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박찬용] 첫 집 연대기

일루젼 2021. 3. 16.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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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블로그할 때는 인터파크 책 정보 넣기를 참 유용하게 사용했었는데,

지금 보니 플러그인이 종료되었다.

주로 쓰는 것이 도서 관련 끄적임이라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스럽다.


 

 

저자 : 박찬용
출판 : 웨일북(whalebooks)
출간 : 2021.02.10.


독서모임을 개최하거나 참가해 보며 

항상 느끼는 것은 사람이란 모두 제각각이라 같은 책을 읽어도 생각 또한 제각각이라는 것.

감상이 주가 되는 문학적 글이 아닌 비문학에서도 그러했다. 

 

당시에는 당혹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모든 것도 하나의 과정이었나 싶다.

내가 아닌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과 결국 이해하기 위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이번에는 조금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서 편한 주제로 진행되는 독서모임에 가입했다. 

유료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관리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현재까지는 나쁘지 않다. 

편안한 주제를 선택해서인지 불꽃 튀는 설전이 생기지도 않고.

 

조금 다른 소리지만 내게는 고질적인 악습관이 있는데, 

뭔가를 시작할 때 굉장히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적당히 마음에 드는 것을 적당히 건드려볼 때는 바로 실행해보는데 반해

이건 좀 제대로 해야할 것 같은데, 싶을 때는 확실히 알아보는 것도 아니면서 이래저래 두드려보느라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딴에는 변명거리가 있다.

매몰비용(시간, 금전, 내 에너지, 기회비용, 기타 등등)이 있고 그 외에도 비가변적인 영향을 받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확 덤비냐는 것이다. 해보고 아니면 말지, 정도의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면 상관없지만 계속 하고 싶은 것이라면 어설피 건드릴 바에는 시작을 유보한다며 애꿎은 주변만 깔짝거리는데- 이게 기간이 좀 길다. 

 

마지막 한 팁을 넘기기 전에 오래도록 서성인다. 물론 그 시간동안 식지 않았다면 하고 싶은 마음은 진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간이면 이미 시작해서 어느 정도 성과를 보건, 포기하건 뭐가 됐어도 됐을 만큼 오래도록 생각만 한다.

그리고 그걸 알면서도 항상 불량식품 먹듯 주변만 건드리며 시작하면 할 것들을 모은다.  

 

그냥 읽지 말고 각이란 걸 한 번 잡고 읽어보자고 했을 때도 그랬다.

정작 읽을 책들은 곱게 쌓아두고 일단 몸이 좀 풀려야지 하며 다른 책들만 집었었지. 

때가 아니었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 한 끝이라는 생각이 들 때 무서워서 도망치는 건 좀 그만뒀으면 좋겠다. 

 


잡소리가 길었고, 책 이야기를 좀 해보자.

에세이를 편하게 읽게 되었다는 게 최근 나의 소소한 변화라면 변화다. 

다른 사람은 그렇구나 정도로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읽으면 된다는 것, 그걸 깨닫는게 쉽지 않았다. 

굳이 타인의 이야기를 책의 형태로까지 접해야 할까? 라는 의문을 조금 내려놓았다고도 할 수 있다.

 

집.

그것도 혼자 독립할 첫 집을 결정한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여건과 자신의 가치관 사이에서 저울질을 해야 하고

취향과 유지관리의 사이에서 저울질을 해야 한다.

 

문제는 첫 집에서는 이 모든 저울의 균형추를 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처음이라 나도 나를 잘 모르니까. 

 

살아보기 전에는 내가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던 여러 조건들이 막상 살아보니 거추장스러운 것들이 될 수도 있다. 

혹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다음 집을 선택할 때 최우선급으로 고려하는 조건에 놓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취향은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런 저런 집을 거치며 지금은 어느 정도 나만의 조건들이 생겼고,

그런대로 내가 생각한 그림대로 그려보려 노력하며 살고 있지만

삶은 항상 선택과 타협의 선들 위에 아슬아슬한 평형 상태다. 

최근 몇 년 중에서는 그런대로 안정적인 상황이라 감사하며 살고 있다.  

(물론 최선을 다해 고르고 고른 집의 이웃들까지는 어떻게 하기 어렵다. 알아보고 골랐어도 살다보면 상황이 바뀌며 큰 변수가 되기도 한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저자가 멀티탭과 전구의 광도까지 자신의 생각과 의도로 선택해서 넣었다는 점이다. 

