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

[송길영] 그냥 하지 말라 - 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다

일루젼 2022. 3. 13.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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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송길영
출판 : 북스톤 
출간 : 2021.10.05 


 

제목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읽어보았다. 닥치는 대로 '그냥' 열심히 하지 말고, '방향성'을 먼저 설정한 다음 시작하라는 것이다. 지구는 둥그니까 앞으로 가다 보면 결국 한 바퀴 돌아 어디든 갈 수 있다지만, 영원히 살 수 없는 우리는 가야 할 방향을 먼저 살펴 시간과 노력을 절약해야 한다. 최소한 동해로 가야 하는데 서쪽으로 열심히 걸어가는 실수는 피해야 할 것이다.

 

이는 흔하다면 흔한 메세지이다. 하지만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패턴을 찾아내 적용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저자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일반인들이 아무 생각 없이 주로 타는 지하철 칸 위치가 저자에게는 미래를 가리키는 하나의 손가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 바라본 현재의 사회 현상들은 모두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거의 없다. 일어나야 할 일은 이미 과거 어느 시점부터 존재하고 있던 것이 시야권으로 부상하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그것이 사라지지 않고 나타나도록 만드는 것은 개개인의 욕망이다. 

 

어째서 수십 년 간 답보 상태에 있던 과학 기술적 발전이 냉전 시기에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가 하는 질문에 저자는 수많은 이들의 욕망이 모였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이 욕망들이 향하는 방향에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미래'가 존재할 것이다. 

 

저자는 그런 흐름을 개인의 차원에서 감지하고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들을 분석하기를 권한다. 현재가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 위에 세우는 미래는 너무나 연약하고 불확실하다. 인간은 100세 수명을 코 앞에 두고 있고, 이제 무한 경쟁에는 인간뿐 아니라 로봇까지 뛰어드는 판이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는 하나의 업종이 대략 10여 년을 주기로 새롭게 생겨나고 흥하고 사라지는데, 지금을 기준으로 업을 선택한다면 30년 뒤의 내 미래는 굉장히 불투명해진다. '무작정 열심히' 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정리해보자면 대략 이러한 내용인데... 자기개발서라고 보기엔 조금 애매하다. 분류 상으로는 '경제 전망' 분야로 되어 있는데, 확실히 저자의 인사이트가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분류도 딱 맞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책을 덮으면서는 큰 감흥이 없었는데, 발췌를 확인하다 보니 양이 상당했다. 쉽게 읽히지만 전하고자 하는 내용과 생각해 볼거리는 적지 않았던 것 같다. 평을 하기가 상당히 난감하다. 크게 만족스럽게 읽은 것은 아닌데, 막상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꽤 괜찮은 것 같다. 하지만 읽을 때의 기억은 미묘하다. 

 

음. 발췌문을 보시고 호기심이 생기시는 분들께는 추천.       

 



기억해야 할 변화의 상수 3가지


당신은 혼자 삽니다.

당신은 오래 삽니다.
당신 없이도 사람들은 잘 삽니다.

 

 

-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일어날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운명론이거나 정해진 결과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것을 선호하고, 그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모둠살이가 숙명인 인간종의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원하는 지점, 각자의 욕망이 합의되는 지점, 바로 그곳에서 일어날 일은 일어납니다. 각자의 욕망이 부딪치고 서로 만나 추동하며 생성되는 더 큰 욕망의 용광로가 곧 우리의 미래입니다.  

 

- 미래는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각자의 욕망이 모이면 변화가 만들어집니다. 이 변화를 이해하는 작업을 누군가는 육감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예측이라 합니다. 변화를 이해하고 따르는 삶을 누군가는 순리順理라 하고 누군가는 적응이라 부릅니다. 

 

- 쉽지 않은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맞추기 위해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일단 도전!' 하는 식으로 막무가내로 하지 말고, 세상의 변화에 내 몸을 맞추는 과정을 성실하게 치러내시길 바랍니다. 성실은 의미를 밝히고 끈기 있게 헌신하는 것입니다. 근면은 생각이 배제된 성실함이고요. 앞으로의 시대는 생각 없는 근면이 아닌 궁리하는 성실함이 필요합니다. '그냥 하지 말라 Don't Just Do It'고 말씀드리는 이유입니다. 방향이 맞다면 속도가 더 당겨지거나 늦춰질지언정, 일어날 일은 일어납니다. 그러니 방향을 생각했다면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오늘부터 움직이면 됩니다. 지금 시작하면, 여러분에게도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것입니다. 

 

- 그동안 제가 데이터를 통해 욕망을 관찰하고 미래를 보았다면,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 변화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우리를 어떤 세상에 데려다 놓을까요? 그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 물론 우리는 각자 개성을 지닌 존재이고 저마다 환경도 다르므로 모든 변화를 똑같이 실감하지는 않습니다. 소설가 윌리엄 깁슨 William Gibson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죠.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다만 모두에게 균등하게 온 것은 아니다. The future is already here - It's just not very evenly distributed."

