛발질을 하게 하려 했던 것이다. 그는 두려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도 거기에 끼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 깡패들은 정말 사람을 구석까지 몰아갔다. 결국 친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어나서 출구로 향했다. 그러자 그중 가장 뻔뻔스러운 놈이 그를 가로막았다. 궁지에 몰린 내 친구는 그 녀석의 목덜미를 잡고 그의 머리에 무시무시한 타격을 가했다. 그 희생자의 얼굴은 즉각 묵사발이 되어버렸다. 나머지 주인공들은 너무나 놀라고 겁에 질려서 얼어붙어버렸다. 친구는 돌아서서 다른 한 녀석을 붙잡았다. 그러자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빌기 시작했다. "이제... 됐어, 이제 그만해... 그만..." 그 펜듈럼의 에너지는 금방 꺼져버렸다. 그리고 그 지지자들은 여전히 놀란 채 슬슬 뒷걸음질하다가 결국 전차 밖으로 달아나버렸다.

- 물론 이런 일을 감당해 낼 수 있는 사람은 복이 많다. 그러나 당신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면 당신은 뭔가 특별한 것,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유별난 행동을 함으로써 펜듈럼을 멈추게 할 수도 있다.

- 사건이 어떻게 펼쳐질지를 예측할 수 있는, 즉 기본 시나리오를 알 수 있는 상황에 처한다면 무엇이든 그 시나리오에 맞지 않는 기이한 짓을 하라. 그러면 펜듈럼은 꺼질 것이다. 주어진 시나리오대로 행동하는 한, 당신은 펜듈럼의 게임을 받아들여 당신의 에너지를 그 주파수에 맞추어 내주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주파수가 펜듈럼의 주파수와 아주 다르면 당신과 펜듈럼은 동조하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당신은 펜듈럼이 리듬을 잃게 만든다. 

- 동시에, 손해 볼 일도 없는 밑바닥까지 간 펜듈럼을 마주쳤을 때는 함부로 덤벼서 말썽을 자초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강도에게 습격을 당하면 곧바로 돈을 줘버리는 게 낫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일부러 10달러짜리 지폐를 지니고 다니기도 한다. 예컨대 그 강도가 마약중독자나 정신질환자라면 당신이 무술의 대가라 할지라도 쉽게 목숨을 뺏길 수 있다. 그러므로 광견병에 걸린 개를 건드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사람들은 아예 상대하지 않는 편이 훨씬 낫다. 그러지 않으면 당신은 원치 않게 값어치 없는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 펜듈럼을 끄는 데는 유머감각과 창조적인 상상력이 크게 도움이 된다. 짜증을 놀이로 바꿔보라.  

- 앞에서 말했듯이, 불쾌한 상황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습관은 펜듈럼의 주파수 포획 메커니즘을 가동시키는 스위치다. 이것이 켜지면 펜듈럼이 당신의 사념 에너지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습관은 의도적으로 다음과 같이 바꿔놓기 게임을 하면 사라질 것이다. 두려움을 다음과 같이 자신감으로, 우울을 열정으로, 분노를 담담함으로, 짜증을 기쁨으로, 최소한 약간 불쾌한 일에 대해 '이상한' 방식으로 반응하기를 한 번 시도해 보라. 손해 볼 것은 없다. 좀 우스꽝스럽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이런 식으로 게임을 하면 펜듈럼은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임을 이렇게 하는 것이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것은, 펜듈럼이 자기에게만 유리한 게임을 하도록 우리를 훈련시켜 놓았기 때문일 뿐이다. 이젠 펜듈럼이 당신의 게임을 하도록 만들어보라. 그것은 무척 재미있고, 당신은 그것이 얼마나 강력한 테크닉인지를 깨닫고 깜짝 놀랄 것이다. 그 이치는 이렇다. 공명 주파수와는 다른 주파수의 사념 에너지를 방사하면 당신은 펜듈럼과 공명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 그러면 당신에게는 펜듈럼이 꺼지게 되고, 그 결과 펜듈럼은 당신을 건드리지 않고 평화롭게 내버려 둔다.

- 펜듈럼을 부드럽게 끄는 재미있는 방법이 하나 더 있다. 누군가가 당신을 괴롭히고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부족한지를 진단해 보라. 그런 다음 그 사람이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 자신감, 혹은 마음의 평화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세 가지 중요한 요소는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 누구나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 사람에게는 지금 당장 무엇이 정말 필요한지를 생각해 보라.

- 상사가 당신에게 고함을 지르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지친 것일까, 아니면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렇다면 그는 마음의 평화가 필요하다. 그가 안락의자에 기대앉아 TV를 보고 있는 장면이나 난롯가에 앉아 편안히 쉬고 있는 모습을 떠올려보라. 혹은 강가에 앉아 낚시를 하거나,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떠올려도 좋겠다. 그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겠는가? 어쩌면 그는 자신의 상사에게서 압박을 받고 있고 많은 책임을 떠맡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에게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그가 프로선수처럼 스키를 타는 모습이나 스포츠카를 모는 모습을 그려보라. 또는 파티에서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아니면 그는 몸이 아파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면 그가 행복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그려보라. 자전거를 타거나 축구를 하는 모습도 좋겠다. 물론 그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편이 더 좋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맞혀야 할 필요는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가 만족해하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그러면 여기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당신의 상사가 당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만 잔뜩 가지고 갑자기 나타난다. (그것은 상사 대신 강도나, 다른 골치 아픈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가 무슨 문제를 들고 오든지, 거기서 비껴나라. 그렇게 해서 처음부터 주파수 포획 올가미에 머리를 들이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제 그가 정확히 그에게 필요한 것을 얻는 모습을 상상한다. (강도는 무엇을 원할까? 먹을 것, 마실 것, 아니면 환각제?) 그 사람이 만족을 느끼는 장면을 그려보라. 그렇게 하는 데 성공했다면 당신의 문제는 이미 사라진 것으로 봐도 된다. 펜듈럼은 혼자서 저절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 아니다. 뭔가가 펜듈럼이 균형을 잃게 만들었다. 펜듈럼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 균형을 회복시켜 줄 어떤 것을 찾고 있다. 바로 그때, 비록 간접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특정한 주파수의 당신의 사념 에너지가 그 균형을 회복시켜 준다. 펜듈럼은 즉각 그의 공격성을 호의로 바꿀 것이다. 뭐라고? 믿기 어렵다고? 그럼 직접 시험해 보라!

- 위의 테크닉을 적용할 때 기본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펜듈럼이 꺼진다는 것이다. 인간 펜듈럼이 말썽거리를 가지고 당신에게 다가오면 당신은 그것을 보이지 않게, 상상을 통해서 에너지 차원에서 해결해 버리는 것이다. 당신은 펜듈럼에게 에너지를 준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을 경우에 빼앗길 수 있는 것에 비하면 아주 조금만 준다. 게다가 당신은 좋은 일을 한 것이다. 비록 일시적이긴 하지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 사람이 다음에는 당신에게 전과 다른 친절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당신과 함께 있으면 왜 편안하게 느껴지는지를 결코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작은 비밀로 간직하라.

- 이 테크닉은 상대방에게서 뭔가를 얻어내야 하는데 그는 자신의 문제에 몰두해 있어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주는 일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써먹을 수 있다. 공무원의 결재를 받아야 할 일이 있는가? 그럴 때 먼저 그에게 멋진 장면을 상상함으로써 에너지를 '먹여' 주라. 그러면 그는 당신을 위해 무슨 일이든 다 해줄 것이다.

- 마지막으로 이것을 생각해 보자. 풀이 꺾인 펜듈럼의 에너지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 에너지는 당신에게 돌아온다. 당신의 문제를 극복하고 나면 당신은 더욱 강력해진다. 다음에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면 그 문제의 올바른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주 쉬워진다.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나 당신이 그 문제와 싸우려고 대들면 애초에 그 문제를 ...

- 펜듈럼의 올가미에 걸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문제에 빠져들지 말고, 펜듈럼이 당신을 게임 속으로 유인해 들이도록 허용하지 말라. 집을 내주듯 자신을 빌려주라. 그런 상황에서 늘 하던 것처럼 행동하되, 게임의 참여자로서가 아니라 외부의 관찰자로서 행동하라. 당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상황을 바라보라. 펜듈럼은 당신의 손을 잡고 미로 속으로 끌어들이려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문제가 당신을 겁주고 사로잡아서 근심과 혼란 속에 빠뜨리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 모든 문제에는 아주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는 것만 기억하라. 펜듈럼이 당신에게 강요하는 '어려운' 해석을 받아들이지 말라. 

- 당신이 어떤 문제나 까다로운 상황에 직면해 왔다면, 그에 대해 당신이 어떤 태도를 취해왔는지를 잘 파악하라. 문제는 혼란과 두려움, 분노와 절망 등을 불러올 수 있다. 당신은 문제를 대하는 평소의 태도를 정반대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면 문제가 저절로 사라져 버리거나, 아니면 간단한 해결책을 금방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고정관념과 습관에 거슬러서, 문제를 장애물로 보지 말고 당신이 걸어가야 할 길의 일부라고 생각하라. 내면에 문제가 머물 자리를 주지 말고, 문제에 대해 텅 비어있으라. 

- 좀 숙고해봐야 할 필요가 있는 문제가 있다면 논리적인 생각으로 당장 해결하려고 달려들지 말라. 당신의 잠재의식은 정보장에 직접 연결되어 있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거기에 이미 존재한다. 그러니 우선 긴장을 풀고 그 문제에 대해 가지고 있는 두려움과 걱정을 모두 던져버리라. 해결책이 이미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자신을 느슨하게 풀어놓고 생각의 흐름을 멈춘 다음, 텅 비어 있는 상태를 명상하라. 그렇게 하면 해결책이 즉각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아주 단순한 해결책일 것이다. 그것이 당장 효과가 없더라도 흥분해서 생각장치를 다시 켜지 않도록 하라. 다음번에는 잘 될 것이다. 이 연습은 직관적 지식을 얻는 능력을 개발하는 데 아주 유용하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습관화하는 것뿐이다.

- 펜듈럼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서 자기를 빌려줄 수 있다면, 이 방법은 정말 효과가 있다. 그러나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 행하기는 어렵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 펜듈럼을 다루는 새로운 방법들을 소개할 것이다. 이것은 정말 시작일 뿐이다. 내가 지금 당신의 손을 붙잡고 미로 속으로 끌고 가려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사실 그렇다. 당신을 해방시켜 주겠노라고 설교하는 사람들로부터도 벗어나라.

- 파괴적인 펜듈럼의 영향력을 벗어나면 당신은 자유를 얻는다. 그러나 목표가 없는 자유는 유보상태이다. 주위에 있는 펜듈럼들을 그냥 지나가게 하거나 끄는 일에 몰두해 있으면 당신은 허공 속에 놓일 위험을 안게 된다. 이전의 갈등과 성가시던 일들은 사라졌고 논쟁도 갈수록 뜸해지고 근심 걱정은 사라져 버렸다. 폭풍우가 어느새 서서히 잠잠해지듯이, 이 모든 일이 거의 눈에 띄지 않게 일어난다. 

- 그러나 당신은 여기에도 부작용이 있음을 곧 알게 될 것이다. 전에는 당신이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면 이제는 사건들이 다른 어딘가에서 ...

- 그들이 비치발리볼 경기에 싫증을 내면 클럽은 그 수명을 마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유와,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빼앗길 수 있는 폭력조직의 조직원이 되는 것과는 다르다. 당신은 이 말에 반론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내가 헬스클럽에 다니면서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하는 일에만 마음을 둔다면 어떻게 펜듈럼에게 에너지를 빼앗길 수가 있겠는가? 당신이 자신에게만 초점을 맞추든 안 맞추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당신은 헬스클럽의 규칙을 따라야만 한다. 집에서는 당신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헬스클럽에서는 모든 회원이 시스템이 정해놓은 규칙을 따라 동일한 방식으로 행동한다. 그래서 그들은 집단적 에너지를 헬스클럽 펜듈럼에게 내어주고 있다. 만일 모든 회원이 떠나버린다면, 그 펜듈럼은 더 이상 에너지를 받지 못해서 멈추어버릴 것이다.

- 이제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던져보자. 당신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 에너지체가 있을까? 그렇다. 그런 에너지체가 실제로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성공의 물결이다. 그것은 당신 개인에게 운 좋은 상황들이 우연의 일치처럼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성공의 물결이 있다. 처음에 약간의 행운이 찾아오다가, 그 뒤에 다른 예상치 못했던 즐거운 사건들이 물결처럼 밀려오는 경우가 많다. 인생의 크나큰 행운의 시기가 마치 물밀듯 덮쳐오는 것 말이다. 이 같은 물결이 날마다 나타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첫 번째 성공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면서 활기찬 기분에 젖어 있을 때만 찾아온다.