 

점점 더 '찾아내는' 일이 중요해지는 시대다.

 

내가 필요로 하는 물건이나 기능은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이미 상품화되어 존재하거나 출시될 예정이다.

이제는 필수적인 기능을 채우기보다는 오히려 경험해 보고 싶어지는 것들을 찾게 되는 시대라고 본다. 

(혹은 내가 나이가 많아져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언가에 대해 취향이 생길 정도로 접해보고 찾아본다는 것. 

좋은 것을 좋다고 알아볼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취향과 기준을 세우고 

그것을 위해 일상의 불편을 감수하면서 

작은 부분 하나까지도 반드시 선택해 자신 안으로 들여놓은 저자가 인상 깊었다.

 

좋은 것이 왜 좋은지가 보인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좋지 않은 것은 왜 좋지 않은지도 보인다는 말이다.

너무나 분명하게 보이는, 보지 않을 길이 없는 삶이 된다.

그에 따라 살아가려면 필시 남들에게 피곤하게 산다거나, 유난이라는 핀잔들을 들었을 것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이 가격에 이 만큼이면', 등에 휘둘리지 않고

정말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삶이 부러웠고, 배울 점이라고 생각했다.

 

보편과 평균이라는 말만큼 허울좋은 말이 있을까. 

그 단어들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단어들일 뿐이다.

백만분의 일의 확률이 무슨 소용인가. 나에게 일어난다면. 

내가 살아가며 봐온 경험상 그랬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삶이다. 

 

타인들을 알아두어서 나쁠 것까지는 없을 수도 있겠지만, 영향을 받을 필요는 없다. 

각자가 살아야 할 삶이 있는 것이고 내가 내가 아닌 것이 되기를 바라면 현실은 무너진다. 

무엇을 접하고 보더라도 내 안으로 받아들일 때는 나만의 기준을 잃지 않는 것, 

당신은 그 자체로 완전한 세계다. 타인이 무어라 말하건.

 

(그리고 그건 어쩔 수 없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 꿈은 내 꿈이니까. 그렇지 않게 될 방법을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부디 귀한 가르침을.)

 


 

- 호르겐 글라라스의 기본형 의자는 신품과 빈티지의 생김새 차이가 없었다. 없지는 않았을 텐데 내 눈에는 다른 점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 그것이 완벽한 패턴이라고는 주장하지 않겠다. 내가 놓인 환경에서, 또 내가 타고난 제한적 여건 내에서 내가 희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머싯 몸, 서밍 업>

 

- 요즘은 부자도 세련된 사람도 많으니 웬만한 부와 취향은 어디 가서 꺼내지도 못한다. 

 

-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깨달았다. 사람들은 남이 골탕먹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내가 다섯 달 치 월세를 내면서 이사는 하지도 못하고 공사를 진행한 이야기, 사실 다섯 달이 걸린 이유는 공사가 길어져서가 아니라 내가 마감을 하느라 공사를 돌볼 시간이 없어서였다는 이야기, 다른 건 몰라도 좋은 바닥을 포기할 수는 없어서 500만원짜리 월세방에 이탈리아 타일을 깔았던 이야기, 원목 마루를 깔려고 마루 가게 사장님까지 만났다가 갑작스럽게 못 깔게 된 이야기, 책상이 없어서 이케아 종이 상자 위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원고를 작성했지만 집 안의 첫 의자는 스위스에서 사왔다는 이야기, 그런데도 옷장은 이케아의 간이 옷장이라는 이야기, TV도 와이파이도 냉장고도 없어서 1년의 대부분은 한 달 전기료가 1,100원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 이 이야기를 남에게 했을 때의 반응은 크게 둘이다. 놀라며 한심하게 여긴다. 혹은 이해한다. 전자가 훨씬 많고 후자는 거의 없다. 이 책을 보실 분들의 마음도 비슷하게 나뉠 거라 생각한다. 황당하거나 이해하거나. 황당하신 분들께서는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구나'라고, 이해하시는 분께서는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라고 생각해 주신다면 감사하겠다. 나는 보통 머리말과 맺음말은 책 작업의 거의 마지막 단계에 작성한다. 이 책의 원고를 끝내고 나서 이 글 안에 개인적인 경험 이상의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다행이었다. 개인적이기만 한 이야기라면 재미도 가치도 없다. 개인의 이야기라도 다른 사람이 턱을 괴고 생각할 만한 부분이 있어야 독자의 시간에 누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 이사 없이 20년 동안 한곳에 살다 보니 20년 분량의 물건이 쌓였다. 내 옷과 내 책, 일하면서 한 달에 한 권씩 쌓이는 잡지들, 출장에 갈 때마다 습관처럼 챙겨 오는 물건들이 방에 계속 쌓여갔다. '이건 여기서만 팔 것 같은데', '이런 건 내가 아니면 누가 사겠어' 같은 마음으로 사 오는 물건들이었다. 

