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교고쿠 나쓰히코 / 김소연
원제 : 書樓弔堂 破曉
출판 : 손안의책
출간 : 2015.04.20
뭔가를 읽고 있지 않은 일상은 어색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 해보니 별 거 없다.
그냥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로 딩굴거리다 보면 시간이 흘러가 있다.
비생산적인 일상을 보내는 것에 대한 죄책감만 조심하면 된다.
뭐, 언제부터 그리 생산적으로 살았다고.
무료함을 즐기는 사이 가을이 찾아왔다.
좋은 날씨는 며칠 가지 않는다.
해서 다시 뭐라도 해볼까 싶어 필라테스를 등록하고, 미뤄둔 리뷰를 끄적거리고, 책장을 들춰본다.
<서루조당 파효>는 5월에 읽었던 책이다.
갑작스레 더워진 날씨에 교고쿠 나쓰히코의 책이 읽고 싶어져서 집어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딘가 수상쩍은 조(弔)라는 글씨를 내건 서점.
상을 당한 댁에 조문(弔問)을 갈 때 쓰는 조(弔)다.
여기는 대체, 하고 들어가 보니 천장까지 닿을 듯하게 빼곡하게 들어찬 서가와 서적들.
주인장이란 자는 어딘지 모르게 탈속한 듯한 분위기에, 나이를 가늠키 어려운 외모로 '이곳은 무덤이다' 같은 궤변을 늘어놓는다.
문제는 듣다 보면 그 궤변에 자신도 모르게 동조하고 만다는 점.
그것이-
그런가요.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방문해보고 싶을 서점, 서루조당.
6편의 이야기는 각각 누구나 알 법한 인물들의, 누구도 모를 법한 이야기들을 한 권의 책과 함께 풀어낸다.
그것이 허구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주인장의 말마따나, 글자로 기록된 이상 그것은 이미 거짓이다.
읽는 이에게 무엇이 불러일으켜지는가는-
조문하는 이의 몫.
좋은 책이었다.
사족.
책을 읽지 않는 기간 동안에는 웹소설이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등을 즐기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여러 작품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 순간 마음에 걸리는 지점이 생겼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어떤 성향이랄지 취향이랄지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허구를 즐기기 위한 작품들이라고는 하지만, 지나치게 현실이나 인간과 동떨어진 '마냥 우쭈쭈'는 보고 있으면 불쾌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뒤 덮어놓고 -개연성 없이- 무턱대고 '선한 척'하는 것.
나 빼고 나머지는 다 바보로 설정하는 것.
의도만 좋으면 결과는 알아서 좋아진다고 '믿거나' '그렇게 되는' 것.
이 세 가지는 사실은 전부 같은 이야기인데,
'나는 선하다'
-> '선한 의도로 했으니 내가 하는 일은 선하다'
-> '결과가 나빠졌다면 그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이 나쁘기 때문이다'
-> '하지만 나는 선하므로 좋은 결과가 오게 된다'
이런 무한 루프를 돌리는 것 같다.
억지를 쓰는 것인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작품들이 이런 사고흐름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나마 재미라도 놓치지 않는다면 다행.
대부분의 경우는 사실성이나 개연성, 통찰보다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 잘됐어'에 가깝기 때문에 계속 감상하기가 좀 괴로웠다.
작품만으로 끝나는 일이라면 걸러서 즐기면 될 일이니 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작품'이라는 건 '누군가'가 만들었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그 괴로움에 대해 생각하다가
스스로를 살펴보건대, 나는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과는 약간의 거리가 필요한 성향이라는 걸 깨닫고 평화를 찾았다.
모든 사람과 잘 맞을 수도, 잘 맞을 필요도 없는 거니까.
좋은 여름이었다.
- 벚나무의 꽃이 지고 새잎이 돋으면 여름이라고 한다.
- 길 양쪽의 벚나무는 실로 무성하게 우거져 있다.
파릇파릇하니 자랑스러운 듯이 우거져 있어서 이미 새잎이 돋았다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아직 날씨가 썩 덥지는 않다. 여름이 되려면 아직 좀 남았다. 지내기 좋은 날씨라고 하면 듣기에는 좋지만, 날씨가 순조롭지 못할 뿐이라 기분이 개운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 오늘도 일곱 살이나 여덟 살 정도의 학생모를 쓴 코흘리개 꼬마가 가토 기요마사 가면을 사 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 어머니는 긴타로가 더 낫다고 말하고 있는 모양이다. 장난감을 파는 아저씨는 인지사벨인지 고급 완구를 팔려고 이것저것 장사꾼다운 말을 던지고 있지만, 어머니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가게 주인은 아이의 안색을 살피며, 사벨을 들려면 기요마사 쪽이 단연 어울리지요, 유감스럽게도 큰 도끼는 없어서요, 하고 묘한 말을 늘어놓고 있다.
- 맞지 않는 것으로 치자면 양쪽 다 맞지 않는다. 사벨을 든 기요마사 쪽이 훨씬 더 우스운 그림이다. 그런 것으로 호랑이를 퇴치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호랑이를 퇴치하려면 가타카마야리다. 애초에 기요마사든 긴토키든 가면은 가면, 가격은 다르지 않을 텐데 이 어머니는 왜 기요마사를 싫어하는 것일까. 차라리 홋토코 가면이라도 사라고, 지나가면서 말한다.
- 가토 기요마사 : 1562~1611. 일본의 유명한 무장(武將).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도와 일본 전국의 통일에 기여했고 열렬한 불교 신자여서 기독교 박해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히데요시의 친척인 그는 성인이 되면서 군인이 되었고 곧 전투에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1592년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했을 때 선봉에 서서 잔인하게 싸웠기 때문에 조선인들은 그를 '악귀 기요마사'라고 불렀다. 1598년 히데요시가 죽자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히데요시의 어린 아들의 섭정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다이묘들의 연맹에 대항해 지위를 확보하는 데 협조했다. 여러 차례 전투에서 세운 공로로 구마모토 번의 번주가 되었다. 구마모토에서는 자기 영지의 하안(河岸) 개발계획과 자신의 성(城)을 건축하는 데에 힘을 쏟은 것으로 유명하다.
- 긴타로(金太郎)는 사카타 긴토키(坂田銀時)의 어린 시절의 이름. 일본의 전설적인 영웅으로, 헤이안 중기의 유명한 무장인 미나모토노 요리미쓰의 사천왕 중 하나였으며, 수많은 전설을 남겨 그를 소재로 한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 등 많은 작품이 만들어졌다.
- 사벨 : 프랑스어로는 사브르(sabre)라고 하며, 서양검의 일종이다. 외날검으로 검날이 휘어져 있기 때문에 베기에 적합하다.
- 가타카마야리 : 날 한쪽에만 가지가 진 미늘창.
- 홋토코 가면 : 한쪽 눈이 작고 입이 삐죽 나온 우스꽝스러운 남자의 탈. 또는 그 탈을 쓴 어릿광대.
- 내가 일하는 곳은 쇼군 담배상회라고 한다. 거창한 이름이지만 담배제조판매업자로서는 후발주자인, 작은 가게다.
쉬는 동안 급여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전 주인의 적자(嫡子)로 특별취급을 받으며 나름대로 많은 급여를 받고 있던 몸이니 조금은 자금을 융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그 정도로는 언발에 오줌 누기라 반년도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사족(士族)의 장사는 벼락치기로 하는 것이라, 잘 될 리도 없는 것이다.
- 사족(士族) : 메이지 유신 이후 옛 무사 계급에 주어졌던 신분. 현재는 폐지되었다.
- "아버님의 연고로 채용되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성미에 맞지를 않네. 애초에 덴구의 붉은색과 무라이의 하얀색 사이에 끼어서, 마치 겐페이(源平) 전쟁에 섞여 들어간 어민 같은 꼴이지. 그런 치사스러운 선전은 생각도 나지 않고, 생각이 난들 할 수도 없네. 우리 담배는 전혀 팔리지 않아."
이제부터는 선전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하고 사환은 이해한다는 듯 말한다.
"쇼군인(印) 담배는 맛있는데."
"뭐, 이와야 덴구는 사쓰마, 산라이스의 무라이는 본거지가 교토일세. 그에 비해 내 고용주는 쓰루가 출신이지. 쇼군이라는 것은 곤겐(権現)을 말하는 것이니까. 어차피 관군에는 당해낼 수 없다네."
에도는 이제 멀어졌으니까요, 하고 다메조는 더욱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지만, 이 사환은 아직 열일고여덟밖에 안 되었으니 메이지 유신 전의 일은 모를 것이다.
- 겐페이 전쟁 : 지쇼(治承)·주에이(寿永)의 난(乱). 헤이안 시대 말기인 1180년부터 6년에 걸쳐 일어났던 대규모 내란. 고시라카와(後白河) 천황의 황자 모치히토왕(以仁王)의 거병을 계기로 각지에서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清盛)를 중심으로 한 다이라(平) 씨 정권에 대한 반란이 일어났으며, 최종적으로는 다이라 정권이 붕괴하면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를 중심으로 한 가마쿠라 막부가 수립되기에 이르렀다. 이 전쟁으로 헤이안 시대가 막을 내리고 가마쿠라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 이와야 상회에서 만든 담배 중 '덴구 담배'라는 것이 있었다. 이와야 상회는 현재의 가고시마 현에 해당하는 사쓰마 지방 출신인 이와야 마쓰헤이가 회장으로 있었던 기업으로, 이와야 마쓰헤이는 1880년에 담배판매업을 개업하면서 '덴구야'라는 가게를 열었다.
- 메이지 시대에 '담배왕'이라고 불렸던 무라이 기치베에(村井吉兵衛)는 교토 출신의 실업가로, 1891년에 '산라이스'라는 담배를 발매했다.
- "뭐, 이 일을 기회로 앞으로 어떻게 살지 숙고해 볼 생각일세. 다행히 아버님이 물려주신 재산이 있어서 반년 정도는 먹고살 여유가 있거든."
그게 팔자가 좋다는 겁니다, 하고 다메조는 말한다. 정말 그 말이 옳을 거라고는 생각한다.
"저 같은 사람은 먹고살기도 힘들거든요. 양쪽 손톱에 모조리 불을 붙여가며 죽도록 일하고 있지요. 사장님은 무섭고요.”
- 초가 없어서 손톱에 불을 붙인다는 뜻으로, 몹시 가난한 생활을 가리킨다.
- 그렇게 생각되자 다시 불러 세우고는 약간의 삯을 주었다. 다메조는 매우 기뻐하며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하더니 뛸 듯이 장난감가게 앞을 지나갔다.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그 등을 바라보다가, 다시 한번 길 너머로 시선을 던져 보았다.
절이고 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옆길은 좁은 데다 구부러져 있다.
가 볼까,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한가하다.
그 점에 관해서는 고등유민(高等遊民)이라고 부르고 싶어질 정도로 우아하다.
하기야 고등하지도 않고 유민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인간으로는 하등의 부류이고, 그저 일자리를 얻지 못했을 뿐인 몸에 불과하지만 그런 만큼 시간만은 썩어날 정도로 많다.
- 길에 발을 들여놓는다.
싸리꽃이 피어 있었다. 꽤 일찍 피었다.
위쪽이나 먼 곳만 보고 있었기 때문에 발치는 보지 못했던 것이다. 예쁘기도 하다.
반 정(町)도 가지 않아 경관은 완전히 시골처럼 변했다. 낡은 사에 노카미(道祖神)라도 있으면 그냥 산속 마을의 모습일 것 같다. 오른쪽으로 이어지던 나무들이 끊기고 밭이 펼쳐진다.
- 이래서는 마치 방금 죽은 사람이 있는 집 같다. 하기야 그 경우는 조(弔)가 아니라 기(忌)라고 써야 할 테니, 결국 이곳에서는 불행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슨 생각으로 이런 것을 걸어 놓았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어이가 없다기보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 이것도 다메조가 말했던 대로다. 담장이 높은 것은 틀림없다. 너무 높아서 안이 어떻게 되어 있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 과연 가게 주인이 어떤 인물인지, 그것은 헤아릴 수도 없지만 일견 손님을 거절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럼 어떻게 할까, 하고 망설인다.
가볍게 구경만 하고 돌아갈 수 있을 듯한 분위기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가게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들여다볼 수도 없고, 가게에 들어간 이상은 들여다보기만 하고 그냥 나올 수도 없을 것이다. 아니, 그냥 나올 수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그러기가 꺼려진다.
거 참 불쾌한 가게도 다 있다.
그럼 이대로 돌아가면 될 것 같지만, 그럴 마음도 들지 않는다. 묘하게 마음을 끄는 분위기다. 조(弔)라는 한 글자가 신경이 쓰여 견딜 수가 없다.
- "뭔가 찾으시는 책이라도."
"아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책을 좋아해서 말이다. 집이 여기서 가깝거든. 이렇게 바로 옆에 책방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지라, 한 번 들여다볼까 싶어서."
어린아이 상대로도 횡설수설이다.
"예에, 찾으시는 책이 정해져 있지 않으시다면 저희 가게는 권해드리지 않습니다."
"호오. 그건 왜지?"
헤매기만 하실테니까요, 라고 어린아이는 말했다. 아마 이 가게의 사환일 것이다.
- "헤맨다면 더 좋지 않으냐?"
"그런가요?"
"그래. 무슨 일이나, 목적을 향해 일직선으로 간다는 것은 재미없는 법이다. 저쪽으로 갔다가 이쪽으로 흔들렸다가, 때론 옆길로 빠지기도 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나가게 되지. 그런 것을 통해서 견식이 넓어지니까. 무언가 발견하는 것도 있을 게다. 뭐, 작금에는 합리니 편리니 하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나는 별로 마음이 끌리지 않아서 말이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거든."
- 왜 그러느냐고 묻자, 죄송합니다, 라고 한다. 왜 사과하느냐고 물으니,
"아뇨, 저희 가게의 주인도 똑같은 말씀을 하시거든요.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 세상을 쓸모없게 만드는 자가 있을 뿐이라고-."
아이는 그렇게 대답했다.
- 조(弔)라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하아, 그건 간판입니다."
"간판이라고?"
"나무판이 아니니 정확하게는 간판은 아니지만, 그, 옥호입니다."
"상호란 말이냐. 조, 라고 적혀 있는 것 같은데."
다르게 읽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세로로 보아도 가로로 보아도 조(弔)라는 글씨다.
아이는 가느다란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예에, 저희 가게는- 서루조당(書樓弔堂)이라고 하거든요."
- 상가는 길흉을 따지는 것이 보통이다. 개화의 시대이든 합리의 무리이든, 그 점만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조(弔)라니, 어떻게 된 것일까. 아무리 봐도 길한 이름은 아닐 것이다. 장사를 할 생각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무서운 이름이구나, 라고 말하자 그런가요, 하며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더욱더 흥미가 생겼다.
이렇게 되었는데 들여다보지 않고 가 버린다면 오랫동안 후회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들여다보고 나서 낙담하게 되는 것은 상관없다. 술 안줏거리 정도는 될 거라는 뜻이다.
- "어떠냐. 그, 헤맬 정도로 책이 많다는 조당 안으로 들여보내 주지 않겠느냐? 아니면 찾는 책이 없는 손님은 출입할 수 없는 것이 규칙이더냐?"
아이는 다시 한 번 입을 벌리고 아아, 하고 말했다.
"이거 참으로 실례가 많았습니다. 어떤 분이든 들어오지 못하시는 일은 없습니다."
자, 들어오시지요. 하며 아이는 뒤로 몸을 물려 입구를 터 주었다. 안은 어두웠다.
창이 없는 것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촛불이 켜져 있다.
그을음 색깔도 비쳐 보이고, 등불도 또렷하다.
작금에 나돌기 시작한 파라핀초가 아니라 질 좋은 전통초일 것이다. 불빛만이 흐릿하게 보인다.
어딘지 모르게 만등회같다. 가게의 깊이를 알 수가 없다.
- "아니, 뭐, 그렇긴 하지만 어떤 책들을 갖추어 놓았는지 보고는 싶지 않겠느냐."
어지간한 것은 다 있습니다, 하고 아이는 말했다.
"그렇겠지."
니혼바시의 마루젠 같은 곳은 상당히 크다. 대체 몇 권의 책을 취급하고 있을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것에 비하면 이 가게의 대지는 훨씬 좁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책의 수는 이쪽이 더 많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시선을 천천히 내린다.
- "니시키에도 있나."
"배우 그림, 연극 그림, 춘화에 가와라방, 잡지도 신문도 있습니다."
"신문이라는 건 그 소위 말하는 신문이냐."
"예."
그런 게 상품이 될까. 하루하루, 매일 새롭게 찍으니 신문이 아닌가. 오래된 인쇄물에 가치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팔리느냐고 물으니 원하는 분이 계시면 팔립니다, 라고 했다.
"그야 그렇겠지만, 그 원하는 사람이 있느냐는 이야기다. 신문이라는 것은 다 읽고 나서 버리는 것이 아니냐. 지난달이나 작년 사건의 소식을 이제 와서 읽는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 파는 것과 빌려주는 것은 다르냐고 물으니,
"다르지요."
하고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당황해서 돌아보니 다리가 보였다.
계산대 옆에 계단이 있고, 그 중간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이었다.
- "손님이셨습니까. 시호루, 손님이 오셨으면 나를 불렀어야지."
"죄송합니다."
"아니, 주인장, 이건 제가 잘못한 겁니다. 신기해서 이것저것 묻고 있었으니."
다리는 계단을 내려오고, 이윽고 얼굴이 보였다.
어두컴컴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얼굴은 확실하지 않지만, 몸에 걸치고 있는 옷은 색깔도 무늬도 없는 하얀 기모노다. 상복이라면 상복이지만, 굳이 말하자면 가사를 벗은 승려 같은 인상이다.
- "뭔가 찾으시는 것이라도."
"아니,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저는 책을 좋아합니다."
"호오."
거참, 거참, 하고 붙임성 좋게 말하며 가게 주인은 계산대에 자리를 잡더니, 아이를 향해 자, 의자와 차를 준비하렴, 하고 말했다. 아이는 허둥지둥 구석 쪽에서 둥근 의자 같은 것을 가져와 계산대 앞에 놓더니, 앉으시지요, 하고 말했다.
- "시간이 있으시다면 느긋하게 계시다 가시지요."
주인이 권하는 대로 앉자, 그런데 어떤 학문을 하고 계십니까, 하고 물었다.
의외로 젊다.
적어도 노인이라고 부를 만한 나이는 아니다. 나보다 어린 것 같지는 않지만 나보다 나이가 위라고 해도 어느 정도나 위일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다.
"학문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배우기 위해서 읽는 것이 아니시라고요.”
"뭐, 면학하는 자는 아닙니다. 사상도 없고 주의도 없어요. 지극히 비속한 범부입니다. 다만, 그냥 좋아합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아니."
책 말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 "읽는 것을 좋아하십니까? 책을 좋아하십니까?"
"그건- 글쎄요."
똑같은 것이 아닐까.
"물론 읽는 것은 좋아합니다. 책이니까요. 너무 어려운 것은 난처하지만, 대개는 글씨가 늘어서 있으면 읽습니다. 하기야 서양 글씨는 못 읽지요. 외국 말은 익숙하지가 않아서요. 상투를 틀지 않게 된지 이십 하고도 일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머릿속은 개국하지 않았답니다."
가게 주인은 싱글벙글 웃었다.
