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맨리 P. 홀 / 윤민 / 이강혜
출판 : 윤앤리퍼블리싱
출간 : 2016.02.12
이전 책을 다 읽고 그대로 잘까, 한 권만 더 읽을까 고민하다가 눈에 띄어 집어들었다.
전혀 다른 영역의 책이었지만 각 권에서 거의 동일한 문장을 발견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대상은 오직 두려움 자체, 그 하나뿐이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
고민 중일 때는 모든 것을 고민거리와 관련지어 바라보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 답을 예기치 않게 '발견'하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아직 계획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무엇에 대해 생각해야 할지는 조금씩 선명해지는 기분이다.
아직은 조금 더.
- 문제의 실체를 부인하고 필요한 결단을 회피해서는 결코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어떤 문제든 영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자신이 성장함으로써 그것을 뛰어넘는 것뿐이다. 문제를 넘어설 수 있을 만큼 강해지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게 된다. 그러나 문제를 회피하려고 하면 같은 문제가 계속 나타나 나를 괴롭힐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삶의 목표를 '성장'으로 정하는 편이 지혜롭지 않을까? 그러니 두려워하거나 걱정하기보다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능력을 익히자. 성장함에 따라 지식과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 일상적인 활동도 새로운 관점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삶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놀라운 경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 이 모든 골칫거리를 상호 연관성이 없는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문제로 보고 각개 격파하기 위해 끙끙대기보다는 공통분모를 찾아내 한 번에 모두 해결하겠다는 건설적인 태도를 갖는 편이 훨씬 쉽지 않을까? 옛날에 한 현자가 말한 것처럼 "나를 바꾸면 모든 것이 바뀐다."
-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 그대가 항상 옳다면 왜 매번 곤경에 처하겠는가.
- 그러나 미지의 영역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 모르는 것이라고 해서 비판적이고 의심에 가득 찬 시선을 보내서는 안된다. '모르는 것'은 '아는 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역일 뿐이다.
- 일상 속에서 더 많이 이해하고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편견이나 비판적 시각에 사로잡히는 것을 경계하며 지식 탐구를 계속해 나간다면 삶은 저절로 우아해질 것이다. 그리고 어두웠던 곳에 빛이 비추기 시작할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과 친구가 되었을 때, 사각지대 때문에 가려져 있던 시야가 트였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생각과 감정이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내면의 환경부터 말끔하게 청소해야 한다.
- 대부분의 현대인은 지금 당장 지상낙원이 도래한다 하더라도 행복해지지 못할 것이다. 진정한 내면의 행복을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수밖에 없다. 내면의 균형이 잡혀 있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자기 안의 혼란을 정복하는 것이 곧 성장이다.
- 내면을 바르게 세우지 못한 사람이 긴장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마음을 놓아버리면 오히려 불편하고 불안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런 사람이 경계심을 풀어버리면 미숙한 내면이 밖으로 드러나 사회적으로는 망신을 당하고, 개인적으로는 마음의 평온을 잃게 된다. 이런 사람이 느끼는 '마음의 평온'은 '성숙한 내면의 고요함'이 아니라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 자연은 오로지 성장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계속 던져 줌으로써 모든 생명체에게 진보를 향한 압력을 가한다. 따라서 정신적 성숙은 부족함을 극복하는 일뿐만 아니라 이미 잘하고 있는 분야에서 더욱 성장하도록 박차를 가하는 일까지도 아우른다. 성장이 멈추는 순간 노화가 시작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우주에 정지 상태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모든 생명체는 각자가 이루어야 할 숙명을 실현하기 위해 계속 성장해나가거나 성장을 멈추고 서서히 사라져 가거나, 둘 중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에 대해 감사하는 것은 우주의 법칙을 준수함으로써 행복을 발견한다는 뜻이다. 성숙한 사람은 이 진리를 받아들이지만, 정신적으로 아직 사춘기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반복적인 일상에서 오는 제약을 경멸한다. 미숙한 사람은 또한 계속해서 권위와 충돌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지도나 조언, 질책을 혐오한다. 언제나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하며, 시대의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자신의 기준이 시대의 기준보다 우월하다고 여기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 적당한 포부를 가지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포부도 경험을 통해 검증되었을 때나 유효한 것이다. 남보다 잘났다는 오만함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이어진다면 아직 철이 덜 들었다는 증거다. 정말로 잘난 사람이라면 남보다 나은 행동을 보여줘야 하는데, 잘난 척하는 사람들은 대개 입으로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선에서 만족한다. 이런 사람 치고 실제 행동으로 자신의 뛰어남을 증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진정한 내적 성장은 겸손한 태도, 그리고 끊임없는 인내와 관찰을 통해 앞으로도 계속 성장하고 배우겠다는 삶의 자세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무지한 자는 어디까지가 자신의 한계인지, 어디까지가 긍정적인 사고이고 어디서부터가 근거 없는 망상인지 모르기 때문에 지나치게 자신만만하다. 남에게 조언해 주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 조언이 가져오는 비극적인 결과를 무시할 수 있다면 말이다.