- "행운의 수레바퀴"와 "행복의 파랑새"라는 말은 한갓 추상적인 비유가 아니다. 성공의 물결은 당신에게 행운이 되는 인생트랙들의 다발이다. 가능태 공간에는 이 같은 금광맥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다 있다


- 대부분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생각이 오간다. 사고 과정을 통제하지 않으면 부정적 생각과 근심 걱정이 머리를 채울 것이다. 우리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 우리를 화나게 하고 우울하게 하고 불만족스럽게 만드는 것들이다. 파괴적인 펜듈럼들은 이렇게 수천 년 동안 인간심리의 형성에 영향을 미쳐왔다. 이 펜듈럼들은 사람들을 조종하기 위해 그들 안에 두려움이 남아 있게 만든다. 사람들이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는 잘 모르면서 원하지 않는 것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 부정적인 '생각 믹서'가 가동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다시 말해서, 모든 나쁜 일에 대해 불만을 토하고 비관적인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은 파괴적인 펜듈럼의 게임에 빠져들어 그 주파수로 에너지를 방사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해로운 습관이다. 그것을 다른 습관, 곧 생각을 의식적으로 통제하는 습관으로 바꿔놓으면 정말 유익할 것이다. 마음이 특별한 일에 매달려 있지 않을 때마다, 예를 들어, 기차나 버스를 타고 갈 때, 혹은 산책을 하거나, 특별한 집중과 주의를 요구하지 않는 일을 할 때마다 머릿속에 긍정적인 생각을 떠올리라. 당신이 얻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지 말라. 당신이 갖고 싶은 것을 생각하라. 그러면 그것을 갖게 될 것이다.

- 당신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난 이곳에 신물이 났어. 이 집의 모든 게 날 화나게 해. 그렇지만 새 집으로 이사 가면 행복해질 거야. 지금 당장은 짜증 나는 걸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아, 여기가 지겨워 죽겠어!" 이런 생각으로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더 나은 새 집으로 곧 이사할 참이라고 하더라도, 그 새 집은 당신에게 많은 실망을 안겨줄 것이다.

- "하지만 나는 이 헛간 같은 집을 떠나 호화 저택으로 가는 걸!" 당신은 당연히 이렇게 말할 것이다. "거기에 무슨 실망할 일이 있겠어?" 그러나 걱정 마시라. 여러 해 동안 당신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해 준 이 작은 집을 경멸하면 할수록, 더 많은 불쾌한 일이 새 집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참으로 다양한 불상사가 당신을 놀라게 할 것이다. 수돗물이 나오지 않고 페인트는 벗겨지고 벽도 움푹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웃들도 당신을 짜증 나게 만든다. 간단히 말해서, 당신의 부정적인 방사 에너지의 매개변수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어나야 할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이 새 집에서든 헌 집에서든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삶의 안락을 위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더라도 이전과 똑같이 불만족스러운, 그런 인생트랙이 항상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가능태 공간은 당신이 지옥처럼 느낄 만한 호화저택들을 얼마든지 갖추고 있다.

- 그리고 아직 이사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당신은 분명 이 달갑잖은 상황 속에 계속 머물러 있을 것이다. 사실 말이지, 당신은 꿈에 그리는 집이 기다리고 있는 인생트랙의 주파수에 동조되어 있지도 않다. 지금 당신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고 있어서 부정적인 에너지를 방사하고 있고, 이 에너지는 지금 당신이 처해 있는 인생트랙에 딱 어울린다. 그러므로 당신은 당신이 방사하는 사념 에너지의 주파수가 바뀔 때까지 거기에 갇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파수를 바꾸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 첫째, 현재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불만과 분노를 없애라. 모든 것, 모든 상황에서 언제나 좋은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인생에서 가장 작은 것조차도 기쁨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당신이 살고 있는 집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최소한 집에 대해 감사할 수는 있다. 누가 뭐래도 그 집은 당신의 보금자리다. 밖에는 비가 오고 바람이 분다. 당신의 집은 그것을 견뎌내면서 당신을 안전하고 따뜻하게 지켜준다. 이 사실만으로도 어떤 식으로든 그 수고를 인정받을 만하지 않은가?

 

- 당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당신의 삶을 더 편하게 해주는, 모든 것에 사랑을 느낀다면 당신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게 될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원한다면 생활 형편의 개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사를 갈 때는 반드시 옛집에서 당신 주위를 감싸주고 있던 모든 것에 감사하기를 잊지 말라. 버리는 물건들도 감사받을 자격이 있다. 이렇게 감사하는 순간, 당신은 긍정적인 진동을 주변 세상에 보내고 있는 것이며, 이 진동은 반드시 당신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 둘째, 당신이 갖고자 하는 집을 생각하기 시작하라. 이것은 주위의 사물에 대해 짜증을 내는 것보다는 어려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 쓸모 있는 일이기도 하다. 무엇이 좋을까? 늘 그래왔듯이 외부의 자극에 습관적으로 반응하는 것일까, 아니면 조금 노력해서 습관을 바꾸는 것일까? 미래의 집이 될 만한 부동산의 사진이 나오는 광고 카탈로그들을 눈여겨보라. 인테리어 디자인 숍을 찾아가서 미래의 집에 갖다 놓을 가구들을 찾아보라. 달리 말하자면, 당신의 모든 생각이 갖고자 하는 것에 몰두해 있게 하라.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생각을 확고하게 사로잡은 물건이나 상황을 갖게 된다. 생각은 부메랑처럼 반드시 되돌아온다. 

- 부정적인 태도가 인생을 망치는 것을 보여주는 예들은 너무나 많다.

- 나는 당신을 확신시킬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그저 당신의 부정적인 반응 뒤에 어떤 불행한 사건들이 뒤따라오는지를 지켜보기만 하라.

- 이 모든 것의 결론은 아주 단순 명료하다. 당신은 언제나 자신이 방사하는 에너지에 상응하는 인생트랙 위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에너지를 허용하면 삶 속에 불쾌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부정적인 에너지를 방사하면 그 에너지는 부메랑처럼 당신에게 되돌아오는데, 그것도 골칫거리가 돼서 돌아온다.

- 파괴적인 펜듈럼과의 게임을 받아들이지 말고, 쓸모가 있어 보이는 펜듈럼을 찾아서 게임을 벌이라. 이것은 긍정적이고 좋은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습관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이든 좋은 것, 기쁘고 고무적인 것을 보거나 읽거나 듣거든 당장 그것을 자신의 생각에다 들여놓고 행복을 느끼라. 당신이 숲 속을 걸어가고 있다. 숲에는 예쁜 꽃들도 피어 있지만 독이 있는 가시도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엘더베리(딱총나무, 말오줌나무) 꽃을 꺾어 와서 꽃병에 꽂아두면 당신은 곧 두통을 느낄 것이다.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파괴적인 펜듈럼에 반응하는 것도 이와 같다. 그 대신 재스민 꽃송이를 꺾어와서 그 기분 좋은 향기를 즐기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모든 긍정적인 것을 당신의 삶 속으로 가져오라. 그러면 머지않아 좋은 소식과 멋진 기회들을 갈수록 더 많이 접하게 될 것이다.

- 부정적인 태도는 항상 파괴적이어서 결국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들어놓는다. 예를 들면, 문젯거리만 찾아내고 해결책은 찾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려운 일에 대해서는 언제나 열을 올려 토론할 준비가 되어 있고, 온갖 새로운 문제를 찾아낸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애초부터 그들은 해결보다는 더 많은 문제를 찾아내는 일에만 관심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찾는 일에만 주의가 고착된 그들에게 문제는 차고 넘치지만 상황이 해결되는 일은 없다. 매사에 나쁜 면만 보고 비판하려 하는 태도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열매를 맺는다. 백해무익이라는 열매 말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그런 사람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그들은 특별히 착한 사람도, 특별히 나쁜 사람도 아니다. 그들은 파괴적인 펜듈럼의 갈고리에 꼼짝없이 걸려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 속에 원치 않은 사건이 일어날 때, 그것을 적대시한다. 우리가 원치 않은 사건이란 대개 원래의 시나리오에 없는 사건이다. 그리고 이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우리는 뭔가가 자신의 기대에 부합할 때만 그것이 성공적이라고 믿는다. 어떤 사람이 타야 할 비행기를 놓치고 아주 화가 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그 비행기가 추락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하지만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의 계획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이라서, 혹은 단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라서 멋진 기회를 놓쳐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 세상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면 할수록 세상은 더욱더 나빠진다. 최소한 그 사람에게만은 그렇다. 자신의 실패에 대해 화를 내면 낼수록 더 많은 실패가 찾아올 것이다. "뿌린 대로 거둔다." 비관적인 태도로 살기를 택한다면 그는 날마다 트랜서핑을 거꾸로 연습하는 것이다. 그는 지옥 같은 삶이 기다리고 있는 인생트랙으로 미끄러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와 정반대의 태도를 생각해 보라. 불행한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기뻐하고, 그 속에서 작은 것이라도 뭔가 쓸모 있는 것을 찾아보라. 이것은 언제나 가능한 일이다. 당신의 잔은 반이나 빈 것이 아니라, 반이나 차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점점 더 좋아지고 있는 것이다"라는 평범한 속담이 있다. 정말 그렇게 믿기만 한다면 이 말은 마법처럼 효과를 발휘한다. 다만 이런저런 이유로 늘 화내고 좌절하는 오랜 습관을 밀쳐내고 단호하고 끈질기게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해야만 한다.

- 모든 불행은 아무리 못해도 훌륭한 교훈은 될 수 있다. 그것은 당신을 더 강하고 노련하게 만들어준다. 당신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좋은 일에서 기쁨을 얻으라. 그러면 세상은 완전히 낙원으로 바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는 것은 아주 평범하지 않은 행동방식이다. 하지만 당신의 목표 또한 아주 비범하지 않은가? 자신의 소원을 성취하는 지니(아라비아 동화에 나오는 요술램프 요정,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능력이 있음-역주)가 되는 것 말이다. 평범한 방법으로 어떻게 그런 목표를 이룰 수가 있겠는가? 

- 싫어하는 일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습관이 우리 안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어서, 긍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 당장은 어려운 일이다. 불행한 일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이 당신을 옭아매려는 펜듈럼임을 기억하는 것. 그것을 배우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을 기억하는 순간, 당신은 의식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당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밖으로 퍼부음으로써 펜듈럼에게 에너지를 줄 것인지, 아니면 펜듈럼을 빈손으로 ... 

- 당신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온 주위에 발산해야 한다. 즉, 당신은 긍정적인 수신기로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송신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 주변의 세상은 아주 빠르게 좋아질 것이다. 당신은 더욱더 성공적인 인생트랙으로 가볍게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의 물결이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 그 물결은 당신을 싣고 성공으로 곧장 데려다줄 것이다. 그러나 트랜서핑이 성공의 물결을 타는 것만을 위한 수단이라고는 생각하지 말라. 이것은 첫 단계일 뿐이다. 앞으로 더 많은 놀랄 만한 발견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 이 장을 마무리하면서, 성공 물결의 주파수에 동조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예를 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사람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간혹 자기도 모르게 그 물결의 주파수에 동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하루를 개시하는 첫 손님에게는 값을 많이 깎아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첫 손님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마수걸이를 해서 장사를 개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트랜서핑의 언어로 말한다면 그것은 성공적인 장사를 위한 트랙의 주파수에 동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단지 생각만을 그 주파수에 맞춘다는 것은 어려울 수 있지만 첫 손님을 맞이하는 것은 실질적인 희망과 믿음을 주고, 그래서 주파수 동조가 절로 일어나는 것이다.  

- 당신의 내부에 긴장이 일어난다. 그래서 당신은 에너지장에 불균형을 만들어낸다. 그러면 이 잉여 포텐셜을 제거하기 위해 즉시 균형력이 나타날 것이다. 당신은 그 힘의 효과를 실제로 느낄 수 있다. 즉, 한편에서는 수수께끼의 힘이 당신을 절벽 아래로 끌어당기고 있고, 다른 편에서는 어떤 다른 힘이 당신을 절벽 끝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잡아당기고 있는 것이다. 결국 두려움에 의한 잉여 포텐셜을 제거하기 위해, 균형력은 당신을 절벽 끝에서 멀어지도록 잡아당기거나, 혹은 당신을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 그 상황을 끝내야 한다. 그러니까 당신이 절벽 끝에 서 있는 동안 느끼는 것은 이 균형력의 작용인 것이다. 

- 에너지 차원에서는 모든 물질적 대상이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단지 우리가 그것들에 특정한 속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좋음/나쁨, 행복함/슬픔, 매력적임/혐오스러움, 선함/악함, 쉬움/어려움 등등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이런 식으로 우리의 평가를 받는다. 평가 그 자체는 에너지장에 불균형을 일으키지 않는다. 당신이 안락의자에 홀로 앉아 있으면서 그 상황에 대해 평가를 내린다고 하자. "여기 앉아 있는 것은 안전하지만 절벽 끝에 서 있는 것은 위험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런 평가가 당신과는 무관하여 불안을 일으키지 않는다. 당신은 그저 그 상황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는 것이고, 그러므로 균형은 어떤 식으로도 깨지지 않는다. 어떤 평가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와 중요성이 부여될 경우에만 잉여 포텐셜이 일어난다.

- 중대한 의미를 부여받은 어떤 평가가 현실을 크게 왜곡시키고 있을 때는 잉여 포텐셜의 양이 더 커진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어떤 대상이 우리에게 아주 중요할 때는 그것의 성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존경의 대상은 언제나 좋은 점만 차고 넘치는 반면, 증오의 대상은 항상 결점투성이다. 그리고 두려움의 대상은 언제나 공포를 주는 속성들로 가득하다. 사념 에너지는 애초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속성을 인위적으로 지어내려고 한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럴 때 잉여 포텐셜이 생겨나고, 그것이 균형력의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다. 