- "하지만 읽기만 하는 거라면 빌려서 읽어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뭐, 그렇지요. 다만 대본소는 최근 다 망해 버렸지 않습니까. 모두 아카혼 파는 곳이 되고 말았고, 이제 그것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게다가 대본소에서 취급하는 책은 굳이 말하자면 속된 이야기가 많았지 않습니까. 속된 이야기가 나쁘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불서(佛書)나 한서(漢書), 그런 것은 취급하지 않아서 젊을 때부터 썩 좋아하지 않았어요. 교쿠테이 바킨(曲亭馬琴) 같은 것은 꽤 많이 읽었지만, 작품 수가 많으니까요."
- 교쿠테이 바킨 : 1767~1848. 에도 시대 후기의 요미혼(読本) 작가. 본명은 다키자와 오키쿠니이며, 원고료만으로 생계를 영위할 수 있었던 일본 최초의 저술가이기도 하다. 대표작으로 '진세쓰 유미하리즈키(椿説弓張月)', '난소 사토미 팔견전(南總里見八犬傳)' 등이 있다.
- "불서나 한서가 취향이십니까."
주인은 웃는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취향이냐고 물으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니, 아니, 거기에서 고개를 끄덕여 버리면 불가(佛家)의 분들에게 꾸중을 들을 겁니다. 어쨌거나 머릿속이 쇄국이라 서양의 것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지만, 논어 같은 것은 실컷 읽었으니 그나마 그쪽이 친숙하다는 것뿐입니다. 유학의 책은 때론 설교 같아서 당해낼 수가 없지만, 본초나 박물 책은 재미있게 읽습니다."
- "그럼 무사이십니까."
"무가 출신이라고 할까, 무사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제가 열 살쯤되었을 때 막부가 와해되었으니 무사라는 자각은 없습니다. 관례를 치를까 말까 한 나이에 상투를 내렸고, 두 자루 칼의 무게도 알기 전에 사민평등(四民平等)이 이루어졌지요. 정신이 들어 보니 무사가 아니게 되고 나서 산 세월이 더 깁니다."
내 나이 벌써 서른다섯이다.
"뭐, 아까 말씀드린 대로 무언가를 배우고 있는 것은 아니고, 제 경우는 도락의 연장입니다. 최근에는 시가나 소설도 읽고, 번역된 책도 읽지요. 요전에 쓰보우치 쇼요(坪內逍遙)를 처음으로 읽었습니다. 뭐, 불편하고 이상한 느낌이기는 했지만 재미있더군요."
과연, 그렇군요, 하고 주인은 말했다.
- 쓰보우치 쇼요 : 1859~1935. 주로 메이지 시대에 활약한 일본의 소설가, 평론가, 번역가, 극작가. 본명은 쓰보우치 유조(坪內雄蔵)로, 대표작으로는 '소설 신수(小說神随)', '당세서생기질(当世書生氣質)'등이 있다.
- "우리 가게는 보시다시피 책방입니다."
"예에."
"책의 내용물을 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책을 팔고 있습니다."
"그야 뭐, 그렇겠지요."
"식견이 필요한 거라면 빌려서 읽든 책방에 서서 읽든 마찬가지입니다. 일독하여 이해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되지요. 하지만 책은 인포메이션이 아닙니다."
책은 무덤 같은 것입니다, 하고 주인은 말했다.
"무덤- 이라고요?"
"예. 그렇지요. 사람은 죽습니다. 물건은 망가집니다.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멸하지요. 천지가 모조리 바뀌고, 만물은 대개 영원하지 않은 것이 세상의 이치. 하지만 그것은 현세에서의 일입니다."
- 주인은 계산대의 촛대를 쳐든다.
주인의 그림자가 등 뒤로 퍼진다.
"이 니시키에는- 세이난 전쟁을 그린 것입니다.”
- "세이난 전쟁에 대한 것이 상세하게 기록되겠지요. 작자는 가와사키 시잔(川崎紫山)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민권파로 알려진 도쿄 아케보노 신문의 기자인데, 다른 신문에서 주필로 영입하고 싶다는 권유가 있을 정도의 사람이니, 제대로 취재를 해서 쓰고 계시겠지요. 이쪽은 어떨까요."
"어떠냐니- 뭐, 자료로서는 그쪽이 신용할 만한 것이 되지 않을까요."
자료로서는 그렇지요, 하고 주인은 말했다.
"인포메이션으로서는, 분명히 이쪽이 가치가 높을 겁니다. 하지만 손님. 이것을 읽는다고 해도 저는 세이난 전쟁에 참가할 수 없습니다."
"흐음."
"벌써 십오 년이나 전에 끝나 버린 일이니까요. 이제 와서 사이고에도 정부에도 가세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을 읽으면서 상상할 수밖에 없지요. 저에게 세이난 전쟁은."
주인은 촛불을 받침대에 놓고 검지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찔렀다.
"이 안에 있을 뿐이에요. 그건 진짜 세이난 전쟁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세이난 전쟁의 유령 같은 것입니다."
- "유령이라고요?"
"예. 유령이라는 것은 신경의 작용으로 죽은 사람이 마치 거기 있는 듯 보이는 것이지 않습니까."
"뭐, 그렇다고들 하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미세한 데까지 공을 들이고, 알면 알수록, 세이난 전쟁의 유령은 이 두개골 속에서 윤곽이 명확해지겠지요. 하지만 그건 실물은 아닙니다."
"분명히 그건 그렇습니다."
"나라는 말은 나 자체가 아닙니다. 당신이라는 말도 당신 자체가 아니에요. 말은 현세에 대응하고 있지만, 현세 자체는 아니지요. 책상이라는 말과 이 책상은."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하고 주인은 말했다.
- "문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불립문자(不立文字)의 가르침을 인용할 필요까지도 없이 문자는 기호에 지나지 않아요. 한자도 일본어도, 이 니시키에와 마찬가지입니다."
"원래는 그림, 이라는 뜻입니까."
"지금도 그림입니다."
하고 주인은 말한다.
"구상이 아닐 뿐이지, 평면에 그려진 무늬이니 그림입니다. 다만 음운에 대응하고, 의미가 실려 있다는 것뿐이지요. 우리는 그것을 조합하고, 말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뿐."
- 불립문자 : '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敎外別傳,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어구에서 온 말로, '경전의 말을 떠나 오직 좌선함으로써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직접 체험한다'는 뜻이 되어 선종(禪宗)의 근본을 나타내는 말로 알려졌다. 문자나 말에 의한 교의의 전달보다 체험으로 전하는 것이야말로 진수라는 뜻. 이 말은 선종의 개조(開祖)로 알려진 인도의 달마가 한 말로 전해지며, '문자는 해석하기에 따라서 어떻게도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진실한 불법은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깨달음을 위해서는 굳이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는 가르침이다. 당나라 시대의 중국 선승인 혜능(慧能)이 특히 이를 강조하였다.
-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말할 것까지도 없이 그 말이 옳을 것이다.
"말로 이해되는 그림을 더욱 조합해서 글이라는 주문으로 만들고, 그것을 연달아 써서 묶은 것이- 책입니다."
많이 있지요, 하고 주인은 가게를 둘러본다.
지나치게 많을 정도다.
"말은 대개 주문. 문자가 적혀 있는 종이는 부적. 모든 책은 지나가는 과거를 봉해 넣은 주물(呪物)입니다."
- 그런데- 하며 주인은 내게 얼굴을 향한다.
"손님은 성묘를 가십니까?"
"뭐, 신앙은 잘 모르고, 지극히 벌 받을 성미인지라 불사나 법요도 게을리하고 성묘도 부지런히 가지는 않지만, 명절이나 기일에는 보리사에 가서 합장이나 한번 하는 정도지요."
"참배하실 때는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글쎄요. 그냥 무심(無心)합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나 조부모님을 생각할 때도 있지만요."
"그분들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 조상님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그건 생각할 수가 없지요. 모르니까요. 뭐, 조상의 무용담 같은 이야기는 어릴 때 다소 들었으니 그런 것은 기억하고 있지만, 얼굴도 목소리도 아무것도 모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은 또 싱긋 웃었다.
- "무덤을 향해 서 있는 당신은 아버님이나 할아버님, 할머님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겠지요. 고인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인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떠올릴 수가 없습니다."
"그것과 무엇이 마찬가지입니까?"
이것 말입니다, 하며 주인은 책을 쳐들었다.
서양 책인 것 같았다.
"당신은 외국어가 서툴다고 하셨으니 아마 이 책은 읽지 않으셨겠지요. 노력해서 어학을 익히고, 읽을 수 있게 되신다고 해도, 쉽게는 이해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니, 아니."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선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타인의 무덤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주인은 말했다.
"낯선 타인의 무덤을 찾아가도, 당신은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할겁니다."
- "그렇군요. 그래서 무덤입니까-."
둘러본다.
그러면 이 가게는 묘지인 걸까.
- "적혀 있는 인포메이션에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책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을 겁니다. 누군가 자세히 아시는 분에게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으로 끝나 버리겠지요. 무덤은 돌멩이, 그 밑에 있는 것은 뼛조각. 그런 것에는 의미고 가치고 없을 테니까요. 돌멩이나 뼛조각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은 무덤을 찾아가는 사람입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은 내용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읽는다는 행위 때문에, 읽는 사람 안에 무언가가 일어나는- 그쪽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내용물이 아니라는 뜻입니까?"
"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에 따라 일어나는 것은 다르겠지요. 아무리 가치 없는 내용이 적혀 있어도, 백 명 천 명이 쓸데없다고 판단했다고 해도, 단 한 명 안에 가치 있는 무언가가 생겨났다면 그 책은 가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나요."
- 책은 주물입니다, 하고 주인은 말을 잇는다.
"문자도 말도 속임수입니다. 거기에 현세는 없습니다. 거짓도 진실도 없습니다. 책이라는 것은 그것을 쓴 사람이 만들어낸, 가짜 현세, 현세의 시체입니다."
이 집은 마치 시체가 켜켜이 쌓여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다.
"하지만 읽는 사람이 있다면 그 시체는 되살아나겠지요. 문자라는 부적을 읽고, 말이라는 주문을 됨으로써 읽은 사람 안에 읽은 사람만의 현세가 유령으로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바로 눈앞에 나타나겠지요. 그게- 책입니다."
- 그래서 책을 사는 사람이 있는 거라고 주인은 말했다.
"그래서, 라고 하시면."
"책에서 일어나는 현세는 이 진짜 현세가 아닙니다. 그 사람만의 현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또 하나의 자신만의 세계를 품에 넣고 싶어 하지요."
그 마음은 이해가 간다.
- "두 번, 세 번 읽기 위해서일까요."
"물론 그것은 읽을 때마다 일어나겠지요. 읽을 때마다 다른 것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한 번 읽었으면 더 이상 읽을 필요는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까."
"읽지 않고 보기만 해도, 보지 않아도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세계는 소유자의 것일 테니까요."
"보는 것 만으로요?"
"예. 제첨에 적혀 있는 책의 제목은 계명(戒名) 같은 것이거든요. 양장본의 등 표지에 새겨져 있는 것은 묘비명입니다. 그걸 보면 무엇의 무덤인지는 알 수 있겠지요."
-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뜻일까.
- "그렇군요. 하지만 주인장,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군요. 소유하고 하지 않고는 별로 상관없을 것 같기도 한데요."
"아니, 아니, 중요합니다."
하고 주인은 말한다.
"같은 무덤을 찾아가도,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유령이 보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만의 세계가 아니게 되어 버리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물론 반드시 소유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의미로 무덤이란 장식. 불단도 위패도 장식이니까요. 불손한 말이지만 그런 것은 모두 신심의 계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겠지요.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니 참배를 가지 않아도 기도를 하지 않아도 공양이 되도록,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통하는 것이기는 하겠지요. 하지만."
주인은 어딘가 사랑스러운 듯한 눈빛으로 선반의 책들을 보았다.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의 위패 정도는 소유하고 싶은 법이 아니겠습니까."
- "책은 아무리 많아도 좋은 것. 읽은 만큼 세상은 넓어지지요. 읽은 수만큼 세계가 생겨날 겁니다. 하지만 사실은 단 한 권으로도 충분한 것입니다. 단 한 권, 소중하고 소중한 책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분은 행복할 겁니다."
그래서 사람은 책을 찾는 거지요, 라고 주인은 말했다.
- "정말로 소중한 책은, 현세의 일생을 사는 것과 비슷할 정도로 다른 삶을 줍니다. 그래서 그 소중한 책을 만날 때까지, 사람은 계속 찾는 것입니다."
그런- 걸까.
내 책은 이 안에 있을까.
이 종이묶음과 문자의 소용돌이 속에, 대체 얼마나 많은 현세의 유령이 갇혀 있다는 것일까.
- "찾을 수 있을까요."
"만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아니,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겁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읽어볼 때까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니, 읽지 않으면 만날 수 없습니다. 읽고,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해도 그보다 더 위가 있을지도 모른다, 다음에는 더 멋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맙니다. 이거다 싶은 그 한 권을 정하지 못해서 또 다음을 찾지요. 그래서 책은 모으는 것이 아니라 모이고 마는 것이겠지요."
그 감각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수집가와는 조금 다르다.
늘리고 싶다거나 다 갖추고 싶다거나 채우고 싶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다. 수의 문제도 아니고, 부족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참으로 모이고 만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뭐, 증상이 점점 심각해지는 부류임은 틀림없겠지만요."
욕심이 생기지요- 라고 말하며 미소를 짓고는, 주인은 일어섰다.
"그런 사람이 찾아내 주기를 바라면서, 저는 여기 이렇게 시체와 묘석을 늘어놓고 있는 것입니다."
- "아니, 조금 다르군요.”
하고 주인은 말했다.
"다르다니요."
"사람을 위해서라기보다 책을 위해서일지도 모르겠군요. 아니, 그렇습니다."
"책을 위해서입니까."
주인은 계단 위를 올려다보았다.
"어쨌든 읽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맞고 맞지 않고는 별도로 치고, 맞든 맞지 않든, 읽히지 않으면 이것은 쓰레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무덤은 그냥 돌멩이입니다. 밑에 시체가 묻혀 있어도, 그게 아무리 훌륭한 분의 시체라고 해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겁니다. 읽히지 않는 책은 단순한 종이 쓰레기예요."
- 그래서 팔고 있습니다, 하고 주인은 말했다.
"파는 것이 공양입니다."
- 그래서-.
조당인 것일까.
- "애도하고 계시는군요."
뭐, 저는 본래는 승려였었어요, 라고 말하며 주인은 자신의 머리를 슬쩍 어루만졌다.
"환속한 지 꽤 되었습니다만."
"스님이셨습니까."
아니, 하지만 나이는 젊다. 나보다 위인가 했는데, 목소리는 젊다. 서른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젊어 보이는 것도 이 이상한 무대 때문일지도 모른다.
- 남자는 몹시 애매하게 대답했다.
"세쓰겟카노우치(雪月花之内). 이치카와 단주로(市川団十郞)에 5대 오노에 기쿠고로(尾上菊五郎). 거기다 이치카와 사단지(市川左團次)의 세쓰겟카(雪月花). 그건 상연된 연극을 보고 그린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러니 연극 그림이 아니라 배우의 얼굴 그림을 이용한 이야기 그림이지요. 고전화(古典畵)나 무사 그림의 전통을 답습하면서도 새롭게 만들었어요. 기법도 구도도 훌륭했습니다."
"그런 것도 취급하는 가게입니까."
남자는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주인은 웃으며, 제가 좋아서 산겁니다, 하고 대답했다.
"좋아하거든요."
"당신은 시대에 뒤떨어진 취향이구려."
"그럴까요."
"이제부터는 서양화일 겁니다."
"서양화도 좋지만 다른 것이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서양화는 찍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육필이라고 해도 우키요에라면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뭐, 우키요라고 부르는 동안에는 안 되지요."
"안 됩니까?"
- 9대 이치카와 단주로, 5대 오노에 기쿠고로, 초대 이치카와 사단지는 일본 가부키의 황금시대인 '단기쿠사 시대(團菊左時代)'를 이루었던 메이지 시대의 3대 가부키 배우이다. 메이지를 대표하는 우키요에 화가로 알려진 쓰키오카 요시토시(月岡芳年)가 남긴 몇 안 되는 배우 그림 중 세 장인 '세쓰겟카' 시리즈는 이 세 명의 배우들을 그린 것으로 오노에 기쿠고로(눈 雪), 이치카와 단주로(달 月), 이치카와 사단지(꽃 花)의 세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쓰겟카'는 본래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시 '기은협율(寄殷協律)'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눈과 달과 꽃에 자연의 아름다움 또는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빗대어 표현한 말인데, 일본 예술의 특질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 "엔초 님은 몇 해 전에 세키테이(席亭)와 다툼을 일으키시고 나서 무대에서 물러나셨지만, 듣자 하니 몸도 좋지 않으셔서 근자에 폐업하실 거라고 하시니까요."
그래요, 아깝군요, 하고 남자는 말한다.
"그 '무설거사(無舌居士)'는 개화 선생들이 싫어하는 괴담 이야기의 명인이기도 하지요. 신케이카사네가후치(真景累ケ淵), 괴담 치부사노에노키(乳房榎), 모란 등롱- 모두 걸작이에요. 여전에는 괴담 모임 같은 것도 자주 열곤 하셨고, 지금은 유령 그림도 수집하시는 모양입니다."
- 세키테이 : 흥행장의 경영자. 예능인의 공연에 장소를 제공하고 입장료를 나누어 가진다. 출연자와 공연 목록 등을 선택하기 때문에 감상하는 눈이 높아야 했으며 예능인에 대한 발언력도 컸다.
- 치부사노에노키 : 산유테이 엔초에 의해 창작된 괴담 이야기. 신문에 연재된 후, 1888년 출판되었다. 화가 히시카와 시게노부의 아내 오세키에게 반한 이소가이 나미에라는 낭인(浪人)은 시게노부의 제자가 되어 오세키에게 접근한 후 아이를 죽이겠다는 협박으로 오세키와 관계를 맺는다. 그뿐만 아니라 나미에는 오세키를 독차지하고 시게노부의 막대한 재산을 손에 넣기 위해 스승을 참살하고 만다. 남편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젖이 나오지 않게 된 오세키에게 죽은 시게노부의 망령이 나타나, 젖이 나오는 신기한 팽나무(에노키)가 쇼게쓰인(松月院)이라는 절에 있다고 가르쳐주고, 그 팽나무의 젖을 먹고 자란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나미에에게 원수를 갚는다는 내용.
-모란 등롱 : 중국 명나라 때의 소설집 '전정신화(剪灯新話)'에 수록되어 있는 소설 '모란등기(牡丹燈記)'에서 착상을 얻어, 산유테이 엔초가 라쿠고 대본으로 창작한 괴담 이야기. 젊은 여자의 유령이 남자와 만남을 갖다가 유령이라는 사실을 들켜, 유령을 막으려고 한 남자를 원망하며 죽인다는 이야기인데, 엔초는 이 유령 이야기에 원수 갚기나 살인, 모자 상봉 등 많은 사건과 등장인물을 더해 일대 드라마로 완성시켰다. 1892년에는 가부키로도 공연되어 큰 성황을 이루었으며, 이후 연극이나 영화로도 각색되는 등 예능. 문학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 "유령은 없지만, 없더라도 보이는 법입니다. 없는 것이 보이는 것은 비합리. 합리를 내거는 세상에 살고 있는 당신은, 그래서 신경에 병이 생길 정도로 고민하시기도 했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결코 잘못된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훌륭한 일이지요. 당신의 현세는 업적도 포함해서 매우 훌륭한 것입니다. 훌륭하시기는 하지만, 그런 만큼 괴로우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책 안에는 그런."
당신의 현세가 잠들어 있습니다- 조당 주인은 그렇게 단언했다. 요네지로는 그것을 공손하게 이마 위로 받들어 받아 들고, 받아가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 "그럼 그쪽으로-"
그렇게 말하더니 주인은 요네지로의 어깨를 안아 일으키고, 그대로 문으로 향했다. 시호는 먼저 스윽 나가서 문을 열었다.