 

- 내 혼란은 여전했다. 머릿속에 주파수를 못 잡은 아날로그 라디오의 치직거리는 소리가 늘 울리는 것 같았다. 그 소리 사이에서 음악과 잡음과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무엇이 신호이고 무엇이 소음인지 알 수는 없었다. 나는 내 일에 재미를 느꼈고 당시의 동료들도 좋았지만 업계는 침체되고 있었고 내 일 솜씨가 느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내 삶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남들의 삶이 부러워 보였다. 평생 남을 신경 쓰지 않으며 살았는데 남의 삶을 기웃거리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 어떤 면에선 늘 멍했고 어떤 면에서는 늘 뾰족해져 있었다.

 

-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그 글귀를 보게 되었다. 사람이 바뀌려면 사는 곳이 바뀌어야 한다. 같은 그런 글귀였다. 인터넷에 짧은 글귀로 잘려서 돌아다닐 법한 이야기다. 나도 인터넷에서 보았던 것 같다. 회사 컴퓨터로 봤는지 스마트폰으로 봤는지 모를 정도로 기억에서 희미하다. 인터넷에 떠도는 출처 없는 잠언들은 대부분 쌀로 밥하는 것처럼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그 말은 이상할 정도로 기억에 오래 남았다. 모든 이사가 끝나고 책을 만드는 지금 찾아보니 이 말의 출처는 일본의 경제학자 오마에 켄이치였다. 그의 저서인 2012년 작 <난문쾌답>에 나온 말이라고 한다. 전문은 이렇다.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만나는 사람을 바꾸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새로운 결심만 하는 건 무의미한 행위다.' 일본인 경제학자가 에세이에서 하는 인생 구루풍 조언이라니. 평소의 나라면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을 말이다. 하지만 내게는 변화가 필요했다.

 

- 거의 모든 판타지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의 독립 판타지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게 내가 원하는 모습 그대로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독립하는 내내 배웠다. 몸을 쓰고 돈을 쓰고 소소한 손해를 입어가면서.

 

- 내 독립 과정은 여러 가지 종류의 격차를 마주하고 직면하는 일이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격차, 상상과 실제의 격차, 이상적인 거주와 실제 생활의 격차 같은 것들. 그걸 깨달은 건 내 독립 과정에서의 큰 교훈이었다. 

 

- 한국 라이프스타일 잡지 에디터의 일에는 좋은 걸 골라내는 게 포함된다.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질 수는 없으니까 사진만으로도, 좀 부족한 설명으로도 저 물건이 좋은지 좋지 않은지를 잘 알수록 좋다. 자동차나 시계 같은 고가품이나 호텔 방부터 개인사업자가 취급하는 탁구 로봇 혹은 지방의 펜션까지. 나는 실물을 보기 전의 설명만으로 뭔가를 골라내는 일을 몇 년 동안 직업 삼아 해왔다. 늘 좋은 걸 골라냈다고는 못 해도 조금씩 나아졌다고는 생각한다. 그렇게 이것저것 접한 눈으로 봤을 때도 그 집의 사진과 설명엔 미심쩍은 부분이 없었다.

 

- 형편은 빠듯했지만 형편에 맞지 않는 기호를 가진 삶을 살며 깨달은 교훈이 하나 있다. 가격은 (거의)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가끔 비싼 가격이 거짓말을 할 때는 있다. 가격 이하의 가치를 가진 물건은 어디에나 있다.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반면 싼 가격에는 정말 거짓이 없다. 싼 가격을 주고 좋은 가치를 얻기는 정말 힘들다. '세상 어딘가에 싸고 좋은 게 있을까'라는 헛된 희망을 품고 수십 년간 온갖 시장과 웹페이지를 뒤지며 얻은 경험에 입각한 가설이다. 