  

- 아직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다른 이에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라면, 언젠가 나에게도 일어나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 내게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 해도 변화를 미리 보는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 오피니언 마이닝 워킹 그룹 Opinion Mining Working Group이라는 연구모임이 있습니다. 데이터가 산처럼 쌓였는데, 이 데이터를 기업이나 기관이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연구해보자는 취지로 개설한 모임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극히 기능주의적 관점이었죠. '손에 쥔 게 있는데 이걸로 뭘 하지?' 하는 발상이었으니까요. 망치를 들면 세상이 온통 못으로 보인다는 유명한 말처럼 말입니다. 실용적인 유용함을 찾다 보니 실제로 효용도 한정되더군요. 그래서 그다음에는 거꾸로 접근해봤습니다. 빅데이터가 사람들이 쌓은 흔적이라면 그 흔적이 왜 만들어졌고,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찾아보고자 했습니다. 특히 한 명 한 명이 아니라 복수의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고, 함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파악하고 싶었습니다. 

 

- 그런데 이 또한 일어날 일이었고, 일어나고 있던 변화입니다. 사람들이 대면을 부담스러워한다는 내용이 예전에도 있었어요. 특히 전화 통화를 꺼리는 현상은 밀레니얼의 특성으로까지 부각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특정 세대만의 특징은 아니라는 것이죠.  

 

- 어느 정도냐 하면 '전화공포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이 표현이 최근 2년 사이에 엄청나게 올라오고 있습니다. 문자를 보내거나 글을 쓰는 건 문제가 없는데 실시간 통화하는 게 유독 스트레스라는 것입니다. 

 

-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저와 함께 데이터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분들 중에는 20~30대도 많습니다. 그중 세 분과 함께 연구하는 스터디에 한 분이 좀 늦었습니다. 제가 다른 분에게 여쭤봤죠. "그분은 좀 늦으시나 봐요." 그랬더니 "안 그래도 문자 보냈습니다"라고 대답하더군요. 제가 "시간 됐으니 전화 한번 해보세요"라고 했더니 "문자 보냈는데요"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반응이 흥미로워서 굳이 한 번 더 "전화하면 안 돼요?"라고 물으니 이번에도 "문자 보냈다니까요"라며 철벽을 치더군요. 무려 3번이나. 그래서 물었습니다, 전화가 왜 그렇게 싫은지. 그랬더니 전화는 뭐랄까, 좀 무례한 수단 같다는 것입니다. 이미 문자로 충분히 소통했는데 전화로 즉각적인 대답을 재차 요구하는 행위가 마뜩치도 않고, 무엇보다 전화벨이 울리면 심장이 뛴다고 했습니다. 기성세대도 밤늦게나 이른 아침에 가족의 전화가 와서 가슴 철렁했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좋지 않은 일이 생겼나 하고요.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닌 듯, 외국에도 운동할 때보다 전화벨이 울릴 때 심장이 더 격렬하게 요동친다는 밈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 이렇게 되는 순간 인간에게 요구되는 덕목도 바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성실히, 꾸준히, 열심히 하는 자세를 높이 샀어요. 지금도 그런 면이 있죠. 그런데 로봇 R대리는 잠을 안 잡니다. 밥도 안 먹고 3교대도 필요 없어요. 월급을 올려달라는 말도 안 하고, 결정적으로 R대리는 오류를 내지 않습니다. 이렇게 동일한 업무를 꾸준히 하는 분야는 로봇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농업적 근면성으로 열심히 일했던 이들의 꾸준함은 더 이상 덕목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생각 없는 근면성은 조만간 주인의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혹여나 여러분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시키는 일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은 접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일자리는 곧 없어질 확률이 높으니까요. 
 

