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새뮤얼 애덤스 드레이크 / 윤경미
출판 : 책읽는귀족
출간 : 2017.08.18
나는 상당히 미신적인 사람이다.
과거에도 어느 정도 그랬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딱히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조금쯤 변명을 해보자면,
검증되지 않은 가설과 미신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 현상과 연결된 전후 관계를 모두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원인과 결과가 일대일 대응을 하지 않고, 매번 같은 짝을 이루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일어난 현상은 반드시 무언가가 역치를 넘었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다.
바람이 불어 종이가 날린다.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파악할 수 없다.
누가
그 자리에,
그 종이를,
언제,
왜
놓았단 말인가?
바람은 창밖에서 불어온 것인가,
곁을 스쳐 지나간 물체가 있었나,
혹은 누군가가 문을 열었나,
입김을 불었나?
하지만 그 현상은 발생했다.
그것이 가능하도록 앞서 쌓여온 원인들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과관계를 파악하지 못했을 뿐
그다음 일어날 현상도 연결된 것이 있는 게 아닐까?
일단 그 종이는 높은 확률로 더 낮은 곳으로 이동할 것이다.
더 높이 떠오른 상태에서 어딘가에 안착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희박한 확률이다.
그
다음은?
나사가 자꾸만 튀어나오는 벽을 내버려 두었더니 결국은 뒤틀려 붕괴하고 마는 구조물을 생각해보자.
나사가 튀어나오는 것 자체는 앞뒤를 파악하기 어려운 현상이지만, 가만히 관찰해보면 뒤틀린 하중으로 인한 것임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걸 알아차리게 되면 붕괴를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단순히 나사가 불량일 수도 있겠지만- 대개는 붕괴하고 나서야 '어쩐지 자꾸 나사가 떨어지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라고요'라고 말하겠지만 말이다.
어떤 사고들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안타까움이 달라붙는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그 전후를 따져본다면 아주 조금쯤은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가설이 검증되기까지 무수히 많은 미신들을 낳겠지만, 그 결과로 하나라도 얻는 것이 생긴다면 나쁠 것도 없지 않을까? 미신에 지나치게 얽매이거나 그로 인해 공포심에 사로잡히지만 않는다면.
물론 그 자체로도 흥미롭고 재미있기도 하고 말이다.
할라피뇨, 청량고추, 마라가 들어가는 요리는 기본적으로 매운 맛이 있을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물이 들어가는 요리는 어떤 맛일까?
특수성을 띤 현상이 낳는 결과는 예측이 어렵지 않다.
그러나 틀림없이 작용했지만 영향력을 파악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특이도가 떨어지는 현상들의 연결이 미신이 되었다고 한다면, 너무 멀리간 이야기일까?
- 정말이지 그렇다. 우리 대부분은 물리적 현상에 어떤 '징조'를 끌어들이지 않도록 교육받았다. 말하자면 물리적 현상과 '징조'를 철저하게 분리시킨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속, 우리의 내면은 어떠한가? 우리는 여전히 직관이나 인식, 갈망, 그리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자그마한 세상 밖에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하고, 그곳에 머무르고 있지 않은가.
- 사람들은 흔히 미신은 무지의 산물이며, 대중을 교육하면 미신을 믿는 일은 점점 사라진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선조들보다 자연현상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기에 지극히 미신적이었던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미신을 덥석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인간은 마음속에 상상 속의 이미지들을 그려낼 수 있는 초자연적인 힘을 갖고 있어서, ...
(리뷰자 주 : 상상력이 있는 것은 인간뿐인가? 호기심과 상상력의 경계는 어디인가? 모든 것이 명징한 존재들에게 상상력이란 필요 없을 것이다. 상상력이란 아닌 것을 알면서도 믿을 수 있는 힘이 아닐까.)
-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일상에 깊이 파고든 것 중 소위 '징조 sign'라는 것이 있다. 어떤 이들은 징조를 그저 재미있고 독특한 상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여기에 꽤나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며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사람들이 징조를 얼마나 진지하게 믿건 상관없이, 이러한 징조들은 사람들의 대화 속 어디에든 불쑥불쑥 등장한다. 징조는 오랜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들이지만, 지역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 디오니소스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오면서 알게 된 것은, 인생이 팍팍하거나 굴곡이 많으면 이러한 비현실적인 세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개인이나 국가나 모두 마찬가지로 말이다.