 

- 그런데도 나는 그 자리에서 그 집이 바로 마음에 들었다. 왜였는지는 아직도 확실하게 설명하지 못하겠다.

 

- 나는 집을 고쳐 살기로 결심했다. 집수리의 예산과 절차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채로.

 

- 이제는 나도 나이 든 분들이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으면 바로 생각나는 게 있는데, 그 말을 지금 하지 않으면 왠지 잊어버릴 것 같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내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니 또 골목길 옆 샛길처럼 다른 화제가 생각나는 것이다. 집주인 할머니와의 대화 패턴도 그런 식이었다. 내 이야기를 전하려면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할머니는 본인의 수다 사이로 전해져 오는 내 이야기를 다 확인은 하고 있었다. 대신 내 뜻을 전하려면 나도 할머니와의 대화라는 게임의 규칙을 알아야 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기도, 한 번씩 맞장구도 쳐주기도 해야 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방식을 배우고 있다는 걸, 조금 후에 알게 됐다.

 

- 그렇지 않아도 집을 구해 독립을 하는 내내 인간에 대한 불신 또는 예민하고 비관적인 세계관을 많이 접했다. 세상은 녹록하지 않고 인간은 언젠가 다 누군가를 후려치기 때문에 늘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 나도 실제 세상의 혹독한 면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중고품을 인터넷으로 거래했는데 잘못된 물건이 온다거나 하는 일은 나 자신에게는 쓰라리지만 아주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나도 중고품을 많이 산다. 앞으로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이 집에서 지금 쓰고 있는 가구 상당수를 중고품으로 샀다. 가구 말고도 중고품을 많이 산다. ... 하지만 내 선택이 실수였던 적은 있어도 물건에 문제가 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진심을 믿었다거나, 알고 보니 세상은 역시 좋은 곳이라거나 하는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다. 처음부터 많이 찾아보고 수요가 적을 물건을 샀기 때문이다. 수요가 적은 물건에는 사기가 들어갈 확률이 낮다. 대신 이 물건의 리스크는 다른 데 있다. 구매 실패 확률이 줄어드는 만큼 내가 일단 이 물건을 사고 나면 다시 판매할 확률도 줄어든다. 판매할 확률이 아예 없어 보이는 물건도 많다. 그것만 감수하면 나는 적당히 즐겁게 중고품을 사서 즐겁게 쓰고 있다. 

 

- 그 일상은 우리의 관절 건강과 정신 건강을 좀먹었지만 때로 그때만 할 수 있는 이야기와 추억을 주기도 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새벽까지 일을 하다 보면 당연히 만날 사람이 얼마 없다. 내일 일정에 조금은 여유가 있는데 아직은 잠이 오지 않는 화요일 새벽 2시 같은 시간이 가장 외로운 시간이다. 그때 남아 있는 친구들끼리 종종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낮의 세계에 사는 직장인들은 새벽 2시면 다 잠에 들었고, 그때 깨어 있는 친구들은 뭔가 다른 일들을 하고 있다. 그 친구를 만난 날도 그랬다. 

 

- 뭔가 해야 하는데 예산이 넉넉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두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았다. 하나는 평균 맞추기였다. 모든 세부 요소에 평균 수준의 예산을 넣는 것이다. 예산이 500만원이라 치면 바닥도 도배도 그 액수에 맞춰서. 나는 처음부터 그 방식은 내키지 않았다. 그런 마음으로 집을 꾸리면 새것이라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싸구려 소재로 집이 채워질 것이었다. 나는 그걸 원치 않았다.

 

- 영원한 새것은 없다. 나는 무엇인가의 가치는 새것이 헌것이 되었을 때에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그 면에서 '새것이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집 공사에 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H&M 같은 걸 여러 번 빨아 입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할 것 같았다. 옷의 디자인 유행은 세상의 여러 상황에 따라 언제든 변한다. 소재는 다르다. 질 낮고 저렴한 소재는 출시 직후를 빼면 금방 쓰레기고 계속 쓰레기다. 나는 돈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패스트 패션 브랜드 느낌의 인테리어를 하고 싶지 않았다. 