- 제가 드리는 대답은 '좋은 질문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알았습니다. '아, 공통질문이 있구나.' 저는 운 좋게도 다른 사람보다 먼저 질문을 받았고, 심지어 똑똑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물어보는 사람의 머리가 좋다는 말이 아니라, 고민이 깊었다는 것입니다. 자기 일과 세상에 대해 오래 고민한 끝에 나오는 핵심을 찌르는 질문에는 아무렇게나 대답할 수 없죠. 저 또한 깊이 숙고하고, 사방의 전문가들에게 물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전문가들이 해온 기존의 공부에 비춰보면 제가 던지는 질문은 으레 '원래 있던 고민'이더라는 것입니다. 성장에 대한 고민을 물으면 뒤르켐의 사회 유기체론이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그런 설명을 듣다 보면 '이런 고민은 이미 천재들이 다 했네?' 하는 헛웃음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인류가 오래전부터 했던 수많은 고민이 있고, 그중 일부가 그때그때 우리 사회의 표면에 떠오르는 것이죠. 이런 질의응답을 반복하면서 데이터 아래 숨겨진 함의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 즉 제 비결(?)은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이종 heterogeneous 간의 지혜를 모으는 사고를 한 것입니다. 질문은 현업에서 일하는 분들이 줬고, 그에 대한 해법은 다양한 주제를 공부하는 학자들에게 들으면서요. 저는 질문을 전달했을 뿐입니다. 각자 다른 영역에서 깊은 사고를 하는 독립적 인간들이 모여서 함께 고민하는 작업이 가장 소중합니다. 그러니 교류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공부해야 하고요. 공부하지 않으면 질문을 받았을 때 '내 생각은 말야' '나 때는 말야' 하면서 뻔한 말을 늘어놓거나, '인생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 같은 말로 모호하게 둘러댈 수밖에 없습니다.  

 

- 여기까지 오면 이런 의문이 들 것 같습니다. 저야 사람을 만나고 질문받는 게 일이니 질문이 모이는데, 그렇지 않은 개인은 어떻게 좋은 질문을 모을 수 있을까요? 물론 저는 좋은 질문을 상대적으로 먼저 받는 편입니다. 이런 질문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면 곧 사방으로 퍼져나가게 돼 있어요. 다른 사람보다 조금 늦게 질문을 접한다 한들 큰 문제일까요?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 다만 초반에는 이 질문이 변화의 신호인지 단순한 소음인지 알기 어려울 수는 있습니다. 그때의 방법은, 많이 읽는 겁니다. 책이든 뭐든 꾸준히 많이요. 읽다 보면 패턴이 반복되는 게 보입니다. 신호가 증폭되는 게 있고 감소하는 게 있는데, 그걸 보면 됩니다. 구글 트렌드 등 검색엔진의 키워드 분석 툴이 이런 역할을 하기도 하고요. 

- 누군가에게는 원하는 대답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당장 미국 주식을 살지 말지 누가 찍어주면 좋겠다는 사람에게 몇 년 동안 책 읽으라 하면 좋아할까요? 그러니 급한 대로 '1000권 읽고 깨달은 것들' 같은 다이제스트 책을 읽습니다. 그러나 성취란 다이제스트로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1000권을 읽는 와중에 그 노력을 통해 각성하는 거지, 1000권에 담긴 정보가 저절로 각성을 주지는 않습니다. 성취란 목표가 아니라 과정에서 얻어지는 훈장임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 여기에 한 가지 더하고 싶은 얘기는, 무조건 열심히만 하는 게 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히 하면 소진됩니다. 한 신문사의 기사에 따르면 2002년에는 텔레마케터가 유망 직업이었습니다. 그러나 2015년에는 없어질 직업 1위로 지목됐습니다. 2002년의 누군가는 15년도 안 되어 사양산업이 될 일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을지도 모릅니다. 

- 방향을 먼저 생각하고, 그다음에 충실히 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생각을 먼저 하면 돼요. 일어날 일은 일어날 테니까요. 그냥 해보고 나서 생각하지 말고, 일단 하고 나서 검증하지 말고, 생각을 먼저 하세요. 'Just do it'이 아니라 'Think first'가 되어야 합니다. 그 생각의 자료 중 하나로 앞에 말씀드린 3가지 상수도 활용해보시기를 권합니다.

