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안토니오 다마지오] 느끼고 아는 존재 -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일루젼 2021. 11. 29.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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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안토니오 다마지오 / 고현석
출판 : 흐름출판
출간 : 2021.08.30 


 

다마지오를 너무 얕봤던 것 같다.

(쉽게, 교양서로 썼다는 말을 믿어서는 안 됐다. 하지만 다른 저작에 비하면 확실히 명료하고 깔끔한 것은 사실이다.)

 

"인간의 의식이란 어떻게 생성되는가?"

 

라는 의문에 대한 저자의 답을 '이해시키기 위해' 정리된 책이다. 여타의 신경과학이나 뇌과학, 심리학 등의 책들이 이 질문에 대한 연구 결과를 더듬어나가는 형태라면, 다마지오는 자신이 이미 찾아놓은 답을 다른 사람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인도해준다. 

 

읽는 동안 계속 삼중체 생각이 나서 조금 괴로웠는데, 다마지오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의식의 출현에 기반되어야 할 것은 '느낌'이다. '느낌'의 시작점은 '정서', 혹은 자극에 따른 '반응'이다. 그에서부터 출발해 자극과 변화가 연결될 때 '느낌'이 생성되며, 보다 복합적이고 다채로운 '느낌'의 연결을 위한 '신경계'까지 갖추어져야 비로소 '의식'의 출현을 기대해 볼 만해진다.

 

신경계는 물리적으로 육체와 연결되어 있다. 전기적 신호를 전달하면서도 물리적, 화학적 영향들과 상호작용이 가능한 것이다. 다마지오는 이 신경계의 전체적 구조와 작용 또한 의식의 한 구성 요소라고 말한다. 뇌와 척수만으로는, 그리고 그에 더해 신경전달까지만으로는 여전히 '의식'이라는 신비를 벗길 수 없다는 것이다. 내부 장기와 몸 전체에 대한 내부 지각과 외부 환경에 대한 외부 지각의 총합,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인지할 수 있는 '명시적 지능'이 생겨나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흐르는 이미지들을 '자신의 내부 상태에 대한 지각'과 함께 '자신의 것'으로서 '자신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드디어 '의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생성된 것이다.

 

일단, 굉장히 혁신적이다.

저자는 자신이 철저히 유물론적이며 그런 시각으로 접근했다고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수많은 생각이 든다. 주석을 살펴보다 보면 다마지오의 주장을 불교의 무아 개념과 연결해서 연구하려 하는 학자도 있었는데, 그와는 별개로 저자가 꼼꼼히 정의한 개념들은 일종의 철학 이론을 방불케 한다. 특히, '느낌'과 '정서', '의식'이라는 단어들에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자신의 선입견 때문에 더더욱 난항을 겪게 된다. 

 

 

무척 즐겁고 신선하게 읽었지만, 저자의 다른 책에도 도전할 수 있을지 사실 잘 모르겠다. 

<느끼고 아는 존재>는 매우 추천. 

 


 

- 정서라는 용어가 일반인들과 학자들 모두에게 혼란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정서라는 단어에는 '특정한 행동 패턴'이라는 의미와 '그 패턴과 연관된 마음의 상태(즉, 느낌)'라는 의미가 모두 들어 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정서는 느낌에 의해 촉발된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다마지오에 따르면, 정서와 '정서에 대한 느낌'은 사물이나 상황이 특정한 행동을 유발할 때 시작되는 기능적 과정의 전혀 다른 두 가지 측면이다. 느낌이라는 절차를 정서의 원인이 되는 대상의 관념을 떠올리는 절차와 명확하게 구분한 것이다. 즉, 정서가 먼저 나타나고 그다음에 느낌이 나타난다는 것이 다마지오의 주장이다.     

 

- 다마지오의 다른 책들에서처럼 일반 독자가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부분은 정서, 감정, 느낌, 정동 등 서로 매우 비슷해 보이는 용어들에 대한 다마지오의 정의다. 사실, 이 용어들에 대한 다마지오의 정의와 구분을 이해해야 순조로운 독서가 가능해진다. 

 

- 다마지오는 의식의 출현이 세 가지 요소에 의존한다고 생각한다. '정서', '느낌', '느낌에 대한 느낌'이 그것들이다. 다마지오에 따르면 정서는 감각질에 대한 무의식적인 뉴런 반응들의 집합이다. 자극에 대한 이런 복잡한 반응들이 유기체 내에서 변화를 일으키고, 그 변화는 외부에서 관찰이 가능하다. 한편, 느낌은 유기체가 외부 자극 또는 내부 자극의 결과로 경험하는 변화들을 인식하게 될 때 발생한다. 다마지오에 따르면 느낌은 다양한 마음속 사건들이 일정한 역할을 하는 생물학적 과정의 결과로 발생하는 특정한 마음 상태라고 할 수 있다. 

