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수미] 애매한 재능 -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엇도 될 수 없는

일루젼 2021. 11. 27.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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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수미
출판 : 어떤책 
출간 : 2021.07.01 


 

제목에 이끌렸다. 

작가가 30여년을 살아오며 겪었던 일들을 조각 글로 이어 모은 에세이집이다.

단맛 쓴맛이 뒤섞인 쌉쌀한 일화들은 때로 지나치게 솔직해 묵직한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대체적으로 시간순으로 이어지긴 하지만 분절감이 강하다고 느꼈는데, 후에 이 글이 어떻게 쓰여진 글들인지를 알게 되니 이해가 갔다. 

 

일단은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래야 할 것 같다. 

육아와 우울, 그리고 삶에 치여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고 있는 한 사람이 매일의 조금을 모아 완성한 '책'이니까. 그가 오래도록 가지고 있던 '나는 글 쓰는 사람'이라는 정의를 드디어 실체화 한 결과물이니까.

 

평가는 쉬울지 몰라도 실천은 멀다. 

손쉽게 높아진 눈으로 성에 차지 않는 자신의 결과물을 견뎌내는 자만이 창작의 길을 간다는 <더 좋은 곳으로 가자>의 문장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가 기반을 두고 있다며 반복되어 등장하는 마산과 창원이, 내가 오래도록 미루고 있었던 약속을 지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모두가 자기만의 쓰임과 몫이 있는 삶일 것이다. 

그것을 찾는가와 받아들이는가의 문제가 아닐까. 

 


   

- 그나마 잘하는 것을 움켜쥐었다고 생각했는데 남들과 비교해 애매하다는 판단이 들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루라도 빨리 포기해야 할까, 아니면 끈기를 가지고 좀 더 노력해봐야 할까? 

 

-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지금 따지지 말고, 10년은 해 보고 결정해. 10년은 해 봐야 재능을 알아. 재능이 있냐는 질문은 그때 하도록 해." 

 

 - 막막했다. 작가가 되려면 문예창작과를 가야 하는지, 국문과를 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혹은 어느 과를 가도 상관없는지, 쓰고 읽는 것 말고 어떤 노력을 해야 좋은 지도. 잘 아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주변에 작가 지망생이라도 있어야 말이지, 사돈의 팔촌까지 뒤져 봐도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도서관과 서점에 가서 대단한 작가들이 남긴 책을 펼쳐 볼 수 있다는 게 위안이랄까.  

 

- 자기 연민에 빠지면 인간은 이렇게 나약해진다. 나약한 것이 권리인 것처럼 세상을 빈정거린다. 

 

- 아직도 기억난다. 나란히 서서 바라보던 시퍼런 마산 앞바다의 밤을. 철썩하는 소리는 현실감이 넘치는데 곧 죽는다는 게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한편 수영을 배운 동생은 그때 다른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적어도 자신은 맞은편 등대까지는 자유형으로 건너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쩌지 하는, 바다에 빠져도 자신은 살 것 같다는 또 다른 막막함이었다. 그날 우리는 말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 내 작품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비판과 의견은 받아들여야겠지만, 작품의 원형이 흔들리지 않게 지키는 것도 작가의 몫이다. 

 

- "아니, 내가 모빌로 보였다는데 어짜노!"
강의실 여기저기서 "그건 그렇지", “그러면 어쩔 수 없지” 하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렇다. 작가가 '모빌처럼 보였다'는 걸 타인이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윤 어르신에게 다가가 하이파이브를 하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 배우가 꿈이라고 말하며 생계의 덫 속으로 사라져 간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큰 사명감을 가지고 무엇인가 크게 잃어가며 꾸는 꿈이 아니라 가볍고 재밌게, 어른이 되어서도 꿈을 꿀 순 없을까? 
 

- 바람이 불면 꼭 죽음이 불어오는 것 같다. 바람은 정상과 나 사이를 가른다. 

 

- 그 말을 듣고는 대학 동기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언니는 나를 '범재'라고 표현했다. '할 수 있는 일을 부지런히 찾아서 하는 사람'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며.     

 

- 대단한 글을 쓰진 못해도 주변에 도움을 주고,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작가로 살아가는 일. 마치 범재인 나의 그릇을 확인한 것 같았다. 이상하게 마음이 개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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