갑자기 밝아졌다.
요네지로는 몇 번이나 머리를 숙이고는 빛 속으로 사라졌다.
주인은 한동안 바깥을 보고 있었다.
전송하고 있는 것이리라.
인력거 소리가 멀어지자, 자, 불을 켜렴, 하고 주인은 등을 돌린 채 시호루에게 분부했다. 시호루는 입을 다문 채 초에 불을 켜기 시작했다.
- "주인장."
말을 걸자 주인은 돌아보더니 판자문을 닫았다.
"아아, 이거 참으로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당신도 손님이신데 완전히 내팽개쳐 버렸으니."
"그런 것은 상관없지만 그, 왜 촛불을 끈 겁니까?"
"확인한 겁니다."
하고 말하며 주인은 문을 닫고 계산대로 돌아왔다.
- "그런데 손님은 방금 그분을 모르십니까?"
"아니, 모르오. 나 같은 사람이 알아도 될 만큼 저명한 사람이오?"
주인은 늘어져 있는 니시키에를 한 장 들고 돌아서서 이쪽을 향해 보여주었다.
"뭐요, 또 세이난 전쟁입니까. 사쓰마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고, 군인이나 관헌으로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방금 그분은 이 그림을 그리신 작자입니다."
"작자- 화공입니까?"
"화공도 화공인데, 그분은- 다이소(大蘇), 쓰키오카 요시토시(月岡芳年) 님입니다."
- "쓰, 쓰키오카 요시토시라면 그 우키요에 화공인 요시토시 말입니까? 으음, 그 피투성이의 무참한 그림을 그린-"
에이메이 니주핫슈쿠(英名二十八衆句) 말씀이십니까, 하고 주인은 말했다.
"그건 오치아이 요시이(落合芳幾) 님과의 합작입니다. 오슈 아다치가하라 히토쓰 가(奥州安達原ひとつ家)의 그림 같은 것이 평판을 얻기도 했고, 최근에도 신케이산주롯카이센(新形三十六怪撰) 같은 것을 그리셨기 때문에 잔혹하고 기괴한 인상이 강하겠지만, 무사화나 역사화, 미인화에 관해서도 명인(名人)이시고, 요미우리 신문이나 에이리 지유 신문에도 삽화를 그리시지요. 우키요에 인기 순위에서도 필두이신-."
구니요시 문하 중에서 제일 출세한 분입니다, 하고 주인은 말했다.
- "그래서 우키요에의 사정을 잘 아셨던 겁니까."
"자신의 이야기를 하셨던 겁니다. 그분은 종래의 화법에 구애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기법을 짜내고, 또 다른 유파의 좋은 점을 받아들여 이 메이지 시대에 맞는 우키요에를 만들려고 애쓰신 분입니다. 고전적인 화제(畵題)를 버리고 아무도 그리지 않은 역사화나, 지금 여기 있는 풍속화를 그리셨지요. 이 세이난 전쟁은 상상으로 그려진 듯한 모양이지만, 그 외에는 모두 취재를 하러 가셨습니다. 보고 그린 것이지요. 제자에게도 서양화를 배우게 하는 등, 어쨌든 지금 세상에 통용되는 것을 그리라고 계속 말씀하셨던 분입니다."
- 오치아이 요시이쿠 : 1833~1904. 일본의 우키요에 화가. 우타가와 구니요시(歌川囯芳)의 문하이며 쓰키오카 요시토시와는 사제지간이다. 한때는 우키요에 화가로서 요시토시와 인기를 양분할 정도였으며, 막부 말에서 메이지 초기에 걸친 우키요에 화공의 일인자 중 한 명이었다.
- 오슈 아다치가하라 히토쓰 가의 그림 : 후쿠시마 현 니혼마쓰 시에는 귀파(鬼婆)의 무덤이라고 하는 구로즈카(黑塚)가 남아있는데, 쓰키오카 요시토시의 이 그림은 이 구로즈카에 얽힌 귀파 전설을 제재로 한 그림이다. 미쳐서 식인귀가 된 노파가 잡아온 임산부를 매달아 그 몸을 해체하려고 하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1885년에 간행되었으나 메이지 정부는 풍기를 어지럽힌다고 하여 이 그림을 발매금지 처분했다.
- 신케이산주롯카이센 : 쓰키오카 요시토시의 요괴화 연작. 1889년부터 간행되기 시작해서 요시토시가 사망한 후인 1892년에 완결되었으며 후반 작품 중 몇 점은 요시토시의 밑그림을 바탕으로 그의 문하생들이 완성시켰다. 제목대로 전체 36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 다만 인편에 전해 들은 바로는, 몸의 병은 전혀 낫지 않았지만 정신 쪽은 꽤 안정되어서 혹시 회복될지도 모른다고 가족이나 문하 사람들은 기대하고 있었다고 한다.
읽은 것이로구나, 하고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 그해 말 가까이-.
마당발로 유명한 조노 사이쿠의 주선으로 어떤 모임이 열렸다.
장소는 아사쿠사 오잔카쿠(条野採菊), 취지는 햐쿠모노가타리 괴담회.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차례차례 괴담을 이야기한다는 행사다.
그 모임에는 병 때문에 폐업을 선언한 산유테이 엔초도 무리하게 달려와, 몇 가지 괴담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때, 엔초는 일부러 쓰키오카 요시토시의 유령화를 가져와, 도코노마에 장식해 두고 햐쿠모노가타리에 임했다고 한다.
또 이 모임에 자리했던 5대 오노에 기쿠고로가 바로, 조당 주인이 보았다는 그 유령화의 소유자였다고- 나중에 들었다.
- 윌리엄 제임스 교수가 영국 에든버러 대학에서 했던 강의의 기록을 기초로 한 'The 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를 세상에 내놓은 것은 그로부터 십 년쯤 더 후의 일이다.
잽싸게 그것을 읽은 사람은 영국 유학 중이던 나쓰메 긴노스케- 후의 소세키였다고 한다.
<첫 번째 탐서 · 임종>
- 최근에는 모두 그러냐고 묻자,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고 대꾸했다.
"저는 좋다고 생각하지만, 언문일치를 싫어하는 분도 많은 것 같고, 한문(漢文)이나 우아한 문장이 취향인 분도 계시고요. 비묘 같은 사람을 싫어하는 분도 많은 것 같더군요. 뭐, 앞으로는 오히려 오자키 고요(尾崎紅葉) 같은 사람이 좋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문장이 아름답기도 하고."
"흐음."
"야마다 비묘 쪽은 이야기말로 적혀 있지만, 시대물 같은 책을 보면 안의 대화는 옛날풍이지요. 옛날의 이야기이니 어쩔 수 없겠습니다만. 한편 오자키 고요는 말투가 다듬어진 문어체로 쓰는데도 안의 대화가 요즘 쓰는 말투로 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게 퍽 괜찮습니다."
- 오자키 고요 : 1868~1903. 일본의 소설가. 에도에서 태어났으며 제국대학 국문과를 중퇴했다. 1885년, 야마다 비묘 등과 함께 '겐유샤(硯友社)'를 설립하고 '가라쿠타 문고'를 발행. 이즈미 교카, 다야마가타이, 오구리 후요, 야나가와 슌요, 도쿠다 슈세이 등 뛰어난 문하생글이 있다.
- 고다 로한 : 1867~1947. 일본의 소설가로 본명은 시게유키(成行). '풍류불(風流仏)'로 호평을 얻으며 '오층탑(五重塔)', '운명' 등 문어체 작품으로 문단에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오자키 고요와 함께 고로 시대(紅露時代)라고 불리는 시대를 이룸. 한문학(漢文学)이나 일본 고선, 각 종교에도 정통하여 많은 수필과 사전(史伝), 연구 등을 남겼다.
- "신문체라고 할 정도이니, 별로 정해진 규칙이 없습니다. 고요 같은 경우는 물론 전부 일본어지만, 이상하게 일본식과 서양식을 절충한 듯한 느낌이 들어서 어느 모로 보나 당세풍 같지요."
"당세풍이라."
"신문체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저는 고다 로한(辛田露伴)도 좋아합니다. 아니, 제 취향을 피로해 봐야 소용없겠습니다만.”
"아니, 아니, 괜찮네. 곰팡이가 핀 것 같은 책만 읽고 있어서 뇌에 바람을 자주 씻어 주어야겠다 싶으니. 아무래도 내 머리는 이십여 년이나 지났는데도 문명개화가 안 된 모양이야."
"그러십니까."
- "인간이 당세풍이 아닌 걸세. 그래서 최소한 양서라도 찾아볼까 하고 와보았네만, 읽을 수 없는 것은 읽을 수 없으니 차라리 유럽이나 미국 말의 사전이라도 사서 돌아갈까 생각하고 있었을 정도일세. 하지만 그만두겠네. 지금은 자네가 추천하는 책을 한 번 읽어 보지. 다 살 테니 네다섯 권쯤 적당히 골라 주지 않겠나?”
말하고 나서 경단이나 반찬이라도 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적당히 고른다는 것은 작가에게 약간 실례인 듯한 기분도 들었지만, 어쨌거나 미지의 분야이니 달리 말할 수가 없다. 읽어보고 마음에 들면 다음에는 직접 고를 수 있을 것이다.
- 어떤 책이든 읽어볼 때까지 좋고 나쁜 것은 알 수 없다는 말을, 얼마 전에도 들었다.
세평(世評)은 상관없다.
읽는 사람인 나와 책이 어떤 관계가 되느냐 하는 것만이 전부일 것이다.
- "제 안에는, 아니, 제가 추구하는 세계에는 아무래도 요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그것은 부정적인 힘을 갖고 있고, 불길하고 꺼려지는 것일지도 몰라요. 과거에는 두려움과 기피의 대상이었고, 바로 이 시대에는 어리석고 열등하다고 잘라내야 하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저는 아무래도 그걸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하며, 청년은 손수건을 꺼내 입을 눌렀다.
"좋아하는- 거요?"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추구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좋아하지 않으면 추구하지 않겠지요. 관음보살을 추구하다가 귀신에 다다르고, 그리고 느끼는 것입니다. 어쩌면 나는."
귀신을 추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오자키 선생님의 작품에 요괴 같은 것은 나오지 않습니다. 스승님이 그려내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세상입니다. 하지만 저는 스승님의 새로운 표현 기교 속에서 관음의 힘과 같을 만큼 귀신의 힘도 느끼고 맙니다. 그렇다면 제 문학을 끝까지 추구하면 거기에 관음의 자비가 있을까요, 아니면 귀신의 암흑이 있을까요. 저는 그것을 모르게 되어버렸습니다."
"귀신, 즉 요괴라는 뜻이오?"
"네."
요괴를 좋아합니다, 하고 서생은 손수건 너머로 말했다.
"그러니까 다카토 님이 말씀하시는, 스승님의 저서가 제가 생애 속에서 만나게 될 책 중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한 권이라는 이야기에는 순순히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만일 그렇다면, 그럼, 그."
- "제가 보기에는 이성과 지혜가 넘치고, 질서를 좋아하고, 불결하고 불순한 것을 멀리하시는 성격으로 보이는데-."
"그렇게 생각합니다. 강한 결벽의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 기 보다 더러운 것은 저에게는 공포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그- 괴라고 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요괴는 더럽지는 않습니다."
하고 서생은 말했다.
- "그렇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그로테스크하다고 말하는 모양인데."
"정부(正負)로 나눈다면 부(負)이기는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닐 거예요. 그래도 더럽고 추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뱀은 불길하고 음성(陰性)이고, 독도 있고 무서운 것이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아름답지요. 뱀은 보기만 해도 무섭지만, 더럽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확실히 음성의 부류에 속하기는 해도 뱀은 불결한 것은 아닙니다. 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비늘의 모양은 때로 차갑고 단정한, 공예품 같은 아름다움을 보여주지요. 뱀에게서 신성(神性)을 찾아내는 문화도 많이 있습니다. 고대에는 신이기도 했지요."
"네. 하지만 실제의 뱀은 기피되지요. 만일 이곳에 뱀이 나온다면, 저는 몸이 움츠러들 겁니다.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 "확실히 형이상(形而上)으로는 신성을 갖더라도, 뱀은 형이하(形而下)에서는 그냥 음성의 벌레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는 않지요."
바로 그겁니다, 하고 서생은 말했다.
"요괴는 형이하에서는 시시한 것, 꺼림칙한 것, 배제되어야 하는 열등한 것이라는 말을 듣지요. 하지만 형이상에서는- 그럴까요."
- 형이하의 요괴란- 이 청년이 말했던 오뉴도나 우산 요괴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형이상의 요괴라고요?"
요괴 말입니다, 하고 서생은 말했다.
"그건- 정부의 부(負), 음양의 음(陰) 정사의 사(邪), 선악의 악(惡), 우열의 열(劣), 진안(眞贋)의 안(贋), 성속(聖俗)의 속(俗), 그런 것이라고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서양에서는 가령 옳은 것, 뛰어난 것이 아름답다고 하지요. 건전한 존재, 선량한 존재야말로 아름다움의 판단 기준이 될 것입니다. 옳은 자- 신은 항상 아름답고, 악한 존재- 악마는 반드시 추해야 합니다. 한편 동양에는 탐미(眈美)- 아름다움에 탐닉한다는 말이 있어요. 이쪽은 미추(美醜)를 기준으로 재는 것입니다. 악한 것에서도 열등한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보지요."
- "탐미- 라고요?”
"예. 예를 들어 시체는 꺼림칙한 것, 피해야 하는 것, 죽음은 더러움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것은 대개 다르지 않아요. 하지만 아름다운 시체가 있을 경우, 그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탐미입니다."
"그것은 옳은 방법일까요."
일개 책방 주인은 알 수 없습니다, 하고 주인은 대답했다.
"다만 그런 사고방식은 있어요. 특히 일본에는 강하게 있지요. 서양에서는 퇴폐적이라고 여겨지지만, 이 나라에서는- 그렇지요, 와비나 사비도, 오래된 것이나 썩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 ..."
- "그렇소. 하지만 가려고 해도 걷기가 힘들지 않소? 곧고 평탄한 쪽이 훨씬 걷기 쉬울 것 같은데."
"편하다는 것뿐이겠지요."
하고 조당 주인은 말했다.
"편하다- 는 것뿐인가."
- 그 말이 옳다.
도착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빠르고 늦고 할 것도 없다.
- "예를 들어- 이것은 착각하시는 분이 많은데, 불도(佛道)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목적이 아닙니다. 깨닫기 위해서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 그 자체가 깨달음인 것입니다."
"즉 도착은 하지 않아도 된다, 는 뜻입니까?"
"아니오. 항상 도착한다는 뜻입니다. 수행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고, 수단인 수행이야말로 목적이라는 뜻입니다."
- "하지만 계속 걷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은 하지 않겠습니까?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는 겁니까?"
"도착하지 않습니다. 도착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겠지만, 그것은 가짜입니다. 선(禪)에서는 그것을 마경(魔境)이라고 합니다. 거기에 머물다 보면 몸을 망치게 되지요. 그냥 계속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속도가 느려도, 장해가 앞을 막아도, 길을 잃어도 걷는 것이야말로 불도의 수행입니다."
"문학의 길도 마찬가지겠지요."
하고 젊은 서생은 물었다.
"제 경우는 쓸 수밖에 없다- 는 뜻이 될까요."
- 어떤 책을 원하십니까- 하고 주인은 말했다.
- "제게 어울리지 않는 책을."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책-이라고요."
“네. 만물에 불성이 깃드는 것이라면, 어떤 재료에서도 관음력과 귀신력은 끌어낼 수 있겠지요. 앞으로 문학의 길을 나아가는 데 있어서, 저는 가능한 한 험한 곳에서 입구를 찾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발심(發心)'에 어울리는, 무언가 계기가 될 만한 책을 팔아 주실 수 없을까요."
- "그렇다면 이것을."
조당 주인은 손에 든 종이- 신문지를 서생에게 건넸다.
"이것은 십오 년쯤 전의, 요코하마 마이니치 신문입니다."
서생은 손에 든 신문 기사를 응시했다. 밝지는 않지만 이미 눈은 익숙해졌기 때문에 읽을 수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 "십사 년쯤 전에 일어난, 마쓰키 소동을 아십니까?"
그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연극이나 강담으로도 만들어진 유명한 사건이었다- 고 생각한다.
서생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십사 년 전이라면 아직 이 청년은 네 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 모르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가나가와의 신도(真土)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당시 지세(地稅) 개정이 있었는데, 그것에 얽힌-."
- "제- 붓으로요?"
"가장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하겠다는 당신의 기개에 크게 감복했습니다. 대금은 출세하신 후에 치르셔도 됩니다. 잘난 척하는 말 같지만, 당신이 대성하실 거라고 믿기 때문- 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젊은이는 차 상자를 받아 들고 주인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아마 이 제재(題材)는 저한테는 버거울 테니 그르치게 되겠지만, 이것을 입구로 삼겠습니다. 다카토 님도 오늘은 고마웠습니다. 앞뒤가 뒤바뀌었지만, 저는."
- 이즈미 교타로라고 합니다, 하고 청년은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 그가 바로 훗날의 문호(文豪), 이즈미 교카(泉鏡花)이다.
- 이즈미 교타로가 교토의 히노데 신문에 '간무리 야자에몬' 연재를 개시한 것은 그로부터 3개월 후의 일이었다. 평판은 좋지 않았지만 인기작가 이와야 사자나미(巖谷小波)의 주선이기도 했고, 스승인 오자키 고요의 든든한 후원도 있어서 연재는 40회까지 계속되었다.
- 이즈미 교카 : 1873~1939. 메이지 후기에서 쇼와 초기에 걸쳐 활약한 소설가. 희곡이나 하이쿠(俳句)도 썼다. 오자키 고요를 사사하였으며 '야행순사(夜行巡査)', '외과실(外科室)'로 평가를 얻기 시작하여 환상소설의 명작으로 평가받는 '고야 히지리(高野聖)'로 인기 작가가 되었다. 에도 문예의 영향을 깊이 받은 괴기 취향과 로맨티시즘으로 유명하며, 근대 환상문학의 선구자로도 평가받는다. 그의 이름을 딴 '이즈미 교카 문학상'도 있다.
- 이와야 사자나미 : 1870~1933. 메이지에서 다이쇼 시대에 걸쳐 활동한 작가, 아동문학자. 본명은 이와야스에오, 별호로 사자나미 산진(漣山人)이 있다. 아버지가 귀족원 의원으로 유복한 집에서 자랐으며, 열 살 때 형이 유학을 간 독일에서 보내준 유럽의 동화책 '오토의 메르헨집'을 읽고 문학에 눈을 떴다. 독일학 협회 학교에 입학하지만 의사의 길을 걷기 싫어서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문학을 목표로 하여 진학을 포기, 1887년에 문학결사 겐유샤에 들어간다. 오자키 고요 등과 교류하며 여러 소설을 발표하였으며, 1891년에 하쿠분칸(博文館)의 '소년문학총서' 1편으로 출판한 아동문학의 처녀작 '고가네마루'는 근대 일본 아동문학사를 여는 작품이 되었다.
<두 번째 탐서 · 발심>
- "뭡니까, 아는 사람입니까?"
"응, 아니, 그런 것 같네. 틀림없을 테지. 이거 기이한 인연이군."
야마쿠라는 엉덩이를 들고 일어서더니 그대로 남자에게 걸어갔다.
"실례지만 도쿄 경시청의 야하기 겐노신 님 아니십니까."
관헌인가.
