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베르나르 베르베르 / 이세욱
원제 : L'empire des anges
출판 : 열린책들
출간 : 2008.03.30
저자가 '자크 넴로드'라는 등장인물의 상황을 빌어 책속의 책으로 등장시키는 <쥐>는 저자의 데뷔작 <개미>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상세한 설정과 쥐의 습성에 대한 현실적인 묘사, 부조리에 관한 내용, 무엇보다 그 제목에서 '아트 슈피겔만'의 <쥐>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점들을 볼 때, <쥐>는 <개미>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첫째, 글만 쓰는 프랑스 청년의 1000페이지가 넘는 데뷔작이라는 점.
둘째, 글의 구조를 건축물에 비할 수 있을 만큼 복잡하면서도 입체적으로 설계했다는 점.
셋째, 치밀한 관찰을 통해 대상의 특성을 현실감있게, 최대한 의인화를 배제하고 표현했다는 점.
넷째, 그러나 모국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인기를 끌지 못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먼 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는 점.
다섯째, 그래도 그 덕분에 다음 소설을 쓰고 출판할 수 있었다는 점.
이 소설에서 자크는 아직 자신의 소설을 사랑해주는 러시아라는 나라에 심리적 거리를 느끼고 있다. 자신의 소설을 사랑해주는 것은 감사하지만, 어째서 '모국어'로 쓴 자신의 소설이 같은 언어를 공유하는-그럼으로써 정신세계와 사상의 상당부분을 공유하는- 프랑스인들에게는 사랑받지 못하는가에 대한 고뇌가 깊은 장면은 작가의 속내를 대변하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와는 작은 인연이 있다. 작가에게 홍삼정과를 선물하고 특별 답례라며 금붕어 그림이 들어간 사인을 선물로 받았었다. 참 해맑게 웃는 사람이라는 기억이 있다. 그 뒤로 어쩌다보니 저자의 신간들은 읽지 못하고 있었는데 지금 다 읽고 리뷰를 쓰면서 보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새로 출간된다. 이것도 읽어야겠다.
정신없이 읽었다.
즐거웠다.
- 속도 조절 방법을 터득하고 나자, 우리는 우주 공간에서 방향을 잡는 방법을 개발하려고 애썼다. 우주 공간에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3차원의 지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 우주는 무한하므로 그 과제는 더욱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무한한 것을 지도에 담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 프레디는 천국의 표면에 가상의 선을 긋고 거기를 <바닥> 또는 <아래>라 부르기로 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면 우리가 천국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우리는 <위>로 <올라가는> 셈이 된다.
- 어떤 장면들은 마치 내 인물들이 나의 지배에서 벗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저절로 써진다. 나는 어항 속의 금붕어를 지켜보듯 내 인물들이 소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을 바라본다. 그건 기분 좋은 일이기도 하고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사용법을 모르는 어떤 폭발물을 가지고 노는 기분이다. 글쓰기에 몰입하면 나는 모든 걸 잊어버린다. 내가 누구인지도 잊고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다. 나는 내 인물들과 이야기 속에 함께 있고 그들과 함께 산다. 그건 꿈이 아니라 마치 깨어 있는 채 꾸는 꿈과 같다. ... 내 온몸이 환희를 표현하는 관능적인 꿈이다. 망아지경을 느끼게 하는 그 마술적인 시간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저 몇 분, 때로는 몇 초 동안뿐이다. 하지만 그런 황홀한 순간이 언제 찾아온다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다. 그저 갑자기 찾아올 뿐이다.
- 하나의 구조물을 만들어 이야기 전체를 떠받쳐야한다. 그리고 장면과 장면의 연결을 아주 자연스럽게 해주는 내적인 흐름을 잡아 나가야 한다. 기하학적인 구조를 사용해 볼까? 이야기를 동그라미 형태로 구성해 볼까? 이야기의 결말에 가면 인물들이 처음과 똑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는 구조 말이다. 아냐, 그건 전혀 새로울 것이 없어. 그럼 나선형으로 된 이야기는 어떨까? 앞으로 나아갈수록 이야기가 점점 확대되어 무한에 이르는 구조 말이야. 그것도 별로 새로울 것이 없어. 그렇다면 일직선 구조로 이야기를 전개해 볼까? 그건 너무 평범해.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잖아. 나는 더욱 복잡한 기하학적 형태를 생각해 본다. 오각형, 육각형, 정육면체, 원통, 피라미드, 사면체, 십면체. 가장 복잡한 기하학적 구조는 무엇일까? 대성당이다.