- 현실을 왜곡시키는 그릇된 평가는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생길 수 있다. 하나는 대상에게 지나치게 부정적인 성질을 부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나치게 긍정적인 성질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평가의 오류, 그 자체는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다. 이 말을 주목하라 - 그릇되고 왜곡된 평가는, 그것이 당신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질 때에만 잉여 포텐셜을 만들어낸다. 당신에게 특별히 중요한 대상과 상황만이 당신의 평가에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것이다.

-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잉여 포텐셜은 사람들의 삶에 중요한 때로는 방심할 수 없이 위험한 역할을 한다. 이 포텐셜을 제거하려는 균형력의 작용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위험한 것은, 그것이 종종 사람들이 의도한 것과는 반대의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에 있다. 게다가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수수께끼의 사악한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머피의 법칙' 같은 것 말이다. 이것은 우리가 왜 항상 원치 않는 것을 얻게 되는가를 논했을 때 건드렸던 문제다. 다음 예를 보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 늘 우리를 피해 달아나는 이유를 알아보자.

- 그런가 하면, 당신은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별 힘을 들이지 않고도 당신보다 더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를 지나면 당신이 자신의 일에 부여하는 중요성도 한계에 이르기 시작한다. 당신에게 그 일의 비중이 크면 클수록 당신은 더 많은 문제를 겪게 될 것이다. 그런 모든 문제를 겪는 것이 당신에게는 그저 정상적인 일로 보일 것이다. 모든 것이 '일의 당연한 과정'인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중요성'의 발판을 낮추면 문제를 훨씬 덜 겪으리라는 것이다.

- 이 모든 사실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결론은 하나밖에 없다. 잉여포텐셜을 제거하기 위해서, 일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의식적으로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 외에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자유시간을 갖는 것이 꼭 필요하다. 휴식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일하는 법도 모른다. 일하는 시간 동안은 자신을 빌려주라. 일에게 당신의 머리와 손을 내어주라. 그러나 가슴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 일의 펜듈럼은 당신의 모든 에너지를 요구한다. 그러나 당신은 그 일만 하기 위해서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잉여 포텐셜을 제거하고 펜듈럼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직장에서도 훨씬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 

- 자신을 빌려주는 동안에는 흠잡을 데 없이 행동하라. 사소한 실수도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것은 당신이 해이하다고 비난받을 빌미를 준다. 흠잡을 데 없는 경지는 일의 성과를 좌우한다. 자신을 빌려준다는 것은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잉여 포텐셜을 만들어내지 않으면서 집착 없이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시시콜콜한 세부사항에 이르기까지 당신에게 요구된 모든 일을 완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 예컨대, 주변을 보면 당신과는 달리 일에 완전히 파묻혀 사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그들은 잠재의식 속에서, 당신이 자신을 그저 빌려주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당신이 그들처럼 지독히 열심히 일하지는 않으면서도 많은 일을 해내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 부지런한 영혼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라이벌이 실수를 저지르는 현장을 포착할 기회를 찾기 시작한다. 당신이 실수를 하면 그들은 그 즉시 당신을 공격해 올 것이다. 당신이 저지르는 실수는 사소한 일일 것이며, 그래서 그들이 그 실수를 지적할 때 모욕감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출근시간에 늦는다거나, 뭔가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거나 놓쳐버리는 경우 같은 것이다. 당신이 일에 혼신을 다하고 있었다면 그들도 당신의 실수를 너그럽게 봐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당신이 일에 주의를 제대로 기울이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 이와 비슷한 상황이 직장에서만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들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을 빌려줄 때는 어떤 상황이든 자신이 맡은 일을 흠잡을 데 없이 잘 수행해야 한다. 이때, 당신 내면의 관찰자인 지켜보는 자가 당신을 돕게 하라. 그러지 않으면 당신은 머지않아 또다시 게임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당신 내면의 지켜보는 자는 결코 분리된 인격 따위가 아니다. 더 큰 자아인 내면의 관찰자는 배후에서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는지를 단순히 알아차리고 있다. 이 지켜보는 자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 것이다. 

- "일에 완전히 투신하라"는 말은 오직 그 일이 당신의 목표인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 '당신의 목표'라는 말과, 그런 목표를 갖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논하기로 하자. 당신의 일이 곧 당신의 목표인 경우, 그 일은 당신을 성공으로 이끄는 터널처럼 작용한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일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런 일은 신명을 불어넣어 주고 기쁨과 영감과 만족감을 준다. 당신이 자신의 일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보기 드물게 행복한 영혼들 중 한 사람이라면 당신은 그 어떤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 이 모든 말은 공부에도 완벽하게 적용된다. 이 장의 뒷부분에서는 잉여 포텐셜을 만들어내는 다른 상황들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균형력의 작용이 가져오는 결과들도 살펴볼 것이다.

- 자신에게 불만을 품는 것에 대해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우리는 예컨대 자신의 개인적 성취나 자질에 대해 불만을 품기도 하지만, 또한 자신의 결점과 약점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자신을 불만스러워하기도 한다. 자신의 결점과 약점을 알아차리는 것은 좋지만 그 때문에 콤플렉스를 갖게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결점들이 정말 마음을 괴롭혀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면 잉여 포텐셜이 생겨난다. 그러면 균형력이 얼른 이 포텐셜을 제거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균형력의 작용은 그 사람의 장점을 발전시키는 데에 맞추어지거나, 아니면 약점과 싸우려는 노력에 맞추어질 수 있다. 그 결과 그는 그 둘 중 하나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약점과 싸우는 쪽을 택하여 결국은 자신과 맞싸우게 된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숨기려고 애쓰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거니와, 그것을 제거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당신은 정반대의 결과를 얻고, 상황은 갈수록 악화된다. 예컨대, 자신의 소심함을 숨기려고 애쓰면 더욱더 부끄러워지거나, 혹은 반대로 낯선 사람에게도 지나치게 허물없이 행동하게 된다.

- 자신의 성취에 만족하지 않을 때, 그것이 자기완성을 위한 동기로만 작용할 정도라면 균형은 깨지지 않는다. 우리의 주변 세상은 이런 상대적 불만족에는 영향받지 않는다. 그리고 내적 균형의 변동은 긍정적인 행동으로써 보상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비난이나 자기에 대한 분노에 빠지거나 한술 더 떠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에 대해 자신을 벌하기 시작한다면 영혼과 마음이 대치하는 위험한 상황이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영혼은 그런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의 영혼은 완벽하고 자족하다. 당신이 획득한 모든 결점과 약점은 마음의 결점과 약점일 뿐, 영혼의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너무나 방대하고 복잡한 주제라서 책을 한 권 따로 써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자신과 대치하는 것은 지극히 나쁜 일이라는 사실만 강조하자. '마음'이 판치는 한 영혼은 자기 안으로 물러나버릴 것이고, 이것은 인생을 완전히 황폐해지게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나중에 병원에 정신분석을 받으러 가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풀어놓고 모든 결점과 약점에 대해 자신을 용서하라. 지금 당장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면 최소한 자신과 싸우기를 멈추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이것이 당신의 영혼이 마음과 동맹을 맺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리고 영혼이야말로 정말 강력한 동맹군이다. 

- 작은 기쁨을 느끼는 것은 아주 좋은 습관이며, 원하는 것을 얻게 해 준다. 그러니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낡은 습관을 새로운 습관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까? 아주 간단하다. 맨 먼저 말할 수 있는 것은, 진부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모든 불행은 불행을 가장한 축복이라는 것이다. 겉보기에 부정적인 것에서 좋은 점을 찾아내는 것을 당신의 목표로 삼는다면 당신은 더 이상의 노력을 들이지 않고서도 목표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게임으로 만들라. 그 게임을 즐기다 보면 당신의 낡은 습관은 이내 새것으로 대체될 것이다. 이 습관은 당신에게는 아주 요긴하고, 파괴적인 펜듈럼에게는 완전한 악몽이 될 것이다. 

- 둘째로, 만일 정말로 끔찍한 일이 일어나서 그 어떤 기쁨을 느끼는 것도 부적절하고 부자연스럽게 여겨진다면, 옛날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했던 것처럼 하라. 그는 다른 사람에게는 안 보이도록 안쪽에 글씨가 새겨진 반지를 끼고 있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나거나 심각한 문제에 빠질 때마다 그는 반지 안쪽에 새겨진 글을 읽곤 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 인류에게 불만을 표하는 습관이 생긴 것은 다분히 파괴적인 펜듈럼의 영향 때문이다. 새로운 습관을 기르면 당신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생산해 낼 것이고, 그 에너지는 강력한 급류처럼 당신을 긍정적인 인생트랙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 당신이 가능성에 고무되어 습관을 바꾸는 방법을 연습하기 시작했다고 가정하자. 머지않아 당신은 연습이 점점 불규칙적으로 되어가고, 습관을 바꾸기로 했던 각오조차 수시로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낡은 습관이 깊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 ...

 

- 완벽한 환상을 창조한다. 그의 책을 읽으면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이야기들은 그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독일의 뒤마"라고 불러오고 있다. (19세기 프랑스의 극작가, 소설가로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역주) 많은 독자들은 칼 메이가 이야기에서 자신을 소개한 것처럼, 그가 바로 유명한 카우보이 올드 섀터핸드와 동일인물이라고 믿는다. 그의 애독자들은 다른 결론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들은 찬양과 모방의 대상을 발견했고, 게다가 그들의 우상이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더욱 흥미 있게 만들었다. 칼 메이가 미국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그중 몇 권의 책은 감방에 앉아서 썼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독자들이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 보라. 그래서 신화는 깨졌고, 칼 메이를 가장 좋아했던 애독자들은 그를 가장 미워하는 적이 되어버렸다. 자, 여기서 누가 잘못한 것일까? 우상을 창조하고 의존적인 관계를 지어낸 것은 그들이다.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모두 사실일 때에만 당신은 우리의 영웅이 될 수 있어."

- 둘째는 꾸며낸 환상을 갖다 맞출 실제 대상이 없는 경우이다. 이때 이상화하는 사람은 구름 위에 궁전을 짓고 아름다운 백일몽을 꾼다. 백일몽을 꾸는 사람은 재미없는 현실을 회피하려고 애쓰느라 머리가 늘 구름 위에 떠 있다. 그럼으로써 그는 잉여 포텐셜을 만들어낸다. 이 경우에 균형력은 꿈꾸는 사람을 끊임없이 가혹한 현실에 부딪히게 함으로써 구름 위의 궁전을 파괴하려고 할 것이다. 비록 그가 자신의 아이디어로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켜서 펜듈럼을 만들어낸다고 하더라도 그의 유토피아는 몰락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잉여 포텐셜은 텅 빈 허공 위에 만들어졌고, 조만간 균형력이 펜듈럼을 멈추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 과대평가의 대상이 오직 이상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경우의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한 처녀가 이상적인 남편상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다. 그가 정확히 이러저러해야 할 것이라고 강하게 확신할수록 더 큰 잉여 포텐셜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오직 그 완벽한 남편에 정반대 되는 성질을 갖춘 남자만이 이 잉여 포텐셜을 파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처녀는 깜짝 놀라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도대체 눈은 어디다 두고 있었던 거야?"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어떤 여자가 술 취하고 무례한 사람을 매우 싫어한다면 그녀는 덫에 걸려든 것이나 다름없다. 그녀는 술고래에다 무례한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당신은 자신이 정말 싫어하고 참지 못하는 것을 가지게 된다. 당신은 싫어하는 대상의 주파수와 동일한 사념 에너지를 방사하고, 게다가 잉여 포텐셜까지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인생은 때때로 서로 정말 맞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완벽하게 다른 성향의 사람들을 한 데다 데려다 놓는다. 이것이 균형력이 잉여 포텐셜을 소멸시키는 방법이다. 즉, 잉여 포텐셜에 반대되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 균형력의 작용은 특히 어린아이들에게서 뚜렷이 드러난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에너지 변화에 더 민감하며, 그래서 자연스럽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가 칭찬을 너무 많이 받으면 그는 즉시 심술궂은 행동을 보여주기 시작할 것이다. 당신이 아이에게 비위를 맞추기 시작하면 그는 당신을 경멸하든지, 최소한 존경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를 말 잘 듣는 소년으로 키우려고 온 힘을 쏟는다면 십중팔구 그는 길거리의 불량배들과 어울리게 될 것이다. 아이를 천재로 키우려고 애쓴다면 그는 아마도 학교 공부에 흥미를 아예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방과 후의 특별활동이나 온갖 종류의 과외수업에 아이를 끌고 다닐수록 그 아이가 멍청한 사람이 될 확률은 점점 더 높아진다.

- 잉여 포텐셜을 만들지 않으면서 아이를 키우고 아이와 관계 맺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경우에도) 아이를 손님처럼 대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아이를 주의 깊고 친절하게 대하고 존중해 주고 선택의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을 마음대로 뛰어넘거나 밟고 다니게 해서는 안 된다. 당신 자신이 이 세상에 온 손님인 만큼, 아이들도 손님으로 마땅한 대접을 해주어야 한다. 게임의 규칙을 지키고 극단적으로 굴지만 않는다면 당신은 이 세상이 제공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선택할 수 있다.