제복을 입지 않은 것을 보니 어쩌면 신분이 높은 인물인지도 모른다.
경찰은 그만두었다고 남자는 대답했다.
- "당신 말대로 나는 야하기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당신이 기억에 없구려. 정말 미안하지만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습니까?"
"무리도 아니지요. 그렇지, 십오 년쯤 전의 일일까요. 아카사카의 요정에서 한 번 뵈었을 뿐입니다.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그."
"와."
잊을 리가 있느냐고 말하며, 야하기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십오 년 전의 아카사카라면, 이보시오. 그건 그 유라 경의 햐쿠모노가타리 괴담 모임 때가 아니오?"
"바로 그렇습니다."
"당신은 그 자리에 있었소?"
야하기는 더욱 눈을 부릅뜬다.
- "미풍양속에 반한다고."
"그렇지 않소. 뭐, 말하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되겠지만, 여자 예능인이 안 된다는 게 아니오. 손님이 안 된다는 뜻이지. 이성을 잃은 손님은 좋지 못한 짓을 하거든. 아무리 단속해도 또 그런 짓을 하지. 색향에 홀리는 남자들이 생기고, 그게 안 된다는 것이 진짜 이유요. 그건 에도 시대부터 그랬소."
"그렇습니까."
"그렇소. 재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를 사랑하지요. 방으로 불러서 좋지 못한 짓을 하고 남자의 색욕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오."
어쩌나 어쩌나 놈들도, 기타유를 듣고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흥분해서 찻종을 두들기던 사람도 있었다.
"뭐, 어떤 직업을 갖든 자유인 세상, 부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들어 보니 남자보다 못할 것도 없고 꽤 훌륭했으니 여자라서 뒤떨어진다는 생각은 잘못이겠지."
- "그러니 재주로 입신출세하고 싶다는 사람을 정부가 찍어 누를 수도 없다고,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소만. 실제로 그렇게 잘되지는 않았고. 어설픈 기타유라는 말은, 그건 경멸하는 말이오. 여자가 기타유를 공연할 수 있을 것 같으냐고, 한 단계 낮게 보는 사람이 경멸하여 부른 것이 시작이지요. 실제로 교토인지 나고야인지에서 다케모토 교시(竹本京枝) 극단이 흥행하러 올 때까지는 손님은 한 명도 붙지 않았고, 좋은 자리에도 오르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어떻소?"
- "자주 착각되는 것이지. 서양을 좋다고 하면 서양물이 든 것, 일본을 내세우면 국수주의라는 말을 듣게 되거든. 그렇지 않소. 어떤 것이든 옳은 것은 옳고, 틀린 것은 틀린 것이오. 서양이니까 옳다, 동양이니까 틀리다는 것은 아닐 거요."
뭐, 그것은 아니겠지만, 흔히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은 자신이 믿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쉽다.
"믿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오, 다카토 군. 옳은 것을 믿어야지. 그러니까 무엇이 옳은지 항상 의심하고 생각하고 연구하는 자세가 중요한 거요. 자유도 민권도 옳지만, 꼭 자유민권운동의 모든 것이 정의였다는 것은 아니지 않소. 그 의심하고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이 철학이오. 내 스승님은 기독교를 통렬하게 비판하시지만 부정하는 것은 아니거든. 기독교를 탄압한 막부와는 다르지. 취해야 할 것은 취하고, 버려야 할 것은 버리라고 말씀하시는 것뿐이오."
- 말은 그렇게 해도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나에게는 기독교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구세주가 있고, 죄를 짊어지고 처형되었다는 것 정도밖에 모른다.
맞소, 맞아, 하고 야하기는 말했다.
"그리스도는 신의 아들이오. 아버지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났고, 수많은 죄를 지은 만민 대신 처형되었다가 사흘 후에 되살아났다고 하지요. 뭐, 그런 이야기는 어느 나라에도 어떤 종교에도 있소. 있지만 그건 이야기이지 않소."
- 야마쿠라는 다소 곤혹스러운 듯한 얼굴로 이쪽을 힐끗 보았다.
"공자의 가르침에도 진리는 있소. 그것이 진리라면 종파가 달라도 파벌이 달라도 옳다는 뜻이 되겠지요. 진리라면 존중해야 하는 거요. 유학은 유학이니까 틀렸다. 불교는 불교니까 옳다는 태도는 옳지 않지요."
그것은 그렇다.
"한편 스승님은 불교라고 해서 지금의 불교계를 전면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아니라오. 오히려 그 타락을 우려하고 계신다오. 지옥이니 극락이니 하는 방편만 앞서고, 승려는 승려의 배움을 닦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시지요. 철학관은, 본래는 알맹이가 없어진 불교에 철학이라는 등뼈를 넣어 재생시키려는 시도로 만들어진 승려의 학교였소. 발포된 헌법에서는 사원과 승려의 권리는 모두 박탈되고 무거운 의무만 주어졌소. 신도와 불교가 분리된 이후로 쇠해 가기만 하는 불교계에 활기를 불어넣어야 하오. 지금이야말로 불자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받고 있는 거요. 그러기 위해서는 철학적 사고가 없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요."
- 이미 연설이다.
이것이 흔한 잡담이라면 맞장구를 칠 수도 있겠지만, 연설이라면 그냥 들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야마쿠라는 틈을 보면서 안주나 술을 주문하고 있으니 대단하다.
- "아니, 그런 사람은 아니오. 빈틈이 없고 무슨 일에나 이치를 따지고,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 그런 부분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집스러운 석두인 사람은 아니오. 그 반대지요. 이치에만 맞으면 생각도 바꾸고, 그런 의미로는 유연하다오. 소견이 좁은 주제에 결코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들과는 달라요. 당신들은- 그, 곳쿠리 씨(狐狗狸さん)라는 것을 아시오?"
"곳쿠리 씨라고요?"
그것은 점술의 일종일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다. 언제였는지는 잊었지만 하는 모습을 본 기억도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내나 어머니가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부녀자가 좋아하는 미신 종류일 것이다.
- "당신의 말대로 미신이오, 미신. 하지만 다카토 군. 누구나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좋겠지만 믿는 사람도 있다오. 그게 유행한 시기는 오륙 년이나 전의 일인데, 어느 집에서나 하고 있었소. 대나무 세 개를 조합해서 다리를 만들고, 쟁반을 올려놓아 테이블을 만드는 거요. 거기에 손을 올려놓고 영혼을 부르지요."
"영혼-이라고요?"
"영혼이라고 하더군요."
하고 야하기가 말한다.
"뭐,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야말로 알 수 없는 일이오. 증거가 없지. 있다는 증거도 없고, 없다는 증거도 없소. 하지만 곳쿠리 씨를 믿는 사람은 영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오. 그게 문제요.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거든.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그렇다고 판단하는 것이라면, 설령 틀렸다 하더라도 이치는 세울 수 있지. 그렇다면 그러고 나서는 그 이치가 옳은지 아닌지를 알아보면 된다는 뜻이 되겠지요."
- "그렇긴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미신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어쩌겠소?"
"하아."
그가 무슨 말을 꺼낼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 "만일, 만일 말이오. 정말로 영혼이 내려왔다고 하면 어쩌겠소? 그게 증명되었다면, 그거야말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게 될 거요. 영혼은 있다. 그것은 대나무와 쟁반으로 불러낼 수 있다. 그것이 진리라면 그것을 기본으로 다시 생각해 나가지 않으면 다른 이치가 성립할 수 없겠지요."
"뭐,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서 선생님은 실험을 하셨다고 야하기는 말했다. 무슨 실험이냐고 물으니 그 곳쿠리인가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 "강령 실험을 하셨소. 선생님은 불가사의 연구회라는 모임에 참가하고 계시거든요."
- "그 철학관일세."
하고 가쓰는 말했다.
"어이, 조당 주인장. 자네도- 원래 승려였지."
"이노우에 님과는 종파가 다릅니다."
"뭐, 염불이든 다이모쿠(題目)든, 어느 쪽이든 석가교 아닌가."
"뭐, 그렇습니다. 저는 임제종(臨濟宗)이지만 이노우에 님의 생가는 아마 정토진종(淨土眞宗)이었던 것 같은데요."
"오오. 그렇다면 알고 있는 게로군.”
"예.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 교사학교의 제일가는 수재라고 들었습니다. 학재(學才)가 지나치게 뛰어나서 급비유학생(給費留學生)이 되었고, 생긴 지 얼마 안 된 도쿄 대학 예비문에 들어가셨다고."
뭐, 머리는 좋아, 하고 가쓰는 말했다.
"조금 지나치게 딱딱한 데는 있고, 아직 풋내기이기는 하지만 생각하는 것은 옳네. 철학이라는 것을 하는 자는 비뚤어진 영감탱이나 세상을 삐딱하게만 보는 이상한 놈이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네만. 뭐, 미숙한 젊은이지."
- 다이모쿠 : 일련종(日蓮宗)에서 외는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花經)'의 일곱 글자.
- 임제종 : 중국 당나라의 고승 임제의 종지(宗旨)를 근본으로 하여 일어난 종파.
- "유감이지만."
주인은 엔료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러면 공양이 되지 않습니다."
"공양-이라고요?"
"예. 저는 인포메이션을 파는 것이 아니라 책을 팔고 있습니다. 그러니 읽고 싶을 뿐, 내용을 알고 싶을 뿐이라는 분께는 무료로 빌려드립니다."
"무료-라고요."
"물론입니다. 제가 파는 것은 책이지 책의 내용이 아닙니다. 한번 읽으면 더는 필요 없다는 분에게 그 책은 책으로서 무가치할 테고, 그렇다면 그런 분께 팔아넘기는 장사는 옳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정말로 갖고 싶은 책이라면 사겠지요. 많은 손님들은 그렇습니다. 고생해 가며 돈을 마련하시는 분도 계시고, 값을 깎는 분도 계십니다. 찾던 책을 만나신 분은 태도와 표정으로도 알 수 있는 법이지요. 그런 분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갖고 싶다고, 그야말로 열심히 구할 방법을 생각하십니다. 그런 분께서 사주셔야만, 책은 책으로서 성불할 수 있겠지요."
"성불-."
물론 비유입니다, 하고 주인은 말했다.
- "부처라고 말씀드리는 건 방편이고요. 사람도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수행하든 정진을 하든 사람이 불상이나 불화 같은 모습으로 바뀌지는 않아요. 공중에 떠오르지도 않고 연꽃방석에도 앉을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전부 비유. 불성은 대개 사람 안에 있고, 그것을 깨닫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말씀이 옳습니다. 하고 엔료는 말했다.
"사람으로서 최선의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성불. 그렇다면 책을 사람에 견줄 때, 책으로서의 역할, 책으로서의 존재 방식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책의 성불."
"주인장."
엔료는 고뇌하듯이 눈썹을 찌푸리고 커다란 눈을 더욱 크게 떴다.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당신은 누구십니까."
책방 주인입니다, 하고 조당 주인은 대답했다.
- "발행소인 것 같지는 않은데요."
"팔기만 하는 고서점 주인입니다. 이노우에 님의 강의를 들은 적은 없지만 '철학관 강의록'은 전부 읽었습니다. 이미 환속했지만, 저도 본디 승려였고요. 석가의 말제자(末弟子)로서 생각하는 바는 큽니다."
"승려셨습니까."
"에이잔 산에서 득도하고, 임제 절로 옮겨가 좋은 스승을 만났고, 이윽고 절 하나를 맡았지만 폐불훼석의 여파로 폐사되고는 생각하는 바가 있어 환속했습니다. 그 후로는 재야의 호사가, 지금은 그냥 책방 주인입니다."
- "생각하는 바라니요?"
"출가한 사람은 모르는 처지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처지인지요?"
"절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불도(佛道)뿐. 불도에서 벗어난 지혜는 설령 진리라 하더라도 외도(外道)의 배움입니다. 그것은 절 안에서는 배울 수 없다고 착각했지요."
- "그런 마경(魔境)에 사로잡혀, 저는 출가(出家)에서 출가(出家)했습니다. 그러니 환속했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뒷면의 뒷면은 앞면, 환속과 다를 바는 없습니다. 불가이면서 유학을 배우고, 노장(老莊)을 알고 국학을 익히고, 타국의 사상을 알고, 이학(理學)과 정학(政學)을 익힌다는- 분수에 맞지 않는 대망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실로 얕았지요. 생각할 것까지도 없는 일입니다. 불도의 수행도 어중간해서 한 번의 깨달음도 얻지 못한 어리숙한 자가 다른 학문의 이치를 닦을 수 있을 리도 없고, 정신이 들어 보니 여기저기 손만 뻗고 있었습니다.”
- 그러다가 자리 잡은 곳이-.
평범한 책방입니다, 하고 조당 주인은 말했다.
- 나는 조금 감탄했다.
이곳에 자주 드나들게 된 지 벌써 반년 이상이 지났지만, 이 주인의 반생은 들은 적이 없다. 하기야 지금 한 이야기도 진실인지 아닌지는 몹시 의심스럽지만.
- "평범한 책방, 아주 좋습니다."
엔료는 미소를 지었다.
"지금의 불교계의 상황을 생각하면 당신은 승려였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만."
"무엇을요. 저 같은 사람이."
"아니, 저도 비슷한 처지입니다. 본래는 학승(學僧) 같은 것이었지만 결국은 철학에 다다랐고, 여기저기로 눈을 옮기며 감당하지 못할 것을 끌어안고 말았습니다. 본가인 절도 물려받지 않았습니다."
"그건 어떤 이유 때문이신지요."
"제가 에치고의 절을 물려받는다고 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에치고에서 아무리 정진해도 이 나라는 바뀌지는 않을 테고, 일본 전체의 사원이 멸망해 버린다면 본가만 남는다 해도 아무 소용도 없지요."
"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하고 주인은 예를 다하듯이 머리를 숙였다.
- "하지만- 저와 이노우에 님은 크게 다르겠지요."
"그렇습니까?"
"이노우에 님은 지(知)를 추구하고 이치에 닿으셨어요. 그 이치로 중생을 교화하려고 하시지요. 이치로 세상을 읽어내고, 이치를 넓혀 세상을 이끌려고 하고 계십니다. 이노우에 님은 바로, 이 메이지의 계몽인입니다. 저는 어떤가 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지금도 한 권의 책을 찾아 헤매고 있을 뿐."
"한 권의 책이라고요?"
한 권의 책입니다, 하고 주인은 되풀이했다.
- "그 한 권을 만나지 못해서 찾고 찾다가 모인 책이 이 누각에 있습니다. 어느 책이나 둘도 없는 기쁨을 제게 준 소중하고 소중한 책입니다. 읽어서 쓸모없는 책이라곤 한 권도 없습니다."
세상에 쓸모없는 책 같은 것은 없지요, 하고 주인은 말했다.
"책을 헛되이 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 책들은 저의 한 권이 아닙니다. 제가 갖고 있으면 사장이 되지요. 그래서 본래 가져야 할 분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속죄에 가까운 마음으로 팔고 있는 것입니다."
- "배우는 분에게도 여유가 없다는 뜻인지요."
"없겠지요. 가난뱅이는 배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학비를 무료로 하면."
"사학(私學)은 꾸려나갈 수 없지요."
"예. 하지만 그래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합니다. 나쁜 짓을 하면 지옥에 간다는 협박을 받고, 염불을 외면 극락에 간다고 속아서 건전한 삶을 보낼 수만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좋은 일이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방편입니다. 지옥에 가고 싶지 않으니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면, 엉덩이를 두들겨 맞는 것이 싫어서 못된 장난은 하지 않는다는 것과 다를 것이 없어요. 그러면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그것은 그렇다.
하지만 결과는 같다.
- "어느 쪽이든 나쁜 짓을 하지 않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느냐-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나쁜 짓에는 나쁜 짓으로 단정될 만한 이유가 있지요. 그것이 왜 나쁜 짓이 되는지, 악이란 무엇인지를 알고만 있으면 선악은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악이 왜 악인지를 알고 있다면 나쁜 짓을 하지 않게 되겠지요. 그것이 옳은 방식입니다."
위협해서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어린아이 취급입니다, 하고 엔료는 말했다.
"다만 이 나라가 이 나라의 백성이 어린아이 같으니 그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신다면, 그야 대꾸할 말도 없겠지요. 가르침을 듣는 쪽도 형편없지만 가르치는 쪽도 형편없는 것입니다."
- 저것이-
돈을 벌기 위한 한 권인가 싶어, 나도 모르게 몸을 내밀었다. 시호루가 소매를 잡아당긴다. 무례한 짓은 삼가 달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바로 그겁니다, 엔료 님."
"그거라니요?"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 적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엔료 님, 이것은 무엇이 적혀 있던 책.입.니.다."
"모르겠군요."
"옛날에는 책을 모으는 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장서를 잃고 실망해서 목숨을 끊은 하야시가(林家)의 조상 라잔(羅山)의 예를 들 것까지도 없이, 에도의 지식인에게 서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지요. 그것은 왜겠습니까.”
"그건."
엔료는 고민스러운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너무나도 당연한 질문을 받고 대답하기가 당혹스러운 듯 보였다.
- "그야, 서책에는 많은 지(知)와 학(學)이 적혀 있기 때문이겠지요. 시간을 뛰어넘고 장소를 뛰어넘어 그런 견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 책은 왜 쓰일까요."
"말할 것까지도 없지요. 그것을 쓰는 사람의 지를, 학을 남기고 널리 퍼뜨리기 위해서일 겁니다."
"그렇다고 치고-. 그럼 왜, 옛날의 지식인들은 책을 읽느라 그렇게까지 고생을 해야 했을까요."
"그건."
"한편으로는 남기고, 널리 퍼뜨리고, 전하기 위해서 기록된 서책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런 견식을 얻고 싶다고 강하게 바라는 사람도 있지요. 그런데 그 둘은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경전을 찾아 국법을 어기면서까지 천축으로 간 현장 삼장의 예를 들 것까지도 없이, 견식을 얻기- 서책을 읽기 위해서 기울여진 노력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이 나라에서도 옛날에는- 아니, 바로 얼마 전까지는 아무리 높은 뜻이 있어도 자유롭게 고금의 서책을 접할 수는 없었습니다. 학문에 이해가 두터운 번에서 수집이라도 하지 않는 한, 개인이 서책을 모으기는 어려웠어요. 아니, 일부 계층을 제외하면 불가능했지요. 서민은 제대로 책을 읽지도 못했습니다. 읽히지 않으면 널리 퍼지지 않아요. 남지도 않지요. 그렇다면 쓰이는 의미도 없는 것이 됩니다."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요. 우선 수가 적었을 거예요. 사본의 경우는 부수도 제한될 테고, 인쇄본이라 해도 과거의 기술로는 그렇게 많이 찍을 수도 없고요. 또 글을 아는 사람의 수도 적었소."
"예.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주인은 말했다.
- "서책은 파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기술이 바뀌고, 구조도 바뀌고 있습니다. 대량으로 인쇄할 수가 있게 되었어요. 무엇보다."
- "진리는 누구의 것도 아닌, 처음부터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까.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기만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통하기 어렵다면 통하도록."
궁리하면 됩니다, 하고 조당 주인은 말했다.
"진정한 방편을 만드는 것입니다."
"방편이라. 지금 통하는 새로운 방편 말입니까."
- "그럼 당신은."
어떤 책을 원하십니까- 하고 주인은 말했다.
- 엔료는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주인장이 말씀하시는 그 방편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은 있습니까."
"있습니다."
주인은 계산대로 가더니 세 권의 재래식 장정 책을 손에 들고 엔료 앞으로 돌아왔다.
"이것은 1776년에 나온 요괴의 책입니다."
"요괴-라고요?"