 

- 원래 잘 모르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만큼만 생각한다. 내가 집수리를 할 때도 그랬다. 돌아보면 한심할 정도로 나는 철저히 집수리를 눈에 보이는 대로만 여겼다. 

 

- 인테리어의 세계에는 절충안도 많았다. 마루나라 실장님은 나의 망연자실함을 느꼈는지 (본인이 봤을 때도 이렇게 헌 집에 바닥 미장을 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았을지도 모른다) 본드 붙이기라는 절충적 대안을 알려주었다. 울퉁불퉁한 바닥이라도 본드를 채워 넣어서 어느 정도 메울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마루나라 실장님은 전문가다운 냉정함으로 내게 "너무 심한 건 안됩니다"라고 단언했다. 실장님이 시공과 인테리어 과정에서 겪었을 수많은 다툼과 고통을 잠깐 상상하게 하는 말투였다.

 

- 이 이후로도 나는 시중의 인테리어 업자나 시공 사장님들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결정들을 내렸다. 대세를 따르지 않는 결정이란 늘 조금 더 (아니면 많이 더) 돈을 써야 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가격이 최우선순위였다면 이런 집을 고르지도, 공사를 하겠다고 나서지도 않았겠지.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집을 꾸려나갔기 때문에 돈이 계속 새어 나갔다. 

 

- 프로의 일은 일견 간단해 보여도 막상 해보면 따라 하기 쉽지 않다. 나는 에디터 일을 하며 사진가나 스타일리스트 등의 프로 창작자를 보았기 때문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울러 훌륭한 프로가 능숙하게 일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보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프로의 일에는 순서와 리듬이 있고 군더더기가 없다. 그 모습 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 많은 사람들이 손으로 하는 일의 시세를 깎고 싶어 한다. 나도 내 일을 공임 받고 하는 일이라 여기고, 깎아달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어봤다. 손님의 사정은 사정대로 이해하지만 내가 누군가의 기술을 구입할 때는 값을 깎고 싶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내가 지불한 그분들의 일당 역시 전혀 아깝지 않았다. 결과물의 품질뿐 아니라 만들어지는 과정 역시 그랬다. 그 광경을 지켜보기만 해도 뭔가를 배우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시간은 나는 게 아니라 내는 거니까 내가 더 훌륭한 사람이었다면 시간을 쪼개 쓰며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다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만큼 힘을 쓰기엔 좀 부족했다. 

 

-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의 어느 회사에서 만들었는지, 제작 방식은 풀 보디인지, 이런 것들이 나에게는 중요한 요소였다. 모든 소재는 제조국에 따라 색감이나 광택감이 다르다. 영국의 울과 이탈리아의 울은 같은 빨강이라도 함께 놓고 보면 미묘하게 톤이 다르다.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색과 어느 정도 광택감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기호의 문제다. 요즘 많이 파는 중국이나 스페인산 타일은 내 기호와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명도와 채도가 높아서 왠지 오래 보면 질릴 것 같았다. 이것도 스페인의 타일이 보다 보면 질린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역마다 햇빛 느낌이 조금씩 다르니 거기서 보면 자연스러운 색이 여기서 보면 덜 자연스러울 수 있다. 

 

- 내가 두 사장님께 요청한 건 똑같았다. 자기가 가진 기술의 가격과 그 기준. '나는 무슨 일을 얼마 받고 하는 게 원칙이다. 이 일을 하려면 이런 가격 구조로 얼마를 받고 일하마'라는 스스로의 가격표가 있었으면 했다. 나도 말하자면 공임 받고 원고 작성과 기획, 페이지 제작 등의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 만큼 누군가의 공임과 그 기준이 있다면 남들이 나를 보고 바보 같은 소비라고 하든 말든 그 가격표의 가격을 존중할 의향이 있었다.