- 인간은 자신이 갖춘 능력과 역량만큼만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이 이해하는 만큼만 성장할 수 있다.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 역시 어떤 사람에게는 약이 될 수 있는 조언이 다른 사람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진리를 인정했다.
- 고대철학에 정통한 저자 맨리 P. 홀이 여러 저서를 통해 소개한 신플라톤 학파의 철학에 따르면, 정직 honesty 한 사람은 '옳지 않은 일을 하면 벌을 받을까 봐' 옳은 일을 하지만 온전함 integrity에 이른 사람은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릇된 일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들은 온전함에 이른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좋은 세상이 온다고 보고, 의식의 성장을 인간이 성취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하지만 살아가는 것 자체가 생존 경쟁이 되어버린 시대에 과연 우리는 어떻게 온전함에 이를 수 있을까?
- 흔히 걱정이 많은 사람일수록 사려 깊고 성실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일찌감치 그 사실을 깨달은 고대 이집트인들은 인간이 저질러서는 안 될 죄악 중 하나로 '근심'을 꼽았다. '깊이 생각하는 것'과 '걱정하는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해결책을 찾으려 애쓰지만 걱정에 빠지는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며 혼란 속에서 허우적댈 뿐이다. 걱정을 일삼는 사람은 머릿속에서 같은 문제를 수없이 반복 재생하며 자신을 괴롭힐 뿐 아니라 자기 건강을 해치고 주변 사람들까지 우울하게 만든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걱정할 일도 그만큼 줄어든다. 세상에는 깊이 생각해서 결정해야 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대상은 오직 두려움 자체, 그 하나뿐이다.
(리뷰자 주 : 같은 날 읽은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에 루스벨트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고 연설한 내용이 있었다. 반복되다 보니 더 강한 인상을 주는 문장이다.)
- 과도한 스트레스를 경계해야 한다. 정신적 피로가 누적될수록 어리석은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고대 불교에서는 '어리석음'도 죄악에 속했다. 소위 '효율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늘 신경쇠약 일보 직전의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이는 꼭 과로 때문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허황된 야망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어떤 사람들은 직장에서 해고당하지 않고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무리하게 일할 수밖에 없다고 변명을 늘어놓곤 한다. 하지만 육체적 건강이 요구되는 시점에 정신적으로 탈진하여 쓰러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더욱 생산적으로 일하는 방법이며 보다 안정적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비법이다. 상사와 동료들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그들도 상담이 필요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 아울러 진정한 유머는 남을 아프게 하지도, 비웃지도, 비판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세상을 향해 웃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웃는 것이 진정한 유머다.
- 유혹과 타협하면서 산다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유혹에 넘어간 삶을 산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성품에 대해 최소한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 안에서 악과 타협하는 야비한 모습을 발견한 사람은 결코 어떠한 자긍심도 느낄 수 없다.