엔료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예. 도리야마 세키엔이(鳴山石燕)라는 가노(狩野) 파의 그림쟁이가 쓴 '화도백귀야행(畵圖百鬼夜行)'이라는 책입니다. 이것은 교카나 기뵤시보다 먼저 세상을 풍자하기 위해서 출판된 오락 책인데, 전통적인 요물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이것이- 방편이 됩니까?"-
- "엔료 님이 박멸하려고 하시는 미신과 달리, 이런 전통적인 요물이 실재한다고 믿는 사람은 에도 시대부터 단 한 명도 없었겠지요. 이것은 오락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다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같은 것입니다."
엔료는 그 책을 받아 들고 팔락팔락 넘겼다.
"덴구에- 유령. 너구리. 갓파. 귀신- 이것이- 세상에서는.”
"네. 그것을 요괴로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보이게 한다고요. 이- 귀신을 말입니까."
성상 즉 이콘(icon)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하고 주인은 말했다.
"그 책에 있는 대로 에도 시대에 유령은 요물의 일종, 즉 만들어낸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어느새 그렇지 않게 되어 버렸어요.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멋을 이해하지 못하는 촌뜨기만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그려져 있는 요물은 엔료 님이 부정하시는 요괴나 미신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요, 요괴 미신이란 이런 것- 이라는 증거."
"이런 것-."
"보고도 보지 못한 척, 말하지 않는 것이 암묵의 약속. 그것을 모르는 것은- 어리석은 자. 그런 뜻입니다. 없는 것은 없어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 나라에는 그런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나라의 좋은 점, 남겨야 할 방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문화가 사라져 버렸어요. 있느냐 없느냐의 양자택일, 결국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말지요. 그것이야말로 몽매, 미망이라는 것."
<세 번째 탐서 · 방편>
- 부엌일을 봐주는 아낙이 완고해서, 뱀장어는 겨울에는 먹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런 것이 어디 있느냐, 에도 시대부터 뱀장어는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었다고 말해도 고집스럽게 듣지 않는다. 본래 뱀장어는 겨울이 맛있다, 지방이 올라서 아주 살살 녹는다고 가르쳐주었지만,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뱀장어는 토왕(土旺)의 축일(丑日)에 먹는 것이고, 토왕은 여름이라는 것이다.
- 그것부터가 벌써 틀렸다. 토왕은 일 년에 네 번 있다. 입춘, 입하, 입추, 입동, 그전의 18일간은 모두 토왕이다. 한편 축일은 12일에 한 번 반드시 돌아온다. 토왕 기간 중 최소한 한 번은 축일이 끼어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도리노이치(酉の市)에 니노토리(二の酉), ...
- 니노토리 : 매년 11월 유일(酉日)에 거행되는, 오토리 신사(鷲神社)의 제례 때 서는 장. 복(福)과 부(富)를 긁어모은다는 갈퀴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행운의 물건을 파는 장이다.
- 하지만 무사 특유의 거만함이라고 할까, 대범함은 조금도 없다. 음울하다고 할까 비장하다고 할까, 깊이 생각에 잠겨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노인과의 거리는 항상 일정해서, 좁혀지지도 벌어지지도 않았다.
어쨌거나 이 두 사람은 보통내기는 아니다.
- 이윽고 왜 이런 야만스러운 놀이를 하는 거냐며 주인은 설교를 시작했다. 사벨이니 소총이니 하는 위험한 것만 파는 주제에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 쪽도 되바라져서, 야만스러운 게 아니라 토벌이다. 지금은 이 녀석이 도적이니 베어도 된다고 한다. 묘한 쓰개는 관군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관군은 그런 비겁한 짓은 하지 않을 거라며 주인은 눈썹을 찌푸렸다.
"당한 아이는 칼을 갖고 있지 않지 않으냐.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
"토벌이니까 괜찮아요. 도적은 해치워도 된다고요."
- "늙어빠져도 젊을 때 읽었던 책은 기억하는 법이지요. 눈이 흐려져서 잘 보이지 않지만, 이 책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십 년이나 전의 일인데도 말이지요."
"고생하며 읽으셨기 때문이겠지요."
계산대 쪽에서 목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계단을 내려온 곳에 주인이 서 있었다. 계절감이 없는 하얀 기모노 차림이다.
- "잘 오셨습니다. 제가 이 책방의 주인입니다. 히카와(氷川)의 두목님 소개로 오셨다면서요-."
"아아, 네. 그렇습니다, 저는."
"나카하마 만지로(中濱萬次郞) 선생님- 이신 것 같습니다만."
- 만지로, 들은 적이 있다.
"John Mung- 존 만지로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편이 좋을까요."
"존 만지로- 선생님. 이분이?"
펄쩍 뛰어 물러나고 말았다.
- 사실이라면 이 노인은 덴포(天保) 연간(年間)에 미국으로 건너간 유일한 일본인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모든 의문은 풀린다. 전해 들은 바로는 도사 지방의 어부였던 만지로는 큰 폭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무인도에 다다랐고 미국의 포경선에 구조되지만, 조국은 쇄국정책을 펴고 있었기 때문에 돌아올 수 없었다. 그는 그대로 미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 학교에서 공부하고, 가에이(嘉氷) 시대가 되자 자력으로 귀국, 이윽고 무사 계급으로 발탁되어 활약했다는 걸물이다.
- "이런, 꿰뚫어 보고 계셨다니, 조금 쑥스럽군요. 그럼 나카하마 선생님, 그걸 아시면서도 이곳에 오신 겁니까?"
만지로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장은 당연히 그렇게 말할 거라고 들었습니다. 다만 가쓰 선생님은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구할 수 없다, 하지만 책은 사람을 구할 때도 있다고요."
"호오."
"조당 주인- 이것은 당신을 말하는 것이지요. 조당 주인은 서책을 공양하는 것이 직업이라고 한다, 서책을 성불시키려면 진짜 주인을 찾아낼 수밖에 없다고 지껄인다- 뭐 이 말은 가쓰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바보 녀석은 책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겠지만, 뒤집어보면 그것은 사람을 위해서이고, 그런 책을 만난 사람이 구원받게 된다는 뜻이 되지 않겠는가- 라고 말씀하시기라도 하시던가요."
조당 주인은 가쓰의 말투를 흉내 내어 말했다.
바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노인은 대답했다.
조당 주인은 뺨을 경련시키며 쓴웃음을 짓더니,
"정말이지, 이름대로 제멋대로인 분이십니다."
라고 말했다.
- 가쓰 가이슈의 가쓰(勝)는 '제멋대로 굴다, 자기 좋을 대로 하다'라는 뜻의 갓테(勝手)에 쓰이는 한자이기도 하다.
- "자유나 꿈, 그런 바람은 불고 있겠지요. 인종이 다른 이 나도, 물론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생계는 꾸릴 수 있었어요. 그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돈도 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돌아올 수도 있었지요."
고생도 많으셨을 줄 압니다, 하고 주인은 공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나카하마 님의 이야기만 듣고서는- 인종차별 문제도 머지않아 해소되어 갈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그것은 매우 뿌리가 깊은 것일 테니, 시간은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럴까요. 뭐,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이 나라도 똑같이 되지 않았을까 싶군요. 그야말로 피부색이 다른 것도 아니고-."
"이 나라에는."
흔들림 없는 정의가 몇 개나 있었습니다, 하고 주인은 말했다.
"신분이나 계급의 차이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나라에는 집안이 있어요. 번이 있어요. 막부가 있어요. 조정이 있어요. 그것들이 자아내어 온 긴 역사가 있어요. 그것들을 일단 못 쓰게 만들어 버릴 수 있었다면- 이야기는 더 간단했겠지만, 웬걸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 구분의 수만큼 의는 있고, 의를 따른다면 양립할 수 없는 사태도 생기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마즈의 의와 도쿠가와의 의는 같은 의이지만 시마즈와 도쿠가와는 다른 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쇼군가를 주군으로 삼는다면 시마즈는 불의가 되겠지요. 하지만 사쓰마 번 안에서 시마즈 공을 세우는 것은 바로 의입니다. 하지만 막부 위에 천자를 둔다면 어떻게 될까요."
- "어쨌거나 에노모토 님은 많은 병사를 죽게 했으니까요-."
아아, 그렇군요, 하고 노인은 말했다.
"가쓰 선생님도, 가령 우에노야마 전투는 막을 수 없었던 셈이고 개성(開城)한 이후로도 전투는 끈질기게 계속되었어요. 그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도쿠가와 가문은 구할 수 있었지만 많은 사람이 죽었지요. 후쿠자와 선생님의 입국론(笠國論)에 기초해서 생각해 보면 가쓰 선생님의 행위는 높이 평가되어야 할 테고, 사실 그 점은 칭찬하고 계십니다. 그 후에 억지로 태연한 척하는 오기가 부족하다는 말씀이시겠지요. 큰소리를 치려면 해내라고- 후쿠자와 선생님 입장에서는 그런 마음이었던 것이 아닐까요."
"해내라, 고요."
"생각건대, 후쿠자와 선생님도 사람이 죽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겠지요."
"아아."
"가쓰 선생님은 항상 산 사람을 우선하십니다. 죽어 버린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냉정하게 딱 잘라 생각하고, 눈물을 삼키면서도 잘라내시지요.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마음까지도 잘라내고, 남은 사람을 살리려고 하십니다. 한편 후쿠자와 선생님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사람의 죽음을 깊이 슬퍼하시고요. 그러니 죽지 마라, 죽이지 마라, 사망자를 내지 않을 방법을 짜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뭐, 생사에 관해서만 말하자면 가쓰 선생님은 현실주의자이고 후쿠자와 선생님은 이상주의자- 라는 뜻이 되려나요."
- 우에노야마 전투 : 무신 전쟁이 일어났을 때 에도는 사이고 다카모리와 가쓰 가이슈의 회담으로 무혈개성이 이루어졌고, 에도는 전쟁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싸우지도 않고 항복했다'며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우에노야마 산이었으며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이 창의대(彰義隊)였다. 신정부군을 이끌고 이들을 소탕한 자는 오무라 마스지로라는 인물이었는데, 막부의 신하로 구성되어 있던 창의대는 하루 만에 전멸했다.
- 어쨌거나 사람이 죽는 것을 우려하고 계시는 것이겠지요, 하고 주인은 말한다.
"후쿠자와 님이 줄곧 재야에 계시는 것도, 인재 육성에 모든 힘을 쏟으시는 것도, 자신의 분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해라, 할 수 없다면 호언장담을 하지 마라, 할 수 있다고 말해놓고 해내지 못했다면 그때는 으스대지 말고 제대로 보상을 하라고- 뭐, 그 글은 그런 뜻이 아닐까 싶군요."
"예에."
뭐 그렇게 생각하면 납득도 가는구려, 하며 노인은 다시 무릎을 쳤다.
- "아니, 가쓰 선생님도 후쿠자와 선생님도 간린마루 호에서 동행한 사이인데, 나한테는 두 분 다 중요한 분이니까요."
히카와의 두목님은 알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며 조당 주인은 미소를 지었다.
"뭐, 가쓰 야스요시도 후쿠자와 유키치도, 둘 다 보통 방법으로는 대할 수 없는 재인(才人)이지요. 서로 속마음을 잘 알면서 주고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예에, 그럴지도 모릅니다."
양쪽 모두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연극을 하고 있겠지요, 하고 주인이 약간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하자 나카하마 만지로 노인은 겨우 웃는 얼굴을 되찾았다.
- "그렇다면 나도 시시한 일로 마음 아파한 것이 되는구려. 생각해 보면 가쓰 선생님도 웃고 계셨었는데. 뭐, 그것도 억지로 태연한 척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거 이거-"
노인은 거기에서 진지한 얼굴로 돌아왔다.
"혹시 주인장, 후쿠자와 선생님의 '억지로 태연한 척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는, 사본이 아니라 가쓰 선생님에게 보내진 초고 자체를 보신 것이 아닌지요."
그것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고 말하며 주인은 웃었다.
- "그런데- 그 비뚤어진 히카와의 어르신과 나카하마 님, 저기에 계시는 분은 어떤 관계이신지요."
조당 주인은 시선으로 입구에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그것이 말이지요. 저자는."
산 채로 죽은 사람입니다, 하고 노인은 말했다.
"호오."
"저자의 이름은-"
"이름은 없습니다."
남자는 노인의 말을 가로막았다.
"27년 전에 잃었소. 그 후로 이름을 댄 적은 없습니다."
"나나시노 곤베에(名無しの権兵衛) 님이십니까."
"죽은 사람에게 이름은 필요 없습니다."
그렇다.
- 나나시노 곤베에 :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이나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사람'을 가리켜 사용되는 속어, 가명.
- "하지만, 나는-."
"오카다 님. 당신은 틀렸습니다. 살라는 말을 듣고, 죽었어요. 스스로 자신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죽은 사람을 공양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산 사람을 위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불법(佛法)으로 구원될 수는 없지요-."
- 자, 당신은 어떤 책을 원하십니까, 하고 주인은 말했다.
- "나는-"
"그래요. 당신에게는 우선 알아 두어야 하는 것이 있군요."
주인은 그렇게 말하더니 계산대로 돌아가, 재래식 장정의 책을 몇 권 집어 들고 남자 앞에 섰다.
얇지만 십여 권은 되었다.
"1826년에 출판된 책입니다. 열네 권입니다. '중정 해체신서(重訂 解體新書)'라고 하지요."
"해체신서-."
만지로 노인이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혹시 'Anatomische Tabellen입니까?"
"예. 통칭 '타헬 아나토미아', 스기타 겐파쿠(杉田玄白)가 번역한 '해체신서'를, 그의 제자인 오쓰키 겐타쿠(大槻玄沢)가 새로 번역한 것입니다. 원래의 책은 오역도 많고, 도판도 목판이라 지저분했지만-."
"아니, 아니, 그런 것을- 왜."
“오카다 님. 당신은 사람이 왜 살아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주인은 그렇게 말했다.
- "고매한 사상을 갖는 것도 좋겠지요. 의도 충도 예도 효도, 정치도 물론 중요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이룰 것인가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그 이전에,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음식을 먹고 똥을 싸고, 피를 순환시키기 때문에 사람은 이렇게 살아 있는 것입니다."
주인은 책을 펼쳤다.
"칼로 베면 왜 죽는 것인가. 목을 조르면 왜 죽는 것인가. 그것을 당신은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를 아시게 될 겁니다. 모든 것은."
거기에서부터, 하고 조당 주인은 말했다.
"거기에서부터."
"그것을 알면, 당신은 자신이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살아 있다면 해야 할 일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겠지요. 당신의 인생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겠습니다."
라고 나가하마 만지로는 말했다.
- 책을 공손하게 받아 든 오카다 이조는 더 이상 그렇게 검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 남자가 오카다 이조 본인이었는지, 아니면 오카다 이조의 이름을 사칭한 다른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광인(狂人)이었는지- 그것은 알 길도 없다.
다만 나카하마 만지로에게 아주 잠깐, 꽤 숙련된 호위가 붙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 자신의 생전묘(生前墓)를 시찰하러 간 만지로는 이인조 자객의 습격을 받았다. 그때 자객을 베고 만지로를 지킨 사람이 오카다 이조라고, 만지는 집안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때 이조는, 덤벼든 두 명 외에 복병 두 명이 더 숨어 있는 것을 순식간에 간파하고, 멋지게 만지로의 목숨을 지켰다고 한다.
- 다만 만지로의 생전묘 시찰이 이루어진 것은 1868년의 일이고, 그렇다면 그것은 기록상 오카다 이조가 처형된 후의 일이라는 뜻이 된다. 그것이 만지로의 착각인지, 아니면 기록상의 오류인지, 동명이인이 존재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 만지로를 지킨 남자가 그 후 어떻게 살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네 번째 탐서 · 속죄>
- 여전히 기분 좋은 듯이 쿨쿨 자고 있다.
점심때는 이미 지났고, 저녁 식사까지는 시간이 있다.
이제 와서 외출할 기력은 없어 점심밥은 포기하고 사온 책을 읽기로 했다.
- 1편이라고 되어 있었기에 '고가네마루'부터 읽기로 했다. 책은 많이 있다. 가재도구라곤 책뿐이다. 게다가 평소 조당 같은 곳에 다니며 질릴 정도로 서책을 보곤 한다. 그런데도 이렇게 책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새롭기 때문일까.
아니, 책을 물건으로서 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물체로서, 잘 만들어져 있다.
- 삽화를 보고, 막상 본문을 읽으려고 페이지를 넘겨보니 왠지 문장이 딱딱하다. 어린이용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읽어 나가면서도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 생각지도 못한 일인데, 서문을 기고한 사람은 바로 모리 오가이(森鴎外)였다. 물론 자세히는 모르지만 군의관이기도 하고 번역도 종종 하고, 매우 어려운 말을 하는 똑똑한 사람이라고 들었다. 조당 주인이 추천해 주어서 '국민의 친구'에 게재된 '무희'라는 단편만 읽었다. 전아(典雅)한 문체로 기술되어 있었지만 무대는 독일이었고, 게다가 일본인과 이국인의 연애가 그려져 있었다.
- 모리 오가이 : 1862~1922. 메이지. 다이쇼 시대의 소설가, 평론가, 번역가, 육군 군의관, 관료, 본명은 모리 린타로(森林太郎) 시마네현 출신으로 도쿄 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육군 군의관이 되어 육성 파견 유학생으로 독일에서 4년을 지냈다. 일본으로 귀국한 후 소설가 및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동인들과 함께 문예잡지 '시가라미조시(しがらみ草紙)'를 창간하기도 했다. 청일전쟁에 출정하는 등 잠시 창작활동에서 멀어지기도 했지만 '스바루'가 창간된 후 다시 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만년에는 궁내성 소관의 박물관인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현재의 도쿄 국립박물관·나라 국립박물관·교토 국립박물관 등) 총장과 제국미술원(현재의 일본예술원) 초대 원장 등도 역임했다.
- 상당히 허를 찔렸다.
마침 신문체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무렵에 읽었기 때문에 약간 읽기 어려웠던 것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생각할 것까지도 없이 격조 높은 미문(美文)이어서 중반부터는 술술 읽혔다.
- 다 읽고 나서 생각한 것은 같은 내용을 쓰보우치 쇼요의 문체로 썼다면 인상이 상당히 달라졌을 거라는 것이었다.
조당 주인의 이야기로는 오가이는 쇼요와 문체를 둘러싸고 크게 논쟁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의외다.
사자나미 산진의 글도 단정한 문어문으로, 도저히 어린이용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다만 내용은 개가 원수를 갚는 이야기다. 호랑이니 여우니 하는 금수들만이 활약하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내용은 분명히 어린이용이다.
읽어 나가다 보니 어린이용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빠져들어, 눈 깜짝할 사이에 다 읽고 말았다.
옛날에 읽었던 합권(合卷)이나 아카혼 등을 떠올린다. 문체 하나로 이렇게까지 읽는 맛이 달라지는 것인가 하고 감탄했다.
- 이어서 '당세소년기질'을 읽었다.
이쪽은 어린이용이라기보다 어린이가 주인공인 이야기였다. 이것도 지금까지 읽은 적이 없는 것이었는데, 단숨에 읽고 말았다. 읽고 말았지만, 왠지 뭔가 부족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대체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 하고 얼굴을 들어 보니 울짱을 올려둔 바구니 입구에서 고양이가 얼굴을 내밀고 이쪽을 보고 있다.
- 모사쿠의 목소리는 아니다. 하기야 모사쿠라면 계십니까, 라는 말은 하지 않고, 말하더라도 그때는 이미 문을 열고 있다. 그의 아내는 말도 없이 들어와서 대뜸 웃거나 하기 때문에 곤란하다.