- 하지만 오늘날의 문명화된 사람들 중에서도 여전히 마법의 힘을 믿는 사람들은 적지 않으며, 심지어 매우 지적이고 교양이 있는 사람들조차도 인간 세상과 영혼의 세계 사이에는 알 수 없는 관련성이 있다고 굳게 믿곤 한다. 예컨대 카미유 플라마리옹(Camille Flammarion,1842-1925, 프랑스의 천문학자이자 작가-옮긴이 주)과 같은 저명한 과학자는 자신이 수백 명의 영혼과 직접 소통을 한 적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 또 아이들이 '술래'를 결정할 때 쓰는 방식에서도, 제비뽑기로 죄인을 지목하던 고대 관습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프랜시스 버턴(Richard Francis Burton, 1821-1890: 영국의 탐험가, 인류학자, 작가로, 1858년 탕가니카 호를 발견했고, 1881년 황금 해안을 조사하는 등 주로 아프리카 지방을 탐험했다-옮긴이 주)에 따르면, 이 야만적이고 조악한 노랫가락은 오늘날 영국의 콘월 지방에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한다.
- 오래된 스코틀랜드 시 중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토요일의 초승달, 일요일의 보름달은 모두에게 불길하기 짝이 없도다."
- 달에 대한 가장 유명한 오류는 달이 "초록빛 치즈"로 만들어졌다는 것인데, 이러한 개념은 존 헤이우드(John Heywood, 1497(?)~1580(?) : 영국 헨리 8세의 궁정 시인 겸 극작가-옮긴이 주)의 시와 새뮤얼 버틀러(Samuel Butler, 1612-1680 : 영국의 풍자시인-옮긴이 주)의 <휴디브라스 Hudibras>라는 풍자 시에 등장했다. 달이 치즈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소리지만, 오늘날 여전히 이를 반쯤은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도 있다. 이와 비슷하게 달이 차는 시기에 머리카락을 자르면 머리카락이 더 잘 자랄 것이라는 허황된 믿음도 있다.
- "일요일에 태어난 아기는 은총이 가득하며, 월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얼굴이 예쁘고, 화요일에 태어난 아기는 진지하고 슬픔이 많고, 수요일에 태어난 아기는 활기차고 유쾌하며, 목요일에 태어난 아기는 도벽이 있고, 금요일에 태어난 아기는 베풀기를 좋아하고, 토요일에 태어난 아기는 먹고살기 힘들다네.”
- 그리고 그는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us Magnus, 1193-1280: 독일의 스콜라 철학자, 신학자이면서 동시에 수학· 자연학· 형이상학 등에 관하여 폭넓은 교양을 지녔다-옮긴이 주)의 말을 인용하여 "에메랄드는 그리핀(Griffon, 그리스의 머나먼 북쪽에 산다고 알려진 괴조의 일종.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 앞다리를 가지며 황갈색의 몸통과 뒷다리는 사자의 모습이다-옮긴이 주)이 애지중지 하던 것으로, 에메랄드는 누군가가 그리핀의 둥지에서 꺼내 온 것이라 일컬어진다. 에메랄드를 지닌 여인은 좀 더 순결하고 정숙해진다”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에메랄드에 대한 부정적인 믿음이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며, 아마도 이런 믿음은 청교도인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온 이후에 생겼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 어느 작가는 이 일화를 마치 뱃사람의 경험담을 직접 듣는 듯한 생생한 필체로 남겼고, 그의 이야기는 회의론자에 대항하여, '모든 일에는 조짐이 있다'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실례로써 여전히 인용되곤 한다.
- 1800년대 초에 이름을 널리 알린 성공적인 점쟁이로는, 매사추세츠의 린에서 활동하던 몰 피처 Moll Picher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녀를 찾아가 항해의 운세를 묻곤 했던 선주들과 선원들 덕분에 그녀의 명성은 바다 건너까지 널리 알려졌다. 그녀의 은신처에는 종종 지체 높은 사람들이 변장을 한 채 밤에 조용히 찾아와 비밀스레 미래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 그녀의 이야기는 시인인 휘티어의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또 그녀는 월터 스콧(Walter Scott, 1771-1832 : 영국의 시인이자 작가-옮긴이 주) 경의 <가이 매너링 Guy Mannering>의 희곡에 등장하는 메그 메릴리즈라는 인물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 성촉절 Candlemas Day (2월 2일)은 로마 가톨릭교의 축일로, 성모 마리아의 순결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날은 많은 촛불을 밝히고 시메온의 노래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Nunc dimittis: 루카 2:25~35)를 부른다. "촛불을 밝히고 교인들을 위로하는" 날이라는 의미에서 성촉절 Candlemas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548년, 에드워드 4세는 교회에 촛불을 켜는 관습을 금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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