- 타인을 긍정적으로 대하는 태도도 부정적인 태도만큼이나 널리 퍼져 있다. 여기에 균형이 있다. 사랑이 있는가 하면 증오도 있는 것이다. 부드럽고 긍정적인 태도는 잉여 포텐셜을 전혀 만들어내지 않는다. 잉여 포텐셜은 어떤 것의 가치가 실제에 비해 큰 차이(변위)가 있을 때에만 생겨난다. 무조건적인 사랑이란 이 변위의 척도 위에서 보자면 영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알다시피, 무조건적 사랑은 의존적인 관계를 일으키지 않는다. 따라서 잉여 포텐셜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처럼 순수한 형태의 사랑은 드물다. 대개는 순수한 사랑에 소유욕, 의존성, 과대평가 등이 섞여 들어 더해진다. 소유욕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다음의 양극단으로 치닫지 않는 한 사랑의 대상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도 보편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 당신이 그의 처지에 있었더라면 더 나쁘게 행동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비난의 결과로 당신은 자신의 주변에 잉여 포텐셜을 만들어내게 된다. 비난받는 사람이 나쁘면 나쁠수록, 당신은 더 선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가 뿔 달린 악마라면 당신은 날개 달린 천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당신은 아직 날개를 하나도 달지 못했으므로 균형력이 개입하여 기울어진 균형을 회복하려 할 것이다. 이 힘이 작용하는 방식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결과는 항상 동일하다. 당신은 큰 코를 다치게 되어 있다. 그 힘과 당신의 비난의 형태에 따라 이 충격은 아주 미미할 수도 있고, 때로는 아주 강력할 수도 있다. 그 강력한 충격의 결과로 당신은 최악의 인생트랙으로 옮겨갈 수도 있다.

-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람을 경멸하지 말라. 경멸은 가장 위험한 형태의 비난이다. 균형력의 작용에 의해 당신도 비난받는 사람과 동일한 위치에 놓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균형력으로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상실된 조화를 회복하는, 더 쉽고 직접적인 방법이다. 당신은 부랑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멸시하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집과 돈을 잃어버리게 될 수 있다. 균형은 그런 식으로 복구된다.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을 경멸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을 위해 불의의 사고가 마련되어 있을지 모른다. 알코올 중독자와 약물 중독자를 경멸하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쉽게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도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인생의 여러 환경조건들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그런 환경이 당신만은 반드시 피해 가라는 법이 있는가? 

- 우월감과 열등감은 둘 다 아주 전형적인 의존적 관계이다. 당신의 자질은 다른 사람의 자질과 비교된다. 그리하여 필연적으로 잉여 포텐셜이 만들어진다. 에너지의 차원에서는 당신이 자신의 우월성을 공공연히 드러내든, 남몰래 혼자서 즐기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우월성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것은 사람들의 미움만 살 뿐, 좋을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다. 다른 사람을 비교해 가면서 자신의 잘난 점을 내세운다면 당신은 억지 자기만족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그런 노력은 비록 그것이 온전히 표현되지 않은, 오만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잉여 포텐셜을 만들어낸다. 이 경우에 균형력은 항상 큰 코를 다치게 하는 쪽으로 작용한다.

- 자신을 주변과 비교할 때,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자신의 잘난 점을 입증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얻는 제 잘난 기분은 환상이다. 그것은 밖으로 날아가려고 유리창에 계속 몸을 부딪는 파리와도 비슷한 꼴이다. 바로 그 옆에 창문이 열려 있는데 말이다. 우리가 제 잘난 모습을 세상에 알리려고 애쓸 때, 에너지는 인위에 의해 생겨난 잉여 포텐셜을 지탱하는 데 사용된다. 그와는 반대로, 자기완성은 진정한 미덕을 길러주고 에너지를 헛되이 낭비시키지 않는다. 해로운 잉여 포텐셜도 생기지 않는다.

-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데 소모되는 에너지는 무시해도 될 정도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상당히 강한 포텐셜을 지탱할 만큼 많은 에너지다. 여기서 에너지를 어떤 쪽으로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의도가 큰 역할을 한다. 목표가 미덕을 얻는 것이라면 그 의도는 그 사람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러나 목표가 세상에 자신의 '훈장'을 자랑하는 것이라면 그 사람은 진창에 빠진 자동차처럼 될 것이다.  

- 우리는 흔히 불쾌한 일, 문젯거리, 장애물 등이 모두 불가피한 세상의 일부라고 여긴다.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매우 심각한 것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문제가 인간에게 필수적인 평생의 동반자라는 사실을 놀라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모두 세상은 당연히 그런 것이라는 생각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사실, 문제를 겪는다는 것은 이례적이고 비정상적인 현상이다. 문제가 어디서 오는지, 그리고 왜 내게 일어나는지를 순전히 논리적인 사고로써는 알아낼 수 없을 때가 많다. 대다수의 문제들은 균형력의 이런저런 작용에 의해 일어난다. 균형력은 당신이나 당신 주변 사람들이 만들어낸 잉여 포텐셜을 제거하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당신은 바로 자신이 이 잉여 포텐셜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한 채 문젯거리를 필요악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단지 균형력의 작용일 뿐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 잉여 포텐셜을 유지하려는 막대한 노력으로부터 해방되면 당신은 대부분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단지 헛되이 사용될 뿐만 아니라, 당신의 의도와는 상반되는 결과가 나오도록 균형력의 방향을 돌리는 데도 쓰이고 있다. 그러니 파리처럼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는 일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 그 대신 좋고 나쁨의 척도에서 우월한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하기를 그치고 미덕을 기르는 쪽으로 의도를 보내야 한다. 자신을 스스로 중요하게 여기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면 당신은 균형력의 영향에서도 해방된다. 문젯거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자신의 힘을 더욱 신뢰하게 될 것이다.

- 세상을 통제하고 조종할 수 있다는 따위의 생각은 모두 멀리해야 한다. 사회적인 위치와 상관없이, '전권을 휘두르는 자리'를 차지하면 당신은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 주변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애쓰면 균형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세상사에 너무 간섭하면 반드시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건드리게 된다. 트랜서핑은 다른 사람의 이익을 해치지 않고 운명을 선택하게 해 준다. 트랜서핑은 온갖 장애물을 극복하면서 길을 헤쳐 나가는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 운명은 실로 당신의 손에 달려 있다. 운명을 바꾸는 능력이 아니라 선택하는 능력이 당신에게 주어져 있다는 의미에서만 그러하다. 자신이 말 그대로 운명의 창조자인양 행동하다가 낭패를 겪은 사람들이 많다. 트랜서핑에는 싸움이 발붙일 데가 없다. 그러니 당신은 '무기'를 땅에 묻고 안도해도 된다. 

- 다른 한편으로, 우월감 가지기를 거부하는 것은 자기 파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자신의 미덕을 스스로 과소평가하는 것은 우월감 콤플렉스의 다른 얼굴일 뿐이다. 플러스 잉여 포텐셜을 창조하든 마이너스 잉여 포텐셜을 창조하든 에너지 차원에서는 결국 마찬가지다.  

- '모범적인 사람들'을 억지로 모방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의 시나리오를 무작정 따라 해서는 패러디밖에는 만들어내지 못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 당신은 자신만의 신조를 선택해서 그것을 따라 살아야 한다. '모범적'이라는 평가를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것은 유리창에 부딪는 파리의 꼴과 같다. 예를 들어, 십 대 또래의 리더는 자기 신조대로 사는 아이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리더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아무도 모방할 필요가 없다. 그는 단지 가치 있는 자신의 견해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잘 알고 있으며, 아무에게도 아첨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어떤 것도 다른 사람에게 입증해 보일 필요가 없다. 그래서 그는 잉여 포텐셜로부터 자유로우며, 그 결과로 마땅한 이익을 얻는다. 어느 단체에서든지 리더가 되는 사람들은 자신의 신조에 따라 사는 사람이다. 잉여 포텐셜로부터 자유로워지면 그는 더 이상 방어할 것이 없어져서 내적으로 자유로우며, 스스로 만족한다. 그리고 주위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이런 점들이 뛰어나기 때문에 리더가 되는 것이다. 

-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런 말들은 나에겐 전혀 해당되지 않아. 나는 콤플렉스가 하나도 없거든." 자신을 속이려 하지 말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페르소나(남들에게 내보이는 인격 -역주) 주변에 크건 작건 잉여 포텐셜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트랜서핑의 원리를 잘 따르면 우월감과 열등감 콤플렉스는 당신의 삶에서 그냥 사라져 버릴 것이다.

- 과대평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말고, 의존적인 태도를 떨어 버리고 끈기 있게 긍정적 에너지만 전송하라. 상황이 어려울수록 당신에게는 더 유리하다. 이것이 당신이 엄청난 낭패를 겪고 있다고 느낄 때 상황을 올바로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다. 행복하라! 여기서는 균형력이 당신의 편이다. 균형력이 하는 일이란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보상해 주는 것이니까. 늘 좋을 수는 없듯이 늘 나쁠 수만도 없는 법이다. 한평생 행복의 물결만 타고 노닐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당신이 의식적인 변화를 기하기 시작했다면, 아무리 끔찍한 상황도 에너지의 차원에서는 이렇게 보일 것이다. 당신은 공격받고 모욕당하고 모든 것을 빼앗기고- 패배한다. 그런데 다음 순간 갑자기 돈이 가득 든 자루가 주어진다. 잃어버린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루 안에는 더 많은 돈이 들어 있을 것이다. 

- 죄책감은 가장 전형적인 형태의 잉여 포텐셜이다. 자연에는 선악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균형력에게는 좋은 행위와 나쁜 행위가 모두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잉여 포텐셜이 만들어지면 모든 경우에 그 균형은 복구된다. 나쁜 짓을 했을 때, 당신은 자신의 행위가 어떤 짓인지를 알므로 죄책감을 느낀다. ("난 벌을 받아야 해.") 그래서 잉여 포텐셜이 만들어진다. 좋은 일을 하면 그 행위의 의미를 알므로 자부심을 느낀다. ("난 상을 받아야 해.") 역시 잉여 포텐셜이 만들어진다. 균형력에게는 누가 왜 벌을 받아야 하는지, 혹은 보상을 받아야 하는지 등의 개념이 없다. 균형력은 단지 에너지장에 일어난 부조화만을 제거한다. 

- 죄책감의 대가는 언제나 이런저런 식의 처벌이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처벌은 오지 않을 수 있다. 유감이지만, 좋은 일을 하고 자랑스럽게 느끼는 것 또한 보상 아닌 처벌로 이어진다. 균형력이 자부심의 잉여 포텐셜을 제거해야 하는데, 보상은 잉여 포텐셜을 더욱 강화시키기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 다른 '올바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 때는 곱절의 잉여 포텐셜이 창조된다. 양심의 가책만으로도 충분한데 이제는 정의로운 자들의 노여움까지 받아내야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제나 모든 것에 책임을 느끼는 타고난 성향에서 오는 근거 없는 죄책감'은 가장 큰 잉여 포텐셜을 만들어낸다. 이 경우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이 백해무익하다. 사실 그 죄책감의 원인은 스스로 지어낸 것이다. 죄책감에 짓눌린 양심은 당신의 삶을 완전히 망가뜨릴 수 있다. 그것은 당신을 끊임없는 균형력의 지배하에 놓이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서, 당신은 스스로 상상으로 지어낸 나쁜 행위로 해서 언제나 이런저런 형벌에 시달리며 살 것이다.

- 그래서 이런 러시아 속담이 있다. "뻔뻔스러움은 둘째 가는 행복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균형력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 둔다. 그래도 우리는 신께서 그런 무뢰한들을 벌해주시기를 바란다. 정의가 승리하고 악은 벌을 받아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슬프게도, 자연은 정의감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오히려 반대로 끝없는 불행에 시달리는 것은 죄책감을 타고난 착한 사람들이다. 반면에 후안무치한 냉혈인간들은 벌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종종 '노력'의 대가로 성공을 누린다.

- 죄책감은 항상 처벌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내는데, 그것은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도 일어난다. 잠재의식은 그 시나리오를 따름으로써 당신이 죄의 대가를 치르게 만든다. 가장 가벼운 경우라면 찰과상이나 타박상을 입는 정도겠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는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이것이 죄책감이 하는 일이다. 죄책감은 오직 파괴만을 부른다. 거기에는 유용하거나 창조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양심의 가책으로 자신을 괴롭힐 필요가 없다. 그것은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사후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행동을 조심하는 편이 더 낫다. 그리고 행여 죄책감을 주는 일이 생기더라도 부질없이 자신을 계속 괴롭히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다. 아무리 그렇게 해봤자 아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으니까 말이다.

- 성경의 십계명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도덕률이라기보다는, 균형을 깨뜨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권고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마치, "말썽 피우지 마. 안 그러면 구석에 가서 서 있게 할 거야" 하고 말하는 어머니의 말을 듣는 어린아이와도 같은 마음으로 그 계명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소한 말썽을 피웠다고 해서 그를 처벌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균형을 깨뜨림으로써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십계명은 다만 그 점을 경고하고 있다.

- 앞서 말했듯이, 죄책감은 펜듈럼이 사람을 끌어당길 때 쓰는 줄로 이용된다. 특히 조종자들이 이 줄을 사용한다. 조종자란 이런 공식을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너는 죄를 지었으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해." 혹은 "너는 잘못을 저질렀으니 내가 너보다 더 낫다." 그들은 자신의 '피보호자' 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려고 애쓴다. 그렇게 해서 '피보호자'를 지배할 힘을 얻으려고 하거나 자기를 주장하려 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이 조종자들이 '올바른' 사람처럼 보인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에 대한 그들의 개념은 오래전부터 형성된 것이다. 그들은 항상 올바른 말만 하므로 언제나 옳다. 그들의 모든 행동도 흠잡을 데가 없어서 전적으로 올바르다. 