- ... 우주에 별들이 배열된 구조와 관련이 있음을 깨닫는다. 됐다, 바로 이것이다. 대성당을 건설하듯이 소설을 써야겠다. 나는 샤르트르 대성당을 모델로 선택했다. 보물 중의 보물인 이 13세기의 대성당은 많은 상징과 숨겨진 메시지들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커다란 데생 용지에 대성당의 설계도를 꼼꼼하게 베껴 그림으로써, 내 이야기의 전개 방식을 성당 구조의 주요 요소와 상응시킬 준비를 한다. 내 소설의 플롯들이 교차하는 것은 성당의 세로 회랑과 가로 회랑이 교차하는 것에 해당하고, 내 소설의 반전들은 궁륭의 머릿돌에 해당한다. 그런 식으로 성당의 구조를 염두에 두면서 이야기를 전개하니까, 글쓰기가 한결 재미있고 글의 흐름도 더욱 매끄러워진다. 내 인물들의 움직임도 소설의 구조에 자연스럽게 통합되어 가는 느낌이다. 대성당의 구조를 모델로 삼게 되면서, 글을 쓸 때 내가 듣는 음악에도 변화가 생겼다. 나는 이제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음악을 듣는다. 바흐 역시 자기의 작곡을 위해 대성당의 구조를 활용한 바 있다. 그의 음악을 듣다 보면, 이따금 두 개의 선율이 교차하면서 제3의 선율이 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어떤 악기도 그 선율을 연주하고 있지 않는데 말이다. 나는 그 효과를 내 글에서 재현해 보려고 한다. 두 개의 플롯을 교차시키면서 가상적인 제3의 플롯이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다.
- 사람들은 남이 자기를 억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가족과 직장과 정치 체제와 자기를 억압하는 것의 대부분을 <자기의 인격을 표현하는 형식>이라고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은 누가 자기들의 사슬을 없애려고 하면, 그것을 막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싸우려 든다. 그래서 우리 천사들이 보기엔, 지상에서 사람들이 <불행>이라고 부르는 일을 이따금 유발할 필요가 있다. 이것을 천상에서는 <자아 성찰의 계기>라고 부른다. 이 계기는 사고, 질병, 가족의 결별, 직업상의 실패 등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할 수 있다.
- "맞았네. 떠돌이 영혼들은 우리 대신 일하는 걸 너무 좋아해. 정말 고약한 영혼들이지. 천사가 자기 일을 수행하지 않을 때 떠돌이 영혼이 끼어드는 걸세. 자네는 이고르와 비너스가 운이 좋아서 지금처럼 되었다고 생각하나? 아닐세. 그들이 기도를 할 때 자네가 없었기 때문에 어떤 떠돌이 영혼이 자네 대신 가서 일을 한 거야. 이제 그들에게는 떠돌이 영혼이 들러붙어 있네."
지도 천사의 표정에 수심이 가득하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르고 있네. <아무 영혼에게나 가호를 빌지 말라. 망아지경에 함부로 빠지지 말라. 영매를 피하고, 저승에 대해서 말해 주겠다고 하는 자들의 말을 믿지 말라. 기도를 할 때는 아무렇게나 하지 말고, 수호천사를 함부로 찾지 말라. 수호천사는 너희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주술이나 샤머니즘 같은 것에 깊이 빠져 들지 말라. 남을 조종할 수 있다고 믿는 자는 남에게 조종을 당하기 쉽다. 어떤 도움에든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라고 말일세."
- 내가 그녀를 통해서 깨달은 것은 남을 도울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의 뜻에 반해서 도움을 줄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녀를 진정으로 도울 수 없었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 완벽한 여자의 목표는 어머니이자 애인이자 전사이자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공주가 여왕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완벽한 남자의 목표는 농부이자 유목민이자 건설자이자 전사가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왕자가 왕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완벽한 여왕과 완벽한 왕이 만나면 마술과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그 만남에는 열정도 있고 지속성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만남은 참으로 드물다.
- "복권에 당첨되게 해주는 것은 그를 도와주는 게 아닐 거야. 그건 그를 훨씬 더 불행하게 만들 걸세. 오로지 그 일확천금에 관심이 있는 자들만 그의 주위에 몰려들 테니 말일세.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자기의 부를 감당할 능력이 있어야 하네. 그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그를 부자로 만들어 주되, 복권 당첨보다는 한결 점진적인 방식으로 해주게. 다음 의뢰인은 어떤가?