 

- 실제로 다마지오는 "태초에 있었던 것은 말이 아니라 느낌"이라고 말한다. 이성도, 유전자도 생기기 이전에 느낌이 생명 활동을 촉진하는 메커니즘으로 존재했다는 주장이다. 뇌도, 세포핵도 없는 단세포 동물 박테리아가 수십억 년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느낌 덕분이었다는 게 그의 논리다. 

 

- 다마지오의 뇌과학은 느낌으로 시작하여 앎으로 향하고 있다. 다마지오는 안와전전두엽에 종양이 생긴 환자를 관찰하면서 감정이 거의 사라진 사람은 생존에 중요한 판단력이 흐려짐을 알게 된다. 올바른 선택을 하는 판단력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서 생긴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신체와 정신을 분리하여 이성의 역할을 강조한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틀렸다고 주장한다. 다마지오는 <데카르트의 오류>라는 책에서 감정과 느낌은 신체 상태 정보를 신경 시스템이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기며 항상성 정보의 핵심임을 설명한다. 다마지오가 뇌의 작용을 보는 관점은 항상성이라는 단어의 정의 속에 모두 담겨 있다. 

 

- 외부 세계의 사물들에 대해 '느끼는' 것과 단순히 '지각하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 여기서 내가 덧붙일 말은 느낌의 힘은 의식 있는 마음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느끼는 것은 마음에 의식이 있기 때문이며, 우리에게 의식이 있는 것은 느낌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말장난이 아니다. 나는 겉으로는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실제적인 사실을 말하고 있다. 느낌은 의식이라는 모험의 시작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더보기

 

  - 이제 'feeling'에 대해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이 단어는 느낌, 기분, 감정 등 여러 가지로 번역되지만, 이 책에서는 '느낌'이라는 용어로 통일했다. 역시 이 용어에 대한 다마지오의 정의는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느낌이라는 단어와는 그 의미가 좀 다르다. 다마지오는 느낌은 배고픔, 목마름, 고통 같은 원초적 상태와 공포, 분노 같은 정서적 상태 다음에 발생하거나 그와 동시에 발생하는 마음의 무의식적 상태라고 정의한다. 다마지오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경과학자들조차 느낌은 사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과학의 경계 저편에 있고 영원히 신비로운 영역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에 빠져 있었다고 말한다. 

 

- '정동'이라는 용어는 'affect'를 번역한 것이다(affect'는 '감정'이라는 용어로 번역되기도 한다). 심리학에서 정동은 느낌 feeling, 정서 emotion, 기분 mood에 대한 잠재된 경험을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외부 자극에 대하여 생리적인 수준에서부터 심리적인 수준에 이르는 긍정적 또는 부정적 반응을 뜻하지만, 다마지오는 “정동은 느낌으로 변화되는 아이디어들의 세계"라고 정의한다. 다마지오는 <스피노자의 뇌>에서도 인간의 충동 drive, 동기 motivation, 정서, 느낌을 스피노자가 정동으로 통칭한 것으로 보았다. 이는 정동의 신체성을 강조한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유물론자인 다마지오는 정동이야말로 “인간성의 중심"이라고 주장한다. 다마지오에 따르면 인간은 느낌을 통해 내부에서 일어나는 생명현상을 지각할 수 있으며, 그 지각은 정동으로 드러난다. 

 

- 시각과 청각 이미지가 결합하여 외부 세계의 사물과 사건의 감각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외부 세계의 이미지가 대뇌 후두엽의 감각 연합 피질에서 생성된다. 내부 장기의 내부 이미지 정보가 혈액을 통해서 시상하부로 입력되어 대뇌피질의 외부 대상 이미지에 영향을 준다. 내부 이미지에서 시작하는 느낌이 외부세계 이미지와 결합하게 된다. 외부 세계 이미지와 자신의 내부에서 생성된 느낌이 결합하여 의식이 출현하며 몸 이미지와 내부 이미지가 외부 이미지와 결합하여 자아의식이 생겨난다. 