- 올바른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조종자의 성향을 지니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면 조종자들이 피보호자들을 가르치고 안내하려는 욕구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의 마음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의심과 불안에 의해 프로그램된다. 그들은 이 내면의 갈등을 자기 자신과 주변 세상의 눈으로부터 교묘하게 감추고 있다. 진실로 올바른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힘의 내적 중심이 이들에게는 없기 때문에, 조종자들은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자기의 올바름을 주장하려고 한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안내하려는 욕망은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피보호자들을 낮추어 봄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의존적인 관계가 형성된다. 균형력이 조종자들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잉여 포텐셜은 오직 에너지의 움직임이 없이 긴장만 존재하는 곳에서 일어난다. 이 경우에는 피보호자가 조종자에게 자신의 에너지를 준다. 그래서 포텐셜은 만들어지지 않고, 조종자는 처벌받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 

- 용서 구하기, 실수 인정하기, 죄 사함을 비는 기도, 신앙고백, 고해성사- 이 모두가 죄책감의 잉여 포텐셜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이다. 자신에게 면죄부를 줌으로써 우리는 스스로가 내린 유죄판결에서 해방된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오로지 중요한 것은, 양심의 가책이 조종자들에게 의존하는 관계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조종자들은 그런 일이 생기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용서를 구함으로써 당신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잉여포텐셜을 던져버릴 수 있게 된다. 조종자들은 당신이 죄책감을 안고 살게끔 만들기 위해서 앞으로도 계속 당신의 실수를 상기시키려고 애쓸 것이다. 그들의 도발에 굴복하지 말라. 당신은 용서를 구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용서를 구하는 것은 오직 한 번 만이다. 더 이상은 아니다.

- 죄책감 느끼기를 거부하는 것은 감옥, 폭력집단, 군대, 뒷골목 등 공격적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범죄세계에 다음과 같은 불문율이 있는 것도 괜한 일이 아니다. "아무도 믿지 말고,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아무것도 구하지 말라." 이 행동규칙은 잉여 포텐셜이 생기지 않게 해 준다. 공격적인 환경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모든 포텐셜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 바로 죄책감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힘을 보여줘야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적자생존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통한다. 그러나 이것은 다소 평범한 방법이다. 이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즉, 자신의 잠재의식에 숨어 있는 처벌에 대한 생각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다.

 

- 다음의 예를 보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전 소비에트 연방의 정권은 정치범들의 의기를 꺾어놓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그들을 일반 범죄자들과 함께 수감시켰다. 그러나 그 정치범들의 대다수는 뛰어난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감방에서 일어나는 괴롭힘과 박해의 희생자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다른 범죄자들 사이에서 존경과 권위마저 얻게 되었다. 개인의 자주성과 존엄함이 힘보다 더 큰 가치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육체적인 힘을 지닌 사람은 많으나 인품의 힘을 지닌 사람은 드물다.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위엄의 열쇠는 죄책감이 없는 데에 있다. 개인의 진정한 힘은 다른 사람의 목을 조르는 능력에 있는 게 아니라, 죄책감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 트랜서핑에는 투쟁이나, 뭔가를 하도록 자신을 강요하는 것은 없다. 투쟁하는 것보다 거부하는 편이 더 낫다. 다시 말하면, 선택하는 것이다. 죄책감을 밖으로 짜낼 필요가 없다. 그저 자신의 신조에 따라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무도 당신을 심판할 권리가 없다. 당신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존재할 권리가 있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기를 스스로에게 허용하면 자신에 대한 심판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며, 처벌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진다. 그럴 때 참으로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난다. 이제는 아무도 감히 당신을 건드리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당신이 감옥, 군대, 직장, 뒷골목, 술집 그 어디에 있더라도 역시 마찬가지다. 당신은 누구에게서든 폭력으로 위협받는 상황에 두 번 다시 빠지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때로 이런저런 폭력을 당하더라도 당신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잠재의식에서 죄책감을 떨쳐버렸고, 그래서 현재의 인생트랙에는 폭력의 시나리오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치다. 

- 돈을 가지려고 애쓰지 않으면서 돈을 사랑하기란 어렵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 의존적 관계를 피하기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단지 그런 관계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돈이 들어온다면 행복해하라. 그러나 단지 돈이 부족하다고 해서, 혹은 돈을 잃었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는 말라. 괴로워할수록 들어오는 돈이 점점 줄어들 것이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할 때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돈이 늘 부족하다고 한탄하는 것이다. 그 같은 에너지의 매개변수는 궁핍한 인생트랙과 일치한다.

- 돈이 갈수록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불안감에 굴복하는 것은 특히 위험하다. 두려움은 에너지가 가장 많이 충전된 감정들 중 하나다. 그래서 돈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고 충분히 벌지 못할까 봐 두려워함으로써 당신은 가장 효과적으로, 실제로 돈이 점점 줄어드는 인생트랙으로 옮겨가게 된다. 이 함정에 빠진다면 거기서 빠져나오는 것은 쉽지는 않지만 분명히 가능한 일이다. '돈의 함정'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잉여 포텐셜의 원인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이 잉여포텐셜을 일으키는 것은 대개 돈을 가지고 싶어 하거나 돈에 의지하려는 극단적인 욕망이다.

- 우선은, 자신이 가진 것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만족하라. 이보다 사정이 훨씬 더 나빴을 수도 얼마든지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돈을 가지고자 하는 욕망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 지금으로서는 돈이 강물처럼 흘러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이것을 게임을 하는 사람의 태도로 대하라. 게임을 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엄청난 부자가 될 수도 있고, 또 가진 돈을 몽땅 잃을 수도 있다.

- 많은 펜듈럼이 그 지지자들과 거래하는 흔한 수단으로 돈을 사용한다. 돈을 숭배하는 행위를 세상에 퍼뜨린 것도 바로 펜듈럼이다. 돈은 우리가 물질 세상에서 편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 거의 모든 것을 돈으로 사고팔 수 있다. 모든 펜듈럼은 돈으로 계산을 끝낸다. 당신이 어떤 펜듈럼을 택하든지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기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반짝이는 가짜 미끼를 물었다가는 행복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인생트랙으로 쉽사리 빠져버릴 수 있는 것이다.

- 자신의 이익을 좇는 펜듈럼들은, 무엇이든 얻으려면 그것을 얻기 위한 수단을 가져야만 한다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해서 각 개인의 목표는 인공의 대체물인 돈으로 바뀌어버렸다. 사람들은 많은 펜듈럼들로부터 돈을 얻어낼 수 있으므로 이제는 자신의 목표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돈만을 생각하게 되고, 그 결과 엉뚱하게도 펜듈럼의 영향 아래에 놓이게 된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이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지도 못한 채 부질없는 돈벌이 경쟁에 뛰어든다. 이렇게 되면 물론 펜듈럼에게는 아주 유리해지지만, 사람은 돈과 펜듈럼에 종속된 채 방향을 잃고 헤맨다. 엉뚱한 펜듈럼을 위해 일하지만 결코 많은 돈은 벌지 못할 것이다. 다른 누군가의 목표를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 빠져 있다. 그래서 부란 단지 극소수의 특권이라는 신화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누구든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기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

- 돈은 목표가 아니며, 목표에 이르기 위한 수단도 아니다. 돈이란 하나의 부수물일 뿐이다. 목표란 우리가 삶에서 원하는 것이다.  

- 중요성은 바로 그 당근과 같은 것이다. 펜듈럼은 이 당근으로 당신의 주파수를 포획해서 당신의 에너지를 빨아먹으며 당신을 마음대로 끌고 다닐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과 조화롭게 지내고 펜듈럼에게서 벗어나려면 과도한 중요성을 감소시킬 필요가 있다. 당신이 자신과 주변 세상에 대해 얼마만큼의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는지를 늘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당신 내면의 지켜보는 자는 잠들어서는 안 된다. 중요성이 줄어들면 당신은 이내 균형 상태에 들어가고, 펜듈럼이 당신을 지배할 수 없게 된다. 텅 비어 있는 것을 갈고리로 걸 수는 없지 않은가.

 

- 당신은 이렇게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무슨 말인가, 우리가 모두 죽은 사람처럼 살아야 한단 말인가? 나는 결코 모든 감정을 거부하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감정의 강도를 낮추라고 말하는 것조차도 아니다. 어찌 됐든 감정을 대적하는 것은 백해무익한 일이다. 속마음은 부글부글 끓는데 마음을 억누르고 태연한 척하면 잉여 포텐셜은 더욱 커진다. 감정은 태도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당신은 먼저 태도를 바꿔야 한다. 느낌과 감정은 결과 물일 뿐이다. 감정은 단 하나의 원인-중요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 내 가족 중 한 사람이 태어났거나 죽었거나 최근에 결혼을 했거나, 혹은 다른 중요한 일이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일이 나에게 중요한가? 아니다. 거기에 대해 무관심해야 하는가? 역시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차이점을 알겠는가? 나는 단지 그런 일로 문제를 만들어서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는 것이다. 자, 그러면 동정심은 어떨까? 나는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을 돕는 것과 동정심은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을 돕는 경우에도, 내가 자신에게 스스로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잘 감시해야 한다.  

- 만일 당신의 상황이 어떤 사건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면 다른 해결책을 찾아보라. 외나무다리 위를 걸을 때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려면 안전장치가 있어야 한다. 상황마다 안전장치는 제각기 다를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어떤 것이 안전장치가 될 수 있을지를 자신에게 물어보라. 균형력과 맞싸우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점을 기억하라. 두려움과 흥분을 억누를 수는 없다. 오로지 중요성을 줄일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이 안전장치나 대안을 갖추고 있을 때만 가능하다. 바구니가 아무리 안전하게 보이더라도 가진 계란을 모두 한 바구니에 넣지는 말라!

- 잉여 포텐셜을 만들지 않는 유일한 것은 유머감각이다.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자신과 타인을 놀려먹으면서 웃을 수 있는 능력이 유머감각이다. 이것만 있어도 느낌 없는 맹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유머란 곧 중요성의 거부이며 중요성에 대한 풍자요 조롱이다.

-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하나의 황금률을 따를 필요가 있다. 문제해결에 실제로 착수하기 전에 그 문제의 중요성을 감소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균형력이 당신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고, 문제를 쉽게, 빨리 해결할 수 있다.

- 중요성을 감소시키려면 먼저 내가 뭔가에 과도한 중요성을 부여한 결과로 문제가 야기된 것임을 인식하고 명심해야만 한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과도한 중요성 때문에 야기되는 것임을 분명히 알지 못하고 꿈꾸듯이 계속 문제 속으로 빠져들어서 골몰하고 있는 한, 당신은 펜듈럼의 손아귀에 완전히 잡혀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멈춰라. 그 망상을 떨쳐내라. 과도한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상기하라.  

- 우리가 할 일은 깔때기의 중심으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벗어나는 것이다. 즉, 대참사와 재난에 관한 정보가 당신에게 발을 들이게 하지 말라. 거기에 관심을 갖지 말라. 그것이 자기에게 일어난 일인 양 감정적으로 느끼지 말라. 그것을 놓고 떠들지 말라. 아무튼 재난에 관한 모든 정보가 당신을 그냥 지나가게 하라.

 

- 이 차이를 잘 알아야 한다. 그 정보를 피하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정보가 당신에게 발을 들이도록 허락하지 말라는 것이다. 앞 장에서 말한 것처럼, 펜듈럼을 피하는 것은 펜듈럼과 마주치려고 애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엇에 대항하거나 절대로 원하지 않거나 반감을 표하면 당신이 피하고자 하는 바로 그것의 주파수로 열심히 에너지를 방사하게 된다. 어떤 것이 발을 들여놓도록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을 무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정적인 정보에 대해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해롭지 않은 TV 프로그램이나 책으로 그냥 주의를 돌리라

- 만일 반응을 억누를 수가 없다면 최소한 당신의 수호천사에게 의지할 수 있다. 예컨대, 비행기를 타는 것이 두렵다면 비행기를 타지 말라. 처음부터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방사하는 사념 에너지에 대참사의 분위기가 감도는 인생트랙과 공명하는 주파수의 에너지가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당신이 반드시 그런 트랙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존재한다. 비행기를 타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면 두려워할 일은 하나도 없다. 그와 반대로 만일 탑승 전에 전례 없이 이상한 불안이 느껴진다면 그 항공편을 타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탑승을 취소하기가 전혀 불가능할 때는 새벽별이 속삭이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앞으로 알게 될 것이다.

- 전쟁은 기본적으로 골목 싸움과 똑같은 방식으로 일어난다. 처음에 한편에서 어떤 일에 대한 의견을 상대편에게 말한다. 상대편은 반대되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 표현되었던 의견은 파괴적 펜듈럼을 밀어주는 역할을 한다. 상대편은 처음의 자극에 좀 큰 진폭으로 반응한다. 이에 대해 이쪽 편도 좀 더 공격적으로 응답한다. 그리하여 이런 식으로 계속 반응이 커지다가 마침내는 물리적인 싸움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 눈앞에 서로 싸우는 두 개의 펜듈럼의 모습을 그려보자. 그 그림은 단순하고 도식적인 이미지다. 두 펜듈럼은 서로 부딪히면서 점점 더 높이 흔들리고 있다. 전쟁과 혁명이 발발하는 원인은 많겠지만 그 본질은 동일하다. 처음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모두가 그 말에 금방 동의한다. 펜듈럼의 첫 번째 작전이 먹힌 것이다.  