그러나 이 집을 찾아올 사람이 있을 리도 없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한테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무리 나라도 가족에게는 가르쳐주었지만, 당연히 가족이 찾아온 적이라곤 없다.
혹시 집에서 사람을 보내 나를 집으로 데려가려고 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하고 긴장했지만, 그럴 리도 없을 거라고 다시 생각했다.
- "다카토 님 댁이 여기 맞는지요."
가족의 짓이라면 이런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문을 열자, 잘 차려입은 젊은이가 불안한 듯이 서 있었다.
갸름한 얼굴의 사람 좋아 보이는 청년으로, 야위었는데도 탄탄해 보이는 것은 자세가 좋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불안한 듯 느껴지는 것은 표정 때문이다. 귀가 크고, 눈은 둥글고, 생김새만은 동안 축에 든다. 밑바탕은 청년이니, 그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아무래도 허약한 인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입고 있는 옷은 고급스러워 보이고, 하오리에는 주름 하나 없다. 짚신도 맞춘 것 같고, 버선도 질이 좋은 것이다.
값을 품평하고 있자니 청년이 다카토 님이십니까, 하고 다시 물었다. 나는 허둥지둥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한다.
- 그러는 사이에 옆길에 다다른다. 싸리를 바라보며 오솔길을 나아간다.
이와야 사자나미는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고 시원스럽게 걷는다. 좋은 집안에서 잘 자란 사람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윽고-.
기묘한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당연히 그것이 서점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하고 생각하지 않고를 따지기 이전에, 어찌 된 셈인지 건물이라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숲이나 나무, 그런 자연물에 녹아들어 버리는 것인지, 비교할 것이 없어서 건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 것인지, 커다랗고 기묘한 모양을 한 건물이기는 하지만 왠지 보지 못하고 지나치고 만다.
- 서책이니 가능한 일입니다, 하고 주인은 말했다.
"어떤 것이든, 문자로 만들고 나면 같은 위치이니까요. 성인과 속인, 존귀함과 비천함뿐만 아니라 허도 실도 없지요. 구분은 없습니다. 다만 이곳에 있는 박물은 모두 죽었습니다만."
"그럴까요."
예, 죽었습니다. 하고 주인은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가게는 조당이라고 하는 것이다.
- "읽히지 않으면 죽은 것입니다. 이 모습은 그냥 목록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곳은 서책이라는 묘비가 늘어서 있는 무덤입니다."
"읽으면-"
유령이 나타난다고 주인은 말했었던 것 같다. 과거의 지식의 유령이다.
- 묘지가 아닙니다, 하고 사자나미는 말했다.
"이렇게 마음이 뛰는, 매혹적인 묘지가 어디 있습니까. 아니, 묘지라고 한다면 묘지라도 상관없습니다. 여기가 묘지라면 저는 묘지기가 되고 싶군요. 주인장, 당신은 안 그렇습니까?"
"저는 공양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양-이라고요?"
"어울리는 독자와 서책을 만나게 해 주는 것이 공양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책은 평생에 한 권만 있으면 됩니다. 그 사람의 그 한 권과 그 책의 그 한 사람을 만나게 해 주기 위해서, 저는 이 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한 권이라고요?"
"네. 그래서 여쭙겠습니다. 자, 이와야 선생님은-"
어떤 책을 원하십니까- 하고 조당 주인은 말했다.
- "제 평생의 한 권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호오."
"게다가 저는 그것을 이미 소유하고 있습니다. 다만 너무 많이 읽어서 상하고 말았지요."
"호오."
주인은 흥미롭다는 듯이 청년의 얼굴을 보았다.
"그럼 두 권째가 필요하시다는 겁니까."
"예. 처음으로 손에 넣었을 때와 똑같이, 깨끗한 상태로 보존해두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찾고 있었습니다."
- "보, 보존용이라고요?"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말하고 말았다.
나에게는 그런 발상은 없었기 때문이다.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을- 보존해 둔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영원히 보존해 두고 싶습니다. 서책에는 쓴 사람의 마음이 봉인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읽은 사람의 시간도 봉인할 수 있지요. 아닙니까?"
그렇겠지요, 하고 주인은 대답했다.
"그럼 그 책의 제목은."
"네. 1875년에 독일에서 발행된 프란츠 오토의 저작, 'Der Jugend Lieblings-Märchenschatz'라는 책입니다."
"아아."
- "선생님의 마음은 잘 압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틀렸-습니까."
"틀렸습니다."
"제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하신다면, 그것은 옳은 말씀입니다. 제 방식은 옳은 것은 아니겠지요. 저는 현세에서 눈을 돌리고 도망치고 있습니다."
- 도망치는 게 뭐가 나쁩니까, 하고 주인은 날카로운 말투로 말했다.
"아니, 그건."
"당해낼 수 없는 상대와 대치했을 때, 몸에 위험을 느꼈을 때, 짐승은 망설이지 않고 도망치지요. 왜 도망치느냐 하면, 그것은 살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도피라는 것은 살아남기 위해서 하는 행위입니다."
"살기 위해서-라고요?"
"도망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것은,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중에서 사람 정도입니다. 노력하면 된다는 둥 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헛소리. 해볼 때까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은 정신 나간 자의 헛소리. 불가능한 일은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할 테고, 가능한지 아닌지를 밝혀내는 것도 빨라서 나쁠 것은 없습니다. 설령 밝혀내지 못한다고 해도, 도망치다 보면 안전하기는 하겠지요. 승패라는 천한 가치판단으로밖에 사물을 파악하지 못하는 어리석고 열등한 자가, 도망치는 것을 경멸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맞는 것도 있고 맞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도망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조당 주인은 엄한 말투로 말했다.
- "하지만 그러면- 제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아시겠습니까. 사람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도 말씀하셨던 대로입니다. 그래도 부족하다,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틀을 넓혀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건- 압니다."
"그 틀을, 어느 쪽으로 넓히느냐 하는 것뿐이지 않습니까."
"어느 쪽-이라는 것은."
"이제부터 갈 곳을 향하든 지금 온 곳을 향하든, 현실을 향하든 허구를 향하든- 어디를 향하든 마찬가지입니다. 이쪽으로 향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반대쪽으로 향하면 뒤를 향하는 것입니다.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느 쪽을 향하든 앞을 향하고 있는 것이 되겠지요."
- 상상해 보십시오, 하고 주인은 말했다.
"모두가 오른쪽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합시다. 그리고 당신은 오직 혼자, 왼쪽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오른쪽에 목적이 있다면 왼쪽으로 나아가는 것은 도망치는 것이 되겠지요. 하지만 당신은 왼쪽으로 나아가고 싶어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목적은 왼쪽에 있어요. 그렇다면 그건 도피가 아니지요. 모두가 오른쪽을 향해 달리고 있다고 해서 당신의 목적도 오른쪽에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오른쪽을 보면서 왼쪽으로 나아가면 반대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되기도 하겠지요. 그러면 목적으로부터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게 되기도 하겠지요. 빈틈이 커질 것입니다. 그것이-."
궐여(闕如)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하고 주인은 말했다.
- "당신이 하는 일은 결코 역행이 아닙니다. 무의미해도 괜찮아요. 비유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소설이란 본래 그런 것이겠지요. 의미니, 사상이니, 그런 것은 그야말로 유령 같은 것. 소설을 읽고 거기에서 무엇을 찾아낼지, 어떤 유령을 볼지는 독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건 사견이지만, '고가네마루'는 문학사에 남는 작품이 될 겁니다."
"아니- 그건."
그건 환골탈태 같은 것입니다, 하고 사자나미는 말했다.
- "난센 쇼소 마히토(南仙笑楚満人)의 원수 갚기 이야기에서 착상을 얻은 겁니다."
"그렇군요, 기뵤시입니까."
그 사람은 누구냐고 묻자, 시바에 살았던 에도의 게사쿠 작가입니다. 하고 주인은 대답했다.
"유행에 편승해 원수 갚기 이야기를 많이 쓰신 분입니다. '원수 갚은 의녀(義女) 하나부사'가 크게 인기를 얻었지요. 하지만 작풍은 평범하고, 어느 것이나 비슷한 것뿐이라 후세의 평가는 그렇게 높지는 않습니다."
"그렇겠지요. 그래서- 그런 겁니다."
아뇨, 전혀 아닙니다. 하고 주인은 말했다.
"에도 후반에 유행했던 기뵤시는 어린아이가 읽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가 읽는 그림책에 등장하는 짐승과 요물 등이 빈번하게 등장하기 때문에 착각되기 쉽지만, 그런 기호를 이용해서 새로 쓰인 어른의 읽을거리입니다. 줄거리는 어디까지나 어른용이지요."
- 난센 쇼 마히토 : 1749~1807. 에도 시대 중기의 게사쿠 작가. 1795년에 '원수 갚은 의녀(義女) 하나부사(英)'를 써서 평판을 얻기 시작하였다. 원수 소재의 기뵤시 작가로서 삼백여 편의 작품을 남겼는데, 본업은 서점 주인이라는 설도 있고 판목사(板木師)라는 설도 있다.
- "좁은 섬나라 안에서도 그렇게 다르니, 나라가 바뀌면 상당히 달라지지요.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요소나 색채 같은 것이고, 줄거리와 골격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다르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은 말하자면 이야기의 원형이라는 뜻이겠지요."
"이야기의 원형-이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어느 시대에 어느 지역에서, 누구에 의해 누구를 향해서 이야기되었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지고 말지만, 본래는 그리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만담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희곡도, 전부 본래는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무엇에서 착상을 얻든 그것은 별로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아니-."
이와야 사자나미는 가죽 장정의 책을 가슴에 안았다.
"하지만 어차피 어린이용입니다."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이라니."
"옛날에 아이들은 문자 같은 것은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림책이 만들어졌지요. 아니,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어려운 글씨를 술술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언문을 읽을 수 있다고 해도 한자는 읽을 수 없었지요. 간판의 글자는 알아도 책은 읽지 못했어요. 사회의 구조가 바뀌고, 교육제도가 바뀌면서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비약적으로 늘었습니다. 어린아이도 글씨를 읽을 수 있게 되었지요. 이와야 선생님이 쓰신 '고가네마루'는 이 메이지 시대이기 때문에 성립한- 새로운 문학의 맹아(萌芽)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인생은 아직 반환점을 돌 정도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괴로운 일이겠지요. 하지만 당신은, 그래서 그.쪽.으.로 나.아.가.셨.던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조당 주인은 오른손으로 사자나미의 가슴 언저리를 가리켰다.
"당신은 처음부터 그쪽을 향해서 걷고 계셨던 것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서 착각해 버렸다고 생각해서 결함을 느끼는 것이 아닙니까?"
사자나미는 책을 꽉 껴안다시피 했다.
"그건-"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고 사자나미는 말했다.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제일 처음으로 쓴 소설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러십니까, 하고 주인은 납득했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 "그렇다면 이와야 사자나미는 처음부터 왼쪽을 향해 왼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추세에 현혹되어 아주 잠깐 오른쪽을 향하고 말았을 뿐-이었던 것이 아닌지요? 그렇다면 '고가네마루'는, 그리고 오토의 메르헨으로 회귀하는 것은 뒤를 돌아보는 일이 아니라 본래 나아가야 할 길로 돌아갔을 뿐-인 것이 아닙니까?"
"그 길은 틀리지는 않았습니까?"
"길은 벗어나지만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틀릴 일은 없습니다. 길은 전부 이어져 있는 것입니다. 갈 곳만 정해져 있다면 어느 길을 가든 마찬가지. 언젠가는 도착합니다. 갈 곳이 없어도 반드시 어딘가에는 도착하겠지요."
그런가.
- "과거를 향하는 당신의 양식은, 허실(虛實)로 말하자면 허(虛)에 있겠지요. 현실에 그것이 없다면 그것은 여기에, 이 책 속에야말로."
"그런가요."
그래서 이 장소는- 하고 말하며 이와야 사자나미는 일어섰다.
"이렇게 기분이 고양되는 것은 그 때문일까요, 그런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세상에 책 바보나 책에 미친 사람은 많이 있지만, 스스로 묘지기를 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분은 별로 없습니다."
조당 주인은 웃었다.
- "다만 이와야 선생님. 허는 이곳뿐만 아니라 어디에나 무한하게 있습니다. 세상의 절반은- 허입니다."
"세상의 절반은 허입니까."
"예. 현실이라는 것은 지금 이 한순간뿐. 과거도 미래도, 지금 이곳에 없는 것이니 그것은 허구입니다. 과거 없이는 지금도 없고, 지금이 없이는 미래도 없어요. 그렇다면 허실은 반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자나미는 몇 번인가 눈을 깜박이며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저는 이렇게- 이런 어린아이 같은 인간이라도 괜찮은 것일까요. 소설을- 계속 쓸 수 있을까요?"
"그야 물론입니다. 당신의 역할은 마치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기쁘게 하기 위해 밤을 새워 이야기해 주었던 도기슈(伽衆)처럼- 이 나라의 아이들을 위해 계속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이 아닐까요. 이야깃거리는 아마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 씨앗을 키우고, 아이들을 위해서 꽃 피우는 것이 당신이 할 일이 아닐까요."
- "이야기-라고요? 옛날이야기라."
"옛날이야기라는 것은 좋은 이름이군요."
조당 주인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저는 그 책에 부록을 붙여 드리기로 하지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라고 말하더니 주인은 이번에는 계산대 뒤에 쪼그렸다가 이윽고 전통식 제본의 책 묶음을 사자나미 앞으로 가져왔다.
"이것은 교호(享保) 시대에 간행된 책입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시부카와 세이에몬(渋川清右衛門) 제목은 '오토기조시(御伽草子)'라고 합니다. 스물세 권이지요."
"오토기- 조시라고요. 이것을-"
“드리겠습니다. 아니, 부록으로 붙여 드리지요.”
"정말입니까?"
사자나미는 손에 들고 있던 양서를 의자 위에 내려놓고, 주인에게서 일본 책을 받아 들더니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우라시마 다로, 슈텐 동자(酒顛童子), 하치카즈키(鉢かづき)-"
- 오토기조시 : 무로마치 시대에서 에도 시대 초기에 걸쳐 만들어진, 아녀자와 노인을 위한 소박한 단편소설의 총칭. 그때까지 없었던 새로운 주제를 다룬 것으로, 그림이 들어가 있었다.
- 슈텐동자 : 현재의 일본 산인(山陰) 지방에 살았다고 전해지는 도깨비의 두목, 술을 좋아해서 부하들에게 이런 이름으로 불렸다. 용궁 같은 저택에 살면서 수많은 도깨비들을 부하로 거느리고 있었다고 한다.
- 하치카즈키 : 일본의 옛날이야기 중 하나. '하치'는 '밥그릇', '카즈키'는 '뒤집어쓰다'라는 뜻의 고어 '카즈쿠'에서 온 말이다. 옛날, 현재의 오사카 부근에 어느 부자가 살았는데, 하세관음(長谷観音)에게 기원한 끝에 바라던 대로 딸을 얻었다. 이 딸은 아름다운 아가씨로 성장했으나, 어머니가 죽기 직전에 하세관음이 이른 대로 딸의 머리에 커다란 밥그릇을 씌웠는데 이 밥그릇이 어떻게 해도 벗겨지지 않았다. 어머니가 죽은 후 이 하치카즈키 아가씨는 계모에게 괴롭힘을 당한 끝에 집에서 쫓겨났다. 세상을 비관하여 죽을 결심을 하고 물에 뛰어들었으나 머리의 밥그릇 덕분에 가라앉지 않고 떠올라 어느 귀족에게 구출된 하치카즈키 아가씨는 그 귀족의 집에서 목욕물 데우는 일을 하며 살게 되었다. ...
<다섯 번째 밤서 · 궐여>
- 고양이라는 것은 이상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기야 짐승이라는 것을 키워본 적이 없으니 다른 짐승과 고양이가 어느 정도나 다른지는 알 수 없다. 혹시 짐승이라는 것은 모두 이상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짐승도 무언가 생각하고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를 갖고 있지 않은 존재가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 언어를 가진 자의 뇌로 생각해서는 알아맞히기가 어렵다. 생각해서 알아맞힌다고 해도 언어로 표현해 버리면 또 틀리고 말 것이다.
- 고양이는 대나무 바구니 안에서 자고 있다.
울짱은 열려 있으니 출입은 자유롭다.
그렇다기보다도 딱히 이런 허술한 바구니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 끈으로 묶어둔 것도 아니고, 바구니에 들어가도록 훈련한 것도 아니니 어디로든 가면 되는 것이다.
저가 좋아서 들어가는 것이리라.
- 고양이에게도 좋고 싫은 것은 있는 것이다.
아니, 아닐지도 모른다. 습성이라고 할까,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습성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고 있으면 우선 생명은 보장된다. 그런 것일까.
- "고양이야."
이름을 몰라서 그렇게 불러 보았다.
고양이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종의 이름은 모르는 것으로 보인다. 고양이야, 고양이야, 하고 몇 번인가 부르자 겨우 얼굴을 든다. 눈이 반쯤 감겨 있다. 그냥 귀찮다고 느낀 것이리라.
- 똑같구나, 하고 생각한다.
이 한적한 집에 틀어박혀 마음이 내키면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다가, 이곳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면 밥이 나온다. 먹으면 눕고, 누우면 잠이 깰 때까지 잔다. 잠에서 깨어 밥을 먹고 마음이 내키면 또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이 허름한 집으로 돌아온다.
- 이곳으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는 하나도 없다. 딱히 좋아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하고 있는 것이니, 좋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면 뭐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는 없지만, 이 폐가 같은 백성의 집이 마음에 들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다.
본가가 더 좋은 것이 당연하다.
아내도, 아이도 있다. 어머니와 누이동생까지 있다. 고용인도 있다. 돈을 내지 않아도 아침점심저녁에 밥이 나온다. 집안일은 맡겨두면 된다. 침구도 질이 좋고, 세간도 훌륭하다.
무엇보다도 우선, 집은 그래 봬도 무가 저택이다.
먼지투성이 빈집과 비교하면서 어느 쪽이 편한가- 그런 것은 생각할 것까지도 없는 일일 것이다.
-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니 스스로가 이상하다.
고양이와 다를 바가 없으니, 이상한 것이 맞을 것이다.
- 고양이는 좁은 바구니 속에서 한 번 몸을 쭉 펴고, 그러고 나서 자세를 바꾸어 다시 몸을 웅크렸다.
그다지 젊은 고양이는 아니다. 고양이를 보고 있는 이쪽도 그렇게 젊지는 않다.
안기는 고사하고 만진 적조차 없다 보니 수컷인지 암컷인지도 모른다. 암컷이라면 새끼를 낳은 적도 있는 것일까.
그건 그렇고 참 잘 잔다.
이렇게 맥이 빠지는 생물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자다간 얼굴이 녹아 버리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다.
- 특별히 애교를 떨지 않아도 그렇게 하면 먹이를 얻어먹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래도 먹이가 나오지 않으면 다가가서 몸을 비비고 가르릉 거리며 어리광을 부릴지도 모르고, 그래도 안 되면 나갈 것이다.
고양이도 먹지 않으면 죽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먹고살 수 있기 때문에 이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즉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기 때문일 뿐이다.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으니 이렇게 세상을 버린 척하며 지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스스로 번 돈이 아니다. 그 재산을 모은 것은 부모이고 조상이다. 나는 매일같이 역사를 까먹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자유로운 것도 무엇도 아니다. 끈에 매여 있는 것은 고양이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고양이보다도 못하다. 혹여 먹이가 나오지 않게 된다면 과연 나는 밖에 나가서 먹이를 사냥할 수 있을까.