 

- "제 직업도 공임 받고 하는 일입니다. 그 입장에서 전문가의 공임을 깎고 싶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해 작업해 주세요." 어차피 깎아봐야 몇십만 원 정도다. 그걸 흥정해 가며 사장님께 뭔가 요구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돈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돈이 많았으면 더 쾌적한 선택을 했겠지. 기술료에는 그 사람이 그간 들이고 쌓아온 시간과 노력과 경험과 윤리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 총체적인 무엇인가에 돈을 아끼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 세면대는 이케아로 고른 대신 수도꼭지에 신경을 쓰고 싶었다. 수도꼭지 역시 종류와 소재와 브랜드와 생산국에 따라 종류가 엄청나게 많았다. 손목시계든 조명이든 잘 만들어진 철물에는 그 물건만의 깊은 감흥이 있다. 공장에서 나온 예술품이랄까. 나는 개인적으로 '철물은 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산이 좋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 이탈리아, 독일, 일본의 철물은 기본적으로 수준이 높은 데 더해 잘 만든 건 황홀할 정도로 멋지다. 자동차, 시계, 거기다 수도꼭지까지. (반면 가죽 제품은 2차 세계대전 연합국산이 멋있다. 미국, 프랑스, 영국. 왜인지는 모르겠다)

 

- 책을 가장 먼저 뺐다. 책이 가장 중요했다. 내 친구들은 잘 안 믿지만 나는 책 읽는 걸 좋아한다. 십수 년간 사둔 책들이 내 방 곳곳에 종이컵 밖으로 부풀어오른 팝콘처럼 쌓여 있었다. 직업이 무언가를 읽고 만드는 일이다 보니 나는 내가 보기에도 비합리적이다 싶을 정도로 책을 이고 지고 살고 있었다. 낡은 책장의 모든 칸에 책을 가득 꽂아두었다. 높이가 낮은 책을 꽂아두면 책과 책꽂이의 천장 사이로 약간의 틈이 생긴다. 거기도 책을 가로로 꽂았다. 책장 앞에 공간이 남으면 만화방처럼 책을 2단으로 꽂았다. 그렇게 계속 살았다. 

 

- 늘 편하지는 않지만 '바로 지금 여기다' 싶은 최고의 순간이 온다. 그 순간에 들어가면 입이 벌어질 정도로 좋다.

 

- 나는 그런 건 전혀 참고하지 않았다. 내가 사는 집에 지금 인기 있거나 가성비 좋기로 유명한 물건 같은 건 넣고 싶지 않았다. 내가 대단한 심미안이나 고집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유행과 가성비라는 말을 믿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두 가지 개념을 믿지 않게된 건 라이프 스타일 잡지에서 약 10년 동안 일하며 얻은 가장 큰 교훈 중 하나였다. 

 

- 가격과 성능은 어떻게든 비례할 수밖에 없다. 특히 스스로 가성비를 마케팅 요소로 활용하고 그 사실을 내세우는 제품은 100퍼센트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배제했다. 마케팅을 하려면 마케팅 비용이 든다. 마케팅 비용은 필연적으로 제품 가격에 반영된다. '가성비 마케팅'을 진행했을 때의 마케팅 비용 역시 가성비 제품에 반영될 것이다. 소비사회에서 가격과 성능이 비례하지 않는 경우의 수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한 하나뿐이다. 사람의 마음이 변했을 때. 그래서 사람의 마음에서 벗어난 악성 재고 중에선 품질이 좋은 물건이 있을 수 있다.

 

- 목재는 특성상 저렴한 티를 숨길 수가 없다. 비싼 나무는 색과 결이 고급스럽다. 비싼 인력은 그 나무를 재료로 황홀한 곡률의 가구를 만들어낸다. 튼튼하나 저렴한 나무를 쓴 직선 위주의 이케아 나무 가구는 운명적으로 조금 덜 우아해진다. 반면 이케아의 철제와 플라스틱은 가격 대비 도장 상태나 질감이 굉장히 좋다. 유럽 특유의 세련된 색감이 여기서는 확실히 빛난다. 같은 흰색이나 회색이어어도 색의 톤이나 광택의 정도에서 유럽과 아시아는 조금의 차이가 있다. 우열이라기보다는 기호의 영역인데, 나는 가격이 싸도 이케아가 보여주는 유럽풍의 색과 질감이 좋았다. 이런 거야말로 허세지만 어쩔 수 있나. 내 안의 허세가 나를 에디터라는 직군으로 몰고 갔을 것이다.

 

- 평소엔 온갖 비싼 물건을 구경하고 행사라도 초대받으면 루이 뢰더러니 하는 그런 샴페인들을 얻어 마시다가 집에 갔는데 1회용품에 가까운 조악한 가구들만 있다면 '내 삶이 겉보기에만 멀쩡하고 가까이 가면 삐걱거리는 MDF 가구와 무슨 차이가 있나' 싶어지며 처량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그런 기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케아 비율을 맞춰야 했다.