 

- 몸이 신경계를 완전히 포함하고 있다는, 몸과 신경계 사이의 독특한 관계에 대한 관찰 결과도 상당히 중요하다. 뇌를 핵심으로 하는 신경계는 완전히 몸의 영역 안에 위치하며, 몸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 그 결과, 몸과 신경계는 직접적이고 풍부한 상호작용을 한다. 그 어떤 외부 세계와의 관계도 우리 유기체와 우리 신경계의 관계만큼 밀접하지 않다. 이런 특수한 관계 때문에 놀라운 결과가 발생한다. 느낌은 전통적인 생각과는 달리, 몸에 대한 지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몸과 뇌 모두에 대한 지각이 합쳐진 혼합물인 것이다. 느낌을 이런 혼합물로 생각하면, 느낌과 이성이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음에도 서로 대립하지 않는 이유, 우리가 생각하며 느끼는 생명체인 동시에 느끼면서 생각하는 생명체인 이유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진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느끼거나 추론을 하면서 또는 그 둘을 모두 하면서 삶을 살아간다. 

 

- 감각 sensing이라는 말은 다른 완전한 생명체의 '존재', 다른 생명체의 표면에 위치한 분자의 '존재', 다른 생명체가 분비한 분자의 '존재'를 감지 detecting 한다는 뜻이다. 감각은 지각 perceiving 이 아니다. 또한 감각은 다른 어떤 것에 기초한 '패턴'을 구축해 그 다른 어떤 것의 '표상 representation'을 만들어내고 마음속에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 생명과 서로 다른 종들이 의존하는 지능의 종류에 대해 연구하다 보면, 각각의 종들이 이용하는 서로 다른 특정한 전략들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고 그 전략들로 구성되는 기능적 과정에 이름을 붙여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감각(감지)은 그중에서 가장 기초적인 것이며, 나는 모든 생명체에 감각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음 단계는 마음작용 minding이다. 마음작용은 마음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인 신경계, 표상과 이미지의 생성을 필요로 한다. 심상 mental image은 시간을 따라 끊임없이 흐르며, 무한히 조작돼 새로운 이미지들을 만들어낸다. 앞으로 읽게 되겠지만, 마음 작용은 느낌과 의식을 위한 길을 연다. 이런 중간 단계들을 집요하게 구분하지 않는다면 의식을 규명할 수 있는 가능성은 별로 없다. 

 

- 신경계를 빼놓고 마음과 의식의 존재를 설명하는 이론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신경계는 마음, 의식 그리고 그 마음과 의식이 가능하게 하는 창의적 추론의 출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경계만으로 마음과 의식을 설명하는 이론 역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불행히도, 오늘날의 이론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한다. 신경 활동의 측면에서만 의식을 설명하려는 이런 헛된 시도들은 의식이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라는 생각에 부분적으로 기인한다. 우리가 의식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신경계가 있는 생명체에서만 완전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의식은 신경계의 핵심 부분(뇌)과 신경계와 관련이 없는, 몸의 다양한 부분들 사이의 풍부한 상호작용을 필요로 한다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 앞으로 설명하겠지만, 명시적 지능의 과정은 유기체가 유기체 안에서 이미지 패턴을 구축하고 저장해야 일어날 수 있다. 또한 이 유기체는 정교한 과학적 방법의 도움 없이 내부적으로 패턴을 관찰하고 그 관찰 결과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 마취제가 목표로 하는 것은 정확하게 마음이 아니지만, 감각이 차단되면 마음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또한 마취제는 의식의 와해를 목표로 하지도 않는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의식은 마음의 특정한 상태이므로 마음이 없으면 의식도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식이 있어야 마음의 내용물을 의식할 수 있다. 느낌과 외부 세계에 대한 특정한 시각을 갖춘 마음에는 의식이 생긴다. 

 

- 이 장치들은 화학적 방식으로 내부 기관들과 매우 정교하게 양방향으로 상호작용한다. 우리가 느낌이라고 부르는 혼합물 hybrid은 바로 이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다. 정상적인 마음은 외부 세계에서 비롯한 전통적인(직접적인) 이미지와 몸 내부의 특별하고 혼합적인 이미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 바꿔 말하면 신경생물학적으로 '지도화된 패턴들'이 우리가 이미지라고 부르는 '마음속 사건들'로 변화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런 마음속 사건들은 느낌과 자기 관점을 포함하는 상황의 일부가 될 때만 마음속 경험, 즉 의식이 된다. 