- "나에겐 한 가지 이론이 있다. 누구에게나 <운명과 만나는 순간>이 있고, 그 순간을 함께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순간은 한 번 놓쳤다 해서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놓치면 다시 오고, 또 놓치면 또다시 온다. 빚이 완전히 청산될 때까지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우연의 일치라 부르기도 하고 기시 체험이라 하기도 한다. 나는 이미 그런 순간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그때마다 네 모습을 다시 보곤 했지. 악몽을 꾸고 있는 게 아니었는데도, 네놈이 다시 나타나곤 했다."
- 뾰뜨르의 말마따나 서로 끊임없이 마주치는 영혼들의 집단이 존재하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내 인생의 길에는 왜 이 똑같은 인물들이 자꾸 나타나는 거지?
- "그건 우연의 일치가 아닐세. 영혼들은 수세기에 걸쳐 집단을 이루어 진화해가네. 서로의 인연이 완전히 풀릴 때까지 생을 거듭하면서 계속 만나는 걸세. 이고르를 칼로 찌른 뾰뜨르는 그것을 직감적으로 깨닫고 있네."
- "그들은 악한 게 아니라 무지한 걸세. 그들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 해. 악한 자들은 남에게 공격을 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겁쟁이들이지. 악한 행동의 바탕에는 두려움이 깔려 있네."
- 구체 안에서 영혼들이 작은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 결국 만물은 저마다의 존재 이유가 있고, 무한한 시간 속에 뿌리를 박고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저마다의 논리를 지니고 있다. 이상한 행동, 공포증, 강박 관념 등은 전생을 고려하지 않고는 이해될 수 없다. 프로이트는 유아기의 경험을 분석하여 성인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한 인간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가장 먼저 인간으로 환생한 때부터, 아니면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그가 최초로 동물이나 식물로 환생한 때부터 그의 삶을 검토해 보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이 고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들이 전생에 사바나의 맹수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어떤 사람들이 일광욕을 좋아하는 것은 그들이 전생에 해바라기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모든 영혼은 저마다 아주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라울과 프레디 같은 타나토 노트들은요?"
"자네는 이미 다른 형태로 그들을 만난 적이 있네. 라울은 자네의 아버지였어. 그와 자네는 아주 오래전부터 나란히 길을 걸어왔네. 프레디는 여러 차례의 삶에서 자네의 어머니였네."
나는 구체의 투명한 막 너머로 인류의 영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중요한 건 착함이 아니라 의식의 진화야. 우리의 적은 악의가 아니라 무지일세."
- 그 모든 사건들을 내가 실제로 경험했던 것일까? 내가 진정으로 치열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 "명칭이야 어찌되었든 중앙 집권적이고 전제적인 권력이 들어설 때마다 그 권력은 먼저 유대인을 박해하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느부갓네살, 람세스 2세, 네로, 카스티야의 여왕 이사벨라 1세, 성 루이, 러시아의 차르들, 히틀러, 스탈린 등 전제적인 지도자들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어요. 유대인들이 있는 곳에 자기들 의견을 주입하기 어려운 자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5천 년 전에 생겨난 유대 사상은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의 숭배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책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복종시키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프레디가 조금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마무리를 짓는다.
"어찌 보면 그들이 살아남은 것은 바로 <전체주의를 탐지하는 송어>였기 때문인지도 몰라. 따지고 보면 그들은 자기네 문화를 온전하게 간직한 유일한 고대 민족이라고 볼 수도 있어."
- 내 어린 시절 우주선을 타고 빨간 행성으로 여행하는 꿈을 꾸었다. 그 행성에는 어떤 신이 살고 있다. 그 신은 늘 실험을 하면서 산다. 세계들을 만들어서 투명한 용기 안에 넣고 그것들이 어떻게 발전해 가는지를 관찰한다. 그는 시험관에서 키우던 작은 원형 동물들을 가는 핀셋으로 조심스럽게 꺼내어 자기가 만든 세계 속에 넣는다. 그것들이 적응을 못하자, 신은 그것들을 회수하려고 한다. 하지만 결함이 있는 원형 동물들이 번식을 해버리는 바람에 직접 회수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신은 서둘러 바이러스 같은 천적을 만들어 내어 자기의 망친 피조물들을 없애 버린다. 그런 다음 신은 그것들을 대체하는 새로운 생물을 만들어낸다. 신은 그렇게 자주 실수를 한다. 그런데 그 실수를 완전히 지워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자꾸 종을 추가해서 그 살아 있는 혼돈에 약간의 질서를 부여하려고 애쓴다.