불안해진다.
서점에서 일하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 잡지 편집인지 뭔지를 한다고 하는데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담배를 파는 일과는 다를 것이다.
좀처럼 결심이 서지 않는다.
- 그래서-
이렇게 대낮부터 누워 있는 것이다.
할 일이 없으면 없는 대로 책을 읽거나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등 제멋대로 행동하지만, 무언가 결정해야 할 때면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게 된다.
- 나갈 기운이 있다면 주선받은 직장에 찾아가서 내일부터라도 일하겠다고 말할 수 있을 테고, 저택으로 돌아가 처자식에게 그 소식을 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런 허름한 방은 즉각 빼고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런 자신을 상상한다. 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래야 하고, 그렇게 하고 싶다고도 생각한다. 무리도 아니고, 못할 사정도 전혀 없다.
무엇을 망설이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 한숨을 한 번 쉬자 다카토 님, 다카토 나리,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린아이의 목소리다. 어린아이의 목소리인데 귀에 익다. 거참 희한하구나 하며 문을 여니, 거기에는 조당의 사환인 시.호.루가 태연한 얼굴로 서 있었다.
가게 이외의 장소에서 이 아이의 모습을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 놀랐다.
- "대체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냐고 물으셔도 뭐라고 해야 할지."
조숙한 말씨를 쓰지만, 아직 열 살 남짓일 거라고 생각한다. 약아빠진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속세와 동떨어진, 기품을 갖춘 얼굴 생김새를 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렇지 않다면 얄미운 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으시고 자시고, 왜 이런 곳에 있느냐고 묻는 게 아니냐."
"왜냐니요, 용무가 있으니 찾아뵌 것이지요."
"용무라니 누구에게?"
말하고 나서 나 이외에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으로 종잡을 수 없는 분이군요, 하고 미동(美童)은 더욱 얄미운 말을 한다. 한 마디 대꾸해 주고 싶은 참이지만, 그것이 진실이니 무슨 말을 해도 억지를 부리는 것처럼 되어 버린다. 어린아이 상대로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생각되자 잠자코 있었다.
- "그래서 용무는 뭐냐? 책이라도 팔러 온 게냐?"
"나리도 심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책은 스스로 고르는 것입니다. 억지로 팔다니 당치도 않은 일이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너희 가게 주인장은 쓸데없는 책은 없다고도 하지 않느냐. 무엇을 읽든 헛수고가 되지 않는다면 억지로 팔아도 될 것 같은데."
전혀 다르지요, 라고 말하며 시호루는 볼멘 얼굴을 했다.
- "세상에 쓸데없는 책은 없지만, 책을 쓸데없게 만드는 사람은 있다는 것이 주인의 말씀입니다."
"쓸데없게 만들지는 않지. 뭐, 읽고 어떻게 생각할지는 읽어볼 때까지 알 수 없다만."
다 읽을 때까지라고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시호루는 말했다.
"마찬가지 아니냐."
"아닙니다. 읽기 시작한 초반에 재미가 없다는 둥 글이 엉망이라는 둥, 독선적인 판단으로 폄하하거나 읽는 것을 그만두거나 삐딱하게 읽거나 대강 뛰어넘고 읽어서는 안 된다. 책을 제대로 읽지 않는 것은 큰 잘못이다, 손해라는 뜻이니까요."
"그건 이해가 간다만. 그렇다고 해도 권해 주면 될 것 같은데. 너희 가게 주인이 권해주는 책은 틀림이 없지."
그것은 다카토 님이 제대로 읽으시기 때문입니다, 라고 사환은 말했다.
- "주인께서는 다른 사람이 권해주는 것을 고마워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애초에 저희 주인은 탐서(探書)를 도와주기는 하지만 좋은 책이라고 해서 다른 분께 강요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으십니다. 좋고 나쁜 것은 사람에 따라 모두 다른 법. 책이라는 것은 스스로 원하고, 스스로 찾아서 발견하는 것이 도리. 그리고 제대로 읽는다면, 이것은 절대로 쓸데없는 것이 되지 않는다고- 주인은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알았다, 알았어, 잘못했다, 하고 말했다.
그런 부분에 관한 것만은 빈틈없이 교육되어 있는지, 농담은 할 수 없다.
- "슬슬 용건을 말해도 될 것 같다만. 네가 있는 곳은 서점이고, 나는 손님이 아니냐. 책을 파는 것 외에 용무가 생각나지 않아서 그랬다."
"용무는 두 가지입니다."
시호루는 작은 얼굴을 든다.
"하나는, 고양이입니다."
"고양이라고?"
"길러줄 사람을 찾으신다고 하셨지요. 그래서요."
내가 그런 사람을 찾은 것이냐고 묻자 미동은 눈치가 없으시군요, 하며 어이없어했다.
"한 마리 길렀으면 한다고 합니다. 새끼 때부터 기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기를 수 있다고요."
- 그 후에는 증기철도도 탔다. 보자기 속에 싸여 있기는 하지만 고양이가 육지증기선을 탈 수 있으니 대단한 일이다.
가스등이니 증기철도니, 분명히 시대는 변하고 있다. 나아가고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변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고양이는 에도 시대부터 고양이였고, 아마 앞으로도 줄곧 고양이일 것이다. 이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 사람은 어떨까 하고 생각한다.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보다 옳고 대단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보다 옳고 대단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모두가 그렇게 말하니 그럴 것이다.
- 증기철도는 힘이 세다. 이런 쇳덩어리가 연기를 뿜어 올리며 달리니, 생물이 당해낼 수 있을 리도 없다.
이 튼튼함은 예지(叡智)가 만들어낸 것이다.
가령 점점 영리해지고, 점점 강해지면 어떻게 된다는 것일까. 어리석은 사람이나 약한 사람을 퇴치할 수 있을까. 그런 방식이 옳은 것일까. 더 영리한 사람이나 더 강한 사람에게는, 뒤떨어지는 사람이나 약한 사람으로서 따르는 것이 도리일까. 아니면 나야말로 옳다고 맞서는 것이 좋을까. 나야말로 옳다고 믿는다는 것은, 자신은 뛰어나다고 믿는다는 뜻일까.
그것은 교만이 아닐까.
근대화란 그런 것일까.
자유라든가 권리라든가 하는 것은 그렇게 싸워서 얻어내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자유민권이란-.
어떤 것일까 하고 흐릿한 머리로 생각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고양이는 전혀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 다카토 님은 멍한 분이시네요, 하고 사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그냥 증기철도가 신기해서 그런다, 하고 지나쳐 가는 잡목림을 보며 대답했다.
이렇게 빠르게 풍경이 바뀌는 모습은, 철도가 없었던 시대의 인간은 볼 수 없었던 광경이다.
이것이 문명이라는 것이리라.
- 문명의 수레바퀴가 내는 덜컹덜컹 시끄러운 소리를 진지하게 유심히 듣고 있는 사이에 나카노에 도착했다.
내려 보니 별것도 없는 그냥 시골이다. 목조단층의 길쭉한 역 건물을 나서도 거리 같은 것은 없다. 숲뿐이다. 내가 지금 사는 낡은 집이 있는 황무지의 경관과 큰 차이는 없다.
맥이 빠져 있자니 등 뒤에서 조당 주인이 말을 걸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하얀색 기모노 차림으로, 짐을 싣고 부리려는 옷차림은 아니다.
햇빛 아래에서 보아도 여전히 나이를 알 수 없는 남자였다.
소마가의 소동 이야기 같은 것을 하면서 삼십 분 정도 걸었다.
- 소마 가의 소동 이야기 : 메이지 시대에 일어난 다이묘 집안의 분쟁 사건 중 하나. 나카무라 번주였던 소마 도모타네(相馬誠胤)의 정신병 증상이 악화되자 1879년, 가족들은 궁내성에 자택 감금을 신청하였고, 이후 자택에 감금했다가 나중에 전광원(현재의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 1883년에 소마 도모타네의 가신이었던 니시고리 다케키요(錦織剛清)가 주군의 병상에 의심을 품고, 가족들에 의한 부당감금이라고 관계자를 고발하면서 사건이 표면화되는데, 당시에는 정신병에 대한 이해도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사에 따라 정상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사람도 있어서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1887년, 니시고리는 소마 도모타네가 입원해 있던 도쿄 부 전광원에 침입해 일단은 그의 신병을 탈취하는 데 성공하지만, 일주일 만에 체포되어 가택침입죄로 금고 처분을 받게 된다. 1892년, 소마 도모타네가 병사하자 니시고리는 이를 독살이라고 주장하며 1893년에 다시 소마가의 관계자를 고소, 유체를 발굴해 독살설을 증명하려고 하지만 최종적으로 사인이 독살이라고 판정할 수는 없었다. 1895년, 소마 가에서는 니시고리를 무고죄로 고소하고, ...
- 집 앞에는 말이 매여 있고 담뱃대를 문 마부인 듯한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 옆에 짐수레가 세워져 있었다.
돌아왔습니다, 하고 주인이 말을 걸자 문에서 역시 흰색 옷을 입은 남자가 나왔다. 다만 하카마를 입고 있어서 조당 주인과는 상당히 분위기가 다르다.
키가 크고 다부진 체격의 인물이다. 이목구비도 뚜렷해서 신직이라기보다는 무관 같은 인상을 주었다.
"이분이 무사시 세이메이 신사의 궁사(宮司)인 추젠지 다스쿠 님입니다."
조당 주인은 그렇게 말했다.
- 궁사는 깊이 허리를 숙여 절을 하고, 수고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하고 정중하게 말했다. 얼굴을 들자마자 눈썰미 좋게 보자기를 알아본 궁사는 그것이 고양이입니까, 하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럼 이리 주십시오, 하며 손을 내민다. 무겁습니다, 라고 말하며 건네자 매듭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며, 아아, 고양이로군요, 하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실례했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하고 안내했다.
연상인가 했는데 아무래도 아닌가 보다. 아직 30대라는 말을 듣는 나이일 것이다.
- 안은 지극히 평범한 민가였다.
방에는 쓰가루 칠기로 만든 새 좌탁이 놓여 있고, 방석이 네 장 깔려 있었다.
- "대가 끊기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요."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왔으니까요, 하고 궁사는 말했다.
"이곳은 유서 깊은 신사라, 지역 주민들 외에도 신자가 많이 계실 것입니다."
조당 주인이 그렇게 말하자, 유서라는 것은 글쎄요, 하며 궁사는 곤란한 듯한 얼굴을 했다.
- "권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은 받고 있지 않습니까."
"신앙-이라고요. 그건 어떨까요."
궁사는 한층 더 눈썹을 찌푸린다.
"지역 신자들은 어떨지 몰라도, 다른 분들은 현세의 이익을 쫓아서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니까요. 집을 지으려 하니 좋은 방위를 정해달라, 자식에게 좋은 이름을 붙여 달라, 혼례를 하려 하니 좋은 날짜를 가르쳐달라- 그런 상담뿐입니다. 점쟁이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로의 신앙은 아닐 겁니다. 분명히 우리 신사는 대대로 그런 일을 해 왔기 때문에 사람들도 감사하고 있지만-."
- "그, 이곳은 세습이고, 대대로 신직을 맡고 계신다는 뜻입니까?"
나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애초에 신직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처음이다.
"조상 대대로 해 오기는 했지만, 지금 말씀드렸다시피 신직은 아닙니다. 아버지는 궁사라기보다 지금 말씀드린 것 같은 점쟁이- 아니, 음양사였습니다."
"음양사-라고요?"
들어본 적은 있지만 어떤 사람인지는 모른다.
- 내가 어지간히도 의아한 얼굴을 했는지 조당 주인이 설명을 덧붙이려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것을 제지하듯이 궁사가 직접 말했다.
"주술사 같은 겁니다. 지금 말씀드린 것과 같은 여러 가지 점을 치거나, 그렇지, 요물을 퇴치하거나 씐 것을 떼어내거나- 그런 미신 같은 일만 하는 겁니다. 무엇보다 저희 신사는-."
그 음양사를 모시고 있으니까요, 하고 궁사는 말했다.
이곳은 아베노 세이메이 공을 모시고 있는 곳입니다, 하고 조당주인이 설명을 덧붙였다.
- "다카토 님은 모르십니까? 음양료의 수장, 쓰치미카도 가의 선조이자 종사위하(從四位下), 아베노 하리마노카미 하루아키라 님 말입니다."
"예에."
몰랐다.
"언제의- 하리마노카미입니까?"
"헤이안 시대입니다.”
그렇게까지 옛날이면 아무래도 알 길이 없다.
"고대의 분이군요."
신으로 모셔지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기는 할 것이다. 다이라노 마사카도(平將門)나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眞) 같은 사람이다.
- 아베노 세이메이(安倍晴明)(921∼1005)는 가마쿠라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 초까지 음양료를 총괄했던 아베 씨(쓰치미카도 가)의 선조이다. 晴明는 '하루아키라'라고도 읽히고 '세이메이'라고도 읽힌다. 하리마노카미는 하리마 지방의 수령이라는 뜻으로, 하리마는 현재의 효고 현 남부를 가리키는 옛 지명.
- 다이라노 마사카도 : 헤이안 시대 중기 간토(関東) 지방의 호족. 당시의 천황이었던 스자쿠 천황에 대항하여 스스로를 '신황(新皇)'이라 칭하며 간토 지방의 독립을 표방하여 조정의 적이 되었으나, 즉위한 지 겨우 두 달 남짓 만에 후지와라노 히데사토, 다이라노 사다모리 등에 의해 토벌되었다. 죽은 후에는 전국에 있는 여러 신사에 신으로 모셔졌다.
- "음양료를 관장하는 쓰치미카도 가는 공가(公家)입니다. 그리고 음양료는 도쿠가와 가문에서도 중용되었습니다. 어쨌거나 음양료에는 음양도를 연찬하는 음양박사 외에 천문박사, 역(歷)박사, 누각(漏刻)박사가 있었어요. 건곤(乾坤)의 모습을 관찰하고 천체의 움직임을 읽어, 달력을 만들고 시간을 재는 전문직입니다. 이것은 정권이 바뀌든 시대가 지나든, 생활에 필요불가결한 것일 테니-."
그럴까요, 하고 궁사가 말을 막는다.
"시부카와 하루미(渋川春海)의 야마토력(大和曆)이 채용되고 천문방이 설치된 이후로는, 오히려 거슬리는 것이었지 않습니까. 그 당시에도."
이미 음양도는 시대에 뒤처진 기술이었습니다, 하고 궁사는 말했다. 그 궁사의 말을 듣고 조당 주인은 약간 쓸쓸한 듯한 얼굴을 했다.
내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표정이었다.
- "정권이 천황에게 반환되고, 천문방이 폐지되었을 때에도 음양료는 다시 편력(編曆)의 지위에 앉게 됩니다만- 그레고리오 태양력의 도입이 검토되었을 때, 음양두인 쓰치미카도 하레타케 님이 아무리 주장하셔도 태음태양력의 개력(改曆)은 계속되지 못했고요."
"신정부는 부국강병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무역을 하든 전쟁을 하든, 달력은 맞춰 두는 편이 편리하니까요. 게다가 하레타케님은 막부가 와해된 후 곧 돌아가시고 말았지 않습니까."
"그런 모양이더군요."
하고 궁사는 말했다.
- 시부카와 하루미 : 1639~1715. 에도 시대 전기의 천문학자, 바둑 기사, 신도가(神道家). 조쿄력(貞享曆)의 작성자이기도 하다.
- 야마토력 : 조쿄력(貞享曆)이라고도 하며, 옛날에 일본에서 사용되었던 태양태음력의 역법이다. 시부카와 하루미의 손에 의해 완성된 것으로, 1684년에 채용이 결정되었다.
- "어쨌거나 음양도는 이제 통용되지 않는 것이지요. 게다가 료텐 씨가 말씀하시는 것은 관직으로서의 음양사가 아닙니까. 우리는 다릅니다. 민간의 음양사는 길흉을 점치는 점쟁이나 가마바라이(釜祓い)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존재지요."
"하지만 다스쿠 님. 그런 항간의 음양사와는 달리, 이곳의 제신은 세이메이 공이지요. 그런 의미로는 정통이 아닙니까."
"정통이라면 교토에 있는 세이메이 신사가 정통입니다. 쓰치미카도 쪽에도 세이메이 공의 자손은 건재하시지요. 하레타케 님이 돌아가시고 음양료도 폐지되었지만, 그분의 아드님인 하루나가 님은 작위를 받으셔서 지금은 쓰치미카도 자작가입니다. 우리는 분가도 아니고, 방계조차 못 되니까요. 분사권청(分祠勸請) 한 것도 아니에요. 그렇게- 전해지고 있을 뿐입니다."
"사전(社傳)이 있는 것이로군요."
"네."
"그렇다면 믿어야 하지 않습니까.”
하고 조당 주인은 말했다.
"예. 하지만 대대로 해 온 일이 수상쩍은 주술이라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니까요. 지금 세상이라면 오라를 받을 법한 일입니다."
- 선대 궁사께서는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하고 조당 주인이 말한다.
"아직까지 고마워하는 분도, 그리워하는 분도 많습니다."
인격자이기는 했으니까요, 하고 궁사는 대답했다.
- 가마바라이 : 매달 그믐날에 부뚜막을 정화하는 행사. 무녀나 승려 등이 돈을 받고 해 주었다.
- 돈이 무슨 필요가 있단 말입니까, 하며 궁사는 손을 저었다.
"저도 받은 책인데요. 뭐, 이대로 두면 그야말로 사장(死藏)이라는 것이 될 테고, 그렇다면 차라리 믿을 수 있는 서점에 넘겨드리고 싶다고 유족분들과 상의했더니 쾌히 승낙해 주셔서 연락을 드렸을 뿐입니다. 팔다니, 당치도 않아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제 쪽에서는 이것을 가게에 늘어놓고 파는 것이니까요. 아무리 제가 전직 승려라고 해도 공짜로 무언가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수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상응하는 값은 치러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돈은 받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유족분들께 건네주십시오."
"아니, 그렇습니까."
- 궁사는 무료한 듯이 장지 옆에 서 있었다.
조당 주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서책을 둘러보더니 큰 한숨을 쉬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서책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아직도 그렇게 서책이 사랑스러운 것일까.
"이것을 전부 내놓으시는 겁니까.”
조당 주인은 그렇게 말했다.
궁사는 곧 네, 하고 대답했다.
"제게는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 조당 주인은 고리짝의 뚜껑을 연다.
재래식 장정의 책을 집어 든다.
펼친다. 넘긴다. 덮는다.
"좋은- 책입니다."
"네. 벌레는 먹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었던 것 같으니, 상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 조당 주인은 책을 도로 넣었다.
"이 중에- 당신의 한 권은 없는 것이로군요, 다스쿠 님."
궁사는 한 번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책으로 얼굴을 향하더니, 한 박자 쉬고 나서 없습니다, 하고 말했다.
"전부 다 본 것은 아니고, 읽지도 않았지만- 제게는 소용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
조당 주인은 뜻을 정했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시호루를 불렀다. 좌탁 앞에 장식품처럼 앙증맞게 앉아 있던 미동(美童)은 튕기듯이 일어서더니 궁사 옆에 섰다.
"다카토 님과 내가 실어 나를 테니, 내가 가게에서 지시했던 대로 짐수레에 실어라. 무거운 것은 마부가 도와줄 게다."
"알겠습니다.”
하고 말하더니 아이는 현관 쪽으로 달려갔다.
- 궁사는, 저도 나르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료텐 씨는 여기서 어느 것부터 실어낼지 지시를 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이 차 상자부터 옮겨 주십시오. 이게 가장 무거운 것 같으니, 두 분이 함께 옮겨 주시기 바랍니다. 다카토 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나는 약간 넋을 놓고 있다가 허둥지둥 옆방으로 들어가 차 상자를 들었다. 확실히 묵직하니 무겁다.