 

- 느낌은 이미지를 의식으로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훨씬 더 난해한 문제는 앞에서 언급한 마음의 심층적인 구조, 즉 '골조'와 관련된 문제일 것이다. 마음의 과정, 즉 심적 과정이 뉴런 회로 내의 생물전기적 사건들에 의존한다는 것은 확실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 뒤에 숨은 의미는 무엇일까? 그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신경 조직과 신경 조직이 결합된 주변 환경의 물리적 구조와의 역학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 물리학자 로저 펜로즈 Roger Penrose, 생물학자 스튜어트 해머로프 Stuart Hameroff, 컴퓨터 과학자 하트무트 네븐 Hartmut Neven 같은 학자들은 세포, 특히 뉴런 내에서 진행되는 양자 수준의 과정이 마음속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제안했다. 분자 수준 이하의 양자 수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광합성 같은 복잡한 생물학적 과정을 설명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생물학 분야의 최근 연구 결과들은 이 학자들의 제안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류의 습파 탐지, 반향 위치 측정, 자북 magnetic north 위치 탐색 등도 모두 '마음과 연관된' 현상이다. 

 

- 비너 슈니첼의 레시피나 타르트 타탱의 레시피는 맛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마음 덕분에 우리는 맛을 예상하고 군침을 흘리지만, 레시피만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요리를 실제로 맛볼 수 없다. '마음을 업로드하거나 다운로드 해' 불멸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살아 있는 유기체 안의 살아 있는 뇌가 없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이런 일이 레시피만을 컴퓨터에 전송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설령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해도, 결국 사람들은 요리의 실제 맛을 느끼지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을 것이다. 

 

- •정서 emotion
지각 사건에 의해 촉발돼 함께 일어나는 비자의적인 내부 행동들(평활근[가로무늬가 없는 근육. 내장이나 혈관 따위의 벽을 이룬다. '민무늬근'이라고도 한다-옮긴이 주] 수축, 심장박동, 호흡, 호르몬 분비, 얼굴 표정, 자세의 변화 등)의 집합.

 

- •느낌 feeling

유기체에서 원초적인 상태(배고픔, 목마름, 고통, 쾌락 같은 항상성 느낌)나 정서에 의해 촉발되는 상태(공포, 분노, 기쁨 같은 정서적 느낌) 등 다양한 항상성 상태들 다음에 발생하거나 그와 동시에 발생하는 마음속 경험.

 

- 마음의 내용물이 정확하게 어떤 것이든(풍경이든, 가구든, 소리든, 아이디어든) 이 내용물은 반드시 정동과 함께 경험된다. 우리가 지각하거나 기억하는 것들, 추론으로 생각해내려는 것들, 발명하고 싶은 것들, 소통하고 싶은 것들, 우리가 하는 행동, 배우고 다시 기억해내는 것들, 사물이나 행동 그리고 그 사물과 행동의 추상화 결과로 이루어지는 마음속 세계 등이 모든 다양한 과정이 진행되면서 정동 반응을 일으킨다. 정동은 느낌으로 변화되는 아이디어들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음악적인 비유를 통해 설명한다면 느낌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반주를 해줄 수 있도록 만드는 악보 같은 역할을 한다. 

 

- '의식'이라는 말은 명확한 정의 없이 수많은 의미를 가진 일종의 언어학적 악몽 같은 말이다. 의식을 가리키는 영단어 'consciousness'는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말이며, 로망스어군(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등)에서는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단어조차 없다. 따라서 이 언어들의 화자는 'conscience'(양심) 같은 말을 대신 사용하면서 문맥을 통해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 '양심'이라는 말의 의미를 드러낸다.  

 

- 의식은 특정 유기체와 마음을 확실하게 연결시킨다. 따라서 의식은 그 유기체의 특정한 욕구에 마음이 매우 신속하게 대처하는데 도움을 준다. 유기체가 욕구의 정도를 마음속에서 기술하고 그 욕구에 대응하기 위해 지식을 적용할 수 있게 되면 욕구가 해결될 일만 남는다. 의식이 있는 마음은 유기체가 생존에 필요한 것을 확실하게 식별하는 데 도움을 주며, 유기체가 그 필요한 것들을 느끼는 데도 도움을 준다. 관련된 느낌의 강도에 따라 의식은 식별된 욕구에 대한 반응을 요구하거나 강요할 수 있다. 