- 즉, 놓아 버리기는 <버림으로써 얻는다>는 뜻을 함축함으로써 역설의 개념과 통한다.누구나 경험하는 것이지만, 어떤 것을 더 이상 원하지 않을 때 그것이 오는 경우가 있다. 인간의 체념은 천사들에겐 휴식이 된다. 천사들은 인간들이 더 이상 무언가를 간청하지 않을 때 비로소 편안하게 일할 수 있다. 놓아 버리기에는 많은 장점이 있다. 진짜 큰 행복은 자기의 기대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일들이 벌어질 때 얻어진다. 우리 천사들은 늘 산타클로스 같은 노릇을 한다. 전기 기차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전기 기차를 받는다. 그러나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훨씬 더 좋은 것을 받을 수 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라. 그러면 천사들이 당신을 만족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 문득 이상한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시간은 어쩌면 선형적인 것이 아니라 층층이 겹쳐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 요리 라자냐처럼 겹겹이 쌓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라면, 우리는 하나의 삶을 산 뒤에 다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삶을 동시에 살게 된다. 우리는 어쩌면 미래와 과거의 각기 다른 시대에서 천 겹의 삶을 동시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퇴행을 통해서 만나는 것은 전생이 아니라 바로 그 평행한 삶들인 셈이다.
- 그들은 모든 것을 깨달았다. 심판을 받기 전에 이미 스스로 자기 자신들을 심판한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대천사들의 심판이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영혼들이 저마다 알아서 자기 자신을 심판하고 자기의 다음 행로를 결정하게 하면 안 될까? 나는 그들의 변호사로서 예전에 에밀 졸라가 섰던 자리에 떡 버티고 선다. 곧 나의 세 의뢰인들이 사망 날짜순으로 차례차례 법정에 불려 나올 것이다.
- "그래요? 그건 더 나쁘죠. 당신도 그들 부부를 보지 않았소? 마비 상태 같은 행복이 무슨 소용이 있소? 당신 의뢰인은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했소. 정체는 후퇴보다 더 나쁜 거요. 600점 만점에 321점. 환생!"
- "우리 은하에는 누군가가 살고 있는 행성이 열두 개 있네. 하지만 꼭 육체를 가진 존재, 인간과 비슷한 유형의 존재들이 살고 있다는 얘기는 아닐세. 태양계의 지구는 영혼들이 아주 많이 찾는 휴양지일세. 영혼들은 지구에서 가장 강렬한 체험을 하지. 바로 물질에 대한 체험일세."
- "그렇다네. 자네도 빨간 행성에 가보고 알았겠지만 영혼들이 환생하는 곳은 행성밖에 없네. 물질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은 건 아닌 셈이지. 자네가 무수한 광년의 머나먼 거리를 비행하고 나서야 생명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일세. 영혼들은 육화의 행복과 세계를 느끼는 행복을 처음으로 맛볼 때 아주 깊은 인상을 받네. 그건 대단히 진화한 영혼들도 마찬가지일세. 오감의 쾌락은 우주에서 가장 강렬한 체험들 중 하나지. 아아! 입맞춤의 느낌을 생각해 보게. 나 역시 바닷바람을 들이마시거나 장미의 미묘한 향을 느끼는 것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네. 아무튼..."
- 우리는 다시 힘차게 날아오른다. 10만, 15만, 20만, 드디어 초속 30만 칼킬로미터! 이 속도에서는 빛의 입자가 보인다. 이른바 광자라는 것이 우리와 똑같은 속도로 움직인다. 이 광자는 우리의 속도를 가늠하는 수단이 된다. 광자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 그것은 우리가 그것들과 똑같은 속도로 날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따금 광자들을 조금씩 추월하기까지 한다.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빠르게 우주 공간 속을 활공한다. 우주가 하나의 거대한 평면이라도 되는 양 우리는 그위를 거침없이 미끄러져 간다.
- 음악은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하는 도구이다. 자칫하면 도움이 아니라 방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 계제에 맞지 않는 가사들이 튀어나와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바로는, 글쓰기에 가장 좋은 음악은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다. 이 음악들에는 이미 감정과 서스펜스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이따금 음악이 내가 묘사하고 있는 장면과 조화를 이룰 때면, 나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 나는 그 상황에 개입할까 하고도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는게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디즈니 영화에 나오는 동화적인 세계 속에 있지 않다. 만일 자연 상태에서 쥐들이 원래 그렇게 못된 동물이라면, 내가 어떤 규칙을 강요한다고 해서 한 종의 행동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저 중립적으로 관찰하면서 내가 본 것과 그것에 대한 내 나름의 해석을 정확하게 기록하려고 애쓸 뿐이다. 의인화의 경향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말이다. 그 기록들은 내 글에 풍부한 자양을 제공하고 있다. 나는 묘사가 시각적으로 더 생생한 느낌을 주도록, 쥐들의 모습을 직접 그림으로 나타내 보기도 한다. 내 스케치가 자꾸자꾸 쌓여 간다. 나는 마음속으로 카메라 한 대가 설치되어 있다고 가상한 다음, 그것을 통해 쥐들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포착하고, 내 그림에 이동 촬영, 줌렌즈 촬영, 패널 조명 촬영 따위와 같은 말을 적어 넣기도 한다. 그런 작업은 글쓰기에 대단히 많은 도움을 준다. 지금 내가 묘사하고 있는 전투 장면에는, 이빨을 드러낸 쥐들의 클로즈업 화면과 하수도 가장자리를 파노라마로 찍은 화면이 들어가 있다. 내 마음속의 카메라는 한창 싸움을 벌이고 있는 쥐들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 대단히 인상적인 순간들을 포착해 내기도 한다.