- 시호루는 약간 긴장하고 있었지만 고개를 끄덕였고, 마부는 말을 끌고 대나무가 우거진 좁은 길을 빠져나갔다. 궁사는 그것을 지켜보듯이 서 있다가, 아아, 꼬마 도령에게 차 한 잔 대접하지 않았군요, 하고 말했다.
"뭐, 차 같은 걸 마시면 볼일을 자주 보아야 하니 마침 잘 되었습니다. 물과 주먹밥도 들려 보냈고요. 게다가 결국 저 아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에 비해 다카토 님께는 크게 신세를 졌습니다.”
조당 주인은 머리를 숙였다.
아무래도 이 남자에게는 야외가 어울리지 않는다.
애초에 직접 햇볕을 쬐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고 만다. 천장까지 뚫려 있는 높은 창에서 비쳐드는 약한 햇빛과 어딘가의 고급스러운 촛불의 붉은 불빛을 받아야만 조당 주인이 아닌가.
아직 해는 높다.
확실히 큰 작업이기는 했지만, 일각도 걸리지 않았다.
"다스쿠 님, 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다카토 님께는 무리한 부탁을 드린 참이니, 조금 쉬어 가실 수 있게 해 드려야겠습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방을 잠시 빌려주시겠습니까.”
뭐라고 해도 중요한 단골이시니까요, 하고 조당 주인은 쓸데없는 말을 했다.
- "이것은-."
"예. 우선 이곳 신사의 유래가 적혀 있는 '무사시 세이메이 사연기(社緣起)', 그리고 아베노 세이메이 공이 썼다고 전해지는 '삼국상전음양관할보궤내전 금오옥토집(三國相傳陰陽管轄簠簋內傳金烏玉兎集)’전 5권, 마찬가지로 아베노 세이메이 공이 썼다는 '점사략결(占事略决)', 그리고 음양, 천문, 역법, 누각 각각에 관한 비전서, 두루마리 등- 입니다.”
궁사의 표정이 흐려졌다.
"그런 것은 신사에는 필요 없는 책입니다. 주술의 지도서가 아닙니까. 무엇보다-."
"네."
조당 주인은 한층 더 큰 목소리로 궁사의 말을 가로막았다.
"신사의 유래를 제외하고는 모두 위서(僞書)입니다."
"위, 위서-."
- "뭐, 자세히 본 것은 아니고 보았다고 해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말씀드릴 수 없지만- '금오옥토집'은 진짜라는 것이 애초에 후세에 의해 쓰인 것이고, 수많은 사본도 차이가 많아 어느 것이 진짜라고 결정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닙니다. '점사결'은 가마쿠라 시대의 사본이 있을 뿐이라 쓰치미카도 가에 전해지는 것이 과연 어떤 내용인지,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그러니 진실은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없지만-."
아마 위서겠지요, 하고 조당 주인은 말했다.
- "그렇다면 더욱 가치가 없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진짜든 가짜든 상관은 없습니다. 누가 썼는지, 언제 쓰였는지,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겠지요. 그런 것에 신경을 써야 하는 사람은 역사학자 정도일 겁니다. 그 외에는- 책에 쓸데없는 가치를 매기려고 하는, 그래요, 다도 도구를 파는 장사치 같은 사람들이겠지요. 고보 대사가 썼든 어느 산사(山寺)의 동자승이 썼든-."
오래되었든 새것이든 책은 책입니다, 하고 조당 주인은 말했다.
- "하지만 가짜라면."
"책에는 가짜도 진짜도 없습니다. 서책에 적혀 있는 것이 전부 진짜는 아닙니다. 사실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거기에서 현세는 한 번 죽는 것입니다. 그 묘비를 읽고, 무언가를 읽어낸 사람이 있어야만 비로소 허구는 현세로 돌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 "하지만 료텐 씨. 이것은 주술 입문서 같은 것이 아닙니까. 제가 읽는다고 해도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애초에 그,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
"예. 맨 위에 있는 책을 보십시오. 그것은-."
궁사는 책을 집어 들어 펼쳤다.
"이것은- 첫머리를 읽어보면 아무래도 우리 신사의 유래가 담긴 책 같은데, 거기 있는 점술 지도서와는 다르군요."
"예. 다릅니다. 그 책은."
주사이 님이 쓰신 책입니다, 하고 조당 주인은 말했다.
"아버지가-요? 이건 아버지가 쓰신 겁니까? 아아, 그러고 보니 확실히 아버지의 글씨 같긴 한데- 필사하신 것일까요."
"고쳐 쓰신 거겠지요."
"고치다니요. 바꾸어 썼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건- 아니, 뜻을 모르겠습니다. 고쳐 쓸 필요가 없는데요. 유래서는 유래서 아닙니까."
"이곳 신사의 역사를 편찬하고 계셨던 거겠지요. 이 장부에는 대대로 쌓은 공적 같은 것이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 궁사는 다음으로 장부를 넘기며 군데군데 읽어 보는 것 같더니 다시 덮었다.
"공적이 아니라 사기입니다. 용신을 부려 비를 내리게 했다느니, 병을 고치기 위한 기도를 했다느니, 식신(式神)을 부려 요물을 떼어냈다느니, 그런 것을 기록으로 남겨서 무슨 소용이 있다는 겁니까? 이것도 저것도 도저히 믿을 수 없어요. 지금 같은 세상에 이런 것을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거짓뿐입니다. 진실일 리가 없어요."
"그러니까 글로 적혀 있는 것은 대개 진실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것은 읽는 사람입니다."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당신은 거기에서 당신의 진실을 찾아내야 합니다, 하고 조당 주인은 단정하듯이 말했다.
"진실이라니-."
- "아시겠습니까, 다스쿠 님. 마음은."
조당 주인은 가슴을 두드렸다.
"여기에 있어요. 있지만 없지요. 마음을 꺼내어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전하기 위해."
다음으로 조당 주인은 머리를 가리켰다.
"우리는 말을 하지요. 말은 마음이 아닙니다. 제가 배운 종파에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 이심전심이라고 하는데, 말은 속임수일 뿐이고 마음은 마음으로 전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건 그렇지요. 하지만 저는 지금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같은 말에서, 사람들은 각각 다른 것을 헤아릴 수 있어요. 헤아릴 힘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조당 주인은 천천히 손을 들어, 궁사가 시선을 떨어뜨리고 있는 장부를 가리켰다.
"그래요, 거기에 적혀 있는 것들은 전부, 대개 거짓이겠지요. 하지만 거짓이라고 해서-."
사실을 헤아릴 수 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하고 조당 주인은 조용히 말했다.
-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마음은 현세에는 없어요. 없다고 해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마음은 있습니다. 없지만 있는 것입니다."
궁사는 퍼뜩 얼굴을 들었다.
"없는 것을 있다고 하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설령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고 해도, 마음은 보여줄 수도 들을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만질 수도 없습니다. 어딘가에 있을 거라며 찾아다녀도 찾을 수 없지요. 여기에 있다고 보여준다고 해도 보이지 않아요. 말이라는 주술로 치환하지 않으면, 없는 것은 보여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없.다.는 것을 모르면 있다는 것 또한 보여줄 수 없는 것입니다, 다스쿠 님."
그것은 아버지의 말입니다, 하고- 궁사는 말했다.
- "아, 아버지는 제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뜻을 알 수가 없어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고 조당 주인은 말한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말이겠지요."
"보이게 하는 것이라고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모든 말은 주문. 모든 문자는 부적. 모든 서책은 경전이고 노리토(祝訶)입니다. 작법(作法)이라는 것은 대개 행동으로 표현하는 말일 테고, 식(式)이라는 것은 원리원칙을 언어화한 것입니다. 결코, 불가사의한 것이 아닙니다. 속임수가 뭐가 나쁘다는 겁니까? 높은 뜻을 갖는 것과 방편을 사용한다는 것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 "전통이라는 것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계속하는 것입니다. 계속하기 위해서는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역사는 항상 새로 쓰여야 하지요. 아니오, 옳은 역사가 되는 것은 항상 정사(正史)뿐입니다. 당시의 위정자가 인정하지 않는 한, 모든 역사는 위사(僞史)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유래도 새로 쓰이는 것이 당연하지요. 작법도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 당연하고요. 거기에 적혀 있는 태고의 작법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하지만 아버님은 거기에서 무언가를 퍼내려고 하셨어요. 지금 통하는 작법을, 새로운 유래를, 전통을, 신앙을-."
만들려고 하셨던 것이 아닐까요, 하고 조당 주인은 억누른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 노리토 : 신관이 신을 제사 지내거나 신에게 빌 때 올리는 고문체의 문장. 축문(祝文).
- 죽겠지요. 하고 과장되게 대답했다.
"일하지 않으면 확실하게 죽는 겁니다. 아니, 돈이 없으면, 이라고 해야 하겠지요. 옛날에 무사들은 신분이 생업이었소. 신분이 없어지고, 일도 없어지고 만 셈입니다. 그래서 모두들 더더욱 곤란해졌고, 그래서 일을 하게 되었지요. 무사는 냉수를 마시고도 이를 쑤신다는 말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제 무사가 아니니 말이오. 하지만 나는 공교롭게도 먹고살 수 있지요."
좋지 않습니까, 하고 조당 주인은 즐거운 듯이 말했다.
"서민의 꿈입니다. 일하지 않고도 먹고살 수 있다니 그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무슨 말씀이십니까, 주인장."
- 꺼림칙할 뿐이다.
주어졌을 뿐인 행복한 처지를 고분고분 향수하기에는, 이 시대는 지나치게 곤궁하다.
미간에 주름을 짓거나 이마에 땀을 흘리거나 얼굴이 흙투성이가 되거나, 어쨌든 그런 점잔 빼는 삶을 살지 않으면 쾌활하게 웃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웃음은 항상 고통의 대가로 존재하는 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가슴이며 목에 무거운 훈장이라도 매달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무훈의 부록이나 공로의 대가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세상인 것이다.
아니, 그것은 그렇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하면 될 뿐이다. 근로 의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학습 의욕도 있다. 결코 일하고 싶지 않다, 배우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 "이와야 선생님 추천을 받아, 서점에서 일해 보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거 잘되었군요."
"뭐 그렇습니다. 흥미는 있고, 할 수 없는 일도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매(小賣)도 중개업도 아니고, 출판회사라고 하니 잡지를 찍거나 하는 일이겠지요. 그런 직업이 있다는 것 자체를- 뭐, 당연하게 생각하면 누군가가 만들고 있는 것이 틀림없지만- 지금까지는 생각한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내게 맞을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하지만.
"엔료 선생님의 학원에도 다니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는 것은- 좋아하니 말이오. 지식을 흡수하고, 식견을 넓히고, 때로는."
거짓 세계에서 논다.
주인은, 이 세상은 절반은 거짓이라고 한다.
나머지 절반이 사실이라고 치면, 그 사실의 세계가 불편한 것이다. 그런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결심이 서지 않습니다."
- "망설이고 계십니까?"
"망설이는 것이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매우 긍정적입니다. 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미래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이도 저도 아닌 것이 아니라 분열하고 있습니다."
직업을 갖게 되면 나는 아마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처자식과도 어머니와도, 평범하게 지낼 수 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지 않는 것도 아니다.
- "우습지도 않은데 그냥 웃지는 않소."
"우스울 때는 웃으십니까?"
"그야 웃지요."
그럼 좋지 않습니까, 하고 주인은 얼굴을 들며 말했다. 등잔불 때문에 뺨이 주황색으로 물들어 있다.
- "좋다니- 좋을 리가 없소. 이대로도 좋을 리는 없소. 이런 쓸모없는 인간 같은 삶이 허락될 리도 없고."
"누가- 허락하는 겁니까?"
"아니, 그건 그러니까."
나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다카토 님은 재력이 있으십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법률만 어기지 않으면 혼나지 않아요."
"아니-."
그렇긴 하지만.
- "아내와 어머니가."
"그거야 가끔 잔소리를 듣는 정도가 아닙니까. 그게 싫으시면 본가에 돌아가시지 않으면 되지요."
그건- 그렇지만.
- "그러면, 그렇지. 참말이오. 누가 허락해도 천륜(天倫)이 용서하지 않을 거요."
하늘의 길은 사람의 길이 아닙니다, 하고 주인은 말했다.
"그럼-."
"앞일을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다카토 님. 왜 그렇게 결판을 짓고 싶어 하시는 겁니까?"
"결판-이라니."
"승부, 정부(正否), 우열, 진위, 선악, 호오(好惡) 등 모두가 흑백을 가르고 싶어 하지 않습니까. 다카토 님도 그렇습니다. 지금의 삶이 좋은지 나쁜지, 좋아서 하고 있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상관 없-으려나.”
"그렇게 다를 것도 없습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에는 결판이나 결말은 없어요. 그것은 계속 줄줄이 이어지는 법."
선하고 악한 것을 누가 판단할 수 있다는 겁니까, 하고 조당 주인은 말했다.
- "인간은 아까 그 쓰다만 서책과 같습니다. 미완인 것입니다, 다카토님. 미완이라도 괜찮아요. 책은 다 쓰고 나면, 또는 다 읽고 나면 완(完)입니다. 하지만 살아 있다는 것은 줄곧 미완이라는 것."
"미완이라."
그렇다면 내일 일은 알 수 없습니다, 하고 조당 주인은 말했다.
"고양이는 내일에 대한 걱정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 그럼 어쩌라는 건가.
아니, 그 어떻게 하라든가 하는 사고방식이 틀린 것이리라. 그것은 타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 "결정할 수 없다면 결정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럴까요?"
"뭐 어떻게도 되지 않으면 무언가는 하시겠지요.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그때는 어떻게든 될 거예요."
"그런- 무성의한. 그래서는 역시."
안 된다.
- "주인장. 분명히 내일 일은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대로 생을 끝내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미완인 채로.
- "다카토 님."
오늘 하루만, 제가 책을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하고 조당 주인은 말했다.
"추천해- 주시는 겁니까."
"예. 강매입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 얼마 전, 올해 여름부터 제국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정된 수재가 있습니다. 그 축하선물로 주려고 일부러 영국에서 들여온 책이 있는데요."
"양서-입니까.”
"예. 로렌스 스턴이라는 영국의 승려가 쓴 것으로 'The Life and Opinions of Tristram Shandy, Gentleman'이라고 합니다. 번역하자면- '트리스트람 샨디전(傳) 및 그 의견'일까요.”
- 종교 책이냐고 물으니 아닙니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습고 황당무계한 소설입니다."
"소설이오?"
허구입니다, 라고 말하며 주인은 웃었다.
"해학과 장난으로 가득 찬 허구입니다. 전부 아홉 권이 있지요."
- 그렇게 말하며 초를 다 켠 주인은 계산대로 가서 양서를 안고 돌아왔다.
"나는- 영어는 못 읽습니다. 또 언젠가처럼 읽지 못해도 좋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읽고 싶어지면 그때는 배우시겠지요."
라고 주인은 웃으며 대답했다.
- "영어를- 말입니까?"
"예. 말할 수 있게는 되지 못하더라도 읽는 정도라면 독학으로도 가능하겠지요. 우리 가게에는 사전도 있습니다.”
"하지만- 독학으로는 거북이걸음일 겁니다. 그런 많은 양의 소설을 읽다니 도저히 무리에요. 그야말로 도중에 인생이 끝나고 말 겁니다."
"이 책은 다 읽을 필요는 없어요. 읽을 수 있는 데까지만 읽으시면 됩니다."
"아니, 소설이라면 그야말로 결말이-."
미완입니다, 라고 조당 주인은 말했다.
"어-."
"어차피 끝나지 않았으니 어디에서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 "그런, 그건 쓰다 말았다는 뜻입니까? 쓰는 것을 도중에 멈춘- 아니, 다 쓰지 못했던 건가. 혹시 절필한 겁니까?"
"아닙니다. 왜 중단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질렸거나, 소재가 떨어졌거나, 작가에게 쓸 의미가 없어진 것인지도 모릅니다."
- 그런 무책임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아니, 그렇지도 않습니다, 하고 조당 주인은 말했다.
"도중에 내팽개친 것까지 포함해서 완성되어 있는 듯한 기분도 드는 책입니다. 서툰 결말을 내면 오히려 장점이 깎이고 말지요. 이것은 오히려 미완이어야만 하는, 그런 기분이 들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 이해할 수 없다.
솔직하게 그렇게 말했다.
- "이것은, 일단 줄거리는 있지만 관련된 소설이나 일화가 줄줄이 엮여 전혀 본론으로 돌아가지 않거나, 작중 인물이 독자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거나, 페이지가 새까맣게 칠해져 있거나 한, 그런 소설입니다."
"무- 뭡니까, 그건."
더 이해할 수 없다.
- "장난을 치는 것입니다. 결코, 보통 방법으로는 읽을 수 없는, 기묘한 소설입니다. 하지만 전혀 딱딱하지는 않아요. 품위도 없고, 시시한 익살이나 교카 같은 유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실컷 놀고, 다른 길로 빠지는 일을 되풀이하다가, 결국."
끝나지 않는 것이지요, 라고 주인은 말했다.
- "끝나지 않는다고요?"
"예. 끝나지 않습니다. 끝나는 게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고 해야 할까요."
멋지지요, 라고 말하며 주인은 양손을 펼쳤다.
"미완이라는 것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해서 영원하다는 뜻입니다."
"영원-이라."
- "네. 다카토 님, 어림짐작으로 말씀드리자면 당신은 아마 손에 넣은 행복을 놓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한 것이 아닐까요. 불행해지는 게 무섭다. 그러니까 행복해지고 싶지 않은 겁니다. 행복은 언젠가 끝나지요. 그게 싫은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그걸로 좋지 않을까요."
미완이어도, 미완인 채 죽어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하고 조당의 주인은 말했다.
- 그 책을-
샀다.
- 그날을 마지막으로, 나는 조당에는 발길을 향하지 않았다. 빌려 살던 집은 여름이 오기 전에 방을 뺐다.
하지만 집에도 돌아가지 않았다.
- 무사시 세이메이 신사의 궁사 추젠지 다스쿠의 외아들은 그로부터 이십 년 후에 아버지와 인연을 끊고 세례를 받아 예수교의 신부가 되었다고 풍문으로 전해 들었다. 스스로 변경에 가서 열의를 갖고 포교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인 추젠지 다스쿠의 심중은 알 수 없다.
정말로 앞일은 알 수 없는 법이다.
- 또 조당 주인이 그 양서를 선물하려고 했던 인물은, 내 생각에 나쓰메 긴노스케, 훗날의 소세키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 나쓰메 소세키가 제국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한 것은 내가 무사시 세이메이 신사를 찾아간 날로부터 보름쯤 후, 1893년 6월 7일의 일이었다.
게다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트리스트람 샨디'의 소개문을 쓴 사람도 소세키였다. 또 소세키의 처녀소설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이 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도 한다.
- 소세키가 그것을 조당 주인을 통해 입수했는지 어떤지는 모른다. 어쩌면 조당 주인이 한 질을 더 구해서 선물했을지도 모르고, 소세키 자신이 직접 구했을지도 모른다. 제국대학의 장서였을지도 모르고, 누군가에게서 빌린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추측일 뿐이고, 조당과의 관련도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알아봐야 별수 없는 일이고, 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기도 하다. 문자로 쓰여 버리면 모두 거짓이니까.
- 그리고 나, 다카토 아키라가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도-.
아무도 모른다.
<여섯 번째 탐서 · 미완>
서루조당 파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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