- 이들 디지털 네이티브를 가리켜 '네이티브 프로듀서'라고도 합니다. 그전까지는 창의적 활동이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정도였다면, 이들은 디지털 디바이스를 이용해 멀티미디어를 만들고 그걸 기반으로 더 많은 창의활동을 자연스럽게 해오고 있습니다. 중학교에 다니는 저희 아이는 최근 졸업작품전을 메타버스 플랫폼인 개더타운에서 열었습니다. 아이와 친구들은 각자가 만든 멋진 작품들을 디지털에 전시하고, 아바타로 전시장에 방문한 학부모들에게 기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일하는 방식도 이처럼 바뀔 테니, 조직은 새로운 방식으로 산출된 결과를 어떻게 조합해서 전체 큰 목표를 달성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 처음에는 많은 분들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재택근무는 한시적인 비상대책이니 코로나가 끝나면 예전으로 돌아갈 거라고요. 그러나 제가 보기에 경제적 측면만이 아니라 복지 측면에서도 재택근무를 둘러싼 논쟁이 앞으로 치열해질 것입니다. 막강한 대안으로 메타버스까지 등장한 마당이니 말입니다. 출발선의 원칙이 무너지면 매 단계의 기준이 바뀌기 때문에, 혁신이 확산됨에 따라 변화하는 것들을 계속 주목해야 합니다. 나아가 지금은 천재가 짠 코드가 수억 명에게 혜택을 줄 수 있고, 한 명이 만든 에러는 엄청난 피해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전에는 마치 1마력처럼, 한 사람이 하루에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 제한돼 있으니 생산성도 일정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당을 받았죠. 그러나 이제는 창의성과 그에 따른 성과가 균등하지 않다는 게 여러 산업에서 목격되고 있어요. 그렇다면 더 나은 솔루션을 제공하는 조직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더 생산성 높은 인류가 존재할 것이므로,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부터 재택근무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 기존의 관성이 힘을 쓰지 못하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간의 격차가 만들어집니다. 미국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Robert Reich UC버클리 교수는 코로나 팬데믹이 새로운 형태의 계층화를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가 언급한 새로운 계층은 4가지로, 첫째는 원격층 The Remotes입니다. 공간 제약을 받지 않는 전문적 기술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필요한 자원이 모두 디지털에 있어서 노트북만 있으면 일할 수 있죠. 온라인으로 일할 수 있는 투자자, 개발자들은 비대면 세상에서도 어려움이 없고 심지어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필수적 일을 하는 사람들 The Essentials입니다. 공공서비스를 하는 분들은 일자리를 잃을 염려는 없지만 위험한 환경에 더 많이 노출되기에 더 힘든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의료서비스 종사자가 단적인 예죠. 세 번째는 실직자 The Unpaid 들입니다. 이번 코로나에 외식업이나 여행업은 일자리가 줄어서 많은 분들이 힘들어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심란한데, 더 무섭게도 마지막 계층이 있습니다. 바로 잊혀진 층 The Forgotten, 아예 보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수감자, 홈리스, 무국적 노동자 등은 의료공백으로 생계의 레벨이 아니라 생존까지 위협받는 상황입니다. 

 - 공통의 경험은 집단의 가치관과 의사결정의 중요한 인풋이 되고요. 예컨대 세대를 정의하는 중요한 사건이 있고, 그 사건을 겪은 이들이 했던 공감은 다른 세대와 차이가 날 수 있어요. 미국의 ‘침묵 세대'는 1925~45년생으로 대공황, 매카시즘, 2차 세계대전의 경험이 깊고, 1946~64년생인 베이비부머는 베트남 전쟁, 인권운동, 케네디 암살, 우주 탐험이 성장기의 중요한 경험이었다 합니다. 그 뒤를 잇는 X세대는 베를린 장벽 붕괴, MTV, 걸 걸프전 등이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고, 밀레니얼은 9·11 테러, 소셜미디어 등장, Y2K 등이 충격적인 경험이었다는 것이죠. Z세대는 경기 대침체, ISIS, 동성 결혼 합법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중요한 인풋이 되었다네요. 

- 이러한 성장기의 경험이 개인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하나의 기반이 되고, 일단 가치관이 형성된 후에는 다른 세대 간의 합의가 아무래도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는 미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이 담겨 있어서, 해당 사건사고를 다 알아야 메타포나 스토리를 오롯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를 Z세대가 온전히 즐기기는 쉽지 않겠죠. 한국 영화 <국제시장>도 마찬가지여서, 많은 장년층이 이 영화를 보며 '그땐 그랬지'라며 회상에 젖지만, 젊은 세대에겐 그저 흥미로운 옛날이야기일 겁니다. 

 

- 지금은 어떤가요? 자동화로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 일을 합니다. 노동에 대한 과거의 정의와 지금의 정의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부가가치가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잘해야 하는데, 이 구조를 따라가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바로 성장기에 개발시대의 논리를 교육받은 기성세대죠. 여전히 한국은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으로 수위를 다툽니다. 이미 경제성장의 기울기가 완만해졌는데도 아직도 급격한 성장에 맞는 과거의 방식을 놓지 못하고 열심히 하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문제가 생기나요? 고속성장에 대한 기억이 없는 사람들과 갈등이 생기죠.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라면 제도와 시스템 그리고 적응의 노력 자체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때, 우리가 한 지금의 공통 경험이 소중한 인풋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공통의 경험은 공통의 상상을 가능케 하기 때문입니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에게 흥미로운 형질이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허구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허구를 집단적으로 함께 믿는다는 것이죠.
 

- 개인에게는 넘어야 할 거대한 산처럼 다가올 것입니다. 그때마다 어떻게 변화에 적응하고 각자의 역량과 경쟁력을 유지시킬 것인지가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먼저, 본인의 가치관을 의심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건 앞으로도 유효하겠죠. 어떤 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관행적으로 해왔던 행동을 다 지켜야 한다는 강박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건 남기고 아닌 것들은 이번에 과감하게 다시 정의해보자는 마음가짐이 우리가 변화와 위기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이자 기회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합의를 위한 출발점을 정말 잘 정의해야 합니다. 그걸 못하면 그다음 세대에 예기치 못한 혹은 예상을 뛰어넘는 큰 변화를 넘겨주게 됩니다. 