- 행복은 올바른 삶의 부산물이다. 양심의 법칙을 지키면 양심이 우리를 지켜주고, 올바르게 살면 좋은 수확물을 거둔다. 이 단순한 진리를 수확의 시기에 이르러서야 깨우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때가 되면 '심지 않은 작물을 거둘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리라. 한번 입힌 상처는 되돌릴 수 없고, 때늦은 후회는 소용이 없다. 몸을 건강하게 가꾸기 위해 세심하게 운동 계획을 짜듯, 정신과 감정을 풍요롭게 가꾸기 위해서도 꼼꼼히 계획을 세워 실천해야 한다. 젊은 시절부터 자연의 섭리를 인지하고, 노력한 만큼만 대가를 취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사는 사람은 평생 만족스러운 삶을 누릴 수 있다.
- 세상에는 '나'라는 존재보다 더 큰 무언가가 있으며, 부자가 되거나 명성을 떨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삶의 목적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존재를 지속하는' 것이다.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자연의 힘은 우리가 삶을 통해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인간은 현명하고 쓸모 있고 평온한 사람이 된 만큼 성장한 것이며, 성장한 만큼 성공한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배우기 위해사는 것이며 살기 위해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 특정 기술이나 과학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듯이, 의식을 단련시켜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보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저절로 올라오는 감정을 내가 어쩌겠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속에서 감정이 복받쳐 오를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 생각의 사각지대는 십중팔구 우리가 체험하지 않으려고 했던 분야, 혐오스럽거나 시시해 보인다는 이유로 경험하려고도, 받아들이려고도, 생각하려고도 하지 않았던 분야에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 삶의 여러 측면을 최대한 많이 경험해봄으로써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언가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예술이든 과학이든 산업이든 정치든, 객관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려면 우선 제대로 알아야 한다. 모른다는 이유로 무조건 나쁘게만 생각하는 태도도, 모르기 때문에 다 좋게 보려는 태도도 똑같이 경계해야 한다. '모든 것은 흥미롭고, 알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리뷰자 주 : 건전지... 를 연결해야만 한단 말인가...? <나는 천재일 수 있다>에서 머리에 전극을 연결해 전기 자극을 주는 방식을 보고 실천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 중이었는데...)
- 왠지 모르게 자기 자신도 납득할 수 없는 격렬한 감정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감정이 복받치면 자기도 모르게 뛸 듯이 기뻐하거나 불같이 화를 내게 되고, 튀어 오른 감정을 추스르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심지어 이런 즉흥적인 반응을 '강력한 직관의 힘이 작용하는 증거'라고 여기기까지 한다. 물론 이런 판단은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다. 하지만 틀렸던 일은 금세 잊어버리고 맞았던 일만 기억하지 않았던가!
- 예술, 건축, 종교 등 인간의 삶과 환경에 세련미와 성숙함을 더해주는 모든 것에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아름다움을 발견해낼 수 있다. 아름다움과 교감하는 능력이 발달하게 되면 교감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들은 자연히 멀리하게 된다. 한편 '참여'는 '교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교감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현상이다.
- 선별이나 농담 같은 예술의 개념은 친구와 잡담을 나누거나 타인에게 조언을 할 때도 매우 유용하다. 이 개념을 확실하게 습득하면 모든 일을 분별과 선택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고,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며, 가치의 상대성도 발견하게 된다.