 

- 현재 우리는 항상성과 느낌의 배후에 있는 장치들의 중요한 구성 요소들이 모두 뇌간의 상부 영역, 즉 3차 신경 진입 부분 위쪽, 더 구체적으로는 이 진입 부분 위쪽의 뒤편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그림에서 B로 표시된 영역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뇌간의 이 영역이 손상되면 확실하게 혼수상태가 유발된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전두피질은 어떤 역할을 할까? 전두피질은 의식 생성에 관여할까? 답은 앞쪽 전두피질, 즉 전전두피질이 의식 있는 마음의 생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인간 뇌의 전형적인 병변에 관한 연구들에 따르면, 전전두피질이 손상되거나 수술로 절제돼도 의식 있는 마음이 생성되는 과정의 기초는 와해되지 않는다. 전전두피질은 이미지 조작과 관련되며, 후두 감각 피질에서 만들어지는 이미지들의 활성화, 정렬, 공간적 위치 부여를 촉진한다. 즉, 전전두피질은 후두 감각 피질과 후내측피질의 일부 영역들도 하는 역할들을 조율한다. 또한 전전두피질은 의식 과정을 환하게 밝혀주고 우리의 것이라고 확인시켜주는 마음속의 광대한 파노라마들을 조합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전두 영역은 지적인 마음의 작용, 즉 추론, 의사결정, 창의적인 해석 등에 상당히 큰 기여를 하지만, 기본적인 의식이 의존하는 역할, 즉 지식을 풍성하게 하는 핵심적인 역할은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전두 영역은 마음의 소유주를 확인해주지 않으며, 그 소유주에게 마음에 대한 소유권을 부여하지는 않지만, 인간 능력의 최고치를 드러내 주는 매우 규모가 큰 확장된 마음의 생성에 도움을 준다. 

 

- 이들은 정동의 세계, 즉 욕구, 동기, 항상성 조절, 정서에서 비롯되는 느낌의 경험이 적응력이 높고 효율적인 지능보다 더 먼저 출현했으며, 창의성의 출현과 성장의 열쇠였다는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정동의 세계는 박테리아의 숨겨진 맹목적 능력보다 여러 단계 위에 위치하지만 충분히 발달한 인간의 지능에는 못 미치는 어떤 것이다. 실제로 정동의 세계는 의식 있는 마음이 점진적으로 발달시키고 확장시킨 고도의 지능에 이르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정동의 세계는 우리 인간이 점진적으로 자율성을 발달시키는 과정에 필요한 원천을 제공했으며, 그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 이제 이 사실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의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할 때다. 우리에게는 항상성 명령에 따르는 '느낌'대로 작동하는 기계를 만들 충분한 능력이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로봇에게 지속적인 존재를 위해 조절과 조정을 필요로 하는 '몸'을 주어야 한다. 바꿔 말하면, 역설적이게도 로봇의 강점인 튼튼함에 어느 정도의 취약성을 추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로봇 구조 전체에 센서를 심어 로봇이 스스로 자신의 몸 상태를 탐지하고 몸의 효율성을 나타내도록 함으로써 해당 정보를 통합하게 만들면 된다. 단단한 구조들을 유연하고 조절 가능한 구조들로 바꾸는 '소프트 로보틱스 soft robotics'라는 새로운 기술을 이용하면 된다. 또한 느낌을 가진 기계를 만들려면 이렇게 '감각하고 감각되는' 몸의 작용 결과를 기계를 둘러싼 환경을 처리하고 그 환경에 반응하는 유기체 요소들로 전달해 가장 효과적인, 즉 가장 지능적인 반응이 선택되도록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바꿔 말하면, 기계가 몸 안에서 '느끼는' 것이 기계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반응에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때의 '영향력'이란 반응의 질과 효율성을 높여 로봇의 행동을 내부 환경의 인도가 없을 때보다 더 지능적으로 만드는 영향력이다. 느낌을 가진 기계는 더 이상 무관심하고 예측 가능한 로봇이 아니다. 느낌을 가진 로봇은 어느 정도까지는 자신을 스스로 돌보고 주변 환경에 지능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 '느낌이 있는' 로봇이 '의식이 있는' 로봇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빨리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느낌은 의식으로 가는 길의 일부이므로, 느낌이 있는 로봇은 의식과 관련된 기능적 요소들을 발달시키겠지만, 이 로봇의 '느낌'은 살아 있는 생물체의 느낌과 같은 느낌은 아니다. 이런 기계가 가지게 될 의식의 '정도'는 결국 '기계의 내부'와 기계 외부의 '환경'에 대한 내부적 표상의 복잡성에 의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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