- 아울러 공통의 합의를 이끌어낼 쉬운 설명 또한 필수입니다. 거대한 혁신이 이루어지려면 협업이 필요한데, 협업이라는 건 정서적 공감만으로는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전체 인류가 의사소통을 통해 각자 가지고 있는 지성과 지식을 합쳐야 하므로 논리적 설득이 요구됩니다. 이를 단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예제로 오른쪽의 아름다운 다이어그램이 있습니다. 

- 일명 로즈 다이어그램이라 불리는, 데이터 분석하는 이들에게는 꽤 유명한 그림입니다. 누가 만들었냐면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에요. 이분을 한국에서는 어릴 때 읽었던 위인전의 영향으로 대개 '백의의 천사'라 기억하는데, 사실 이분은 통계학자이자 전략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크림전쟁 당시 야전병원에서 일하며 어떤 이유로 청년들이 사망하는지 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투 중에 부상을 입어 즉시 사망하는 사람보다 후송된 병원에서 질병으로 사망한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위생이라든지 야전병원에 대한 지원이 매우 열악해, 중상이 아니어도 처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2차 세균 감염으로 죽은 사람이 많았던 것입니다. 이를 관찰한 나이팅게일은 전쟁터의 무기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병원 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더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어떻게 입증했냐고요? 실제로 창고를 부수어 물자를 꺼내고, 여러 독지가 및 본인의 사재를 털어 의료시설에 투자하여 사망자가 드라마틱하게 감소한다는 결과를 도출한 것입니다. 

 

 - 이 그림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 첫째는 인과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무엇이 인풋이고 무엇이 아웃풋인지 이해한다면, 인풋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아웃풋을 교정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음을 알게 해 줍니다. 다시 말해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에 대해 정서적으로만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판단해 어떤 환경이나 행위를 바꿔야 미래의 결과를 바꿀 수 있는지 과학적으로 추론한 것입니다. 

- 둘째는 인과를 증명하고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이때는 쉽게 전달한다는 게 특히 중요합니다. 복잡한 도표와 논리로 만들어진 논문으로 전달한다면 소수의 전문가만 이해할 수 있겠죠. 그러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인정받더라도 전체 사회의 자원을 사용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공감하지 못한 대다수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고 쉬운 형태로 정보를 표현하는 방식이 소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만 합의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를 최근에는 데이터 비주얼라이제이션 datavisualization이라는 하나의 학문으로 정의해서 밝히고 있습니다. 

- 제가 봤을 때 정말 훌륭한 사람은, 어려운 얘기를 쉽게 하는 사람이에요. 많은 산업 또는 학문의 전문가들이 그들 사이에 통용되는 나름의 언어를 만들고, 그들끼리는 쉽지만 일반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을 합니다. 그리고 정말 나쁜 사람은 쉬운 얘기를 어렵게 합니다.   

- 코로나 팬데믹으로 재택근무가 시행되자 세계적으로 여러 가지 천태만상이 벌어졌습니다. 관리자들은 어떻게든 떨어져 있는 직원들을 관리감독 감시하고자 하지만, 새로운 업무 형태에 적응한 직원들은 어떻게든 그들 나름대로 자신에게 돌아온 시간의 주도권을 행사하고자 노력합니다. 그중 하나가 수입을 올리는 각종 활동입니다.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단기 프로젝트를 수주받아서 프리랜서처럼 움직이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띄었죠. 그중 재미있는 해외 기사를 봤는데, 사무직 종사자들이 두 회사 일을 동시에 해서 연봉을 올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파트타임이 아니라 전일제로요. 보통은 퇴사하고 이직하는 사이에 약간의 시일을 두는데, 누군가가 어쩌다 보니 두 회사에 겹치기 근무를 한시적으로 하게 됐다고 해요. 그런데 원격으로 일하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더란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회사에서 퇴사하는 것을 번복하고 두 회사에서 동시에 일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가 싶지만 성공적으로 실행하고 있다니 능력 있는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온라인상에 노하우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세무나 회계 같은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정보도 나눈다고 합니다. 이쪽 일을 저쪽으로 보고하는 실수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관리자의 의심을 피해 해 볼 수도 있겠지요.  