- 부자가 되는 길에 놓인 또 하나의 장애물은 질투심이다. 알다시피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질투한다는 것은 그의 성공 때문에 불쾌해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질투는 좋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게다가 질투는 강력한 파괴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사람의 심리는 이렇게 움직인다. 즉, 사람은 자기가 갖고 싶은 것에 대해 부러움을 품으면 그것의 가치를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깎아내리려 한다.

 

- 질투의 논리는 이렇다. "난 그가 가진 것이 부럽다. 그것이 나에게는 없다. 아마 난 그걸 결코 갖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그보다 못한 게 뭐가 있는가? 그러니까 그가 가진 건 형편없는 것이고, 내겐 그런 게 전혀 쓸모없다."

- 이런 식으로 소유욕이 방어심리로 변하고, 그다음에는 거부로 바뀌는 것이다. 잠재의식은 모든 것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기 때문에, 거부는 그 미묘한 차원에서 일어난다. 의식이 질투의 대상을 낮추어보는 것은 자신을 다독거리기 위해 겉시늉으로만 그러는 것이지만 잠재의식은 모든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잠재의식은 모든 힘을 동원하여 그가 낮추어보고 거부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끔 하기 때문에, 이득보다 손실이 더 크다.

- 이제 우리는 어떤 집요한 힘이 사람들을 가난의 인생트랙에다 붙들어 매어두는지를 이해한다. 부유한 사람이 가난한 인생트랙으로 옮겨가는 유도전이에서는 사건이 더욱 극적으로 전개된다. 정말 완벽하게 성공적인 사람이 모든 것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가난으로의 유도전이에서 가장 방심할 수 없는 것은, 처음에는 나선이 천천히 풀리다가 점점 빨라지면서 나중에는 멈추기가 불가능해진 ...

- 영혼이 어떤 실현되지 않은 섹터에 동조되어, 물질세계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을 발견해냈다고 가정해 보자. 영혼은 어떻게 이 정보를 마음에게 전해줄 수 있을까?

- 마음은 끊임없이 지껄이느라 바쁘다. 마음은 모든 것이 지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정보를 통제하려고 끊임없이 애쓰고 있다. 마음은 영혼으로부터 모호한 신호만을 받고 있다. 그런 신호는 범주의 도움으로 식별해 낼 수 없을 때가 많다. 영혼의 모호한 느낌과 지식은 마음의 시끄러운 생각들 때문에 들리지 않는다. 마음의 통제가 조금 약해지면 그 틈을 타서 직관적 지식과 느낌이 의식 속으로 뚫고 들어갈 수 있게 된다.

- 이렇게 뚫고 들어올 때 그것은 모호한 예감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그것은 내면의 목소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음이 느슨해지면 그 순간에 당신은 영혼의 느낌이나 앎을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위 새벽별이 속삭이는 소리, 곧 말 없는 목소리, 생각 없는 사유, 소리 없는 소리이다. 당신은 뭔가를 이해하는 듯하지만 선명하지 않다. 생각하지 않고 직감으로 느낀다. 직관이 무엇인지는 살다 보면 누구나 적당한 때에 스스로 경험하게 된다. 예컨대 당신은 지금 누가 이리로 오고 있다고 느끼거나, 무슨 일이 곧 일어나리라고 느낀다. 혹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뭔가를 그저 알고 있다. 

- 마음은 끊임없이 생각을 지어내느라 바쁘다. 영혼의 목소리는 이 '생각 믹서'의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직관적 지식은 접근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만일 이 생각의 흐름을 멈추고 단순히 비어 있는 상태를 묵상할 수 있다면 우리는 새벽별이 속삭이는 소리, 내면의 말없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 목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영혼은 수많은 의문의 답을 찾아줄 수 있을 것이다.

- 영혼이 실현되지 않은 섹터에 의도적으로 자신을 동조시키게끔 가르치는 것과 영혼이 마음에게 하고 싶어 하는 말에 마음이 귀 기울이도록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 영혼은 두 가지의 대조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다. 편안한 기분과 불편한 기분이 그것이다. 마음은 이 느낌들을 이렇게 해석한다. - "기분 좋다"와 "기분 나쁘다", "자신 있다"와 "걱정된다", "맘에 든다"와 "맘에 안 든다."

- 우리는 삶에서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마다 이것을 할 것인지 저것을 할 것인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물질적 실현상태는 가능태 공간 속을 움직여간다. 그리고 그 결과로 우리는 '인생'이라 불리는 것을 얻는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따라 특정한 섹터들이 실현되어 가는 것이다. 영혼은 정보장에 접근할 수 있다. 영혼은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으나 다가오고 있는 섹터들에 놓여 있는 것을 어떻게든 미리 내다본다. 만일 영혼이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섹터에 동조한다면, 그것이 실현되었을 때 좋든 나쁘든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이런 영혼의 느낌들이 마음에게는 편안한 기분이나 불편한 기분과 같은 모호한 느낌으로 인지되는 것이다. 

- 영혼은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아는 경우가 많아서, 미약한 목소리로나마 그것을 마음에게 알려주려고 애쓴다. 그러나 마음은 영혼의 목소리에 거의 귀를 기울이지 않거나, 이런 어렴풋한 예감 따위에 전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마음은 펜듈럼에 사로잡힌다. 마음은 문제를 해결하느라 너무 바쁘고, 자신의 행동이 합리적이라고 확신한다. 마음은 논리적 추론과 상식에 의거해 단호한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상식적인 추론이 결코 올바른 해결책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마음과는 대조적으로, 영혼은 생각하지 않고 느껴서 안다. 그러므로 영혼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것을 나중에서야 문득 기억해 내고 외치는 이런 말을 얼마나 자주 듣는가? "거기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리란 걸 난 알고 있었는데 말이야!"

-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결정의 순간에 영혼이 마음에게 하는 말을 명확히 알아듣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당신의 지켜보는 자에게 영혼의 기분상태를 잘 살피라고 부탁해놓기만 하면 된다. 당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의 마음은 펜듈럼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거나 아니면 문제를 해결하는데 몰두해 있다. 새벽별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려면 영혼의 기분상태 살피기를 제때에 기억하기만 하면 된다. 이것은 너무나 사소한 일이라서 흥밋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이 그러하다. 유일한 문제는 자신의 기분에 주의를 기울이는 데에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느낌보다는 논리적인 근거를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영혼의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는 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 당신이 가능한 여러 해결책 중 하나를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다고 해보자. 이 순간에 마음은 느낌이 아니라 상식적 추론에 이끌리고 있다. 이런 순간에 마음은 전혀 느낌을 감지해보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일 기억하기에 성공한다면 자신의 느낌을 살펴보라. 상황 속의 뭔가가 당신의 경각심을 높여놓거나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가? 위험하게 느껴지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는가? 이제 결정을 내리라. 마음에게 잠시 입을 다물도록 명령하고 그 해결책에 대해 스스로 물어보라. "느낌이 좋은가, 나쁜가?" 그런 다음 다른 해결책 하나를 고르고 다시 질문한다. "느낌이 좋은가, 나쁜가?"

- 만일 뚜렷한 느낌이 없다면 그것은 당신의 마음이 아직도 귀 기울여 듣는 데에 아주 서툴다는 뜻이다. 당신의 지켜보는 자로 하여금 더 자주 당신을 깨워서 영혼의 기분을 살피게 하라. 하지만 당신의 질문에 대한 답은 정말 애매모호할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그런 부정확한 데이터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때는 마음이 제안하는 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아니라면 질문을 좀 더 단순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 만일 "그래, 이건 나에게 좋은 거야" 혹은 "이건 나에게 나쁜 거야"라는 분명한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면 그것은 새벽별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당신은 이제 답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영혼이 시키는 대로 당신이 행동하리라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언제나 자신이 바라는 대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는 해도 최소한 이제 당신은 실현되지 않은 섹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고 있다.

- 사람들이 삶의 다양한 상황에서 보여주는 두 가지의 극단적인 태도가 있다. 즉, 자기 의지가 없는 종이배처럼 흐름에 맡기고 따라가는 태도와, 자기의 방식을 고집하면서 흐름에 거슬러 노를 저어가는 태도이다.

 

- 마치 그것이 원래 자기 것이었던 것인 양 요구하는 것이다. 요구하는 자는 그 같은 요구를 표함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더욱 해롭게 만든다. 그 예로서 다른 비유를 하나 더 살펴보자. 한 사내가 미술관에 갔는데, 전시된 작품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불만을 표현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발을 구르고 위협을 가하면서 전시된 작품을 모두 떼어내라고 억지를 부린다. 게다가 그는 주위의 기물을 모조리 부수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당연히 그의 행동에는 어떤 보복이 뒤따를 것이다. 그러면 그는 더욱 화를 내며 계속 사납게 외쳐댄다. "뭐라고! 내 마음에 들도록 최선을 다했어야지!" 자신은 이 세상에서 단지 손님일 뿐이라는 생각이 그에게는 떠오르지도 않는다.

- 트랜서핑의 관점에서 보면, 첫째와 둘째 길 모두가 완전히 터무니없어 보인다. 트랜서핑은 이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제시한다. 간청하지도 말고 요구하지도 말고 그냥 가서, 가지라.  

- 그래서, 거기에 무어 새로울 것이 있단 말인가? 결국 이 또한 내 운명은 내 손에 달려 있다는, 또 하나의 선택을 한 사람의 행동방식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세상에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세상과 싸우기 시작한다. 그는 완강한 태도로 펜듈럼과 싸우고, 끝없는 경쟁에 빠져들면서 자신의 길을 헤쳐 나간다. 기본적으로 그의 삶 전체는 생존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이다. 그는 투쟁을 선택했으며, 가능태 공간에는 이 선택 또한 존재한다.

- 가능태 공간에 이미 해결책이 존재한다면 위대한 지성도 아무런 쓸모가 없다. 우리가 미로 속으로 빠져들지 않고 가능태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해결책은 저절로 나타날 것이며, 게다가 그것은 최적의 해결책일 것이다. 최적성은 정보장의 구조 자체 속에 이미 내포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원인-결과의 사슬이 가능태 흐름 안에다 별도의 빠른 흐름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이 빠른 흐름은 원인과 결과가 맞물려 움직이는 가장 효율적인 길인 듯하다. 가능태 공간에는 모든 것이 존재하지만 최적의 가능태, 곧 에너지를 가장 적게 소모하는 가능태만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더 크다. 자연은 소득 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 모든 현상은 에너지가 가장 적게 소비되는 길을 따르려고 애쓴다. 그러므로 가능태의 빠른 흐름은 최소 저항의 길을 따라 형성된다. 그리고 바로 거기가 최적의 해결책이 있는 곳이다. 펜듈럼의 포로가 된 마음은 끊임없이 최적의 흐름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쓰면서 펜듈럼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달리 말해서, 마음은 미로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마음은 간단한 문제의 복잡한 해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 이 모든 말이 너무나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장에 기술된 몇몇 원리를 적용해서 이 빠른 흐름이 얼마나 실제적인 것인지를 시험해 볼 수 있다. 그것은 마음에게는 참으로 과분한 선물이다. 모든 문제는 그 해법에 이르는 암호화된 열쇠를 포함하고 있다. 첫째 열쇠는 최소 저항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문제를 장애물로 보기 때문에 복잡한 해법을 찾게 된다. 아시다시피 장애물이란 막대한 노력을 들여서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가장 간단한 해법을 선택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 우리는 누구나 익숙하고 몸에 밴 일을 하든가, 아니면 새로운 일을 배워야 한다. 문제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답은 믿기지 않을 만큼 너무나 간단하다. 흐름 타기의 원리에 따르자면, 모든 일을 가능한 한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으로 하도록 애써야 한다.

- 빠른 흐름 속에는 모든 행동의 최적의 가능태가 조직되어 있다. 최적의 인과 연결고리들이 이 흐름을 형성한다. 다음 단계의 행동을 취하기 위해 결정을 내릴 때, 당신은 그 사슬의 다음 연결고리를 선택하는 것이다. 당신은 다만 어떤 연결이 그 흐름에 속하는 것인지를 결정하기만 하면 된다.

 

- 그와 같은 경우에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떻게 할까? 사람들은 보통 논리적인 결정을 하는데, 그것은 상식과 일상 경험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올바른 결정인 것처럼 보인다. 이성은 단호한 의지로써 결정을 내린다. 이성은 자기가 모든 것을 예측하고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지 않다. 나중에 가서야 갑자기 그 일을 달리 처리했더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마음이 부주의하거나 예리하지 못하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마음이 항상 최적의 가능태를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흐름 속의 인과의 사슬이 마음의 논리 구조와 늘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 흐름 속의 다음 연결 사슬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펜듈럼의 줄로부터 벗어나서 그 빠른 흐름에 몸을 싣고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말하자면, 균형을 유지하고 잉여 포텐셜을 만들어내지 말아야 한다. 잉여 포텐설을 만들어내지 않기 위해서는 중요성의 수위를 끊임없이 감시해야 한다.

- 당신이 주변 세상과 균형 상태에 있을 때는 그저 흐름을 따라 나아가라. 당신을 안내해 줄 많은 신호를 발견할 것이다. 상황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라. 참여자가 되지 말고 다만 지켜보는 구경꾼이 되라. 노예도 주인도 되지 말고, 단지 배역을 연기하는 자가 되라. 당신의 지켜보는 자로 하여금, 마음이 '합리적인' 단호한 결정을 내리려 할 때마다 뒤에서 잡아당기게 하라. 곁에서 자기가 하는 일을 지켜보는 가운데, 연기자에게 자신을 빌려주라. 모든 것은 보기보다는 훨씬 쉽다. 이 단순함에 자신을 내맡기라. 당신을 폭포로 데려가는 것은 마음이지 가능태 흐름이 아니다.