- 뛰어난 예술가는 미지의 것을 갈망한다. 끊임없이 지식과 교감 능력을 배양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은 미지의 것에 저항한다. 자랑스러운 자기만의 작은 왕국이 조금이라도 흔들릴까 두렵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 불행한 일인데, 우리는 이 불행을 오히려 행복으로 여기는 것 같다.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알지 못하는 것과 마주쳤다 해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는 마음, 알고 보면 내가 미처 몰랐던 것들도 매우 자연스럽고 합리적이고 적절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성장이나 변화를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 "나는 이 분야에서 여러모로 부족해. 이 분야에 대해서만큼은 아는 바가 없어. 이건 내가 해결해야 할 과제야."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순간, 현재로서는 문제를 해결할 지식도, 경험도, 지혜도 없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솔직히 시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 약점을 부정하며 스스로를 속일 필요도 없어진다. 관점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순간이다. 이렇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나면 최소한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일은 막을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보지 못하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다 보면 처음에는 간단했던 문제가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꼬이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잘못 알고 있으면서 끝까지 내 생각이 옳다고 착각하는 것이 훨씬 부끄러운 일이다. 활동의 폭이 좁고 경험이 부족해서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약점을 오히려 미덕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무식을 자랑으로 여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 그러므로 우선은 배경을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 배경 채우기의 일환으로 일단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것들의 목독을 작성해볼 것을 권한다. 하나씩 써내려간 다음 다시 한번 찬찬히 훑어보면서 추가할 것이 있으면 추가한다. 사람이 '싫어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양심의 가책을 유발하거나 기본적인 가치관을 위협하는 것들이다. '나쁜 일'에 관여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유혹의 손길이 뻗쳐 와도 옮지 않다고 판단되는 일이라면 하고 싶지 않아 한다. 즉, 내가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상황이나 어느 누구라도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일, 그리고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경험한 셈 치자' 정도로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 등이 첫 번째 항목에 해당된다. 두 번째는 합당한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 다시 말해 모르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들이다. 세상에는 내가 알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과 모르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이 있고, 둘의 경계에는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이 있다. 어쨌든 싫어하는 것의 목록을 작성하다 보면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항목들이 꼭 나오게 마련이다.
- 잘났든 못났든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권리가 있다면 그것은 배우고, 성장하고, 배운 것을 공유할 권리지, 타인을 지배할 권리는 아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존재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신성하고 특별하다고 여길 만한 이유가 전혀 없다. 그들이 나의 모든 생각에 동의해야 할 의무는 없다.
- 이런 식으로 생각의 수준을 높여가면 사각지대가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각지대라는 것은 단지 그동안 내가 계발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쳐다보지 않았던 영역일 뿐이며, 그 영역을 계발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이유는 삶의 계획이나 목적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동안은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늘 그래왔듯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나의 권리이자 운명이고, 다른 사람도 이런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숙명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삶의 진정한 가치에 눈뜨는 순간, 정신에 끼어 있던 백태가 떨어져 나가면서 이제까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던 이유가 사각지대라는 백태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 멜기세덱은 구약성경 창세기 14장과 신약성경 히브리서 7장 등, 성경에 몇 차례에 걸쳐 등장하는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초기 족장인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내려 주고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는' 신비로운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 성경에 보면 살렘 salem의 왕이자 제사장인 멜기세덱 Melchizedek은 자신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비에 둘러싸인 이 사제는 스스로 자신의 미숙한 내면을 지도하고 보호하는, 완벽하게 진화한 인류를 상징한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 모두 자기 자신의 부모가 되어야 한다.
- 저자는 영적 연금술의 원리를 다룬 《헤르메틱 결혼: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 The Hermetic Marriage: A Study in the Philosophy of the Thrice Greatest Hermes)라는 또 다른 저서에서 멜기세덱의 실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지배적이고, 강압적이고, 공격적인 성질을 가진 남성성은 물질 세상에서 생존을 위해 창과 방패를 휘두르는 데는 적합하지만, 섬세한 면은 다소 부족하다. 인간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남성은 가장의 역할을 하며,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거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섬세한 감각, 직관의 힘, 그리고 아름다움과 예술에 대한 사랑 등을 희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혼을 상징하는 섬세한 감각은 여성성의 영역이다. 최초의 남성은 자선, 친절, 사랑의 힘을 다루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오랜 세월을 통해 물질 세상을 경험하면서 점차적으로 이런 미덕을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남성은 이 남성다움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고, 그전까지는 여성성으로 대변되는 이 덕목들을 갖추지 못해 고통스러워했다."