- 단계별로 증거가 남기 시작하면, 과정의 충실함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 투명성을 기반으로 성실함의 가치가 재정의될 것입니다. 무임승차자가 사라지고 일의 단계가 줄어들겠죠. 그러면 중간의 무임승차자는 어디로 갈까요? 그리고 처음 기안한 김 사원에 대한 보상체계는 어떻게 조정될까요? 최근 많은 조직에서 공평보다 공정을 요구하는 흐름이 왜 형성되었을까요? 지금까지는 업이 각자의 기여가 모여서 분해되지 않는 공동작업이었다면, 이제 단계별로 분해되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앞으로 단계별 프로세스화가 더욱 가속화될 테고, 평가와 보상 또한 시스템으로 이루어지겠죠. 결국 규칙으로 가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단 막무가내의 규칙이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테니 평가와 보상에 대한 항변도, 누군가의 강요나 순응도 통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 왜 누구는 유난히 적응이 어려울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 첫째, 기존의 법칙이 항구적일 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변화하는데도 눈 감고 귀 닫고, 한마디로 생각하지 않고 관성처럼 예전의 방식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 둘째, 세상이 변화하는 동안 내 경쟁력의 현행화를 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만큼 일에 대한 나의 전문성이 떨어졌다는 뜻이니까요. 요즘에는 순수 예술하는 사람도 포토샵 같은 소프트웨어 사용법을 배웁니다. 나의 작품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몰라도 상관없었지만, 지금은 디지털 디바이스가 기본 툴이 되었기 때문에 배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툴에 대한 숙련도는 일에 대한 준비성, 현행화의 기본 요소입니다.

- 셋째, 지금 이 시스템이 최대한 유지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면 순진하거나 무능한 게 아니라 사악한 거예요. 실제로 기업 강연을 가서 사회가 투명성을 요구한다는 말을 하면 정년이 얼마 안 남은 분들에게서 꼭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렇게 쉽게 안 바뀐다고요. 강연에서 현행화와 적응이 중요하다고 아무리 열심히 말해도 나중에 식사하며 대화해보면 어떤 화제를 꺼내든 결국엔 ‘3번 아이언'으로 대화가 흐르는 분도 봤습니다. 나는 골프를 안 친다고 백번 말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것 말고는 관심도 아는 것도 없으니 그 얘기밖에 안 하는 거죠.

- 이런 이유들로 시스템의 변화를 무시하며 버티는 이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분들은 그렇다 쳐도 그다음 세대는 그럴 수 없잖아요. 그래서 그다음 세대의 분들이 클레임을 거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사회에서 일어나는 신구의 크고 작은 갈등은 단순한 세대갈등이 아니라 각자의 입장이 다른 거죠. 2020년 초반에 마스크 쓰는 것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마스크를 쓰는 사람과 안 쓰는 사람 간의 신경전 같은 거였죠. 마스크를 거부하는 이들 중에는 상대적으로 기성세대가 많았습니다. 그분들은 지하철에서 마스크 제대로 쓰라고 하면 '왜 이래?'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규정은 규정이고, 현실에서는 상황 봐가며 적당히 해도 되지 않느냐고 생각한 것입니다. 

 

- 이들의 오류는, 규칙 준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압력을 얕잡아본 데 있습니다.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책상을 화장실에 감추고 담을 타고 넘어가 일탈을 즐기며 스릴을 만끽하던 그때의 분들은 지금 세대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10대 청소년들은 학원을 빠지면 자동으로 결석이 측정되어 부모에게 문자가 날아가거든요. 출결을 시스템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디지털이 없던 시대처럼 구렁이 담 넘듯 은근슬쩍 속여 넘길 수가 없어요.

 

- 함께 식사하지 못하도록 식당 배치를 바꾸면서 회사는 직원들 사이의 인화가 약해질까 봐 걱정했지만 웬걸, 직원들은 너무 좋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세 끼를 준다는 것은 야근이 상시화된 조직이라는 뜻이라 지원자들은 무조건 믿고 거른다는 사실을 사장님은 과연 아실까요? 이처럼 각자의 생각이 다릅니다. 회사는 여전히 '한솥밥'이란 말을 쓰는데 직원은 '밥 먹을 때만이라도 제발 건드리지 말라'는 심정인 거죠. 이런 괴담이 직장인 커뮤니티에 차고 넘칩니다. 청국장 효능에 눈뜬 부장님 때문에 2주 내내 점심에 청국장을 먹고 있다는 게시물에 '나는 2주째 생태탕' 같은 댓글이 달립니다. 부장님이 계속 술을 마셔서 점심 해장에 동원되는 거죠. "순댓국은 내장을 시켜야지, 먹을 줄 모르는구나?" 하면서 깍두기 국물을 부어준다는 둥, 냉면 잘라먹었다고 잔소리 들었다는 둥, 모두 가르쳐주는 척하면서 하는 군소리입니다. 기본은 무례함이고요. 내가 너의 모든 일상생활을 충고하고 제한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무례하죠.  

