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

[최훈동] 내 마음을 안아주는 명상 연습

일루젼 2021. 7. 8.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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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훈동
출판 :  담앤북스
출간 :  2019.06.30


 

세상에는 수많은 책이 있고, 수많은 출판사가 있다. 

유튜브에 채널들이 넘쳐나는 것처럼. 

그 수많음 속에 자신이 관심을 둔 것에, 혹은 인연이 닿은 것에 이르는 것 같다.  

 

명상 관련 도서를 여러 권 대출해와서 읽고 있다.

이제껏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지만 최근에는 약간 각을 잡고 해 보려고 노력 중이다.

무언가를 위해서 하기보다는, 그저 그 순간에 온전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호흡은 짧고 잡념은 넘치지만 그래도 하지 않을 때보다는 만족스럽다. 

 

'몽테뉴'의 <수상록>을 처음 읽었을 때는 나름대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방향을 잡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문득 고개를 들어보면 나는 여전히 표류하는 나날들 가운데에 있었다. 

 

확신을 가지는 것도, 불안에 사로잡히는 것도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사이사이에 내리쬐는 햇살과 시원한 바람 한 줄기에 충만함을 느끼는 순간은 틀림없이 존재한다.

그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요즈음이다.

 

새로운 감각, 새로운 경험.

그것들이 매번 더 강해지지 않더라도, 잘 되던 것이 어느 날인가에는 잘 되지 않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모든 감각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진리를 추구하면서 종교의 문을 두드린 이는 많으나 진리를 얻는 대신 교조(스승)의 그림자만 숭배하는 외향적 신앙에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보아왔습니다.

 

-  어떤 종교를 믿건 상관없습니다. 마음공부인 명상이나 심리 치료는 종교를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들을 사랑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게 중요한 문제가 될 뿐 종교의 도그마나 우월성 시비는 하찮은 일일 뿐입니다.

 

- 진정한 스승은 모습을 지닌 존재가 아니다. 모든 사물의 근원에 존재하는 본래의 깨어 있음이다. 
우리의 진정한 본성인 깨어 있음, 모든 스승의 마음이자 우리 내면의 궁극적인 마음. 

ㅡ텐진 완걀 린포체

 

- 명상은 자신을 잘 보는 자기 분석 방법입니다. 물론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상을 볼 때 신념에 싸여 봅니다.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대상을 대할 때 있는 그대로 사실을 파악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내면세계를 투사하여 보고 듣습니다. 이 투사를 통찰하고 벗겨 내는 작업에 정신치료와 명상이 있습니다. 정신치료는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이루어집니다. 명상 역시 마음을 잘 볼 수 있는 방법 (길)을 제시하고 있어 명상하는 사람은 이 길을 거쳐야 합니다. 

 

- 인간은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이나 정서적 상처 등에 의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왜곡하여 인지하고 있습니다. 명상이나 정신치료는 왜곡된 현실을 본래 그대로 볼 수 있게 되돌려놓고 마음을 자유롭고 평안하게 만드는 작업입니다.

 

- 모든 아픔은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에 대한 관점에 따라 있는 것이다. -슈리 바가반

 
 - 고통을 극복하려 애쓰기보다 명상을 통해 고통에 귀 기울이면 고통이 주는 가르침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되면 고통은 힘들기만 한 게 아니라 배울 수 있는 대상이 됩니다. 가혹한 자기 비난이 가혹한 타인 평가로 펼쳐져 나감을 자각하는 순간, 자기 연민과 자기 수용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고통에 저항하는 것을 중지하고 자신을 끊임없이 평가하는 일을 중지하면 삶이 느긋해지고 삶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리뷰자 주 : 겪어야만 할 일을 모종의 방법으로 회피할 경우 결국 더는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는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라 생각한다.)

 

- 삶에 열려 있다는 건 고통을 경험한다는 뜻입니다. 고통을 피하거나 없애려 들면 육체적인 고통이 정신적인 고통으로 변합니다.

 

- 우리가 사물을 인식할 때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연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보고 듣는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서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오감으로 지각하고 마지막 여섯 번째로 마음이 판단과 해석을 가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예전 경험과 기억이 덧붙여집니다. 그러면 실제와 다른 내용으로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생각, 기억, 신념 등에 의해 왜곡되고 착색된 인식을 합니다. 주관적으로 인식할 때에 에고가 개입되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 소문으로 들었다고 해서, 대대로 전승되어 내려온다고 해서, 성전이나 경전에 쓰여 있다고 해서, 유명한 스승이 한 말이라고 해서, 그대로 따르지는 말라. - 앙굿따라 니까야, <깔라마의 경>

 

- 명상과 정신 치료는 서로 마음을 비춰 주고 배우는 관계입니다 당신이 나의 스승이고 나는 당신의 스승입니다. 거울처럼 서로 스승이 되는 관계입니다.

 

- 진정한 자존감은 그 사람을 당당하게 하되 겸손하게 하며 또한 상대를 존중하기에 뽐내지 않고 상대가 자존하는 마음이 되게끔 돕습니다. 

자존심은 '내가 너보다 우월하다, 동등하다, 열등하다.'라고 에고가 비교하는 마음입니다. 자존심은 교만한 반면 자존감은 겸허합니다. '자기 자신만이 홀로 존귀하다.'라는 말은 독선이나 이기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라.'라는 말도 이기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극한 자존감의 표현이고 자존감을 얻기 위해 밖에서 얻으려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 모든 고통은 나를 깨우치기 위한 스승입니다. 두려움, 분노, 비교, 판단, 저항, 의심, 혼란, 수치심 등으로 재잘대는 내면의 독백 (주절댐) 또한 가슴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 있습니다. 살면서 긴장을 일으키는 것들은 모두 깊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 철학은 물을 설명하는 것이라면 명상은 물맛을 보는 것입니다. 명상은 참지혜를 맛보게 합니다.

 

- 우리의 내면에는 오만, 비교, 질투, 원한, 무력감, 자기 비하 등등 남들에게 숨기고 싶은 온갖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누구에게나 있기에 숨길 이유가 없습니다. 완벽한 척할 필요도 없습니다. 에너지 소모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다만 바라 보아도 사라지지 않는 끈질긴 저항이 있다면 그것들이 하는 말에 깊이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뿌리 깊은 경향은 저항하면 할수록 더욱 힘이 세져서 벗어날 수 없게 우리를 옭아맵니다.

 

- 다만 명상을 하는 사람이라면 상대방이 사과하거나 뉘우치지 않더라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내가 고통을 받은 만큼 상대방도 동등하게 상처 입고 고통받는 존재임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그 또한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나 또한 알게 모르게 남에게 상처를 주었을 터인데 내가 행복하려면 그들이 나를 용서해 주기를 빌어야 합니다. 따라서 용서 명상은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하는, 두 과정으로 이루어집니다. 

 

-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경청하고 숙고하고 자각하고 느끼는 명상을 통해 의식은 보다 깨어납니다. 가슴에서 감정을 느끼고 지켜보면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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