- 즉,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를 '신의 의지'와 결합한 자가 인류의 구세주가 되는 것이다. 구세주란 결국 자연계에 존재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원리를 하나로 통합한 사람이며, 고대인들은 그를 '헤르메틱 결혼을 통해 태어난 아들'이라고 불렀다. 자신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이기도 한 남성성과 여성성을 완벽하게 조화시킨 멜기세덱과 같은 사제라 칭했던 것이다.
- 그러나 우리는 내면의 아이에 대해서는 이런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내면의 혼란을 바로잡고 질서를 세울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눈앞이 깜깜해진다. 자신의 성향과 행동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일도 별로 없고, 이기심과 사치심을 엄격하게 다스려야겠다는 생각도 좀처럼 하지 않는다.
- 희미하게나마 존재의 목적을 인지하기 시작하면 자신이 진심으로 진리라 여기는 것에 따라 삶을 꾸려나갈 권리와 기회가 주어진다. 인간이 성장할 수 있는 가장 쉽고 안전한 방법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을 중단하는 것이다. 자연은 모든 생명이 원래의 목적대로 이상을 펼치도록 늘 돕고 있다.
-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멋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을 조화시키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 사람이 정신적, 감정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우울하고 불만에 차있을 수는 없다. 자연은 미덕을 가진 자를 벌하지 않으며, 균형 잡힌 삶은 고통과 불행을 가져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행하고, 불안하고, 지속적인 불편함에 시달리고 있다면 문제는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아무리 변명하고 도피해 봐도 소용없다. 불행의 원인을 바로잡지 않는 한, 결과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 이 사례를 통해 인간에게 성장의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의 내적 욕구이지 타인의 조언과 권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새겨볼 수 있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내면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가야 한다. 불행한 변호사로 사느니 행복한 노동자로 사는 편이 훨씬 낫다.
-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이직은 자신의 부족함으로부터 도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기회에 도전할 수 있는 초대장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얻은 지혜가 그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며, 그에 따라 별 탈 없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 '성숙함'은 다차원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성숙하다'는 것은 자신의 활동 영역에서 충분한 역량을 발휘한다는 의미다. 필요한 만큼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면 아직 적응하지 못한 것이고, 필요한 것보다 많은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면 이미 더 높은 단계로 올라서 있다는 뜻이다.
- 이론은 실천으로 이어질 때만 의미가 있듯이, 사회에 진출한 인간은 이제까지 축적한 내적 자산을 활용하여 잠재력을 펼쳐야 존재의 의미가 있다. 직업적 기술을 갈고닦아가면서 성장을 위한 새로운 길을 계속해서 발견하게 되고, 때가 무르익으면 놀라운 업적을 이룰 수도 있다. 즉, 이제까지는 머리로 배우면서 성장했다면, 앞으로는 실천을 통해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지식과 기술을 갈고닦는 데에는 훌륭한 스승 아래서 배우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
- 세상에는 무한한 기회가 있으며 자신을 계발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 역시 무수히 많다.
- 신체적으로 성인인 사람과 일할 때는 몇 가지 제약사항이 따른다. 협력할 수는 있지만 강제할 수는 없고, 권고할 수는 있지만 요구할 수는 없으며, 요청할 수는 있지만 강요할 수는 없다. 모든 인간에게 자연적으로 주어진 권리의 경계를 침범하면 상대는 항상 방어 태세를 취하면서 저항하게 된다. 이는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 모든 인간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무수히 많은 길 중에서 자기에게 가장 적합한 길을 선택할 권리를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보다는 그 길을 '내가 선택한다'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심사숙고를 통해 의식적으로 내린 결단은 자신에게 확실히 이롭기 때문이다.