- 그런데 사실 우리는 잠잘 때 이외에도, 좌뇌에 의해 해석된 이해할 수 없는 정보들을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이 좌뇌의 독재는 때로 견디기 어려운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럴 때 어떤 사람들은 좌뇌의 그 냉혹한 합리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술에 취하거나 마약을 복용한다. 그러면 우뇌는 감각이 화학적으로 중독된 틈을 타서, 좌뇌의 통제와 해석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말하기 시작한다. 주위 사람들은 그들이 주정을 부린다거나 환각에 빠졌다고 말하겠지만, 그 사람들은 그저 좌뇌의 독재로부터 잠시라도 벗어나려고 한 것뿐이다. 화학적인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도, 우뇌의 <가공되지 않은> 정보를 직접 받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세계가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만 있으면 된다.
- "하지만 우리는 인간들에게 오로지 좋은 일만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먼저 자네 의뢰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일에 전념하게. 만일 그들이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고 싶어 한다면, 그것도 그들의 자유 의지니까 존중해 주게."
- "경쟁자인 신시아 콘웰과 관련해서는 그녀의 수호천사와 협상을 한번 해보게. 그녀에게 어떤 <사고>가 생기게 해도 괜찮을지 말일세. 사고를 당하게 되면 그 수난의 대가로 점수를 얻게 될 테니까, 그녀의 수호천사가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을 거야. 끝으로 자네에게 일러둘 것이 하나 더 있네. 자네도 이미 느끼고 있는지 모르지만, 자네 의뢰인들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수단에 변화가 생겼네. 이고르는 징표에 주의를 많이 기울였는데 이제는 직감에 많이 의존하고 있네. 비너스는 꿈을 통해 전달된 메시지를 잘 믿는 편이었는데, 최근에 영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네. 자크로 말하자면, 예전에는 주로 고양이를 통해 영감을 받았지만, 이제부터는 꿈에 민감하게 반응할 걸세."
- 마치 그들이 심하게 뿜어 대는 뽀얀 담배 연기를 뚫고 행운과 불운을 짐작게 하는 기가 전해져 오기라도 하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미묘한 어떤 것을 감지하려고 애쓴다. 모든 것을 관통하는 어떤 파동 같은 것이 있는 듯하다.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들을 알려 주는 파동 말이다. 이따금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럴 때면 내 모든 파트너의 패를 거의 다 알게 된다.
- 바실리는 컴퓨터 기술자가 되었다. 그는 컴퓨터에 의식의 맹아를 부여하게 될 인공 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오랜 연구 끝에, 프로그램 스스로 더 많은 일을 하도록 자극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불어넣음으로써 프로그램을 자극하는 것이 바로 그 방법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설치하게 되면, 컴퓨터는 프로그래머가 정해 준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면 자기가 죽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 공포가 컴퓨터로 하여금 평소보다 더 많은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거지."
죽음에 대한 공포... 말하자면 인간의 불안과 공포를 기계에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기계가 바야흐로 인간의 살아 있는 피조물이 되어 가고 있는 모양이다.
- 마더 테레사가 자기 알들을 지도 천사에게 가져다가 보여준다. 마더 테레사가 많이 변한 것 같다. 이젠 자기 의뢰인들에게 도벽이 있는 종업원들을 해고시키라거나 제3세계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는 기업에 투자하라고 서슴없이 조언한다. 아이들을 혹사시키는 기업에 투자하라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으냐고 물으면, <그렇게 하면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에게 일자리가 생긴다>고 대답한다. 나는 마더 테레사가 하나의 과도함에서 다른 과도함으로 넘어간 게 아닌가 생각된다.
