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론 마일로 듀켓 / 윤민 / 남기종
원제 : The Book of Ordinary Oracles
출판 : 마름돌
출간 : 2017.12.01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추천받아 재독하게 되었다.
처음 읽을 때와 지금 사이에 어떤 것들이 달라졌는지 생각해보면, 여전한 것도 같고 많은 것들이 달라진 것도 같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자점이 제일 재미있고 편안하다는 점이다.)
이 책은 가볍고 유쾌하게 설명해나가는 듯 하지만 더 찾아나갈 수 있는 단서들이 곳곳에 존재하고, 다양한 점술법을 소개하며 독자가 가장 관심이 가는 것부터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 (만약 아무 도구도 없을 경우, 책 그 자체로도 혼점이 가능하다!)
가볍게 흘러가는 투로 적혀 있지만 가만히 읽어 보면 오라클의 기본 원리와 다루는 자세에 대해서도 중요한 부분들이 언급되어 있다. 저자는 오라클이 무엇으로부터 오는 답변인지, 최대한 왜곡 없이 받아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에 사로잡히면 안되는지 등을 유머러스한 사례들을 들어 독자가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책제는 일상에서의 오라클이지만, 스스로 눈에 보이는 것들로부터 메세지를 받아들이고 (그렇게 믿고) 해석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특히 주의해야 할 부분과 자신이 보고싶은대로만 보지 않을 수 있도록 다소 냉정하고 직설적인 해석들을 제공한다.
다시 읽으면서도 즐거웠다.
- 다프네에게 말도 안 되는 허황된 리딩을 해줄수록 그녀는 리딩의 정확성과 심오함에 더욱 놀라워하며 감동했다. 일부러 바보 같은 리딩을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말에 따르면 기가 막히게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환장할 노릇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마저도 이 가엾은 여인이 파놓은 망상의 늪에 깊게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나는 중대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 프로와 아마추어를 불문하고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자기 자신과 관련된 질문을 했을 때 만족스러운 해답을 얻기란 매우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점을 볼 때 잘 맞아떨어지는 이유는 '질문'과 '질문자'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질문에 대해 감정적으로 집착할 필요가 없는 작은 오라클 신이 되어 전지전능함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한 발 떨어져서 제3자의 시각으로 질문을 바라보면 철저하게 객관적이고 무관심할 수 있다.
- 성경에 수시로 등장하는 제비뽑기 관행도 여러 면에서 주사위 놀이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히브리 문자, 신비스러운 숫자 또는 심볼을 새겨 넣은 그릇 조각으로 제비를 뽑았다. 성경학자 중에는 이스라엘 대제사장의 흉갑에 박혀 있던 우림 Urim(계시)과 둠밈 Thummim(진리)이 신의 의중을 알아내기 위한 용도로 주사위처럼 사용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 성경에는 이 외에도 크랩스 Craps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동안 로마 병정들은 그의 수의를 차지하기 위해 주사위(제비뽑기)를 던졌다. 힌두교 경전 마하바라타 제4권의 제목은 '운명의 주사위'다.
- 어쨌든, 내가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타로의 마이너 아르카나야말로 제2장에서 언급했던, '완벽에 가까운 오라클 도구'라는 것이다. 조건만 맞는다면 매우 강력한 리딩을 할 수 있는 기법이다. 심오한 영적 과학과 기술을 다루는 고대 전통의 카발라 Qubalah에 익숙한 독자라면 왜 타로 카드가 완벽에 가까운 위력을 발휘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마이너 아르카나를 구성하는 네 개의 슈트는 네 개의 계층으로 구성된 생명의 등급, 카발라의 핵심인 네 개의 세상, 그리고 인간의 혼을 구성하는 네 개의 요소를 각각 상징한다. 카발라 사상의 대표적인 도안인 생명의 나무 The Tree of Life에는 의식이 발현되는 열 개의 단계를 상징하는 세피로트 sephiroth가 탐스러운 열매처럼 달려 있으며 이는 각 슈트에 속한 열 장의 핍 카드에 대응된다. 더 깊게 들어가지 않더라도 타로와 카발라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타로의 마이너 아르카나에는 카발라의 완벽한 수학 체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구조상으로는 현대판 트럼프 카드도 완벽함에 근접해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타로 카드처럼 완전한 구조와 아름다운 색상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트럼프 카드도 진심으로 대하면 아주 강력한 오라클 도구가 될 수 있다.
- 하지만 주역을 보다 진지하게 공부하고 싶은 독자들은 전문 서적 탐독을 권하고 싶다. 캐리 F. 베인즈 Cary F. Baynes가 영어로 번역한 리하르트 빌헬름 Richard Wilhelm의 <역경 The I-Ching, or Book of Changes>도 썩 괜찮다. 참고로 칼 융 Carl Gustav Jung이 책의 서문을 썼다.
- 황금새벽회 The Order of the Golden Dawn 단원들의 경우 영지주의의 신 IAO를 소환하여 타로 카드의 신성한 헤르메틱 힘을 관장하는 천사 HRU를 보내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이 천사를 소환하는 기도문은 대략 다음과 같다.
"위대하신 IAO시여. 님의 뜻을 받들어 비밀 지혜를 다스리는 천사 HRU를 보내 주옵소서. 그의 보이지 않는 손이 이 신성한 카드를 어루만짐으로써 우리가 지혜를 얻고, 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욱 빛나게 할 수 있도록 축복을 내려주소서. 아멘."
- 사람마다 신, 여신 또는 영적 존재에 대해 다른 생각과 느낌이 있겠지만, 상위 지성이 내 안에 있는 것이라고 이성적으로 확신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잠시 자신을 잊고 내 안의 잠재력을 제3의 존재에 '위임'하면 훨씬 더 효과적이고 정확한 신탁을 구할 수 있다. 오라클을 통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는 것은 이성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거나 호감을 느끼는 캐릭터를 하나 정하여 점을 볼 때마다 활용할 것을 권하고 싶다.
- 독자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우주의 상위지성을 상징하는 심볼이라면 의인화된 캐릭터이든 사물이든, 뭐든 괜찮다. 점을 볼 때 내 안의 바보가 방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단 이 상위 지성부터 소환해야 한다. 각자 정한 상위 지성의 이미지 또는 심볼에 익숙해지고 나면 오라클의 다섯 번째 비밀, "오라클은 항상 옳다"는 개념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다시 강조하지만, 질문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내가 처한 상황의 한 가지 단편적인 증상과 관련된 바보 같은 질문들을 모두 배제하고 내가 진짜로 구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되면 질문에서 해답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순간에 이르면 내가 관찰하는 모든 것에서 해답을 구할 수 있다.
- 판테아콘 PanteraCon은 전국의 이교도, 신흥 이교도, 드루이드 Druids, 무당, 오디나이트 Odinite를 비롯한 자연 숭배자와 마법사들이 모여 4일 동안 친분을 맺고 교류하는 연례행사다. 2001년 행사에 참가했던 연사들의 약력은 참 대단했다. 필자를 비롯하여 만인의 존경을 받고 있는 주잔나 부다페스트, 타로계의 전설 브라이언 윌리엄스, 메리 그리어, 레이첼 풀락, 현대판 신비주의 사제라 불리는 샘 웹스터, 마이클과 캣 샌본 등등. 행사를 주관한 헤드라이너는 나의 개인적인 영웅인 로버트 안톤 윌슨 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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