 

- 혼자 사는 건 나 자신에 대해 계속 생각하는 것이기도 했다. 집에 들어갈 걸 누군가가 채워주지 않았고 내 예산에는 한계가 명확했다. 그러니 나는 내 삶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열심히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질문은 크게 둘이었다. 나는 무엇이 필요한가? 그리고 내가 필요한 것 중 이 집에 있어야 할 것과 없어도 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집을 고른 것 자체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보여주는 예일 수 있었다. 

 

- 거기에 대해 나는 원체 찬 걸 잘 안 먹는다. 어릴 때부터 찬 걸 먹으면 이가 시렸다. 지금도 차가운 물은 잘 안 마신다. 아이스크림도 내가 먼저 사 먹는 일은 없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날도 근 몇 년 동안 1년에 2회를 넘지 않았다. 2019년에 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은 적은 딱 두 번이었다. 한 번은 40도 가까이까지 온도가 올랐던 여름의 절정. 한 번은 남이 잘못 시켜줬을 때였다. 2020년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번 먹었다. 남이 잘못 시켜줬다.

 

-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될 정도로 유치한데 내가 이 집에서 바랐던 건 특정한 장면이었다. 그 장면이란 그냥 음악을 켜두고 책을 읽는 것이었다. 세상에 그냥 이루어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걸 구현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를테면 오디오를 올려둘 책상도 하나 없었다. ... 아무것도 없던 방에 소리가 채워질 때의 그 느낌을 아직 잊지 못한다. 그렇게 작은 순간들이 혼자 집을 채울 때의 위안과 기쁨이 되었다.

 

- 수건까지는 신경을 써서 샀다. 면직물의 세계도 아주 여러 가지 변수가 있지만 수건에까지 공을 들일 수는 없었다. 수건은 소모품이고 소모품에까지 돈을 많이 쓰는 게 진짜 부인데 나에게 진짜 부를 실현할 만큼의 돈은 없었다. 똑같은 색의 수건을 쌓아둘 수 있다면 그게 나에게는 넘치는 사치였다. 

 

- 집에 좋은 의자가 있어서 좋은 의자의 중요성을 더 잘 알게 되었다. 잡지 에디터라는 직업의 우스우면서도 귀여운 점 중 하나는 형편에 비해 터무니없이 좋은 물건을 종종 갖고 있다는 점이다. 내게도 그렇게 터무니없이 좋은 물건들이 몇 개 있고, 그중 하나가 의자였다. ... 자작나무로 만든 마그누스 올레센의 라운지 체어였다.

 

- 예쁜 의자란 무엇일까. 정답이 없는 이야기다. 다만 개인화된 답 정도는 있을 수 있겠지. 내게 예쁜 의자는 우연히 갖게 되어 방에 덩그러니 혼자 놓인 마그누스 올레센의 자작나무 라운지 체어 같은 것이었다. 꼭 비싼 소재를 쓰거나 유명한 디자이너가 만들지 않아도 된다. 내가 사는 집이 카페나 쇼룸도 아니고, '세계 100대 의자 중 하나' 같은 걸 둘 생각도 없었다. 난 그저 잘 만들어진 걸 갖고 싶었다. 물건이든 글이든 오래 쓰이도록 만들어진 게 있다. 그런 것들은 당장 티는 안 나도, 아니 오히려 당장 티가 나지 않기 때문에 오래 둬도 어색하거나 부담스러운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런 의자를 찾고 싶었다. 좋은 걸 구할 수 있다면 형편보다 조금 무리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 조금 돌아다니다 보니 한국에서 지금 가장 찾기 힘든 가구가 바로 그런 물건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한국의 어떤 계층에게는 '취향'이라는 말이 엄청나게 퍼져서 이제 사실상 해외 잡지에 나온 건 못 구할 게 없어졌다. 2010년 중반까지만 해도 미드 센트리 가구 같은 걸 파는 곳은 한국에 한두 곳뿐이었는데 이제는 한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로 많은 미드 센트리 전문점이 생겼다. 카이 크리스텐슨이니 한스 베그너니 하는 유명 북유럽 디자이너의 빈티지 가구도 한국에 많이 들어왔다. 