 

- 놀라운 건 이 모든 징후가 과거 과학자들이 말한 것들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많은 분들이 놀랐을 것입니다. 코로나 19의 확산과 그에 따른 여러 증상과 변화들이 영화 <컨테이젼>의 전개와 무척 유사했거든요. 우리가 생각보다 똑똑하다는 거죠. 영화를 만들기 전에 시뮬레이션할 때 과학자들이 기술한 현상이 현실에 그대로 재현된다는 건,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소설과 논문, 영화에서 나온 것들 또한 현실이 될 개연성이 있다는 뜻 아닐까요? 그렇다면 다가올 미래를 이미 다양한 경로로 보았음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는 책임의 방기를 반성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우리는 다양한 이슈를 통해 지구환경의 문제를 비롯해 인류사에 있는 이념이라든지 사회 구성원 간의 합의과정에 있었던 미비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무언가를 할 것입니다. 온 인류가 공통의 경험을 한 터라 합의가 빨라질 수 있다는 건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 또 하나, 우리 삶에 투명성을 반드시 탑재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나우 데이터로 기록되는 시대임을 잊지 마세요. 투명한 시대에는 의사결정 과정과 근거, 나아가 우리 삶 또한 투명해야 합니다. 투명성의 가장 큰 이슈는 단계별 충실함입니다. 지금까지는 끝이 좋으면 좋은 거였는데, 이제는 모든 단계가 좋아야 해요. 과정이 중요해집니다. 과거에는 과정의 중요성을 주로 '어떻게 효율을 높일지’의 범주로 생각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절차적 정당성'의 이슈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열심히 해야 하고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갑자기 도덕 교과서여서 죄송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요. 예전에는 결과로 대충 퉁치는 게 가능했는데, 이제는 매 단계가 보이니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매 단계가 검증될 수 있으니 일은 더 퍽퍽해질 것입니다. 매사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 행복에 대한 다양한 학문적 정의 중에 '주관적 안녕감 subjective well-being'이 있습니다. 외부적 관찰이나 정의가 아니라 각자의 평가나 감상을 통해서만 행복을 설명할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행복에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충분히 수긍이 가는 말입니다. 다만 저는 데이터를 통해 객관적인 주관성을 알고 싶어요. 그걸 전작 <상상하지 말라>에서는 커먼센스, 즉 상식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상식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 좀 더 현실적인 방법은 나만의 작은 비즈니스를 하되, 장인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이 길을 택했다면 찻집을 할 때 찻잎을 직접 골라야 해요. 누가 내 고객이 될까요? 내 안목을 용인하는 사람들이 올 겁니다. 실제로 이런 가게들이 있습니다. 한 번은 내추럴 와인바에 갔는데, 홀에서 매니저 일을 하시는 분이 음식의 재료부터 요리법, 와인과의 마리아주까지 줄줄이 설명하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어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 가도 그 정도의 해박함은 기대하기 어려운데 말이죠. 이처럼 방법은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플랫폼을 만들거나 장인이 되는 것. 즉 프로바이더가 되거나 크리에이터가 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1등이 되어야 하고요. 가운데는 없어요. 결국 이 이야기의 무섭고도 슬픈 결말은, 우리가 완전체가 되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 베블런은 1899년에 '유한계급 leisure class'이라는 용어를 제안했습니다. 자본소득이 높아 노동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을 지금부터 유한계급이라 부르자는 거였죠. 이들은 노동하지 않습니다. 대신 어떻게 하면 나의 여유를 더 많이 표현할 것인지가 무척 중요한 그들의 '일'이었습니다. 유한함을 표현하기 위해 쓸모없는 것에 가치를 두고 비용을 지불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중요한 과업이었습니다. 그렇게 변화한 이유는 풍요로워졌기 때문이에요. 특히 물질의 풍요를 누리며 자란 밀레니얼 이후 세대들에게 소비는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의 하나입니다. 내가 사용하는 브랜드가 나를 표현하는 메시지가 되는 것입니다. 

 

- 소비행위가 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철학에 동의하고 응원하는 레벨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반면 공존의 원칙을 준수하지 못하는 이기적 비전은 동의받지 못할 것이기에 진정성 있는 참여가 따르지 않고, 사회의 지지도 적어져 사업의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기록으로 남습니다. 내 의지와 그 표상을 기록하는 것이죠. 따라서 나를 드러내는 기록은 주체가 나여야 합니다. '김 과장, 보고서 다 썼나?' 해서 써내는 건 내 기록이 아니에요. 시켜서 하는 거니까요. 내 의미를 담으려면 내가 주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출발점을 찍고, 조금씩 확장해가고, 그것을 기반으로 수련하고, 결과에 대해 오롯이 책임지고, 내 이름이 쓰이게 될 때 나를 표현하는 기록으로서 의미를 가집니다. 만약 내 속에서 우러나서 썼다면 회사 보고서도 내 기록이 될 수 있겠죠. 