-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기는 것이 때로는 옳은 방향으로 잡아당기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그것이 의식의 분발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를 보더라도 역설적인 간청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끊임없이 사용되어 왔다. 인류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고 수백만 명의 목숨을 잃은 뒤에야 국제 연맹과 국제 연합을 생각해 냈고, 독재자들의 폭력을 겪고 나서야 인권 선언을 만들어 냈다. 또 체르노빌 사태를 겪은 뒤에야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한 원자로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은 고독한 아이였던 앨런 튜링은 유독 수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그것을 거의 형이상학적인 수준으로 끌고 갔다. 스무 살에 그는 자기가 구상한 컴퓨터들을 스케치하였다. 그것들은 주로 컴퓨터를 사람처럼 나타낸 것으로서 각각의 계산기가 인체의 한 기관에 해당되게 구상한 것들이었다.
- 바실리는 이따금 우리를 보러 와서 함께 식사를 하곤 한다. 그는 자기 일이 갈수록 재미있어진다고 말했다. 그의 컴퓨터 프로그램들에 죽음에 대한 공포를 불어넣은 뒤로, 그것들이 새로운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예컨대, 그 프로그램 들을 인터넷에 연결하면 스스로를 복제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 현세의 위인들에게 이르노니, 그대들이 무엇을 성취하는 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대들이 역사에 길이 남는 유일한 방법은 좋은 전기 작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 "왜 그걸 생각했죠?"
"역시 꿈 때문이에요. 꿈에서 우주 공간에 있는 천국을 찾아 날아가는 사람들을 보았어요. 괜찮은 이야기가 되겠다 싶어요."
출판사 사장은 동의하지 않았다. 천국에 관해서 비종교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독자들이 더 성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천국을 언급하는 책들은 모두 신앙을 고취시키기 위해 쓴 것이며, 그 주제는 신성한 것이라는 얘기였다.
- <타나토노트> 라는 신조어가 어려운 느낌을 주기도 하거니와, 그 뜻을 이해하는 독자들에게조차 죽음이란 꺼림칙한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에 관한 책을 누가 사고 싶어 하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것을 사서 읽었다. 줄거리와 결합되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수수께끼, 즉 <하나의 원과 그것의 중심점을 펜을 떼지 않고 그리는 방법은 무엇인가?>의 답을 찾는 것이 재미있다. 해답의 실마리는 종이의 한 귀퉁이를 접는 데 있다(말하자면 차원을 바꾸라는 것이다).
- "내가 재미있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 주제를 신성불가침의 영역에서 벗어나게 하는 겁니다. 죽음과 천국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종교에만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 거기에도 블랙홀이 있다. 블랙홀이 중심축 구실을 하고 그 주위로 별들이 돌고 있는 것, 이것이 모든 은하에 공통되는 법칙이 아닐까? 우리는 그 블랙홀 쪽으로 급강하한다. 항성과 행성과 운석들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 그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영혼 하나가 나타난다. 놀라움을 가라앉히고 따라가 보려 했지만, 그 영혼은 너무나 빨리 날아가 버린다.
- 외계인에 관한 이야기는 17세기의 프랑스 작가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다른 세계: 달에 있는 국가와 제국들>(사후 1657년에 출간됨)이라는 소설에 이르러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그의 뒤를 이어 퐁트넬은 1686년에 <세계의 복수성에 관한 대화>를 썼고, 볼테르는 1752년에 시리우스의 주민으로서 이 별 저 별을 여행하다가 지구에 내려온 위대한 우주여행가의 이야기 <미크로메가스>를 썼다. 영국 작가 허버트 조지 웰즈는 1898년에 발표한 <별들의 전쟁>을 통해 외계인들에게 문어처럼 생긴 흉측한 괴물의 모습을 부여함으로써 그들을 의인주의에서 벗어나게 했다. 1900년에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은 화성에 지능을 가진 생명이 존재한다는 증거인 관개 수로망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그 무렵부터 외계인이라는 말의 몽환적인 측면이 사라졌다. 그러다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E. T.>에 이르러 외계인은 마침내 친구의 동의어가 되었다.
-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라고 되뇌는 병이 도지고 있다. 그 병에는 약이 없다. 그저 화장실에 틀어박혀 나를 돌아보는 것밖에는. 글을 쓴다는 건 나쁜 일일까? 세상의 가난하고 핍박받는 중생들을 돕지 않는 것은 나쁜 일일까? 독재자와 착취자에 맞서서 투쟁하지 않는 것은 나쁜 일일까?
- "율리시스 파파도풀로스라는 사람이야. 예전에 은둔하는 수도사였다는데 어느 날 그에게 아주 이상한 일들이 생겼나 봐. 그 뒤로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되었대. 그는 천사들과 직접 얘기를 나눠. 그를 만나면 네 수호천사와 소통할 수 있게 해 줄 거야. 그러면 수호천사는 왜 네가 끊임없이 편두통에 시달리는지를 설명해 줄 거고."