 

- 그런데 그 경험이 나의 기호에 도움이 되었다. 

 

-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에서 분수에 안 맞는 삶을 살다 보면 종종 고달프고 남 보기엔 웃기지만 혼자서 흐뭇해지는 때가 가끔 있다. 그 가끔을 즐기며 2017년과 2018년을 보냈다.

 

- 중고나라에서 온갖 걸 산다고 하면 사람들이 으레 하는 질문이 있었다. 자기는 검색해도 못 찾겠던데 마음에 드는 물건을 어떻게 찾는지. 나는 '판매자의 다른 글 보기'를 많이 했다. 보통 개인이 자기 물건을 판다면 그 사람의 물건 전체에 자기의 기호와 개성과 취향이 반영될 확률이 높다. 예를 들어 내가 60년대의 유럽산 티크 가구를 찾다가 어떤 개인의 특정 물건을 더 볼 수 있다. 그런 판매자라면 그 사람이 올린 다른 물건도 유럽산 티크 가구 수준의 좋은 물건일 가능성이 높다.

 

- 도시 생활이란 게 뭘까. 살 때는 좋았다 싶은 물건이 집에 들여놓으니 크고, 그걸 또 팔고, 누군가는 또 그 물건을 좋다고 사고. 취향이니 예쁨이니 이런 게 다 허무한 건가 싶기도 했다. 티크 커프 테이블을 사들고 돌아가는 길에 하기엔 좀 잡스러운 생각이지만 나는 원래 잡스러운 생각을 많이 한다.

 

- 이것저것 사서 넣다 보니 내는 내 구매의 패턴을 깨닫게 되었다. 우선 좋은 건 많이 구경해 봤다. 일로도, 개인적으로도. 그래서 좋은 걸 갖고 싶어졌다. 좋은 건 여러모로 좋으니까. 그런데 좋은 걸 사기엔 돈도 시간도 모자란다. 그 결과 어떻게든 돈을 아껴보려고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찾아본다. 어차피 집에 있는 시간이 길지 않으니 일상이 불편한 건 크게 상관없다. 그렇게 시간을 들여 하나씩 집을 채워나갔다. 

 

- 모두 본인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이 있다. 젊은이보다 먼저 산 어른들은 본인들 보기에 좋았던 삶의 방식이 있으니 젊은이에게도 그렇게 살아보라고 권한다. 내가 그걸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금까지 써온 것처럼 집주인 할머니가 원했던 삶의 방식과 내 삶의 방식, 그리고 내 어머니가 원한 삶의 방식에는 모두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그게 뭐 나쁜 일인가. 모두 각자가 보고 느낀 대로의 최선을 사는 거고, 그 방법을 내게 권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부터는 나이 많으신 분들이 하는 이야기를 적당히 새겨듣고 적당히 넘겨듣게 되었다.

 

- 당연히 있는 듯한 도시의 주말이지만 이제 나는 당연한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안다. 그런 하루는 조금 조마조마하면서도 순간순간 즐겁다. 요즘 내가 그렇다. 

 

- 그렇게 살아야만 할까? 꼭 돈이 많이 있어야만 남다른 기호를 가질 수 있을까? 번화가의 멋진 쇼윈도 안에 있는 물건만이 좋은 물건일까? "이게 요즘 대세예요"라는 말과 함께 뉘신지도 모르는 '전문가'와 '인플루언서'가 권하는 물건들로 내 옷장과 내 집과 내 삶을 채우는 삶이 현대 사회의 선택과 집중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 이런 모습으로 살아보게 되었다. 나 자신을 재료 삼아 '저성장시대의 취향 추구'라는 소소한 실험을 해봤다고 해도 되겠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건 내 어줍잖은 기호와 취향이 아닌 내 태도와 행동과 그 이유였다. 내가 무슨 의자를 골랐는데 그게 누가 어디서 만든 물건인지, 내가 무슨 타일을 골랐는데 그게 얼마나 훌륭한지, 그런 건 이 책에 나오긴 하지만 내가 전하고픈 메시지는 아니다. 나는 선언하거나 제안하는 대신 대응하고 적응하려 했다. 내가 왜 그랬는지, 무엇을 얻기 위해 무엇을 포기했는지, 이런 것들을 적어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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