- 예를 들어, 정말 필요한 어떤 물건을 사 와야 한다고 하자. 그러나 당신은 그것이 정확히 어디 있는지를 모른다. 마음은 종종 가장 합리적이지만 가장 복잡한 방법을 제시할 것이다. 당신은 시내를 온통 헤매고 다니다가 결국은 그것을 집 근처의 상점에서 찾아낸다. 만일 그 문제의 중요성이 좀 더 낮았더라면 마음은 복잡한 해결책을 찾아 헤매지 않았을 것이다.

-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당신의 손에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 들려 있다.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해야 할까? 사실, 그런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다. 어떤 특별한 순서를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없다면 그냥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하면 된다. 흐름을 따라가라. 펜듈럼의 영향에 묶여 있는 마음을 해방시켜 주라. 결단력 없이 흐름에 떠밀려 다니는 작은 종이배가 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부드럽고 가볍게 슬슬 저어가면 될 것을 허우적대며 진을 빼지 말라는 말이다.

- 더 많은 예를 들지는 않겠다. 흐름을 타려는 노력을 적어도 하루 정도 해보면 유익하고 놀라운 사실을 많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떤 해결책을 찾아야 하게 될 때마다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하라. 해법을 찾는 가장 간단한 길은 무엇일까? 해결책을 찾는 가장 단순한 방법을 택하라. 누군가, 혹은 뭔가가 당신을 혼란시키거나 옆길로 새게 만든다면 함부로 그에 저항하거나 회피하려 들지 말라. 당신 자신을 빌려주라.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지켜보라. 어떤 일을 해야 할 때마다 스스로 이렇게 질문하라. 이 일을 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무엇일까? 일이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도록 놔두라. 어떤 사람이 뭔가를 제안하거나 자신의 관점을 제시할 때, 그것을 성급하게 거부하거나 반박하지 말라. 어쩌면 당신의 마음이 그것의 장점을 이해하지 못하여 거기서 대안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켜보는 자를 일깨우라. 먼저 지켜보고 나서, 그다음에 행동하라. 무대로부터 객석으로 내려가라. 그리고 상황을 지배하려 들지 말라. 당신이 지켜보는 가운데, 게임이 제 스스로 최대한 펼쳐지도록 내버려 두라. 거기에 괜히 끼어들어서 허우적거리지 말라. 당신의 삶이 흐름을 타고 가는 것을 훼방하지 말라. 그러면 당신은 일이 얼마나 더 쉬워지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 당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신호를 의식하고 지켜보는 자의 깨어 있는 수준을 높여서 더욱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이다.

- 안내하는 신호는 가능태 흐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물굽이를 암시하는 신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안내하는 신호는 삶의 흐름에 다소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사건을 예고한다. 당신이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어떤 물굽이를 앞두고 있다면, 그것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가 나타날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 예상치 않았던 물굽이가 다가오고 있을 때도 역시 어떤 특유한 신호가 나타날 수 있다.

- 요는, 가능태 흐름이 한 굽이를 돌면 당신은 다른 인생트랙으로 옮겨가게 된다는 것이다. 당신은 동일한 인생트랙 위에서는 삶의 질이 다소간 동질적으로 느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가능태 흐름 속의 빠른 흐름은 다양한 인생트랙들을 가로질러 갈 수 있다. 이 트랙들은 매개변수가 저마다 다르다. 일어난 변화는 하찮은 것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뭔가가 달라졌다고 느낄 것이다. 당신이 의식적으로, 혹은 잠재의식 속에서 알아차리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질적인 차이다. 뭔가가 바로 전과는 똑같지 않다는 느낌 말이다.

- 그래서 안내하는 신호는 오직 다른 인생트랙으로의 전이가 시작될 경우에만 나타난다. 이와 동떨어진 현상은 무시해도 좋다. 예를 들어, 까마귀가 울었는데 경각심이 일어나지 않았고 이질적인 느낌도 느껴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당신이 이전과 동일한 인생트랙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만일 그 현상에 당신의 주의가 쏠렸고, 거기서 뭔가 전례 없이 이상한 느낌을 느꼈다면 그것은 신호일 수 있다.

- 본질적으로 다른 인생트랙으로 전이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린다는 점에서 신호는 일반적인 현상과는 다르다. 보통 우리의 경각심을 일으키는 현상은 다른 인생트랙으로 전이가 완료된 직후에 일어난다. 이것은 인생트랙들이 서로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 여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실제로 어떻게 다른지를 꼭 집어서 설명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냥 뭔가가 딱 들어맞지 않는 느낌을 느끼는 것이다. 전이가 완료되면 우리는 그것을 직관적으로 느낀다. 그리고 때로는 신호가 분명히 이전과 다르게 보이는 것을 알아차리기도 한다. 마치 흐름 속에 뭔가 새로운 것이 나타난 것을 곁눈으로 흘낏 알아차리는 것과도 같이 말이다. 신호는 안내판과 같이 작용한다. 그것은 이렇게 말해준다. 뭔가 변화가 일어났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 기존의 인생트랙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경각심을 별로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그것들은 기존 트랙의 다른 현상들과 성질이 동일하다. 하지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무시해 버린다면 분명한 신호까지도 알아차릴 수 없게 될 것이다. 본질적으로 다른 인생트랙으로 옮겨가는 일은 보통 중간의 트랙들을 통과해 가면서 점차적으로 일어난다. 이 중간 트랙들의 신호가 주는 경고는 그 엄중함의 정도가 다양하다. 사람들은 흔히 첫 번째 경고를 무시한다. 전이가 계속되면 두 번째 경고가 나타난다. 그다음은 세 번째 경고가 나타나고 그가 세 번째 경고 이후에도 멈추지 않으면 최종 트랙에서 일어나게 되어 있는 일이 벌어진다.

- 대부분의 경우, 당신은 '예' 아니면 '아니요'의 두 가지 대답이 나오도록 질문을 만들 수 있다. 예컨대, 이것이 될 일인가 아닌가, 내가 성공할까 말까, 내가 그것을 할 수 있을까 말까. 그것은 좋을까 나쁠까, 이것은 위험할까 아닐까 등등. 신호의 모든 해석은 대답이 '긍정' 또는 '부정', 둘 중 하나인 단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그 이상의 정확성을 기대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 신호는 다가오는 물굽이의 특성을 암시해 주는 힌트를 지니고 있다. 만일 신호가 불쾌한 느낌과 연결된다면, 그리고 그것이 불안, 불신, 불쾌한 놀람, 걱정, 불편함을 불러일으킨다면 그 신호는 부정적인 물굽이를 예고하는 것이다. 만일 느낌이 모호하다면 그 신호를 해석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 해석은 신뢰성이 없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신호에 대해 너무 걱정하거나 너무 큰 중요성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이미 그 신호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면 그것을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 아마도 그 신호는 어떤 경고를 줄 것이다. 당신이 좀 더 신중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거나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혹은 제때에 어떤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거나, 아니면 다른 방향을 선택하라고 말이다.

- 신호는 아주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다. 당신은 다만 그 신호가 지니고 있는 의미가 긍정인지 부정인지를 구별하기만 하면 된다.  

- 신호의 좋은 점은 그것이 제때에 당신을 백일몽에서 깨워줄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이 파괴적 펜듈럼을 위해서 자신에게는 불리한 짓을 하고 있을 수 있는 상황을 깨닫게 해 준다. 인류는 종종 펜듈럼 마법의 주문에 걸려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그리고 훗날에야 자신이 자신의 행동을 알아차리고 지켜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 경우에는 해롭지 않은 신호들도 경고로 해석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주의 깊은 상태를 유지하여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아차리고 전반적 상황에 민감하게 깨어 있는 것은 언제나 이로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근심과 신경과민으로 변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황을 잘 돌보되 걱정 없이 해야 한다. 당신 자신을 빌려주라. 그리고 모든 일을 흠잡을 데 없이 하라. 


- 이상하게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가장 분명하고 정확한 신호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내뱉는 말들이다. 별생각 없이 지나가는 말로 툭 던지는 말들이 그런 신호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의도적으로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려 한다면 거기에는 크게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누군가가 어떤 상황에서 당신이 하는 어떤 일에 대해 지나가듯이 뭐라고 내뱉는다면 그것은 아주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게 저절로 나오는 말들은 별생각 없이 하는 말이다.

 

- 어떤 것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즉석에서 거의 자동적으로 대답했던 기억을 당신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대답이 의식의 깊숙한 어딘가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가 분석적인 마음의 작용을 건너뛰어 입술에서 툭 튀어나온 것처럼 느껴진다. 이와 유사하게 생각 없는 말은 마음이 쉬고 있거나 다른 일에 몰두해 있을 때 문득 튀어나온다. 마음이 잠들면 영혼이 입을 연다. 그리고 이미 알겠지만, 영혼은 정보장에 곧바로 연결되어 있다.

- 예를 들어, 누군가가 당신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이렇게 말한다. "목도리를 갖고 나가. 안 그러면 감기 걸릴 거야." 그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당신은 분명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 또는 당신이 어떤 문제로 걱정하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사람이 갑자기 당신에게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뭔가를 권한다. 그것을 성급하게 거절하거나 무시해버리지 말라. 그 의견을 한 번 고려해 보라. 또 다른 경우, 당신은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고 믿고 있는데 지나치던 누군가가 상황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럴 때, 고집을 부리지 말고 한 번 되살펴보라. 어쩌면 당신은 저 혼자서 첨벙 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영혼이 불편한 것 역시 분명한 신호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그런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그에 대해 당신의 영혼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영혼이 정확히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렇지만 앞에서 살펴본 대로, 영혼이 마음의 결정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는 상당히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다. 당신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하자. 그러면 모든 일을 멈추고 새벽별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그러나 만일 마음은 벌써 결정을 내렸고 새벽별 소리에 귀 기울이기는 나중에야 상기했다면, 당신이 결정 내릴 당시에 느꼈던 기분을 떠올려보라. 그 느낌은 "기분이 좋다" 아니면 "기분이 좋지 않다"로 묘사할 수 있다. 당신이 그 결정을 마지못해 내렸다면, 그것이 정말 올바른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면 당신은 분명 그것에 대해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경우에, 결정을 바꿀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

- 마음이 어느 정도로 불편한지를 알아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은 느낌에 귀 기울이기를 제때 기억해 내는 것이다. 마음은 자기가 합리적 추론에는 자신 있다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의 말은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혼의 속삭임은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상식의 소리에 파묻혀 버리고, 마음은 갖은 방법으로 끊임없이 자기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려 든다. 당신은 "그렇다" 혹은 "아니다"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영혼은 작은 목소리로 "아니다"라며 반대하려 한다. 마음은 영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 속삭임을 못 들은 척한다. 그리고 '합리적 추론'을 무기로 자신의 "그렇다"를 논증하려고 애쓴다. 당신은 이 글을 읽었으니, 기억 속에 이 말을 따로 잘 저장해 두었다가 나중에 결정을 내려야 할 일이 생길 때 이것을 기억해 내라. 매사가 위에서 말한 것과 똑같은 식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영혼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지 어떤지를 판단하려면 다음의 간단하고 믿을 만한 공식을 기억해 두라. 만일 "그렇다"라고 말하기 위해 자신을 설득해야 한다면 그것은 영혼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음을 뜻한다. 영혼이 "그렇다"고 말할 때는 자신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나중에 다시 이 공식을 살펴볼 것이다.

- 세상이 당신에게 어떤 신호를 보여주고 있는지에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에서 신호를 읽어내려고 애쓰지는 말라. "봐, 새들이 하늘 높이 날고 있어. 저건 무슨 의미일까?" 글쎄, 새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높이 나는 것일 뿐이다. 오로지 신호에만 관심을 보내라. 그리고 그것은 안내하는 신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이것을 잊어버리는 순간, 당신은 펜듈럼에 붙잡혀서 상황의 제물이 될 수 있다.

- 당신의 인생을 극적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는 욕망이나 행위에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만일 당신의 욕망이 뭔가 불편한 느낌을 주고, 그 욕망을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반드시 거부하라. 이 경우에 욕망은 영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마음의 욕망은 언제나 펜듈럼에 의해 강요된 것이다. 행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속에서 느껴지는 불편한 기분을 무시해 버린다면 끔찍한 일은 벌어지지 않더라도 때로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생길 것이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불편감이나 의심, 근심, 죄책감 등을 불러일으키는 욕망과 행위는 거부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삶이 무척 단순해지고 당신은 많은 문제에서 해방될 것이다. 

-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단서가 있다. 올바르지 못한 일련의 행위로 인해 일이 복잡하게 꼬였을 때는 단순히 욕망과 행위를 거부하는 방법만으로는 모자랄 때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불편한' 일을 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해야 하거나 정말 하기 싫은 일을 하러 가야 하는 경우다. 그러나 꼬인 것이 풀리기만 하면 곧바로 다시 욕망과 행위를 거부하는 방법으로 돌아갈 수 있다.