"자기 수호천사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그건 천사의 일을 방해하는 것이 아닐까?"
- 여자와 남자는 세계를 똑같은 방식으로 지각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사건이 진행되는 양상을 단선적으로 지각한다. 그와 달리 여자들은 세계를 파동의 형태로 이해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여자들이 달마다 경험하는 일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즉 세워진 것은 무너질 수 있고 다시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을 여자들은 매달 생리적으로 경험하기 때문에 세계를 끊임없는 파동으로 받아들인다. 달이 차면 이울듯이 무엇이든 커지면 작아지고 올라가면 내려간다는 그 근본적인 진리가 여자들의 몸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만물은 <숨을 쉰다>. 날숨 다음에 들숨이 이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자기 호흡을 억제하거나 정지시키려 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천문학 분야에서 최근에 이루어진 발견들은 다음과 같은 점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즉, 빅뱅에서 나와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는 것으로 지각되는 우리의 우주 역시 응집되어 빅크런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질이 최대로 응집되는 상태인 이 빅크런치는 어쩌면 새로운 빅뱅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주 역시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 <쥐>이후에 나는 다른 책들을 썼다. 하나는 천국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구의 중심을 탐사하는 이야기이며, 또 다른 하나는 뇌의 알려지지 않은 능력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그중의 어느 것도 프랑스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저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조금 퍼지고 포켓판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뿐이다. 그래도 출판사 사장은 여전히 낙관적이다. 러시아에서 나의 독자들이 뜨거운 갈채를 보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리뷰자 주 : 이것은 <개미>와 한국으로 대입해서 읽으면 딱 저자의 상황이다.)
- 7년 주기의 순환. 인생은 7년 주기로 변화한다. 각 주기는 하나의 위기로 끝나 더 높은 단계로 넘어간다.
-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 실패를 해서 주기를 다시 시작하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구도의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 때를 늦추거나 회피한다. 본격적으로 자기 자신과 대면해야 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 적군의 선두에는 역사적인 인물들이 더러 보인다. 중세 가톨릭의 이단인 카타리파를 공포에 떨게 했던 시몽 드 몽포르가 있고, 그 왼쪽에는 잔인한 종교 재판관 토르케마다, 알 카포네와 그의 부하들이 있다.
-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야?"
"당신들을 타락한 천사로 만들어 버릴 거야. 우리 대열에는 이미 그런 천사들이 있어. 당신들은 우리 편이 되어서 우리를 그 신비로운 행성으로 기꺼이 안내하게 될 거야. 하지만 내가 알기로 타락한 천사란 지상의 여인과 사랑을 나눈 천사야."
"타락한 천사가 되는 길은 그것 말고도 한 가지 더 있어."
- 그들의 증오와 어두운 생각들이 바이러스처럼 우주에 펴져 나갈 것이다. 빨간 행성을 정복하고 난 뒤에 그들은 다른 은하들을 차례로 찾아다니면서 모든 것을 오염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전투에는 참으로 중요한 것이 걸려 있다. 조즈의 지도 천사가 외계인들에 관한 정보를 유포하지 않기를 바랐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아무리 비밀의 시대가 끝났다고는 하지만, 어떤 정보들은 대단히 신중하게 전달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떠돌이 영혼들의 군대가 다가든다. 묵시록의 광경이다. 독일 작곡가 칼 오르프의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가 내 귓전을 울리는 듯하다. 저들이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거지? 그들은 전투에 돌입하려다 말고 멀찍이 멈춰 서더니 자기들의 팔을 총처럼 내밀어 우리를 겨냥한다.
- 1969년에 존 케네디 툴은 <바보들의 결탁>이라는 책을 썼다. 이 제목은 조너선 스위프트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착상된 것이다. <어떤 진정한 천재가 이 세상에 나타났음은 바보들이 단결해서 그에 맞서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 하지만 툴의 어머니는 끈질기게 버텼다. 출판사 사장은 결국 두 손을 들고 그 원고를 읽어 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그는 원고가 좋지 않다고 판단되면 출간하지 않겠다고 미리 쐐기를 박았다.