 

- 이제는 스스로의 흔적을 남기고 성장의 기록을 채록하는 것이 곧 나의 프로파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 직접 하셔야 하고요. 둘째,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그 성장 과정이 나의 자산으로 환금될 것입니다. 일종의 사회문화적 자본이니까요. 그리고 그게 나의 업이 될 테니까요. 

 

- 앞서 '인간인 나는 뭘 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그 답이 기술이 아닌 것은 분명해졌습니다. 오리지널리티, 저작권을 가져야지 기술이나 기예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창시자가 돼야 해요. 오리지널리티 없이 기술을 습득한다면 기술이 자동화되기 시작했을 때 나의 가치를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곧 창의를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숙련이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생각을 먼저 해야겠죠. 과거처럼 도제로 들어가서 기술을 익히는 게 먼저가 아니에요. 무엇을 할 것이며 누구에게 배울 것인지, 생각을 먼저 해야 합니다.  
 
- 질의응답을 하면 그 사람의 고민의 깊이가 보입니다. 미리 짠 것도 아니고 즉석에서 던진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은 그만큼 공부가 쌓여 있고 미리 고민했다는 뜻입니다. 나의 해박함을 팔 수 있을 때 내 진정성이 전문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에 이를 위해서라도 미리 고민하고, 라이브를 고수합니다. 
 
- 그래서 일관성 consisterney 이 중요합니다. 일관되려면 지향점이 한결같아야 하므로 그걸 설정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해요. 먼저 원을 그리고, 그 원에 내 활동들을 정합시키는 작업을 하라는 것입니다. 현실을 둘러보아도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꾸준히 발신한 기업이 살아남습니다. 나이키가 지금까지 집행한 광고를 모으면 메시지가 됩니다. 내 행동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 완결돼야 하지만 전체를 보았을 때에도 맥락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메시지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는 게 앞으로의 미션이자 비전이 될 것입니다.  

- 결국 우리는 고민의 총량을 파는 것입니다. 하나하나에 다 의미와 상징을 새겨 넣고, 그런 다음 상대에게 넌지시 얘기해주는 거예요. 요즘은 실력 있는 작은 가게들이 많습니다. 간판도 요란하지 않지만 업에 대한 소신과 고민으로 상징성을 얻은 곳들입니다. 그 상징성 하나하나에 주인장의 정신이 깃들어 있겠죠. 그의 인생이 포함돼 있는 것입니다. 고민의 총량이란 내가 했던 시도의 총합이므로, 내 전문성 및 숙고의 결과를 파는 것입니다. 이는 시간의 축적도 있지만 이해와 지식의 총합도 되기 때문에, 그만큼의 해박함을 어떻게 만들어갈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게 결여돼 있으면 노동을 팔아야 하는데, 노동은 AI가 가져갈 테니까요.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원류로서의 오리지널리티를 만드는 작업이지, 예전처럼 여기 우리 제품이 있다고 알리는 데 몰두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죠. 

- 그렇게 내 삶을 정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생활 근육이 저는 '성장'이라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성장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에서 훈장처럼 주어지는 것입니다. 자신이 직접 일해서 남는 성장의 결과는 나에게 경쟁력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현행화를 꾸준히 해야겠죠. 생활이란 잠시 잠깐 하고 멈추는 게 아니라 지속되는 것이니까요. 이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 크게 3가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 첫째는 이성적 사고입니다. 데이터가 남고 각자의 기록이 나의 메시지가 되기에 생각 없이 시도하면 안 됩니다. 특히 만나지 않은 채 협업하는 세상에서는 이성적 사고가 무척 중요합니다. 이제는 데이터 리터러시, 통계적 해석 능력,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 능력이 누구에게나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이 3가지는 말하자면 똑똑해지기 위한 플랫폼이에요. 내가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같이하려면 공인된 정보를 공유해야 하는데, 이는 데이터와 시스템과 리터러시의 합으로 만들어집니다. 

- 둘째는 업의 진정성입니다. 이성적 사고가 충족되면 자신의 업에 대해 다시 정의하고 적용해보아야 합니다.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이 진짜 자기 것이어야 하고 서로 어긋남이 없어야 합니다. 따라서 업무에 필요한 전문적 지식은 당연히 요구될 것입니다. 자기다움에 대한 추구, 직업윤리도 필요하고요. 진정성이란 곧 자기다움의 윤리니까요. 직업이라는 것 자체가 여럿이 합의한 분업 시스템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사회적 역할 속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 셋째, 이렇게 진정성을 기반으로 협업하는 것은 결국 공존으로 연결됩니다. 그것도 성숙한 공존입니다. 지금까지는 공존이 '너는 이거 써, 난 이거 쓸게' 하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서로가 배려하고 함께함으로써 공공선을 만들 수 있는 공동체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관계가 폭증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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