- 자신이야말로 삶의 에너지를 오용한 대표적인 사례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은 채, 남들이 자기처럼 될 수 있도록 '도우려는' 광신도적인 열망을 갖고 있다. 진심으로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이런 태도는 자신이 얼마나 미숙한 사람인지 사방에 광고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과 다른 생각에서도 장점을 찾아낼 수 있는 단계에 아직 이르지 못한 것이다. 이렇듯 미숙한 사람은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주기 위해 골몰하면서도 타인이 자기의 행동과 생각을 바꾸려고 하면 부당하다고 여긴다. 자신과 타인이 저지르는 실수가 본질적으로는 언제나 동일하다는 사실을 좀처럼 알아차리지 못한다.
- 이와 같은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올바르고 성공적인 성장은 내면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누구나 각자의 기질과 성향에 맞는 방식으로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 이 규칙에 대한 한 가지 예외는 철학이다. 철학에서는 제자가 자발적으로 스승의 가르침에 복종한다. 스승의 말이 항상 옳기 때문이 아니라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복종을 통해 자신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그러나 제자가 이러한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여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면 자기 통제라는 목적은 달성될 수 없다. 강요에 의한 복종은 아무런 쓸모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해로운 결과만 가져온다.
- 무지한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잘 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성숙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신념과 생각을 타인에게 함부로 부당하게 강요하지 않는다. 무지에서 비롯된 맹목적인 추종과 부적절한 충성은 환멸과 실망만을 불러올 뿐이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지만 미숙한 사람은 남을 탓한다.
- 하지만 그렇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이 모든 길이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종의 초대장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진로를 선택하더라도 내적 성숙을 이루고 잠재력을 펼칠 수 있다. 윤리, 도덕, 문화, 철학, 종교의 분야도 마찬가지다. 더 성숙한 인간이 되고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고 싶다면 각자 자신에게 맞는 길을 선택하고, 그 다음에는 부지런히, 헌신적인 태도로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내적 혼란에 질서를 구축할 때 우리는 지혜로운 신의 섭리를 따르게 된다. 내면의 질서를 바로 세우면, 우왕좌왕하면서 사방에 에너지를 흩뿌리는 일을 피할 수 있다.
- 일과 휴식을 적절히 분배하는 방법을 배우고 나면, 스물네 시간을 삼등분하여 여덟 시간은 이웃을 돕고, 여덟 시간은 자신을 계발하고, 나머지 여덟 시간은 휴식을 취하는 데 활용했다는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가 지켰던 생활습관을 조금씩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는 이처럼 규칙적인 생활을 준수함으로써 타인에게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여겼다.
- 우리는 무함마드가 제시한 세 가지 발판에 기초해 삶을 설계함으로써 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어떤 직종에 종사하든, 삶의 삼분의 일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 봉사하는데 써야 한다. 가족을 부양하고, 경제적 안정이라는 의무를 이행하는 법도 배워야 하며 또한 다양한 활동을 집중적으로, 꾸준히 할 수 있는 자기만의 시간도 확보해야 한다. 각자의 정신적, 감정적 수준에 맞는 흥밋거리를 찾아 예술가가 작품을 빚어내듯 자신의 영혼을 가꾸어야 한다.
- 나이가 들어도 철들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과 놀이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그들은 직업을 '하기 싫은 놀이'로 여기기 때문에 열심히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매번 막판에 가서야 필사적으로 일을 마무리하고 결국 탈진해버린다. 일과 놀이의 구분, 그리고 균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성숙한 사람만이 여가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지하고 건설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여가 활동에 대한 관심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취미 생활을 한다고 하면 친구들이 우습게 여길지도 모르지만, 취미 활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야 말로 균형 잡힌 인간으로서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르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 인간은 이성과 감성의 열망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있는 분야에서 자신을 표현할 때 가장 빨리 성장할 수 있다. 인간은 일을 통해 규율의 중요성을 익힌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큰 교훈은 놀이를 통해 얻는 자기 훈련이다. 스스로의 힘과 의지만으로 일과 놀이의 균형을 잡고 방향성을 확립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성숙한 사람에게는 마감 시한이나 관리감독이 필요하지 않다.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가끔씩 지도만 해 주면 된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인식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시키는 사람이 없어도 자신의 책무를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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