- 그는 원고를 읽어 보고 대단히 훌륭하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출간하였다. 그 해에 <바보들의 결탁>은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년 후 이 출판사에서 존 케네디 툴의 새 소설 <네온의 성서>가 출간되었고, 나중에 그것을 토대로 영화가 만들어진다. 그다음 해에는 세 번째 소설이 출간된다. 자기의 유일한 소설을 출간해 줄 출판사를 찾지 못해서 자살한 사람이 어떻게 계속 소설을 낼 수 있었던 것일까? 그 사정은 이러하다. 그 출판인은 존 케네디 툴이 살아 있을 때 그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웠던 나머지, 툴의 책상 서랍을 뒤져 거기에 있던 모든 것을 출간하였다. 단편소설은 물론이고 학창 시절의 작문까지도.
- 나는 예전에 에밀 졸라가 그랬던 것만큼이나 활기차게 에메랄드 문을 향해 나아간다. 마침내 나는 알게 될 것이다. 저 위에 무엇이 있는지를.
- "그건 물론이고 수정도 있네. 전자의 유출에 리듬을 부여하는 데 쓰이는 수정과 돌의 관계는 현자와 깨이지 않은 중생의 관계와 같네. 돌과 수정이 결합하고 보통 사람과 깨달은 사람이 결합하며 컴퓨터와 인간이 결합하는 것은 진화의 한 가지 방법일세."
"하지만 컴퓨터는 자력으로 움직일 수 없는 사물일 뿐인데요. 접속만 끊어 버리면 모든 게 멎고 말지 않습니까?"
"자네가 잘못 알고 있네, 미카엘. 이제 인터넷 덕분에 네트워크상에서 바이러스처럼 증식하는 프로그램들이 생겨났네. 그 프로그램들은 세탁기나 현금 인출기 따위의 아무 회로에나 들어가서 터를 잡을 수 있네. 그러고는 마치 동물처럼 번식하고 진화하지. 그것들의 번식을 중단시키는 방법은 세계에 있는 모든 기계를 동시에 꺼버리는 것 밖에 없는데, 그건 이제 불가능하지. <생물권>, <관념권>에 이어 <전산권>이 생겨나고 있는 걸세."
천사들이 컴퓨터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 그것은 인간에게 개입하는 새로운 수단, 즉 <광물 조수>라는 여섯 번째 수단이다.
"모든 것은 광물로부터 시작되지. 그리고 어쩌면 이 광물이 있음으로써 모든 게 계속될지도 모르네. 컴퓨터로 현실화된 인간과 광물의 결합이 깨달음의 새로운 지평일세."
- 에드몽 웰즈가 내 어깨에 한쪽 손을 얹는다.
"자네는 왜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싶어 하지? 커브 길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기 전에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생각인가? 자네가 모르던 것과 마주쳐서 놀라게 되는 것이 싫은가? 좋아, 그렇다면 자네에게 이야기를 하겠네... 자네는 이제 곧 더 좋은 다른 존재가 될 거야. 현재로서 자네가 알아야 할 것은 그게 전부일세."
- 실재.
<실재란 우리가 더 이상 그것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아도 계속해서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라고 미국 작가 필립 K. 딕은 말한 바 있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인간의 지식과 믿음을 초월하는 객관적인 실재가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내가 이해하고 싶고 다가가고 싶은 것이 바로 그 실재다.
- 내 영혼이 내 안에서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 내가 내 자신에게 돌려진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더 이상 조종하는 자가 없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처음에 나는 그렇게 완전한 자유 의지를 얻게 된 것을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였다. 나는 그런 자유를 늘 갈구했지만 그것을 감당하기 위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그리고 높은 곳 어디에선가 나보다 더 지혜로운 어떤 신비로운 존재가 나를 보호하고 이끌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곤 했다. 그런데 에드몽 웰즈가 내 영혼을 내 안에 넣어 줌으로써 나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게 만든 것이다. 만일 천사의 일을 잘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 이런 것인 줄 알았다면, 아마 나는 일에 대한 열정을 누그러뜨렸을 것이다. 이 자유는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이냐! 자기 자신에 대한 유일한 지배자가 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지만 더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내 지도 천사가 나를 통로의 안쪽으로 데리고 간다. 그 통로의 끝은 클라인 병처럼, 출구로 빠져나가면 다시 내부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수태의 호수 한복판으로 돌아와 있다.
- 이 책을 쓰는 동안 다음과 같은 음악을 들으며 도움을 받았다. 로이크 에티 엔의 <여행의 책>을 위한 음악, 마이크 올드필드의 <Incantations>, 안드레아스 폴렌 바이더의 White Winds, <Shine on You Crazy Diamond>, 무소륵스키의 <민둥산에서의 하룻밤>, 마릴리언의 <Real to Reel>, 아트 오브 노이즈의 <Moment in Love>, 그 밖에 영화 <브레이브 하트>, <워터 월드>, <갈매기의 꿈>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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