- 이것이 트랜서핑 모델의 틀 안에서 안내하는 신호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의 전부다. 오직 당신만이 당신의 신호를 알아차리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게 하는 방법은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 당신 자신과 주변 세상에 주의를 잘 기울여보면 모든 것을 스스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다만 모호한 신호에 중요성을 너무 많이 부여하지 말아야 함을 명심하라. 중요성을 지나치게 부여하면 인생 시나리오에 부정적인 해석이 끼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능태 흐름 속에서 좌초하거나 급류에 떠내려가지 않으려면 잉여 포텐셜을 만들어내지 않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신호 없이도 잘 흘러갈 수 있다. 사실 신호의 진정한 의미를 분명히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의 능력 밖의 일이다. 당신이 특별히 주시해야 할 유일한 신호는 결정을 내리려는 순간 속에서 얼마나 편안한 느낌이 느껴지는가이다. 그리고 새벽별 속삭이는 소리는 정말 귀를 기울일 가치가 있다. 

- 가능태 흐름 속의 빠른 흐름은 마음의 두 가지 무거운 짐을 덜어준다. 곧, 모든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짐과 모든 상황을 끊임없이 통제해야 한다는 짐이다. 물론 이 짐들은 마음이 스스로 그것을 내려놓으려고 할 때만 덜어진다.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이 짐들을 지고 다니지 않는 것이 왜 더 나은지를 마음에게 어느 정도 합리적으로 설명해줘야 한다. 당신도 이미 알아차렸듯이, 이 책은 불합리하고 상식에 맞지 않는 이야기투성이다. 트랜서핑이 우주의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는 해도, 어떤 식으로든 나는 마음에 충격을 주는 이 모든 결론을 논증해야만 한다. 

- 합목적적인 빠른 흐름은 최소 저항의 길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문제나 장애물을 만들어낼 수가 없다. 문제와 장애물은 어리석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켜보는 자를 일깨워서 적어도 하루 동안, 마음이 흐름을 조종하려 드는 꼴을 잘 관찰해 보라. 누가 어떤 것을 당신에게 제안하는데 당신은 그것을 거절한다. 누군가가 뭔가를 말해주려고 하는데 당신은 그것을 뿌리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데 당신은 그것을 반박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방식대로 일을 하는데 당신은 그를 올바른 길로 안내하려고 한다. 해결책이 제시되는데 거절한다. 어떤 것을 기대했다가 완전히 다른 것을 얻고는 불만을 터뜨린다. 누군가가 당신을 방해하고, 당신은 이성을 잃는다. 뭔가가 당신의 시나리오에 어긋나면 당신은 흐름을 원하는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전면공격을 감행한다. 당신에게는 이 모두가 약간씩 다른 모습으로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일리가 있어 보이지 않는가?

- 자, 움켜쥔 통제의 손을 늦추고 흐름에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해주어 보라. 모든 일에 동의하라거나 주어진 모든 것을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당신의 전략을 바꾸어보라는 것이다. 무게중심을 통제에서 관찰로 옮겨보라. 통제하고 조종하기보다는 지켜보려고 애쓰라. 성급하게 뿌리치고 거부하고 반박하고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이고 방해하고 조종하고 비판하지 말라. 당신이 나서서 끼어들거나 저항하지 않는 가운데 상황이 스스로 해결될 수 있도록 기회를 줘보라. 당신은 분명히 깜짝 놀라 말문이 막히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감탄하게 될 것이다. 완벽한 반전이 일어날 테니까. 상황을 통제하려는 욕심을 내려놓으면 이전보다 더 큰 통제력을 얻을 것이다. 초연한 관찰자는 직접 참여하는 사람보다 언제나 더 유리하다. 내가 이 말을 자꾸만 반복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신 자신을 빌려주라.

- 지난 일을 돌이켜보면 당신의 통제가 흐름에 역행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된다. 다른 이들이 제시한 대안들도 전혀 쓸모없는 생각은 아니었다. 당신의 개입은 헛된 것이었다. 당신이 장애물로 봤던 것은 전혀 장애물이 아니었다. 당신의 지식이 없이도 문제는 스스로 술술 잘 해결된다. 당신의 계획과는 다르게 나타났던 모든 일도 결국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지나가는 말로 들었던 것들이 실제로는 상당히 타당했다. 속에서 느껴지던 불편함이 경고로 작용했다. 당신은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고, 여전히 만족스럽다. 이것이 내가 처음에 말했던, 흐름이 마음에게 주는 호사로운 선물이다.

- 그리고 물론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에 덧붙여서, 우리의 '아군'을 기억하자. 펜듈럼은 흐름과 일치하여 움직여가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그것은 우리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집적거리면서 우리로 하여금 흐름 속에서 맹렬히 허우적대게 만든다. 펜듈럼은 흐름 속에 빠른 흐름이 존재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빠른 흐름은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소모하는 길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흐름과 싸우는 사람이 소모한 에너지는 잉여 포텐셜을 만들어내어 펜듈럼을 먹여 키우는 데 쓰인다. 우리가 논해야 할 유일한 통제는 내적, 외적 중요성의 수준을 조절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상황을 놓아 보내려는 마음의 노력을 가장 훼방하는 것은 중요성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 많은 경우, 상황을 놓아 보내는 것이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유용하다. 자기 확신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자신의 중요성을 입증하려고 하는 습관을 어릴 적부터 길러놓는다.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내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경향성은 이로부터 나온다. 이것은 어느 모로 봐도 해롭기만 할 뿐이다. 이러한 추구는 잉여 포텐셜을 만들어내고, 다른 사람들의 이익과 대치된다. 어떤 판정이 자신의 이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경우조차도,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옳음을 입증하려고 무진 애를 쓴다.

-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모든 사람 앞에서 내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고 말 거야." 이것은 해로운 습관이다. 그것은 삶을 정말 복잡하게 만들어놓는다. 특히 진리를 수호하는 투사의 삶은 더욱 복잡하다.

- 당신의 이익에 그다지 해가 되지 않는다면, 상황을 놓아 보내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허우적거릴 권리를 허용해 주라. 온전히 깨어 있는 의식으로써 이렇게 한다면 당신은 즉석에서 크나큰 안도와 경이를 느낄 것이다. 자신의 관점을 입증했을 때보다 훨씬 더 멋진 기분일 것이다. 자신이 다음 단계로 올라섰다는 사실에 만족을 느낄 것이다. 당신은 전처럼 자신의 중요성을 애지중지 받들지 않고, 철없는 아이의 현명한 부모와도 같이 행동한 것이다.

-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직장 일에 지나친 열성을 보이는 것 역시 부주의한 태도만큼이나 해롭다. 당신이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훌륭한 직업을 갖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자신의 최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많은 요구를 하게 된다.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너무 지나치게 열성적으로 일에 나서다가는 특히 어려운 임무일 경우, 그 압박감을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잘해봤자 당신의 일은 비효율적일 것이며 최악의 경우에는 신경쇠약에 걸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자신은 이 일을 도저히 해낼 수 없다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 또 다른 가능성도 있다. 당신은 새 직장에서 극성맞게 나서서 기존의 사무체계를 어지럽힌다. 더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 보이고, 당신은 자신이 올바른 짓을 하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당신의 혁신이 직장의 일상적 생활패턴을 파괴하는 것이라면 거기서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는 기대는 하지 말라. 이것이 바로 솔선수범이 오히려 벌을 버는 경우다. 당신은 느리지만 유유한 흐름 속에 들어와서는 더 빨리 헤엄쳐 보겠노라고 안간힘을 다해 헛손질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 아니, 그렇다면 전혀 말도 하지 말고 튀지도 말라는 이야긴가?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이 문제를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접근해 보라. 당신은 당신을 직접 괴롭히는 사람에게만 화내고 꾸짖을 수 있다. 그것도 당신의 비판이 뭔가를 더 좋게 변화시켜 놓을 수 있을 경우에만 그렇다. 이미 일어난 일이나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절대로 비판하지 말라. 그 밖의 다른 모든 일에 있어서는 흐름을 따라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모든 상황과 사람에 맞추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통제로부터 관찰로 무게중심을 옮김으로써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상황이든 사람들이든 뭐든 더 많이 지켜보고, 성급하게 통제하려 덤비지 말라. 언제 어떻게 끼어들지, 그 알맞은 정도를 느끼는 감각이 저절로 생겨날 것이다. 그 문제라면 걱정하지 말라.



저자와의 대화


 

Q. 바딤 젤란드는 어떤 사람입니까?

 

A. "바딤 젤란드, 당신은 누구세요?"라고 묻는 호기심 많은 독자들에게 저는 보통 이렇게 대답합니다.

"전 아무도 아닙니다." 
저는 트랜서핑의 창조자가 아니고 '재해석자' 이기 때문에, 제 개인적인 이야기는 흥밋거리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됩니다. 이 고대의 신비지식 안에 어떤 이의 개인적인 곡해가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아무도 아닌 사람, 빈 통로가 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 지식은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지는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여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 법칙들을 따른다면, 현실은 더 이상 외부에 존재하는 독립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조종 가능한 것으로 변화합니다. 신비는 너무도 광대하여, 그것을 지닌 자의 개성은 의미를 잃습니다. 아마도 신비를 지키는 수호자들만이 주목받을 가치가 있을 테지만, 그들 또한 드러나지 않는 것을 선호합니다. 제 나이는 45세입니다. 소련이 붕괴하기 전에는 양자물리학을 연구했고, 그다음에는 컴퓨터공학을 연구했습니다. 지금은 책을 쓰고 있지요. 저는 러시아에 살고 있습니다. 그 외의 다른 것들은 중요치 않습니다. 위에서 말한 것도 마찬가지죠. 


Q. 자신들의 투쟁에서 승리해서 지금 삶을 즐기는 것일까요? 투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부지런히 일을 해도 평생 스키 리조트에 갈 돈을 저축하지 못합니다.
 
A. 트랜서핑은 근본적으로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먼저 투쟁을 멈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신념체계에서 빠져나와 다른 길로 가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그저 갖는 것을 허용하는 길, 이 책에서 당신은 그 길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Q. 다른 책들은 효과가 없는 데 반해, 이 책이 효과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예를 들어, 트랜서핑은 카를로스 카스타네다의 작품들과 자주 비교됩니다. 아마도 부분적으로 용어들이 비슷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카를로스 카스타네다와 테운 마레즈의 책으로 유명한 <전사의 길>은 전혀 트랜서핑이 아니고, 근본적으로 그 반대의 위치에 있는 톨텍의 가르침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이 두 가르침을 비교하려 한다면, 그 둘 중 어느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둘이 하나의 동일한 목표 즉, 자유 -당신이 세상에 복종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당신에게 복종하는 것- 를 지향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자유에 이르는 길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있습니다. 톨텍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세상에게 복종을 강요하려고 애쓰지만, 트랜서퍼들은 세상에게 복종을 허용합니다. 아마도 목적에 도달하는 방법이 원칙적으로 서로 다를 것입니다.

 

Q. 당신의 책은 <시크릿>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A. 똑같은 지식을 다른 관점에서 본 것이라는 점에서만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느 한 가르침을 다른 것과 비교하다 보면 <우파니샤드>에까지 갈 수도 있을 겁니다.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이 모든 지식은 하나의 원천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그런 이유로 여러 다른 사람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똑같은 발견을 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 많은 새로운 사조들이 지구상의 여러 곳에서 동시에 나타납니다. 나머지 다른 것들과 공통되는 요소를 전혀 갖지 않는 가르침을 한 번 찾아보세요. 만일 그런 것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다른 현실에 관련된 가르침일 겁니다. 그 어떤 인간의 마음도 우리 세계와 관련이 없는 것을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판타지 소설조차도 조만간에 현실이 됩니다. 판타지 소설가들은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현실에 대해 쓰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모든 아이디어와 이미지는 꿈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하나의 정보장에 정적으로, 객관적으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마스터'들도, 또 일반인들도 모두 같은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 모두는 아주 간단합니다. 도서관에 가서, 아무 서가에서나 보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고르는 것과 같지요. 단 하나의 조건이 있습니다. 지식에 접근할 권리를 이용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이 지식을 받으려고 마음먹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해 스스로 대답하기를 감행해 보세요. 그것을 감행하는 사람은 새로운 발견을 하고 음악을 작곡하며, 책을 쓰고 여러 분야에서 걸작을 창조합니다. 지식은 그것을 붙잡으려는 의도를 밝힌 사람에게 열리는 것입니다. 

 

Q. 이 이론이 당신에게는 어떤 효과가 있었나요?

A. 말할 것도 없이, 제가 저 자신의 체험에서 트랜서핑을 시험해보지 않았다면 그것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 테크닉은 나무랄 데 없이 효과가 있고, 보통 그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습니다. 평범한 경험의 틀로는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도 꽤나 자주 일어납니다. 이 모든 기적이 트랜서핑의 관점에서 완전히 설명될 수 있기는 하지만 저는 아직도 거기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언제나 놀라곤 합니다. 정말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누구든지 의도의 힘으로 현실을 조종하기를 시도하는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은 느낌- 경이로움과 희열을 체험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현실을 외부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경험은 경이로운 일이지요. 당신은 자신이 더 이상 환경조건에 매여 있는 작은 사람이 아니라고 느끼며, 스스로 자기의 세상을 창조하기 시작하면서 희열을 느끼게 됩니다.

 

Q. 이 트랜서핑 이론을 개발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습니까?

A. 트랜서핑 이론은 제가 개발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능태 공간에 이미 존재했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지요. 제 임무는 그 공간에서 그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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